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상륙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 반지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 졸업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 재생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 애도
    2026-07-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52
  • 태풍 현재위치, 기상청 트위터로 실시간 확인

    태풍 현재위치, 기상청 트위터로 실시간 확인

    제4호 태풍 ‘뎬무’가 11일 새벽 5시께 고흥반도 남단 도화면 인근에 상륙하면서 전남동부 곳곳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기상청 트위터가 제공하는 ‘태풍 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12시 현재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은 위치 35.0N,128.6E(경남 창원 부근)go 있고 동북동 방향으로 29km/h 속도로 이동 중이다. 기상청은 소(小)태풍으로 분류된 ‘뎬무’로 인해 현재 경상남북도와 지리산 부근에 강한 바람과 시간당 30mm내외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중 동해안과 경상남북도에 강한 비를 예고하며 피해가 없도록 각별한 예방과 주의조치를 당부했다. 태풍 ‘뎬무’의 이후 현황과 전망은 기상청 트위터 http://twitter.com/kma_Weather를 통해 실시간 확인 가능하다. 현재 트위터에는 예보를 찾는 방문객들의 방문이 폭주하고 있다. 사진 = 기상청 홈페이지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기자 legend@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미쓰에이 수지, 학생시절 공개 ‘귀염돋네!’ ▶ 오세정 성형고백 "화 난 아버지보다 튜닝한 코가 더 걱정" ▶ 은지원 "내 몽유병에 놀란 아내, 잠들기 전 청심환 먹어" ▶ ’나는 전설이다’ 고은미, 분노 찬 눈물연기 호평 ▶ 비스트, 멤버 이기광 실체 폭로 "허당이다"
  • [심상찮은 지구촌 기후-국내] 서울 열대야 2배 늘어

    [심상찮은 지구촌 기후-국내] 서울 열대야 2배 늘어

    가을의 시작인 입추(立秋)와 무더위의 절정이라는 말복이 지났지만 갈수록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기상청은 빨라도 9월 초순은 지나서야 폭염이 수그러들 것으로 내다봤다. 9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서울지역 열대야 발생 일수는 8일로 집계됐다. 이는 최근 10년간(2000~2009년) 평균인 4일에 비해 2배나 많은 수치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을 말한다. 지난달 1일 수원 전주 광주 정읍 고창 구미 등에서 처음으로 관측된 열대야는 7월 중순부터 전국으로 확산됐다. 특히 남부지방에 늦도록 열대야가 지속되는 이유는 해안지역의 습도가 높아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열대야가 빈번한 열대지방과 기후환경 조건이 비슷해진 탓이다. 대낮 폭염도 심각하다. 지난달 전국 평균 기온은 25.3도로 평년에 비해 0.8도나 높았다. 특히 31일 가운데 26일이 평년 기온을 넘겼다. 올여름 이상고온 현상은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평년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부근 해역에서 대류현상이 강해지면서 강한 에너지가 북서태평양 지역으로 옮겨 왔고, 이 때문에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서쪽에서 계속 한반도로 유입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열대야 현상은 남부지방의 경우 다음달 초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중부지방에서는 8월 중순까지 열대야가 계속될 것이며, 남부지방은 9월 초까지도 간헐적으로 열대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한반도 주변에 계속 머무르면서 늦더위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4호 태풍 ‘뎬무’가 한반도에 상륙하더라도 더위를 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태풍에 동반되는 많은 비로 기온은 떨어지겠지만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폭염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열중증(熱中症)을 앓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열중증은 열사병, 일사병 등을 아우르는 말로 흔히 “더위 먹었다.”고 말하는 증상이다. 초기에는 어지러움, 구토증상이 나타난다. 열중증은 주로 고온다습한 환경이나 무더위 속에서 야외작업이나 운동을 할 때 생기는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65세 이상 노인, 어린이는 특히 폭염에 취약하다.”면서 “폭염 속에서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민영·윤샘이나기자 min@seoul.co.kr
  • 태풍 ‘뎬무’ 10일 남해안 상륙, 11일 전국 많은 비

    타이완 동쪽해상에서 발생해 북상하고 있는 제4호 태풍 ‘뎬무’가 10일 우리나라 남해안에 상륙, 11일부터 전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8일 밤 9시께 타이완 타이베이 동남동쪽 약 400Km 해상에서 중심기압이 992헥토파스칼로 중심부근에서 시속 79km의 강풍과 많은 비를 동반한 약한 소형태풍이 발생해 9일 밤 일본 오키나와 서북서쪽 약 300km 해상까지 올라올 것으로 예보했다. 또한 태풍의 영향으로 10일 남해안과 지리산, 제주도를 중심으로 많은 비가 예상되며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기상청은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더위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다시보는 한산도대첩 11~15일 49회 통영축제

    경남 통영시는 이순신 장군의 구국정신을 기리고 한산대첩을 기념하는 제49회 통영한산대첩축제를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통영시 일대에서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올해 축제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에서 착안해 ‘검(劍), 장군의 검’을 주제로 정해 통영 강구안 문화마당과 이순신 공원 등에서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첫날인 11일 이순신의 날에는 해군 및 해경 입항식을 비롯해 함정공개, 고유제, 개막공연 등이 열린다. 둘째날에는 서막식과 군점, 통제사 행렬, 13일에는 남해안 별신굿 및 통영오광대 등 전통문화 공연이 펼쳐진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수군이 일본군을 격침시킨 14일 한산대첩의 날에는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재현을 비롯해 한산대첩 축제의 가장 큰 볼거리로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축제기간에 체험행사로 남망산 공원 입구 통제영 무예체험장에는 검·활·종이갑옷 만들기, 통제영 거북선과 판옥선 만들기 등의 이순신 학교가 운영된다. 이순신 학교 수료생에게는 마패를 주고 무예일기를 써서 낸 수료생 가운데 우수자를 뽑아 시상도 한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돌아온 글로벌 브랜드 “눈높이 낮춰라”

    돌아온 글로벌 브랜드 “눈높이 낮춰라”

    한국시장을 뚫지 못하고 떠났던 글로벌 브랜드들이 최근 슬며시 돌아와서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을 버린 채 눈높이를 낮추고 현지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의 특징을 면밀하게 따져 재도전에서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저가정책으로 20년만에 영업재개 4일 업계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타코벨’은 최근 서울 이태원에 1호점을 내고 20년 만에 한국 영업을 재개했다. 타코벨은 미국 등 19개국에서 6000여개에 이르는 매장을 운영 중인 글로벌 브랜드로 국내에는 피자헛, KFC, 버거킹 등과 함께 1984년 처음 상륙했다. 당시 타코벨은 “한국인은 서서 먹는 것을 싫어한다.”고 판단, 패스트푸드점이 아닌 고급 레스토랑 형태로 진출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50원에 불과하던 시절에 타코벨은 세트 메뉴 가격으로 7000원을 받았다. 지나친 고가정책을 고집하다 결국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자 1990년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돌아온 타코벨’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저가정책으로 승부를 걸었다. 제일 저렴한 타코 메뉴가 1500원으로, 업계 전체에서 가장 싸다. 신상용 타코벨코리아 대표는 “빠른 시간에 저렴한 가격으로 메뉴를 즐길 수 있는 QSR(초고속 서비스 음식점)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라이선스 판매→직영체제 전환 세계 1위 침대 브랜드인 ‘씰리’도 최근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계기로 한국시장 재공략에 나섰다. 1980년 국내 침대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소비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씰리는 1996년 독자 브랜드로 독립해 제품을 판매했지만, 실적은 부진했다. 2007년 국내 가구업체와 다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재기에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라이선스 판매 방식만으로는 한국시장 안착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씰리는 2008년 12월 호주 법인과 함께 ‘씰리코리아’를 세워 직영 체제를 갖췄다. 김인호 씰리코리아 사장은 “씰리가 한국에 직접 나서 재상륙한 만큼 제품 품질 등 모든 분야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저가격 다기능 스마트폰 출시 2003년 한국을 떠났던 세계 1위 휴대전화업체 ‘노키아’도 최근 부는 스마트폰 열풍에 편승해 한국시장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저기능·저가격 제품이라는 강점을 가진 노키아는 1990년대 국내에 2세대 휴대전화를 출시했지만 다양한 기능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X6’을 출시하는 등 올해 한국시장에 4~5종의 스마트폰을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다. 저렴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스마트폰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춰 한국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일본 커피브랜드 1위 업체인 ‘도토루’도 1996년 철수한 지 13년 만인 지난해 7월 서울우유와 제휴를 맺고 한국에 재진출했다. 서울우유의 넓은 유통망을 확보한 도토루는 대표 제품인 ‘도토루 더 클래식’을 하루 8만개가량 판매하며 순항하고 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요금제’로 맞짱뜬 KT-SKT, 주도권 다툼 “밀리면 끝장”

    ‘요금제’로 맞짱뜬 KT-SKT, 주도권 다툼 “밀리면 끝장”

    [서울신문NTN 김수연 기자] 첫 포문은 SK텔레콤이 먼저 열었다. 지난달 14일 SK텔레콤의 정만원 사장은 간담회를 열고 8월초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KT가 도입한 ‘와이파이 무료제공 요금제’에 맞불을 놓은 셈이다. 업계 최초로 시도되는 파격적인 요금제는 시작부터 이전투구로 얼룩지고 있다. KT의 표현명 사장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KT 한 고위 임원은 “제살깎기의 결정판이다. 다함께 죽자는 얘기”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SKT는 “실효성이 없는 것은 오히려 와이파이에 의존한 KT의 요금제”라며 즉각 반격에 나서고 있다. 아이폰의 국내 상륙으로 한바탕 신경전을 치렀던 국내 1,2위 통신사업자 간 2차 대전이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무기는 ‘스마트폰 요금제’, 고지는 ‘무선 데이터 시장 주도권’이다. ◆KT ‘와이파이 무료제공 요금제’ VS SKT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KT가 내민 카드는 ‘와이파이’(무선랜)다. KT는 자사 스마트폰 고객이 와이파이존에서 무선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무료로 제공되는 데이터 용량도 이월해서 쓸 수 있게 했다. KT의 스마트폰 고객들의 대다수는 매월 제공되는 무료 데이터용량을 다 쓰지도 못하고 이월해서 쓰고 있다. 2만 7000여 곳에 달하는 KT의 와이파이존이 있기 때문이다. 표현명 사장이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도 ‘와이파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SKT의 경우, 와이파이 경쟁력면에서 KT에 수적으로 열세다. 현재 SKT가 구축한 와이파이존은 5000여 곳으로 KT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연말까지 1만5000곳으로 확대 구축한다지만 KT가 내년 연말까지 10만 개의 와이파이존을 구축할 계획이어서 SKT에는 ‘무선랜 따라잡기’가 아닌 다른 전략이 요구된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다. SKT의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골자는 5만5000원짜리 요금제부터 데이터를 무제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로 SKT 고객은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닐 것 없이3G(WCDMA) 상태로 인터넷, 검색, 동영상 등 무선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SKT는 이 요금제로 ‘데이터 사용은 와이파이 신호 잡히는 곳에서’라는 고객 인식을 뒤집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SKT는 추가로 할당받은 2.1GHz 주파수를 3G망 확대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SKT는 무선 데이터 트래픽의 폭증을 와이파이가 아닌 3G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KT “실효성 의문”, SKT “가입 고객이 말해줄 것”KT는 이러한 SKT의 요금제를 두고 한참 처진 와이파이 경쟁력을 커버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의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KT 이인원 홍보팀 차장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에 대해 “지금보다 만원 더 내고 쓰라는 얘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통신사 고객들의 대부분이 4만 5000원 요금제에 가입해 있으며 또 이들 중 대다수가 매월 무료로 할당받는 데이터 용량을 다 쓰지도 못하고 이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결국 SKT가 고객들에게 다 쓰지도 못할 데이터 용량을 ‘무제한’ 이라는 포장까지 곁들여 인심 쓰듯 건내고 만 원씩 더 받아 챙기는 형국이라는 것이 KT의 주장이다.이에 대해 SKT가 발끈했다. SKT 김영범 매니저는 “자사 고객 가운데 4만 5000원 이하의 요금제(올인원 35, 45)에 가입한 고객들이 50%를 조금 넘는다”며 “바꿔 말하면 올인원55(5만 5000원) 이상을 쓰는 고객도 그만큼 된다는 얘기고, 10명 중 4명이 올인원55 이상을 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KT측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올인원 65, 80, 95 등을 쓰던 고객들이 올인원55로 너무 많이 전환할까 봐 걱정이다”고 덧붙였다.올인원65를 쓰던 고객의 경우 올인원55 요금제로 갈아타면 만원을 덜 내고도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되는 셈이니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것. 이대로라면 KT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진다.◆일일 기준 사용량 제한 논란KT측은 또 SKT가 ‘무제한’이라고 이름붙인 요금제에 ‘요금제별 일일 기준 사용량’을 두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SKT는 올인원55(70MB), 올인원65(100MB), 올인원80(150MB), 올인원90넘버원(200MB) 등 요금제에 따라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양을 제한한다는 것. 제한되는 서비스는 VOD(동영상 서비스)/MOD(음악 서비스)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이다.이에 SKT측은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만일의 경우에 대한 대비책을 갖고 마치 일반적인 경우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는 것. SKT 관계자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의 단점은 소수의 해비(heavy) 유저가 데이터를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며 “전파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해서 써야 하는 공공재인데 현재 데이터 이용 실태를 보면 해비 유저가 50~60%를 독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3G망은 데이터와 음성통화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 사용자 폭증으로 과부하 현상이 일어날 경우 음성통화 품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이를 대비해 ‘요금제별 일일 기준 사용량’이라는 항목을 두게 됐다는 게 SKT의 설명이다. 특정 기지국에 과부하 현상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역에서 데이터를 다량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용자에게만 ‘일일 데이터 사용량 제한규정’이 적용된다.실제로 영국,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도 이를 제한하는 공정이용정책(Fair Usage Policy)을 두고 있다. 영국의 오렌지는 지난해 11월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트래픽 폭주에 대한 대비책으로 750MB의 공정이용정책을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 한편 KT의 경우 3G 망을 통한 무선 데이터 이용에 대해서는 요금제를 통해 적정 수준에서 데이터 트래픽을 제한하고 있다. ◆와이파이냐, 3G냐KT가 경쟁사 요금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또 다른 근거는 고객의 ‘와이파이 니즈’다. KT 관계자는 “이용자들은 3G(2~3Mbps)에 비해 데이터 전송 속도가 월등히 빠른 와이파이(100Mbps)를 선호한다”며 “3G를 이용해 대용량 데이터를 받을 경우 기지국과 기지국 사이를 이동할 때는 전송 끊김 현상까지 나타나 고객의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도 와이파이존을 더 구축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SKT가 고객의 무선 데이터 이용 패턴을 알면서도 역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이에 SKT는 “와이파이가 속도면에서 월등하다는 주장은 일정부분 인정한다”면서도 “와이파이도 동시 접속자가 많으면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전송의 끊김 현상은 오히려 와이파이가 더 두드러진다”며 “와이파이는 스팟(SPOT)개념이라 와이파이존을 벗어나면 바로 끊기지만 3G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터진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기지국 얘기를 하는데 SKT가 3G망을 촘촘히 구축하기 때문에 고객이 기지국 간 이동 순간을 잘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SKT는 또 KT의 3G 주파수 대역이 포화상태라고 언급하며 KT가 와이파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배경을 지적했다. KT는 “2G 가입자의 3G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KT의 주파수 빈곤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KT가 3G 무선 데이터 대역폭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한편 KT는 올해 초 추가 주파수 할당을 통해 900MHz 대역을 확보 했으나 이 주파수 대역은 향후 4G 통신서비스인 롱텀에볼루션(LTE)에 사용될 예정이다. 김수연 기자 newsyouth@seoulntn.com
  • 적잠수함 겨냥 폭뢰 투하 “도주차단” 청상어 쏴 격침

    적잠수함 겨냥 폭뢰 투하 “도주차단” 청상어 쏴 격침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 사흘째인 27일 오전부터 양국군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고강도의 대잠수함 공격 훈련을 실시했다. 양국군은 강원 강릉과 거진 동쪽 해상 등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동해 수중으로 침투하는 적의 잠수함을 공격하는 데 훈련의 초점을 맞췄다. 천안함을 공격한 잠수함(정)의 침투방식으로 추정되는 공해상으로의 우회 침투에 대해서도 탐지 및 공격 훈련이 이어졌다. ●최영함서 적항공기 겨냥 5인치포 발사 이번 훈련은 무엇보다 북한의 추가도발 방지를 위한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지난 25일과 26일 진행한 대잠수함 탐지훈련을 기초로 탐지된 잠수함을 격침하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 군의 설명이다. 적의 공격을 피하고 적 잠수함을 격파하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 훈련의 잠수함 격파 시나리오는 구축함인 최영함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최영함은 적 잠수함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탐지, 어뢰 음향대항체계(TACM)를 발사해 적의 어뢰를 피하고 주변 초계함에 ‘적 잠수함 공격’ 명령을 내렸다. 최영함과 함께 기동 중이던 호위함 충남함과 초계함 군산함 등은 전 속력으로 적 잠수함 쪽으로 다가가 일제히 폭뢰를 떨어뜨렸다. 혼비백산한 적 잠수함이 도주하려 하자 최영함이 국산 어뢰 ‘청상어’를 발사해 수장시키면서 훈련은 마무리됐다. 수상과 공중에서 침투하는 추가도발 차단 훈련도 함께 이뤄졌다. 잠수함을 이용한 방식이 실패했을 경우 보복조치를 위해 수상이나 공중을 통한 침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표적인 도발 방식이란 점에서 교과서적인 대응 훈련이다. 적 항공기의 움직임을 레이더로 포착한 최영함이 함상에 장착된 5인치포로 대공 사격을 실시했다. 적 함정들에도 76㎜주포와 40㎜ 부포를 발사해 격침시켰다. 군 관계자는 “적이 수중과 수상, 공중에서 도발하는 다중 위협 상황을 가정해 어뢰와 주포 등으로 공격하는 훈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韓美 F-15K·슈퍼호넷 공대지 사격훈련 이와 함께 해군 1함대를 주축으로 북한의 특수전부대가 해상으로 침투하는 것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훈련도 진행됐다. 북한 해군은 2개 해군 저격여단과 공기부양정 130여척, 고속상륙정 90여척 등 260여척의 병력수송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훈련에서 동해 해안으로의 침투를 가정해 편대 비행훈련을 하는 F-15K, F-16, F/A-18A/C(호넷), F/A-18E/F(슈퍼호넷) 등 양국 전투기들이 강원 필승사격장과 경기 로드리게스 및 승진훈련장으로 날아가 공대지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해안으로 침투하는 적 특수전부대가 내륙으로 이동하기 전 격멸시키기 위한 정밀사격 연습이다. 한편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국회 국방위원회 원유철 위원장, 이진삼·송영선·김효재 의원 등이 오전 동해상에서 훈련 중인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방문해 훈련을 참관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한·미 사상최대 연합훈련

    한·미 사상최대 연합훈련

    한·미 양국 군은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동해 삼척 인근 해상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천안함 사태 발생 4개월 만에 북한을 향해 무력시위를 펼치는 것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0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회담을 갖고 ‘불굴의 의지’라는 작전명의 한·미 연합훈련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 이번 훈련엔 한·미 양국에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등 8000여명의 병력이 동원되며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물론 세계 최강 전투기인 F-22(랩터) 4대도 사상 처음 한반도로 출격한다. 김경식 합참 작전참모부장은 “이번 훈련은 규모면에서 근래 보기 드물고 질적으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도발 주체인 북한에 대해 극명한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북한의 비대칭전력에 의한 도발과 정규전 대비 등 포괄적인 훈련을 종합적으로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공중·해상 미군 전력이 한반도에 전개된 것은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34년 만이다. 양국 장관은 회담 후 “한국과 미국이 방어적 성격의 훈련을 향후 수개월간 한반도 동·서해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가 연기됨에 따라 ‘전략동맹 2015’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올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 때까지 새로운 계획에 대해 완전히 합의하기로 했다. 수개월간 진행되는 훈련의 첫 시작인 동해 상에서의 한·미 연합훈련은 미 7함대의 주요 전력인 9만 7000t급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와 이지스 구축함 등 항모전투전단이 25일 훈련해역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일본 요코스카의 미 해군기지를 출발한 조지 워싱턴호와 이지스 구축함 3척은 21일 부산항에 들어올 예정이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1~2척도 참가한다. 한국군에서는 대구기지의 F-15K 등 전투기 8대가 참가한다. 해군전력은 아시아 최대 상륙함인 독도함을 비롯해 10여척, 1800t급 잠수함 등이 참가한다. 훈련은 가상의 잠수함 전력의 침투 및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것과 유사한 북한의 잠수함(정)이 출몰한 것을 가상해 공중과 해상에서 이를 추적, 격퇴하는 훈련도 진행된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차원의 역내 해상차단훈련과 유사한 특수훈련도 병행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아이폰4 또 ‘담달폰’

    아이폰4 또 ‘담달폰’

    이달 말로 예정됐던 ‘아이폰4’의 국내 출시 일정이 결국 더 늦어지게 됐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는 16일(현지시간) 미국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30일 한국을 제외한 17개국에서 아이폰4를 시판한다.”고 밝혔다. ●‘애플 SKT 공급 저울질’ 추측도 아울러 잡스는 아이폰4의 송수신불량 논란과 관련, “아이폰4의 안테나 수신불량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0.55%”라면서 “아이폰4 구매자에게 모두 케이스를 공짜로 제공하겠다. 그래도 불만이라면 30일 이내에 환불해 주겠다.”고 덧붙였다. 외신들은 이번 논란을 ‘안테나게이트’라고 부르며 애플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전했다. 아이폰4의 국내 상륙이 늦어지면서 하반기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지형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달 말 출시가 무산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플 측은 ‘한국 정부의 승인 지연’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18일 “현재까지 아이폰4의 전파 인증 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휴대전화는 국내 시판에 앞서 반드시 전자연구소의 전파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전파 인증은 신청 이후 한 달 정도 걸린다. 이에 대해 KT는 “아이폰4의 형식승인 준비 작업이 길어져 출시 일정을 1~2개월 늦추게 됐다.”고 밝혔다. KT 고위 관계자는 “아이폰4의 전파 인증 전에 통화품질이나 망 연동 테스트 등을 꼼꼼하게 하느라 출시가 늦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KT는 일반 소비자와 똑같이 애플의 현지 발표를 듣고 나서야 한국이 아이폰4의 2차 출시 국가에서 빠진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들 ‘안테나게이트’로 비꼬아 이런 점에서 애플이 평소 아이폰4 출시에 관심을 보였던 SK텔레콤에도 공급하려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아이폰4와 아이패드는 애프터서비스 문제가 해결돼야 도입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애플 측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T 관계자는 “애플이 KT를 통해 아이폰4를 출시한다고 했기 때문에 (SKT 출시는) 아니다.”고 부인했다. 애플과 KT의 협상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는 ‘오프더레코드’(비공개)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아이폰4의 독점 공급, 아이패드 연계 출시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아이폰4는 전파 인증 신청 후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9월쯤 국내에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中 핵잠함 8척 vs 美 7함대… 서태평양에선 ‘용호상박’

    中 핵잠함 8척 vs 美 7함대… 서태평양에선 ‘용호상박’

    중국과 미국의 해군력은 전체 규모나 전투능력만 놓고 보면 애당초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이번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참여할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등 12척의 핵추진 항모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아직 1대의 항모도 실전배치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태평양 지역만 놓고 보면 사정이 다르다. 중국은 특히 1980년대 이후 근해형 해군에서 지역형 해군으로 급속하게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지역을 관할하는 미 7함대와의 전력에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중국은 최근 들어 대대적으로 해군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신형 미사일 구축함을 급속도로 실전배치하고 있는 한편 항모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 군은 아직 부인하고 있지만 다롄에서 이미 한 척이 건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모에 탑재할 함재기와 관련해서도 최첨단 전투기인 젠-10을 개조해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해군은 북해, 동해, 남해함대 등 3개 함대를 갖추고 있으며 미사일 구축함 29척, 호위함 45척, 상륙함 55척 등을 실전배치했다. 72척의 공격형 잠수함 가운데 8척은 핵 추진 잠수함이다. 러시아가 보유한 잠수함 수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7함대가 갖추고 있는 1개의 항모전단과 충분히 대적할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최근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익’ 지역으로 대외에 공표한 것도 이처럼 막강해진 해군력에 따른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중국 해군은 지난 2008년말부터 소말리아 해적퇴치를 명분으로 아덴만 해역으로 구축함 등 전투함대를 보내 원양작전 및 실전경험까지 갖추고 있다. 중국의 해군력에 맞서는 미 7함대는 9만 7000t급 핵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를 중심으로 지휘함 블루리지호와 이지스 순양함 2척, 3척의 핵 잠수함, ‘알레이버크급’ 구축함 7척, 상륙함 4척 등으로 짜여져 있다. 기함인 블루리지함은 첨단 통신시설을 갖춘 전문 지휘함으로 미 해군에서도 동급은 블루리지함을 포함해 두 척밖에 없을 정도다. 7함대의 핵심인 조지 워싱턴호는 승무원만 6000여명에 이른다. 작전반경이 2000~3000㎞에 이르는 조기경보기 E-2C 호크아이와 최첨단 전투기 90여대로 중무장하고 있다. 훈련 중에도 중국 주요 해군기지와 전력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다. 7함대에는 첨단 무기들의 총집합체인 ‘꿈의 전투함’ 이지스함이 모두 9척이나 배치돼 있다. 순양함 2척과 구축함 7척이 모두 이지스함이다. 그 가운데 순양함 2척과 구축함 3척은 대잠 헬기를 운영하고 있다. 함대를 호위하면서 잠수함의 기습 공격을 24시간 경계한다. 또 바닷속에서도 LA급 공격형 핵잠수함이 지키고 있다. 7함대는 강력한 상륙전력으로도 유명하다.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인 에섹스함을 비롯, 1만 6000t급 도크형 상륙함인 덴버, 토두가, 하퍼스페리함 등 4척의 대형 상륙함을 보유하고 있다. 에섹스함은 길이 253m의 비행갑판을 갖춘 4만t급 상륙함으로, 다른 나라의 중형 항모와 거의 비슷한 크기를 자랑한다. 실제로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AV-8B 헤리어 전투기와 AH-1W 슈퍼코브라 공격헬기 등 36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있다. 유사시 이들 상륙함은 일본 오키나와 등에 주둔하고 있는 제31 미 해병 원정단(31st MEU)을 실어나르며 상륙작전의 중추 역할을 맞는다. 특히 미국은 타이완해협 위기 등 유사시에 7함대에 4개의 항모타격단을 추가배치할 수 있도록 병력을 가변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 해군 간에 대치국면이 벌어지면 중국의 해군력 운용 폭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韓商 1200명 ‘中선양 상륙작전’

    중국을 비롯,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기업가 1200여명이 중국 랴오닝성 성도 선양(瀋陽)시에 모였다.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시장을 겨냥한 ‘선양 상륙작전’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열리는 첫번째 한상대회인 ‘2010 중국 글로벌 한상대회’가 5일 선양시 정부가 마련한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오는 8일까지 계속될 한상대회에는 한국인 기업가 1200여명과 조선족 기업가, 중국인 기업가들이 대거 참석해 1대1 투자상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선양시 정부와 주선양 한국총영사관, 중국한국상회 등 3개 기관이 공동주최했다. 주최 측은 세계 각국에서 뛰는 한상들 간의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시장정보를 교환,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중 비즈니스 교류회, 한·중 100강 기업가 교류회, 한·중 상품전시회 등이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중국기업들의 한국 증권시장 상장이나 한국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투자설명회, 기업공개(IPO)설명회 등의 일정도 잡혀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손예진, ‘마이웨이’서 하차...장동건과 ‘불발’

    손예진, ‘마이웨이’서 하차...장동건과 ‘불발’

    배우 손예진이 ‘마이웨이’에서 하차하기로 해 톱스타 장동건, 손예진의 만남이 불발됐다. 최근 손예진은 강제규 감독의 신작 영화 ‘마이웨이’(가제)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손예진 소속사 측은 “시나리오가 수정되고 내용이 바뀜에 따라 손예진 씨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하차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손예진은 당초 올 가을 크랭크인하는 영화 ‘마이웨이’에 출연하기로 했었으나 시나리오 수정으로 여주인공 분량이 줄어들자 하차를 선택한 것. 영화 ‘마이웨이’는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으로 징집됐다가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참가하게 된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톱스타 장동건이 출연하는 강제규 감독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한편 손예진은 MBC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 종영 후 현재 차기작을 물색하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김수연 인턴기자 newsyouth@seoulntn.com
  • “부부젤라, 시위도구로도 효과 만점” 남미서 대박 조짐

    남아공 월드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응원도구 부부젤라가 드디어 중남미에 상륙했다. 하지만 부부젤라가 첫 선을 보인 건 축구장이 아니라 시위 현장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파업과 시위가 끊이지 않는 남미에서 부부젤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페루의 공무원들이 지난 30일(현지시간) 남미에서 첫 ‘부부젤라 시위’를 선보였다. 페루 국립가족복지연구소 소속 공무원들은 이날 24시간 파업을 벌이며 거리에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피켓이 들려 있어야 할 손에는 부부젤라가 들려 있었다. 고막이 터질 듯한 부부젤라 소음이 시위 현장을 진동했다. 예산감축에 반발해 파업과 시위를 벌인 페루 국립가족복지연구소 공무원들은 “그간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부부젤라 시위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페루 언론은 “TV 중계를 통해 남아공 월드컵 축구장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부부젤라 소리가 행인들의 관심을 단번에 집중시켰다.”면서 “부부젤라를 통해 이목을 끝다는 공무원들의 전략이 적중했다.”고 전했다. 남아공 월드컵의 심벌이 되어버린 부부젤라는 최근 들어 남미에 대량 수입되고 있다. 페루에선 개당 2달러(약 2500원)에 팔리고 있다. 일부 남미 언론은 “피켓 시위가 거의 매일 열리는 남미에서 부부젤라가 시위도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부부젤라의 소음은 130㏈에 달한다. 북(127㏈)을 칠 때보다 훨씬 큰 소리가 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브로드웨이 ‘코러스라인’ 35년만에 국내 첫선… 유일 동양인 女연출가 바욕 리

    브로드웨이 ‘코러스라인’ 35년만에 국내 첫선… 유일 동양인 女연출가 바욕 리

    “한국 배우들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배우들이죠.”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러스라인’ 연출자 바욕 리(64)는 “지금까지 35개 나라에서 공연했는데 한국 배우들의 열의가 가장 뛰어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코러스라인’은 그동안 국내에서 번안 형식으로 공연한 적은 여러번 있었으나 브로드웨이 연출진이 직접 내한해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처음이다. 대본이나 연출·무대장치는 원작 그대로이고, 배우들만 한국에서 따로 뽑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리는 1975년 ‘코러스라인’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동양인 무용수 코니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섰다. 지금은 브로드웨이 유일의 동양인 여성 연출가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현지 배우들의 안무는 물론 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원래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키가 작고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에서 꿈을 실현시키기 쉽지 않았어요. 다섯 살 때 극장 샹들리에와 벨벳 의자를 보고 무대가 내가 서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죠. 어려운 오디션 과정을 담은 ‘코러스라인’ 이야기는 제 삶 그 자체입니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토대로 코니 등장 부분의 대본을 직접 썼다. 8명의 댄서를 뽑기 위한 뮤지컬 최종 오디션을 보는 형식으로 구성된 ‘코러스라인’은 최우수 뮤지컬 등 토니상 9개 부문을 휩쓸었다. 1990년까지 총 6000회 넘게 공연되며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의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관객이나 배우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고, 완벽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코러스라인’은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75년 ‘코러스라인’은 뮤지컬 시장의 침체를 반영하듯 화려한 의상과 무대 장치 대신 배우들의 ‘맨몸’에 승부를 걸었다. 안무가 출신인 마이클 베넷이 배우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끝에 춤과 노래만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볼거리 위주로 돌아가던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사람만 등장하는 이 작품은 파격이었어요. 스타 배우가 나오지도 않고, 코러스가 주인공인 뮤지컬이니까요. 오로지 코러스라인을 중심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면 현재이고, 뒤로 물러나면 과거일 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댄서들의 솔직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죠.” 그는 ‘코러스라인’이 한국에 정식 상륙하는 데 무려 35년의 시간이 걸린 것도 화려한 대형 뮤지컬을 선호해 온 한국 뮤지컬 시장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해석했다. 1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린 치열한 국내 오디션 현장에서 그가 가장 중시했던 것은 춤과 노래, 연기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배우들을 찾는 것이었다. “세 가지 능력을 동등한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어려웠죠. 하지만 훈련 과정을 통해 노래만 하던 가수가 춤을 잘 추게 되고, 춤만 추던 댄서가 연기는 물론 노래도 부르는 등 배우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어요. 한국에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배우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과정이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인종 차별을 딛고 성공한 비결을 묻자 “문 틈이 조금 열리는 것을 보고 비집고 들어와 완벽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며 환하게 웃는 리. 그는 한국 관객들이 ‘코러스라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에 대해 ‘편안함’을 강조했다. “그냥 편하게 배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리고 거기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 본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8월22일까지 서울 코엑스 아티움. (02)747-5811.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7월 한반도… 열강 ‘군사 각축장’

    한·미 양국이 7월 서해상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인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동중국해와 극동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중국과 미국은 특정 상황을 겨냥한 훈련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으나 천안함 사태 이후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실시되는 대규모 군사훈련이라는 점에서 동북아 안보지형의 미묘한 변화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따른 대응조치로 검토돼 왔던 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훈련을 7월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라이언 화이트 국방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양국 간에 훈련의 세부사항과 관련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미 양국은 당초 6월에 서해상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논의가 진행되면서 훈련 일정이 연기됐다. 연합훈련에는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9만 7000t급)와 핵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강습상륙함을 비롯한 한국형 구축함(4500t급·KDX-Ⅱ)과 1800t급 잠수함인 손원일함, F-15K 전투기 등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중국 인민해방군은 30일 0시부터 동중국해 해상에서 실탄사격훈련에 돌입했다. 중국 정부는 이 사실을 저장성 온주만보(溫州晩報)를 통해 공개했다. 7월5일까지 6일간 저장성 저우산(舟山)∼타이저우(台州) 동쪽 8곳의 연안해역에서 펼쳐지는 이번 훈련에는 기뢰제거함, 상륙함, 대잠함, 호위함과 신형 미사일을 장착한 022형 스텔스 미사일 고속정 등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을 토대로 “중국이 동중국해 연안 해역에서 해군 훈련을 벌인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미국에 미묘하지만 주도면밀한 ‘편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군사소식통은 “같은 해역은 아니지만 지난해 7월 중순에도 인근 해역에서 실탄훈련이 실시된 적이 있다.”며 통상적 연례훈련을 앞당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군도 29일부터 시베리아를 포함한 극동 전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질 이번 훈련에는 태평양함대 사령부와 극동·시베리아 관구 사령부 산하 2만명과 전투기 70대, 전함 30척이 참여한다. 2008년 훈련 당시 8000명만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규모가 커졌다. 러시아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이번 훈련이 최근 높아지는 한반도 긴장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니콜라이 마카로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은 28일 “이번 훈련은 특정 국가나 군사동맹을 목표로 한 훈련이 아니다.”면서 “순수한 의미의 군사훈련”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강국진기자 kmkim@seoul.co.kr
  •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 名著] 데이비드 핼버스탬 ‘콜디스트 윈터’

    전후 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낡은 흑백사진이다. 호화찬란하지도, 역동적이지도, 극적 반전도 없는 재미없는 전쟁이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이 모든 얘기들이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쟁쟁한 역사가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가 출판되기 전의 얘기다.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이 책에 대해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정의했다. 부연한다면 미국인의 눈으로 본 걸작 한국전쟁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쟁보다 흥미가 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을 확실하게 불식시켜 준다. 방대한 문헌과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을 정공법으로 조명하면서도 소설처럼 읽는 재미를 보장했기 때문이다. 책은 2007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으며, 지난해 한국에서 출간됐다. 4만 8000원이라는 가격보다 1082쪽이라는 분량 때문에 지레 질릴 수도 있다. 잠깐의 망설임만 극복하면 일사천리로 읽힌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와 작전묘사는 숨이 막힐 듯 생생하고, 전쟁의 막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 고급 군인들의 권력투쟁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다. 60년 전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한 시점에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국제정세가 60년이 지난 지금과 판박이라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지적이 실감 난다. 학자들은 별로 환영하지 않는 눈치다. 흥미 위주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 된 이유는 막강 화력의 미군이 중국 해방군에게 처절하게 패했을 뿐 아니라, 참전자들의 인간 스토리가 별로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돌아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없다. 핼버스탬은 이 책의 출판을 30년 동안 구상했고, 10년 동안 집필했다. 참전용사들을 찾아 미국 구석구석을 뒤졌다. 책의 진가는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서 나타난다. 그가 인터뷰했다고 이름을 밝힌 사람은 모두 130명이다. 이 중에는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명예교수 등 유명인사도 있다. 대부분은 최전선에서 싸운 초급 장교이거나 사병들이었다. 저자는 후기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의 변두리에 사는 폴 맥기를 특별히 소개했다. 그는 지평리 전투 당시 소대장이었다. 저자는 “맥기는 55년 동안 내가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 같았다.”고 했다. “일반대중이 얼마나 고귀한 이야깃거리를 가슴속에 숨겨두고 있는지 알았고, 그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을 기획하고 연출한 스탈린과 마오쩌둥, 두 공산 지도자는 물론 옛 소련 적군 소령계급장을 달고 평양에 나타난 김일성,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에서의 행적, 대륙에서 쫓겨난 장제스 등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책은 중국군과의 첫 교전으로 시작해 미국의 참전 배경으로 옮겨간다. 세계 최강의 부대 미군이 중국군에 얼마나, 어떻게 호되게 당했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미국인답게 워싱턴 내부 정가와 군부의 이야기가 압권이다. 한국전에서 동고동락한 맥아더, 리지웨이, 알몬드 등 세 장군의 애증 관계가 저자 특유의 저널리즘적인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의 갈등과 알력이 한국전쟁에 미친 영향을 읽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만 알려진 맥아더의 야망에 대한 분석은 새롭다. 족보까지 파헤치면서 맥아더의 허상을 밝혔다. 전쟁이 발발한 1950년 겨울 한반도에는 100년 만에 닥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책제목은 하복차림으로 투입된 미군들이 중국군이나 인민군보다 ‘동장군’ 때문에 고생했다는 데서 따왔다. 50년 동안 21권의 저서를 남긴 핼버스탬은 베트남전쟁에서 실패한 미국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최고의 인재’는 베트남전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한 권이다. ‘콜디스트 윈터-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는 유작이다. 저자는 2007년 봄 마지막 퇴고작업을 마무리한 닷새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미식축구에 관한 새로운 책을 준비하려고 캘리포니아로 가던 길이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민간인 희생자 37만명 넘어…실제는 전사자보다 많을 듯

    [2010 한국전쟁 60주년 화해의 원년] 민간인 희생자 37만명 넘어…실제는 전사자보다 많을 듯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은 가해 주체가 군·경이냐, 인민군과 좌익이냐만 다를 뿐 전국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우리 측 희생자는 99만 2019명이며, 이 가운데 민간인이 37만 4160명이다. 1952년 공보처에서 작성한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는 5만 9964명이 올라가 있다. 30만여명이 가입한 국민보도연맹 소속 주민 중에 군·경이 처단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민간인 희생자는 군인 희생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전 우리측 99만명 희생” 집단 학살은 전세가 불리해져 퇴각할 때 주로 발생했다. 군·경은 북한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고 봤고, 인민군은 국군이나 유엔군에 협력할 우려가 있다며 좌·우익 인사를 무차별 처형했다. 유형별로는 ▲인민군·좌익 관련 사건 ▲예비검속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부역혐의 사건 ▲군·경 토벌 관련 사건 ▲여순반란 사건 ▲미군 관련 사건 등으로 구분된다. ●보도연맹 4934명 피살 확인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이른바 불순분자 또는 과거 좌익 관련 혐의자들을 예비검속해 1차로 집단 총살했다. 이후 9월까지는 국민보도연맹원을 경찰서 유치장이나 창고, 형무소 등에 구금했다가 군·경이 후퇴하면서 집단사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보도연맹 희생자 4934명을 확인했지만, 당시 연맹원 규모가 30만명에 달해 실제 희생 규모는 더 컸을 것으로 추정했다. 각 군 단위로 적게는 100명, 많게는 1000여명이 살해됐다. 경찰과 육군본부 정보국(CIC)이 계획적으로 학살을 주도했지만, 법적 근거나 규정은 없었다. 북한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혐의’만 있을 뿐이었다. 북한 인민군도 마찬가지였다. 점령했던 모든 지역에서 집단 학살을 감행했다. 9월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군인, 경찰, 대한청년단, 지역 유지, 우익 협조자 등을 집단 학살했는가 하면 창고에 감금한 채 불을 지르기도 했다. 서울이 수복(9월28일)된 이후 이번에는 인민군 통치기간에 협력한 부역자가 목숨을 잃었다. 재판 절차가 없어서 지역 주민들이 사적 감정이나 보복 차원에서 살해한 경우도 많았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외세개입으로 무력통일 불가능 증명”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외세개입으로 무력통일 불가능 증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에 대한 남다른 식견 때문에 설화에 휘말린 적이 많았는데, 6·25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 역사에서는 세 번의 통일전쟁이 있었는데, 삼국통일전쟁과 후삼국통일전쟁 그리고 6·25전쟁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여겨온 6·25전쟁에 통일전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재향군인회 회원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해야 했다. 독일의 전쟁사가 클라우제비츠가 설파한 것처럼 모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인 것이 분명하다. 전쟁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6·25전쟁의 목적이 통일에 있었다는 해석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전쟁 발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남북의 지도자들은 모두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김일성은 1949년에 들어서자 공공연히 ‘국토완정=공산화 통일’을 주장했다. 결국 6·25전쟁의 방아쇠를 먼저 당긴 것도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설득에 성공한 김일성이었다. 남한 지도자들의 북진통일 주장은 인민군의 기습남침으로 빛이 바래 버렸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반격에 나선 국군은 38선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해 자유의 깃발을 꽂으려 했다. 남북의 지도자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전쟁을 통해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보는 것은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도만을 고려한 역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행위자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전혀 다른 길로 전개되는 과정과 그 결과도 함께 고려해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3년여에 걸쳐 폭력과 학살의 광기에 지배된 전쟁은 엄청난 인명의 손실을 초래했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물적 자원과 생산력도 파괴했다. 전쟁은 남북대립 및 좌우대립을 통해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으로 몰고 갔다. ‘미제와 그 주구에 대한 적개심’ 및 ‘공산당에 대한 반감’은 극한적으로 증폭되고 내재화되었다. 전쟁은 남북화해와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분단을 더욱 고착화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결과를 놓고 보면 6·25전쟁을 통일전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안이한 역사인식이며, 전쟁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전쟁이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고착화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6·25전쟁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지극히 단순하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상 전쟁으로 어느 한 편을 말살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각축하는 전략적 요충지,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이 각축하는 열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북한이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미국은 신속히 참전해서 공산화 통일을 저지했고, 국군과 미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하자 중국은 신중국의 운명을 걸고 인해전술로 맞서 자유통일을 막았다. 6·25전쟁은 무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 통일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나 반대로 통일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그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불가능했음을 극명하게 증명한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에는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될 뻔했고, 그 중반에는 반대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 통일될 뻔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가 그 적대 세력에 의해 통일되는 것을 반대하는 외세의 개입으로 남북의 무력통일 기도는 모두 실패하고 도로 분단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상충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이 되어 분단된 한반도 지역에서, 적어도 1950년대의 상황에서는,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분단국가의 어느 한 쪽 세력이 주도해 한반도 전체를 무력으로 통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 바로 6·25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한국전쟁 60주년] 푸른 눈 노병 세 번 울었다

    [한국전쟁 60주년] 푸른 눈 노병 세 번 울었다

    휠체어에 앉은 노병은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깨알같이 새겨진 긴 회랑 앞에서 한참을 헤맸다. 벽면 가득 새겨진 이름들 중 사선을 함께 넘나들었던 전우의 이름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흔 나이의 침침한 눈으로 3만 8000여명의 전사자 중에 아는 이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어디선가 함께했을 낯모르는 전우의 이름만 안타깝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보내서 왔고, 싸우라고 해서 싸웠을 뿐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깊게 파인 주름 위로 눈물을 툭 떨구는 이 노병의 이름은 엘리스 앨런(90). 한국전쟁 이후 60년 만에 한국땅을 다시 밟은 그가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경기 용인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가 6·25 60주년을 맞이해 참전용사와 가족들 87명을 초청한 데 따른 것이었다. 노병의 머리 위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회랑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참전 당시 한국은 그에게 듣도 보도 못한 극동의 작은 나라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한국은 조국만큼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남은 곳이다. ‘한국전 참전용사’, 그는 그 이름을 훈장처럼 여기며 산다. 가장 먼저 찾은 국립현충원에서 그가 한 첫마디는 “우리의 희망이 헛되지 않았다.”였다. 그 사이 전혀 다른 땅으로 변한 한국에 대한 자긍심 어린 찬사였다. 이곳에서 그는 전우들에게 꽃을 바쳤다. “한 친구는 고향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바로 그날, 총탄에 맞아 전사했어요. 그렇게 기뻐했는데….” 주름진 눈가가 다시 젖어든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포병 부대 통신담당관(중사) 임무를 띠고 부산에 상륙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힘차게 북진하던 그의 부대는 10월 거대한 중공군 무리와 만났고, 결국 모두 포로가 된다. 그 후 그는 만주로, 중국으로 끌려다니며 광산 노역을 했다. 휴전협정까지의 33개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살아서 고향땅을 밟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처음 함께한 부대원 640명 중 생존자는 60명, 그 중 한 명이 앨런이었다. 전쟁기념관을 둘러본 앨런과 동료들은 서울 N남산 서울타워와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차례로 찾았다. 남산 정상에서 앨런은 서울 시내를 손으로 가리키며 “모두 황무지였는데 빌딩숲이 됐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전자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했던 한국이 이렇게까지 성장할지 몰랐다.”고 감탄했다.행사는 국무총리 주최 만찬으로 끝났다. 앨런 등 참전용사들은 24일 대구 2군사령부 방문, 25일 6·25기념식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27일 출국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實錄, 한국전쟁] (5) 또 다른 주역-맥아더·트루먼의 갈등

    미국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주역이다. 전쟁을 도발한 공산진영의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과 맞선 자유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한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또 한 사람은 5성 장군 계급장을 달고 한국전쟁을 맞이했다. 끝까지 함께 가지 못했다. 정책결정자 트루먼은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맥아더의 최후는 참담했다. 연합군이 중국군에 쫓겨 38선 이남으로 후퇴한 1951년 4월11일 트루먼으로부터 연합군 사령관직 등 모든 직위에 대한 해임통보를 받았다. 상원청문회장에 선 ‘전설적 장군’은 문민통제에 대한 불복종과 오판은 물론 거짓말까지 줄줄이 드러나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 의회는 전쟁영웅에 대한 예우를 참작, 청문회 공식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도쿄에 머문 맥아더 전세 파악못해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대통령의 그늘에서 인기 없는 상원의원과 부통령직을 지낸 트루먼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그는 후세 역사가들로부터 스탈린과 함께 냉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이뤄진 트루먼 대통령의 확신에 찬 해군 및 공군 출동명령과 엿새 만의 지상군 참전결정이 없었다면 낙동강전선 사수와 인천상륙작전의 역공, 서울수복과 압록강 국경까지의 북진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트루먼은 재임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치적 앙숙인 맥아더를 사장시킨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매도당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 3만 3000여명을 전사시키고도 전쟁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맥아더 해임 당시 트루먼은 패배자였지만, 후일 승리자로 기록됐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군사자문기구인 합동참모본부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군사적 결정’이란 점이 작용했다.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은 트루먼의 참전결정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분수령이었다. 보급라인이 길어진 인민군의 허리를 끊고, 9월28일 서울을 수복해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켰다.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역사상 육군의 공급선을 차단하면 열에 아홉은 무너지기 마련”이라고 큰소리쳤다. 사실이었다. 맥아더 일대기에는 “그의 인생에서 군인으로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날은 1950년 9월15일 하루였다.”고 적혀 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의 거대한 도박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확률은 맥아더 자신의 언급이었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편찬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맥아더는 “이 작전이 도박이라면 후에 1달러로 변해 나오게 되는 5센트를 항아리에 던져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맥아더가 남한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한반도를 민주국가로 통일시키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유일한 미국 장군이었다. 이승만 정부로부터 ‘수호자’로 숭배를 받았다. 한국의 통일이 바람직하다고 천명한 1950년 10월의 유엔결의가 맥아더의 호승심(好勝心)을 부추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워싱턴의 행정부 및 군 수뇌부는 중국과 옛 소련의 의도를 확신하지 못했고, 군사적 충돌을 우려했다. 한국전쟁이 세계 제3차대전으로 확전되지 않도록 제한된 목표를 위하여, 제한된 수단으로 전쟁을 수행하려 했다. 맥아더의 거침없는 북진이 못마땅했지만, 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의 신’으로 격상된 맥아더의 권위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맥아더는 중국정부의 개입 경고를 무시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도 엄포라며 한 귀로 흘렸다. 오히려 원폭투하 발언과 압록강 교량 폭격으로 가뜩이나 민감해진 중국 지도부를 자극했다. 오만에 빠진 맥아더의 결정적 오판이었다. ●1951년 전시중 해임통보 받아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제10장 맥아더의 해임’ 편을 보면 미국 대통령과 내각,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군사정책에 관련된 정책수립 및 자문기구를 맡는 합참과 맥아더의 관계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이 책은 “합참요원은 예외 없이 맥아더 장군보다 후임이었다. 합참의장 브래들리 원수는 육사 12년 선배인 맥아더 준장 아래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콜린스 육참총장과 셔먼 해군참모총장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초급장교였다. 반덴버그 공군참모총장은 사관생도에 불과했다.”고 기술했다. 또 “군사조직이 이러한 인적관계로 구성됨에 따라 그 영향이 의사전달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맥아더 장군이 보낸 서신에서는 합참에 대한 암시적인 훈계 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가 발견됐다. 역으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결정적인 방법으로 명령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들이 기안한 지침서는 선임자에게 실례나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 공손한 말로 표현됐다.”고 적었다. 맥아더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발발 1보를 보고받은 트루먼과 맥아더의 반응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도쿄의 극동사령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맥아더는 무관심하면서도 초연했다. 함께 있던 덜레스 국무부 고문이 걱정하자 맥아더는 “단순한 정찰병력이며 등 뒤에 한 손을 묶은 채로도 처리할 수 있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26일에도 천하태평이었다. 오히려 덜레스가 “무초 미 대사가 서울을 탈출했다.”는 급보를 전하자 그때야 알아보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적어도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맥아더에게 한국은 관심 밖의 나라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주둔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듭되는 보고를 무시했으며, “남한문제는 알아서 잘 처리하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맥아더의 보좌관 바워즈의 회고에 따르면 맥아더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을 꺼렸으며, 한국문제는 국무부 소관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전용기를 타고 전황을 살펴보러 잠시 들렀다가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곤 했다. 인천상륙작전 때나 북진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록강까지 거침없이 북진하면서 “중공군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중국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뒤로 밀리자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 대표들은 맥아더가 한국의 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사령관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맥아더가 파면된 이후 자리를 이어받은 리지웨이 장군은 종전 후 40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지 도쿄의 사령부가 알지 못했다는 점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며 그런 상황을 만든 총사령관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트루먼의 대처는 단호하고 빨랐다. 미국은 결코 ‘한반도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던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판단을 비웃듯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했다. 1950년 6월30일 새벽 5시 지상군의 투입을 승인했다. 유엔 안보리도 한국에서의 무력사용을 의결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1950년 6월25일자로 트루먼과 맥아더의 삶이 함께 엮였다. 대통령은 장군을 통제하지 못해 위엄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장군은 대통령직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위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루먼은 우연히 대통령이 되었지만, 맥아더는 철저하게 만들어진 인물이었다.”고 썼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미국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서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었다. 웨스트포인트 4년 동안 역대 최고 학점을 기록했고 미군 역사상 모든 최연소기록을 갈아치웠다. 1918년 처음 별을 단 이래 최연소 사단장, 웨스트포인트 교장, 육군 참모장, 소장, 대장, 원수에 올랐다. 1944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떼어 놓은 당상으로 보였다. 트루먼은 결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함정을 파거나, 말을 돌리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현직에 있을 때보다 저격당한 지 90년이 지난 뒤에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은 링컨을 거울로 여겼다. 트루먼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는 그가 극동지역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거야. 자기가 일개 육군장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상관은 바로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게 잘못이지.”라고 맥아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인생은 쇼, 세상은 무대’라고 생각하는 맥아더가 보기에 트루먼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쟁자였다. 워싱턴에 있는 반대세력의 수장이었다.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군 경력은 주 방위군 대위 계급장이 전부인 ‘미주리 촌놈’에 불과했다. 자신을 파면한 트루먼을 탄핵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그가 도쿄를 떠날 때 25만명의 일본인이 성조기를 흔들며 울었고, 뉴욕에 도착해 행진을 벌였을 때 700만명의 인파가 열광하면서 장군의 귀향을 슬퍼했다. 미국인들은 그를 한국전쟁의 순교자로 여겼다. 맥아더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 헌정위기를 불러왔다.’고 기술될 정도로 혼란상을 가져왔다. 상원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던’ 장군의 진면목은 매일 3000만명이 지켜보는 TV중계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일흔 살 대원수의 진실은 미리 준비한 연설과 달리 사흘 내내 계속된 청문회에서 바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등을 돌렸다. 그는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 장군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면했던 10월17일 웨이크섬 회담에서 맥아더 장군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두 번씩이나 본국소환에 불응하는 기록을 세운 전무후무한 장군이기도 했다. ●군사작전 실행후 추후 보고 합참은 맥아더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4월8일 전원회의에서 참모들은 ‘예외 없이 맥아더 해임’에 찬성했다. 미국 합참이 펴낸 ‘한국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열거한 맥아더 해임의 주요 이유는 타이완 문제에 대한 대통령과의 불화였다. 맥아더는 중립을 추구하는 트루먼 정부의 타이완 정책을 따르지 않았다. 중국의 개입에 대한 오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뒤 38선 돌파와 압록강까지 북진, 압록강 교량 폭격 같은 중요한 군사작전을 실행 후 추후 보고형식으로 승인받았다. 이 밖에 대외정책에 대해 공개 언급하지 말라는 대통령 훈령을 여섯 번이나 위반했다. 맥아더가 3월24일 중국본토로의 확전을 언급하자 트루먼은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군통수권자로서의 나의 명령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더는 그의 불복종을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해임을 결심했다고 미국 합참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