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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세계 언론들 집중조명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 드라마가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먼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한 독일의 언론들은 15일 이산가족 상봉과관련,사설 등을 통해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은 1면 사설에서 “남북한은 이질적인 체제이지만 공통의 역사가 대립과 반목을 중재하는 끈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광복절을 맞아 남과 북이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고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재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36년간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반감이 남북을 하나로 묶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또 정상회담 이후 통일문제가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으며 이제 통일은 북한의 개방정책과 한반도의 긴장완화 정책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TF1-TV는 15일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50여년간 극한의 냉전상태를 종식시키고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확인시켜준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날 신문과 인터넷 웹사이트 국제면 톱기사로“50년만의 재상봉,한국인들에 기쁨을”이란 제목을 통해 남북상봉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전달했다.이 신문은 김옥배씨 등의 상봉 장면을 전달하면서 남북한 방문자들의 서로 다른 옷차림,그리고 소지한선물보따리 등을 비교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눈물로 끝낸 잃어버린 50년”이란 제목의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웹사이트 톱으로 실었다.부자간,모녀간,자매간,부부간 안타까운 사연들을 소개했다.이 신문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접근 정책이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이 결과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찾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도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모습과 남북정상회담의 장면들을 편집,특집방송으로 계속내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남북이산상봉/ 상봉 유지방안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이 감동을 더하면서 이번 상봉이 단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확고하다.지속적인 만남을 제도화하고 그규모도 크게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남북한은 오는 9월 초 비전향장기수의 북송 직후,적십자회담을 열고 면회소 설치를 위한 구체안과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운영 등에 대해 논의한다. ■정례화 가능성 남북한은 이미 지난 6월 말 ‘금강산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운영키로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후속회담을 준비중이다.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전반적으로협력관계로 진전되고 있어 지속적인 상봉과 규모의 확대도 희망적이다. 북측도 이미 면회소 설치에 합의한 만큼 개소는 시간문제며 단지 규모와 장소 등이 쟁점으로 남아있다.설치장소는 남측은 판문점일대를선호하고 있다.반면 북측이 이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어 금강산이나기타 다른지역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면회소 기능 이산가족의 상봉과 서신왕래 및 생사확인,물품 전달등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일주일에 한번 혹은격주로 한번쯤 열어,한번에 수십∼수백명씩이 만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설 기관이므로 지속적으로 생사확인여부를 교환하는 등 전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에도 크게 일조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2·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9월 초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구체안이논의될 전망이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방북중이던 언론사 사장단에게 9·10월에도 방문단을 교환,만나게 할것임을 약속한 바 있어 규모와 시기만이 남아있다.11·12월에도 가능할 수 있을지 등이 관심사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회담에서 논의할문제지만 이번 방문단 수준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9·10월에도 남북에서 각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평양·서울 땅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과제 정부는 대북송금과 상봉자의 재상봉 등도 후속조치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또 고향방문과 묘지참배,이산가족들과의합숙기거 등도 과제로 남아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2일 “내년에는 고향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남북한이 제한적이지만 지속적 상봉의 원칙에 사실상 합의한 만큼 2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산 1세대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한 빨리 만날 수 있게 하는지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오늘의 눈] 상봉가족수 5명제한 유감

    ‘할아버지,우리도 들어가고 싶어요’ 16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현장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은 반세기 만에 마주한 피붙이들의 기쁨과 회한,눈물로 한껏 젖어 들었다.전날 50년 만의 상봉에 밤잠을 설쳤던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다시 만나 따로 보낸 세월들을 한꺼풀씩 되짚어갔다. 그러나 이산가족 개별 상봉이 이뤄진 호텔 로비 곳곳에서는 또다른안타까운 장면들이 목격돼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부모를 따라온 초등학생 손주 2명은 플래카드를 들고 북에서 내려온 할아버지를 애타게 찾았다.비록 ‘씨’가 다르지만 어머니만은 북에서 내려온 친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호텔 로비에서 소동을벌인 그 어머니의 한 뱃속 형제들도 있었다.광주와 남원,수원에서 달려온 김정남씨(45) 형제들은 북측 방문단의 삼촌 정해섭씨의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온종일 호텔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추진하면서 상봉가족수를 5명으로제한하면서 빚어진 일들이다. 딱한 사연들은 줄을 이었다.오두남씨(75·여) 일행은 ‘똑똑했던’시동생 김치효씨를 만나러 대구에서 달려와 호텔에 진을 쳤다.최상화씨(56·여)는 큰오빠 상길씨 이름을 종이에 적어 들고 호텔 현관을서성이며 막내인 탓에 상봉대상자 5명에 끼지 못한 안타까움을 달랬다. 이날 북측 방문단이 롯데월드 관람에 나선 길에서도 이처럼 오가다스치는 식의 짧은 상봉이 이어졌다.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다 못한 몇몇 우리측 안내원들은 제한인원 5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교대로 이들의 상봉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그러나 많은 이산가족들은 먼발치에서 손 한번 흔드는 것으로 50년 묵은 회한을 달래야 했다.그나마 이번 방문단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999만9,900명’의 이산가족들은 서성거릴 자리마저 없는 현실에 숨 죽여 울기만 할 뿐이다. 50년 분단의 벽을 넘어 달려왔고,기다렸다.매정하기 그지없는 규정이 목놓아 기뻐해야 할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깊이 할퀴고 있다. 진경호 정치팀기자.
  • 남북이산상봉/ 李善行·李松子부부‘따로상봉’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한에서 결합해 살아오다 이번에 함께 방북단에 선정된 이선행(李善行·81) 이송자(李松子·82)씨 부부의 가족간 만남은 16일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인 고려호텔 객실에서 가족별 개별상봉을 가진 이날 이선행씨는“오늘은 가족끼리 더 시간을 갖고 17일 마지막 개별상봉때 두 가족을 인사시키겠다”고 말했다.이씨 부부의 방은 같은 층이지만 각자의가족끼리만 별도의 상봉이 진행됐다.흩어진 가족간의 혈육의 정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까닭이다. 이송자씨는 오전 10시쯤 객실에 찾아온 큰아들 박위석씨(61)를 반갑게 맞이했다.전날 첫 상봉때는 반세기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라 다소서먹했지만 두번째 상봉은 한결 달랐다. 박씨가 “어머니 앞에서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말하자이씨는 “건강에 안좋은 걸 뭐하러 피우니”라며 야단쳐 반세기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보통의 모자지간으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박씨는자신의 외손자(13)가 공부를 잘해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는 자랑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증손자 얘기를 들으며 이씨는 아들의 어렸을 적 모습을 찾아내려 애썼다.‘50년의 무정한 세월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두 사람의 눈망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선행씨는 옆방에서 북쪽 아내 홍경옥씨(76)와 장남 진일(56),3남진성씨(51)를 만났다.이씨는 커다란 백지를 펼쳐놓고 북의 두 아들손자와 친척들의 이름을 도표처럼 그려가며 일일이 확인했다.이씨는“이게 우리집 새 족보”라며 50년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남쪽 부부의 ‘따로 상봉’은 이렇게 지나갔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속속 드러나는 애타는 사연들

    남북 이산가족들의 서울 상봉 이틀째를 맞은 16일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숨겨졌던 사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鄭昶謨·68)씨의 남과 북 가족에는 화가가 둘이나 더 있었다. 이날 정씨를 처음 만난 조카 진규(鎭圭·32·전북 전주시 효자동)씨는 전라북도 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현재 전주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펴고 있다.진규씨는 50년만에 만난 삼촌으로부터 북에 있는 삼촌의 큰아들 성혁씨(34) 역시 화가라는 소식을 들었다.정창모씨는 전통산수화를 주로 그리며 진규씨 역시 현대 수묵화를 그려 화풍도 비슷한 편이다. 또 외증조할아버지인 고(故) 이광렬 화백이 고암 이응로 선생을 가르쳤다는 것도 북에서 온 삼촌으로부터 처음 듣는 집안 내력이었다. ■아직도 까만 머리에 비녀로 쪽을 진 고승남씨(78·강원도 강릉시)는 50년만에 내려온 조카 민병승씨(69)로부터 북에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년을 수절하고 살아온 고씨는 “남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앞서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면서 “영감이 북에서 재혼해 아들 3형제를 둬 며느리도 둘을 보았다는 말에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의학박사가 돼 돌아온 형 신승선씨(69)를 만난 창선씨(62)는 형의막내아들 귀남씨(24)가 평양교예단원으로 두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던사실을 처음 들었다. 형으로부터 널뛰기 묘기를 보인 사람중 하나가 바로 귀남씨였다는사실을 전해들은 창선씨는 “미리 알았으면 조카가 서울에 왔을 때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면서도 “형이 평양의 대형병원외과팀 총책임과장이고 조카는 교예단원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뒤늦게 상봉장을 찾은 황모씨(75)는 북에서 온 동생(68)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지난 50년 동안 자식들에게조차 존재를 알리지 않던 동생이었다.황씨는 6·25 당시 북으로 간 동생 때문에 자식들이 냉전시대의 산물인연좌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동생과의 만남을 포기했었다. 3년 전부터 북에 있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매에 걸렸지만 정작동생을 만날 자신은 없었다. 수없이 망설이던 황씨는 결국 뒤늦게 상봉장을 찾았다. 이창구 김재천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호텔직원이 전하는 北상봉단 ‘서울첫밤’

    북측 상봉단은 서울에서의 첫날밤을 비교적 안정되고 차분하게 보냈다. 16일 오전 호텔측의 객실점검 결과 북측 상봉단은 밤새 술은 거의들지 않았다.호텔 관계자는 “북측 상봉단이 우리의 전통술을 많이찾을 것으로 보고 객실 미니바에 안동소주와 문배주,이강주,소주 등을 고루 비치했으나 밤새 마신 술은 모두 4∼5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안주는 포장 육포와 믹스너츠를 선호했다. 반면 담배는 많이 피웠다.흡연자들은 저녁시간대에 1∼2갑의 담배를주문했으며 남북한이 합작 생산한 한마음과 타임을 많이 찾았다. 한편 잠자리에 들 시간에 전기와 관련된 주문이 여러건 룸서비스 담당자에게 접수됐다. “이렇게 밤새 불을 켜놓으면 되겠느냐.출입구쪽 작은 등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꺼달라”거나 “전깃불을 꺼야겠으니 소등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 등이었다.룸서비스 관계자들은 “다른 일로는별로 서비스요원을 부르지 않은 북측 상봉단이었지만 ‘전기’에 관해서는 과민하다 할만큼 절전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며 “북의전력난과 무관치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광장] 광복 55주년, 이산극복 원년으로

    광복절 55주년을 맞아 85년에 이어 두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남과 북그리고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 모두가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민족은 분단 55년이 지나도록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헤어진 부모 형제 자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처해있다.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반세기동안 이산가족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아니할 수 없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가족권을 보장하려는 인도적인 문제로서 남북한 당국은 물론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시급히 해결해야할 당면 과제다.그동안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어려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산가족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남쪽은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데 비해 북쪽은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남쪽은 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고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현안문제와별도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특히 김대중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이산가족 재회 및 편지왕래를 취임 1년 안에 해결하겠다고 그 시한을 명시하고,취임 이후 이산가족 문제해결을 대북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두어왔다.김대중정부는 두차례에걸친 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비료지원과 병행하여 해결하기를 북측에 요구한 바 있으며,베를린 선언과 정상회담에서도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북한은 이산가족문제를 정치문제와 결부시키면서 “통일이 되면 이산가족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북한이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폐쇄적인 북한사회가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로 인하여 북한체제의 유지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데 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앞둔 98년 2월15일 중앙방송을 통해서 3월1일부터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에 주소안내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의 이산가족 찾기를 주선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김대중 정부의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에 대해서 북한이 이산가족 주소안내소 설치로 ‘화답(和答)’해옴으로써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던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첫 실천사업이다.남과북 각각 100명씩 ‘선택받은 소수’만이 헤어진 가족과 상봉을 함으로써 상봉하지 못한 대다수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다행히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10월에 계속해서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고,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의 고향 방문까지실현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가 지닌 민감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즉 김위원장은 “이산가족문제는 준비 없이 갑자기 하면,비극적인 역사로 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다”면서 “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이는 김위원장이 이산가족문제를 여전히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북한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북한 사회주의체제 안정 등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들의 전면적인 상봉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은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제도화이다.소규모 단위의 단발성 상봉보다는 이산가족의 주소및 생사확인 작업이 급선무이다.주소가 확인되면 서신교환과 전면적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다가오는 9월 비전향장기수 북송 이후 남과 북은 면회소 설치를 협의하여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또는 상설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우리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전향장기수,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정부는 북한당국에게 이산가족 문제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하여 인도적 차원에서다룰 것을 촉구해야 한다.그렇게 하여 1,000만 이산가족의 비원을 하루빨리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교수·북한학
  • 남북이산상봉/ 朴鍾九씨의 北큰형 ‘상봉일기’

    15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집단 상봉을 마치고 숙소인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로 돌아온 이산 가족들은 좀처럼 흥분을가라앉히지 못하고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 순간만은그간 겪은 이산의 아픔도 봄눈 녹듯 사라지는듯 했다.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큰 형 박종석(朴鍾錫·68)씨를 꼭 50년만에 만난종구(鍾九·54·충북 청주시 사직동)씨가 상봉의 기쁨과 그간의 아픈사연, 이별의 두려움 등을 적은 일기를 소개한다. 상봉장에 앉아서 4살 때 헤어진 형을 기다리면서도 형의 얼굴을 모르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초조해 하는 나에게 둘째 형님과 누님은 자신들이 형을 알아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가운 북쪽의 손님들이 하나 둘 상봉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반백의 노인이 우리 테이블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종석 형님이구나.핏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큰형의 얼굴은아버님의 얼굴이기도 했고,둘째 형의 얼굴이기도 했고 바로 내 얼굴이기도 했다.형과 얼싸안는 순간 어릴적 코트 속에 묻어 있던 형의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둘째 형이 “형과 함께 끌려갔던 사람들이 ‘종석이는 사리원에서총에 맞아 죽었다’고 해 우리 가족들은 형이 죽은 줄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냈어요”라며 흐느꼈다. 큰형은 둘째형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우리가 살아서 만나니 오래 살겠구나”며 웃으셨다. 누님은 형의 품에 안겨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이제서야 가족이 보고 싶어서 내려오다니 너무 야속해”라며 투정을 부렸다. 형은 흐느끼며 “네 말이 맞다.미안하다”며 누님의 등을 두드렸다. 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딸 셋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형의 말이 그저 반가웠다. 밤이 깊어 간다.조금전 헤어진 형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몇시간만지나면 형을 다시 만나는데 시간이 너무 더디다. 3일 뒤면 형과 또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짧지만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16일 아침 종석씨와의 개별 상봉을 위해 워커힐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종구씨 형제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가 가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방북단 동행 李浩哲씨 소회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평양을 찾은 소설가 이호철(李浩哲)씨는16일 전날의 단체상봉을 제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봉가족들이) 울고불고 해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을 흐렸다. 그 자신이 누이동생을 원산에 둔 이산가족이기 때문에 이산의 아픔과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듯했다. ■느낌은 어떤가. 획기적인 일이다.50년만에 노인들이 만나 한을 풀도록 한 것은 우리분단사에 큰 일이다.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6·15선언 이후 벌어지고있다. 그러나 한번에 100명밖에 못만나면 780번을 해야 한다.2년 내내 매일같이 해야 이산가족의 한이 풀린다.빨리 면회소를 설치해야한다. ■85년 당시 이산가족 상봉과 비교하면. 이번 상봉은 체제경쟁이라기보다 화해협력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분위기다.남측은 무작위로 추첨된 사람들이고 장애인 중풍환자도 있다.반면 북측은 사람들을 골라 뽑았다.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좋은 뜻의 반면교사(反面敎師)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15일은 정상회담 2개월이었다.또 광복절이었는데. 8 ·15로 광복이 됐지만 남북이 갈렸다.두 정부가 들어서고 강산이갈리고 이산가족이 생겨나고….그 아픔이 이번 경의선 연결로 풀리게됐다. 젊은이들이 한반도 종단 기차를 타고 배낭여행을 하는 날이 올것이다. ■누이동생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싶은가. 부모님과 조부모님 기일을 먼저 물어보고 싶다.돌아가신 날짜를 몰라 과거 30년 전부터 음력 9월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평양 공동취재단
  • 인민예술가 정창모 서울개인전 무산

    남북이산가족상봉에 맞춰 열릴 예정이던 북한 인민예술가 정창모씨(68)의 서울 개인전이 무기 연기됐다. 전시를 주최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당초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16일부터 22일까지 ‘북한 인민예술가 정창모 서울전’을 열 예정이었으나 현재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서울에 와 있는 정씨가 도록을 보고 작품의 진위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전시를 16일무기연기했다.이번 서울전에는 ‘화실의 정서’ 등 화조화와 풍경화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정씨는 “전시를 열지 못하게 돼 유감스럽지만 이런 어려움도 결국조국분단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9월 초 평양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인데,그 전시를 그대로 서울에 옮겨 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밝혔다.정씨는 도록에 실린 50여 작품 중 6점만이 자신의 작품이라고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측은 문제의 그림을 정씨와 직접 교섭하지 않고북한 만수대창작사를 통해 입수한 것으로 밝혀졌다.1959년 현재의 평천구역에 세워진 만수대창작사는 평양 거리의 동상과 기념비는 물론지하철에 그려진 회화도 대부분 제작했을 정도로 북한미술의 심장부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미술품의 위작시비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지난 봄 열렸던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북한미술의 어제와 오늘’에서도 월북화가 김관호의 ‘홍경선’ 등 일부 작품의 진위여부가 논란이 됐다.미술계에서는 만수대창작사 외에는 별다른 북한 미술품 유통 경로가 없는현실에서 이같은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남북이산상봉/ 상봉보도와 통신방식

    15일 평양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은 인공위성을 통해 큰 시차없이 남측으로 전달돼 감동을 더했다.이번 행사에서 양측 정부는 모든 경비를 대신 내주는 등 상봉자 부담을 줄였다. ■위성통한 영상송출 이번 행사에선 지난 6월 정상회담때처럼 생중계방송장비(SNG)를 사용한 중계는 하지 않았다.그러나 인공위성을 이용,큰 시차없이 한반도 남측 곳곳에서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방송카메라로 잡은 상봉장면은 고려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북한 중앙TV의 마이크로웨이브 송출장비를 통해 평양위성지구국을 보내졌다.이는 평양위성지구국에서 인도양의 인텔샛 위성을 통해 데이터가 금산위성지구국으로 전달됐다. 금산위성지구국과 서울의 한국통신 광화문 위성운용센터를 통해 각방송국으로 화면이 전달되면 TV화면으로 변환돼 각 가정에서 받아볼수 있었다.생중계와 차이는 10∼20분 정도. 한편 남북한은 판문점을 통한 직통전화 10회선을 연결,전화와 팩스송신을 하고 있다. ■경비 지원 방문단의 체류비용은 방문지의 상대방 정부가 댄다.즉북측 방문단의서울 체류비용은 남측에서 낸다.행사장인 워커힐 호텔의 객실비용및 코엑스의 상봉장소 임대 비용,식사비,참관비용도 모두정부가 내준다. 북측 방문단뿐아니라 남측 이산가족들의 객실 투숙비등 각종 비용도 정부의 몫이다. 18일 북한 방문단을 평양으로 수송한뒤 순안공항서 남측 방문단을 싣고올 대한항공 항공기의 사용 비용도정부가 내게 준다. 비용은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염출한다.정부의 한당국자는 “이번 상봉과 앞으로 몇몇 상봉 행사의 경우 정부가 전액부담할 계획이지만 앞으로 상봉이 정례화되고 대규모로 진행될 경우정부와 이산가족들이 분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 남북이산상봉/ 張忠植단장 평양 도착 성명

    친애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그리고 평양시민 여러분. 저는 먼저 저와 우리 방문단을 따뜻한 동포의 정으로 맞아주신 북녘동포 여러분과 평양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북녘 동포들을 꿈에도 잊지 않고 있는 동포들의뜨거운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우리 이산가족 방문단은 방금 하늘 길을 따라 남녘에 있는 1,000만이산가족 모두의 소망과 기대를 안고 평양에 왔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북녘 산하를 보면서 고향에대한 감회와 가족ㆍ친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이번 방문은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남북 정상의 역사적 결단을 실천하는 첫 사업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이번 방문은 1985년 첫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이후 무려 15년만에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1,000만 이산가족들의 기대와 설렘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같은 상봉의 감격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단의 규모와 일정이 1,000만 이산가족들의 오랜 염원과 기다림을 충족시켜 주기에는한정되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번 방문이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광복 55주년을 맞는 뜻깊은 오늘 우리들의 ‘방문길’이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마감시키는 새로운 ‘시작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남북이산상봉/ 남측 최고령 조원호할머니

    “아이구,종필아…”“어디갔다 이제왔어…” “어머니.그래도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서울 방문단을 맞은 남측 가족 가운데 최 고령자인 조원호(100·충남 아산군 탕정면)할머니는 10여년전부터 심한 치매를 앓고 있다.그러나 모정(母情)은 치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조 할머니는 50여년 동안 가슴에 품었던 둘째 아들을 종필씨(69)를 알아보고 이름을불렀다. 막내딸 종혜씨(56)가 “엄마,이 분이 누구야.종필이 오빠야”라고말하자 조할머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아이구 종필아…”하고 말문을 열었다.그리고 반세기만에 잡은 아들의 손을 놓으려하지 않았다. 조할머니는 상봉 직전까지도 아들을 만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테이블에 놓인 음식만 오물거려 주변을 안타깝게 했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치매를 앓고 있는 탓인지 “어디 살아.서울 사니”,“나이가 몇이야”라고 물어 가족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종필씨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끓고 통곡했다.이어 “내가 저기서(북에서) 아들 딸 다섯이나 뒀어요.이미 다 장성했어요”라며 오열했다. 동생 종덕씨(63)는 “한국전쟁 당시 대전 공립중학교 2학년에 다니다의용군으로 전쟁터에 나간 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형이 살아있어 너무 너무 고맙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종필씨는 가족들에게 “김일성대학에서 민족고전을 전공한 뒤 ‘이조실록’편찬작업에 참여하는 등 사회과학원에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고 그간의 소식을 전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남북이산상봉/ 상봉 첫날 쏟아진 말 말 말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북쪽의 이산가족들은 50여년 동안 쌓여 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가까운 길을 50년 동안 기다려 이렇게 멀리 왔다. 리래성씨가김포공항 도착 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식사 중에서는 갈비찜이 가장 맛있었다.조선사람인데 달리 맛을 느끼겠느냐. 전덕찬씨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마움에 대해 절절이 느낀다. 남측땅이라고 해서 북측땅과 다를 바 없다. 김규설씨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보름만에 서울에 왔는데 올 때마다 통일의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느껴진다 12번째 서울에 온 북측 수행기자 최영화씨가 방문 소감을묻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남한 음식은 약간 달다.다음에는 달지 않게 해달라. 북측 방문단단장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감개무량하다.선물은 비밀이다. 북측 방문단 수행원으로 서울에 온장윤철씨가 서울 방문 소감을 묻자. ●살아계신다고 할 때가 언젠데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느냐.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남측 방문단의 장이윤씨,방북 출발에 앞서 최근 사망했다는 노모에 대한 기억을떠올리며. ●길 막히는데도 흐뭇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봉단과 취재진 때문에 교통이 혼잡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택시기사가.
  • 남북이산상봉/ 첫 서울行 北국적기 고려항공

    북한 유일의 민간 항공사인 고려항공 소속 IL-62 특별기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공을 비행한 항공기로 기록되게 됐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151명을 태우고 15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한IL-62기의 뒤쪽 날개에는 인공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동체에는‘고려항공’‘AIR KORYO’라고 표기돼 있다. 조종석 바로 뒤 동체에‘두루미’가 그려져 있는 점도 눈에 띈다.이는 지난 92년 10월‘조선민항’이었던 항공사 명칭을‘고려항공’으로 바꾸면서 채택한 상징 마크.당시 북한 관영 중앙방송은“김정일동지의 따사로운 품을 형상화한 것으로,붉은 색으로 두른 원 안에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두루미의 모습을 그려넣게 됐다”고 보도했다. IL-62 항공기는 러시아의 항공제조업체인 일류신사에서 만든 중형항공기.장거리 운항용으로 개발된 이 항공기는 기본형의 경우 지난 67년부터,서울에 온 IL-62M형의 경우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74년부터취항했다. 93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모두 250여대가 제작돼 동유럽 등에 수출돼 각 국의국내 및 국제노선에서 운항되고 있다. 길이는 53.12m이며 좌석수는 162∼186석(IL-62MK형의 경우 195명까지 탑승가능)이다.평균 운항속도는 시속 820∼850㎞,운항거리는 1만㎞이며 승무원은 5명.러시아 극동항공사가 주 2회 운행하는 서울∼하바로브스크 노선에 투입되고 있어 낯설지 않다. 김경운기자 kkwoon@
  • [오늘의 눈] 이념 녹여버린 혈육의 情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15일 이산가족 상봉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홀은 삽시간에 ‘눈물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남측 혈육들이 흘린 눈물은 홀을 가득 채우고 한반도 산하로 흘러넘쳤다.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실향민들,이제나 저네나 북녘 땅만 바라보는 1,000만 이산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더한 까닭이다. 50여년 동안 차곡차곡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이들의 한(恨)은 이날차라리 통곡이 되어 전국에 메아리쳤고 분단 현실의 아픔을 어떤 필설보다 생생히 전달했다.이념과 냉전의 국제질서에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새삼 확인했던 역사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이산가족 상봉이 며칠동안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 신파극’에 그쳐서는 안된다.역대 남북 정권들이 그랬듯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50여년간 분단의 고통이 농축된,민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적 결정체란 의미다. 눈물을 눈물로 그치지 않고 대승적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반세기 전,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분노와 증오가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상봉의 눈물과 그 감격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추진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여 전 혹독한 냉전기에도 서슬퍼런 이념의 굴레를 녹이며 독일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엔진이 된 것이 바로 동서독의 이산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이날 TV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을 온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남북 화해와 통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15년 전역사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의 체제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됐던 사실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던 남북 정상들이 이산가족은 물론 분단으로 고통받는 7,000만 겨레의 눈물마저 닦아줄 날을 기대해본다.[오 일 만 정치팀 기자 oilman@]
  • 남북언론 ‘따뜻한 시각’ 전환

    8·15 남북 이산가족 상호방문을 전후한 남북 언론의 보도태도가 상당히 바뀌고 있다.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실질적인 평화 공존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85년 9월20일부터 23일까지 실시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한 언론매체의 논조는 대남 비방전 일색이었다. 당시 북한의 언론 매체들은 “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남북간에 자유로운 내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측의 반통일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특히 “남한 당국이 이산가족의 상봉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고 주장했다.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남측은 원탁에 ‘안내’라는 표쪽을단 요원들을 앉혀놓고 방문단 성원들과 그들의 가족 친척들이 서로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게 했다”고 보도했다. 기념품도 시빗거리가 됐다.노동신문은 “남측 방문단 일부가 ‘승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셔츠를 선물하고,안내원에게 반공과 관련된글이 실린 잡지를 건넨 것은 정치적 목적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보는 북한 언론의 논조는 비난은자제한채 우호적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낮 12시50분쯤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채택된합의서에 따라 서울에 가는 우리측의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이 평양을 출발했다”고 신속하게 보도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북측에 비해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남측 언론의 보도태도도 달라졌다.85년 당시에는 ‘만나도 먼 남북’,‘세뇌됐구나’는 등 남북의이질감이 주로 기사화됐다. 이번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의 아픔과해법을 찾는 쪽으로 보도가 모아지고 있다. 강동형기자 yunbin@
  • 남북이산상봉/ 北 국어학자 류렬씨

    “어디보자,내 딸 인자야.돌아가신 네 어머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아버지.얼마나 보고 싶었다구요” 북한 국어학자 류렬씨(82)와 딸 인자씨(59·부산시 연제구 연산동)는 부녀를 갈라놓았던 반세기 세월에 대한 원망을 씻어내기라도 하듯서로를 부둥켜 안고 목놓아 울었다. 인자씨는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보고 싶을 때면 한장 밖에남지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TV를 통해 아버지 얼굴을 본 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라며 반세기 동안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거듭 불렀다. 류씨는 딸에게 “내 일생을 엮은 TV영화가 있는데 봤느냐”면서 북한에서 국어학자로서 유명세를 떨친 자신의 삶에 대해 말했다. 이어 인자씨가 여든을 넘긴 부친의 건강을 걱정하며 “아버지 오래사셔야해요”라고 하자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영양관리하면 아흔살까지는 살 수 있다고 하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6·25당시 홍익대 교수로 재직했던 류씨가 딸과 헤어지게 된 것은 1·4후퇴때.외삼촌에게 딸려 딸 인자씨를 피란시킨 후 인민군에 입대,월북했다. 특별취재단
  • 올스타 남북상봉 축하 골잔치

    김병지(울산 현대)가 프로축구 ‘별중의 별’의 영예를 안았다. 남부팀 김병지는 15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000프로축구나이키 올스타전 중부팀과의 경기가 끝난 뒤 실시된 기자단 투표에서총 42표중 30표를 얻어 생애 처음이자 골키퍼로서는 처음으로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김병지는 전반을 끝내고 교체될 때까지한골도 내주지 않는 철벽수비를 과시했다. 김병지는 이날 올스타전에만 5번째 출전,자신이 갖고 있던 올스타전 최다출장 기록도 경신했다. 경기결과에서는 남부팀이 이동국(포항 스틸러스)의 선제골과 중부팀이영표(안양 LG)의 자책골, 최문식(전남 드래곤즈)의 결승골을 업고중부팀을 3-2로 이겼다. ◇이날 올스타전은 시종 ‘통일’이라는 테마 속에 진행됐다.스탠드중간에는 ‘남북 올스타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고 경기전 고공낙하 시범에서는 스카이다이버들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등의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내려와 박수갈채를 받았다.또 시축을 귀순 축구인인 윤명찬씨(51)가 해이같은 분위기를 이어갔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남북 이산가족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윤씨에게 시축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윤씨는북한 국가대표,국가종합체육단 축구단장 등을 역임한 뒤 99년 6월 귀순했으며 현재 연맹 경기감독관을 맡고 있다. ◇하프타임 때 이뤄진 캐넌 슛 경연대회에서는 김병지가 역대 최고속도인 시속 133㎞의 대포알 슛을 날려 3대 캐넌 슈터에 등극했다.김병지는 이날 MVP 상금(500만원)과 캐넌슈터 상금(100만원)을 모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올스타전이 열리는 동안 10만 수용능력의 올림픽주경기장에는 관중이 절반 정도만 들어차 올림픽과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축구붐을 조성하려던 연맹의 의도를 무색케 했다. ◇중부팀 이용발(부천 SK)은 후반 1분 얻은 페널티킥을 멋지게 골인시켜 ‘골넣는 골키퍼’의 명성을 재확인시켰다.이용발은 이후에도코너킥 때 상대 문전까지 나가 공격에 가담하는 등 골 의욕을 한껏과시했다. 박해옥기자 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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