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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파티 끝난 뉴욕 타임스스퀘어…‘1.5톤 색종이’ 청소 전쟁 남았다

    신년파티 끝난 뉴욕 타임스스퀘어…‘1.5톤 색종이’ 청소 전쟁 남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에도 미국 뉴욕시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올해도 성대한 신년맞이 행사가 열렸다. 뉴욕시는 예년의 4분의1 규모인 1만 5000명으로 참가 인원을 제한했으나 행사 규모는 축소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년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볼드롭’ 행사 역시 진행됐다. 1월 1일 0시 직전 ‘원 타임스스퀘어’ 빌딩 꼭대기에서 대형 크리스털 공이 40m 높이의 깃대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자 시민들은 함께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신년 카운트다운이 끝나는 순간 타임스스퀘어 주변 건물 옥상에서는 1.5톤의 색종이가 하늘에 뿌려졌다. 시민들은 코로나를 잠시 잊고, 색종이를 맞으며 신년을 축하했다.행사가 끝난후 타임스스퀘어 거리는 색종이로 뒤덮였다.  타임스스퀘어 인근 교통통제가 오전 6시까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환경미화원들은 밤새 청소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벼운 색종이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하루 만에 청소를 끝내기란 불가능했다. 이날 뉴욕시가 수거한 색종이의 무게는 약 1.3톤으로 전해졌다. 청소 업무를 관장하는 에드워드 그레이슨 뉴욕시 위생국장은 어려운 청소작업에도 긍정적인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더 큰 쓰레기 더미를 치워도 상관 없다”면서 “색종이들은 뉴욕시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되돌아오는 곰/함윤이

    화마는 나흘 만에 잡혔다. 두툼한 잿더미와 무너진 바위들만 남기고서. 녹원은 결심했다. 담배를 끊자. 한 번에 끊어 버리자. 대신 그는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 내내 산불 사진만 바라보자니 눈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 불길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타오르는 가지들이 밤을 붉게 밝히고, 바위를 감싼 불꽃은 날개처럼 솟구쳤다. 녹원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꼼꼼히 살폈다. 어떤 사진 앞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줄에 묶인 채로 화마의 먹이가 된 개들, 산 위로 녹아내린 짐승들의 잿더미. 지난 나흘간 몇 장의 사진을 보았더라? 수십 장, 어쩌면 수백 장에 달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사진도 녹원이 찾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서….” 녹원은 도시락통을 열면서 말했다. “주말에는 산에 다녀올까 해요.” 노아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그랬듯, 탕비실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읍내의 백반집에 갔을 터였다.                    어쩌다가 노아와 매일 점심을 먹게 되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노아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탕비실에 찾아왔다. 언젠가, 센터의 다른 직원들이 노아에게 슬그머니 질문하는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었다. 노아씨는 박 주사가 안 무서워요? 노아가 물었다. “전에 일하던 곳 가시는 거예요?” 녹원이 답했다. “네,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네요. 그냥 한 번 직접 보고 올까 싶어요.” 노아가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그를 빤히 지켜보았다. 그날, 노아의 대답을 떠올리면 언제든 웃음이 나왔다. 질문을 받은 뒤, 노아는 양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말했었다. 글쎄요. 녹원 주사님 요리를 엄청 잘하시는데… 맨날 나눠 주세요. 노아가 불쑥 말했다. “주사님,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주말에 가실 때요.” “산에요? 왜요?” “그냥… 마음이 쓰여서요.” 녹원이 웃었다. “아니, 누가 주말에 직장 상사를 만나요.” “아니, 그래두 그거랑 다른 게, 저희는 친하잖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젓가락을 툭 내려놓는 손짓까지, 그 모든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녹원은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아니, 가고 싶으면 같이 가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할 거예요.” 노아가 웃었다. 녹원 역시 웃어 버렸다. 그는 창밖을 보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검게 번진 산맥이 펼쳐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산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거나 노란빛으로 번득거렸지. 지지 않는 태양처럼 사흘 내내 빛났다. 녹원은 그것을 보면서 내내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덜너덜해진 손끝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생각했냐면, 그러니까. 그것이 거기에 있을까? 그 산에서, 아직도 살고 있을까?            그해,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에서 걸려온 전화는 사무소 곳곳을 돌아 우도근 과장의 손에 도착했다. 전화를 끊은 과장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곰이 왔다구 그러네요. 녹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곰이요? 직원 중 하나가 물었다. 곰이요. 우도근이 덧붙였다. 아마 또 그 곰이겠죠.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녹원은 몇 분간 말없이 기다렸다. 곰이라는 게 무엇인지, 진짜 동물을 뜻하는지, 혹은 일종의 암호인지. 누구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않았다. 사무소 사람들 대부분이 녹원을 어려워했다. 그들은 녹원이 신입이라는 것을, 그가 대학을 갓 졸업했으며 이 사무소가 첫 직장이라는 사실을 잊은 양 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녹원이 어느 집단에 녹아들기까지는 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대개 녹원을 불편해했다. 처음에는 그의 거대한 몸집에 압도당하고, 이후에는 그의 무표정이 난처하다고들 했다. 어쩔 수 없지. 녹원은 생각했다. 불편한 건 피차 마찬가지니까. 녹원이 손을 들자, 사무실의 눈길 모두가 그에게로 쏠렸다. 녹원은 모른 척 말했다. 과장님. 저는 곰이 뭔지 모르는데요. 아 맞네. 박 주임 들어오기 전에 생긴 일이구나. 잠깐 와 볼래요? 과장에게로 가려면 사무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야 했다. 통로 측 직원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자신의 의자를 당겼다. 녹원은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갔다. 우도근 과장이 빈 의자를 꺼내어 툭툭 두드렸다. 녹원은 의자에 앉았다. 과장은 사무소 내에서 녹원을 꺼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지위 탓인지, 경력 덕인지, 혹은 한평생 산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우도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온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지위나 나이 상관없이 존댓말을 쓰고, 자잘한 실수는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이지 괜찮은 상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왜 사람이 이토록 불편할까. 아니, 사실은, 불편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우도근은 불편하고… 께름칙한 존재였다. 이 곰이 그 곰이에요. 과장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화면 중앙에서 어린 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내보인 모습이었다. 과장이 말했다. 우리끼리는 도돌이라구 불러요. 녹원이 물었다. 도도리요? 우도근이 정정했다. 도돌이. 도돌이표 할 때 그 도돌이요. 그가 곰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 이 녀석이 말이에요. 매년 돌아오거든요. 아무리 내쫓아도 포기하질 않아요. 그래서 도돌이에요. 멈추지 않고 되돌아와서요.      노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차에 탔다. 어깨에 멘 가방 입구로 스테인리스 보온병이 비죽 나와 있었다. 그는 차가 출발했을 때부터 꾸벅거리며 졸다가, 고속도로에 진입할 무렵에는 푹 잠들었다. 녹원은 라디오 소리를 줄였다. 양쪽 창 너머로 산기슭이 형태를 드러냈다. 새카맣게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였다. 녹원이 기사에서 찾아본 대로였다. 산은 파괴되고 소실되었다. 기사들은 특정한 단어들을 되풀이했다. 재앙, 재난, 상실. 평소에도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이었으나, 이번 피해는 유난히 참혹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로부터 불씨가 솟아올랐다. 불씨는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사주한 양, 화마는 적절한 환경 속에서 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현장의 직원들은 검은 재로 뒤덮인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했다. 마스크를 벗으면 까만 코피가 쏟아져요. 그들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매일매일 목이 아픕니다. 그들의 말은 녹원을 슬쩍 스치고 사라졌을 뿐이다. 녹원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곰을 생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곰에 대한 질문만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괜찮을까? 살아 있을까? 산속에서, 이제는 폐허로 변한 그곳에서? 녹원은 흘끗 조수석을 보았다. 노아는 덜컹거리는 창에 이마를 댄 채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뒷좌석의 목 베개를 찾으려다가 관두었다. 괜한 배려를 해 준답시고 잠을 깨우는 건 아닐까. 상사와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가득 긴장하여 잠들지 못한 건 또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이 움츠러들고 말았다. 녹원은 한숨을 내쉬고서 속력을 올렸다. 여전히 이런 일들이 어려웠다. 어느 정도 친밀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조차 무엇을 해 주는 게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노아는 톨게이트를 지날 즈음에 깨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좌우를 살피고서 웅얼거렸다. “주사님. 커피 안 드셨죠. 드셔야 해요. 제가 직접 내렸는데. 맛있을 텐데.” 그는 보온병 뚜껑에 커피를 따라 건네고서는, 다시금 까무룩 잠들었다. 녹원은 홀로 웃다가 커피를 마셨다. 노아의 말이 맞았다. 커피는 맛있었다. 알맞게 따뜻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한국의 마지막 야생 반달곰은 설악산에서 죽었다. 천구백팔십삼년, 녹원이 태어난 해였다. 곰은 살해당했다. 웅담을 노린 밀렵꾼의 총알이 곰의 척추를 뚫었다. 곰은 총알이 박힌 몸으로 마등령 계곡까지 달아났다. 바위들 사이에 웅크려서 며칠을 울어댔다. 그의 죽음을 다룬 기사는 울음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으엉, 으엉. 글자로 적힌 울음은 처절하기보다 우스꽝스러웠다. 으엉, 으엉. 짐승은 보름 가까이 앓다가 죽어 버렸다. 우도근은 말했다. 그 후로 이 산에는 곰이라고는 없었거든요. 그러나 사십여 년이 지난 후, 그러니까 녹원이 입사하기 삼 년쯤 전에, 곰 한 마리가 설악산에 나타났다. 아홉 살배기 암곰이었다. 백오십오 센티미터의 신장에 백 킬로그램, 날렵하다고 할 만한 덩치였다. 몇 해 전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중 하나인 양 싶었다. 주말 등산회 사람들이 그를 처음 발견했다. 당시 암곰은 폭포를 어슬렁거리며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신고인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곰이 도토리를 먹는다니까요. 곰이 원래 도토리를 먹어요? 사무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지리산에 방생한 곰들이 다른 국립공원으로 넘어간 일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이라니. 이 정도의 거리를 이동한 야생동물은 한 번도 없었다. 곧 남부보전센터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설악산 국립공원 쪽에서도 직원들을 내보냈다. 모두의 목적은 최대한 빠르게 곰을 생포하여 지리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계장이던 우도근을 포함하여, 현장직 몇몇이 포획 조에 가담했다. 그들은 방패와 밧줄을 지고서 산을 올랐다. 암곰은 폭포에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후다닥 참나무에 올라가서 버텼다. 우도근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녹색 그물을 설치했다. 보전센터 직원이 마취총을 쐈다. 십여 분이 지나고, 정신을 잃은 곰이 그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기절한 곰은 꽁꽁 묶인 채 지리산으로 돌아갔다. 그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한 달이 지났을 때 암곰이 새끼를 남기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설악산에서 낳은 새끼인지, 설악산까지 데리고 온 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야생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곰에게 어떤 발신기도 붙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새끼 곰은 폭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홀로 남은 새끼를 잡는 일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당시의 도돌이는 약 육십 센티미터 정도였다. 포획되는 순간에는 나무 뒤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더랬다. 촉촉한 코나 동그란 귀가 어찌나 귀엽던지, 현장에 나온 직원들 모두가 끙 소리를 냈더랬다. 붙잡힌 도돌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헬리콥터를 타고 지리산으로 갔다. 현장에 간 직원들은 은은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돌아가서 엄마랑 다시 만났겠지? 이것 참, 이산가족 상봉이네…. 그들 중 누구도, 그 곰이 귀환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새끼 곰이 무수한 위험을 무릅쓰며 산맥을 넘어오다니. 우도근이 손가락을 튀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 녀석이 돌아온 거예요. 이 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대피소의 직원이 먼저 곰의 흔적을 발견했다. 대피소 부근의 물푸레나무에 커다란 발톱 자국이 남아 있노라고 했다. 족제비나 오소리의 발톱 같지는 않다. 그보다 훨씬 거대하고 깊은 자국이다. 꼭 곰이 남긴 흔적처럼 보인다고. 무인카메라를 추적한 결과, 그의 말은 사실로 밝혀졌다. 다시금 보전센터의 직원들이 오고, 또 한 번 포획 조가 꾸려졌다. 우도근은 지난 포획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받아 두 번째로 방패를 들었다. 곰은 나무 위 벌집을 습격하던 중에 붙잡혔다. 마취총에 맞아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보전센터 직원들이 직접 나무에 올라가 몸을 밧줄로 묶어야 했다. 그들은 곰의 왼쪽 귀에서 조그만 기계를 하나 발견했다. 배터리가 닳은 발신기였다. 수의사는 말했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전에 서식지를 탈출한 모양이네요. 곧 그들은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냈다. 수의사는 곰이 세 살이 조금 안 된 암컷이며, 또한 두 해 전 이 산에서 퇴출당한 바로 그 새끼 곰이라는 사실까지 밝혀 주었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얘가 그 곰이라고? 우리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그 아기곰 말이야? 수의사가 말했다. 뭐, 이제 아기라고 부르긴 뭐하죠. 그의 말이 맞았다. 철창에 갇힌 짐승은 일 미터하고도 오십팔 센티미터였다. 몸무게는 백사십오 킬로그램, 울부짖는 모양새는 가히 맹수라고 부를 만했다. 곰이 또다시 지리산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들 찜찜한 느낌을 걷어내지 못했다. 과장이 말했다. 물론, 그 느낌이 맞았죠. 일 년 만에 지리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위치 추적을 했는데, KF-75가 그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돌아갔다.’ 그쪽에서도 돌아갔다고 표현하더군요. 설악산의 직원들은 혀를 찼다. 독한 곰이다. 지독한 놈이야. 쑥덕거렸다. 곰 방사 계획 같은 거 대체 누가 짠 거냐?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했다. 심지어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뭇가지마다 흰 서리가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다른 반달곰들은 지리산 곳곳에 웅크려 동면을 취하고 있을 텐데. 단 한 마리의 곰만이 얼어붙은 산맥을 넘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부터 직원들은 곰을 도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며칠간 추적이 이루어졌다. 곧 곰이 설악산에서 동면을 취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는 사무소에서도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했다. 어느덧 세 번째로 이곳에 방문한 보전센터의 직원들과 함께 동면포획을 준비했다. 산속의 굴 어딘가에 잠든 곰을 끌어내는 방법이었다. 녹원이 끼어들었다. 잠든 중에 끌어낸다고요? 네, 그래서 동면포획인 거죠. 무서운 방법이네요. 음, 사실은 그게 가장 평화로운 방법인데요. 곰의 입장에서는, 잠든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 거잖아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요. 우도근이 턱을 괴고서 녹원을 바라보았다. 곰의 입장이라. 과장이 중얼거렸다. 곧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그 미소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우도근이 말했다. 박 주임은 곰이 불쌍한가 봐요. 나는 우리 직원들이 불쌍한데. 매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짐승 하나 때문에. 안 그래요? 녹원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도근의 앉은키는 그보다 훨씬 작았다. 백육십 센티미터를 아슬아슬하게 넘는 키에 가느다란 팔다리. 그와 비슷한 외양의 남자들은 대체로 녹원을 불편하게 여겼다. 경계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녹원의 몸을, 그의 크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듯했다. 과장은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내보인 적 없었다. 외려 그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녹원을 대하곤 했다. 이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박녹원 주임님. 이번 포획 작전에 같이 가 볼래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곧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좋아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도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좋다. 그럼 정해진 거지요? 이제 자리로 돌아가세요.      사무소는 녹원이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소나무 두 그루가 정문 양쪽에서 가지를 맞대고 있었다. 진입로 안쪽으로 목조 건물이 엿보였다. 여기까지는 화마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원은 정문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 막 깨어난 노아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녹원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노아씨.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설명을 먼저 드려야겠는데요.” “아, 네, 네.” “그러니까…. 여기에 곰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시작점이었다. 녹원은 가장 건조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개체, 포획, 복원 프로젝트, 서식지, 정부 지침. 그런 단어들이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도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차 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노아는 찌푸린 얼굴로 양손을 만지작거렸다. 녹원은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돌린 노아가 활짝 웃었다. 녹원은 물속에서 나온 사람인 양 참던 숨을 토해냈다. 노아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님. 진짜로 엄청난 사연이네요. 저라도 여기 왔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녹원은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양 뺨이 화끈거렸다. 곧 코끝까지 시큰거릴 듯했다. 녹원은 노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푸른 기를 머금은 하늘은 투명해 보였다. 녹원은 길을 건넜다. 사무소 정문 기둥에 기대고 서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시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사무소의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약 사십 분이 남아 있었다. 건너편에서 달칵, 소리가 트였다. 곧 우도근이 소리를 쳤다. - 아니, 뭐야. 박녹원 주임이 건 거예요? “네, 안녕하세요, 과장님. 제가 지금 사무소 앞에 와서요. 인사라도 드리려고 했어요.” 우도근이 정문으로 나오기까지는 채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녹원은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깡마른 몸집과 산양처럼 총총거리는 걸음걸이. 과장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그를 비껴간 듯 보였다. 머리가 더 벗어지지도, 주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우도근은 어설픈 인사치레로 시간을 잡아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아니, 진짜로, 뭐 때문에 왔어요?” “도돌이 말이에요. 무사한가요?” “에? 도도리?” “도, 돌, 이. 아시잖아요. 되돌아오는 곰이요.” 우도근이 아아― 길게 소리를 냈다. 탄식 같은 소리였다. 녹원은 지금껏 내내 연습한 얼굴, 가능한 한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버티고 섰다. 과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박 주임, 그거, 곰 때문에 온 거예요? 그거 물어보러?” “네. 맞습니다.” “세상에… 박 주임 대단하네요. 아니지, 지금은 주임이 아니지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렇게나 부르세요, 보통 주사라고들 불러요.” “그래요. 박녹원 주사님.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거기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굉장하네, 정말로 굉장하네요.” 녹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과장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우도근이 한숨을 내쉬면서 웃었다.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요새는 산불 뒤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재난안전과고 자원보전과고 할 거 없이 다들 난리거든요. 곰까지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도 몰라요. 얘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발신기는요? 센터 쪽에서 확인 들어가지 않았어요?” “발신기 그거.” 과장이 수염 자국조차 없는 턱을 어루만졌다. “어디 보자…, 그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봐요. 지금 몇 시죠?” “점심시간 끝나려면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과장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녹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침내 우도근 쪽에서 손을 들었다. “좋아요. 알아봐 줄게요.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사무소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괜찮습니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요. 차 안에 있을게요.” “친구? 박 주임 친구요?” “네. 직장 동료 겸 친구요, 같이 왔어요.” 과장이 눈을 치켜떴다. 입은 헤 벌어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하리만치 환한 웃음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녹원은 어찌할 바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과장의 미소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도근은 사뭇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요.” 녹원은 그의 뒷모습이 사무소 안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자신이 과장의 안부에 대해서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차 포획은 이른 새벽 중에 진행되었다, 직원들은 사무소 정문 앞에 모였다.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으로, 우도근의 이야기에 등장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의사는 녹원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젊었다. 그와 함께 온 보전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점잖은 인상으로, 말수가 적고 걸음이 빨랐다. 설악산에서도 꽤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 녹원과 우도근을 포함한 공원사무소의 직원들 외에도, 곰이 머무는 구역 근처의 분소 직원들 역시 합류했다. 보전센터 직원들은 여섯 다리가 달린 은색 안테나를 들고 왔다. 그것으로 곰을 찾아냈다고 했다. 곰은 탐방로로부터 머지않은 계곡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도돌이가 홀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바로 그 계곡이었다. 사람들은 장비지원조와 마취조, 추적조로 나뉘었다. 녹원은 장비지원조에 배치되었다. 곰을 붙잡아 데려오는 데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우도근은 추적조에서 움직이기로 했다. 우도근의 조가 선두에, 녹원의 조가 후미에 섰다. 행렬은 흔들다리를 건너고 금강문을 거쳐서 산길을 올랐다. 폭포로 가는 방향이었다. 그들은 곧 탐방로를 벗어나 숲 안쪽을 가로질렀다. 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멈춰서 짐을 풀었다. 녹원은 가방을 내려놓고 장비를 하나씩 꺼냈다. 녹색 안전그물과 구조용 밧줄, 헬멧과 방패 등이 손에서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마취조와 추적조가 공터 너머의 폭포로 가서, 곰을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다. 녹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풀 뒤에서 조끼를 걸치는 우도근이 보였다. 녹원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우도근이 인사를 건넬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녹원은 그 몸짓을 무시하고 다짜고짜 물었다. 곰이 여기에서 살 수는 없나요? 예? 뭐라고요? 곰 말이에요. 세 번이나 돌아왔잖아요. 여기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닐까요. 원하는 곳에 놓아주는 게 불가능한가 해서요. 침묵이 흘렀다. 과장이 천천히 헬멧을 썼다. 턱에 매는 끈을 고정한 뒤 녹원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웃음기조차 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박녹원 주임님. 네, 우도근 과장님. 저건 맹수예요. 말이 천연기념물이지, 사실은 유해조수라고요. 그리고 여기는 국립공원이에요. 매일 사람들이 오가는 산이요. 이해하겠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올라오는 말을 삼키려 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그의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저도 안다고요. 과장님. 매일매일 사람들이 여기에 오잖아요. 자연이 좋다거나, 건강해지고 싶다거나, 취미 생활이라면서 산에 오르내리죠. 그런데 제 말씀은요, 과장님, 그건 그 사람들 선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 곰의 경우는 다르다고요. 쟤는 이 산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계속 되돌아오는 거겠죠.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여기서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녹원은 입을 다물었다. 턱이 떨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과장은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거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는 녹원이 건네준 가방 안에서 보호구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그는 팔꿈치와 무릎 위로 보호구를 주섬주섬 끼우며 말했다. 우리 박녹원 주임님은 말이야.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네요. 녹원은 그를 쳐다보았다. 질문들이 입안을 맴돌았다. 여기란 어디이며, 대체 무엇이 안 되는 거냐고,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론, 녹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도근은 낡은 지프를 타고 되돌아왔다. 도돌이가 사라진 지점까지 직접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미리 얘기해 놓았다고도 덧붙였다. 과장은 왜인지 들뜬 듯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과장이 따라나서 준다면, 훨씬 간편히 산을 돌아다닐 수 있을 터였다. 노아와 녹원은 우도근의 지프 뒷좌석에 올라탔다. 과장이 몸을 돌려서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 반갑습니다. 박녹원씨 직장 동료라면서요.” “네.” 노아가 그와 악수하며 답했다. “네, 동료 겸 친구예요.” 우도근이 빙긋 웃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앉았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 녹원은 우도근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박녹원씨라니. 생경한 호칭이었다. 우도근 과장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전, 저 산속에서. 우도근의 지프는 금세 산중도로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는 까맣게 탄 산맥이, 왼쪽으로는 잿빛 강이 이어졌다. 검은 산에서부터 흩날린 잿가루가 차창에 달라붙었다. 지프는 강의 굽이를 따라서 모퉁이를 돌았다. 국립공원의 시작점을 알리는 아치형 입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선 갖가지 가게들이 나타났다. 잿빛 먼지에 휩싸인 편의점과 식당, 분사무소와 등산로로 향하는 흔들다리. 우도근은 다리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차창을 내리고 강 건너편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녹원과 노아는 창밖으로 목을 뺐다. 강 건너로 접근금지 테이프를 친 약수터가 보였다. 폭포 방향으로 입산하는 사람들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치는 구간이었다. 몇 해 전 녹원이 삼차 포획 행렬에 낀 채로 지나갔던 지점이기도 했다. 우도근이 약수터 위쪽을 가리켰다. “저쪽 산허리에서 발신기를 발견했어요. 아주 훼손되었다던데. 억지로 뜯어 버렸나 봐요.” “그 외 흔적은 못 찾았고요?” “네, 사체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과장이 룸미러로 녹원의 얼굴을 흘긋 보았다. 그가 시동을 끄면서 말했다. “산에 다녀오고 싶으면, 지금 다녀와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 테니까.” 녹원은 머뭇거렸다.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지금껏 우도근을 오해했던 것일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과장은 친절하고 온화한 남자였다. 녹원의 기억 속에서 보여 주던 적대적인 태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허탈한 웃음이나 경시하던 눈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군처럼 보였다. 녹원은 차에서 내렸다. 노아가 그를 뒤따라왔다.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약수터를 지났다. 숲은 고요했다. 산으로 향하는 계단의 난간은 새까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바삭하게 타오른 나무들은 식물보다는 불꽃의 잔재처럼 보였다. 보이는 곳마다 회색 재가 휘날렸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고 잎사귀도 흔들리지 않았다. 도돌이를 처음 만난 날과는 모든 게 달랐다.         추적조와 마취조는 숲 너머로 떠났다. 장비지원조는 공터에서 짐을 가지고 대기하기로 했다. 녹원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숲속을 바라보았다. 물푸레나무와 박달나무, 피나무, 소나무, 벚나무. 여름의 샛노란 볕뉘가 나뭇가지 사이를 환히 비췄다. 곧 낯선 소리가 그 풍경을 뒤흔들었다. 쿵. 높은 곳에서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바위에 기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잎사귀들이 흔들렸다. 산 전체가 몸을 털어내는 듯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아득하게 번져 왔다. 얼마 후, 그들이 나무 그늘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행진이라도 하듯 한 줄로 선 채 숲을 가로질렀다. 수의사와 과장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 뒤로 들것을 붙든 남자들이 내려왔다. 녹원은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들것 안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짐승이 있었다. 포로처럼 눈과 입, 팔다리를 묶인 채. 녹원이 지고 온 밧줄이 곰의 몸을 엑스자로 붙잡고 있었다. 수의사의 목에 둘렀던 파란 천은 곰의 눈을 가리는 데 쓰였다. 벌어진 입 사이로 붉은 혀가 늘어져서 달랑거렸다. 녹원은 행진을 쫓는 아이처럼 곰을 따라서 걸었다. 필사적으로 들것을 쫓아가며 곰을 보았다. 그의 귀에 새로 부착된 발신기를, 어깨와 가슴을 가로지르는 흰 반달을, 마른 땅처럼 갈라진 발바닥을 보았다. 남자들은 공터 정중앙에 들것을 내려놓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호구를 주섬주섬 벗었다. 녹원은 장비들을 챙기는 일도 잊고, 내내 곰만 바라보았다. 바로 옆에 다가온 사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번 만져 봐요. 녹원은 놀라서 옆을 돌아보았다. 우도근 과장이었다. 그가 부드러운 얼굴로 곰을 가리켰다. 쓰다듬어 보라니까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어요. 머뭇거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녹원은 곰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검은 털은 까슬까슬하고 서늘했다. 피부는 몹시 단단했다. 녹원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털과 살, 그 안에서 흐르는 피가 손바닥 아래에서 두근거렸다. 녹원은 눈을 깜빡였다. 곰의 치욕과 자존심, 곰의 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온다는 뜻의 이름도 곱씹었다. 짐승이 꿈틀거린 순간에도,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나중에 과장과 수의사를 비롯한 몇 사람이 물어보았다. 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왜 달아나지 않았습니까? 녹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느꼈던 소속감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아늑하고 달콤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극복해 낼 수도 없으며,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곰은 소리를 질렀다. 으엉, 소리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밧줄의 매듭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곰은 순식간에 들것에서 벗어났다. 그는 녹원이 보았던 사진처럼 양팔을 벌리고, 가슴의 흰 반달을 환히 드러낸 채로 일어나 섰다. 도돌이는 잠시 휘청거리다가 녹원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았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현을 썼다. 끌어안았다. 곰이 그를 끌어안았다고. 녹원은 등 뒤의 바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이 녹원의 목숨을 구했다. 곰의 무게는 녹원의 몸을 지나 바위 아래로까지 분산되었다. 만약 선 채로 힘겨루기를 했거나, 땅바닥에 곧바로 쓰러졌다면, 녹원의 뼈는 모조리 부서지고 말았을 것이다. 녹원은 그 접촉을 기억했다. 그날의 다른 어떤 때보다 더욱 선명히 기억했다. 늑골을 짓누르는 냄새와 촉감. 곰은 녹원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그런데도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녹원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돌이는 저를 끌어안지 않았어요. 걔는 저한테 기대어 있었죠. 수의사도 그의 말에 증언을 보태 주었다. 곰이 박녹원씨를 고목이나 바위, 혹은 어떤 기둥처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박녹원씨에게 매달린 거죠. 파란 천이 흘러내리며 초점을 잃은 눈이 드러났다. 입가에서 흰 거품이 끓었다. 남자들이 곰을 끌어냈다. 녹원은 바위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흐릿한 사람들이 소리쳤다. 괜찮아요? 숨 쉴 수 있어요? 녹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이지 그렇지가 않았다. 호흡할 때마다 갈비뼈가 조각나듯 아팠다. 결국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곰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사에서 읽은 기묘한 울음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채우고 있었다. 정말로 으엉, 으엉, 하고 우는구나. 녹원은 생각했다. 정말로 울어버리듯이 우는구나. 바로 앞에서는,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녹원씨. 박녹원씨. 녹원은 고개를 돌렸다. 우도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그는 몇 해는 더 늙어버린 양,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에서 일하면 안 돼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해. 과장은 몇 번이나 말했다. 박녹원씨. 산에서 내려가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요.              “날이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들 가요.” 우도근은 주장했다. 녹원과 노아가 연거푸 손사래를 쳤는데도,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그의 집은 산기슭 끝자락에 있었다. 녹원과 노아는 빨간 지프를 따라서 시멘트 언덕 위를 올라갔다. 새하얀 돌벽에 노란 지붕을 올린 집이 나타났다. 옅은 녹색 잔디를 깐 마당에는 흔들 그네와 스프링클러, 평상이 놓여 있었다. 집의 뒤뜰은 산사면과 바로 맞닿았다. 천만다행으로 이쪽 능선까지는 불길이 오지 않아서 피해를 면했노라고 했다. 녹원은 자신의 트럭에서 내려와 주위를 살폈다. 우도근의 집은 언덕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언덕 앞뒤로 보이는 것은 산과 강뿐이었다. 주위에 놓인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녹슨 가로등 하나가 전부였다. 우도근이 노란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란이. 나 왔어.” 녹원은 어깨를 움츠렸다. 우도근에게 부인이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 있었다. 직접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우도근이 부인을 부르는 광경을 보다니. 란이, 라고 부르다니. 그가 누군가를 저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곰을 부를 때만 제외하면. 저녁 시간은 한없이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들은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란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아름 꺼내 녹원의 품에 안겨 주었다. 별구경하다가 자세요. 란은 오래전부터 녹원을 알아온 양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마당 평상이 별구경하기 딱 좋거든요. 맥주 곁들이면 그만 한 휴가도 없어요. 막상 부부는 평상 휴가에 동참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아홉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감겨서, 먼저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도근은 평상에 담요를 깔아 주었다. 조카에게나 건넬 법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재밌게 놀고 푹 자요. 알겠지요?” 마당에는 녹원과 노아만 남았다. 두 사람은 평상에 나란히 앉았다. 다리를 죽 편 채 맥주를 홀짝거렸다. 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살갗을 서늘하게 적셨다. 부부의 말대로, 마당에서 보는 별은 몹시 선명했다. 허공에 멈춘 불씨처럼 반짝거렸다. 녹원은 언덕 너머에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두 갈래로 나뉜 물길이 다시 한 길로 합쳐지는 지점까지 살폈다. 강 뒤편의 산은 부드러운 어둠에 잠겨 있었다. 녹원이 불쑥 말했다. “천 킬로미터예요.”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하셨어요?” “곰이 이동한 거리 말이에요. 한 번에 삼백사십사 킬로미터, 세 번 돌아오면 천백삼십이 킬로미터 정도 돼요. 서울에서 도쿄까지가 그 정도 거리래요.” 노아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지독한 곰이네요.” 녹원은 동의했다. 정말이지 지독한 곰이었다. 세 번째 귀환 이후, 이 독한 곰은 제법 유명해졌다. ‘되돌아오는 곰.’ 그런 유의 머리기사와 함께. 도돌이라는 이름 역시 앙증맞게 실렸다. 설악산 측은 이 사건을 일종의 기회로 삼았다. 설악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시작점을 ‘되돌아오는 곰’으로 삼자. 마침내 도돌이는 설악산으로 방사되었다. 몇 가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서, 사무소 내부에도 곰의 위치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절차가 투입되었다. 반응은 썩 괜찮았다.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진 곰이 번번이 돌아오던 고향. 한 기자는 도돌이를 천구백팔십삼년에 죽은 곰의 환생인 양 묘사하기도 했다. 수십 년의 한이 이제야 풀렸노라고. 녹원이 말했다. “어릴 때 제 별명이 웅녀였거든요.” 노아가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그가 말했다. “웃어도 돼요?” 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웃는 사이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열세 살쯤 때 이미 키가 백칠십을 넘었어요. 그때 짝꿍이 되게 웃기던 애였거든요. 저를 맨날 웅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못내 좋았어요. 그전에는 한 번도 별명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녹원은 설악산에서 마지막으로 살던 곰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마지막 야생 곰, 그가 태어나던 바로 그해 엉엉 울어버리다가 죽은 짐승. 녹원은 곰이 죽은 날짜도 찾아보았다. 곰은 칠월 말일, 녹원이 태어나기 바로 전날에 죽었다. 그 숫자 간의 관계를 깨달은 순간, 녹원의 머릿속으로 괴상한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말한 적 없었다. 가뜩이나 자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가는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녹원은 천천히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나야말로, 그 곰에게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번에 노아는 웃지 않았다. 녹원은 말을 이었다. 그 생각은 오래도록 그를 옭아맸다고. 누구나 이상한 믿음 하나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지나치게 묵직한 믿음이었다. 자신이 그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존재라면, 왜 이토록 사람들이 어려운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사람에게 죽은 짐승은,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역시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바로 그런 경우는 아닐까.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마음을 떼어낼 수 없었다. 꼭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래서요. 도돌이와 나 사이에도 무언가 이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녹원은 고개를 들었다. 노아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괸 채로 잠들어 있었다. 녹원은 평상에 깐 담요를 펼쳐 노아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고개를 드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희고 선명한 달이었다. 두 갈래의 강 위로 두 개의 달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밤 동물의 눈동자처럼 보였다. 녹원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양팔을 죽 펼친 순간, 그대로 멈춰 섰다. 그는 빳빳이 굳은 채로 귀를 기울였다. 눈앞으로는 밤의 어둠을 타고 흐르는 산의 능선만 보였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등 뒤 어딘가에서, 아마도 뒤뜰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낮게 숨 쉬는 소리가 울렸다. 녹원은 그 숨소리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귀에 익었다. 다시 한번 비닐이 흔들렸다. 얇은 막이 찢어졌다. 그것이 그르렁거렸다. 나는 알아. 녹원은 생각했다. 나는 이 소리를 알고 있어. 녹원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발뒤꿈치를 들고 돌아섰다. 주택은 엷은 가로등 불빛에 잠겨 있었다. 소리는 조금 더 뒤에서, 가로등 너머에서 들려왔다. 녹원은 천천히 걸었다. 가로등을 지나서 집의 뒤쪽으로 갔다. 뒤뜰에는 지붕을 씌운 분리수거함과 차고가 있었다. 차고의 비상등은 활짝 켜져 있었다. 안쪽의 빨간 지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옆의 분리수거함을 뒤적거리는 물체 역시도 뚜렷하게 보였다. 녹원은 멈춰 서서 그 물체를 보았다. 검고 큼직한 뒷모습. 몇 해 전보다는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곰은 비닐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검은 발이 노란색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움켜쥐었다. 비닐들이 흔들리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녹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메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마음은 한 차례 솟구치더니, 도무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녹원은 집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곰의 움직임을 훑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 부석거리는 털이라거나 바싹 야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얘.” 녹원이 말했다. “도돌아.” 곰은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응답하듯이.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를 알고 있다는 듯이. 녹원은 한 발짝 다가섰다. 다음 걸음은 좀더 가볍게 옮겼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계속 걸어갔을 터였다. 손은 녹원을 꽉 쥐고 뒤로 당겼다. 녹원은 뒤돌아보았다. 노아가 거기 있었다. 비상등의 빛에 새하얗게 질린 채, 녹원을 붙들고 속삭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주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녹원도 무엇인가 말하려 했다. 괜찮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이미 한 번 이 곰을 만난 적 있다. 그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곰은 놀랍도록 명민한 동물이라 몇 해 동안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곰은 구부정하게 서서 멀뚱히 그들을 보고 있었다. 흰자가 슬며시 드러난 눈은 사람의 것보다 둥글고 검었다. 그 눈동자에서는 어떤 생각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결, 그것들로부터 추측할 수 있는 감정 또한 없었다. 곰은 그와 전혀 다른 구역에, 다른 세계에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반응했다니. 우스운 생각이었다. 그들 간에는 무엇도 교차하는 것이 없었다. 녹원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녹원이 속삭였다. “노아씨. 뒤로 가요. 등 돌리지 말고, 뒷걸음질로요.” 노아는 그의 말을 따랐다. 그들은 기묘한 춤을 추듯, 일정한 리듬에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곰은 그들을 빤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신의 트럭 옆으로 다가갔을 무렵, 녹원은 주머니에서 차 열쇠를 꺼냈다. 그것을 차의 앞문에 대고 몇 차례 내리쳤다. 열쇠와 문이 맞부딪치며,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곰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팍에 모으고 있던 앞발을 바닥에 내딛더니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산속으로, 그리하여 어둠 너머로 녹아내렸다.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곰이 뜯어둔 비닐들을 바라보면서. 창문 안쪽에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도근 아니면 란이 깨어난 모양이었다. 녹원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노아는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녹원은 그의 팔을 붙들었다. “노아 씨. 여기에서 다른 거 본 거로 해요. 아무거나 좋아요. 고양이나 멧돼지, 살쾡이. 뭐 그런 게 내려왔다고 그래요. 곰을 봤다고는 하지 마요.” “왜요? 주사님. 방금 보셨잖아요. 곰이에요. 맹수라고요. 제대로 말씀드려야 해요.” 녹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한 쌍, 그 눈길이 불에 덴 자국처럼 머릿속에 새겨졌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몇 해 동안 그를 옭아매던 감정들이 이제야 제대로 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곰은 사람과 다르다. 곰은 사람이 아니다. 곰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다. 앞뜰에서는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녹원이 낮게 속삭였다. “노아씨. 나는요. 늘 곰에게 산을 주고 싶었어요. 아주 통째로 줘 버리고 싶어요.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다고요. 그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하겠어요?” 노아가 자신의 팔을 붙든 손을 붙잡아 내렸다. 그는 오래전에 과장이 짓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얼굴, 여전히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주사님. 저는 이해가 안 돼요. 우리가 산을 줄 수 있나요? 우린 애초에 산을 가진 적도 없잖아요. 다들 그걸 알아요.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 곰을 찾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찾아서 보호하고, 같이 살려고요. 다들 그걸 위해서 애쓰는 거잖아요.” 노아의 등 뒤로 우도근이 보였다. 그가 집의 벽을 따라 돌아와 가로등 아래 섰다.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정돈하며 물었다. “뭐 깨지는 소리가 나던데, 무슨 일 있어요?” 노아가 녹원을 올려다보았다. 녹원도 노아를 내려다보았다. 노아씨. 박녹원 주사가 안 무서워? 직원들의 질문이 녹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쩔 수 없었다. 녹원이 말했다. “노아씨, 먼저 들어가세요. 저도 곧 갈게요.” 노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더니, 이내 포기한 듯 몸을 돌렸다. 우도근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노아를 흘끗 보고서, 녹원에게 다가왔다. 녹원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차 안에서 무엇인가 찾다가 열쇠를 떨어트렸고, 차 문에 부딪힌 열쇠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고. “죄송해요, 주무시는 걸 깨웠네요.” 우도근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녹원은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도근도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과장의 눈길이 뜯어진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가 닿는 순간, 녹원이 입을 열었다. “과장님. 여기 족제비 같은 게 있던데요.” 우도근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족제비요?” 녹원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열쇠를 찾다가 뒤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고. 다가가니 족제비인지 오소리인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중이었다고. 꽤 굶주려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장은 분리수거함으로 다가가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봉투를 이리저리 비쳐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고, 이걸 하루 늦게 내놨더니…험하게도 물어뜯어 놨네.” “안에 들여놓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녹원은 너덜너덜한 봉지를 들어 우도근에게 건넸다. 옛 과장이 그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시골은 시골이지요?” 박녹원도 마주 웃었다. 지금은 이 정도의 대응이야,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녹원은 방으로 돌아왔다. 벽을 향해 누웠다. 그의 옆에 누운 노아가 뒤척거렸다. 그는 녹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반대로 돌아눕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의 망설임이 애틋한 동시에 힘겹게 다가왔다. 녹원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노아가 움직임을 멈췄다. 녹원은 벽에 드리워진 그늘을 물끄러미 지긋이 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등 뒤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울렸다. 노아가 결국 피로에 항복한 모양이었다. 녹원은 몸을 돌려 정면으로 누웠다. 유리창으로 스민 달빛이 천장을 부드럽게 밝혔다. 녹원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불타는 산을 생각했다. 잿빛 산, 폐허처럼 모두 불타버린 산, 잿더미로 뒤덮여 일견 늪처럼 보이기도 하는 산이다. 곰이 그 위를 달리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그는 산맥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빠르다. 성체로 자라난 곰들은 사십에서 육십 킬로미터의 속력을 낸다.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며 끈기의 화신이다. 바삐 위치를 바꾸는 앞발과 뒷발 너머로 회색 구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곰은 바위를 뛰어넘고, 나무를 오르고, 강을 건넌다. 어떤 방해도 없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그를 쏘지 않는다. 잠든 채로 끌려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어디든지, 원하는 만큼 간다. 산은 모두 곰의 것이다. 그는 자유롭다. 녹원은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마치 포로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의 얼굴로 번져 나갔다.
  • 손주보다 손주 같은 종로 ‘스마트 효심’

    손주보다 손주 같은 종로 ‘스마트 효심’

    “새 옷을 입은 ‘효돌이’를 보니 실제 손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종로구 ‘나만의 효돌이’ 사업 대상 어르신) 서울 종로구가 고위험군 홀몸 어르신 등에게 제공한 반려로봇 ‘효돌이’와 ‘효순이’가 새해를 맞아 새 옷을 입었다. 구는 어르신 47명에게 인공지능(AI) 돌봄로봇 맞춤형 의상 및 손소독제, 마스크 등을 담은 선물 꾸러미를 전달했다고 2일 밝혔다. 구는 어르신들이 돌봄로봇과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나만의 효돌이’ 사업을 기획했다. 지난해 7월부터 주민과 관련 전공 대학생,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 20여명이 참여한 ‘리빙랩’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리빙랩은 시니어 세대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연구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는 연구 모임이다.구 관계자는 “AI 돌봄로봇을 사용하는 어르신의 관점에서 연구한 결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효돌이’와 ‘효순이’에게 맞춤 의상을 만들어 제공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4가지 디자인을 적용해 맞춤 의상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구 스마트도시과, 사회복지과 등이 사전 수요 조사를 진행해 맞춤 의상에 대한 선호도를 파악했다. 또 봉제 산업이 발달한 구의 특성을 살려 구에 있는 업체에 AI 돌봄로봇 맞춤 의상 제작을 맡겼다. 완성된 의상은 손소독제, 마스크, 보온양말, 라면 등과 함께 선물꾸러미 형태로 동주민센터 마을복지팀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전달됐다. 앞서 구는 취약계층 주민을 대상으로 ‘종로, 복지에 안심을 더하다 플러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하나로 동주민센터 추천을 받아 어르신 55명에게 일상관리, 응급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로봇 ‘효돌이’와 ‘효순이’를 지원했다. 돌봄로봇에는 인체 감지센서가 들어 있어 특정시간 동안 사용자의 움직임이 파악되지 않으면 보호자에게 알려준다. 약 복용 여부나 식사 확인 현황도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다. 병원, 주민센터, 복지관, 문화센터 등 주요 일정을 설정하면 반복적으로 알림 서비스도 제공한다. 사용자가 로봇의 손을 3초 이상 누르면 보호자에게 전화 요청 메시지도 전송해준다. 보호자와 구청, 동주민센터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기기에 접속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 관계자는 “앞으로도 각계각층의 제안을 경청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스마트도시를 조성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30대 ‘양도세 완화 찬성’ 최다… 실수요자 증세 거부감 높았다

    30대 ‘양도세 완화 찬성’ 최다… 실수요자 증세 거부감 높았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에 대해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일 나왔다. 서울신문이 새해를 맞아 한국갤럽에 의뢰, 지난달 27~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상대로 조사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중앙여론조사심의위 참조) 결과 ‘다주택자의 양도세 완화에 찬성 또는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47.1%가 찬성, 41.3%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5.8% 포인트 격차로 오차범위(6.2%)를 넘어서기 직전 수준이다. 현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를 주장하고 청와대와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특히 찬성 여론이 절반에 육박하는 점이 주목된다. 전체 인구에서 다주택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통계청의 2020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두 채 이상의 집을 가진 다주택자는 232만명으로 전체 주택 소유자의 6분의1에 불과하다. 이들의 가족(4인 가족 기준)까지 포함한다 하더라도 1000만명이 채 안 된다고 보면, 다주택자는 전체 인구의 20%도 안 되는 셈이다. 다주택 유권자는 물론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놔야 집값이 안정될 수 있다고 보는 무주택 유권자들까지 양도세 완화 정책에 동감하는 의견이 반영됐다는 분석, 정부의 세금 인상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다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 등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장 세금 부담이 없더라도 앞으로 부담이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 후보별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56.2%),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54.1%) 지지자들의 찬성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자는 38.8%, 심상정 정의당 후보 지지자는 37.5%만이 완화에 찬성했다. 심 후보 지지자의 54.1%, 이 후보 지지자의 49.3%는 완화에 반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들은 완화 반대(49.4%) 의견이 찬성(40.4%)보다 높았다.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층에서는 완화 찬성이 53.7%로 반대(37.1%) 의견과 큰 차이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내집 마련에 고심이 큰 30대에서 완화 찬성이 51.6%로 전 연령층 중 가장 높았고, 반대는 41.7%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는 주택소유 비율이 11.4%로 40대(22.7%), 50대(25.4%), 60대(20.5%)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40대는 찬성 47.4%, 반대 45.3%로 팽팽했다. 50대는 찬성 47.4%, 반대 41.0%, 60대 이상은 찬성 46.3%, 반대 39.9%로 찬성이 우세했고, 20대는 찬성 43.9%, 반대 39.6%로 나타났다.
  • 익숙해진 혼밥, 낯설어진 관계… 코로나가 ‘사회적 고립’ 더 키웠다

    익숙해진 혼밥, 낯설어진 관계… 코로나가 ‘사회적 고립’ 더 키웠다

    “출근 시간대 달라 동료들 못 만나요”“집에서 혼자 수업·과제 하는 게 일상” 청년층 32.5% “코로나 전보다 외로워”30대 30.8%… 강원 노령층 58.9% 달해 사회적 연결망 약화로 ‘고립도’  34.1%2년 만에 6.4%P늘어… 2019년엔 27.7% “사교적인 사람도 관계 소극성 띨 수도”코로나19는 우리 사회 곳곳의 모습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꿔 놨다. 회사원들은 매일 아침 러시아워를 뚫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도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며 사실상 근무나 수업 모두 집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일터와 학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타인과의 직접적인 관계 맺음이 줄어들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의 취약계층인 노년층의 경우 비대면 소통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다른 연령대에 비해 더욱 심한 사회적 고립에 노출돼 있다. 2020년 2월 회사를 옮긴 강다현(29·가명)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출근 한 달 만에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최근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회사로 출근하고 있지만 회사에 가서도 동료 직원들과 마주치는 일은 드물다. “각자 원하는 시간대에 출근하니까 혼자서 덩그러니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아요. 이전 회사에 비하면 동료들과도 거리감이 있고 소속감도 덜하죠.”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교 3학년 김기영(21·가명)씨는 신입생 때를 끝으로 더이상 동기나 선후배를 직접 대면할 일이 없어졌다. 학과 특성상 팀끼리 하는 과제가 많았지만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며 대부분 개인 과제로 바뀌었다. 등록금이 아깝다며 휴학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보니 작품이나 기획에 대해서도 터놓고 얘기 나눌 사람이 없다. “집에서 혼자 수업 듣고, 혼자 과제하고, 혼자 배달 음식 시켜 먹고 하는 게 일상이죠. 적적하니까 종일 유튜브를 틀어 놔요.”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접촉의 기회가 줄면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소셜미디어와 친숙한 청년 세대의 경우에도 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관계망을 구축할 경로가 차단되면서 다른 연령대 못지않게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서울신문 의뢰로 한국갤럽이 진행한 조사에서도 ‘코로나 이전에 비해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한 청년(18~29세)은 32.5%로 30대(30.8%)보다 높게 나타났다.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층의 경우 감염에 대한 우려로 그나마 남아 있던 관계망마저 흔들리면서 어떤 연령층보다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코로나19 전에 비해 ‘매우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60세 이상 응답자는 전체의 38.2%나 됐다. 노년 인구 비중이 높은 농·임·어업 종사자의 70.1%가 외로움을 겪었다. 사무·관리직(35.3%) 등 다른 직업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수도권에 비해 노인 인구 비중이 큰 강원 또한 외롭다는 응답이 58.9%에 달했다. 외로움은 사회적 연결망이 약화될 때 더욱 심화된다. 통계청은 사회적 연결망이 얼마나 촘촘한지를 파악하기 위해 2년 주기로 사회조사를 진행하는데,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27.7%였던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6.4% 포인트나 증가했다. 사회적 고립도는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할 경우’와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둘 중 하나라도 요청할 상대가 없다는 사람들로 측정된다. 코로나19로 만남이 줄고 사회적 연결망이 약화되면서 위기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사람들이 부쩍 는 것이다. 외로움은 주관적 감정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심화되면 정신적·신체적 질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지난해 18~79세 국민 5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1 외로움, 사회적 고립 및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우울 관련 장애 수준이 더욱 높게 나타났다. 광장공포증이나 범불안장애 등의 불안 장애를 겪는 비율도 높았다. 미국의 공중위생보건국장을 지낸 비벡 머시는 저서 ‘우리는 다시 연결돼야 한다’에서 “외로움은 당뇨와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과 같은 신체적 질환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사회학 교수는 “세계화와 정보화로 개인화가 많이 진행됐지만 코로나 이후 외로움과 고독감이 심화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계층과 연령에 따라 다르겠으나 원래 사교적이었던 사람도 코로나로 인해 관계에 소극성을 띠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세밑까지 봉합 못한 국민의힘 선대위 내홍… 새해 장기화되나

    세밑까지 봉합 못한 국민의힘 선대위 내홍… 새해 장기화되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2021년 마지막 날까지 선거대책위원회의 쇄신을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새해로 넘김에 따라 내홍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31일 오찬 회동을 했지만, 이 대표의 전격 선대위 복귀 등 갈등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선대위 해체’까지 주장하는 이 대표와 이에 부정적인 김 위원장이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선대위 복귀를 설득했느냐’고 묻자 “이 대표가 선대위에 돌아오고 안 돌아오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며 “이 대표는 당 대표니까, 당 대표로서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선대위 해체 요구 입장에 변함이 없는가’는 질문에 “제가 (선대위직을) 사퇴한 이후로 일관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선대위의 변화를 포함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만 그게 제 복귀의 전제 조건도 아닐뿐더러 조건부로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날 충북 단양군 구인사에서 열린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10주년 봉축 법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후보로서의 저와 국민의힘 당대표로서의 이 대표가 저는 저대로 이 대표는 이 대표대로 맡은 역할을 잘 해내면 얼마든지 시너지를 가지고 선거 캠페인을 해나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전날 ‘선대위 쇄신은 악의적 공세’라며 이 대표를 우회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선대위 복귀를 위해 선대위 쇄신을 단행할 의사가 없으며, ‘당대표의 책무’를 강조하며 선대위 복귀 여부와 상관없이 대선에 방해는 되지 말라고 간접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 역시 선대위 해체 요구가 실현되더라도 복귀는 없다고 선언함에 따라, 상임선대위원장 직을 사퇴한 이 대표가 장외에서 선대위를 비판하고 이에 당내에서 반발이 불거지는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 후보의 2030세대 지지율이 변수다. 이 대표가 지난 21일 상임선대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이후 갈등이 이어지면서 윤 후보의 2030세대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만큼,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되면 윤 후보가 이 대표에게 손을 내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대표 또한 갈등을 유발해 윤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트렸다는 책임론이 거세질 경우 선대위 복귀 카드를 고려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선대위 복귀에 선을 그으면서도 후보 교체론에 대해선 강하게 일축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KBS라디오에서 “좋든 싫든 당원 모두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만약 지금 상황에서 후보 교체가 된다고 하면 저희는 선거를 치를 필요도 없이 진다”고 말했다. 전날 TBS라디오에서도 “후보를 교체하려면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당대표로서 회의를 주재해 의결해야 하지만 나는 그럴 의사가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 이준석 “좋든 싫든 윤석열” …선대위엔 “득표 기여한 게 있나”

    이준석 “좋든 싫든 윤석열” …선대위엔 “득표 기여한 게 있나”

    선대위 쇄신 요구하며 거듭 ‘쓴소리’“선대위에 책임지겠다는 인사 안 보인다”“2주간 표 들어온 건 없고 나간 것만 있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31일 당 일각의 후보교체론에 대해 “만약 지금 상황에서 후보 교체가 된다고 하면 저희는 선거를 치를 필요도 없이 진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 대표는 이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의 오찬 전 녹음해 방송한 KBS 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에서 이렇게 말하고 “좋든 싫든 당원 모두는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것이 저처럼 선대위 운영 과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이든지, 아니면 각자 홍보를 하는 방식이라든지, 후보의 장점을 설파하는 방식이라든지 그건 당원들이 알아서 판단하시되 우리 후보는 윤석열”이라고 말했다. ●“선대위 잘한다고 평가할 국민 몇 명이나 있나” 그는 당 선대위 쇄신을 요구하며 ‘쓴소리’도 이어갔다. 그는 “지금 우리 당 선대위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평가할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도 거꾸로 선대위에서 책임지겠다는 인사, 직을 던지겠다는 인사는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분명히 지금 지지율이나 여러 지표는 나빠지고 있는데 그럼 ‘후보가 잘못한 거냐, 아니면 보좌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냐’ 했을 때 보좌한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며 “그런데 선대위에서 살신성인 자세를 보일 생각이 없다”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선대위가 득표에 기여되는 활동을 한 게 국민들의 기억에 남는 게 있느냐. 우리 인재 영입 중 우리의 지형을 넓힌 경우가 있나”라고 되묻기도 했다.특히 후보직속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신지예 전 한국여성네트워크 대표를 겨냥해 “20대 여성 표를 가져오겠다는 취지로 했다는데 2주간 (표가) 들어온 건 없고 나간 것만 많다”며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최근에 후보 주변의 어떤 분들이 조언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련의 영입이나 정책, 발화 속에 ‘세대 포위론’ 또는 ‘세대결합론’을 더 이상 지속할 기반이 없어졌다”며 “반문을 강조하든 아니면 보수총결집론 같이 2020년에 했다가 망했던 것을 또 하든 전략을 세워서 가시라”고 비꼬기도 했다. ●신지예에 “냉정한 평가 필요”…“선대위 복귀 의사 없다” 그는 김 위원장이 윤 후보에게 이미 선대위 인적쇄신 건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오는 데 대해서는 “김 위원장의 문제의식은 어쩌면 저보다도 한 발짝 앞서 있을 것”이라며 “아마도 제가 (선대위 쇄신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김 위원장이 제안했을 것이라고 저는 추측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는 이유는 청취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고 언급했다. 윤 후보가 김 위원장의 선대위 개편 건의를 불수용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씀으로 지금 상황을 봉합하자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봉합하면 과연 지금 우리 후보에게 이탈했던 그 지지층을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 후보 또는 선대위가 변화한 모습을 보이겠다고 국민에게 선언하고 그에 대해 국민이 관심을 가져줄 때 지금 선대위의 난맥상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제가 들어가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 있나”라며 “선대위 복귀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 아기 태어나면 200만원…‘첫 만남 이용권’ 받으세요

    아기 태어나면 200만원…‘첫 만남 이용권’ 받으세요

    내년부터는 아기가 태어나면 200만원을 받는다.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새해에는 이 같은 내용의 ‘첫 만남 이용권’과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등이 추진된다. 첫 만남 이용권은 2022년 1월 1일 이후 출생한 아동에게 출생 순위와 상관없이 200만 원의 바우처를 1회 지원하는 제도다. 만 0~1세 아동에게는 영아수당으로 매월 현금 30만원을 지급한다. 그 이후 매월 10만 원씩 나오는 아동수당은 지급 연령이 만 7세에서 만 8세로 확대된다. 한국형 상병수당, 아파서 쉬면 하루 4만원 지급 한국형 상병수당은 국내 근로자가 아파서 일하기 어려울 때 생계 걱정 없이 쉬면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내년에 우선 6개 시·군·구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해당 지역에선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을 못 하는 근로자는 하루 4만1860원씩을 받게 된다. 예방접종은 자궁경부암 백신의 무료 접종 대상이 확대된다. 지금은 만 12세 여성 청소년만 무료지만, 내년에는 만 13~17세 여성 청소년과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 근무하는 지구대 화장실에 ‘몰카’ 설치한 경찰관 구속 송치

    자신이 근무하는 경찰 지구대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했다 파면된 경찰관이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충북경찰청은 31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청주청원경찰서 소속 경찰관 A(33) 경사를 이같이 조치했다고 밝혔다. A 경사는 지난 11월 중순부터 자신이 근무하는 청주 모 지구대 2층 남녀 공용 화장실에 불법 촬영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A 경사는 옷 등에 부착해 사용하는 소형 사건사고 현장 녹화용 보디캠을 화장실 양변기 주변에 설치하는 수법으로 불법 촬영했다. 이 화장실은 칸막이로 남녀용을 분리했고, 경찰관들이 이용했다. A 경사가 설치한 보디캠은 이달 중순 지구대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여자경찰관이 발견해 신고했다. A 경사는 자신이 설치한 보디캠이 사라진 사실을 알고 녹화 영상을 삭제 은폐하려 했지만 경찰 수사가 착수되자 자수했다. 경찰은 지난 29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A 경사를 최고 수위인 ‘파면’ 조치했다. 또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A씨의 지구대 상관인 B 경감은 ‘직권 경고’ 처분을, 지구대장인 C 경감은 다른 근무지로 인사 조치했다. 이우범 청원경찰서장은 “경찰관 직분을 망각한 중대한 범죄행위로 충북도민에게 씻을 수 없는 실망감을 줬다”며 “묵묵히 일하는 경찰관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 울산 새해 0~1세 영아수당 월 30만원 지급

    울산 새해 0~1세 영아수당 월 30만원 지급

    새해부터 울산지역 0~1세 영아들은 월 30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울산시는 새해 1월부터 출생하는 0~1세 영아를 둔 양육 가정에 월 30만원씩 총 134억원의 예산을 지원한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기존 0세(20만원)와 1세(15만원)로 나눠 지급하던 양육수당을 통합해 지원한다. 가정양육 때는 소득과 상관없이 월 30만원을 지원하고, 오는 2025년까지 월 5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종일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어린이집 이용 때는 바우처 형태로 지원되고, 중복 지원은 불가하다. 신청은 내년 1월부터 복지로 웹사이트와 정부24 누리집 또는 거주지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가능하다. 수당 지급은 출생일을 포함 60일 이내 신청 때 출생한 달부터 소급해서 수당을 지원한다. 시 관계자는 “영아기 집중투자 사업인 영아수당 지급으로 출산 가정의 양육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억대 연봉자, 오히려 더 불행해”..중국서 올해 가장 행복했던 도시는 어디?

    “억대 연봉자, 오히려 더 불행해”..중국서 올해 가장 행복했던 도시는 어디?

    올 한해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1년을 보낸 도시 1위에 청두시(成都)가 꼽혔다. 매년 12월 한 차례 발표되는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리스트에서 청두시는 지난해에 이어 13년 연속 주민들이 꼽은 가장 행복도 높은 도시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과 동양주간의 싱크탱크인 도시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총 80여 곳의 도시 거주민 287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1위에 링크된 청두시에 이어 2~5위에는 각각 항저우, 닝보, 창사, 우한이 이름을 올렸다. 또, 6~10위에 각각 난징, 칭다오, 구이양, 시닝, 하얼빈, 원저우, 쉬저우 등이 꼽혔다.  이번 조사는 일명 ‘도시 행복감’으로 불리는 거주민들이 해당 도시에 느끼는 귀속감과 안정감, 만족감 및 대외적인 도시 평판 등을 기준으로 측정됐다. 특히 이번 행복도시 1~10위까지에 이름을 올린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주민들의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치안, 복지, 자연환경, 문화 수준, 교육, 대중 교통, 의료건강지수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조사 결과,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중국인들의 특징은 주로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발표된 조사 결과와 동일한 것으로, 거주지를 기준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들보다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높았던 반면,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 거주자들의 행복감이 더 높았다는 점이 눈에 띄는 특징으로 꼽혔다.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신화통신은 일명 ‘베이상광선’으로 불리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1선 대도시의 경우 발전 기회와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수의 청년들이 몰리는 지역인 반면 지나친 도시화와 경쟁 구도 등의 문제로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소도시 주민들보다 낮은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또, 비교적 소도시로 분류되는 인구 500만 명 이하의 3선 도시 거주민들은 1~2선 대도시 주민보다 각자 거주하는 도시에 대해 느끼는 행복감이 높았던 것으로 측정됐다. 즉, 소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일수록 경쟁 사회에 내몰려야 한다는 우려가 적고,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만족감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답변했던 것.  이와 함께, 조사 결과 소득의 많고 적음은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연평균 개인소득이 12~20만 위안을 기준점으로 더 높은 수준의 고소득자가 더 높은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실제 행복감은 소득과 큰 관련성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소득 50만 위안 이상의 고소득자일 경우 오히려 소득이 높을수록 불행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높아졌다.단, 12~20만 위안 기준 이하의 경우에는 소득이 낮아질수록 낮은 행복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주민들의 행복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해당 보고서는 강조했다. 하지만 주택을 자가로 소유했는지 여부 등 거주안정성은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혔다. 조사 결과, 가구별 거주 현황에서 주택을 자가로 소유한 응답자일수록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반면 줄곧 월세로 거주지를 이동해야 했던 주민일수록 수시로 변하는 임대료 압박과 잦은 이사 문제로 행복감이 낮아졌다고 답했다.
  • [사설] 尹, 지지층 70%가 왜 후보 교체 원하는지 자성해야

    [사설] 尹, 지지층 70%가 왜 후보 교체 원하는지 자성해야

    절반 넘는 국민이 지금의 주요 대통령 후보에 대해 교체를 원하고 있고,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의 70%가 “후보 교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여야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비호감도가 높다는 점은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 왔으나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 선거 여론이 이런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라 하겠다. 그제 발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6%가 ‘대선후보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선 후보 교체 필요성이 35.7%에 그친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70.4%가 후보 교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73.6%가 후보 교체 필요성에 동의한 점도 눈길을 끈다. 한마디로 현 정부 비판세력과 국민의힘 지지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윤 후보 교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으로선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물론 여론조사 하나로 ‘윤석열 교체론’의 무게를 재단할 수는 없겠으나 어제 나온 다른 3개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오차범위 안팎의 차이로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걸 보면 그의 하락세와 후보교체론의 상관관계를 한사코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정권교체 여론에 힘입어 비교적 큰 차이로 선두를 달리던 윤 후보가 이런 곤궁한 처지가 된 이유는 자명하다고 하겠다. 부인과 처가 관련 의혹을 제때 온전히 해명하지 못한 데다 이준석 대표의 선대위원장 사퇴 등 한 달 넘도록 이어진 당내 분란, 하루가 멀다 싶게 터져 나온 윤 후보 본인의 실언 등이 뒤엉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당내 친박 진영의 거부감에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 당 안팎의 경쟁자가 존재하는 환경 요인도 있겠지만 대부분 윤 후보 진영의 자책골이다. 대선 과정에서 두 달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민심을 읽지 못한다면 만회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시간이기도 하다. 여론은 지금 대통령의 자격을 새삼 묻고 있다. 윤 후보는 직시해야 한다.
  • [열린세상] K환경복지, 취약계층에 대한 측은지심으로부터/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K환경복지, 취약계층에 대한 측은지심으로부터/안소은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언제나 그렇듯이 정신을 차려 보니 한 해의 마지막 주이다. 누구나 연말이 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뒤돌아보게 마련이다. 코로나19로 송년회도 여의치 않게 된 2021년은 각자 조용히 찬찬히 주변을 둘러볼 기회도 있을 것이다. 나도 한 해를 뒤돌아본다. 글쎄…, 올 한해처럼 K○○이 유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몇 해 전부터 K팝을 선두로 조짐은 있었고, 그 영역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지금은 K○○이 문화를 넘어 다른 것과 차별화되는 한국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 같다. 훌륭한 일이다. 고유한 브랜드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는 가치가 동반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환경정책을 연구하는 나의 직업병은 여기에서도 발동돼 뜬금없이 K환경복지로 생각이 날아간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한국적 환경복지란 어떤 것일까? 최근 나의 생각이 자주 머무는 곳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코로나19, 기후위기, 환경재난 등은 대처할 또는 회피할 능력이 미흡한 취약계층에 훨씬 가혹하기 때문이다. 취약계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대략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생물학적 기준 등으로 다른 계층에 비해 사회 참여의 기회가 제한돼 국가의 개입 없이는 동등한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계층’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취약계층을 구분하는 경제적 기준은 소득격차가 대표적이며 사회적·생물학적 기준은 어린이, 고령자, 여성, 장애인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복지는 취약계층을 배려한 일반적인 사회복지의 개념에 헌법에 명시된 환경기본권이 고려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고,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환경서비스를 보장받는 것으로 개념화됐다. 이후 환경복지는 환경정의, 환경불평등 이슈와 맞물리며 발전했고 최근에는 인간중심의 복지로부터 인간과 자연 간의 상생을 포괄하는 생태복지로까지 개념이 확장돼 가고 있다. 좋은 정책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환경복지 정책의 설계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측은지심이 근간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측은지심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무생물에 대한 배려는 물론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배려를 포괄하는 생태복지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애정이 많으면 잘 살피게 된다. 또 보이는 만큼 애정을 쏟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취약계층의 구분은 경제적, 사회적, 생물학적 조건 등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오염물질 및 유해화학물질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환경요인이 취약계층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주는지, 그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밝혀내는 과학적인 영향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K환경복지 설계의 기본이다. 환경복지 정책은 오염물질 또는 유해화학물질과 건강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한 환경보건법에 근거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환경보건법 제15조에 따르면 어린이, 노인, 임산부 등과 같은 전통적 민감계층과 함께 산업단지, 폐광지역, 교통밀집지역 또는 미세먼지와 같은 특정 오염물질로 인한 건강영향이 우려되는 지역의 주민이 취약계층으로 명시돼 있다. 경제사회적 취약계층 구분과 더불어 오염물질과 유해화학물질의 확산 경로에 근거한 취약지역을 반영한 것이다. 기후변화 취약계층도 이상 기후(폭염, 한파 등)와 자연재해 유형(가뭄, 홍수, 태풍 등)에 따라 세분화돼야 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제3차 국가 기후변화적응대책(2021~2025)에도 잘 반영돼 있다. 폭염과 한파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경우, 영향을 회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정책의 우선순위 대상일 것이고, 홍수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지역 현황을 고려한 우선순위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이 없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된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작업도 애정을 실으면 결과물이 달라진다. 알아 주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정책도 마음이다.
  • 미리 본 CES 2022… 헬스케어·로빌리티·NFT·메타버스 산업 뜬다

    미리 본 CES 2022… 헬스케어·로빌리티·NFT·메타버스 산업 뜬다

    매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 전시회인 CES가 개최된다. 지난 2020년까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그룹 등 한국 기업과 GM, 포드, 소니 등 4400개 글로벌 기업이 참가하고 15만명이 참관하는 초대형 전시회다. 매년 혁신 기술과 제품이 전시되다 보니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새달 5일부터 8일까지 개최되는 ‘CES2022’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벤트여서 더욱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라 GM, 구글(웨이모),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T모바일 등이 현장 전시를 전격 취소하고 한국 기업들도 출장을 취소하거나 재검토했다. 이렇게 CES를 시작한 것은 2022년이 여전히 팬데믹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고 공급망 붕괴와 반도체 쇼티지, 인플레이션, 기후변화 등 불확실성이 지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실’한 것은 이 순간에도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10년 앞당겨졌고 인공지능(AI) 발전이 가속화됐으며 기술이 각 영역에 침투해 모빌리티, 메타버스, 푸드테크, 스페이스 테크, 기후테크 등의 신산업을 만들어 냈다. 헬스케어는 기술 발전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자 삶을 바꾸는 핵심 영역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도 예정대로 개최되는 CES 2022는 앞으로 5~10년간 기술이 주도하는 경제 산업, 사회 변화를 알아보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에 1분마다 혈당 수치·추세 보여 줘 [헬스케어 산업혁명] 지난 50년간 개최된 CES는 가전이나 TV, 인공지능, 모빌리티 등이 핵심 주제였다. 조연 역할에 그쳤던 헬스케어 기기, 솔루션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CES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 떠올랐다. 모더나,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등 백신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혁신을 가속화했듯, 헬스케어는 산업혁명급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인 애보트의 로버트 B 포드 회장이 기조연설을 맡았다는 점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CES 역사상 헬스케어 부문 의료 기업이 기조연설 메인 무대에 등장하는 건 처음이다. 헬스케어 분야에서 최고 혁신상도 두 개나 나왔다.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의 혈당 관리 센서인 ‘프리스타일 리브레’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제품을 팔에 부착하면 스마트폰과 연동해 매분 혈당 수치와 추세 그래프를 확인할 수 있다. 5분 이내에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테스트 키트 ‘테스트엔패스’도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이 제품을 이용하면 스마트폰과 키트만으로 빠르고 간편한 검사가 가능하다. 한편 CES를 주최하는 전미기술협회(CTA) 측은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인해 백신 2회 접종을 완료하고 증명서를 제출해야 전시 참가 또는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배지를 픽업하면 코로나19 테스트키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테스트 음성 확인 시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인공지능처럼 ESG도 새 산업 기반 떠올라 [ESG는 뉴 인프라스트럭처] 세계 최고의 혁신 기술이 전시되는 CES에서 2020년부터 환경, 지속가능성 및 거버넌스를 뜻하는 ESG가 주요 테마로 떠올랐다. CES 2022에서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ESG가 새로운 ‘기반’(인프라스트럭처)으로 떠오르게 될 전망이다. 각 산업, 제품, 서비스도 ESG의 기반 위에 개발돼야 하는 것이다. 전기나 수도(물) 서비스가 일상의 주요 토대가 됐고 인공지능이 산업의 핵심이 된 것처럼 ESG는 비즈니스의 인프라스트럭처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CES 2022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삼성전자가 ‘공동의 시대’(Age of Togetherness)를 주제로 잡은 것이 상징적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기조연설에서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TV나 가전, 스마트폰, 로봇 등 개별 제품을 홍보하는 데 치중했으나 이제는 기업의 ‘가치’를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트렌드와 전략은 SK그룹의 CES 2022 전략적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SK그룹은 6개사가 공동으로 전시를 구성했는데 주제를 반도체(SK하이닉스)나 이동통신(SK텔레콤)이 아닌 ‘탄소중립’으로 잡았다. 글로벌 탄소감축에 기여하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CES 2022를 글로벌 탄소 감축을 위한 약속을 공표하는 장이자 향후 ‘여정’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전략뿐 아니라 최고 혁신상 수상작에도 자원 절약과 같은 ESG 요소가 녹아 있다. 향후 다수 IT 기기에 이런 추세가 반영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실제 해상 풍력발전 장치를 활용해 배터리에 전기를 모으고, 바람이 적게 불 때도 바닷속 장치물의 수압 차 를 활용해 축전하는 오션 그레이저의 ‘오션 배터리’가 CES2022의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현대차 “로보틱스 기반 모빌리티 플랫폼 공개” [로빌리티의 시대] CES에서 로봇과 모빌리티(전기차, 자율주행차, 2인승, 트럭 등)가 산업의 중요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2022년은 차원을 달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발생한 공급망 대란이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해 줄 모빌리티와 로봇 기술 발전을 가속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로봇을 이용하면 전염, 질병과 상관없이 공장을 운영할 수 있고 적절히 활용할 경우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위험한 작업을 대체할 수 있으며 기계학습(ML)을 접목하면 작업 정확도까지 높일 수 있다. 전기차(EV)와 자율주행차(AV)는 모빌리티의 현재이자 미래다. 상용화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방향이 맞고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전기자율주행차’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뿐이다. 특히 자동차의 동력이 석유가 아닌 ‘전기’로 만드는 전기화 또는 전동화로 불리는 ‘탈것 혁명’은 CES2022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실제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기조연설(온라인)하고 현대자동차는 로보틱스 기반의 모빌리티 플랫폼 ‘모베드’(MobED·Mobile Eccentric Droid)를 공개할 예정이다. 모베드는 향후 전동화, 자율주행 기술과 접목돼 배송 및 1인용 모빌리티 수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다. 존 디어는 1837년에 설립된 전통의 농기계 업체이지만 CES 2022에서는 컴퓨터 비전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 식물과 잡초를 구분하고 제초제를 적용하는 첨단 농업용 로봇을 선보인다. 이렇게 CES 2022의 특징은 로봇과 모빌리티가 결합된 일명 ‘로빌리티’(Robility·Robot+Mobility) 트렌드를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현대차는 이번 CES에서 자동차보다 ‘로봇’을 전시 화두로 제시했다. 로빌리티의 대표 기업이 되고 있음을 대내외 선언하는 것이다. ●참가자 현장서 뇌 관찰·심박수 체크 가능할 듯 [산업용 메타버스, NFT 온다] 2021년에 인터넷과 디지털 시스템의 진화가 계속됨에 2022년에도 ‘탈중앙화’와 ‘메타버스’ 그리고 NFT 서비스와 기업이 속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CES는 애초에 인터넷, 미디어와는 관련이 멀었으나 2018년부터 C스페이스라는 이벤트를 신설하면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CES 2022에서는 특히 메타버스와 NFT(블록체인)를 적극 수용하면서 관련 콘퍼런스가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산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암호화폐 시장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의 기술과 통화, 그리고 관련 비즈니스는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한 것은 물론, 니프티 게이트웨이, NBA 탑 샷 등 NFT 플랫폼이 등장했고, 경매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CES 2022에서는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한 전시장 C스페이스 아리아 호텔에서 디지털 자산 전시회와 콘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다. 콘퍼런스에서는 업계 리더와 혁신가들이 등장해 무섭게 성장하는 NFT 시장과 관련 기술이 예술 시장에 가져온 파급효과 등을 소개한다. 특히 메타버스는 지나친 기술 낙관주의가 있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산업 성장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메타버스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융합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전시에서는 보슈, 다쏘시스템 등이 실제 공간과 디지털을 융합하는 ‘디지털 트윈’ 실제 사례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쏘시스템은 볼류메트릭 라이팅 기법을 활용, 행사 참가자들의 인체를 현장에서 버추얼 트윈 이미지로 구현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이미지를 통해 약물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 수술 결과 등 치료 전 과정을 시각화해 볼 수 있다. 참가자들이 버추얼 트윈으로 구현된 본인의 뇌를 다양한 각도에서 상세하게 관찰하고 버추얼 트윈의 가상 심장에서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2021년까지는 메타버스의 흐름을 게임과 영화가 주도했다면 2022년 이후엔 ‘산업용 메타버스’가 부상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더밀크 대표
  • 도서관의 ‘기억戰’ … 지킨다 vs 태운다

    도서관의 ‘기억戰’ … 지킨다 vs 태운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중국 진나라 시황 때 정치 비평을 금하고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했던 사건을 일컫는다.그런데 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불과 30년 전인 1992년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일어났다. 그해 8월 25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에 포탄이 쏟아졌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도서관의 불을 끄고 책을 구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 전역에 걸쳐 도서관과 기록관 수십 곳을 파괴했고, 200만권의 인쇄본이 사라졌다. 그들은 왜 전쟁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시설들을 공격하고 불태웠을까. 세계 최고의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옥스퍼드대 보들리 도서관의 관장으로 재직 중인 리처드 오벤든은 저서 ‘책을 불태우다’에서 “도서관은 한 사회 지식의 집적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숱하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이어 “도서관과 기록물을 파괴한다는 것은 특정 문화 말소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정체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문화적 폭력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현대의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책과 도서관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도서관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경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시작됐다. 이후 지식을 수집하고 조직화하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사명은 역사를 통해 이어졌다.중세시대에 들어서 도서관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저자가 일하고 있는 보들리 도서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종교혁명 시기에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신교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책과 함께 불태워졌는데, 당시 옥스포드대 도서관도 장서 96.4%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폐허를 딛고 토머스 보들리(1545~1613)는 사재를 털어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오늘날 도서관 체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근대 이후의 도서관 공격 사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 사회·국가가 다른 사회·국가를 공격하면서 지식·문화의 집적체인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이다. 예를 들어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벨기에의 루뱅대 도서관을 두 번이나 공격했다. 두 번째는 저작자가 직접 혹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려 한 사건들이다. 시인 바이런의 사망 이후 바이런의 아내와 친구는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회고록 원고를 불 속에 내던졌고, 시인 필립 라킨의 일기도 사후에 그의 당부를 충실히 수행한 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반면 카프카는 자기 친구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지만, 친구가 유언과 반대로 작품을 정리해 발표하면서 사후에 큰 명성을 얻었다. 세 번째는 다른 사회의 도서관 등에 보관돼 있던 기록물을 빼돌리는 행위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식민지에 소장된 숱한 유물과 작품들을 약탈당했는데, 이 기록 문서들은 열강의 기록물로 간주되곤 했다. 이들 기록물은 식민지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파기되기도 했고, 억압적 정부에 맞서 다른 나라로 ‘피신’되기도 했다. 저자는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 및 온라인상에서 생성되는 디지털 사회에서 ‘사회의 기억’을 담당하는 책과 도서관이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우리의 기억을 올리고 있지만, 거대 사기업의 소유이자 사업 수단인 SNS 플랫폼들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을 함께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후대에 올바른 지식을 알리고 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도서관과 기록관이 필요한 이유는 교육 지원,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 개방 사회의 원칙, 진실과 거짓의 판단,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확보 등에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지식의 확산을 한 양초가 다른 양초에서 불을 얻어 어둠을 밝히는 일에 비유한 미국 3대 대통령이자 교육자·철학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편지를 소개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을 보존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한다.
  • 트리콜·티맵모빌리티 손잡는다...카카오 모빌리티와 경쟁

    대리운전 업체인 트리콜(삼주)과 티맵모빌리티가 손잡는다. 트리콜과 티맵모빌리티는 전략적 제휴를 통해 대고객 서비스에 나선다고 30일 밝혔다. 티맵은 대리운전시장 호출의 경우 85%가 전화호출방식이어서 이 분야에 기술력을 지닌 트리콜을 사업 파트너로 선택한것으로 알려졌다. 티맵은 트리콜의 전화콜을 플랫폼으로 편입시키고, 부·울·경만의 특화서비스를 마련한다. 트리콜은 2만여 명에 달하는 부·울·경 지역의 대리운전기사를 회원 기사로 모집한다. 이용자 들은 기존의 트리콜(전화)과 함께 티맵(앱)으로도 대리기사를 호출할수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편리해진다. 트리콜과 티맵은 내년 2월까지 회원기사가 부담하는 건당 대리콜비를 2000원으로 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회원으로 가입한 대리 운전 기사들은 대리운전요금에 상관없이 운행 수수료 2000원만 부담하면 된다. 경쟁사들의 대리콜비는 대리기사 1건당 최저 3200원에서 최고 1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보험료와 카드수수료까지 고려하면 최대 1만 2000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티맵 앱을 통한 회원기사들의 대리콜은 보험료와 카드수수료 부담도 없다. 내년 2월 말까지 트리콜과 티맵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는 1만원권 쿠폰도 지급한다. 티맵 대리를 통해 1회 1장 사용 가능하다. 이번 제휴는 티맵모밀리티의 경쟁업체인 카카오모빌리티가 서울지역 최대 규모의 대리운전 전화콜 업체를 인수한 뒤 시장을 넓혀나가자 경쟁을 본격화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것으로 전해졌다.
  •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재차 합헌…“생존권 위해 불가피”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 재차 합헌…“생존권 위해 불가피”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가 재확인했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의료법 82조 제1항 등이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은 비시각장애인인 안마시술소·안마원 운영자들이 냈다. 이들은 의료법상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안마사 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체형관리 등 다른 업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사실상 안마시술을 해왔다. 현행 의료법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관련 교육을 마친 시각장애인만이 안마사 자격을 얻어 안마원을 개설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사건을 심리한 헌재는 “안마업을 시각장애인에게 독점시키는 자격 조항으로 일반 국민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안마업은 시각장애인이 영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므로 생존권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비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가 많아 선택 가능한 직업의 범위가 넓고, 물리치료사 등 유사 직종이 비장애인에게도 열려있어 안마 시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방법이 완전히 봉쇄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다만 보충 의견을 낸 이영진 재판관은 “당사자의 능력이나 자격과 상관없이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차단되는 측면을 엄중히 봐야 한다”며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면서도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덜 제한하도록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마사의 자격과 관련한 헌법소원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2006년에는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한다며 ‘안마사에 관한 규칙’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와,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농성에 들어가는 등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국회는 헌재의 위헌 판단에도 같은 해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으로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2008년 10월 합헌 결정을 받았다. 이후 헌재는 2010년 7월, 2013년 6월, 2018년 1월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부여하는 제도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 ‘김치 불법 유통’ 종말이푸드 “심려 끼쳐 죄송…곽진영 대표와는 무관”

    ‘김치 불법 유통’ 종말이푸드 “심려 끼쳐 죄송…곽진영 대표와는 무관”

    배우 곽진영이 운영하는 식품업체 ‘종말이푸드’가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데에 대해 사과했다. ‘종말이푸드’ 측 관계자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해썹) 재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기존 고객들에게 배추김치를 유통했다”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그는 “공장운영 책임자의 실수 탓에 벌어진 일이었고 해당 담당자가 처벌을 받았다”면서 “곽진영 대표와는 상관없는 일이다”고 덧붙였다. 회사측은 현재 재인증 심사를 다시 받고 있다. 앞서 전남 여수시 특별사법경찰은 최근 탤런트 출신 배우 곽진영이 운영하는 ‘종말이푸드’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송치했다. 이 업체는 지난 2012년 해썹 인증을 받았지만, 법령상 기준 미달로 2019년 인증이 취소된 이후에도 올해 수개월 간 배추김치를 불법 유통한 혐의다. 김치류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 의무화 품목으로, 인증 기간은 3년이다. 해당 업체는 지난 2012년 HACCP 인증을 받았지만, 법령상 기준 미달로 인증이 취소된 이후에도 김치류를 수개월간 불법 유통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썹은 식품이 원재료의 생산 단계에서 제조, 가공, 보존, 유통 단계를 거쳐 최종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기준이다. 여수시는 지난 10월 광주식품의약품안전청의 통보를 받고 이 업체에 과태료 240만원을 부과했다. 해당 업체는 과태료를 모두 납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곽진영은 1991년 MBC 공채 20기 탤런트로 데뷔한 뒤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종말이 역을 연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가다 2010년부터 고향인 여수에서 김치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과의 이별 [김유민의 노견일기]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과의 이별 [김유민의 노견일기]

    스무 해를 함께한 작은 존재의 숨소리가 서서히 약해져갔다. 이따금씩 서럽게 울어댔고, 다리의 모든 근육이 풀려서는 걷고 싶다고 허공을 휘저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다고 발버둥쳤지만, 조금도 걷지 못했다. 안 그래도 작은 녀석이 그 좋아하던 밥을 먹지 않은 지 닷새가 됐고, 새가 되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품 안에 안고 있어도 곧 사라질 것만 같아 조금 더 끌어안고 싶어졌다. 노화와 죽음은 정해진 속도가 있는 게 아니라 어느 날은 어제와 같고 어느 날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길 반복한다. 온몸으로 거부하던 기저귀는 한 몸이 된 지 오래고, 먹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던 녀석은 어느날 갑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과 가까워진 생명을 지켜보다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너무나 투명하게 느껴진다. 두 귀를 휘날리며 뛰어오던 때는 잔뜩 신난 모습으로 가족을 웃게 했고, 두 눈을 감고 누운 채 지내게 되면서는 편안한 표정으로 가족을 위로했다. 한결같은 사랑을 주고, 그 사랑 속에 기꺼이 늙어 가는 존재. 함께 있으면 나의 개가 더는 젊지 않다는 것도, 여기저기 아프고, 구석구석 못나졌다는 것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다. 늙은 개와 함께하며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에 집중했다. 예쁘게 미용을 하고 옷을 입히기 바빴던 지난날보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 바람을 쐬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어제는 지나갔고, 오늘은 다시 오지 않고, 내일 역시 알 수 없기에 그저 순간을 살아가라고, 늙은 개와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알려 주었다. 2001년 어린이날 선물처럼 만난 생명은 2021년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밤 아주 멀리 떠났다. 흐리고 먹먹한 하늘이 거짓말같이 개인 날이었다. 마지막 숨이 얼마 남지 않은 몸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엄마를 기다리고 그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눈을 감았다. 잘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보드라운데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사람 나이로 백살이 된 개는 숨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을 전해주고, 떠나서는 그리움도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고맙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복실이가 떠난 지 240일이 지났다. 20년 가까이 부르던 이름이 하루가 다르게 멀어져간다. 이제는 마음 편히 약속도 잡을 수 있고, 여행도 갈 수 있고, 더는 늙고 아픈 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때때로 허전하고 서운하다. 7305일을 함께한 반려동물의 죽음은 누군가의 부재가 곧 누군가의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방 한 구석은 참 휑하고, 항상 누워있던 그 자리는 참 슬프다. 갑자기 받아든 슬픔의 무게는 무척이나 무겁고 힘겨운 것이어서 그저 버티며 아주 조금씩 흘려보낼 뿐이다. 함께 걷던 길, 흙을 밟으며 그리움도 함께 꾹꾹 누른다. 슬프지 않아도 되는 삶을 부러워하기엔 지난 날이 너무 행복했다. 기꺼이 견뎌야 하는 내 몫의 슬픔일 것이다. 다시 만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잘못해서 떠나고 잘해서 남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어딘가, 어떤 날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한국에서는 해마다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면세한도 규제 탓에 웃지 못하는 면세점

    면세한도 규제 탓에 웃지 못하는 면세점

    #보석·시계 브랜드 까르띠에의 ‘탱크 머스트 워치 엑스트라 라지’를 내국인이 면세점에서 구매하려면 약 633만원을 내야 한다. 면세가는 492만원으로 백화점 가격(515만원)보다 저렴하지만 면세 한도(600달러·약 71만원)에 따라 세금 14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백화점 가격보다 면세가격이 118만원 정도 더 비싸다는 계산이 나온다.●美 95만원·日 208만원 수준보다 낮아 정부가 내수 진작을 위해 43년 만에 ‘내국인 면세 5000달러(약 594만원) 구매한도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면세 매출과 직결되는 면세 한도는 여전히 600달러(약 71만원)에 머물러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28일 면세 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에만 존재하는 면세점 구매한도는 1979년 처음 도입돼 이후 네 차례에 걸쳐 5000달러까지 상향 조정됐다. 실제 내국인은 그동안 5000달러 제한 탓에 면세 여부와 상관없이 에르메스, 샤넬, 롤렉스 등 고가 제품의 구매 자체가 불가능했다. 면세업계는 구매한도 폐지에도 표정이 어둡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면세 한도가 여전히 낮아 면세점에서 고가품을 구매하는 이득이 전혀 없다”면서 “면세 한도도 함께 올려줘야 정부 취지대로 내수진작과 업계 지원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 면세 한도는 중국 하이난(10만 위안·약 1868만), 일본(20만엔·약208만원), 미국(800달러·95만원)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매출 10월 다시 줄고 주요사 손실 지속 한편 ‘위드코로나’와 함께 해외여행 정상화 등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었던 면세 업계는 오미크론 확산세로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회복세를 보이던 매출은 지난 10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고 주요 면세업계의 영업손실도 여전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면세점 매출은 1조 6235억원으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9월(1조 7657억원)보다 8.1%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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