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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R국회 여권이견/보선이후 「미묘한 분위기」 표면화

    ◎“8월에 열자”“무리수 반대”/“현안없는 달… 부담줄일 적기”/소집론/“쟁점 부풀려 부작용 커진다”/연기론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의 국회 비준동의안의 처리 문제를 놓고 여야 사이는 물론 여권 안의 분위기마저 심상치 않다. 정부와 민자당의 이견 정도로 비쳐졌던 양상이 민자당 내부의 계파갈등으로 까지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조기처리의 명분을 인정하면서도 계파의 구분 없이 모두가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그러나 지난번 「8·2 보선」이 끝난 직후부터 문정수사무총장,강삼재기조실장등 민주계를 중심으로 이달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도 높게 나오기 시작했다.이에 대해 김종필대표와 이한동원내총무등 민정·공화계측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이러한 분위기는 비준안을 서둘러 처리한 뒤에는 당정개편이 있을 것이라는 설과 맞물려 더욱 미묘한 국면을 만들고 있다. 문총장은 이 문제에 대해 『원래 정부는 6,7월쯤 처리되기를 희망했지만 그 때는 농촌대책도 안 나오고 원구성및 국회법 개정문제도 있고 해서 미뤄온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문총장은 『야당이 새해 예산안과 연계시키면 국회가 파행할 것이고 이는 12월까지 가도 마찬가지』라고 정기국회 또는 12월 임시국회에서의 처리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론을 제기했다.강기조실장은 『정부측은 8월처리라는 기존의 방침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간접화법을 써 가며 조기처리를 주장하고 있다.그는 국회의 파행이 예상되더라도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정부측의 방침에 동조했다. 이에 대해 김대표는 4일 『「위대한 당 고위층」에게 물어보라』고 민주계 인사들을 꼬집으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마치 국정을 책임지는 듯한 발언을 삼가야 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이한동총무는 『농어촌지원대책이 충분한 것인지등 정국 전반을 종합해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고 조기처리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UR비준동의안은 언제 처리하더라도 여야가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는 이견이 없다.그러나 현안이 없는이달에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계의 주장이다.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면 최대현안인 새해 예산안과 맞물려 시종 민주당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예산안 처리만 하더라도 여야의 원만한 합의로 처리하기 어려운 판국에 UR문제까지 해결하려면 엄청난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의견은 이렇다.우선 임시국회를 여는 문제로 야당과 논란을 벌이다 보면 실제 이상으로 쟁점이 부풀려지면서 국회를 열기도 전에 정치적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한다.그렇다고 여당만으로 단독국회를 여는 방안도 현실적으로 수월하지 않다.게다가 비준동의를 마친 나라는 20여개국에 불과하고 그나마 주요 선진국은 없다.민자당 안에서도 농촌출신 의원들은 계파에 상관 없이 조기처리에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민자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자칫 정기국회까지 파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민주당은 『8월처리를 위한 단독국회 소집은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박지원대변인은 『정부·여당은 올 정기국회가 예산안은 물론 많은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초쯤 처리한다는 것은 지방자치선거등을 고려하면 더욱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휴가에서 돌아올 김영삼대통령의 단안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점차 짙어져 가고 있다. ◎조직 대수술 착수한 민자/청년협·지역장·반책 등 「군살」 정비/시도지부장 경선… 권한 대폭 강화 민자당이 중앙당과 시도지부,지구당을 망라하는 조직체계의 대수술에 착수했다. 이 수술은 8·2보궐선거에서 드러난 조직운영상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의미를 넘어 집권중반기 집권당의 세력재편 방안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정수사무총장은 6일 『그동안 보선 때문에 미뤄왔던 사고지구당의 조직책 선정및 부실지구당의 정비는 물론 내년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을 앞두고 지구당·시도지부및 중앙당의 조직관리를 혁신하기 위한 근본개선안을 이달말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자당은 이를 위해 8일 「당조직발전위원회」를 가동시킬 방침이다.최재욱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이 기구는 강삼재기조실장과 장영철경북도지부장,유승규강원도지부장,김기수의원,정창화대구수성갑 지구당위원장등 8·2보선의 실무주체들은 물론 지난 3월 부천소사 지구당위원장으로 영입된 재야노동계 출신의 김문수씨등 13명으로 구성,당의 구석구석까지 「제로베이스」에서 조직진단을 할 예정이다. 당지도부가 구상하는 수술의 초점은 「움직이지 않는 군살」을 완전히 잘라 내는 것. 지난 보선에서 보듯 지구당 산하에 읍면동별협의회,여성·청년협의회,지역장,관리장,반책등으로 짜여진 여당의 복잡한 일선조직이 개정선거법 아래서 지난날처럼 움직이기를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다. 민자당은 지난 3월 새 정치관계법이 마련된뒤 지구당운영을 협의체적인 운영위중심으로 바꾸고 다른 조직들은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도록 개편을 독려했으나 실제 성과는 거의 없었다. 대구 수성갑과 경주시보선을 현지 지원했던 장영철경북도지부장은 『돈과 지시에 익숙한 하부 조직에서 의식의 전환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람들로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게 나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민자당은 따라서 이달말까지 자리가 비어있는 서울 성동병등 14개 사고지구당의 조직책을 선정하고 14∼15곳의 부실지구당 위원장들을 교체한 뒤,이들 지구당부터 선거때 확실한 자원봉사자로 뛸 수 있는 유기적 관리체제를 시범적으로 가동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중앙당과 지구당의 연락기능에 머무르고 있는 시도지부장의 실질적 요새화도 개편의 주요 목표이다. 중앙당의 지시와 지역정서를 등에 업은 지구당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15개 시도지부장을 3선이상의 중진으로 임명,실질적인 야전사령관으로 격상시킬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시도지부장을 경선으로 뽑아 당연직 당무위원으로 임명하고 지구당위원장에 대한 추천권및 지방선거공천자 제청권도 줄 방침이다. 46명으로 구성된 당무회의도 3당합당 때의 계파별 나눠먹기를 탈피,지역기반이 있는 각 계파의중진과 장외실세로 머물고 있는 민주계를 포함,35명 안팎의 명실상부한 당내 실세기구로 변모시킬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같은 조직개편의 종착역은 8월말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비준동의안의 처리에 이어 예상되는 당정개편과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질화된 당무회의를 바탕으로,그동안 다수파이면서도 당과 거리감을 느껴온 민정계의 중진을 사무총장에 임명하고 정책및 정치쟁점에 대한 대야협상에서 여권핵심부의 실질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계중진을 원내사령탑에 임명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표를 대외적 대표성을 갖는 상징적 존재로 두고 전당대회의 수임기구인 중앙상무위 위원을 줄이는 대신 중앙상무위 의장을 명실상부한 준대표로서 당내통합의 구심역을 말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일성영결식/김성애 14위로 참석

    【내외】 19일 평양 금수산의 사당에서 치러진 김일성영결식에 김일성으 처인 김성애가 서열14위로 참석,주목되고 있다. 북한방송들이 9일 보도한 영결식 참석자 명단에 따르면 지난 9일 발표된 2백73명의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서 1백4위에 올라있던 김성애가 노동당정치국원겸 평남도당책임빗 서윤석의 뒤를 이어 14위로 거명됐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의 참석여부는 밝혀짖 않았다. 1김정일 2오진우(노동당 정치국상무위원겸 인민무력부장) 3강성산(노동당 정치국원겸 정무원총리) 4이종옥(노동당 정치국원겸 부주석) 5박성철(〃) 6김영주(〃) 7김병식(사회민주당 위원장겸 부주석) 8김영남(노동당 정치국원·부총리겸 외교부장) 9최광(노동당 정치국원겸 군총참모장) 10계응태(노동당 정치국원겸 당비서) 11전병호(〃) 12한성룡(〃) 13서윤양(노동당 정치국원·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14김성애(미망인) 15김철만(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16최태복(노동당 정칙구 후보위원겸 당비서) 17최영림(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부총리) 18홍성남(〃) 19양형섭(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20홍석형(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21연형묵(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자강동당책겸 인민위원장) 22김기남(당비서) 23김국태(〃) 24황장엽(〃) 25김중린(〃) 26서관희(〃) 27김용순(〃) 28김환(〃) 29김복신(〃) 30김창주(〃) 31김윤혁(〃)
  • 「공식조문」 중국 등 10여개국/조문으로 본 북한외교

    ◎「국가원수 직접 조문」은 6국뿐 이념적·경제적으로 황폐한 집단이 국제적으로 대접받기란 어렵다.그 지도자도 마찬가지다.어려울 때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라고 해봐야 기껏 손에 꼽을 정도다.지금 북한이 놓인 형편을 보면 그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북한은 지금 외국으로부터 조문을 받고 있다.그런데 그 조문이라는 것이 별로 신통하지 못하다.비교적 격식을 깍듯이 갖춰 애도를 표한 나라라고는 중국과 그밖의 몇몇이 고작이다.그것도 국가원수나 정부수반이 직접 북한대사관을 찾은 나라는 아주 드물다.북한으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공식 조의를 표한 나라는 중국·러시아·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쿠바·리비아·인도·이란·캄보디아·태국·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이집트·폴란드등 10개 국을 조금 넘는다.1백3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수교국 숫자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다만 태국이 조문대열에 낀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동구권 국가도 러시아·우크라이나·폴란드등3개국이 고작이다.노동당국제부장과 외교부장이 연례행사로 방문하다시피 하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다.이집트와 리비아는 아랍국가다.아프리카국가로 인정하기 힘들다. 중국은 등소평의 애도성명과 함께 강택민국가주석·이붕국무원총리·교석전인대상무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띄웠다.중국은 또 강주석이 직접 호금도를 비롯한 당·정 고위간부를 거느리고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호금도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주목되는 인물.최고지도자와 3부 요인,그리고 다음 세대의 실력자까지 모두 나서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었다.혈맹으로서의 예를 갖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러시아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조전을 보낸 사실조차 쉬쉬하다가 이틀 후에야 비로소 공개했다.옐친대통령은 지난 13일 조전을 전달했으나 러시아의 관영매체들은 15일에야 그같은 사실을 보도했다.러시아는 중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한과는 꽤 가까운 나라.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훨씬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다.러시아 말고 동구권에서는우즈베키스탄이 정부 각료를 보내 조문했을 뿐 우크라이나도 애도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냈다. 쿠바가 취한 태도 역시 북한으로서는 섭섭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은 조전만 치고 아바나 주재 북한대사관에는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장군을 보냈다.카스트로는 호지명이 베트남의 공산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하노이에 탕로이(승리)라는 이름의 호텔을 지어 선물할 만큼 두터운 형제애를 보이기도 했던 독재자.김일성과의 친분도 두터웠다.김일성의 죽음에 호들갑을 떨었어야 당연하지만 왠지 너무 조용하다.쿠바의 예를 참고해서인지는 몰라도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평의회의장도 직접 나서지 않고 카루비대령을 북한대사관에 보내 조문 했다. 이밖에 이스라엘과의 전쟁때 북한으로부터 조종사를 지원받아 김일성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온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도 현지 북한대사관에 의전비서관을 보내는데 그쳤다.인도네시아·폴란드는 그보다는 직위가 높은 외무장관을 통해 조의를 나타냈지만 거기가 거기라고 할 수 있다.국가원수 또는 정부수반이 직접 조문한 나라는 인도·이란·캄보디아·태국·방글라데시 정도다.
  • 오진우­최광/「김정일체제」 군부의 양대 버팀목

    ◎혁명1세대… 김일성 권력투쟁 1등공신/김 생전 한번씩 「딴마음」… 계속 충성 주목 오진우와 최광.김정일이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위치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이다. 오진우와 최광은 모두 김일성과 함께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혁명 1세대」이다.이들은 해방후 국내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이 박헌영의 국내파나 김두봉의 연안파,허가이의 소련파를 꺾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던 버팀목이었다. 둘 가운데서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김일성이 생전에 김정일 후계체제를 위탁한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함경남도 북청출신으로 올해 77세인 오는 김정일과 함께 둘밖에 없는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군부의 제1인자이다. 오보다 한살 아래인 군부의 2인자 최광 군총참모장은 함경북도 출신으로 권력서열 8위이다.6·25때 제13사단장을 맡을 만큼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최광의 처인 전여맹위원장 김옥순은 김일성의 전처 김정숙이 죽은뒤 김정일·경희 남매의 유모 역할을 맡아 두 사람과 각별한 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김일성 생전에 김씨 부자에 대한 두사람의 충성심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한뒤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그대로 이어질지는 단언할 수 없다.일부에서는 군의 두 원로가 군복무경험도 없는 김정일을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오진우와 최광 사이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오가 김일성의 결정적 신임을 받게 된 것은 69년 1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인민군당 제4기 4회 총회에서 부터다.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었던 오는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에 불만을 품은 민족보위상(국방상) 김창봉과 7군단사령관 정병갑,해군사령관 유창권,함흥주둔군사령관 김양춘등 「항일연군」 출신의 군수뇌부를 반혁명 음모로 몰아 숙청하는 작업을 지휘했다.그리고 이때 숙청된 인물들 가운데 최광이 포함됐던 것이다.최는 그러나 탄광노동자로 좌천된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심으로 김일성부자를 감격시켜 김정일후계를 공식지명한 80년 6차 당대회에서 복권됐다.오는 80년대초까지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하는데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던 오는 84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상태에 빠졌다.그때 김정일은 특별기로 오를 소련으로 수송,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고 한다.오는 그뒤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정책의 전개방향(김일성 사후:7)

    ◎생활 향상­체제 유지 「조화」에 고심/중 등 우방지원 줄어들어 개방 불가피/김달현 등 앞세워 「중국식」 추진 가능성 김일성의 죽음은 사실상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와 그렇게 큰 관련이 없다.김일성의 생전에도 북한은 「자력갱생」을 부르짖으면서도 외국자본 유치에 관심을 기울여왔다.전면적인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경제정책에는 대외부문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조총련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 말고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지난 84년 합영법의 제정은 그같은 경향을 잘 말해주는 예다.북한은 또 나진·선봉지구를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유역개발계획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나진·선봉지구의 개발에 관한 김일성의 관심은 매우 컸고 그 관심은 외국자본 유치가 부진한 책임을 지고 담당자가 물러나는 사태로 발전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같은 노선 전환은 중국식 개방이 거둔 성과에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입으로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국식의 개방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를 면밀하게 검토해왔음에틀림없다.중국의 권유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베트남이 미국의 경제제재조치(엠바고)가 해제되기 전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도 경제개발에 어려움을 겪은 사실도 참고가 됐을 것이다. 북한은 또 중국 러시아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교역 감소로 서방과의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도움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와 중국에서 오는 원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중국이 언제까지 마냥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것인가라는 고민은 북한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또 러시아가 원유대금을 경화로 결제할 것을 요구하는등 태도가 달라진 것도 북한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 것 같다.아무리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점차 뗀다는 사실에 숨통이 조이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결국 북한은 비록 제한적이나마 개방쪽으로 노선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개방이란 외국자본의 유치를 뜻하는 것이며 그 외국이란 사실상 미국과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서방국가들을 가리킨다. 노선의 전환이 이미 김일성의 생전에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경제개방의 추진은 김정일의 집권으로 비로소 가능해진 느낌이다.김정일의 측근에는 김일성과는 달리 개방적인 인물이 대거 포진해 있다.김정일의 측근중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용순대남담당비서는 북한의 개방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다.북한의 고위관리로 최근 서울을 방문했던 김달현전정무원부총리도 개방파로 분류된다.김달현은 서울 방문 얼마뒤 정무원부총리에서 밀려나 현재의 직책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조만간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해 경제정책의 핵심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경제가 개방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중국은 강택민국가주석 이붕국무원총리 교석전인대상무위원장 명의의 조전에서 김정일에 대한 지지를 천명했다.또 김정일에게 가까운 장래에 북경을 방문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거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그 이야기 가운데는 그들이 터득한 경제개발의 노하우를 도입하라는요구가 포함될 것이 뻔하다.인민들의 의식주 향상과 체제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김정일로서는 새겨듣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북한의 경제적 처지는 매우 심각하다.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경제적으로 개방을 가속화하리라는 예상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 김정일 「호칭」/「당중앙」→지도자동지→위대한 수령 격상

    ◎64년이래 총30여개… 「화려한 수사」 일색 「우리 당과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시며 우리 모두의 운명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자주시대의 위대한 태양」「인류가 낳은 걸출한 영웅」….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 정권 두번째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그에게 그동안 주어진 숨가쁠 정도의 길고 화려한 수사로 다듬어진 숭배의 호칭들이다. 세습후계자 김정일을 떠받쳐온 호칭은 30여개.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에게 붙인 그것을 시차를 두고 물려받거나 재가공해 덧입힌 호칭의 변화과정은 64년 김정일이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된 후계작업 30년 역사 그자체로,권력이양의 독도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2∼3년간 등장하기 시작한 「아버지」「수령」등의 호칭은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특히 김일성 사망 이틀째인 10일 북한 중앙방송에서 나온 「위대한 수령」이란 칭호는 현재까지 「별 무리없이」 북한 정권의 정점에 김정일이안착하고 있음을 내외에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김일성대 졸업후 비공식적으로 후계자수업을 받은 김의 첫 직책은 당 조직사업부 지도원.이후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쳐 당 비서직을 맡게되며 이 직책에 맞게 73년까지 불리게 된다.별다른 수식어가 붙었다는 보고는 없다.62년 김일성이 어느덧 남한에서도 익숙한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개인 우상화차원의 호칭을 처음 붙인 것에 비추어 볼때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정지 작업이 한창이었던 70년대의 대표적 호칭은 「당중앙」.김정일이 노동당의 양대 기둥인 조직및 선전선동 비서국을 장악한 73년 9월 당중앙위 제5기 전원회의 직후 처음 사용됐고 이후 80년대까지 가장 흔히 쓰인 호칭이다.그의 생일 2월16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75년에는 「유일한 지도자」가,77년에는 「당중앙」이 우세한 속에 「영명하신 지도자」「경애하는 지도자」등이 등장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80년의 10월 제6차 당대회서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군사위 위원에 오른 3년뒤인 83년 2월 41회 생일을 계기로 「당중앙」대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자리잡았다.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 호칭은 북한 주민들사이에 「친지동」이란 비꼬는 말로 쓰인다. 실제 김정일은 91년 12월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음에도 8년전인 83년 5월 「최고사령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군의 영향력 강화를 의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칭을 통한 미화는 「언어창작」을 넘어서 항일빨치산이 백두산의 나무에 새겨놓았다는 「구호나무」의 역사날조에 까지 이어진다.북한은 87년 「백두산에 광명성이 떴다.광명성(김정일 지칭)미래로 민족 존엄 떨치자」라고 새겨져 있다며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썼다. 90년대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호칭이 등장한다.90년 12월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혁명의 지도자」(노동신문)에 이어 91년 김일성과 동격임을 드러내는 「수령」호칭이 등장하나 미래의 수령이란 의미로 사용됐다.93년조선기자동맹 제7차 대회서 현재를 나타내는 「영명한 수령」으로 표현됐고 올해 3월에는 조선대남방송에서 「주석」으로,5월에는 평양방송에서 「두분의 수령」「탁월한 수령」으로 나와 곧 명실상부한 권력이양이 이루어지리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었다. 「수령」과 같은 카리스마조작 비중을 갖는 「어버이」도 최근 2∼3년전부터 두드러진 호칭. 「오늘은 오실까 우리어버이/내일은 오실까 김정일 동지/우리를 키워준 어버이모습/한해가 다르게 그립습니다」 92년 북한이 보급한 「기다렸습니다」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그토록 기다려 왔다는 올해 52세 「어버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북한 인민에게 다가갈 것인지 궁금하다.
  • 권력교체 틈타 대북영향력 강화 모색/한반도주변 4강의 북상황 대응

    ◎중 고위급 잇단 조전… 신속지원 나서/미도 협조 제스처… 일·러선일단 관망 미국·중국·일본·러시아등 한반도주변 4개국은 북한주석 김일성이 사망한뒤 펼쳐질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인식같아 보인다.여기에는 네나라 정부와 언론의 시각이 일치한다. 이에 따라 이들 4개국은 북한에 김정일체제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대체로 수긍하면서 그에 따른 자국의 이해관계를 면밀하게 계산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은 김일성사후에도 북한정국에 가장 발빠르고 깊숙한 대응을 하고 있다.중국은 김일성사망이 공식발표된 직후 최고실력자 등소평을 비롯,강택민국가주석과 이붕총리,교석전인대상무위원장등 최고지도부가 북한에 조전을 보내 『김정일이 이끄는 노동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고 국가건설과 영구평화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을 굳게 믿는다』고 김정일체제의 등장을 기정사실화해 버렸다. 중국으로서는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김정일체제를 하루빨리 안정기조에 올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확보하자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이 안정된 권력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측면지원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도 김정일체제를 인정하는데 중국못지 않게 적극적이다. 클린턴대통령은 김일성사망직후 직접 조의를 표시했다.또 주한미군의 추가경계태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보좌진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통해 북한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한편 정권의 교체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 두나라의 「협조적 제스처」에 대해서는 북한도 화답을 보내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사망사실을 공식발표하기에 앞서 중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북한의 방송들은 10일 클린턴미국대통령과 카터전미국대통령이 김일성의 사망에 조의를 표명한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장례식에 카터를 초청할 뜻을 비추고 있다. 두나라에 비해일본과 러시아는 한걸음 떨어져 북한을 관망하고 있는 것같다. 일본은 김일성의 사망에 대해 정부대변인인 이가라시관방장관의 논평을 통해 『돌연한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미·북고위급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어난 이번 사태가 한반도평화와 안정에 나쁜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일본은 북한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간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국교정상화를 앞당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일본이 조문단의 파견의사를 타진했으나 북한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급진전될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러시아는 일부전문가들이 「사실상의 적대관계」라고 표현할 정도로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김일성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직접 복원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다만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돼 경수로를 건설하면 기술을 제공,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같다.
  • 「김정일 승계」 빠르면 오늘 발표/북경소식통 밝혀

    ◎북 비밀회의서 결정/주석·총서기직 추대 【북경 연합】 북한은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국가주석과 당총서기직을 김정일이 계승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권력후계구도를 곧 공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북경의 한 고위서방소식통이 11일 말했다. 북한사정에 정통한 이 소식통은 ▲중국이 지난 9일 강택민국가주석,이붕총리,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 연명으로 북한에 보낸 조전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지지하고 ▲북한노동당중앙위 등 최고권력기관들이 전체당원과 인민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김정일을 「혁명사업의 위대한 계승자」로 지칭한데 주목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어 김주석 사망이후 북한 당·정·군의 주요 핵심간부들이 김정일주재로 열린 긴급 비밀대책회의에서 김정일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을 거듭 다짐하고 김을 정점으로 한 후계체제 확립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북한은 빠르면 12일쯤 김정일의 국가주석및 당총서기직 승계를 공식발표하게 될 것』이라고전했다. ◎주석대행 임명할듯 【북경=최두삼특파원】 북한은 금명간 김정일당비서를 「국가주석대행」으로 임명,공식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북한사정에 정통한 북경의 한 소식통이 11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당중앙정치국회의가 11∼12일중으로 평양에서 개최돼 김정일을 우선 「국가주석 대행」으로 선정,빠르면 12일중으로 공식 발표한후 김일성장례식을 끝낸후 적절한 시기를 잡아 최고인민회를 소집해 정식으로 국가주석에 추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83년 이후 「서열 2위」… 당·정·군 장악

    ◎73년 김영주축출… 공적활동 전면등장/반대세력 반발불구 통치권확보 성공/성격 독선적·일부선 “통 크다”… 영화·연극에 큰 관심,직접 제작도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주석 김일성에 대한 장례위원 가운데 서열 1위로 발표됨으로써 차기 권력승계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공산정권의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숨진 최고지도자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예외 없이 차기 통치권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그에 대해 북한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혁명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김정일은 20여년동안 끈질기게 권력승계 작업을 해온 결과 지난 83년 공식서열 2위에 오른 뒤부터 김일성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에 이어 2인자의 위치를 굳혀왔다.군최고 사령관,원수,국방위원장,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중앙군사위원등 그의 맡아온 직책이 이를 입증한다.이복동생 김평일과의 불화설등 반대세력과의 권력투쟁설이 끊임없이 나돌기도 했지만 통치권 장악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관측돼 왔다. ○92년부터 승계완료그는 당·정·군등 북한내 3대 기본권력구조 가운데 형식적인 통수권은 국방위원장직으로 군에 대해서만 갖고 있다.그러나 김일성이 국가주석으로 정을,당 총비서로 당을 이끌어 오면서 형식적인 통수권자였지만 김정일은 사실상 이들 기관도 통치해 왔다는 것이 북한전문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이들 전문가들은 이미 권력승계작업은 지난 92년 김일성의 80회 생일부터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완료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영남외교부장은 같은해 9월 제47차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렀다가 우리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통치자라고 밝혔었다.앞서 같은해 4월1일 김일성생일행사의 하나로 개최됐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김정일이 「당·국가·군대의 수위」로 지칭되고,김부자의 생일을 전후해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이종옥부주석,연형묵정무원총리등 당시의 당·정·군 간부들이 김정일에 대한 대를 이은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이때부터 김일성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김정일은 지난 92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원수와 8명의 차솔진급자에게 계급장을 달아 줘 군통수권에 대한 첫 공식행사를 가짐으로써 이를 대내외에 천명했다.이어 지난해 4월에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됐으며 3개월뒤 장성 99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혁명1세대를 퇴진시킴으로써 군을 완전 장악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부각된 것은 지난 73년.사상·기술·문화 3대혁명소조운동과 3대혁명 붉은기쟁취운동의 실무지도자로 공적활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같은해 9월 삼촌 김영주를 밀어내고 조직·사상담당 비서로,74년 2월 노동당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추대됐다.그는 74년 2월 노동당 제5기 8차 전원대회에서 후계자로 결정됐으나 70년대까지만 해도 「당중앙」으로 모호하게 불려졌다.그러나 80년대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83년 4월이후 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당서열 제2위로 부상하면서 명실상부한 후계자의 위치를 굳혔다. 85년 4월에는 「당·국가수위」로 지칭됐다.85년 7월 북한언론으로부터 「김정일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고,91년에는 인민경제대학총장 김국훈이 김정일을 「미래의 위대한 수령」으로 후계구도를 공식적으로 가시화했다.이어 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뒤 92년 4월20일 원수칭호,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5차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됨으로써 군을 장악한 명실상부한 실권자로 등장했다. ○원래 이름은 「정일」 김정일은 김일성과 그의 첫부인인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1녀중 장남으로 지난 41년 2월16일생이고,원래 이름도 정일이라고 한다.그러나 뒤늦게 그를 우상화하는 편법으로 정일로 바꿨고 2년뒤 그의 출생연도도 1년 낮췄다는 설도 있다.82년은 이른바 「조선의 어머니」인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출생 90돌이자 김일성의 70돌이며,김일성이 창건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의 50돌이었는데 그의 이름도 이에 맞춰 변조했다는 것이다.그의 이복동생 평일,성일에서 보듯 원래 항렬이 일자였다는 것이다. 어릴때 이름이 「슈라」인 것으로 미루어 출생지는 옛 소련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구체적인 지명은 사마르칸트,오케얀 스카야,하바로프스크등으로 엇갈린다.그러나 그를 우상화하는 과정에서 「백두미령」에서 출생해 『혁명의 준엄한 시련을 체험하면서 성장했다』고 미화됐다.북한은 이를 위해 김일성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백두산의 한 귀틀집에서 『백두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정기설」을 뒷받침하는 각종 흔적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백두산의 「정일봉」,김정일의 탄생을 칭송하는 이른바 「구호나무」등이 그 흔적이다. ○3세대 평양 들어와 김정일은 세살때 광복과 함께 부모를 따라 소련함정을 타고 평양에 처음 들어왔다.43년 소련에서 태어난 남동생 「유라」(소련명)가 있었으나 2년뒤 김일성 관저 연못에 빠져 죽었다.7살때인 49년 9월 생모 김정숙이 출산중 사망하면서 여동생 김경희(46년생)와 함께 김일성의 외6촌동생 강연실에 의해 키워졌다.그의 성격은 생모와 사별후 난폭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성격은 괄괄하고 과격하며 독선적이나 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일성앞에서도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그는 아버지가 너무 바빠 홀로 어린시절을 보내온 것을 자주 불평했다고 한다.66년 홍일천과 연애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69년 이혼한 뒤 73년 김혜숙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은 평양의 남산유치원을 나와 49년 간부 자녀들이 다니던 남산 제 4인민학교를 다녔으며 57년 8월 평양제1중학교,60년 8월 평양 제1고급중학교,64년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를 각각 졸업한뒤 노동당에 입당했다.70년 당 문화예술부장,71년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진출하면서 영화촬영및 연극공연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것으로 전해진다.「피바다」「한 자위대원의 운명」「꽃파는 처녀」등 주요 영화와 가극을 직접 제작하는등 일년에 1백50∼2백편의 영화를 만들어 올만큼 북한영화계의 최고권위자로 꼽힌다.이같은 영화에 대한 애정때문에 신상옥씨 부부를 납치한 것이 깊숙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체가 상세히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표◁ △1941.2.16 소련 사마르칸트 출생(북한측,백두산 출생주장) △1953.2 만경대혁명학원(인민반)수학 △19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1964.3 김일성대학교 졸업(정치경제학과) △1964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 △1971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1973.11 노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4.2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74.2 「후계자」로 결정(노동당 제5기 8차전원회의) △1980.10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6차 당대회) △1980.10 노동당 비서국 비서 △1980.10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12.24 인민군 최고사령관(노동당 제6기 19차 전원 회의) △1992.4.20 원솔 칭호 △1993.4 국방위원회 위원장(최고인민회의 9기 5차회의)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장례위원장이 후계자 유력/공산국가 권력승계 사례

    ◎절대권력자 죽음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도자간 권력안해 합의뒤 “사망” 발표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공산국가중에서도 유례없는 세습체제를 도입한 나라인데다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반발도 꽤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더욱이 옛 소련의 붕괴로 절대독재권력을 휘두르던 공산국가들이 사실상 사라진 지금 북한은 유일하게 「철의 장막」이 걷히지 않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우는 과거 소련이나 중국·베트남 등 공산국가들과는 여러 분야에서 다른 측면들이 있는게 사실이다.그러나 이들 국가의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 내부사정을 추측하는데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공산독재국가의 경우 절대권력자의 죽음은 우선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일반적인 예였다.지도자의 죽음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철저한 비밀 속에 몇몇 지도자들이 모여 후계자 문제 등에 관한 사후 권력안배에 대한 합의를 마친 뒤에야 사망 사실이 발표됐던 것이다. 이같은 예는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부터 흐루시초프나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 등으로 이어지는 옛 소련의 지도자들의 죽음에서 두드러진다. 스탈린은 1953년3월5일 뇌출혈로 사망했다.스탈린의 후계자리를 놓고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던 베리야,말렌코프,몰로토프는 아무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 3명이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했다.그러나 이들 3자간에 3두체제가 합의될 때까지 스탈린의 사망소식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어야만 했다.베리야가 3개월만에 스탈린 개인숭배와 관련,체포·처형됨으로써 집단지도체제가 막을 내리게 됐다. 브레즈네프가 죽었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브레즈네프는 82년11월10일 사망했는데 그의 후계자리를 놓고 막후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권력다툼에서 소련비밀경찰(KGB)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은 안드로포프가 국장위원장에 선임돼 후계자의 위치를 사실상 확정한 11일에야 사망소식이 발표됐다.김일성주석의 경우와 같이 사망 하룻만에 발표된 것이다. 중국 모택동의 경우도 사망발표까지 걸린 시간이 조금 짧다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모는 76년9월9일 사망했는데 그의 사망 발표는 사후 16시간만에 이뤄졌다.중국은 모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장례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화국봉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모택동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던 화국봉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는 발표와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끝내는 모택동의 뒤를 잇는 중국의 지도자로 선정됐다.이는 브레즈네프의 장례위원장직을 맡았던 안드로포프가 체르넨코를 밀어내고 소련의 실권을 잡게된 것과 마찬가지다. 화국봉이나 안드로포프의 경우에서 공통되는 점은 이들 국가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후임으로 장례위원장을 맡는자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는 것이다.이같은 점은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과거 소련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권력승계 과정이 북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가정한다면 김일성주석의 사망을 발표하면서 김주석의 장례위원장직을 그의 아들 김정일이 맡는다는 북한당국의 발표는 앞으로 북한의 진로를 추측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주석이 생전에 그토록 다져오려고 노력한 후계세습을 북한지도부가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또 김정일이 김일성주석의 후계자 자리를 굳히는데 있어 북한내부의 반발을 이미 극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 자체로서는 너무도 큰 충격일 수 밖에 없는 김일성주석이 사망한지 불과 하룻만에 북한내부에서 김정일체제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면 이는 김일성 사후체제에 대한 북한내부의 준비가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대외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소식은 이같은 북한의 준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권력승계 절차/국가 주석 최고인민회의서 선출/총비서는 당중앙위 전체회의서/장례끝난뒤 소집… 공식 추대할듯 북한 김일성의 사망에 따라 김정일의 권력승계 절차가 관심이 되고 있다. 권력승계가 확실시 되는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생전에 물려받지 못한 직책은 노동당 총비서 및 국가주석이다.이같은 2개 직책중 당총비서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그리고 국가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토록 규정하고 있다.당규약 제24조에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시기에 당이 직면한 중요문제 등을 토의,결정하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을 선거한다.또 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비서를 선거하고 당중앙위원회의 비서국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고 명시돼 있다.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1회이상 소집토록 되어 있고 가장 가깝게는 지난해 12월 6기 21차 전원회의가 열렸다.그리고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을 명시한 사회주의 헌법 제91조5항을 보면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을 선거 또는 소환한다」고 규정 돼 있다.따라서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절차가 끝난 직후 당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소집, 김정일을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으로 추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이번의 경우는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에 따라 이같은 절차에 관계없이 김정일이 김일성의 권한을 사실상 대행할 것으로 관측 되고 있다.
  • 북한 군부·핵심세력 움직임에 촉각/김일성 사망 각국 반응

    ◎“급사에 충격”… 김정일 권력승계 관측/미국/한·미·중과 긴밀연락 정보수집 부산/일본/외교부 비상소집령… 등소평등 조전/중국/옐친 “남·북한 관계개선 이루어질것”/러시아 김일성 북한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세계각국은 「큰 충격」을 표시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지 등 김주석의 사망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또한 북한의 핵개발 사태 해결및 남북정상회담이 어떻게 될 것인지 등과 관련,김주석의 사망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 CNN 텔레비전은 뉴스속보를 통해 공산세계지도자 가운데 가장 오래 집권한 김일성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하고 장례준비위원장을 김정일이 맡음으로써 일단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앞서 CNN방송을 비롯한 주요 미국의 방송들은 8일 밤 11시께부터(미국시간) 긴급뉴스로 김일성이 병사했다는 소식을 보도할 때는 사망원인에 대한 의문을 조심스레 보였으며 후계문제등에 관해서도 막연한 추측들만 했었다. 최근 평양을 갔다 온 CNN의 조던 부사장은 김일성이 82세의 나이에 비해 매우 정정해 보였는데 돌연한 사망은 『충격적』이라는 말을 거듭하면서 누가 후계자가 되든 김일성처럼 국민들의 존경을 확보할지 의심스럽다는 견해. CNN방송에 나온 한 한국문제 전문가는 김일성이 자연사했다면 아들 김정일이 승계할 가능성이 있으나 미확인소식처럼 쿠데타가 일어났다면 북한의 장래 상황은 전망할 수 없다고 진단. 그 사망 시기가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다 미국·북한 3단계회담 진행중이라 한·미 양측이 서로 상대방에 사망 보도의 정확성 여부를 묻는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더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기 위해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미국 정부도 아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CNN이 8일밤(현지시간) 선진7개국(G­7) 정상회담 참석차 나폴리에 가 있는 클린턴 미대통령이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보도하면서 클린턴대통령의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다고 밝히고 미정부는 한국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외교채널을 통해 김주석이 사망했다는 방송보도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평양의 소식통들과 전화접촉한 결과 평양시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중앙역 부근에는 경계가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CNN은 이어 김영삼대통령의 긴급 안보대책회의 소집및 한국군의 경계강화 소식과 함께 서울 시민의 표정을 속보로 전했다. ▷도쿄◁ 김일성의 갑작스런 죽음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정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대응책을 협의 했으며 김주석의 사망원인 및 북한 내부 움직임에 대한 정보수집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NHK등 TV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특별방송을 보내는가 하면 신문들은 모두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하는 등 매스컴과 일반 시민들도 충격속에 큰 관심을 표명. 특히 조총련은『믿을 수 없다』며 심한 충격속에 잠겨있는 모습. 일본정부는 김의 사망으로 북한내부와 한반도에 심각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특히 군부의 움직임과 김정일서기로의 권력계승이 잘 이루어질지 중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정부는 전반적인 북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정보분석회의를 개최할 예정. 일본은 또 25일부터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도 당분간 열릴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북한군부및 권력 핵심세력의 움직임등에 관한 정보수집을 위해 한국·미국·중국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고노 요헤이(하로양평) 외상등이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을 위해 나폴리에 있기 때문에 나폴리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 관방장관은 9일 정부성명을 발표,김주석죽음에 애도를 표시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노 외상도 이날 나폴리에서 같은 내용의 코멘트를 발표. 일본의 최대관심은 군부의 움직임과 권력계승문제.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단 김정일에로의권력계승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시즈오카현립대의 이즈미 하지메 부교수는 권력계승발표가 빠른시일내에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며 조심스런 전망. 도쿄대의 이시이 아키라 교수는 김정일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예상.그는 『김서기는 한미와의 관계개선과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등 김주석이 추진해온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김서기는 후계자로서 김주석의 노선을 바꿀 수 없다』고 전망. 게이오대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도 『북한은 대외정책을 크게 바꾸지않고 미·북한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HK방송은 현단계에서는 김서기로의 권력계승 가능성이 높지만 그는 북한의 카리스마적 존재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김주석만큼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같으며 어느 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이방송은 김서기가 장례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은 그의 후계자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조문객을 받지않겠다고밝힌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전언. 조총련은 긴급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대응책등을 논의.조총련본부에 모인 간부들은 모두 눈물를 흘리며 김주석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이날 반기를 게양. 재일동포단체인 민단의 한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는 등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었으나 김주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다.▷북경◁ 중국 지도부는 9일 김일성주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제일의 우방국가답게 전에없이 신속하게 북한측에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시·은퇴한 최고지도자 등소평은 이 조전에서 『김의 일생은 조선민족의 해방과 조선인민의 행복을 위해 공헌안 일생이며,중·조친선을 맺고 발전시키기 위해 분투한 일생이었다』고 치켜세운뒤 『김의 서거는 조선인민에겐 위대한 수령을 잃은 것이며 나에게는 친밀한 전우와 동지를 잃은 것이다』며 애도를 표했다.이어 강택민당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이붕총리,교석 전인대(의회)상무위원장 등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조전을 보냈다고 신화통신과 중앙TV방송 등이 일제히 보도. 중앙TV는 이날 하오7시 전국에 중계된 30분간의 종합뉴스에서 머리기사로 약 4분동안 김의 사망소식과 함께 중국지도자들이 조전을 보낸 사실을 자세히 보도한데 이어 뉴스보도 중간에 또다시 약5분간에 걸쳐 북한 노동당 정무원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김의 사망에 관한 부고내용과 장의행사 내용을 자세히 보도. 이날 중국에서는 마침 격주로 실시되는 휴무일이어서 외교부직원들도 출근을 않고 있었으나 이날 점심때 비상소집령이 하달돼 남북한을 담당하는 조선처직원들을 비롯,몇몇 관련부처 담당자들이 부랴부랴 사무실에 나와 조전칠 준비를 비롯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갖가지 준비로 부산을 피웠다. 한 조선처 직원은 점심식사중 갑자기 불려나왔다면서 우선은 상황파악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사실이냐』고 오히려 기자에게 상황을 묻기도 했다. 주중한국대사관은 김의 사망발표가 있은 지 1시간만에 비상소집령을 내려 전직원이사무실에 나와 CNN방송과 중국의 CCTV등 TV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의 정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일부 직원들은 얼마전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김주석이 갑작스레 사망한 데 대한 원인을 궁금해하면서 북한측 발표대로 사인이 심장마비라면 그동안 핵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정상회담과 미·북한 고위급회담등을 너무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피로가 누적된게 아닌가고 나름대로 추정해보는가 하면 몇몇 직원들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연변등 동북 3성지역 조선족 동포들로부터 사실확인을 위해 빗발치듯 걸려오는 전화문의에 답변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모스크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9일 하오3시(모스크바 시간)G7정상회담에 참석키 위해 출국직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북한의 불안정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피력.그는 이어 『김주석의 죽음이 남북한을 보다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나는 김일성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으며 그의 사망을 애도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옐친 대통령은 『나는 남북한이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이는 결국 아·태지역 전체의 평화로 이어질것』이라고 강조. 이에앞서 옐친대통령은 김주석의 사망에 대해 공식성명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한간의 관계증진을 위한 적절한 노력이 곧 있기를 희망한다』고 발표. 북한대사관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조기를 게양했으며 월요일인 11일부터 공식 조문객을 받기로 결정. 모스크바시내 모스필름가 72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은 이날 상오 외부와의 연락을 두절한 채 정적에 싸여 있었고 상오8시쯤 기자의 전화를 받은 북한대사관의 당직근무자는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소식을 들은 바 없다』면서 신경질적인 반응. 북한대사관 정문쪽에는 미 ABC TV를 비롯한 10여명의 외국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를 하고 있으나 대사관내부로의 출입이 금지돼 있고 대사관을 출입하는 북한인들 대부분이 이들의 물음에 대꾸를 하지 않아 애를먹는 모습들. 상오10시쯤부터 시내에 사는 북한인들이 대사관으로 들어가고 있으나 이들은 하나 같이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 그러나 대사관을 빠져나오는 북한인들은 대부분이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어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손성필 주러 북한대사는 낮12시 현재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외부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 언론들은 서울의 언론보도와 외신등을 인용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신속히 보도.그러나 러시아 외무부측은 토요일 휴무인 관계로 일체의 공식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주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한 추가정보등을 얻기 위해 러시아 외무부측과 연락을 취하려 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이 주말을 쉬기 위해 다차(교외별장)등으로 떠난 상태여서 전화접촉도 안된다고 하소연. ◎세계 주요통신 “긴급뉴스” 일제 타전/일 교도통신,12시3분 북방송 인용 첫 보도/AFP·로이터 1∼2분 간격으로 속보경쟁/“김주석 사망” 숨가쁜 외신 김일성북한주석의사망소식이 전해진 9일 세계주요통신들은 김주석의 사망사실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일본의 교도(공동)통신.교도통신은 이날 낮 12시 3분 외국통신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북한관영 중앙방송을 인용,『북한 김일성주석이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짤막한 제1신을 긴급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또 40분쯤 지나 김주석의 사망이 자연사로 보기 힘들며 내부항쟁에 의한 사망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속보를 미국의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서방의 통신으로는 AP통신이 1분쯤뒤인 낮 12시 4분 『북한의 관영방송이 이날 상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짤막하게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AP통신은 이어 35분쯤뒤 북한의 권력형성 과정과 함께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이것이 앞으로의 한반도 상황과 북­미 고위급회담등에 미칠 영향등에 대해 신속하게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AP통신은 또 정확하게 1시간 13분뒤인 하오 1시 17분 김주석이 심근경색에의한 급거가 확실하다고 전하고 장례절차등 북한방송의 발표내용을 서울발로 보도했다. AP통신에 뒤이어 낮 12시 10분을 전후해 AFP와 로이터통신이 거의 동시에 최긴급뉴스로 김주석 사망사실을 보도한뒤 1∼2분 간격으로 평양라디오방송을 비롯한 북한의 매체를 이용,속보를 계속 내보냈다. 세계 주요 역사적인 사건현장의 「단골손님」인 CNN은 이날 전미국시민들의 관심사인 미식축구영웅 O.J.심슨 살인사건을 연일 톱으로 내보내다 AP타전 직후 긴급뉴스를 통해 김일성의 사망소식을 보도했다. CNN방송은 이어 이날 평양에 주재중인 키프긴 인도대사,아쉬루 나이지리아대사와의 전화접촉을 통해 평양시민들이 김일성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직장일을 그만둔 채 집으로 돌아가 추모하고 있다는 내용의 평양거리표정을 처음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CNN은 이 보도에서 길거리에서 울고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으며 주민들대부분이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오열과는 달리 전체적으로는 평온한 상태에 있다는 이들 대사의 말을 인용해 속보로 처리했다. 로이터통신은 하오 2시 15분쯤 외국특파원으로는 유일하게 평양특파원을 겸하고 있는 폴란드의 PAP통신 북경주재 특파원 크르지스토프 다레비츠의 전화취재 내용을 인용,북한주민들이 김주석의 사망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미친듯이 오열하고 있으며 김주석의 유해가 만수대 극장에 안치돼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 UPI통신은 위의 3개 통신보다는 약간 늦은 낮 12시 19분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을 인용,김주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도쿄발로 보도했다. 중국의 반응은 서방매체들보다는 훨씬 늦게 나왔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낮 12시 35분이 약간 지나 북한관영 매체의 발표를 인용해 평양발로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논평없이 보도했다.
  • 14대국회 2기/「회직 경쟁」 치열/임시국회 앞둔 정치권 표정

    ◎희망직 내비치며 상대 행보 촉각 제14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을 위한 제1백69회 임시국회가 이번 주말쯤 열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여야는 그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민자당은 21일 소속 의원들에게 희망하는 상임위의 신청서를 보냈고,민주당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의장 후보결정문제를 공식논의하기로 하는등 인선을 위한 정지작업이 한창이다.이에 따라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과 17개 상임위원장직 가운데 「한자리」를 염두에 둔 여야의원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공개적으로 희망직을 선언하고 뛰는가 하면 이 자리 저 자리를 놓고 조심스럽게 저울질을 하기도 하고 경쟁대상들의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등 움직임도 다양하다. 먼저 이만섭의장과 황락주부의장이 치열한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입법부 수장직은 이들 두 후보의 경쟁 차원을 넘어 계파간의 「힘겨루기」양상이 짙다.이의장측은 「TK정서」를 앞세워 유임을 자신하고 있으나 민주계 실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황부의장의 추격이 거세다.본인들은 정작 의연한 태도를보이고 있지만 주변 인사들끼리는 은연중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시키면서 기류를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는등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기까지 한다. 민자당 몫의 부의장직에는 6선의 오세응·신상우의원과 5선의 정석모의원,4선의 황명수의원등이 거론돼 왔다.그러나 최근들어 4선의 김용태·이춘구의원이 「TK배려」및 구여권 배려 차원에서 거명되기 시작했고 3선의 정재철중앙상무위원장도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는 소문이다. 한때 제기됐던 경선움직임 대신에 최고위원회의 결정으로 방침이 굳혀진 민주당몫의 부의장직에는 김봉호의원이 유력한 가운데 김영배·홍영기의원이 도전하는 양상이다. 정보위의 신설로 17개로 늘어난 상임위원장직에는 다선우선 원칙에 따라 3·4선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민자당에서는 4선의 박정수 박재홍 김정수 박명근 이승윤 신상식의원과 3선의 김기배 정재문 김진재 이성호 심정구 김중위 김영광 김봉조 양창식 남재두의원등이 거명되고 있다.이 가운데 수석부총무인 이성호의원은 건설위원장,김봉조의원은 재무위원장,김정수의원은 보사위원장에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4선의 박재홍의원은 경과위와 교체위에서 분리되는 과학체신위원장에,3선의 김진재의원은 체신이 떨어져 나가는 교통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재선에서는 법무부장관 출신의 박희태의원이 경쟁자가 없는 법사위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또 재선 가운데 권해옥의원이 농수산위원장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고 양창식의원은 황인성의원을 제외한 유일한 호남지역구 의원이어서,민자당 대구시지부장인 김한규의원은 TK배려 차원에서 거명되고 있다.신설되는 정보위에는 정석모 황명수 김용태 박정수 김영광의원이 올라 있다. 5개 자리가 돌아가는 민주당은 이날 이기택대표가 다선위주및 중임배제원칙이던 것을 당직에서 국회직으로의 수평이동도 내비침으로써 그동안 후보에서 배제되어 왔던 김태식전총무와 김덕규사무총장의 기용 가능성도 점쳐진다.이밖에 이영권 최락도 홍사덕 김병오 이경재 이원형 정균환 김충조 이희천 박상천 박석무의원등도 거론되고 있다.
  • 중,정치국 상무위 증원/등사후대비/강총서기 권력강화 포석

    ◎전기침·이남청 물망… 9명으로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은 최고 지도자 등소평(89)의 사후에 대비,기반이 허약한 그의 후계자 강택민 총서기(67)의 권력을 강화해주기 위하여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증원키로 하고 친강인물들인 전기침(66),이남청(62) 두 부총리를 임명할 것이라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16,17일 연이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공산당이 올해 하반기 제14기 중앙위원회 제4차전체회의(14기4중전회)를 열고 당의 최고 정책 결정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정원을 현재 7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인사변동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택민은 이들 2명이 추가되면 상무위원회에서 중대 정책결정때 가장 어려운 상대인 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과(69)과 이붕 총리(65)를 견제하는데 크게 힘을 얻을 것이라 말했다.
  • 양국관계 당대당으로 확대 포석/민자 방중대표단 오늘 귀국

    ◎중지도자들 「비핵화」 지지도 약속 문정수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한 민자당대표단이 5박6일동안의 중국방문일정을 마치고 29일 하오 귀국한다. 중국공산당의 공식 초청으로 이뤄진 문총장 일행의 이번 방중은 우선 김영삼대통령의 지난 3월 중국방문을 계기로 다져진 두나라 우호관계를 집권 당대당 차원으로 확대 심화시킴으로써 양국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국가정책의 실질적 결정권한을 쥔 공산당과의 교류를 공식화하고 정레화의 기틀도 다짐으로써 민자당은 앞으로 한·중 두나라 정부간의 상대국에 대한 대외정책및 민간차원의 경제협력을 당차원에서 뒷받침 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문총장은 이번에 호금도당정치국상무위원,전기운전인대상무위부의장,오학겸정치협상회의부주석,진희동북경시당위원회서기,주양전인대외사위주임,당가선외교부부부장,이숙쟁당대외연락부장등 공산당과 정부·의회의 지도자를 골고루 만났다. 이 자리에서 중국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확고히 지지하며 핵확산을 바라지 않는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들은 또한 북한 핵문제가 한 고비를 넘겨 대화와 협의를 통한 해결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안도감을 표시하는 한편 한국이 핵문제에 대해 보여준 인내와 아량에 감사의 뜻도 전달했다. 양당 대표들은 또 한·중 경제협력을 통한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화 형성문제,한·중항공협정 체결문제,중국내 한인학교 설치문제,항공산업 협력방안 등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정부나 민간수준의 관계증진을 양국 집권당이 실제로 측면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와함께 이번 방문의 주목적인 당대당 교류와 관련해서는 고위급 대표단의 상호방문과 인적교류 확대및 정례화 등의 상호교류원칙을 재확인했다.
  • “북핵 새전기…해결 적극 지원”/중 호금도상무위원 민자대표단 면담

    【북경=최병렬특파원】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24일 5박6일 일정의 중국방문에 들어간 민자당의 문정수사무총장은 이날 하오 북경시내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공산당 정치국 호금도상무위원을 만나 북한핵문제와 두나라 집권당의 교류증진방안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40분 남짓 진행된 이날 면담에서 호상무위원은 『북한의 핵문제는 한동안 어려움에 처한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중 대외무역법 7월부터 발효/가트가입 포석

    중국이 연내 GATT 가입을 위해 사상 처음으로 대외무역법을 제정했다.세계 무역질서 및 경제체제로의 진입을 위한 포석이다. 24일 대한무역공사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2일 제8기 전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7차 회의에서 대외 무역의 지침이 될 대외무역법을 제정,발표했다.오는 7월1일부터 발효되는 이 법은 총 8장44조이다. 과거 행정명령 중심의 체제가 법에 근거한 체제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통일된 무역정책을 실시하게 돼 외국과의 마찰이 줄어들 전망이다.
  • 중,“반체제 제거에 모든수단 동원”

    ◎강택민 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정당화/전인대선 유언비어 유포금지법 확정 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지난 89년의 천안문 유혈사태 5주년을 불과 수주 앞두고 당시의 유혈진압을 옹호하면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안정은 유지할 것이라는 불길한 경고를 했으며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공안당국에 반체제인사와 소수민족단체 구성원,종교및 분리주의 단체에 대처하기 위한 보다 강력한 권한을 주는 일련의 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13일 보도됐다. 강주석은 지난 12일 중국을 방문중인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총리와 회담한 자리에서 지난 89년6월4일 군부가 「결연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현재와 같은 경제발전과 안정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중국정부는 이같은 발전과 안정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포함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함께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지는 이날 전인대 상무위가 공안당국에형사처벌 대상에 못미치는 가벼운 위법사항에 대해서도 시민들을 15일까지 구속할 수 있고 그들에게 자백서를 쓰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이들 법은 『사실을 날조,왜곡하거나 헛된 소문을 유포하고 공공질서를 교란하거나 공익을 해칠 경우』 공안당국이 관련자들을 체포·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반체제 활동 탄압/중 관련법률 강화

    【북경 DPA AP 연합】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반체제사범과 민족및 종교,분리주의 관련 범죄자들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고 차이나 데일리가 1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경찰이 시민을 15일간 재량껏 구금할수 있도록 하고 형사처벌 대상에 못미치는 가벼운 사안에 대해서도 자인서를 쓰도록 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다고 전했다.
  • NR대책위 구성/민자

    민자당은 11일 당무회의에서 우루과이 라운드(UR)협정 타결이후 최대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뉴라운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당정책위 밑에 「뉴라운드대책위위원회」를 구성했다. 민자당은 이 위원회에 그린라운드(GR)·블루라운드(BR)·기술라운드(TR)·경쟁라운드(CR)등 4개 분야별 소위원회를 두고 소속의원,국책자문위원,중앙상무위원및 외부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기로 했다. 대책위는 뉴라운드협상이 완전타결될 때까지 장기운영될 예정인데 앞으로 ▲통상무역등 국가경쟁력강화에 장애가 되고 있는 과제의 선정, ▲비현실적인 법령및 제도의 개선,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거나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관행및 행정제도의 정비에 역점을 둘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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