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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인3역 짐 캐리 좌충우돌 팬터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감독 브래드 실버링)은 ‘해리포터’시리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팬터지 영화다. 알록달록한 꼬마인형들이 등장해 익숙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도입부는, 이 영화가 분홍빛 솜사탕처럼 말랑말랑한 영화가 아님을 재치있게 보여준다. 의문의 화재로 졸지에 고아가 된 삼남매 바이올렛, 클라우스, 서니. 부모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푼도 쓸 수 없게 된 이들은 후견인이 되어줄 먼 친척 올라프 백작을 만난다. 가여운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대해주면 좋으련만 사악한 올라프 백작은 돈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을 없애려 한다. 그러나 상대가 아이들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 게다가 보들레어가의 삼남매는 알고 보니 저마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천재였다. 무엇이든 발명해내는 발명가 바이올렛, 엄청난 독서량으로 모르는 게 없는 클라우스, 그리고 한번 문 건 절대 놓지 않는 막내 서니. 이쯤 되면 변장술은 뛰어나지만 두뇌는 허술한 올라프 백작과 삼남매의 대결은 위험한 수준을 넘어 치명적인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정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미술은 단연 돋보인다. 호수 한쪽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조세핀 숙모집이나 온갖 파충류들이 득시글거리는 몽티 삼촌의 저택은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제작진은 상상력의 최대치를 표현하기 위해 80여개의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짐 캐리가 올라프 백작을 비롯한 1인3역으로 변신의 귀재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고, 메릴 스트립은 신경과민증 조세핀 숙모역으로 열연했다.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는 극중 화자, 레모니 스니켓의 목소리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주드 로다. ‘스텝맘’으로 낯익은 클라우스역의 리암 에이켄을 비롯해 세 아역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눈길을 끈다. 원작은 현재 11권까지 출간됐고, 전세계에서 2700만부가 팔렸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소설가 이문구의 고향 ‘보령’

    [문학이 머문 풍경] 소설가 이문구의 고향 ‘보령’

    “바깥 마실꾼을 안이서 워치기 알유.내외허는 댁인디.” 이문구(1941∼2003)의 대표적 소설 ‘관촌수필’ 가운데 ‘행운유수(行雲流水)’편에서 옹점이가 가택수색을 나온 순경에게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김원일이 경상도 말을,조정래가 전라도 말을 빛냈다면 이문구는 충청도 말을 가장 빛낸 작가다.‘관촌(冠村)’이란 곳은 충남 보령시 대관동에 있는 자연부락으로 이문구의 고향이다. ●우울한 유년시절 그의 고향에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한두사람 있었지만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생전에 작가와 자주 어울렸던 한국문인협회 보령시지부장 문상재(50)씨는 “이 선생이 살아계실 적에 ‘어린 시절이 우울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책이 유일한 친구였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작가의 부친은 남로당 간부였다.문씨와 가까워진 것도 동병상련의 내력이 있어서다.문씨는 “1989년쯤 선생과 우연히 만나 내 외삼촌 얘기를 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않고 듣고만 있더라.”면서 “나중에 선생이 ‘내 아버지 얘기여서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작가의 부친은 한국전쟁 즈음 보령 일대를 책임진 남로당 지구당위원장,문씨의 외삼촌은 부위원장이었다고 했다. 위원장이 되기 전엔 사법서사를 했다고 한다.문씨는 “선생은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많이 따랐다.”고 작가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해줬다.이 얘기는 작가의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관촌수필’에 잘 묘사돼 있다.8개 단편으로 된 이 연작소설은 ‘일락서산(日落西山)’이란 첫 단편에서 할아버지 얘기를 한다. 한국전쟁 때 작가는 아버지와 형 둘을 잃었다.중학교 때 고향을 떠난 이문구는 오래동안 고향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문씨와 만난 것은 간이 좋지 않아 3년간 고향에 내려와 쉬던 때였다.그때 보령시 청라면 청라저수지 부근에 허름한 기와집을 한채 샀다. 작가는 간간이 서울에서 내려와 1주일 이상 이 집에 머물며 ‘매월당 김시습’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을 썼다.문씨는 “서울에서 문인단체 활동을 왕성히 하다 보니 소설을 쓸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며 “내려올 때는 타자기를 한대 갖고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겉은 무뚝뚝…속은 따뜻 문씨에게 “살기 위해 김동리 문하생이 됐다.”고 했다는 작가 이문구.반공이데올로기시대에 이른바 문단의 대표적 우익인사로 김동리가 꼽힌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내성적이라고 할 만큼 무뚝뚝했지만 속은 무척 따뜻했다.”고 이문구를 평했다.보령에 있는 집필실에 혼자 머물면서 조그만 텃밭에 심은 배추와 열무 등을 속아서 데친 뒤 서울로 가져가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작가의 미망인 임경애씨는 “무척 자상했다.”고 말했다.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줬고,엄격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자식은 자유롭게 키웠다 한다.가족간의 문제도 처자식 의견을 모두 수렴해 풀어가는 스타일이었다 한다. 한해에 1∼2번 대천에 내려오던 이문구는 부인과 동행한 날에는 문씨 부부와 인근 성주산 냇가로 가 다슬기를 잡으며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대천에서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허름한 집필실과 옛 생가 앞에 있는 안내문뿐이다.생가 바로 앞까지 펼쳐졌던 갯벌은 30여년 제방이 쌓여져 대부분 논밭으로 변했다. 최근 문씨와 권영민 서울대 교수,소설가 김주영 등이 생가 터를 매입,‘이문구문학관’을 세우기 위한 추진위를 구성하려고 적극 활동하고 있다. ●만인이 다 친구다 “글 쓰는 이는 어디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평소 말했고,김시습을 쓸 때 ‘네가 뭘 안다고‘ 호통치는 것 같아 부여 무량사까지 가서도 그곳에 있는 김시습의 영정을 쳐다 보지 못했을 정도로 글쓰기를 진정 외경했던 작가였다. 우리말 특유의 가락을 잘 살려낸 유장한 문장으로 만연체,구어체,토속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기도 했다.김동리는 ‘현대문학’에 그를 추천하면서 “한국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를 얻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문인협회 이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 보수와 진보 문인단체 모두에서 활동을 했고,모두와 어울리며 모든 구듭을 친 문단의 일꾼이었다. 위암으로 작고한 그의 장례도 이례적으로 전 문학계의 합동장으로 치러졌다.화장 후 그의 유골은 유언대로 어릴적 놀던 생가 뒷동산 소나무밭에 뿌려졌다.한국전쟁 때 숨진 아버지와 형들의 묘가 없는 것도 화장을 한 이유일 게라고 주변 사람들은 추측했다. 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이현세의 만화경] 껄껄껄 웃다보면

    [이현세의 만화경] 껄껄껄 웃다보면

    새해가 왔다.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그래도 우리는 또 한해를 살아야 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인생은 카드게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카드게임을 시작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똑같은 장수의 카드를 받는다. 하지만 카드내용은 제 각각이다. 처음부터 포 카드가 있는가 하면, 누구는 숫자가 같든지 무늬가 같아서 신나게 게임을 시작하지만, 숫자도 제 각각이고 무늬도 제 각각이면 이 게임을 어떻게 해야 될지 난감해진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기선택이 아니다. 어느 날 이 세상에 던져진다. 재벌 2세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은 사람, 얼굴이 잘 생긴 사람,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달동네에 지지리도 못생긴 얼굴에 두뇌까지 평범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인생은 공평한 게임이 아니다. 단지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받은 카드는 참담한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일본순사에게 총살당하셨고 할머니는 세 아들을 힘들게도 키우셨지만 만주에 계시던 둘째 삼촌이 6·25때 인민군으로 고향을 다녀간 탓에 빨갱이 집안이 되어서 큰아버지는 포항헌병대에서 생매장당하셨다. 잘난 유교적 관습에 따라 나는 젖떼자마자 큰집에 양자로 갔고 9살 때 아버지마저 누전사고로 돌아가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두 어머니가 힘들게 집안 살림을 꾸려 가셨으니 내게도 고생문이 훤히 열렸다. 그나마 재주라고는 그림 그리는 재주 하나뿐이었는데 색약이라서 미대지망도 할 수 없었고 연좌죄까지 걸려 있었으니 그야말로 백수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게임은 계속해야 되는 것이 삶이다. 카드게임에 high & low 라는 게임이 있다. 가장 높은 카드와 가장 낮은 카드가 나누어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처음 카드를 받아서 높은 카드로 진행할지 낮은 카드로 승부할 것인지를 결정해서 레이스를 하는 것인데 판단이 안 되면 레이스를 하는 도중에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만들기 위해, 또는 유리한 쪽으로 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으로 버려야 될 카드와 기다리는 카드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은 철이 들면서부터 바로 이 게임을 하게 된다.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 대학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간다면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어떤 직장을 가질 것인지, 결혼은 언제, 누구와 할 것인지, 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선택의 연속이다. 이 매 순간의 선택이 결국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나도 결국 평생을 내 스스로 선택해 왔다. 미대를 못 가도 대학은 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고 만화를 그릴 것인지 직장을 선택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방황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헤매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선 그때마다 나름대로 자신 있게 선택하며 내가 갈 길을 꿋꿋하게 걸어왔다. 무엇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일까. 그 힘의 원동력은 내가 가진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색약으로 미대 진학이 좌절되었을 때 “이것은 신이 내게 만화를 그리라는 계시다.”라고 건방을 떨었고, 가난이 힘들었던 습작시절에도 “가난도 3대, 부자도 3대라 했거늘 우리집은 3대가 가난했으니 나는 분명 부자가 된다.”라고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참담한 내 카드에서 유일하게 에이스카드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낙천적인 내 성격이었다. 어차피 어디서 왔는지 모르면서 태어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라면 허겁지겁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이왕 시작된 게임을 껄껄껄 웃으면서 해 보자. 신명나게 놀다 보면 비 개고 맑은 날도 오는 것이 인생사다.
  • [책꽂이]

    |실용| ●웃음의 힘(토마스 홀트베른트 지음, 배진아 옮김, 고즈윈 펴냄) 웃음과 유머에 대한 자료와 다양한 연구 결과, 최신 유머정보까지 웃음이 필요한 삶과 비즈니스를 위한 유머 교과서.1만 1800원. ●머리가 좋아지는 창의力 쑥쑥 만화그리기(박무직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어린이들이 부담없이 따라 그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만화 그리기 방법.8500원.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조영탁 지음, 휴넷 펴냄) 위대한 경영자와 학자들의 경험과 통찰력이 담긴 말과 글들.1만 2000원. ●베개 하나로 돈방석에 앉은 남자(황병일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 신용불량자에서 170억원대 자산가가 된 한 CEO의 성공 과정.1만 2000원. ●손님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게 만들기(고다 유조 지음, 신정란 옮김, 예문 펴냄)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사업, 내 가게를 위한 핵심 매뉴얼 100가지.9500원. |유아·아동| ●눈의 여왕(안데르센 지음, 김서정 옮김, 웅진닷컴 펴냄) 단순한 번역동화가 아니라, 안데르센 원작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재해석한 그림책. 악마의 거울조각이 박혀 포악하게 변해 버린 소년이 우정 덕분에 순수한 마음을 되찾는 줄거리.5세 이상.8500원. ●내 꼬리는 안테나(야마구치 기키 지음, 이끼북스 펴냄) 앙증맞은 강아지 사진들이 보드라운 손끝의 촉감을 생생히 전해 주는 감성교육 사진집. 꼬리, 발바닥 등 털북숭이 강아지의 여러 신체부위들에서 다른 질감의 감촉을 상상하게 된다.5세까지.4800원. ●우체부 슈발(오카야 고지 지음, 김창원 옮김, 진선 펴냄) 얼간이라 놀림받으면서도 33년을 한결같이 프랑스의 명물 ‘꿈의 궁전’을 지어올린 우체부 슈발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동화.6세 이상.8000원. |초등·청소년| ●해티의 지난 여름(앤 마틴 지음, 한정아 옮김, 아침나라 펴냄) 12세 소녀 해티와 정신분열증을 앓는 외삼촌 아담이 나누는 인간애와 희망에 초점을 맞춘 어린이 소설. 인생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쩌나, 불안한 소녀를 통해 우회적으로 인생을 성찰해 보게 만든다.2003년 뉴베리상 수상작. 초등생.8000원. ●나무의 비밀(알렝 니엘 퐁토피당 지음, 나선희 옮김, 사계절 펴냄) 나무의 수면시간 등 단순한 궁금증에서부터 산불의 열기로 싹을 틔우는 나무의 감춰진 속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숲의 정보를 알려주는 생태교양서. 나무그림에 해설이 다닥다닥 붙어 읽는 재미를 보탠다. 초등저학년.8000원.
  • “가족해체 재촉 뒤틀린 선택” WP ‘한국 기러기아빠’ 특집

    한국의 중산층 부모들이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와 교육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감수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현상이 결국은 가정의 해체를 재촉하는 ‘뒤틀린 선택’이 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9일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이 인터넷 강국 등 선진국 면모를 갖추고는 있지만 이면에는 직업과 사회적 지위, 배우자 선택까지 성적으로 좌우되는 풍토 때문에 적지 않은 가장들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1면과 14면,15면 등 3개면에 걸쳐 강원랜드에 재직 중인 김기엽(39)씨가 혼자 지내는 강원도 태백시의 아파트와, 부인 김정원(38)씨가 세 아이와 함께 머물고 있는 미국 볼티모어 남쪽 엘리컷시의 집을 오가며 기러기 가족의 해체상을 집중조명했다. 남편 김씨는 국내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네바다 대학을 다니다 이 곳에서 미국 시민권자인 부인 김씨와 만나 결혼했다. 기사는 국내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던 부인 김씨가 ‘교육이민’을 결심하게 된 과정, 아이들의 적응 과정, 남편 김씨의 외로운 생활, 이 가족의 짧은 해후 등을 다각도로 다뤘다. 현재 중학교에 다니는 장녀 한나는 국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자신에게 밀려 2등을 한 친구가 집에서 야단맞고 울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압박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면서 “미국에서의 1년이 내 생애 최고의 해”라고 흡족함을 표시했다. 한나는 유학 1년 만에 외국인 교습반을 졸업하고 방과 후에는 밴드 활동과 드럼 교습 등을 받는 등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유진은 세 아이 중 가장 아빠를 보고 싶어하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국 아이들하고만 사귀며 수업 중에도 한국책을 꺼내드는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인 김씨도 냉장고 깜박이등을 고친 후 “봐요. 남편이 필요없어요.”라고 농담했지만, 남편 없이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할 때면 눈망울이 젖어들었다. 특히 신문은 미국에서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보낸 김씨 가족의 이별 장면을 주시했다. 김씨는 소원해진 관계 탓에 자신이 아빠나 남편이기보다는 삼촌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고, 가족과 지내면서도 인터넷을 서핑하는 남편을 지켜본 부인 역시 “그 사람은 아내가 필요없는 것 같아요.”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이 가족의 해체 양상은 심각했다고 꼬집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깔깔깔]

    ●황당한 내 사촌 삼촌집에 갔는데 일곱살 난 사촌동생이 책을 읽고 있더군요. 제목은 ‘토끼와 거북이’. 사촌동생에게 물었어요. “그거 보고 뭘 느꼈니?” 나는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거나 ‘최선을 다하자.’ 등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촌동생이 말하기를, “잠자다가 발걸음 소리가 나면 일어나야 된다.” 나는 대답이 재미있어서 단군 얘기도 해줬어요. 이번에는 뭘 느꼈느냐고 물으니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우리나라 사람은 옛날부터 거짓말을 했다.” ●구두쇠 시골 마을에 공짜를 좋아하는 소문난 구두쇠 영감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병으로 다 죽게 돼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의사:어디가 제일 아프십니까? 구두쇠:의사 선생, 만약 그걸 가르쳐 주면 약값을 안 받겠소?
  • [지진 해일 대재앙] 문짝 붙잡고 이틀간 표류…

    8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해일이 발생한 지 닷새째인 30일. 살아남은 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아직도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적을 기대케 하고 있다. ●두 아이중 한 명만 살려야 한다면 누굴 선택해야 하나. 부모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이번 남부아시아 지진해일 때 일어났다. 호주의 줄리언 설은 26일 태국 푸켓의 한 호텔 수영장 옆에서 5살난 아들 라키,20개월 된 아들 블레이크와 함께 있다 해일의 물살에 휩쓸릴 위기에 빠졌다. 물에 빠진 엄마 설은 두 아이를 붙잡고 물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둘 다 살리려다 세 모자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순간 엄마 설은 생후 20개월된 블레이크를 품에 꼭 안았다. 생애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어 라키는 주위에 있던 어떤 여성에게 붙잡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뒤 손을 놓았다. 이 여성은 라키를 붙잡아 주었지만, 두번째 파도가 닥치면서 아이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수영할 줄도 모르는 라키는 바닷물에 휩쓸려 호텔 로비쪽으로 떠내려가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물 밖으로 내놓고 필사적으로 깃대를 꼭 붙잡았다. 라키는 수시간만에 물이 빠지면서 기적적으로 구조돼 그리던 엄마의 품에 안겼다. ●26일 쓰나미가 덮친 태국 관광지 카오락 인근 도로에 혼자 앉아있다 구조된 2살짜리 스웨덴 남자아이가 구조 3일만에 29일 극적으로 아버지와 만났다. 구조 직후 국적과 인적 사항조차 전혀 파악할 수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한스 베르그스토엠. 줄곧 불안해하던 한스는 병원측이 웹사이트에 올린 사진과 생존 소식을 또다른 생존자인 삼촌이 확인한 뒤 29일 아버지가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안도하며 아빠 품으로 파고 들었다. 부모와 삼촌 등과 함께 스웨덴 고센버그에서 태국으로 여행을 왔던 한스는 엄마 수잔이 실종된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인도 카니코바섬에 사는 13세 소녀 메간 라지셰카르는 해일이 마을을 덮치면서 부모 등 동네 사람 77명과 함께 바다로 떠내려갔으나 이틀동안 문짝을 붙잡고 떠다니다 문짝이 해변으로 떠밀려 올라오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부모가 모두 숨졌다는 소식에 그녀는 울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태국 카오락의 3층짜리 해변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던 홍콩의 한 부부는 해일에 휩쓸렸다 6시간 동안 매트리스 하나에 의지해 표류하다 구조됐다. 매트리스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례는 또 있다. 말레이시아 남부 페낭 섬에서는 매트리스 위에서 자고 있던 생후 20일 된 여자아이도 해일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가다 어머니에게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체 간부 출신으로 14년전 은퇴한 뒤 방콕에서 살고 있는 제리 보덴(72)은 태국 프라통섬에서 휴가를 즐기다 해일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간 뒤 부서진 가구 조각에 매달려 3시간동안 헤엄쳐와 구조됐다. 고령에 7년전 심장발작 병력까지 있는 그의 생환은 인간의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준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seoul.co.kr
  • 신혼단꿈 깨기도 전에…

    “차라리 불구가 됐을 지라도 살아만 있다면 기쁘겠건만….” 태국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소식이 끊긴 이해정(26·여·경북 김천시)씨가 28일 투숙한 카오락호텔 붕괴현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자 김천에 남은 친인척들은 또 한번 눈물로 밤을 지샜다. 지난 27일 현지로 떠난 이씨 부모와 삼촌으로부터 “도저히 믿기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해놓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씨의 큰어머니는 “해정이 어머니 말에 따르면 결혼반지로 살펴볼 때 확실하지만 내일쯤 나오는 감식결과에 실낱같은 한 가닥 기대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유치원 교사인 이씨는 조상욱(29)씨와 함께 당초 지난 10월 말 결혼하기로 했지만 전자제품업체에서 일하는 남편과 자신의 일이 밀리는 바람에 연말로 결혼을 미룬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태국 현지에서는 이날 합동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시체를 안치했으며, 교민 300여명이 애도했다. 부산 M여행사에 따르면 부산을 통해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연락이 두절된 신혼부부는 이씨 부부와 이도형(30·부산시 서구 대신동·학원 운영)·허진연(29·여·SK T부산지사 근무)씨 부부 등 4명이다. 28일 현지로 떠난 이도형씨 가족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당초 필리핀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으나 만기가 6개월 이상인 여권이 필요한 반면, 자신들의 여권은 만기가 2개월 남아 출발하기 하루 전인 지난 24일 행선지를 푸켓으로 바꿨다. 이들 두 쌍의 부부는 푸켓 시내가 아닌 지역의 호텔에 투숙해 신변이상 여부가 늦어지고 있다. 대구 한찬규·부산 김정한기자 cghan@seoul.co.kr
  •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재벌 2·3세 경영 참여…능력 인정? 핏줄 특혜?

    최근 재벌 2·3세들의 경영 참여가 부쩍 잇따르면서 ‘경영권 세습’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체계적인 경영수업과 능력에 토대한 ‘실력 이양’이라는 주장과, 시장 검증을 거치지 않은 무책임한 ‘핏줄 상속’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대우·한보사태에서 보듯 재벌의 흥망은 국가경제와 직결되는 만큼 부(富)의 승계와 경영권 승계는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지금 상속중 4대 재벌은 3세 경영체제를 굳혔거나 굳혀가고 있다.LG 구본무(59)·SK 최태원(44) 회장이 경영권을 이미 물려받았고, 삼성 이재용(36) 상무·현대차 정의선(34) 부사장은 임원으로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4대 재벌에서 뻗어나온 방계그룹도 경영권 이양이 한창이다. 구평회 LG 창업고문의 둘째아들인 구자용(49) E1 부사장은 28일 사장으로 승진했다. 구자열(LG전선 부회장), 구자균(LG산전 부사장), 구자은(LG전선 상무), 구자민(LG전자 부사장), 구본진(LG상사 상무) 등 범 LG가(家)의 후손들이 속속 전진 배치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정몽근 회장의 아들인 지선씨와 교선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큰딸 현아씨와 외아들 원태씨도 차례로 입사하며 3세 체제 발판을 마련했다.CJ그룹 이재현 회장-이미경 부회장 남매, 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신동주 전무 형제, 현대상선 정지이씨,BNG스틸 정일선 부사장-정문선 이사 형제 등도 총수의 아들딸들이다. ●박용성 회장,“경영능력이 중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규황 전무는 “경영능력만 있으면 총수의 아들이든 삼촌이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창업주의 아들이지만 그룹 규모를 10배 이상 키우며 경영능력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 2세인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사석에서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나온)이재용 같은 인재는 돈주고 모셔올 판”이라며 재벌 2·3세를 덮어놓고 삐딱하게 보는 세간의 색안경을 경계했다. 최근 총수 자녀들의 승진인사를 낸 그룹들도 한결같이 “혈연관계에 앞서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강변했다. ●이헌재 부총리 “경영권 세습은 곤란” ‘따뜻한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하는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재산이야 자신들이 번 것인 만큼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얼마든지 세습해도 되지만 경영권은 딸린 임직원과 식솔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만큼 세습은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시장에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맡겨야하는 운명”이라고 반박했다. 권 교수는 “지금처럼 재벌 2·3세들이 입사에서부터 승진까지 시장원리가 아닌 특혜를 적용받게 되면 경영실패 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근 공개된 재벌들의 지분 족보에서 드러났듯 적은 지분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유지배 구조 아래서는 이같은 폐해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동남아 대지진] 은희춘씨 부부 印尼서 연락끊겨

    “삼촌(항공대 고 은희봉 교수)도 지난 8월에 돌아가셨는데…. 제 속이 탑니다.” 동남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 인도네시아 북부 수마트라 아체 주에서 사고 발생 직후 연락이 끊긴 것으로 확인된 은희춘(61)·이상록(59)씨 부부의 아들 현기(35)씨는 27일 이틀 동안 부모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은희춘씨는 지난 8월27일 경기도 고양시 항공대학교 활주로에서 국산 경비행기 ‘보라호’ 시험운항 중 사망한 고(故) 은희봉(당시 47세) 교수의 친형이기도 하다. 은씨는 부인 이씨와 함께 지난 2002년 5월 인도네시아 아체 주에 있는 프랑스계 시멘트업체 ‘La farge amblas’에서 생산담당 부장으로 근무해왔다. 아들 현기씨는 “지난 25일 저녁 크리스마스 안부 전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라면서 “삼촌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까지 사고를 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지 인도네시아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27일 현재 은씨의 회사와 차로 30∼40분 걸리는 아체 비행장까지 나가는 메인 도로가 온통 물에 잠겨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은씨와 함께 근무하다가 지난 14일 집안 행사 때문에 일시 귀국한 같은 회사 김홍기(57) 부사장은 “직원 450여명 가운데 한국 사람은 나와 은 부장 등 단 2명이어서 서로 형제처럼 의지하면서 지냈다.”면서 “오지에서 묵묵히 일하며 외로움을 달랬던 은 부장 부부가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초조한 심경을 전했다. 구혜영 이재훈기자 koohy@seoul.co.kr
  • 천주교 미사곡 판소리로 作唱한 왕기철 명창

    천주교 미사곡 판소리로 作唱한 왕기철 명창

    기억이 생생하다. 열여섯살이던 1979년 여름 어느날. 고향 신태인 역에서 무작정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서울. 종로3가 단성사 뒤편 ‘판소리 학원’ 간판을 매단 낡은 건물 앞에 섰을 때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까까머리 중학생 촌놈의 기를 있는 대로 죽여놓던” 낯설고도 도도했던 도심 공기. 그래서 더 오기가 났을까. 청무같이 짙푸른 청춘을 한줌 미련없이 소리꾼으로만 보냈다. ‘판소리 학사 1호’(한양대 국악과 졸업) 명창 왕기철(41·국립창극단 소속)씨. 그날 그 아침처럼 그에게 세상의 공기는 여전히 낯설 때가 많다. 국악이 주류에서 자꾸만 밀려나는 현실이라 무대에 설 때마다 늘 세상사람들의 편견을 설득하고 달래야 한다.‘판소리 미사’란 이색무대를 창안해 지난 11일 국립극장에서 직접 공연한 것도 그래서였다. ●세계문화유산 지정된 보물 같은 소리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판소리가 돼야만 하니까요. 가톨릭 인구가 얼맙니까. 또 판소리가 어떤 소린가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보물 같은 소리 아닙니까. 판소리 가락으로 올리는 미사.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모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싶더군요.” ‘판소리 미사’라는 엉뚱하고도 기발한 무대를 처음 기획한 것은 올 봄. 아프리카, 유럽쪽의 미사곡들을 우연히 듣게 됐다. 장엄하면서도 애조띤 계면조가 우리 판소리와 꼭 닮았다는 데서 무릎을 쳤다. 곧바로 두달여 동안 작창(作唱)에 몰두했다. 지난 7월 국악작곡가 이상균씨의 편곡을 거쳐 마무리된 판소리 미사는 국악·양악 합창이 섞인 크로스오버 스타일.“대아쟁을 콘트라베이스로 대체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양악을 흡수했다.”는 그다.‘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거룩하시도다’(Sanctus) ‘찬미송’(Benedic tus) ‘사도신경’(Credo) 등이 판소리풍으로 그렇게 탄생했다. 덮어놓고 전통방식만 고집해 국악이 설 땅을 스스로 좁혀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판소리 울타리를 넓히기 위해 자신의 음악세계와 관객을 끊임없이 실험한다. 지난 9월엔 ‘21세기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가’란 제목의 창작 풍자 판소리를 발표해 대책없는 실업난을 꼬집었다. 판소리를 미사에 적용했듯 불교와 이어보기도 했다. 지난해 불교음악 ‘염’에 출연해 판소리의 유연성을 또 한번 입증해 보였다. ●불교음악·판소리 접목 ‘호평’ 국립창극단에 입단(1999년)한 지 올해로 5년.‘공인 소리꾼’이 되기까지를 돌이켜보면 참 무모했다 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판소리와 인연을 틔운 것부터 그랬다. 그에게 소리꾼의 길을 열어준 이는 아홉살 위인 삼촌같은 형(왕기석·2000년 작고·전 국립국악원 단원). 쓸 만한 제자 하나를 찾아보라는 박귀희(가야금 명창) 선생의 말에 형은 다짜고짜 전북 부안 고향집의 그를 서울로 불러올렸다.8남매에서도 일곱번째. 그때는 소리가 뭔지도 몰랐다.“홀어머니가 근근이 꾸려가는 궁핍한 시골살림에 입 하나 덜 요량에서 멋모르고 상경한 셈”이라며 조용히 웃어보인다. “그래도 행운아였죠. 박귀희 선생께 그렇게 가야금을 배우면서 곧바로 서울국악예고에 입학하게 됐으니까. 가야금 병창을 해내려면 소리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선생께서 저를 박초월 명창께 보내신 거였어요.” ●‘판소리 학사 1호’ 별칭 한양대 국악과에 판소리 전공이 처음 생기던 1981년 그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판소리 학사 1호’란 별칭은 그렇게 따냈던 것이다. ‘학사 출신 명창’이 되기까지는 그렇게 맺힌 데 없이 풀렸다. 하지만 학비가 없어 힘들었던 기억만큼은 지금도 머리가 절로 도리질쳐 진다. 학비를 벌겠다고 안 해 본 장사가 없었다. 짬짬이 리어카를 몰고 다니며 붕어빵도 팔았고, 고향에서 가져온 김을 팔러 낯선 골목을 누벼보기도 했다. 박귀희 선생은 평생 잊지 못할 은인이었다.“학비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던 대학 3학년때 박귀희 선생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냥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라는 그는 “보다 못한 선생님이 당시 문예진흥원장을 직접 찾아가 사정을 호소해 장학금을 타주셨다.”고 돌이켰다. 소리인생을 시작한 지 어느덧 25년.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은 국악 강사로 지내기도 했다.1985년 졸업하자마자 서울국악예고 판소리 교사로 취직했다.1998년까지 정확히 13년 9개월을 ‘판소리 선생님’으로 살았다.“판소리를 전공해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는, 그만큼 안정된 직장도 드물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조급증이 났어요.‘나는 뭐냐, 진짜 소리꾼은 무대에 서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그 든든한 직장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박차고 나왔다. 곧바로 국립창극단 완판창극 ‘춘향전’에 이도령으로, 이듬해인 99년 봄에는 다시 완판창극 ‘심청전’의 심봉사로 줄줄이 주인공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안았다. 후회는 해본 적이 없다. 아니, 군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중학교 3학년인 둘째딸(윤정·면목중)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아빠의 길을 따라 걷겠다고 나섰다. 지난 99년엔 국립국악원이 올린 ‘완판 심청전’에서 아기 심청을 맡아 그와 나란히 무대에 섰다. 딸 자랑에 침이 마른다.“지난해 12월에도 큰 무대에 섰었어요. 어린이 창극 ‘춘향이와 몽룡이의 사랑이야기’에 몽룡 역에 캐스팅돼서 박수 많이 받았지요.” 올해 공연된 창작판소리 ‘10대 애로가’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이번 ‘미사 판소리’에도 국악합창단으로 노래했다. 국립창극단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부녀(父女)소리꾼’인 셈이다. ●‘미사 판소리’ 유럽에도 전하고 싶어 국악계에서는 소문난 판소리 형제가족이다. 동생 기석씨도 국립창극단원이다. 작고한 형의 딸 해경씨도 서울국악예고 판소리 강사. 기석씨의 초등학생 딸도 판소리를 배우고 있다. “우려했던 ‘미사 판소리’ 첫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친 셈입니다. 하지만 일회성으로 그치게 하진 않을 생각이에요. 국내에서 홀대받는 판소리가 오히려 해외무대에선 신비의 소리로 박수갈채를 받는 현실을 주목합니다.” 내친김에 미사 판소리를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좀더 다듬어볼 요량이다. 새해에는 유럽무대 곳곳에서 그의 소리로 ‘판소리 미사’를 올리는 장면을 상상해볼 일이다. 현재 서울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에서도 강의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LG전선그룹도 ‘브랜드 독립’

    [재계 인사이드] LG전선그룹도 ‘브랜드 독립’

    허씨계열의 GS그룹에 이어 구본무 LG회장의 삼촌인 구자홍 회장과 구자열 부회장이 이끄는 LG전선그룹도 ‘LG’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맞춰 구 회장과 구 부회장의 발걸음도 더욱 바빠지고 있다. 20일 업계 등에 따르면 LG전선그룹은 ‘LG’ 대신에 새 브랜드를 사용하기로 하고 ‘LS’,‘UB’ 등 5개의 브랜드를 국내외에 상표출원하는 등 선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LS’는 ‘Leading Solution’,‘LG+GS’의 의미를,‘UB’는 ‘Your Benefit’(고객의 이익을 위해),‘유비쿼터스’(Ubiquitous)를 의미한다. LG전선,LG산전,LG니꼬동제련, 극동도시가스,E1(구 LG칼텍스가스), 가온전선(구 희성전선) 등 계열사 가운데 LG전선,LG산전,LG니꼬동제련이 브랜드 교체 대상이다. 그룹측은 브랜드 개정 작업을 내년 1월안으로 일단락짓고 공식 변경은 주총이 끝나는 3월말쯤 확정할 계획이다. 분가 1년 만에 ‘LG색깔’을 완전히 지우게 되는 것이다. 구자열 부회장이 CEO를 맡고 있는 LG전선은 지난 9월 신사업 진출, 해외 현지화 강화를 통한 전자·IT 부품·소재기업으로의 사업구조 혁신을 골자로 한 ‘비전 2012’를 선포하고 최근 진로산업을 인수하는 등 독자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관련 자회사를 속속 인수·설립해 해외법인 포함 22개로 늘렸다. 그룹회장으로서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는 구자홍 회장은 지난달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APEC ‘CEO 서미트’에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과 나란히 참석해 외부에서도 ‘회장 신고식’을 치렀다. 구자열 부회장도 22박 23일의 장기 해외출장을 소화하는 등 올들어 2개월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내며 ‘현장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이처럼 실질적인 분가가 가시화됨에 따라 여의도 트윈타워에 입주해 있는 LG산전도 내년 3월이면 ‘LG둥지’를 떠날 계획이다.LG전선,LG니꼬동제련,E1은 이미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자리를 잡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LG전선그룹은 자산규모 5조 1000억원으로 신세계에 이어 재계 22위(공기업 포함)에 랭크됐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나의 생명 이야기/황우석·최재천 글

    나의 생명 이야기/황우석·최재천 글

    절묘한 만남이다.21세기의 핵심코드로 부족함이 없는 ‘생명’의 끈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잡고 있는 세 사람, 황우석과 최재천, 그리고 김병종. 비록 책이라는, 출판사가 깔아준 멍석 위의 만남이지만 쉰하나 동갑내기인 이들의 생명을 향한 ‘의기투합’은 몰가치성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낚아채고도 남음이 있다. ‘나의 생명 이야기’(황우석·최재천 글, 김병종 그림, 효형출판 펴냄)는 김병종의 머리말처럼 생명을 주제로 만난 두 과학자와 한 예술가의 삼인행(三人行)이다. 두 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에 한 예술가는 색깔과 향기를 입혔다. 세 사람이 누구인가. 황우석은 21세기의 과학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로 생명복제의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는 생명공학자요, 최재천은 동물과 곤충의 행동 연구를 통해 인간 삶, 나아가 생명의 과학적 진리를 찾아나선 동물학자다. 김병종은 대표적 한국화가로서 ‘바보예수’‘생명의 노래’ 연작을 통해 생명의 끈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다. 이들은 ‘서울대학교’란 한 직장에서 오랜 세월 지내온 인연으로 맞닿아 있으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생명’이라는 주제를 화두로 삼고 있지만, 그 무게와 울림은 사뭇 다르다. 황우석과 최재천, 두 과학자는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연구에 매달리면서도 짬짬이 생명의 소중함을 담은 글을 써왔다. 배아 복제, 흔히 말하는 ‘생명복제’와 생태·환경적 관점에서 출발하는 동물행동학은 어쩔 수 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 같지만 이 책에서 두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결국 ‘인간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귀일점에서 만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접점엔 사람·동물·식물이 화합하는 김병종의 그림이 가세하며 생명성을 완결시킨다. 세 사람에게 생명이란 무엇인가. ‘내게 생명이란 우리집에서 키우던 소의 순한 눈망울, 봄이면 샛노란 솜털이 개나리보다 탐스럽던 병아리, 암탉이 막 낳은 따뜻한 달걀, 그런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던 내 부모형제와 이웃들…. 생명은 그런 것이다.’ 황우석의 생명 인식은 이처럼 소박하면서 귀소본능적이다. 어렸을 적 농촌에서 소와 함께 들판을 쏘다니며 풀을 뜯겼던 그는 소와 평생을 함께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소가 친구처럼 가깝고 좋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새끼 많이 낳는 소, 튼튼하고 잘 자라는 소를 연구해서 우리 가족과 이웃들의 삶을 기름지게 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의 소망은 훗날 송아지 ‘영롱이’ 복제와 인간 줄기세포 복제로 귀중한 열매를 맺으면서 인간 삶의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천의 ‘생명’에 대한 출발점 역시 귀소본능적이다. 그는 어렸을 적 강릉 할아버지 댁에서 자라며 삼촌들과 논병아리를 잡으러 다녔던 강릉으로의 귀소본능 때문에 잠을 설친 밤이 셀 수 없다고 했다. 황 교수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주제로 한 눈부신 연구의 바탕엔 역시 귀소본능이 깔려 있던 것. 2지망으로 서울대 동물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뒷걸음치다 빠진 생물학 안에 내가 꿈꾸던 삶이 있다는 걸 발견한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고 했다. 수많은 동물을 연구하는 과정은 결국 동물속에서 인간을, 인간속에서 동물을 엿보는 것임을 그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다. 또한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환경 및 생태 문제에 천착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21세기의 새로운 인류상인 ‘공생인(共生人)’으로 귀결됨을 강조하고 있다. 김병종 교수는 1990년대까지 ‘바보예수’ 연작을 발표하며 ‘종교적 희생’을 바탕으로 한 생명사상을 붙들어 왔다. 그리고 80년대 말 작업실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몇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생명에 새로 눈을 뜬다. 그는 이번 책에 생명의 메시지가 강한 그의 작품들을 녹여 넣으면서 때로는 어릴 적 일기 같은, 때로는 ‘생명에 대한 단상’같은 짧은 해설을 붙였다. ‘낙락장송의 숲에 엎드린 아이는 내 유년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서늘한 소나무 숲에서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그 숲에 가고 싶다.’‘숲에서’(1992)란 이 작품속의 소나무 숲에 엎드린 아이는 모양도, 색깔도 소나무와 같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 속에 찾아야 할 대상처럼 나무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 아이는 김병종인 동시에, 어릴 적 황우석, 그리고 최재천이다.1만 1000원. ■ 황우석·최재천·김병종 세 사람의 특별한 인연 황우석과 최재천, 김병종은 한 직장에 적을 둔 동갑내기인 데다 모두 ‘생명’이란 테마를 연구와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정도 인연이면 서로에 대한 생각도 각별할 터. 김병종은 ‘우레와 같은 명성에도 조금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연구에 매진하는 황교수를 볼 때면 새삼 그가 아사(我師)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논어의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의 바로 그 ‘아사’다. 즉 셋이 길을 가면 그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황교수가 바로 그다. 최재천에 대해선 ‘화가의 눈과 음악가의 귀를 가진 과학자’로 표현한다. 황우석 교수는 김병종에 대해 ‘칼을 잡고 피를 보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메말라오는 것을 느끼는 때가 있는데, 이럴 때면 내 친구 김 화백의 ‘생명의 노래’를 듣고 그 온기로 조그마한 생명의 열매를 맺고 싶다.’고 했다. 최재천 교수는 ‘황우석 선생의 삶을 상징하는 것이 소라면 내 삶에는 대관령이 있다.’며 ‘스스로 감자바우 촌놈이란 걸 은근한 자랑으로 흔들며 살아왔는데, 진짜 촌놈 황우석 선생과 나란히 글을 쓰려니 나는 그저 촌놈이고 싶어 안달하는 얼치기 촌놈’이라고 존경심을 담은 동질감을 표시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현정은회장 자기색깔 드러낼까

    [재계 인사이드] 현정은회장 자기색깔 드러낼까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골프를 치지 못한다.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이 그룹을 경영할 때, 연습장에서 몇번 채를 잡아본 적은 있지만 워낙 현대가(家)의 며느리들이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이내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 현 회장이 최근 골프를 다시 배우기로 결심했다. 건강관리도 이유중의 하나이지만 CEO(최고경영자)로서의 이미지 굳히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주위의 해석이다. 현대아산의 숙원사업인 금강산 골프장이 내년 가을에 문을 연다. 그룹 회장의 ‘역사적인 티샷’은 상징성이 크다. 계열사 사장단을 인간적으로 장악하는 데도 골프는 요긴하다. 현 회장 주변의 한 인사는 “술을 함께 못하는 대신, 골프를 통해 사장단이나 재계인사들과 스킨십을 가져야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CEO들을 위한 야간공부과정인 ‘세계경영대학원’(이사장 전성철)도 열심히 다닌다. 현 회장이 CEO로서의 본격적인 변신 행보에 소리없이 나서고 있다. 지난달 21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그는 그러나 줄곧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느라 CEO로서의 색깔은 제대로 내지 못했다. 세간의 시선은 우호적이지만 ‘시삼촌(정상영 KCC 명예회장)에게서 기업을 지킨 조카며느리’에 대한 동정표가 컸다. 경영권 위협이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현 회장은 서서히 색깔을 내고 있다. 골프는 작은 예에 불과하다. 현 회장은 현대아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택배·현대엘리베이터·현대경제연구원 등 6개 계열사에 대한 연말 임원인사를 이미 예고해놓은 상태다. 취임 직후 임원인사를 단행하긴 했지만,‘예정된 각본’을 집행했을 따름이다. 이번 인사가 CEO로서의 색깔과 능력을 검증받을 첫 작품인 셈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의 거취. 현 회장의 ‘선택’에 그룹 안팎의 촉각이 곤두서있다. 현 회장은 다음달 중순께 또한차례 방북길에 나설 예정이다. 개성공단에서 물건이 처음 생산되는 현장을 보기 위해서다. 얼마전에는 세계경영대학원 급우인 모 게임업체 사장을 응원하기 위해 제10회 대한민국게임대전에 참석하기도 했다. 비서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 행보가 ‘현대그룹, 게임사업 진출’로 와전되자 현 회장은 홍보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후사정을 자세히 해명하기까지 했다. 그런가하면 매주 월요일에는 어김없이 사장단회의·영업담당 중역회의·관리담당 중역회의·경제동향보고회의를 돌아가며 직접 주재한다. 이같은 자신감의 이면에는 계열사들의 실적 향상도 작용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儒林(228)-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28)-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그러므로 공자가 시경의 ‘하초불황편(何草不黃篇)’에 나오는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거늘 어째서 광야를 헤매고 있는가.’라는 구절을 인용함으로 스승과 제자간의 선문답을 시작한 것은 매우 적절한 비유였던 것이다. 외뿔소(). 모든 소는 두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데, 유독 외뿔소만은 문자 그대로 뿔을 하나만 갖고 있는 변종이며, 호랑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모든 짐승 중에 가장 거칠고 사나운 동물인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자신이 이처럼 거친 들판인 광야를 헤매고 있는 것은 외뿔소처럼 균형 감각이 없는 독선적인 고집을 가졌기 때문인가, 아니면 호랑이처럼 분수에 넘치는 욕망을 갖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무서운 권력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인가를 묻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자로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스승의 속마음을 깨닫지 못하였을 리가 없다. 이에 자로는 대답한다. “우리가 사람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우리가 어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의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가 아직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로의 이 말을 들은 공자는 크게 실망한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가 살아있을 때는 그의 존재를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이것이 눈먼 인간의 비극인 것이다. 마치 심봉사가 공양미 삼백석이 있어야만 눈을 떠 심청이를 볼 수 있다고 착각하였던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바로 심청이며, 부처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로는 그처럼 공자를 따라다녔으나 스승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편견 속에서 스스로 만든 우상, 즉 공자상(像)만 본 것이었다. 공자가 주장하던 어짐(仁)과 천도(天道)가 아직 행하여지지 못하였다고 대답함으로써 스승 공자를 미완성의 선생으로만 본 것이었다. 이에 공자는 대답한다. “그럴까. 유(由:자로의 이름)야, 만약 어진 사람이 반드시 남의 신임을 받는다면 어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고난을 당했겠느냐. 만일 지혜 있는 사람이 반드시 도를 행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 어찌 왕자 비간(比干)이 죽음을 당하였겠느냐.” 백이와 숙제. 이 두 사람은 고대중국의 전설적인 성인형제. 사기에 의하면 이들은 원래 고죽국의 두 형제였는데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를 정벌하여 천하를 통일하자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고 수양산에 들어가서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고사리만 뜯어먹고 살다가 굶어죽은 절의의 인물이었다. 또한 비간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폭군 주(紂)의 삼촌으로 주왕이 잔인무도한 폭정을 일삼자 ‘임금의 허물을 보고도 간하지 않으면 불충이요, 죽음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 다는 것은 용기가 아닌 것이다. 간하여 따르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서 충성을 다하리라.’라며 계속 극간하였던 충신이었다. 이에 주왕은 화가 나서 ‘내가 듣건대 충신의 심장에는 구멍이 아홉 개가 있다 하였는데, 진짜 충신인지 확인해 보겠다.’고 비아냥거리며 실제로 가슴을 째고 심장을 꺼내 보았던 의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자의 대답을 자로가 이해하였음일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자로는 여전히 공자상에 매달려 스승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허상만 확인한 후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며 물러갔을 것이다. 자로 다음으로 불린 제자는 자공. 자공이 들어오자 공자는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시경에 보면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거늘 어째서 광야를 헤매고 있는가.’하고 읊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도가 그릇된 것일까. 우리가 어찌하여 그런 지경에 빠졌을까.”
  •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17일 오후 3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실습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실내건축기능사 자격시험에 대비한 모의시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시험시간 종료를 예고하는 지도 교수의 다그침에 학생 40명의 손놀림이 빨라졌다.5시간안에 원룸의 평면도를 비롯해 투시도, 입면도, 천장도 등 4장을 완성해야 한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모두 도면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온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들의 눈동자는 경기불황을 극복하려는 창업의지로 반짝였다.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인기 한남직업전문학교는 서울시가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 가운데 하나.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시설이던 이곳은 지난 2002년 만29세의 연령제한이 풀려 만 지금은 15∼55세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와 미용, 실내디자인, 조리, 컴퓨터애니메이션, 패션디자인 등이 6개월∼1년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지원자 가운데 나이, 가족부양여부, 국가유공자 등을 감안해서 선발한다. 경력 3∼4년이 쌓이면 창업이 가능한 실내디자인과는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제도실기를 비롯해 CAD, 포토샵,3D MAX 등이 주교육 과정이다. 교육을 마치면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기능사와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진영 실내디자인과 주임교수는 “학생 가운데 20세 이하는 50%,30대 45%,40대 이상은 5%”라면서 “주간에는 주부, 비진학청소년, 퇴직자 등 다양하며 야간 과정에는 70∼80%가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새삶 설계 학생 가운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퇴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은행이나 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뒤 새 삶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다.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은행원생활 32년을 마감한 심영섭(55)씨는 “지난 3년동안 건축회사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쪽으로 겸업하기 위해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기업에서 퇴직한 이재전(55)씨도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들과 동업하기 위해 합류했다. 내수경기 불황을 타개할 새 활로로 인테리어를 택한 사람도 있다. 청담동에서 7년동안 자동차 딜러를 하던 장필선(44·여)씨는 지난해 4월 경기불황으로 영업소를 접었다. 장씨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탓에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레저스포츠 강사 김영진(31)씨도 이직을 결정한 경우. 김씨는 “이 과정을 마치면 외삼촌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2∼3년 경력을 쌓은 뒤 중국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17세 소녀 조기유학파도 입학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사벨라(17)양은 건축사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등록했다. 대학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이양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불편을 피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내년 수학능력시험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실업자에게는 인테리어가 취업을 위한 주특기로 자리잡았다. 지난 2월 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최모(23·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잠시 미루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6개월 동안 바쁘게 두가지 자격증을 따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문학이 머문 풍경]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玄基榮)의 자전적 장편소설인 ‘지상의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만의 문학세계를 있게 한 그의 유·소년기의 총체다. 작가의 성장과정에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상처깊은 곳을 서사구조로 엮은 이 책은 그가 4·3작가로, 저항작가로, 민족작가로 일컬어지게 된 것이 그의 유·소년기의 시대상황이나 성장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의 고향 척박한 땅, 화산도 제주는 아득한 수평선으로 둘러싸인, 오래전부터 귀양섬으로, 외세 강점기에 수탈의 섬으로 천대받아온 오지 변방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질곡마다에서 민초들이 억압과 수탈에 맞서 분연히 들고 일어나 ‘이재수의 난’,‘해녀항일운동’,‘4·3항쟁’의 섬이기도 했다. 1941년 1월생인 그는 이 섬에서 해방기부터 6·25때까지의 격동기 파란을 몸소 겪으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특히 2만 5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1947년 4·3당시는 일곱살 나이로 고향인 제주시 노형동 ‘함박이굴’에서 해변마을인 삼도2동 ‘무근성’ 외가댁으로 피란가야 했고 그가 직접 접한 봉화봉기, 가택수색, 토벌작전…, 그리고 ‘함박이굴’의 초토화와 살육 등이 그의 어린 눈에 여과없이 수렴되면서 후일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가는 소설 ‘지상‘에서 “고향마을의 초토화 장면은 검게 타버린 폐허를 배경으로 한 완벽한 구도의 목탄화로 내 의식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술회하면서 “인간의 경험, 상상력을 훨씬 능가해 버린 그 엄청난 살육과 방화를 놓고 어떻게 무자비하다, 잔인무도하다 하는 따위의 빈약한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부연하고 있다. ●4·3작가, 저항작가로 그의 글쓰기는 70년대,80년대,90년대로 옮겨 오면서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고랑을 일군다.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버지’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얼마 동안 현대 도시인의 좌절감 등을 일반화한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이다 78년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중편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저항작가로의 옷을 갈아입는다. 이 소설로 제주도 민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제작가로 주목받아,‘필화’의 고통까지 겪었으나 결국 이 글은 1970년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으면서 향후 4·3작가로 자리매김하는 단초가 됐다. 그는 계속해서 ‘도령마루의 까마귀’‘해용 이야기’‘길’‘어떤 생애’ 등 4·3을 화두로 한 작품들을 잇달아 냈고 제주4·3연구소장과 제주사회문제협의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4·3과 관련한 사회활동도 왕성히 펼쳤다. 그의 제주 민중사에 대한 탐구정신은 80년대 들어서도 계속돼 ‘이재수의 난’을 다룬 장편 ‘변방에 우짓는 새’와 인간의 꿈이 역사의 힘 앞에 무참히 좌절되는 단편 ‘마지막 테우리’를 잇달아 발표했고 서사와 서정이 조화를 이룬 글 ‘지상에‘로 1989년 만해문학상,1994년 오영수문학상에 이어 1999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현기영은 80년대부터 민족문학작가회의에 관계해 오다 지난해 2월 지금의 제11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발탁됐다. ●개운치 않은 변화들 그래도 소설 ‘지상에‘는 휴전 이듬해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 그가 여전히 해맑은 소년의 자리에 있었음을 그리고 있다. 밀기울범벅과 고구마를 식사 대용으로 삶아 먹는 궁핍 속에서도 오줌싸개였고,‘땜통’과 ‘똥깅이’라는 별명을 가진 개구쟁이였고, 신주머니를 곧잘 잃어버리는 철부지였고, 팽나무와 먹구슬나무를 사랑했던 순돌이였다. 이제 그의 생가가 있던 ‘함박이굴’은 4·3으로 불타 없어졌지만 고향 노형동은 제주 최고의 상권지로 우뚝 커졌고 그가 친구들과 벌거숭이로 물장구치던 병문천은 지금 말끔히 복개돼 왕복 5차선도로와 상가 주차장으로 변했다. 다이빙질을 하던 용연에서는 매년 음력 4월 보름 ‘용연야범 축제’가 열리고, 내년 2월까지는 동에서 서로 현수교식 구름다리도 놓아질 참이다. 친구들과 탄피 주우러 다녔던 도두봉까지의 현무암 해안길은 어느새 야간 조명시설까지 갖춘 해안도로로 단장돼 영화나 TV에 나올 정도로 세련된 카페촌으로 둔갑했다. 그러나 작가의 속내는 이런 치장들이 도저히 편하고 개운치 않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아름다운 풍광의 배후에 아직도 진혼되지 않은 수만 원혼들이 음산한 기운으로 깃들어 있고, 그 검은 현무암지대가 그 시절의 초토화 불길에 타버린 숯더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용두암 근처 현무암의 바닷가에서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는 호사한 관광객 무리를 밀어내고 거기에서 놀던 옛 아이들을 다시 등장시켜 놓아야 하겠다.”고 넋두리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4) OEM 옷수출 22년 김동영 한세실업 회장

    [삶과 경영 이야기] (34) OEM 옷수출 22년 김동영 한세실업 회장

    ‘미국인 6명중 1명은 한세가 만든 옷을 입습니다.’ 지난 22년동안 오로지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의 의류 수출을 고집하고 있는 한세실업의 광고 문구다. 한세실업의 창업주 김동영 회장은 “한세라는 회사 이름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에는 생소할 터이지만, 미국인들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나이키, 리복, 갭(GAP) 등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 등은 거의 한세가 만든 옷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그가 오랫동안 섬유산업을, 그것도 OEM 방식에 몰두한 사연이 궁금하다. ●창업 이후 한번도 적자 없어 1970년대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의류 수출에 매력을 느끼고 옷 공장을 차렸다. 요즘으로 말하면 정보기술(IT) 벤처에 쏠리는 현상과 비슷했다. 대우의 김우중 전 회장도 68년 창업 당시엔 의류 수출에 힘썼다. 아버지는 의사 일을 했으나 삼촌들은 무역업을 했다. 국내에서 대학을 나와 미국 유학을 마치고 72년 돌아오자마자 삼촌들의 도움으로 섬유 수출업을 시작했다. 그때가 28살. 그러나 7년만인 79년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망했다. 의욕은 앞서는데 사업 경험도 없고 실력이 부족해서다. 3년을 와신상담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평생을 건실하게 살자고 다짐했다. 마무리를 잘 짓고 3년만인 82년 한세실업을 창업했다. 다시 옷을 선택했다. 옷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었고, 미국의 의류 바이어들과 관계도 좋았기 때문에 옷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만 규모를 작게 시작했다. 솔직히 겁도 났다. 거래처는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K-마트 한곳만 두었다. 미국인 바이어들이 무척 많이 도와주었다. 계절마다 바이어들이 한국을 찾아 주문 서류를 보여주며 “조건이 좋은 오더를 골라라.” “기 죽지 말고 잘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편지를 보내주고 다른 바이어도 소개해 주었다. ●섬유산업 무역수지 작년 94억弗 흑자 우리나라에 있어서 섬유는 중요한 산업인데 최근 들어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60∼70년대 섬유산업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80년대 후반 들어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노동집약적인 섬유업을 사양업종으로 몰아세우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경영 노하우’를 파는 산업으로 진화해 현재까지 한국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경영 노하우를 파는 단계에서 패션을 파는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섬유산업의 무역수지는 2002년에 100억달러,2003년에 94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수출 효자산업이라는 반도체가 2003년 수출 195억달러, 수입 213억달러로 적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경제발전의 역군이다. 한세는 올해 3억달러 정도의 의류를 생산할 예정이지만 국내 수출통계에는 1억달러로 잡힌다. 한세가 개발한 옷이 미국에서는 ‘메이드 인 베트남’ 등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옷 상표마저도 ‘나이키’로 팔리니까 한국의 섬유는 다 죽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옷은 ‘팔고나서 만드는 제품’ 경영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생산이다. 특히 옷은 생산이 매우 중요하다. 옷은 ‘팔고나서 만드는 제품’이다. 즉 판매망을 찾은 뒤 그때부터 만들어 어떻게 주문에 맞춰 잘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바이어들의 신뢰 덕분에 영업 부담에서 벗어나 옷을 잘 만드는 데 몰두할 수 있었다. 공장 직원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품질 개선에 최선을 다했다. 다른 사업가들은 높은 사람이나 바이어를 만나고 돈을 빌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 사정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 원가절감에 애쓰고 가격경쟁력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한 타이완의 장사꾼이 “품질만 좋으면 손님이 나를 찾아 온다.”고 한 말을 일찌감치 실감한 것이다. 명품 브랜드는 거의 대부분 생산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브랜드 기업은 브랜드 관리와 영업기획에 몰두하고 생산은 OEM으로 조달한다. 결국 OEM은 분업이자 전문화를 말한다.OEM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론 직원들은 자체 브랜드 만들고 싶어한다. 그래서 한때 국내 속옷류 유명기업인 S사를 인수·합병(M&A)하려 했으나 입찰 경합에서 ‘가격 거품’이 일면서 인수를 포기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 오히려 “축하한다.”는 인사를 들었다. 결국 몇년 뒤 인수 기업마저 부실해지는 것을 보고 더 신중하기로 했다. 사업이 순조롭게 안정되면서 창업 6년만인 88년 사이판에 첫 해외공장을 차렸다.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한 셈이다. 사이판의 20개 생산라인에서 올해 1억 160만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단일공장의 수출액으로는 세계 최고다.98년 니카라과에,2001년 베트남에 현지공장을 각각 세웠다.2007년에는 전체 생산량의 25%를 중국에서 만들 작정이다.3개국 생산공장에서 한세가 100% 투자한 공장의 종업원은 7000명쯤 된다. 그밖에 한세 옷을 만드는 합작공장의 종업원 수도 7000명쯤이다. 전세계 1만 4000명이 한세 옷을 만들고 있다.3년전의 광고 문구는 ‘미국인 9명중 1명이 한세 옷을 입는다.’였다. 지난해에는 ‘7명중 1명’이었고, 올해는 ‘6명중 1명’으로 바뀌었다. 올해 약 4600만장의 의류를 미국에 수출했으니, 미국의 전체 인구(2억 8056여만명)의 6분의 1이 입을 수 있는 옷이다. 광고 인물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찰스 린드버그(미국인 비행사)로 했다. ●장학금 주고 봉사활동 하고나면 기분 좋아 나는 어릴적부터 친구들의 인기가 좋았다. 학생회장을 빼놓지 않고 맡았다. 그러나 ‘나는 똑똑하지는 않으니까 평생 진실되게 살자.’고 다짐했다. 술과 담배를 잘 못하지만 허물없이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게 주변의 신뢰받는 비결인 듯하다. 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해외공장를 차리면 몇달 동안은 그들과 함께 지낸다. 한국인 직원들도 현지인들과 어울리도록 독려한다. 지난 98년 니카라과에 진출했을 때 일이다. 처음엔 근로자들의 자유분방한 출근 복장이나 행동을 보고 ‘저들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길까.’라고 우려했다. 어느날 주민들에게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버스가 이틀동안 파업을 한다기에 공장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근로자들이 거의 전원 정상 출근을 했다. 공장에는 정치계열 노조를 포함해 복수 노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월급 80달러가 그들에겐 큰 돈이기도 했지만 나중에 ‘한국인들이 고맙고 정이 들어서 회사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듣고 감격했다. 베트남에선 생산공장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작은 마을의 7개 학교에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학생들이 내 자식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업인으로서 은퇴하고 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해외여행도 하고 음악에도 심취하고 싶지만 베트남 등 아시아 후진국에서 좋은 인재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공부를 시키고 싶다. 장학금을 주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 김동영 회장은 한세실업 김동영(60) 회장은 첫 인상이 소박하고 정이 많아 보인다. 대화를 해보면 추진력에다 치밀함까지 갖췄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30여년동안 의류 수출에만 전념해 미국인 6명중 1명이 입을 수 있는 양의 옷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신고된 한세실업의 연간 매출액은 2359억원. 그는 지난해 5월 국내 최대 인터넷서점 ‘예스24’를 인수하며 처음 ‘외도’를 했다. 책이 좋아서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200억원의 누적적자 기업을 특유의 신뢰 경영으로 되살려 인수 7개월만에 9억원의 순익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학을 나와 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부인을 포함해 주변의 가족 20여명이 대학 교수인데다 3자녀중 두명도 학위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위서현 아나 “서울사투리 아세요?”

    위서현 아나 “서울사투리 아세요?”

    “‘부조’를 ‘부주’로 말하거나 ‘삼촌’을 ‘삼춘’,‘하필’을 ‘해필’로 발음하는 것은 서울 사투리입니다.” 서울토박이 아나운서가 두차례 지방근무를 거치면서 지방 사투리의 ‘실체’를 체감했다. 반대로 표준어에 빠진 ‘숨은 1인치’가 서울말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춘천MBC에서 6개월과 KBS 청주방송총국에서 1년을 보낸 위서현(26) 아나운서는 “서울말은 ‘오’가 ‘우’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미에서 ‘있고요’를 ‘있구요’로 말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3년 1월 KBS에 입사한 위 아나운서는 현재 ‘남북의 창’을 비롯, ‘국악 한마당’,‘생방송 세상의 아침’의 ‘줌인 세상속으로’ 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린이 경제나라’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합류했다. 강원도와 충청도 방언권에서 아나운서 초년병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강원도 사투리의 억양은 ‘유머러스’하며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투는 ‘푸근하다.’고 평했다. “지방에서 근무한 경험은 언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제가 가진 서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죠. 다양한 지방 프로그램이나 요즘 제가 진행하는 ‘줌인 세상속으로’를 보면 제가 전혀 모르던 ‘세상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학창시절부터 맞춤법이나 표준어에 민감했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과잉교정인간’으로 불렸다. 평소 국어학쪽에 관심이 많은데다 단정하고 정리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표준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려면 외국어처럼 과학적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입에 볼펜을 물고 연습하라는 통설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발음 습관을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입모양과 혀의 위치를 정확하게 한 뒤 발음하는 것이 최상책입니다.” 평소 말투까지 장단음을 철저하게 지키는 등 꼼꼼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아나운서도 많다. 아나운서는 사소한 감기조차도 불허할 정도로 개인의 몸상태가 목소리나 표정으로 대중에 쉽게 노출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관리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잔병치레가 많은 아나운서도 정신력으로 버티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 제게 가장 큰 애로사항은 건강으로 방송에 공백을 내지 않을 체력입니다.” ‘스타’아나운서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한 현실에서 그의 아나운서관은 의외로 ‘자긍심’이라고 답했다. 외부에 비치는 것처럼 아나운서가 ‘빛나는 직업’만은 아니며 ‘스타’ 보다는 ‘아나운서’라는 일에 충실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실 그는 아나운서를 꿈꾸던 소녀는 아니었다.‘선생님’을 희망하던 그에게 한 지인이 “아나운서 하면 괜찮겠다.”고 던진 한 마디가 그의 가슴에 꽂혔다. 초등학교 교생실습을 통해 ‘과연 내가 아이들의 배양토가 될 수 있을까.’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다. “시청자가 많지 않더라도 마니아층을 형성한 음악프로그램을 하면서 시청자와 함께 공감대를 얻고 싶어요. 저는 모던록 마니아거든요.”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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