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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원 최태영 박사 타계

    최고령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법학자이자 한국상고사학자인 최태영(崔泰永) 박사가 지난달 30일 향년 105세를 일기로 타계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학술원 관계자는 4일 “주변에 알리지 말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유언을 받들어 가족들만 참석해 장례식과 발인을 했다.”고 전했다.1900년 3월28일 황해도 장련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근대 법학사에서 뛰어난 발자취를 남겼으며 한국상고사 연구에도 매진함으로써 ‘재야사학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나와 1958년 중앙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25년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교수로 취임, 한국인 최초로 법학 정교수가 됐다. 이후 부산대, 서울법대, 중앙대, 경희대, 청주대, 숙명여대 등에서 50여년간 상법과 헌법, 민법, 국제법, 행정법, 법제사 등을 강의했다. 광복 전후로는 법전 편찬위원, 고시전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헌법을 제외한 대한민국 법과 고시령을 제정했으며, 고시과목에 국사를 포함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상법 관련 국내 최초의 저작인 ‘현행 어음수표법’(1953)을 비롯,‘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동서양 법사상의 유사점과 차이점’,‘한국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중국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펴내면서 법학을 고리로 동서양 법사상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은퇴 이후에는 한국 고대사 연구 작업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많은 업적을 쌓았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에 관한 삼국유사 기록에 보이는 ‘환인(桓因)’이란 말은 ‘환국(桓國)’이란 말이 변조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일본 고대 율령집인 연희식(延喜式·엔키시키) 분석을 통해 일본 왕실에서 숭배한 신들 중에 한국신이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런 고대사 연구성과는 ‘한국 상고사 입문’(1989)를 시작으로 ‘한국 상고사’(1990),‘인간 단군을 찾아서’(2000),‘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2002) 등의 저서로 정리됐다.‘한국 가무사’,‘장보고 연구’ 등은 미발표작으로 남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원철(77·의사), 딸 정철(70). 사위 서권익(70·변호사)씨가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삼성車채권단 7일 4兆대 소송

    삼성車채권단 7일 4兆대 소송

    무려 5년을 끌어온 삼성자동차 부실처리 문제가 사상 최대 민사소송 사건으로 비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차에 자금을 대준 채권단이 12월7일을 전후해 삼성그룹을 상대로 4조 7500억원에 이르는 부채상환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고액의 소송에 걸맞게 일류 변호사들이 포진한 국내 최고 법무법인들이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더하고 있다. ●사상최대 민사소송 30일 금융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보증보험과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 14개 금융기관 채권단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31개 삼성 계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상환 요구액은 삼성차의 원금 2조 4500억원과 2001년 1월부터 약 5년동안 연 19%의 금리를 적용한 연체이자 2조 3000억원 등 모두 4조 7500억원이나 된다. 이는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에 벌어들인 순이익(3조 1928억원)보다도 훨씬 많은 규모다. 채권단이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이유는 삼성으로부터 대출금 상환조로 받은 채권(삼성생명 비상장주식 350만주)의 상법상 채권소멸시한(5년)이 올 12월31일이기 때문이다. 대출금을 받기 위해선 소송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채권단은 밝히고 있다. 금융계에선 만약 이번 소송에서 채권단이 승소할 경우 삼성은 경영손실 책임을 묻는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의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차는 1995년 3월 법인이 설립됐으나 과잉투자에 따른 경영부실이 자동차산업 일원화 정책과 맞물려 외환위기 직후 매각이 추진됐다. 지난 99년 6월 대우전자와의 ‘빅딜’이 무산되자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금융권으로부터 2조 4500억원을 수혈받았다. 이때 이 회장은 대출금 상환조로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주당 70만원으로 산정해 무상증여 형식으로 채권단에 넘겼다. 당시 주식 가치는 삼성생명이 상장되는 것을 전제로 해 인정받았다. 요즘 삼성생명의 장외거래 가격은 35만원선이다. 이 회장은 나중에 주식 매각액이 2조 4500억원에 모자라면 50만주를 더 내놓기로 했다. 아울러 이 회장과 삼성전자 등 31개 계열사는 2000년 12월31일까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연체이자를 물겠다는 약정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상장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채권단은 원금과 이자를 받지 못한 채 5년을 보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차의 부채와 관련해 (이 회장이)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재(삼성생명 주식)를 출연했다.”면서 “채권단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작성된 약정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밝혔던 입장과 같다. ●채권단 승소땐 집단소송 가능성 채권단과 삼성측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만큼 소송을 대행할 법무법인들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변호사 보유수에서 국내 3위인 ‘태평양(117명)’과 5위 ‘화우(91명)’의 연합팀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삼성측은 유명 로펌에 맡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태평양은 판·검사 출신을 중심으로 지난해보다 두배 많은 15명의 변호사를 새로 충원했다. 수임료는 소송액이 10억원 이상이면 1∼2%를 받는 게 관례다.1%만 해도 475억원이나 된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양측이 연체이자 탕감 등을 통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채권단을 이끄는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은 “소송은 채권소멸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서로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한국·남베트남 역사가 주는 교훈

    ‘제3세계’. 참 낯설다면 낯선 단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나든다는 우리에게 제3세계란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지구상 저 어디쯤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사실 한국은 식민시대·압축성장·민주화 투쟁을 걸어온 전형적인 제3세계 국가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의 현대사를 평가하기 위한 비교연구대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구 선진국보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제3세계 국가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남한과 남베트남을 비교분석한 연구서가 나왔다. 한성대 전쟁과평화연구소 윤충로 연구원이 ‘베트남과 한국의 반공독재국가형성사’(선인 펴냄)를 냈다.“베트남의 역사는 세계에서 한국 역사와 가장 비슷합니다. 식민지경험과 광복, 분단과 경찰독재국가의 성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거의 똑같습니다.”그런데 제대로 된 연구가 없다. 그가 남한과 남베트남 비교연구에 베트남 현지생활 1년을 포함해 7년여의 시간을 들인 이유다. 비교사회학자로서 윤 연구원의 관심은 두가지다.1945년 이후 왜 이승만·응오딘지엠 정권으로 상징되는 반공독재국가가 남한과 남베트남에 들어섰는가. 그리고 왜 남한은 성공하고 남베트남은 실패했는가.●일제식 강압적 통치기구가 남한의 기반 윤 연구원은 ▲지방통제능력 ▲이데올로기적인 것 ▲사회경제적 측면 등 3가지 원인을 꼽았다. 일제는 억압정책의 효율성을 위해 한국의 중앙집권화를 꾀했고 이는 미군정과 반공우익 정부에 그대로 계승됐다는 것. 반면 베트남은 마을 단위의 자치권이 강하다 보니 장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베트남에 미국은 프랑스에 이은 제국주의세력이었지만 한국에 미국은 맥아더 동상철거 논란에서 보듯 해방군의 성격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남베트남이 외친 반공은 민족주의 바람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전쟁 때문에 ‘반공’이 절대 가치로 떠올랐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국가 입장에서 보자면 시민사회 제압을 통한 국가 안정에 도움이 됐다는 결론이 나옵니다.”이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 바로 각종 ‘폭동’과 ‘양민학살’ 사건들이다.●역사를 결과론적으로 보지 말라 이런 설명은 얼마 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일치한다. 강 교수 주장의 배경으로 꼽혔던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사관과 역사추상형 접근법에 대해 물었다.“역사추상법이 그 사건에서 지나치게 확대됐습니다. 역사에서 어떤 단면을 잘라두고 ‘만약’이라고 가정해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서구에서도 ‘가설적 가정법’이라는 방법을 씁니다.”수정주의 비판도 반박했다.“외려 수정주의를 너무 일찍 버린 것이 문제라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개입과 그 효과입니다.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차원에서 수정주의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하는 ‘건국과 부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역사를 보지 말자는 것.“지금 와서 보니 옳은 것이니 그것은 처음부터 정당했고 당시의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방식은 외려 다른 방향을 모색했던 ‘또 하나의 역사’를 외면하고 평가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참전군인들 목소리 생생히 남길 터 윤 연구원은 앞으로 베트남전을 더 파고 들 예정이다.“베트남전에는 8년여에 걸쳐 30여만명의 한국인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작게는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크게는 남한이 본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이 본 남한을 그려볼 생각입니다.”연구방향이 이렇게 정해지다보니 아무래도 앞으로의 연구는 문헌연구보다 구술연구쪽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연구원은 한국내 작업을 마무리짓는 대로 다시 베트남으로 떠날 예정이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손주찬 前연세대 법대학장

    손주찬(孫珠瓚) 전 연세대 법대 학장이 20일 오전 1시5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2세.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고인은 상법의 권위자로 상법(상·하)과 상법개론 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종순(81)씨와 종택(57·제이티무역 대표), 종규(55·인천창고 대표), 종경(48·경북대 사범대 교수)씨 등 3남 1녀. 발인은 23일 오전 6시.(02)3010-2295.
  • 박물관, 평생교육기관 구실해야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에서 새롭게 문을 연 뒤 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박물관이 본연의 역할을 통해 관람객의 수준을 높이려면 그동안 미흡했던 박물관 교육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은 9일 박물관 강의실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2005 학부모 강좌’를 연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를 강사로 초청,‘박물관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비롯,‘세계 박물관·미술관의 명화감상법 이해’,‘현장 문화재 감상방법’ 등 다양한 주제의 강의가 이뤄진다. 박물관 관계자는 “자녀·학부모 대상 교육뿐 아니라 교사, 단체관람객 등을 위한 다양한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도서역사박물관의 평생교육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중국·일본·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체코 등 박물관 전문가들을 초청, 아시아 및 유럽 박물관의 평생교육 노하우 및 활성화 방안을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박물관이 평생 교육시설로 인정받아 연령별·단계별·분야별 평생교육 체제를 구축,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구실을 해야 한다.”면서 “문화유산 답사, 박물관 투어, 찾아가는 박물관 등 프로그램도 활성화되고 국제이해 교육을 위한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우림 역사박물관장은 “박물관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수집, 관리, 보존, 연구, 전시하는 평생교육기관으로 적극 활용돼야 한다.”면서 “박물관에 대한 기존 인식이 변하려면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경희대 문화예술연구소 백령 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박물관 교육 지침서인 ‘멀티미디어 시대의 박물관 교육’(도서출판 예경)에서 “주말 가족·청소년 프로그램 및 교과서·교사 연계 프로그램 등을 강화해 관람객의 호응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佛 “필요지역 통금”

    |파리 함혜리특파원|무슬림 청소년들의 소요사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8일 오전(현지시간) 각료회의에서 각 지역 도지사들에게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승인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요사태를 막기 위해 국가비상법에 따라 야간 통금령을 승인했다.”며 “9일자 관보에 게재돼 이날부터 공식적으로 실시된다.”고 밝혔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통행금지 위반자에게는 2개월 징역형이 내려질 것이며, 소요가 진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통금령 공식 발효에 앞서 소요사태의 진원지인 클리시수부아 인근의 랭시 시장은 7일 밤부터 야간통행금지령을 발효한다고 발표, 소요 발생 이래 첫 통금 실시지역이 됐다. 정부의 통행금지령 예고에도 불구하고 소요사태가 12일째 지속되며 7일 밤새 차량 1173대와 건물 10여채가 불탔고 330명이 체포됐다. lotus@seoul.co.kr
  • 국내단체 “조속 보상” 촉구

    |도쿄 이춘규특파원·고흥 남기창 기자|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의 한센인에게 보상할 방침이라는 소식에 6일 당사자는 물론 국내 관련 단체에서는 이를 환영하는 한편 조속한 보상을 촉구했다. 앞서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5일 일본 정부가 한국과 타이완의 한센인에게 보상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자국 한센인을 보상한 한센병 보상법에 근거해 한국과 타이완 한센인도 포괄 구제한다는 계획이다. 대상자는 4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에 한센인 687명(남자 377명)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는 6일 모처럼 활기에 넘쳤다.‘소록도를 사랑하는 모임(소사모)’의 김덕모(43·호남대교수) 집행위원장은 “이번에 소송을 낸 소록도 주민은 117명이지만 앞으로 추가보상을 받기 위한 소송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보상 방침을 크게 반겼다.taein@seoul.co.kr
  • [7·9급 공무원시험 완전정복] 행정법

    [7·9급 공무원시험 완전정복] 행정법

    ●국가배상법 제2조의 ‘직무행위’ (1)직무행위의 범위 국가배상법 제2조에서 말하는 직무행위의 범위와 관련하여 (1)권력작용만이 직무행위에 해당된다는 설(협의설) (2)권력작용과 관리작용만 직무행위에 해당된다는 설(광의설) (3)권력작용과 관리작용뿐만 아니라 사경제작용까지 해당된다는 설(최광의설)이 있다. 광의설이 통설이다. 판례는 과거에 최광의설을 취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판례의 주류적 태도는 광의설이다. 판례는 국가배상법을 사법으로 보면서도 사경제적 작용은 국가배상법 제2조의 직무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 (2) 직무행위의 내용 위의 직무행위의 범위에 포함되는 (1)입법작용·사법작용·행정작용 (2)법적행위(행정행위 등)·사실행위(권력적 사실행위·비권력적 사실행위) (3)작위·부작위는 모두 직무행위에 해당된다. (3)직무관련성―‘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국가배상법 제2조의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란 (1)직무행위 자체는 물론 (2)객관적으로 직무의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행위 및 (3)직무와 관련있는 행위(직무행위에 부수하여 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직무를 집행함에 당하여’ 행한 행위인지 즉, 직무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외관·외형에 의해 판단된다(*외형설(외관설):통설ㆍ판례). 즉 당해 행위가 행위자의 정당한 권한 내의 것인지 또는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직무집행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직무행위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면 직무행위에 해당하게 된다. 또한 피해자가 직무집행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직무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대법원은 퇴근 중의 사고, 공무출장 후 귀대 중의 사고, 소년원 내에서의 사형(私刑), 상관의 명에 의한 이삿짐운반,‘교통할아버지’로 선정된 노인이 위탁받은 업무 범위를 넘어 교차로 중앙에서 교통정리를 한 것 등에 대해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문제 다음은 국가배상법 제2조의 직무행위에 관한 서술이다. 타당하지 않은 것은? (1)직무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외관·외형에 의해 판단된다. (2)공무원이 직무집행의 의사를 가지고 있어야만이 그 직무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 (3)판례는 ‘교통할아버지’로 선정된 노인이 위탁받은 업무범위를 넘어 교차로 중앙에서 교통정리를 한 것에 대해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4)판례는 퇴근 중의 사고(개인차량을 운전하여 출장을 갔다가 퇴근시간이 되어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중 발생한 교통사고)를 직무집행과 관련있는 행위로 보았다. ●해설 및 정답 국가배상법 제2조의 직무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외관·외형에 의해 판단된다(통설·판례). 따라서 당해 행위가 행위자의 정당한 권한 내의 것인지 또는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직무집행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직무행위의 외관을 갖추고 있으면 직무행위에 해당하게 된다. 즉 공무원이 직무집행의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직무행위의 외관을 가지고 있으면 그 직무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 정답은 (2) 김욱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매출5000억이상 기업 4년마다 세무조사

    국세청은 경기침체 등 경제 여건을 감안해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을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매출액 5000억원 이상 법인에 대한 조사 주기는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세무조사를 받는 법인 비율은 낮아지지만, 규모가 큰 법인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강화되는 셈이다. 이병대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은 26일 “올해 법인 세무조사 대상자 선정 규모는 전체 법인사업자의 1.2%로 지난해의 1.3%보다 낮은 수준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달까지 조사 대상자를 선정한 뒤 실제로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법인 세무조사를 하게 된다. 법인 31만 2000개의 1.2%인 약 3800개가 내년에 세무조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에는 전체 법인수 30만 1000개의 1.3%인 약 3960곳을 세무조사 대상법인으로 선정, 올해 세무조사를 했다. 이 국장은 “불경기와 국세청의 조사인력 등을 감안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뜻에서 세무조사를 받는 법인비율을 낮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세무조사 주기가 4년으로 단축되는 매출액 5000억원 이상의 대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SKT, 포스코 등 약 350개다. 이와 관련, 이 국장은 “대기업의 경우 세무조사 주기를 내년부터 4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4년 이상 세무조사를 받지 않은 장기 미조사법인들이 많아 4년 만에 세무조사를 받을 법인은 내년에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세청이 전체 법인 세무조사 비율을 낮추기로 한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은 데 따라 중소법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경기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대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강화해 전체적으로 세수부족을 해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선택과 집중 전략인 셈이다.곽태헌기자 tiger@seoul.co.kr
  • 한센인 ‘보상 소송’ 과정

    한국의 소록도, 타이완 낙생원에 강제수용됐던 한센인에 대한 보상소송은 같은 일본 변호인단에 의해 추진됐다. 이들 변호인은 일본 국내 한센인 격리수용에 대한 특별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격리수용이라는 잘못된 일본 정부의 입법에 대해 사법부가 오류를 지적, 국가에 보상책임을 물리도록 한 것이 특별보상법이다. 한센인 관련 소송과 일본의 보상특별법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일본 작가인 다키오 에이지이다. 한센인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본 변호인단에 한센인 격리수용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 소송을 촉구했다. 결국 2001년 5월 구마모토 지방재판소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격리하도록 한 일본의 ‘나병예방법’에 대해 의학적 근거가 없는 인권침해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판결 뒤 변호인단과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항소포기를 요구하며, 총리관저를 둘러싸는 ‘인간띠 잇기’ 시위를 펼쳤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특별법 제정 약속을 받아냈고, 한달 뒤 의원입법으로 특별법이 제정됐다. 에이지는 일본 정부의 보상을 소록도와 낙생원에도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변호인단은 한국 변호인단과 합동으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지만, 정확하게 1년 뒤 한국 소록도 한센인들은 패소판결을 받았다. 패소판결과 함께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 선고가 난 뒤 이들은 일본 후생노동성을 ‘인간띠 잇기´로 둘러싸며 타이완 낙생원 판결에 대한 항소포기, 판결근거가 된 특별법 고시조항 개정을 요구했다.27일 한국 변호인단은 종로에서 패소판결에 대한 항의집회를 가진 뒤, 일본 대사관을 방문해 항의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日정부 ‘고시개정·항소’ 기로

    日정부 ‘고시개정·항소’ 기로

    |도쿄 이춘규특파원|25일 일본 도쿄지방법원이 소록도 한센인의 보상청구를 기각하고, 타이완측 한센인들의 청구는 받아들이자 한국과 일본측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 계획을 밝혔다. 변호인단은 동시에 타이완 한센인들이 보상권을 획득한 점을 들어 소록도 한센인도 후생노동성의 ‘고시’를 고쳐 동시에 보상받을 수 있도록 고시 개정을 촉구하기로 했다. ●한국정부 ‘강건너 불구경´ 이 과정에서 그동안 ‘외교력 부재’라는 지적을 받아온 한국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변수다. 이를 위해 원고와 변호인단, 일본·한국·타이완 인권 및 시민단체 회원 수백명이 도쿄시내 후생노동성 청사 앞에서 28일까지 ‘항소 포기’와 ‘고시 개정’ 촉구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아울러 정치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이날부터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물론 공산·사민당 등 야당측과 간담회를 갖고 소록도 한센인들도 법개정 없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고시가 개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70∼90대의 고령인 점을 감안,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항소심을 진행시켜 승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항소심이 1년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고측 한국 변호인인 박영립 변호사는 “법원의 양식을 믿고 항소해 반드시 승소하겠다.”면서도 “후생성 고시에 소록도 한센인들의 강제격리시설도 보상대상에 포함시키면 즉각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고시 개정 촉구 운동을 병행할 뜻을 밝혔다. ●변호인단 “항소땐 승소 확률 높다” 타이완 한센인들이 승소했기 때문에 같은 외국인인 소록도 한센인들도 항소하면 승리 확률이 높아 후생성이 타이완 한센인 판결에 항소를 포기하면서 고시를 개정, 소록도 한센인도 동시에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고측 일본인 변호인단도 “앞으로 후생성이 ‘고시’만 바꾸면 소록도 한센인 문제는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며 “이제 바통은 후생성 쪽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타이완 낙생원 재판장의 경우, 법무성 인권옹호국장 출신으로 과거 한센병 관련 소송에 밝았던 인사여서 타이완측 한센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왔을 수 있다고 원고측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日정부 낙생원 판결 항소할까 따라서 일본 정부가 고시 개정 요구를 묵살하고, 낙생원 재판에 항소해 법논리를 중시하는 2심 재판부를 만날 경우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측은 그동안 “한센병보상법은 2차대전후 국내에서의 격리정책의 구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전후에 주권이 미치지 않게 된 외국시설 수용자는 보상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taein@seoul.co.kr
  • 日, 한센병환자 한국인 ‘기각’ 타이완인 ‘보상’

    日, 한센병환자 한국인 ‘기각’ 타이완인 ‘보상’

    |도쿄 이춘규특파원|일제식민지 시절 요양시설에 강제 수용됐던 한국 한센인(속칭 나병환자)과 타이완 한센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같은 법원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다. 일본 도쿄지방법원 민사3부는 25일 소록도갱생원에 강제 수용됐던 한국 한센인 117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같은 법원 민사 38부는 타이완 현지 수용시설인 낙생원(樂生院)에 수용됐던 타이완 한센인 25명이 제기한 같은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한국측 원고 변호인 박영립 변호사와 일본측 변호인단은 “일본 후생노동성이 타이완 한센인에 대한 항소를 포기하고, 민사38부의 판결취지를 살려 후생성 고시에 소록도 한센인도 보상범위에 포함시키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낮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타이완 한센인만 보상하고, 소록도의 한센인만을 배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후생성 고시에 소록도 한센인도 포함시키도록 호소함과 동시에 추이를 지켜보며 상급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사3부는 판결에서 “요양시설 수용자가 받은 편견과 차별 원인의 일단이 전쟁전 일본의 격리정책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원고측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그러나 “법 심의과정 등에서 외지(외국)에 있는 요양소 수용자도 보상대상이라는 인식은 없었다.”고 소극적으로 해석,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30분 뒤 이 법원 민사38부는 “한센병 보상법은 요양시설 수용자를 폭넓게 구제하기 위해 특별히 입법한 것으로 대상시설을 제한하려는 취지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적극 해석, 원고측 청구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당시 일본의 통치권이 미친 지역의 시설에서 다른 요건은 충족되는데 타이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자를 보상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구마모토 지방법원이 나병예방법(1996년 폐지)에 따른 강제격리규정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그해 제정된 한센병 보상법에 의거, 수용기간 등에 따라 1인당 800만∼1400만엔을 보상해 줬다. 한국인 소록도 한센인은 이 판결후 일본 후생노동성에 보상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한국과 일본 변호사들이 연대해 불지급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한편 후생노동성은 이날 판결에 대해 “소록도 갱생원에 대해서는 해외의 요양소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국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나 타이완 관련 판결은 국가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판결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taein@seoul.co.kr
  • “54년 北사단장 생포·귀순시켜”

    ‘북파공작원의 대부’로 알려진 김동석(82) 예비역 육군 대령이 6·25전쟁 당시의 첩보활동을 기록한 회고록 ‘This man 전쟁영웅 김동석’을 발간해 군은 물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씨는 23일 “‘북파공작원은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간다.’는 불문율이 있으나 영화 ‘실미도’로 북파공작원 실상이 공개됐고 보상법률이 제정돼 회고록을 발간하게 됐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오는 2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중견 가수인 딸 진미령(본명 김미령)씨와 김성은 전 국방부장관 및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모인 가운데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김동석은 누구인가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첩보부대(HID)와 동해안 지역을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며 숨가쁜 첩보전쟁을 진두지휘한 ‘전쟁영웅’이지만 첩보부대의 특성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미국 정부는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 50주년을 앞둔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년여 동안 한국전쟁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씨를 맥아더·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백선엽 육군 대장 등과 함께 ‘한국전쟁 4대 영웅’으로 선정할 만큼 그의 활약상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 주둔 미 제2보병사단은 2002년 5월7일 경기도 의정부시 소재 캠프 ‘레드 클라우드’내 전쟁박물관에 ‘김동석 영웅실’을 마련하고 ‘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했다. 1923년 8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 기슭에서 태어난 김씨는 일본의 압제 하에서 중국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를 거쳐 중국 국민당 애국의용대 부대장과 백범 김구 선생 경호원 등을 지냈다. 귀국해서는 육군사관학교(8기)를 졸업했고 육군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발발 초기 중대장으로 재임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박성철이 지휘한 북한군 15사단을 전멸시킨 뒤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세계에 입문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서 결정적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를 올렸다.특히 서울에 최초로 진주한 북한군 105전차사단 1대대장 김영 소좌가 포로로 잡히자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여 평양 입성의 결정적 정보를 캐내기도 했다. 이후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할 때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었다.5·16 쿠데타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61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삼척·강릉·속초·목포·수원시장 등을 거쳐 함경북도지사 등 행정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월 2~3회 침투 공작” 김씨가 회고록을 통해 밝힌 내용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전 직후인 1954년 2월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납치한 부분이다. 그는 회고록에서 “휴전 직후인 1954년 2월8일 적진에 잠입한 육군첩보부대 제36지구대 공작대원들이 강원도 통천 부근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매복 중 생포해 귀순하게 했다.”며 생존자인 H·J·K씨의 실명을 소개했다. 북파공작과 관련해서는 “제36지구대는 휴전 전까지 원산 남방 고성에 제1지대, 원산만 능도와 여도에 제2지대, 명천 앞 양도에 제3지대를 배치해 기상 조건에 따라 월 2∼3회 침투공작을 했다.”면서 “휴전 후에는 강원도 모 해변으로 철수해 공작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고 털어놨다.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도 관심거리다.그는 “박정희와 정일권이 일본군으로 만주에 근무하다 무장해제당한 다음 귀국을 서두르다 (1945년 10월) 일본 육사 교육을 받은 ‘친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소련군에 체포됐다.”면서 “이송 도중 화물기차에서 뛰어내려 인근 산 속으로 도주한 두 사람을 조선애국의용대 대장으로서 안전하게 국경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도록 도와줬다.”고 회고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세양선박 M&A ‘진흙탕 싸움’

    세양선박을 둘러싼 임병석 쎄븐마운틴 회장과 최평규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 회장간의 인수합병(M&A) 공방전이 갈수록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인신 공격이 난무하는 데다 법정 싸움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쎄븐마운틴측은 임 회장이 최 회장과 동급으로 다뤄지는 것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최 회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 회장은 경영인이라기보다 ‘M&A꾼’에 가깝다는 것이 쎄븐마운틴측 판단이다. 과거 ㈜STX에 대해 M&A를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차익을 실현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적대적 M&A설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전문가라면 임 회장은 부실기업 지분을 인수해 회사를 키우는 견실한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대주주인 S&T중공업(지분 18.14%)측은 이같은 비난에 대해 ‘법적 행보’로 맞서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9일 임 회장이 자신을 폄하하는 등 명예훼손 행위를 했다며 임 회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또 세양선박 이사회의 유상증자 및 해외 전환사채(CB) 발행 결정을 무력화시켜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최 회장측 관계자는 “상법상 유상 증자와 CB 발행은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특정한 필요에 의해서만 하도록 돼있다.”면서 “세양선박 이사회의 증자 및 CB 발행 결정은 누가 봐도 M&A 방어용이므로 상법상 정한 요건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 회장측은 특히 촉박한 시간으로 인해 만약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유상증자로 발행된 신주와 CB를 취소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임 회장측은 사과하지 않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최 회장측은 ‘법대로’를 외치고 있어 양측의 감정 싸움이 향후 어떤 식으로 결론을 맺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시론] 독일 ‘대연정’ 감상법/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시론] 독일 ‘대연정’ 감상법/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에서 39년만에 보수 연합의 기민·기사당과 중도 좌파의 사민당간에 대연정이 이루어졌다. 전체 의석의 70%를 차지하는 초거대 여당이 등장했고,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도 탄생했다. 슈뢰더 총리 집권 7년동안 독일 경제는 참담했다.47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발생했고, 성장률은 전임 콜 총리 집권기(1983∼1998년)의 연평균 2.4%의 절반에 불과했다. 과연 대연정은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독일의 ‘잃어버린 7년’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세력이 비슷한 거대 정당이 합쳐진 독일의 좌·우 대연정에 대한 평가는 유동적이다.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정책 실행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과 정책 추진의 역동성과 추진성이 떨어지고 의회내 견제 세력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상존한다. 독일의 대연정 실험은 향후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관련해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분하게 감상해 볼 만하다. 첫째, 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한 영국의 대처리즘과 같은 강력하고 과감한 개혁 조치가 이루어질지 여부이다. 대연정의 핵심 당사자들은 기민당과 사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약 50%이상이 서로 겹치고 개혁의 목표도 같으며 이를 구현하는 수단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낙관적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하지만 기민당이 제시하는 부가 가치세 인상, 노동시간 연장, 임금교섭의 자율화 등 친기업적 정책에 대해 사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 여성 총리가 어떤 리더십으로 이러한 경제 정책 갈등을 극복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둘째,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평등 문제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지도 관심사이다. 독일의 ‘68년 학생 혁명세대’는 유럽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친환경 정책, 소비자 보호정책, 동성애자 등 사회 소수자 권익 보호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정치 세력이었다. 대연정으로 슈뢰더 정권에서 요직을 맡았던 ‘68세대’ 출신 진보 각료들의 퇴진이 불가피해졌다. 장기 침체로 고전중인 독일의 경제 회생 목표가 과거 사민당-녹색당 연정으로 이룩한 사회적 평등 정책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이다. 셋째, 외교 정책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흥미롭다. 사민당은 터키의 유럽 연합 가입을 강력히 지지하는 반면, 기민·기사당 연합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또한, 슈뢰더 전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한 반면, 메르켈 총리는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형성을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기민당이 총리직을 맡았지만,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사민당이 차지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친미와 반미로 대변될 외교 정책의 갈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해 볼 만하다. 넷째, 대연정이 얼마나 유지될지도 관심을 끈다. 현재 기민당과 사민당의 핵심 지지계층은 과거에 비해 견고하지 못하다. 전통적인 지지계층이 무너지면서 두 정당 간에 레드 오션의 격렬한 상호 경쟁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이 점이 확고한 지지계층을 기반으로 1966년에 구축되었던 대연정 때와는 달리 정치적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더욱이, 다섯개 정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독일의 다당체제하에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새로운 형태의 연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독일의 대연정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열린 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은 한 토론회에서 “연정은 물 건너 갔다.”고 연정 폐기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가 ‘상생과 협력’의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독일의 대연정 실험은 분명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줄 수 있다.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열린 마음으로 이러한 교훈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 [공기업 취업 성공기] 압박면접 당황… 최선다한 답변에 합격

    [공기업 취업 성공기] 압박면접 당황… 최선다한 답변에 합격

    국민체육진흥공단의 1차 전형은 어학(토익) 성적이다. 어학은 정말 꾸준히 학습하면서 자신을 최대한 외국어 환경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에 한국 드라마보다는 미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토익시험이 가까워오면 하루에 10∼20개씩 모의문제를 풀어가며 감을 익혔다. 또 대학생활 동안 유럽과 아시아 등 10여 개국을 배낭 여행했고, 그때 사귄 외국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에 내공이 쌓였다. 이런 덕분에 1차 관문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2차 전형은 상식과 전공시험이다. 상식은 약간 위험한 시도였지만 시중에 나온 상식책 중 지루함을 없애는 데 역점을 두고 베스트셀러보다는 부담되지 않는 분량에 깔끔한 스타일의 책을 선택했다. 여기에 신문과 인터넷에서 최신 상식 부분을 보충했다. 전공시험은 법학과목을 선택했다. 마음 같아서는 법학 전 과목을 완벽하게 섭렵하고 싶었지만 몇 번의 심사숙고 끝에 헌법, 민법, 형법, 상법, 행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국제법이나 지적재산권법 등은 학부시절 시험공부했던 기억이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기대(?)와 함께 과감히 포기했다. 사시 준비를 했었음에도 7개의 법을 정리하는 데 3주 정도가 걸렸고,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쟁점사항 및 중요한 판례, 그리고 지엽적이지만 출제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챙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운이 따랐는지 명확히 암기해 둔 친고죄를 비롯,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관료들의 임기, 연임제한 여부, 법인 설립주의 등의 세부적 사항들이 출제됐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소법전을 가지고 다니면서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시 조금씩 외워가면서 되도록이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려고 했다. 3차 면접은 실무진 면접과 임원 면접으로 이뤄졌다. 그중 임원면접이 제일 까다로웠는데 우리 조 지원자들은 영시를 외우거나 물권의 독자성에 대해 한국과 독일 학설을 비교하라는 주문을 받고 무척 당황했었다. 나는 한 임원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면서 동일한 어구만 되풀이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입사지원서 접수 이래 공단에 들어오기 위해 투자한 한달여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아서 한없이 무거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미소를 머금고 최선을 다해 답변을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당시 압박면접의 취지가 위기상황 대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함이며 그것이 최종 합격여부에 상당한 작용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 [학부·학과 올 가이드] (4) 법대

    [학부·학과 올 가이드] (4) 법대

    현대 국가는 법치주의 국가다. 각종 이해관계와 갈등이 얽히고 설킨 현대 사회에서 법이 없다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법학은 이처럼 법이 지배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판·검사 등 법조인을 꿈꾸는 수험생들에게 이 법학을 배울 법대 진학은 필수였다. 하지만 세계화·정보화·다원화로 상징되는 사회환경의 변화 속에서 법대에 가지 않고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되는 등 법학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법학 전공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이 알아야 할 법대 지원전략, 로스쿨 내용 등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법은 공법과 사법으로 나눌 수 있다. 공법은 국가간의 관계, 국가와 공공단치간의 관계 또는 국가나 자치단체와 개인간의 관계 등 국가적, 통치적, 공익적인 관계를 규정하는 법률을 뜻한다. 헌법, 행정법, 형법, 형사소송법, 국제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사법은 말 그대로 개인과 개인사이의 권리·의무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상법, 민법, 민사소송법 등이 이런 예다. 법학은 대개 법과대학이라는 단과대학에서 가르친다. 한때 사법학과, 공법학과 등으로 나뉜 곳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법학부로 신입생을 대부분 모집한다. ●논리적 사고 능력이 중요 법조인이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사법개혁위원회는 지난해말 사법개혁을 위한 최종 건의문에서 21세 법조인의 기본요건을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풍부한 교양,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 및 자유ㆍ민주ㆍ평등ㆍ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보다 전문적ㆍ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개방되어 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조인을 꿈꾸는 수험생들이라면 우선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주어진 상황을 분석, 정리하는 능력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학이나 정치학·행정학 등 관련 사회과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 중요하다. 또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말이나 글로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도 요구된다. 이같은 능력 이외에 소신 또한 중요하다. 헌법에 담긴 3권 분립 정신을 자칫 출세지향주의에 빠져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고시에 유리…법무사도 인기 법학을 전공하면 다른 학부생보다 사법시험을 보는 데 유리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판·검사나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물론 행정·입법·외무고시 등의 각종 다른 국가고시를 통해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도 있다. 일반 기업체나 공사, 은행, 보험 등 금융 분야의 법무팀에서도 일할 수 있다. 학교에 남아 대학교수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국·공립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도 일할 수 있다. 연구원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이 있다. 법무사 시험을 통해 법무사로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법무사는 종전의 사법서사로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의 법률 생활에 편익을 도모하고 사법제도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법률전문가다. 사건 당사자가 법원과 검찰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고 대신 제출도 해준다. ●로스쿨,2008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 수험생들이 알아둬야 할 것은 현재 법학교육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이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2008학년도부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law school)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로스쿨 도입은 급변하는 법률환경과 무관치 않다. 세계화 및 시장개방 확대로 국제법률 전문가의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국제거래 및 특허, 금융 통상분야 분쟁이 잦아지면서 이들 분야의 법률 전문가 수요가 적지않다. 하지만 현행 법학 교육체계로는 이같이 급변하는 법률시장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 중학교 2학년생들은 현행 법학부뿐만 아니라 로스쿨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로스쿨은 3년제 6학기로 운영될 예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 법제처에서 심사 중인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따르면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전공과 관계없이 4년제 대학만 졸업하면 된다. 다양한 분야의 분쟁과 사회변화의 흐름을 뒤쫓아갈 수 있는 전문 법률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로스쿨이 설립되는 대학은 법학과나 법학부를 폐지해야 한다. 정부는 로스쿨 신입생 선발 때, 법학시험 자체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 특히 법학 이외의 분야 전공자와 다른 대학 출신자를 각각 3분의 1 이상씩 선발하도록 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법조계에 진출하도록 한 로스쿨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학사과정에서의 성적, 적성시험 성적, 어학능력, 사회활동 및 봉사활동 경력 등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지나친 경쟁방지를 위해 응시횟수는 제한된다. 적성검사는 미국 로스쿨 입학시험(LSAT)과 유사하게 암기한 지식의 양을 따지는 게 아니라 법학 수학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법조인으로서 일 할 자질이 있는지와 논리력과 지능 등을 측정한다는 것이다. ●사법시험은 2015년까지 유지 현행 사법시험은 로스쿨 졸업생이 처음 배출된 이후에도 5년간 병행 실시돼 2015년까지 명맥이 유지된다. 그동안 사시 준비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않기 위해서다.2016년부터는 시험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2016년부터 모든 법조인은 로스쿨을 통해서 배출된다. 하지만 로스쿨을 졸업한다고 해서 모두가 변호사 자격증을 받는 건 아니다. 이 자격증을 받으려면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사법개혁위원회는 로스쿨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했다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최근의 지원 경향과 특징 법대를 지원하려는 수험생들의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사법고시를 목표로 하는 경우와 사법고시보다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경우다. 사법고시를 노리는 경우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 학생들이 진학을 희망하는 법대의 경우 상위권 대학에서도 최상위권의 실력을 갖춰야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상위권 대학을 제외한 대학에 개설된 법대에는 사법고시보다는 취업을 염두에 두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다. 이 경우 법대는 인문 계열에서 중위권 정도의 인기가 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지원을 가장 희망하는 대학은 서울대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등 네 곳이다. 이른바 법대 가운데 ‘빅4’(Big 4)로 불리는 곳이다. 이 대학들은 역대 사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수험생들의 지원이 많다. 그만큼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경향도 강하다. 때문에 각 대학 내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최상위권 학과에 올라 있다. 최근의 두드러진 특징은 연대 법대의 약진이다. 지난해부터 법대를 별도의 모집 단위로 학생들을 선발하면서 지원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크게 올랐다. 빅4의 전형은 비슷하다. 고대와 한양대는 수능의 언어·수리·외국어·사회탐구 등 4개 영역을 각 25%씩 반영한다. 단 서울대는 4개 영역 각 24.3%에 제2외국어/한문 영역이 2.8% 반영된다. 성대는 언·수·외를 각 30%, 사탐은 10%만 반영한다. 연세대를 포함해 5곳 모두 논술고사를 치르지만 서울대의 반영비율이 조금 높은 편이다. 서울대는 단계별 전형, 그 외 4개 대학은 수능과 논술 등을 일괄합산해 반영한다. 면접은 서울대만 실시한다. 이 대학들을 제외하면 법대는 각 대학 내에서 중상위권 학과로 통한다. 경희대와 건국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들도 수능은 언·수·외·사탐 등 4개 영역을 반영한다. 그러나 중앙대, 단국대, 세종대, 숭실대, 인하대, 광운대 등은 언·외·사탐 등 3개 영역만 반영한다. 논술은 중상위권 대학 중심으로 3% 이내에서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대에 지원할 때 주의점 하나. 빅4를 포함해 상위권 대학들을 제외하면 중·하위권 대학의 법대는 매년 합격생들의 점수 등락 폭이 크기 때문에 신중히 지원해야 한다. 소신지원보다 경쟁률에 따른 눈치지원이 많다 보니 해마다 합격선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 도움말 종로학원 평가연구실 남윤곤 팀장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하창우 대한변협 공보이사 조언 “사법고시에 합격한다고 옛날처럼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49) 공보이사는 “지금은 끊임없이 실력 개발에 투자하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수험생들에게 조언했다. ▶전문법률회사인 ‘로펌’(law firm)에 대한 관심이 많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더라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해야 로펌에 들어갈 수 있다.10위권 이내의 로펌에 들어가려면 연수원 성적 상위 10% 안에는 들어야 한다. 판·검사로 임용되는 실력 이상의 실력을 요구한다. ▶로펌의 매력은. -전문 분야별로 고도의 훈련을 받을 수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로펌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판·검사와는 달리 지방근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유명 로펌에 들어가면 그 자체만으로 변호사로서 이름을 떨치기 때문에 상위권 연수생들이 로펌을 많이 선호한다.10위권 이내 로펌을 모두 합쳐 매년 50명 정도 뽑는다. ▶앞으로는 변호사도 판사를 할 수 있다는데.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법조일원화제도 때문이다. 처음에 판사로 임용되지 않더라도 변호사로 5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수행 사건의 성적, 공익활동 등을 바탕으로 판사로 임용하는 제도다. 올해 20명을 임용했으며, 매년 늘려 법관 정원의 절반까지 변호사로 충당할 계획이다. 때문에 연수원을 졸업할 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도 변호사를 하면서 실력이 드러나면 판사로 임용될 수 있다. ▶법률시장의 전망이 밝은 분야는. -특허와 의료분쟁, 엔터테인먼트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허는 현재 변리사가 맡고 있지만 변호사들도 개척할 만한 분야다. 엔터테인먼트는 영화와 DVD·CD 등 저작권, 연예인 관련 소송 분야다. ▶이른바 ‘국제변호사’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도 있다. -‘국제변호사’라는 말은 없다. 단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미 포화 상태다. 현재 국내의 미국 변호사만 해도 취업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앞으로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더 어려울 것이다.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 딸 바에는 차라리 국내 로펌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3년 정도 근무하면 유학을 보내준다. ▶고3생에게 조언이 있다면. -앞으로 실력이 없으면 법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관존사상도 퇴조하고 있어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법조일원화제가 확대되면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개척한다면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공기업 관리체계 ‘일원화’

    공기업들의 부실·방만경영을 막기 위해 내년부터 관리체계가 일원화된다. 3일 국무조정실과 감사원 등에 따르면 정부는 공기업에 대한 근본적 혁신을 위해 공기업 관리체계 일원화, 지배구조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공기업관리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현재 기획예산처 산하에 구성된 ‘공기업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법 제정작업을 추진, 연내에 관련법을 제정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공기업관리기본법이 제정되면 모든 공기업이 이 법의 적용을 받게 돼 공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현재 경영혁신 대상 공기업 및 산하기관은 모두 213개다. 정부 투자기관 14개, 산하기관 88개, 출연기관 47개, 자율선정 기관 64개 등이다. 정부가 공기업관리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게 된 것은 공기업의 소유구조와 성격이 유사한 데도 관련 법률이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민영화법, 상법 등 4개로 분산돼 있어 공기업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감사원은 관련법의 분산으로 부실·방만 경영이 생긴다고 판단하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7월 말 ‘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실태’에 관한 감사결과를 통해 ▲이사회 부실운영 ▲인건비 과다인상 ▲내부감사시스템 허술 ▲수의계약 통한 자회사 부당지원 ▲조직·인사관리체계 허술 등의 문제점을 밝혀내고 공기업 관리체계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공기업관리기본법 제정과는 별도로 공기업들의 인건비 과다인상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예산편성지침을 개선하고 공기업 경영평가시 인건비 부분에 대한 평가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공기업의 부실·방만경영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관련 법률이 분산돼 있어 관리·감독체계가 허술한 데 그 원인이 있다.”면서 “공기업관리기본법을 차질없이 제정, 공기업의 부실·방만경영을 근절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공공택지지구내 무허주택 거주자 세입자 보상 검토

    공공택지개발지구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무허가 주택 세입자와 자영업자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건설교통부는 “판교 신도시 등 택지개발 예정지역마다 무허가 주택이나 건물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보상문제가 불거지고 있어 건물 자체의 허가 여부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보상을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중”이라고 28일 말했다. 무허가 건축물 세입자는 주거이전비 없이 이사비만 지원을 받았으며 자영업자의 영업손실은 전혀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많은 민원을 야기해 왔다. 건교부 관계자는 “그러나 무허가 주택 거주 및 무허가 건물에서의 영업이 불법행위인 만큼 보상 대상은 장기간 평온하게 거주했거나 영업을 해온 사람에 한해 엄격히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교부는 부처내 논의를 거쳐 방향이 정해지면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한 뒤 토지보상법 시행규칙 개정여부를 연내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건교부는 주거이전비 지급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에 따라 이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키로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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