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삼풍백화점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대중교통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국가정원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리디아 고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경상수지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47
  • [취중생]누가 산업재해 유가족을 단식으로 내몰았나

    [취중생]누가 산업재해 유가족을 단식으로 내몰았나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11일부터 4명이 또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입니다. 정기국회에서 무산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임시국회에서는 제정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정기국회 안에 매듭짓겠다”고 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산업안전은 초당적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내 의견도 조율하지 못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2일 공청회만 열렸을 뿐 국회의 우선순위에서 공수처법 등 다른 법안에 밀렸습니다.건설 추락 사망으로 동생 김태규씨를 잃은 김도현씨는 이날 국회 본관 앞에서 “유족이 단식까지 하는 이 현실이 분하고 억울하기만 하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단식을 시작한 이용관씨는 “본회의에서 수많은 법안이 통과됐으나 저희가 제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거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김미숙 이사장은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 없어 무섭기도 하지만,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말 통과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도 당시 정기 국회가 끝날 때까지 통과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임시 국회에서 논의가 급진전됐습니다. 이번에도 국회가 유족들의 호소에 응답할까요. 11일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은 임시국회에서 상임위 통과가 목표라고만 했습니다.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거나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뒤에도 해결할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바로 법원이 법정형에 맞게 판결을 내리도록 양형기준을 높이는 일입니다. 현행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케 한 도급인(원청)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16년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기준에서 권고하는 형량은 기본 6개월~1년 6개월형이고 감경시 4개월~10개월형, 가중해도 10개월~3년 6개월에 그칩니다. 법원은 2013~2017년 발생한 산재 상해·사망사건에서 징역·금고형을 86명(2.93%)에게만 내렸고, 981명(33.46%)에는 집행유예를 내렸습니다. 징역·금고형도 6개월 이상에서 1년 미만이 많았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의견 수렴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23일 열린 ‘기업불법 통제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재해가 줄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적정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권고 형량범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혜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양형기준을 설정한 후 오히려 평균형량이 감소했다”면서 “법정형에 비해 권고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았다. 기업의 적극적인 예방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양형기준 권고형량 범위를 높여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또한 임영미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실효성 있는 양형을 위해서는 벌금형도 양형 기준이 필요하다”라며 “특히 벌금으로만 처벌할 수 있는 법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 양형위는 다음달 11일 양형기준안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취중생] “5·18 때 헬기 사격 있었다”…증거는 충분했다

    [취중생] “5·18 때 헬기 사격 있었다”…증거는 충분했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당시 이를 진압하기 위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9)씨에게 광주지법이 지난달 30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고인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2017년 4월 27일 전씨를 고소한지 약 3년 6개월 만의 일입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죽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재판부는 전씨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고인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밝힌 날에 실제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전씨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회고록에 기술했는지 등을 판단해야 했습니다. 전씨와 변호인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진술은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기관총 소리로 각 오인했을 가능성에 비추어 볼 때 그대로 믿기 어렵다. 또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자 165명에 대한 사체 검시 결과 헬기 기총소사에 의한 사망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부상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보고받지 못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으로 사망자 내지 부상자가 발생했는지 여부는 이 사건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재판부는 목격자 및 각 군인들의 진술, 군 관련 문서 등을 종합하여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고, 전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재판부가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한 주요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1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의 일부 내용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목격자·군인 진술도 ‘헬기 사격’ 사실과 부합 고 조비오 신부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호남동성당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래는 고인이 1989년 2월 2일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한 내용입니다.“1980년 5월 18일부터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광주에 머물렀다. 5월 19일부터 시민들의 시위와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폭행을 직접 목격했다. 나를 포함한 8명의 신부들이 5월 21일 오후 12시쯤 호남동성당에 모여 평화적 해결을 위한 회의를 했다. 큰 성과 없이 오후 1시 30분~2시쯤 회의를 마친 뒤 성당 정문을 나오자마자 헬기 소리를 들었고, 헬기가 전남도청 쪽에서 사직공원 쪽을 향해 비행했다. 헬기는 광주천 불로교 인근 상공에서 지축을 울리는 ‘드드드드득’하는 기관총 소리 세 번을 내면서 동시에 불이 ‘픽’하고 나갔다.”재판부는 먼저 고인의 진술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1989년 이래로 사망할 때까지 1980년 5월 21일 500MD 헬기에 의한 기관총 사격이 있었고 자신이 호남동성당에서 이를 목격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헬기 사격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면서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목격자들과 일부 군인들의 진술 및 군 관련 문서들이 존재한다. 특히 피해자는 이 증거들의 일부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일관되게 진술했으므로 피해자가 직접 목격하지도 않은 장면을 마치 목격한 것처럼 진술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또 1995년 5월 기자회견 및 검찰 진술에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 상공에서 500MD 헬기에 의한 기관총 가격이 있었다’고 진술한 고 아놀드 피터슨 목사 등 일부 목격자들 진술의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객관적 정황이 그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관여했던 군인 일부의 진술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에 부합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광주로 출동한 항공대(31항공단 103·501·506 항공대) 소속 헬기 조종사·부조종사들은 500MD 헬기에 7.62㎜ 기관총 2000발, AH-1J(일명 코브라) 헬기에 20㎜ 벌컨 500발을 무장했음을 자인했습니다. 그 중 500MD 헬기 부조종사 한 명은 지난 2017년 9월 검찰 조사에서 “500MD에 탑승하여 정찰하던 중 광주공원에 한 번 위협사격을 가하라는 내용의 무선교신을 듣고 명령권자가 누구냐고 묻자 무전교신이 끊어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31항공단 탄약관리하사로 근무했던 증인은 이 사건 재판에 출석해 “1980년 5월 20일 또는 5월 21일 헬기 무장사들에게 20㎜ 고폭탄과 20㎜ 보통탄, 7.62㎜ 탄약을 지급했다가 그 중 20㎜ 보통탄과 7.62㎜ 탄약이 3분의1 가량 소비된 상태로 회수했다”고 말했습니다.군의 ‘헬기 사격 작전’ 문건도 여럿 재판부는 5·18민주화운동 전후로 작성된 군 관련 문서들을 통해서도 “적어도 구두 명령에 의해 1980년 5월 21일 실제로 500MD 헬기에 의한 사격이 있었음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은 헬기 사격 사실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 문서들의 내용입니다. 먼저 1980년 5월 22일 육군본부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현 육군교육사령부·이하 전교사)에 하달한 지침입니다. 이 지침 문서에는 ‘헬기 작전계획 실시하라’면서 ‘시위사격은 20미리(㎜) 벌컨,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이라는 문언 등이 적혀 있습니다. 재판부는 비록 전교사에서 이 지침을 접수한 시점이 1980년 5월 21일 이후이고 육군본부에 작전통제권이 없어 이를 서면에 의한 명령서로 볼 수는 없지만, 계엄사인 육군본부의 지침과 무관하게 지역계염사가 작전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사격을 실시할 장소가 하천, 임야 및 산으로 기재되어 있어 목격자들의 진술이 이에 부합하고, 특히 ‘광주 시내 하천이 적합 시 실시’라는 기재는 이 문건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광주천 부근에서의 헬기 사격 목격 사실을 최초로 진술한 피해자(고 조비오 신부)의 진술에 부합한다. 또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이라는 기재는 500MD에 장착된 7.62㎜ 기관총에 의한 사격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이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한 장소인 호남동성당이 광주천 인근에 있습니다. 전교사가 1980년 9월경 발간한 교훈집(이름은 ‘광주소요사태분석’)의 ‘부록 3 항공편’에 기재돼 있는 내용들도 “5·18민주화운동 기간 적어도 위협사격 이상의 헬기 사격이 실재했음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교훈집에 담긴 내용이 실제 있었던 상황을 분석한 것이라고 봐야 하고, 항공기 임무 중 하나로 기재된 ‘의명(명령에 의거함) 공중 화력 제공’은 ‘무장 시위’와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표현이라는 점에서 화력 제공은 헬기 사격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불확실한 표적에 공중사격 요청’이라는 기재는 헬기 사격 지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여 재판부는 “피해자가 목격한 바와 같이 1980년 5월 21일 광주에 무장 상태로 있었던 505항공대 또는 560항공대 소속의 500MD 헬기가 위협사격 이상의 사격을 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법원 “전씨도 ‘헬기 사격’ 사실 충분히 인식” 이제는 전씨가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이 허위임을 인식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전씨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비록 계엄사의 정식 지휘계통에 있지는 않았으나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헬기 사격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아래는 그 판단의 근거들입니다. #. 피고인은 1980년 5월 17일 오전 9시 30분쯤 보안사 정보처장을 통해 국방부 장관에게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 ‘시국수습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통보하면서 계엄 확대 등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결의 사항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 피고인은 보안사 소속 군인들 및 12·12 군사반란 이후 피고인과 함께 내란 집단을 구성한 것으로 인정되는 육군참모차장을 통해 계엄사가 1980년 5월 21일 자위권 보유 천명의 담화문을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 계엄사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 광주 재진입 작전 계획을 최종 수립했고, 그날 오후 12시 15분쯤 피고인과 국방부 장관, 수도경비사령관 노태우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교사령관의 책임 하에 (1980년) 5월 27일 오전 0시 1분부로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보안사에서는 ‘광주사태 일일속보철’을 작성했는데, 시간대별로 상황 보고가 이뤄졌고 공수부대의 투입 시기 및 장소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으며, 헬기의 이동 상황이 상세히 기재돼 있어 보안사령관이었던 전씨가 당시 상황을 모두 보고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재판부는 밝혔습니다. 또 전씨는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회고록을 집필하는 과정에서도 헬기 사격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출간을 감행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전씨의 회고록이 출간된 2017년 4월 3일 이전인 같은 해 1월 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일빌딩에 대한 탄흔 분석을 통해 헬기에 의한 사격으로 추정되는 하향 사격이 있었다고 발표했고, 많은 언론이 이 발표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전씨는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설을 부인하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국과수의 분석 결과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2007년부터 초고 작성 작업에 참여하는 등 전씨의 회고록 집필을 담당한 민정기(전씨의 대통령 재임 시절 공보비서관을 지냄)씨의 수첩에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주장에 대한 대응 방법이 적혀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으로부터 회고록 집필 지시를 받은 민씨는 헬기 사격설에 관해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회고록을 집필한 것으로 보이고, 회고록에서 국과수의 분석 결과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사정은 피고인에게 허위의 인식이 있었음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습니다.사과를 모르는 전두환 검찰은 재판부가 전씨에게 선고한 형량(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은 부당하다면서 지난 3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전씨 변호인도 판결 직후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부터 납득이 안 되는 판결이 나왔다”고 말한 만큼 조만간 항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전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피고인은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의 헬기 사격 여부가 중요한 쟁점임을 인식하고도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범죄사실을 모두 부인함으로써 특별사면(1997년 12월 22일)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였고,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담은 회고록을 집필·출간했다는 점에서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며, 과거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아픈 현대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피고인에 대해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피고인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성찰이나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고, 피해자의 유족인 고소인으로부터도 용서받지도 못했다.”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전씨는 당시 계엄군의 유혈 진압에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들에게 지금까지 사과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전씨는 지난달 30일 법정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희동 자택을 나설 때 ‘대국민 사과하라’고 외친 시민에게 “말 조심해 임마!”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건 재판에 출석해서도 조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제 전씨의 이런 모습은 그만 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취중생] 한 달 뒤면 끝나는 ‘낙태죄’ 시한…국회는 응답하라

    [취중생] 한 달 뒤면 끝나는 ‘낙태죄’ 시한…국회는 응답하라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문재인 정부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낙태죄를 폐지하십시오. 권리를 보장하십시오. 대한민국의 절반, 여성의 경고를 엄중히 새겨들으십시오.” 지난 27일, 국회 앞에서 여성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등 단체 활동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전면 폐지 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임신 후 최대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정부의 형법 개정안이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이에 반발하기 위해섭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낙태를 죄라고 보는 현행법이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한 뒤 정부가 1년 만에 내놓은 형법 개정안의 핵심은 임신 14주 이내 여성에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한다는 겁니다. 15~24주 여성은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 낙태할 수 있습니다. 이에 여성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입법예고 기간 제시된 의견이 7000건이 넘습니다. 정부안대로라면 낙태가 가능한 24주는 사실상 임신 중절을 ‘합법화’ 하는 것 아닐까요? 왜 여성들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할까요? #나는 낙태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서울신문은 지난달부터 직접 임신 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속 인터뷰 ‘나는 낙태했다’ 시리즈로 공개했습니다(https://url.kr/SpeqCn).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언론을 통해 스스로 경험을 공유하고 목소리를 낸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첫 회 기사가 보도되자, 곧장 이메일로 ‘나도 낙태했다’는 제보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사는 곳도, 나이도, 상황도, 다 다른 사람이었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현행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악법’이라고요. 청소년기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가 임신 중절을 한 여성은 당시 자신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남자친구 때문에 더 상처가 컸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임신을 중단했는데, 이후 어린 아이만 보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는 여성도 있었습니다. 낙태와 임신중절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금기어이지만, 정작 현실에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살기 위해’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낙태를 죄라고 보는 법과 잘못된 인식 탓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고, 부당하고 비위생적인 기억을 안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14주냐, 24주냐를 놓고 다툴 동안 정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한 달…이제는 국회의 시간 자연스레 낙태죄 논의의 ‘키’를 쥔 국회에 시선이 쏠립니다. 국회에서도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반대하며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낙태죄를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낙태 허용 기준을 임신 10주로 제한했습니다. 정부안보다도 퇴행한 안입니다.형법 개정안을 넘겨받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다음달 8일 낙태죄 폐지 전문가들을 모아 공청회를 열 예정이지만, 바로 다음날인 9일 정기국회는 종료됩니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임시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죠. 시간이 부족한 만큼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고 우선 낙태죄를 폐지한 뒤, 내년 이후 시간을 갖고 논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입법 공백이 생겨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우려가 큽니다. 이에 올해 안에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모낙폐는 다음달 1일부터 한 달간 낙태죄 완전 폐지와 대안입법을 촉구하는 국회 앞 1인 시위를 할 예정입니다. 67년간 여성의 몸을 옭아맨 낙태죄가 이제는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요. 여성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싸우며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취중생]“무단침입”vs“이행점검”…‘택배 과로 대책’ 이후 노사 충돌

    [취중생]“무단침입”vs“이행점검”…‘택배 과로 대책’ 이후 노사 충돌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한지 8일 만이었습니다. 20일 CJ대한통운과 택배 과로사대책위원회는 대책위 측 6명이 강북 서브터미널을 방문한 일을 두고 전혀 상반되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CJ대한통운은 “대책위가 지난 18일 ‘과로사대책 이행점검단’ 현장방문을 일방 통보하고, 20일 6명이 의정부 강북서브터미널에 무단침입했다. 경찰관 6명이 지속적으로 퇴거를 요청했음에도 응하지 않고 72분간 노동조합 가입을 유도하는 유인물을 배포하는 선전전 등을 진행했다.(…) 임의단체인 대책위의 무단침입은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대책위는 “강북터미널을 방문한 6명 중 4명은 노동조합 소속이므로 무단침입은 말도 안된다. 경찰이 지속적으로 퇴거요청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지난 두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점검 활동 계획을 밝히고 협조 공문을 발송했으나 CJ대한통운은 공식 회신을 하지 않고 오늘 대책위의 활동을 방해하며 점검을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CJ대한통운은 “코로나19 고위험 사업장인 택배 서브터미널에 무단침입해 기사들과 고객들을 위험에 노출시켰다”며 “무단침입과 방역수칙 위반으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책임은 대책위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책위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마스크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터미널 소독이나 손소독제 구비 등 조치를 하지 않고도 방역지침을 운운한다”며 “이행점검단은 사전 체온측정,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을 이행했다”고 맞섰습니다. 과로 방지 대책 이행 상황을 두고도 입장이 갈렸습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19일 종합대책의 진행경과를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성실하고 투명하게 종합대책을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대책위는 “과로로 사망한 택배노동자 고 김원종씨가 일했던 강북터미널의 노동자들도 분류작업 인력이 투입되는지, 언제부터 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력투입 비용을 택배노동자들이 100% 부담한다고 인식했다”고 강조했습니다.불과 8일 전인 지난 12일 정부는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방지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정부 대책은 상당 부분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택배 분류작업이나 수수료 문제 등 핵심 쟁점은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정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다음달까지 구성될 노사정의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 협의회’(가칭)로 공이 넘어간 셈입니다. 노사는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해보입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는 멈출 수 있을까요.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취중생] “우리는 죽고 사는 문제”…공공 공연장 바라보는 민간 공연장의 한숨

    [취중생] “우리는 죽고 사는 문제”…공공 공연장 바라보는 민간 공연장의 한숨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의 이야기가 연일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홍대 일대 민간 공연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로 휴·폐업에 들어가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 옆에 서울시가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공공 공연장’을 개관했습니다. 홍대 공연장들이 이를 생존권 침해라며 반발하는 가운데 서울시는 시민들의 문화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정책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서울시는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를 개관했습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는 170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과 연습실, 다목적실, 강의실 등을 갖춘 공연·문화시설입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비영리 공연뿐만 아니라 프로 아티스트(전문 예술인)의 공연도 대관할 수 있는 등 대관 대상에 제한이 없는 점이 문제가 됐습니다. 홍대 인근의 민간 공연장들과 직접 경쟁하게 된 셈이기 때문입니다. 롤링홀 등 홍대 인근 공연장 85곳은 즉각 반발하면서 ‘홍대 공연장 연합’을 결성해 지난 6일 서울시에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의 운영 중단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에 적힌 요구는 ▲연극, 뮤지컬을 제외한 대중음악 장르의 기획 및 대관 금지 ▲협상 타결까지 센터 운영 중지 두 가지입니다. 지난 12일 서울시는 공문에 답을 보냈습니다. “연극, 뮤지컬로 한정해 운영하는 요청은 서울생활문화센터의 건립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과도한 요청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이어 “홍대 공연장 연합 측의 입장을 반영해 운영 방향과 기획 공연 및 대관 공연의 대상·날짜 배분 등 구체적인 운영계획을 검토 중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협상 가능성은 물 건너 간 셈입니다. 홍대에서 프리즘홀을 운영하는 이기정 대표는 “시는 정책이니 해야 한다는 간단한 문제지만, 인근 민간 공연장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토로했습니다. 한국 인디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홍대는 라이브 공연장과 인디밴드들이 함께 공연 생태계를 조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 업계가 타격을 입으면서 홍대 공연장들도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운영이 어려워졌습니다. 공연 업계에 따르면 홍대 인근 대표 공연장인 하나투어 브이홀이 폐업하고, 밴드 크라잉넛이 탄생한 공연장 DGBD(옛 드럭)와 무브홀 등도 문을 닫았습니다.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공연장들이 사라지자 음악팬들은 “브이홀, 무브홀 다 없어지면 밴드 내한 공연은 어디서 하나”, “공연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인데 마음이 아프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홍대 공연장들은 코로나19로 관객을 10분의 1만 받는 가운데 직접 방역물품을 마련하고 방역알바를 고용하는 등 추가 지출은 늘어나 힘겹게 운영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됐을 때는 대부분 공연이 중단돼 수입이 끊기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정부가 뒤로는 공연장을 여는 등 소상공인과 경쟁하고 우리를 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인근 민간 공연장들의 반응이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정을 투입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대관료를 비싸게 측정할 수도 없고, 너무 싸게 대관하면 인근 민간 공연장이 타격을 입어 무조건 가격을 낮출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의 시장조사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주말 기준 인근 공연장 시세가 220만원에서 250만원 사이인 것을 고려해 총 대관료를 220만원으로 책정한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다만 총 대관료는 주말 기준 공연장 대관료 120만원에 음향·조명 인력 60만원과 악기사용료 40만원 등을 합해 산출됐습니다. 생활문화 동아리는 할인을 적용해 주말 기준 45만원에 공연장을 대관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프로 공연팀은 이미 자체 음향·조명 인력과 악기를 보유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반값’ 공연장”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예술인들은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개관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예술인이 살아야 공연장도 산다’, ‘공공 공연장인데 가격이 비싼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공연 예술인들도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질서를 지키며 유지되던 홍대의 공연·문화 생태계에 코로나19라는 악재가 들이닥쳤고, 여기에 ‘공공 공연장’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서울시가 상생이 가능한 운영 계획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취중생] “유족께 죄송” 하지만 “기억 안 난다”는 ‘을왕리 참변’ 가해자

    [취중생] “유족께 죄송” 하지만 “기억 안 난다”는 ‘을왕리 참변’ 가해자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지난 9월 9일 오전 1시쯤 인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 피해자가 중앙선을 침범한 승용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의 딸이 사건 발생 다음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가해자들이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변호사부터 찾았다는 목격담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공분했습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58일째 되는 날인 지난 5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320호 법정에서 첫 재판이 열렸습니다. 오전 10시 45분쯤 피고인 임모(33·구속)씨와 김모(47·불구속)씨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법정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임씨는 음주 상태에서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한 사람이고 김씨는 당시 조수석에 앉았던 사람입니다. 김씨 역시 술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사건 발생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씨는 사건 발생 전날인 지난 9월 8일 오후 5시쯤 일행 2명과 함께 인천 중구 영종도의 한 해변 인근 식당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 김씨는 일행 중 한 명에게 “대리비나 택시비를 다 줄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임씨에게 전하라며 임씨를 술자리에 불렀습니다. 임씨는 “반드시 귀가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김씨의 말을 듣고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오후 9시쯤 식당에서 나와 편의점에서 술을 구입하고 영종도 을왕리해수욕장 근처의 한 호텔로 이동해 2차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임씨는 차를 식당에 그대로 두고 호텔로 이동하였습니다. 임씨 입장에서는 나중에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식당에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술자리는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임씨가 술에 취해 일행 중 한 명과 다투고 “집에 갈테니 빨리 대리운전을 불러 달라”면서 객실을 나가 호텔 엘리베이터로 갔습니다. 김씨는 임씨를 뒤따라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뒤 임씨에게 “우선 차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이후 김씨는 호텔 주차장에 내려가 벤츠 승용차 차문 잠금을 해제해 임씨를 운전석에 타도록 했고 자신은 조수석에 탔습니다. 이 벤츠 승용차는 김씨가 운영하는 회사 소유의 차입니다. 김씨는 일행이 대리운전기사를 수차례 호출해도 대리운전기사가 배정되지 않자 임씨에게 호텔 근처 편의점에 가자고 했습니다. 임씨는 “편의점이 바로 앞인데 여기서 기다리면 안 되냐”고 말했지만 김씨는 “여기는 잘 안 잡히니 편의점으로 가자”고 요구했습니다. 이 대목이 검찰이 김씨에게 음주운전 방조 혐의가 아닌 음주운전 교사 혐의를 적용한 이유입니다. 결국 두 사람이 탄 차는 제한속도를 시속 약 22km 초과하면서 도로 중앙선을 침범해 피해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임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94%로, 검찰은 당시 임씨가 “혀가 꼬이고 비틀거리며 혈색이 붉은 등 음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검찰은 임씨뿐만 아니라 김씨에게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음주 상태에서 차를 운전한 사람은 임씨이지만 검찰은 김씨를 공동정범으로 판단했습니다. 공동정범은 2명 이상이 공동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전원을 그 죄를 범한 사람으로 처벌하는 것을 말합니다. 임씨와 김씨가 이 사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에 있어 공동의 실행 의사와 행위가 있었다고 본 것입니다. 검찰은 “김씨가 운영하는 회사 소속 임직원에게만 자동차종합보험이 적용되는 사실을 알고 있던 위 벤츠 승용차의 실질적인 소유자 및 관리자인 김씨에게는 임씨로 하여금 운전하지 않도록 하고, 임씨에게 운전을 하도록 했다면 안전하게 운전하여 사고 발생을 미리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술에 취한 임씨에게 위 벤츠 승용차를 운전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운전을 전적으로 맡겨둔 채 조수석에 앉아 안전하게 운전하도록 관리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 측 입장을 물었습니다. 임씨는 공소사실을 인정한 반면 김씨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김씨 변호인은 먼저 “김씨는 유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씨 변호인은 이후에 “김씨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동료들과 식당에서 술을 마신 사실과 임씨가 뒤늦게 합석한 사실,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호텔에 간 사실”이라며 그 이후 상황은 김씨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김씨 변호인은 이어 “(이 사건이 발생한) 사실관계를 다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동승자인 김씨에 대해 ‘윤창호법’(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개정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공동정범 성립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씨 변호인은 또 “김씨가 (사건 발생 당시) 만취 상태여서 대부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임씨 진술과 술자리 동석자의 진술에 의존해서 (검찰이) 상황을 구성했다”면서 “임씨가 어느 정도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인식 자체도 김씨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음주운전 교사 혐의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공판기일부터 시작되는 증거조사를 위해 검찰은 임씨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김씨 변호인은 이 사건 발생일에 임씨와 다툰 술자리 동석자를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 공판기일로 지정된 다음달 8일 오전 10시 재판에서 진행됩니다. 이 사건 피해자 유족은 지난 9월 21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는 그 날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어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윤창호법이 2018년 12월 18일부터 시행됐지만 음주운전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라는 인식이 아직도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음주운전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고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한부모가정 7세 소녀, 대학 때까지 12년 후원한 소방관

    한부모가정 7세 소녀, 대학 때까지 12년 후원한 소방관

    한부모가정 7세 소녀를 대학 입학까지 후원한 소방공무원이 주변에 감동을 안기고 있다. 경기 하남소방서 양승춘(56·소방경) 구조대장은 2008년 TV를 보다가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어렵게 살아가는 일곱살 어린 소녀의 사연을 접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현장, 2011년 일본 대지진 현장 등 국내외 대형 재난 현장에서 활약한 베테랑 구조대원인 양승춘 대장은 일곱살 소녀의 사연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것이다. 양승춘 대장은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자신의 둘째 딸보다 한 살 어린 이 소녀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제작진의 도움으로 소녀 어머니의 계좌번호를 받았고, 그렇게 강화도 소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매달 월급 일부를 소녀에게 보냈고, 성과급을 받으면 더 얹어 보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고 소녀의 엄마로부터 “지금까지의 후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감사의 말을 들었지만, 소녀가 대학에 갈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되새기며 후원을 이어갔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올해 초, 소녀는 대학 신입생이 됐다.양승춘 대장은 입학축하금을 보내며 12년 전 다짐을 완수했다. 소녀와 어머니 역시 양승춘 대장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 12년간의 후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12년간의 꾸준한 후원에 대해 양승춘 대장은 “그 아이는 제겐 막내딸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룬 아이가 대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양승춘 대장은 강화도 소녀 말고도 먼저 세상을 떠난 직원의 어린 자녀 2명에게도 3년 넘게 남몰래 매달 후원금을 전달해 오기도 했다. 퇴직을 4년 앞둔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또 다시 도움이 필요한 이를 찾고 있다고 전했다. 진작에 장기기증 서약도 마쳤다. “사람을 살려내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지금껏 그랬듯 퇴직까지 남은 기간에도 한결같은 신념으로 살아갈 겁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취중생]어느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75주년 경찰의날을 맞아

    [취중생]어느 누구도 목숨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75주년 경찰의날을 맞아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제75주년 경찰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19일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숨진 김대영 경위에 대한 메일이었습니다. 경찰청 생활안전국 생활질서과 총포화약계 소속이었던 김 경위는 격무에 시달려 결국 한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의 나이 32세였고, 7살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유족과 지인들은 김 경위가 평소 과중한 업무량에 고통을 호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아내 김지영(33·가명)씨는 지난 3월 경찰청 앞에서 십여일 간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서 약 7개월이 지나 관련 메일이 온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 경위와 함께 일 했던 외부업체 직원이라 소개한 그는 “고인의 억울한 죽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가 당시 힘듦을 토로했던 통화기록이 있으니 유족께 전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김 경위는 자신에게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며 하소연 했다고 합니다. 총포화약계는 경찰청 내에서도 업무 강도가 센 곳 중 한 곳입니다. 단순히 경찰 내 총포화약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전국의 민간 영역의 총포화약을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고가 터지면 겉잡을 수 없이 터질 수 있어 업무의 긴장도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받은 메일을 김 경위의 아내에게 전달했습니다. 그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믿음으로 이후의 소식은 묻지 못했었습니다. 괜히 아픈 곳을 들쑤시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던 차에 이 내용을 전달하며 이후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아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남편의 명예를 되찾았어요. 남편의 시신은 현충원에 안장했습니다.” 경찰관이 현충원에 안장되기 위해선 공무수행 중 순직이나 국가가 정한 훈장을 받아야 합니다. 김 경위가 국가로부터 예우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숨진 남편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만, 조금이나마 억울함이 풀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김 경위의 아내는 전달해준 메일은 검토하고 그 사람에게 연락할지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일하다 숨지거나 다치는 경찰관은 한 해 1800여명 수준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2018년 5년간 순직 경찰관은 73명, 공상 경찰관은 8956명입니다. 원인별 순직을 살펴보면 질병이 46명(62.2%)으로 가장 많았고, 범인에게 습격을 당한 이들 4명(5.4%), 교통사고와 안전사고는 각각 14명(18.9%)과 3명(4.0%)이었습니다. 그외 기타는 7명(9.5%)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사건 현장에서 경찰관들은 때론 다치며, 또 한편으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1일은 경찰의 날이었습니다. 당시 기념식 때 상영된 오프닝 영상이 화제였습니다. 업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지는 경찰관들의 얘기를 담고 있어서입니다. 이 영상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잘 구성된 영상이었습니다. 다만 이 영상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김 경위 같은 경찰관도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2014~2018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은 모두 103명입니다. 한 해 평균 20.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인데, 같은 기간 전체 공무원(10만명당 8명) 대비 2배 이상 높습니다.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지키는 경찰들이 무엇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국민도 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취중생]장애학생에 문턱 높인 학교들…엄마는 긴급돌봄 애원했다

    [취중생]장애학생에 문턱 높인 학교들…엄마는 긴급돌봄 애원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일 때문에 초2 아이를 긴급돌봄을 보내겠다고 하니까 학교는 ‘어머니 괜찮으세요? 잘 생각해보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간곡하게 부탁했어요.” 경기도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윤모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는 “아이가 공격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 순한 아이니까 받아줄 수 있겠다”고 했다. 긴급 돌봄을 가면 비장애 학생들과 똑같이 교육방송을 시청한다. 윤씨는 “학습 꾸러미를 보면 백지 상태로 오지만 아이가 또래와 함게 있는 것을 좋아하니까 다행이죠”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개학이 이뤄지면서 긴급돌봄이 제공되지만, 이처럼 초등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은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전체 초등특수교육대상자의 9.5%만 긴급돌봄교실을 이용하고 있다. 장애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온라인 수업의 질도 학교 마다 차이가 크다. 일부 학교는 특수학급 학생들에게 일부 강의를 개인별로 맞춤형 영상 강의를 제공하지만, 대부분 장애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동영상 강의를 그대로 제공한다. 초6 아이를 양육하는 방모(41)씨는 “특수교사가 영상에서 아이 가족 사진을 보여주고 이름을 불러주면서 주의를 끌어줘서 다행이지만, 집에서 가르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예체능을 주로 하는 통합반에서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수업을 알려준다고 했는데, 1학기 때 5번 연락이 온 게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주민 임모(42)씨도 초6 자녀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 “통합반은 쌍방향 수업을 하는데, 인사만 하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계속 꺼 둔다. 학교에서는 ‘카메라 끄셔도 된다. 출석체크만 해도 됩니다. 참석 안해도 됩니다.’라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댓글도 쓰고 발표 수업을 하는데, 우리 아이는 집에서 결국 돌아다닌다.” 장애아동은 한 학기에 한번씩 교사와 학부모 등이 만나 개별화 교육계획(IEP)을 짜야 하지만, 올해는 형식적인 서류 서명으로 끝났다. 긴급돌봄이 없는 중·고등학생 학부모들도 시름이 깊다. 박모(46)씨는 볼일이 생기면 다운증후군 중3 아이와 함께 나가서 아이에게 수업 영상을 틀어준다. 각종 복지시설도 운영하지 않아 아이를 홀로 돌볼 수 밖에 없어서다. 활동지원사는 학습 지도가 아니라 이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주로 맡기 때문에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학교는 장애학생들이 교과과목을 배우는 동시에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방모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를 못 간다’고 하면 이해를 못했죠”라면서 “잠시 등교를 했는데 친구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책상에는 가림막이 있는 걸 눈으로 보니까 그제야 아이가 인지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발달장애 아동은 규칙적인 일상이 무너지면 불안감을 느낀다. 학교를 가지 못하는 것 자체로 건강에 영향을 준다. 윤씨는 “아이들이 요일별로 하는 수업이나 치료에 따라서 요일을 기억한다”면서 “학교나 복지시설이 문을 닫아서 가지 못하면 문제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부모연대에 따르면 장애아동이 59시간 동안 운 사례도 있었다. 장애아동 부모들은 “코로나19로 통합교육의 민낯이 드러나 회의감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통합교육이 필요하다지만, 일반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 “같은 반 학생들이 내 아이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자녀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학부모들이 부쩍 늘어나는 분위기도 이 때문이다. 초등특수학교에서 돌봄교실 담당 교사도 특수교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긴급돌봄에서 소외되지 않는다. 초4 자녀가 국립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부모 유모(36)씨는 부러움을 산다. 학교나 선생님에게 부담이 될까봐 ‘돌봄교실에 가도 되냐’ 물어보는 일을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청각장애와 자폐성 장애가 있지만,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문제가 발생하면 지원할 방법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떨어진 뒤에는 사실상 코로나19 이전처럼 정상 수업을 하고 있다. 다만 특수학교는 대부분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셔틀버스 운영이 중단된 상황에서 집에 자가용이 없는 가정은 등하교가 쉽지 않다. 교육부가 쌍방향 온라인 수업을 강화하는 추세이지만, 이는 장애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윤씨는 “화상으로 눈을 마주치면서 출석체크를 하겠다는데, 자폐성 아이는 눈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고 했다. 방씨는 “2학기부터 1, 2학년들은 한 교실에서 20명 가까이 수업을 하는데, 정원이 6명인 특수학급 학생들은 등교수업을 하지 않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취약한 아이들부터 등교수업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육부와 교육청, 일선 학교는 코로나19 속에서 진정한 통합 교육을 이어갈 수 있을까.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특수학교는 긴급돌봄이 비교적 잘 이뤄졌는데 일반학교 특수학급은 충분하지 않은 게 사실이며 온라인 교육 지원도 불충분해 송구한 마음”이라며 “국립특수교육원을 통해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고 원격수업보다 학교에 직접 나와서 지원해주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취중생] 북한 설명에도 풀리지 않는 ‘공무원 피살’ 의문점

    [취중생] 북한 설명에도 풀리지 않는 ‘공무원 피살’ 의문점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정말 의문투성이에요. 풀어야 할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최근 우리 군이 북한군의 총격 등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힌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 A씨의 친형 이래진(55)씨가 지난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지난 23일 오후 국방부는 A씨가 지난 21일 오후 12시 50분쯤 인천 옹진군 소연평도 남방 약 2㎞ 해상에서 실종됐다는 신고를 해양경찰이 접수했고 지난 22일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했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날인 지난 24일 오전 국방부는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A씨에 대해 총격 등을 가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청와대는 지난 25일 오후 북한이 보낸 통지문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북한은 통지문을 통해 사건 발생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래진씨는 2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도 있지만,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을 때 북한이 사과의 뜻을 표현한 점에 대해 유족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래진씨는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제 동생 시신을 수습하고 제 동생을 살해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우리 군은 A씨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 A씨가 실종된 곳(소연평도 남쪽 해역)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38㎞(직선거리 기준) 떨어진 북한 황해남도 등산곶 해상에서 A씨가 북한군 휘하의 수산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북한도 통지문에서 “사건 경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 측 해당 수역 경비 담당 군부대가 어로 작업 중이던 수산사업소 부업선으로부터 정체불명 남자 1명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설명했습니다.그러나 우리 군의 설명과 북한의 통지문 내용으로도 A씨가 지난 21일 실종돼 다음 날인 지난 22일 북측 해역에서 발견되기까지 A씨의 이동 경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이씨는 “군의 발표와 달리 동생이 실제 실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인 지난 21일 오전 2~3시쯤 소연평도 인근 해역 조류의 방향은 북한이 아닌 강화도 방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군은 A씨와 같은 배를 탄 동료들이 지난 21일 오전 11시 30분쯤 A씨의 실종 사실을 인지하고 오후 12시 50분쯤 해양경찰에 신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평도 해역은 일명 ‘회전성 조류’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으로 바닷물의 방향이 반시계 방향으로 계속 바뀝니다. 실제로 국립해양조사원의 수치조류도를 확인한 결과 지난 21일 오전 1시쯤 연평도 인근 해역의 바닷물은 남쪽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다 2~3시쯤 조류의 방향이 연평도 동쪽에 있는 강화도 방향으로 바뀝니다. 이후 오전 6시쯤에는 북동쪽으로, 오전 7시쯤에는 북쪽, 오전 8시쯤에는 서쪽으로 조류의 방향이 바뀝니다. 오전 11~12시쯤에는 바닷물이 남서쪽으로 흘렀습니다. 즉 A씨가 지난 21일 오전 1시 30분쯤 어업 지도선 ‘무궁화 10호’의 선교(브릿지)에서 이탈한 시간부터 동료들이 A씨의 실종 사실을 인지한 오전 11시 30분쯤 사이에 연평도 해역 바닷물의 방향이 시시각각 바뀌는 만큼, A씨가 어업 지도선을 언제 벗어났는지가 A씨의 월북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단서로 보입니다. 우리 군은 A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될 당시 구명조끼를 입은 채 부유물에 탑승하고 있었다는 점, 감청 등을 통해 A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밝힌 것을 확인했다는 점, A씨가 연평도 부근 해역 조류의 방향을 잘 알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A씨의 월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씨는 “동생 신분증이랑 공무원증이 배(어업 지도선)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대연평도에 우리 군 경계 초소가 엄청나게 많은데, 실종자가 북측 해역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군이 동생의 자진 월북을 계속 주장하며 동생의 사생활 문제까지 언급하는 것은 자신들의 경계 실패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이씨는 “사건 경위를 밝혀야 하는 군이 무고한 시민을 계속 월북자로 몰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일을 막지 못한 군은 월북을 방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이상 동생을 월북자로 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또 통지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 측 연안에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 확인을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측 군인들의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 두 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정체불명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 조성됐다고 합니다. (중략)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고 이때 거리는 40~50m였다고 합니다.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합니다.” 즉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통지문에는 A씨가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 구명 조끼를 입은 A씨가 부유물에 탑승해 기진맥진한 상태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발견됐고, 같은 날 오후 4시 40분쯤 북한군이 표류 경위를 묻자 A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같은 날 오후 9시 40분쯤 고속정을 탄 북한군이 A씨에게 접근해 총격을 가하고 이후 A씨의 시신을 불태웠다고 발표했습니다. 연평도에 있는 우리 군 장비에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불이 포착됐다는 것이 우리 군의 설명입니다. 우리 군은 A씨가 실종된 날로부터 이틀 뒤인 지난 23일에야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북한에 이 사건 관련 전통문을 보냈습니다. A씨가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에게 최초 발견된 시점은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쯤입니다. 그런데 A씨는 같은 날 오후 9시 40분쯤 북한군의 총격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우리 군이 A씨를 발견하고서도 6시간 동안 아무런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청와대는 지난 25일 북한이 보낸 이 사건 관련 통지문을 공개한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 그리고 지난 12일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이는 비록 북한이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우리 정부와 북한이 소통 수단을 계속 열어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이씨는 “비공식적인 채널로 남북 간 연락이 가능했다면 그 6시간 안에 동생을 살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정부에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 아니냐”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발생 이후 군 또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청와대는 이날 북한에 이 사건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필요한 경우 북한에 공동 조사도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추가 조사에 응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런데 국내 정치권 일각에서는 북한이 전날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의 뜻을 담은 통지문을 보낸 일에 대해 의미가 있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한 사건입니다. 비무장한 민간인을 사살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도적 행위입니다. 북한군의 총격 등으로 사망한 우리 국민의 시신은 아직 수습되지 않았고, 이 사건의 진상은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이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사건입니다. 군은 북한의 만행을 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군인의 사명을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사건은 정치적 공방의 대상도 아니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가며 접근할 문제도 아닙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취중생] ‘라면 화재’ 형제의 비극…돌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취중생] ‘라면 화재’ 형제의 비극…돌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불이 나 중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의 안타까운 사고가 이번주 내내 화제였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후 비난의 화살은 곧장 아이 둘의 엄마인 30살 A씨를 향했습니다. 아동 방임으로 이미 3차례나 신고를 당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역시 법원에 아동과 A씨의 분리 조치를 요구할 정도였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그가 A씨가 장애 있는 큰아들을 폭행하고, 화재 전날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내용도 알려졌습니다. 물론 신체 폭행을 포함한 방임·방치 등 아동을 향한 폭력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되긴 어렵습니다. 한두번의 방임이나 사소한 ‘손찌검’이 쌓이고 쌓여 여행용 가방에 갇혀 목숨을 잃은 충남 천안 초등생처럼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비극을 막는 게 정말 A씨 혼자의 일이었을까요? 돌봄 공백이 낳은 비극, “남 일 아니다” 공감하는 이들 서울신문은 사건 이후 이들 가족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이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방치도 학대다… 위태로운 ‘코로나 아이들’>(https://url.kr/7GvOBP) 초등생 손자들을 혼자서 키우는 조손가정의 할아버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려면 일하는 수밖에 없어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했고, 또 다른 가정에서는 “부부가 맞벌이라 온종일 집을 비우는데, 아이들만 집에 있다가 비슷한 사고가 나면 어떡할지 걱정된다”고 했습니다.코로나19 이후 ‘돌봄’ 공백은 줄곧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전국의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 등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은 갈 곳을 잃었고, 학교 수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특히 최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학원은 물론 도서관 등 공공시설까지 모조리 폐관하며 아이들은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자연스레 벗어났습니다. 스무살 어린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아 줄곧 혼자 기르며 아이들을 방치하게 된 A씨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런 비극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A씨 같은 엄마만 ‘악마’로 볼 수는 없다고 합니다. 집에서의 대면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반적인’ 가정에서도 가족 간의 불화가 커지고, 아동 폭력이나 방임도 더 잦아진다는 겁니다. ‘독박 육아’ 심해졌는데…긴급 돌봄은 그림의 떡 아동 양육과 돌봄이 여성 한쪽에게만 쏠리는 고질적인 구조도 문제입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지난 5~6월 임금ㆍ돌봄 노동을 경험한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이 ‘독박 육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돌봄의 역할이 커졌지만, 경제 활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들이 택한 방법은 돌봄 대상을 방치하는 거였습니다. 추가된 돌봄 노동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으로 ‘돌봄 대상을 남겨두고 출근한다’는 답이 가장 많았습니다.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그만큼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학교와 어린이집 등이 문을 열지 않게 되자 정부는 ‘긴급 돌봄’ 서비스를 내놨지만, 초기부터 맞벌이와 외벌이 부부 간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이후에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며 긴급보육을 이용하더라도 꼭 필요한 시간동안만 이용하도록 최소화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왔습니다. 육아를 혼자 하며 노동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한 정책입니다. 이번 화재로 8살·10살의 어린 형제는 닷새 넘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계속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 갔더라면 급식을 먹었을 시간에, 코로나19 때문에 아이 둘만 집에 남겨졌다가 벌어진 비극적인 소식에 이웃들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정부도 취약계층 아동의 방임·학대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고 나섰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이 이제는 정말 볕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취중생]개천절·한글날 모이지 말라는데…집회신고 왜 내시죠?

    [취중생]개천절·한글날 모이지 말라는데…집회신고 왜 내시죠?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달 15일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전국으로 퍼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도 신규 확진자 수가 이번 달 3일부터 9일 연속 100명대를 넘었습니다. 방역당국은 제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연일 신신당부 합니다. 여러 사람이 좁은 곳에 한 데 모이는 집회도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달 3일 개천절과 9일 한글날,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겠다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매일 종로경찰서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집회신고서를 써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야당인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나서서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들은 코로나19 감염이 두렵지 않은 걸까요? 지난달 광복절 집회 관련 코로나19 확진자가 자그마치 564명(11일 기준)인데 말입니다.개천절 집회신고 78건, 한글날 18건 모두 금지통고 경찰청에 따르면 개천절 서울에서 집회를 하겠다고 291건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 인원이 10인 이상이거나 금지구역에 집회 신고를 낸 78건이 금지 통고됐습니다. 집회를 불허하고 강행하면 해산절차를 진행한다는 뜻입니다. 한글날에는 전날까지 7개 단체가 18건의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습니다. 양일 모두 가장 큰 규모의 집회를 신고한 단체는 자유연대와 천만인무죄석방본부(우리공화당)입니다. 자유연대는 개천절에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경복궁역, 광화문역,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등 7곳에서 각 2000명이 참여하는 집회 또는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했습니다. 이 단체는 한글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4건의 집회 신고를 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는 개천절에는 강남역, 청와대 앞, 서울역 등에서 각 3만명이 참여하는 집회 5건을 신고했습니다. 한글날에는 4000명이 모여서 청와대, 을지로입구역, 서울역 등을 행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집회 우선 활동단체, 신고 끊임 없이 한다” 두 단체에 코로나19 확산 시국에도 집회를 열려고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적과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도 있고 권력을 감시해서 고발하는 단체도 있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자유연대는 늘 집회를 우선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집회신고를 매일, 끊임없이 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이 걱정되니까 집회를 금지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시민단체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에 항의하겠다는 것”이라고 재차 설명했습니다. 집회 금지통고를 당해도 집회 신고 행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정부·여당, 집회신고 과도하게 매도” 인지연 우리공화당 최고위원은 “집회의 자유와 정당활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라면서 “집회신고를 하거나 취소하는 일은 여러 상황과 국민의 보건권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집회를 연 것도 아니고 집회 신고만 냈을 뿐인데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이어졌습니다. 인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집회 신고를 과도하고 강압적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단체가 실제로 개천절과 한글날에 집회를 강행할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자유연대는 “경찰 협조 없이 집회를 열 수는 없다”며 “우리는 어느 진보단체보다도 법을 잘 지켜왔다”고 했습니다. 우리공화당은 집회 개최 여부 등은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지만 지난 광복절 집회도 정부 지침에 따라 집회를 스스로 취소한 바 있습니다.“광화문에 모여 정부 심판하자” 움직임도 변수는 있습니다. 개천절과 한글날에 나와 정부를 심판하자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지지하는 8·15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11일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 종로서 경비과장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모든 집회를 금지하면서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반발했습니다. 최인식 비대위 사무총장은 “개천절과 한글날에도 광화문에 모여서 이 정부를 심판해야지 않겠느냐”며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자유는 침해받지 않아야 할 민주시민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나의 자유를 행사하려고 타인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해선 안 됩니다. 이 역병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집회도 잠시멈춤 안 되겠습니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취중생]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첫 주 돌아보니…적막한 서울의 밤

    [취중생]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첫 주 돌아보니…적막한 서울의 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지난달 30일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라 불리는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가장 대표적인 조치가 오후 9시 이후 식당·카페 등의 매장 이용 금지입니다. 9시 이후 홀은 문을 닫아야 하고, 포장 및 배달만 가능합니다. 밤 늦게까지 노는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 사람들에게 적막한 도시의 밤은 어색한 풍경입니다. 수도권의 사람들은 아직은 어색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첫 주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불 꺼진 음식점, 텅 빈 심야택시…곳곳에서 아우성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외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술과 안주를 판매하며 주로 심야 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족발집을 하는 김모씨는 “오후5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데 홀 운영을 아예 못 하게 됐다”면서 “아르바이트생도 이 기간 동안 나오지 말라 했다”고 전했습니다. 배달 영업을 잘 하지 않는 주점 등도 한시적으로 포장 판매를 도입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기간 동안 일정 금액 이상을 포장 주문 하면 10%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힘들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식당이 오후 9시에 문을 닫으면서 택시기사들도 심야 영업이 어려워졌습니다. 밤까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후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심야 시간대에 손님을 많이 받아야 하는 택시기사들은 입을 모아 이번 조치가 치명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을 그만두는 택시기사들도 늘었습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법인택시기사 박모씨는 “다른 택시기사들이 사납금도 못 채울 것 같으니 차라리 쉰다고 한다. 나도 사정이 마찬가지지만 오래 같이 일했던 법인 직원들과 정이 있어서…”라며 말을 잇지 못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4일 대정부·대국회 건의서를 내고 “근로자들은 사업장을 떠나고 경영진은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사 공멸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라면서 세제혜택, 마스크 무상 지급 등 각종 재정지원과 제도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이대론 아쉽다…비대면 모임 이어가는 사람들 밤이 아쉬운 시민들은 비대면 모임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라인 화상 모임 사이트 등을 이용해 오후 9시 이후에도 친구·동료들과 온라인 상으로 모임을 계속하는 모습입니다. 직장인 박모(28)씨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된 첫 날인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온라인 화상 모임 사이트에서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박씨와 그 친구들은 각자 마실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마련해 마치 한 자리에 모인 듯한 분위기를 냈습니다. 박씨는 온라인 화상 모임을 두고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면서 “그동안 서로의 집에 방문해본적이 없는데, 친구들의 방도 구경하고 각자 아끼는 물건을 자랑했던 점이 재밌었다”고 말했습니다.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춤, 캘리그라피 등 취미 수업부터 연사의 강연까지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모습입니다. 지난달부터 관심있는 분야의 강연을 듣고 있다는 이모(27)씨는 “강연을 화상 모임 사이트에서 듣고, 강연이 끝난 후 같이 들었던 사람들끼리 사이트에서 모임을 이어 갔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4일 정부가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1주일 더 연장하기로 결정하면서 시민들은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 이어갈 전망입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오는 6일까지였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는 13일까지로 연장됐습니다. 전국에 시행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도 2주 더 연장해 20일까지 유지됩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취중생]디즈니 사과 없어도 ‘홍콩 뮬란’ 지지 운동 계속된다

    [취중생]디즈니 사과 없어도 ‘홍콩 뮬란’ 지지 운동 계속된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우리는 폭력을 소비할 수 없습니다. 뮬란 상영을 반대합니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지난 7월 1일 서울 강남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본사 앞에서 20여명의 청년들은 영화 뮬란 불매운동을 선언했습니다. 디즈니에 뮬란 한국 배급 중단과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멀티플랙스 영화 상영관들에도 뮬란 상영 거부를 촉구했습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디즈니가 “홍콩 시민들을 비난했던 배우를 캐스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뮬란 역할을 맡은 배우 유역비가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나도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 홍콩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글을 썼습니다. 2달이 흘렀습니다. 디즈니는 사과하지 않았고, 영화 뮬란은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보이콧 운동에 참여한 박도형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는 “디즈니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영화관들에도 상영 거부 요청서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홍콩의 상황은 더 위태로워졌습니다. 비록 홍콩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던 빈과일보 사주 지미 라이와 ‘진짜 뮬란’으로 불리는 아그네스 차우 등은 지난 11일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최초로 기소된 통잉킷은 보석요청이 두차례 기각됐습니다. 홍콩 민주파 인사들은 지명수배된 상태입니다. 홍콩 보안법 38조는 외국인도 홍콩 밖에서 해당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정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홍콩 시민들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목소리를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등으로 집회를 열기 어려워지면서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12일부터 온라인 대자보 릴레이 운동 ‘누가 죄인인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자보 일부를 소개합니다. 성지수 “팬데믹은 그간 우리가 함게 목소리를 내왔던 방식들을 불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가장 연대의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 국가보안법이 통과되자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홍콩시민들은 노골적인 탄압과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죄인이 되고 말았다. 홍콩 시민들이 억압을 벗어나기 전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축소된 일상 속에서도 갖은 방법을 통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이녹 “지난 10일,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아그네스 차우가 홍콩 경찰에 체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차우는 하루만에 조건부 석방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국정 인사들과 연예인, 시민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아그네스 차우에게 연대의 뜻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가?” 이설아 “법률을 민주화를 틀어막는 독재 수단으로 악용 중인 중국 당국의 행위를 규탄한다. 또한, 한국인 역시 중국 당국에 의해 억압받을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홍콩 국가보안법의 시행을 수수방관하며 자국민 보호에 소홀한 한국 정부에게도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박도형 “불합리한 임금을 받으며 쪽방촌에 사는 홍콩의 청년들은 불평등에 맞서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직선제조차 없는 기만적인 제도에 홍콩의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책임자인 시진핑 정부는 이들의 당연한 요구에 귀기울이는 대신 공권력으로 이들을 탄압했다. 무고한 시민들이 체포되는 현실에서, 두려움 없이 이렇게 외치겠다.평등을 외친 것이 죄라면, 나도 수배하고 잡아가라! ” 한·홍 민주동행 “‘광복홍콩시대혁명’ 깃발을 가졌단 이유로, 홍콩의 자유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홍콩인들이 지금도 홍콩보안법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고 있다. 한국은 독재를 수 십년 전에 겪었고, 홍콩은 현재 진행형이다. 체제의 오류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법을 위반한’ 사람들이 죄인인가? 자신들의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그 ‘독재 집단’이 죄인인가? ” 이상문 “홍콩의 민주주의는 홍콩 시민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을 위한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나는 한명의 한국 시민으로서 그것을 믿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고초를 겪고 있을 홍콩 민주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의사를 보인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죄인들은 당신들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뒤에 서 있는 그들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취중생] 역대 최장 장마에 “기후위기 해결 나부터” 앞장서는 사람들

    [취중생] 역대 최장 장마에 “기후위기 해결 나부터” 앞장서는 사람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6월 24일 시작한 중부지방 장마가 15일로 53일째를 맞았습니다. 역대 최장기록(2013년 49일)을 진작 넘어선 기록입니다. 또 1973년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7월 기온이 6월보다 낮은 역전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때 이른 폭염에 이은 폭우와 장마. 한 번도 보지 못한 ‘재난’ 사태에 온라인에서는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다’라는 해시 태그가 등장했습니다. 이 해시 태그 운동을 시작한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은 “지구가 여섯 번째 대 멸종 단계에 진입했다”고까지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지구온난화로 장마전선 정체…역대 최장 장마 기상청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시베리아와 북극의 이상고온현상 때문입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찬 공기가 한반도에 밀려 내려와 머무르게 됐고, 덥고 습한 북태평양고기압과 만나 장마전선이 생긴 겁니다. 기후학자들은 “시베리아의 폭염은 인간이 만든 기후 변화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실제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 1∼6월의 시베리아의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5도 이상, 6월은 10도 이상 높게 나타났죠. 김 사무국장 등이 온라인에서 해시 태그 운동을 시작한 것도 이런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섭니다. 그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 전주에서 오프라인 시위를 계획했는데, 그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취소하는 ‘아이러니’가 생겼다”며 “기후위기는 지금 당장 닥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습니다.“나부터 환경보호” 채식 시작하는 사람들 이번 장마와 산사태 때문에 수천명이 터전을 잃는 걸 보며 사람들도 조금씩 생각이 바뀌는 걸까요. 전국이 물난리를 겪으며 “채식을 실천하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나부터’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건데요. 한 네티즌은 “이때까지 외면하던 문제를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채식을 하며 육류 소비를 줄이겠다”고 합니다. 이슬아 작가는 최근 한 칼럼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가 축산업에서 배출된다고 지적하며 “육식은 지구의 에너지 자원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빠르게 소진하는 생활습관이다. 지나친 육류 섭취 또한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누려 온 풍요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했죠.일반 대중의 시선도 이전까지 채식하는 이들을 ‘까다로운 사람’ 또는 ‘예민한 사람’ 정도로 치부하던 것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김 사무국장은 채식을 실천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는 등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개인이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는 것만으로는 이미 심각한 온난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탄소배출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하고 전 지구 차원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인간 문명은 날씨와 계절, 자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며 활짝 꽃피었죠. 하지만 최근의 심각한 기후 변화로 예측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기상청이 하루 걸러 하루씩 오보를 낸다며 ‘오보청’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처럼요. 근본적으로 지구온난화의 가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재난은 계속된다는 게 기후 전문가들의 경고인데요.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는 이들의 말에, 이젠 정말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취중생] 악성 댓글, 댓글창만 없애면 될까···‘악플도 범죄’ 인식 필요

    [취중생] 악성 댓글, 댓글창만 없애면 될까···‘악플도 범죄’ 인식 필요

    연예뉴스 이어 스포츠뉴스도 잠정 중단한 포털사이트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지난 7일 네이버와 카카오, 네이트가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자 배구선수 출신 고유민씨의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으로 악성 댓글이 거론된 뒤, 스포츠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댓글 폐지’의 목소리를 받아들인 겁니다. 앞서 이미 포털 사이트들은 연예 뉴스 댓글창을 없앴습니다. 해묵은 골칫거리인 연예인을 향한 악성댓글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놓은 조치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연예뉴스에는 댓글을 달 수 없으니 악성댓글이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악플러들은 연예인들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또는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입니다. 정말 댓글창을 없애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의문을 갖게 되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댓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연예뉴스에 이어서 스포츠뉴스 댓글 서비스도 중단 지난 7일 포털 사이트들은 스포츠뉴스의 댓글 서비스 중단을 알렸습니다. 네이버는 이달 중 댓글 기능이 폐지될 예정이고, 카카오는 이날 오후 4시부터 댓글 기능이 폐지됐습니다. 네이버 측은 “일부 선수를 표적으로 명예를 훼손하고 비하하는 댓글이 꾸준히 생성됐다”면서 “모니터링과 기술을 강화했지만 최근 악성 댓글 수위와 그로 인해 상처받는 선수들의 고통이 간과할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카카오 역시 “댓글 서비스 본연의 취지와는 달리 스포츠뉴스 댓글에서는 특정 선수나 팀, 지역을 비하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악성 댓글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그간의 고민과 준비를 바탕으로 댓글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네이트 역시 “일부 댓글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께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죠.앞서 지난해 10월 카카오는 포털 사이트 중에 가장 처음으로 연예뉴스 댓글을 폐지했습니다. 계기는 연예인 설리씨의 극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네이버는 올 3월 연예뉴스 댓글 폐지와 댓글 작성 이력 공개, ‘인공지능(AI) 클린봇 2.0’ 필터 출시 등으로 악성 댓글에 대처해 왔습니다. 물론 포털 사이트 등에 따르면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네이버는 올 1월 대시 6월에 규정을 위반해 삭제된 댓글 건수는 63.3% 줄었고, 같은 기간 비공감 클릭은 21.5%, 신고는 53.6%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SNS 계정을 인증하고 로그인하는) 소셜 로그인 방식을 도입하는 경우, 자신의 정체성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에 악플이 줄어들 수 있다”는 구태언 법무법인 린 테그앤로 부문장의 설명처럼 기술을 통해 악성댓글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악성댓글 고통 호소하는 피해자들은 아직도 많다 사실 악성댓글은 해묵은 문제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악성댓글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양정애 선임연구위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1%가 설리씨나 구하라씨 등 연예인들의 비보에 악성댓글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습니다.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답은 72.6%, ‘약간 영향을 미쳤다’는 답도 25.1%나 됐습니다. 또 당시 연예 외에 정치, 사건·사고 등 다른 섹션 댓글을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사람도 55.5%에 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은 많습니다. 최근 연예인 김희철씨는 악플러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고소인 자격으로 조사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때로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악성 댓글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악성 댓글도 범죄”란 인식 필요해 전문가들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바람직한 댓글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양형 기준을 높인다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정도로 규제를 가한다거나 하는 식의 방식으로는 악성 댓글을 막을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악성 댓글이 범죄라는 인식을 시민들이 분명하게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단순히 양형을 높일 것이 아니라 악플러들이 처벌을 받을 때 사이버 시민 의식과 같은 교육을 함께 수강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도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내가 무심코 쓴 댓글 한 줄’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댓글 문화가 더욱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취중생]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끝나지 않은 노근리의 비극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2020년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국내 미군 관련 학살 사건 중 한미 양국이 함께 진상조사에 나선 유일한 사건이자 미국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유일한 미군 관련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사건의 당사자인 피해자가 중심이 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노근리에 70주년이란 특별한 숫자만큼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도로 열리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노근리에 방문한 것입니다. 노근리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 정부가 드디어 노근리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씻을 수 없는 한국사의 비극…노근리 사건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마지막주 미군의 공중 폭격과 사격에 의해 한국 민간인 수백명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희생자만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자 13명, 후유장애인 63명)입니다. 노근리 사건은 1994년 사건의 피해자인 정은용(2014년 사망)씨가 펴낸 장편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정씨의 소설을 읽은 미국 AP통신 기자가 1999년 이를 특종 보도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노근리 사건을 주목하게 됐습니다. 미국 언론들이 연일 노근리 사건을 주요 뉴스로 다루자 미국 정부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내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진상규명을 지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움직이자 뒤이어 한국 정부도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섰습니다. 2001년 1월 12일 한미 양국은 드디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에서 미군이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 입힌 사실은 인정하나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진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이 직접 민간인 학살을 인정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지만 미국이 학살의 책임을 부정하면서 성과는 절반에 머물렀습니다. 같은 날 클린턴 대통령은 유감표명 성명서와 함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서에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희생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 형식으로 총 400만 달러 규모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마치 노근리 피해자들이 미국의 사과를 받고, 보상도 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러나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교묘히 적은 추모비와 장학금의 대상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국전쟁 동안 사망한 모든 민간인(all other innocent Korean civilians killed during the war)’을 대상으로 적었습니다. 노근리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노근리 사건 하나로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모든 미군 관련 사건을 해결하고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정은용 씨의 아들인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노근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노근리와 달리 진상조사조차 하지 못한 다른 미군 관련 사건 피해자들이 진상을 규명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됐을 것”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내놓은 400만 달러는 2006년 미국이 전부 다시 가져갔습니다. “피해자 의사 반영하지 않은 합의는 무효” 정 이사장은 미국이 내놓은 대책이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피해자의 뜻과는 다른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위안부 합의)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지난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습니다. 같은해 12월 TF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 보고서의 발표에 따라 입장문을 내고 “위안부 합의는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면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밝힙니다. 정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미국이 내놓은 대책에도 피해자 중심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은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피해자 중심 접근을 결여했다고 바라봤듯이 노근리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과거사 소송 시효도 문제입니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2015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지만 현재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1·2심 모두 패소하고 대법원에 계류하고 있습니다. 당시 법원은 노근리 사건의 시효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종료일인 2010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뒀습니다. 그러나 노근리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등장 이전부터 별개의 특별법에 따라 진상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노근리 사건 등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노력으로 선제적인 진상 조사가 시작된 과거사 사건들은 오히려 손해배상 소송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노근리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사건(거창 사건)의 변호인이자 거창 사건의 유족인 임재인 변호사는 “국가가 과거사 소멸 시효를 둔 것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노근리 사건, 거창 사건 등 별개의 특별법이 있는 사건들이 소멸 시효가 모호해지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사 문제에 불을 붙여 다른 사건들이 진상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포문을 연 사건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손해배상에 난항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책임 외면해온 한국 정부…학살 70년만에 노근리에 첫 발 노근리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 국가는 미국이지만 한국 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노근리 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8군이 내렸던 “언제 어떠한 피난민도 방어선을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피난민 소개 및 이동 통제에 관한 지침이 배경이 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침은 전날인 7월 25일 임시 수도였던 대구에서 한국 정부, 미 대사관, 국립경찰, 유엔, 미8군 대표자들이 모여 개최한 회의에서 결정됐습니다. 게다가 한국전쟁 초기 피난민을 통제할 책임이 있는 한국 정부가 피난민 통제정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 한 책임도 있습니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동안 노근리 사건을 외면해 왔습니다. 노근리 사건이 미군 관련 사건으로 유감 표명을 받은, 한국 역사상 의미가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미국의 눈치를 보기 바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4년 제정된 노근리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 회복 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고, 주관 부처는 행정안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위원장인 국무총리나, 행안부 장관 누구도 노근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노근리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매년 노근리 유족회 등이 주관하던 노근리 사건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열리고 진영 행안부 장관이 노근리에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공원에서 노근리 70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진 장관과 더불어 이시종 충북지사, 박세복 영동군수, 양해찬 노근리 유족회장 등 100여명이 함께했습니다. 진 장관은 추모사에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 오신 유족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번 희생자 영전에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코로나19로 행사는 축소됐지만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취중생]지도부 사퇴한 민주노총…노사정 대화 3개월 돌아보니

    [취중생]지도부 사퇴한 민주노총…노사정 대화 3개월 돌아보니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24일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김 위원장은 사퇴의 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의안에는) 해고 금지나 총고용 보장이라는 추상적이거나 과거 레토릭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필요한 구체적 대안인 고용유지를 확보하는 내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합의안에는 정부가 고용유지 의지를 보이기 위해 예산과 정책 집행과정에서 구체화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종 합의안에는 ‘고용 유지를 위한’, ‘고용 유지를 전제로’라는 부분이 28번 반복된다.” 이는 3개월 전 노사정 대화를 앞뒀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4월 12일 노사정 대화 출발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총고용을 유지하자는 취지가 뒤집히고 있다”면서 “‘코로나19 노사정 비상협의’ 의제와 관련해서 해고 금지, 총고용 보장 논의부터 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고용유지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에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마 김 위원장은 이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을 다시금 강조하려고 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난 4월 사회적 대화를 제안할 당시 민주노총 집행부의 요구가 현실성이 떨어졌음을 인정하는 셈이 됐습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지만 정작 대화에 참여할 준비는 미흡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22년만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왜 결렬됐나 사회적 대화가 시작할 때 실업자가 이미 100만명이 넘었기에 골든타임은 지났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5월까지 민주노총은 내부 요구를 정리하는 데에서도 진척이 더뎠습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약 4페이지로 요구를 추려낼 때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수십페이지에 달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적 대화는 민주노총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안 가 본 일이다.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지, 어떤 내용으로 할지, 마무리 등 곳곳에 넘어야 할 산들이 매우 많았다고 본다. 집행부가 매번 철두철미하게 소통을 하는 데 일정한 집행력의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동반 사퇴한 김경자 수석부위원장은 “단체 협약이나 임금 협약에서처럼 구체적인 합의가 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가)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입장도 있었다. 반면 선언적 수준으로 ‘노력한다’는 단어가 추가 교섭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는 입장 차이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달 말 노사정 부대표급 회의가 연달아 이어지면서 잠정 합의안이 마련되는 데는 성공했지만, 뚜껑이 열리자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반발이 거셌습니다. 지난달 29일쯤부터 내부 활동가들에게 잠정 합의안이 공개되자 내부 동요가 적지 않았습니다. 미흡한 소통이 정파 이견 증폭시켜 당시 한 활동가는 “우리 노조 위원장은 잠정 합의안에 동의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합의안에 반대한다. 지금 합의안으로도 노조 가입률이 높은 사업장은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 활동하는 입장으로서는 ‘고용 유지를 위해 (기업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 이에 적극 협조한다’는 문구가 들어가면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독소조항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반면 현장파들의 우려에 대해 시민단체 ‘사회진보연대’는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는 항공업을 비롯해 다수 업종에 이전 상태로 복구할 수 없을 만큼의 타격을 입혔다. 일시적 해고금지가 아니라 영구적 해고금지를 도입한다고 해도 일자리를 보존할 방법이 없다……국유화된다고 해도 항공기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항공기에서 일하는 노동자 역시 강력한 투쟁을 한들 이전처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현장파 의견그룹의 주장은 평시에, 그것도 지불능력이 있는 사용자를 상대로 한 투쟁을 코로나19 정세에 그대로 가져와 비판의 논거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코로나19로 항공업 등 다수 업종에 무급 휴가나 해고자나 나오자 현장 투쟁을 이어온 ‘현장파’로서는 ‘적극 협조한다’는 수준의 합의문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노동 현장에서는 22년 만의 ‘선언적 합의문’ 대신 구체적인 구제책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대화가 뒤늦게 시작된 점이 새삼 뼈아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지난 1일 반대파들이 민주노총으로 집결하면서 중앙집행위원회는 열리지 못했고 노사정 대표자 합의문 체결식은 취소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중앙집행위원회에서도 반대의견이 더 커졌습니다. 집행부는 합의문을 대의원대회 표결에 부쳤습니다. 그러나 대의원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난항을 겪었습니다. 이날 백석근 사무총장은 “지도부가 대의원대회를 제안한 것부터 반대가 많았다”며 “대화 중에는 가맹 산별조직들과 안건 설명 간담회를 가지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일부만 성사됐고, 절차 밖 논쟁이 더 컸다”고 했습니다. 김명환 “민주노총 성장통”…“신뢰 깨진 민주노총”대의원대회는 노사정 합의에 반대 결정을 내렸고 김명환 지도부는 사퇴했지만 민주노총의 조직 내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연말에는 위원장 선거도 치러야 합니다. 반대파는 이날 합의안에 찬성한 6개 산별노조 위원장이 배석한 데 대해 “지도부가 마지막까지 정파 가르기를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논의 과정에서) 양측이 논리적 대립이 아니라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으면서 한 조직에서 지켜야할 선을 넘었다”면서 “정상적인 구조면 한 표라도 많은 결과를 얻으면 상대방이 존중을 해야하지만 신뢰가 깨진 상태”라고 봤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이날 김 위원장은 “한달 동안 과정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 통증을 앓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해서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민주노총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정부도 민주노총의 고민과 변화의 의지를 함께 이해하고 이어가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노사정 합의문 후속작업은 어떻게 6개 노사정 주체가 참여하는 22년만의 노사정 합의는 불발됐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민주노총은 앞으로 내부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까요. 대화와 투쟁 중 어떤 노선을 고르게 될까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까요.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정파 구도를 돌파하기 위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의 프레임에 끌려간 점은 아쉽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나. 전국민 고용보험제 등 후속과제는 자칫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보다 정교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첫 소방헬기 이름은 ‘까치’… 소방청, 항공대 역사 공개

    첫 소방헬기 이름은 ‘까치’… 소방청, 항공대 역사 공개

    대형 재난과 인명구조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헬기는 언제부터 운영이 됐을까. 소방청은 23일 국립소방박물관 설립 추진을 계기로 소방헬기 도입과 소방항공대 창설 발자취를 공개했다. 국내 최초의 소방항공대는 서울시에 설치됐다. 1983년 4월 항공대 설치 조례를 제정했지만 실제 소방헬기를 도입해 운항을 시작한 것은 1979년 12월 초부터였다. 미국 휴즈(현 보잉)가 제작한 500MD 기종 2대를 들여와 각각 ‘까치 1호’와 ‘까치 2호’로 이름을 붙였다. 까치 1·2호는 최고시속 280㎞, 항속거리는 509㎞로 최대 5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1980~1990년대 중구 다동 롯데빌딩 화재현장, 풍납동·성내동 수해, 성수대교 붕괴, 아현동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공중지휘를 맡았다. 한대는 1996년 8월 항공방제 작업 도중 서울 중랑천변에 추락해 폐기처분됐고, 다른 한대는 2005년 8월 항공대원들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퇴역해 서울보라매시민안전체험관 야외에 전시돼 있다.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 [취중생] 상사가 비서 괴롭힌 이유, 웃지 않아서였다

    [취중생] 상사가 비서 괴롭힌 이유, 웃지 않아서였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시장의 단순한 실수다’ 혹은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고 해 피해자가 더이상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미경 소장이 지난 13일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공개한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피해자 지원단체들과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비서로 일한 피해자에게 음란한 문자 메시지와 사진을 보내며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혔고 집무실에서 피해자를 성추행했습니다. 최근 4년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박 전 시장의 가해행위는 2018년 ‘미투’ 운동이 정치·문화·예술·교육 등 사회 각계 각층으로 퍼져나간 이후에도 계속된 것입니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또 지난 16일 피해자가 서울시에서 박 전 시장의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기쁨조’ 역할을 강요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장이 마라톤을 할 때 여성 비서가 오면 기록이 더 잘 나온다”라는 말을 하고, 박 전 시장으로부터 결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피해자에게 박 전 시장의 심기 보좌 혹은 ‘기쁨조’ 같은 역할을 사전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쯤에서 ‘비서’란 어떤 일을 하는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세계비서협회(IAAP)는 비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영문을 국문으로 번역한 정의)하고 있습니다. “비서는 숙달된 사무기술을 보유하고, 직접적인 감독 없이도 책임을 수행할 능력을 발휘하며, 솔선수범의 자세와 분별력을 갖고 주어진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간부적 보좌인이다.” 세계비서협회가 정의하는 비서 수칙들 중에는 상사가 사소한 일로 방해받지 않도록 한달지 상사의 습관과 요구사항, 성격 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등 상사의 심기 관리와 관련한 수칙도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수행하는 업무와 관련한 다양한 지식과 숙련된 기술, 정확한 표현력과 이해력을 요구하는 수칙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상사들은 여성 비서에게 비서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성 역할을 강요합니다. 남성 상사가 여성 비서에게 성적으로 접근하고, 웃음을 강요하고, 업무 범위를 정하지 않은 채 사적인 심부름을 지시하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여성 비서에게 성 역할 강요 이로 인해 비서들은 직장 내 성폭력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또는 노동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서울신문은 지난 17일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를 통해 ‘비서에 대한 상급자의 갑질’ 제보 사례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제보자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 발생 일시와 지역, 직장 이름, 제보자 이름과 나이 등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비서로 일한 A씨는 어느 날부터 업무에서 배제됐습니다. 회사 대표는 직원들에게 ‘A씨가 일을 똑바로 못 한다’는 취지의 말로 A씨를 험담했고, A씨를 빼고 다른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 등 A씨를 따돌렸습니다. 또 A씨가 하던 일을 다른 직원에게 맡겼고, A씨가 업무상의 이유로 전화를 해도 연락을 안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대표가 A씨를 괴롭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얼굴 표정 때문이었습니다. A씨는 “대표가 나를 가리켜 ‘평소에 웃지도 않고 표정이 안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어떻게 항상 미소를 유지하고 있을 수가 있나”라고 말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A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만큼이나 극심한 취업난에 일자리를 새로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고 A씨는 말합니다. B씨는 상사의 사적인 심부름에 몸살을 앓았습니다. 상사는 자신이 집에서 만들어 먹을 음식 재료를 B씨에게 사오도록 했습니다. 자신이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자신이 입을 옷을 세탁하는 일도 스스로 하지 않고 모두 B씨에게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B씨의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상사의 그날 기분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C씨는 상사의 가족을 수행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상사 배우자가 어느 모임에 갈 때도 데려다줘야 했고, 때로는 상사의 아들·딸을 ‘모시러’ 가야만 했습니다. C씨는 휴일에도 쉴 수 없었습니다. 그의 상사는 C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말과 공휴일마다 골프를 치러 다녔습니다. 이렇게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C씨는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 내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가해자 개인의 일탈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업무상 위력이 작용하는 직장 내에서의 권력 구조 속에서 하급자는 상급자로부터 성폭력과 갑질 등 각종 인권침해를 당해도 인사상 불이익, 나쁜 소문 등이 두려워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또 직장 동료들도 같은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동료들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상사가 눈빛만으로도 문제를 은폐할 수 있는 위계 구조 속에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이 발생합니다.여성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위협한다 우리는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 피해자에게 ‘4년 동안 뭘 하다 이제 와서 말하느냐’, ‘왜 진작 일을 그만두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2차 가해는 책임을 져야 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잘못된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가 이제 겨우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피해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질문입니다. 특히 ‘왜 그만두지 않았냐’는 식의 질문은 피해자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노동은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은 “시장의 ‘기분 좋음’은 상식적인 업무 수행이 아닌 여성 직원의 왜곡된 성 역할 수행으로 달성됐다”면서 “이는 사실상 성차별이며, 성폭력을 조장·방조·묵인하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박 전 시장 사건에서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점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고,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피해자에게 성적인 접근을 하고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박 전 시장 사건은 박 전 시장의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검찰이 제대로 기소하고, 법원이 제대로 처벌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성폭력’입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