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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가족입니까? 짐승의 가족입니까?”

    “하늘 아래 이렇게 막나가는 가족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중국 타이완(臺灣)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삼촌,형제가 모두 한패를 이뤄 손녀,딸,누나·동생을 무자비하게 성폭행·성추행하는,인간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막나가는 사건이 발생,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타이완 북동부 이란(宜蘭)현에 살고 있는 한 자매는 지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오빠와 남동생,그리고 삼촌 등 가족 3대(三代)로부터 끊임없이 성폭행과 성추행 당해온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인터넷신문인 인민망(人民網)이 1일 보도했다. 인민망에 따르면 천인공노할 짐승같은 가족들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해온 이들 자매중 언니는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고 동생은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데,이같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19살인 언니는 지난 1995년 아버지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면서 ‘악몽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7살이라는 어린 그녀가 꽃잠을 자고 있는데,짐승같은 아버지(49)가 그녀의 하체를 더듬으며 성폭행을 자행했다. 올해 16살인 동생은 9살 나던 지난 2000년 4월부터 할아버지(76)와 삼촌(47)으로부터 잇따라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이어 아버지도 어린 막내 딸이 잠에 들기만 하면 짐승처럼 달려들어 배를 쓰다듬거나 하체를 더듬으며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 이같은 천인공노할 짐승같은 행위는 2002년 8월까지 계속됐다.그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두명의 오빠로부터 연달아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지난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이들 자매가 TV를 시청할 때 가슴을 만지거나 하체를 더듬었다.삼촌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하고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성폭행을 자행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결과 이 난륜(亂倫)사건의 중심인 아버지는 자동차 수리공으로 그 어떤 전과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그는 부부생활도 아주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당국은 “아마도 어머니는 두 딸이 가족들로부터 성폭행 등을 당하고 있는 것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며 “그러나 타이완 사회가 부권사회인 만큼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뤄둥보(羅東博) 정신과병원 라차오슝(李朝雄) 주임은 “이번 사건으로 볼 때 이들 가족은 유전성 정신병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가족들이 모두 성폭행 공범이 된 사례는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둘렀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사설] ‘패륜아’ ‘히틀러’ 정치권의 추한 입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그제 서로 상대측 후보를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언사를 주고 받았다. 신당 측은 이명박 후보를 히틀러에 비유했고, 한나라당은 정동영 후보를 패륜아로 매도했다. 선거전이 더 이상 막가파 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권자인 국민이 눈을 부릅뜰 때다. 아무리 여야 정당이 대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금도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합신당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명박 후보를 빗대 “히틀러도 선거로 당선돼 국가주의를 주창하다 나치로 변질돼 2차 대전을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도 “키워줬는데도 돌보지 않자 자기 삼촌이 (소송을 걸어)7500만원을 청구했다.”면서 정동영 후보를 “패륜아”라고 비방했다. 참으로 더러운 입들이다. 터무니없는 논리의 비약과 상대를 물어뜯으려는 적대감만 번뜩인다. 우리는 이런 막가파식 인신공격은 타기해야 할 구태라고 본다. 이는 프로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상대팀 선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자비한 반칙을 하는 경우나 다름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관중의 외면을 불러 해당 스포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이전투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치판의 이같은 진흙탕 비방전은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차원에서다. 후보 주변에서 합리적 정책 토론이나 팩트에 입각한 후보 검증과 무관한 비방을 일삼는 인사들을 유권자들은 다음 총선까지 꼭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 [대선 D-50] 금도넘은 후보 비방전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상호비방이 금도를 넘고 있다. 상대당 후보 공격에 ‘패륜아’‘히틀러’ 같은 막말까지 불사하며 ‘패륜적 정치행태’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29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그간의 소극적 대응을 벗어나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에 대한 파상 공세에 나서기로 방향을 틀었다. 이날 공세의 선봉에는 이방호 사무총장이 섰다. 이 총장은 “정 후보는 노인 폄하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라며 “자기 삼촌이 자기를 키워줬는데 돌보지 않아 오죽했으면 삼촌이 7500만원을 청구했겠냐. 패륜아다.”고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이어 “모든 국감에서 신당 의원들이 돌아가며 공격하고 있다.”면서 “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투적으로 싸우지 않느냐.”고 소속 의원들의 ‘전의’를 자극했다. 심재철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정 후보의 여러 발언들, 노인 비하 및 아들 유학에 돈을 어떻게 썼는지 등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달라.”며 정 후보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예고했다. 신당도 막말 공방에서 뒤지지 않았다.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첫 회의에서 “히틀러도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 당선돼 국가주의를 주창하다 나치로 변질돼 독재하고 2차대전을 일으켰다.”면서 “이 후보도 그에 못지않은 재앙을 불러일으킬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이 위증교사, 주가조작, 위장전입, 토지투기 등 말할 수 없는 흠을 가진 사람을 공천심사에서 검증했어야 한다.”며 이 후보의 자격 자체를 문제삼았다. 오충일 당대표 역시 “이 후보는 통합민주당으로서는 ‘행운의 카드’고 나라로서는 ‘불행한 카드’”라며 비난 대열에 동참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공연리뷰] 록뮤지컬 ‘햄릿’

    “산다는 게 연극 같다.”며 현실을 내치려는 햄릿. 우유부단의 전형에, 속으로만 고뇌하는 햄릿. 그가 검은색 가죽바지를 입었다. 지금부터 그의 감정은 ‘록 버전’으로 표출된다. 아버지를 죽인 삼촌에게는 “네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지옥으로 보내주겠다.”고 저주하고 사랑에 취한 오필리어에게는 “수녀원에나 가버리라.”고 호통친다.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피로 물들이고는 건들건들 흥겨운 춤으로 광기를 쇼처럼 내보인다. 체코의 록뮤지컬 ‘햄릿’(11월11일까지·유니버설아트센터)은 빠른 무대회전과 의상 교체, 다양한 음악의 조합으로 정적인 고전에 동적인 해석을 가했다.‘햄릿’이 록보컬로 분노를 치고 나오면 왕비는 애절한 발라드 곡조로 호소하는 식이다 드럼과 키보드, 전자 기타가 주는 흥분이 극의 움직임뿐 아니라 심장의 박동도 큰 진폭으로 울린다. 록뮤지컬 ‘햄릿’은 ‘김수용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햄릿 역의 김수용은 밖으로 내지르는 만큼 감정을 곱씹으며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냈다. 새의 날개처럼 하얀 소매깃을 펴고 서서히 추락하는 오필리어의 투신 장면은 거꾸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햄릿에 가려졌던 조연들의 숨결이 도드라지는 것도 ‘햄릿’의 장점이다. 아들도 사랑하고 남편의 동생도 사랑하는 왕비의 마음속 갈등이 부각되고 레어티스와 오필리어가 나누는 아픈 교감도 전해진다. 진지한 극에 쫄깃함을 더하는 무덤지기의 등장도 반갑다.“파고 또 파야 밥 나와.”라며 흐뭇하게 관객을 굽어보는 그는 ‘살아 생전 신분 따윈 아무 상관없다.’는 노래로 곧 생을 마감한 주인공들의 비극을 더 깊이 파들어 간다. 하이라이트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커튼 콜도 덤이다. 다만, 경사가 없는 공연장 좌석 때문에 시야가 트이지 않고 사람들 머리 사이사이로 무대를 봐야 한다는 게 흠이다. 햄릿 얘기라면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하는 관객, 셰익스피어라면 고개부터 내젓고 보는 관객에게 ‘로커 햄릿’은 신선한 경험이 될 듯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무샤라프·부토 ‘적과의 동침’ 최대 변수

    무샤라프·부토 ‘적과의 동침’ 최대 변수

    세계 3위의 무슬림대국 파키스탄호(號)가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지난 6일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대법원의 후보자격에 대한 심리가 17일 또다시 연기돼 5년 임기의 대통령 당선을 11일째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국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의 파키스탄호가 어디로 갈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짚어본다. 파키스탄 대법원이 이날 심리를 연기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반(反)무샤라프 성향의 이프티카르 초드리 대법원장과 대법원 판사들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앞으로 열릴 최종 심리에서 후보적격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만약 대선 결과를 뒤집는 ‘깜짝 결정’을 내리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는 이 경우를 대비해 국가 비상사태 선포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무샤라프는 지난 9일 내년 1월초 총선에 대비해 과도내각을 구성하라고 내각에 지시했었다. 과도내각은 다음달 15일 이후에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초 총선은 극단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온건파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무샤라프의 의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무샤라프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와의 협상에 착수하는 등 이미 총선 승리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양측의 협상은 이번 총선에서 부토가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이 다수당이 될 경우 권력을 분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친미성향의 두 사람은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지대에서 갈수록 격화되는 이슬람세력의 무장투쟁과 관련해 온건파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무샤라프의 장기집권 시나리오에 따른 작업들이 하나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 정통성 시비… 무장세력 테러 우려도 하지만 파키스탄 정국은 그의 소망대로만 움직일 것 같지 않다. 대법원 판결이란 첫 고비를 넘는다 해도 그의 앞날은 가시밭길의 연속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국 불안이 조기에 안정될지 여부는 5대 변수에 달려 있다. 첫 번째 변수는 PPP를 제외한 야당들의 반발이다. 야당들은 육군참모총장을 겸하고 있는 무샤라프의 출마자격이 없기 때문에 11월 총선을 치러 새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며 대선을 보이콧했었다. 특히 야당은 대법의 판결과 상관없이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변수는 무샤라프와 부토의 권력분점 합의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여론이다. 벌써부터 밀실야합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보수 집권당인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도 자신들의 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해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통성 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AFP 통신은 무샤라프 정권에 반대하는 무장세력의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 번째 변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집단반발이다.‘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해온 무샤라프가 지난 7월에 ‘붉은 사원’을 유혈 진압한 이후 이슬람 진영은 그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 당시 동부 물탄에서는 이슬람주의 학생 500여명이 도로를 점령한 채 타이어를 불태우며 무샤라프의 퇴진을 요구했었다. 이와 관련, 파키스탄 전문가들은 이슬람 급진세력과 무샤라프간 갈등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붉은 사원의 무력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종교 지도자들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와도 폭넓은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보복의 악순환’도 우려되고 있다. ●샤리프 前총리 입국 등 행보 큰 변수 네 번째 변수는 무샤라프가 정국 안정 카드로 선택한 부토 전 총리의 행보다.9년간의 망명생활을 접고 18일 귀국하는 부토는 무샤라프와 지난 5일 극적으로 권력분점을 합의해 부패혐의에 대한 사면을 받고 차기 정권의 총리 자리를 약속받았다. 그녀가 이끄는 파키스탄 최대 야당인 PPP는 약속에 따라 대선에 불참했다. 무샤라프와 부토의 ‘적과의 동침’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3번째 총리를 노리며 권토중래를 모색해온 그녀의 귀국 후 정치적 행보에 따라 파키스탄 정국은 또 한번 요동칠 수 있다. 부토는 17일 두바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예정대로 18일 귀국한다.”며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권력분점 성사땐 정국 조기수습 가능성 마지막 변수는 나와즈 샤리프(57) 전 총리의 행보다. 무샤라프에게 1999년 쫓겨나 2000년에 망명길에 올랐던 샤리프는 지난달 10일 귀국을 시도하다 공항에서 체포돼 4시간 만에 다시 추방되는 설움을 겪었다. 그가 다음달 10일쯤 다시 입국을 시도한다. 그의 아들인 하산 샤리프는 지난 9일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삼촌이 귀국할 것”이라고 밝혔다. 샤리프가 총수로 있는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도 사우디 정부가 그의 출국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무샤라프가 정적들과의 화해 차원에서 샤리프의 입국을 허용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무샤라프와 정치적 앙숙인 그의 행보가 더욱 중요해진다. 이슬람문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파키스탄의 정국 혼란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유달승(42) 교수는 “야당의 반발과 그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이 첫 번째 변수이고 북부 와지르스탄의 자치정부인 이슬람에미리트와 정부와의 관계가 두 번째 변수”라며 “파키스탄 정국불안정이 당분간 계속되고 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이란어과 장병옥(58) 교수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약속대로 군복을 벗어도 파키스탄은 ‘무늬만 민정’이 될 것”이라며 “무샤라프가 부토와 연대한 것은 부토를 얼굴마담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정국이 안정되면 부토를 내쫓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파키스탄 정국이 조기 수습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선대 아랍어과 황병하(51) 교수는 “파키스탄은 이슬람원리주의의 본산이지만 북부를 제외하곤 나머지 지역의 국민적 정서도 최근 많이 유연해졌다.”면서 “무샤라프가 군부를 쥐고 있고 국민적 인기가 높은 부토가 국민들을 다독거리면 정국이 조기 수습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이종화(46) 교수는 “무샤라프정권에 대한 이슬람세력의 협조여부가 최대 관건”이라며 “무샤라프와 부토 사이의 권력분점이 약속대로 된다면 정국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길섶에서] 처삼촌/육철수 논설위원

    며칠전 아내의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신 분이 장인어른 형제 넷 가운데 맏형이니까 처가 쪽에선 대소 집안의 큰 장례였다. 처가 친척들의 경조사에 꼬박꼬박 참석해 온 터라, 부고를 받고 부랴부랴 상경한 처가 식구들 틈에 끼어 문상을 갔다. 그런데 문상 후 음복을 하면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상주(아내의 사촌 오빠)가 대뜸 나에게 두건과 완장을 들이밀었다. 고인의 조카사위인 나더러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상주들과 자식, 상주의 사촌형제들이 열댓명이나 되는데 굳이 나까지 두건을 쓸 필요가 없다 싶어 거절했다. 그랬더니 상주는 무척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두건을 그냥 받아뒀다가 몰래 놔두고 빠져 나오면 될 일을, 괜히 문상 잘 해놓고 상주의 감정만 상하게 한 꼴이어서 뒤늦게 후회했다. 그 이튿날 관혼상례에 정통한 L선배에게 전후사정을 털어놨더니,“조카사위는 그런 격식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줬다. 근심을 좀 덜었지만 그날의 문상을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건성으로 다녀온 것 같아 자꾸 마음에 걸린다. 육철수 논설위원
  • ‘거리의 부랑아’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나를 맡아서 키워줬던 이웃집 역시 가족들 먹을 것조차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길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거리의 부랑아’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우뚝 선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마리오 카페키(70) 유타대 교수의 영화 같은 인생역정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9일자에 따르면 이탈리아 공군이었던 아버지와 시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페키는 세살 때까지 이탈리아 알프스 지역에서 미혼모인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하지만 그가 세살 되던 해 어머니가 반나치·반파시즘 선전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나치에게 끌려갔고 카페키는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됐다. 어머니는 카페키를 보살펴달라며 전 재산과 함께 그를 이웃집에 맡겼지만 얼마 되지 않았던 돈은 1년만에 바닥났고 그는 거리로 내쫓겼다. 그 때부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노점상에서 음식을 훔쳐먹는 절망적인 부랑아 생활이 이어졌다. 고아원에 잠시 머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어린 카페키는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급기야는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에게 다시 희망이 찾아온 것은 아홉번째 생일날.2차 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나치에게서 풀려난 어머니가 수소문 끝에 카페키를 찾아낸 것이다. 어머니를 만난 날, 카페키는 6년 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이후 그는 미국에 살고 있던 외삼촌의 초청으로 이민길에 올랐다. 이후 하버드 대학에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딴 뒤 ‘유전자 적중’ 기술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읍·면사무소 풍속 달라졌다

    읍·면사무소 풍속 달라졌다

    농촌지역의 읍·면사무소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공무원이 최고의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면서 대학을 졸업한 직원들이 읍·면사무소에 속속 포진,‘도시풍’ ‘신세대풍’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을 촌로(村老)와 면(面)서기간의 구수한 정담 등 수십년 전통의 사랑방 같은 정겨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9일 경북도내 시·군에 따르면 참여정부 이후 공무원 충원이 잇따르면서 읍·면사무소 전체 직원(10∼30여명)의 20∼50% 정도가 임용 5년 미만의 새내기로 채워지고 있다. ●임용 5년 미만이 20~50%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수년전만 해도 농촌 읍·면사무소에는 최종 학력이 고졸인 30대 중·후반∼50대 중년의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읍·면사무소가 외지의 젊은 직원들로 대폭 물갈이되면서 ‘전통’과 ‘미덕’이 사라져가고 있다. 지역민과의 지연·혈연관계로 이뤄지던 풍속도 없어져 서먹해졌다. ●“안면 트기조차 쉽잖다” 촌로들 불평 따라서 읍·면사무소 등에서 나눠오던 “○○ 아버지 오셨습니까-그래, 네 부모님은 잘 계시냐.” “삼촌, 올해 농사는 어떻습니까-대풍이야, 너는 사는 게 어떠니.“ “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형님보다 국민학교 10년 후배니까 저도 오십줄이죠.” 등 정감어린 인사도 보기 쉽지 않다. 예전에는 같으면 면서기들이 한 지역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근무해 민원인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만큼 지역 사정에 밝았다. 그러나 지금은 2∼3년 순환근무가 고작이어서 민원인과 ‘안면(顔面) 트기’조차 쉽지 않다는 게 읍·면사무소 안팎의 얘기다. 이런 이유로 요즘 농촌지역 민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촌로들은 읍·면사무소 분위기가 갈수록 인정미 없이 냉랭해지고 있다고 불평들이다. 김모(56·경주시)씨는 “예전 같으면 읍·면사무소 직원들과 한 가족처럼 흉허물 없이 지냈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면서 읍·면사무소 직원들의 세대교체를 못마땅해 한 뒤 “‘피자’가 어찌 ‘된장’ 맛만 하겠느냐.”고 아쉬워했다. ●‘노쇠한 농촌에 활력소´ 등 장점도 30년 이상 동네일을 돌보고 있다는 이모(59·청도군) 이장은 “최근 몇 년 사이 얼굴조차 모르는 손자뻘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다.”면서 “면사무소 출입이 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읍·면장들은 “활동적인 젊은 직원들이 많아지면서 노쇠한 농촌에 밝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주민들에게 컴퓨터 등을 가르쳐주는 등 장점도 많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도의 최근 5년간(2003∼2007년) 공무원 임용자는 5399명으로, 이전 같은 기간의 1626명에 비해 332%(3773명)가 증가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정몽준의원 장남 언론사 입사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겸 국회의원의 장남 기선(25)씨가 언론사에 입사해 눈길을 끈다. 기선씨는 8일 동아일보에 첫 정식 출근했다. 학군장교(ROTC) 출신이라는 점과 영어에 능통한 점 등이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한다. 기선씨는 2년 4개월의 ROTC를 마치고 지난 6월 말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임관 당시, 사회지도층의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해 있던 터라 ‘대(代) 이은 ROTC’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기선씨가 언론사행을 택한 데는 집안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의 삼촌인 고(故) 정인영씨와 고 정신영씨가 신문기자를 지냈다. 기선씨가 언론사에 오래 근무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1년쯤 뒤 유학을 떠나거나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주위의 관측이다. 기선씨의 10년 터울 안팎 사촌형인 의선(기아차 사장·37)·지선(현대백화점 부회장·35)씨 등은 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라 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지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지음

    1991년 5월은 87년 6월과 달랐다. 둘 다 뜨거웠으나, 둘 다 영예로운 경험으로 남은 건 아니다. 둘 다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됐으나, 둘 다 ‘항쟁’의 이름을 얻은 건 아니다. 후자는 ‘민주화 원년’으로 기록됐으나, 전자는 상처와 오욕의 시대로 남았다. 후자는 일부 지도부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주며 거듭 호명되고 있으나, 전자는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과거로 잊히고 있다.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의 사망으로 시작된 ‘분신정국’ 91년 5월은, 김지하의 신문기고문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가 모멸적 자기성찰을 강제한 91년 5월은,‘유서대필사건’과 박홍의 기자회견을 매개로 ‘죽음 선동 세력’ 색출에 광분하던 91년 5월은, 그때를 통과한 세대에겐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다. ●놓여나고 싶은 91년 5월 배경 1970년생 소설가 김연수도 그랬다. 그래서 자신에게 상흔으로 남은 91년 5월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김연수는 “소설 작업을 통해 그때로부터 놓여나고 싶었다.”고 했다. 신작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에서 김연수는 당시를 기억하고, 재평가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녹여냈다. 김연수의 극복 방식은 ‘집단의 시대’가 아닌 ‘개인의 시대’로 당시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91년 5월을 재구성하려 최루가스 매캐한 초여름 거리 한복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김연수가 포착하는 91년 5월은 헬리콥터 타고 하늘에서 촬영한 ‘얼굴 없는 시위군중´이 아니라, 군중 주변에서 혼자 맴돌지라도 ‘각각의 표정을 지닌 개인들´이다. 역사는 기억의 기록이다.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버리느냐에 따라 역사는 다른 옷을 입는다. 선택돼 기록으로 남는 역사는 곧 집단의 ‘공식 역사’가 되고, 선택되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개인의 ‘비공식 기억’으로 빛이 바랜다. “모든 가치를 회의한다.”는 김연수에게 진짜 역사는 일관성 있게 꿰어진 역사책의 논리적 서술이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비선형적인 삶을 산, 그래서 더 리얼한 개인들의 삶이다. 개인의 기억을 재생하기 위해 김연수가 선택한 것은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창출’이다. 소설 캐릭터들이 이야기와 사연으로 가득찬 인물로 창조된 데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김연수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편입되지 못한 개인의 가치를 생생하게 살려낸다.“거대담론은 없고 개인만 있다.”고 주장해온 작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전투적인 방식인 셈이다. 주인공 ‘나’의 할아버지와 애인 정민, 주인공이 독일로 넘어가서 만나는 강시우(본명 이길용)는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할아버지-간첩조작사건 연루, 정민-삼촌의 자살, 강시우-막노동꾼에서 민주투사로, 다시 안기부 프락치로 ‘만들어져 가는’ 인생역정)를 가졌고, 트라우마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얼기설기 엉키며 확장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김연수의 시각은 할아버지가 남긴 203행의 장편 서사시와 불태워 버린 또 다른 산문을 비교하는 장면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김연수는 한국 현대사를 중심에 놓고 할아버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서사시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며 개인이 빠진 역사책의 몰인격성에 빗대는 반면, 할아버지 개인의 내밀한 삶을 기록한 불타 없어진 산문에 대해서는 “할아버지의 인생은 거기 있었다.”며 진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거대한 사건에 관한 기억은 남기고 소소한 개인의 기억은 간과했던 한국 현대사 기록 방식을 비판하는 문학적 비유다. ●한국 현대사 기록방식 비판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소재는 할아버지가 남긴 서양 여성의 입체누드사진 한 장이다. 아직 이길용이란 이름을 쓰던 당시 술에 취한 강시우가 세 번 반복해서 되뇌는 말이 있다.“나는 행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요.”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추상명사 ‘행복’이 강시우에겐 입체누드사진의 형태로 시각화됐다. 역사책의 평면적 기록 몇 글자에 스스로가 묻혀 버리지 않는 것, 각자의 ‘입체적인’ 삶을 고스란히 살아내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 강시우는, 김연수는 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든’….1만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약을 쓰는 의원과 별도로 침의를 양성하자는 주장은 세종시대 전의감(典醫監) 책임자였던 황자후가 처음 내세웠다.“병을 속히 고치는 데는 침이나 뜸만 한 것이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구멍을 밝게 알면 한 푼의 약도 쓰지 않고 모든 병을 고칠 것입니다. 지금부터 중국의 의술을 익히는 법에 의해 각각 전문(專門)을 세우고 주종소(鑄鐘所)로 하여금 구리로 사람을 만들게 하여, 점혈법(點穴法)에 의해 재주를 시험하면 의원을 취재하는 법이 또한 확실해질 것입니다.” 허임의 ‘침구경험방’ 첫 판본이 나온 지 7년 뒤인 효종 2년(1651)에 내의원의 부속청으로 침의청(鍼醫廳)이 설치되었다. 당대 침구술의 최고 실력자들이 왕궁에 모이게 된 것이다.‘내침의선생안’에 202명의 내침의, 즉 내의원 침의 명단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외과수술로 가장 이름을 날린 침의가 백광현이다. ●의서를 보지 않고 침을 써서 말을 고치다 침의로 이름난 백광현(白光炫·1625∼1697)은 사람됨이 순박하고도 조심스러웠다. 자기 동네에서도 너무 진실스러워, 마치 바보 같았다. 키가 큰 데다 수염이 길었으며, 눈에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대를 잇는 의원이 아니라, 처음엔 말의 병을 고쳤다. 말의 병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 처방을 모은 ‘마의방(馬醫方)’이 광해군 8년(1616) 4월 의주에서 간행되었지만, 그는 이런 책을 보지 않고 오로지 침만 써서 치료했다.‘마의방’에 말의 경혈도가 있어서 경혈을 찾아 침을 찔러 넣으면 편했는데, 그는 자기 방식을 고집해 경험을 쌓았다. 임상실험을 충분하게 한 것이다. 말침은 사람에게 시술하는 침에 비해 납작하고 넓은 봉 형태이며 철제로 만들었다. 침을 오래 놓을수록 손에 익어지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험을 해보았다. 지금은 종기가 별로 나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위생관념이 열악해 많이 났으며,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는 큰 병이었다. 침으로 사람의 종기까지도 고쳐 기이한 효험을 많이 보게 되자, 드디어 사람 고치는 것만 일삼았다. 마의(馬醫)에서 침의(鍼醫)로 전업했으니, 신분이 상승한 셈이다. 그가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의과를 거쳐 내의원에 들어가지 않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의 종기를 보고, 상황에 따라 달리 시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그의 진단이 더욱 정확해졌다. 중인들의 전기를 많이 지었던 정내교가 백광현의 전기도 지었는데, 그가 종기의 뿌리를 뽑은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개 종기에 독이 가득 차면 근(根)이 생기는데, 옛 처방으론 이걸 고칠 방법이 없었다. 광현은 이런 종기를 보면 반드시 커다란 침을 써서 근을 발라내어, 죽을 사람도 살렸다. 처음엔 침을 너무 세게 써서, 어떨 때에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에게 효험을 보고 살아난 사람들이 차츰 많아졌으므로, 병자들이 날마다 그의 대문에 모여들었다.” 정내교는 “지금 세상에서 종기를 째고 고치는 법은 백태의에게서 시작되는데, 그 뒤에 배운 자들은 모두 그에게 미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종기를 외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처음 개발한 것이다. 시술하다 환자를 죽이기까지 했다는데, 사람이 아니라 말부터 치료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째보면서 임상실험에 일찍 성공했고, 사람에게 시술할 무렵에는 이미 침술이 손에 익었을 것이다. 침을 놓는 솜씨는 의서를 많이 보았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병자들이 모여들수록 의술 베풀기를 좋아해, 더욱 힘쓰고 게을리하지 않았다.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돈을 밝히지도 않았다. 침으로 째서 뿌리를 뽑는 비법을 써 그의 이름을 크게 떨쳤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신의(神醫)라고 칭송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종기를 똑같이 고치다 그는 의과에 합격하지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내의원에 배속되었다. 현종 11년(1670) 8월16일 실록에 “왕의 병환이 회복되자 백광현에게 가자(加資)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품계를 한 급 올려주었다는 뜻인데, 몇품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숙종은 10년(1684) 5월2일 정사에서 그를 특별히 강령현감(종6품)에 임명했다가 포천현감으로 바꾸었는데,“의관의 수령 임명이 여러 번 중비(中批)에서 나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진실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백광현이 미천한 출신이고 또 글자를 알지 못하는데도 별안간 그를 이 벼슬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대론(臺論)이 일어났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어의들이 왕의 병을 고치면 승진하고, 의원으로 더 이상 승진할 자리가 없으면 지방 수령으로 발령내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의원에게 상을 주는 것이 당연했다. 백광현이 현종의 목에 난 종기를 고치고, 효종비 인선왕후의 머리에 난 종기도 큰 침으로 수술하여 완치시켰으며, 자신의 목에 난 종기와 배꼽에 난 종기까지 침으로 치료했으니 종6품 현감으로 발령내는 것쯤은 숙종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효종이 종기를 제대로 고치지 못해 세상을 떠났으므로, 종기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중비(中批)는 임금의 뜻이다. 백광현을 내의원의 관직에 올려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지방 수령은 문과나 무과에 급제한 양반이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니 파격적인 대우였다. 사간원에서 그를 반대할 명분이 없자 “글자를 알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그가 전형적인 의과 출신이 아닌 데다 전통적인 의서(醫書)도 보지 않고 경험에 따라 치료한 침의였으므로, 한문에 약한 것을 트집잡은 것이다. 그는 1691년에 지중추부사,1692년에 숭록대부로 승진했는데, 실제 직책이 없는 벼슬이나 품계였다. 정내교는 그의 전기를 쓰면서 높은 벼슬에 오른 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숙종 초엽에 어의로 뽑혔는데, 공을 세울 때마다 품계가 더해지곤 해서 종1품에 이르렀다. 벼슬도 현감을 지내, 민간에서 영예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병자들을 대할 때에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부름이 있으면 곧 달려갔고, 가서는 반드시 자기의 정성과 능력을 다하였다. 병이 다 나은 것을 본 뒤에야 치료를 그만두었다. 늙고 고귀해졌다고 해서 게을러지지 않았다.” ●“백광현이 세상에 없어서 죽는구나” 정내교는 전기를 쓰면서, 자신이 실제로 본 백광현의 신통한 진단을 이렇게 증언했다. “내 나이 15세 때에 외삼촌 강군이 입술에 종기가 났다. 백태의를 불러왔더니, 그가 살펴보고 ‘어쩔 수가 없소. 이틀 전에 보지 못한 게 한스럽소. 빨리 장례 치를 준비를 하시오. 밤이 되면 반드시 죽을 게요.’라고 말했다. 밤이 되자 과연 죽었다. 그때 백태의는 몹시 늙었지만, 신통한 진단은 여전했다. 죽을 병인지 살릴 병인지 알아내는 데 조금치도 틀림이 없었다. 그가 한창때에는 신기한 효험이 있어서 죽은 자도 일으켰다는 게 헛말은 아니었다.” 정내교가 15세 때라면 백광현이 71세 되던 1695년이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데, 이 해에 재상을 치료한 기록이 실록에 실려 있다.12월9일에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에게 왕이 백광현을 보냈는데, 사관은 “백광현이 종기를 잘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많이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고 설명했다. 효종 10년(1659) 5월1일에 약방에서 문안하자, 효종이 “종기의 증후가 이같이 날로 심해 가는데도 의원들은 그저 심상한 처방만 일삼고 있는데, 경들은 심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답하였다. 의관 유후성이 산침(散鍼)을 놓자고 아뢰어 그대로 따랐지만, 효험이 없었다.3일에는 병이 위독해 편전에 나가지 못했으며, 왕이 입시한 의관들에게 종기의 증후를 설명하라고 명했지만 아무도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4일에는 의관 신가귀가 침을 놓자고 했으며, 유후선은 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신가귀가 침을 놓았지만, 혈락(血絡)을 범하는 바람에 피가 그치지 않고 나와 효종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뒤에 신가귀는 교수형을 당했다. 효종 10년이라면 백광현이 아직 내의원에 들어오지 못하고, 민간에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던 시절이다. 몇 년 뒤였다면 효종의 종기를 침으로 고치지 않았을까? 정내교는 백광현의 전기를 끝내면서 “종기가 생겨서 그 독을 고치기 어렵게 된 사람들은 요즘도 반드시 ‘세상에 백광현이 없으니, 아아! 이젠 죽을 수밖에 없구나.’라고 탄식한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십년 뒤에도 그의 신통한 침술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백광현은 4형제였는데,2남 광린(光璘)과 4남 광현이 의원으로 활동했다.4형제의 후손 가운데 역관, 의원, 계사가 골고루 배출되었는데, 광현의 후손에서 대를 이어 침의가 많이 나왔다. 정내교는 “그가 죽은 뒤에 그 아들 흥령이 대를 이어 의원이 되었는데, 꽤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고 했다. 그의 침술이 아들을 통해 가업으로 전수된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황병승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

    ‘누벨바그(전통적 영화에 대항해 1957년 프랑스에서 태동한 영화운동)’가 영화사에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는 낯선 영화문법에 열광했다. 즉흥 연출, 장면의 비약적 전개로 반짝이는 영화 ‘네 멋대로 해라’는 감독 장 뤼크 고다르에게 ‘뉴웨이브(누벨바그의 영어식 번역)의 기수’란 영예를 안겼다. 2005년 황병승(37)의 시(‘여장남자 시코쿠’, 랜덤하우스코리아)가 처음 ‘출현’했을 때 한국 시단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황병승은 시적 문법과 서사적 문법의 경계를 허문 새로운 시를 선보였고, 곧 ‘미래파 논쟁’이란 첨예한 전선의 중심에 섰다. “이를테면, 포엣poet, 온리only 누벨바그nouvelle vague,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몰려와 낡은 것을 휩쓸고 어딘가로 다시 몰려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정지이고 정지의 침묵 속에서 비극을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첨에 관한 아홉소ihopeso씨氏의 에세이’).” 낯설고 배척되고 탈규범적인 존재들, 그들을 소재 삼아 시를 쓰는 시인 혹은 ‘아홉소(ihopeso)’씨는 자신의 시적 언어가 누벨바그처럼 언젠가 시대의 총아가 되길 기대하는지 모른다. 누벨바그가 권력을 획득해 ‘정지’하는 순간, 다시 ‘몰려감’과 ‘정지’의 반복으로 새로운 누벨바그를 향해 그는 내달릴지 모른다. 그렇게 서서히 바뀌길 ‘아홉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다. 시를 ‘혼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로, 창작을 ‘긁어대는 것’으로 정의하며 독자와의 소통보다는 시 쓰기 자체를 즐기는 시인. 황병승의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의 서시(序詩)격인 ‘첨에 관한 아홉소ihopeso씨氏의 에세이´를 읽는 이 같은 독해법 역시 헛다리짚기일 가능성이 크다. ‘삼촌´ ‘언니´ ‘오빠´ ‘아빠´ ‘노처녀´ ‘나의 연인´ ‘엄마´ ‘할머니´ ‘퍼피들´ 등의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표제작 ‘트랙과 들판의 별’은 총 10페이지에 13개의 연으로 이뤄진 ‘시 같지 않은 시’다. 각각의 연에 개별적으로 등장한 캐릭터들은 12연에 이르러 다시 한꺼번에 무대에 선다. 상이한 경로와 이미지를 가진 ‘관계없는 것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접속하고, 또 다른 이미지로 뒤엉키고, 새로운 경로로 옮겨간다. 태어날 때부터 못을 먹어온 이집트 남자(‘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와 나답게 살기로 다짐했다가 바보 천치가 된 모모(‘모모’), 방금 피의 샤워를 마친 갈고리 잭(‘9 갈고리 잭’) 같은 그로테스크한 등장인물들….“태어나는 것처럼 나쁜 짓은 없다 친밀감 그것은 변장한 악에 불과하다 나는 아가들을 악질이라 부른다”(‘회전목마가 돌아간다 Sick Fuck Sick Fuck’) 식의 반역적 시각들…. 황병승의 화법은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황병승의 시를 해석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울 땐,‘스위트 워러’의 해독 불가능한 중얼거림을 흉내내 봐도 좋겠다.“문친킨 문친킨”(‘문친킨-미치mich를 생각하며’)….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이든! 6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seoul.co.kr
  • 베테랑 경찰, 학교에 가다

    베테랑 경찰, 학교에 가다

    취재, 글_ 이만근 기자 “처음에는 친한 척하다 돌변하여 은근히 따돌리는 게 ‘은따’고, 전교생들에게 완전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전따’라고 하죠. 어른들은 잘 몰라도 아이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에요.” 이십 년 가까운 경력의 베테랑 경찰 김이문 경사(49세)는 청소년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게만 느껴질 법한 그를 동네 아이들도 ‘매직캅 아저씨’라 부르며 졸졸 따른다. 관할인 군포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술’을 통한 학교 폭력 예방 강의를 활발하게 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지난 2005년 지역 교육청의 부탁으로 시작한 강의가 벌써 50여 차례. 노인 범죄 예방 강의도 40회가 넘는 등 강행군을 해왔다. 관할 지구대 업무를 하고도 비번 날엔 여지없이 ‘학교 가는 경찰’이니 쉬는 날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때리기’‘뺏기’‘훔치기’부터 ‘왕따’에 이르기까지 학교 폭력의 심각성이 더해가는데 경찰이 업인 자신이 쉴 틈을 봐서야 되겠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가장 큰 문제는 개그 유행어처럼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서로 괴롭힌다는 거예요. 그러니 무작정 ‘하지마’를 외쳐도 소용없지요.” 내일모레면 쉰이 되는 그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철저하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애쓴다. 처음 강의할 때 교안 그대로 ‘하지마’를 웅변조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지루해서 딴청 피우는 것을 보고는 마술을 배웠다. 화려한 손가락 놀림으로 학생들과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다. 27년 동안 하루 두 갑씩 피웠던 담배도 강의를 시작하면서 뚝 끊었다. 집에서 하는 잔소리를 학교까지 와서 한다며 아빠를 불편해하던 맏딸도 이제는 아빠의 마음을 살필 줄 알게 되었다. 김 경사는 노인 범죄 예방 강의도 해오고 있다. 학생들 앞에서는 익살 많은 삼촌 같지만 강의를 위해 어르신들 앞에 서면 철없는 막둥이가 된다. 어르신들에게는 마술은 물론이고 왕년의 코미디언 레퍼토리도 서슴지 않는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 병이 떴어요… 뿜빠라빠빠~” 너스레를 곁들인 재롱을 피우는 그를 보면 어느새 어르신들 눈에도 ‘순사 나리’는 없어진다. 김 경사도 강의를 통해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숨겨진 ‘끼’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판단력이 흐려진 탓에 상품 사기를 당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한번은 만병통치약으로 속아 시중 가격보다 열 배 이상 비싼 값에 장뇌삼을 구입한 할머니의 사정을 알고 환불을 도와드렸더니 고맙다며 ‘대기만성’이라는 휘호를 선물하시더라구요.” 마침 불혹을 넘긴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교 폭력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만학도인 그에게 할머니의 선물은 큰 힘이 되었다. 세상의 온갖 사건, 사고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볼까? “강의 때 자주 하는 ‘매듭 마술’이란 게 있어요. 얽히고설킨 줄을 눈 깜짝할 사이 풀어놓는 것인데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본래 악한 사람은 없으니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라는 마술로 악연을 풀어나가면 돼요.” ‘매직캅’ 김이문 경사의 유일한 낙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운동하고 소주 한잔 하는 것이란다. 대개 자녀를 둔 부모들과 만나니 술자리에서도 그의 강의가 이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노래방에서만큼은 ‘사랑 앞에 나는, 나는 바보야~’하며 그의 십팔번 설운도의 ‘원점’을 목청껏 부르는 순정파 사나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이주일 춤 연습에 빠져있다. ‘끼’ 많은 그가 경찰이 아니었으면 무엇이 되었을까?
  • [2일 TV 하이라이트]

    ●일요 다큐 산(KBS1 오전 7시) 최근 늘어난 등산인구에 비례하여 산악 안전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산악사고는 무려 700건이 넘는다. 사고건수 1위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포함된 북한산 국립공원이다. 이번 주 ‘일요다큐 산’에서는 대한산악연맹, 서울산악구조대와 함께 도봉산에 올라 안전하게 산을 오르는 방법을 알아본다. ●싱싱 일요일(KBS2 오전 8시) 경남 창원의 송영철씨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꽃동산을 만들겠다며 귀농했다.1년이 지난 뒤 그의 연꽃사랑에 가족들은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섰다. 수백 종의 연꽃을 관리하는 부부에게 또 하나의 꿈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전국으로 연꽃을 전파하는 것. 이를 위해 특허 받은 재배기술만도 열 개가 넘는다. ●깍두기(MBC 오후 7시55분) 절에서 나온 사야는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사야는 취직을 했다며 좋아하지만 출근한 첫날부터 손님과 시비가 붙는다. 사야는 손님이 남긴 햄버거와 감자를 가리키며 싸줄 테니 갖고 가서 집에서 먹으라며 봉투 안에 주섬주섬 넣는다. 화가 난 여자 손님은 매니저를 오라고하며 소리를 지른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6시40분) ‘나몰라 크루’가 그동안 그들이 출연했던 각종 프로그램을 몸으로 표현한다.‘야생’에서 와서 사회적응 수업 중인 김경욱. 무인도에 떨어진 요절복통 사연이 공개된다. 멋진 댄스와 신나는 음악, 그리고 화끈한 개그가 함께 만드는 최고의 무대. 김재우, 김경욱, 김태환, 김동섭, 손민희가 출연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일년 강우량이 25㎜에 불과한 사하라 사막에서 평생을 살아온 유목민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 법칙과 지혜가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태어난 물리학자가 그의 삼촌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모로코 남부의 사막 여행을 체험해 보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들만의 노하우는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생방송 심야 토론(KBS1 오후 11시10분) 한국인 인질들이 차례로 석방되면서 40일이 넘은 아프간 피랍사태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피랍사태는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 같다. 심야토론에서는 외교, 종교, 국제정치 등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를 통해 우리가 되돌아 봐야 할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심층 토론한다.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망명자 올스타 밴드’(EBS 오후 5시40분) ‘망명자 올스타 밴드’는 6명으로 이루어진 시에라리온 출신의 밴드 이야기이다.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이들의 음악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감동시킨다. 이들의 앨범 ‘망명자처럼 살기’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발매돼 첫주에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블랙골드’(EBS 밤 12시55분) 세계 무역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는 ‘금’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에 재배 농가는 좋은 커피를 팔아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는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곳곳의 불공정 거래 현장으로 침투한다.
  • [어린이 책꽂이]

    ●재고 세고!(박남일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우리말에서 수와 양, 길이를 재고 세는 말을 아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손주먹 크기를 가리키는 말만 해도 자밤, 줌, 모숨, 움큼 등 다양하다. 그러나 손으로 쥐는 모습이나 정도에 따라 다르게 쓴다. 우리말 연구가인 지은이가 그림으로 수와 양을 측정하는 우리말을 알려준다.‘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시리즈의 하나.9000원.●장터 나들이(김정희 지음, 한림출판사 펴냄)할머니와 함께 시골 장터로 나들이를 간 민지는 끈 풀린 강아지를 쫓아가다 할머니를 잃어버리고 만다. 대장간, 생선가게, 뻥튀기, 우시장, 약장수, 장닭싸움 등 진기한 구경을 하면서도 “우리 할머니 못봤어요?”하고 묻는 민지. 전남 영광이 고향인 지은이가 70년대, 흥청거리며 정감 넘치던 옛 장터를 재현해낸다. 바랜 듯 자연스러운 색과 질감의 그림이 장터의 풍경을 실감나게 전달한다.9800원.●우리 독도에서 온 편지(윤문영 지음, 계수나무 펴냄)개구쟁이 허일은 삼촌이 군대를 간다니 섭섭하다. 삼촌은 독도경비대원이 되어 조카에게 편지를 하나씩 보내온다. 바다 속에 들어갔다가 문어에게 잡힌 이야기,100마리도 넘는 괭이갈매기 떼가 매를 공격한 이야기 등을 읽으면서 허일에게 독도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이 된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글씨체와 독도를 묘사한 그림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9800원.●세상에 색을 입힌 엉뚱한 생각쟁이들(서인영 지음, 대교베텔스만 펴냄)70년전 전쟁에 휩싸인 사람들은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다녔다. 이에 한 청년이 알록달록한 색의 스웨터를 만들어 판다.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옷을 입는다. 세계적인 브랜드 베네통이다. 초현실적인 건물로 유명한 가우디, 변기를 샘으로 둔갑시킨 마르셀 뒤샹, 비누 거품으로 꿈을 판 보디숍의 아니타 로딕 등 세상에 색을 입힌 엉뚱한 천재들을 만나본다.9500원.
  • 청산리전투 이끈 김규식 선생 외증손들의 ‘恨스런 광복절’

    “조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노은(蘆隱) 김규식 선생의 친손자인 김건배(64·서울시 중랑구 신내동)씨는 광복절을 앞두고 조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김씨는 16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국적을 취득했지만 2년 전 입국한 조카(김규식 선생의 외증손자) 선호·준호(27)씨는 충북과 경기도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제시대 호적에 등재하지 않아 광복 후 ‘무국적자’로 남은 독립지사들과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가는 후손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회는 2005년 8월 여·야 의원 38명이 ‘국적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관련법 3개를 내놓았지만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中 당안증´ 제출못해 국적 취득절차 못밟아 김씨는 1943년 중국 흑룡강성 하동촌에서 태어나 91년 외삼촌의 초청으로 입국했다. 지난 95년 국적을 취득하며 받은 3000만원가량의 정착금으로 살 곳을 마련하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다. 이후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후유증으로 장애판정(4급)을 받아 요양 중인 김씨지만 그래도 다른 독립유공자 후손보다는 사정이 낫다. 지난 63년 정부가 김규식 선생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한 덕분에 매달 보상금 100여만원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귀화가 허용된 김규식 선생의 후손은 모두 8명으로, 아직도 7명이 국적 취득을 기다리고 있다. 김규식 선생은 생전 4남1녀를 뒀고 셋째와 넷째 아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자손 없이 사망했다. 둘째 아들의 후손인 김씨 등은 중국에서 자랐고, 다행히 일제시대 큰아버지가 국내에 만들어놓은 호적에 이름을 올려 이를 증거로 쉽게 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5년 입국한 선호·준호씨는 김규식 선생의 딸인 김현태씨의 아들이지만 보훈처가 요구한 ‘확실한’ 문서제출을 하지 못해 국적취득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보훈처가 “‘중국당안증’ 등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 “내 DNA라도 채취해 이들과 비교하면 될텐데 여의치 않다.”며 한숨지었다. ●김규식 선생도 무국적자다 광복절이 김씨에게 씁쓸한 또다른 이유는 김규식 선생이 아직도 ‘무국적자’로 남아 있다는 죄스러움 때문이다.1931년 사망한 김규식 선생은 신채호, 이상룡, 홍범도, 이상설 등과 함께 100년 가까이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남아 있다. 일제가 1912년 조선 통치를 위해 ‘조선민사령’을 공포했고,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가 만든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광복 후 대한민국은 국적부를 따로 두지 않고 호적에 등재된 사람 모두에게 대한민국의 국적을 부여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국적조차 얻지 못했다는 게 후손들의 주장이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실에 따르면 이 같은 우국지사는 200∼300여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나마 신채호 선생의 후손은 외가 호적에 이름을 올린 채 살다가 대법원 청원을 통해 ‘신채호’라는 이름 석자를 아들 신수범(사망)씨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 김건배씨는 “호적등본은 지금도 큰아버지 이름으로만 뗄 수 있도록 돼 있다.”며 국적법 개정을 통한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드러난 구직(求職) 아가씨 매매(賣買) 비밀조직(組織)

    「여공모집」「타이피스트모집」등의 구인광고를 낸 뒤, 일자리를 구하려는 여대생, 또는 가출소녀 3백40여명을 「호텔」, 여관등에 팔아 매음행위를 시켜오던 3개 악질범죄단체가 검찰에 적발되었다. 검찰서 밝힌바로는 서울시내에 이런 범죄단체 30여개가 있어 일자리를 구하려는 소녀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고. 서울시내에 30여개소나 감금해놓고 매음을 강요 서울지검 강력부 황공렬(黃公烈)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구인광고를 내어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팔아온 명재천(明在千·27·주거부정), 안경애(安京愛·38·서울 중구회현동1가 113), 차원복(車元福·29·주거부정)등 5명을 직업안정법위반, 매음행위단속법위반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에 앞서 29일에는 역시 같은 방법으로 일자리를 찾아온 처녀들을 창가에 넘긴 조갑주(曺甲州·25·서울중구 충무로3가 131), 윤영운(尹英雲·33·서울중구 회현동1가 125), 또 모여관 지배인 장병곤(張炳坤·44·서울종로구 서린동114의1)등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한편 서울지검 강력부의 서동권(徐東權)검사도 70여명의 처녀를 같은 방법으로 꾀어 주로 미군기지촌에 팔아오던 주거부정의 정찬모(27), 김진자(36·경기도파주군), 김연자(29)등 3명을 영리유인, 매음행위단속법위반, 직업안정법위반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매일 신문광고난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는 구인광고. 바람난 시골처녀,「아르바이트」일자리를 구하는 여대생들의 구미를 돋우기 위해『초봉7만원』『침식제공』등 달콤한 미끼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 8명의 악질 인신매매업자를 적발한 황부장검사는 연말을 기해 신문 광고난을 이용한 처녀 매매업자에 대한 일제단속을 계속 벌이는 한편 순진한 구직아가씨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기위해「매스콤」을 이용, 계몽에 나섰다. 검찰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신문 구인광고난을 이용하여 처녀를 모집한뒤 한집에 5~10여명씩 감금해 놓고「호텔」여관손님에게 매음행위를 시키거나 기지촌「바」등에 팔고 사는 조직이 서울 시내에 30여개 처나 있을 뿐 아니라 악의 소굴에 빠져 밤이면「호텔」문을 두드려야 하는 밤의 꽃이 무려 5백여명이나 된다고. 일본인 사장이라는 자가 여관에서 주민증 뺏더니 쇠고랑을 차고 황부장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던 안경애 여인과 윤영운 여인은『서울시내 각여관에서 아가씨를 보내달라는 전화가 밤새도록 걸려온다』고 성업(?)을 자랑했다. 피해자 진술을 하기 위해 검사실에 온 김현숙(金賢淑 가명·20)양은 D여대 2년을 중퇴한 평범한 얼굴의 아가씨. 바로 이 아가씨의 신고로 이들 범죄조직은 그 꼬리가 잡혔다. 박봉으로 생활을 이끌어오던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자리에 눕게되자 지난 2학기 등록을 못하고 9월부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타이프」학원엘 다녔다. 「좋은 일자리가 없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로 매일 조석간 광고난을 빼놓지 않고 보던 어느날 아침-『「타이피스트」모집 월수6만원』이란 구인광고가 김양의 눈에 띄었다. 보던 신문을 든채 뛰어나간 김양은 집앞 약방에서 연락장소인 (23)XX34의「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거기서「타이피스트」구합니까?』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40대남자의 목소리가 친절하게 대답했다. 『아침 10시 XX극장 앞 공중전화에 와서 다시 전화해 주십시오』 약속된 시간에 지정된 극장앞 공중전화「복스」에서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곧 나가겠다. 손에 신문지를 말아들었다』고 먼저의 40대 남자가 말했다. 깨끗이 차려입은 그 신사를 따라 남산밑 어느 여관까지 갈 때 그가 독사의 이빨을 가진 인신매매업자란 사실을 알아차리기엔 김양의 나이와 세상경험이 너무 어렸다. 여관 2층방에 김양을 안내한 그 신사는 신원을 확인해볼 터이니 주민등록증을 맡기라고 요구, 김양이 내어주니까『기다리고 있으라』고 명령조로 말하며 방을 나갔다. 하오 3시쯤, 문을 두드리기에 열었더니 여관에서 일하는 16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아가씨를 채용할 일본 사장님이 무척 바빠 만나 보려면 저녁 8시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글거리며 말하고 내려갔다. 저녁 7시40분쯤 40대의 한신사가 나타나 일본인 사장이 아가씨를 쓰기로 했다며 만나러 가자고 서둘렀다. 여관앞에는 까만「세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E「호텔」502호로 안내받은 김양은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50대 일본인과 처음 먹어보는 양식에 맥주 몇잔까지 억지로 마셨다. 20년간 고이 간직한 처녀를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빼앗기기 직전 위기를 모면한 김양은 도망쳐나와 경찰파출소에 신고를 했다. 시골서 올라왔다 기지촌에 팔려가기도 악질 인신매매업자들은 신문광고 외에 서울역 부근 골목길이나 시외「버스」정류장에 구인벽보를 붙여 상품(?)을 낚기도 한다. 고향이 전남 보성인 성정숙(成貞淑 가명·18)양은 지난달 16일 서울에 있는 외삼촌 집을 찾아왔다가 집을 못찾고 다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앞 G고속「버스」정류장에 갔다가 전신주에 붙어있는『여공모집 침식제공』이란 구인광고를 보고 약도에 그려진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중년부인과의 간단한 면접을 끝낸뒤 남자직원과 같이 낡은「지프」에 올랐다. 차가 번화한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에 다다랐을 때 남자직원이『아가씨는 시골공장에서 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순진한 시골처녀가 일선지구 미군기지촌이 어떤 곳이란 것을 알리 없었다. 성양이 팔려간 곳은 경기도파주군 미군기지촌에 있는 어느 미군「클럽」. 매음행위를 강요하는「클럽」여주인의 등쌀에 못이겨 팔려간 다음날 흑인 미군병사에게 처음으로 처녀의 몸을 더렵혔다. 울며 집에 보내달라는 성양에게 주인여자는『너를 3만원에 샀으니 3만원 벌어놓고 가라』고 말했다. 다행히 고향 오빠 친구를 만난 성양은 악의 소굴에서 구출되어 고향으로 내려 갔다. 이 오빠친구의 신고로 검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 바로 정찬모, 김진자등 일당 3명. 서울시내 여관에서 공공연히 불러주는 밤의 여인들이 대부분 이런 경로를 밟아 몸을 짓밟힌 아가씨들. 검찰의 일제단속이 이들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야겠지만 우선 아가씨들은 구인광고를 조심할일이다. <金 建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13일호 제3권 51호 통권 제 115호]
  • (21)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② 그래도 희망은 있다

    (21)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② 그래도 희망은 있다

    변화의 조짐이 없던 코리안 빌리지에서 희망을 발견하기까지 무려 5개월이 걸렸다. 며칠 전에 코리안 빌리지에 사는 두 젊은이한테 메일이 왔다. 한 친구는 한국 전쟁에 아버지와 삼촌이 참전했었다는 헤녹(Henok)이고, 또 한 친구는 현재 Hibret Firre 초등학교에서 참전용사 가족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파실(Fasil)이었다. 파실의 아버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메일은 현재 한국전쟁참전용사협의회(Korean War Veterans Association)가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자기들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 단체를 하나 새로 꾸려 좀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젊은 사람들이 모였고, 도움이 필요하면 또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도움을 주고 싶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도움을 그들에게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늘 누가 도와주기만을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안에서 변화하려는 시도에 우선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코리안 빌리지의 Hibret Firre 초등학교로부터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엽서 약 250장이 도착했다. 국제협력단(KOICA)에서 파견된 윤지영 교사의 도움 덕분이다. 코리안 빌리지는 전쟁이 없었다면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그려내는 전쟁과 평화는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부탁을 해둔 터였다. 그러나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학생들과 이런 수업이 가능할까 윤교사가 불안해해서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작은 소포 꾸러미 안에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그린 엽서 약 500여장 중 메시지가 살아있는 것만 추려낸 게 그 절반 정도로 이번에 다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교사의 설명으로 아이들의 상상력이 제한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전 세계 아이들이 그려내는 ‘평화’의 이미지는 어쩌면 다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 나가사키의 원폭자료전시관에 있는 아이들의 평화 메시지와 엽서 속의 평화 메시지는 많이 닮아 있었다. Hibret Firre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가족 중에는 한국전쟁 혹은 콩고내전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전쟁에 대해서, 그리고 평화에 대해서 아이들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그림을 통해서라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이도 변변히 없고, 색깔을 낼 수 있는 필기구도 제대로 없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사진으로 공감하겠지만 미술 교육을 거의 못 받아서인지 고학년임에도 이들의 그림 실력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에도 못 미친다. 예전에 한 NGO 단체에서 편지 번역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편지들을 번역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감사함을 표현하는 의미로 그림을 그려 보내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손바닥에 흙물을 찍어 종이에 그대로 누르거나, 축구공을 보내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으로 축구공을 그리는 식이다. 그러나 축구공을 그린다고 그렸는데 제대로 공을 표현하지 못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난다. 코리안 빌리지 아이들의 그림 또한 많이 어설퍼 보였지만 그들의 평화메시지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의 평화 메시지도, 뜬금없이 날아 온 파실과 헤녹의 메일도 내겐 희망이다. 에티오피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이 늦깎이 학생에겐 아주 좋은 예감이다. 평화 메시지가 담긴 엽서들은 ‘세계평화의 종공원’을 건립중인 강원도 화천군에 전부를 다 기증했다. 감동은 공유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화천군에서는 세계평화의 종공원 안에 들어설 기념관에 이 엽서들을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오순>
  • [깔깔깔]

    ●삼손과 데릴라 어느 일요일 손자와 할머니가 함께 부활절 특집 외화 ‘삼손과 데릴라’를 보고 있었다. 마침 삼손과 데릴라의 키스신이 나오자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찼다. 무안해진 손자가 얼버무렸다. “에이 할머니, 젊은 남녀가 좋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뭐.” 그러자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아니,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조금 전까지 삼촌 삼촌 하던 사람하고 어떻게…. 원 세상에, 말세다 말세야.”●잉어먹이 500원? 어느 귀여운 꼬마가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갔다. 놀이공원 중앙에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상당한 수의 잉어떼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잉어 먹이 500원’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물끄러미 안내판을 바라보던 꼬마. 무슨 생각을 했을까. 꼬마는 갑자기 지갑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그대로 연못에 던져버렸다.
  • 법정(法廷)끌려온 카사노바 이장(里長)

    법정(法廷)끌려온 카사노바 이장(里長)

    자기가 무슨 「카사노바」라고 만나는 여자마다 울린 이장(里長)이 있다. 전남 광주지방법원에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오찬종(吳贊終)씨(가명·32·전남 곡성군)이란 사나이가 주인공. 한마을에 사는 남의 마누라는 물론 형수 제수 조카까지 가리지 않고 울린 이 별난 취미의 「아더메치」한 행각기-. 남편이 집비운 틈에 설마하는 방심 노려 오(吳)의 여인 행각 제1장은 지난 67년 6월20일 밤 11시, 같은 마을에 사는 정(鄭)모씨(47)의 처 이(李)모여인(37)과 마을 앞 숲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씨는 지방을 떠돌아 다니며 조리를 파는 행상인이기 때문에 집을 떠나있는 날이 많았다. 이것이 탈. 그날도 남편이 장사를 나가 외롭게 집에 있는 이여인을 마을 앞 숲속으로 끌고 가서 몹쓸짓을 하고 말았다. 여자란 처음이 어려울 뿐 한번 일이 되고 나면 둑 터진 봇물처럼 걷잡을 수 없는 법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완강하게 버티던 이여인이 그날 밤을 지내고 난 다음부터는 오씨의 요구를 거절한 일이 없었다는 것. 남자보다 여자의 나이가 다섯 살이나 위인 이들 불의의 관계는 그 후 죽 계속되었다. 오의 여인 행각 제2장은 69년 8월 23일 밤 10시. 가까운 친척 동생의 부인 신(申)모여인(23)이 상대자. 마침 동생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신여인을 강제로 범하고 만 것이다. 설마 제수인 자기에게 그런 짓을 할 줄을 꿈에도 몰랐던 신여인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실을 남편에게 말 할 수도 없는 처지.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기로 가슴만 치고 있을 수 밖에. 오의 여인 행각 제3장은 올 2월2일 밤 10시. 이번에는 자기의 형수 뻘 되는 이(李)모여인(24)을 범했다. 역시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서 시동생인 자기앞에서 안심하고 있는 형수를 누이고 만것. 설마 형수인 자기를 보고 그런 흑심을 발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여인은 고스란히 당했을 밖에. 소리를 지르자니 동네가 부끄럽고 그렇다고 흥분해서 달려드는 억센 남자의 힘을 당할 도리가 없었다. 별수없이 굴복, 일을 치르고 난 오씨는 반 위협조로 소문을 내지 말라는 명령을 잊지 않았다. 당하고도 소문겁내…처녀조카 노린게 탈 『소문을 내면 누가 망신인가 생각해보소! 아무 소리 말고 우리 둘이만 알고 있읍시다』 이여인이 그말을 듣고 보니 백번 옳은 말씀. 당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물은 이미 엎질러진 다음이라 『아이구 원통해!』소리 질러봤자 자기만 망신. 이여인 역시 입을 봉한 채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재미보고 비밀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데 자신을 얻은 그는 이번에는 처녀 조카인 강(姜)모양(18)을 노리기 시작.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드디어 올 8월2일 낮 2시. 순진해서 소리질러…두여인 뒤따라 고소 혼자 있는 조카 강양의 방에 침입, 아저씨인 오씨를 보고 반가와 하는 조카딸에게 달려 들었다. 멀쩡하던 삼촌이 감자기 달려들며 옷을 벗기니 기겁. 그러나 이번만은 사정이 달랐다. 순진한 처녀라 졸지에 변을 당하게 되니 앞뒤 가림없이 엉겁결에 소리를 지를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오의 변태적 엽색행각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는데 전에 일을 당했던 2명의 여인들도 추행으로 오를 경찰에 고발하고 조리장수 정씨는 처와 오를 간통혐의로 고발했다. 이 하늘 아래 보기 드문 치사한 사건을 수사한 광주지검은 정씨의 처 이여인의 간통혐의만은 취하하도록 타일렀다. 소행을 생각하면 절통한 일이지만 자식들(아들5·딸3)을 생각해서 정씨는 아내를 받아들였다. 한편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오의 집에는 아버지(64), 어머니(60)와 부인(28) 그리고 아들 둘 딸 셋이 있다. <광주에서 G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2월 6일호 제3권 49호 통권 제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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