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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일 訪中 北대표단 50여명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규모 북한 대표단이 오는 6월 3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31일 정부당국자에 따르면 북한 대표단은 최태복(崔泰福) 당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의장,홍성남(洪成南) 내각 총리,백남순(白南淳) 외무상,김일철(金鎰喆) 인민무력상(차수),강정모(姜正模) 무역상,임태덕(林泰德)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등 당·정·군 고위인사와 취재진 등 50명 이상의 대규모로 구성된다. 북한 대표단은 6월 3∼7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주룽지(朱鎔基) 국무원 총리 등과 만나 92년 한·중수교 이후 다소 소원해진 북·중관계 복원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 北김영남 새달3일 訪中

    베이징 연합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자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金永南)이 오는 6월 3일부터 약 1주일간 중국을 공식방문한다고 베이징(北京) 외교소식통들이 24일 밝혔다.김영남은 3일부터 2박3일간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겸 공산당 총서기,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주룽지(朱鎔基) 총리,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 등과 만나 양국간 현안과 한반도정세 등을 논의한다. 지난 91년 11월 김일성(金日成) 이후 7년 7개월만에 중국을 방문하는 최고위급지도자인 김영남은 베이징에 이어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 등지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이번 중국방문에는 백남순 외상,부장급 군(軍) 고위인사,농업상,공업상 등이 대거 수행,군사 및 경제협력강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북중수교 50주년(10월6일)을 앞두고 이뤄지는 김영남의 중국방문을 통해 양국간 현안이 원만히 해결될 경우,김정일의 방중과 장주석의 북한 방문문제도긍정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고 소식통들은 말했다.
  • 포커스 투데이-마카오 초대 행정장관 에드먼드 호

    중국으로의 주권 귀속이후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이끌 초대 행정장관에 에드먼드 호(何厚 ·44)씨가 15일 선출됐다. 442년간의 포르투갈 통치를 마감하고 12월20일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다시태어나는 마카오는 이로써 귀속준비를 마무리했다. 호 후보는 이날 ‘199인 선거위원회’ 투표에서 163표로 34표의 마카오은행 감사 스탠리 아우(區宗傑·58)씨를 누르고 당선됐다. 호 씨는 마카오 명문가 출신으로 가업인 타이펑(大豊)은행의 행장을 맡고있다.중국의 각종 ‘감투’를 역임하는 등 중국정부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있는 대표적인 친중 인사다. 중국 국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인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을 연임중이며 정치협상회의(政協)위원,마카오특구 주비위 부주임 등도 엮임했다. 마카오 입법회(의회) 부의장을 11년째,마카오 은행협회장도 14년째 연임중이다. 캐나다 요크대를 나와 회계사로 일했고 자동차,시멘트,항공,해운 업계의 사장과 회장을 두루 거쳤다. 부친은 중·일전쟁중 마카오의 전설적인 항일유격의 영웅인 호 인(何賢). 중국정부는 호 당선자의 가업인 타이펑(大豊)은행이 80년대 초 경영위기에몰렸을때 자금지원으로 위기를 넘기도록 도와주는 등 호 집안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마카오는 중국의 ‘1국가 2체제’(一國兩制)및 ‘고도의 자치’ 원칙에 따라 중국 귀속이후 홍콩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다. 이석우기자 swlee@
  • 중국인들 “제주가 좋아요”

    중국인은 제주도가 좋은 모양이다.중국의 내로라는 당·정 실력자들의 제주방문이 연례행사처럼 잇따르고 있다. 11일 제주도에 따르면 리루이환(李瑞環)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오는 13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한다.이주석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성읍민속마을과 제동목장 등을 돌아볼 예정이다. 중국 실력자들의 제주방문은 지난 93년 9월 리란칭(李嵐淸) 부총리가 첫 테이프를 끊으면서 시작됐다. 이어 94년 4월 우쉐첸(吳學謙) 부주석이,같은해 12월에는 리펑(李鵬) 전총리가 다녀갔고 95년 2월에는 천무화(陳慕華) 전국부녀연합회주석 겸 전인대상무위부위원장,4월에 덩샤오핑(鄧小平)의 딸인 덩난(鄧楠) 과학기술위원회부주임이과 차오스(喬石) 당시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장,11월에는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제주를 관광하고 돌아갔다. 96년 6월에는 우지촨(吳基傳) 우전부장,12월에는 리쿠이셴(李貴鮮) 국무위원(부총리급)이 각각 제주를 찾았으며 지난해 4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이 다녀가기도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한·중관계개선이후 중국의 실력자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제주를 관광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 때문인지제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매해 5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 中 대사관 오폭 이모저모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베이징 베오그라드 외신종합 ] 중국은 나토의 유고 주재 자국대사관 오폭 사건 이후 미국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조건으로 내세운 추가양보 리스트를 일축하는 등 WTO 가입협상에 강경 자세를 보였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10일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대사관 오폭과 관련,중국지도부는 강온 양파로 갈려있다고보도했다.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한 이 보도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 중국 지도부가 이번 사태 해결을 두고 강온 양파로 갈려 있다고 덧붙였다. 온건파는 사태 수습을 위해 미국과 나토에 대해 사과,적절한 보상,중국의역할 증대 허용을 요구하는 반면 인민해방군 장성들을 포함한 강경파는 미·중 관계 격하등 강력한 압력을 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토의 중국 대사관 오폭사고는 대사관의 이주 사실을 포착하지 못한 중앙정보국(CIA) 제공의 ‘옛날 지도’때문이라고 미 CNN 방송이 9일 보도. CNN은 나토가 공습 목표물 선정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CIA 제공 베오그라드 지도들에는 중국 대사관이 4년 전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사실이 드러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클린턴 대통령과 다른 미 관리들의 유감 및 사과 표명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미행정부 관리들은 불만. 나토 공습으로 숨진 샤오윈환 신화통신 특파원의 아들은 9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공습을 중단할 것을 요청. 현재 루마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카오레이(19)는 “강력한 평화의 소리를 들어보세요.폭격을 중단하세요.나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주세요”라고 부탁.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베오그라드를 방문한 중국 대표단은 9일 오폭현장을 시찰.의료진이 포함된 중국 대표단 34명은 이날 피해 상황 조사와 함께 부상자들을 베이징으로 후송하고 대사관 업무를 재개시키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 李瑞環 中 政協주석 내한

    리루이환(李瑞環)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주석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상무위원이 9일 저녁 방한했다. 리 정협주석은 10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며,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과도 개별면담을 갖고 한반도 정세와 양국간 실질협력관계 강화 방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다. 리 정협주석은 12일부터 경주 울산 제주를 방문,문화유적과 산업시설을 둘러본 뒤 15일 이한할 예정이다. 중국 공산당 서열 4위인 그의 방한에는 중국 정협 및 국무원의 장·차관급인사 50여명이 수행한다. 오일만기자 oilman@
  • [제2공화국과 張勉]- (9) 신구파 대립과 分黨(상)/비교

    李承晩독재체제에 맞선 통합야당 민주당은 1955년 9월19일 탄생한다.이날서울 태평로 시공관은 하루종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열기로 들끓었다.전국에서 모여든 민주당 대의원 2,000여명이 오전에는 발기인대회를,오후에는 창당대회를 잇달아 열었다.오전 대회에서 鄭一亨의 경과보고에 이어 張勉의 인사말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의 서두에 내걸었습니다.우리는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후의 창당대회에서는 申翼熙가 민주당 출범의 의의를 밝히는 인사말을 했고 朴順天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주세력의 집결 강화만이 국정쇄신의 방도임을 확신한다”고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창당대회 다음날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 선거에 들어갔다.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 申翼熙는 234표를 얻어 49표에 그친 張勉을 누르고 선출됐다.이어 연기명으로 실시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 趙炳玉(282표)·張勉(278표)·郭尙勳(262표)·白南薰(111표)이 뽑혔다. 이들 가운데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申翼熙,내무장관을 역임한 趙炳玉,민국당 최고위원 출신인 白南薰은 구파였고 총리를 지낸 張勉,국회부의장인 郭尙勳은 신파였다.이밖에 중앙상무위 의장은 成元慶(신파)이 맡았다. 집행기구 16부 부장은 尹潽善(원내총무격인 의원부장)·柳珍山(노동부장)·鄭一亨(섭외부장)·玄錫虎(조직부장) 등으로 구성됐다.구파는 대표최고위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세 자리와 부장 7석,신파는 최고위원 두 자리에 상무위의장과 부장 9석을 차지해 신·구파는 처음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출발했다. 민주당 창당후 처음 맞은 큰 이슈는 다음해 치르는 제3대 정·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이었다.당시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申翼熙·趙炳玉·張勉 세 사람 정도였지만 대세는 申翼熙에게 기울어 있었다.초점은 부통령후보였다.신파는 張勉을 대통령후보로 민다고 공표했으나 내심은부통령후보를 노리고 있었다.구파는 구파대로 ‘대통령후보 申翼熙’를 기정사실로하는 한편 趙炳玉을 부통령후보로 세우려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 문제는 郭尙勳이 적극 나서 해결됐다.郭尙勳은 趙炳玉을 찾아가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합시다.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해공(申翼熙)이 적격이니 그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니오? 차후에 입후보하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오”라고설득한다(郭尙勳 회고록에서). 이에 趙炳玉은 “운석(張勉)이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책임져라”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전당대회에서 申翼熙·張勉을 정·부통령 후보로 뽑은 민주당은 신·구파 구분없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에 매진한다. 56년 정·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李承晩정권을 누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절호의 기회였다.52년의 ‘발췌 개헌’과 56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진 李承晩의 영구집권 음모와 자유당의 폭정(暴政)에 이미 많은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게다가 申翼熙·張勉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이 내건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도 돌풍을 몰고 왔다. 56년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당시로서는 짐작도 못할 30만∼40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 듯하던 대통령 자리는한강백사장 유세 3일 후에 그만 손아귀를 빠져나간다.호남 유세에 나선 申翼熙가 5월5일 열차칸에서 급서한 것이다. 대통령후보 부재에도 불구하고 張勉은 李起鵬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창당 9개월 만에 수권 능력을 가진 야당으로서 당당히 자리잡는다.이같은 자리매김은 58년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연결돼 민주당은 78석을 확보한다.창당 때의 33석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민주당 위상 강화와 비례해 신·구파 대립도 점차 심해져 갔다.첫 충돌은정·부통령선거 직후에 찾아왔다.56년 7월 金度演·金俊淵·蘇宣奎 등 구파중앙위원 60여명이 연명(連名)해 최고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다.이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출을 논의하게 된다. 신파는 “국민에게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張勉부통령이 당연히 대표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파는 표대결을 요구한다.투표 결과 대표최고위원에는 趙炳玉이,최고위원에는 郭尙勳·張勉·金俊淵·金度演이 뽑힌다. 일부에서 분당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끝에 신·구 양파는 다음해부터 대표 및 최고위원을 중앙상무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는 등 몇 가지에 타협하고 수습한다.이후 구파는 부통령인 張勉에게 당의 주도권을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를 더욱 견제하게 됐고,신파는 張勉을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신·구파는 다시 한번 격돌한다.60년 정·부통령선거에 나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趙炳玉은 483대480 단 3표차로 張勉에게 신승한다.다음날 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거꾸로 張勉이 趙炳玉을 70여표차로 물리친다.최고위원에는 郭尙勳·白南薰·尹潽善·朴順天이 올랐다. 이 전당대회는 신·구파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을 파놓았다.대회를 몇달 앞두고부터 양쪽의 경쟁은 한계를 넘어서 각종 추태가 난무했다. 趙炳玉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인신공격한 ‘결격사유 10개조’라는 괴문서가 전국 지구당에 배포되는가 하면,경남도당대회가신·구파 당원 간의난투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신·구파의 격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당은 趙炳玉대통령후보,張勉부통령후보 겸 당 대표최고위원 체제로 1960년을 맞는다.56년 申翼熙의 급서로 이루지못한 정권교체의 꿈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李容遠 - 신구파 내력과 특징 비교 민주당(民主黨)창당은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자유당(自由黨)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제5차 개헌안을 마련한다. 李承晩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려는 이 개헌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찬성 135,반대 60표로 부결된다.그러나 이틀뒤 자유당은 수학의 ‘사사오입’규정을 적용하면 개헌 정족수를 통과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헌법개정을공포한다. 이후 열달동안 반(反)李承晩세력은 통합야당 결성에 노력한다.한민당(韓民黨)의 후신인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과 무소속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다.여기에는 자유당을 뛰쳐나온 ‘탈당파’의원12명도 가세한다. 당시야당으로서는 민국당이 가장 컸지만 원내의석이 15석에 불과해 다른 야당 세력을 흡수,통합하지는 못했다.따라서 민국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55년 12월 신당촉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신당추진 세력은 곧 의견대립에 부딪친다.민국당의 申翼熙 趙炳玉과재야의 張勉 등 ‘자유민주파’는 좌익에서 전향한 자,독재 또는 부패혐의가 짙은 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혁신계인 曺奉岩과 족청계 李範奭을 배제하려고 한다.반면 張澤相 徐相日 등 ‘민주대동파’는 범야세력의총결집을 주장하며 맞선다. 결국 민주당은 ‘자유민주파’만으로 출발하는데 당시 원내 의석은 33명이었다.이에 비해 자유당은 120여명,무소속은 40여명이었다.‘통합야당’을 표방했는데도 무소속으로 남은 의원이 40여명이나 된 사실은 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민주당의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당후 민주당은 다시 신·구파로 갈린다.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申翼熙 趙炳玉이 중심인물이었다.한민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金性洙가 55년 2월별세한 뒤여서 구파의 대표성은 申翼熙가 갖고 있었다. 반면 신파는 張勉을 지도자로 鄭一亨 朱耀翰 등의 흥사단계(張勉은 흥사단계로 알려졌지만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다),吳緯泳 金永善 李相喆 등의 원내자유당계,玄錫虎 李泰鎔의 자유당 탈당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마디로 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구세력’이고 신파는 이를 제외한,새로 야당에 가입한 ‘신세력’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신·구파가 출신 배경,사회활동,이념적 지향에서 어느정도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구파는 대부분 지주집안 출신에 독립운동가나 지사형이었고 상당히 보수적이었다.이에 견줘 신파는 관료·법관·금융계 출신의 전문인이 주류였다.韓昇洲 고려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구파 지도자 가운데 80%는 처음부터 정계에나섰으나 신파 지도자는 오히려 60%가 행정·관료직으로 출발했다.韓교수는또 “연령을 보아도 구파 지도층은 평균 51세,신파는 48세로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신파의 지도력이 사실상 명확히 젊었다”고 평가했다. 정치행태에서도 달라구파는 비조직적이고 점잖아 “하나하나가 모두 장성같았지만”,신파는 조직적이고 투쟁적이어서 상부의 명령에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였다.(구파 출신 閔寬植 회고록에서)민주당 신·구파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李承晩정권 타도’라는 공동목표아래 힘을 모았다.초기에는 그래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9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대립이 심해졌다.4월혁명이후 정권장악이분명해지자 그때부터는 치열한 정권쟁탈전에 들어간다. 李容遠
  • 中 사유제 공식 인정

    ?맏@兼? 연합?망薩? 최초의 현대적 헌법으로 불리고 있는 82년 제정 헌법의 부분 개정안 초안이 오는 3월5일 열리는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 상정,심의된다.전인대 상무위원회 제 7차회의는 30일 두차례 정치국 상무위 원회의 심의,결정과 정치국 회의의 통과를 거친 헌법개정안 초안을 전인대 제2차 회의의 심의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은 지난 54년 제정돼 75년,78년에 이어 82년에 또 한차례 전면개정된 뒤 88년,93년 부분적으로 손질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개정안은 서언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이론’을 마르크스-레닌주의,마오쩌 둥(毛澤東)사상과 동열에 놓고,‘사회주의시장경제 발전’을 국민의 국가 기 본임무 달성을 위한 지침의 하나로 명시했다.지난 97년 9월의 15전대가 당의 지도사상으로 확립시킨 ‘덩샤오핑이론’이 헌법에도 그대로 적용돼 당과 국가의 지도지침으로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셈이다. 개정안은 또 현행 헌법에 공유경제를 보충하는 것으로 돼 있는 개체경제와 사영경제 등 비공유경제를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격상시 킴으로써 법적으로 사유제를 공식 인정했다. 비공유경제 이른바 사유제는 지 난 20년간 급속히 늘어나 97년에는 그 비중이 국민총생산 23.3%, 사회고정자 산투자 32%,국가재정수입 11.6%,공업생산 21.2%,농업생산 27.5%,건축업 19.3 % 등을 차지했다.
  • 새 美 하원의장 내정 헤스터트(뉴스의 인물)

    ◎건강관리 제도 개선팀 참여 유일한 공화의원/작년 워싱턴의 100대 정책결정자에 뽑혀 차기 하원의장으로 내정됐으나 혼외정사 폭로로 19일 하원 본회의 탄핵안 최종토론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한 밥 리빙스턴 의원 후임으로 내정된 데니스 헤스터스 의원(56)은 16년간 일리노이주 고교 미국사 교사로 지내다 주의회 의원을 거쳐 연방정치무대 지도자로 성장한 전천후 노력파. 연방의회 상무위원회 소속으로 식품 의약 환경 마약 에너지 통신 방송 에너지 무역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입법활동을 전개,지난해 ‘워싱턴의 100대 정책결정자’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93년 힐러리 여사가 만든 건강관리제도개선 전담팀에 공화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소신파로서 96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건강관리혜택 확대법안에 적극 동조했고 환자보호법을 주도적으로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의료보건통이다. 지금까지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의 국무부·국방부·법무부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안보·국제문제·형사문제 소위의 의장을 지냈으며 올해는지난해에 이어 공화당 수석 부총무보를 맡고 있다. 42년생으로 64년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을 졸업하고 67년 노든 일리노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인 진 여사와의 사이에 조수아와 에탄 두 아들을 뒀다.
  • “햇볕정책 한반도 긴장완화 도움”/우다웨이 駐韓 中 대사

    ◎中 개혁20돌 특별인터뷰 “한국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 등 국방 부문을 비롯,99년도의 한·중교류는 전면적인 방향에서 발전속도를 더해 나갈 것입니다” 우다웨이(武大偉·52) 주한 중국대사는 17일 중국 개혁개방 20주년을 맞아 본사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두나라의 협력관계가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 등 신뢰쌓기의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11월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21세기를 향한 두나라의 장기적인 협력의 틀과 구체적인 협력사항을 정한 계기였습니다”.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도 두나라는 같은 입장과 이해 위에서 협조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햇볕정책을 기조로 하는 金大中 대통령의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對) 북한정책은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안정의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 대사는 또 “북한이 ‘조만간에’ 붕괴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면서 “한반도 안정을 위해 냉전의 유산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미국의 핵의혹을 둘러싼 일련의 마찰에 대해선 “94년 제네바 핵합의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말썽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중국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의 집안 장롱 속에 의심되는 물건이 있다면서 이를 뒤지려 한다면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최근 불거져나온 일본과의 ‘역사인식’문제에 대해선 두나라 관계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했다. “‘중일전쟁이 끝난지도 50년이 지났는데 이를 거론할 이유가 있느냐’는 일본의 일부 인사들의 태도는 과거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 대사는 일부 일본인은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해 모호한 인식을 갖고 있고 또 극소수지만 이를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주변국들과의 장기적인 관계발전을 생각하고 역사에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문제의 인식차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99년은 중국 국가수립 50주년. 이를 계기로 한국 내에서 중국 ‘붐’을 일으키기 위한 ‘중국주간’행사와 문화전시회 등 한국인들에게 문화를 알릴 각종 교류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두나라는 비약적인 관계발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반세기 단절의 골을 메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각 기관에서도 중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각종 활동을 준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내년에는 한·중 지도자간의 상호방문도 속도를 더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격),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3부요인과 리루이환(李瑞環) 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주요 지도자들이 대부분 방한 초청을 받은 상태며 한 두분이 한국을 공식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중국 경제도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금융부문의 대대적인 개혁과 내수확대정책을 통해 고도 성장률을유지하면서 악영향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정책의 성과에 대해선 “78년 이후 해마다 중국 경제는 9.8%씩 성장을 거듭하는 등 세계 7위의 경제규모를 갖게 됐다”면서 “개혁개방정책은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부임한 뒤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잘 치러낸 우 대사는 일본에서 15년을 근무한 중국외교부 내 일본전문가. 중국 최북단의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지역에서 태어나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일본통인 탕자쉬엔(唐家璇) 외교부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한국문제는 아직 낯설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라는 겸손과는 달리 92년부터 3년 동안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아주국부국장을 지내 한반도문제에도 정통하다.
  • 클린턴 못지않게” 중국측 파격적 예우/金大中 대통령 訪中­뒷얘기

    ◎장쩌민 주석과 속깊은 귀엣말 눈길/朱 총리와 민주화투쟁 경험담 나누기도 【상하이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은 기대 이상의 성과만큼이나 숱한 뒷얘기를 남겼다.특히 중국은 북한과 동맹관계인 만큼 한국과의 관계 설정과 金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놓고 여러차례 논의를 거듭하는등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 돈독한 우의를 구축했다. 金대통령은 만찬이 끝난 뒤 “장주석이 속엣말도 했다”고 수행원들에게 전해 깊은 얘기를 주고받았음을 시사했다.국빈 만찬에 참석했던 한 장관도 “장주석이 현대그룹의 금강산관광개발사업이 (당국자간 경협을 위한) 우회전략인줄 안다.그러나 우리는 방해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추진하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탕자쉬엔(唐家璇) 중국 외교부장도 權丙鉉 주중대사에게 “클린턴 미 대통령 못지않게 최고 예우를 갖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金대통령이 중국 외교관례상 파격적인 인민대회당 출입문을 남문이 아닌 북문을 사용한 것도 이를 방증하는 한 예이다. ○…金대통령은 당초 장주석과는 정치관계 등 두나라의 일반적 현안을 협의하고 경제현안은 주룽지(朱鎔基) 총리와 협의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장주석이 확대정상회담에서 빠짐없이 언급하는 바람에 의제가 즉석에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장주석은 회담이 시작되자 대뜸 중국의 대한(對韓)무역역조 문제부터 제기,金대통령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이를 의식,金대통령은 주총리와 만나서는 먼저 “미안하다”며 유감을 표명,중국측을 누그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金대통령과 주총리와의 면담에서는 경제현안 외에 민주화투쟁도 화제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주총리는 “문화혁명으로 가족과 20년을 떨어져 농촌에서 고초를 겪었다”며 지난 92년 상하이시장 시절 쓴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를 비판한 글,그 뒤 덩샤오핑이 자신에게 보인 관용과 포용 등을 회상했다고 한다.또 “장체스(蔣介石)국민당정부때 대학생으로 민주화투쟁을 한 사람인데 중국에 인권 탄압이 있겠느냐”는 말도 했다는 것. 朴智元 대변인은 “현 중국 지도자들도 대개는 주총리처럼 고초를 겪은 일이 있기 때문에 金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존경하는 것 같다”며 金대통령의 다리 부상에 대해 장주석은 물론 주총리,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이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95년 야당총재로 머물렀던 댜오위타이 10호각의 관리자와 여직원들은 지난 13일 이곳에서 식사를 한 우리 기업인을 보고 “다른 분들과 달리 밤에도 자료를 보고 공부를 하더니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 해직교사 교원노조 가입 허용 방침/노사정위

    노사정위원회(위원장 金元基)는 내년 7월 출범할 교원노조에 해직교사들의 가입도 허용키로 했다. 노사정위는 최근 열린 상무위원회(위원장 丁世均 의원)에서 해직교사의 교원노조 가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노사정위 관계자가 15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교원노조 가입은 초·중등교육법 제19조에 규정된 교원뿐 아니라 전교조 활동 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해직된 교사들에게도 허용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르면 이번주 국무회의에서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가칭)을 심의,의결한 뒤 다음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 金 대통령 APEC 행보­정상회의 전략

    ◎‘換亂 극복’ 싼 역내 갈등 절충 모색/선진국 ‘지원’­개도국 ‘개혁’ 입장 견지/사교장 아닌 실질집행기구화도 거론 【콸라룸프르 梁承賢 특파원】 17일부터 이틀동안 열리는 제 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참석하는 金大中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 최대 쟁점으로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꼽았다.이와 연계해 APEC가 ‘정상들의 사교장’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협의·집행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 본질적인 문제도 거론할 뜻임을 비췄다.“APEC가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역내국가의 기대와 효용성을 좌우하게될 것”이라는 金대통령의 언급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에 둘러싼 회원국간 의견이 다르다.金대통령은 IMF(국제통화기금)의 논리를 수용,선진국과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즉 시장경제에 따른 개혁,개방과 스스로의 자구노력에 비중을 둔 것이다.반면 개도국인 말레이시아 마하티르총리를 비롯한 아세안국가들은 IMF의 논리에 비판적인 입장을견지해왔다.리펑(李鵬) 중국 전인대상무위원장이 金대통령과 만나 “너무 경제세계화만 말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한 것도 개도국과의 마찰을 우려해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杞憂)라고 잘라말한다.金대통령이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에게는 적극적인 금융지원을,개도국에게는 개혁을 통한 자구노력을 강조하는 ‘중간자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설명이다.실제 金대통령은 금융안정을 위한 미·일·중 등 선진국의 역할을 꾸준히 촉구해온 터이다. 구체적으로는 헤지펀드 규제문제가 쟁점이 될 공산이 크다.미국은 민간자율로 통제에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말레이시아는 이미 정부 차원의 규제에 들어가 있다.金대통령은 정부의 직접 통제에는 반대하되 관련 정보관리나 건전성은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어 주목된다. 역시 매번 대립해온 무역자유화 확대(선진국)와 경제기술 협력강화(개도국) 문제도 같은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한데 아우르기 곤란한 현안을 ‘중견국가의 대표격’인 金대통령이 어떻게 절충을 해낼지 관심이다.
  • 中 지도자들 업무 분할관장/최상위그룹인사 접견 안팎

    ◎정상회담 내용 분야별 재확인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이 13일 주룽지(朱鎔基) 국무원총리 등 중국의 주요 인사들과 연쇄 접촉한 것은 중국 정치의 특성을 감안한 결과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정점에 서있지만 집단지도체제 성격이 강하다.또 장주석,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최상층부 인사들이 고령이어서 언제나 후계구도를 염두에 두는 체제이기도 하다. 金대통령이 이날 접견한 인사는 치엔치천(錢其琛) 전인대 상무위원장,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리펑위원장,주총리 등이다.중국 국가 서열상 최상위그룹에 속한 인사들이다. 집단지도체제인 만큼 이들의 역할은 서로 다르다.경제 분야 협력은 주총리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며,대북문제 등 외교 현안은 역시 외교부장 겸 부총리를 역임한 치엔치천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협의해야 한다.정치 분야 협력은 리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협의한 것도 마찬가지다.따라서 金대통령이 접견때마다 각기 별도의 의제를 준비했다고 외교 관계자는 전했다. 후진타오 부주석은 후계구도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이 자리에서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그리고 ‘黨대 黨’ 교류 등 전반적 협력관계를 논의한 것도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후부주석이 중국 내 50대 기수격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14일 상하이(上海)시 황쥐(黃菊·60) 당서기와의 만남이다.그는 장주석,후총리와 함께 ‘상하이파’의 리더그룹 중 한명이다. 이처럼 金대통령의 중국 주요 인사 접견은 정상회의에서 다져진 내용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중국 내 ‘친한(親韓)기류’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中 차세대지도자 4명 연쇄 회동/金大中 대통령 訪中­이모저모

    ◎주룽지·리펑 등 최고위층 만나/양국 경협 확대·발전안 논의/첸지천 부총리에 訪韓 요청 【베이징 梁承賢 특파원】 13일 중국 국빈방문 사흘째를 맞은 金大中 대통령은 오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첫 머리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金대통령은 14일 상하이로 떠나기에 앞서 베이징 체류 마지막날인 이날 주룽지(朱鎔基) 총리를 비롯한 리펑(李鵬) 전인대상무위원장 등 중국 정부·의회 지도자들과 연쇄회동을 가졌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첸치천(錢其琛) 부총리 등을 포함,서열 2∼5위내 중국 최고위층 인사들이었다. ▷주요인사 접견◁ ○…金대통령은 명실상부한 중국 권력서열 2위인 주총리와의 대화에서 한·중 양국간 각종 경협 확대·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등 ‘세일즈대통령’ 면모를 과시했다. 댜오위타이 12호각에서 이뤄진 주총리와의 면담은 만찬으로까지 이어졌다. 金대통령과 주총리는 만찬석상에서 연신 큰 웃음을 터뜨렸으며 만찬이 끝나자 주총리는 金대통령의 손을 잡고 승용차까지 안내했다. 참석한 중국 외교관들도 “총리가 매우 냉정한 분인데 저렇게 유쾌하게 웃는 것은 처음 봤다”고 놀랐다. 金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모처럼 평소보다 많은 술(소홍주)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金대통령은 만찬도중 주총리에게 감옥시절 터득한 파리를 죽이지 않고 기절시켜 잡는 법과 이를 가느다란 거미줄에 거는 방법을 ‘득도(得道)’에 비유하며 조크. 그러면서 “거미는 죽은 파리를 먹지 않고,사람이 다가서면 거미줄 중앙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며 소개하기도. 그러자 주총리는 “올림픽종목에 채택하면 두종목의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라며 “책도 많이 읽은 것으로 알지만,어떻게 진시황과 맹자시절의 연도를 정확히 기억할수 있느냐”고 金대통령의 박학다식에 감탄. 金대통령은 이에 “세상은 양면성이 있어 감옥에서 책을 읽다 ‘이런 것도 있구나’하고 무릎을 친 적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인민대회당 접대청에서 리전인대상무위원장을 만난 金대통령은 “총리 재임시 한·중 수교의 결단을 내려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시. 리상무위원장은 자신이 총리재임시 두번 방한한 점을 상기시키고 “한국민들이 금모으기운동을 벌이는 것을 TV로 봤다”며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 노력을 높이 평가. 이에 金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아시아금융위기 해결과 재발방지책도 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에 앞서 숙소인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18호각 접견실에서 첸부총리 등 지난 92년 한·중 수교시 중국측 협상대표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金대통령은 “첸부총리가 한·중 수교를 시작했듯 앞으로도 최선의 협조해 주기 바란다”며 한국 방문을 요청. 첸부총리는 “남북이 긴장완화를 통해 통일되기를 희망한다”고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우회적으로 지지. ○…金대통령은 이어 인민대회당 신강청에서 후부주석을 만났다. 金대통령은 지난 4월 후주석의 방한 직후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해외여행자유화 대상지역에 제주도를 포함시키는 조치를 취한데 대해 “후부주석이 결정적인 힘을 써준 것으로 안다”고 사의를 표했다. ▷경제인오찬연설◁ ○…金대통령은 13일 낮 숙소인 댜오위타이에서 한·중 양국 경제인 주최로 열린 오찬연설회에 참석,“양국 경제인 여러분은 굳게 손잡고 성공의 길로 매진하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양국 경제협력의 한 방향으로 ‘서로의 경제발전에서 교훈을 얻고 서로의 개혁작업에 대한 지혜를 나누는 것’을 들며 중국측에 간접적인 조언을 했다. ▷경제6단체장 조찬◁ ○…金대통령은 숙소인 댜오위타이 18호각에서 수행중인 朴泰榮 산업자원장관,康奉均 청와대경제수석,金宇中 전경련회장을 비롯한 경제6단체장 등과 조찬을 함께 하며 ‘세일즈외교’전략을 협의했다. 金대통령은 기업들의 건의사항을 묻자 전경련 金회장은 “대우가 중국에 자동차 완성품 조립공장 건립 신청을 해놓았으나 허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며 주총리와 면담에서 관심을 환기시켜줄 것을 요청.
  • 金大中 대통령 訪中­韓·中 공동성명 전문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 협력 강화”/중국,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수립 희망/한국,安徽省 2개 사업 70억원 차관 제공/황사·산성비·황해보호 정부간 연구 강화/中 WTO 가입 지지… 2000년 ASEM 협력 1.대한민국의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초청으로 1998년 11월11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방문하여 중국 정부와 국민의 정중한 환영과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2.방문기간 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장쩌민 주석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회담을 가졌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리펑(李鵬) 위원장,주룽지(朱鎔基) 국무원총리,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과 면담하였다. 회담과 면담을 통해 양측은 한·중관계의 진일보한 발전과 공동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지역 및 국제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하고 광범위한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3.한·중 양국 정상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온 데 대해 만족을 표명하고,이러한 발전은 양국 각자의 발전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를 포함한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해왔음을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은 UN헌장의 원칙과 한·중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 및 수교 이래 발전해 온 양국간 선린우호 협력관계에 기초하여,미래를 바라보면서 21세기의 한·중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키로 합의하였다. 4.양측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양국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 교류와 경제연구기관간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인민폐 환율 안정과 내수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유지정책이 아시아 금융위기를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측은 앞으로도 능력범위 내에서 이러한 기여를 계속할 것임을 표명하고,동시에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광범위한 경제개혁 및 금융위기 극복과 경제회복을 위한 노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 5.중국측은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을 재천명하고,최근 남·북한 민간경제 교류에서 얻어진 긍정적인 진전을 환영하며 한반도 남·북 양측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자주적인 평화통일 실현을 지지하고,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목표가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4자회담의 추진을 통해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점진적으로 수립되기를 희망하였다. 6.중국측은 세계에 하나의 중국만이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임을 재천명하였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표시하고 지금까지 실행해온 하나의 중국 입장을 견지한다고 하였다. 7.양측은 양국 지도자,정부의 각 부문,의회 및 정당간 교류를 확대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8.양측은 수교 이래 6년여 동안 이룩해온 양국간 경제·무역관계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21세기에도 계속해서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 심화시켜 양국의 공동 번영과 이 지역의 안정 및 발전에 기여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간 ‘경제·무역 및 기술협력공동위원회’의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현재 양국간 무역 불균형에 대해 유의하고,이러한 무역 불균형현상을 양국간 무역확대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 위하여 공동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 한국측은 한·중간 무역 확대를 위한 중국의 한국측에 대한 수출금융 제공 제의를 환영하고 동 수출금융이 양국간 무역 확대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한국 정부의 조정관세 축소 방침을 환영하였다. 양측은 새로운 무역상품 발굴 및 반덤핑제도 등 무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고 중국측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였다. 한국측은 양국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의 2개 사업에 대한 70억원(한화)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차관 제공을 금년 중 결정하기로 하였다. 양측은 금융감독 관리 부문과 금융시장 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9.양측은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사회간접자본 건설,철도 등 부문에서 협력을 가일층 강화하는 데 있어 아래와 같이 인식을 같이하였다. ‘한·중 산업협력위원회’의 협력사업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21세기 양국간 산업협력 관계를 더욱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한·중 과학기술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양국 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최근 홍수,가뭄,지진 등 자연재해가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음을 감안하여 양측은 상술한 부문에서의 정보교류 및 조기 예보,연구조사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기초과학 부문에서의 교류를 강화하고 동시에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양측은 초고속 정보통신망 및 전자상거래 등 국가정보화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첨단통신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한·중 환경협력협정’에 기초하여 양국 정부간 환경보호 및 환경산업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황사 및 산성비 등 환경오염,황해 환경보호 등 문제에 대하여 정부간 공동 조사연구를 강화해 나가고 동북아지역 협력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황해 환경보호를 위해 양국 유조선 사고발생시 해상오염 예방을 위해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에너지,자원 등 부문의 공동개발 이용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1999년 쿤밍(昆明)세계원예박람회 참가를 결정하고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이를 계기로 원예 부문에서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한.중 시범농장을 공동으로 건립하고 농작물병충해 방지에 대하여 공동연구를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은 삼림이 자연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삼림의 유지와 합리적 이용이 생태환경 개선,나아가 인류생존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중간 임업협력약정’에 기초하여 산림녹화,토사유실 방지 등 분야에서 임업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한·중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을 위한 협정’에 근거하여 핵 과학기술 및 핵에너지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한국측은 호혜의 원칙하에 중국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가하기를 희망하였으며 중국측은 이를 환영하였다. 양측은 또한 제3국 건설 분야에서 공동진출 협력을 추진하기를 희망하였다. 양측은 ‘한·중 철도 분야 교류 및 협력약정’을 체결하였고 철도 분야에서 과학기술 교류와 교육훈련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10.양측은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정부간 교류뿐 아니라 양국 국민간 상호 이해증진과 다양한 교류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 분야에서의 문화교류 및 협력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하여 한·중 양국 정부간 문화협정에 의거,‘한·중 문화공동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키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및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금년과 내년에 각종 행사를 개최키로하고 양국 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1998년 체결된 ‘교육교류약정’을 기초로 교육 및 학술 부문의 교류를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 관광 분야의 교류 및 협력을 강화하도록 장려하고 양국 관광업계의 발전을 공동으로 촉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측은 양국의 각급 지방정부간 자매결연 등 방식을 통해 경제,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양측은 양국이 ‘한·중 형사사법공조조약’,‘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 및 복수사증 발급에 관한 협정’ 및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서’등 문서에 서명하고 어업협정을 가서명한 데 대해 환영을 표시하고 상술한 문서가 양국관계 발전과 양국간 교류 및 협력의 확대에 기여하기를 희망하였다. 11.양측은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및 생·화학무기 감축,환경,마약,테러,국제조직 범죄 등 국제문제에 있어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한국측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조기 가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재천명하였으며 양측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및 UN 등 국제무대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고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12.양측은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순조롭게 이뤄져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중국측의 따뜻한 환대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장쩌민 주석이 편리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해주도록 초청하였다. 장쩌민 주석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고 동 방한 초청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34개 협력사업 ▲아시아경제위기 극복 ­정보교류,경제연구기관간 협력 ▲고위인사 교류 확대 ­양국지도자,정부 각부문,의회,정당간 교류 ▲경제통상분야 협력 ­한중경제공동위 수석대표 차관급 격상 ­중국,對韓수출금융 제공,한국,對中조정관세 축소 방침 ­무역상품 발굴,부역제한조치 완화를 위한 협력 ­중국의 방콕협정 가입 지지 ­한국,對中 대회협력기금 차관 연내 제공 연내 결정 ­금융감독관리 부문과 금융시장상호개방 분야에서 협력 ▲산업·과학기술·정보통신·환경·에너지·자원·농업·임업·원자력의 평화적 이용·SOC건설·철도분야 협력 ­한중산업협력위 활성화 ­양국정부 및 민간의 과학기술협력 강화 ­에너지,자원의 공동개발,이용분야 협력 ­99년 昆明 세계원예박람회 참가 및 원예부문 교류,협력 ­한중 시범농장 공동건립,농작물 병충해 방지 공동연구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협력 ­기초과학 및 첨단기술의 산업화 분야 협력 ­초고속 정보통신망 등 정보통신 분야 협력 ­환경오염,황해환경 공동조사 등 환경협력 ­임업협력 강화 ­핵 과학기술 및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 ­한국의 중국내 SOC건설 참여,제3국 건설 분야 공동진출 ­한중 철도분야 교류협력 약정 체결 ▲문화·예술·교육·학술·관광·청소년·유학생 교류·사법협력,각종조약,협정 체결 ­한중 문화공동위의 정기개최 ­양국 각각의 정부수립 50주년 행사 개최 지원 ­교육학술분야 교류협력 ­관광분야 교류협력 ­지방정부간 협력 ­한중 형사사법 공조조약 서명 ­한중 사증발급 절차 간소화,복수사증 발급 협정 체결 ­한중 양국 정부간 청소년 교류 양해각사 서명 ­어업협정 가서명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핵무기 확산방치,생화학무기 감축 등 국제무역 협력 ­중국의 WTO 조기 가입지지 재천명 ­APEC,ASEM,ARF,UN 등에서의 협력 강화 ­2000년 제3차 ASEM 성공적 개최를 위한 협력
  • 中 지도부 개편 초미의 관심/공산당 제15기 3中全會 개막

    ◎朱鎔基­대홍수 극복·경제성장 공로 2인자 예상/李鵬­영향력 급락세… 서열 3위로 밀려날듯/胡錦濤­중앙군사위 부주석 맡아 軍 장악 전망 12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15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5기 3중전회)에서 고위층들의 인사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져 중국 지도부의 새로운 판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혁·개방을 결정한 78년 11기 3중전회의 2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3중전회의 최대 관심사는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명실상부하게 2인자의 자리를 다지는지의 여부. 현재 권력서열 3위인 주 총리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 이어 서열 2위에 올라서는 반면,‘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3위로 밀려날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홍콩 언론들은 주 총리가 총리에 임명된 뒤 그동안 권력기반을 다진 데다 총리직은 국제행사 참석 등의 기회가 많아 서열 2위가 적합하다는 당 내부의 평가가 내려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와 러시아 경제위기,44년만의 양쯔(揚子)강 대홍수 등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올 경제성장률 8%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주 총리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관측이다. 장 주석에 이어 2002년 당총서기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이 부상할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군부 부패문제로 장 주석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장완녠(張萬年) 중앙군사위원회 상무 부주석 자리를 맡아 군부를 장악할 것이라는 게 홍콩 언론들의 전망이다. 장 주석은 후 부주석의 업무를 분담해주기 위해 ‘상하이방(上海幇)”의 핵심 인물인 황쥐(黃菊)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와 쉬광디(徐匡迪) 시장을 중앙무대로 진출시킬 채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親日의 군상:4/李瑄根 前 문교장관(정직한 역사 되찾기)

    ◎만주 친일파 거두로… 유신 옹호자로/역사는 그를 왜 친일파로 기록하는가/관동군 군량미 ‘보급창고’ 만몽산업의 상무/독립군 토벌 후원단체 ‘동남지구…’ 상무위원/일제 괴뢰정부 만주국 ‘국회의원’ 지내기도/해방후 행적­敎聯회장·3개대학 총장·국민헌장 제정 참여·정신문화연구원 원장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가장 건실한 신(新)질서를 건설해야만 될 것은 유구한 인류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중대 사명으로…좀더 솔직하고 좀더 용감하게 신체제 건설에 희생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특히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의 활동은…민족협화(民族協和)의 신흥제국(新興帝國·만주제국을 지칭함)에 있어서 가장 솔직한 자기반성으로 이 운동의 광휘있는 실천은 장래 선계(鮮系·조선인)국민에게 정치적으로,사회적으로,정신적으로 반드시 좋은 영향을 가져오리라고 봅니다.…”(‘삼천리’1940.12월호) 누가 쓴 글일까? 만주국(滿洲國) 건설에 조선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이 아니다.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이다. 하성(霞城) 李瑄根(1905∼1983). 문교장관과 수차례 대학총장을 지낸 이선근이 바로 이 글의 필자다. ‘과연 그가 이 글을 썼을까’하는 의문이 갈 정도다. 왜냐하면 이선근의 해방후 경력은 ‘민족적인’ 냄새로 분칠이 돼 있기 때문이다. ‘화랑도(花郞道)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독립운동사’를 저술하기도 했던 그다. 얼핏 보면 그는 ‘친일(親日)’과는 거리가 먼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는 해방후 일찌감치부터 소문난 친일파였음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사 저술로 ‘과거’ 위장 일제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新報·현 ‘서울신문’의 전신)는 해방후 미군정에 접수된 후 10월 25일 조선인 주주총회를 열고 사장 吳世昌,부사장 李相協,전무 金炯元 등 새 경영진을 구성·발표하였다. 이선근은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이 명단 속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인사는 중도에 좌절되고 말았다. 이유는 새로 임명된 주요간부 대다수가 친일경력자라는 것. 이선근도 이 명단 속에들어 있었다. 과연 이선근은 친일파인가? 구체적으로 언제,어디서,어떤 행적을 했길래 역사는 그를 친일파로 기록하는가. 반세기 이전의 만주(滿洲)땅으로 그를 찾아가 보자. 이선근은 경기도 개풍(開豊·현 개성)사람으로 본관은 전주(全州)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데다 일찍 신학문에 눈떠 휘문고보 졸업(1922년)후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1929년 와세다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귀국하여 첫 직장으로 ‘조선일보(朝鮮日報)’에 입사하였다. 당시 나이 24세. 그는 입사 1년 반만에 최연소 정치부장을 거쳐 이듬해 약관 25세로 국장이 공석인 국장대리로 승진하여 사실상 편집국장이 되었다. 그 시절을 두고 그는 “입사 한 달만에 사설(社說)을 쓰기도 했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의 신문사 생활은 3년만에 막을 내렸다. 한편 1937년 ‘만주행(滿洲行)’으로 그는 인생에서 한 전환기를 맞는다. 이 무렵 ‘동양(東洋)의 서부’로 불리던 만주는 출세욕에 불타는 군인·지식인,일확천금을 노린 모략자·협잡꾼들이 앞다퉈 모여들던 신(新)개척지였다. 특히 일본인과의 차별대우로 야망을 좌절당한 조선청년들에게 ‘무법지대’ 만주는 오히려 ‘희망의 땅’이었다.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朴正熙 전 대통령은 ‘긴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가서는 군인이 되었고 조선인 일본유학생 상당수는 만주로 가서 고급관리가 되었다. ‘야망가’ 이선근의 ‘만주행’은 당시 시대상황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로서는 놀라운 변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가 만주에서 보낸 8년은 결국 그에게 ‘친일파’란 오명을 남겨주었다. 1940년 9월21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를 보면 이 해 만주국 협화회(協和會) 전국연합회(약칭 全聯) 조선계 대표 16명중 한 사람으로 이선근이 소개돼 있다. 이선근의 당시 직책은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 안가촌(安家村)분회 부(副)분회장. 조선일보 퇴직후 잠시 고향에서 교편을 잡던 이선근은 이 지역출신 孔鎭恒씨와 의기투합,1937년 만주행에 올랐다. 孔씨는 개성 백만장자의 아들로 일본와세다대학 영문과를 나와 파리와 런던에서 유학한 지식인.그는 유럽 유학후 귀국길에 시베리아,만주를 경유하였는데,이 때 만주에 대규모 농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가 후에 만몽(滿蒙)산업주식회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이 회사가 조선인 유랑민을 동원,개척한 안가(安家)농장은 총면적 7천만평,수용가구(家口)만도 4천가구에 달하는 대규모였다. 지난 94년 이선근의 친일행적 조사차 안가농장 현지를 답사한 具良根 교수(성신여대·중문과)는 당시 안가농장의 성격을 두고 “관동군(關東軍)의 군량미 보급기지나 마찬가지였다”고 지적하고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창따미(五常大米)’는 지금도 중국 최고의 쌀로 소문나 있다”고 밝혔다. 이선근의 친일활동은 그가 만몽산업의 상무이사로 있으면서 관동군의 군량미 충당에 협조한 점이 그 첫째다. 전통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해온 일본군에게 있어서 쌀농사는 총포(銃砲) 이상 가는 전쟁물자 지원이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선근은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친일파들과 어울려 친일대열에 가세한다. 대표적인 친일행적의 하나로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활동을 들 수 있다. 1940년 10월 만주국 수도 신경(新京)에서 발족된 이 단체는 선비(鮮匪·조선인 항일세력),토비(土匪·만주토착 항일세력) 등 이 지역 항일세력들을 토벌하던 관동군을 측면에서 지원한 조선인 주축의 대표적 친일조직. 당시 만주 건국대 교수로 있던 육당 崔南善은 이단체에서 고문을,이선근은 협화회 봉천성 대표 徐範錫(해방후 6선의원 지냄)등과 함께 상무위원을 지냈다. 나중에 그가 만주국의 국회격인 협화회 협의원에 발탁된 것도 이런 공로(?) 때문이었다. 한편 해방후 이선근은 李承晩정권 하에서 문교장관,성균관대 총장 등을 거쳐 朴正熙정권과 다시 줄을 대는데 여기에는 ‘만주경력’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 면이 없지 않다. 朴정권은 만주군관학교와 만주국 관리양성소인 대동학원(大同學院) 출신자 등 만주인맥에 권력기반의 한 줄기를 두고 있었다. 朴정권 말기 총리를 지낸 崔圭夏 전 대통령도 대동학원 출신으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냈다. ○교육·문화계 요직 독식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이선근은 朴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하였다. 문화재위원장(69년),영남대 총장(69년),동국대 총장(74년),대한교련(敎聯)회장(76년),초대 정신문화연구원장(76년)등 교육·문화계의 요직을 거의 독식하였다. 그가 이같은 초특급 대우를 받은 배경에는 그가 유신(維新)체제 홍보의 나팔수를 자임한 공로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동국대 총장 취임사 한 구절을 보자. “…민족,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유신(維新)정신,새마을정신으로 우리 동대(東大·동국대)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東大新聞’,1974.7.30) 그는 대학총장 시절에도 내놓고 유신체제를 선전한 인물이다. 정식으로 ‘유신옹호’ 논문도 쓰고 강연도 여러 차례 했었다. 박정권 말기인 78년에 문을 연 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은 사실상 그의 주도로 설립됐다. 초창기에는 대만의 ‘중앙연구원’을 모델로 하여 순수 학술연구기관을 만든다고 선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체제옹호용 기관이 되었다. 권력자를 향한 그의 ‘아부기질’은 李承晩­朴正熙에 이어 全斗煥시대까지 계속됐다. 광주(光州)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시점인 80년 8월. 그는 한인터뷰에서 “全斗煥 장군은 위기상황 극복의 최적임자”라고 추켜세우고는 “全斗煥 장군을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된다는데 국민의 여망이 모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서울신문’,1980.8.20). 지금 그가 살아있다면 뭐라고 변명을 할까. 해방후 대다수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역대 정권때마다 전천후형(全天候型) 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역사학계의 한 중진교수는 “자신의 과거경력을 위장하기 위해 그는 독립운동사와 같은 책을 의도적으로 썼다” 며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권력자의 전위대였다”고 혹평했다. 83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과거행적에 대해 단 한번도 뉘우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국립묘지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혔다. ◎協和會란? ‘협화회(協和會)’란 일제가 만주사변 이듬해(1932년)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을 통치하기 위해 만든 ‘국가기구로서의 단체’.일본의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조선의 국민총력조선연맹와 같은 관변·어용기관을 본따 전(全)만주의 전(全)인종을 망라하여 조직한 이 단체는 민족간의 ‘협동과 화합’,항일세력에 대한 선무(煽撫)공작 등이 주요 설립목적이다.. 기구는 정부조직의 국무원­성(省)­현(縣)에 대응하여 전국연합협의회­성(省)연합협의회 등의 협의기구와 지방의 집행기관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회장직은 만주국 국무총리가 맡았다. 전체 회원수는 1940년 현재 5족(五族,일본인·만주족·조선족·몽고인·중국인)을 통틀어 1백 67만여 명. 회원 가운데 민족별로 대표자(협의원)를 뽑아 매년 전국대회를 가졌는데 1938년도 전국연합협의회(약칭 全聯)에서는 총참가대표 1백72명중 조선계 대표는 12인이었다.
  • 내일 離任 張庭延 주한 中 대사 인터뷰

    ◎“장쩌민 주석 등 중 지도자들 한반도 안정에 각별한 관심”/‘11월 김 대통령 방중’ 21C 양국관계 기틀마련/경제수역 확정·어업협정 체결 등 쉽게 해결될것/재임중 북핵해결 틀 마련·4자회담 시작돼 보람 장팅옌(張庭延·62)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6년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12일 중국으로 돌아간다.한국 근무를 끝으로 40년동안의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는 “두나라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장 대사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이 한·중 관계발전과 한반도 안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장주석을 비롯,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리펑(李鵬) 전 총리 겸 현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등 주요 지도자들이 모두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습니다” 명동 중국대사관 대사 집무실의 한 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휘호도 한·중관계 발전을 보여준다는 설명도 이어졌다.95년 11월16일 한국 방문중이던 장쩌민 국가주석이 ‘방문이 성공적이었다’며 흥에겨워 마지막 방문지 제주도에서 써 준 것이란다. 장 대사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두나라 관계를 한단계 끌어 올리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金 대통령의 방문은 21세기 두나라 관계의 방향과 기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장쩌민 국가주석,주롱지(朱鎔基) 총리 등 최고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와 폭넓은 현안 논의 등 이해를 더욱 깊게 할 것입니다” 그는 金 대통령과의 여러차례의 만남이 한국생활을 더욱 기억나게 한다고 말했다.야당 시절 사무실을 방문하고 경기도 일산의 자택에 초대받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金 대통령은 중국 역사와 문화에 정통하고 세계 정세에도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는데다 야당시절 중국을 세번이나 방문,중국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어 두 나라 관계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읍니다” 이어 “金 대통령이 중국에선 지식인뿐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야당시절부터 TV와 신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고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대사 자신이 가장존경하는 한국인이 金 대통령이라고 털어놓았다. 92년 8월 수교이후 두 나라가 6차례의 정상회담과 28차례의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고 서로 3번째 교역국으로 성장하는 급속한 관계발전을 이룩한 것이 대사로서 기쁨이란다. 대사 부임때만해도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감정에 대해 걱정스럽고 불안했었다고 회고했다.“두나라 사이엔 역사상 불행한 시기도 있었고 수교후 6년동안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재임기간동안 남북한과 중국,미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이 시작되고 북한 핵문제도 해결의 틀을 마련하는 등 한반도정세가 완화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보람이라고 했다. “특정 사안과 관련,한국 정부가 북한에 ‘강력한 요구’를 부탁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결국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중국의 원칙이 수용될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고 봅니다.” 63년부터 3차례에 걸쳐 15년동안 북한에서 근무한 장대사는 남북관계를 풀어가는데는 “무엇보다 신뢰회복이 시급하다”는 충고도 잊지않았다.“중국은 한반도 남북의 문제해결을 위해측면지원을 할 수도 있고 대화를 위한 환경 조성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읍니다.그러나 문제해결의 주체는 남북한이란 점을 잊어선 않될 것입니다” 북한에서 15년,한국생활 6년.한반도에서만 21년을 산 그는 한국인들은 성질 급한 것 빼놓고는 다 좋은 것 같다고 빙긋이 웃는다.“성실하고 정력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자세야 말로 남북한 똑같은 한민족의 장점”고 평했다. 북한 핵위기 등 남북문제와 관련,주한 미국대사 등과도 적잖은 ‘의견교환’을 나누었다는 그는 “경제수역 획정문제,어업협정의 체결 등이 현안이지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징(北京)토박이인 장대사는 베이징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뒤 58년부터 외교부에 근무해 온 중국내 제1의 한반도 전문가.서울 사람과 구분않될 정도의 유려한 우리말을 구사한다. 퇴임후 계획과 관련,“한반도와 관계된 일을 할 생각”이라며 21세기의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 옛 시각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중국을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엔低·美 경기 후퇴… 온 세계 “휘청”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 일본의 엔화가 극심하게 동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유럽에서는 주가가 대폭락했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중국도 최근 성장세가 가라 앉고 있는데다가 엔화가치 하락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자 위안화 평가절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어 보인다. 세계 경제가 급격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가장 큰 원인은 일본 경제의 위기가 제대로 극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부치 내각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엔화 환율은 1달러당 160엔대까지 폭락할지 모른다는 비관론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유럽 등 세계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짚어본다. ◎일본/경제단체,세제개혁 등 경기부양책 촉구/정책 혼선으로 엔화가치 널뛰기 극심 【도쿄=黃性淇 특파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신내각은 출범하자마자 갈팡질팡하고 있다. 엔화 환율이 극심하게 오르내리는가 하면 도쿄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각료들은 엔화 환율 불안 대처 방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상은 엔화 하락을 방치하는 듯한 발언으로 3일 엔화가 폭락하자 4일 발언을 번복,시장개입을 시사하고 나섬으로써 엔화를 반등시켰다. 그러나 개혁적 성향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사카이야 다이이치(堺屋太一) 경제기획청장관은 여전히 “정부가 매번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개입에 소극적 입장을 개진하는 등 혼선을 부채질했다. 이마이 다카시(今井敬) 게이단렌 회장등 일본 경제 4단체장은 4일 오부치 총리와의 회담에서 세제 개혁을 포함한 근본적인 경기 부양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제 사정이 신내각 출범후 더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환율은 지난 3일 1달러당 145엔대에서 146엔대로 올랐다가 5일에는 143엔대로 하락하는 등 극심한 불안정 장세를 보였다. 지난주 니케이 평균주가가 1만6,000엔대까지 회복됐던 도쿄 증시도 이번주들어 3일째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1만5,000엔대로 다시 떨어졌다. 한편 다이도쿄 화재해상보험사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금융기관 고객의 90%가 공신력의 대명사였던 은행에 맡겨 놓은 예금이 불안하다고 응답,불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오부치 내각이 경기 회복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실망감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의 연구기관인 DRI는 최근 보고서에서 부실채권 처리가 늦어지면 엔화가 160엔까지 추락하는 것은 물론 일본은 10% 마이너스 성장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李鵬,‘아시아 경제회복 책임’ 日 개혁 촉구/엔저로 수출 지장땐 위안화 평가절하 공언 거대한 대륙 중국이 꿈틀거린다. 관계자들의 공식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를 평가절하하려 한다는 분석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리펑(李鵬) 상무위원장은 최근 중국을 방문한 일본 히타치그룹 사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 전역이 금융위기로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새 내각이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개혁으로 경제를 회복시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 회복에 도움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촉구했다. 오부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엔화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중국 지도부가 크게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엔화의 가치하락으로 중국 상품의 수출에 지장이 생기면 세계 경제질서에 혼란이 오더라도 즉각 위안화를 평가절하하겠다는 공언인 셈이다. 중국의 올해 상반기 GDP 성장율은 7%에 불과했고 수출도 증가세도 7.6%에 그쳤다.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반기에 만회해야 할 형편이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개발계획위원회 경제연구중심은 중국 아태경제시보(亞太經濟時報)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엔화 약세로 앞으로 대일 수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위엔화 평가절하를 계속 미룰 경우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위안화의 평가 절하가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GM社 파업 여파 5·6월 경기지수 하락/GDP 성장률 하락 등 후퇴조짐 곳곳에 미국 경제는 경기선행지수가 두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활황세가 꺾이는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기 조사회사인 컨퍼런스 보드는 4일 6∼9개월 뒤의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가 5월 0.1% 하락한 데 이어 6월에도 0.2%가 내려 10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6월 선행지표가 하락한 것은 GM사 장기파업에 따른 실업수당 신청급증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앞서 미 상무부는 올 2·4분기 국내총생산(GDP)가 1·4분기의 5.5%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1.4%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경기후퇴’를 예고하는 암울한 보도는 곧바로 주가에 영향을 끼쳤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공업지수는 4일 전날보다 무려 299.43 포인트(4.3%)가 빠진 8,487.31로 마감했다. 이같은 낙폭은 사상 세번째 큰것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피치 IBCA는 이날 달러화와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점차 커지고 있는 데다 지난 2년간 환율이 20% 가까이 상승한 만큼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미 경제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는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최근 발표된 각종 지표는 냉각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유럽/‘美 경기전망 불확실’ 주가 동반 하락세/英 제조업 생산도 작년보다 소폭 감소 【런던·본 AFP 연합】 유럽 증시가 아시아와 미국 증시에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경제 악화와 아시아 경제위기,그리고 점차 가시화되는 미국 경기의 냉각이 하반기 경기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5일 상오 런던 주식시장에서는 FTSE 100 지수가 전날보다 2.35%나 떨어지며 5,606.1 포인트를 기록했다. 하루전 미국 뉴욕 증시가 사상 세번째 큰 폭으로 대폭락하자 투자가들이 속속 팔자 주문을 냈다. 영국의 6월중 제조업 생산이 5월과 같은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오히려 0.2% 뒤졌다는 통계국의 발표도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 뉴욕 증시의 폭락은 프랑스에도 즉각 파장을 미쳤다. 4일 프랑스의 CAC 40지수도 1.15%나 하락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도 0.42%가 주저 앉았다. 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도 DAX지수가 0.04% 떨어졌다. ◎홍콩/1·4분기 GDP 성장률 예상 밑돌아/실업률 15년새 최악… 침체 가속화 홍콩 경제가 힘들어 보인다.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관광 수입이 감소됐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아시아 경제위기의 골이 깊어지면서 끝내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홍콩의 조사통계국은 최근 올해 1·4분기 국내 총생산 성장율이 -2.8%였다고 발표했다. 당초 예상했던 -2%를 웃도는 것이다.지난해 4·4분기의 2.7% 성장에 비하면 크게 후퇴한 것이다. 실업율도 크게 높아졌다. 4.5%로 최근 15년이래 최악의 수준. 제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도산 기업은 모두 69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9%나 늘었다. 의류·건설·무역·운송 분야 업체들의 도산이 두드러졌다. 특히 6월 한달에는 무려 161개 업체가 문을 닫아 경기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주가 수준을 항셍지수가 하락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1년사이에 절반 이하로 폭락했고 부동산은 40% 가량 하락했다. 새 내각 출범이후 일본의 엔화가치가 흔들리면서 하락세의 폭이 커지고 있다. 홍콩의 경제 전문가인 K.Y.탕씨는 “2·4분기 경제 수치들이 더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면서 “수출과 서비스 산업이 주축인 홍콩 경제는 다른 아시아 경제가 호전될 때까지는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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