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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병대 마린온 순직자 5주기 추모행사 열려

    해병대 마린온 순직자 5주기 추모행사 열려

    2018년 발생했던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로 순직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마린온 5주기 추모행사’가 17일 경북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순직 장병 유가족과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윌리엄 소우자 주한 미 해병대 사령관 등 군 주요 지휘관이 함께했다. 순직 장병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추모식을 마친 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해 순직자 묘역을 참배했다. 마린온은 2018년 7월 경북 포항비행장 활주로에서 정비를 마친 뒤 시험비행 중 추락했다. 이 사고로 당시 헬기에 탑승했던 고 김정일 대령, 노동환 중령, 김진화 상사, 김세영 중사, 박재우 병장 등 장병 5명이 순직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오영대 국방부 인사기획관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하신 모든 영웅의 명예를 고양하고, 제복 입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관은 당초 추모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집중호우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게 돼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
  • 6·25 전쟁 당시 유엔 지상군 ‘스미스부대’ 유족, 기념식 국가 주도 격상 정부에 건의

    6·25 전쟁 당시 유엔 지상군 ‘스미스부대’ 유족, 기념식 국가 주도 격상 정부에 건의

    6·25 전쟁 당시 처음 투입된 유엔 지상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희생자의 유족들이 경기 오산시가 주최하는 ‘유엔군 초전기념 및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을 국가 주도 기념행사로 격상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오산시는 지난 5일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열린 유엔군 초전 기념행사에 참석한 유족 4명의 건의서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12일 밝혔다. 건의서는 스미스부대에서 52포병 대대를 이끈 밀러 O. 페리 장군(당시 중령)의 딸 수잔 페리(86) 여사, 노먼 포스네스(당시 상병)의 딸 리사 숄(64) 여사 등 4명이 작성했다. 이들은 건의서에서 “1950년 7월 5일 미 스미스 부대는 대한민국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며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저희 아버지들이 함께했던 미 스미스부대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추도식을 진행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권재 시장은 “6·25 전쟁 당시 미군 지상군이 유엔군 소속으로 처음 참전한 죽미령 전투는 한미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의미”라며 “오산시는 물론 유족들도 그 역사가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만큼 건의서의 의미를 보훈부 차원에서 잘 살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엔군 초전(첫 전투)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열흘 만인 7월 5일 유엔 지상군이 처음 한반도에 투입돼 오산 죽미령에서 벌인 전투이다. 당시 투입된 스미스 부대원 540명은 전차 36대를 앞세우고 남하하던 5천여명의 북한군과 6시간 14분 동안 교전해 북한군 대좌(우리 군의 대령급)를 포함, 42명을 사살했고 T-34 전차 4대를 완파했다. 하지만 첫 전투에서 540명 중 30%가 넘는 181명(실종 포함)이 희생됐다. 이 전투로 북한군은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 10일 넘는 시간을 소비했고, 그 사이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한 데 이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역전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 中 침략 대비한 대만군 한광훈련 들여다보니 [대만은 지금]

    中 침략 대비한 대만군 한광훈련 들여다보니 [대만은 지금]

    중국 공산당의 무력 위협을 받고있는 대만이 최대 연례 군사훈련인 한광훈련 실탄사격 훈련을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이번 훈련의 훈련지 중 하나로 타오위안국제공항이 사상 처음으로 선정돼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대만군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방어태세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11일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국방부는 대만 전역에서 실사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공항 두 곳에서 중국 공산당 침투에 대비한 반착륙 훈련 및 비상 이착륙 훈련 등이 실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25일 동부 타이둥 민용 펑녠공항에서는 C-130H 수송기 및 F-16V전투기 등이 투입돼 이착륙 작전이 펼쳐진다. 타이둥 펑녠공항은 1981년 문을 연 뒤 처음 한광훈련 지역으로 포함됐다. 이곳에서는 전시 상황 하에서 항공기 이착륙 가능 여부가 평가된다. 26일 북부 타오위안국제공항에서 최초로 반착륙 작전이 실시된다. 이곳에서 훈련이 실시되는 동안 항공기의 승객 수송은 계속되지만 활주로 하나가 이날 아침에 임시 폐쇄될 예정이다. 당국은 현재까지 항공편 지연 등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앞서 왕궈차이 교통부장은 타오위안 공항에서 실시될 한광훈련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이라면서 약 2시간에 걸쳐 항공편 61편, 여행객 4000명 이상이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27일에는 신베이시 단수이강, 북부 바리해변, 타이베이항구 일대에서 반상륙작전이 실시된다. 이 지역들은 적이 대만 상륙 후 타이베이로 접근 시 유력한 침투로이자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린원황 대만 국방부 작계실 연합작전계획처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훈련의 목적은 전투력 보전, 해상 요격 및 호위, 국토방어로 나누었다”면서 “그중 해상 요격 부분에 있어서 적의 중요 수로 봉쇄에 대응하고 해상 교통의 원활한 흐름과 안전을 유지하는 전술을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특별히 특정한 지역들 외에도 대만 전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이 실시된다. 국방부는 중국 공산군 공격을 시뮬레이션해 자국군의 실제 전투력을 측정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훈련 첫날은 적 출현을 가장해 공군은 서부에 주둔 중인 일부 전투기를 동부 화롄 자산기지로 출동시키고 해군은 군함들을 긴급 출항시킬 예정이다. 이어 훈련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중국군 대항 훈련이 실시되고 마지막으로 반격 작전 등이 실시된다. 한광훈련 실탄 훈련의 주요 목적은 한광훈련 시뮬레이션 훈련에서 수집한 자료를 검증하는 데 있다. 한광훈련의 시뮬레이션 훈련은 지난 5월에 치러졌다. 1984년부터 실시된 한광훈련은 중국 공산당의 침략에 대비해 대만군의 전투준비태세를 평가하기 위한 연례 훈련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과 실사격 훈련으로 나누어 실시되고 있다. 린 처장은 이번 훈련의 중점 사안으로 “평시에서 전시태세로 전환 후 전투력 보전, 통합방공작전, 연합요격작전, 연합국토방위작전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훈련 내용에 미군의 지원 연계 여부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추궈정 국방부장은 지난 3일 입법원에서 “대만과 미국은 훈련 교류는 있지만 한광훈련은 대만군이 스스로 방어하고 싸우는 것을 가정한다”고 밝혔다. 
  • “우크라 반격, 러 방어선에 막혀 더디게 진행” WSJ

    “우크라 반격, 러 방어선에 막혀 더디게 진행” WSJ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러시아가 지난 몇 개월간 준비해온 방어선에 막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최전선 군인들과 안보 전문가 등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WSJ은 “우크라이나군은 지난해 병력과 무기, 공중 지원 부족에도 러시아군을 성공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융통성 있는 접근 방법과 지형에 대한 뛰어난 지식, 드론 및 디지털 기술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종종 게으르고 관료주의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훨씬 더 큰 러시아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WSJ은 우크라이나군의 이같은 장점은 이제 다 끝났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는 현재 가장 힘든 작전 중 하나인 반격 작전에서 참호를 구축한 적군을 제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벙커와 대전차함정, 지뢰밭 등을 포함한 물리적 방어 시설을 구축하는데 몇달을 보냈다. 이는 깊이가 15마일(약 24㎞)이 넘는 곳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안보 전문가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은 WSJ에 올해 초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많이 점령하려 했던 러시아군의 경우 공세에는 실패했지만 방어 진지를 유지하는 것은 더 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자포리자주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이 수십 ㎞에 걸쳐 서로 연결된 구불구불한 참호를 구축했으며, 이 중 일부는 콘크리트로 보강됐거나 나뭇가지와 흙으로 뒤덮여 있어 드론으로 탐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우크라이나 제108영토방위여단의 올렉시 텔레힌 중령은 WSJ에 “러시아군은 남부 점령지인 폴로히 근처 언덕 꼭대기에 6마일(약 9.6㎞) 이상 떨어진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관측소를 설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이 4차례에 걸쳐 무롬-M이라는 이 감시 체계를 파괴했으나, 러시아인들은 4번이나 새로운 것을 신속하게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 여단에서 바도스라는 호출부호를 사용하는 38세 소총 부대장은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하기 전에 그렇게 잘 준비된 진지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진지를 점령하려면 우크라이나 포병대가 먼저 그 지역을 폭격한 다음 장갑차로 진격해 보병과 교전해야 하지만, 전차와 장갑차 등의 부족으로 그 전략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처럼 점령지에 방어선을 구축한 적을 공격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에도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한 연합군은 독일군의 요새를 뚫고 내륙을 진격하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1991년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에도 연합군 지상군은 진격 전, 미군이 이라크군의 진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5주간 공중전을 벌였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은 미국 등 서방이 과거 전투에서 가졌던 것보다 부족하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소수의 소련 시절 전투기와 헬기로 구성돼 있으며 일부는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제공한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첨단 수호이 전투기와 Ka-52 헬기를 남부 전선에 배치하고 있다.우크라이나의 강력한 동맹국인 폴란드는 최근 우크라이나에 소련이 설계한 Mi-24 헬기 12기를 보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함대공군단은 러시아 군대보다 덜 정교한 목표물과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공군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를 아껴 쓰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러시아 공세 평가 보고서에서 현재 우크라이나의 반격 속도는 우크라이나가 전투력을 보존하고 영토 확장 속도를 늦추는 대가로 러시아 병력과 장비를 소모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일 방송된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방어 시설을 세우고 영토에 지뢰를 뭍을 시간을 갖기 전에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부터 무기 지원을 받고 더 일찍 반격을 개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지막 프랑스 생존자 레옹 고티에 [메멘토 모리]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지막 프랑스 생존자 레옹 고티에 [메멘토 모리]

    2차 세계대전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프랑스 참전용사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레옹 고티에가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국 BBC 방송과 일간 가디언이 3일(현지시간) 보도한 데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다 고티에를 비롯한 전우들을 가리켜 “해방의 영웅들”이라며 “우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렌에서 태어난 고티에는 1차 세계대전의 아픔 속에 유년기를 보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 한 직후 프랑스 해군에 자원 입대했으며,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로 밀려들어오기 전에 영국으로 탈출했다. 콩고,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고티에는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저항전을 이끈 샤를 드골 장군이 망명지 영국에서 구성한 ‘자유프랑스군’의 해군 특수부대, 일명 ‘코만도 키페’의 소총수 부대에 배속됐다.당시 미국과 영국, 캐나다가 주축이 된 연합군은 유럽 서부전선의 전황을 뒤집고자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의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는 ‘오버로드 작전’을 계획한다. 그 첫 단추로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에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키는 ‘해왕성 작전’을 감행한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고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고티에도 상륙작전에 투입됐다. 나흘 치 식량과 탄약으로 30㎏에 이르는 군장을 메고서는 해변으로 올라섰다. 프랑스 땅을 밟은 지 4시간이 지나 첫 목표인 벙커 하나를 점령했고, 그 뒤 78일이나 처절한 싸움이 이어졌다. 당시 그와 함께한 프랑스 코만도 부대원 177명 중 전사와 부상을 피한 이가 20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상륙 ‘디데이’ 이후 오버로드 작전은 11개월이나 계속됐고, 나치 독일의 패망과 유럽 해방으로 이어졌다.고티에는 전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고향에 돌아와 행복했고, 감개무량했다”며 “영국인들은 ‘당신들 프랑스인이 앞장서라’고 말했다”고 돌아본 일이 있다. 고티에는 전쟁 중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왼쪽 발목을 다쳤고, 완치되지 않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다. 말년에 노르망디로 돌아와 항구 마을에 정착, 평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2019년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아마 내가 젊은이를 한 명 죽였던 것 같다”며 “그의 아이들은 고아가 됐을 것이고, 부인은 과부가 됐을 것이며, 어머니는 울었을 것”이라고 전쟁 당시를 돌이켰다. 이어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日산케이 “반일로는 손해만 본다는 것을 한국은 명심하라” 훈계

    日산케이 “반일로는 손해만 본다는 것을 한국은 명심하라” 훈계

    8년 만의 한일 통화스와프 복원 등 양국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우익 성향 매체 산케이신문이 현재 분위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한층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투의 고압적 논조의 사설을 내보냈다. 그동안 한일 관계 악화의 모든 책임을 한국 측에 돌려 온 산케이는 3일 ‘통화스와프 재개…윤석열 대통령은 대일 관계 개선에 더 힘쓰라’라는 제목의 사설(코너명은 ‘주장’)을 실었다. 산케이는 한일 양국 정부가 도쿄에서 열린 재무장관 회담을 통해 금융위기 때 외화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는 통화스와프 협정을 8년 만에 복원하기로 한 사실을 소개하며 “일·한(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분야에 남아있던 현안을 해결하는 합의로, 양국이 경제 협력을 심화하는 포석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이어 “중국이 경제·군사적 패권을 추구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한 양국이 외교, 안보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산케이는 그러나 “한국의 무의미한 반일적 태도가 일·한 대립을 심화시킨 것을 교훈 삼아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한국에 일방적인 책임을 돌렸다. “통화스와프 협정은 금융위기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 등에 대처하기 위해 달러 등을 공급받는 것이다. 일·한 각각의 위기 때 적용되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협정으로 달러를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위기를 상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산케이는 “통화스와프 협정은 아시아 통화위기로 한국이 받은 타격을 고려해 2001년 체결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케시마(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 상륙 등으로 관계가 악화하면서 2015년 종료됐다”며 “이후에도 위안부 문제 등 반일 움직임이 걸림돌이 되어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 개선에 나설 때까지 재개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7일 각의를 통해 수출 절차 우대국가인 ‘그룹A’(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던 한국을 재지정하기로 결정했다. 3월에는 반도체 소재의 대한 수출관리 엄격화 조치도 완화했다. 모두 2019년에 시작된 조치를 원상 복귀하는 움직임이다.” 사설은 “한국은 ‘반일은 경제에도 나쁜 결과만을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훈계했다. 특히 “한국은 자위대 초계기 사격통제 레이더 조준 문제 등 해결이 미뤄지고 있는 현안에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그런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면 경제 분야를 포함한 관계 개선 움직임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러시아의 치욕’ 모스크바함 침몰…우연이 아니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러시아의 치욕’ 모스크바함 침몰…우연이 아니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작년 4월 러 순양함 ‘모스크바함’ 침몰1982년 포클랜드전 후 첫 순양함 격침호위함 없이 군사력 과시하다 ‘망신’무인기와 미사일…물꼬 튼 ‘비대칭 전략’ 기원전 264년 로마는 해상강국 카르타고와 일전을 벌입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입니다.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로마는 강력한 육군을 앞세워 승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해상에선 카르타고에 완벽한 열세였습니다. 오랜 해상 무역으로 앞선 조선술을 갖춘 카르타고 해군을 압도할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때 로마군은 묘안을 떠올립니다. 근접전에 강한 병사들을 적선에 태울 방법을 고안한 겁니다. 바로 ‘까마귀’라는 이름의 다리입니다. 갈고리로 배를 붙이고 까마귀를 내려 병사들이 건너가도록 한 뒤 백병전을 벌이는 전략입니다. 로마는 이 신무기를 도입한 덕분에 카르타고와의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무인기+미사일…‘비대칭’ 대세가 되다 이런 ‘비대칭 전략’이 먹힌 사례가 최근에도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4월 러시아 해군의 자랑 ‘모스크바함’ 격침 사건입니다. 무기조차 변변치 않았던 우크라이나군의 승전에 세계 주요 언론들은 ‘현대판 다윗의 돌팔매질’이라고 언급하며 집중 조명했습니다. 당시 승전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열악한 방어 자산을 영리하게 조합해 순양함인 모스크바함의 방어선을 뚫었습니다. 2일 학술지 학국군사학논총의 ‘러시아의 해군력 운용과 함의’ 논문에 따르면 러시아 흑해함대는 전쟁 초기부터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군은 흑해에 무려 370여개의 기뢰를 부설했는데, 러시아 해군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오데사와 크림반도 사이의 흑해 수심은 91m 미만의 얕은 바다로, 기뢰 효용성이 높은 곳이었습니다. 결국 러시아 해군은 속력을 줄이며 조심스럽게 운항할 수 밖에 없어 방어에 취약하게 됩니다.그렇다고 해도 흑해함대의 기함 역할을 하는 1만 1500t급 대형 순양함 모스크바함을 공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스크바함은 심지어 미국 패트리엇 미사일과 성능이 미슷한 ‘S-300’ 대공미사일 64발, 30㎜ 근접방어무기(CIWS) 6문을 장착해 흑해 북부의 대공 방어 핵심 자산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튀르키예로부터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 12~16기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또 자체적으로 사거리 208㎞인 ‘넵튠’ 대함 순항미사일을 개발했습니다. 넵튠 미사일은 아조우해 전역, 흑해의 3분의1을 공격할 수 있는 위력을 지녔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두 가지 무기를 이용해 기가 막힌 조합을 생각해냅니다.지난해 4월 14일 모스크바함은 아무런 호위도 받지 않고 오데사항에 접근합니다. 당시 인근 해역은 먹구름이 낀 상태였고 시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은밀히 바이락타르를 모스크바함 쪽으로 이동시킵니다. 몇 기가 동원됐는지, 전투 중 얼마나 손실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인기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무인기로 교란한 뒤 미사일로 격침” 국제정치학 박사로 이번 논문을 작성한 최영찬 합동군사대 군사전략 교관은 “모스크바함 승무원들은 넵튠 미사일이 아닌 드론과 교전하기 위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종하도록 유인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교란된 방어선을 뚫고 곧바로 넵튠 미사일 4발이 날아들었습니다. 2발은 근접방어무기에 손실됐지만, 남은 2발의 넵튠 미사일은 정확히 함선의 중심을 타격합니다. 곧이어 탄약고가 유폭돼 사실상 생명이 끊어진 함선은 세바스토폴 항구로 예인되던 도중 침몰했습니다. 유럽 최강이라고 자부했던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이 순항미사일 2발을 맞고 침몰한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자존심을 다친 러시아는 “태풍으로 폭발 사고가 나 침몰했다”고 얼버무렸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급상승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우정본부는 침몰한 모스크바함을 조롱하는 기념우표까지 발행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같은 해 3월 바이락타르 무인기와 122㎜ 다중발사로켓시스템을 연계시켜 해안선 방어를 강화했습니다. 마침 러시아가 2018년 도입한 1700t급 신형 초계함 ‘바실리 비코프함’이 이동하다 이 덫에 걸려 크게 손상됐다고 합니다. 또 같은 달 러시아의 3000t급 ‘오르스크 상륙함’도 바이락타르 무인기와 ‘토치카 탄도미사일’에 의해 침몰됐습니다. 그 와중에 모스크바함까지 침몰하면서 러시아군의 대공방어력은 크게 취약해집니다. 결국 러시아 흑해함대는 초계함과 호위함 같은 소형 함선 위주로 운용하는 소극적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무인기 방어선 접근 전 격추 등 연구 필요 무인기를 이용한 우크라이나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5월 6일엔 공세도 취합니다. 바이락타르 무인기와 SU-27 전투기를 연계한 작전으로 2척의 고속정을 파괴하고 빼앗긴 흑해의 요충지 ‘뱀섬’을 수복했습니다. 러시아의 ‘토르 지대공미사일’(SA-15)을 무인기로 교란해 미사일을 소모하게 하는 치밀한 전략이 사용됐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은 순양함인 모스크바함을 포함해 호위함, 초계함, 상륙함 등 최근까지 13척의 러시아 군함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선전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있습니다. 우선 무인기 군집전술을 방어하기 위한 함정 방어체계 개발이 시급합니다. 2016년 미 해군 이지스함을 동원한 시뮬레이션에서 수백번의 전투실험을 벌인 결과 8기의 무인기를 투입할 때 평균 2.8기의 무인기가 방어선을 뚫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벌떼 공격’엔 당해낼 방법이 없는 만큼 무인기가 방어선에 도달하기 전 방어체계를 가동해 섬멸하는 게 최선입니다. 또 기뢰전 전력 확충, 노후된 함선의 기능 점검, 전시 상황을 적용한 승조원 훈련 강화도 필요하다고 최 교관은 강조했습니다.
  • 이번 집중호우로 2명 사망·…10년간 태풍·호우로 122명 인명피해

    이번 집중호우로 2명 사망·…10년간 태풍·호우로 122명 인명피해

    최근 발생한 호우로 2명이 사망한 가운데, 지난 10년간 태풍과 호우로 122명의 인명피해와 3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13~2022년 태풍·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는 122명으로, 이 가운데 76명이 2020년과 2022년에 집중됐다. 태풍·호우 사망·실종자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한 자릿수였으며 특히 2015년에는 1명도 없었다. 그러다 2019년에는 18명으로 늘었고 2020년에는 46명으로 급증했다. 2021년에는 3명이었으나 2022년에는 30명에 이르렀다. 지난해 주택피해·2020년 공공시설 피해 집중 지난해에는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와 9월 태풍 힌남노로 사망 28명, 실종 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재산피해는 5752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강한 호우로 도심형 인명피해(지하공간 등)도 많았다. 1시간 강수량 최고치가 서울 141.5㎜, 포항 111.0㎜를 기록한 지난해 서울 반지하주택과 포항 지하주차장 등 지하공간에서 1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2020년에는 장마철(중부 기준 54일)이 역대 가장 길었고 하이선, 마이삭, 바비 등 4개의 태풍이 상륙해 피해가 극심했다. 인명피해는 46명, 재산피해는 1조 3177억원이다. 또 지속적인 호우 영향으로 산사태·토사유출(21명), 하천급류(17명) 등 전형적 인명피해가 다수였다. 지난해에는 도심지 중심의 강한 집중호우로 주택피해가 다수 발생했다면, 2020년에는 하천·도로 등 공공시설에 피해가 집중됐다.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30년으로 기간을 넓혀보면 호우·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1602명, 재산피해는 23조 1229억원으로 집계됐다. 가장 인명 피해가 컸던 해는 태풍 예니가 상륙했던 1998년으로, 그해 382명의 사망·실종자가 나왔다. 그 뒤로는 2002년 270명, 2003년 148명, 1995년 127명 등의 순이다. 지난 30년간 재산피해가 컸던 해는 2002년으로 태풍 루사 영향으로 피해액은 6조원이 넘었다. 태풍 매미가 지나갔던 2003년에는 4조 400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재산피해가 1조원이 넘었던 것은 2006년, 1998년, 2020년까지 5차례다. 이번 집중호우로 2명 사망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호우로 인해 2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4시 43분쯤 경북 영주에서 주택이 산사태로 덮여 14개월 여아가 사망했다. 전남 한평군에서는 지난 27일 저녁 집중호우로 하천물이 불어나자 수문을 점검하러 나갔던 60대 수리시설 감시원이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9일에는 경기 용인시 청미천 장호원교 인근 하천에서 수영하던 10대가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중대본은 사망 사유를 호우가 아닌 ‘안전사고’로 분류하고 인명 피해 집계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시설 피해도 잇따랐다. 지난달 27~28일 호우로 인한 시설 피해는 88건(사유시설 13건, 공공시설 75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유시설 중 농작물의 경우 4375.4㏊(헥타르)가 침수 또는 유실·매몰 피해를 봤다. 행안부는 1일 오전 8시부로 풍수해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관심’으로 하향하고 중대본 비상 1단계를 해제했다. 행안부는 이번 호우로 지난 27일 오후 10시부터 중대본을 가동해왔으며 한때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로, 중대본을 비상 2단계로 상향한 바 있다.
  • 해병대 상륙작전 핵심 ‘마린온’ 전력화 완료

    해병대 상륙작전 핵심 ‘마린온’ 전력화 완료

    해병대 상륙작전의 핵심 전력인 ‘마린온’ 상륙기동헬기가 전력화를 마무리했다고 방위사업청이 29일 밝혔다. 마린온은 국내에서 개발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을 해병대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개조한 회전익 항공기다. 수리온이 육군의 기동헬기라면 마린온은 해병대가 해상·함상에서 쉽게 운용할 수 있게 특화된 헬기라고 할 수 있다. 2013∼15년 체계개발을 거쳐 2016년부터 전력화를 진행했다. 마린온은 상륙함으로부터 해병대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는 입체적인 상륙작전뿐만 아니라 지상 작전 지원을 위한 공중강습, 도서 지역 국지도발 시 신속 대응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마린온 개발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마린온에 이어 지난해 10월 무장형인 상륙공격헬기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오는 2026년 체계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병대원 엄호와 지상전투부대에 대한 항공 화력지원 임무를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김용대 방사청 헬기사업부장은 “국내에서 개발한 상륙기동헬기는 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함은 물론, 낮은 운영유지 비용이 장점”이라며 “상륙공격헬기 등 파생형 헬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상륙기동헬기의 성능도 지속해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사청은 이외에도 해군의 공중 소해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KAI와 3477억원 규모의 ‘소해헬기 체계개발 사업’ 계약을 맺었다. 소해헬기 역시 마린온을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소해’란 함정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바닷속 지뢰’인 기뢰 등 위험물을 제거하는 일을 말한다. 소해헬기 체계개발 완료는 오는 2026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후 2030년까지 해군에 소해헬기대대를 창설하고 계획한 헬기 물량을 전력화한다는 방침이다. 군에서는 소해헬기 개발이 완료되면 국가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해상으로 운반되는 우리나라의 주요 항구·해상교통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핵심 무기체계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맥아더 동상 망치로 깨고 낙서…반미단체 회원들 벌금형

    맥아더 동상 망치로 깨고 낙서…반미단체 회원들 벌금형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설치된 맥아더 동상에 래커 스프레이로 낙서를 한 반미단체 회원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과거 이 단체의 한 회원은 이 동상에 불을 지르고 화형식을 열어 처벌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5단독 홍준서 부장판사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반미성향 단체인 ‘평화협정운동본부’ 상임지도위원 A(61)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조직위원장 B(54)씨에게 벌금 15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8일 오전 2시 46분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서 붉은색 래커 스프레이로 맥아더 장군 동상에 ‘내가 점령군, 미군 추방’이라고 낙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B씨가 잡고 있던 사다리를 타고 동상에 올라가 범행했다가 행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그는 맥아더 동상 아래에 ‘주한미군 추방, 전쟁연습 규탄’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건 뒤 4m 높이의 돌탑과 동상에 낙서를 했으며, 전쟁 공적비는 정과 망치로 쪼아 훼손하기도 했다.이후 담당 구청인 인천 중구는 920만원을 들여 동상의 낙서를 지우고 보수했다. 이들이 소속된 평화협정운동본부는 2016년 출범한 이래 주한미군 철수와 비핵화 등을 주장했다. 평화협정운동본부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맥아더는 77년 전 점령군 수장으로 들어와 이승만 괴뢰정권을 만들고 이 땅을 신식민지로 만들었다”면서 “전쟁광 맥아더를 응징하고 북침 전쟁 연습을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이 단체의 상임대표인 60대 목사 C씨는 2018년 맥아더 동상에 2차례 불을 지르고 화형식을 벌였다가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인천 자유공원 내 맥아더 장군 동상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57년 9월 설치됐다. 동상 소유권은 맥아더 장군 가족이 보유하고 있다. 홍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은 벌금형을 넘는 전과가 없고, 같은 범행을 과거에 저지른 적도 없다”면서 “A씨가 주도적으로 범행을 한 점 등을 고려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 기내 통로서 대변 본 ‘황당한’ 인도男…말리는 승무원에 침까지

    기내 통로서 대변 본 ‘황당한’ 인도男…말리는 승무원에 침까지

    한 승객이 평온했던 기내 안에서 돌연 대변을 보고 기내 곳곳에 침을 뱉는 소동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상공에서 운행 중이었던 기내에서는 한동안 심한 악취가 발생해 승객들이 좌석을 이동한 상태에서 항공기가 운행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27일 인도 매체 힌두스탄 타임즈 등 현지 언론은 지난 24일 인도 뭄바이 공항에서 이륙해 델리 공항으로 향하던 에어인디아 항공기 안에서 남성 승객이 돌연 좌석 곳곳으로 이동하며 대변을 봤고, 승무원이 이를 저지하자 승무원 얼굴에 침을 뱉어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가해 남성 A 씨는 항공기가 한창 상공에 운행 중인 탓에 다른 승객들 모두 좌석에 착석하도록 지침이 안내됐을 무렵 갑자기 자신의 지정 좌석에서 이탈한 뒤 승객들이 밀집해 앉은 앞 좌석 쪽으로 이동해 하의를 탈의한 채 대변을 봤다. A씨의 행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변을 묻힌 옷 소매와 바지 등을 비행기 통로와 복도 등 기내 곳곳에 문지르기도 했다. 비행기는 금세 대변 냄새로 가득찼고 승객들은 불쾌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당시 항공기가 아찔한 높이의 상공 위를 날고 있었던 탓에 한동안 좌석에 착석하도록 안내를 받았던 승객들은 그의 기이한 행각을 목격, 경악을 금치 못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피할 수 없는 처지였다. 결국 그의 이런 기이한 행동은 승객들의 호출을 받고 출동한 승무원 여럿이 강제로 팔을 잡고 말린 후에야 중단됐으나, 그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행위를 말리는 승무원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 등의 볼썽사나운 행동을 이어나갔다. 항공기 기장은 이 남성을 옆 좌석 승객들과 격리한 채 계획대로 델리 공항으로 항공기를 무사히 운행하는데 성공했으나, 그의 비도덕적인 행위로 인해 기내 안은 순식간에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등 승객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델리 공항에 상륙한 직후 미리 출동해 있던 경찰에 인계된 이 남성은 북아칸드주 출신의 요리사로 최근까지 아프리카에 파견돼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항공사 측은 이 남성을 상대로 피해 배상 소송을 제기, 관할 경찰은 가해 남성이 외설적인 행위로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수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 ‘건물이 뜯겨나가’…美 토네이도 습격에 최소 1명 사망 (영상)

    ‘건물이 뜯겨나가’…美 토네이도 습격에 최소 1명 사망 (영상)

    미국 동부 인디애나주에 상륙한 토네이도 탓에 주택 수십 채가 파손되고 최소 한 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ABC 뉴스 등에 따르면, 적어도 두 개의 토네이도가 이날 인디애나주에 있는 마을들을 휩쓸었다. 마틴 카운티의 몬티 울프 비상관리국장은 토네이도로 의심되는 강풍이 로스트 리버 타운십에 있는 주택 한 채를 덮쳐 남성 한 명이 사망하고 그 아내가 중상을 입어 병원에 이송됐다고 말했다. 인근 존슨 카운티에서도 또 다른 토네이도가 나타나 일대를 휩쓸었다. 바저스빌 마을에서는 최소 75채의 주택이 파손됐으나,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고 현지 소방서장인 에릭 펑하우저가 전했다.그린우드 마을에서는 토네이도가 지나가면서 건물들의 파편들이 공중에 날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소셜미디어상에 공유되기도 했다. 주민 에릭 포드가 찍은 영상에는 토네이도의 강력한 바람에 건물이 뜯겨나가 파편들이 하늘로 떠올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토네이도는 각지에 정전 피해도 입었다. 아칸소주와 테네시주, 켄터키주에서 각각 10만 명 이상, 조지아주에서 17만 명 이상의 주민이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다. 토네이도 주의보는 오하이오와 미시간주로 확대됐다. 한편 토네이도는 강력한 뇌우가 대서양 해안을 따라 이동함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기상 위협을 받는 사람들 수는 이날 5700만 명에서 다음 날 8600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 비 맞으며 ‘오픈런’… 파이브가이즈 강남 개점 첫날 풍경

    비 맞으며 ‘오픈런’… 파이브가이즈 강남 개점 첫날 풍경

    쉐이크쉑·인앤아웃과 ‘美 3대 버거’로 유명세트로 먹으면 2~3만원대…땅콩 무료 제공 이른바 ‘미국 3대 버거’로 불리는 파이브가이즈가 서울 강남에 국내 첫 매장을 연 26일 궂은 날씨에도 ‘오픈런’ 행렬이 연출됐다. 이날 서초구 강남대로에 문을 연 파이브가이즈 국내 1호점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였지만, 비가 오는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쓴 채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줄은 매장 앞에만 그치지 않고 옆 건물, 옆옆 건물을 지나고 코너를 돌아 수백m 길이로 계속 이어졌다. 이 같은 오픈런은 지난달 열린 미국 햄버거 브랜드 인앤아웃 팝업스토어, 잠실에 위치한 고든램지 버거, 2016년 국내에 상륙한 쉐이크쉑 등 개점 때도 반복된 바 있어 이날 파이브가이즈 국내 1호점 개점 때도 예상됐던 바다. 파이브가이즈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23개 국가에서 18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 상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에서는 홍콩,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마카오에 이어 6번째다. 국내 운영권은 한화갤러리아 자회사 에프지코리아가 갖고 있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2년여간의 노력 끝에 브랜드 유치에 성공했다. 쉐이크쉑, 인앤아웃버거와 함께 미국 3대 버거로 통하며 버거와 음료, 감자튀김 등을 함께 먹으면 2~3만원이 드는 프리미엄 햄버거 브랜드다. 매뉴를 주문하고 대기하는 고객들에게 땅콩을 무료로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매장에서 수작업으로 만드는 패티, 주 5회 신선하게 구워 배송되는 빵, 생감자를 직접 썰어 100% 땅콩기름으로 튀겨내는 감자튀김 등이 특징이다. 에프지코리아 측은 “미국 본토의 가격보다 13%가량, 홍콩보다는 17% 정도 낮은 가격을 책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프지코리아는 향후 5년 내에 15개 이상의 국내 매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 사졸보다 앞장서 일당백… 왜군 떨게 한 ‘노원평 전투’ 승리 이끌었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사졸보다 앞장서 일당백… 왜군 떨게 한 ‘노원평 전투’ 승리 이끌었다[서동철의 임진왜란 열전]

    고언백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작원관전투의 밀양부사 박진, 이치전투의 동복현감 황진, 구미포전투의 강원도조방장 원호 장군과 함께 육전(陸戰) 4대 명장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행주대첩 이후 왜적은 한양도성에 웅크리고 있었으니 군량미가 떨어지면 경기도 일대로 노략질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양주목사 고언백은 불암산과 북한산 일대를 거점으로 왜군이 도성 밖으로 몰려나올 때마다 타격을 가했다. 왜적이 결국 도성을 포기하고 남쪽 해안으로 물러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의 하나도 보급이 철저히 차단됐기 때문이다. 고언백은 선조가 총애하는 무장(武將)이기도 했는데, 양주 일대에 몰려 있는 조선 왕릉들을 수호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임진년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차례로 휩쓸며 5월 3일 도성을 점령했다. 경상도는 왜적의 상륙지이자 북상의 통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상도 동쪽 지역은 왜적의 침입을 피한 고을도 적지 않았다. 1593년 6월 조정은 명나라의 요구에 따라 전국의 피해 상황을 집계하게 되는데, 그 결과 경상도 지역 67개 고을 가운데 피해를 입지 않은 고을이 22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경기도는 37개 고을 가운데 섬 지역인 강화와 교동을 제외한 35개 고을이 왜적의 말발굽에 휩쓸렸다. 고언백은 가장 수난이 컸던 경기도를 대표하는 장수다.●선조가 총애… 왕릉 수호 결정적 역할 고언백(高彦伯·?~1608)은 경기도 교동현이 고향이다. 무덤도 이곳에 있다. 지금은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이 된 교동도에는 2014년 연륙교가 놓였다. 고언백은 교동의 향리 출신으로 알려졌는데, 18세에 무과에 급제했다니 향리 집안에서 일어선 무관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강화도 서쪽 교동도는 국방의 요지다. 임진왜란 이후인 1629년(인조 7)에는 남양만 화량진에 있던 경기수군절도사영이 교동도로 옮겨 가면서 현에서 부로 승격하기도 했다. 경기수사가 교동부사를 겸임하는 체제였다. 개전 초기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선발대가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 고언백은 도순변사 신립의 척후장(斥候將)으로 충주 탄금대 전투에 나섰다. 7000명에 이르는 조선정규군이 그야말로 참패를 당하자 선조가 서둘러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고언백이 이끈 부대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후퇴하면서 왜적의 머리 40급 남짓을 베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고언백은 양주 일대에서 흩어졌던 군사를 다시 모아 유격전을 펼쳤다. 의병사에서도 고언백을 경기의병장의 한 사람으로 다루고 있는 이유가 됐다. 선조실록에 고언백은 5월 28일자 ‘대신이 대탄(大灘) 방비에 대해 아뢰다’라는 기사에 처음 등장한다. 대탄은 한탄강이다. ‘대탄의 방비는 임진의 방비와 비교할 때 훨씬 허술하고 제장(諸將)의 명칭 또한 정해지지 않았으니 대응책에 미진한 점이 있을까 염려된다’면서 ‘고언백은 조방장(助防將)이란 칭호를 주어 전선 수비에 협력하게 하면 이익이 될 듯하다’고 했다. 임진강 방어선이 이미 무너진 줄 모르고 상류의 한탄강 방어를 논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언백에 대한 조정의 신뢰는 높았다. 조정은 이때 고언백을 평양으로 부른 듯하다. 선조가 평양성을 버린 이후 고언백은 밤중에 대동강 건너의 적진을 기습해 수백 명을 쏘아 죽이고 300필 남짓한 말을 빼앗아 오는 전과를 올린다. 그러자 선조는 고언백을 당상관인 양주목사로 승진시켜 왕릉을 비롯한 동교(東郊) 방비의 책임을 맡긴다. 당시는 양주 온릉은 물론 서울 정릉·태릉·강릉·의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사릉·흥릉·유릉이 모두 양주땅이었다.●실록에도 “위엄·명성 서울까지 퍼져” 9월 12일자 선조실록은 ‘경기감사 심대의 장계를 보니 ‘양주목사 고언백은 한 달 사이에 세 차례나 싸움에 이겨 위엄스러움과 명성이 멀리까지 소문이 나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왕왕 멀리서 호응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백성은 한 사람도 창의(倡義)한 자가 없었는데 김향린 등이 이번에 군기(軍器)를 바쳐 왔으니 가상한 일입니다. 성 안에서 마음을 다해 내응한 자와 왜적의 목을 베어 군문에 가져오는 자는 모두 전일의 죄를 속해 주고 많은 상을 내리겠다는 뜻을 성안에 알려 백성들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소서’라 적었다. 고언백의 연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성 내부 백성 사이에 왜적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싹트고 있음을 보여 준다. 11월 들어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과 양주목사 고언백을 평양성 수복에 투입하라는 선조의 명이 내려진다. 대신들은 ‘도성 백성이 오로지 고언백을 의지하고 있으며 양주 이북을 지킬 만한 장수도 없다’며 거두어 달라고 청한다. 비변사가 ‘고언백이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있으며, 도성 백성들이 모의해서 내응한 것도 그의 힘이다. 평양에 와서 다른 장수의 지휘를 받게 하면 그저 한 사람의 용장(勇將)에 불과할 뿐이니 양주에 남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자 임금은 그대로 따랐다. 고언백은 12월 종2품 경기도방어사에 오른다. 명종과 인순왕후의 무덤인 강릉과 중종비 문정왕후의 무덤인 태릉을 파헤치려는 왜적을 격퇴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고언백에게 가의대부를 가자(加資)하는 내용을 다룬 선조실록에는 사관(史官)의 견해가 적혀 있다. ‘언백은 궁마(弓馬)를 잘 다루었는데 적을 만나면 몸을 돌보지 않고 애써 힘을 내 공격했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적으로 하여금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 적의 형세를 잘 염탐해 한밤에 기습하거나 숲속에서 저격했는데 자신이 사졸(士卒)들보다 앞서서 싸웠으며 그가 쏜 화살이 적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전후해 머리를 벤 것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로 많았으므로 왜적이 매우 두려워했다.’ 이듬해 1월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되찾았다. 2월에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도체찰사(都體察使) 류성룡은 도성을 탈환하고자 경기지역에 출몰하는 왜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구상하게 된다. 3월 26~27일 마들평야를 내려다보는 삼각산(북한산)과 수락산·불암산 일대에 매복한 조선군은 약탈에 나선 우키타 히데이에 부대를 공격한다. 도원수 김명원, 황해도방어사 이시언, 평안도좌방어사 정희립, 순변사 이빈, 평안도조방장 박명현, 의승장 사명대사 유정의 연합군이었다. 노원평(蘆原平) 전투다. 주역은 당연히 불암산성을 고쳐쌓아 근거지로 삼고 있던 고언백이었다. 노원평 싸움을 두고 류성룡은 ‘징비록’에 ‘이 전투가 행주산성 전투와 견줄 만하다’라고 했다. 그만큼 큰 승리였다. 도성 외곽에서 조선군이 선전하자 왜군은 활동 범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4월 20일 한성에서 물러난다.●임해군 내통죄 몰려 고문 끝 사망 명나라와 일본은 강화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왜군이 한강을 건너자 조선군은 이들을 추격하고자 했지만 방해가 시작됐다. 명군은 행주대첩의 영웅 전라감사 권율을 압송해 한강을 건너간 이유를 따져 물었다. 순변사 이빈과 방어사 고언백은 급보로 ‘명군이 강변에 늘어서 군사가 진격하지 못하도록 했고, 순변사의 중위선봉장 변양준의 목에 칼을 씌워 끌고 가는 바람에 상처가 심해 피를 토했다’고 조정에 알리기도 했다. 고언백의 군대도 명나라 사대수 총병의 20명 남짓한 하인들이 줄지어 서서 전진하지 못하게 하고 힐책하며 억류한 채 놓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에도 고언백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와 경상도방어사로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영남지역에서 무공을 쌓았다. 선조는 1597년 1월 21일 그를 불러들인 자리에서 “그동안 몇 곳의 변장(邊將)을 지냈는가” 하고 물었다. 고언백은 “처음에는 북병사의 군관, 다음에는 평안도병마절도사의 군관이 되었고 사신을 따라 북경에도 여덟 차례 갔다. 이후 청성만호를 거쳐 선공감 주부가 됐다. 임진년에 신립을 따라 갔다가 달천에서 패하자 신이 외로운 군사 50명과 양주와 연천 사이를 출입하면서 장정을 불러모으고 있을 때 왜구는 이미 경성에 들어왔다”고 했다. 스스로 밝힌 이력이다. 선무공신 3등에 오르고 제흥군(濟興君)에 봉해졌다. 광해군 즉위년 임해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고문 끝에 죽었다. 인조반정으로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됐다.
  • 尹, 참전 영웅·후손 일일이 언급… 한미동맹, 미래세대로 통했다

    尹, 참전 영웅·후손 일일이 언급… 한미동맹, 미래세대로 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73주년을 맞은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을 찾아 참전용사 후손들을 격려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 인사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미래세대에 한미동맹의 태동과 발자취, 동맹이 이룩한 눈부신 성과를 정확하게 알려 줘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의 동맹을 이끌 주역인 미래세대가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있게 한 동맹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결단, 피눈물 나는 노력, 그 위에서 피어난 따뜻한 우정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행사에는 국가보훈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인 김두만 장군과 고 백선엽 장군, 고 김동석 대령 후손인 백남희씨, 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 유엔군 참전용사 후손인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장과 모니카 토레스 넷, 알리비아 자위스키 등이 참석했다. 또 육·해·공 3군 사관학교 생도들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행사장에 도착해 이들과 인사를 나눴고,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알려진 의사이자 부친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인 교수에게는 “아버지께서 해군 장교로 참전한 것을 몰랐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어 인사말에서 참전용사와 이들 후손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한 뒤 “지금까지도 한국군 12만여명과 미군 7500여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그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6·25전쟁 영웅·후손 등과 함께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전’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했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한미동맹’이라고 적었다. 방명록에는 김두만 장군과 김병진 육군 사관생도 등의 서명도 함께 담겼다. 또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 박물관 1층 로비에 전시된 대한제국 초대 주미 한국공사 박정양과 초대 주한 미국공사 루셔스 하우드 푸트를 조명한 전시도 함께 둘러봤다.
  • 尹,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서 “미래세대에 동맹 눈부신 성과 알려야”

    尹,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서 “미래세대에 동맹 눈부신 성과 알려야”

    인요한 교수 등 참전용사 후손에 인사방명록에 “정의로운 한미동맹” 적어 윤석열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73주년을 맞은 25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을 찾아 참전용사 후손들을 격려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행사 인사말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미래세대에게 한미동맹의 태동과 발자취, 동맹이 이룩한 눈부신 성과를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며 “앞으로 우리의 동맹을 이끌 주역인 미래세대가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있게 한 동맹의 가치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결단, 피눈물 나는 노력, 그 위에서 피어난 따뜻한 우정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행사에는 국가보훈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인 김두만 장군과 고 백선엽 장군, 고 김동석 대령 후손인 백남희씨, 가수 진미령씨(본명 김미령)씨, 유엔군 참전용사 후손인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장과 모니카 토레스 넷, 알리비아 자위스키 등이 참석했다. 또 육·해·공 3군 사관학교 생도들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행사장에 도착해 이들과 인사를 나눴고,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알려진 의사이며 부친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인 교수에게는 “아버지께서 해군 장교로 참전한 것을 몰랐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어 인사말에서 참전용사와 이들 후손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한 뒤 “지금까지도 한국군 12만여 명과 미군 7500여 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그분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6·25전쟁 영웅·후손 등과 함께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전’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했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한미동맹’이라고 적었다. 방명록에는 김두만 장군과 김병진 육군 사관생도 등의 서명도 함께 담겼다. 윤 대통령 부부는 이어 전시장에 마련된 ‘조약으로 보는 한미동맹전’, ‘한미동맹 70주년 홍보만화’, ‘한미동맹 6대 드라마’, ‘한미동맹 미디어아트전’ 등을 관람했다. 또 당초 예정에 없었지만 박물관 1층 로비에 전시된 대한제국 초대 주미 한국공사 박정양과 초대 주한 미국공사 루시어스 하우드 푸트를 조명한 전시도 함께 둘러봤다.
  • 한미동맹 70년史 만난다…역사박물관 연중 특별전

    한미동맹 70년史 만난다…역사박물관 연중 특별전

    한미동맹 70주년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41주년을 맞아 한미 양국 관계 역사를 다채롭게 조명한 전시가 올해 내내 이어진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록사진과 영상물을 직접 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미동맹 70년 역사를 외교·안보, 민간교류,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을 연중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특히 이날 특별전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아 전시를 관람했다. 역사박물관은 이날 한미 정부가 선정한 ‘한-미 참전 용사 10대 영웅’의 공적을 소개하는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전시를 공개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을 비롯해 아버지는 미8군 사령관·아들은 공군 조종사로 참전했던 밴 플리트 부자, 서울탈환 후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 영웅의 얼굴을 3층 다목적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김두만 공군 대장, 낙동강 전선 요충지 다부동을 미군과 함께 지켜낸 백선엽 육군 대장, 서울탈환작전의 결정적 첩보를 입수했던 김동석 육군 대령도 소개됐다. 이들의 극적인 이야기는 같은 층 주제관에 마련된 ‘한-미 동맹의 6대 드라마’ 전시에서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자세히 소개한다. 한미동맹 역사의 주요 인물 행적과 어록을 연표로 정리한 ‘한미동맹을 만들고 지켜낸 사람들’ 전시도 열리고 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양국 대표였던 슈펠트와 신헌, 6.25전쟁 참전을 신속히 결단한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한미동맹의 기반이 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끌어낸 이승만 초대 대통령, 주한 미군 철수를 반대했던 싱글 러브 전 유엔(UN)사령부 참모장 등을 소개한다. 미국 리버티 뉴스가 촬영하고 제작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 영상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선 전권대사였던 신헌이 쓴 ‘미국통상실기’(美國通商實記)를 최초로 한글 번역해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역사박물관 곳곳에서 ‘미디어아트’, ‘기록사진’,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오는 7월에는 한-미 양국 간 대중문화의 상호영향과 교류를 살펴보는 전시가, 10월에는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을 기념해 한미동맹 성과를 종합하고 미래 비전을 전망하는 전시가 이어진다. 앞서 역사박물관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연 ‘같이 갑시다 위 고 투게더’(We Go Together)를 시작으로, 5월부터는 ‘대한제국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과 주한 미국 초대공사 푸트’를 이어오고 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이번 특별전은 한-미 동맹 70년 동안 펼쳐진 역전과 재역전, 반전의 드라마를 재미있고 쉽게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73년 전 그 날…나라를 구한 ‘춘천대첩’

    73년 전 그 날…나라를 구한 ‘춘천대첩’

    6·25전쟁 당시 강원도 곳곳은 격전지였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간 벌어진 186건의 전투 가운데 78건이 강원도에서 치러졌다. 그중에서도 춘천대첩으로 불리는 춘천지구전투는 낙동강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3대 대첩으로 꼽힌다. 1950년 6월 25일부터 6월 30일까지 6일 동안 북한군 남하를 지연시켜 개전 초기 국군과 유엔군이 대응태세를 갖출 시간을 벌어줬다. 맨주먹으로 전차 막은 ‘육탄신화’ 73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오전 5시. 북한군은 국군 6사단 전방 경계진지를 향해 30분간 공격준비사격을 했다. 국군 6사단 예하 7연대는 춘천, 2연대는 홍천에 배치됐고, 예비연대인 19연대는 원주에 주둔하고 있었다. 북한군 2사단 6연대는 춘천지역 경계진지를 돌파한 뒤 자주포 10대를 앞세워 국군 7연대 1대대가 지키고 있는 옥산포를 공격해왔다. 이때 ‘불멸의 전쟁 영웅’ 심일 소령이 등장한다.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이었던 당시 심 소위와 5명 특공조 김기만 중사, 박태갑·홍일영·조군칠 하사, 심규호 일병은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육탄으로 북한군 전차를 격파했다. 국군이 거둔 최초의 전과였다. 춘천으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은 기세가 한풀 꺾였고, 국군 장병들은 사기가 올랐다. 북한군은 소양강을 도하하려 했지만 국군 6사단 포병대대 포격에 막혔다. 오히려 반격에 나선 국군 7연대 1대대가 북한군을 북한강까지 추격했다. 26일에도 북한군은 국군에 저지돼 소양강을 건너지 못했다. 27일에서야 북한군은 화력을 집중해 가까스로 소양강을 넘었다. 국군 7연대는 원창고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수차례 막은 뒤 29일 홍천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12사단은 홍천으로 향했으나 역습과 후퇴를 반복하는 전술로 맞선 국군 2연대에 막혀 30일에야 홍천을 점령할 수 있었다. 국군 6사단이 6일 동안 치른 방어전으로 북한군은 춘천~홍천~이천~수원 축선으로 우회 기동시켜 국군의 병력 증원과 퇴로를 차단한다는 당초 작전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 반면 국군은 한강 남안에 방어선을 치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했다. 북한군이 수도권 외곽을 포위하는 기도를 무산시키며 전쟁 초기의 흐름을 바꿔 놓은 것이다. 춘천에서 다시 만나는 영웅들 춘천에 가면 춘천지구전투를 기리는 춘천지구전적기념관과 춘천대첩평화공원을 만날 수 있다. 1978년 개관한 춘천지구전적기념관은 두 개 전시실과 야외전시장, 전적비 등으로 이뤄졌다. 제1전시실은 남·북한 대치와 전쟁 발발 등 전쟁 초기 상황을 모형과 장비, 유품, 사진 등으로 기록하고 있고, 제2전시실은 춘천지구전투 전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전차와 장갑차, 전투기 등이 있다. 춘천대첩평화공원에는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조형물과 무공탑, 학도병 기념탑, 월남전 참전기념탑 등이 놓여있다. 미국과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에티오피아, 터키 등 UN 참전국 국기 16기도 걸려있다. 춘천에서는 매년 춘천지구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도 열리고 있다. 제73주년 춘천지구전투 전승행사는 24~25일 춘천 삼천동 수변공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를 주제로 한 올해 전승행사는 심일 소령 추모행사, 참전용사 착복식, 의장대·태권도시범단 공연, 공군 블랙이글스 에어쇼 등으로 꾸며진다. 국방부와 육군이 주최하고, 2군단과 강원도, 춘천시, 강원서부보훈청이 주관한다. 2군단 전승행사TF팀장 한명성 소령은 “춘천지구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구국의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호국영령과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광장] 역사의 들머리에 오해가 끼어들면/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역사의 들머리에 오해가 끼어들면/서동철 논설위원

    임진왜란 당시 웅천현감이었던 허일은 ‘조선왕조실록’에 딱 두 차례 등장한다. 개전 초기 일방적으로 왜적에 밀리던 상황을 다룬 1592년 6월 28일자 선조실록이 첫 번째다. 경상감사 김수가 올린 일종의 긴급 상황보고서를 전재한 것이다. 치계(馳啓)는 이랬다. ‘거제현령 김준민이 홀로 외로운 성을 지켜 죽음으로 기약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웅천현감 허일은 적이 경내를 침범하기도 전에 먼저 도주했고, 성주판관 고현은 젊은 무부(武夫)로 홀로 먼저 도피했으며, 개령현감 이희급, 선산부사 정경달, 상주목사 김해와 상주판관 권길, 문경현감 신길원 등은 모두 도망가 숨어 버려 적이 가는지 머무는지를 일절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다음날인 6월 29일이다. 비변사의 상주 내용으로 허일을 언급한 전날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근 찰방 김종민을 추가했다. ‘적의 무리가 그 지역을 지나가자 도망하여 숨었으니 죄를 범한 것이 가볍지 않다’고 비판했다. 조선이 왜적 침입에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고, 또한 실제 전쟁이 일어나자 관료들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읽히곤 한다. 불명예스럽게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에게는 치욕이다. 물론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기에 급급해 숨어 버렸다면 어떤 비판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다. 웅천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웅천읍이 됐다. 당시 일본에서 인기 높았던 분청과 백자 가마가 밀집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국제무역이 활발한 고을이었다. 왜군이 침범하자 그들의 상륙지가 됐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다음에는 왜성을 쌓고 버틴 곳이 또한 웅천이다. 하지만 웅천현의 군사는 수백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수만 명 단위로 몰려든 왜적을 막아 내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허일은 실제로는 이런 인물이었다. 초기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된 다음 삼포수방사 겸 웅천현감으로 충무공 이순신 휘하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그러고는 제2차 진주성 전투에 다섯 아들과 출전해 최경회 의병장과 합세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왜적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자 남강에 투신해 순절했다. 세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강물에 뛰어들었고, 두 아들은 한산도해전에서 전사했다. 허일뿐만이 아니다. 고현은 성주 의병으로 활약해 훗날 병조참의가 증직됐다. 정경달은 선산을 떠나지 않고 유격전을 펼쳤고 이순신의 종사관으로도 활약했다. 김해는 의병을 규합해 정기룡 장군과 상주성 탈환에 힘을 보태다 순절했다. 권길은 상주 북천전투에서 전사했다. ‘김종민’을 ‘징비록’에서는 ‘김종무’라 적었다. 그 역시 북천에서 순국했다. 신길원은 충주로 몰려가는 왜적의 조총을 맞고 포로가 됐다. 왜장이 항복을 권유했음에도 꾸짖다 팔다리를 모두 절단당했다. 평가는 후하지 않지만, 경상감사 김수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인물이다. 왜란을 앞두고도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다. 김수는 해안 지역 성곽을 전면적으로 보수하는 데 힘썼다. 축성 작업 인원을 확보하고자 반발을 무릅쓰고 지역 사족까지 동원했으니 홍의장군 곽재우와 갈등을 빚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왜적 침입은 기정사실이었고 위기의식은 고조될 대로 고조되어 있었다. 김수는 진주성에서 왜적의 침입 소식을 들었다. 이후 경상도 서부 지역을 전전해야 했다. 왜적이 휩쓸고 지나간 고을 수령이 감사의 행방을 쫓아 보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풍문에 의지한 치계일지언정 수령들이 ‘정위치’를 지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니 김수의 보고를 거짓이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임진왜란 첫머리를 이렇게 적으면서 오늘날까지도 ‘부끄러운 전쟁’으로 인상 지운 것은 유감스럽다. 그 결과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가.
  • 호국의 다짐… SK의 실천

    호국의 다짐… SK의 실천

    SK그룹은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꼽히는 윌리엄 웨버 대령과 존 싱글러브 장군의 추모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지원한다고 22일 밝혔다. SK가 조형물 조성비용을 후원하고 한미동맹재단이 설계와 제작을 맡아 오는 10월 경기 파주 평화누리공원 미군 참전 기념비 옆에 추모비를 세운다. 웨버 대령은 공수부대 장교로 6·25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 등에서 활약했다. 원주 전투에서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장애를 딛고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19인의 용사상’과 전사자 명단을 새긴 ‘추모의 벽’을 건립하는 데 앞장섰다. 생전 여러 행사에서 왼손으로 경례하던 모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싱글러브 장군 역시 6·25 참전용사로, 1977년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미 행정부 결정에 강하게 반대하는 등 한미동맹에 이바지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두 사람은 지난해 별세해 미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SK에서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우수 학생의 미국 유학을 지원했고, 미국 청소년들에게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그 공로로 1998년 한미 친선 협회인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주는 밴 플리트상을 받았다. 최태원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이끌며 해외 유학 장학사업을 확대하고 양국 경제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같은 상을 대를 이어 수상했다. SK는 웨버 대령이 추진한 추모의 벽 건립에 2021년 국내 기업 최초로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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