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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어머니 사망 확인 장이윤씨

    “할머니는 62년 3월25일 돌아가셨습니다” 북한에 109세 어머니가 살아계신 줄 알았다가 뒤늦게 사망사실을 통보받았던 장이윤(張二允·72·부산 중구)씨는 조카들로부터 어머니의사망날짜를 전해듣고 다시 한번 오열했다. “38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존해 계신 줄 잘못 알았다니…”. 장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큰형 병택씨의 막내 아들인 조카 준석씨(52)는 73년 부친이 사망한뒤부터 몸이 불편한 둘째형 준관씨(64)를 대신해 자신이 할머니 제사를 모신다고 했다. 장씨는 조카들에게 일일이 친지들의 안부를 묻다가 사망했다는 답변을 들을 때마다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 봤을 때 얼굴 알아보겠디?”장씨는 지난 50년 헤어질 당시갓난아기였던 준석씨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준관씨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묻는 등 지난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평양 공동취재단
  • 한민족 하나로 남북이산상봉/ 평양서 여동생 만난 呂寅烈씨

    “여동생을 만나면 제일 먼저 눈물로 사죄할 겁니다” 황해도 은율에 두고온 막내여동생 여정숙씨(60)를 만나기 위해 15일방북 버스에 오르는 여인열(呂寅烈·81)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1·4 후퇴때 “같이 가겠다”며 매달리는 여동생을 떼어놓고 내려와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왔다는 여씨.그는 “내 옆구리를 붙잡고 ‘데려가달라’며 눈물을 쏟던 9살짜리 막내에게 총알 탄피로 만든 연필칼을 쥐어주며 억지로 떼어놓고 왔다”면서 “가족을 대표해 여동생에게 사죄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씨 가족은 인민군들이 마을의 남자들을 의용군으로 차출하면서 가족들을 다 죽인다는 소문에 허겁지겁 인근 ‘초도’란 섬으로피했다.하지만 급하게 떠나느라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막내여동생은 그대로 남겨두었다.당시에는 ‘1주일이면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애써 위로했지만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면서 “2남2녀중 유일하게 북에 떼어놓은여동생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도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여씨는 “내가 최종 방북자 100명 안에 들자 온 집안이 기적이라며 부둥켜안고 울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심봉사가 딸을 만나러 가는 심정’이라는 여씨는 “아직 부친(여석준·100·전북 군산시나운동)이 생존해 계시는데 아버님도 같이 동생을 상봉할 수 있게 된다면 더이상 소원이 없겠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는 집안의 막내로 ‘이쁜이’라고 불리며 집안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집안의 보물이니 꼭 데려와야 한다”며 눈물을 쏟아냈다고 여씨는 전했다. 특별취재반
  • 남북이산상봉/ 김일성대학 교수 조주경씨

    “어머니,건강이 어떠세요” “너도 나이먹고 이렇게 늙었구나.아이고 불쌍해라…” 김일성대학 조주경 교수(68·경북 영양군 영양면 출생)와 어머니 신재순씨(88·부산시 서구 서대신동)는 주름살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비비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씨는 “죽은 줄 알고 가슴에 묻었던 네가 훌륭히 자라준 것이 너무나 고맙구나”라면서 아들의 품에 안겼고,조씨는 “어머니는 젊어서 아버지를 여읜 뒤 재혼도 않고 오직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혼자사셨는데…,제가 잘못했습니다.죄인이에요”라며 노모의 어깨를 감싸안았다.신씨는 “20여년 전부터 부산의 내원정사에서 예불을 빠뜨리지 않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니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신 모양”이라며 아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았다.조씨는 지난 50년 서울대 재학 당시 인민군에 끌려갔다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특별취재단
  •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눈물이 바다를 이룰때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마침내 눈물의 큰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흔히 눈물은 슬프고 안타까워 흘리는 것이지만 이번만은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흘리는 눈물일 줄이야!우리겨레가 역사적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적이 과연 몇번이나 될까.반세기 동안 맺히고 맺힌 한과 응어리를 단숨에 확 풀어버리는 순간의 이 뜨거운 것.기쁨에 겨우면 눈물이 절로 난다는데 이산가족의 눈물이야말로 기쁨을 초월한 인간이 누릴수 있는 최상 최고의 경지에서 치솟은 환희의 상징물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꾸준히 이산가족 상봉을 시도해왔다.15년전 KBS가북에서 온 이산가족의 상봉과 결합을 도모하여 눈물의 홍수를 자아낸바 있지만 그때 필자가 쓴 시 ‘바보상자가 나를 울렸다’는 바로 이산가족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었다. 나는 18세 때 고향인 원산을 떠나 혈혈단신 38선을 넘어와 지금 백발이 성성한 칠순에 접어들었지만 부모의 생사와 형제들의 소식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분단의 아픔과 한을 해학과 유머로 얼버무리고있지만 패전국도 아닌 우리가 왜 독일모양 남북으로 갈려야만 했는지그게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 어머니! 부르는 소리를 잊은지 50여년! 그래서 이산가족을 다룬 작품에서 ‘죽는 그날까지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아버지 어머니 부르게 해다오’라고 절규하기도. 몇해전 일본의 시지 ‘시와 사상’이 인권문제 특집을 했을 때 내게도 청탁이 있어 이 작품을 번역해서 보냈더니 권두에 다룬 것을 보고 우리의 이산가족이 세계적인 인권문제로 부상되어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산가족이 너무 많은 탓인지 나의 절규쯤은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있는듯 하지만 이웃나라에서는 꽤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나를 두고 한국의 윤리시즈라고까지 부르고 있지만 율리시즈는 만년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느냐고 그보다 더 혹독한 처지임을 실토한바 있다. 하지만 해방 55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율리시즈 신세는 일단 회복한듯 하다. 남북의 비행기 KAL과 고려항공이 남북을 오가기도 처음 있는 일.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진 오후 4시40분 대동강이 남쪽의 눈물을,그리고 한강이 북쪽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식의 얼굴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채 기진해버린 95세의 할머니,오빠를 부등켜 안고 통곡하는 누이,피는 이데올로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봉의 기회를 아직 누리지못하고 있는 이산가족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수목을 합친 것만큼이나 많다.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만당장에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부모들의 생사확인이나 가족들의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일단 恨은 풀릴 것이다. 6·25 사변전처럼 안부를 전하는 편지 왕래만이라도 될 수 있다면오죽이나 좋을까.겉치레의 효과보다 실속있는 결속이 더 절실하다. 그동안 남북간의 대화를 통한 좋다만 있는 간혹 있었지만 지속성이없었다. 바라건데 이번의 이산가족 상봉이야 말로 남과 북에서 흘린 강물이바다를 이룰 때까지 온 겨레여 울고 또 울자. 김광림 시인·원산출생
  • 남북이산상봉/ 상봉보도와 통신방식

    15일 평양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인공위성을 통해 큰 시차없이 남측으로 전달돼 감동을 더했다.이번 행사에서 양측 정부는 모든 경비를 대신 내주는 등 상봉자 부담을 줄였다. ■위성통한 영상송출 이번 행사에선 지난 6월 정상회담때처럼 생중계방송장비(SNG)를 사용한 중계는 하지 않았다.그러나 인공위성을 이용,큰 시차없이 한반도 남측 곳곳에서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방송카메라로 잡은 상봉장면은 고려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북한 중앙TV의 마이크로웨이브 송출장비를 통해 평양위성지구국을 보내졌다.이는 평양위성지구국에서 인도양의 인텔샛 위성을 통해 데이터가 금산위성지구국으로 전달됐다. 금산위성지구국과 서울의 한국통신 광화문 위성운용센터를 통해 각방송국으로 화면이 전달되면 TV화면으로 변환돼 각 가정에서 받아볼수 있었다.생중계와 차이는 10∼20분 정도. 한편 남북한은 판문점을 통한 직통전화 10회선을 연결,전화와 팩스송신을 하고 있다. ■경비 지원 방문단의 체류비용은 방문지의 상대방 정부가 댄다.즉북측 방문단의서울 체류비용은 남측에서 낸다.행사장인 워커힐 호텔의 객실비용및 코엑스의 상봉장소 임대 비용,식사비,참관비용도 모두정부가 내준다. 북측 방문단뿐아니라 남측 이산가족들의 객실 투숙비등 각종 비용도 정부의 몫이다. 18일 북한 방문단을 평양으로 수송한뒤 순안공항서 남측 방문단을 싣고올 대한항공 항공기의 사용 비용도정부가 내게 준다. 비용은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염출한다.정부의 한당국자는 “이번 상봉과 앞으로 몇몇 상봉 행사의 경우 정부가 전액부담할 계획이지만 앞으로 상봉이 정례화되고 대규모로 진행될 경우정부와 이산가족들이 분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 남북이산상봉/ 張忠植단장 평양 도착 성명

    친애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그리고 평양시민 여러분. 저는 먼저 저와 우리 방문단을 따뜻한 동포의 정으로 맞아주신 북녘동포 여러분과 평양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북녘 동포들을 꿈에도 잊지 않고 있는 동포들의뜨거운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우리 이산가족 방문단은 방금 하늘 길을 따라 남녘에 있는 1,000만이산가족 모두의 소망과 기대를 안고 평양에 왔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북녘 산하를 보면서 고향에대한 감회와 가족ㆍ친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남북 정상의 역사적 결단을 실천하는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이번 방문은 1985년 첫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이후 무려 15년만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1,000만 이산가족들의 기대와 설렘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같은 상봉의 감격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단의 규모와 일정이 1,000만 이산가족들의 오랜 염원과 기다림을 충족시켜 주기에는한정되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방문이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광복 55주년을 맞는 뜻깊은 오늘 우리들의 ‘방문길’이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마감시키는 새로운 ‘시작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남북이산상봉/ 남측 최고령 조원호할머니

    “아이구,종필아…”“어디갔다 이제왔어…” “어머니.그래도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서울 방문단을 맞은 남측 가족 가운데 최 고령자인 조원호(100·충남 아산군 탕정면)할머니는 10여년전부터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그러나 모정(母情)은 치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조 할머니는 50여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둘째 아들을 종필씨(69)를 알아보고 이름을불렀다. 막내딸 종혜씨(56)가 “엄마,이 분이 누구야.종필이 오빠야”라고말하자 조할머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아이구 종필아…”하고 말문을 열었다.그리고 반세기만에 잡은 아들의 손을 놓으려하지 않았다. 조할머니는 상봉 직전까지도 아들을 만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테이블에 놓인 음식만 오물거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치매를 앓고 있는 탓인지 “어디 살아.서울 사니”,“나이가 몇이야”라고 물어 가족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종필씨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끓고 통곡했다.이어 “내가 저기서(북에서) 아들 딸 다섯이나 뒀어요.이미 다 장성했어요”라며 오열했다. 동생 종덕씨(63)는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공립중학교 2학년에 다니다의용군으로 전쟁터에 나간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형이 살아있어 너무 너무 고맙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종필씨는 가족들에게 “김일성대학에서 민족고전을 전공한 뒤 ‘이조실록’편찬작업에 참여하는 등 사회과학원에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고 그간의 소식을 전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남북이산상봉/ 상봉 첫날 쏟아진 말 말 말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북쪽의 이산가족들은 50여년 동안 쌓여 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가까운 길을 50년 동안 기다려 이렇게 멀리 왔다. 리래성씨가김포공항 도착 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식사 중에서는 갈비찜이 가장 맛있었다.조선사람인데 달리 맛을 느끼겠느냐. 전덕찬씨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마움에 대해 절절이 느낀다. 남측땅이라고 해서 북측땅과 다를 바 없다. 김규설씨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보름만에 서울에 왔는데 올 때마다 통일의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느껴진다 12번째 서울에 온 북측 수행기자 최영화씨가 방문 소감을묻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남한 음식은 약간 달다.다음에는 달지 않게 해달라. 북측 방문단단장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감개무량하다.선물은 비밀이다. 북측 방문단 수행원으로 서울에 온장윤철씨가 서울 방문 소감을 묻자. ●살아계신다고 할 때가 언젠데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느냐.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남측 방문단의 장이윤씨,방북 출발에 앞서 최근 사망했다는 노모에 대한 기억을떠올리며. ●길 막히는데도 흐뭇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봉단과 취재진 때문에 교통이 혼잡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택시기사가.
  • 남북이산상봉/ 첫 서울行 北국적기 고려항공

    북한 유일의 민간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IL-62 특별기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공을 비행한 항공기로 기록되게 됐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151명을 태우고 15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한IL-62기의 뒤쪽 날개에는 인공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동체에는‘고려항공’‘AIR KORYO’라고 표기돼 있다. 조종석 바로 뒤 동체에‘두루미’가 그려져 있는 점도 눈에 띈다.이는 지난 92년 10월‘조선민항’이었던 항공사 명칭을‘고려항공’으로 바꾸면서 채택한 상징 마크.당시 북한 관영 중앙방송은“김정일동지의 따사로운 품을 형상화한 것으로,붉은 색으로 두른 원 안에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두루미의 모습을 그려넣게 됐다”고 보도했다. IL-62 항공기는 러시아의 항공제조업체인 일류신사에서 만든 중형항공기.장거리 운항용으로 개발된 이 항공기는 기본형의 경우 지난 67년부터,서울에 온 IL-62M형의 경우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74년부터취항했다. 93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모두 250여대가 제작돼 동유럽 등에 수출돼 각 국의국내 및 국제노선에서 운항되고 있다. 길이는 53.12m이며 좌석수는 162∼186석(IL-62MK형의 경우 195명까지 탑승가능)이다.평균 운항속도는 시속 820∼850㎞,운항거리는 1만㎞이며 승무원은 5명.러시아 극동항공사가 주 2회 운행하는 서울∼하바로브스크 노선에 투입되고 있어 낯설지 않다. 김경운기자 kkwoon@
  • [오늘의 눈] 이념 녹여버린 혈육의 情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15일 이산가족 상봉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홀은 삽시간에 ‘눈물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남측 혈육들이 흘린 눈물은 홀을 가득 채우고 한반도 산하로 흘러넘쳤다.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실향민들,이제나 저네나 북녘 땅만 바라보는 1,000만 이산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더한 까닭이다. 50여년 동안 차곡차곡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이들의 한(恨)은 이날차라리 통곡이 되어 전국에 메아리쳤고 분단 현실의 아픔을 어떤 필설보다 생생히 전달했다.이념과 냉전의 국제질서에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새삼 확인했던 역사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이산가족 상봉이 며칠동안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 신파극’에 그쳐서는 안된다.역대 남북 정권들이 그랬듯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50여년간 분단의 고통이 농축된,민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적 결정체란 의미다. 눈물을 눈물로 그치지 않고 대승적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반세기 전,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분노와 증오가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상봉의 눈물과 그 감격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추진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여 전 혹독한 냉전기에도 서슬퍼런 이념의 굴레를 녹이며 독일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엔진이 된 것이 바로 동서독의 이산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이날 TV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을 온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남북 화해와 통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15년 전역사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의 체제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됐던 사실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던 남북 정상들이 이산가족은 물론 분단으로 고통받는 7,000만 겨레의 눈물마저 닦아줄 날을 기대해본다.[오 일 만 정치팀 기자 oilman@]
  • 남북이산상봉/ 北 오경수씨 6남매 만남

    “형님….형님…” 50년 만에 북에서 온 형 오경수(吳京洙·72)씨를 만난 길수(吉洙·69·광주시 동구 학동)씨는 밤새 준비한 인사말도 잊은 채 형을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얼마나 울었을까.경수씨가 먼저 정신을 가다듬고 “전쟁통에 동생들이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있어서 고맙다”며 두 남동생과세 여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길수씨형제들에게는 하룻밤이 50년보다 길게 느껴졌다. 하얗게 밤을 지새며 형이 즐겨 부르던 ‘비내리는 고모령’을 연습하기도 했다.50년 만에 만난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손을 잡고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봉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들 앞으로 경수씨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자 서먹함은 온데간데 없고 금세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울음바다가 연출됐다. 형제들은 밤잠을 설치며 경수씨에게 보낼 편지도 한장씩 준비했다. 길수씨는 떨리는 가슴에 우황청심환까지 먹었지만 소용없었다.밤새뒤척이다 새벽 5시쯤 산책에 나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에생각을 거듭했다. “한평생 못다한 사연들을 어찌 이 한장에 다 적을 수 있겠습니까…이제 곧 형님을 모시고 부모님께 성묘갈 날이 오겠지요.금강산 구경도 물론이구요…동생 길수 올림” 동생들이 전하는 편지와 육성이 담긴 테이프,경수씨의 초등학교 졸업장,상장 등을 건네받은 경수씨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호텔 지배인으로 있다는 형의 말을 들은 길수씨는 “형은 6살 때 소학(小學)을 뗄 정도로 총명하셨지요.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두부장사를 할 만큼 사랑도 깊으셨습니다”며 한걸음에 달려온 형을 고마워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외신기자가 본 상봉순간

    남북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취재하기 위해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마련된 서울 프레스센터에는 세계 16개국에서 95개 매체 404명의 외신기자가 파견됐다.지난 6·15 남북정상회담때와 같은 대규모 수준의 취재진인데다 아시아지역을 담당하는 국장급 대기자가 대부분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세계인의 큰 관심도를 반영한다. 세계 언론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휴먼 스토리’라는 점에서모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나 그 해석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언론의 경우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성의는 보였으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절차는 아직 밟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캐서린 톨버트 워싱턴 포스트 아시아지국장은 “북측 방문단의 도착 장면은 3박4일동안 펼쳐질 극적인 드라마의 서두였다”고 감명을 피력하면서도 “이번 상봉은 이산가족들에게는 한번밖에 없는 기회이면서 50년만에 이뤄진 만큼 늦은 감도 크다”며 이산가족 상봉이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꾸준히 추진되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북측 방문단에 대해서는 “남성중심으로 고령화 인사가 많고,외교관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외신 취재단의 50%를 차지한 일본 언론은 ‘대북 신중론’을 보도기조로 삼았다.도쿄신문의 야마모토 유지(山本勇二) 서울지국장은“이산가족상봉은 화해협력을 실현한 첫걸음인 동시에 민족사적 문제해결의 시작”이라고 격찬했다. 스칸디나비아 익스프레스지의 셸베리 크뉴트 요란 특파원은 “남북이 화해와 통일로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축하하면서도 “두 개의 상충된 체제가 조화로운 연합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며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언론은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신화통신 리바우뚱(李保東)특파원은 “남북화해분위기를 꽃피운 축제”라면서 “앞으로도한반도에 화해 무드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현진기자 jhj@
  • 남북이산상봉/ 85년 상봉과 달라진 점

    20세기와 21세기의 만남은 달랐다. 15일 서울에 첫발을 내디딘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에서는 15년 전 서울을 찾은 85년의 고향방문단에서 풍겼던 긴장과 불신의 모습 대신화해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밝은 얼굴 표정,세련된 태도나 옷차림 등이 고향을 찾은 여느 귀향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방문단을 지켜본 시민들은 “두 손을 맞잡고 웃었던 지난번 남북 정상회담이갈등과 대립의 벽을 허문 것”이라고 풀이했다. 류미영(柳美英) 방남단장과 수행단 일행은 이날 김포공항에 마중나온 남쪽 대표들에게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고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번쩍 들어 답례했다.85년 당시 웃음기 없는 경직된 얼굴로 남쪽 사람들을 대하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복장도 세련된 편이었다.류단장은 고운 회색 투피스 차림에 흰색 스타킹을 신어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였다.잔잔한 꽃무늬 상의에 검정색 치마를 받쳐 입은 무용가 김옥배씨(62·여)도 85년 당시 국민들이 보았던 북한 여성들의 촌스런 옷차림이아니었다.검은색 핸드백과 윤이 나는 낮은 굽의 구두도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오히려 몸이 조금 불편한 황귀분씨(84·여)의 꽃무늬를 수놓은 오렌지색 한복은매우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다.김옥배씨는 “북조선 여성들의 흔한 옷매무새”라며 활짝 웃었다. 남자 방문단도 검정색,쥐색,감색 등 짙은 색 양복에 하늘색·흰색와이셔츠에 온화한 색감의 넥타이를 매 자연스런 느낌을 주었다.예전의 ‘빌려 입은 듯한 영국제 밤색 양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보도’라는 완장을 찬 기자들도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북측 방문단은 7대의 방송용 카메라를 동원해 우리측 언론의 폭발적인 취재 열기에 기죽지 않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자신을 ‘조선신보 문광우 기자’라고 소개한 수행단원은 어깨에 멘 검정색 가죽백을 들어보이며 “짐을 가득 들고 서울에 왔다”며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북측 방문단을 김포공항에서 쉐라톤워커힐 호텔까지 태우고 온 한버스 기사는 “TV에서 보았던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웃 같은친근감이 느껴졌다”며“일행이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지날 때에는창밖을 가리키며 고향에 온 사람들처럼 ‘여기가 이렇게 변했네’라며 왁짜지껄했다”고 말했다. 85년 고향방문단에 이어 이번 방문단을 접대하고 있는 워커힐호텔윤기열(尹箕烈) 식음료관리과장은 “과거에는 종업원들과 대화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먼저 농담을 걸고 술을 권하는 등 보통 시골노인분들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 남북이산상봉/ 北 계관시인 오영재씨

    “영재야,정말 영재로구나”“형님,이제야 형님을 뵙습니다” 북한 최고 시인인 동생 오영재씨(64)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형 승재씨(67·전 한남대 대학원장)는 동생이 출입구를 통해 들어서자 반세기 동안 그리던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부둥켜안았다.동생 형재(62·서울시립대교수)·근재(59·홍익대교수)씨도오씨에게 달려가 헤어졌던 4형제가 뜨거운 포옹을 했다. 오씨 형제들은 “살아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하늘이 도왔다”며거듭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서로가 준비해온 어릴적 사진을 보며 잠시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영재씨는 지난 97년 돌아가신 어머니 소식을 접하자 눈물을 훔쳤다. 그는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합친다고 해가 되는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적으로 표현한 뒤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쓴 시 ‘사모곡’을 16일 공개하겠다고 말해 서정시인으로서 면모를 보였다. 형재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영재와 함께 있지 않는 한 사진을 절대 찍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북한에서 계관시인칭호를 받은 영재씨는 지난 50년 7월쯤 중학교 3학년 재학 중 의용군으로 차출돼 가족들과 헤어졌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서울만남 이모저모

    북에서 온 아들은 “오마니”를 외치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고,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만남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되어 분출했다. ◇ 상봉 ■안순환씨(65)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코엑스에 나온 어머니 이덕만씨(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50년 동안 소식도 없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씨도 아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며느리에게 갖다 주라”며 미리 준비한 금목걸이를 아들의목에 걸어 준 뒤 연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안씨는 “북쪽에 가족이있느냐”는 동생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사진을 꺼내 아내와 자식들을 소개했고, 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예뻐 합격”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축산 및 채소 생산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백기택씨(68)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딸 신금옥씨(50)를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옆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이 궁금했던 백씨는 여동생 문옥씨(67)로부터 “오빠,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오빠 딸”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백씨의 조카로 돼있는 딸 금옥씨가 “아버지,저 금옥이에요.아버지 딸”이라며 아버지품으로 달려들자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전북 임실로 건너 온 뒤 전쟁 때 전주북중 입학증까지 받았지만 행방불명됐던 정춘모씨(63)는 계모 최순래씨(78)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교복 입은 사진만 달랑 남겨 놓고 사라져 꿈같이 살아 왔다”며 울먹였고,여동생 정영자씨(54)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에서 돌아올 때 하얀 비둘기가 집 안으로 날아든 뒤꼭 한 달 만에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북쪽의 형 문병칠씨(68)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뒤사흘 만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 황봉순씨(90)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동생 병호씨(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는“어머니는 형님이살아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기력을 회복했는데 사흘 뒤 ‘병칠이가 보고 싶다’고 손을 내저은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동생 정자씨(59)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오빠의 손을 꼭 잡고는“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어머니가 한 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주영관씨(72)는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에 다니다 의용군에 입대한 동생 영훈씨(69)를 만나자 “어머니는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영관씨는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맸단다.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혹시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됐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인민군이 서울에진입한 바로 그날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징집됐던임재혁씨(66)는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치매로 듣지도 못하고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임휘경씨(90·서울 양천구 목동)를 보고 목이 메었다. 재혁씨는 형 창혁씨(71)에게 “어머님,어머님은…”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지만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는 말을 듣곤 할 말을 잃었다.. ■박노창씨(69)는 조카들로부터 큰형 원길씨(89·서울 은평구 신사동)가 상봉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렸다. 노창씨는 지난달만 해도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고 통보된큰형의 운구가 이날 오전 8시30분 장지인 경기 파주시 금촌면으로 향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조진용씨(69)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정선화씨(95)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쓰러져 들것에실려 아들을 만났다.정씨는 고령에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아침은 물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알려졌다.■상봉 가족수를 제한해 코엑스에 가지 못하고 8남매 중 맏이인 오빠 김용환씨(68)를 만나러 무작정 쉐라톤워커힐 호텔로 찾아온 용순(50)·용란(43)씨 자매는 오빠 용환씨가 코엑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기적’같이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오빠,오빠”를 연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정태씨(72)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계수 연종술(63)씨도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적은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버스에 오르는 이산가족들의 줄이 끝날무렵 김씨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쯤 버스 편으로 컨벤션센터 동문에 도착,3시30분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와 정해진 탁자에앉았으며,4시1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출발한 북측 가족들은 태진아의 ‘어머니’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4시40분쯤 홀에 들어와눈물의 상봉을 했다. 북측 가족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들고 홀 입구의 상황판에서 자기 번호와 같은 번호가 적힌 탁자를 확인한 뒤 탁자를 찾아가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 김포공항 ■북측 가족 151명을 태우고 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남측 승무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려항공 승무원들은 오전 11시30분쯤 북측 가족들이 국제선 2청사 17번 게이트를통해 빠져나간 뒤 게이트 앞에서 10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김홍정 사무장(52)과 유은아씨(27) 등 스튜어디스 5명은게이트 앞으로 나온 박승남 기장(46) 등 10여명의 고려항공 승무원들에게 꽃다발과 기념시계를 선물했다. ◇ 워커힐호텔 ■밤 10시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돌아온 북측 방문단들은 대부분 상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내일 다시 만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이동,방 배정을 받은 뒤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서울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점심은 갈비찜,은행죽,인삼야채무침,민어삼색전 등이 곁들여진 한정식으로,호텔 관계자는 “상봉단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대부분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면서 “같은 조선 사람들인데 달리 맛을느끼겠느냐”며 남북 동포들이 한 입맛임을 강조했다. 북측 가족들의 가슴에는 김일성배지와 함께 인공기와 적십자 표시가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배지가 달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신원을 증명하는 명찰도 휴대하고 있었다. ◇ 올림픽파크텔 ■밤 10시30분쯤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남쪽 가족들도 북한 방문단과의 상봉의 순간을 다시 되새기며 16∼17일의 개별 상봉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까 의논했다. 이날 아침 남측 가족들 중에는 잠을 설친데다 50년 만에 가족들을만난다는 기대 때문에 올림피아홀에 마련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들지못하고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남쪽 가족들은 기자들이 객실로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자 가족간 대화 등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의 객실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호텔측은 송파경찰서의 지원으로 이산가족들이 머무는 각 층마다 의경 2명씩을 투입해 객실 접근을 막았다. ◇ 한국종합전시장■북측 방문단과 남측 이산가족은 이날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강남구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COEX)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나란히 참석,재회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만찬은 상봉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여 늦은 오후 7시40분께 시작됐으며 남북 상봉자 600여명과 한적 관계자 100여명 등이 참석했다. 한적 봉두완(奉斗玩) 부총재는 환영사에서 “만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50여년동안이나 미뤄왔는가”라면서 “반세기 동안 간직했던회포를 이 자리에서 맘껏 푸시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특별취재단
  • LA이산가족 “우리도 만나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15일 미 로스앤젤레스 거주 한인시민단체들은 빌 클린턴 미대통령과 국무부에 미국 시민권 소유자 한국동포의 북한내 이산가족 상봉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이북 5도청(회장 서선덕)을 비롯한 한인단체들은이날 “미국 시민권자들의 북한내 이산가족과의 상봉은 미국 정부가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인도적인 관점에서 자국민의 이산가족을 상봉하는데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시민권자 한국교포들의 북한 이산가족 상봉은 현재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안정 정책에도 도움이 되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전제하고 “북한과 진행중인 북미회담에서이를 적극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북 5도민회 서 회장은 “이산가족 상봉은 모든 헤어진 가족들이바라는 최대 희망임에도 미국시민이란 신분상의 상황이 또 다시 이를방해한다”면서 “그러나 이는 충분히 해결될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로스앤젤레스 지역 70만 한국인 동포들은 먼곳에서 이뤄지는가족 상봉의 감격적인 장면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이산의 아픔을 함께 위로했다. 로스앤젤레스 일대 4,000여명을 비롯한 미주지역 전체 8,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이산가족들은 현재 한인회,이북 5도청 등 관련 단체를통해 지난 3년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제출,상봉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최철호특파원 hay@
  • 한민족 하나로 남북 이산상봉/ 北 류미영 단장의 딸 최순애씨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어머님이 연락을주셨으면 좋겠는데…”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녘 방문단을 이끌고 남쪽을 찾은류미영(柳美英·78·천도교 청우당 중앙지도위원장)단장의 딸 최순애(崔淳愛·49)씨는 주위에서 뭐라든 24년 세월 동안 변함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아버지 고 최덕신(崔德新)전 외무장은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는 등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가 정치적 탄압을 받자 76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86년 4월 북으로 넘어갔다.망명 당시 최씨는 26세였다. 이 때문에 최씨를 포함해 남한에 남아 있던 2남3녀는 10여년 동안정보기관의 감시에 시달리는 등 ‘형언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현재 장남 건국씨(58)가 독일에 있고,차남 인국씨(51)와 세 자매는 한국에 살고 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월북자의 딸’이라는 딱지는 떼어버릴 수 없는 낙인이었다.하지만 최씨 등 형제들은 믿고 존경했던 부모님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을 인정했다고 한다.항상 반듯한 모습,의연히 원칙을 지키는 삶을 보였던 부모님이었기에 변함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믿어지지 않았고그 뒤 정보기관과 주위의 시선으로 겪은 고생은 지긋지긋할 정도였습니다.하지만 원망보다도 큰 믿음과 그리움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고생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할 법도 했지만 최씨의 반응은 의외로 의연했다. 최씨는 “뵐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상봉장으로 달려가 어머니를껴안고 펑펑 울고 싶지만 어머니가 원하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면서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어머니가 연락을 꼭 주셨으면 한다”고 가없는 그리움과 믿음을 털어놓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金대통령의 8·15 감회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5일 21세기 첫 광복절을 맞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55주년 광복절 경축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관저로 돌아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로 지켜봤다.감격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축하했으며,눈시울을 적시기도했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통령은 박 대변인을 통해 “이번에 서울과 평양을 방문한 이산가족에게 겨레의 이름으로 마음의 축복을 보내며,특히 서울에 온 이산가족에 대해서는 가족은 물론 국민들도 따뜻하게 맞이해 한 겨레의정을 느끼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또 이번 상봉으로 이산족들이 품고있던 그동안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기를 바라며 이런 기회가 계속이어지길 기대했다. 이어 “이번 1차 상봉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정착되고 남북간의 신뢰가 구축돼,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통일로 이어지는 길이 되길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평소 ‘이산가족 1세대들이 세상을뜨고 있는데,평생 그리던 가족들을 못 만나면 얼마나 한이 되겠는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이산가족 문제를 풀지 못하면 죄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품어왔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대한매일 15일자 4면 전문게재)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남북간 화해협력의 시대를여는 데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은 아울러 민족의 자주 단합과 조국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남북 불교도 8·15 동시 법회’를 여는 전국 사찰에 메시지를 보내“남북 화해의 새로운 민족사를 열어가고 있는 이 때에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법회를 봉행하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격려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남북이산상봉/ 南 이산가족 7,667,000명

    ‘한(恨)을 안고 살아가는 남북 이산가족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남북 양측 이산가족 200명이 8·15 광복절을 맞아 서울과 평양에서반세기 만에 헤어진 가족들을 만남에 따라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통일부 등 관계 기관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살고 있는 52세 이상 이산가족 1세대는 모두 123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중 60세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은 ▲80세 이상 6만여명 ▲70대 19만여명 ▲60대 41만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여기에 이산가족 2·3세대를 포함하면 766만7,000여명으로 추정된다.출신 도별로는 남한과인접한 황해도가 191만6,000여명으로 가장 많고 ▲평남 159만여명 ▲평북 118만3,000여명 ▲함남 169만2,000여명 ▲함북 83만8,000여명등이다. 하지만 이산가족들이 북측의 가족관계 등을 고려,신분을 밝히기를꺼리는 경우가 많아 이산가족 숫자는 추정치보다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최근 방북 언론사 대표단에게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짐에 따라그동안 파악이 되지 않았던 가족들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북측의 이산가족 숫자는 미지수다. 정부에서는 북한과 해외의 이산가족을 합칠 경우 1,000만명이 넘을것으로 보고 있다.이산가족 중 90년 이후 제3국을 통한 민간 차원의이산가족 교류는 생사 확인 2,581건,서신 교환 5,858건,상봉 568건에불과했다.그나마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생사 확인이 1,543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강동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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