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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임매매 손해’ 증권사 배상책임

    투자자가 증권회사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일임매매’ 약정을 맺었더라도 투자자에게 손해가 생겼다면 증권회사측에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金炯善 대법관)는 2일 가정주부 김모씨가 S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권사측이 증권거래법상 금지된 투자수익보장 약정을 해주는 대신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받는 약정을 체결하긴 했지만 원고가주식 운용경험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인 데다 거래에 수반될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고객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만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98년 S증권 투자상담사 이모씨와 주식매매권한을 넘기는 대신투자수익을 보장하는 일임매매 약정을 체결했으나 손해를 보자 4,545만원의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김씨는 98년 8월 1심에서는 전액 승소했으나지난해 6월 항소심에서는 “일임매매 약정 후에 생긴 손해는 회사측에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로 패소하자 상고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노숙자 쉼터 ‘자유의 집’ 큰 성과

    서울시가 지난 한햇동안 노숙자와 부랑인 등을 위해 개설,운영한 ‘자유의집’이 노숙자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으로 평가됐다.지난 1년동안모두 8,000여명이 이곳에서 자활의 꿈을 키웠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4일 영등포구 문래동3가 옛 동명상고 교사 3개동을 임차,노숙자 쉼터를 꾸미고 산하 노숙자대책협의회에 운영을 맡겼다. 이후 1년간 이곳을 거쳐간 노숙자는 모두 7,993명.개소 초기에는 늘어난 노숙자들로 한때 수용인원이 1,400명에 이르기도 했으며 외환위기를 벗어난 지금도 950여명이 남아 자활의 길을 찾고 있다. 이곳에 수용된 노숙자 가운데 지금까지 1,596명이 취업·귀가 등으로 자진퇴소했으며 3,549명은 ‘희망의 집’으로,190명은 ‘은평의 집’ 등 전문 수용시설로 옮겼다. 또 그동안 경북과 강원도 등지의 숲가꾸기 사업에 320명,일용직 등에 연인원 4만3,762명이 참여했으며 348명은 성공적으로 취업,새 삶을 꾸리고 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1,755명이 경기도 연천의 수해지역에 파견돼 무료 복구지원활동을 펼쳤는가 하면 100가구의 영등포지역 생활보호대상자를 찾아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곳 관계자들은 “지난 3월 숲가꾸기 사업에 참여한 320명중 150여명이 현지인과 결혼하거나 빈집을 빌려 정착하는 등 대부분의 수용자들이 기대 이상의 자활의지를 갖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해 남은 수용자들의자활할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노숙자대책협의회는 4일 ‘자유의 집’에서 고건(高建) 시장과 이재정 위원장을 비롯,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 1주년 평가회를 가질 계획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제주도 이틀째 폭설-곳곳 교통두절·휴교

    한파가 맹위를 떨치면서 20일 서울의 아침기온이 올들어 가장 추운 영하 11.3도를 기록한데 이어 21일에도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겠다. 이번 한파는 22일부터 조금씩 풀리면서 평년기온을 되찾을 전망이다. 기상청은 20일 “찬 대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21일 아침 최저기온은 서울영하 9도를 비롯,철원·대관령 영하 16도,대전 영하 9도,전주 영하 7도,부산영하 4도 등으로 전국이 영하 16도∼영하 4도로 쌀쌀하겠다”고 예보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폭설이 내린 충남 서해안과 전·남북 서해안 지방,제주도 지방은 1∼7㎝ 가량의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틀째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제주지방은 5·16도로 등 한라산 횡단도로를지나는 모든 차량의 운행이 통제됐다.고지대에 있는 북제주군 영송학교,제주시 월평동 제주상고,아라동 제주공고 등 3개 학교는 이날 임시 휴교했다. 4일째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제주부근 해상에는 이날 오전 폭풍경보로 대치발효되면서 제주기점 6개 항로의 모든 여객선 운항이 통제됐다. 제주 김영주·조현석기자 chejukyj@
  • 국회 본회의 통과 법안요지(下)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개정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계량 및 측정에 관한 법률 계량기의 제작·수리업자가 사업을 폐지한 경우 계량기를 처분하고자 할때 산업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한 제도를 폐지하여 규제를 완화함. ■약사법 의료기관의 외래환자에 대한 원외(院外)조제를 의무화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구내에 약국개설을 금지함.의약분업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 또는 치과의사가 직접 조제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추가함.(1)전염병예방법에 의한 제1종 전염병환자와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한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한 자에 대해 조제하는 경우 (2)전염병 예방접종용 주사제,운반·보관에 주의를 필요로 하는 주사제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주사제를 주사하는 경우 (3)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중증장애인과 파킨슨병환자및 나병환자에 대해 조제하는 경우 (4)후천성 면역결핍증 등 특수질환의 치료를 위해 조제하는 경우 등. ■국민건강보험법 법의 시행시기를 2000년 7월1일로 6개월 연기하여 의료보험 통합을 순조롭게 추진함.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의보재정을 2001년 12월31일까지 구분하여 계리(計理)하고,직장가입자 중 근로자인 직장가입자와 공무원 및 교직원인 직장가입자의 재정은 2000년 12월31일까지 구분하여 계리하도록 함. ■식품위생법 유전자 재조합 식품에 대해 소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표시에 관한 기준을 정해 고시하도록 함. ■공중위생관리법 보건복지부장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관계 전문기관 등에 업무의 일부를 위탁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함.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의료취약지역의 민간보건의료시설에 공중보건업무를 위탁한 경우 조세관계법령이정하는 바에 의해 세제상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함. ■보건의료기술진흥법 현행 보건의료기술지원기관을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관리기관으로 개칭,한국보건산업진흥원법에 의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지정하고 그 기능을 연구개발사업과 직접 관련되는 기능으로 국한함. ■아동복지법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학대행위,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성폭행 등의 학대행위,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와 함께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가 학대에 포함됨을 명시함.아동학대에 대해 신고를 의무화하고 긴급전화를 설치하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을설치하도록 하여 학대아동에 대한 보호체계를 갖추는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대한 비용보조 근거를 마련함. ■정신보건법 정신질환의 범위내에 알코올 및 약물중독을 구체적으로 추가하여 명시함.자의(自意)입원 환자의 퇴원은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도록 퇴원중지제도를 삭제하고자 함.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의료기관이나 구급차운용자 등에게 신고하도록 함. ■보호시설에 있는 고아의 후견직무에 관한 법률 보호시설에 있는 미성년자의 후견인을 시·도지사가 지정하던 것을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이 지정하도록 함. ■보건환경연구원법 정부의 수수료·사용료 현실화 추진계획의 일환으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그 시설을 이용하는 자나 실험 또는 검사를 의뢰한자로부터 받는 수수료 또는 실비를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현실에 맞게조례로 정하도록 함.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을 전 사업장으로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적정수준으로 제한하는 최고보상기준금액제를 도입함. ■고용보험법 종전에는 실업급여를 지급받기 위하여는 이직(離職)일 이전 18개월동안 12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했으나,앞으로는 180일 이상고용보험에 가입토록 함으로써 실업급여의 수급요건을 완화함.종전에는 실직자의 고용보험가입기간 및 연령에 따라 60일에서 210일까지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으나,실업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장기 실직자의 생계지원을 위해 90일에서 240일까지 실업급여를 지급받도록 함.
  • 최대어 이규섭 1순위로 삼성행

    고려대의 파워포워드 이규섭(22·198㎝)이 전체 1순위로 삼성 썬더스 유니폼을 입었다. 이규섭은 9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농구연맹(KBL) 99∼00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됐다.지난 3개 시즌종합성적 10위인 삼성은 드래프트 순위 추첨에서 확률대로 9위 SK를 제치고1순위 지명권을 따냈다.이로써 삼성은 골밑의 높이와 파워를 크게 강화할수있게 됐다. 추첨순위 2위 SK는 중앙대의 포인트가드 임재현(183㎝)을 전체 2순위로 지명해 팀의 허점인 스피드를 보강했고 골드뱅크는 고려대의 포워드 김기만(192㎝),동양은 성균관대의 게임메이커 이흥배(180㎝)를 1차 지명했다.SBS는 연세대의 포워드 은희석(190㎝),신세기는 연세대의 슈터 최병훈(188㎝)을 1순위로 뽑았다. 종합성적 역순으로 진행된 1∼4위팀 지명에서는 기아가 이병석(명지대·189㎝),현대 정훈종(중앙대·205㎝),삼보 박종덕(명지대·196㎝),LG 이정래(고려대·185㎝)를 각각 1차 지명했다. 한편 이날 드래프트에서는 신청자 29명 가운데 22명(76%)이 지명을 받아 ‘선수난’이라는 평가와는 달리 지난 시즌(67%)보다 높은 지명률을 나타냈다. 삼성과 SK 골드뱅크 삼보 등 4개 구단이 3명을 선발했고 동양과 LG는 1명만을 뽑았다. 오병남기자 obnbkt@ *기량 프로주전급 '제2 전희철' “최선을 다해 전체 1순위로 뽑아준 팀에 보답 하겠습니다”99∼00 프로농구 국내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삼성에 지명된 이규섭은 일찍부터 대졸 최대어로 지목된 재목.대경상고 시절 팀을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고 고려대가 올 시즌에서 대학최강 중앙대를 꺾고 애니콜배 농구최강전 정상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98농구대잔치에서는 득점왕에 올라 “프로에서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유일한 대학선수”라는 평가를받기도 했다. 장신이면서도 유연성이 좋고 슛 감각이 빼어나 ‘제2의 전희철’로 불린다. 바스켓 근처로 파고든 뒤 던지는 미들슛은 어김없이 그물을 가른다.드라이브 인과 3점슛,속공가담도 수준급.몸싸움에 약한 것이 아쉬운 대목.대학 4년동안 평균 야투 성공률 59%,3점슛 성공률38%를 기록했다. 형 이흥섭도 삼보의 센터로 활약하고 있어 조상현(골드뱅크)-동현(신세기)쌍둥이에 이어 프로농구 2호 형제선수로 기록되게 됐다. [오병남기자]
  • 대법 ‘황혼이혼’ 첫 불허

    “남편이 가부장적 권위를 앞세워 부인을 핍박하고 이유없이 부인의 불륜을 의심한 것은 인정되지만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과 남녀관계를 종합해볼 때이를 이혼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 70대 할머니가 80세가 넘은 남편을 상대로 낸 황혼이혼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이혼을 불허한다”는 첫 확정판결을 내렸다.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황혼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 현상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A할머니(76)는 지난 46년 남편 B씨(84)를 중매로 만나결혼,4남매를 뒀다.그러나 남편은 결혼초부터 경제권을 쥐고 할머니에게는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의 생활비만 줬고,할머니는 하숙을 하거나 손수레보관소 등을 운영해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갔다.남편은 또 할머니의 교사생활도 그만두게 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의처증과 치매증세까지 보여 할머니를 괴롭게 했다. 참다못한 할머니는 지난 97년 5,300만원을 들고 큰딸 집으로 가출했다가 남편으로부터 절도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결국 할머니는 남편이 ‘망상장애’라는 병원소견서를첨부,이혼소송을 냈고 지난해 6월 법원으로부터 “남편은할머니에게 위자료 등으로 7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남편은 이에 불복,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남편이 부당대우를 한사실은 인정되지만 혼인당시의 가치기준 등을 감안할 때 이혼사유로 볼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할머니는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남편을 돌볼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할머니는 이에 불복,상고했지만 대법원은 8일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여성단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이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했다’며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록기자myzodan@
  • 대법원, 네살배기 증언능력 인정

    대법원이 엄마의 피살 현장을 목격한 네살배기 여자 아이의 기억을 신빙성있는 증언으로 인정했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李林洙 대법관)는 7일 돈 문제로 이웃집 주부를 살해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모(35·악사)피고인에 대한 살인 등 사건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인의 증언능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과거에 경험한사실을 그 기억에 따라 진술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면서 “피고인을범인으로 지목한 피해자의 딸이 사건 당시 만 4세 6개월이었다 하더라도 다른 또래보다 정신능력이 우월한데다 진술에 일관성이 있는 점으로 볼 때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건개요 이 피고인은 지난 96년 8월 서울 후암동 김모씨(당시 28·여) 집에서 돈문제로 다투다 김씨를 살해하고 딸 김모양을 목졸라 기절시킨 뒤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하지만 김양은 다리 등에 화상만 입고 극적으로 살아났고 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경찰은 김양의 진술 외에는 별다른증거가 없고 만 16세 미만은 선서 무능력자인 점을 감안,이 피고인을 풀어주었다.그러나 사건발생 2년이 지나도록 김양의 증언이 일관되자 검찰은 “비록 4살 밖에 되지 않지만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지난해 10월 이 피고인을 살인 및 현주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재판경과 1심 공판 때부터 검찰과 변호인단은 증인의 증언능력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검찰은 김양이 이 피고인의 외모 등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 피고인이 살해범이라고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이피고인의 알리바이와 함께 경찰이 김양의 진술을 유도,왜곡했다며 공소내용을 반박했다.그러나 서울지법은 지난 4월20일 “증인의 증거능력에 문제가없어 보인다”면서 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서울고법도 지난 8월11일 1심 선고를 그대로 인정했다. ■국내 및 외국 판례 국내에서는 지난 91년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만 3세 여자아이의 증언을 인정,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어린아이의 증언을 배척한 판례도 종종 있지만 증인의 증언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에 달라졌다.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에서는 어린아이의 증거능력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미국에서는 어릴 때의 ‘시각정보’는 영구기억으로 저장된다는 실험 결과를 인정하는 추세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현대 그랜저XG·베르나 일부차종 리콜

    현대자동차는 그랜저XG 2.0 자동변속기 차량 등 일부 차종에 대해 리콜을실시한다고 3일 밝혔다. 대상차종은 지난 8월 16일부터 10월 30일 사이에 생산된 그랜저XG 2.0 자동변속기 차량 3,100여대와 지난 6월 16일부터 7월 12일 사이 생산된 베르나수동변속기차량 3,300여대다. 현대차는 그랜저XG는 동력 전달부분에서 연결 부위 마모와 소음유발 가능성 때문에,베르나는 변속 연결볼트가 장기간 운행때 조기마모 가능성 때문에각각 리콜대상이 됐다고 밝혔다.현대차는 해당부품을 점검,교환할 방침이다. 리콜은 오는 6일부터 1년간 현대차 직영 애프터서비스 사업소와 지정정비공장에서 실시되며 대상고객에게는 개별 통지된다.문의 (080)600-6000김환용기자 dragonk@
  • “증여 효력은 등기완료 시점”/대법원 판결

    주택을 두 채 갖고 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채를 넘겼어도 등기를 하지않았다면 1가구 2주택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李林洙 대법관)는 28일 이모씨가 서울 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소득세법의 ‘상속·증여를 받은 날’이란 등기를종료한 날을 의미하는 만큼 원고가 아들에게 실제로 집을 넘겨줬다 해도 미등기 상태였기 때문에 증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이씨는 지난 93년 11월 서울 양재동의 살던 집을 팔았으나 세무당국이 이씨가 아들에게 넘겨준 오산시 양산동 주택이 등기 이전되지 않아 1가구 2주택이라며 양도소득세를 물리자 소송을 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신중복해운대구청장 당선무효

    대법원은 26일 신중복(愼重福)부산 해운대구청장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원심을 확정했다. 신 구청장의 당선 무효가 확정됨에 따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60일 이내에 재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신 구청장은 지난 6·4선거 당시 무소속 김모 후보의 재산과 여자,음주문제등을 거론하며 비방하고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의열 독립투쟁] (13)곽재기 의사

    곽재기(郭在驥·1893∼1952)의사는 1920년대 항일 독립투쟁사의 전설적 존재인 의열단(義烈團)의 초대 부단장으로서 창단 직후 추진된‘제1차 암살 파괴 계획’의 실행을 국내에서 지휘하다 일경에 피체되어 7년 가까이 옥고를겪었다.흔히‘밀양폭탄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이 거사 계획은 총독부 당국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도 남을 만큼 대담무쌍했으며,일제의‘문화정치’틀속에 안주하려던 각계 유지층에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893년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난 곽 의사는 서울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청주청남학교(淸南學校) 교사로 다년간 봉직했다.곽 의사의 항일운동 이력은 1909년에 창립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시작되었다.3.1의거가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적극 참가했던 곽 의사는 1919년 7월 부인 윤씨와 두 아들(大鉉·壽鉉)을 남겨둔 채 중국 동북지방 지린(吉林)으로 망명했다.서너달 후 곽 의사는 투탄·암살 등 의열투쟁 방식으로 조국 독립을 달성코자 결성된 소년단의 지린 지부장으로 등장한다. 이 해 10월 중순곽 의사는 신흥무관학교 생도인 김원봉(金元鳳·의열단장) 등과 알게 되었는데 그 무렵 이들은 ‘의열단’이라는 이름의 비밀결사를조직하고자 동지를 규합하고 있는 중이었다.소수 정예의 결사적‘직접 행동’으로 일제 침략세력을 타격하며 독립운동의 전투적 기운을 드높이려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곽 의사는 곧 그들의 동지가 되기로 맹약했다.이들은 11월9일 밤 지린성 밖 화성여관(華盛旅館)에서 창단 회합을 갖고 10개조의 공약을 정했다.단장에는 김원봉,부단장에는 곽 의사가 추대됐다.서상락(徐相洛)·배중세(裵重世)와 함께 27세의 최연장자라는 점 이외에 교사 경력과 그동안의 항일 경력,그리고 식견과 지도력이 두루 참작된 결정이었다. 의열 단원들은 처음부터 고강도의‘암살파괴운동’을 벌여나가기로 결의했다.표적은 총독부 일본인 고관과 친일 반역자,그리고 식민지배의 정치기관·선전기관·폭압기구·수탈기구와 부속 시설물들이었다.이 계획은 테러리즘의 소치가 아니라 민족독립 투쟁의 일환으로 행해질 기습 특공작전이요,그 원초적 범례가될 것이었다. 단원들은 지체없이 국내 거사 준비에 돌입했다.경성(서울)의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조선은행,매일신보사 폭파와 사이토(齋藤)를 비롯한 총독부 수뇌·요인들을 저격,포살키로 목표를 정했다.김원봉은 중국에서의 제반 준비와지원을 책임지고 국내 현지에서의 거사 추진 및 실행은 곽 의사가 전담,지휘하기로 결정하였다.창단 직후부터 추진한 무기 구입 노력은 이듬해 3월에 가서야 성과를 보았다.상하이(上海)에서 구입한 탄피 3개와 폭약을 이용하여화약 투입식,도화선 점화식,투척 즉발식 폭탄 1개씩을 각각 제조했다.4월 하순 김원봉과 이성우가 폭탄 13개(점화식 7개,투척식 6개),제조용 폭약과 탄피,권총 두 자루,탄환 100발을 중국인으로부터 추가로 구입했다. 무기를 국내로 들여오는 일은 4월 초와 5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이어달리기식으로 수행되었다.1차분 폭탄 3개는 임시정부 외무차장 장건상(張建相)의이름을 빌려 안뚱현(安東縣)의 영국인 세관원 유스 포인에게 소포로 부친 후 곽 의사가 따렌(大連)을 거쳐 안뚱으로 가 소포를 찾아그 곳의 상주연락원 이병철(李炳喆)에게 넘겨주었다.이병철은 옥수수 스무 가마 속에 폭탄을 숨겨 포장해서 경남 밀양의 화물운송점으로 부친 후 기차편으로 밀양으로 가서 화물을 찾아 폭탄만 따로 빼내 청년회장 김환(金煥)의 집 마루 밑에 숨겨두었다. 2차분 무기 묶음은 중국인으로 변장한 이성우가 의류상자로 위장해서 휴대하고 선편으로 안뚱까지 가서 이병철에게 건네주었다.이병철은 지난번처럼옥수수 다섯 포대 속에 무기를 넣어 포장하고 다른 열다섯 포대와 뒤섞어 화물로 위장해 부산진역의 한 운송점으로 보냈다.이것을 배중세가 수령해서 비밀표식이 된 다섯 포대만 따로 추려 창원 강산진(姜祥振)의 집 창고에 숨겨두었다.무기 반입이 완료되자 지도부는 인원 배치와 임무 분담,자금 조달 등의 후속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4월 중순 국내로 잠입한 곽 의사는 밀양으로 내려가 1차분 폭탄의 보관 상태를 확인하고 먼저 귀국한 단원들을 만나 임무를 부여하고 격려하였다.그리고는 상하이로 돌아가 김원봉에게 제반 준비작업의 진척도를 보고한뒤 이성우와 함께 다시 국내로 잠입했다.서울 공평동의 전동여관(典東旅館)에 지휘소를 두고 단원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해 가며 거사날짜만을 기다렸다.거사는원래 6월 초 이내에 결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사태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밀양에 숨겨둔 폭탄 3개가 밀정의 제보로 경기도 경찰부에 탐지돼 가택수색 끝에 적발,압수되어버린 것이다.이 때문에 경성부 관내에는 경찰의 특별경계령이 내려지고 엄중한감시망이 가동되었다.게다가 이수택은 거사때 뿌릴 격문의 인쇄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차 반입무기의 서울 이송을 누차 미루었다.자금마련을 위해 곽 의사가 대구와 청주를 다녀오기도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그래서 거사날짜는 7월8일로 잠정 연기되었다. 그러던 차에 서울에서 잠행하며 대기중이던 단원 5명이 6월20일경 조선인경부 김태석(金泰錫)에게 체포되고 말았다.곽 의사는 무기 보관 상태 점검차 부산에 잠시 내려갔다가 김기득과 함께 부산서 체포되었다.다른 단원들과협력자들도 속속 검거되고 창원에 은닉해뒀던 무기도 모두 압수되었다. 1921년 6월21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곽 의사는 상고를 포기한 채 마포형무소 독방에서 복역 중 1927년 1월 특사조치로 1년10개월 감형돼 이 해 1월22일 만기출옥했다.출옥 후 3년 뒤 곽 의사는 다시 만주·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재투신한 것으로 전해진다.광복 후 1945년 11월 귀국한 곽 의사는 한국에스페란토어학회를 이끄는 등 주로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1952년에 타계했다.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곽재기 의사 후손들 근황 곽재기 의사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애국지사에 속한다.동작동 국립묘지에 묘소가 마련된 것 외에는 기념사업회는 물론 변변한 기념물 하나 세워진 것이 없다.‘못 배우고 못 사는’ 후손 덕분(?)에 독립운동 관련 자료하나 제대로 전해오는 것이 없다.후손들 역시 곽 의사의 이름 석 자를 겨우기억하고 있을 뿐 곽 의사가 해방 후에 타계한 탓으로 연금 한 푼 주어지는것이 없다. 곽 의사의 부인 윤씨는 곽 의사보다 먼저 작고했다.두 아들 가운데 장남 대현(大鉉)씨는 일제때 작고했으며,차남 수현(壽鉉)씨는 80년대 중반 작고했다.장손 기수(琦洙·65)씨는 함북 청진 태생으로 일제때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며 일제가 국민학교 입학시험을 못 치르게 해 입학이 늦어졌다.해방 후 고아원을 전전하며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기수씨는 62년부터 10여년 동안 교통부에서 역무원으로 종사한 바 있는데 지난 95년 부인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떠 현재 외롭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슬하에 2남2녀.최근 해방 후 작고한 독립운동가들의 손자들이 자신들이 연금 수혜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과 관련,조상들의 건국훈장을 반납,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기수씨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조상을 팔아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습니다.그러나 단지조부님께서 해방 후에 작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손자들이 연금 수혜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정운현기자 jwh59@
  • 美·埃, 여객기 추락원인 싸고 날카롭게 대립

    [뉴욕·카이로 연합] 지난 달 31일 발생한 이집트항공 소속 보잉 767기의추락원인을 놓고 미국과 이집트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사고조사를 맡은미국 쪽에서 조종사의 자살비행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이집트측은 기체결함등을 은폐하기 위한 음모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은 추락 당시 부기장 자리에 앉은 교대 조종사 가밀 알 바토우티(51)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에 남긴 아랍어 기도 해석을 놓고 전혀 다른 추론을 하고 있다. CVR과 비행기록장치(FDR) 자료에 따르면 바토우티는 기장이 잠시 자리를 비워 조종실에 혼자 남자 “나를 신께 맡깁니다.알라는 유일신이며 모하메드는 그의 예언자입니다”는 짧은 기도문을 암송했으며 이를 전후해 두번 연속눌러야 작동되는 자동비행장치가 꺼지고 기체가 급강하하기 시작했다.미 언론들은 이런 정황을 들어 바토우티의 기도문은 자살을 앞둔 기도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반면 이집트의 유력 일간지 알 아흐람은 교대 조종사의 말은 이집트항공 조종사들이 이륙 후 정상고도에 접어들면 흔히 하는정상적인 말들이라고 주장했다.관영 알-아크바르지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개입 가능성도 제기하고 심지어 미사일에 의한 추락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바토우티씨의 아들 모하메드는 이날 이집트 일간지 알 아흐람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사고 하루 전 전화요금을 내라고 집에 돈을 보내줄 정도로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서 부친이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하)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9일, 베를린에서는장벽붕괴 및 독일 통일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와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21세기 통일독일의 새비젼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냉전 종식의 주역들인 콜 전 총리와 부시 전 미대통령,고르바초프 전 옛소련 대통령이 행한 기념 연설.베를린 장벽 붕괴 및독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들 ‘3인방’이 차례로 연방하원에등장,‘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상황’의 회고 및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념 연설을 하자 연방하원 의원들은 물론 독일 시민들이 일제히 열렬한박수로 환영. ●장벽 붕괴 10주년 행사와 관련 최고의 인기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그가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아들론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몰려가 ‘고르비’‘고르비’를 연호.이때 고르바초프가 딸 이리나와 손녀 아나스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운더텐린번대로의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그는 또베를린의 유명 보석상 옌스 로렌츠씨로부터 독일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평화의 시계’로 명명된 최고급 시계를 선물 받았다. ●전날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합군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의 해방-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조용한 행보. ●베를린 시청에서는 부대행사로 장벽 붕괴일인 지난 89년 11월9일 출생한어린이들을 초청,‘독일 통일의 꿈나무’ 행사를 열어 이들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게메르크 폴란드 외무장관은 베를린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과 추쿠비스 츠브스키전 폴란드 외무장관에게 ‘독일·폴란드’상을 수여.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야외 특설 음악당에서는 3만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 거장들의연주에 이어,팝그룹 스콜피온스우도 라덴베르크가 각각 ‘변화의 바람’‘베를린을 환영합니다’를 열창.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수십발의 기념폭죽이 터져 하늘을 수놓자 시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 베를린 장벽 붕괴후의 동유럽 변화상 ‘동구 국가들의 새 세기 시작은 2000년 1월1일이 아니다.10년 전인 1989년11월9일 이미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철의 장막 음지에 있다 지난10년간 숨가쁜 변화를 겪어온 동구(지리적으로는 발트해에서 발칸반도)국가들에게 베를린 장벽붕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지난 91년 구 공산권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9일 연례보고서에서 중부 유럽국가들과 발트국가들이 내년에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인 1.6%의 두배에 해당하는 3.2%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동구 발전의 선두그룹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과 접경,유로리전(Euro Region)등의 실험적인 경제및 환경협력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체크 등 ‘동구 3룡(龍)’.지난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정치·경제 안정의 척도라할 유럽연합(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유럽 옛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89년 동독인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철의 장막을 처음 깨뜨린 헝가리는 이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10년전 2,000달러이던 1인당 GDP는 지난해 4,500달러가 됐다. 붕괴 이전부터 동구지역의 반공산혁명 선봉장 역할을 했던 폴란드는 지금도4,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력으로 중부유럽 최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10년전 3,200달러이던 1인당 GDP가 5,000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결별했다.체코는 옛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지도아래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그러나 슬로바키아는 90년대 내내 권위주의적 정부의 영향으로 유럽 최대 빈국으로 간주돼온 저성장국.그러나 지난해 친 EU성향 새정부 출범으로 장족의발전을 거듭하고 있다.옛 유고연방 국가들 가운데는 슬로베니아가 1인당 GDP1만달러를 넘기며성공, EU 가입 최우선 대상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90∼91년각각 독립을 선언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도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움으로 놀라운 경제변신을 이룩했다. 그러나 개혁이 오래 지체됐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그리고 계속된 분리 전쟁과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유고등은 불안정한 정치,절름발이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공산 종주국이었던러시아는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0%에 머물고 절대 빈곤층이 7,4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구동독 마지막 국가원수 에곤 크렌츠 [베를린 남정호 특파원] “지난 89년 11월9일부터 11일까지의 사흘동안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도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8일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62)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재 각종 강연과 집필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그해 10월18일 실각한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한달도 채 안된 11월9일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맞은 비운의 동독 마지막 국가원수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 위로 수천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기어올라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뚫릴 상황이었습니다.이때 우리가 가장 우려한 것은유혈 이었습니다.소련이 어떻게든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일밤 동독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동서독 국경선 개방 공표는 ‘피 대신 샴페인’을 터뜨리게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서 베를린 국경개방은 당시 양측의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것이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9년 11월1일 고르바초프와 4시간동안 회담했을 때 독일통일은 의제에도없었습니다.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을 해체하고자한 정치가는 동서진영 어디에도 없었고 고르바초프 입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뒤 12월2∼3일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통일이 결정됐다”며 “89년 당시 소련은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독의 몰락은 어찌보면 당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호네커와 슈미트 서독 총리간의 회담 이후 호네커와 소련 공산당지도부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는 크렌츠는 89년 11월9일밤 동서독 국경개방 결정도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리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후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서독 국경탈주자 사살명령 혐의에대한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동서독 장벽은 옛소련의 전략적 방위선으로 탈출자에 대한 발포 결정은 군사적 성격의 결정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고 강조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크렌츠는 97년 8월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었다. * 베를린장벽 붕괴 관련어록 [파리 AFP 연합] 유럽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는 기억할 만한 발언들을 많이 남겼다.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장벽을 부숴 버리십시오.(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89년 6월12일 브란덴부르크문에서)●장벽은 그것이 세워진 여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장벽은앞으로도 50년,아니 100년 동안도 존재할 것이다.(에리히 호네커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89년 1월19일)●소련은 동유럽 이웃들의 문제에 개입할 도덕적,정치적 권리가 없다.그들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89년 10월 핀란드 방문시)●동독인들은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이 조치는즉각 발효된다.(귄터 샤보브스키 옛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89년 11월9일기자회견에서)●우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매우 슬픈 일들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년 11월9일)●나는 방금 베를린으로부터 도착했다.엄청난 사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헬무트 콜 서독 총리,89년 11월10일)●베를린 장벽에 처음 금이 간 것은 80년 8월 폴란드 전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파업사태 당시였다.(아담 미흐닉 폴란드 반체제 인사,99년 11월)●나는 내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미하일 고르바초프,99년 11월)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 “언론사에 취재기록 제출 강요 못한다”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1일 검찰이 언론사에 대해 형사소송사건과 관련해 취재기록이나 정보를 제출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새크라멘토 소재 KOVR TV의 엘런 밀러 뉴스국장에 대해 살인 용의자의 고백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할 때까지 구금할 것을 명령한 하급법원의 판결을 뒤엎은 것으로 언론자유의 승리로 평가되고 있다. 검찰은 90년 통과된‘주민발의안 115’(범죄피해자 조항)를 들어 검사가 기자의 취재기록이나 방송되지 않은 영상테이프를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그러나 주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발의안은 정보원을 공개하지 않거나기록과 미방영 필름을 제공하길 거부하는 기자를 보호하기 위한 주 언론보호법의 어떤 조항도 무효로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판결문 작성자인 스탠리 모스크 대법관은“소송 당사자는 물론 검사들이 언론자율을 위협하고 있다”고지적했다. KOVR TV는 96년 3월 캘리포니아소년원에 수감중인 한 죄수(18)가 동료 죄수를 살해했다는 고백 등을 담은 필름 일부를 방영하자 담당 검사는 취재기록과 미방영 필름을 요구했으며 법원은 자료 제출을 거부한 밀러 국장에게 구금을 명령했다. 그러나 밀러 국장은 항소,상고 제기 등으로 자료 제출을 끝까지 거부했으며대법원 판결때까지 구금집행이 보류됐다. 언론단체들은 이번 판결을‘위대한 결정’으로 평가하고 일제히 환영한 반면 검찰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꼭 필요한 증거물을 볼 수 없게 됐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 김상현의원 항소심서 무죄 판결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李光烈 부장판사)는 28일 국정감사에서 “잘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한보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받은 국민회의 국회의원 김상현(金相賢)피고인에 대한 뇌물수수사건 선고공판에서 “대가성이 있는 뇌물로 볼 수 없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피고인은 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 준비를위해 연설회 등 정당활동에 열중하느라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에 소홀해 국감자료 내용도 잘 모르던 상황이었던 만큼 구체적인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검찰 조사과정에서 ‘국정감사 무마용으로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던 정태수(鄭泰守) 한보그룹 회장 등 한보 관계자들도 재판과정에서 ‘대가성이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라고 진술을 번복했으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날 공판직후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상고할 뜻을 밝혔다. 이상록기자 myzodan@
  • PCS비리 관련 金己燮씨,대법 상고기각…원심확정

    대법원 형사3부(주심 李林洙 대법관)는 24일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자 선정비리와 관련,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전 안기부 운영차장 김기섭(金己燮)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김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7,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청탁 경위와 시점 등 객관적인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피고인이한솔PCS측으로부터 PCS 사업자 선정 청탁과 관련해 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 피고인은 한솔PCS측으로부터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기소돼 1심에서는 “대가성이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지난 7월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단군상 건립 ‘뜨거운 감자’로

    “우리민족의 순수한 뿌리찾기이며 민족사 바로세우기 사업이다”“종교적의도를 담은 조직적 차원의 운동이므로 철거돼야 마땅하다” 얼마전 각급 학교내에 지어진 단군상이 잇달아 훼손되면서 단군상 건립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개신교 측이 단군상 건립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단군상 건립의 주체인 한문화운동연합(회장 장영주)과기독교계의 대립이 한층 격화될 조짐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지난 19일 단군상 건립과 관련해 단군이 우리민족의 정신적 유산임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의 의도를 담은 운동인만큼 단군상은 철거돼야 한다는 요지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단군상의 건립주체인 한문화운동연합이 22일 성명을 통해 이를즉각 반박하고 나섰다.한문화운동연합은 성명에서 “KNCC는 국조 단군을 비롯한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이며 민족정신의 상징인 단군상 철거주장을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아울러 지금까지 세워진 단군상을 철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사를 거듭밝혔다. 단군상 건립을 둘러싼 대립은 한문화운동측은 지난해 11월부터 각급학교와공원 유원지 등에 모두 369기의 단군상을 건립하면서 비롯됐다. 개신교계에는 당시 ‘단군의 역사성이 검증이 안돼 있고 단군상을 세워 이를 전파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인식이 퍼졌으며 ‘단군상 철거를 위해 집단행동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왔다.이런 가운데 지난 7월부터 한문화운동측이 세운 단군상의 목이 잘려나가는 등 훼손사건이 불거진것. KNCC는 이에따라 지난 7월 단군상대책위원회를 발족,공청회 등을 열어 논의한 끝에 지난 19일 입장을 최종정리하고 ‘단군상 건립에 따른 우리의 입장’을 마련했다. 이 입장은 ▲단군상 건립 주체측이 세운 건립기에 아직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내용과 천부경이 명시돼 있어 일반 국민들의 역사인식과는 동떨어지며 ▲우리나라 상고사 인식에 혼선을 야기하고 국수주의를 충동하는 가치관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고 ▲건립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이 드러난 만큼 단군상은 스스로 철거하는 게 마땅하다는내용으로 돼 있다. 이는 개신교 내부의 강·온 양측의 견해를 절충한 것이다.즉 단군상 건립은반대하지만, 단군신앙이 우상숭배라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이에대해 한문화운동연합측은 이미 단군상 기증은 끝난 사안이라며 개신교계에서정확한 사태파악 없이 무조건 단군신앙을 배척하려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며불만을 표시했다. 한문화운동연합 장영주 회장은 “현재 단군상은 학교와 공공시설에서 민족정신의 상징으로서 교육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교회내부에서 진지한 토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
  • 大法, 이순호변호사 상고심 딜레마

    98년 초 외근 사무장 등에게 돈을 주고 사건을 수임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의정부 법조비리사건의 주범 이순호(李順浩) 변호사 사건을놓고 대법원이 고민에 빠졌다. 이변호사에게 사무장 등 법조 브로커를 처벌하는 ‘변호사법 90조2항’을적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죄를 선고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무죄가 선고되면 또다른 ‘싹쓸이 변호사’가 활개칠 가능성이 크다.98년 10월 사건을 접수한 뒤 1년이 넘도록 선고 날짜를 잡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법 어디에도 돈을 주고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를 처벌할 수 있도록 명문화된 조항이 없다는데 있다.이 때문에 검찰은 당시 이변호사에 대해뇌물공여죄와 함께 변호사법 90조2항을 적용해 기소했다.하지만 1·2심은 변호사법 위반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고 뇌물공여죄만 적용,징역 8월을 선고했다.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는 “변호사법의 제정 취지로 볼 때 변호사에게도변호사법 90조2항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대법원은 이변호사 사건을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는 않았지만 12명의 대법관 전원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을 들어 변호사법 개정 전까지는 변호사법 90조2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과 현실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재경부 386세대 과장 첫 탄생

    중앙부처 중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인사적체가 심한 재정경제부에서도 ‘386세대’의 과장시대가 열렸다. 재경부는 현재 공석중인 경제정책국 조정2과장에 주형환(周亨煥) 서기관을 내정했다.현재 세계은행 이사보로 근무하고 있는 주 서기관은 61년생으로 올해 38세이며 8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전형적인 386세대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조직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기획예산처로 분리됐지만 인적 이동은 이에 못미쳐 인사적체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재경부에서 주서기관의 발탁인사는 단연 화제다.재경부 관계자는 “서열이나 기수보다는능력위주의 인사관행이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는 등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경부에는 주 서기관과 동기로 80년대 학번들이 여럿 과장 보직을 기다리고 있어 머지않아 재경부도 386세대의 과장시대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덕수상고를 나와 대학 3학년때 행정고시(26회)에 합격한 주 서기관은 공인회계사에 미국 일리노이 대학원 경영학 박사다.경제기획원 출신으로 95년 홍재형(洪在馨) 재경원 장관의 비서관을 지낸 주 서기관의 발탁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기획원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게 주변의 관측이다. 김균미기자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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