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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소돔 120일’ 사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소돔 120일’ 사드

    “이 문이 닫히고 나면 실링이라는 뒤르세의 성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다음에 계속되는 설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저탄소를 지나자마자 그들은 성 베르나르 산만큼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산은 도보로밖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노새가 꼭대기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올라가는 길 사방이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노새를 이용하기에는 많은 위험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특별한 장비가 없는 한 새가 아닌 다음에는 산꼭대기까지 올라왔다 하더라도 산을 넘어갈 수가 없었다. 뒤르세는 천길 낭떠러지로 나뉘어져 있는 양쪽을 아주 튼튼한 나무다리로 연결시키고, 마지막 장비가 도착하고 나면 그것을 잘라버리기로 했다. 그 순간부터는 어느 누구도 실링 성으로 들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고자 하지 않았던 세계, 이것이 ‘소돔120일’의 세계이자 사드라는 인간의 내면 세계였다. 1. 色의 시대를 자극한 자 도나시앵 알퐁소 프랑수아 드 사드(1740~1814)는 23살부터 감옥을 드나들기 시작해서, 마지막 10년은 감옥과 다름없는 샤량통 정신병원에서 보낸 뒤 생을 마감했다. 반복된 수감과 석방을 거듭하며 그는 총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 있지 않을 때도 주로 거주지 제한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야 했다. 죽을 때까지 사드를 따라다닌 죄목은 ‘끔찍한 변태성욕’이었다. 명문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결혼까지 한 사람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난삽한 연애를 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18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프랑스는 안정된 경제를 기반으로 사치와 향략의 궁정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도시의 학교나 뒷골목에서는 학생이나 신부들의 동성애, 폭력적 성행위도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었으며, 부유한 귀족과 시민들은 사드의 작품보다 더 ‘외설적인’ 작품들을 탐독했다. 하지만 왕과 귀족들이 증오한 것은 오직 그, 사드였다. 우선, 사드는 남색과 가학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고 자신의 침실에서 서슴없이 신을 모독했다. 상대방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리면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불경하게 외치는 것은 기본이었고, 성배와 성찬용 빵을 섹스의 도구로 삼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했다. 서민들은 사드의 난행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귀족들의 무례함과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귀족들은 사드가 공격적인 신성모독을 통해 교회 권력을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드는 양쪽 모두의 증오심을 충족시켜주는 괴물이었다. 사드의 과감한 행위가 절대왕정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 사법관들은 이 괴물을 좌시할 수 없었다. 사드는 왜 이런 변태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는가? 절대왕정의 막바지에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 등 수많은 계몽 철학가들은 인간 이성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유정신을 주장하면서 신성(神聖)에 기반한 체제를 비판했다. 사드는 이들의 저서를 읽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사드가 보기에 이들 계몽철학가가 정의하는 ‘인간’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도덕적이었다. 인간의 성, 인간의 폭력, 인간의 증오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내부에 도사린 그런 ‘비인간성’을 건드리지 않고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드는 자신의 육체를 하나의 도구로 삼아,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우아한 드레스와 고상한 신학(神學), 철학서로 치장한 인간이 아니라 오직 육체뿐인 인간을 봐야 한다!’ 이렇게 결심한 사드는 인간의 비인간성을 스스로 실험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섹스를 하면서, 그 순간을 흡사 냉정한 법관이나 수학자와 같은 태도로 지켜보았던 것이다. 사드는 인간성과 동물성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자신을 실험함으로써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2. 습속의 굴레가 진짜 감옥이다 사드는 절대왕정 시대의 감옥보다 자기 안에 깊이 체화되어 있는 각종 도덕과 상식을 더 무서운 감옥이라고 생각했다. 사드는 시간을 정해놓고, 점점 더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감옥 안에서 난행을 거듭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가 반복된 매질과 가학적인 수음으로 찢기고 더러워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성을 둘러싼 상식들과 습속이 만든 삶의 윤리들이 갖는 한계가 드러나는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난행을 기록하는 와중에 글의 힘을 발견했다. 사드는 인간 육체와 성에 관한 통념이 무너지는 순간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인간의 생사·습속을 둘러싼 각종 한계들이 점점 더 명확해짐을 느꼈다. ‘글이야말로 자신과의 대화라는 형태로 자유를 생각하는 시간을 열어주는구나!’ 사드에게 글은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한 인간의 자유, 욕망, 한계가 드러나는 무대가 되었다. 마침내, 그가 있던 감옥은 그의 집필실이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부탁해 수많은 책들을 감옥 안으로 들여왔고, 간수의 감시를 피해 종이를 아껴가며 글을 썼다. 사드는 폭 11㎝ 길이 120㎝나 되는 띠를 구해 날마다 그 앞뒤로 빽빽이 글을 써 나갔다.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소돔120일’이다. 이 작품은 루이 14세 치하의 부패를 설명하면서 시작하며, 폐쇄된 성 안에서 난행을 거듭하는 인물들이 끝없는 엽색행각을 벌인다. 사드는 혁명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 직전의 적막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향락과 범죄를 언어화한 극한의 텍스트를 완성한다. 3. 바로 너 자신을 혁명하라 1789년, 사드는 감옥 안에서 혁명대의 함성을 듣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꿈꾸었던 자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혁명군은 사드가 절대왕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석방했다. 사드는 하루아침에 ‘반귀족 세력’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는 출감한 후 귀족 칭호도 떼어버리고 적극적으로 정치 팜플렛을 썼다. 동시에 감옥 안에서 집필했던 ‘미덕의 불운’과 ‘쥐스틴’을 출판했다. 그러나 혁명세력들은 사드의 작품에 동의할 만큼 혁명적이지 못했다. 결국 사드는 변태라는 죄목을 달고 다시 감옥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창밖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절대왕정 시대보다 더한 횡포가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나 왕의 말씀 대신에 이성과 합리로 덧칠한 법을 내세웠을 뿐이구나!’ 사드는 귀족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혁명가들에게도 절망했다. 사드는 혁명에 절망하면서 ‘규방철학’ 안에 정치 팜플렛을 담아서 출판한다. 절대왕정이 신봉했던 신성(神聖)과 혁명가들이 주장하는 법은 똑같이 “개별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편자를 위해 만들어”(‘규방철학’ 중)졌다. 즉, 혁명군이 이성에 기반한 자유를 주장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추상적 자유일 뿐이라는 것이 사드의 주장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런 보편적 인간이 어디에 있는가? 사드는 혁명 이후의 대학살을 지켜보면서 각자가 자기 식으로 자유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는 한 혁명은 절대로 완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혁명가들에게 이런 사드는 구시대의 망령일 뿐이었다. 결국 사드는 죽기 전 11년을 정신 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혁명 전에 범죄자였던 그가, 이제는 광인이 된 것이다. 4. 사드 이후의 사드 사드는 죽기 직전에는 경멸되었으며, 죽고 나서는 잊혀졌다. 그는 장례 절차 없이 매장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의 육체가 흙과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유언을 무시하고 종교적인 장례를 치렀다. 사드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19세기 말 크라프트 에빙과 프로이트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가학적 행위로부터 쾌락을 얻는 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드의 이름을 빌려왔다. 심지어 사디즘에서 죄의식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들은 그토록 철저히 신을 부정했던 사드를 오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면서 자유를 노래하는 자들은 사드를 잊지 않았다. 보들레르는 자연 상태의 인간과 사드의 악을 연결시키면서 ‘악의 꽃’을 썼고,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을 ‘사드 유령에게 사로잡힌 지성’이라고 표현했다. 또 초현실주의자 폴 엘뤼아르는 “사드는 문명인에게 원시적 본능의 힘을 되돌려주고, 고착으로부터 사랑의 상상력을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사드는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인간성’의 한계이자, 자유의 심연을 본 자다. 오선민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실천문학·문학과지성사 신임대표 문학계 희망을 말하다

    실천문학·문학과지성사 신임대표 문학계 희망을 말하다

    봄은 왔건만 문학의 봄은 여전히 아득하다. 몇 년 전부터 제기된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담론에서 허우적대다가 그마저도 흐지부지된 채 위기와 침체를 일상으로 여기며 지내는 형국이다.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출판사들이 최근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대표들을 바꿨다. 드러나는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다. 실천문학이 과감한 세대교체로 젊은 얼굴을 골랐다면 문학과지성사는 묵직한 중량감의 인물을 택했다. 새 얼굴을 각각 만나 한국 문학의 미래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포부를 묻고 들었다. 지향점은 같았다. 문학이 우리네 삶의 희망을 복원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쾌한 진보 위해 세대교체 필요” 손택수 실천문학 대표 서울 망원동 사무실에서 만난 손택수(왼쪽·41) 실천문학 신임대표는 그저 평온했다. ‘초짜 사장’으로서 과도한 자신감도,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지나친 겸손함도 없었다. 이미 기획위원, 기획실장, 편집주간으로 6년 동안 실천문학의 복판에서 일해왔기에 달라질 바가 없는 탓이다. 대신 그는 다른 이유로 분주했다. 문학계에서 실종되다시피 한 담론을 복원해내야 하고, 진보의 가치가 결코 진부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함께 떠맡을 젊은 작가들을 찾느라 삼고초려 중이다. “실천문학은 어느 개인의 출판사가 아닙니다. 1980년대 치열했던 사회 인식에서 출발해 공공의 꿈으로 만든 한국 진보문학의 공동체입니다. 문학으로 실천하고, 실천을 문학화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복원해야죠.” 실천문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열망을 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와 손을 잡아야 한다.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손 대표가 분명히 선을 긋는 곳은 ‘지루하고 진부한 리얼리즘’이다. 그는 “신나고 유쾌하고 늘 꿈틀거리는 새로운 상상력과 리얼리즘을 만나게 하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덧붙였다. “진보의 가치와 진보의 문학을 얘기하면서 진부한 틀과 내용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는 “이를 위해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인 윤지관(57) 덕성여대 교수, 이은봉(57)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함께할 나머지 이사 2명을 젊은 작가들로 채울 예정이다. 또한 편집위원과 기획위원의 면면도 확 바뀐다. 공석이 된 편집주간도 필요하다. 목표는 하나다. 확 젊어진 실천문학을 위해서다. 손 대표는 “좌우 경계를 뛰어넘어 젊고 패기만만한 작가와 평론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뭇 비장하다. ‘유쾌한 리얼리즘’을 얘기하면서도 비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위기의식은 충분하다. 1980년 만들어진 실천문학은 그동안 문학을 통한 사회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폐간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필화사건으로 대표가 구속되기도 하는 등 시련도 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주요 논의 지점마다 실천문학이 있었다는 자부심은 꼬박 30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게 했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문단 주변부로 비켜나 있는 작가들을 실천문학이 기꺼이 껴안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진보의 프리즘과 연대하여 문학의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공유하는 한편, 정치사회적 담론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뭘 하더라도 문제는 돈이다. 그동안 실천문학이 버틸 수 있는 힘은 시집 ‘접시꽃 당신’, ‘체 게바라 평전’,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뜸했다. 실천문학은 이달 중 사무실을 옮긴다. 같은 서울 망원동이긴 하지만 조금이나마 긴축할 수 있게 공간을 좁혀 인근으로 이사한다. 대표이사 월급도 대폭 낮췄다. 1억 5000만원 증자 계획도 진행한다. 손 대표는 “본질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실천문학이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지점이 바로 청빈과 내핍이기 때문”이라면서 “도덕적 순결성을 무기 삼아 빚에 허덕이는 실천문학의 경영을 정상화하고 문학 전체의 적극적인 변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갓 40대에 접어든 젊은 시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소액주주 111명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 전체의 뜻이기도 하다.
  •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현대문학사의 가까운 지점에 김홍신의 ‘인간시장’,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간이 있었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의 ‘반지의 제왕’ 등도 마찬가지 영역에 머물러 있다. 대중소설, 혹은 상업소설이다. 역사, 추리, 판타지, 연애 등을 다루는 소설을 흔히 ‘장르 소설’이라 일컫는다. 본격소설(혹은 순소설)과 대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간소설’(middlebrow fiction)이란? 말 그대로 본격소설과 상업소설의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다. 문학의 예술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을 모두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최근 현대문학이 판타지와 팩션(팩트+픽션), 칙릿(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literature의 조어) 등을 주 대상으로 삼는 풍조 속에서 중간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장르적 경계가 상당 부분 허물어진 상황에서 장르를 규정짓는 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으로 비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현실을 딛고 나온 발언이 있다. “중간소설은 결코 소설이 될 수 없다.” 사뭇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내놓은 문학평론집 ‘언어의 그늘’(서정시학 펴냄)을 통해 중간소설이 품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문 교수는 “한 나라의 문학이 풍성해지기 위해서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이 서로의 경계선을 확실히 유지하면서 상호 비판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면서 “중간소설이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선 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고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곧바로 “중간소설 옹호론자들이 본격소설의 본령과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할 때에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며 논의의 장(場)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몇 년 전 거액의 고료를 걸고 제정된 뉴웨이브 문학상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기존의 중간소설 옹호론 핵심을 ▲중간소설은 세계문학의 큰 흐름이며 서사의 재미와 함께 문학의 품격도 겸비한 만큼 과거 대중문학에 비해 한 차원 높다 ▲기존의 본격소설 역시 중간소설의 다양한 자양분을 수용해야 그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최첨단 정보기술(IT) 수준에 맞춰 생산된 보편적 문화 콘텐츠로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가져 보자 등으로 정리했다. 문 교수는 ▲소설은 사회의 모순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고독한 투쟁의 여행임에도 이를 외면하며 멀티미디어적 상상력만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본격소설을 위축시키며 ▲세계화,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업화한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만큼 민족적 특수성에 기반해 세계 인류가 공감하는 내용이 더욱 필요하고 ▲최첨단 IT 기술을 접목해 만드는 중간소설은 인간적 향기가 없는 문화 상품일 뿐이라고 조목조목 반박 논리를 곁들였다. 그는 “과거 현대문학의 흐름 속에서 이뤄진 실험과 파격이 문학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응전력이 그 속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문학은 지배 담론의 논리에 오염된 일상 언어를 비판하고 그 논리에 의해 추방된 그늘을 감싸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치 중간소설을 우리 문학의 미래인 양 표현하는 풍토가 만연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다.”면서 “굳이 순문학이니 본격문학이니 하며 경계 짓지 않더라도 세상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문학이 지켜야 할 가치만큼은 엄연히 존재함을 주장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엘리트주의를 앞세워 문학의 성벽을 굳건히 높이고자 하는 문단 주류 연구자의 고루한 아집인지, 아니면 흥미로움과 경박함이 문학의 외피를 쓰고 범람하는 풍조에 대한 외로운 저항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판단은 문학을 향유하는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전 7권)(임석재 글, 임혜령 엮음, 류재수 외 6명 그림, 최래옥 해설, 한림출판사 펴냄) 민속학 연구에 뜻을 두고 평생 옛이야기를 수집한 임석재(1903~98) 선생이 1972년 펴낸 옛날이야기 선집을 딸과 손녀, 제자가 힘을 모아 5년여 만에 복간했다. 해설과 함께 총 122편의 우리나라 옛이야기를 실었다. 7만원. ●내 마음은 사랑의 동물원(마이클 홀 글·그림, 이주혜·이진경 옮김, 상상박스 펴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진 21마리의 귀여운 동물친구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별부록으로 제공되는 동물 오려붙이기 미술놀이북은 가위질을 할 줄 아는 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듯. 9500원. ●랭고(고어 버빈스키·존 로건 글, 위문숙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그림 동화 ‘랭고’는 올 상반기 화제의 애니메이션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그림책으로 재구성했다. 애니메이션의 스틸 컷을 이용한 그림이 화려하면서도 재미있다. 초등 고학년을 위한 소설책 ‘랭고’도 함께 나왔다. 1만원. ●숙제 싸게 팔아요!(김정애·최석환·지경화 글, 끌레몽·이예휘 그림, 휴이넘 펴냄)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이 교과서를 국어, 사회, 과학, 예체능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눠 분석한 뒤 체험학습 보고서, 실험·관찰, 만들기 같은 숙제의 해결 방안과 예시를 제시한다. 쉽고 간결한 문체와 그림으로 숙제 고민을 덜어준다. 1만 2000원.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2011 오감체험 미술전 26일부터 5월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V갤러리. 미술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오감으로 느끼는 색채여행전’, ‘달콤한 상상력전’, ‘다중감각체험-미디어아트전’ 등으로 자녀와 부모님을 모시고 찾을 수 있는 전시로 꾸며졌다. (02)720-9785 ●권준의 이스탄불 초대전 31일까지 서울 청담동 청담갤러리.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지점인 이스탄불의 오랜 역사, 민족, 문화, 종교를 다룬 작품들을 선보인다. (02)511-9051. ●노재순전 ‘사운드’ 29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수. 바다가 인간에게 전하는 담담한 소리를 캔버스에 소화해 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02)733-5454.
  • 전설의 ‘흡혈괴물’ 추파카브라 정체는 바로…

    전설의 ‘흡혈괴물’ 추파카브라 정체는 바로…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 남부 지역에서 종종 목격되거나 사체로 발견되는 ‘흡혈 괴물’ 추파카브라의 정체가 최근 밝혀졌다고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하는 조사관이 주장했다. 초자연적 현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벤자민 래드퍼드는 “지난 5년 동안 추파카브라의 행적을 쫓은 끝에 이 미스터리 괴물의 정체와 소문의 진상을 파악했다.”고 자신이 발간하는 월간잡지 ‘스켑티컬 인콰이어러’(Skeptical Inquirer magazine)에서 밝혔다. 추파카브라는 ‘염소의 피를 빨아먹는 자’라는 뜻을 가진 전설의 괴물로, 기괴한 생김새 때문에 그 정체를 두고 외계인·돌연변이·멸종된 동물설 등 각종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라틴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수백 년 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래드퍼드에 따르면 ‘추파카브라’의 소문이 시작된 건 불과 15년 전. 1995년 여름 푸에르토리코에서 몸에 털이 없고 네발달린 동물이 피를 빨아 가축들을 잡아먹는다고 한 가정주부가 지역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흡혈괴물의 공포는 최초로 시작됐다. 이후 이 내용이 미국의 유명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재조명되자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2000년 대 중반부터는 구체적인 목격담과 추파카브라로 추정되는 사체들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DNA검사결과 대부분 털 빠진 코요테, 여우, 개 등 네발달린 동물이었던 것. 게다가 이들에게는 ‘흡윤개선’이란 진드기성 피부병을 앓고 있었던 것. 잡지에서 래드퍼드는 추파카브라는 괴물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래드퍼드는 “사체를 검사한 결과 흡혈한 흔적이 전혀 없었던 점으로 미뤄 심한 피부병으로 생김새가 흉측해진 동물들이 건강이 좋지 않아지자 농가로 내려와 공포를 줬을 것”으로 추측했다. 래드퍼드는 “추파카브라는 흡혈괴물이 아닌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주장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 남부 등 따뜻한 지역에서 자주 발병하는 피부병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공연리뷰] 2만 4000원에 만나는 ‘메트 오페라’의 감동

    [공연리뷰] 2만 4000원에 만나는 ‘메트 오페라’의 감동

    최근 들어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오페라 공연 실황을 극장·공연장에서 생중계하는 일이 늘고 있다. 새로운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오페라단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이런 변신은 2006~07 시즌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으로 피터 겔브가 취임하면서부터다. 겔브는 시즌 개막작인 ‘나비부인’을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의 교통을 통제한 채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 650개의 좌석을 설치해 상영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지난 18~20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2010~11 시즌 작품인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 중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이 상영됐다. 지난해 10월 9일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일반 HD화면보다 4배 이상의 고해상도(4K) 디지털 화면과 5.1채널 음향으로 구현한 것. 2시간 35분짜리 공연에 앞서 30분가량 주인공 브린 터펠(신들의 우두머리 ‘보탄’ 역·베이스바리톤)과의 인터뷰 영상 등을 보여 줬다. 천재 연출자로 불리는 로베르 르파주의 작품 해석이 이전 작품들과 어떻게 다른지 관람 포인트도 짚어 줬다. 막이 오른 순간부터 눈을 떼기 어려웠다. 푸른색의 라인 강 밑바닥에서 노니는 라인의 세 요정과 지하에 사는 난쟁이 알베리히가 만나는 장면은 르파주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됐다. 와이어를 부착한 특수 의상을 입은 세 요정은 3단계로 분할되는 무대(라인강)를 자맥질하듯 오르내린다. 푸른 조명과 실제 물속에서 노니는 듯 요정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거품 등 판타지적 요소가 가득했다. 다양한 카메라워크로 가수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잡아내는 건 스크린으로 오페라를 보는 또 다른 매력이다. 특히 알베리히 역의 에릭 오언스(바리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대목은 최고 400달러를 웃도는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있더라도 느끼기 힘들 것. 호암아트홀은 새달 1~3일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를 비롯해 메트오페라의 올 시즌 작품 9편을 더 상영할 예정이다. 일정은 홈페이지(www.hoamarthall.org)나 전화(02-751-9607~10)로 확인하면 된다. 전석 2만 4000원.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CEO 칼럼] 변화를 통한 미래경영/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CEO 칼럼] 변화를 통한 미래경영/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세상에는 우리가 보고 듣는 것만 존재하는 것일까. 다소 엉뚱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우리 신체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보고 듣는 영역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즉,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간은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해왔고, 지적 상상력을 동원해 문화 예술 작품을 창조해왔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을 인용해 보자. 석판에 새겨진 지도를 따라 성배를 찾던 존스 박사는 벼랑 끝에서 지도상의 다리를 볼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주연배우는 실감나게 연기한다. 보이지 않지만 건너 볼까, 아니면 포기할까. 당사자로서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존스 박사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한발을 내디뎌 무사히 다리를 건넜고, 이후 허공에 모래를 뿌리자 그제서야 다리는 실체를 드러낸다. 눈앞에 없지만 다리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완벽한 예견은 불가능하다. 내일에 대한 대비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환경변화 및 사회 구성요소 간 변화의 흐름을 읽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래를 경영한다는 것은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으로, 경영자라면 20~30년 후를 바라보고 능동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을 겸비해야 한다. 꾸준히 번영하는 조직과 널리 활용되는 사물의 경우, 본래의 기능만으로 쓰이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외연이 확장되고 새로운 용도로 활용됐다는 특징이 있다. 일례로 과거 수력발전을 목적으로 건설됐던 댐을 보면 최근 발전 비중은 점차 축소되고, 홍수 조절·용수 확보·관광 등 새로운 쓰임새가 추가되고 있다. 댐의 용도를 발전용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활용 방안을 강구하지 않았다면 수력발전 비중이 1%대로 줄어든 지금 댐은 아마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을 가두고 저장하는 댐의 기본 기능에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용수 부족 해결, 관광레저산업의 육성이라는 시대적 상황 변화가 더해져 발전 외에도 다양한 효용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세월이 흐를수록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다양한 토대를 마련하고 진화해야 영속할 수 있다. 특히, 국민의 성원으로 유지되는 공기업은 경영환경의 변화뿐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공공서비스 수요에 맞춰 지속적인 혁신과 거듭나기가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도 창립 이래 50여년 동안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금융회사의 연체 대출금 회수 업무부터, 2009년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위기극복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던 부실채권 정리 및 구조조정업무, 서민금융 지원 및 국가자산 관리까지 우리 공사는 ‘자산관리’라는 핵심역량을 활용해 급변하는 경영환경과 공공금융서비스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국가경제를 돕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전히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국가자산·금융자산·신용자산의 적극 관리를 통한 재정건전성 강화, 금융산업 선진화, 서민경제 활성화 및 동반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현실 안주는 퇴보를 의미한다. 보이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미래를 향한 거대한 흐름을 보고 있다. 다가올 내일에 대한 부단한 분석은 보이지 않는 다리가 새겨진 존스 박사의 석판처럼 조직이 진화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의사결정의 순간 신념과 믿음을 실어 줄 것이다. 영화에서 존스 박사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 결국 성배를 손에 넣었다. 우리 기업들도 미래 흐름에 대한 지식과 소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면 성공이라는 ‘성배’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 ‘토성에도 UFO가?’…기괴한 위성 포착

    ‘토성에도 UFO가?’…기괴한 위성 포착

    우주인들은 지구 말고도 다른 행성에도 관심이 많아 비행접시를 타고 여행을 다니는 걸까? 최근 유럽우주국(ESA)이 공개한 토성의 위성 사진은 미확인비행물체(UFO)와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19일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 2004년 토성 탐사를 목적으로 우주로 향한 카시니-호이겐스호가 이 행성의 고리에서 촬영해 ESA으로 보내온 기이한 2개의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팬’과 ‘아틀라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두 개의 물체는 얼음 위성보다는 비행접시처럼 생긴 토성의 위성이다. ESA의 과학자들은 이 우주 사진에 대해 지난 몇 년간 연구를 한 뒤 몇 가지 결과를 추출했다. UFO와 흡사한 위성 팬은 사진상에서 토성의 가장 안쪽에 있는 위성으로 A 고리 외부의 엔케 간극 내 궤도에 자리잡고 있다. A 고리는 토성에서 가장 먼저 발견됐으며 얼음 형태를 띠고 있다. 토성을 공전하는 14개의 초소형 위성에 포함되는 이 두 위성은 물과 얼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매우 낮은 밀도의 얼음 형태 위성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위성들은 고리 내에서 스스로 생성돼 지금의 형태를 보이게 됐으며 융합되기 위해 중력을 극복할 활성화 과정이 필요했다. ESA의 연구원 캐롤린 포르코 박사는 “이 위성들은 작고 많은 구멍을 가진 입자를 가지고 있는데 고리의 환경 속에서 쉽게 지금 커다란 크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다.”고 전했다.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트 리서치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독특한 모양의 위성인 팬과 아틀라스의 생성 과정에 대해 행성의 주변에 있는 먼저와 가스로 형성된 응축 원반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응축 원반이 회전할 때 비행접시 모양의 형태를 띠게 된다는 게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사진=ESA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극과 극 ‘슈퍼리치’ 다룬 신간 2권

    극과 극 ‘슈퍼리치’ 다룬 신간 2권

    ■ 사치열병/로버트 프랭크 지음 미지북스 펴냄 ‘승자 독식 사회’ ‘이코노믹 씽킹’ 등의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대 존슨경영대학원 교수는 신작 ‘사치 열병’(이한 옮김, 미지북스 펴냄)을 통해 현대인의 소비 패턴이 점점 더 ‘과시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랭크 교수는 사치 열병의 주범으로 최상층의 무분별한 소비 행태를 꼽는다.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초호화 요트인 크리스티나호에는 스위치를 올리면 수영장 위로 모자이크 타일의 무도장이 펼쳐지고, 스위치를 내리면 무도장이 다시 접혀 들어간다. 이 배의 수도꼭지는 순금이고, 높다란 의자에는 향유고래의 음경 포피로 만든 덮개가 씌어 있다. 오나시스의 경쟁자인 니아르코스는 이 사치스러운 전투에서 이기고자 오나시스의 배보다 최소한 15m가 더 긴 요트를 만들었다. 슈퍼리치(superrich·순자산이 280억원 이상인 사람)의 이 같은 소비 패턴은 바이러스처럼 중위 소득 가구, 심지어 하위 소득 가구에까지 확산해 영향을 미친다는 게 프랭크 교수의 진단이다. 최상층의 소비 패턴은 결혼 축의금, 생일 선물,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와인의 종류, 구직 면접 때 입어야 하는 옷의 종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최상층의 소득 수준은 크게 나아졌지만, 중위 소득 가구와 하위 소득 가구의 살림살이는 그대로이거나 더 나빠졌다는 점. 중위 소득 가구와 하위 소득 가구는 소득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위층의 소비 수준을 따라잡고자 저축을 줄이거나 빚을 지게 됐고, 그 결과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다른 주요 산업국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개인 파산 신청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저자는 통렬히 지적한다. 사치 열병을 앓는 사회를 바로잡을 방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것은 바로 ‘누진 소비세’다. 누진 소비세는 한 가정이 해마다 지출하는 소비 총액에 근거해 과세하는 것. 각 가정은 일정 금액 이상의 소비에 대해 누진세를 물게 되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에 먼저 돈을 쓰고, 과시적인 소비는 줄이게 될 것이라는 게 프랭크 교수의 설명이다. 누진 소비세로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 불황이 닥치진 않을까. 저자는 소비에 쓰지 않는 돈은 은행에 저축되기 때문에 투자가 늘어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고, 정부는 세금으로 마련한 재원을 복지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2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랄프 네이더 지음 꾸리에 펴냄‘슈퍼 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랄프 네이더 지음, 강경미 옮김, 꾸리에 펴냄)는 저자가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꾸며 만든 소설적 비전이다. 1934년 레바논 출신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네이더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31살에 거대기업 제너럴모터스(GM)를 고발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를 썼다.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친구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으로 그는 GM 사장의 공개 사과를 받아냈다. “소수에서 다수로 권력을 이동시키겠다.”며 1996년부터 네 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독립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제 팔순에 이른 저자는 자신이 현실에서 못다 이룬 꿈을 책으로 집대성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폴 뉴먼, 테드 터너, 배리 딜러, 로스 페로, 버나드 라포포트, 맥스 팔레브스키, 오노 요코 등이 하와이 마우이 섬의 한 호텔에 모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인자산만 수조원에 이르는, 세계적 부의 상징인 ‘슈퍼 리치’들이란 것이다. 17명의 억만장자는 시장 만능 자본주의와 기업에 대한 특혜가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가져온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대기업에 의해 장악된 금권정치를 회복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대전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지난해 세계적 부자인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기부서약’ 캠페인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다.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생전이나 사후에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다는 소식은 신선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슈퍼 리치’의 저자 네이더는 팔순의 워런 버핏이 “부자들이 많이 가진 것을 내놓는 것도 특권”이라며 다른 억만장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함께 내놓자.”고 설득하는 모습을 마치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그려낸다. 버핏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자이지만 부자에 대한 감세 혜택을 중지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부자 세금 많이 내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책에서 억만장자들은 자선과 기부운동에서 한발 나아가 전면적인 국가개혁을 실현하겠다고 팔소매를 걷어붙인다. 자신을 ‘사회개선론자’라 부르는 이들은 수천만 미국인을 괴롭히는 절대빈곤을 폐지하고, 시장을 떠받치는 하부경제를 강화하며 미국의 오랜 양당 질서를 뒤흔들고 의회를 개혁하는 일을 추진한다. 부자들이 인간 조건의 개선을 위해 매진하는 일을 그려낸 ‘슈퍼 리치’는 한 좌파 몽상가의 꿈을 담은 책이라 치부할 수 있다. 혹은 대통령의 꿈을 접은 노인네가 펼친 상상력의 유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민운동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네이더가 어떤 경제학자보다도 신랄하게 미국 보험업계의 감춰진 비밀과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장면에서는 ‘정의란 단호히 움직여야 얻어진다.’는 데 공감하게 될 것이다. 2만 7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그에게 지진·쓰나미보다 더 불운한 건 꽃이 팔리기도 전에 시드는 것 ”

    “그에게 지진·쓰나미보다 더 불운한 건 꽃이 팔리기도 전에 시드는 것 ”

    “김에게는 화원의 꽃이 팔리기도 전에 시들어 죽거나, 누군가 돌을 던져 화원의 유리를 깨뜨리고 도망가는 게 전쟁이나 지진보다 더 불운이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것은 어쩌지 못하는 사이 모두에게 닥치는 일이었다. 그러니 두려울 게 없었다. 모두 무사한데 자신에게만 불운이 닥치는 것. 김이 생각하는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 편혜영(39)의 신작 소설집 ‘저녁의 구애’(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주인공 김의 직업은 화원 주인이다. 10년도 더 전에 만났던 친구는 다짜고짜 김이 한때 은혜를 입었던 어른의 화환을 주문한다. 남쪽으로 380㎞ 떨어진 도시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근조 화환을 가져간 김은 아직 어른이 죽지 않았다는 친구의 전화에 하릴없이 낯선 도시에서 어른의 죽음을 기다린다.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하게 분절된 시간표를 지키며, 동일한 식사를 하고, 동일한 의복을 입고, 동일한 독서를 하고, 동일한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는 삶, 그래서 어떤 차이도 없고, 차이가 없으니 상처도 없고, 그래서 어떤 굴곡도 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완전히 동일해지는 나날의 연속, 즉 복사기와 같은 삶’을 산다. ‘토끼의 묘’의 주인공은 낯선 도시의 파견직이며, ‘동일한 점심’의 주인공은 대학교 복사실 주인이다. ‘관광버스를 타실래요?’ ‘산책’ ‘정글짐’ ‘크림색 소파의 방’의 주인공들 역시 그날이 그날 같은 회사원이거나 파견직이다. ‘통조림 공장’은 아예 통조림 공장을 무대로 도시에 사는 통조림 같은 현대인의 일상을 그려낸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초기 편혜영의 소설들에서 자주 등장하던 그로테스크한 소재들, 가령 시체나 쓰레기, 악취 같은 것들은 사라졌지만 낯선 도시 문명에서의 나날의 삶 모두가 섬뜩한 미궁”이라고 해석했다. 편혜영의 소설에서 확인하는 것은 자연의 혼돈에 맞서 우리가 만든 도시 문명이 결국 ‘동일성의 지옥’이란 것이다. 탄탄하고 틈 없이 건조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편혜영의 단편 소설에서는 ‘매연이 섞인 공기,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수종이 같은 가로수’ 따위를 유일한 자연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현대인들의 비애를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열린세상] 정치 불신과 정치자금법 파동/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정치 불신과 정치자금법 파동/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 교수

    개학과 더불어 ‘정치학개론’ 첫 강의에서 필자는 “여러분들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냉소주의를 극복하여 보다 나은 정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능동적으로 정치적 결정과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과목을 가르치는 목적”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강의를 시작한 첫 주에 국회에서 소위 정치자금법 파동이 일어나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번 파동의 내용이나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의원의 입장에선 억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치자금법 중 애매모호한 조항들을 수정해 법사위로 넘겼는데 기습처리, 밥그릇 챙기기, 제 식구 봐주기 등으로 몰아붙이니 말이다. 개정한 31조 2항의 경우 정치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법인이나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 대신 여전히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한 채, 다만 ‘법인과 단체 관련 자금’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 대신 ‘법인 또는 단체의 자금’으로 고쳤다. 그리고 32조 2항의 경우 입법 로비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지금까지 힘있는 로펌이나 재벌, 단체들은 직접·간접으로 입법 로비를 해오고 있는데 이들보다 훨씬 힘이 약한 청목회 같은 사회적 약자들도 입법을 위해 정당하게 국회의원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소위 끈이 없는 약자들은 그나마 표에 민감한 국회의원들이 그래도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한 공정사회가 되려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힘이 약한 자들도 정책 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질 것이다. 이번 정치자금법 파동의 경우 정치인들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법 개정에 참여한 행정안전위 소속 국회의원의 3분의1은 여전히 법 개정이 타당하다는 소신을 펴고 있다. 그런데 왜 언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맞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불신 때문이고, 입법의 시기와 절차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교훈을 잊은 탓이다. 개정 법조항 위반으로 기소된 국회의원들이 있는 행정안전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소위 청목회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을 봐주기 위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불렀다. 더욱이 정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직도 입법 로비를 허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우리가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정치자금법을 시행해 오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의 정치문화에 적합한 제도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히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행 정치자금제도의 골간이 흔들리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필자는 현행 제도의 골간인 소액다수주의 정치자금 후원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투명성 확보 노력을 비롯한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10만원 이하의 무기명 후원금의 경우 정치인들이 단체와 관련된 후원금인지 알 수 없으므로 이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으로 작년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경기지사 후보에게 일부 단체가 10만원씩 쪼개기로 입금시킨 경우만 해도 당사자가 선거기간에 수만명을 대상으로 소액 후원금의 단체 관련 여부를 일일이 조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앞으로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를 하면서 일부 지방선거 후보자에 대한 후원회 허용 여부, 후원금의 한도 조정, 집회를 통한 후원금 모금 허용 여부 등을 신중하게 토론해야 한다. 언론이나 학자들은 ‘정치인 때리기’에만 앞장설 것이 아니라 현행 정치자금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합쳐야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조금씩 해소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정치자금법을 비롯한 선거법, 정당법 등에 대한 본격적인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니 기대가 크다. 이들의 작업이 성공적이어야 필자의 이번 학기 강의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동물 입 빌려 ‘인간 만행’을 말하다

    소설의 운명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2002년 ‘파이 이야기’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얀 마텔은 이 같은 물음에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이런 바탕에는 인간의 본질이라는 무거운 공통분모가 깔려 있다. 41개국어로 번역된 ‘파이 이야기’ 이후 9년 만에 침묵을 깨고 새로 선보인 장편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에서도 마텔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 온 끈질긴 집념을 깔면서 ‘파이 이야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독창적인 우화형식을 빌려 흥미롭게 전개해 나간다. 전작 ‘파이 이야기’가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아 태평양 한가운데를 표류하는 소년과 호랑이의 공존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나치에 의해 자행된 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상징적으로 그려 나간다. 왜 그는 홀로코스트에 동물들을 등장시켰을까. 아마도 동물의 입을 빌려 인간의 추악한 만행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번역을 맡은 강주헌은 “마텔이 동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가 인간의 목소리에는 냉소적인 반응을 띠더라도 똑같은 이야기가 동물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는 사뭇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는 ‘파이 이야기’와는 달리 박제된 동물을 등장시킨다. 그것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두 주인공 ‘베아트리체’(영어식으로는 베아트리스)’와 ‘베르길리우스’(영어식 버질)라는 안내자의 이름으로. 소설 속의 화자(話者) 헨리는 작가 마텔을 연상시킨다. 동물 소설로 큰 명성을 얻은 헨리는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방식이 아닌 상상력을 동원한 비유의 방식으로 홀로코스트를 다룬 소설을 완성하지만 책으로 펴내기도 전에 혹평을 받고 글 쓰기를 그만둔 채 익명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그에게 의문의 소포가 배달된다. 그 속에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완성 희곡 ‘20세기의 셔츠’가 들어 있다. 헨리는 희곡을 쓴 사람을 찾아간다. 한 뒷골목에서 박제상점을 하는 노인을 만나고, 희곡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박제된 당나귀와 원숭이도 보게 된다. 이때부터 박제사 노인의 말을 들으며 헨리가 희곡의 완성을 돕는다는 것이 책의 줄거리.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는 ‘구스타브를 위한 게임’을 제시한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질문이 12번째까지 계속되다가 13번째의 질문은 빈칸으로 남겼다. 왜? 소설의 운명에는 독자들의 몫이 있기 때문이다. 1만 2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Seoul 요모조모 만원의 행복] ‘休~영화관’ 아이도 봐주네!

    [Seoul 요모조모 만원의 행복] ‘休~영화관’ 아이도 봐주네!

    “결국 봄이 또 와버렸구나.”라며 주부 ‘나분주’씨는 혀를 끌끌 찬다. 따스한 봄 기운, 가슴은 소녀처럼 설레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아리다.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 하지만 아이 때문에 집에 매여 버린 아줌마 신세가 참 처량하다. 영화 한편 보고 싶어도 아이가 발목을 놔주지 않는다. 더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아이 기저귀값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마당에 여가란 사치일 뿐이다. 봄이 이렇게 얄궂을 줄이야. 강동구 성내동 강동어린이회관의 ‘휴(休) 영화관’은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보듬는 안식처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200석 규모의 공연장인 3층 ‘아이누리홀’에서 스크린은 펼쳐진다. 아카데미나 칸영화제 및 국제 영화제 수상작 등 유명 작품을 상영한다. 물론 무료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아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2층에 마련된 ‘동동놀이체험관’에서는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위해 영화 상영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준다. 1명은 3000원, 2명은 5000원만 내면 된다. 2009년 11월 문을 열어 월평균 관람객이 70~100명에 이를 정도로 입소문도 자자하다. 특히 올해부터는 상영 주제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테마별로 운영한다. ▲영·유아가족이 함께 보는 ‘가족영화’(5·8·11월)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어린이영화’(5·10·12월) ▲2030부부에게 음악·미술·춤을 주제로 영화를 통해 가족애를 느끼도록 하는 ‘2030 부부영화’(3·7·9월) ▲월별 기념일 ‘과학·환경·인권의 날’ 등에 맞추어 상영되는 ‘테마영화’(4·6·12월)로 운영된다. 27일에는 일본 영화인 ‘셸위댄스’가 기다리고 있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홈페이지(www.gdkid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어린이회관 옥상에 마련된 생태체험장 ‘하늘정원’에서 습지와 숲 등 자연환경 전문가들로부터 하늘정원의 동식물 관련 이야기도 듣고 따스한 봄볕 아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다. 회관 1층에는 육아 정보를 제공하는 보육정보센터가 있고 육아 전용도서 4000여권도 갖췄다. 486-3516~8.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김영남 네 번째 시집 ‘가을 파로호’

    김영남 네 번째 시집 ‘가을 파로호’

    물과 꽃의 공통점이 있다. 한 음절의 단어라는 것? 맞다. 뭇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이라는 것? 맞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품고 오랜 문화예술사를 통해 숱한 가인들로부터 다양하게 변주됐다는 것? 맞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젊은 시인 김영남이 욕망을 담아 즐겨 사용한 시재(詩材)라는 점이다. 김영남이 자신의 네 번째 시집 ‘가을 파로호’(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드러낸 시정은 농염하기만 하다. 꽃을 노래할 때도, 호수나 바다를 노래할 때도 시인은 짓궂은 욕망을 슬쩍, 혹은 노골적으로 보여준 뒤 상대방의 표정을 빤히 쳐다본다. 생물학적 나이로 54세니 이미 중견시인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는다. 삶을 관조 연(然) 하는 것이 어울릴 법한 나이다. 짐짓 심각한 척해도 되고, 같은 시어라도 그렇게 읽으라는 식의 기호를 담을 수 있겠건만 애써 거부한다. 한데 시력(詩歷)을 따지면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니 ‘고작’ 14년차에 불과하다. 어쩐지…. 장난치고 싶어, 연애하고 싶어, 새로운 시 쓰고 싶어 안달이 났다. 김영남이 여전히 젊은 시인이고, 젊은 시인이어야할 징표다. 시집의 첫 시편부터 애사롭지 않다. ‘…/우물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 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날이여’(‘앵두가 뒹굴면’ 중)라고 노래하거나 ‘…/ 이 아저씨들 하역 다 끝나면 나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쪼그라든 콘돔을 앞에 두고/ 저건 점박이, 이건 꼽새 아저씨 것 하고 한 번 우겨보리라’(‘나로도 호박꽃’ 중)라며 풋풋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성장기의 일부를 내밀히 고백한다. 그리고 목련, 동자꽃, 나팔꽃, 능소화, 할미꽃, 코스모스, 성에꽃, 튤립, 찔레꽃 등을 차례로 호출한다. 꽃마다 유혹과 욕망의 시상이 기억과 상상력을 통해 버무려져 있다. 찔레꽃은 ‘포옹에 관한 리뷰’가 되고, 튤립은 ‘자전거에서 내린 소녀’이며 능소화는 ‘그예 그리움으로 담을 타는 여인’이 된다. 시인의 장난끼는 바다를 대하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절벽과 마주 앉아 한잔 크게 나누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리라/…/ 저 강진만 바다를 형님! 형님! 하고 불러보자’(‘강진만’ 중)라며 바다와도 벗을 맺거나 ‘새벽녘 다랑논에 나가/ 모내기하는 앵강만을 데려와 씻겨 벗겨 눕혀본다’(‘앵강만 일출’ 중)고 하며 자연에 대한 호방한 욕망을 거침없이 뿜어낸다. 시와 인생을 가지고 노는 일망무애(一望無涯)함이 부러움을 자아낼 만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할리우드가 열광했다…이 남자가 창조한 미래에

    할리우드가 열광했다…이 남자가 창조한 미래에

    그가 숨을 멈춘 것은 1982년 3월 2일. 29년이 흘렀는데도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영화 자막에 오르내린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1990),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 우위썬 감독의 ‘페이첵’(2003)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할리우드 감독들이 사랑하는 공상과학(SF) 소설가 필립 K 딕의 얘기다. ●죽을 무렵에야 인정받은 불운한 작가 SF 문학의 ‘빅3’는 아이작 아시모프(아이로봇), 아서 클라크(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로버트 하인라인(스타십 트루퍼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만 놓고 보면 딕에 못 미친다. 딕은 1928년 미국 시카고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예정보다 6주 먼저 태어났지만, 쌍둥이 누이는 5주 만에 죽었다. 그의 작품 속에 곧잘 등장하는 ‘상상의 쌍둥이’(Fhantom Twins)의 모티브가 됐다. 청소년기에 아시모프 등 SF 작가에 심취했던 딕은 UC버클리에서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곧 그만뒀다. 결혼을 다섯번 했고, 광장공포증·피해망상·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등 순탄치 못한 생을 살았다. 30여년 동안 48편의 장편소설과 100편 이상의 단편·에세이를 발표했다. 생활고 탓에 펜을 놓지 못했던 것. 1963년 ‘높은 성의 사나이’(The Man in the High Castle)로 최고의 SF 소설에 주어지는 휴고상을 받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심장마비로 죽은 이듬해인 1983년, 가능성 있는 신인 SF 작가에게 수여하는 ‘필립 K 딕 상’이 제정되는 등 재조명을 받았다. ●섬뜩한 예지력과 기발한 상상력, 존재론적 의문 암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미래를 그린 그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보고 있는 현실은 진실인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생전에 완성을 보지 못한 ‘블레이드 러너’(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은 속속 스크린에 옮겨졌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많은 영화들이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했다. ‘블레이드’는 2019년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이다. 인간보다 탁월한 육체적 능력은 물론, 대등한 지능과 감정까지 느끼는 복제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를 통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분전환기계’를 이용해 기분을 조절하는 인간과 감정을 느끼는 복제인간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 워싱턴DC를 배경으로 범죄가 일어나기 전 범죄자를 단죄하는 첨단 치안시스템 ‘프리크라임’을 소재로 한다. 돌연변이로 예지 능력을 갖게 된 세 명의 예지자를 이용해 용의자를 미리 체포한다는 기발한 발상이다. 딕은 여기에서도 윤리적 판단을 요구한다. 범죄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용의자’를 사전에 제거하는 게 옳은 것일까. 기발한 문제의식과 인간복제 등 미래사회에 대한 섬뜩한 예지력, 기술의 진보에 따라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들을 엮어내는 능력이야말로 감독들이 딕의 작품에 홀리는 이유일 터. ●맷 데이먼 주연… SF의 껍질을 쓴 로맨스 ‘컨트롤러’ 개봉 3일 개봉한 조지 놀피 감독의 ‘컨트롤러’(원제:The Adjustment Bureau)도 딕의 단편 ‘조정팀’(The Adjustment Team)이 원작이다. ‘오션스 트웰브’ ‘본 얼티메이텀’의 시나리오를 맡았던 놀피는 ‘본 시리즈’에서 호흡을 맞춘 맷 데이먼과 일찌감치 손을 잡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에밀리 블런트가 9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컨트롤러’는 인간의 기억과 일상, 심지어 미래까지도 전능한 존재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우연 따윈 없다. 운명적인 사랑까지도 초현실적인 집단 ‘조정국’의 설계도에 따라 이뤄진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데 지친 한 요원의 실수로 하원의원 데이비드 노리스(데이먼)는 조정국의 존재를 알게 된다. 나아가 조정국이 허락하지 않는 엘리스(블런트)와 사랑에 빠진다. SF 액션영화의 ‘반죽’에 로맨스 ‘토핑’을 듬뿍 얹었다. 딕의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말랑말랑하고 뒷맛이 깔끔할 듯싶다. 물론 딕의 마니아라면 외려 만족도는 떨어질 수도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쏠까 말까 고민말고 先조치 後보고”

    “쏠까 말까 고민말고 先조치 後보고”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하라.” 김관진 국방장관이 1일 북한군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부전선 최전방부대를 순시하면서 유사시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대응사격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군 도발에 망설이지 말고 즉각 대응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김 장관은 오전 7시 55분쯤 1군단 지하 벙커에 있는 지휘통제실에서 최종일 군단장으로부터 북한군의 최근 동향과 우리 군의 대비 태세를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최 군단장의 보고를 받은 직후 “북한군이 도발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도발유형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끊임없는 토의가 필요하다.”면서 “작전 시행 시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김 장관은 이어 “아무리 도발 대비 계획이 잘돼 있다고 해도 행동이 따라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최 군단장은 “북한군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추적하고 있다.”면서 “북한군이 도발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하고, 적의 공격이 있다면 원점을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1군단은 남북관리구역 서부지구 및 임진각 일대를 관할하는 부대다. 김 장관은 이어 1군단 예하 포병대대의 다연장로켓(MLRS) 부대를 방문해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 기간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점검하는 차원에서 전방을 순시했다.”면서 “특히 북한군이 심리전 발원지를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최근 상황을 반영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연일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정당방위를 위한 우리 군대의 물리적 대응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이석·윤설영기자 hot@seoul.co.kr
  • “호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의미”

    “호텔 캘리포니아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의미”

    1971년 그룹 결성 이후 처음 내한공연을 하는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이글스가 이메일 인터뷰에서 “늘 한국 공연을 원했지만, 여건이 안 됐었다. 한국 팬을 만나게 돼 정말 기대된다.”고 밝혔다. 오는 15일 서울 송파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공연에는 원년 멤버인 글렌 프라이(기타), 돈 헨리(드럼), 조 월시(기타), 티머시 B 슈밋(베이스)이 출연해 팬들의 기대감이 더 뜨겁다. ●“늘 원해온 한국공연… 정말 기대된다” 이글스는 1980년 팀을 해체했다. 당시 그들은 “지옥이 얼어붙지 않는 이상 재결성하지 않겠다.”(We would never re-group unless hell freezes up)고 했지만 14년 만인 1994년 재결합했다. 재결합과 함께 내놓은 앨범 제목은 ‘헬 프리즈 오버’(Hell Freeze Over·지옥이 얼어붙다). 세기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의 보컬을 맡았던 돈 헨리는 “(이글스가 롱런하는 것은) 좋은 음악 덕인 것 같다.”면서 “공연에서도 온 힘을 다해 음반처럼 연주하는 모습을 팬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팀의 양대 축인 프라이와 헨리를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에 빗대 미묘한 경쟁 관계로 묘사하기도 한다. 헨리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비틀스는 우리와 다른 레벨의 아티스트”라면서 “내게도 비틀스는 음악적 영웅”이라고 말했다. 프라이는 “두 마리의 호랑이는 한 산에 있을 수 없다지만, 비틀스의 존과 폴,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처럼 존중하며 믿을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돈 헨리 “비틀스는 내게도 음악적 영웅” 평론가와 팬 사이에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렸던 ‘호텔 캘리포니아’의 의미와 관련, 프라이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면서 “비디오 매체가 없던 시절이라 가사를 통해 노래의 이미지를 묘사했던 것인데, 가사들이 팬들의 상상력을 부추긴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헨리는 “미국은 꿈꿀 기회를 줬지만, 모든 이들이 꿈을 이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는지조차 의심스럽다.”면서 “이 곡에서 말하고자 했던 캘리포니아는 영화 산업을 통해 만들어진 캘리포니아와 미국에 대한 환상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정조의 유산 둘러싼 미스터리

    조선 역사에 정조라는 임금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극과 역사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조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소설가 유광수(43)의 두 번째 장편 ‘왕의 군대’(휴먼앤북스)는 갑신정변이 벌어진 18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정조의 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역사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이다. 정조는 후대를 위해 비밀리에 두 가지 유산을 남긴다. 나라와 왕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금괴와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군대다. 밖으로는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에 휘둘리는 위태로운 운명에 처하고 안으로는 쇄국파와 개화파가 대립하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이 조선을 뒤흔든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는 민씨 일가와 이들을 등에 업고 백성의 피와 땀을 짜서 배를 불렸던 세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고종의 신임을 받던 김옥균은 정조가 남겼다는 군대를 비밀리에 키우며 거사를 준비한다. 여기에 고관대작들을 연쇄살인하는 검은 복면의 흑표, 왕에 대한 충절과 약자에 대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조선 최고의 검술인 종사관 송치현 등 작가의 상상으로 창조한 인물들이 어우러진다. 이들이 저마다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충돌하고, 마침내 삼일천하로 끝나고만 갑신정변을 둘러싼 긴박한 드라마가 시작된다. 특히 3일간 숨 가쁘게 전개되었던 갑신정변을 미국드라마 ‘24시’처럼 시시각각으로 쪼개 현장감을 극대화한 구성은 마치 격변의 역사 현장에 직접 들어가 ‘왕의 군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갑신정변의 진실을 파헤치는 당사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국문학자이자 현재 연세대 조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2007년 ‘진시황 프로젝트’로 1억원 고료의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을 받았다. ‘옥루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19세기 조선사회에 대중소설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그때 느낀 이야기의 재미를 21세기 한국문학에서 현대적으로 되살리고 싶어 소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그래, 책이야!(레인 스미스 지음, 김경연 옮김, 문학동네 펴냄)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상 등 여러 그림책 상을 받은 레인 스미스가 디지털 시대의 ‘책’에 대한 절묘하고 유머러스한 통찰을 편안하고 재미있는 그림으로 표현했다. 9000원. ●아트 어드벤처(정나영 글, 김강호 그림, 상상의집 펴냄) 예술 작품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학습 만화 시리즈로 첫 번째 이야기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다. 만화와 고흐의 작품집이 함께 출간돼 아이들의 미술 교육을 돕는다. 1만 1800원. ●옛그림 속 우리 동물(이소영 지음, 낮은산 펴냄) 젊은 한국 화가이자 연구자인 심홍 이소영씨의 세 번째 책으로 열두 띠 동물을 중심으로 옛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친근하고 귀여운 동물 그림으로 동양 예술 정신을 조근조근 설명해 준다. 1만 1000원. ●라몰의 땅(A 라마찬드란 글·그림, 엄혜숙 옮김, 보림 펴냄) 인도를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책으로 다채로운 색으로 신비로운 이야기를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 인도 그림의 전통적인 색채와 혁신적 표현법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그림책의 세계를 열어 준다. 1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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