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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인사이드] “잃어버린 5월… 꽃의 아름다움 안보여”

    [재계 인사이드] “잃어버린 5월… 꽃의 아름다움 안보여”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제2차 경영권 분쟁 위기를 e메일 경영으로 타개해 나가고 있다. 현 회장의 e메일 서신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현대그룹을 지켜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현 회장은 11일 그룹 사내 통신망에 띄운 ‘사랑하는 현대그룹 임직원들에게’라는 글에서 “계절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더하지만 지금 제게는 꽃들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과의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에서 느낀 소회를 전했다. 현 회장은 “현대호의 선장이 돼 어려움을 겪을 때 시삼촌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뺏기 위해 비수를 겨누었던 아픔을 겪어야 했다.”면서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정 의원이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현대자동차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발생한 시동생의 난은 저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아픔이며, 국민들에게 드린 실망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의원은 현대그룹이 어려울 때는 ‘나 몰라라.’했지만 이제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달성하는 등 경영실적이 개선되니까 넘치는 자금을 쓸 곳이 없다며 형의 기업을 비열한 방법으로 적대적 M&A 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현 회장은 특히 “정 의원은 정씨 직계 자손에 의해서만 경영이 이뤄져야 된다고 하지만 이처럼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고로 어떻게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회장은 “저는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거액의 부채를 상속받아 친족들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부채를 상환하느라 힘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씀처럼 굳건히 현대그룹을 지키겠다.”고 글을 맺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지분 매입이 투자 목적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굳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형수의 ‘읍소’… 시동생 “…”

    [재계 인사이드] 형수의 ‘읍소’… 시동생 “…”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그룹의 주력인 현대상선 지분 26.68%를 매입한 것과 관련, 양측의 팽팽한 긴장도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주로 불만을 터뜨리는 쪽은 형수(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진영. 반면 시동생(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 측은 “시간이 지나면 선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숙(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동정여론’으로 승기를 잡은 현 회장이 이번에도 여론에 ‘읍소’하는 작전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은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시동생측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1일 현대그룹과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 회장은 최근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현대상선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막아주기 위해 지분을 매입했다는 현대중공업의 주장에 대해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 속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이 회장인 대한축구협회로 세 차례나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고 동서(정몽준 의원 부인)인 김영명씨에게도 전화해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남편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응답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 회장은 정 의원에 대해 “별로 가깝게 지내지는 않았고 최근에는 아는 척도 안 하더라.”며 불만을 터뜨렸고,“정 의원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큰아들(정몽진 KCC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을 빼앗으려 한다.2년 전 경영권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정 의원은 삼촌 편에 섰었다.”는 말도 숨기지 않았다. 검찰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4월27일)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주식을 매집한 것에 대해서도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측은 “조선업과 해운업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하고 현대상선의 M&A 위협을 덜어주자는 투자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조만간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경영참여’가 아닌 ‘단순투자’ 목적임을 밝힐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우리가 현대상선 지분을 인수하지 않았으면 골라LNG에서 다른 투자자를 찾았을 것이고 그 경우 M&A 위협이 더욱 커진다.”면서 “현대상선도 처음에는 이해하는 입장이었는데 현 회장측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백기사치고는 지분이 너무 많다는 현 회장측 주장에 대해서도 “5000억원 가까운 주식을 거래하면서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은 공정공시 위반 소지가 높다고 판단했고 골라LNG측에서 지분 전량 매입을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준 의원과의 ‘접촉’ 시도에 대해서도 “KCC와의 경영권 분쟁 등 복잡한 집안 내력이 있긴 하지만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경영에서 손을 뗀 정 의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SK텔레콤오픈] 미셸 위 “난 뼛속까지 대~한국인”

    “대회 출전 못지않게 한국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설렌다.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새달 4일부터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록힐코스에서 아시아프로골프 투어를 겸해 열리는 SK텔레콤오픈에서 아시아와 한국의 정상급 남자 프로선수들과 겨루기 위해 오는 29일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17·나이키골프)가 한국을 방문한다.2003년 제주에서 열린 CJ나인브릿지클래식 참가 이후 2년7개월여 만이다. 미셸 위는 방문을 앞두고 25일 자신의 생각과 각오, 일과 등을 상세히 전해왔다.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학교에 가기 전까지 한국어만 배우고 영어는 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배웠다는 미셸 위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한국인’이라고 여긴다. 물론 집에서는 모든 대화를 한국어로 한다. 집에서 밥과 김,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즐길 정도로 음식 취향도 한국적인 그는 방한 기간 동안 맛볼 음식으로 흑돼지 삼겹살, 김치보쌈, 순대, 떡볶이, 붕어빵 등 20가지 정도를 꼽아 놓았다. 홍어찜도 좋아하는 음식이다. 노래도 한국 노래를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자주 바뀌지만 요즘은 ‘동방신기’에 푹 빠져 있다. 한때는 소지섭을 좋아하다 지금은 영화 ‘왕의 남자’의 주연 배우 이준기를 제일 좋아한단다. 공부도 잘하는 그는 경기에 출전하느라 학교를 가지 못할 땐 자동차나 비행기 등 ‘탈것’ 안에서 숙제를 다 한다. 프로가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부자’가 됐다는 점이다. 나이키와 소니가 스폰서를 맡으면서 1000만달러를 벌었고, 초청료도 만만치 않다.SK텔레콤오픈에도 70만달러를 받고 출전한다. 벌어들이는 돈은 필요 경비를 빼고 모두 신탁계좌에 들어가지만 돈을 써야 할 때는 통이 크다. 프로 전향 발표 때 마침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를 위해 성의를 표시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스스로 ‘50만달러’를 결정했다. 남자 프로 대회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는 것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SK텔레콤오픈 출전도 마찬가지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한번도 못해본 남자 프로대회 컷 통과를 꼭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대회 출전 못지않게 한국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설렌다는 미셸 위는 한국에 조부모와 외조부모가 있고 친척들도 많다. 외삼촌, 이모부 등 많은 친척들을 만날 생각에 어떤 해외 원정길보다 더 기대한다. 짬을 내서 동대문 시장이나 백화점 나들이도 생각하고 있는데 신나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들떠 있다. 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어르신,힘도 좋으시지” ‘야누스’의 70대 당숙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지.아무래도 궁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촌동생 딸에게 손을 대다니….” 중국 대륙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신의 사촌동생의 딸을 성폭행해 임신을 시킨 파렴치한 70대 노인이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남부 광주일보(廣州日報)에 따르면 몇달전 숨진 아화(阿花·21·여·가명)씨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정신지체 장애인이다.부모가 모두 사망한 뒤 국가의 생활보조금 월 70위안(약 9100원)을 받아 친척집에 얹혀 살며 언니·동생과 함께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 지역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녀가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사람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살림마저 너무나 어려워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먹을 것 등을 갖다줄 정도로 동정해줬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주민은 “지난해초부터 아화는 집 부근에는 74살의 당숙이 살고 있는데,그녀가 당숙을 너무너무 잘 따랐다.”며 “특히 돼지고기 삶은 것 등 먹을 것을 틈틈이 준비해 아화 집에 갖다주길래 역시 친척간에 정이 각별하구나라고 생각했는데,이제보니 다 그런 꿍꿍이 속을 가지고 베푼 ‘미끼’였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아화의 성폭행 사건은 올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아화와 함께 살던 삼촌이 어느날 같은 동네 주민들로부터 ‘아화의 몸이 이상하다.아무래도 아기를 가진 것같다.’는 소문을 들었다. 삼촌은 소문을 듣자마자 곧바로 아화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가 임신 여부를 검사했다.그 결과 아화는 벌써 임신 4개월 가까이 됐다. 깜짝 놀란 삼촌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찾아내려고 곧장 아화를 데리고 공안기관에 갔다.공안기관은 즉시 사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며칠간이 탐문조사를 실시한 끝에 공안은 아화를 성폭행하고 임신시킨 유력한 용의자로 74살의 당숙 등 2명을 지목했다. 공안은 이에 따라 유력한 용의자 두명을 대상으로 DNA검사를 통한 친자감정을 의뢰했다.최종 결과는 당숙의 친자인 것으로 밝혀져 그를 즉각 체포해 구속했다. 당숙은 경찰에서 “지난해 11월 어느날 아화와 함께 나무를 하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길래 갑자기 ‘흑심’이 발동해 일을 저지르게 됐다.”며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온라인뉴스부
  • 외삼촌·조카 구의원 놓고 한판 격돌

    외삼촌과 조카가 5월 지방선거에서 구의회 의원자리를 놓고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이고 있다. 동상이몽의 주인공은 서울 양천구 의회 ‘바’ 선거구에 출마하는 민주당 예비후보 박두성(사진 왼쪽·60)씨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현 양천구의회 의원 전광수(오른쪽·39)씨.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구의원으로 당선됐던 전씨는 2002년 말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이번 선거에 무소속 출마했고 외삼촌인 박씨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내게 많이 사랑을 주셨던 외삼촌이다.” “조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여러모로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격려와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경쟁 관계이지만 두 사람은 올해 지방선거부터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로 바뀌어 선거구당 당선자 수가 2명이 된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동반당선의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23일 “조카가 열심히 해서 함께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전씨는 “삼촌과 동반 당선해 개표 결과가 나오는 5월31일 저녁에 가족과 모여 웃으며 뜨거운 포옹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강한걸볼까 순한걸 볼까? 국산영화 2편

    모처럼만에 배우들의 ‘한바탕 열연’이 어우러진 영화 두 편이 27일 개봉한다.‘사생결단’(MK픽쳐스)과 ‘맨발의 기봉이’(태원엔터테인먼트)가 그것. 그런데 내용은 정반대다. 한쪽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물리는 세상을, 다른 한쪽은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해주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매표소 앞 관객들은 어느 영화를 선택할까. ●전통 누아르, 사생결단 여기 한 형사(황정민)가 있다. 마약 파는 놈한테 친한 선배를 잃었다. 이 선배 마누라와 섹스도 하고, 또 이제 그 놈의 지긋지긋한 경장 계급장 갈아치우고 싶어 마약상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다른 한 쪽에는 어릴 적부터 삼촌이 시키는, 술도 담배도 아닌 마약 심부름을 하며 자란 양아치(류승범)가 있다. 이 둘은 운명공동체가 된다. 마약상 잡으려는 형사에게는 이 양아치가 주는 정보가 필요하고, 형사가 거물급 제거해줄 때 슬쩍 영역이라도 확장하면 양아치로서는 그야말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셈이다. 그런데 어랍쇼 이 마약상, 형사-양아치 관계와 똑같은 관계를 검사와 맺고 있다. 현장을 뒹구는 일개 강력반 형사 따위가 이름 없는 양아치와 논다면, 고상하게 높으신 자리에 앉은 검사는 역시 거물 마약상과 딜을 하고 있었던 것. 주먹으로 치자면 양아치와 형사는 지역구, 마약상과 검사는 전국구였던 셈이다. 이처럼 ‘사생결단’은 의협심, 정의감 혹은 윤리, 도덕 따위의 단어들은 내팽개친 영화다. 어느 하나 제 잇속 생각하지 않는 놈이 없고, 어느 하나 남을 이용해먹지 않는 놈이 없는 세상을 그린다. 서로가 서로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는 사이이니 이제 남은 건 ‘포커 페이스’와 ‘머리 싸움’. 여기에 양아치의 삼촌(김희라), 쫄따구(온주완), 애인(추자현)의 욕망이 끼어들면서 결말은 혼미해져간다. 황정민·류승범은 물론, 모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기본이고 시나리오·음악·의상·조명 등도 흡잡을 곳이 없다.18세 이상 관람가. ●눈물 찔끔, 맨발의 기봉이 이에 반해 ‘맨발의 기봉이’는 전형적인, 나비 날고 꽃 피는 팬터지다. 실제 인물 엄기봉씨를 다룬 TV 다큐 ‘맨발의 기봉씨’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외진 마을에 사는 순박한 기봉이 아저씨가 주인공. 이 기봉이역을 맡은 신현준의 변신만 해도 화제가 될 만한 영화다. 나이는 마흔살이지만 어릴 적 앓은 열병 때문에 정신연령은 8살. 온 마을의 허드렛일은 도맡아 하면서 번 푼돈으로 어머니(김수미)를 극진하게 모시는 효자이기도 하다. 이 역을 소화하기 위해 신현준은 뻐드렁니에, 모든 바지를 몸빼바지처럼 입고, 몸은 항상 엉거주춤에, 발음은 대사가 진짜 저렇게 쓰여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그리고 ‘네∼’ ‘아이고 참∼’이라는 실제 엄기봉씨가 많이 쓰는 말도 감칠 맛 나게 적절하게 쓴다. 특히 기봉이의 취미, 나무막대기든 뭐든 하나 부여잡고 앞뒤도 전혀 안 맞는 일기예보나 야구중계를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뛰어난 연기를 보인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런 기봉이를 어릴 적부터 안쓰럽게 보아오던 백 이장(임하룡)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시키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눈물과 웃음과 인간애를 강조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몇가지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고, 그러니 스토리가 일관되게 쭉쭉 치고 나가는 맛은 한참 떨어진다. 한조각 한조각 정성을 다해 만들어 붙였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그만 엉성해 보이는 모자이크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는 딱 맞는 전체 관람가 영화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거래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거래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자식에게 돼지꼬리가 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신의 저주로 말미암은 퇴화를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상피(相避)라는 말이 있다.‘가까운 친척 남녀 사이에 저지른 성적 교접’을 뜻한다. 원래는 ‘서로 성관계를 피하는 사이’를 뜻한 말이었다. 그것은 부모 자식 사이, 오누이의 사이, 삼촌과 조카의 사이, 사촌이나 5촌 사이처럼 서로 당연히 성관계를 피해야 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서 오누이의 사이에, 혹은 삼촌과 조카의 사이, 사촌이나 오촌 사이에 간음 사건이 일어나면 ‘그 집안에 피 붙었다네.’ 혹은 ‘상피가 났다네.’하고 말하곤 했다. 어떤 통계를 보니, 여성 남성 모두 철들기 이전에 상피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성관계(혹은 성폭력)를 맺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우리 선인들은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했던 것일까. 조선조 유학자들은 본관이 같은 자들 사이의 혼례를 절대로 금했다. 왜 근친상간을 금한 것이었을까. 단순히 윤리 도덕 때문일까. 그것에 대한 해답을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내놓았다. 브라질 원시 부족사회로 들어가 연구한 결과 ‘거래’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딸은 저쪽 집에 주고 저쪽의 딸을 데려온다. 세상의 모든 거래는 권력과 권력 사이의 화해의 수단이기도 하다. 사실은, 우주 자체가 거래를 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거래를 한다. 인연을 따라 생성 소멸한다는 원리도 거래 그것에 다름 아니다. 글로벌 세상 속에서의 우리 살림살이를 들여다 보자. 어디에 거래 아닌 것이 있는가. 당연히 꽃들도 거래를 한다. 꿀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하여 꽃들은 꿀과 향기를 준비한다. 벌과 나비는 꿀을 빨아가는 대신 꽃가루를 묻혀 갖고 가 다른 꽃 암술에 전달해 준다. 여기에는 확고한 철칙이 있다. 꿀벌은 꿀을 채취해 가되 절대로 꽃잎이나 암술이나 수술 그 어느 것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 모든 꽃들은 자기 꽃들끼리의 미묘한 거래 법칙이 또 하나 있다. 그 미묘한 거래를 위하여 암술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드높은 문턱 하나를 마련해 놓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꽃의 수술로부터 떨어지는 꽃가루가 흘러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근친상간을 방지하기 위한 턱인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꽃의 수술을 꿀벌이나 나비를 통해 받을 뿐, 자기의 수술에서 떨어지는 꽃가루를 받지 않겠다는 절제인 것이다. 진돗개의 순수혈통을 보존하려고 근친 교배를 시키면, 짖을 줄도 모르는 천치 바보들이 50∼60%쯤 태어나는데 그들은 다 도태시켜야 한다. 사람의 경우도 근친상간으로 인해 태어난 자식들은 백치들이 많다. 예로부터 결혼은 한사코 멀고 먼 곳에 사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논리대로 한다면 국제결혼을 하면 강하고 우수한 인재가 태어날 터이다. 같은 종 가운데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혼혈종이다. 동식물의 강한 우성의 새 품종을 만들어내는 교배사들은 새로운 틔기 만들기에 골몰한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감나무의 암꽃이 다른 나무의 수술에서 꽃가루를 받지 못하고, 자기 수술의 가루를 받아 열매를 맺고, 또 그 열매에서 태어난 감나무가 그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곤 하면 ‘고욤’처럼 작은 열매를 맺는 감나무로 퇴행하게 된다. 우주는 거래를 통해 혼혈 종을 만들어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의지가 우주를 새로운 모양새로 바꾸곤 한다. 우리는 한국에서 혼혈아로 태어나 미국에 가서 크게 성공한 청년을 알고 있다. 순수 혈통만을 지키려 하는 것은 억지이고 자폐이다. 문화도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왕래하면서 부단히 섞이어 왔다. 틔기 문화가 강하다. 더욱 강한 틔기 문화를 창출하려면 먼저 우리 순수 문화의 혈통이 보존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순수문화와 외래문화 사이의 2대 3대 4대의 더욱 강한 틔기문화들이 창출될 수 있다.
  • [12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20분) 서울 강남의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네 차례나 강남 집값 안정을 겨냥한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확실한 처방은 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 추병직 장관과 함께 주택가격 안정화 대책 등 현안에 관해 알아본다.   ●문화 36.5(EBS 오후 10시5분) 저작권법 일부 개정안을 놓고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반발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보호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알아본다. 강원도의 쓸모없게 된 폐교가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의 관심으로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탄생했다. 문화 나눔터로 바뀐 폐교의 흐뭇한 변신모습을 지켜본다.   ●불량가족(SBS 오후 9시55분) 달건은 나림이 불을 무서워 하는 기억을 떠올리자 변차장에게 일부 기억이 돌아 왔다고 보고한다. 나림의 생일파티를 위해 시장에 간 달건과 양아는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인다. 한편 나림이가 지난해 생일에 삼촌과 함께 피아노를 쳤다는 사실을 일기를 통해 알게 된 달건은 부경에게 개인지도를 부탁한다.   ●김동률의 포유(MBC 밤 12시55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똘똘 뭉친 여성 4인조 그룹 버블시스터즈가 무대를 여는 데 이어 파페라 테너 임형주가 출연해 레퍼토리를 선사하며 최근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국내 최고 남성 R&B 듀오 플라이투더스카이가 드라마 `패션70´의 주제곡인 `가슴아파도´와 감미로운 발라드 곡인 `피´를 열창한다.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키친 드링커’란 가족들이 없는 시간, 부엌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여성 알코올 중독자를 일컫는 신조어다. 그들의 은밀한 ‘음주’는 심한 지경에 이르기 전까지 가족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이 그녀들을 ‘알코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알아본다.   ●낭독의 발견(KBS1 오후 11시40분) 최근 연극 ‘날 보러와요’로 관객과 만나온 배우 권해효씨가 첫 낭독을 특색있게 준비했다.70년대 즈음 유행해 많이 읽혔을 촌스러운 표지의 팝송집을 들고와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를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는다. 또 멜리사 브루더의 ‘배우수첩’중 극장과 배우에 관해 쓴 부분을 낭독한다.
  • [열린세상] 하버드 ‘천재 총장’이 실패한 까닭/이덕연 연세대 교수

    지난달 하버드대학의 로런스 서머스 총장이 사임하였다. 그 이유와 배경에 관해 말들이 많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학부 교육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혁 프로그램이 교수들의 반발로 무산된 것이다. 대학에 대하여 정치만큼이나 경쟁력이 없다는 ‘심한’ 비난과 함께 개혁 요구가 집중되는 우리 상황에서 대학개혁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 자체는 새삼 관심거리가 될 것이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고,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우리나라 유수한 대학의 10배이상인 하버드대학의 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한 인식과 진단 및 구조개혁 처방은 이미 과잉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왜 그리고 무엇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더이상 재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논의되었다. 우리 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머스가 최우선 개혁 대상으로 관심을 가졌던 커리큘럼이 어떻든간에 매킨지그룹이나 골드만삭스 같은 유수한 기업으로부터 초임 연봉으로 9만달러를 제의받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하버드의 교수들도 대부분 문제인식은 공유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치개혁·정부개혁·의회개혁·사법개혁·교육개혁·식단개혁 등등 개혁의 홍수 속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한 시민으로서 이번 ‘하버드 스토리’를 굳이 소개하는 까닭은 조금 생뚱맞지만 ‘사람’과,‘사람관계의 다발’인 세상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브랜드 가치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해 할 하버드의 교수들, 특히 전통적인 연구 중심의 대학구조와 운영체제 속에서 학부 강의시간을 최소로 유지하면서 연구를 우선해 온 정년보장 교수들에게 강의부담이 가중되는 방향의 학부 커리큘럼 개혁이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치열한 스타교수 영입경쟁에서, 돈보다는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위한 적은 강의부담이 최선의 유혹수단이 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서머스의 개혁구상은 총론적으로는 맞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서머스 개혁’이 실패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던 듯하다. 그의 아버지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어머니는 와튼경영대학원의 교수를 지냈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폴 새뮤얼슨과 케네스 에로 스탠퍼드대 교수가 삼촌과 외삼촌이다.28세 최연소로 하버드대 정교수에 임명되었고,1993년 차관으로 재무부에 들어가 44세인 99년 장관이 되었다. 이어 2001년 하버드대 총장에 취임하기까지 서머스 자신도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최고의 경제학자 집안 출신에, 탁월한 능력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만큼 아마도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을 터. 그는 세간의 기대에 한치의 어긋남 없는 재승박덕의 천재 악동(惡童)식 행태로 유명하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마돈나와 순결의 관계만큼이나 그와 겸손은 거리가 멀다.’라 하고, 루빈은 재무부장관 재직 중에 가장 즐거웠던 일이 ‘서머스 길들이기’였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루빈의 길들이기가 효과를 봤는지 장관 재직 중에 많이 순화되었다는 평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점잖은 하버드 교수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개혁을 주도하는 젊은 총장 서머스는 여전히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을 신고, 셔츠 끝자락이 삐쭉 튀어나와 있는’ 똑똑한 철부지에 불과하였던 듯하다. 그에게 2% 부족했던 건 나이나 식견이 아니었다. 개혁의지도 아니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겸손과, 겸손하지 않고는 결코 가질 수 없는 덕성과 유연함, 바로 ‘사람’이었다. 러플린 총장 주연의 ‘카이스트 스토리’의 갈등구조는 어떤 것인지, 바빠서 어렵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개혁공화국’과 ‘개혁대학’의 리더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적잖이 궁금하다. 이덕연 연세대 교수
  • [재계 인사이드] 대림통상 숙질 28일 ‘주총 혈전’

    “돈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 대림통상을 둘러싸고 수년째 계속돼온 ‘숙질의 난’이 28일 주총에서 최후 일전을 예고하고 있다. 대림통상 이재우 회장은 28일 주총을 열어 기존 회사인 대림통상을 지주회사인 DL과 대림통상으로 분할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대림통상의 2대 주주인 조카 이부용(고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의 차남·이준용 현 회장의 동생)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통상 최대주주인 삼촌 이재우 회장을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삼촌의 승리로 기우는 듯보였던 숙질간 분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판결대로 이 회장측이 지난해 회사로부터 취득한 자사주 240만주(전체 지분의 11%)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 의결권 지분이 56%에서 43%로 줄어든다. 회사 분할을 특별 결의하려면 주총에 출석한 주식 중 의결권있는 주식의 3분의2가 필요하다.2대 주주인 조카 이 전 부회장이 주총에 나와 반기를 들면 삼촌 이 회장의 회사 분할 시도는 좌초될 수 있다.2대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은 30.4%다. 이부용 전 부회장측을 대변하는 노수환 변호사는 “이재우 회장의 뜻대로 회사 분할을 특별 결의하려면 이 회장측이 필요한 지분은 66.7%이지만 동원 가능한 최대 지분이 62%밖에 안되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사람들을 동원해 2대 주주측이 주총에 입장하지 못하게 막고, 당초 의도대로 회사 분할안 가결을 시도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현재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주총장에서 물리적 충돌이 이뤄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분할안이 가결될 경우 주총 결의 취소 소송 등을 낸다는 복안도 세웠다. 이부용 전 부회장측은 지난 2월 말 임시주총을 소집해 기존 감사를 해임하고 신임 감사를 선임,2대 주주로서 경영 참여를 시도했지만 주총장은 몸싸움 등으로 아수라장이 됐고, 안건이 부결되며 삼촌인 1대 주주측이 내세운 감사가 계속 하기로 했다. 이어 이달 초 1대 주주 위주로 열린 정기주총에서는 1대 주주들이 내세운 새 감사들이 추가로 선임되면서 숙질간 분쟁은 삼촌의 압승으로 끝나는 듯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이번에 의결권 금지 판결을 받은 자사주를 취득하기 위해 100억원대의 은행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당초 회사 분할을 통해 자기 주식을 지주회사에 팔고 그 돈으로 은행 빚도 갚는 한편 대림통상을 비롯한 다른 계열사도 통제하려고 했는데 이번 판결에 따른 난관을 어떻게 해쳐갈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풍림산업 이필웅 회장家

    1981년 이후 30위권에 들었던 건설업체 가운데 대주주의 변동 없이 시공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업체는 풍림, 대림 등 8개뿐이다. 나머지 업체는 주인이 바뀌었거나 30위권 밖으로 밀려났거나 아예 공중분해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국내 건설산업의 한 획을 긋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기업 보국 신념으로 창업 국내 건설업 20위권으로 성장한 풍림의 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업 초기부터 다른 기업과 달리 바깥에 기업을 알리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경영을 했기 때문이다. 풍림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국내 굴지의 건설사인 대림산업과 뿌리를 같이한다. 대림산업의 창업주이자 사장이었던 이석구(작고) 선대 회장이 1960년 군별 공사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작은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2군 업체인 풍림산업(전신·전일기업·1954년 설립)을 인수, 오늘날 풍림으로 키웠다. 이석구 창업주는 1939년 20대 후반에 목재상인 ‘부림상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림산업과 풍림산업의 모태가 됐다. 이석구는 사업이 번창하면서 경기도 시흥(현재 군포 산본)의 지주이자 외삼촌(이규응)으로부터 사업 자금을 빌려쓰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둘째 아들(재준), 즉 외사촌 동생과 함께 사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림은 이 때부터 두 사람의 노력으로 나날이 번창했고 해방 후 1947년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면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 창업주의 기업 이념은 ‘기업보국(企業報國)’이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채 고통스러워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은 사업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기업의 성장을 통해 국가를 살리자는 기업가 정신이 투철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1962년 과로한 탓에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대림산업의 경영권을 내놓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이후 대림산업 경영권은 함께 일하던 이재준 사장이 맡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위·무심경영으로 풍림 육성 이석구 창업주의 기업정신은 맏아들 이필웅(64) 현 풍림산업 회장이 물려받았다. 이 회장은 63년 선대 회장이 경영하던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일을 배우면서 기업인이 된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림산업에 다시 입사, 영업부에 배치돼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기 시작했다. 이 때의 경험이 훗날 풍림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자질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풍림은 당시 경제개발 붐을 타고 각종 공사를 따내면서 커왔다. 해외공사를 활발히 펼치는 동시에 경영관리와 조직정비를 통해 기업을 현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초기 대림산업의 공사를 하청받는 형태에서 벗어나 어느새 중견건설사로 우뚝 성장했다. 풍림의 제2창업은 이필웅 회장이 대림산업 부사장을 역임한 것을 끝으로 1981년 7월 풍림이 대림으로부터 완전 분리, 독립경영을 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선대 회장이 창업한 대림산업은 동업자인 이재준 사장에게, 창업주의 맏아들인 이 회장은 계열사로 있던 풍림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이 풍림산업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그를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경영 쇄신을 단행, 국내외 조직을 개편하고 관리 인원을 줄이는 한편 전문 하도급 업체를 육성하는 등 공사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풍림에도 위기는 찾아왔다.2차 석유파동에 이은 경제불황, 이로 인한 건설수요 급감은 풍림의 수주 신장률을 꺾는 치명타를 입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낙찰률이 떨어졌고, 자금조달 능력 부족으로 민간 공사 및 자체 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했다. 해외공사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일감 수주가 어렵고 적정 이윤 확보가 쉽지 않아 무턱대고 진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1986년 경영 쇄신에 들어간다. 본사 유사 조직을 통폐합하고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영의 효율성을 올리는 동시에 원가 절감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직접 관리인을 줄이는 대신 협력업체를 키워 공사 전문화를 유도했다. 동시에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는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풍림으로 성장하게 된다.86년 4월에는 강남 테헤란로의 명물 풍림산업 사옥을 준공한다. 풍림빌딩에는 최근까지 특허청이 입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허청 빌딩으로 더 유명했다. 최근에는 이 건물 주변으로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고 복잡해져 찾기 어렵지만 오랫동안 테헤란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풍림의 성장 동력에는 이 회장의 경영 마인드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기업을 지혜와 자제심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경영의 리더는 조직이 잘 운영되도록 작용하고, 최대한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철학을 지녔다. 바로 ‘무위(無爲)와 무심(無心)의 경영’이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도전과 성취 욕구가 강한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어려운 시기를 맞아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힘이 됐다. 이 회장은 현재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 중이며, 동생 이필승(56) 풍림산업 사장과 지난해 승진한 장남 이윤형(35) 상무가 그를 돕고 있다. 이 사장은 83년 3월에 풍림산업 자금부에 입사해 이후 경리·자재·총무·기획실 등을 두루 거쳐 9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현재 풍림은 향후 50년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새로운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우선 풍림은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통해 안정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우수 인재 확보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핵심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민간 건설 시장 위축, 최저가낙찰제 확대 등으로 공공시장 수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틈새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자체 보유 부동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오히려 땅 소유 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높은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수익성 있는 민간 발주 아파트 공사를 적극 수주할 방침이다. 해외건설은 엑슨 모빌이 발주한 러시아 항만 접안시설 및 부대시설 공사와 쉘이 발주한 가스 파이프라인 가압공사 진출을 계기로 해외사업을 강화할 채비를 갖췄다. ●두꺼운 인맥, 단출한 혼맥 이 창업주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따랐다. 풍림을 거쳐간 이재순, 이면훈, 허필은 사장 등이 창업주와 함께 초창기 대림과 풍림을 키운 전문 경영인들이다. 술은 한 모금도 못했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건설업 특성상 술자리도 자주 참석해야 하던 시절이었지만 술 한 모금 못하면서 영업에는 귀재였다고 한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건설업의 과당 경쟁 풍토를 정비하고 건설업 발전을 도모하는 등 국내 건설산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공헌한 인물로 꼽힌다. 또 해야 할 일을 쌓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부림상회 시절 주문이 들어오면 이 창업주는 소달구지에 목재를 가득 싣고 직접 배달을 가기도 했다. 소달구지 직접 모는 사장으로 통할 정도로 소탈하고 일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는 사람 다루기를 잘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사장이라고 할 정도로 앞에서 뛰었다. 형제가 많지만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한정됐다. 풍림산업 경영에 참여하는 가족으로는 이 사장과 장남 이 상무가 전부다. 부지런함은 가족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이 회장이나 이 사장이 현장을 자주 찾고 새로운 사업 구상과 투명경영 추구는 사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회장은 지금도 매일 역삼동 사옥으로 아침 일찍 출근해 주요 업무를 직접 챙길 정도다. 이 사장 역시 아침 7시면 출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이 회장의 집안은 형제 자매가 10명인 대가족이지만 혼맥은 단출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굳이 정계·재계 집안과 결혼을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집안 어른 소개로 평범한 집안과 혼인했다. 주변 사람들은 풍림의 단출한 혼맥을 놓고 한국 건설업계의 초석을 다지며 50년 이상 성장한 회사답지 않게 복잡하지 않다고 말할 정도다. 이 회장의 큰 누이 필선씨는 일반적인 가정의 자녀 임대철씨와 결혼했고, 바로 윗누이 역시 평범한 가정의 권철주씨와 혼인했다. 매부들이 서울 공대 출신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관련 기업에 근무했을 정도다. 셋째인 이 회장도 중매로 결혼했다. 이영자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 여사는 몇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달리했는데, 임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한다. 임원들을 직접 집으로 불러 떡국을 끓여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여사를 사별한 뒤 장현덕(47) 여사와 재혼했다. 이 회장은 자식들 결혼 역시 일상적인 가정의 자녀들과 맺어줬다. 큰딸 정민씨는 이동한씨와 혼인했다. 이동한씨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진출한 일본 기업에 근무하던 중 반 중매 반 연애결혼했다. 국내 굴지의 회사 자녀이지만 결혼식은 조용하게 치렀다. 두 아들 역시 결혼 과정이 평범하고 소리나지 않는다. 큰 아들인 윤형(35)씨는 한양대를 나와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알게 된 오유진씨와 연애결혼 했다. 유진씨의 부친은 고려대 교수이다. 작은아들 주형(34)씨는 지난 2001년 말 역시 미국에서 유학 중 만나 사귄 최수현씨와 결혼했는데 사돈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다. 이런 풍토는 이 회장의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이필승 사장은 대학때 사귄 평범한 집안의 딸 강환량씨와 연애결혼에 골인, 가정을 꾸렸다. 나머지 동생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등 보기 드물게 단출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다. chani@seoul.co.kr ■ 젊은 아이디어의 산실 ‘영 보드’ 눈길 풍림산업은 젊은 기업으로 통한다. 군더더기가 없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변신했기에 가능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획기능을 강화, 각 부문별 경영전략 모색을 통한 신속한 의사소통과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획담당 제도와 ‘Young Board(청년경영자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기획담당 회의는 각 사업부(본부)의 부·차장급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교육을 받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격월 1회 정도 전체 임원회의에서 부문별 시장동향, 부문별 전략 등을 브리핑한다. 이들이 브리핑한 내용은 임원들이 즉시 검토,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풍림의 청년경영자회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 대리, 과장급 1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이들은 평소 현업을 수행하며 업무 관련 아이디어나 회사경영에 건의할 사항을 준비해 매달 1회 자체회의를 연다. 회의 결과는 사장과 면담을 통해 직접 건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경영자들은 차세대 경영자가 되기 위한 경영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또 고아원, 장애인시설 등 방문 등 회사의 자원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이필승 사장은 “기획담당 제도와 영보드회의 활성화로 열린 경영을 추구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경영 풍토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풍림산업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고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난 50여년 오직 한 길, 건설에만 매달려온 풍림산업. 작은 묘목이 모여 울창한 수풀을 이루듯 풍림은 건설업계 20위, 매출액 1조원대의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이름은 목재회사를 시작으로 한 부림상회(富林商會)와 연결된다. 인천 부평역 앞에서 작은 가게를 얻어 문을 연 부림상회는 이후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인 풍림산업과 대림산업으로 발전,‘풍요로운 울창한 숲(豊林)’을 이루고 있다. 초기 기업가들이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던 것과 달리 풍림은 오직 건설 전문기업으로 한 우물만 파고도 그룹 건설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곁눈질하지 않고 건설만 고집하다 보니 회사가 대그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몸집 부풀리기에 치중한 기업들이 힘없이 쓰러진 것과 비교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 ‘엄격한 경영수업’ 풍림의 家風 풍림가는 엄격한 경영수업으로 유명하다. 장자 중심으로 경영권을 물려주고, 여자 형제의 경영참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다른 기업과 다르다. 몸소 뛰고 정도를 고집하는 것이 가풍(家風)이자 사풍(社風)이다. 창업주 본인이 주문받은 물건을 직접 배달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작업을 지시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대림산업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국내외 건설현장을 직접 밟았다. 창업주 자신이 검소하고 한눈 팔지 않았을 뿐 아니라 2세,3세 역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 회장 역시 대림산업에 입사, 경리 업무부터 배웠다. 이후 각 분야에 근무하면서 경영인의 자질을 키웠다. 특히 풍림산업을 이끌면서 국내외 현장을 누벼 국내 대형 업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런 경영수업은 3세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장남인 이 상무가 보다 체계화된 기업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바로 풍림에 입사시키지 않고 삼성전자와 대림산업에 밑바닥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호랑이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또 선진 경영기법을 배우도록 미국 시러큐스대로 유학을 보내 MBA 과정을 밟도록 했다. 이후 풍림에 입사한 뒤에도 다양한 업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개발사업부에서 경영수업을 받던 이 상무는 지난해 승진하면서 조달본부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는 구매·계약 업무를 총괄하면서 건설업의 모든 과정을 두루두루 꿰뚫어보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경영이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고, 최고경영자 역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깨달으라는 뜻이다. 풍림 관계자는 “지난해 이뤄진 이 상무의 승진도 경영 수업을 착실히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필승 사장도 조카인 이 상무의 경영수업에 대해 “엄격하게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아야 기업을 이끌 수 있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엄격한 경영수업이) 풍림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chani@seoul.co.kr
  • 부모·외삼촌·사촌오빠도 과학자

    최근 ‘연인의 잔’을 발명해 세계인의 시선을 모은 정혜민(여·26·미국 MIT공대)씨 가족의 과학열정이 화제를 낳고 있다. 혜민씨의 모친은 지난해 말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여성기관장인 정광화 표준연구원장이며, 부친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정규수 박사.평생을 과학자의 길을 걸어온 부모의 과학열정이 오늘의 정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법하다. 현재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정씨는 대덕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정보통신대학에서 1년간 연구원으로 활약하다 MIT 미디어랩에 유학 중이다. 혜민씨의 가계는 과학명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005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한 신중훈(36·과학기술원) 교수가 사촌오빠이고 미국 댈러스 삼성전자연구소의 정용우(53) 소장과 충북대 화학과 정용석(49) 교수는 외삼촌이다.정광화 원장은 “딸의 소식을 듣고 저녁내내 남편과 함께 인터넷에 나온 기사를 검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엄마가 필요할 때 옆에서 보살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했는데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정 원장은 “음료수 한잔을 마실 때도 ‘기포가 움직이는 모습을 살펴볼까.’라며 딸의 지적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 자라면서 과학 마인드로 연결된 것 같다.”고 밝혔다. 혜민씨가 발명한 ’연인의 잔‘은 한쪽에서 잔을 집어들면 다른쪽 잔에도 부드러운 붉은 빛이 나고, 한 사람이 잔에 입을 대면 다른 사람의 잔에 밝은 흰빛이 나도록 돼 있어 상대방과 동시에 와인을 마시며 사랑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그는 유학 중인 세계 각국의 동료 학생들이 고국에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어떻게 하면 커뮤니케이션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줄까.” 고민한 끝에 동료인 타이완 출신의 재키 리(27)와 함께 `연인의 잔´ 을 개발했다. 이 연구 성과는 뉴사이언티스트 최신호를 통해 알려진 뒤 전세계로부터 자료를 부탁하거나 인터뷰를 신청하는 전화가 쇄도하는 등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12세때 어머니 동거男이 성폭행 9년만에 배상판결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동거하던 남성에게 수십차례나 성폭행당한 소녀가 9년 만에 정신적인 고통을 보상받게 됐다. 강모(20·여)씨가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인 1998년. 정신장애를 겪고 있던 어머니 박모(45)씨가 생활고 때문에 이모(57)씨와 동거하면서부터다. 이씨는 박씨가 일하러 간 뒤 혼자 남은 강씨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성추행했다. 집에 오는 게 두려워 다른 곳에서 자고 온 날에는 강씨에게 “외박을 했으니 몸을 검사해야 한다.”며 몸을 더듬는 등 성폭행을 일삼았다. 박씨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어 딸을 마음대로 하더라도 따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이씨는 강씨를 20여차례나 성폭행했다. 충격을 견디다 못해 강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해 학업마저 포기했다. 어느덧 성년이 된 강씨는 수치심 때문에 불행했던 과거를 덮어두려 했지만 외삼촌의 권유로 법적인 대응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강씨의 고소로 이씨는 구속기소돼 5월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강씨가 수년간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이씨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소송조차 낼 수 없었던 강씨는 법률구조공단을 찾아 도움을 청했다. 구조공단의 지원으로 강씨는 지난해 7월 이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최근 “이씨는 강씨측에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어린시절 삼촌에게 성폭행 당했다”

    미국 ABC 방송의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이혼모 수전 역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여배우 테리 해처(41)가 유년 시절 삼촌에게 성폭행당한 사실을 털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해처는 자신이 표지 모델로 실린 월간 ‘베니티 페어’ 4월호 인터뷰에서 가족과 떨어져 삼촌과 살던 5살 적부터 시작해 3∼4년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평생 숨기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며 다른 성폭력 피해자처럼 죄의식을 갖거나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9살 이후로 삼촌을 본 적이 없다.”며 “아마 부모님은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처는 지난 2002년 삼촌에게 성폭행당한 14세 소녀가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자 충격을 받고 삼촌이 혐의를 벗지 못하도록 자신의 과거를 검찰에 밝히고 법정 진술까지 했던 사실도 이번에 소개했다. 삼촌(68)은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검사는 “해처의 증언이 없었더라면 소녀의 사건은 묻힐 뻔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비중있게 그녀의 고백을 다뤘고, 여성 및 인권단체들은 어두운 과거를 스스로 밝힌 그녀의 용기를 높이 사는 성명을 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32년째 고국 떠도는 일제 징용자 영혼들

    32년째 고국 떠도는 일제 징용자 영혼들

    경남 함안에 살던 이대운씨는 1940년 일본 후쿠오카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다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국내에 아무런 생활기반이 없던 이씨는 현지에서 노역생활을 계속하다 1960년을 전후로 사망, 한 사찰에 유골로 안치됐다. 지난해 8월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는 우연히 이씨의 유골을 발견, 어렵게 수소문한 아들·딸에게 유골 인수를 통보했다. 하지만 이들이 가정형편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면서 이씨 유골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 ●72위 유족은 유골 고국 송환 사실도 몰라 3·1만세의 염원대로 조국은 해방 61년을 맞았지만 많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이씨처럼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부산 영락공원에 잠들어있는 강제징용 희생자 271명이 대표적이다. 영락공원에는 희생자들의 유골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안치돼 있다. 정부는 1974년 2월 일본으로부터 한국인 징용 희생자 2083명의 명부를 받아 이 가운데 1차로 유족이 확인된 911명의 유골을 같은 해 12월 국내에 봉환했다. 하지만 유골이 막상 국내에 들어오자 640명만 유족이 나타났고, 나머지 유골은 나서는 사람이 없어 30년 이상 방치돼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4월 발족 직후 영락공원내 271위에 대해 유족찾아주기 활동을 폈다. 그 결과 163위의 유족이 확인됐으나 나머지 108위는 유족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163위의 유족들 중 91명은 74년 유골이 송환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찾지 않고 있었으며,72명은 송환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현재 80명의 유족들이 유골인수를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에 옮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일 정부 유족에 4만원 부조금이 전부 방치된 유골이 많은 것은 유족들의 무관심에 더해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기 때문이란 게 위원회의 분석이다. 위원회 유해팀 장석경 계장은 “기억에도 없는 할아버지·삼촌의 유골을 찾아가라고 하면 대개들 반응이 시큰둥하다.”면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보상금은 둘째 치고라도 유골운구에 드는 비용이라도 정부에서 대줘야 관심을 갖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유족이라는 게 확인돼도 보상은 없다.74년 당시 유골을 찾아간 유족에게 한국과 일본정부가 각각 2만원씩 향전금(부조금) 4만원을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또 지난달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된 뒤 우리 정부가 강제징용 사망자 유족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에게 보상금이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 손자나 조카뻘이어서 보상 유족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장 계장은 “어렵게 모셔온 유골이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위원회 홈페이지(www.gangje.go.kr)에 접속하면 영락공원내 유족 미확인 108위를 포함, 일본 유텐지(사찰)에 안치돼 있는 한국인 희생자 1135위의 유골 명부를 확인할 수 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대림통상 이유있는 상한가

    삼촌과 조카간에 경영권 다툼이 한창인 대림통상 주가가 28일 상한가를 치면서 분쟁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림통상 이재우 회장의 조카이자 이 회사 2대 주주인 이부용씨측은 최근 이 회사 임시주총에서 선임된 감사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2일 서부지법에 신청한다고 28일 밝혔다. 현재 31.7%의 지분을 보유한 이부용씨측은 지난 23일 임시주총을 소집해 기존 감사를 해임하고 신임 감사를 선임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주총은 몸싸움 등 파행으로 치달았고 안건이 부결된 탓에 1대 주주측이 내세우는 감사가 계속 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부용씨측은 이에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촉발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카 이부용씨는 당시 한 개인에 의해 시도된 대림통상 인수합병(M&A)에 대한 백기사로 등장, 삼촌 이재우 회장을 돕기 위해 장내에서 25% 수준의 대림통상 지분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조카의 지분 매입이 계속되면서 숙질간 사이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재우 회장 및 일가 지분은 2004년 말 30%에서 2월 말 현재 50.7%로 늘어났다.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계속 지분을 늘려온 것이다. 조카 이부용씨측도 지분을 31.7% 수준으로 높여 놓았다. 대림산업 창업자인 고 이재준 회장의 아들이자 이준용 회장의 동생인 이부용씨는 지난 2003년 말까지 대림산업 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업계는 이번 감사 선임건은 경영권 분쟁의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오는 28일 대림통상 회사 분할안이 상정되는 임시주총이 격전장이 될 것이란 시각이다. 이부용씨측을 대변하는 법무법인 인천종합 노수환 변호사는 “이재우 회장은 회사 분할(대림통상을 통상과 DL로 분할)을 통해 자신의 대림통상 주식을 DL에 팔아넘겨 차익을 실현하고 DL을 통해 대림통상을 계속 지배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서 “30%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로서 향후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한편 이번 분할 시도를 반드시 막겠다.”고 주장했다. 대림통상측은 이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회사 분할을 가결시키기 위한 지분은 67%, 부결시키기 위한 지분은 33%다. 오는 28일 주총을 비롯해 향후 숙질간 지분 경쟁이 계속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대림통상 주식의 상한가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림통상 주식이 오늘 6만주까지가 거래됐지만 평상시 평일 거래량이 1000∼2000주 수준에 불과해 유동성이 떨어지는 만큼 투자 목적으로 매입하기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림통상은 지난 1970년 대림산업 고 이재준 회장의 동생인 이재우 회장이 창업한 회사로 수도꼭지 비데 등 건자재와 양식기 등 주방용품을 생산·판매한다.1988년 대림산업에서 계열분리되어 독자 행보를 걷고 있으며 2005년 기준 매출 1740억원, 당기순익 22억원을 올렸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공교롭게도 배호의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병마와 함께 시작되었다.1966년 2월, 신장염을 앓기 시작하면서 음색이 탁성으로 변해 바이브레이션조차 제대로 구사하기가 어려웠지만 가수로서 그는 되레 적극적이었다.‘황금의 눈’이 제법 방송을 타기 시작하자 배호는 그 해 말, 연세대 작곡가 출신인 당시 나규호 MBC PD를 직접 찾아간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작곡가 나규호(70)씨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를 이렇게 술회한다. “작사가 전우를 통해 알게 되어 형 아우로 지내던 배호가 방송국엘 찾아왔어요. 당시엔 PD들이 하루 50장 정도의 원고까지 직접 써야 하는 매우 분주한 때였는데 급하게 곡을 써 달라 부탁해서 배호를 10여분간 기다리게 해놓고 악상을 오선지에 그려준 기억이 납니다. 나로선 대중가요 작곡에 처음 손 대본 것이기도 합니다.” 이 악보는 전우에게 건네져 ‘누가 울어’와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으로 탄생된다. 이후 ‘전우-나규호-배호 콤비’는 ‘당신’ ‘안녕’ 등의 명곡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배호가 지닌 도회적인 분위기의 근간을 이룬다. 배호를 한 순간 인기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돌아가는 삼각지’ 역시 노래에 ‘쉼표’ 몇 개를 자의적으로 넣겠다는 조건 하에 취입했음에도 병마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숨 가쁜 톤이 그러하듯 배호는 투병과 호전 상황에 따라 때로는 끊어질 듯 탄식에 가깝게, 때로는 비교적 건강한 음색으로 여러 가지 창법을 구사하며 당시 아세아-신세기-지구 등 메이저음반사 전속가수를 거치면서 5년간 무려 260여곡을 취입했다. “이를테면 배호는 ‘달러박스’로 각 방송사의 인기가수상을 휩쓸며 전성기 때는 ‘돈다발을 베개 삼아 잔적도 있다’는 일화가 회자될 만큼 인기에 비례해 수입이 좋았지만 약값으로 인해 그는 늘 쉴 틈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회사의 전속가수로 있으면서도 다른 레코드사를 통해 ‘도둑 취입’을 하기까지 했으니까요.” 작곡가 김인배(74)씨의 회고다. 그렇듯 배호는 한 때 연예인 납세실적 3위에 올랐을 정도였지만 병원비, 그리고 가족을 위한 생계비를 감당하기 위한 무리한 공연과 취입으로 다시 병세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빠르게 소진해 갔다. 그럼에도 자신의 ‘배호와 그 악단-사파이어스’를 이끌며 혁신적인 활동을 계속했고 점차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지자 차를 구입해 ‘멋쟁이의 대명사’인 마이카족의 대열에도 합류한다. 그러나 점점 몸은 부어올라 옷과 신발을 매번 새로 바꾸어야만 했다. 이 무렵부터 식사 때마다 꼭 소화제를 복용했고 말 수도 점차 줄어갔으나 입버릇처럼 ‘쓰러져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말만은 늘 입에 달고 다녔다 한다.‘행방불명설’과 ‘사망설’이 항간에 수시로 나돌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보란 듯이 나타났다. 때로 휠체어에 앉은 채 레코드판으로 노래를 대신해 무대에 올랐고 심지어 사회자의 등에 업혀 노래하기도 했다. 무대에서 각혈까지 하며 중도 퇴장하기도 했다. 관중들의 박수소리와 환호만이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던 배호는 결국 71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배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으나 죽기 며칠 전 억지로 이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직계 혈육은 이제 아무도 없다. 얼마 전까지 경기도 장릉 신세계공원에 안치되어 있는 그의 묘는 장기간 무연고로 관리되어오고 있었다. 더 이상 방치되면 ‘파묘’된다는 관리사무실의 관례 소식을 접한 배호 팬들은 너·나 없이 십시일반으로그동안의 미납분과 향후 5년간의 선불금을 선뜻 지불했다. 이렇듯 배호는 그가 살았던 스물아홉해보다 훨씬 더 오랜 기간을 대중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놀랍게도 취입 당시 음반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배호가 남긴 미발표 릴테이프를 직접 찾아냈다. 그중 한 곡이 67년에 취입했던 곡,‘추억’. 외삼촌 김광빈씨의 곡으로 당시에는 이 노래가 히트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음반제작이 보류되었던 곡이라고 했다. 배호 사후 30여년 동안 레코드사의 창고에 묻혀 있던 그 릴 테이프에서 재생되던 생생한 원음, 감격스러웠다. 불안한 호흡을 스스로 조절하기 위해 당겼다, 놓았다하는 애드립으로 싱커페이션(syncopation)과 앤티시페이션 (anticipation)을 적절히 구사했던 그만의 독특한 창법. 그 속에 담긴 배호의 삶과 노래, 그 ‘한 박자 빠른 삶, 반 박자 느린 슬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마치 노랫말이 그의 음악적 스승, 김광빈씨가 배호에게 이제서야 바치는 ‘헌시’처럼 들려오기도 해 순간 묘한 감회에 젖어들었다.39년 전에 만든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글 박성서 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 sachilo@empal.com
  • 우울증이 부른 엽기살인

    50대 외삼촌이 자신의 조카를 세탁기에 넣어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18일 오전 11시50분쯤 광주시 서구 주월동 서모(47)씨 집에서 서씨의 아들 서모(7)군이 욕실 세탁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9일 밝혔다. 서씨의 딸(13)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동생이 내복만 입고, 세탁기 안에서 웅크린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서군의 외삼촌 임모(53)씨는 주방에서 배와 손목 등이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돼 병원에 옮겨져 치료 중 숨졌다. 당시 의식이 혼미한 상태의 임씨는 사건직후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에게 “내가 했다.”고 짤막하게 범행을 시인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현장에 외부침입 흔적이 없고 평소 우울증을 앓는 임씨가 최근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는 서씨 가족 등의 말에 따라 임씨가 서군을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현장의 세탁기가 옆으로 쓰러져 있고 전원과 수돗물 호스까지 연결돼 있었던 점으로 미뤄 임씨가 서군을 세탁기 속으로 강제로 밀어넣고 작동시키는 바람에 숨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서군의 시체를 부검하기로 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배호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배호

    # 배호가 남긴 노래,‘굿바이’에서‘0시의 이별’까지 우리나라 최초로 가수 이름을 따 제정된 길은 다름 아닌 ‘배호길’이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로터리에 있는 400m 구간이다. 이 길이 ‘배호길’로 명명된 것은 지난 2000년 11월. 배호는 1963년 스물한 살에 데뷔해 71년 스물아홉에 타계했다. 가수로써 배호의 활동기간은 불과 8년. 서른 문턱을 채 넘기지 못하고 타계한 지 올해로 만 35주기가 된다. 드러머 출신의 ‘북재비 무명가수’로 출발해서 전성기를 맞을 때 신장염을 앓아 사투를 반복했던 그의 첫 취입곡 제목은 하필 ‘굿바이’였다. 또 마지막 취입곡 제목은 ‘마지막 잎새’와 ‘0시의 이별’이었다. 우리 대중가요의 주 테마가 ‘사랑과 이별’임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발표곡 중 ‘안녕’이나 ‘또 하나의 이별’ ‘파란 낙엽’ 등의 단어들이 암시하듯, 배호는 활동기간 내내 늘 일찍 닥쳐올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은 인상마저 받게 한다. 때문에 그의 노래들이 더욱 팬들의 가슴을 적시는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노래들 중 현재 ‘돌아가는 삼각지’를 시작으로 ‘두메산골’ ‘파도’ ‘마지막 잎새’ 등은 노래비로 남겨져 있다. 또 ‘배호 가요제’도 1년에 세 차례, 그 것도 각각 다른 단체에 의해 개최되고 있다. 저간의 사정을 제쳐두고라도 이러한 현상은 분명 한국 대중문화 풍토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배호의 막내 외삼촌이자 작곡가·연주인인 김광빈(80)씨에게 ‘배호 스토리’를 들어봤다. 본명 배만금.42년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부친 배국민과 모친 김금순 사이의 3대 독자로 태어난 배호의 직계 혈육은 이제 아무도 없다. 세살 때 해방이 되면서 귀국 행렬에 합류, 월남했다. 타고난 음악적 자질은 외탁인 듯하다. 어머니 형제는 4남2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가인 김광수는 셋째 외삼촌이고 막내인 넷째 외삼촌이 바로 김광빈씨다. 배호에게 첫 취입곡 ‘굿바이’를 만들어준 김광빈씨는 배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다. 어린 시절, 만금은 독립운동을 하던 부친을 대신해 막내 외삼촌의 손에 의해 자랐고 김씨의 등에 업혀 한국 땅에 도착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다. 무작정 막내 외삼촌을 찾아 상경한 배호는 열여섯 살 때 ‘김광빈 악단’에서 드러머로 첫 음악생활을 시작했다.‘배호’라는 예명도 김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배호의 ‘호’자가 늪 ‘호(湖)’로 운명이 그 이름을 따라간 것 같아 늘 마음이 아픕니다.” 이름을 호랑이 ‘호(虎)’자로 쓰지 못했던 것이 내내 아쉽고 마음에 걸린다는 김씨.“배호는 음폭이 매우 넓은 가수였습니다. 보통 18음을 넘어 19음까지 구사했는데 저음은 물론 고음도 일반 여성보다 세 음이나 더 올라갔지요.” 배호의 발성은 악보의 오선지 밖을 지나 ‘솔’ 음까지 구사할 정도였다고 김씨는 회고한다. 배호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와 검은 뿔테안경도 나이가 들어보이게 하기 위해 그가 권유한 것이고 현재 경기도 장흥 신세계공원에 안치돼 있는 배호의 묘에 세워진 노래비 ‘두메산골(반야월 작사)’ 또한 그의 작품이다. 배호는 악단 시절 취입한 첫 노래 ‘굿바이’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김인배 작곡의 영화주제가 ‘황금의 눈’을 발표했던 66년도부터다. 데뷔곡 ‘굿바이´에서부터 마지막 취입곡 ‘0시의 이별´까지 무수한 명곡을 남긴 가수 배호씨의 노래는 대부분 悲歌이다. 예명을 지어준 김광빈씨는 호자를 虎로 않고 湖로 쓴 것이 못내 맘에 걸린다고 회고했다. 이 노래가 제법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배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나타난 인물이 당시 월간 ‘아리랑’의 연예기자였던 유명 작사가 전우(본명 전승우)다. 이후 배호의 후견인 역할까지 맡는다. 전우는 당시 MBC PD로 있던 작곡가 나규호와 콤비를 이뤄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과 ‘누가 울어’를 비롯한 노래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 배호는 신장염이 더욱 악화돼 두 달 간 무대를 떠나 있어야 했다. 이때 배호를 찾아온 또 한 사람이 바로 ‘돌아가는 삼각지’의 작곡가 배상태(71)씨.‘돌아가는 삼각지’는, 당시 아세아레코드사 전속가수 김호성에 의해 먼저 녹음됐다. 얼마 전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마스터 취입 기록카드에는 녹음날짜가 67년 3월12일, 그리고 그 옆에 ‘NG’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때문에 음반으로까지 제작되지는 않았다. # 병실에서 연습한 ‘안개낀 장충단 공원´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줄 가수로 배호를 수소문해 찾아갔을 때 그는 청량리에 있는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더군요. 한 눈에 보기에도 병세가 심해 거동은 물론, 호흡조차 가빠 보였습니다.” 결국 취입을 만류하는 배호의 어머니를 설득해 ‘돌아가는 삼각지’를 취입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들은 인근 여관에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연습을 했고 며칠 뒤 장충스튜디오에서 노래를 취입했다. 이때가 67년 3월16일.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삼각지에는 67년 2월부터 착공된 원형 입체고가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배호는 처음 녹음에 들어가기 전부터 매우 힘들어보였으며 노래가 끝날 즈음에는 아예 앉아서 취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장충녹음실에 근무하던 최길순(58·현 수창녹음실 대표)씨. 녹음날짜가 잡혔는데도 배호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그해 4월 2일 배호는 전우-나규호 콤비의 새 노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과 ‘누가 울어’를 비롯한 13곡을 대도스튜디오에서 취입한 뒤 뉴스타레코드사를 통해 첫 독집음반을 발표한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몇몇 가수들에게 취입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배호의 음성으로 나간 후 예상을 뒤엎고 각종 인기차트 상위에 랭크되기 시작한다. “배호가 급부상하자 아세아레코드사 측은 서둘러 전속금 30만원에 월 1500원을 주고 그를 전속가수로 영입했고 이 전속금으로 배호는 비로소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두 번째 히트곡 ‘안개 낀 장충단공원’(7월14일)은 이때 병실에서 연습했던 곡이지요.” 배상태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세아 측은 내친김에 뉴스타에서 발매된 배호의 독집음반 판권마저 사들여 아세아 레벨로 바꿔 다시 음반을 찍어내기 시작했다.68년 1월, 수록곡들을 새로 편곡해 재취입한다. 이렇게 해서 재탄생한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과 ‘누가 울어’를 비롯해 그가 발표하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대히트를 기록하며 배호는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병마에 시달리던 배호의 호흡은 늘 불안했다. 때문에 배호는 무대에서 그때그때 감정과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싱커페이션(syncopation)과 앤티시페이션 (anticipation)을 적절히 구사해 불안한 호흡을 스스로 조절했다. 드러머 출신가수답게 리듬 감각은 탁월했던 그는 당겼다, 놓았다 하는 애드리브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창조해 멋진 창법을 한껏 구사했다.(계속) 가요평론가·저널리스트 sachilo@empal.com
  • “선친 뜻 잇자” 日人 잇단 한국유물 기증

    “선친 뜻 잇자” 日人 잇단 한국유물 기증

    30년간 수집한 한국 전통 기와 1000점을 지난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일본인 의사 이우치 이사오(1911∼1992)의 아들 이우치 기요시(64)가 최근 아버지가 남긴 기와 1300점을 추가로 기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쓰카시(1879∼1948)의 아들이 최근 아버지가 모은 추사 김정희 친필 등 2700여점을 과천시에 기증하는 등 일본인 부자의 유물 기증이 이어져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회 유창종(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회장은 8일 “2004년 초 이우치 기요시를 만나 유물기증 의향을 들은 뒤 지난해 말 유물을 넘겨받았다.”면서 “그동안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고구려 와당 30여점 등 1301점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재 유 회장은 이들 기와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이다. 아직 연구 등이 진행돼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우치 이사오는 어린 시절 삼촌으로부터 받은 통일신라 짐승얼굴무늬 기와를 통해 한국 와전에 흥미를 느꼈다. 이후 1964년 개인수집가 등으로부터 기와를 구입한 뒤 본격적으로 기와를 수집·연구했다. 1987년 한·일 친선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와전 1087점이 88년부터 상설전시되고 있으며, 지난해 용산 새 박물관에는 ‘이우치실’이라는 기증실이 생겼다. 이사오의 아들 기요시와 유 회장의 인연은, 와당 전문가인 유 회장이 기와를 연구하면서 이사오가 기증하지 않은 기와들에 대해 관심을 갖던 중, 이를 보관하고 있는 아들을 접촉하면서부터. 유 회장이 한국·일본 지인들을 통해 수소문한 결과, 기요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갈 수 있다면 남은 기와를 넘겨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2004년 초 유 회장 부부가 일본 나고야 근처 해안지역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기요시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아버지가 기와를 위해 남긴 유언을 들려주며 기와를 잘 보존·연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 회장은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때 기요시 부부가 초대돼 아버지 기증실을 둘러보고 갔다.”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은 것인 만큼 자신은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함께 찍은 사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기요시로부터 받은 기와를 박물관에 위탁보관한 뒤 국내 최초로 ‘와당 박물관’을 세워 기증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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