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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죽었다던 딸 만난 이재경씨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는 방북이틀째인 16일 1·4후퇴 당시 네살배기 딸 경애씨를 혼자만 떼어놓고와 한이 맺혀 있는 아내 민정숙씨가 쓴 애절한 편지를 딸에게 전달,대면 상봉 못지않은 눈물과 감동을 자아냈다. 민씨는 편지를 통해 “화장실까지 아장아장 따라오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너를 데려오지 못한 그 긴 세월이 원망스럽구나.경애야,엄마를 용서해다오.이 어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늘 부처님께 네 행복을 기도하며 살았단다.그래 경애야 결혼을 했니.아들딸은 몇명이나되니.부디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해야 될텐데….(중략)건강 때문에 비록 너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네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어미는 너무도 기쁘단다.수십년동안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내 딸아,정말 너무도 보고싶구나”라며 단장의 애절함을 구구절절하게 표현했다. 남편 이씨는 또 딸 경애씨 외에 생사확인을 신청했던 동생과 조카등 일곱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어린아이처럼 뛸듯이 기뻐했다. 이씨는 경애씨의 손을 붙잡고 “서울에 있는 네 에미는 다른 가족들이 다 죽었다는 통보를 받고 몸져 눕기까지 했다”며“왜 다들 죽었다고 알려줬는지 모르겠다”고 원망섞인 말을 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평양 공동취재단
  • 恨은 풀고… 情은 잇고…

    “하루 빨리 통일의 그 날이 와서 서로 이웃집 다니듯 다니며 정을나누도록 하자”(북측 방문단 류열씨) “우리 오래오래 살아 꼭 다시만나자우요”(남측 방문단 최성록씨). 정든 고향 땅에서 뜬 눈으로 설레는 밤을 보낸 남북 이산가족들은 16일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만나 2시간여에 걸쳐 못 다한 얘기를 주고받았다.분단 50년 만에 이뤄진 전날 상봉의 흥분과 감격,맺힌 한이채 가시지 않은 듯 숙소 곳곳에서 오열의 소리도 들렸으나 첫날의 단체상봉 때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남과 북은 이날 가족단위의 개별상봉에서 안내원을 배석시키지 않아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얘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며오붓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또 각자 준비해 온 때묻은 사진과앨범을 꺼내 놓고 지난 시간을 되새기는가 하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 100명은 두 팀으로 나눠 이날 오전 10시,오후 3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이틀째 상봉했다. 이들은 워커힐 호텔과 잠실 롯데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50년만에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으며 식사도중 웃고 울기를 되풀이하며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한을 풀고 얘기꽃을 피웠다.방문단은 상봉이 없는 시간에는 롯데월드 민속관을 둘러봤다. 류 단장은 이날 오후 서울에 살고 있는 차남 인국(53)·맏딸 근애(62)·막내딸 순애(48)씨와 비공개리에 상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단장으로 한 남측 방문단도 두팀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 번갈아 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갖거나 대동강 유람선 관광 및 단군릉 참관 행사를 가졌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북한 원로 국어학자 류열씨(82)는 전날에 이어여동생 인자씨(59·부산) 등 4명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만나 남쪽가족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으며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1·4 후퇴 때 생이별한 아내를 50년 만에 만난 남측 방문단 최성록(崔成祿·79)씨는 이날 평양 고려호텔 숙소로 찾아온 아내 유봉녀씨(75)의 손가락에 금가락지를끼워 주며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한편 전날 밤 단체상봉에서 과도한 감격과 흥분 때문에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가 급성폐렴증세를 보여 16일 아침 병원치료를받고 오후 일정에 참가했으며,정명희씨(71·강원 동해시)는 발목을삐기도 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어머니 못만나는 양한상씨

    “서울까지 왔는데도 어머니를 만날 수 없다니요…” 북측상봉단 양한상씨(69)는 16일 오전 숙소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동생들과 다시 만난 기쁨보다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노환으로 전혀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한상씨의 어머니 김애란씨(88)는꿈에도 그리던 아들이 50년만에 찾아왔는지 모르고 현재 서울 서교동 자택에 누워 있다.이 때문에 한상씨는 어머니를 눈 앞에 두고도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상씨는 “50년만에 만나 기쁘기도 하지만 또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기쁜 만큼 슬프다”면서 동생들을 향해 “너희들은 형 심정을 모른다,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울먹이며 몸부림쳤다. 전영우기자
  • 북한의 생소한 말들

    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 일행이 대화 도중 생소한 단어를 사용해 남쪽의 가족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남쪽 가족들로서는 50년 분단의 세월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6형제의 장남인 김동진씨(74)는 방문 첫날 15일 동생들과 식사를 하다가 “사탕가루 좀 뿌리자”며 설탕을 듬뿍 음식에 넣었다. ‘피곤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가장 흔히 듣는 대답은 “일 없시오”.남쪽에서는 감정이 좋지 않은 상대방의 제안을 거절할 때 쓰는 말이지만 북에서는 ‘괜찮다.상관없다’는 의미로 통한다.오해하기 십상이다. 방문단 일행이 ‘선물’이라는 단어에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것은 북한에서 선물이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리는 하사품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다.우리가 의미하는 선물은 ‘기념품’이라고 말해야한다. 북측 수행원들의 가방에 적힌 ‘보장성원’(保障成員)도 생소한 단어다.‘지원요원’이라는 뜻으로 북에서는 흔한 단어지만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이산가족이 모친과의 상봉을 앞두고 쓴 ‘표상(表象)’이라는 말도 낯설다.‘기억.추억.얼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남북이산상봉/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북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6일 북측 상봉단이 묵고 있는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는 북에 있는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이 몰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은 가족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북측 방문단이 볼 수 있도록호텔앞을 서성거렸다. 방북을 신청했으나 이번 방북단에 끼지 못한 김상일씨(71·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미동)는 이날 오전 10시쯤 몸에 가족들 이름이 적힌피켓을 두른 채 호텔을 찾았다. 피켓에는 ‘평양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기자 여러분.평남 남포시 하대두리 제현소 공사사택 7호에 살던 이 사람들을 모르시나요’라는글과 함께 북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형제,누이 동생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평양 동포와 기자들이 묵고 있는 이곳에 오면 내 소식이나마 가족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죽기 전에 꼭 만나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하는데 소식조차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지난 48년 집을 떠나 혼자 공부하러 서울에 내려왔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족들과생이별을 하게 됐다. 북에 오빠를 둔 어머니를 대신,이곳을 찾은 이완재씨(46·충북 충주시 문화동)도 ‘생사를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호텔 현관문을오갔다. 이씨는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 방송을 보며 눈물로 지새우고 계시다”면서 “어머니께 고향 사람들 소식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또 남측 상봉단이 머무는 서울 올림픽파크텔에도 이산가족들이 찾아와 북측 상봉단에 가족의 소식을 대신 물어봐 줄 것을부탁했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권오중씨(68·여·서울 노원구 월계동)는 이날 서울 올림픽파크텔을 서성이며 “북측 상봉단에 서울공대를 다니던 남편 이동현씨(71)를 아는지 물어봐 주세요”라며 애원했다. 권씨는 18세인 50년 1월 서울 공대에 갓 입학한 경북 문경의 이씨와결혼,닷새를 함께 보내다 이씨가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간 뒤 전쟁이터지면서 소식이 끊겼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이산상봉/ 北이산가족 눈에 비친 서울

    “수많은 자동차가 거리를 꽉 메운것 같습니다” “공기가 너무 탁합니다” 서울 방문 이틀째인 16일 북측 이산가족방문단은 서울의 발전상에놀라워하면서도 환경이 오염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했다. 먼저 이산가족방문단은 서울시민들이 따뜻하게 맞아준 데 대한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리운용씨(68)는 “여기저기 내걸린 환영 플래카드,연도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서울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상봉한 기쁨에 잠을 설쳤다는 박섭씨(74)는 “남측 사람들이 열렬히 환영해 줘 마치 내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면서 “도로에 자동차가 많이 굴러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서울에대한 첫 인상을 전했다. 정춘모씨(63)는 “어제는 손을 흔들어 주는 시민들 때문에 마음이들떠 환영나온 어린이들 손을 꼭 잡아주었다”고 미소를 지었다.김동진씨(74)는 남한의 음식맛에 대해 “서울에서 살아본 지 너무 오래되서 음식맛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같은 민족의 음식이라서 그런지남조선 음식맛이 평양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측 이산가족들은 서울 하늘을 뒤덮은 매연과 젊은이들의형형색색의 헤어스타일 등 외모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17살 때까지 노량진 근처에 살았다는 리영수씨(66)는 “예전에는 한강 주변이 조용했는데 지금은 집도 많고 다리도 여러개 생겨서 그런지 복잡해졌다”면서 “한강물도 많이 탁해진 것 같다”고 아쉬움을표했다. 서울대 문과대에 다녔던 조주경씨(68)는 “예전보다 공기가 많이 나빠졌고 전반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답답하다”면서 “서울대가 자리를옮겼다는 데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또 리래성씨(68)는 “하룻밤 자고 났는데 벌써 목이 따가울 정도로서울은 먼지가 많고 공기도 매우 나쁜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홍두혁씨(67)도 “북한의 공장은 대개 외곽에 있어 공기가 깨끗한데서울에는 공장이 많은 것 같다”며 의아해했다. 권기준씨(66)는 “사람들 머리색깔 하며…”라며 이동 중인 버스에서 내다본 젊은이들의 갖가지 머리카락 색깔과현란한 옷차림에 대해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택동기자 @kdaily.com
  • 남북이산상봉/ 평양 방문 이틀째 표정

    남쪽 이산가족 방문단 100명은 16일 오후 평양 관광에 나서 대동강을 따라 남쪽 만경대까지 운항하는 대동강 유람선을 타는 것으로 고향을 못가보는 아쉬움을 달랬다. ■유람선 관광 북쪽 안내원들은 유람선 관광이 남쪽에서 온 손님들에게는 처음 개방된 것임을 강조했다. 대동강 유람선은 평소 평양과 남포간을 하루 한차례씩 운항하던 것이었으나 남쪽 이산가족들을 위해 평양과 만경대 구간을 특별 운항했다. 평양이 고향인 강성덕씨(67)는“겨울에 스케이트를 타고 학교 다닐때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며 고향에 온 느낌을 말하기도 했다.평양인근 순안이 고향인 임선근씨(74)도“그때 모습 그대로 생각이 난다”면서 환경 정리가 잘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관사 이상렬씨(60)는“30년 배를 몰았지만 오늘같이 기쁜 날은 없었다”며“빨리 통일을 앞당기자”고 말했다. ■푸에블로호 대동강을 관광하던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쑥섬 근처에 정박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발견했다.지난 68년 1월 북한이나포,원산 앞바다에 정박해 놓았던 배다. 지난해 10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로 대동강 기슭 ‘충성의 다리’ 부근에 옮겨져 일반에 공개됐다. 이곳은 1886년 8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침몰된 장소로북한은 김 위원장의 고조부인 김응우가 결사대를 조직,이 배를 침몰시켰다고 주장한다. ■단군릉 방문 대동강 유람을 마친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원들은 다시버스를 타고 40여분간을 달려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 기슭에 자리한단군릉을 찾았다. 단군릉 참관은 이산가족 방문단원들에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민족단일성과 통일을 강조하기 위한 북측의 배려에서 마련된 듯한 인상을줬다. ■생일 케이크 방북단의 이동선씨가 71회 생일을 맞자 북측은 ‘특별생일 케이크’를 전달했다.북한에서는 결혼,돌,회갑,칠순 잔칫상에케이크를 준비한다. 빵이 아니라 설탕을 굳힌 뒤 염색한 케이크이다.이름도 ‘축탑’ 이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세계 언론들 집중조명

    남북한 이산가족의 상봉 드라마가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먼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한 독일의 언론들은 15일 이산가족 상봉과관련,사설 등을 통해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은 1면 사설에서 “남북한은 이질적인 체제이지만 공통의 역사가 대립과 반목을 중재하는 끈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광복절을 맞아 남과 북이 이산가족 방문단을 교환하고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재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36년간 한반도를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반감이 남북을 하나로 묶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또 정상회담 이후 통일문제가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으며 이제 통일은 북한의 개방정책과 한반도의 긴장완화 정책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TF1-TV는 15일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50여년간 극한의 냉전상태를 종식시키고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확인시켜준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날 신문과 인터넷 웹사이트 국제면 톱기사로“50년만의 재상봉,한국인들에 기쁨을”이란 제목을 통해 남북상봉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전달했다.이 신문은 김옥배씨 등의 상봉 장면을 전달하면서 남북한 방문자들의 서로 다른 옷차림,그리고 소지한선물보따리 등을 비교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눈물로 끝낸 잃어버린 50년”이란 제목의 이산가족 상봉 소식을 웹사이트 톱으로 실었다.부자간,모녀간,자매간,부부간 안타까운 사연들을 소개했다.이 신문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접근 정책이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이 결과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찾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도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모습과 남북정상회담의 장면들을 편집,특집방송으로 계속내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남북이산상봉/ 상봉 유지방안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이 감동을 더하면서 이번 상봉이 단 한번의 만남으로 끝나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확고하다.지속적인 만남을 제도화하고 그규모도 크게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남북한은 오는 9월 초 비전향장기수의 북송 직후,적십자회담을 열고 면회소 설치를 위한 구체안과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운영 등에 대해 논의한다. ■정례화 가능성 남북한은 이미 지난 6월 말 ‘금강산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운영키로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후속회담을 준비중이다. 6·15 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전반적으로협력관계로 진전되고 있어 지속적인 상봉과 규모의 확대도 희망적이다. 북측도 이미 면회소 설치에 합의한 만큼 개소는 시간문제며 단지 규모와 장소 등이 쟁점으로 남아있다.설치장소는 남측은 판문점일대를선호하고 있다.반면 북측이 이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어 금강산이나기타 다른지역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면회소 기능 이산가족의 상봉과 서신왕래 및 생사확인,물품 전달등을 할 수 있는 장소로 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일주일에 한번 혹은격주로 한번쯤 열어,한번에 수십∼수백명씩이 만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설 기관이므로 지속적으로 생사확인여부를 교환하는 등 전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에도 크게 일조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2·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9월 초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구체안이논의될 전망이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방북중이던 언론사 사장단에게 9·10월에도 방문단을 교환,만나게 할것임을 약속한 바 있어 규모와 시기만이 남아있다.11·12월에도 가능할 수 있을지 등이 관심사다.정부의 한 당국자는 “회담에서 논의할문제지만 이번 방문단 수준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9·10월에도 남북에서 각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평양·서울 땅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과제 정부는 대북송금과 상봉자의 재상봉 등도 후속조치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또 고향방문과 묘지참배,이산가족들과의합숙기거 등도 과제로 남아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2일 “내년에는 고향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남북한이 제한적이지만 지속적 상봉의 원칙에 사실상 합의한 만큼 20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이산 1세대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한 빨리 만날 수 있게 하는지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
  • [오늘의 눈] 상봉가족수 5명제한 유감

    ‘할아버지,우리도 들어가고 싶어요’ 16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현장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은 반세기 만에 마주한 피붙이들의 기쁨과 회한,눈물로 한껏 젖어 들었다.전날 50년 만의 상봉에 밤잠을 설쳤던 이산가족들은 이날 오전 다시 만나 따로 보낸 세월들을 한꺼풀씩 되짚어갔다. 그러나 이산가족 개별 상봉이 이뤄진 호텔 로비 곳곳에서는 또다른안타까운 장면들이 목격돼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부모를 따라온 초등학생 손주 2명은 플래카드를 들고 북에서 내려온 할아버지를 애타게 찾았다.비록 ‘씨’가 다르지만 어머니만은 북에서 내려온 친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호텔 로비에서 소동을벌인 그 어머니의 한 뱃속 형제들도 있었다.광주와 남원,수원에서 달려온 김정남씨(45) 형제들은 북측 방문단의 삼촌 정해섭씨의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온종일 호텔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추진하면서 상봉가족수를 5명으로제한하면서 빚어진 일들이다. 딱한 사연들은 줄을 이었다.오두남씨(75·여) 일행은 ‘똑똑했던’시동생 김치효씨를 만나러 대구에서 달려와 호텔에 진을 쳤다.최상화씨(56·여)는 큰오빠 상길씨 이름을 종이에 적어 들고 호텔 현관을서성이며 막내인 탓에 상봉대상자 5명에 끼지 못한 안타까움을 달랬다. 이날 북측 방문단이 롯데월드 관람에 나선 길에서도 이처럼 오가다스치는 식의 짧은 상봉이 이어졌다.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다 못한 몇몇 우리측 안내원들은 제한인원 5명을 넘지 않는 선에서 교대로 이들의 상봉을 주선해 주기도 했다.그러나 많은 이산가족들은 먼발치에서 손 한번 흔드는 것으로 50년 묵은 회한을 달래야 했다.그나마 이번 방문단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999만9,900명’의 이산가족들은 서성거릴 자리마저 없는 현실에 숨 죽여 울기만 할 뿐이다. 50년 분단의 벽을 넘어 달려왔고,기다렸다.매정하기 그지없는 규정이 목놓아 기뻐해야 할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깊이 할퀴고 있다. 진경호 정치팀기자.
  • 남북이산상봉/ 李善行·李松子부부‘따로상봉’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한에서 결합해 살아오다 이번에 함께 방북단에 선정된 이선행(李善行·81) 이송자(李松子·82)씨 부부의 가족간 만남은 16일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숙소인 고려호텔 객실에서 가족별 개별상봉을 가진 이날 이선행씨는“오늘은 가족끼리 더 시간을 갖고 17일 마지막 개별상봉때 두 가족을 인사시키겠다”고 말했다.이씨 부부의 방은 같은 층이지만 각자의가족끼리만 별도의 상봉이 진행됐다.흩어진 가족간의 혈육의 정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짧았던 까닭이다. 이송자씨는 오전 10시쯤 객실에 찾아온 큰아들 박위석씨(61)를 반갑게 맞이했다.전날 첫 상봉때는 반세기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라 다소서먹했지만 두번째 상봉은 한결 달랐다. 박씨가 “어머니 앞에서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말하자이씨는 “건강에 안좋은 걸 뭐하러 피우니”라며 야단쳐 반세기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보통의 모자지간으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박씨는자신의 외손자(13)가 공부를 잘해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는 자랑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증손자 얘기를 들으며 이씨는 아들의 어렸을 적 모습을 찾아내려 애썼다.‘50년의 무정한 세월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두 사람의 눈망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선행씨는 옆방에서 북쪽 아내 홍경옥씨(76)와 장남 진일(56),3남진성씨(51)를 만났다.이씨는 커다란 백지를 펼쳐놓고 북의 두 아들손자와 친척들의 이름을 도표처럼 그려가며 일일이 확인했다.이씨는“이게 우리집 새 족보”라며 50년만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남쪽 부부의 ‘따로 상봉’은 이렇게 지나갔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속속 드러나는 애타는 사연들

    남북 이산가족들의 서울 상봉 이틀째를 맞은 16일 남과 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숨겨졌던 사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鄭昶謨·68)씨의 남과 북 가족에는 화가가 둘이나 더 있었다. 이날 정씨를 처음 만난 조카 진규(鎭圭·32·전북 전주시 효자동)씨는 전라북도 미술전에서 입선하는 등 현재 전주에서 활발히 작품활동을 펴고 있다.진규씨는 50년만에 만난 삼촌으로부터 북에 있는 삼촌의 큰아들 성혁씨(34) 역시 화가라는 소식을 들었다.정창모씨는 전통산수화를 주로 그리며 진규씨 역시 현대 수묵화를 그려 화풍도 비슷한 편이다. 또 외증조할아버지인 고(故) 이광렬 화백이 고암 이응로 선생을 가르쳤다는 것도 북에서 온 삼촌으로부터 처음 듣는 집안 내력이었다. ■아직도 까만 머리에 비녀로 쪽을 진 고승남씨(78·강원도 강릉시)는 50년만에 내려온 조카 민병승씨(69)로부터 북에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50년을 수절하고 살아온 고씨는 “남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앞서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면서 “영감이 북에서 재혼해 아들 3형제를 둬 며느리도 둘을 보았다는 말에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의학박사가 돼 돌아온 형 신승선씨(69)를 만난 창선씨(62)는 형의막내아들 귀남씨(24)가 평양교예단원으로 두 번이나 서울을 방문했던사실을 처음 들었다. 형으로부터 널뛰기 묘기를 보인 사람중 하나가 바로 귀남씨였다는사실을 전해들은 창선씨는 “미리 알았으면 조카가 서울에 왔을 때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면서도 “형이 평양의 대형병원외과팀 총책임과장이고 조카는 교예단원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뒤늦게 상봉장을 찾은 황모씨(75)는 북에서 온 동생(68)의 두 손을 꽉 잡은 채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지난 50년 동안 자식들에게조차 존재를 알리지 않던 동생이었다.황씨는 6·25 당시 북으로 간 동생 때문에 자식들이 냉전시대의 산물인연좌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판단, 동생과의 만남을 포기했었다. 3년 전부터 북에 있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매에 걸렸지만 정작동생을 만날 자신은 없었다. 수없이 망설이던 황씨는 결국 뒤늦게 상봉장을 찾았다. 이창구 김재천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호텔직원이 전하는 北상봉단 ‘서울첫밤’

    북측 상봉단은 서울에서의 첫날밤을 비교적 안정되고 차분하게 보냈다. 16일 오전 호텔측의 객실점검 결과 북측 상봉단은 밤새 술은 거의들지 않았다.호텔 관계자는 “북측 상봉단이 우리의 전통술을 많이찾을 것으로 보고 객실 미니바에 안동소주와 문배주,이강주,소주 등을 고루 비치했으나 밤새 마신 술은 모두 4∼5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안주는 포장 육포와 믹스너츠를 선호했다. 반면 담배는 많이 피웠다.흡연자들은 저녁시간대에 1∼2갑의 담배를주문했으며 남북한이 합작 생산한 한마음과 타임을 많이 찾았다. 한편 잠자리에 들 시간에 전기와 관련된 주문이 여러건 룸서비스 담당자에게 접수됐다. “이렇게 밤새 불을 켜놓으면 되겠느냐.출입구쪽 작은 등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꺼달라”거나 “전깃불을 꺼야겠으니 소등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 등이었다.룸서비스 관계자들은 “다른 일로는별로 서비스요원을 부르지 않은 북측 상봉단이었지만 ‘전기’에 관해서는 과민하다 할만큼 절전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며 “북의전력난과 무관치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광장] 광복 55주년, 이산극복 원년으로

    광복절 55주년을 맞아 85년에 이어 두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남과 북그리고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 모두가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 민족은 분단 55년이 지나도록 소모적인 분단체제를 극복하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헤어진 부모 형제 자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처해있다.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반세기동안 이산가족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아니할 수 없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가족권을 보장하려는 인도적인 문제로서 남북한 당국은 물론 온 민족이 한마음으로 시급히 해결해야할 당면 과제다.그동안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어려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산가족을 보는 남과 북의 시각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남쪽은 이산가족문제를 인도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데 비해 북쪽은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남쪽은 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문제로 인식하고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현안문제와별도로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왔다.특히 김대중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이산가족 재회 및 편지왕래를 취임 1년 안에 해결하겠다고 그 시한을 명시하고,취임 이후 이산가족 문제해결을 대북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두어왔다.김대중정부는 두차례에걸친 차관급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비료지원과 병행하여 해결하기를 북측에 요구한 바 있으며,베를린 선언과 정상회담에서도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북한은 이산가족문제를 정치문제와 결부시키면서 “통일이 되면 이산가족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북한이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폐쇄적인 북한사회가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로 인하여 북한체제의 유지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데 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전후하여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기 시작했다.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을 앞둔 98년 2월15일 중앙방송을 통해서 3월1일부터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에 주소안내소를 설치하여 주민들의 이산가족 찾기를 주선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김대중 정부의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에 대해서 북한이 이산가족 주소안내소 설치로 ‘화답(和答)’해옴으로써 이산가족 문제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던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첫 실천사업이다.남과북 각각 100명씩 ‘선택받은 소수’만이 헤어진 가족과 상봉을 함으로써 상봉하지 못한 대다수 이산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다행히 남쪽 언론사 사장단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10월에 계속해서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고,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의 고향 방문까지실현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은 이산가족 문제가 지닌 민감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즉 김위원장은 “이산가족문제는 준비 없이 갑자기 하면,비극적인 역사로 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다”면서 “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이는 김위원장이 이산가족문제를 여전히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이다.북한이 이산가족 상봉문제를북한 사회주의체제 안정 등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들의 전면적인 상봉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현단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은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제도화이다.소규모 단위의 단발성 상봉보다는 이산가족의 주소및 생사확인 작업이 급선무이다.주소가 확인되면 서신교환과 전면적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다가오는 9월 비전향장기수 북송 이후 남과 북은 면회소 설치를 협의하여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또는 상설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우리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전향장기수,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등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 정부는 북한당국에게 이산가족 문제와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하여 인도적 차원에서다룰 것을 촉구해야 한다.그렇게 하여 1,000만 이산가족의 비원을 하루빨리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교수·북한학
  • 남북이산상봉/ 朴鍾九씨의 北큰형 ‘상봉일기’

    15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집단 상봉을 마치고 숙소인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로 돌아온 이산 가족들은 좀처럼 흥분을가라앉히지 못하고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 순간만은그간 겪은 이산의 아픔도 봄눈 녹듯 사라지는듯 했다.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큰 형 박종석(朴鍾錫·68)씨를 꼭 50년만에 만난종구(鍾九·54·충북 청주시 사직동)씨가 상봉의 기쁨과 그간의 아픈사연, 이별의 두려움 등을 적은 일기를 소개한다. 상봉장에 앉아서 4살 때 헤어진 형을 기다리면서도 형의 얼굴을 모르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초조해 하는 나에게 둘째 형님과 누님은 자신들이 형을 알아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가운 북쪽의 손님들이 하나 둘 상봉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반백의 노인이 우리 테이블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종석 형님이구나.핏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큰형의 얼굴은아버님의 얼굴이기도 했고,둘째 형의 얼굴이기도 했고 바로 내 얼굴이기도 했다.형과 얼싸안는 순간 어릴적 코트 속에 묻어 있던 형의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둘째 형이 “형과 함께 끌려갔던 사람들이 ‘종석이는 사리원에서총에 맞아 죽었다’고 해 우리 가족들은 형이 죽은 줄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냈어요”라며 흐느꼈다. 큰형은 둘째형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우리가 살아서 만나니 오래 살겠구나”며 웃으셨다. 누님은 형의 품에 안겨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이제서야 가족이 보고 싶어서 내려오다니 너무 야속해”라며 투정을 부렸다. 형은 흐느끼며 “네 말이 맞다.미안하다”며 누님의 등을 두드렸다. 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딸 셋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형의 말이 그저 반가웠다. 밤이 깊어 간다.조금전 헤어진 형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몇시간만지나면 형을 다시 만나는데 시간이 너무 더디다. 3일 뒤면 형과 또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짧지만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16일 아침 종석씨와의 개별 상봉을 위해 워커힐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종구씨 형제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가 가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방북단 동행 李浩哲씨 소회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평양을 찾은 소설가 이호철(李浩哲)씨는16일 전날의 단체상봉을 제대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봉가족들이) 울고불고 해서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을 흐렸다. 그 자신이 누이동생을 원산에 둔 이산가족이기 때문에 이산의 아픔과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듯했다. ■느낌은 어떤가. 획기적인 일이다.50년만에 노인들이 만나 한을 풀도록 한 것은 우리분단사에 큰 일이다.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6·15선언 이후 벌어지고있다. 그러나 한번에 100명밖에 못만나면 780번을 해야 한다.2년 내내 매일같이 해야 이산가족의 한이 풀린다.빨리 면회소를 설치해야한다. ■85년 당시 이산가족 상봉과 비교하면. 이번 상봉은 체제경쟁이라기보다 화해협력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분위기다.남측은 무작위로 추첨된 사람들이고 장애인 중풍환자도 있다.반면 북측은 사람들을 골라 뽑았다.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좋은 뜻의 반면교사(反面敎師)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15일은 정상회담 2개월이었다.또 광복절이었는데. 8 ·15로 광복이 됐지만 남북이 갈렸다.두 정부가 들어서고 강산이갈리고 이산가족이 생겨나고….그 아픔이 이번 경의선 연결로 풀리게됐다. 젊은이들이 한반도 종단 기차를 타고 배낭여행을 하는 날이 올것이다. ■누이동생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싶은가. 부모님과 조부모님 기일을 먼저 물어보고 싶다.돌아가신 날짜를 몰라 과거 30년 전부터 음력 9월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평양 공동취재단
  • 인민예술가 정창모 서울개인전 무산

    남북이산가족상봉에 맞춰 열릴 예정이던 북한 인민예술가 정창모씨(68)의 서울 개인전이 무기 연기됐다. 전시를 주최한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당초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16일부터 22일까지 ‘북한 인민예술가 정창모 서울전’을 열 예정이었으나 현재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서울에 와 있는 정씨가 도록을 보고 작품의 진위여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전시를 16일무기연기했다.이번 서울전에는 ‘화실의 정서’ 등 화조화와 풍경화3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정씨는 “전시를 열지 못하게 돼 유감스럽지만 이런 어려움도 결국조국분단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9월 초 평양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인데,그 전시를 그대로 서울에 옮겨 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밝혔다.정씨는 도록에 실린 50여 작품 중 6점만이 자신의 작품이라고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측은 문제의 그림을 정씨와 직접 교섭하지 않고북한 만수대창작사를 통해 입수한 것으로 밝혀졌다.1959년 현재의 평천구역에 세워진 만수대창작사는 평양 거리의 동상과 기념비는 물론지하철에 그려진 회화도 대부분 제작했을 정도로 북한미술의 심장부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미술품의 위작시비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지난 봄 열렸던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북한미술의 어제와 오늘’에서도 월북화가 김관호의 ‘홍경선’ 등 일부 작품의 진위여부가 논란이 됐다.미술계에서는 만수대창작사 외에는 별다른 북한 미술품 유통 경로가 없는현실에서 이같은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남북이산상봉/ 北방문단 삼원가든 만찬 표정

    서울 방문 이틀째인 16일 밤 북한 방문단은 남측 이산가족들과 함께서울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가진 합동만찬에서 한 잔씩 권한 술에 거나해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춤을 들썩이며50년 만의 상봉을 자축했다. 이산가족들은 시장함을 잊어버린 듯 서로에게 음식을 떠먹여주며 가족애를 과시했다.식사 도중 못만난 가족들의 소식을 접하자 목이 메어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주최로 열린 만찬에는 오후 6시20분쯤 남측 가족들에 이어 오후 7시쯤 북한 방문단이 입장했다.만찬 음식으로는 양념갈비와 냉면,식혜,과일 등이 준비됐고 백세주와 맥주,콜라,사이다등 술과 음료가 곁들여졌다. ■북에서 온 김옥배씨(62)의 어머니 홍길순씨(87)는 “네가 어릴 적에 새우를 좋아했는데 많이 먹이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하자 김씨는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새우튀김을 먹어보고 싶다”며울먹였다. ■인민배우 박섭씨(74)는 만찬장 좌석에 앉자마자 “시설이 참 좋다. 음식 맛도 좋은가”라며 동생 박병련씨(63)에게 물었다.이에 동생 박씨는 “이 집이 서울에서 가장 큰 갈비집”이라면서 “서울이 원래불고기로 유명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원산병원 내과과장 홍삼중씨와 원산진료소장 이봉순씨 등 북에서온 방문단 7명은 “우리는 모두 원산 출신”이라며 “북에 돌아가더라도 서로 연락하고 의지해서 한 형제처럼 살자”며 즉석에서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반세기 만에 동생 문병칠씨를 맞은 누나 정선씨는 “자주 만나는것은 좋으나 바깥 음식만 대접하다 보니 입맛에 제대로 맞을는지 모르겠다”면서 “다음에는 편하게 집에서 대접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좋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북한의 영웅시인 오영재씨는 “북쪽 작가동맹 소속 작가들이 ‘남조선에 다녀오면 소주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면서 소주를 주문한뒤 ‘50년 만에 만난 동생들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동생들과 건배했다.오씨는 “황석영씨가 방북했을 때 술을 마시며 친해졌다”고 소개했다. 특별취재단 **
  • 남북이산상봉/ 향후 남북관계

    8·15 이산가족 상봉은 6·15 공동선언의 첫 사업이자 남북 정상들의 약속 이행이란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이런 맥락에서 향후 남북한 화해·협력의 속도는 보다 빨라지면서 한반도 냉전의 해체와 평화정착의 길을 모색할 것이란 전망이다. ■남북관계 이산가족 상봉의 여세를 몰아 ‘순풍에 돛단’ 형국이다. 남북은 이달 말쯤 6·15 공동선언 실현을 최우선 목표로 장관급 회담을 열어 한 걸음씩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우선적으로 군사,경제,사회·문화 등 3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향후 평화공존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남북한 군사직통전화 설치,국방장관급 회담 등 군사분야에서의 긴장완화 조치도 병행,추진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내달 초 장기수 송환과 추석 전후로 예상되는 조총련 등 재일동포고향방문 등은 남북 화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것같다. 내달 초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남북 수뇌부 회동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국제무대에서 재확인한다.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남북의 노력을 국제사회가 추인하는 상징적인 의미다. ■남북경협 이산가족 상봉 이후 급물살이 예상된다.추석 전후로 예정된 경의선 복원사업이 신호탄이다.남북 화해와 55년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상징적 효과가 크다.남북 경협과 물적 교류의 인프라로서 엄청난 파급효과와 함께 대북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의 예고편적 성격을갖는다. 현대의 개성공단 조성 및 관광 사업 등 육로를 통한 경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특히 개성 관광의 성공 여부는 향후 북한의 개방속도를 한층 가속화시킬 것이란 분석이다. 남북 직항로 개설도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남북 긴장완화의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통신·정보 분야는 이달 말 남북한 광통신 시대를 열면서 남북교류활성화를 유도하는 ‘인프라’ 역할이 기대된다. 오일만기자 oilman@
  • 남북이산상봉/ 휴대전화로 오빠 극적상봉

    남측 가족의 실수로 상봉자 명단에서 누락된 막내 여동생이 휴대전화로 계속 통화를 한 끝에 북에서 온 큰오빠를 50년 만에 극적으로만났다. 최상화씨(56·경기도 광주군)는 16일 북측 이산가족 숙소인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이제나 저제나 큰오빠 상길씨(68)가 호텔 밖으로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상화씨는 전날 상길씨에게 “오빠,내일 내가 호텔로 가서 기다리고있을게.밖으로 나갈 때 잠깐이라도 볼 수 있게”라고 전화를 했고,이날도 호텔 1층에서 “오빠,나 지금 호텔 1층이야”라고 상길씨가 있는 객실로 전화를 했다. 상길씨는 “상화야,이따 오후에 버스 타고 밖으로 나갈 때 내가 너를 알아볼 수 있게 네 이름을 크게 써서 버스 앞에 서 있거라.내 너에게 손을 한껏 흔들어 주마”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던 누이는 호텔 지하 1층엘리베이터 앞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오빠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1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물 밀듯이 밀려나오는 가족들 사이에서둘째 오빠와 언니들의 손을 잡고내려오는 오빠의 얼굴을 발견했다. “오빠…” “네가 상화냐” 6살 때 고향인 경기도 여주군 동네 뒷산에서 어깨동무를 해주며 “대장부 살림살이 이 정도면…”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10대 미소년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지만,두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반세기를 뛰어넘은 재회의 기쁨도 잠시.오는 18일 오빠가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잠깐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을 빼고는 언제 또 있을지 모르는 후일의 만남을 기약하며 상화씨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만찬장으로 들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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