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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전인대 상무위 개막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개막을 일주일 앞둔 25일 전인대 의제 등을 확정하기 위한 상무위원회 제14차 회의가 나흘간의 일정으로 개막했다. 회의에서는 공사법(工司法) 초안과 재활용 에너지법 초안 등을 심의하고 대형 돌발사고 예방 및 안전생산에 관한 국무원 보고를 청취할 예정이다. 상무위원회는 형법 수정안과 사법감정(司法鑑定)관리에 관한 전인대 상무위 결정, 재활용 에너지법 등 3개 법률 초안을 표결로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거주 이전을 제한하는 호구제도를 철폐하는 내용을 담은 호적법 개정안은 이번 회기에 상정되지 않았으며, 타이완 독립을 막기 위한 반국가분열법 초안은 수정없이 전인대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oilman@seoul.co.kr
  • 中 “全人大 뜯어고쳐라”

    |베이징 오일만특파원|다음달 5일 중국의 제10회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3차 전체회의 개막을 앞두고 전인대 개혁론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사이트 신랑(新浪)과 첸룽(千龍)은 23일 중국공산당 이론의 산실인 중앙당교와 중국사회과학원 학자들의 ‘전인대 개혁론’을 비중있게 다뤘다. 보도 자체가 광범위한 정치개혁에 착수한 4세대 지도부가 궁극적으로 시대조류에 맞는 전인대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다. 이들이 제기한 개혁론의 핵심은 전인대가 진정한 민주제도의 요체이자 ‘민의 수렴’의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당교 왕구이슈(王貴秀) 교수는 “전인대는 인민 대표대회지 관원 대표대회는 아니다.”라고 전제, 우선 전인대 구성원(2978명)의 70%를 차지하는 행정관료와 기업단위 지도자의 수를 과감히 줄일 것을 건의했다. 그는 정부관원과 기업단위 영도들이 결코 민의를 대변할 수 없다며 전인대 대표들은 “입보다는 귀가 열린 사람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 리린(李林) 소장은 매년 한번 열리는 전인대를 봄·가을 2차례로 늘리고 20일 미만의 회기도 40일까지로 연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회기가 너무 짧아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연구와 검토가 이뤄지지 못해 ‘졸속 입법’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 전인대 대표 수를 절반으로 줄이되 상무위원회 구성원을 현재 160명에서 300∼4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민대학 정궁청(鄭功成) 교수 등은 “이런 제안 자체가 전인대 제도에 대한 중대한 개혁”이라고 반응했다. 전인대는 중국의 입법기관으로 1급 행정구(성·직할시·자치구)의 지방인민대표대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표와, 인민해방군 및 재외중국인 대표로 구성된다. 임기는 5년으로 정부활동 보고, 헌법개정, 법률 제정, 국가주석·국무원 총리 선출, 국가예산 심의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oilman@seoul.co.kr
  • 왕자루이 ‘북핵라인’ 릴레이 면담

    19일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첫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예방했으며, 방북기간 중 외무성 강석주·김계관 부상 등 북한의 핵문제 주요 라인을 만나게 될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왕자루이 부장은 22일 돌아오기 이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예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친서가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북지원 의사를 갖고 있다면 후 주석의 친서와 함께 전달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무상원조 결정은 양국 고위급이 참석하는 외교행사 때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향후 왕 부장에 이어 리자오싱 외교부장 또는 다이빙궈 외교부 수석부부장, 나아가 후진타오 주석의 방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리창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당시 박봉주 내각총리와의 회담과 10월 중국을 방문한 김영남 위원장과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회담을 통해 북한에 각각 무상원조 보따리를 전달한 전례가 있다. 중국의 2004년 대북 무상원조 규모는 1458만달러였으며 ▲2000년 2756만달러 ▲2001년 6912만달러 ▲2002년 1596만달러 ▲2003년 1088만달러 등으로 추산된다.2001년 원조액 급증은 그해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장 주석이 9월 평양을 찾는 등 정상외교에 따른 결과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편 북한은 왕 부장의 방북 직후 평양발 신화통신을 통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고집하고 북한과의 공존을 거부하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있어 이제 북한이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미국과 양자회담을 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적 입장과 한반도를 비핵화한다는 궁극적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조건과 분위기가 형성되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다는 수사(修辭)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반기문 외교 “중국, 또다른 對北설득 준비”

    반기문 외교 “중국, 또다른 對北설득 준비”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크리스토퍼 힐 주한대사가 17일 각각 중국을 방문,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북한을 6자회담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중국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과 재외공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찬 간담회에서 “중국은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계획 이외에도 다른 ‘이니셔티브’를 취할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현지에서는 차기 방북 인사로 리자오싱 외교부장이나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이 비교적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다이빙궈 외교부 수석 부부장이 거론되고 있으며, 중국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이 직접 방북해 설득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김하중 주중대사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남북한 방문 가능성에 대해 “중국 최고지도자가 오는 11월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할 예정인 만큼, 그 기회에나 또는 회의 이전에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방중한 송민순 차관보는 “‘중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종래보다 좀더 강하게 설득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우리의 입장을 중국측에 전달했다.”고 반기문 장관이 밝혔다. 당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힐 대사도 중국측에 강력한 대북 설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쿵취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북 경제 제재를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與 당권 레이스 본격화

    ‘줄줄이 선거속으로.’ 전국 243개 당원협의회장을 뽑느라 한달 넘도록 홍역을 앓던 열린우리당이 오는 18일부터 시·도별 상무위원, 대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4월 말까지 시·도 중앙위원, 시·도 청년위원, 청년중앙위원, 당의장·상임중앙위원 등 줄줄이 이어지는 선거 일정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새로 갖춰질 체제는 곧바로 4월 30일 재·보선 일정으로 연결된다. 굵직한 일정만 보면 당원협의회 구성은 거의 완료됐고 다음달 2일까지 시·도당 상무위원과 대의원을 뽑게 된다.3월 12∼27일 시·도당 중앙위원도 선출한다. 아울러 3월 2일 상임중앙위원 선거 공고에 이어 10일 예비선거를 통해 4·2 전당대회 최종 후보 8명을 선출,3월 1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물론 당 안팎의 주된 관심은 당의장 등 5명의 상임중앙위원 선거다. 이미 재야파 장영달 의원을 비롯해 ‘친노직계’로 분류되는 염동연 의원과 개혁당 출신의 김원웅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설 연휴를 마친 다음주부터 문희상 의원과 국민참여연대 명계남 의장, 구 당권파인 신기남 전 의장, 소장파의 송영길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당의장 선거의 가장 큰 변수는 1만 3500여명에 이르는 대의원의 정파별 성향에 달려 있다. 이는 ‘조직 투표’가 이뤄질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파별 연대 및 전략 투표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또 중앙위원 5명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 점과 1인2표제까지 더해지면서 정파 내부 후보간 교통정리와 후보별 연대 등을 둘러싸고 더욱더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요구된다. 몇차례의 당내 선거를 통해 촘촘히 짜여진 조직망은 당 의장 선거운동 방식의 변화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당 전략기획실 핵심 관계자는 “몇차례의 선거는 당원들의 정치 참여 훈련 및 다양한 대국민 접촉의 기회로서 당의 기간 조직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기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열사묘역 못간 자오쯔양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의 장례식이 사망 13일째인 29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베이징(北京) 근교의 바바오(八寶)산 혁명열사 공묘(公墓)에서 거행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중국의 권력 서열 4위인 자칭린(賈慶林) 전국정치협상회의(政協) 주석과 허궈창(賀國强) 정치국 위원, 왕강(王剛) 당 중앙 판공청 주임 등 10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장례절차 등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자오의 화장된 유골을 혁명공묘에 안치하지 않고 베이징 자택으로 옮겨와 유골처리는 새로운 불씨로 떠올랐다. 바바오산 혁명열사 공묘 입구에 이르는 1㎞ 도로변에는 1000여명의 정·사복 요원들이 배치,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60대로 보이는 남녀 30여명은 ‘자오쯔양 애도’라는 완장을 두르고 “자오의 영혼은 살아있다. 우리는 부패와 싸울 것이다. 우리는 자오를 위해 울 것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입장을 제지당한 한 시민은 “공안들이 우리들에게 말도 못하게 하고 정문에서 300m나 떨어지게 했다. 우리는 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 나라는 법치가 없다.”고 울먹였다. 바바오산 공묘 정문 입구 주변에서는 일부 외국 취재진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공안들과 몸싸움을 벌였으며 카메라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날 장례식은 예당(禮堂)에서 간단한 영결식을 시작으로 2시간만에 끝났다. 자오의 유해는 공산당기에 덮여 꽃 속에 묻혀 있었고 짙은색 남방에 털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고 홍콩언론들이 전했다. 예당에는 ‘자오쯔양 동지를 침통하게 추모한다(沈痛悼念趙紫陽同志)’는 대형 현수막이 9개 걸렸고 그 아래 백발에 남방을 입고 미소를 짓고 있는 영정이 걸려있었다. 조문객들은 2줄로 예당에 입장,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5명씩 자오의 유해에 작별을 고했다. 현수막 아래에는 당중앙·국무원 판공실과 차오스(喬石) 전 전인대 상무위 위원장, 룽이런(榮毅仁) 전 국가부주석 등 당원로들의 조화가 목격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자오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개혁개방 초반에 중요한 영도 직무를 맡았고 당·인민을 위한 사업에서 유익한 공헌을 했다.”면서 “1989년 봄과 여름이 교체되는 시기의 정치풍파(톈안먼 사태) 중에 엄중한 과오(嚴重錯誤)를 범했다.”고 공(功)과 과(過) 모두를 소개했다. 한편 관영 CCTV는 이날 정오와 7시 뉴스 등에서 처음으로 자오 장례식을 화면없이 간단하게 보도했다. oilman@seoul.co.kr
  • 中 22년만에 女성장 탄생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에서 22년 만에 여성 성장(省長)이 탄생했다. 중국 칭하이(靑海)성 인민대표대회는 22일 제10기 제3차 전체회의에서 쑹슈옌(宋秀岩·49) 칭하이 부서기를 성장에 선출했다고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다. 쑹 성장은 전국 31개 성·시·자치구에서 유일한 여성 성장이 됐으며 지난 83년 장쑤(江蘇)성 성장에 임명된 구슈롄(顧秀蓮)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격)에 이어 두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쑹 성장은 중국 청년정치학원(1985∼1987년)을 거쳐 중앙당교 영도 간부반에서 경제관리를 전공했다. 쑹 성장은 “어릴때 부친을 따라 칭하이에 온 인연으로 ‘칭하이 인민의 딸’이 됐다.”며 “경제 개발과 부유해지려는 열망이 누구보다 강렬한 칭하이 주민들의 소원을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oilman@seoul.co.kr
  • 中 ‘자오 조문’ 다시 통제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당총서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조문 허용 이틀만에 중국 당국이 다시 엄격한 통제를 시작했다. 21일 오전 10시30분쯤 자오쯔양 빈소가 있는 베이징(北京) 도심 왕푸징(王府井) 부근의 ‘푸창(富强)후퉁(胡同·골목)’ 입구에선 실랑이가 한창이었다.2차선 도로변 중간쯤에서 후퉁으로 들어가는 골목 출입구 어귀에 진을 친 50여명의 사복차림 경찰들은 출입을 요구하는 조문객들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들은 “가족과 친·인척 이외에 일반인은 조문을 할 수 없다.”며 가로막았고 이에 항의하는 조문객들에게 “상부의 지시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먼 친척뻘이 된다.”고 주장하는 조문객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준비한 친인척 리스트와 일일이 대조하는 등 물샐 틈 없는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다. 부근에서는 사복경찰 수십명이 거리를 오가며 조문객들의 동향을 살폈고 빈소 출입이 막힌 조문객들 일부는 꽃을 든 채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발을 굴러야 했다. 취재진은 물론 일반인들의 사진촬영도 엄격히 통제됐다. 사진촬영을 시도하던 한 조문객이 경찰에게 필름을 빼앗기는 모습도 보였다. 붉은색의 ‘즈안(治安)’ 완장을 찬 한 주민은 “어제 하루만 3000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몰려들었고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문상객들이 밀려들고 있지만 대부분 발길을 돌렸다.”며 자오쯔양 추모 열기를 전했다. 중국 당국의 조문 통제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밀려드는 조문객들을 중심으로 시위 등의 소요로 발전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곳 주민들은 “당의 영도자들이 오늘 문상을 온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며 엄격해진 통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 공산당은 자오 전 당 총서기 사망에 따른 돌발 사건과 비상사태를 처리하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가 조장을 맡고 법률과 통제를 담당하는 보수파 뤄간(羅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부조장을 맡는 긴급사태 지도소조(小組)를 구성했다고 타이완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oilman@seoul.co.kr
  • [자오쯔양 사망] 실용노선 외길… 中개혁 ‘야전사령관’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공산당 전 총서기가 17일 8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자오 전 총서기는 이날 오전 7시1분 베이징(北京) 시내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병인 호흡기와 심혈관 질환으로 숨졌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실각 이후 가택 연금돼온 자오 전 총서기는 결국 16년 만에 역사적 재평가는 물론 복권도 이루지 못한 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자오쯔양의 사망으로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톈안먼 사태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반혁명 폭란(暴亂)’으로 규정한 중국 당국의 평가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그의 85년 삶에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과 권력투쟁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신으로 중학 중퇴의 학력을 딛고 최고 권좌인 당 총서기에 올랐지만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았다. 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리펑(李鵬) 총리 등 강경파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다가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 쓴 것이다. 그해 5월19일 새벽 비가 뿌리는 톈안먼 광장을 찾아가 눈물로 학생들의 시위 해산을 호소한 것이 TV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학생 제군들은 아직 젊다. 살아서 중국의 4대 근대화를 실현하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간곡한 설득 장면은 아직까지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자오의 생애는 실각→복권→출세가도→실각이 반복되는 극적인 인생으로 점철된다.1967년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됐다 4년만인 1971년 네이멍구 자치구 당서기로 복권, 폭넓은 실용주의를 익힌다.75년 쓰촨(四川)성 당서기 시절 ‘식량을 원하면 자오쯔양을 찾아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농업개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도입한 자유시장의 일종인,‘가정생산청부제도(家庭生産請負制度)’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그는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정치국위원, 상무위원, 부총리, 총리로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물론 덩샤오핑의 전폭적인 지원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80년 총리,87년 당총서기에 올라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오른팔로서 개혁·개방의 ‘야전 사령관’으로 맹활약했다. 천윈(陳雲)과 리셴녠(李先念) 등 당 보수파들의 치열한 견제 속에서 폭넓은 정치·경제개혁을 도입하는 등 고도성장의 레일을 깐 인물로 통한다. 덩샤오핑은 평소 ‘하늘이 무너져도 자오쯔양과 후야오방(胡耀邦)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말로 각별한 신임을 표현했지만, 결국 ‘톈안먼 사태’의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실각 이후 베이징의 번화가 왕푸징(王府井) 부근 자택에서 연금생활에 들어간 그의 ‘자유’를 위해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홍콩과 서방을 중심으로 연금해제를 촉구하는 서한은 100만통을 넘었고,1998년에는 홍콩 인권단체에 의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여행이 허가된 그는 베이징 인근의 순이(順義) 골프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말년에는 홍콩과 서방언론 사이에서 사망설이 제기되는 등 온갖 풍설을 겪었고 결국 “6·4운동은 재평가될 것”이라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oilman@seoul.co.kr ■ 자오쯔양 연보 ▲1919년 11월 허난(河南)성 화(滑)현 출생 ▲1932년 중학 중퇴후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가입 ▲1938년 중국공산당 입당 ▲1948년 위어(予鄂)지구 당위원회 서기 ▲1951년 광둥(廣東)성 인민정부 토지개혁위원회 부주임으로 토지개혁 주도 ▲1956년 중국공산당 광둥성위원회 서기 겸 광둥성 군구(軍區) 제1정치위원 ▲1963년 광둥성 제1서기 겸 당 중앙 중남국 서기 ▲1967년 문화대혁명으로 비판·숙청 ▲1971년 복권 ▲1975년 쓰촨(四川)성 당위원회 제1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청두(成都)부대 제1정치위원으로 농업진흥과 기업자 주권확대에 현저한 성과 거둠 ▲1980년 당 중앙정치국 상임위원 및 국무원 총리 ▲1987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임 ▲1988년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임 ▲1989년 5월19일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농성중인 학생들 방문, 너무 늦게 온 것 사과. 마지막 공식행사 ▲1989년 6월24일 6·4 톈안먼 사태 때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숙청, 공직 박탈당한 채 연금조치 ▲2005년 1월17일 지병으로 베이징에서 사망
  • 리덩후이 불똥… 中·日관계 급랭

    |도쿄 이춘규특파원|타이완 독립주의자인 리덩후이(李登輝) 전 타이완 총통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중국과 일본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 일본에 입국한 리 전 총통이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관광 외에 정치적인 행보를 취하고, 내년 신정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올해처럼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할 경우 양국간 긴장국면은 절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리 전 총통을 ‘분열주의자’로 비난해온 중국 정부는 리 전 총통이 일본에 입국한 즉시 보복조치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즉각 반발 성명을 냈다. 중국의 거듭된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비자를 발급해준 일본 정부는 중국측 반발에 대해 후쿠다 관방장관이 나서 “사인(私人)의 관광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리 전 총통의 발언도 중국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그는 나고야행 비행기 안에서 동행기자들이 중국의 항의 문제를 질문하자 “타이완은 중국의 영토가 아닌 만큼 (항의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을 다시 찾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리 전 총통은 왕이(王毅) 주일본 중국대사가 자신을 “전쟁 메이커가 될지 모른다.”고 비난한 것에는 “중국은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해 멋대로 말한다.”며 불쾌해했다. 리 전 총통은 1943년 나고야의 교토제국대학으로 유학, 농림경제학을 전공했다. 일본군에 입대해 육군 포대에 배속됐으며 소위로 종전을 맞았다. 일본어가 유창하며 ‘무사도 해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 “견습장교시절이 그립다.”고도 말했다. 그의 일본 방문에 대해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일본이 대국적 중ㆍ일 관계를 중시, 진지한 조치를 강구하고 악영향을 막을 것을 요구한다.”며 “중국은 향후 사태전개를 주시하겠으며 보다 강력한 대응을 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보복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일본언론들은 리 전 총통이 일본에서 정치적 행보를 할 경우 양국관계는 더욱 험악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1년 일본 방문 때도 신병 치료에 그치지 않고 일본 국회의원과 면담하고 담화까지 발표했었다. 중국은 보복조치로 리펑(李鵬) 당시 전국인민대표자대회 상무위원장의 방일을 무기 연기했었다. 한편 티베트 독립 움직임의 상징으로 중국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달라이 라마가 내년 4월 일본을 방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가능성도 점쳐져 중·일관계는 긴장이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달라이 라마는 198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었다. taein@seoul.co.kr
  • 鄭통일·우방궈 6자회담 논의

    중국을 방문 중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1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나 6자회담의 조기 재개와 남북관계 개선, 한·중 우호증진 방안 등 양국 현안을 협의했다. 정 장관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원칙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북한은 지금이 현명한 선택을 할 적기”라는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 위원장은 이에 대해 “현재 6자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지만 양국은 관련국들의 불신이 해소될 수 있도록 잘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에게 보내는 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친서에는 6자회담에 북한의 조속한 참여를 위한 중국측의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또 내년 후 주석을 한국에 공식 초청한다는 노 대통령의 뜻도 함께 전했다. 정 장관은 앞서 중국 공산당의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과 회담을 갖고 “북한이 6자회담에 조기에 참여함으로써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협조를 당부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반분열법 vs 반병탄법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당국이 타이완(臺灣)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유사시 무력동원이 가능한 ‘반분열(反分裂) 국가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타이완 집권 민진당이 ‘반병탄’(反倂呑)’ 법안 제정 등 강경대응 방침을 정해 양안간 갈등이 또 다시 증폭되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가 지난 18일 상무위원회 위원장단 회의에서 이 법안 초안을 공식 안건으로 채택한 데 이어 오는 25∼29일 열리는 제10기 제 13차 상무위원회에서 승인할 방침이라고 19일 보도했다. 중국당국은 내년 3월로 예정된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에서 반분열법을 정식 통과시킬 예정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이 법안과 관련, 타이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국가 재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법은 또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의 독립 움직임을 진압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일명 ‘통일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타이완의 독립 기도 움직임에 쐐기를 박고, 유사시 무력 동원의 근거로 삼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마카오 주권회복 5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마카오를 처음 방문했다. 후 주석은 이번 기념식 연설에서 타이완 독립을 겨냥한 ‘반분열법’ 내용을 공개하고 타이완과의 평화 통일 중요성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분열법 추진배경 화동사범대 교수이며 전인대 위원인 저우훙위 교수가 지난 3월 제10기 전인대 제2차 전체회의에서 이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식 발의했다. 지난 5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영국 방문 중 화교들의 환영행사에서 타이완과의 통일법 제정 건의를 받고 진지한 검토를 다짐했다. 이후 중국은 천 총통의 독립 기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총체적 반격의 일환으로 반분열법 제정을 추진해 왔다. ●타이완 반응 민진당의 반응은 강경하다. 전문가들은 반분열법 제정이 오히려 타이완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 천 총통 등 강경파들의 입지를 넓힐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민진당 차이퉁룽(蔡同榮) 입법위원은 “중국이 반분열법을 제정한다면 2300만 타이완 국민이 국민투표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케 하는 반병탄법 초안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다. 뤼슈롄(呂秀蓮) 부총통은 “타이완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중국의 일부분이 아니며 중국의 반분열법안 제정이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당은 양안관계의 급냉각을 우려하며 “민진당의 성급한 독립 움직임이 대륙의 반분열법 제정을 초래하고 있다.”며 천 총통을 간접 비난했다. 친야당 계열인 친민당도 “향후 50년간 통일, 독립 모두 반대하며 현재의 평화상태를 유지하는 ‘양안평화촉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과 타이완 모두 일방적으로 현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대화를 지속하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견을 해결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中 공산당원 30만명 사상조사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 공산당이 비밀리에 당원 30만명에 대한 사상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공산당 조직부는 지난 2000년부터 장쩌민(江澤民) 당시 당총서기와 후진타오(胡錦濤) 상무위원의 공동지시에 따라 30만명의 당원을 선별해 사상조사를 실시했다고 주간지 랴오둥팡(瞭望東方)을 인용, 관영 신화사가 24일 보도했다. 공산당 중앙 조직부의 당원 사상조사 결과, 적지 않은 당원들이 사상과 신념이 동요되고 있으며 조직규율 체계가 상당부분 이완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보고서는 2002년 11월에 열린 공산당 16차 전대에서 ‘당원 선진교육’의 주요 근거로 채택됐다고 신화사가 전했다. 당 중앙은 후진타오 당총서기 지시에 따라 지난 10월 당원들의 사상교육을 전담할 ‘당원선진성 교육판공실’을 설립, 내년 1월부터 대대적인 당원교육을 실시할 것이라고 신화사가 전했다. 이에 앞서 2003년 1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허궈창(賀國强) 조직부장을 중앙당 건설사업영도소조 조장으로 임명했으며 1월 실시될 사상교육에는 12개 성시와 7개 중앙 국가기관 등 5만 2000개 하부조직의 총 103만 5000여명의 당원이 대상이다. 사상 교육은 ‘3개 대표론’을 중심으로 당의 집정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신화사가 덧붙였다. 한편 30만명 당원 사상 조사 결과를 토대로 충칭(重慶)시는 “일부 공산당원의 신념의 동요는 엄중하다.”고 보고했고 쓰촨(四川)성 당 건설연구소조는 “많은 당원들은 정치이론학습에 관심이 없고 모든 정력을 상부 지도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oilman@seoul.co.kr
  • 쉬어가기˙˙˙

    ‘추미(球迷)’로 대변되는 중국의 극성·난동 관중을 엄벌하는 ‘훌리건 처벌법’이 곧 발효될 전망. 중국일보는 26일 “당국은 경기장에서 난동이 예상되는 관중을 가려내 최대 20일간 구금, 또는 5000위안(약 68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을 마련했다.”면서 “지난 22일 막을 올린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법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보도. 법안에 따르면 상대팀을 자극하는 슬로건을 외치거나 심판·선수에 대한 직·간접 위협 행위는 물론 난동을 부추길 만한 내용을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리는 행위까지 처벌받게 된다고.
  • 中 물권법등 사유재산법 심의 착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이 사유재산권 보호와 관련, 핵심 법안인 물권법(物權法) 초안을 공개했다. 지난 22일 개막된 중국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상무위원회 제12차 회의는 사유재산 보장과 관련된 물권법 등 주요 법안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다고 24일 보도했다. 관영 신화사는 심의 중인 물권법 초안은 ▲개인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부동산과 동산의 소유권을 향유하고 ▲국가는 개인재산의 상속권과 기타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며 ▲국가는 개인의 저축과 투자, 수익을 보호한다는 등의 내용이라고 전했다. 물권법 심의에 참여하고 있는 중국정법대학교 장핑(江平) 총장은 “소유권의 보호는 물권법 제정에서 출발하며 중국의 첫번째 물권법은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사회 보장제도의 중대한 발전”이라고 전제,“이 법이 제정되면 개인 사유재산권에 대한 각 방면의 이익보호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총 9권 1209항의 중국 법안 사상 최대 분량의 하나인 이 법안은 내년 3월 개최되는 제10기 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사인간의 재산관계를 규정하는 물권법은 헌법에 명시된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경제 질서를 유지하는 새로운 토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이 밝혔다. 신화사는 “물권법의 등장은 인민들의 사유재산을 보호,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전을 보다 빠르게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oilman@seoul.co.kr
  • 김영남 “北 핵관련 대화 계속할 것”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사흘 동안의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을 공식 방문하고 있는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18일 핵 문제와 관련, 북한은 대화를 더 나눌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방문 첫날인 이날 우방궈(吳邦國)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지만 북한측은 대화를 통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법을 찾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우 위원장이 “6자회담 과정이 현재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으나 참가국 모두 성실과 인내, 유연성을 보여준다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협상 지속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한 데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거부했으나 관영 중국일보는 “6자회담을 재정비하려는 노력이 이번 회의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중국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춘(中關春)을 방문,283개 첨단기술 회사의 창업을 지원한 중관춘 국제창업보육사를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방문 이틀째인 19일 베이징 근교 모범 농촌마을인 팡산(房山)구 한춘허(韓村河)를 방문한 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oilman@
  • 中 사유재산권 법제화 착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이 사유재산권 보호를 구체적으로 법제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2003년 3월 헌법개정을 통해 ‘사유재산권 침해 불가’를 명문화한데 이은 시장경제 활성화 후속조치다.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는 18일 개막하는 제10기 전인대 6차 상무위원회에서 동산과 부동산을 망라한 사유재산권 법안을 심의키로 했다고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가 17일 보도했다. 이번 사유재산권의 법안에는 ▲국가는 법에 근거한 사유재산권 및 승계 보호 ▲사유재산권 수용, 이용시 보상 등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헌법은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제정했지만 구체적인 법안이 성안되지 못해 실제적인 법 집행에서 개인의 재산권 보호가 미흡했었다. 제9기 전인대가 지난 2002년 심의한 바 있는 이 사유재산권 관련 법안은 9권,1209항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이번 전인대에서도 3∼4회의 독회로는 심의가 불가능할 전망이다. 중국 법안 사상 최대 분량의 하나인 이 사유재산권 법안은 1차 심의후 내년 3월 개최되는 제10기 전인대 제3차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사유재산 법안은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개인간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기위해 작성됐으나 아직 전인대에서 정식 통과되지 못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중국정부는 사유재산권 법안 제정 이외에 기존의 민법과 상법, 부동산·증권 관련법 등에 사유재산 불가침 정신을 살리기 위한 광범위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정부는 사유재산권 불가침 조항을 헌법에 명문화시켰지만 이번 법제화를 통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불안해하던 민영 기업과 민간 기업인에 대해 확실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중국은 지난 1999년 사영기업을 국유산업의 부속물이 아닌 경제의 핵심 요소로 선언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고 이후 사적 부문이 중국 경제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히 높아가자 사유재산 보호라는 보다 진일보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oilman@seoul.co.kr
  • 후진타오 군부장악 가속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권력장악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 19일 장쩌민(江澤民) 전 중앙군사위 주석으로부터 군권을 넘겨받은 후 주석이 빠른 속도로 군권 장악에 나서는 것이다. 후 주석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취임 1주일 만인 지난 25일 인민해방군 인사를 단행했다.베이징 인민해방군 본부에서 장딩파(張定發) 해군사령관과 징즈위안(靖志遠) 제2포병 사령관을 상장(중장)으로 승진시켰다.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기술연구소 교수는 “이번 승진 인사는 후 주석이 군부를 완전 장악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후 주석은 친민(親民) 이미지를 바탕으로 ‘군심(軍心) 잡기’에도 착수했다.지난 25일 승진 인사 단행 직후 베이징군구의 일반사병들과 함께 뮤지컬을 관람했다.하이뎬(海淀)구에 있는 중국극원(中國劇院)에서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가무단이 창작,연출한 ‘한 병사의 일기’를 관람한 후 군수뇌부와 사병들을 격려했다. 이날 뮤지컬 공연에는 궈보슝(郭伯雄),차오강촨(曹剛川),쉬차이허우(徐才厚) 등 중앙군사위 부주석 3명과 중앙군사위원,해방군 4개 총부 주임,베이징군구 육·해·공과 무장경찰의 일반 사병 수백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당·정·군을 장악한 후 주석에 대한 장 전 주석 ‘심복’들의 충성 맹세도 잇따르고 있다.장쩌민의 오른팔 격인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은 지난 22일 후 군사위주석 취임 후 공개적으로 지지 발언을 했다. 중국의 최고 정치 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를 이끄는 자칭린(賈慶林) 주석 역시 지난 25일 제10기 정협 7차 상무위원회 폐막식 연설을 통해 후 주석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장의 군사위 주석 사임을 예측해 화제를 모은 타이완 단장(淡江)대학 ‘국제문제전략연구소’ 린중빈(林中斌) 교수는 “쩡칭훙 등 측근들이 장쩌민의 권력 약화 및 후 주석의 부상 등 중국 권력 추이를 읽고 후와 대항적인 국면에 처하지 말아야 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oilman@seoul.co.kr
  • [장쩌민 전격퇴진] 장쩌민은

    [장쩌민 전격퇴진] 장쩌민은

    19일 중국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사임한 장쩌민(江澤民)은 1989년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에 오른 뒤 15년 간 중국의 1인자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1926년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에서 태어난 그는 스무살이던 46년 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이듬해에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 전기과를 졸업했다. 55년 옛 소련의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나 1년 동안 자동차기술을 공부한 뒤 돌아와 자동차공장 공장장,연구소 부소장 등을 거치며 기술관료로 성장했다. 그가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85년 7월에 상하이(上海) 시장이 된 것이었다.그는 상하이시를 중국 최고의 경제ㆍ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키며 시(市) 당서기로 승진했고 다시 그 공로를 인정받아 87년 공산당 정치국원에 당선됐다. 춘제(春節) 때마다 상하이에 들르던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얼굴 알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던 그는 89년 6월 정치국 상무위원에 당선됐다.곧 이어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진압에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당총서기가 실각하면서 당 총서기에 임명됐다.당의 원로들은 그가 상하이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를 조기 진압한 사실과 공산당 간부의 자제들 모임인 태자당(太子黨) 출신이라는 점에서 개혁 성향이 강한 자오쯔양을 대신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그는 그해 11월 덩샤오핑이 맡고 있던 공산당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물려받았고 이듬해 4월에 국가군사위 주석직,93년 3월에는 국가주석까지 맡으며 당(黨)ㆍ정(政)ㆍ군(軍)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다. 장쩌민은 2002년 11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 부주석에게 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준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국가주석직을 이양했으며 이번에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넘겼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장쩌민 전격퇴진] 후진타오는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총명하면서도 온화하고 겸손하다는 평을 듣는 후진타오(胡錦濤·61) 주석은 일찌감치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의 뒤를 잇는 중국 제4세대 지도자로 꼽혀 왔다. 그러나 후 주석은 린뱌오(林彪),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의 부침을 목격했기 때문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후 주석은 1942년 12월 상하이에서 태어났으나 본적은 안후이(安徽)성 지시(績溪)현이며 어린 시절을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보냈다. 1959년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에 입학한 그는 1965년 졸업후 1968년까지 정치지도원으로 재직했으며 1966년 이후 10년간 계속된 문화대혁명에 참가했다. 간쑤(甘肅)성 건설위원 시절 간쑤성의 최고권력자 쑹핑(宋平) 당서기의 눈에 들어 승진가도를 달리다 쑹핑의 천거로 1982년 후야오방 총서기에 의해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지도자로 발탁됐다.그러나 태자당과의 갈등으로 구이저우(貴州)성 당서기로 좌천되기도 했다. 쑹핑은 당 원로들에게 후 주석을 제4세대 후계자로 추천했고 덩샤오핑은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후 주석을 장쩌민 이후의 지도자로 선정하고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했다. 후 주석은 1998년 3월 국가 부주석직에 오른 데 이어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직까지 차지,‘차세대 지도자’의 지위를 굳혔으나 장쩌민을 자극하지 않으려 정치적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여 왔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개혁보다 안정적인 개혁을 추구해온 후 주석의 과거행보를 들어 향후 행보도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강인한 성격과 국수주의적 성향,중화패권주의 지향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oilm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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