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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회장등 190억 배상”

    대법원 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28일 삼성전자 소액주주 22명이 이 회사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건희 회장은 70억원, 이사들은 12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사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 법을 위반했다면, 그 위반행위 자체가 회사에 빚을 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사가 선의에 의해 경영적 판단을 내렸다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발생해도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우선 이건희 회장이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75억여원의 뇌물을 건넨데 대해 소멸시효가 지난 5억원을 제외한 전액에 대해 배상책임을 물었다.뇌물공여 금지규정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주당 1만원에 매입한 삼성종합화학 주식을 1994년 12월 주당 2600원에 계열사인 삼성항공에 팔도록 한 이사회 결정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일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전문가 조언도 없이 현저히 싼 가격에 주식을 매도한 것은 합리적인 경영판단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사회가 충분한 검토없이 1시간만에 이천전기 인수를 결정해 손실이 발생했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 “이사진이 이천전기의 부도·청산 가능성을 예측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배상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1997년 이천전기를 1999억원에 인수했지만, 이듬해 이천전기가 퇴출 대상으로 선정되자 95억원에 처분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석유·가스公 사장선임 ‘막판 진통’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양대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사장 선임문제가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 사장 후보에 대한 청와대 내정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지만, 아직 안개 속이다. 26일 산업자원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사장 임명을 위한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가 27일 개최된다. 이에 앞서 두 공사 사장추천위원회는 각각 5명의 사장 후보를 추려냈다. 산자부는 이들을 대상으로 1차 검증을 실시했으며, 현재 청와대의 최종 검증 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 인사추천위는 지난 20일에도 열렸으나 사장 내정자를 확정하지 못하고 연기됐다. 다만 각각 5명의 사장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한 상태다. 이에 따라 사장 선임을 위한 2차 공모가 진행되고 있는 석유공사의 경우 서문규 석유공사 부사장과 황두열 전 SK 부회장으로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3차 공모중인 가스공사 사장 후보로는 이수호 LG상사 부회장과 최성래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석유공사 사장 후보 가운데 황 부회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가스공사 사장 공모에 지원했다가 탈락한 경험이 있어 논란의 불씨가 남아 있다. 또 가스공사 사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 부회장은 공사 노조가 경쟁기업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노조 관계자는 “해외자본에 종속된 대기업 경영진을 공사 사장으로 임명할 경우 가스산업의 공공성과 에너지안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사장을 선임하지 못한 채 재공모에 들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산 7조원의 석유공사가 해외 유전개발에 앞장서고 있고, 자산 10조원의 가스공사는 가스 도입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고경영자 공백으로 인한 손실이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장 공모에서 이미 가스공사는 두 차례, 석유공사는 한 차례 실패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장기간 공백 상태를 불러온 공모제에 대한 수정 또는 전면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강삼재 ‘족쇄’ 풀리나

    이른바 ‘안풍(安風)사건’에 연루돼 정계를 은퇴했던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이 오는 28일 대법원 상고심 이후 2년여만에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 전 총장은 지난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이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안풍’사건으로 지난해 7월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강 전 총장은 앞서 지난 2003년 9월에 열린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마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강 전 총장은 지난해 8월부터 경남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25일 강 전 총장의 측근에 따르면 “서울과 마산을 오가며 강의준비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개인 홈페이지(cyworld.nate.com/haksan7581)를 통해 지인들과 연락을 나누거나 산행을 가는 등 자연인으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2심 재판 이후 ‘2006년 경남지사 출마’ 등 강 전 총장의 정계복귀설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측근들과 금강산을 등반하며 정국구상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 전 총장의 향후 정치 행보의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단지 주변의 얘기일 뿐 정치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법원 판결 이후 구체적 거취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대법 판례’ 얼마나 바뀔까

    ‘다양한 구성’의 대법관 3인이 새로 후보로 제청됨에 따라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지금까지의 판례를 얼마나 변경할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박시환, 김지형 두 대법관 후보. 이들은 아직 국회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절차가 남아 있다. 이들이 국회에서 동의를 받으면 대법관 중에 진보 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김영란 대법관을 포함해 적어도 3명이 된다. 아직도 소수이긴 하지만 전원이 보수적인 인물일 때와는 사정이 달라진다. 대법관이 어떤 사건을 맡아 검토한 결과 기존의 판례와 의견이 다르면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판례변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며 대법관들이 결정한 다수·소수 의견은 각각 기록으로 남겨져 이후 새로운 법해석의 열쇠가 된다.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은 임기 6년 동안 65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남겼다. 먼저 양심적 병역거부와 국가보안법 사범에 대한 재판에서 전원합의체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전원합의체에서 확정한 바 있다. 당시 이강국 대법관만이 실형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이 대법원장과 박시환 대법관 후보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또 새로운 진용을 갖춘 대법원은 사법부의 과거사 정리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확정판결을 뒤집을 만하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증거나 사실이 발견됐을 때만 재심이 가능토록 한 엄격한 재심요건이 판례변경을 통해 완화될지도 주목된다. 아울러 국가보안법 사건의 판결 등에도 해빙기가 기대되는 가운데 계류중인 송두율 교수의 상고심 결과도 관심거리다. 아직 진보 쪽으로 분류되는 대법관 수가 전체의 4분의1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판례 변경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 선임될 대법관 중에서 개혁 성향의 대법관이 한둘이라도 선임되면 점점 발언권과 영향력이 세질 수 있다.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이 임명되면 개혁 성향의 대법관들과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에서 주고받을 토론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밖에도 사형제도 대신 종신형 도입, 반인도적 범죄의 시효 배제 등을 개혁 과제로 밝힌 바 있어 관련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주목된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MC데뷔 35년 가족프로의 대명사 허참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MC데뷔 35년 가족프로의 대명사 허참

    “허참, 거 재치있네. 입담 한번 구수하구만.” 언젠가 식구들과 TV를 보다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얘기다.KBS 2TV의 주말 프로인 ‘TV가족오락관’은 가족 프로그램으로 20년 넘게 장수, 이 분야에선 독보적인 생명력을 자랑한다. 지난 1984년 4월 처음 전파를 탄 이래 단 한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재치박사들을 불러모아 말 그대로 ‘건강한 웃음’을 선사했다. 주요 고객은 온 집안 식구들. 할머니가 웃을 때면 손자·손녀도 함께 웃을 정도로 가족프로그램으로 인기다. 뿐만 아니다. 그 옛날 엄마 손을 잡고 왔던 딸이 지금은 엄마가 되어 딸의 손을 잡고 다시 방청석을 찾을 정도로 세대를 뛰어넘는다. 비결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진행자 허참(57·본명 이상룡)씨가 아닐까. 특유의 ‘몇대 몇’이라는 애교섞인 교통정리와 함께 구수한 입담으로 많은 아줌마팬들을 꾸준히 확보해오고 있다. 허씨는 올해로 MC데뷔 35년째를 맞는다. 아울러 ‘TV오락관’ 첫 방송때부터 22년째 이끌어와 단일 프로로는 ‘최장수MC’ 계급장을 달고 있다. 선배인 송해씨가 ‘전국노래자랑’을 17년째 진행을 맡은 것에 견주면 얼른 인정이 된다. 또 쌍벽을 이루는 임성훈씨의 경우 74년 데뷔했지만 현재 SBS ‘세븐데이즈’‘솔로몬의 선택’ 등 주로 인기전문 MC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단 차별을 둘 수 있다. 가을날 오후 햇살이 가득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에서 허씨를 만났다. 사진촬영을 먼저 하면서 지금까지 거쳐간 파트너 여성MC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한 열여덟명쯤 될거요.”라고 하면서 웃는다. 이 가운데 손미나씨가 5년으로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고 기억했다. 초창기 신동우 이현세 화백을 비롯, 여러 성악가와 칼럼니스트 등 명망가들이 단골 출연해 불꽃튀는 재치를 겨루었다고 한다. 연예계 최다 출연자로는 김성원 사미자 송재호 여운계 연규진씨 등. 재치가 넘치는 사람일수록 출연횟수가 자연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방송 펑크를 내본 적이 있느냐고 하자 “86년도에 운전 중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때 정소녀씨가 혼자 ‘TV오락관’을 진행한 적이 딱 한번 있다.”고 고백했다. 당시 사고로 눈주위를 다쳤는데 나중에는 저절로 쌍꺼풀이 생겼다며 웃는다. “요즘도 방청객 중에는 왕년의 팬들이 많이 옵니다.20대 처녀가 40대 아줌마가 됐고요,40대 아줌마였던 방청객이 지금은 60대가 되어 다시 만나곤 합니다. 경기도 부평에 사는 한 할머니는 방송이 끝나면 ‘허 선생, 옛날이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똑같아요.’라고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사인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지요.” 아이디어 개발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전적으로 작가 오경석씨가 18년째 이끌어오고 있다.”면서 자신도 틈틈이 고민하며 머리를 짜낸다고 했다. 개그맨 전유성씨 같은 경우는 외국에 다녀오면 나름대로 애정어린 아이디어를 센터링해준단다.“데뷔시절 개그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전유성씨 집(서울 미아리)에서 편찮으신 아버지 몰래 옆방에서 촛불을 켜고 머리를 자주 맞댔다.”고 토로했다. ‘TV오락관’ 진행을 22년전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첫 방송은 표정이 어설펐고 세트도 촌스러웠다. 방송후 소주를 마시며 반성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허씨의 집은 경기도 분당. 최근에는 남양주 송천리에 집을 하나 따로 장만했다.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공기좋은 곳에서 어머니를 잘 모시려고 이같은 결심을 했다. 때문에 주말에는 남양주로 가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허씨는 이곳에 청소년 수련원을 운영할 계획이다.‘TV가족오락관’식 건전한 아이디어 개발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단다. 이른바 ‘재치수련원’이다. 내년 여름에 개장해 재기발랄한 청소년들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허씨는 MC뿐만 아니라 2년전 가수로도 데뷔했다. 가수 설운도씨가 작사·작곡한 ‘추억의 여자’라는 음반을 내놓아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 등에서도 특유의 목소리를 뽐냈다. 평소에는 ‘울고넘는 박달재’와 현철씨의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즐겨부른다. 이를 두고 현철씨는 “내 노래로 밥묵나.”라고 만날 때마다 놀린단다. 허씨의 술친구는 주로 가수들이다. 특히 조용필 최헌씨와는 절친하다. 이들이 디너쇼 하는 날에는 항상 허씨가 단골로 MC를 맡아 분위기를 돋운다.80년대 후반 혜은이씨가 ‘제3한강교’로 한창 뜨자 지방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자 허씨는 이덕화씨에게 혜은이씨의 지방출연 MC를 권유했다.“아마 이덕화씨가 MC를 시작한 것이 이때가 처음일 것.”이라면서 “그후 ‘토요일밤에’를 맡아 ‘부탁해요.’라는 유행어로 히트를 쳤다.”고 말했다. 허씨는 부산 출신. 허씨가 어릴 적 큰 세숫대야에 물을 채워놓고 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이를 보고 “쟤는 말로 먹고 살겠어.”라고 툭 던졌다. 그러자 법조인 아들을 원했던 부친(당시 법원 공무원)은 “우리 집안에 변호사가 나오겠구나.”라고 무척 좋아했다. 허씨는 학창시절부터 웅변에 소질이 있었다. 담임 선생의 권유도 있었지만 틈만 나면 원고지를 직접 작성해 3㎞정도 떨어진 부산 부둣가로 달려가 목청껏 소리내곤 했다. 영남상고 졸업후 육군에 입대한 허씨는 26사단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어 사단 문선대 경연에서 대본을 직접 쓰고 콩트부문에 당선하면서 군대 3년 동안 문선대에서 마이크로 실력발휘를 했다. 군 제대 직후에는 우연히 서울 종로를 거닐던 중 ‘DJ를 구합니다.’라는 벽보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곳이 ‘쉘브르 음악다방’이었다. 그날 음악을 들으며 행운권 추첨에 당선된다. 무대 위에 오른 그는 이름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자신의 본명인 이상룡 대신 “그냥 뭐”하면서 머뭇거렸다. 그랬더니 사회자가 “허∼참”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중에 ‘허참’이라는 예명을 쓰게 됐다. 또한 이날 음악다방에 있던 이종환(MBC 전 PD)씨가 “여기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의해 선뜻 응했다. 허씨는 음악다방 DJ 시절 지금의 부인을 만난다. 손님으로 찾아왔던 한 여인이 허씨의 구수한 입담에 반했고 허씨는 비오는 날 우산을 빌려주면서 서로 사랑을 속삭였다. 허씨는 “30분짜리 긴 음악을 틀어놓고 옆 다방에서 얘기를 나누곤 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MC 이외의 다른 일을 물었더니 “서울디지털대학 중국어과에 다닌다.”고 했다. 설운도씨 디너쇼 진행을 몇년째 해주고 있다는 그가 얼마 전 함께 중국에 갔을 때 말한마디 못했던 것이 너무 억울해 등록했단다. 간혹 시간이 날 경우 인천에서 개업한 음식점에 들르기도 하고 서울 강남의 밤업소에 가끔 출연해 자신의 노래 등 몇곡을 부른다고 귀띔했다. “가족 프로그램을 천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끝까지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겠습니다.” 허씨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담에 대해 동네 아줌마들한테 항상 인기를 끌었던 어머니를 영락없이 닮았단다. 하지만 ‘쉬지 말고 끝까지 뛰자.’라는 좌우명으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했다. 허씨는 머리맡에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항상 유머책을 놓는 버릇이 있다. 딸이 호주 유학갔을 때 유머책을 번역한 대학노트 10권도 옆에 있다. 요즘에는 다산 정약용의 ‘일기’를 읽으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고 덧붙인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부산 출생 ▲영남상고, 동아대 졸업,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수료. ▲71년 동양방송 ‘7대가수쇼’ MC데뷔 ▲74년 문화방송FM ‘청춘을 즐거워’ MC, 동양방송 ‘가요앙코르’ ‘쇼쇼쇼’ ‘가요청백전’ ‘올스타 청백전’ ‘쇼 일요특급’ MC. ▲75년 문화방송 ‘싱글벙글쇼’‘젊음은 가득히’ ‘푸른신호등’ ‘허참과 이밤을’ MC ▲76년∼84년 교통방송 ‘가요운전석’ KBS 라디오 ‘허참과 즐겁게’ MC ▲84년∼현재 ‘TV가족오락관’ MC ▲98년 한국복장기술경영협회 올해의 베스트드레서 ▲2003년 ‘추억의 여자’로 가수 데뷔
  • 인구 98명에 처녀는 셋뿐

    인구 98명에 처녀는 셋뿐

      한국과 일본을 가름 해놓은 망망한 대해 위 전관수역「라인」에 섬 하나. 분명 한국의 영토이면서도 나라를 모르고 육지를 잊은 섬 둘레 20리 남짓한 한국 안의 이방, 이름하여 국도 - . 여기에도 끈질긴 사람살이가 있다. 육지서 온 귀한 손님 맞아 염소 잡고 고구마떡 빚어 천길 물속에서 바로 치솟은 듯한 절벽과 바위만으로 이룩된 섬. 언제나 높이 5m의 파도가 흰 거품을 물고 검은 절벽을 핥는다. 행정상으로는 통영(統營)군 욕지(欲知)면 연화리 소속이다. 충무항에서 남쪽으로 30여「마일」달리면 나타난다. 98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앙칼진 파도소리와 짙은 안개뿐인 고독한 이 섬에 난생 처음으로 육지의 손길이 닿아 귀한 손님이 찾아 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작은 학교의 하나인 국도국민교의 첫 졸업식이 지난 2월 25일 이곳에서 베풀어 졌을 때였다. 김상조(金相朝) 통영군수와 수행기자 2명이 선물을 안고 찾아 들었다. 섬사람들은 유사이래 처음 맞는 최고「VIP」들을 위해 귀한 염소를 잡고 고구마떡을 빚어 잔치를 차렸다. 바로 이 자리에서 5명의 졸업생 전원이 도회지로 유학을 가게 됐다. 섬나라의 경사였다. 국민교 학생은 모두 15명, 유일한 공무원은 선생님 국도에서 태어나 20리 섬나라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가야만 했던 어린이들이다. 이들이 김통영군수의 특별지원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5년 전 도비 2백만원을 들여 섬 중턱 비윗돌 위에 교실 하나, 변소 하나, 사택 하나를 지어 국도국민교라 간판을 붙인 이 학교엔 총원 15명의 학생에다 선생은 한 명이다. 1·2학년에 7명, 3·4학년에 3명, 5·6학년에 5명이 학생의 전부. 한 교실 내에서 다같이 복식 수업을 했다. 그중에서 5명이 졸업을 했다. 현재 총원은 10명으로 줄었다. 교장이며 선생, 급사까지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하병수(河秉壽, 35)씨가 이 섬의 유일한 공무원이며 또 지도자다. 경남 함양고등학교를 나와 국도에 학교가 선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 교사로 발령을 받아 이곳에 온 하선생은 5년을 하루같이 섬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왔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이곳에 온 하선생의 부인 이순이(李順伊, 31) 여인도 이제 화려한 도회지의 꿈은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이여인은 졸업식날 밀려온 육지손님을 보고 반가와 울었다. 5년 만에 처음 보는 육지사람들이었다. 함양이 고향인 이여인은 함양여고를 졸업, 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하선생과 결혼, 남편의 굳은 의지를 믿고 국도까지 왔다. 5년 동안 섬생활을 하면서도 한 번의 육지 외출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 아무리 육지에 가보고 싶어도 뱃길이 없고 통신망이 없다. 1년 내내 쌀밥구경 못하고 고구마와 깡보리밥을 유일한 주식으로 삼아 견디고 있는 이여인은 남편을 도와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은 이곳에서 길러온 10마리의 닭이란다. 슬하에 아이 하나 없는 이여인이다. 사람 살기는 91년 전부터, 약초 캐러 왔다가 배를 잃어 이곳 이장 김상갑(金上甲, 41)씨가 63년 3월 한 달간의 육지 출장을 해서 관계요로에 진정, 얻어진 것이 국도국민교였다.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91년 전. 당시 개척자 김경팔씨가 고성(固城)에서 9명의 친구들을 이끌고 약초를 캐러 왔다가 풍랑에 배는 파손되고 갈 길이 막혀 정착한 것이 첫 시초. 칡뿌리와 바닷고기를 잡아먹고 살다가 9년만인 1887년 봄 캐먹을 칡뿌리도 동이 나고 풍랑이 심해 고기잡이도 못해 9명 중 6명은 굶어 죽고 3명이 살아남아 지나가는 어선의 도움으로 육지로 옮아갔다가 다시 7세대의 가족을 형성, 원한의 국도를 개척하겠다고 건너왔다. 그것이 지금의 98명 인구로 팽창되었다고 최고령자 이원도(李遠道, 67) 노인의 설명이다. 섬 전체의 총 자산으로는 밭 7백평에 전마선 7척, 그리고 전국에 이름난 약용염소 40마리가 있다. 해초를 뜯어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육지의 상고선(商庫船)에 팔아 1년에 30만원 정도 벌어들여 마을 이장이 3개월 만에 한 번 정도 육지에 나가 필요한 물품을 공동 구입, 생활한다. 음력설 하루만 쌀밥 먹고… 처녀 셋 그나마 15살 안팎 음력설 하루만은 섬사람 전부가 쌀밥을 먹지만 나머지는 전부가 깡보리밥에다 고구마 먹기로 정해놓고 있다. 그래서 부인들은「퍼머」도「나일론」옷감도 모른다. 처녀라고는 15살 안팎의 어린 소녀 3명뿐인데 옛 풍속 그대로 길게 머리를 땋고 있다. 현재까지 이 섬에서 이웃 섬으로 시집간 처녀는 모두 12명. 시집갈 때 염소 한 마리와 고구마떡 해가는 게 상례로 되어 있다. 섬 안에서는 처녀가 귀해 장가 못간 노총각이 많다. 남자 인구 60명에 여자는 38명. 아이들은 신발 없이 자라는 수가 많다. 길도 없다. 바위와 벼랑을 타고 다닌다. 주민 3분의 2가 호적이 없었던 이곳에 이번 주민등록증 발급실시로 난생 처음 신분증도 받아보았다. 군에 입대한 사람은 김인찬(金仁燦, 22)군 한 명뿐이다. 작년 가을 섬청년답게 해군에 입대했다. 이곳 염소가 약용에 좋은 것은 산에서 약초만 뜯어먹고 살기 때문이다. 한 달 중 25일 이상은 파도가 밀어닥쳐 육지에서 배가 온다손 치더라도 섬에 닿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한다. <공하종·조기제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9 제2권 10호 통권 제24호 ]
  • 서울에 첫 ‘학교기업’ 고교생도 월급 받는다

    서울에 첫 ‘학교기업’ 고교생도 월급 받는다

    서울지역 고등학교로는 처음으로 서울영상고와 서서울생활과학고, 성동여실고, 서울공고, 용산공고, 도봉정보산업고 등 ‘학교기업’ 6곳이 설립된다고 서울시교육청이 17일 밝혔다. 학교기업이란 실업고 학생들의 현장실습과 효과적인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교내 기업으로, 지난해 처음 도입됐다.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지원하는 7곳을 비롯, 각 시·도교육청이 지원하는 학교기업 등 전국에 10여곳이 있다. 학교기업은 학교가 사업자가 돼 교과과정과 연계된 사업을 계획하고, 교육당국으로부터 사업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점에서 창업동아리 등을 통한 ‘고교생 창업’과는 다르다. ●디지털미디어산업 등으로 도전장 그동안 대부분의 학교기업이 자동차 정비, 제빵, 귀금속 가공 등 생산업에 치우쳤던 반면, 이번에 서울시 교육청이 선정한 학교들은 다양한 첨단 산업 아이템을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서울영상고는 영상·애니메이션 분야 특성화고라는 점을 최대한 살려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기업을 운영한다. 핵심 사업은 인터넷방송과 3D 애니메이션 제작. 졸업 작품 및 영상제작 강의,3D 애니메이션 강좌 등의 무료 콘텐츠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고교생 전용 영화와 뉴스 제작으로 범위를 넓혀 인터넷방송국을 운영한다. 이와 함께 디지털 애니메이션 학과의 전공과정과 연계해 유아용 성경 만화를 DVD로 제작, 교회 등을 통해 판로를 개척할 계획이다. 또 교내 스튜디오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으로 개방해 단순 사진촬영부터 퇴직 교원 등을 위한 동영상 앨범도 만들어 팔 예정이다. 학교 교가, 교훈, 로고 등을 바탕으로 학교 이미지통합(CI)을 통한 홍보대행사업도 준비 중이다. 서서울조리과학고의 경우 ‘서서울 베이커리’를 브랜드로 50여종의 무방부제 빵과 케이크를 생산, 현재 교내에 조합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제과점을 서울 곳곳에 지점 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다. 고아원·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 등에 저렴한 가격에 주문판매도 예정하고 있다. 이밖에 성동여실고의 웨딩드레스 디자인 사업도 눈길을 끌었고, 컴퓨터응용설계(CAD)를 통한 건축도면제작, 홈페이지제작 등 IT산업과 자동차정비 등 전통적 실업계 교육을 바탕으로 한 사업이 두루 선정됐다. ●5000만∼1억원씩 2년간 지원 학교기업은 지난해 3월 학교기업 설립·운영에 관한 법령이 제정된 뒤 그해 6월부터 설립됐다. 시교육청은 학교기업 지원에 올해 3억 3000만원의 예산을 확보, 학교별로 5000만∼1억원씩 2년간 지원한다. 해당 학교들은 지난 9월 사업자등록까지 모두 마쳤고, 학교기업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하루 6시간 정도 근무하고 매달 4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게 된다. 서울영상고의 경우 3학년 150명 가운데 학기당 12명 정도가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학교기업 선정에 참가한 호서대 벤처대학원 하규수 교수는 “취업마인드와 경영마인드를 겸비한 산업인재 양성에 중요한 첫걸음”이라면서 “다만 학교기업이 수익성과 교육적 효과를 거두려면 지도교사들의 기업마인드 향상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혁신 공기업탐방(27)]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

    [혁신 공기업탐방(27)] 한행수 대한주택공사 사장

    대한주택공사가 변하고 있다. 단순히 서민주택 공급 전문 공기업이 아닌 주거복지 실천 전담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취임 1주년을 앞둔 한행수(60) 주공 사장은 17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주공은 단순히 집 짓는 회사가 아니다.”면서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를 개발하는 전문 기업인 동시에 새로운 주거문화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사장은 “판교 신도시를 파주 신도시와 함께 ‘U(유비쿼터스)-CITY(도시)’ 시범도시로 개발, 쾌적하고 편리한 신도시 모델로 만들겠다.”며 “주거복지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다가구 매입임대, 전세주택 임대사업 등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판교 신도시 미래 모습과 관련해서는 “판교는 전체 주택 2만 9000여가구 가운데 주공이 2만여가구를 공급해 사실상 ‘주공시(市)’나 다름없다.”며 “기존 신도시와 달리 명실상부한 유비쿼터스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비쳤다.U-CITY는 단순히 아파트 내부 홈네트워크 수준을 벗어나 도시 전체를 첨단정보통신기술로 묶는 것으로, 홈네트워크와 도시네트워크가 통합구축된 미래도시라고 할 수 있다. # 편리하고 쾌적한 도시 건설 ▶판교 신도시 개발안이 거의 확정 단계다. 어떤 식으로 개발할 것인지. -개발 구상은 U-CITY다. 택지를 공급하고 도시의 틀을 짜는 데는 토공, 경기도와 함께 지혜를 모으고 있다. 주택 공급부터는 공영개발이 적용돼 사실상 주공이 주도해야 한다. 가장 편리하고 쾌적한 신도시로 조성할 것이다. 세계적인 신도시 개발 모델이 될 것이다. 첨단 인프라를 깔아 신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IT(정보통신)기술과 접목된다. 주거·업무·교통·문화·행정 기능이 네트워크화돼 지금보다 훨씬 진보된 도시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도시 전역에 유·무선 통신망을 깔아 언제, 어디서, 누구나 다양한 IT기능을 이용할 수 있어 도시 경쟁력도 한층 커진다. 앞으로 주공이 건설하는 신도시나 대단지 공영개발에는 U-CITY 개념이 적용될 계획이다. ▶주택건설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더 이상 밋밋한 아파트 단지는 자제해야 한다. 단지 중심의 개발에서 벗어나 미래 도시개발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21세기는 50% 이상이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본다. 결국 도시 전체를 첨단 정보통신기술로 묶어야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재택근무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U-CITY라고 본다. 이미 파주 신도시를 U-CITY 시범도시로 선정, 추진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판교 신도시 개발에서 주공이 차지하는 역할이 커져 파주와 동시에 판교도 U-CITY로 개발할 계획이다. # 주거복지 기관으로 자리매김 ▶‘그룹홈’ 사업을 활발히 펼치겠다고 했는데. 의의와 확대 계획은. -주택건설이라는 종래의 주공 고유 업무에 대한 일대 혁신이다. 주거복지 실천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서민 주택만 많이 공급한다고 주거복지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좀더 소프트한 부분을 주공이 직접 챙겨주는 정책을 펼 생각이다. 그룹홈은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장애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가족적인 보호를 통해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자립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주공이 주관이 돼 사회단체 등과 손잡고 소외계층에 삶의 터전을 제공한 뒤 이들을 돌보는 사업이다. 그룹홈 대상을 정신지체 장애인에서 취약 계층 아동, 노인, 미혼모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올해 다가구 4350가구를 사들여 그룹홈 임대사업으로 내놓고, 오는 2015년까지 5만가구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존 주택을 전세로 계약한 뒤 이를 저소득층에게 다시 공급하는 전세임대도 2015년까지 1만가구로 늘리기로 했다. ▶주공이 벌이는 주거복지 사업이 지자체와 중첩되지 않는지. -주공이 벌이는 주거복지는 기업성만 따진다면 손을 댈 수 없는 사업이다. 돈 남기자고 하는 사업이 아니다. 지자체가 주택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데 비해 주공은 다양한 수단으로 집을 내놓을 수 있다. 여기에 복지 서비스만 더하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주공이 사업을 펼치는 것이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전세지원 사업이 좋은 예다. 지난해 지자체가 수행할 때는 전국에서 고작 9건에 그쳤는데, 올해 주공이 시작하자마자 1100건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 말까지 목표를 1500건으로 다시 수정할 정도다. 부도 임대주택 임차인 지원사업, 소년소녀가장 등에 대한 전세주택 지원사업 등 주거약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주택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올해 시범사업 2곳을 추진하고 있다. # 공급대책 핵심은 공영개발 확대 ▶‘8·31대책’이후 주공의 역할이 커졌는데. -주택공급 측면에서 주공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책임도 느낀다. 공급 대책의 핵심은 공공영개발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라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주공은 공영개발의 성공이 이번 대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상징성이 있다고 보고 사운을 걸었다. 민간업체와 국민들에게 꼭 부탁드릴 것이 있다. 공영개발은 주공 단독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아니다. 민간 기업의 협력이 바탕돼야 성공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 주공의 주택건설 노하우를 접목시켜 사업을 추진이다. 주공아파트 품질이 민간아파트에 비해 뒤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공이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주택만 짓다 보니 마감재를 고급화하는 데 한계가 따랐다. 막연히 주공아파트는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공영개발, 주거복지사업 등으로 조직과 인원 보강이 필요하고 주공 조직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주공 주택건설 물량이 10만가구이다. 웬만한 대기업 10여개 업체의 1년 건설 물량과 맞먹는다. 인원·조직보강 수요가 따르고 있으나 현재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규 업무를 감안, 본부 단위의 임원 1명 정도는 최소한 보강돼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깥에서 걱정하는 조직의 급격한 비대화는 없을 것이다. # 투명경영으로 ‘비리´ 추방 ▶임직원들이 아직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행동으로 사회적인 비난을 받은 적도 많았다. 투명 경영을 위한 혁신 방안은. -부패방지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난해 청렴도 측정에서 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어렵게 입사, 사회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는 공기업 직원으로서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직원들을 다그쳐서 많이 바뀌었다고 평가한다.18개 공기업이 참여하는 ‘공기업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았다. 주공은 비리가 드러나면 ‘징계’가 아니라 바로 ‘도태’시킨다. 직원들도 잘 따라주고 있다. 주공이 국민에게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에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글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직원 청렴도 제고 ‘CZ’운동 주공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크다.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주공의 혁신 방향은 고객만족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청렴도 평가라는 잣대로 보면 주공은 아직도 고객들로부터 비리의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한행수 사장은 ‘비리 발견 즉시 퇴출’이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를 위한 투명경영 실천 프로그램이 바로 ‘CZ’이다. CZ(Corruption Zero·부패 제로)는 직원 모두가 함께 부패를 파멸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패의 뿌리가 깊고 끈질기면 척결(剔抉·뼈를 발라내고 긁어낸다)하는 수밖에 없다. 조직 경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고객만족 경영을 저해하는 관행과 문화는 모조리 날려버리는 운동이다. 그래서 감사실에 CZ팀을 두어 청렴도 제고 및 부패 방지를 전담토록 했다. 이 운동에는 예외가 없다.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도 동참하고 있다. 감사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상임감사에게 감사인의 승진·전보권을 부여했다. 윗물 맑기운동 차원에서 간부 청렴도 평가를 실시한다. 자율적인 반부패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내부경영평가점수 상향 조정, 청렴도 우수 사원·부서 포상 등을 실시 중이다. 부조리 징계 관련 승진 제한, 내부 공익신고 포상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변화·혁신’ 이끄는 한행수 사장 한행수 사장은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처음 공기업 CEO로 왔을 때는 가치관의 혼란도 많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주공 사장 취임 1년만에 그는 주공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파악했다고 한다.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고, 참여정부와 ‘코드’도 잘 맞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사장에게 “주공이 짓는 중형 임대아파트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정도다. 주공에 와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일감 확보에 안주하지 말자며 주공 경영의 방향타를 주거복지로 돌렸다. 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빼고는 모두 다 바꾸자는 ‘삼성식’ 경영을 도입,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1945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부산상고·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그룹에 공채 11기로 입사했다. 삼성전자 관리본부장, 삼성건설 주택사업본부 부사장,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삼성홈 E&C 회장,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 아시아근대5종·바이애슬론연맹 회장을 겸하고 있다.
  • 충무공 종중 안타까운 재산분쟁

    충무공 이순신 장군 종손의 대가 끊기면서 문중이 재산분쟁에 휩싸였다. 12일 충무공을 시조로 모시는 덕수이씨 충무공파종회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의 15대 종손이 2002년 2월 66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남기지 않은 채였다. 문중에서는 적통을 잇기 위해 그해 3월 종손의 7촌 재당질을 양자로 들였다. 하지만 종손의 부인(종부)은 “양자가 내 뜻과는 무관하게 입양됐다.”며 곧바로 입양무효 소송을 냈다. 대법원도 지난해 9월 “종손이 사망한 뒤 입양한 것은 무효”라며 종부의 손을 들어줬다. 문중은 종부가 양자를 파양(罷養)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데다 종손 명의의 땅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자 2002년 10월 종부 등을 상대로 소유권이전 등기말소 청구 소송을 대전지법 천안지원에 제출했다. 종손 명의로 된 땅은 충남 아산 현충사 주변의 논·밭과 임야 등 모두 16필지에 1만 2493평으로 시가 21억원 정도. 문중은 “종손의 아버지(1993년 사망)가 70명의 문종 종원 명의로 돼 있던 토지를 1972년 서류를 조작, 자기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안지원은 “문중재산을 관리·처분에 필요한 문중총회 결의가 없었다.”며 각하했다. 대전지법도 “종손의 아버지한테 등기이전하기 전 땅 소유주인 종원 70명의 실체를 모두 밝혀야 소송자격이 있다.”며 각하했다. 종원 70명은 거의 세상을 떠 실체를 모두 밝히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70명 가운데 한명이라도 실체규명이 가능하면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지난해 11월 원심을 깨고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대전지법은 “토지의 일부는 명의신탁이 인정된다. 종부가 처분한 2000여평을 제외한 4600평을 문중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으나 양측에서 모두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문중 관계자는 “종부가 판 문중 땅까지 모두 찾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종부측은 “법적하자없이 상속을 받은 땅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맞섰다.아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STX그룹 ‘아슬아슬한 사업확장’

    STX그룹 ‘아슬아슬한 사업확장’

    ‘인수합병(M&A)의 귀재인가, 봉이 강선달인가.’ 20억원을 투자해 5년 만에 자산 4조 7000억원짜리 그룹을 일군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이번에는 대한통운의 최대주주(21%)로 부상하며 또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21세기형 자본가 정신의 상징이라는 호평과 무리한 확장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은 거평 나승렬 회장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엇갈린다. ‘샐러리맨 신화’로 유명한 강 회장은 1969년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73년 쌍용양회에 입사,㈜쌍용, 쌍용중공업 등에서 일했다. 대학은 회사를 다니다 뒤늦게(80년)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강 회장은 2000년 11월 당시 쌍용중공업(현 STX㈜)의 최대주주인 한누리컨소시엄이 그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한누리컨소시엄의 지분을 매입함과 동시에 자신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을 행사해 오너로 급부상한 것이다.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는 한누리컨소시엄에서 2002년 3월 포스텍으로 변경된 뒤 2003년 1월 강 회장으로 바뀐다. 정보통신업체인 포스텍은 강 회장이 75.34%의 지분을 갖고 있는 사실상 개인회사다. STX관계자는 “당시 쌍용중공업 주가가 680원대에 불과해 강 회장이 20억원만 들이고도 주요주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2001년 10월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을 1000억원에 인수해 STX조선으로 바꿨다. 2002년 구미 및 반월공단 열병합발전소 2기(현 STX에너지)를 575억원에 인수한 지난해 11월에는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4151억원에 인수했다. 회사측은 “STX조선 상장 대금 등 내부유보금과 회사채 발행 등으로 인수대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STX그룹은 범양상선 지분 67%를 인수하면서 STX㈜가 50%,STX조선과 STX에너지가 17%를 부담했는데 이것이 지주회사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지적돼 지난 8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난 7월에는 STX팬오션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시키며 무려 6억 2100만 싱가포르달러(약 3800억원)를 거머쥐는 데 성공한다. 이번에 대한통운 주식 매입에 사용된 1600여억원도 여기에서 충당했다. 강 회장의 화려한 성공스토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M&A시장에서 굵직한 성공을 많이 거뒀지만 인천정유, 한국종합에너지 인수전에서는 고배를 들었다.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은 최근 STX의 대한통운 인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STX조선-팬오션 컨소시엄은 최근 한국가스공사의 LNG선 사업자 사전심사에서 5개 컨소시엄 가운데 유일하게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룹의 주력인 STX조선의 영업실적도 신통치 않다. 지난해 943억원 영업적자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86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말았다.2001년 인수 당시 4530억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부채는 올 상반기 1조 2586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STX팬오션도 내년부터 해운업 경기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취약한 지배구조도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4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TX는 지주회사인 STX㈜의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앓았었다. 강 회장 등이 꾸준히 지분을 늘려 현재 강 회장 14.5%, 포스텍 22.7% 등 최대주주 지분이 39.8%에 이르지만 두산엔진이 아직 12.74%를 보유중이고 삼영 최평규 회장도 여전히 5.59%를 갖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강 회장의 성공은 놀랄 만한 수준이지만 인수한 회사의 상장 등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몸집만 키운 측면이 강해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면서 “거평 나승렬 회장도 알짜회사인 대한중석을 인수한 여력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최후를 맞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반면 금융업까지 욕심을 낸 거평과 달리 STX는 조선-해운-육상물류 등 연관업종에 주력하고 있어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마니아] “노인들만의 잔치 No” 외치는 Gateball

    [마니아] “노인들만의 잔치 No” 외치는 Gateball

    “당신도 늙는다….” 현재를 이야기할 때 어르신들을 빼놓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과 오늘을 부정하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긴 세월동안 가족과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외롭다. 그래서 자그마한 것에도 감동을 받는다. 평균연령이 한층 높아져 깊어진 노령화 시대를 맞아 이른 나이에 은퇴한 뒤 적당한 놀이만 있어도 다행으로 여긴다. 그래서 ‘늙으면 아이들과 같아진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른, 아이들 모두 모여라. 게이트볼을 노인들의 운동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종목의 특성을 잘 따져보고, 잔잔하게 일고 있는 붐을 살펴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가을 문턱의 햇살이 눈부신 5일 오후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다 서수원IC를 빠져나오면 마주치는 게이트볼 전천후 구장. 오후 2시40분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구운초등학교 건너편 여기산 어귀에 자리잡은 구장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60여명이 저마다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경기대 김의태(21·체육학과 3년)씨는 “배운 지 1년 남짓인데 처음에는 정적인 종목이어서 재미없게 보였다.”면서 “그러나 운동량이 뜻밖에 많고 작전이 중요해 머리를 짜내는 묘미가 쏠쏠한 데 푹 빠졌다.”고 웃었다.8일 전국대학선수권대회에 대비해 호흡을 맞추러 나왔단다. 이곳은 한국 게이트볼의 메카이기도 하다.1998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음놓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전천후 구장이 생기면서 국민생활체육 게이트볼연합회 사무국까지 서울에서 옮겨왔기 때문이다. 건축비 6억여원을 들여 지은 구장은 철제 및 알루미늄, 천막으로 만든 지붕이 돔을 떠올리게 한다.2941㎡(약 900평)에 6개 코트가 설치, 운영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369㎡짜리 건물로 강의실도 갖췄다. 지금 전국에는 수원 말고도 전북 전주시와 전남 담양군, 경남 김해시, 제주도, 광주광역시, 대전시에 전천후 구장이 있으며 인천·천안시에서는 건설 중이다. 연합회는 내년 안으로 16개 시·도에 적어도 하나씩은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때마침 열린 권선구 연합회장기 대회에 출전하던 최완규(71)씨는 “게이트볼을 접한 지 11년째 접어들었는데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날마다 나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즐긴다.”면서 “그다지 큰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공을 딱 맞혔을 때의 쾌감 등은 아는 사람만 안다.”고 귀띔했다. 최씨가 몸담은 ‘칠보 게이트볼클럽’은 이날 ‘세류 클럽’을 19대 8로 누르고 당당히 우승컵을 안았다. 연합회 정종흠(36) 사무국장은 “많은 힘이 들지 않는 종목이어서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어우러져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라고 뽐냈다.“1세트 30분씩,3세트 한 경기를 뛰면 1만보를 걷는 셈이어서 무리가 안 가면서도 운동량이 많고 지루하지 않아 좋다.”고 덧붙였다. 9000여개 클럽을 거느린 연합회의 저변확대엔 회장인 이강두(한나라당·경남 거창) 의원을 필두로 대구시 최갑수(91) 회장 등이 애쓰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은사인 경남 하동군 이길상(74) 회장도 큰 힘이 된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노인들의 힘으로 일으키다. 쉽게 말하자면 ‘땅 위에서 펼치는 당구’라 불러도 좋을까. 공을 작은 문(Gate)에 쳐넣어 승부를 가름하는 게이트볼은 8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왔다. 종주국 역시 일본이다. 게이트볼 탄생과 우리나라로 도입되기까지에는 아이로니컬한 역사가 숨어 있다.1947년 일본에서 스즈키 가즈노부(鈴木和伸)란 사람이 전후(戰後) 깊은 실의에 빠진 자국민들에게 용기를 북돋고 단합을 꾀할 스포츠가 없을까 하고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창안했다. 게이트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데에도 노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얽혔다.80년대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발전해 한국관광을 위해 줄지어 바다를 건너오기 시작한 무렵이다. 이 때 조금씩 일본인들을 통해 알려졌고, 우리나라는 당시만 해도 노인들이 즐길 만한 생활체육에 눈돌릴 여력은 없던 시절이어서 선각자(?)들에게 딱 맞아떨어져 보급되기 시작했다. 연합회 산파역을 맡았던 서성근(78) 기획홍보위원장은 “80년대 노인회 등을 통해 귀동냥으로 게이트볼을 알게 됐다.”면서 “처음엔 노인들 모임을 찾아다니며 맨땅에 나무막대기로 금을 긋거나 줄을 쳐놓고 연습했다.”고 20여년 전을 떠올렸다. 일본어 이론서적을 얻어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게이트볼은 5명이 팀을 이룬다. 가로 15m, 세로 20m 규격의 코트에서 스틱으로 공을 쳐서 3개의 게이트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1점씩 주어지고 게이트를 모두 통과한 뒤 마지막 골폴을 맞추면 2점을 얻는다. 간단한 듯하지만 자신의 공을 스틱으로 때려 유리한 위치에 갖다놓는 반면 상대방에겐 득점기회를 최대한 줄이도록 라인 밖으로 쳐내는 등 방해공작(?)을 하는 데 동료끼리 지혜를 모아야 한다. 양팀 선수들 10명이 칠 공을 각각 한 개씩 배당하는데, 공은 합성수지로 된 빨간색과 하얀색 각 5개다. 야구공보다 약간 작고 정구공에 비해서는 약간 큰 지름 7.5㎝(±0.7㎜)로 무게는 약 230g(±10g)이다. 도입이 늦어진 만큼 저변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일본만 해도 10여년 전부터 가족 스포츠로 자리잡아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도약기에 이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내년 10월22일부터 24일까지 제주도에서는 세계 30개국이 참가하는 제9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생활체육 종목으로서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기초자치단체까지 모임을 거의 갖춰놓은 연합회는 게이트볼의 특장점을 살려 부부·3세대·학생 등으로 분야를 나눠 대회를 갖는 등 사회관계 복원에도 한몫 하도록 힘을 쏟아붓고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는 하나다.’라는 슬로건은 게이트볼이 노인들만의 잔치가 아니며 노인들 또한 나라의 버팀목이라는 작은 교훈을 담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양천구, 연내 6개교 주민에 개방

    양천구, 연내 6개교 주민에 개방

    ‘우리 학교 공원에 놀러와요.’ 아파트와 빌딩 숲의 도시 서울에서는 휴일에도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청계천이나 서울숲 등 이름 난 곳은 ‘풀 반 사람 반’이기 십상이다. 동네 골목길 사이에 놓인 공원은 손바닥만한 넓이에 산책하고 뛰기에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양천구(구청장 추재엽)의 학교들이 ‘녹색 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목1동 서정초교 등 6개 학교가 올해 말까지 산책로, 자연학습장 등으로 변모한다. 작은 공연 무대까지 마련돼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양천 6개교 공원 ‘변신’ 이번 사업의 이름은 ‘테마가 있는 주제별 학교공원화사업’이다. 나무를 심고 휴게 시설을 설치해 운동장 주변을 공원화하는 것이다. 교육환경 개선뿐 아니라 학생들의 방과 후에는 지역주민들에게 개방, 학교가 지역의 녹지 거점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산은 모두 12억여원. 이달부터 시작해 올해 안에 끝내는 게 목표다. 양천구는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48개교의 학교 공원화사업에 26억여원을 투입했다. 서정초교 공원화사업의 주제는 ‘동심의 공원’이다. 어린이뿐 아니라 학부모, 주민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로와 붙은 운동장 외곽에 구절초, 꽃무릇, 패랭이꽃 등 야생초화류를 갖춘 자연학습원이 새로 들어선다. 건천형 수로, 산책로, 휴게 공간 등도 조성될 예정이다. 주민 건강을 위한 지압보도도 빼놓지 않는다. 신월5동 강신초교는 ‘자연을 닮은 아이’라는 테마로 놀이시설을 설치한다. 자연학습원, 녹지대 등 지역 쉼터도 조성할 계획이다. 신정4동 양목초교에도 학생과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만든다. ●야외공연장도 들어서 중·고교는 ‘문화 공원’으로 변모한다. 신정3동 금옥여자고등학교에는 산책로 사이사이에 포토존, 하트 모양의 휴게공간 등 여고생들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두기로 했다.‘감성의 길’이 테마다. 주민들도 마음껏 학창 시절의 추억에 빠질 수 있다. ‘주민과 함께하는 공원’이라는 주제로 변모하는 신정4동 영상고등학교에는 공연 무대도 들어선다. 학교와 주민이 평소에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함께 ‘작은 음악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원 등은 단조로웠던 녹지 대신 다양한 수종의 수목으로 다시 심었다. 금옥여중은 담장을 과감히 개방하고 교내 자투리 땅을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했다. 양천구 관계자는 “앞으로도 매년 관내 희망학교의 신청을 받아 학교공원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학생과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는 학교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백승종 정감록 산책] (39)민족적, 유교적 천문예언과 오윤부

    구한말 대표적인 애국계몽 운동가요, 항일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는 우리역사를 깊이 연구했다.‘조선 상고사’처럼 널리 알려진 연구서가 있는가 하면,‘꿈하늘(夢天)’ 같이 소설 형식을 취한 것도 있다.‘꿈하늘’은 일종의 팬터지 문학으로 항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작가 신채호는 천상에 올라 ‘임’을 좌우에 모신 여러 영웅호걸을 만난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이 있고 철학자 화담 서경덕도 보인다. 도술의 달인 전우치도 함께 자리한다. 예상 밖인 것은 오윤부(伍允孚)라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성력(星曆)의 대가라 했다. 우선 성씨부터 낯선 오윤부. 좀 더 알고 보면 그는 ‘고려사’ 열전에 소개될 정도로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다. 천문예언 전문가라고 했다. 섣부른 짐작과는 달리 고려시대에는 천문예언이 무척 중시됐다. 이름난 유학자 박상충의 전기에도 “성명(星命)에 밝아 사람들의 길흉을 점치면 많이 맞혔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중국에서는 13세기 이후 사주명리학이 예언이나 점의 핵심이었다. 고려는 경우가 달랐다. 풍수지리와 더불어 천문예언이 늘 예언의 중심축이었다. 인간 만사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땅의 기운과 직결된다는 믿음이 고려인들의 정서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문은 조선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정조9년(1785)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그랬다.“이른바 하늘이 낸 사람이라는 것은, 그 성씨가 김가이고, 이름은 자세히 모릅니다만, 금년에 군사를 일으킨다고 들었습니다. 유가는 정미년에 군사를 일으키고, 정가는 무신년에 군사를 일으켜, 세 집안사람들이 장차 백 년 동안 서로 싸웁니다. 그 증거로, 객성(客星)이 남방에서 이미 서울로 들어왔습니다.”(실록, 정조 9년3월1일 경술) 조선은 장차 3국으로 분할돼 오랜 세월 다투게 된다는 예언이다. 객성이 남쪽에서 출현해 서울 쪽으로 들어왔다는 천문현상이 증거로 제시됐다. 나라의 운명은 별이 결정한다는 민중의 믿음이 읽힌다. ●대대로 별점을 본 오윤부 고려 충렬왕 때 일관(日官)으로 활동한 오윤부야말로 별점의 대명사였다. 그의 본관은 황해도 배천(白川), 한 때 부흥(復興)으로 불리기도 한 곳이다. 일제시대의 성씨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엔 배천 오(伍)씨가 없다. 오윤부는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그 조상은 대물림을 해가며 고려의 수도 개성에 살았다. 배천오씨들은 자자손손 별점을 보며 태사국(太史局)을 지켰다.(오윤부의 전기는 ‘고려사’, 권 122를 참조) 고려는 귀족사회였고, 모든 신분이 세습되었다. 심지어 군졸 노릇만 하는 집안, 아전과 서리를 배출하는 집안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일관 오윤부 일가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일반 농민이나 상인보다는 훨씬 지위가 높았다. 오윤부는 용모가 초라했고 말수가 적었다. 여간해서는 좀체 웃지도 않았다. 그는 첫눈에 호감을 살 만큼 붙임성 있고 구변 좋은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문을 익혔다. 장성해서는 일관에 임용되어 여러 관직을 거친 뒤 판관후서사(判觀候署事)라는 고위직에 올랐다. 말년에는 천문도(天文圖)를 그려 왕에게 바쳤다. 후배 일관들이 그 천문도를 모범으로 삼았다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오윤부의 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별점이었다. 타고난 재주도 재주였지만 그는 무척 부지런했다. 밤을 새워가며 하늘을 수놓은 수 백 개의 별들을 샅샅이 살폈다. 날씨가 제아무리 춥거나 덥더라도 그는 늘 성실했다. 오윤부의 먼 후배 격인 조선시대 일관들은 5개 팀으로 나뉘어 하루 24시간 내내 하늘을 관측했다. 그들은 관측 대상을 23종으로 나눠 정상적인 현상과 비정상적인 것으로 구별했다. 해, 달, 흰무리, 지진, 혜성, 새별(新星) 그리고 28수로 요약되는 주요 별자리를 모두 점검했다. 일관들은 특히 새별과 흰무리 등의 모양, 정도, 자리, 바뀌는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 ‘성변측후단자’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서운관지’) 이 보고서에 천체 약도가 첨부돼 날마다 임금님에게 제출됐다. 조선시대 일관들이 남긴 일지는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천문 보고서였다. 그 일부가 아직도 남아 천문 강국의 역사를 입증한다. 고려시대의 일관들은 그와 비슷한 활동을 했고 그것이 ‘고려사’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특히 오윤부는 이상한 천문 현상을 해석하는 데 뛰어났다. 어떤 별이 천준(天樽)을 범하자 “이번에 올 중국사신은 술꾼이다.” 고 예언했다. 천(天)은 중국, 준(樽)은 술통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별이 여림(女林)을 범하자, 중국 사신이 와서 소녀들(童女)을 데려갈 것이라며 걱정했다.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의 해석이 현대인의 눈엔 너무 단순해 보일 수 있다. 하늘이 꼭 중국이어야 될 이유가 없다.‘여림’을 두고 공녀(貢女)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그 때는 원나라의 횡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오윤부는 그런 현실을 감안해 모든 천문현상을 풀이했다. 그의 별점은 잘 들어맞았고 소문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다. ●원형 민족주의자 오윤부 고려 후기에는 원의 수시력과 같은 중국역법이 수입되기도 했다. 오윤부는 그 방면에도 상당한 전문가였다. 그는 달력을 고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의 제일(祭日)을 중국과 비교했다. 고려에서는 봄가을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과 8월의 마지막 무일(遠戊日)에 제사를 지내고 있었으나, 중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첫째 무일(近戊日)을 제삿날로 삼았음이 확인됐다. 오윤부는 조정에 건의해 중국의 예를 따르게 했다. 그러나 그가 항상 중국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의미로 그는 고려인이었다. 충렬왕은 즉위 직후 선왕인 원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셨다. 새 위패를 선대왕들의 신위와 합설하기 위해 원종의 시책(諡冊 시호를 아뢸 때 쓴 글)을 올릴 차례가 되었다. 충렬왕후는 원나라 공주였는데, 왕비로서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마침 오윤부가 이 행사를 주관했다. 그는 난색을 표하며 공주의 참여를 가로막았다. 선대왕들의 신령이 계신 곳에 원나라 공주가 술잔을 올리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나라는 과거 수십 년간 고려를 침략했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원을 미워했다. 오윤부는 이런 반원의식이 강했다. 원나라 공주는 종묘 제사에서 제외됐다. 많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통쾌해 했다. 알려진 대로 원종 이후로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이 더욱 노골화됐다. 고려국왕은 대대로 원나라 황실의 사위가 되었다. 왕은 죽어서도 원나라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시호에 표기해 “충○왕”이 되었다. 고려왕실에 시집온 원나라 공주의 위세는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경우가 있었고, 오윤부는 이 점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천문 현상을 빙자해 공주를 압박했다.“천문을 살펴 보니 괴이한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요즘은 심한 가뭄까지 닥쳤습니다. 청컨대 궁궐을 짓거나 고치는 공사를 중지하고 덕을 닦으십시오. 그래야 재변이 멈춥니다.” 원나라 공주는 오윤부의 제지를 받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원나라 공주에 대한 오윤부의 공격은 계속됐다. 공주는 고려에 시집온 뒤에도 여러 차례 본국을 오갔다. 그 때마다 막대한 비용이 국고에서 지출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판인데 공주는 원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궁궐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언젠가 한 번은 재상들을 불러 모아 놓고 좋은 날을 택해 아예 새 궁궐을 지어 놓으라고 졸랐다. 다들 불평은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는 못했다. 이 때도 오윤부가 발 벗고 나섰다.“금년에 토목공사를 일으키면 임금님께 불리하므로, 신하인 저는 절대 택일을 못하겠습니다.” 원나라 공주는 분노에 치를 떨며 오윤부의 벼슬을 빼앗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매로 때리려 했으나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어느 재상이 애써 말리는 바람에 매 맞는 것만은 간신히 피했다. 그 일로 분이 안 풀린 공주는 오윤부를 왕에게 고자질했다. 왕은 공주의 청을 어기지 못해 오윤부를 매질하게 했다. 그는 매를 맞으며 이렇게 변명하였다.“날을 가리는 것은 흉(凶)을 피하고 길(吉)을 맞으려는 것입니다. 신하를 협박하여 억지로 가리게 한다면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신은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님의 뜻에 아첨할 수가 없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궁궐을 짓는 공사가 겨우 시작됐는데, 화성이 달을 삼키는 변이가 일어났다. 왕은 반승(飯僧 스님들에게 밥을 공양함)을 실시해 이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다. 반승은 사소한 재앙이 예측될 때마다 되풀이된 고식적인 해결책이었다. 오윤부는 동료인 문창유와 함께 왕에게 간언을 바쳤다. 화성이 달을 삼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스님들에게 밥을 주고 부처님을 공양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런 값싼 보시를 그만 둬야 한다. 진정한 길은 불필요한 토목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왕은 반대여론을 의식해 궁궐 짓는 일을 그만뒀다. ‘고려사’에 실린 전기 기록을 검토해 보면 오윤부의 간언은 전문분야인 천문에 구애되지 않았다. 시사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한 번은 오윤부가 전법총랑(典法摠郞 법률의 집행을 담당) 박인주에게 전법사의 사무가 자꾸 지연되는 까닭을 물었다. 원나라 공주의 명령과 임금님의 명령이 한없이 쏟아져,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왕과 공주는 각기 소송 사건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해 일처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윤부는 이런 일이 자기 소관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따졌다. 이런 식으로 일관 오윤부는 가끔씩 왕과 의견충돌을 보였다. 그러나 원나라 공주에 대해 대들거나 비판하는 경우는 더욱 많았다. 그는 공주 보기를 마치 원나라 침략군을 대하듯 했던 것 같다. 오윤부는 일종의 원형(proto) 민족주의자였다. ●백성을 대변한 오윤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천문에는 변이가 많다. 그럴 때마다 오윤부는 이를 정밀하게 살펴 고려왕실의 미래 운명과 관련지었다. 그는 특히 고려백성의 편에서 국왕 내외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천문현상을 활용했다는 혐의가 있다. 천문에 이상이 있을 경우 과거의 일관들은 기도를 권하거나 굿을 하라는 권고를 주로 했다. 다분히 미신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오윤부는 달랐다. 그가 제시한 해결방법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정치적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백성의 원망이 없다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 두 곳에 파견한 왕지별감(王旨別監 왕의 특사)을 소환하고, 여러 곳에 설치된 공주식읍(公主食邑 원나라 공주에게 준 토지와 백성)을 폐지하면 되겠습니다.” 이런 권고를 듣자 왕은 한동안 망설였지만 마침내는 공주에게 줬던 식읍을 폐지하였다. 거기서 거둔 세금을 나라의 창고에 배속시켜 백관의 봉록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사실 원나라 공주는 왕을 졸라 각처에 농장을 마련해 호사가 극에 이르렀다.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수만 명의 백성들은 한숨을 짓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오윤부는 백성들의 의사를 대변해 식읍의 혁파를 주장했다. 하늘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변동도 오윤부는 마찬가지로 이용했다. 언젠가 한번은 궁궐 연못에 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산소부족이었든지 아니면 약물에 의한 중독이었을 것이다. 허옇게 배를 드러낸 채 물위로 떠오른 고기떼를 두고 오윤부는 충렬왕을 몰아쳤다.“갑술년(충렬왕 즉위년 1274)에 대궐 동편 못에서 이런 괴변이 일어났고 선왕이신 원종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덕을 닦으시고 스스로를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궁궐의 물고기가 죽든 살든 그것이 왕의 목숨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관 오윤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칫하면 국왕이나 원나라 공주의 진노를 사게 될 거였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예언가 오윤부의 성공비결은 고려사회에 만연했던 반원적인 정서를 잘 이용했다는 점이다. 조정 대신들 가운데도 원나라의 정치노선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어찌 보면 충렬왕 역시 친원과 반원의 두 노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오윤부는 한결 같이 자주노선을 지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묘청과 백수한의 후예였다. 그러나 오윤부는 묘청 등을 뛰어넘었다. 그는 일관으로서 하늘의 뜻을 왕에게 정확히 인식시켜야 될 임무가 있다고 확신했다. 만일에 왕이 자기의 ‘충언’을 듣지 않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끝까지 졸라댈 정도였다. 오윤부의 해석은 유교의 재이론(災異論)에 가까웠다. 묘청 등이 불교적이고 무속적인 세계에 기울어 있었다면, 오윤부는 다가올 성리학 시대의 천문해석에 근접해 있었다는 말이다. 유교적인 천문예언가 오윤부의 고집불통에 충렬왕은 때로 두통을 일으켰다. ●충렬왕이 졌다! 왕은 오윤부를 골탕 먹일 생각까지도 했다. 원 나라 세조가 요동을 정벌하게 되었을 때다. 왕은 상국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군사를 거느리고 평양까지 나가게 됐다. 우선 유청신을 황제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그 때 오윤부가 별점을 쳤다.“아무 날 유청신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임금님께서는 요동까지 가실 필요 없이 말머리를 서울로 돌리게 되십니다.” 그러나 그 날이 됐는데도 유청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왕은 오윤부를 체포했다. 점괘가 틀렸으니 벌을 받으라 했다. 하지만 오윤부는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다며, 좀더 기다리자고 했다. 과연 얼마 안 있어 먼데서 먼지를 휘날리면서 달려오는 말 한 필이 있었다. 유청신이 타고 있었다. 예언이며 점이 설마 그렇게까지 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문현상은 그저 자연계의 변화를 알릴 뿐이다. 그것이 인간 세상에 복을 불러들일 리 만무하고 화를 초래할 수도 없다. 오윤부의 사고방식은 이런 현대적 인식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시대적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윤부는 늘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문을 살폈고, 그 때문에 민중은 그를 사랑했다. 신채호가 그를 가장 뛰어난 천문예언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다시 조선 정조 때 일어난 ‘정감록’ 사건으로 돌아간다. 이 사건의 공범인 평민 지식인 주형채도 오윤부처럼 별점을 보았다. 주형채는 말했다.“작년 섣달 초7일, 초8일, 초9일에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습니다.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장군성과 태백성이 서로 싸운 지 3일 만에 서로 1도(度) 거리로 떨어졌으며,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떠밀어 여러 번 물러가고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정조,9년3월22일 신미) 주형채는 국가의 녹을 먹는 일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윤부처럼 밤하늘의 별자리를 많이 알고 있었고 밤새워 별을 보았다. 별자리의 이동을 1도 2도로 따질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 고려시대에는 오윤부 같은 특수 계층만 그런 지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평민지식인들도 서적을 통해 공유하게 됐고, 그래서 주형채와 같은 평민도 직접 별을 바라보며 민중의 희망을 찾아 나섰다. 자유로운 지식은 곧 우리들의 희망이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실업高 첫 유학반 ‘출사표’

    실업高 첫 유학반 ‘출사표’

    수재,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엄청난 사교육비, 미국 아이비리그를 지망하는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유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던진 학생들이 있다. 실업계로는 처음 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선린인터넷고 유학준비반 학생이 그들이다. ●민사고·특목고 빼곤 처음 운영 민족사관고와 외국어고를 제외하고는 첫 유학반인데다, 실업고의 특성을 살린 기술자격증으로 입학전형의 가산점을 노리는 색다른 유학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SAT를 보지 않는다. 대신 국제공인 기술자격증을 땄다. 시스코, 선 등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의 특정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자격증이다.IT분야 특성화고인 만큼 자격증은 손쉽게 해결했다. 한국에 다양한 수시모집 전형이 있듯이, 미국의 대학들도 이런 자격증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가산점을 준다는 것을 겨냥했다. ●컴퓨터 범죄수사등 전공 다양 목표는 학비가 저렴하면서도 탄탄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는 미국 50∼150위권의 주립대다. 전공은 컴퓨터범죄수사, 컴퓨터 보안, 네트워크 관리 등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분야다. 현재 3학년 16명을 비롯해 30여명의 학생들이 ‘세계적 기술 인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들이 처음 유학에 눈을 돌린 것은 2003년 초.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컴퓨터 보안 등의 분야를 국내에서는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없었다. 준비가 시작된 것은 하인철(41) 교사를 산학겸임교사로 초빙하면서부터다. 실업계고 관련교사들을 교육하는 강사로 참여했다가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던 하 교사는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보고는 마음을 고쳤다. 상고를 나와 미국에서 13년간 고학 끝에 석사학위를 받고 IBM 협력업체 연구소장으로 있던 그는 “컴퓨터에 빼어난 열의와 특기를 가진 아이들의 재능을 살려주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당 6시간씩 심화과정 수업을 받으며, 자격증 준비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내신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토플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녔다. 중학교때 중위권을 맴돈 지극히 ‘평범한’ 학생들이었지만, 목표가 생기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컴퓨터를 좋아하고, 인문계고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가기 힘들다고 판단해 실업계고를 선택했다.”는 3학년 서동철군은 “강요하는 사람이 없지만 하루 4시간씩 자며 어느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 50~150위권 주립대가 목표 어려운 가정형편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2학년 김진수군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지만 자격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학할 각오를 하고 있다.”면서 “네트워크 관리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하 교사는 “유학은 돈이 많이 들고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면서 “실업계에서도 얼마든지 특기를 살려 세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일리노이, 캔자스, 오리건주립대 등 10여곳에 원서를 낸 학생들 가운데 12명은 합격이 확실시되고 있다. 소신을 갖고 ‘실속’을 택한 이들의 꿈이 영글고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日오사카고법 “총리 야스쿠니 참배 위헌”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에 반해 위헌이라는 일본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일본 오사카 고등법원은 30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공적(公的) 행위’이며 헌법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옛 일본군의 군인·군속으로서 전사한 타이완인 유족이나 일본인 종교관계자 등 188명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위헌이라며 총리와 국가, 야스쿠니신사에 1인당 1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오사카 고법은 이날 “참배는 헌법이 금지하는 종교적 활동이라고 인정된다.”며 고법 차원에서 처음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배상 청구는 인정하지 않고 원고측의 항소를 기각했지만, 원고측은 “실질적인 승소”라며 상고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배상 청구가 기각됐기 때문에 국가가 판결에 불복, 상고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돼 판결은 확정될 전망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소송은 전국 6개 지방법원에서 7건이 제기돼 위헌 판단은 지난해 4월의 후쿠오카 지방법원 판결(확정) 이래 2번째다. 고법 판결은 지난 7월의 오사카 고법(다른 원고단)과 지난 29일의 도쿄 고법 등 두 차례 있었지만, 모두 위헌 여부 판단은 하지 않은 채 원고측이 패소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직무로 참배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위헌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는 “과거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도 있었다.”면서 “이번도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참배할 것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도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기존 답변을 되풀이했다. 총리측은 “참배는 개인의 사상, 신조에 근거한 것”이라며 “공용차나 비서관의 동행은 공사를 불문하고 필요하다.”고 주장했다.taein@seoul.co.kr
  • 조승수 의원직 상실

    대법원 1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29일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조승수(울산 북구)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선거운동은 시기·장소·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해 특정후보자의 당선·낙선을 도모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라면서 “피고인이 선거운동기간 이전에 당원이 아닌 선거구민들에게 지역 현안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것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조씨는 총선을 앞둔 지난해 4월1일 음식물자원화시설 건립에 반대하는 울산 중산동 주민집회에 참석해 “이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낭독하고 서명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효력을 상실한다는 선거법 관련 규정에 따라 의원직을 잃었다. 이에 따라 다음달 26일 재보궐 선거가 열리는 지역은 경기 부천, 대구 동을, 경기 광주 등 3 곳에서 한 곳 더 늘어났다. 재판부는 항소심까지 당선무효형 내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던 강성종 열린우리당 의원과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의 상고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내 이들은 당분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허위 경력을 유포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에게는 원심대로 무죄를 확정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40대 두 여류의 흡인력

    40대 두 여류의 흡인력

    기생과 여자 목수.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보기 드문 캐릭터다.40대 두 여성 작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놓은 신작 소설이 맨 처음 눈길을 잡아끄는 이유다. 이 시대 마지막 기생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현수(46)의 ‘신기생뎐’(문학동네)과 양귀비 꽃살문 전문가인 한 여성 목공예가의 비극적 삶을 그린 송은일(41)의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랜덤하우스중앙). 그러나 희귀한 소재가 불러일으키는 은밀한 호기심은 아주 잠깐이다. 책을 열면 탄탄한 구조, 찰진 문장 등 거칠 것 없이 펼쳐지는 작가의 깊은 내공에 꼼짝없이 압도당한다. ●이현수 ‘신기생뎐’ 목포의 유명한 기방 부용각을 그대로 이은 군산의 부용각은 부엌어멈 타박네와 소리기생 오마담이 평생을 일궈온 전통 기방이다. 소멸돼가는 기방의 풍류를 고집스레 지켜가는 이곳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깃들어 산다. 호시탐탐 재산을 가로챌 궁리를 하는 오마담의 기둥서방 김사장, 오래 전 오마담의 소리에 끌려 부용각에 발을 들여놓은 뒤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집사 박기사, 오마담의 뒤를 이을 부용각의 마지막 기생 미스 민…. 연작 형식의 ‘신기생뎐’은 이들을 고루 주인공으로 불러내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을 풀어낸다. “제 고향(충북 영동)에선 가을마다 난계 박연을 기리는 국악축제가 열려요. 그 덕에 어릴 적부터 국악 장단이 자연스레 몸에 뱄는데 작가가 된 이후 그때 기억과 더불어 기생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는 옛 기방이 하나의 문화집단으로 기능했고, 현재의 예술이 기방문화에 빚지고 있음에도 지금껏 어느 작가도 기생에 대해 전면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특히 황진이 같은 역사에 기록된 명기가 아니라 이름없이 사그라진 보통 기생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책에 묘사된 기방의 법도와 기생들의 정서는 마치 작가가 직접 보고, 겪은 일인 듯 생생하다. 이 때문에 계간 문예지에 2년 연재하는 동안 ‘의혹’(?)의 눈길도 많이 받았다.“기방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고, 기생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는 작가는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와 풍속도 등을 바탕으로 짐작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내용에 걸맞게 똑떨어지는 맛깔진 문체는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이다. 기생의 노랫가락처럼 흥을 타는 문장은 인간사 희로애락을 정성껏 어루만진다.“소재가 소재인 만큼 격조가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문체에 목숨걸었다.”는 작가의 결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997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단편 ‘마른 날들 사이에’로 당선된 작가는 소설집 ‘토란’과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를 냈고,2003년 무영문학상을 수상했다.9000원. ●송은일 ‘한 꽃살문에 관한 전설’ 양귀비 꽃살문을 새기는 목공예가 이율희와 그녀의 어머니, 외할머니 등 모녀 삼대에 걸친 비극적 사랑의 악연을 전설처럼 풀어놓은 소설이다.‘양귀비 꽃살문’은 ‘목수’로 불리길 원하는 목공예가 이율희가 8년 전 대한민국 공예대전에 출품한 병풍의 제목이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사악함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금기의 꽃 양귀비를 닮은 이율희와 그녀 집안의 남다른 내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소설속 비극의 잉태지는 씨족 마을인 달아실(월곡)이다. 율희는 근동의 병원집 아들 유태준과 연인 관계였으나 결혼을 약속한 그로부터 어느날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는다. 상고를 나와 은행을 다니던 율희는 이후 두명의 스승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워 목공예가로 성공했다.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 태준은 뒤늦게 율희를 찾아오고, 이를 계기로 이씨 집안 여자들과 유씨 집안 남자들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역사가 실타래처럼 하나씩 풀려나온다. 소설은 양귀비 꽃살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율희의 예술혼과 대를 이어 유사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씨 집안 여인들의 ‘불온한’ 삶을 촘촘히 교직해낸다. 이런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유씨 집안 남자들의 폭력이 숨어 있다. 사랑과 운명이라는 이름아래 펼쳐지는 치명적인 폭력. 태준의 아이를 세번이나 지워야했던 율희가 태준의 사촌동생인 사준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쌍둥이를 잉태하는 대목은 그래서 섬뜩하면서도 남성들의 폭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다. “어릴 적 시골에서 달구지에 상을 싣고 다니며 팔던 여자 목수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는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 1년 정도 소목일을 직접 배우기도 했다. 그는 “유씨 남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아스피린 두알’로 당선된 작가는 장편 ‘불꽃섬’‘소울메이트’‘도둑의 누이’ 등을 냈다.98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29일 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4명에 대한 대법원 선고결과와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으로 원내 의석 분포의 변화가 초래됐다. 이는 10·26 재보선 결과와 맞물려 향후 정치권 세력판도에 적지 않은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대법원 판결의 충격파는 민주노동당을 강타했다. 이번에 상고심에 올라간 4곳의 지역구의원 중 사전선거운동 위반혐의로 기소됐던 민노당 조승수 의원만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선고로 정당별 의석수는 열린우리당 144석, 한나라당 123석, 민주당 11석, 민주노동당 9석, 자민련 3석, 무소속 5석이 됐다. 당장 자체 법안발의 요건인 10석에서 한 석이 모자라는 9석이 되면서 독자적으로 당론을 발의할 수 없게 되면서 민노당은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까지 겹쳐 원내 제3당 자리마저 내주게 돼 창당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 것이다. 김혜경 대표는 “금품향응을 제공한 의원에게는 파기환송하면서 정책소신을 편 의원에게는 의원직 박탈형을 내린 대법원 판결은 스스로 보수로 회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면서 “상식 이하의 판결을 결코 수용할 수 없으며 판결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다음달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산자위 국감 도중 공판결과를 접한 조승수 의원은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담담히 수용하겠다.”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신중식 의원의 입당으로 전체 의석이 11석으로 늘어난 민주당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유종필 대변인은 신 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오동잎이 떨어진 것에 비유하며 “이파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열린우리당내 호남지역 의원들의 동요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어 “우리가 나서서 여당 허물기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 지각변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강성종 의원과 신상진 의원에 대해 법원이 파기환송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준석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생각나눔] 한지역구에 구의원 2명… 누가 진짜?

    한 지역구에 구의원 2명이 탄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28일 인천시 부평구에 따르면 전 구의원 이복관(52·부평구 산곡2동)씨는 2002년 지방선거에서 구의원에 당선됐으나 선거가 끝난 뒤 구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선거비용 영수증이 허위라는 이유로 2003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1심에서 벌금 200만원,2심에서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도 벌금 100만원(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당선무효)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치러진 지난해 6월 재선거에서 이덕주(43)씨가 구의원에 당선돼 현재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 전의원은 자신의 재판에서 증인들이 위증한 사실이 드러나자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지난 21일 이 전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이씨가 제출한 영수증 가운데 일부는 진짜로 판명되는 등 당초 유죄로 삼은 근거 중 일부가 사실과 달라 형을 감경한다.”며 당선무효에 해당되지 않는 70만원을 선고했다. 당초 이 전의원에 대해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던 검찰도 28일 대법원 상고를 포기, 결국 이 전의원은 의원직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같은 사태에 크게 당황한 구선관위와 구의회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중앙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자치구 의회의 의원 정수는 행정동마다 1인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유사한 선례나 관련 법령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 조만간 중앙선관위원 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복관 전 의원은 “잘못된 법집행으로 명예를 실추당해 억울한 시간을 보냈다.”며 “구의원에 복귀하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이덕주 의원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선거에서 당선된 만큼 구의원직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선관위가 어떤 ‘지혜’로 이 문제를 풀어낼지 주목된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친환경 농법이 벼멸구 특효약?

    친환경 농법이 벼멸구 특효약?

    ‘중국발 벼멸구 피해 친환경 농업으로 막아요.’ 7년 만에 찾아온 벼멸구 피해 방지에 친환경 농업이 큰 효과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전남도 등에 따르면 벼멸구 해충이 날아오는 중국과 가까운 전남 해남·진도·영암·강진·장흥·보성군 등 서남해안에서는 지난 1998년 이후 종적을 감췄던 벼멸구가 이 달 들어 극성을 부리면서 농지마다 군데군데 벼가 말라죽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남도와 이들 시군에서는 대략 전체 논의 2% 선에서 벼멸구 피해가 날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하지만 전남도내 최대 친환경 농업지구인 강진군 옴천면(252㏊)의 경우 벼멸구 피해 면적이 다른 지역에 비해 30%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로 친환경 농법 4년째인 오병집(59·옴천면 정정리 대곡마을) 친환경추진위원장은 “목초액과 현미식초를 섞어 3번, 천연녹즙 1번을 뿌렸는데 일반 논에 비하면 벼별구 피해가 사실상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소질 비료를 안 쓰고 토양개량제인 규산질 비료를 씀으로써 벼잎이 갈대잎처럼 뻣뻣해져 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 또 무안군 몽탄면 23개 마을 408농가가 참여하는 친환경농업지구(220㏊)에서도 벼멸구가 맥을 못 추고 있다. 장기광(55·몽탄면 내삼리) 친환경시범단지협의회 대표는 “벼멸구가 날아왔지만 더 이상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면서 “한약재 추출물을 뿌린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친환경 농사는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해충 방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데다가 밀식재배를 하지 않아 공기유통이 좋아지면서 벼멸구 피해가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벼멸구는 지난 6월27일 장마전선을 타고 중국에서 날아온 것으로 확인됐고 벼가 익는 시기인 9월 이후에 이상고온이 계속되면서 산란율이 급증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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