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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는 서둘러 관복을 입기 시작하였다.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도와주던 부인 이씨가 말했다. “바깥 날씨가 몹시 찹니다.속옷을 껴입도록 하시지요.” 흑단령(黑團領)을 입으려던 조광조는 부인의 말에 옷을 더 껴입었다.조광조의 아내는 한산 이씨로 첨사(僉使) 이윤형(李允泂)의 딸이었다.조광조가 열여덟 살에 혼인하였으니 벌써 부부로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두 사람 사이에 두 아들이 있고,금실은 몹시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찍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동료 진사 중 아내와 화합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아내를 버리려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조광조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지하여 그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칠거지악’이란 유교에서 이르던 아내를 버릴 수 있는 7가지의 경우,즉 ‘시부모에게 불손한 경우’‘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음탕한 경우’‘질투하는 경우’‘나쁜 병이 있는 경우’‘말 많은 경우’‘도둑질한 경우’를 가리킴인데,뛰어난 유학자이면서도 조광조는 아내를 버리려 하는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어 말하였던 것이다. “부부는 인륜이 비롯되는 곳이며,만복의 근원이라 관계가 지극히 중하다.부인의 본성이 어둡고 자각이 없어서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남편된 자가 마땅히 바르게 다스려나가 감화케 해서 함께 가도(家道)를 이룩하는 것이 후덕한 일이다.만일 거느리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급히 버리려 한다면 천박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하물며 이 일은 가정 안의 일이라 외인이 감히 의논할 일이 못되는 것이니 자기가 잘 생각해서 처리함이 옳을 것이다.” 조광조가 남긴 ‘정암집’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을 보더라도 조광조가 얼마나 ‘집안의 도리’,즉 가도에 충실하였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심려치는 마시오.날이 밝으면 곧 돌아올 것이니.” 조광조는 표정이 어두운 부인 이씨를 보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부인 이씨는 흰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그것은 지난 6월,아버지이자 조광조의 장인이었던 이윤형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관복을 갈아입고 군사들을 따라가는 조광조에게 부인 이씨는 목이 메어 말하였다. “부디 몸 건강하시옵소서.” 그러나 이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된다.왜냐하면 곧 돌아올 테니 심려치 말라는 조광조의 말은 그대로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그길로 의금부에 갇혀 죄인이 된 조광조는 곧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됨으로써 살아생전에는 아내 이씨는 물론 두 아들과도 영영 상봉하지 못하였다. 조광조는 선전관 금오랑이 이끄는 군사들에 압송되어 곧 의금부에 갇히게 된다.의금부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조광조는 자신이 죄인으로 착수(捉囚)될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국가의 비상사태로 주상으로부터 급히 입궐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입궐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갑자기 칼을 빼어든 무사 한 사람이 조광조를 가로막고 암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조광조를 압송하던 군사들이 가로막고 나서 조광조는 간신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조광조를 암살하려던 무사의 이름은 박배근(朴培根).그는 벌써부터 조광조 일파를 제거해야 한다는 30인의 무사 중 한 사람으로 홍경주의 밀명을 받고 사림파의 괴수인 조광조를 단칼에 척살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미 의금부에는 김식을 비롯한 8명의 동료들이 갇혀 있었다.마침내 조광조가 옥에 갇힘으로써 사림파는 한순간에 일망타진됐다.이때가 인시(寅時).조광조의 체포로 마침내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결은 훈구파의 승리로 끝나버린 것이다.˝
  •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40)-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조광조는 서둘러 관복을 입기 시작하였다.의관을 정제하는 것을 도와주던 부인 이씨가 말했다. “바깥 날씨가 몹시 찹니다.속옷을 껴입도록 하시지요.” 흑단령(黑團領)을 입으려던 조광조는 부인의 말에 옷을 더 껴입었다.조광조의 아내는 한산 이씨로 첨사(僉使) 이윤형(李允泂)의 딸이었다.조광조가 열여덟 살에 혼인하였으니 벌써 부부로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다.두 사람 사이에 두 아들이 있고,금실은 몹시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일찍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동료 진사 중 아내와 화합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 아내를 버리려고 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조광조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의지하여 그 의견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칠거지악’이란 유교에서 이르던 아내를 버릴 수 있는 7가지의 경우,즉 ‘시부모에게 불손한 경우’‘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음탕한 경우’‘질투하는 경우’‘나쁜 병이 있는 경우’‘말 많은 경우’‘도둑질한 경우’를 가리킴인데,뛰어난 유학자이면서도 조광조는 아내를 버리려 하는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어 말하였던 것이다. “부부는 인륜이 비롯되는 곳이며,만복의 근원이라 관계가 지극히 중하다.부인의 본성이 어둡고 자각이 없어서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남편된 자가 마땅히 바르게 다스려나가 감화케 해서 함께 가도(家道)를 이룩하는 것이 후덕한 일이다.만일 거느리는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급히 버리려 한다면 천박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하물며 이 일은 가정 안의 일이라 외인이 감히 의논할 일이 못되는 것이니 자기가 잘 생각해서 처리함이 옳을 것이다.” 조광조가 남긴 ‘정암집’에 실려 있는 이 기록을 보더라도 조광조가 얼마나 ‘집안의 도리’,즉 가도에 충실하였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심려치는 마시오.날이 밝으면 곧 돌아올 것이니.” 조광조는 표정이 어두운 부인 이씨를 보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부인 이씨는 흰 상복을 입고 있었는데,그것은 지난 6월,아버지이자 조광조의 장인이었던 이윤형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관복을 갈아입고 군사들을 따라가는 조광조에게 부인 이씨는 목이 메어 말하였다. “부디 몸 건강하시옵소서.” 그러나 이씨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된다.왜냐하면 곧 돌아올 테니 심려치 말라는 조광조의 말은 그대로 영원한 작별인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그길로 의금부에 갇혀 죄인이 된 조광조는 곧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고 마침내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게 됨으로써 살아생전에는 아내 이씨는 물론 두 아들과도 영영 상봉하지 못하였다. 조광조는 선전관 금오랑이 이끄는 군사들에 압송되어 곧 의금부에 갇히게 된다.의금부에 이를 때까지만 해도 조광조는 자신이 죄인으로 착수(捉囚)될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다.국가의 비상사태로 주상으로부터 급히 입궐하라는 어명을 받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입궐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갑자기 칼을 빼어든 무사 한 사람이 조광조를 가로막고 암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조광조를 압송하던 군사들이 가로막고 나서 조광조는 간신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훗날 알려진 것이지만 조광조를 암살하려던 무사의 이름은 박배근(朴培根).그는 벌써부터 조광조 일파를 제거해야 한다는 30인의 무사 중 한 사람으로 홍경주의 밀명을 받고 사림파의 괴수인 조광조를 단칼에 척살하려 했던 것이었다. 이미 의금부에는 김식을 비롯한 8명의 동료들이 갇혀 있었다.마침내 조광조가 옥에 갇힘으로써 사림파는 한순간에 일망타진됐다.이때가 인시(寅時).조광조의 체포로 마침내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결은 훈구파의 승리로 끝나버린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8)조선족의 뿌리를 찾아서(하)

    문:중국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徐:당시 청나라는 계속된 전쟁으로 만주족의 인구가 크게 감소되었지요.대부분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살다 보니 농사 지을 일손이 부족하여 토지가 황폐해졌지요.전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무기만큼이나 양식이 필요했는데,그 농사를 짓기 위해 포로가 필요했지요. 그 포로들을 농장 노예로 만들어 중노동을 시켰는데,조선인들은 주로 심양 부근인 동주보(東州保),둔소(屯所),안산(鞍山),흥경,청룡,풍윤(豊閏) 지역에 집중배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조선인 노예들은 뒷날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徐:민족동화 과정을 거쳐 만주적(滿洲籍)에 편입되어 귀화인이 되었는데,만주씨족통보(滿洲氏族通譜)에 올라 만주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청나라 포로가 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가 되었을까요? 徐:소수지만 군인,지도층에 편입된 흔적도 있지만 대개는 농장노예,만주족 귀족의 노비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조선인 포로를 분산시키거나 나누어 가졌다는 말인데,혹 인신매매도 있었을까요? 徐:‘심관록’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어요.이 문헌은 심양으로 끌려 온 조선의 두 왕자가 청나라 군인들에게 포위된 채 살았던 처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조선인들이 노예로 매매되었거나 포로 가족이 돈을 가져 와서 주고 데려가는 속환(贖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문:노예라면 상품으로 매매,양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말합니다.고대 오리엔트,고대 그리스·로마,식민지시대 아메리카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지요.노예무역선,노예사냥,미국의 흑인노예라는 말이 그 증거지요.그런데 조선인 전쟁포로가 노예로 매매되었으며,그들이 조선족의 원류이고,오늘날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 속에 그런 비극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퍽 충격적인 일입니다. 徐:심관록 기록을 그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은 포로가 된 사람들을 매매하려고 모여들었다.성문 밖에는 포로가 된 남녀 수만 명이 있었다.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상봉하였거나 형제끼리 서로 만나 끌어 안고 통곡하는 데 울음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잡혀간 사람을 돈을 주고 찾아가기 위하여 날마다 성문 밖에 모였다.포로가 되어 있는 자의 부모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와서 얼마면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값이 비싼 경우는 백냥 또는 천냥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값이 너무 높아 어이없어 통곡하면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친척이 없어 홀로 있는 사람은 세자(世子) 관소(館所)에 찾아와서 속환시켜 달라고 울고 있으니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문:세자라면 누구를 말합니까? 徐:조선 인조대왕의 큰아들 이조(소현세자),둘째아들 이호(봉림대군,효종)입니다.병자호란 때 치욕적인 패배를 한 조선의 두 왕자를 인질로 데려왔거든요.노예로 매매당할 가혹한 운명에 놓여진 조선인들이 왕자들의 처소 울타리 밖에서 살려 달라고 호소했지요.두 왕자는 노예로 팔려가는 조선인들의 절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무 도움도 못주는 자신들의 처지를 아파하면서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오늘날 중국 조선족 역사에는 이같은 노예 역사의 슬픔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그렇다면 조선인의 중국 이민사를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으로 여기는 견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徐:18세기 후반 이전에 중국으로 온 조선인들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화해 버렸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부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문:귀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徐:앞에서 잠시 말씀드렸듯이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느라 만주족이 급격하게 감소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인구를 증가시키고,군인이 될 인원을 보충하며,노예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런 나머지 만주인 호적에 편입될 사람을 모집하는 정책을 발표하며,편입자 숫자대로 상을 주는 제도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조선인들에게 강압적으로 귀화를 시켰지요.그런 연후에 조선인들은 비참한 처지를 벗어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스스로 귀화하고 만주호적자 모집에 순응하는 자연적 귀화과정을 밟았지요. 헤이룽장조선민족이란 문헌에는 청나라 초기에 만주적에 가입한 조선인의 성씨가 42개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들의 선조는 대부분 천총(天聰) 연간인 1627∼1635년에 청나라로 온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문:그러니까 17세기 초·중엽에 이미 조선인들은 국적을 바꾸어 청나라 사람이 되고 만주 씨족에 올라 만주인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徐:설혹 그런 식으로 귀화를 하지 않고 버틴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이같은 통혼을 기초로 하여 혈연관계와 친척관계를 맺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민족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 조선족의 처지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북성 청룡현 박씨(朴氏) 조선족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이 박씨들의 조상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중국으로 왔는데 동성동본 불혼 제도를 대대로 이어받았다 합니다. 문:한족,몽골족,만주족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은 그 뒤로 조선족으로의 회복이 영영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徐:아닙니다.심리적으로는 자신들이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게 존속되어 왔습니다.그러다가 1982년부터 조선족으로 고쳐서 조상이 남겨 둔 민족성을 회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 말에서 20세기 일제 때 중국으로 와서 조선족으로 분류된 이들에게 조선은 아직도 그리운 고향입니다.참,마음이 아픕니다. 문:일제 때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올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 중에서도 해방 후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조선족이 된 사람도 있습니까? 徐:아주 많습니다.우리 민족을 갈라 놓은 것은 공산주의자들보다 먼저 일왕(日王)정권이었지요.한반도의 남과 북은 통일이 되면 그날로 하나가 되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다르겠지요.그러니 일제의 식민통치는 중국 조선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원한의 상처지요. 문: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인 카레이츠들의 삶을 둘러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특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지방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하바로프스크 같은 도시의 장마당이라 부르는 난전에서 조선족 장사꾼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국경의 세관에서 비자를 받고 러시아로 오는데,주로 옷장사를 하더군요.하지만 한달간씩 머물며 장사를 해도 체재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거나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 했습니다.그런 그들이 한결같이 꿈꾸는 것은 한국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만,요즘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처지가 참 어렵습니다. 러시아의 카레이츠들보다 중국의 조선족 운명이 더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둘 다 우리 민족이 안고 사는 슬픔의 뿌리인데…. 徐:한국이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잘 살게 되어야만 이 아픔의 역사가 통한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의 조선족,러시아의 카레이츠,일본의 조센징은 모두 350만명 정도라고 한다.이들의 삶을 생각하기 위하여 ‘동북아평화연대’등의 모임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조선족,고려인들은 사는 데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의 한 원인이 일본의 식민통치가 저지른 잘못이며,식민통치가 옳았다는 발언을 하는 일본의 정치지도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지식인들이 숭배되기도 한다.
  • 서울 교장등 496명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7일 487명의 교원과 9명의 교육전문직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인사에서는 교육장 임용에 지역교육청 학무국장이 초등에서 3명,중등에서5명 등 모두 9명이 임용됐다. (초등)◇교장 승진△상수 裵末連△상계 南宮永洙△신학 金德永△중현 李相鉉△이태원 崔泰植△아현 韓光洙△토성 李信枝△면북 金吉成△금천 李昌榮△묵동 朱長完△중동 林忠子△효제 洪淳吉△동구로 趙豊子△장충 李相根△전농 文在昌△고원 趙昌信△당산 金聲濟△망우 鄭哲均△이문 李承直△발산 權赫善△전동 金承植△은천 박재상△명일 金榮子△성산 崔圭鎬△신성 河泰北△고명 李相基△개봉 權龍雄△구암 任五培△염창 李鍾建△군자 金昌玉△녹천 李奎三△신흥 黃明淵△영일 李泰光△보광 閔信子△등양 許輝男△금호 沈春子△목원 陸王戊△옥정 南大鉉△방산 盧楨子△신사 金知姸△신목 金明熙△탑산 金承煥△대조 文明愛△연광 林鍾募△대동 金永錫△신대림 白桂淳△매동 金鎔湳△정릉 金光石△도신 明吉萬△홍은 趙升彙△용곡 南淸子◇교장 전보△자운 高日坤△신중 金永心△봉화 丘仲完△신자 尹常勳△우이 金學應△언북 安供鎬△봉현 胡福順△을지 洪泳模△성수 安長壽△무학 吳炯植△길동 白保億△은로 高英南△천일 李英世△방현 魚惠子△용암 李容馥△유현 孫寬明△광희 宋世煥△청구 徐永源△학동 金鎭燮△거여 金成植△재동 李在重△행림 姜仁成△원효 吳海植△등원 金鍾振△등서 全貴分△용산 崔龍植△영등포 邊炳權△공항 金君子△신석 文榮九△미동 李璥喜◇초빙교장△내발산 崔萬術◇교육전문직에서 교장으로 전직△성내 許日道△대현 金完基△일원 洪秀子△양동 崔五福△가인 金東春△강신 李春惠△창림 金元奎△아주 李美璟△화계 申完燮△등현 許順萬△신현 李殷植◇교육부 교육연구관에서 교장으로 전직△마포 金政序△문성 李相浩△안암 李連玉◇교육전문직(관급)△남부교육청 교육장 吳信根△중부교육청 〃 丁彩東△강남교육청 〃 奇 淸△본청 교원정책과장 具本淳△강동교육청 학무국장 鄭炳洙△강서교육청 〃 吳必桃△성북교육청 〃 郭永和△교육연수원 부장 金東來 朴英順△학생교육원 부장 千奉基 洪順植△본청 초등교육과 장학관 沈恩錫 文重根△강남교육청 초등과장 劉憙鍾△성동교육청 〃 金泰瑞△성북교육청 〃 신입철◇교사·교감에서 교육전문직(사급)으로 전직△서울시교육청 朴來俊 姜慶華△교육과학연구원 金昌熙 吳美香△교육연수원 姜聲官△서부교육청 姜宗勳 李道甲△남부〃 文明根△북부〃 金正奎△중부〃 曺永範△강서〃 黃圭星 安明一△강남〃 陳炯哲 黃惠淑 洪鎭庸△동작〃 高玉順△성동〃 鄭仙夙△성북〃 許炳勳 崔道炫◇교육전문직(사급) 전보△서울시교육청 柳濟千 崔文煥 安相淑 金正赫△서부〃 朴永愛△북부〃 姜壽日△강남〃 張錫鎭△동작〃 韓哲洙△성동〃 兪英煥◇전출·입△교육부 전출 成耆玉 田秉植 金仁淑 金羅京△교육부 전입 李庸浩(서울시교육청)△서울교육대학 부설초등학교 전출 李仁鍾◇유치원△원장 명일 윤광청△장학사 전직 白正姬△장학사 전보 동부 鄭海男△장학사 전보 강동 金福順 (중등)◇교장 승진△구암중 金京子△방이중 金東雲△한천중 全國鉉△광희중 金春江△청운중 任東元△장위중 崔一煥△송파중 車正子△미성중 尹幸一△신연중 鄭寅寬△서울여중 李華馥△신양중 南昌烈△등원중 金準午△석관중梁明生△양화중 金玟植△삼선중 權寧春△양평중 李載榮△장안중 李正雄△상계중 姜宗植△수유중 安文榮△언남중 朴昭雄△청담중 李永華△가산중 權五作△옥정중 金量中△대영중 鄭炳福△사당중 洪星大△대치중 金榮愛△개봉중 柳錫祚△거원중 嚴榮周△번동중 羅晳基△신명중 李成子△목일중 宋秀男△경일중 周南秀△덕산중 李完紀△수송중 韓相彬△녹천중 金基旭△양천중 陳玉子△용곡중 李相賢△언북중 徐基源△상봉중 李炳日△개원중 朴文永△하계중 朴光助△언주중 鄭基世△관악중 金鍾奎△중원중 趙淸慈△금호여중 尹媛相△장원중 張光鎔△덕수중 李榮珠△홍은중 崔錫容△방학중 劉義植△동원중 金亨培◇교장 중임△서울여고 柳吉子△신림고 申蘭秀△노원고 梁熙△잠신고 吳秀良△관악고 任昶淳△경기상고 任仁弘△삼성고 金東星△창동고 成耆元△신현중 金仲基△중랑중 片光日△상신중 金承根△문성중 桂鳳喆△영서중 李萬珩△당산중 崔秀雄△온곡중 朴和植◇교육전문직(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윤중중 金弘燮△금천고 金丁中△여의도중 李柄好△을지중 李明九△광남중 李載洪△봉은중 姜解宣△언남고 梁東吉△광남고 이형재△경기고 李英萬△중암중 梁基晃◇교장 전보△청량고 趙義衍△명일여고 李台淑△동작고 宋寅浩△강서공고 趙南守△상계고 梁眞弘△석관고 林炳佑△신현고 金貞鎬△등촌고 高弼坤△도봉고 林在洙△자운고 黃華成△경일고 洪淳哲△용산공고 鄭雲茂△성수공고 陳虎男△송파공고 白德鉉△무학여중 洪性武◇교육전문직(관급) 승진△강동교육청 睦昌洙△강서〃 金義藏△성북〃 崔泰洙△중부〃 李秀換◇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성동교육청 黃南澤△중등교육과 金永鎰△서부교육청 金東日△북부〃 金將起△교육과학연구원 宋順子△동작교육청 朴東鎬◇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보·전직△교육연수원 金杰△학생교육원 崔五圭△동부교육청 金明奎△평생교육체육과 金福炫△교육정책총괄담당관 鄭鳳燮△강남교육청 李基成△동작〃 申逑泳△중등교육과 李順姬△교원정책과 朴淳晩△북부교육청 辛豪根△성북〃 鄭會台◇교사에서 교육전문직(사급) 전직△강동교육청 成桂淑 李銀淑 金範鏞 金和重△북부〃 鄭德采 林鍾龍 林震洙△성북〃 崔恩珍 李善庚△남부〃 崔鎭興 洪德杓△성동〃 申鉉銘 徐鍾一 朴光勳 李夏敎△동부〃 金昌東 金鍾學△서부〃 宋太永△교육연수원 李俊子 李敬任△학생교육원 李景蘭 李相培 崔廣洛△산업정보교육과 韓美哲△중등교육과 李亘淵△평생교육체육과 金英淑◇교육전문직(사급) 전보·전직△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金基順△교원정책과 林國澤 周英林 吳錫宗△산업정보교육과 閔復基△중등교육과 崔春玉 李英姬 朴仁圭△평생교육체육과 李珍影 元祺承△동부교육청 崔承愛△중부〃 尹敏子△강동〃 申愛顯△강서교육청 金正姬 金南訓△강남교육청 林榮宣 金慶子△동작교육청 李星淑 金泰彬△교육과학연구원 羅澄基 金鎭萬 嚴宗勳△교육연수원 尹汝福 李鎬屯△학생체육관 이동환˝
  • [28일 TV 하이라이트]

    ●행복주식회사(오후 5시10분) ‘만원의 행복’에 가수 H와 채연이 도전한다.각종 무대에서의 노래와 안무,식비는 물론 공식 스케줄을 제외한 교통비 등 모든 비용을 1만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과연 H와 채연은 무사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본다.‘십 만원의 행복’에는 탤런트 임호가 출연한다. ●인사이드 월드(오후 1시20분)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아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이들에게 생명공학은 희망의 빛이었다.그러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생명공학도 유전자 조작기술로 인체에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과연 유전공학 식품은 안전한지 알아본다. ●여론광장(오후 7시20분) 중학생들이 만든 ‘왕따 동영상’으로 교장이 자살을 하는 등 큰 파장이 일고 있다.청소년의 폭력과 범죄가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큰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학교 문제가 이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갈수록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모색해본다. ●뮤직($)조이(오후 6시) 영국 왕실의 권위와 전통성의 상징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성대한 축제 ‘퀸즈 콘서트’.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그룹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워터스,허스키보이스의 싱어송 라이터 브라이언 애덤스,라틴팝의 황제 리키 마틴 등이 화려한 무대를 꾸민다. ●애정만세(오후 8시45분) 민주와 동식은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서두르며 기쁨에 넘치지만 난영과 평희는 혼수문제로 부딪친다.자존심이 상한 평희는 알아서 하겠다고 큰소리 친다.한편 봉희는 철식이 밥이나 같이 먹자는 말에 찾아가지만 철식이 일을 하러 가는 바람에 헌 책만 잔뜩 사서 돌아온다. ●진주목걸이(오후 7시50분) 바다에 뛰어든 인숙은 같이 죽자는 난주를 구하려다 정신을 놓아버리고,기남이 달려와 두 사람을 끌어낸다.정신을 차린 인숙은 기남,난주와 함께 서울로 올라오고,기남은 난주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난주는 기다리던 가족들과 눈물겨운 상봉을 하지만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사랑의 리퀘스트(오후 7시10분) 박영임씨는 폭력을 일삼던 남편과 헤어지고 붕어빵 장사로 생계를 이어간다.태어난 지 3개월만에 1급 장애 판정을 받은 막내 효준이.지속적인 수술과 재활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아이들이 있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간다는 박씨에게 가수 디바가 사랑을 전한다.˝
  • “北청소년 영양실조로 성장 정지”

    |로스앤젤레스 연합|만성적인 영양실조가 북한 주민 한 세대의 발육을 정지시켜,왜소하게 만들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2일 중국 옌지(延吉)발로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칼럼 원’ 르포에서 북한 경제력이 남한과 엇비슷한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40대 이상 성인들은 사실상 키 차이가 없지만 가장 키가 클 때에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200만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알려진 1990년대 중반 기근을 경험한 20세 이하에서는 가장 심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한 청소년과 20㎝ 이상 차이 국내 인류학자들이 옌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북한 출신 10대 소년들의 키가 대부분 150㎝를 밑돌고 체중도 45㎏ 안쪽에 불과,같은 연령의 미국 학생들보다 약간 작은 남한 내 17세 소년 평균신장 170.7㎝와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체육시간에 철봉등 키크기 운동 LA 타임스는 체육시간에 교사로부터 철봉대에 매달리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 사진을 함께 싣고 ‘북한 학생들이 키 크기를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의 왜소한 체구 해결을 위해 그같은 기술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명복이라는 16살 소년을 예로 들면서 신문은 그가 북한 인민군에 들어갈 만한 나이지만 외모로 보면 미국 6학년 정도의 키에 불과한 약 139㎝밖에 안된다고 말하고 먼저 중국으로 탈출한 엄마와 여동생(14)과 합류하기 위해 지난 여름 탈북했으나 가족 상봉 당시 키가 너무 작아 동생조차도 4년 동안 헤어져 있던 오빠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WFP와 유니세프는 지난해 만성적 영양실조가 북한 어린이 42%를 발육 정지 상태에 이르게 했다고 경고했으며 다른 유엔 기구들도 성장 정지가 지능 손상을 동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 정부 “23일 장성급회담 갖자”

    정부는 12일 남북 장성급 회담을 오는 23일 판문점에서 갖자고 북측에 공식 제의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장성급회담을 갖자고 오전 10시에 북측에 제안했지만 일정 및 어느급일지는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남북 장성급회담은 지난 13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으로 5∼6월 꽃게철에 앞서 서해상 우발적인 무력충돌 방지대책 등을 주로 논의할 예정이다.이와 관련,정부는 이날 오전 군사실무회담 문성묵(육군 대령) 수석대표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북측에 보내 소장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장성급 회담을 23일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와 관련,북측은 12일 장재언 적십자회 중앙위원장 명의로 이윤구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보낸 전화통지문을 통해 “3월29일부터 4월3일까지 금강산에서 갖자.”고 수정 제의해왔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약수터 절반 '무늬만 약수’

    서울시내 약수터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시사철 안심하고 마실 수 없는 ‘무늬만 약수’인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약수터 8곳은 수질이 심하게 오염돼 폐쇄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시내 약수터 329곳을 대상으로 지난 한해동안 6차례 실시한 수질 검사결과를 10일 발표했다. 수질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검사결과에 따르면 수질이 양호해 1등급 판정을 받은 약수터는 전체의 45.6%인 150곳에 불과했다.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아차산(광진구 구의동) ▲송학(강동구 암사동) ▲고덕지하수(강동구 고덕동) ▲보현정사(중랑구 상봉1동) ▲삿갓봉(노원구 중계동) ▲무악재(종로구 무악동) ▲구룡천1·2(강남구 개포동) 등이 1등급 약수터에 포함됐다. 또 ‘가끔 오염되므로 이용시 주의를 요하는’ 2등급은 133곳(40.4%),‘수질 오염이 높아 이용에 매우 주의를 요하는’ 3등급은 75곳(22.8%),‘수질 오염이 매우 높아 이용이 불가능해 폐쇄 예정인’ 등급외(4등급)는 21곳(6.4%)으로 조사됐다. 특히 지난해 6차례 조사에서 4차례 이상 부적합 판정을 받은 ▲장수샘(광진구 구의동) ▲석천(중랑구 망우1동) ▲바가지(도봉구 방학동) ▲석정천(서대문구 홍은2동) ▲육모정(서대문구 홍은2동) ▲국사봉(관악구 봉천1동) ▲은곡(강남구 세곡동) ▲범바위(중구 예장동) 등 8곳의 약수터는 폐쇄 조치된다. 부적합 판정 요인으로는 일반세균과 총대장균군·분원성대장균군·여시니아균과 같은 미생물이 91.7%로 대부분을 차지했다.페놀·농약류와 같은 ‘건강상 유해영향 유기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김명희 연구원장은 “약수터 등급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2002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수질이 나아지고 있다.”면서 “약수터 수질은 강수량이나 이용인구,주위 환경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배설물 관리 등 오염원을 차단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열린세상] 사교육이 평준화 때문이라니/김상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평준화가 폐지되고 일류 고등학교가 부활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쉬워지겠는가?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에서는 종종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난다.다만 같은 일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두 번째 일어날 때에는 희극으로 끝난다.그가 옳았다.이미 4년 전에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는 그 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출신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그에 따르면 관리직이나 전문직 부모의 자녀들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은 49.8%였다.당시 전체 경제활동 남성 가운데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중은 고작 9.1%였으니,10%도 안 되는 부유층의 자녀들이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을 차지한 셈이다.이에 반해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들 가운데 생산직 종사자는 38.6%인데,서울대 신입생 가운데 이들 자녀의 비율은 고작 9.3%였다.그뿐인가? 신입생 가운데 서울 출신이 무려 45.2%나 되는데,그 중 절반이 강남 8학군 출신이었다. 그 조사는 서울대가 어느덧 가난한 수재들의 배움터가 아니라 이 나라 상류계급의 자제들을 위한 귀족학교로 바뀌어 버렸다는 비극적 진실을 깨우쳐 주었다.서울대는 이 나라 상류계급의 자녀들에게 막대한 국가예산을 들여 미래의 상류계급으로 길러내는 기관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극적 통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에서 비슷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그것은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사회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성분을 조사한 것인데 하나의 단과 대학을 대상으로 30여 년에 걸쳐 조사한 것이 다를 뿐 결과는 이전의 연구와 마찬가지이다.결론은 서울대 입학하고 싶거든 부잣집에서 태어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말처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비극이 희극이 되어버린다.고소득 전문직 자녀들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다른 그룹에 비해 최고 16배나 높으며 이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두고 연구 당사자를 비롯해 언론에서 난데없이 학교 평준화에다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런데,사람의 지능지수가 얼마나 낮으면 고등학교가 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교육이 창궐하고 부잣집 아이들만 서울대 들어간다는 추리를 할 수 있게 되는가? 아니 그래서,평준화가 폐지되고 일류 고등학교가 부활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쉬워지겠는가? 부잣집 아이들이 사교육을 통해 서울대 들어가듯이,다시 사교육으로 무장한 부잣집 아이들이 일류 고등학교에 훨씬 더 많이 들어갈 것이 뻔한 일이다.그렇게 되면 다시 그들이 아우성칠 것이다.중학교 평준화 때문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일류 고등학교에 부잣집 아이들만 들어온다고.그러니 중학교 평준화도 폐지해야 한다고.그렇게 되어 일류 중학교에 부잣집 아이들만 우글거리면,그들은 다시 초등학교가 평준화되어 있어서 사교육이 창궐하여 부잣집 아이들이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니,초등학교도 입시를 도입해야 한다고 악을 쓸 것이다.이런 논리라면 일류 초등학교를 만든 다음에는 유치원의 평준화까지 폐지해야 사교육이 잠잠해질 것이다.희극이다. 서울대에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고교 평준화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 학벌이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압도적으로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이 장·차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모두가 서울대 가겠다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가.이런 사회에서 사교육이 창궐하고 부잣집 아이들이 입시경쟁에서 앞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그 당연한 일에 애써 눈감고 사교육의 원인을 다른 것에 뒤집어 씌우려다 보니 희극적 궤변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나라를 염려한다면 대학들을 독일처럼 평준화시킬 일이다.서울대 학부는 없애고,수능시험은 5만명이나 10만명씩 만점 받게 해서 변별력을 없애버리고,본고사 못 보게 하고,각종 고시는 지역 인구에 따라 할당하고,입사 원서에 출신학교를 기재할 수 없게 한다면,그 때에도 자식을 특정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목숨 걸겠는가?˝
  • “남북 군사회담 조속 개최”

    ‘막연한 기대,엄연한 실망…’ 2004년 첫 남북회담인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는 군장성급회담 개최를 합의하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신뢰구축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하지만 6자회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등 엄존하는 북미갈등과 남북관계의 한계를 다시금 노출시켰다.특히 회담 시작일인 지난 3일 북측 조선중앙통신이 ‘2차 6자회담 개최’를 전격 발표하는 등 전례없는 호조건으로 부푼 기대감 속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더욱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 양측은 회담 마지막날인 6일 밤샘 조율 끝에 군장성급회담의 조속한 개최 합의를 비롯해 ▲결실있는 2차 6자회담이 되도록 협력 ▲3월 말 금강산에서 9차 이산가족 상봉 ▲5월4일 평양에서 14차 남북장관급회담 개최 ▲개성공단 100만평 개발,올해 상반기 1만평 시범단지 개발 적극 협력 등 6개항에 걸친 공동보도문을 타결지었다.늦어도 4월쯤 열릴 전망인 군장성급회담은 매년 5∼6월 꽃게잡이철이면 거듭됐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우선적으로 협의한다. 남북은 이밖에도 공동보도문에 담지 않은 ▲8월 아테네올림픽 남북 공동입장 ▲북측이 요청한 봄철 파종기 비료 20만t 지원에 대해서도 협의 이후 통보 등에 합의했고,북을 오가는 남측 인사들에 대한 신변안전보장을 골자로 하는 통행합의서 서명도 교환했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고구려사 문제 공동대응을 비롯해 ▲‘사회문화협력분과회의’ 구성 ▲영문국호(COREA) 유엔 공동제기 ▲해운합의서 발효·상대방 비방 방송 중지 등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겼다. 또한 문제는 ‘결실있는 6자회담’ 표현은 남측은 ‘북측의 적극적인 핵폐기 방침천명’인 반면,북측은 ‘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동결 대 보상 입장’으로 각각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현실에서 ‘보여주기식’에 그쳤다는 지적이다.한 남북관계 연구자는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당연히 중요하지만,시기별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사설]주목되는 군사회담 개최 합의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6일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고 폐막됐다.미진하지만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내다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진일보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특히 지난 2000년 9월 국방장관회담 이후 지지부진하던 군사당국자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군사당국자회담은 철도·도로연결 등 교류·협력사업에 따른 실무협의를 맡는 기존 대령급 회담과 달리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을 쌓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특히 남북은 장성급이 참여할 군사회담을 통해 단기적으로 꽃게조업으로 인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제3국의 불법 어로를 차단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수 있다.이를 위해 오는 5월 꽃게잡이 철이 본격 시작되기 전 첫 회담이 열려야 한다.합의사항의 제때 이행이 절실히 요구된다. 쟁점인 북핵과 관련,“2차 6자회담이 결실있는 회담이 되도록 협력한다.”는 합의 문구가 남북회담의 유용성을 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수준의 수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절충한 결과라고 여겨진다.제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오는 3월 갖기로 이견없이 합의한 것은 다행이다.면회소 건설에 따른 상봉 정례화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 생사확인 사업이 차후 과제로 넘겨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북한의 요청에 따라 봄철 비료 20만t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인도적 차원의 적절한 결정이었다.가뜩이나 지난해 핵문제 여파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38%나 줄어드는 등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하다는 전언이니 시비 철에 맞춰 제때 보내주기 바란다.˝
  • 3월 이산상봉 의견 접근

    남북 양측은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 사흘째인 5일 밤 늦게까지 실무접촉을 갖고 ▲아테네올림픽 남북공동입장 ▲14차 장관급회담 5월 중 평양 개최 ▲9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3월 중순 개최 등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상당한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양측은 이날 수석대표 회의와 세 차례의 실무접촉과 전체회의를 잇따라 갖고 ▲남북 군사 신뢰구축을 위한 군장성급회담 개최 ▲영문국호(COREA) 변경 연내 유엔 제기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견을 조율했다. 하지만 수석대표 회의에서 양측 대표들이 2차 6자회담을 놓고 ‘팽팽한 설전’을 벌이는 등 초반 난항을 겪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中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응 모색

    제2차 6자회담 개최를 위한 미·중·일·러 등 주변 국가들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세현 통일부 장관과 김영성 내각책임참사를 각각 수석대표로 하는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3∼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다.특히 이번 남북장관급회담은 2004년 들어 처음 열리는 만큼 올해 남북 교류의 전체 위상과 방향,속도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역시 북핵 문제를 축으로 한 6자회담 개최다.하지만 정부는 이 문제에만 매달리지는 않겠다는 복안이다.정부 관계자는 2일 “남북회담의 본래 취지가 있는 만큼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달하는 한편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수준 정도로만 핵문제를 거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고구려사 문제 남북공동대응 ▲개성공단건설,철도·도로연결 등 3대 남북경협 사업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의 조속한 개최 ▲인도적 지원 문제 및 이산가족 상봉을 통한 상호군사적 신뢰구축 등 실질적 남북관계 진전에 더욱 중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북측 대표단은이번 회담을 앞두고 대표 2명을 교체한 바 있다.이는 지난해 원칙적으로 합의한 ‘사회문화교류협력분과위’의 구성 및 운용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남측 대표단 역시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사회문화교류의 일환으로 남북 학술단체간 교류가 주선되고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남북한 공동 대응의 기틀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대화의지 부족 및 대북압박 공세를 들며 남북 민족공동대응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베이징을 거쳐 3일 오후 2시40분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북측 대표단은 김 내각책임참사와 최영건 건설건재공업성 부상,신병철 내각 참사,김춘근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서기장,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으로 구성됐다.남측 대표단은 정 통일부 장관과 김광림 재정경제부 차관,오지철 문화관광부 차관,신언상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서영교 통일부 국장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모국 자긍심 찾는 기회로 만들터”해외입양한인 ‘8월 서울모임’ 주도하는 김영진 씨

    지구촌 해외입양 한국인들이 오는 8월 서울에 모인다. 해외 입양인들의 국내 혈연 찾아주기 사업을 돕고 있는 김영진(사진·49) 서울 강동구 상일동장은 해외입양 반세기를 맞아 오는 8월4일부터 8일까지 닷새동안 서울 중구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호텔에서 ‘게더링(Gathering) 2004’대회를 갖는다고 2일 밝혔다.김씨는 국내에 들어와 사는 해외 입양자들의 모임인 해외입양 한국인연대(GOAL)의 산파역을 해낸 인물이다. 김씨와 이들의 인연은 1998년 맺어졌다.한 해외 입양인으로부터 국내 어딘가에 있을 핏줄을 찾는다는 사연을 접하고서다.당시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아 반상회보에 이같은 소식을 실으면서 지금까지 고정란을 두기에 이르렀다. “공보 업무를 맡으면서 전국 수백만부에 이를 반상회보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더군요.” 딱히 입양인 문제를 맡을 부서가 없던 터여서 김씨는 그 뒤 구의회 전문위원실 등 부서를 옮겨 다니면서도 이 일을 놓지 않았다. “8월 입양인 게더링대회 주제는 ‘다 함께’입니다.모두 2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해외 입양인들이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정체성을 되새기는 데엔 매우 뜻깊은 행사죠.” 게더링대회는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2001년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렸으며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GOAL은 98년 3월 창립된 단체로 내국인 자원봉사사와 국내에 정착한 해외 입양인 등 12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 중이다. “행사에는 GOAL은 물론 외교통상부 산하 재외동포재단,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 관련 사회단체들이 참가,입양인들의 친부모 등 가족들을 찾아주는 이벤트도 마련돼 극적인 상봉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김씨는 “100여명에 이를 대회 참가 입양인들에 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대규모의 홍보전단 제작 등을 위해 지원이 절실하다.”며 입양인들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호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돌봐줘 고맙습니다”자살노인 자원봉사자에 유산

    복지시설에서 혼자 생활하던 노인이 자신을 돌봐준 자원봉사자의 자녀들 앞으로 1500만원을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졌다. 1일 오전 7시30분쯤 강원도 속초시 모 아파트 309동 15층 복도에서 이 아파트 104호에 거주하던 임모(78)씨가 아파트 앞 화단으로 투신한 것을 주민 이모(44)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1945년 월남한 임씨는 북한에 두고온 4명의 동생들을 그리워하고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자원봉사자 두 명의 아들과 딸이 건강하게 자랄 것을 비는 내용의 유서를 비롯해 ○○군에게 1000만원,○○양에게 500만원이라고 적힌 봉투와 함께 수표 1500만원이 발견됐다. 그동안 임씨를 관리해온 속초시에 따르면 임씨는 오래전 남쪽의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살아온 것으로 보이며 속초시에 지난 2000년에 이주,이때부터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이 아파트에서 생활해 왔으며 이산가족 상봉신청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이 돈은 이산가족 기금’이었다는 임씨가 남긴 유서 내용으로 미뤄볼 때 북한의 동생들을 만나러 가려고 돈을 모았던 임씨가 자신을 돌봐준 자원봉사자의 자식들 앞으로 돈을 남기고 세상을 뜬 것 같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기자 bell21@
  • 정물화에 바치는 송가/30일부터 ‘정물예찬’展

    일상의 사물을 재현하는 정물화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회화 형식 가운데 하나다.정물화는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성행했다.루벤스,브뤼겔,렘브란트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정물화는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가장 일반적인 회화의 제재가 되기도 했다.그러나 오늘날 정물화는 그 소박한 소재가 지닌 한계 때문인지 당시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30일부터 3월 14일까지 열리는 ‘정물예찬’전은 20세기 예술사조의 한 특징적인 장르로 기록되는 정물화에 바치는 송가다. 전시는 정물을 다루는 관점에 따라 세 부문으로 나뉘어 꾸며진 것이 특징.사물의 재현이라는 정물화의 기본 성격에 충실한 작업들은 ‘정물화적 정물’로,대중적인 요소가 강한 작업들은 ‘팝아트적 정물’로 묶었다.또 개념주의적 요소가 강한 작업들은 ‘개념주의적 정물’이란 범주에 넣었다.설원기·정보영·김지원·김지혜·김수강·김혜련·노정연·문형민·박재웅·황주리·강요배 등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본전시 외에 특별전으로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동아일보사 소장품 가운데 1960∼1980년대 정물화 60여점도 전시된다.이상범·박수근·도상봉·이마동·손응성·문학진 등의 작품이 나온다.(02)2020-2065. 김종면기자 jmkim@
  • 뉴스플러스/새달 3일 남북장관급회담

    남북고위인사 회담인 제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다음달 3∼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다.정부는 이 회담에서 북한의 제2차 6자회담 참여와 북핵 포기를 촉구하는 한편 ▲개성공단 건설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 관광사업 등 3대 경협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진전을 논의할 방침이다.또 9차 이산가족 상봉 일정과 함께 경수로 건설현장의 자재 장비 반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 유통업계 美 쇠고기 대량폐기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유통업계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대상은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한 제품 600t(40억원어치)을 16일 경기도 용인의 양지물류센터에서 전량 폐기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달 29일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사용한 쇠고기 감치미·돈부리·보크 라이스 등을 모두 회수했다.수도권에서 모은 제품은 소각처리하고,지방에서 회수한 제품은 매립할 계획이다.다음주부터 호주산 쇠고기를 원료로 한 새로운 제품을 생산,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J는 미국산 쇠고기를 원료로 한 다시다를 계속 생산,판매 중이다.CJ측은 내장이나 사골이 아니라 살코기만을 사용,정부 시책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롯데마트는 16일부터 호주산 쇠고기인 ‘프리모’를 수입,판매한다.전국 32개 매장에서 올 한해 동안 약 1000t을 팔 계획이다.롯데마트측은 프리모가 곡물을 먹고 방목된 청정육이라고 설명했다.롯데마트는 앞서 매장에서 판매 중이던 미국산 쇠고기 1억원어치를 폐기했다. 이마트는 경기도 광주 식품가공센터에서 검역을 통과한 미국산 쇠고기 10t(6억원어치)을 냉동보관 중이라고 밝혔다.냉동육은 유통기한이 1년 이상으로,정부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최종결정이 내려지면 폐기 또는 판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상봉,양재,양평 등 3개의 지점을 운영 중인 미국계 할인점 코스트코 홀세일은 광우병과 상관없는 주에서 생산된 것이라며 미국산 쇠고기를 계속 판매 중이다. 윤창수기자 geo@
  • “남한 젊은이 미성년자 구분 어려워…”탈북 미녀삼총사 운영 ‘대동강호프집’ 한달간 영업정지

    “판사님이 어려운 법률용어로 말씀하시는데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어요.분명한 것은 한달 동안 문을 닫아야 한다는 거예요.” 탈북 미녀삼총사가 운영해 화제가 된 대동강호프집(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주순영(38) 사장은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행정법원을 나서면서 “제발 호프집 문만큼은 닫지 말아야 하는데…”라며 여러번 흐느꼈다. 주씨는 지난해 7월 동료 탈북여성 강예정(38)·양나리(35)씨와 함께 남들처럼 열심히 돈을 벌어보자며 어렵게 호프집을 열었고,입소문과 매스컴 등의 관심으로 제법 장사가 되는가 싶더니 4개월만에 관할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3개월의 철퇴를 맞았다. “지난해 11월7일인가 젊은 남녀 7명이 왔는데 미성년자인지 아닌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갔습니다.남한 젊은이들은 조숙하고 세련되어 나이를 종잡을 수가 없거든요.” 당시 어떤 손님이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것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며 가게를 나간 뒤 일을 당했다는 주씨는 이날 판사 앞에서 “대한민국에 온지 몇 달 안돼 미성년자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고 여러번 선처를 호소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앞서 지난달 31일 주씨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노원구청 한 관계자의 도움으로 서울 행정법원에 관할 노원구청을 상대로 영업정지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이날 영업정지 한달과 벌금 100만원이라는 법원의 조정 권고안을 이끌어낸 것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주씨는 “가게를 열면서 빌린 돈의 이자도 갚아야 하고,장차 북에 두고 온 가족들과 상봉도 해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하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주씨는 한때 북한의 인기배우로 백두산창작단에서 제작한 영화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에서 김일성 주석의 부인인 김정숙 역할을 맡기도 했다. 김문기자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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