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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액임금」 첫해/노사협상 격랑 예고

    ◎정부­노동계 인상폭에 큰차/선거겹쳐 정면충돌 가능성/“위기경제” 공감 확산… 일부선 낙관론도 정부가 동결 또는 5%이내를 올 임금협상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한 상태에서 한국로총이 정부방침의 2배이상에 달하는 15%를 임금인상목표로 제시,올 임금협상에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특히 노동계는 국제노동기구(ILO)가입을 계기로 올해를 지난 89년이후 「침체」에 빠진 노동운동을 활성화 시키는 해로 잡고 있어 국회의원총선·대통령선거정국과 맞물려 올 노사관계전망의 어두운 면으로 작용하고 있다. 총액임금제 실시 첫해인 올해 노동계의 임금인상 목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물론 경영자단체의 그것과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한국로총이 지난13일 발표한 통상임금기준 15%(정액 7만4천1백80원)는 경총등에서 잡고 있는 5∼7%보다 두배이상 높은 수준이다.노총은 그러나 『최근의 경제난을 감안한 최소한의 생존비용』이라면서 기필코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여기에 재야노동계를 대표하는 「전로협」은 기본급대비 25·4%(정액 9만2천3백35원)를 인상목표로 설정해 정부와 경영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총액임금기준 5%」를 통상임금으로 환산해 8∼9%로 잡더라도 노동계의 요구와는 2∼3배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 이같은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정부와 경제계는 『물가불안,수출경쟁력의 약화등 오늘날의 경제난국에서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고 『생산성은 뒷전에 두고 임금인상만을 따지는 이같은 관행은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는 올해 협상과정에서 「총액임금」의 개념을 놓고도 단위조합과 사용자측간에 시비가 잦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수많은 업종,다양한 임금체계에서 성과배분적 상여금의 설정문제,다시 말해 어디까지를 총액임금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노사간에 아무런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태다. 노사간에 예상되는 대립국면은 임금외적인 면에서도 만만치않게 제기되고 있다.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정부가 올해를 「잘못된 노사관행을 바로 잡는해」로 잡고 있는데 반해 노동계는 「노동운동활성화의 해」로 잡아 상호간 전략개념에서부터 정면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총은 올해부터 실시되는 시간제근로문제·복수노조인정문제등 노동계의 현안을 선거정국을 활용,한꺼번에 제기할 공산이 크다. 「전노협」등 재야·노동단체 역시 올해를 노동운동의 일대 전환기로 설정,자체조직의 재정비등 새 결집을 통해 노동계에서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정부는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는 공권력으로 정면대응한다는 배수진으로 맞서고 있어 어느해보다 정부와 노동계의 물리적 충돌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추가상여금 지급을 둘러싼 「현대사태」도 그 이면에는 이같은 「힘겨루기」의 성격이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의 위기상황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크게 확산되고 있고 노동계 역시 이같은 공감대의 범주밖에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올 노사관계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전망도 설득력을 높여가고 있다.
  • 열차­트럭 충돌/철도 3시간 불통/부산… 동해 남부선

    【부산=장일찬기자】 4일 하오8시쯤 부산시 해운대구 제송동 삼익상가앞 철도건널목에서 수출용 고무타이어를 싣고 가던 삼희통운소속 전남9아6246호 15t 컨테이너차량(운전사 배학렬·23)이 건널목을 통과하다 컨테이너의 트레일러섀시 다리가 철도레일에 끼어 마침 이곳을 통과하던 강릉발 부산행 211호 무궁화열차(기관사 유수준·38)와 충돌했다. 사고가 나자 철도청은 부산진구 가야역에 있던 철도기중기를 긴급 동원,이날 하오10시50분쯤 전복된 컨테이너를 제거했으나 동해남부선이 3시간여동안 운행이 중단됐다.
  • 유고 첫 비공산계 대통령 메시치

    ◎크로아티아공 독립 주도한 반골/변호사 출신으로 협상능력 탁월 유고연방간부회의가 1일 크로아티아공 출신의 스티페 메시치(57)간부회의부의장을 간부회의의장(대통령)으로 선출함에 따라 유고에는 지난 45년 티토를 수반으로 하는 유고슬라비아연방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래 최초로 비공산당 출신의 국가원수가 등장하게 됐다. 연방간부회의는 이날 최근의 유고 무력충돌사태 해결을 위해 EC(유럽공동체)가 제안한 타협안 가운데 하나인 메시치의 대통령선출안을 수용,유고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일보 접근하는 한편 6주동안 계속된 헌정중단사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메시치는 지난 5월15일 6개공,2개 자치주 대표로 구성된 연방간부회의에서 윤번제 원칙에 따라 1년임기의 대통령으로 선출될 예정이었으나 그의 「연방」분리독립태도를 거부하는 세르비아공 및 2개 자치주의 반대와 몬테네그로공의 기권으로 대통령선출이 저지됐었다. 메시치는 지난 71년 크로아티아민족주의운동에 가담,「적대적인 선동」혐의를 받아 2년간 복역한 반체제 정치범 출신으로 변호사이기도하다.그는 크로아티아민주연합(CDU)이 지난해 5월 실시된 크로아티아공총선에서 공산당에 압승을 거둔 뒤 총리로 기용됐으며 그해 10월부터는 연방간부회의부의장으로 일해왔다. 메시치는 연방간부회의 부의장시절 독립을 추구하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공의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려고 하는 세르비아공대표및 군수뇌들의 시도를 단호히 거부해 왔다.세르비아공이 주장하는 강력한 「연방」체제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주권국가 「연합」을 지지하는 메시치가 연방군의 통수권을 갖고 있는 간부회의를 이끄는 실세로 등장은 했지만 현재 유고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단발및 턱수염이 인상적인 메시치는 부드러운 성격의 「협상가」로 통하고 있으며,일요일에는 투즈만 크로아티아공 대통령과 테니스를 즐기기도 한다.
  • 또 화염병·최루탄 공방… 멍든 휴일/“평화시위” 기대에 찬물

    ◎종로 등 도심서 격렬시위/국민대회 무산… 부산·광주서도 충돌/부상자 속출… 5백명 명동서 철야농성 6월 첫 일요일인 2일 재야의 「범국민대책회의」 등이 서울·부산·광주 등지에서 가지려던 이른바 「제4차 국민대회」는 경찰의 도심진출 저지로 거의 산발적인 시위에 그쳤다. 이날 「대책회의」측은 서울의 시청 앞과 부산의 서면로터리,광주의 금남로 등 도심으로 진출해 현정권의 퇴진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가지려 했다. 경찰은 그러나 도심지에서의 대규모 집회가 교통두절은 물론 상가의 철시 등 시민생활에 큰 불편을 미친다는 이유로 시위대의 접근을 이웃지역에서 봉쇄했다. 이 때문에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돌과 화염병,최루탄 등이 오가는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져 모처럼의 휴일을 얼룩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 시위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마저 허물어지게 하는 인상이 짙었다. 이날 시위는 특히 전날 「전대협」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부산에서 군중이 3만여 명에 이르고 쇠파이프까지 휘두르는 등 가장 격렬한 양상을 보였다. 서울에서는 「대책회의」 관계자들과 학생,근로자 등 6천여 명이 시청 앞 집회가 봉쇄되자 하오 2시10분쯤부터 종로2가 로터리 일대 차도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 하오 3시10분쯤 약식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하오 4시30분쯤부터 시청 앞으로 가려고 경찰과 20여 분 동안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1천∼2천여 명은 청계천2∼3가,퇴계로2가,신세계백화점 앞 등으로 몰려다니며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 하오 9시쯤 명동성당으로 들어갔다. 이들 가운데 5백여 명은 명동성당과 백병원 등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차도 바닥이나 인도에 있는 공중전화부스,가판대 등에 스프레이·페인트로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의 글을 썼으며 이날 시위에는 「사노맹」 명의의 대형 플래카드와 대자보 등도 나돌았다. 이들이 종로2가에서부터 3가까지의 왕복8차선과 신세계백화점 앞 도로 등을 완전점거하는 동안 이 일대의 차량통행이 완전히 차단됐으며 대부분의상가들도 하오부터 철시했다. ◎고교생도 가담 시위군중 가운데는 고등학생 1백50여 명이 『현 교육제도 타파하고 참교육을 쟁취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시위과정에서 서울시경 3기동대 7중대 김정기 경감이 화염병에 맞아 얼굴에 화상을 입는 등 경찰 22명과 학생 등 수 십명이 부상했다.
  • 한밤까지 도심서 격렬시위/강군장례·국민대회등 전국서 20여만 참여

    ◎「노제공방」 5시간… 곳곳서 충돌/3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파출소등 잇단 피습… 학생·경찰 부상 속출 5월 셋째 주말은 온통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다.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자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군중과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지역과 광주 금남로 등 도심지 상가는 거의 철시를 했으며 곳곳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강군 장례식◁ 「대책회의」측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에서 강군의 가족을 비롯,백기완씨·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와 이우재 신민당 최고위원 등 1백여 명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를 가졌다.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5백여 명의 경호를 받으며 상오 11시 영안실을 떠나 낮 12시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뒤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화여대 앞과 아현고가 차도를 거쳐 서울역으로 가려다 경찰이저지하자 하오 5시까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대책회의」측은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이날 하오 6시30분쯤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2시간 동안 「노제」를 지냈다.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용마루∼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국립묘지∼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강군의 모교인 휘문고교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10시10분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운구행렬은 3백17㎞의 호남고속도로를 시속 80여 ㎞로 달려 19일 상오 3시쯤 광주시 북구 동운동 서광주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장의차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이어 이날 전남도청 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가지로 진출하려다가 경찰 20여 개 중대 3천여 명이 저지하자 전날 밤 금남로에서 「국민대회」를 마친 학생 1천여 명과 합세,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운구행렬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남도청 앞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새벽 동광주인터체인지∼광주교도소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도착,강군의 시신을 안장했다. ▷가두시위◁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만여 명이 회현동 네거리에서 퇴계로2가 및 신세계백화점·남산3호터널 앞 등의 차도와 아현고가도로 등지를 점거하고 경찰과 맞서 화염병 수천개와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시40분쯤 시위학생 20여 명은 신촌로터리 부근인 마포구 노고산동 치안본부 분실에 몰려가 화염병 20여 개를 던져 수위실을 전소시키고 마당에 있던 승용차 2대를 불태웠다. 하오 2시40분쯤부터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을지로 2·3가 6차선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일 것을 비롯,종로 2·3·4가,퇴계로 2가,을지로 6가 등지로 5백∼5천여 명씩 옮겨다니며 경찰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하오 4시10분쯤 시위대중 1천여 명은 퇴계로 2가 파출소 앞에 세워둔 경찰보급용 트럭을 탈취해 최루탄 4상자 등을 빼앗은 뒤 1시간쯤 끌고다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불태웠다. 이들은 또 하오 8시5분쯤 퇴계로2가 파출소로 몰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현관셔터문을 부순 뒤 화염병을 던져 내부를 불태웠으며 안에 있던직원 6명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촌로터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3만여 명은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에서 운구행렬이 광주를 향해 떠난 뒤부터 장소를 옮겨 퇴계로의 시위대와 함께 합세,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5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으로 집결해 규탄집회를 가진 뒤 대부분 해산했으며 나머지 5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국민대회◁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하오 4시에 갖기로 했던 서울 시청앞 등 주요도시 도심지에서의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다.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서울·광주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등 전국 32개 대학생 1만여 명은 이날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산=장일찬 기자】 부산지역 학생,근로자,재야인사 등 8천여 명은 18일 하오 3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서 개최키로 했던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민자당 해체,현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중구 대청동 국제시장과 카톨릭센터 일대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 한밤까지 곳곳서 산발 공방/어제 강군 영결식

    ◎신촌·이대 앞서 화염병·최루탄 대결/운구행렬 반나절 노상대치/경찰 4만5천명,도심진입 차단/대책회의,장례 연기… 1천명 연대서 철야농성 명지대생 강경대군 장례식날인 14일 「대책회의」측의 서울시청앞 「노제」 강행과 경찰의 봉쇄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도시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명지대에서의 영결식과 신촌로터리에서의 추모집회를 마친 강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연세대로 가 농성에 들어갔으며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의 도심 곳곳에서는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가두시위에 나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 시민들은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영결식과 추모제가 열린 신촌·연희동 주변 상가는 아침부터 미리 철시했으며 이 일대는 물론 도심 곳곳에서 교통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영결식◁ 강군의 유족과 「대책회의」 관계자 조문객 등 80여 명은 이날 상오 9시 명지대 학생회관 소강당에서 발인식을 가졌으며 하오 9시45분쯤 대운동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열렸다. 장례위원장인 문익환 목사는 조사에서 『오늘은 강군을 땅에 묻는 날이 아니라 71년 6월7일 시작됐던 생의 1막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출발하는 날이니 강 열사의 장도를 비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강군의 어머니 이덕순씨(43)는 손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으며 명지대 총학생 부회장 김홍석군은 조사를 읽다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공부 열심히 할께요』라는 대목에 이르자 오열하기도 했다. 또 이날 참석한 김대중 총재는 조사를 읽다가 학생들로부터 『보수야당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았으며 낮 12시15분쯤 연희동 교차로 근처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많이 마셔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상오 10시30분쯤에는 이상연 내무부 장관과 이종국 치안본부장이 강군의 명복을 비는 조화를 보내왔으나 모두 접수를 거절당했다. 영결식에서는 「서울노동자 문화예술단체」 회원등 5백여 명이 부활굿·조가합창·풍물놀이 등 문화행사가 펼쳐졌고 『경대는 살아 돌아온다』 등의 구호가 적힌 만장·깃발 등 3백여 개가 운동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대학생 2천여 명이 영구차와 운구행렬을 경호했다. ▷합동추모제◁ 당초 낮 12시30분에 신촌로터리에서 가질 예정이던 합동추모제는 영결식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다 운구행렬이 명지대를 나와 신촌로터리 쪽으로 가던 길에 남가좌동 홍남교 네거리에서 경찰과 2시간 동안 대치하면서 돌과 최루탄으로 공방전을 벌이느라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시50분쯤에야 치러졌다. 신촌로터리 주변에는 이날 상오부터 시위군중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하오에는 모두 7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노제공방◁ 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들은 하오 6시35분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청앞 쪽으로 가다가 이화여대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기중이던 경찰이 최루탄으로 저지하자 이에 맞서 화염병·돌멩이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선봉대」 3천여 명이 이대입구 부근에서 경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유가족과 「대책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앞에서 신촌쪽 6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3시간여 동안 연좌농성을 벌였다. 하오 9시30분쯤 대책회의측은 장례를 연기,연세대에 들어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강군의 사체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시 안치하려 했으나 병원측으로부터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해 학생회관 1층 로비에 옮겨놓고 밤을 보냈다. 하오 8시쯤 시위대는 이대입구에서 바리케이드용으로 세워놓은 페퍼포그차량 3대에 화염병을 던져 모두 불태우기도 했다. 「전대협」 2천여 명은 하오 8시30분쯤 종로2가와 3가로 진출해 경찰에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했으며 하오 6시에서 9시 사이 종로 퇴계로 명동성당 신세계백화점 앞 등에서 1만5천여 명의 시위대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또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도심으로 빠져나온 시위대 중 4천5백여 명은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경비◁ 경찰은 신촌에서의 합동추모제까지는 허용하되 시청앞 노제는 불허한다는 방침 아래 신촌에서 이화여대 앞까지 50개 중대,공덕동로터리 일대에 40개 중대 1만여 명으로 저지선을 치고 대로변 골목 입구마다 철제바리케이드나 경찰버스 등으로 도로를 봉쇄,도심 진입을 막았다.
  • 또 주말시위… 곳곳 산발 충돌/노조위장 사망 규탄

    ◎도로점거 화염병·최루탄 공방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투신사망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11일 서울을 비롯,전국 15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또 한차례 공권력과의 충돌을 빚었다.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 6시30분쯤 「대기업노조연대회의」와 「전노협」 「전대협」 등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를 갖지 못하자 그 중 일부가 종로일대와 광교 청계천 을지로 등 도심 곳곳에서 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6시쯤 종로 2가와 세운상가 앞 등에선 3천여 명의 시위대가 연좌농성을 벌이다 집회장소인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보도블록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이들은 경찰에 밀려 종로2가∼종로4가 광교 청계천 2·3가 등으로피해 다니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하오 9시쯤 해산했다. 앞서 이들은 이날 하오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퇴계로 3가 대한극장과 동대문운동장 앞에 각각 집결해 종로 4가까지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재야 쪽 「전국노동자대책위원회」 소속 근로자와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 2천여 명은 이날 하오 3시20분 홍익대에서 박씨의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이 교문출입을 막자 하오 4시30분 건국대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경찰이 교문 앞에서 막자 삼삼오로 짝을 지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이용,을지로3가 앞에 집결한 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일대 상가들은 시위대가 몰려들자 대부분 철시했으며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이 미리 시내를 빠져나가 지난 9일의 대규모시위 때와는 달리 큰 혼잡은 없었다. 홍익대에서는 이날 미리 학교에 들어와 있던 부천지역 15개업체 근로자 1백여 명과 대학생 등 7백여 명이 참석해 약식으로 집회를 가졌다. 대구와 광주 등 14개 지역에서도 집회예정장소 주변과 진입도로 근처에서 최루탄으로 막는 경찰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일요일인 12일과 화요일인 14일에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와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각각 예정돼 있고 노동단체에서도 15일부터 3일 동안 사업장별로 파업투쟁을 벌일 움직임이어서 5·18 10주년인 18일까지는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밤늦도록 화염병·최루탄 공방/5·9집회

    ◎일부 도심 진출… 밀고 밀리는 대치/도로점거… 퇴근길 교통 큰 혼잡/4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1백90여명 연행… 경찰·학생 부상 속출 재야·운동권측의 「범국민대책회의」가 9일 전국적으로 추진한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회」는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으며 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인 끝에 무산됐다. 서울에서는 이날 「대책회의」 소속 재야인사들과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이 하오 6시부터 시청앞 광장에 모여 대규모 군중집회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에 제지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시위참가자들은 이날 하오 6시30분쯤 신세계앞·서울역앞 등에 집결,차도로 시청 앞까지의 진출을 시도하다 경찰이 최루탄 등으로 저지하자 화염병과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1만여 명은 하오 10시가 넘도록 서울역앞과 미도파백화점앞·세운상가앞·파고다공원앞·종각앞 등 4대문안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당초 대회가 무산될 경우,종로 2가에 재집결했다가 청와대로 행진하기로 했었으나 모두 저지됐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남은 1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앞에 모여 현정권을 규탄하는 간이집회를 가진 뒤 이 가운데 4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이날 도심의 간선도로는 곳곳에서 시위대가 길을 막아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으며 이웃 상가들도 대부분 철시했고 시민들은 서둘러 귀가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한편 이날 하오 7시30분쯤 종로 2가 「영에이지」 구두점에 화염병 1개가 날아들어 현관문 일부가 불에 그을렸으며 하오 6시10분쯤에는 종로 3가 지하철역 근처에서 서울지방노동청고용문제조정위원회 사무실의 셔터문을 쇠파이프로 부수기도 했다. 이날 하오 6시40분쯤에는 시위대가 파고다공원앞에서 동대문까지 왕복 10차선 차도 1㎞를 완전 점거,차량통행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또 이날 하오 5시부터 2시간 남짓 동안 지하철 시청역,종각역 등 시위가 격심한 4대문 안 일부 지하철역에 전동차가 서지 않아 귀가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경찰은 이날 교통소통에 큰 불편을 주지 않는 평화적 시위는 되도록 방관했으나 시위대가 시청앞과 청와대 등을 향해 행군을 강행하려 하자 최루탄과 물대포 등으로 이를 저지했으며 시위대도 밤이 깊어가자 양상이 갈수록 격화,화염병과 돌 등을 마구 던졌다. 검찰은 이날 서울지역에서만 극렬시위자 40여 명 등 모두 1백90여 명의 시위자를 연행했다. 이날 서울에서 모두 78명의 경찰관이 부상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날 하오 1시50분쯤 연세대 정문앞에서 대한전몰군경 미망인회 회원 50여 명이 학생들의 시위자제를 호소하다 정문까지 진출한 「전국빈민연합회」 회원 3백여 명과 심한 욕설과 함께 몸싸움을 벌이다 밀려나기도 했다. 서울대에서는 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약 40%의 출석률을 보였으나 하오부터는 음대와 미대 등의 일부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에서 학생들이 강의에 결석,수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 가운데 수천 명이 학교에서 「출정식」을 가진 뒤 일부는 도심으로 진출했다. ○김광일 의원 등 연행 한편 하오 6시쯤 김광일·이철 의원 등과 민주당 당원 30여 명이 구호를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에 앞서 「대책회의」는 하오 2시쯤부터 연세대 도서관 앞에서 3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출정식을 가졌다. ○강경대군 장례/14일 치르기로 한편 「대책회의」는 이날 강군의 장례식을 오는 14일 「민주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이날 『14일 명지대에서 발인해 연세대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시청앞에서 노제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지는 경기도 양주군 마석 모란공원묘지로 결정됐다. 한편 노동부는 시한부 작업거부에 들어간 「전노협」과 「연대회의」 산하 노조가 32개이며 참가인원은 1만5천4백48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쟁의발생신고 없이 작업을 거부하거나 냉각기간중 작업을 거부한 불법작업거부 노조가 한진중공업 등 21개 노조의 1만3천6백42명이었다. ◎지방서 수만명 농성도/울산선 최루탄 차량 불태워 【부산=장일찬 기쟈】 부산지역 대학생,시민 등 3만여 명은 9일 하오 5시30분쯤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 8차선도로를 점거하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및 민자당 해체,노 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하오 8시30분쯤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부산역까지 1.5㎞를 가두행진해 부산역 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어 이들은 서면까지 6㎞를 가두행진한 뒤 밤늦게까지 시위를 벌였다. 【광주=최치봉 기자】 이날 하오 6시40분쯤부터 광주시 동구 금남로 3가 광주은행 앞길에서 제3차 국민대회를 강행한 후 대학생과 시민 등 2만여 명은 경찰이 하오 9시쯤부터 최루탄 등을 쏘며 강제 해산작전에 나서자 도심일원으로 흩어져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9시30분쯤 광주시 동구 충장로 1가에서 시위를 벌이던 전남대생 최계수군(23·공법학과 2년)은 경찰이 쏜 최루탄에 얼굴을 맞으면서 안경이 깨져 오른쪽 눈에 큰 부상을 입고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10여 명이 다쳤다. 【대구=최암 기자】 이날 하오 6시부터 대회장인 대구백화점 앞길로 집결하려던 대학생,노동자,재야단체인사 등 3천여 명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3백∼5백여 명씩 나뉘어 인근 중앙파출소,한일극장 주변 등 도심지를 몰려다니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8시20분쯤 대구백화점 부근길에서 시위진압에 나선 경찰관들의 방패에 시위장면을 촬영하던 노동자신문 이상태 기자(27)가 머리를 맞아 상처를 입었고 효대 국문과 이윤석 교수(41)와 역사과 최석천 교수(41) 등이 경찰에 맞아 눈주위 등에 상처를 입는 등 시민 10여 명이 부상,한때 최루탄과 투석 및 육탄전이 난무하는 격렬한 시위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수원=김동준 기자】 이날 하오 6시 경기 남부노련 산하 근로자와 수원지역 대학생협의회 소속 대학생 등 1만여 명이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박창수씨(31)의 시신이 안치된 안양시 안양5동 안양병원 앞에서 열기로 한 「옥중 살인규탄 및 민자당 해체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안양1동 본백화점 앞길 4백여 m를 점거,『민자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시위를 벌였다. 한편 경남 울산에서 이날 하오 7시쯤 남구 신정동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근로자 시민 학생등 1만여 명이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시민결의대회를 연 뒤 경찰의 제지를 뚫고 대회장에서 흩어져 울산시청 정문앞을 비롯,주리원백화점앞 등 도심 곳곳에서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청앞에 모였던 시위대 3백여 명은 진압경찰의 방패 10개를 뺏어 도로에서 불태웠으며 하오 11시쯤 울산시 남구 신정동 태화로터리 부근에서는 시위대들이 경남도경 제7기동대 소속 다탄두발사차량 1대를 불태우기도 했다.
  • 중남미계 청소년 난동 확산/워싱턴시,비상선포

    【워싱턴 로이터 연합】 워싱턴시 당국은 7일 이틀째 계속된 중남미계 청소년들의 난동사태를 중단시키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한편 이날 자정부터 8일 상오 5시(현지시간)까지 이들의 집단거주지역인 10번 구역에 대해 전면 통행금지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샤톤 프래트 딕슨 워싱턴시장(여)은 돌과 빈병을 던지고 경찰서와 상가건물을 파괴하는 등 난동을 부리는 청소년들과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진압하는 경찰간의 충돌이 계속된 지 수 시간 후 성명을 발표,『우리는 대량체포할 태세가 돼 있다』면서 이같이 밝히고 경찰에 가로소탕권을 부여,통금시간중 거리에서 발견되는 사람은 누구나 연행토록 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폭력사태는 무장경찰을 공격한 혐의로 추적을 받던 다니엘 고메스(30)라는 중남미계 사나이가 경찰의 총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5일 밤부터 시작됐으며 청소년들은 야구방망이와 빈병 등을 닥치는 대로 던지고 휘둘러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 지자제 「선거전 18일」 돌입

    ◎1만5천명 출마… 3.5대 1 예상/「공명」 위해 일체 개입않기로/여/내일부터 전국서 「단합대회」/야/첫날 1천1백77명 후보등록 시군구 지방의회의원 선거일이 8일 공고됨으로써 지방자치시대를 열기 위한 18일간의 선거전이 시작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상오 전국 3천5백62개 선거구에서 총 4천3백4명의 기초자치단체 의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오는 26일 실시할 것을 공고했으며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는 상오 9시부터 전국 2백98개 시·군·구 선관위별로 일제히 후보자등록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등록을 서둘러 마친 일부 후보자들은 이날부터 시장·상가·역광장 등 선거법상 허용된 공공장소에서 유권자들을 상대로 지지를 호소하는 등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시·군·구 의회의원 후보등록 첫날인 이날 전국 시·군·구 선관위에 후보등록을 한사람은 모두 1천1백7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중앙선관위의 집계내용에 따르면 ▲서울 1백88명(의원징수 7백78) ▲부산 47( 〃 3백3) ▲대구 17( 〃 1백82) ▲인천 45( 〃 1백53) ▲광주 14( 〃 1백10) ▲대전 25( 〃 91) ▲경기 2백85( 〃 5백26) ▲강원 94( 〃 2백40) ▲충북 47( 〃 1백73) ▲충남 66( 〃 2백23) ▲전북 62( 〃 2백80) ▲전남 38( 〃 3백37) ▲경북 1백5( 〃 4백4) ▲경남 1백27( 〃 4백53) ▲제주 17명( 〃 51) 등이다. 이번 선거에는 전국적으로 2만여명(5대 1) 가량이 출마의사를 표시하고 있으나 민자당이 친여성향 후보를 조정하고 있어 정부측은 1만5천여명의 후보가 나서 평균 3.5대 1의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자당은 중앙당 차원의 선거지원 등 선거개입활동은 일체 하지않는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으나 여권후보의 난립이 예상되는 일부 지역에 대해서는 후보조정작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며 평민·민주당 등 야당은 지자제대책기구 구성 등을 통한 지원 등을 밝히고 있어 정당개입으로 인한 과열·혼탁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평민·민주당 등 야권은 9일 보라매 수서규탄군중 집회에 이어 내주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수서규탄대회를 강행한다는 방침인 반면,정부는 「선거기간중정당의 순회집회는 위법」이라고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따라 강경대응한다는 입장이어서 공권력과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자당은 이날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주재로 열린 고위당직자 회의에서 야권의 바람작전에도 불구,일체의 당개입 자제로 공명선거 분위기를 유도키로 하는 한편 정부의 지자제 홍보활동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평민당은 이날 중앙선관위의 불법판정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특별·직할시와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수서규탄 순회집회를 오는 14일부터 31일까지 모두 37차례에 걸쳐 개최하기로 했다. 평민당은 또 선거운동 전담반을 구성하고 오는 10일부터 20일까지 각 지구당별로 지구당단위,읍·면단위,이·통 단위 등 3단계 당원단합대회를 개최해 내부적으로 공천절차를 밟은 후보들을 측면 지원하기로 했다. 민주당도 이날 선거대책기구의 지휘아래 각 지구당별로 후보확보에 나섰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6)

    ◎갈수록 잔인ㆍ조직적…「기업형폭력」까지 등장/금품갈취ㆍ공사입찰 등 각종이권 개입/장기간 사회격리등 중벌로 다스려야/일 야쿠샤등 해외조직과 연계,국제화추세 뚜렷 「범죄와의 전쟁」의 승패는 조직폭력배를 얼마나 철저히 소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만큼 조직폭력배가 각종 사회악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범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5ㆍ16,12ㆍ12사태 등 정변기의 강력한 소탕으로 한때 거의 꼬리를 감춘듯 했던 조직폭력배들이 최근 몇년사이에 다시 날뛰고 있다. 이미 서울등 대도시 유흥가의 반은 이들 조직폭력배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중소도시까지 검은 손을 뻗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국내 폭력조직의 3대 「패밀리」로 꼽히고 있는 「OB파」「서방파」「양은파」의 두목들인 이동재ㆍ김태촌ㆍ조양근 등이 경찰에 검거되거나 해외로 도피하자 군소 및 신흥조직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맞아 치열한 세력확장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흥가 거의 지배 최근들어 이들 조직 폭력배들은 일본의 야쿠자조직들과 연계되고 마카오의 도박계에 진출하는 등 국제화 추세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 8월30일 하오 10시20분쯤 경기도 부천시 남구 소사 2동 50 북부역 앞길에서는 민성식씨(30)등 부천역전파 폭력배와 이경영씨(27) 등 소사 3거리 폭력배 등 30여명이 일본도등 흉기를 들고 패싸움을 벌이기 위해 집결,주변 상인과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들은 그동안 세력권확장을 둘러싸고 잦은 충돌을 빚어오다 이날 「결전」을 벌이기로 했던 것이다. 이들의 패싸움은 결국 경찰의 출동으로 무산됐으나 시민들은 「깡패」들이 이처럼 활개를 치게 된 치안상태를 한탄하며 불안해 했다. 지난달 9일 하오 8시쯤 전남 광주 대인동 금남상가타운 7층 금남볼링장 입구 계단에서는 광주 수기동파 조직원 전모군(17)이 20대 남자 2명으로부터 배등을 흉기로 찔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전군은 지난 7일 동료 폭력배들과 함께 경쟁 폭력조직인 「계림동파」 조직원들을 집단폭행 했으며 이에 대한 계림동파의 보복으로 목숨을 잃었다. 치안본부는 지난 88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3년동안 전국에서 활동해온 조직폭력배들은 모두 4백49개파로 구성원은 5천7백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최근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검거됨으로써 조직이 와해됐으나 현재 신흥조직등 1백18개파 1천5백여명이 여전히 활동중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숫자는 표면으로 드러난 것일뿐 경찰에 포착되지 않은 신흥세력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조직폭력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고 유명한 것은 서방ㆍOBㆍ양은파 등 3개파. ○대낮 칼부림 예사 현재 두목의 검거 등으로 표면적으로는 와해된 것처럼 보이고 있으나 조직원들이 흩어져 크고 작은 각종 범죄에 간여하고 있다. 이들 3개파의 뿌리는 지난 50년대 중반 광주의 모고교 폭력서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고교서클에서 두각을 나타낸 심모씨와 전모씨 등 두사람이 60년대초 각각 광주시내 대호ㆍ동아 등 2개 다방을 거점으로 조직을 형성,피나는 싸움을 벌이다 동아파 전씨가 패배하면서 부하였던 박모씨가 서울로 진출해 서방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승자인 대호파는 OB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결국 신ㆍ구파로 양분됐으며 신OB파 부두목 이동재씨도 두목 박모씨를 살해하려다 경찰에 쫓겨 상경,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행동대장으로 활동해오던 김태촌과 조양은 등도 같은 시기에 상경,김태촌은 서방파를 흡수했고 조양은은 양은파를 결성했다. 이밖에 부산ㆍ경남지방에도 「20세기파」「칠성파」 등 뿌리깊은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폭력조직들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타조직과 피나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주로 유흥가에 기생,유흥업소에 「보호」를 명목으로 조직원을 취업시키거나 술ㆍ안주 등 물품조달 형식으로 업주로부터 금품을 뜯어낸다. 또 밤업소출연 연예인들에게 공갈ㆍ협박을 일삼아 출연료중 일부를 정기적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외상술값ㆍ채권ㆍ채무ㆍ공사입찰ㆍ아파트분양 등 모든 이권등에 개입,청부폭력을 휘두르며 심지어 노점상등 영세상인과 택시운전사들까지도 등을 치기 일쑤다. 최근에는 호텔 파친코나 카바레 등을 직접 경영하는 기업형 조직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이들은 고향선후배등 각종 인연을 따져 정치인이나 실력자 등과 직간접의 교류를 맺어 은근히 배후를 과시하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필요에따라 이들을 어느정도 관리(?)하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근히 배후 과시 조직폭력배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것은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 수사당국에 피해사실등을 알리지 않는데다 사건이 표면화 되더라도 두목급은 뒷전에 물러나 앉아있고 행동대원들만 붙잡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사건당사자들이 떳떳이 나설 수 없는 음지라는 것도 소탕을 어렵게 하는 이유의 하나이다. 치안본부 이팔호 폭력과장은 『조직폭력배의 근절을 위해서는 경찰의 철저한 단속도 중요하지만 조직범죄가 서식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제아무리 폭력배를 잡아들여도 대부분 1∼2년만에 다시사회로 복귀한다는 것이 경찰의 불만이며 조직폭력배임이 확실할 때는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획기적인 형사정책이 실시돼야만 뿌리가 뽑힐 것이라는 주장이다.
  • 파키스탄 반정인사 석방요구 총파업/군­시위대 총격전… 27명 사망

    【카라치 AFP 연합】 파키스탄 야당이 주도한 총파업이 진행된 7일 카라치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보안군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군경 5명을 포함,최소한 27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카라치 시내 병원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사망자 중에는 1명의 군인 및 4명의 경찰관과 함께 의사 1명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이날 파업이 「과거 유례없는 전면 총파업」이라면서 시내 상가가 완전 철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활동이 완전 중지됐으며 차량의 모습도 찾아볼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파업은 처음 조용히 시작됐으나 일부 시민들이 타이어ㆍ가구 등을 태우며 길을 차단하면서부터 폭력사태로 번지기 시작했으며 20여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병원 관계자들은 이날 정오(현지시간)까지 시내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사람이 모두 1백여명에 이른다고 밝히고 이들 대부분이 총상환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날의 유혈충돌은 민족분규로 인해 체포된 모하지르 민족운동(MQM) 행동대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무장한 남자 50여명이 카라치의 한 경찰서를 습격한뒤 급작스럽게 확대됐다. 이번 파업은 당초 지난 1947년 이후 인도에 이민온 회교도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MQM이 소속대원 80명의 석방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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