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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댁의 뜰엔 무궁화가 있습니까(박갑천칼럼)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우리 국가의 후렴이다.온나라가 무궁화로 덮여있고 덮여있어야 함을 상징한다.한데 이태준은 생각이 다르다.「진달래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해야 옳다고 말한다.「상허문학독본」에 씌어있다.『우리민족과 가장 정분 깊은 꽃은 진달래』라는데서이다.이책이 나온 해가 19 46년인데 글은 그전에 써둔 것인지도 모른다.그 상허가 지금 살아있다면「벚꽃삼천리 화려강산」이라 해야겠냐면서 봄철에 한번쯤 호통을 쳤음직도 하다. 광복후「국화=무궁화」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조동화씨였다(한국일보19 56년 2월3·4일자).그는 무궁화가 전국토적인 꽃이 못되고 원산지도 인도라는 점을 지적한다.진딧물이 많은 위에 단명허세의 꽃이며 휴면기가 길어 모든꽃들이 눈을 뜨는 봄에도 잠에서 안깨는 게으른 꽃이라고도 말한다.또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점은 화랑답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이글이 나간 며칠후 이민재씨가 동감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조선일보2월8일자).그는 이 글에서 나라꽃이라면 어느 모로 보나 진달래로 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한다.이태준과 뜻이 같은 셈이다.얼마 지난 다음 주요한씨도 그에 대한 글을 썼다(조선일보2월28·29일자).개인취미로 말하자면 진달래보다는 개나리 쪽이라면서 이 문제는 통일이 될때까지「연구하는 정도」로 접어두자는 내용이었다. 그와같은 논의를 새김질하게 하는 것이 나라꽃에 대한 오늘의 일반적 무관심이다.뜻있는 이들에 의해 사랑하기·많이심기가 외쳐지고는 있지만 그 메아리는 나라꽃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이다.개량종이 나와 진딧물도 없어지고 더욱 아름다워지기까지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서 손색이 없게 됐다.하건만 주변에 얼마나들 심어놓고 있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겨레와의 역사성이 깊은꽃이다.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근역(근역:무궁화의 땅)이라 했지만 우리 또한 그렇게 자칭도 했다.신라의 최치원이 당나라임금(광종)에게 보낸 국서속의『무궁화나라(근화향:신라를 가리킴)는 염양한데 고시국(고시국:발해)은…』(최문창휘문집권1)같은 구절도 그것이다.꽃잎속의 빨강심이 일편단심을 뜻하는 꽃 무궁화­일제침탈기의 수난으로 우리겨레와는 인연을 더 깊이한 꽃이기도 하다. 마침 무궁화가 피고지는 계절이다.탑골공원등 여기저기서는 전시회도 열려 들러보라고 손짓한다.엊그제 지방에 갔다 올라오면서 해본 생각이 있다.­고속도로변부터라도 나라꽃으로 온통 물들여봤으면….
  • 주가 7백60붕괴/3.2P 내려

    주가가 이틀째 내리며 7백60선이 무너졌다. 16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3.23 포인트가 내린 7백59.17을 기록했다.거래량 2천5백82만주,거래대금 4천5백9억원으로 거래는 여전히 부진했다. 개장초 고객예탁금 3조원대 붕괴 등으로 투자심리가 극히 위축되며 광업과 조립금속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매물이 쏟아졌다.7백60선이 무너지면서 약세기조가 계속됐으나 장 종반무렵 금융주와 제조업 관련주에 대한 기관의 매수세가 개입되며 낙폭이 다소 줄었다. 전반적인 거래부진 속에 고객예탁금 감소와 월말의 자금사정 경색우려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그러나 연결재무제표 작성에 따른 순이익 증가 기대로 대림산업과 삼천리가 한때 강세를 보였다.
  • 비리의 미인(외언내언)

    신들의 나라에서 결혼식이 열렸다.이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혼인잔치 좌중에 황금사과 한알을 던졌다.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씨가 씌어져 있었다.그러자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가 서로 황금사과를 자기것이라고 주장했다.결국 이데산의 양치기 파리스의 심판으로 아프로디테가 사과를 차지했다.그리스신화의 이 구절은 서양문명 최초의 미인대회에 관한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첫 미인대회는 1930년에 열렸다.「국경의 밤」의 시인 파인 김동환이 창간한 월간지 「삼천리」에서 지상 미인선발대회를 열고 독자들로부터 상반신 사진을 응모케 하여 미인을 선발했는데 이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는 가수요가 붙을 정도로 인기였다.이어 1949년 월간 「신태양」이 「미스 대한 인기투표」란 행사를 실시,예비심사에 통과된 미인후보의 사진을 덕수궁 뜰에 진열해 놓고 일반인 인기투표로 최종후보자를 골라냈다.오늘의 「미스 코리아」 행사는 지금은 없어진 중앙신문사에서 시작했으나 잡음끝에 1958년 주최측이 바뀌게 됐다. 미인대회는 『여성을 상품화하는 부패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며 배격해온 중국에서도 개방 바람과 함께 최근 미인대회 열풍이 불어 20만명에 이르는 「꾸냥」(아가씨)들이 후보자로 나서 화제가 된바 있다. 그러나 신들의 시대부터 미인대회는 말썽을 빚어 왔다.파리스에게 헤라는 권력과 부를,아테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아프로디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주겠다고 각각 제의했다.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의를 선택했고 그 결과 트로이 전쟁이 야기된다. 「미스 코리아」 선발을 둘러 싼 비이는 「여성의 미야말로 의상업자들과 화장품산업이 조작해 내고 있는 허구의 문화」라면서 「성의 상품화를 통한 돈벌이」로서의 미인대회 폐지를 주장해 온 여성운동가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줄것 같다.
  • 삼일회계법인 중기연팀 「중소기업의 성공조건」 출간

    ◎“시장조사·기술개발에 전력 투구하라”/진웅·메디슨·피죤·풀무원 등 성공·실패사례 분석/중기 경영원리 제시한 지침서 『아직까지 외국의 저울공장을 구경 못했다.그래도 가끔 사진을 통해서 보면 우리와 비슷하다.만일 돈을 주고 기술을 배웠더라면 지금까지도 미국·일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을 것이다.기술제휴는 기술예속이다』(주식회사 카스 김동진사장) 『가구업이란 일종의 패션 비지니스이다.옷장사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욕구는 천차만별이다.이러한 구조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새로운 디자인을 창출하고 기업의 방향을 고부가가치 쪽으로 두는 것 뿐이다』(한국가구 최기곤사장) 삼일회계법인의 중소기업 연구팀이 최근 펴낸 「중소기업의 성공조건」(김영사간)에 담겨있는 성공한 중소기업인들의 경영전략 가운데 일부이다. 흔히 한나라의 운명은 중소기업에 달려있다고 한다.현재 우리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은 어느때 보다도 어렵다.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중소기업인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현재 천개가 넘는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경영정보와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이다.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해외의 경제이론을 여과없이 한국적 상황에 대입시킨 것이 아닌 우리 중소기업만의 특유한 경영환경 안에서 결론을 추출한 보기 드문 경영지침서이다. 이 책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성공적으로 경영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경영과제를 찾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이를 위해 삼일회계법인이 자체 개발한 「중소기업 경영분석의 틀」에 따라 한국적 중소기업의 경영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그다음 한국의 대표적인 유망 중소제조업체를 골라 독특한 성공요인을 추려냈다.「성공한 중소기업은 이 점이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상이 된 기업은 건인시스템과 동양기전,메디슨,보락,삼천리자전거,성미전자,수산중공업,신흥기계,양지원공구,에넥스,진웅,카스,풍정산업,피죤,풀무원식품,한국가구등 16개.이들의 공통점은 비어있는 시장을 잘 선택해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지켜오고 있다는 것. 이 책은 또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거나 경영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중소기업의 성공 뿐 아니라 실패사례도 교훈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기술력이 있으면서도 부도를 낸 아남전자,생산품목 선정을 잘못한 백산전자,내수시장에 장기적인 계획없이 뛰어든 기온물산 등 역시 한국적인 환경 속에 쓰러진 기업의 예를 들어 어려운 경영여건의 타개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공해배출 대기업 10곳 적발/롯데햄·동방유량 등 포함

    ◎중기 8백36곳도/1백70업체 시설폐쇄령/환경처 2월 단속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고취되고 있는가운데에서도 일부대기업을 포함한 상당수의 업체들이 여전히 오염물질을 마구 흘려보내는등 환경관련법규를 지키지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환경처에 따르면 지난2월중 전국15개시도에서 1만4백92개 오염물질배출업소에 대한 단속을 실시한 결과 환경관련법규를 위반한 업소는 8백46개업소에 달했다는 것이다.적발업소가운데 대기업은 롯데햄우유 동방유량 충남방적 유한킴벌리 삼양식품 동양나이론용연공장 진해화학 코오롱유화 새한미디어 한양화학등이다. 최근 2년간 4차례나 적발되어 고발까지 됐던 충남방적은 색도기준을 69나 초과한 4백49색도의 폐수를 흘려보내다 적발되었으며 유한 캠벌리와 롯데햄우유는 배출산도기준을 초과했다가 개선명령을 받았다. 진해화학은 부유물질배출허용기준이 1백50㎛인데도 불구하고 1백86㎛의 폐수를 흘려보냈으며 동방유량과 코오롱유화도 배출허용기준을 위반하다 적발됐다. 또 삼양식품은 배출시설관리인을 다른업무에 종사하게하는등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변경명령을 받았고 삼천리직산공장은 무허가로 배출시설을 설치해 가동해오다 사용금지 당했다. 영창악기는 고체연료사용승인을 위반했고 서울 성심병원은 적산전력계를 부착하지않았다가 적발됐다. 이밖에 축협중앙회서울공판장 동양나이론 용연공장 서울마포 진주아파트 주택공사경북지사등도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해 각각 개선명령을 받았다. 한편 환경처는 위반업소중 정도가 심한 2백52개업소는 검찰에 고발하고 고발업소가운데 무허가로 배출시설을 운영한 1백70개업소에 대해서는 사용금지및 폐쇄조치를 병과했다고 밝혔다.
  • 기업들,무공해제품 개발 열기(업계는 지금…)

    ◎신냉매냉장고·썩는 플라스틱·전기차 선보여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리우회의나 기후변화협약과 같은 용어들이 그다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고 어느 샌가 저공해·무공해 상품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지구를 살리자는 세계적인 환경보호 움직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들을 「무공해 상품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냉장고의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가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여러나라들이 대체냉매 개발에 착수했으며 국내에서는 대우전자가 CFC 대체냉장고를 개발,양산체제를 갖췄다.「썩는 플라스틱」이나 전기자동차도 국내기술진에 의해 개발된 환경제품들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들」은 국내에서도 대체냉매 냉장고나 무공해 비누등으로 이미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다. ○“환경제품만이 살길” 각국의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국제적인 환경보호운동이 거세지고 있어 이제 저오염 무공해 상품이 아니고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국제시장의 경쟁도 환경기술이 좌우할 게 분명하다.기업들도 생존차원에서 기술개발에 환경요소의비중을 높이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CFC의 대체냉매 냉장고를 개발한 대우전자는 폐기물과 수질 대기 소음등 환경문제를 종합적으로 협의하는 기획조정실장 주관의 그룹 종합환경대책협의회와 그룹 환경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대우의 대체냉매 냉장고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불화염화탄소(CFC)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미국 일본등 선진국도 아직 개발단계에 머무른 획기적 상품이다. 대우는 대체냉장고에 이어 최근 이산화탄소의 사용량을 40%이상 줄인 용접기를 개발했고 정화처리약품의 개발과 소각로·폐타이어 재생플랜트등 환경설비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페놀사건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두산그룹은 환경개선을 위한 그룹의 구체적인 실천운동으로 5R운동­Reformulation(제품 재구성) Redesign(설비 재배치) Reuse(재사용) Reduce(감량화) Recycle(재활용)­을 벌이고 있다.두산음료와 두산기업이 폐식용유를 이용,무공해비누를 생산하고 있고 동양맥주가 이천공장과 광주공장에서 나오는 슬러지를 전량 비료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슬러지 비료원료로유공이 개발한 분해성 플라스틱도 폐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환경제품이다.인천고분자연구소가 2년의 연구끝에 개발한 그린 폴이라는 이름의 이 플라스틱은 기존의 분해성 플라스틱제품은 포장용 필름에 한정된 것과 달리 화장품용기 사무용품 샴푸병 일회용 컵등 모든 플라스틱 제품에 활용할 수 있다.고성능 자동산화제를 사용해 폐기후 10년정도면 썩는다. 유공은 빛에 의해 분해되는 광분해성 플라스틱의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3,4호까지 개발한 전기자동차도 미래형 저공해 자동차이다.현대가 최근 선보인 전기자동차 3,4호는 한번 충전으로 1백20∼1백40㎞를 달릴 수 있어 수출용으로도 주력차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아건설이 일반 폐기물과 산업 폐기물 처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고 한일시멘트가 공해방지와 환경오염방지시설업에 나서겠다고 공시했다.삼천리가 일반폐기물 처리시설 시공업,대농이 환경오염방지 시설업,동국실업이 공해방지시설의 제작판매업,진도패션이 폐기물수집및 처리업,새한전기가 산업폐기물처리업에 각각 진출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구를 살리자는 공감대의 확산속에 이제 우리 기업도 국제적 환경규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경쟁력을 갖춘 환경제품 개발에 더욱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무궁화원색도감·대전/용진민족문화원 발간(책의해/우리가 만든책:8)

    ◎출판사 자천도서 시리즈/무궁화 관련 학술·정신문화사 정리/4천여명 참여… 1년 작업 한국무궁화연구회(회장 유달영)가 편찬을 맡고 용진민족문화원(대표 김순석)이 발간한 「무궁화원색도감」1권과 「무궁화대전」5권등 전6권은 「겨레꽃」무궁화에 얽힌 5천년사를 총정리한 무궁화연구서의 결정본이다. 이 책은 24명의 사계 전문가로 구성된 편찬위원회가 정신·학술사적 고찰과 식·생물학적 연구로 나눠 1년을 꼬박들여 만들었다.원고작성에만 연 2천5백명,20차례의 반복교정작업등을 거쳐 책이 완간될 때까지 무려 연4천2백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인용문헌 1백95건,참고자료 1백권,관련기사 1백30건,관련안내책자 1백20권이 기초자료용으로 사용돼는등 출판사상 드문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2권은 정신문화사적 측면에서 3,4권은 식물·원예학적으로,5권은 문학예술작품속에 나타난 무궁화를 시대와 장르별로 구분해 고찰하고 있다.1,2권 「무궁화·영원한 겨레의 꽃」편은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자리잡게된 역사적 배경을 살폈다.선사시대∼조선조까지무궁화에 대한 관련기록의 원문을 해설과 수록했으며 인용문헌에 대한 설명도 달았다.일제강점기의 무궁화수난사도 주요부문.또 무궁화가 국가행정기관과 사회전반에 어떠한 모습으로 투영되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무궁화의 위상과 인식을 서술하고 있다. 3,4권「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은 학술이론을 바탕으로 연구자료로 뿐만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무궁화에 대한 보편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을 전달코자 했다.제5권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편은 문예작품속에 나타난 무궁화이야기로 지금까지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조명방법으로 평가된다.역사속에서 민족과 더불어 지고핀 무궁화를 노래한 시·수필·시조등도 다양하게 들어있다. 별권으로 편집된 「무궁화원색도감」은 품종의 특성에 가장 근접한 꽃을 기본으로 삼아 국내종 70종,도입선발종 14종,외국종 60종등 1백44종을 선정해 꽃모양,나무모양등을 원색사진에 담았다.꽃이름유래·모양·색깔등에 대한 해설을 국문과 영문으로 덧붙였다. 집필진으로 참여한 박춘근무궁화연구회이사(49)는 『무궁화가 진정한 「나라꽃」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무궁화에 대한 모든 것을 한데 모운다는 집념이 이 책을 펴내게 했다』면서 무궁화의 바이블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 무궁화대전(외언내언)

    흔히들 벚꽃을 일본의 국화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남들이 생각할 정도로 벚꽃이나 국화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이다.특히 벚꽃의 경우는 그 지는 모습의 끼끗함을 두고 사무라이(무사)의 기개와 비유하기도 한다.『꽃은 벚꽃 사람은 사무라이』하면서.하지만 『벚꽃이나 국화는 공식적으로는 국화의 표상이 아니다』.그래도 벚꽃 제일의 명소 요시노야마(길야산:나양현)나 아라시야마(남산:경도시)에는 수령 1천여년의 노수가 있어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해온 역사를 말해 준다. 그에 비긴다면 무궁화는 우리의 나라꽃(국화)으로 표상되어 온다.『무궁화 무궁화 우리 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 나라꽃』하고 노래 불리는 나라꽃으로.2천여년 전부터 이땅을 상징하는 꽃으로 기록되면서 특히 일제시대에는 그이유로 탄압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한서 남궁억선생이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하여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인데 대한 그들의 검거선풍은 「무궁화 사건」이라 불려 내려온다. 그렇건만 현실적으로는 「나라꽃」대접을 하지 못해 온것이 우리 겨레이다.광복후가 더 그렇다.일부 뜻있는 이들에 의해 나라꽃 사랑운동이 펼쳐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 일반의 가슴마다에 전달되지는 못한 상황이다.하기야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는 것 자체부터 이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이미 일제시대에 상하 이태준같은 작가는 『진달래 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노래 불러야 한다면서 반론을 제기한 바 있고 그런 논의는 광복후로도 이어진다.그렇더라도 광복후 50년이 다되는 오늘날까지 벚꽃의 명소는 전국의 예저기에 깔려 있는데도 무궁화 명소는 못듣고 있는 현실을 어찌 생각해야 할 것인지. 「나라꽃」으로서 표상되고 있는 바에야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가꾸어 나감이 옳다.그런 뜻에서 전6권으로 무궁화의 모든것을 수록한 책 「무궁화 대전」발간의 뜻은 깊다.겨레의 잠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 금품살포 1명 구속

    【삼천리=강원식기자】 경남삼천포경찰서는 16일 삼천포 수산업협동조합 임원선거에서 자신의 회사대표를 지지해줄 것을 부탁하며 대의원에게 돈을 건네준 김육씨(39·고려수산 사무장·삼천포시 벌리동 132의15)를 수산업협동조합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수협감사당선자 박성순씨(48·고려수산대표·삼천포시 벌리동 460의7)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0)

    ◎36세의 죽음/배설,“신문 살려 한민족 구하라” 유언/대일마찰 꺼린 영측 통감부에 매도/양기탁 “손 뗀다” 광고 게재후 떠나가/한·일합방 이틀후 「매일신보」개제… 일제기관지로 배설은 1908년 5월27일 대한매일신보의 발행및 편집인의 명의를 코리아 데일리 뉴스의 편집일을 보던 만함(Alfred Weekley Marnham)으로 바꿨다.이 무렵은 일본측의 집요한 외교적 탄압으로 영국측이 배설을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상해고법의 판·검사가 한국에 막 도착한 때였다. ○한때 암살까지 거론 그러나 만함은 형식상의 발행인일뿐 신보는 여전히 배설의 영향아래에서 제작됐다.신보의 논조 또한 변함없이 이어져 반일로 일관된 것은 물론이다.당시 워싱턴포스트지는 『신보의 통감부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배설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쓸 정도였다. 한국민족의 편에 서서 기자정신을 불태우던 배설이었지만 옥고를 치른뒤로부터 건강이 크게 악화됐다.이로인해 1909년 3월초 자리에 눕게 되었고 두달뒤인 5월1일 36세의 젊은 나이에그만 세상을 떠났다.의학적인 사인은 심정확장이었다.일제와 맞서 신보를 지키고 이끄는 투쟁과정에서 끊임없이 핍박받은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결국은 죽음을 몰고왔을 것이다. 1904년 3월 이 땅을 밟은이후 줄곧 일제와의 투쟁으로 삶을 이어온 그는 이렇게 파란의 인생을 마감했다. 평소에 늘 『한국을 위해 위험을 피하지 않는 것이 나의 직책인 만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신명을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배설이었다.그리고 이를 실행했던 진정한 한국인들의 벗이기도 했다. 운명하기 하루전날 남긴 유언에서도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영생케 해 한민족을 구하라』는 간곡한 한마디였다고 한다. 한국을 자신의 조국 이상 사랑했던 그의 죽음은 많은 한국인들을 애도케 했다.박은식은 5월5일자 신보1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천견공래우탈공(하늘이 공을 보내고는 또다시 데려갔네)구주의혈쇄명동(구주의 의혈남아가 조선의 어둠을 씻어내고자)편편일지 삼천리(삼천리 방방곡곡에 신문지를 뿌렸네)유득방명조불궁(꽃다운 이름이 남아서 다함없이 비추리). ○합정동 외국인묘에 양기탁 또한 그의 타계를 애통해 하는 글을 썼다.「대영남자대한충(대영남자가 대한에 와서)일지광명흑야중(한신문으로 어두운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내불우연하거탈(온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 갔나)욕장차의문창궁(하늘에 그뜻을 묻고자 하노라)』. 배설은 이처럼 한국인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서울 합정동 양화진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뼈를 묻혔다.그가 세상을 떠난뒤 신보에서 차지하는 양기탁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었다.신보의 소유자는 만함이었으나 그는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없어 신문제작 일체를 양기탁에게 의존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긴 주한영국총영사 헨리 보나르(HenryBonar)는 만함에게 신보의 제작을 한국인들에게 맡기는데 따른 위험성을 경고하기 시작했다.보나르의 경고는 신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영국이 만함에 대한 보호를 철회할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 것이었다.특히 새로 개정된 추밀원령이 곧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만함도 배설처럼 영국법정에 서게 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추방사태를 빚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덧붙였다. 보나르는 신보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항토록 선동하는 것은 『바보 같고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신보로 인해 야기되는 영·일간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자는 것이 그 저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보나르는 급기야 만함에게 『한국을 위해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신문을 처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까지 충동질 했다. ○보나르 영대사 주도 결국 만함의 동의를 얻어낸 보나르는 통감부와도 신보처리문제를 협의,통감부의 신보매수를 제의하고 나섰다.통감부의 신보매수는 영속적인 공안방해이자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임을 내세워 신보를 매수토록 종용한 것이다.이와함께 보나르는 주일영국대사 맥도널드에게 자신의 소견을 보고하고 이를 지지해 줄것도 건의했다. 보나르가 이러한 내용의 전문을 보낸것은 1910년 3월25일로 돼 있다. 한편 보나르가 일본당국에 제안한 신보처분의 조건은 신보를 일본측이 인수하는 대신 만함은 앞으로 한국에서 신문사업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 요지였다.또한 통감부가 신보를 매수하고 난 뒤에는 한국에 영국인 소유의 신문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이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신문을 새로 발행하는 경우 한국의 신문지법을 영국인 소유의 신문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신보를 일본당국이 매수하면 한국에서 영국인이 발행하는 신문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보나르는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작성,각서형식으로 일본측에 전달했다. 이같은 신보처리방안에 대해 맥도널드는 찬동하는 편이 아니었다.일본당국의 신보매수는 일본당국과 만함이 직접 교섭할 사항일뿐 영국총영사관이 공식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더구나 영국 외무성을 이 문제에 관여케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그러나 보나르는 자신이 제안한대로 신보처분을 통감부와 절충해 나갔다. 마침내 통감부는 만함에게 7백 파운드를 지불하고 신보를인수했다.신보의 인수절차는 주한영국총영사관에서 일본당국과 만함이 약정서를 교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통감부가 신보를 매수하기는 한·일합병을 약3개월 앞둔 시기였다. ○사원들 구사운동도 통감부는 합병조약이 성사될때까지 신보의 매수를 비밀에 부쳐둔채 1910년 6월14일 발행인 및 편집인의 명의만 한국인 이장훈으로 바꿔놓았다.신보가 통감부에 팔렸다는 소문은 이보다 앞서 나돌기 시작했다.그러나 신보는 6월14일자 사설을 통해 이는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통감부 매수설을 부인했다. 『발행인 만함이 무슨 사단이 있었는지 신문을 폐철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하므로 사원들이 거대한 자금을 불석하고 활자와 기계 등 제반 십물을 매수했다』는 것이 이날자의 사설 내용으로 돼 있다.또 발행인은 외국인이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편집인이나 기자가 모두 그대로 있으니 논조도 달라질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보가 일본의 손에 들어간것은 더이상 숨길수 없는 사실이었다.신보의 제작을 처음부터 도맡았던 총무 양기탁은 신보의 발행인 명의가 이장훈으로 바뀐 그날부터 자신은 이 신문에서 손을 떼었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신보를 떠나고 말았다.그뒤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의 두자를 뗀 매일신보로 개제,조선총독부 기관지로 전락해 버렸다.이날은 한일합병이 된지 이틀만인 1910년 8월30일이었다. 항일언론의 최선봉에서 뜨겁도록 구국의 혼을 불사르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가 비극적인 종언을 고하고 만것이다. *참고문헌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한국언론사」(이상 정진석저)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심청전」안무 ▲〃 동아일보창간70주년기념 모스크바지역등 5개국 순회공연 창극 「아리랑」안무·출연 ▲1991년 국립극장주최 청소년예술제 「파란풍선」안무 ▲1992년 국립극장주최 「비단 안개」안무 ▲〃 서울시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객원안무 ▲현재 문화부 문화재 보호협회 「한국의집」예술총감독,서울예고 무용과장 서울올림픽 안무총괄 공로 대통령 표창
  • 최익현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을사조약 체결되자 “항일의병” 횃불/74세 거유,“조약은 무효” 전북 태인에서 거병/대마도 유배뒤 순국… 전국적 배일투쟁 “점화”/“나라위해 생사초월” 무성서원연설 민족혼 일깨워 노옹의 항쟁은 열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그가 이끄는 의병의 병력과 무기도 보잘 것 없었고,정부측의 반응도 냉담했다.정부는 일제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해산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면암 최익현­1906년 6월4일부터 14일까지의 「뜨거운 날들」은 선생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 붉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요원의 불꽃으로 번지게 한 의병항쟁의 불씨를,선생이 지폈다는 뜻만으로서가 아니다.선생은 「나라가 흥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을 잃지 않는데 있으며,인권도 중요하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국권 없이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진리를 가르치며 이같은 독립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경기도 포천 출생 당대 유학의 거봉으로 74세나 된 선생이,국권회복을 부르짖고 구국창의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은 일관된 삶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1833년 경기도 포천군 가범리에서 출생한 면암은 일찍이 이항로 문하에서 「애국여부 우국여가」의 사상을 이어받고,그 이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철저하였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리자 그 부당함을 상소 ▲고종의 신임을 얻어 호조참판이 된 뒤,누적된 적폐를 바로 잡으려다 오히려 기득권층의 반발을 받아 제주도로 유배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며 지부소(도끼를 가지고 상소를 올리며 답을 기다리는 것)를 올렸다가 흑산도로 유배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공표되자 청토역복의제소를 올려 항일운동을 전개 ▲1905년 소위 을사5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화와 박재순·이완용·이근택·이지용·권중현등 「오적」처단을 주장한 청토오적소를 올린 일등은 흐트러짐 없는 인간 최익현의 한 단면이다. 1906년 3월15일.선생은 가묘에 하직을 고하고 집안 사람들과 이별,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상소만으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선생은 다시 한번 참담함을 맛보지않을 수 없었다.판서 이용원·김학진·참판 이성렬·이남규등에게 서신을 보내 「함께 국란에 대처할 것」을 바랐으나 한사람도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선생은 애제자 고석진의 소개로 「태인사람 임병찬」을 만나게 된다.임병찬은 임실군수까지 지내다가 왜인들의 정치를 마다하고 사퇴한 올곧은 선비였다. 『호남의 선비들이 장차 의병을 일으키려 하는데 모두 선생을 맹주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곳으로 가셔야 하겠습니다』 이후 두달 남짓동안 거의가 준비됐다.시골 포수들로부터 총칼이 모아지고,2백여명의 우국지사가 모여들었다. 6월4일.태인 무성서원에서 있은 선생의 강회는 항일의병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날로 기록된다. 『지금 왜적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역신들은 죄악을 빚어내 오백년 종묘사직과 삼천리 강토가 이미 멸망지경에 이르렀다.나라를 위해 사생을 초월하면 성공 못할 염려는 없다.나와 함께 사생을 같이 하겠는가!』 불꽃에 민족혼을 일깨운 의병들은 이날 정읍에 무혈입성,총칼과 탄환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했다.또한 일제에 16개 죄목을 들어 국권의 침략과 국제적 배신행위를 통렬하게 지적한 장문의 규탄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후 정읍에서 흥덕으로,다시 순창 구암사에서 순창읍내로 행군하였을 때에는 의병의 수가 5백여명을 넘게 되었다.힘을 얻은 「면암의병」들은 파죽지세로 곡성을 거쳐 남원으로 밀고 들어 가려 했으나,순창으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남원 방비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의병은 8백여명으로 불어났다. 6월11일.광주관찰사 이도재가 사람을 보내 고종의 칙지를 전해왔다.선생은 큰 기대를 갖고 이를 펼쳐 보았으나 그 내용은 엉뚱하게도 『의병을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면암은 『이미 소장을 올려 의병을 일으키게 된 연유를 말씀 드렸으니,나의 진퇴는 관찰사의 직권으로 지휘할 바가 아니다』는 답장을 보냈다.그리고 다시 남원진입을 꾀했다. ○고종,의병 해산령 그러나 남원을 지키고 있는 부대가 왜군이 아니고 우리측 진위대임이 확인되었다. 진위대(경군)측은 『대감이 민병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전진이 있을 뿐』이라는 통보를 세차례나 보내왔다.선생은 괴로워했다. 선생은 임병찬에게 『동포끼리 서로 박해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 즉시 해산시키라』고 명령했다.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던 의병들은 눈물을 머금고 해산되었다.선생 곁에 끝까지 남은 의병은 12명 뿐이었다. 6월14일.선생일행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그리고 우리 사법부가 아닌 일제에 의해 재판을 받게 된다. 「대마도 감금 3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선생은 1907년 1월1일 단식 끝에 한많은 적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선비정신의 귀표 역사학자 박성수교수(정신문화연구원)는 면암의 항일운동과 관련,『선생은 1876년 개항 이후 줄곧 외침을 경고했으며 이에 맞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오로지 국론을 통일해 일치단결하는 것밖에 없다고 부르짖어 온 분이었다』며 『그러므로 선생이 70고령을 무릅쓰고 무기를 들었다는 소식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는데 외딴 섬 대마도에서 순국하셨다는 소식은 온 국민의 가슴에 칼을 꽂은거나 다름없는 슬픔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고 평가했다. 선생의 항쟁 이후 호남을비롯한 전국 각지에서는 우후죽순처럼 의병들이 일어난 점만 보아도 당시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로서,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점이 입증되는 셈이다. 선생은 순국직전 임병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죽음에 있어 마땅히 죽을 곳에서 죽으면 삶보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나 이제 죽을 것이니 황상에게 올릴 마지막 소를 비밀히 간직하였다가 본국으로 돌아 가는 날 전해주길 바란다』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의 영구행렬 앞에는 「춘추대의 일월고충」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 밥은 하느님이다/유일숙 햇빛출판사 사장(여성칼럼)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 신년 보좌신부 강론제목이 「밥은 하느님이다」였다. 밥은 하느님이다? 그 말과 함께 떠오른 것은 운두 깊은 재래식 우리 밥그릇이었다.김이 무럭무럭 나는 보리밥이 운두 깊은 밥그릇 위로 우뚝 솟은 그림이 눈으로 들어오며 단발머리 계집아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댕궁치마에 섭이 긴 저고리를 입은 밉지도 곱지도 않은 계집아이. 아마 내나이쯤 된 어른이면 「밥」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배고픈 세월을 오랫동안 견뎌야 했던 어린날.옆집 숙이네 부뚜막에 퍼놓은 밥이 우뚝 솟은 밥그릇을 바라보며 눈에 파란 불을 켜고 군침을 삼키던 계집아이,소원은 밥 한번 배불리 먹는 거였다. 지금은 쌀이 흔해서 생필품중 쌀값이 제일 안든다.우리집만 해도 쌀 한가마면 1년을 지낼 수 있다.쌀 한톨 흘릴까봐 쌀바가지 끝에 얻어오는 손가락을 모두어 대고 쌀알을 받치던 때와는 달리 더운물 철철 흐르는 입식 부엌에서도 한웅큼의 쌀이 떠내려가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몇숟갈 뜨면 없어질 공기밥을 이리굴리고 저리굴리다가종당에는 반숟가락도 못되게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요즘 아이들을 나무라기조차 잊은지 오래다. 쌀봉지 사들고 조심조심 오다가 미끄러져 쌀봉지를 포도위에 붓고 얼음판에 엎디어 엉엉 울어본 기억은 나만의 것은 아니리라.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은 다 잊고 「밥」하면 흔하디 흔한 것으로 내치고 있다. 연세대 정문 앞에 내건 「추곡수매가 6%인상에 등록금 14% 인상이라니 농촌학생 어찌살까!」란 대문짝만한 글귀를 보며 「밥은 하느님이다」에 ○표를 친다.「우루과이라운드」니 「쌀개방압력」이니 망령된 단어가 황폐한 농촌 들녘을 떠도는 요즘,우리 모두가 밥의 귀중함과 쌀의 소중함을 재인식하여 한되의 쌀이라도 더 소출하여 한 그릇의 밥이라도 우리의 쌀로 수북이 지어 먹을때 쌀 수매가인상 요구를 위한 농민들의 국회의사당앞 집결 대신에 풍요의 풍악이 삼천리 강산에 울리고 농촌 들녘으로는 단발머리 긴머리 아이들이 달리고 처녀 총각의 잔칫상이 이집 저집에서 오를 것이다. 「밥은 하느님이다」 이 보다 더 좋은 말을 올해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 열차이름 3∼4월중 바뀐다

    ◎새마을→새나라·무궁화→평화·비둘기→삼천리 철도청은 오는 3·4월중에 새마을호를 비롯한 무궁화호,비둘기호등 현행 열차이름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 11일 철도청에 따르면 현행 열차 이름이 꽃·새이름·이념 등으로 일관성 없이 표현돼 있어 이를 일관성 있고 현 시대여건에 맞도록 하기 위해 새마을호는 새나라호로,무궁화호는 평화호,비둘기호는 삼천리호로 각각 바꾸고 통일호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철도청은 새 열차이름을 지난해 8월15일부터 9월30일까지 현상공모한 8천2백20개 작품 가운데서 선정했다.
  • 화성 겸재/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겸재 정선은 우리 회화사상에서 화성으로 떠받들어야 할 위대한 화가이다.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불리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데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성공한 분이기 때문이다. 겸재가 살던 시대는 조선왕조의 국시로 천명됐던 주자성이학이 이미 율곡 이이에 의해 이기일원론으로 심화 발전돼 조선성이학이라는 우리 고유사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던 때였다.이에 당시 지식층들은 이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 고유색을 현양해가고 있었으니 문학에서는 한글의 가사와 소설,시조가 출현하고 한문의 진경시문이 유행하며,글씨는 한석봉체와 동국진체라는 조선 고유색 짙은 서체가 창안돼 널리 유포되는 등이 그것이었다.이런 시대분위기 속에서 어떤 천재 화가가 나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그와 어울리는 고유의 우리생활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주기를 열망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그 당연한 열망에 부응하여 출현한 천재화가가 바로 겸재였다. 겸재는 현재 종로구 청운동 89번지 부근의 백악산(북악산)아래에서 탄생하여 오십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고 다시 옥인동 20번지 부근으로 이사하여 삼십여년을 살았다.따라서 그는 서울에서도 가장 경치가 빼어난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평생 살다간 셈이다.그런데 이곳은 율곡을 비롯해서 오계 성혼,송강 정철,구봉 송익필등 율곡학파의 핵심인물들이 살던 곳으로 이후 대대로 율곡학파들이 터잡아 사는 곳이었다. 겸재가 태어날 당시에는 육창으로 불리는 김창집의 육형제가 중심이 돼 이곳에서 율곡학맥을 계승하며 조선고유책을 선도해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삼연 김창홉은 성리학은 물론이고 제반 학문과 예술에 박통한 일세통유로 조선 고유문화인 진경문화 창달에 솔선하던 분이었다.겸재는 그 삼연 문하에서 수학하여 조선성리학의 근본 경전인 주역을 비롯한 칠서에 통달하고 역대 시문과 서화법을 익히고 나서 타고난 그림 솜씨로 우리 산천을 그려내는데 적합한 화법의 창안에 골몰하게 된다.그 결과 겸재는 그가 사는 동네의 빼어난 경치를 사생하고 역대 명화들을 임모하며 임천고치와 같은 고전적 화론들을 정독해가는 과정에서 중국 북방산수화법의 근본인 필묘와 남방산수화법의 근본인 묵법을 주역의 음양조화 원리에 따라 이상적으로 종합해내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화법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다.이것이 겸재 진경산수화법이다. 겸재는 특히 36세때 금강산을 여행하며 이 화법을 실험해 보고 더욱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후 84세까지 사는 동안 그 화법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화법 수련을 거듭하여 65세를 전후한 시기에 확연히 일가를 이루어내고 80세 전후한 시기에는 묘상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념산수 출현의 역사적인 전과정을 그의 일생동안에서 모두 보여주는 셈이다.
  • “남포공단 입지는 양호”/방북조사단 귀환 회견

    ◎공장시설 낙후… 제품품질은 수준급/자재수급 불안·원가개념 없는게 흠/“적극 도와달라” 김달현부총리 당부있었다 남포경공업단지 합작사업을 위한 우리측 조사단일행 14명이 9일하오 3박4일간의 방북조사활동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김억년 대우그룹회장비서실장을 단장으로 민관합동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이번 방북기간동안 남북합작공단예정지인 남포지구일대와 섬유·신발·가죽등 북한내 산업시설등을 돌아보고 무역부,대외경제사업부등 관계기관을 방문해 투자관련제도등을 조사했다. 김단장은 『공단여건은 전반적으로 좋았으며 자재수급과 관리문제만 개선되면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히고 『빠른 시일안에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이를 토대로 정부로부터 사업승인을 받는등 적법절차를 거쳐 사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단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남포공단을 둘러본 소감은. ▲남포현지공장 예정지와 다른 경공업공장들을 실태파악차원에서 둘러봤다.남포경공업단지의 입지는 매우 양호한편이었다. ­전력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반적으로 전력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일 뿐 남포의 경우는 5천㎾의 전력공급이 가능해 합의된 9개 사업을 추진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김달현부총리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남포 합작사업을 위해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당부의 말이 있었다. ­어디어디를 둘러봤나. ▲남포공단 예정지와 서해갑문,그리고 피복·가방·신발·메리야스공장등 10여개 현지공장을 둘러봤다. ­공장을 둘러본 소감은. ▲공장들이 낙후해 문제가 많았다.특히 자재수급이 제대로 안되고 원가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 생산성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개개 품목의 품질은 상당한 수준이었다.자재수급문제만 잘 해결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합작사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합영법등 제도적 여건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다.그러나 남포 합작사업에 관한한 제도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남한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대한 북한측 반응은. ▲북한에서는 전혀 몰랐다. ­김달현부총리외에 누구를 만났나. ▲무역부·대외경제위원회를 방문,관계자들을 만났으며 삼천리총회사와 무역부 직원들이 안내를 맡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조사결과를 모아 종합의견을 정리할 계획이다.사업추진을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사업승인을 받는 절차가 남아 있다.
  • 셔츠·가방·완구·신발 등 9개분야/합작공장설립 여건조사

    ◎방북 남포조사단 일정돌입 남포경공업단지 합작사업의 타당성조사를 위한 우리측 민관합동조사단이 6일 상오10시 판문점을 통해 입북,3박4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김억년 대우그룹회장 비서실장(사장급)을 단장으로 한 우리측 조사단 14명은 이번 방북에서 지난1월 대우그룹과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간에 합의된 남포경공업단지 합작사업의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북한의 투자관련제도와 남포공단의 항만·도로등 기반시설 여건을 조사한다. 조사단은 투자여건조사를 위해 북한 대외경제위원회,무역부등의 관계자와 만나 합영법등 남북교역활성화에 필요한 제도적 여건을 파악하고 셔츠(블라우스포함)재킷 메리야스 가방 신발 완구 방직 양식기등 9개분야 합작공장의 설립여건도 살펴본다.
  • 남포조사단 오늘 방북/14명 판문점 통해… 3박4일간 체류

    남포경공업단지 합작사업을 위한 우리측 조사단 일행 14명이 6일 상오 판문점을 통해 입북,3박4일간의 조사활동에 들어간다. 김억년 (주)대우회장비서실장을 단장으로 한 우리측 조사단은 이번 북한방문 기간중 남포공단 일대를 돌아보고 대우그룹과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간에 합의된 셔츠·재킷·메리야스·가방·신발·완구·방직·양식기 등 8개분야 합작사업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게 된다. 우리측 조사단은 또 이번 방북기간중 북한의 투자관련제도 및 환경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단은 대우그룹 관계자 등 민간기업 대표 11명과 경제기획원,토지개발공사 등 정부관계자 3명 등으로 구성됐는데 오는 9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예정이다.
  • 추석민속 온가족 함께 즐기자/연휴 나흘 공연안내

    ◎놀이마당/봉산탈춤 흥겹게/민속촌/전통혼례식 시연/서울랜드/남사당놀이 한판/자연농원/제기차기·널뛰기 오는 11일은 설날과 함께 우리민족 최대명절로 꼽히는 추석.올 추석은 예년과는 달리 연휴가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이나 이어진다.모처럼 긴연휴를 맞은 근로자들은 벌써부터 휴가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느라 부산한 모습이며 여가를 보다 알차게 즐기기위해 성묘를 미리 다녀온 도시민들도 적지않다. 그래서 전국의 레저현장은 전에없이 붐빌 전망이다.온천을 비롯한 관광휴양지의 콘도와 호텔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등산 낚시등에 이용되던 여행사 관광버스도 동이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추석 연휴때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세시풍속을 즐기며 한때를 보낼수 있는 민속놀이 공연장을 찾아봤다. □서울놀이마당=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뒤 저녁 보름달이 밝아질때까지 이웃사람들과 함께 농악놀이·씨름·널뛰기·줄다리기등 놀이를 갖는 것이 우리들의 한가위 풍속이었다.그러나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아름다운 우리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우리민속을 전수 보급하고 있는 서울 놀이마당은 잊혀져 가는 이러한 우리 민속을 되살리기위해 추석연휴기간(11∼13일)우리민속을 시연해 보인다.공연내용은 봉산탈춤·경기민요·평택농악·남사당놀이·북청사자놀음·김덕수패 사물놀이 선소리산타령·송파산대놀이등 8가지.이 가운데 송파산대놀이·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등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민속이기도 하다.이 공연에는 해당 인간문화재들과 문화재 이수자들이 직접 나와 특기를 선보인다.공연은 매일 하오3시부터 시작되며 공연시간은 각 종목마다 1시간씩으로 되어 있다. □한국민속촌=11일 낮12시30분부터 추석특별공연을 시작한다.추석당일엔 송파산대놀이와 농악·줄타기등이 시연되며 전통혼례식도 열린다.12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인 강령탈춤을 비롯,농악·줄타기·줄풍류·전통혼례등이 5시간동안 이어진다.또 13일엔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인 북청사자놀음과 중요무형문화재 58호인 줄타기·농악등을 공연한다.강령탈춤공연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정순씨가 나와 직접 보여줄 예정이며 북청사자놀음에도 전광석인간문화재가 직접 출연할 예정으로 있다. □서울랜드=10일부터 13일까지 한가위 특집행사를 마련한다.이 기간동안 남사당패들을 초청,서울랜드내 연꽃분수와 장터주변에서 하루 3번씩(상오11시·하오1시·하오3시)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놀이를 펼친다.이 농악놀이에는 24인조 농악대가 놀이판을 벌이며 장터주변에서는 민속놀이 한마당도 펼쳐진다.이곳 민속놀이마당에는 그네·윷·제기·널뛰기도 준비,가족·친지들끼리 우리고유의 놀이를 즐길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4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삼천리대극장에서는 하오2시부터 2시간동안 한가위 특집쇼가 진행된다.여기에는 가수 최진희·유현상·김흥국등이 초청가수로 출연하며 서울랜드무용단·캐릭터·고적대·악단등이 총출연,명절분위기를 더한층 돋운다. □자연농원=가을정취를 풍기고 전통미 가득한 민속가족게임과 각종 행사를 준비한다.추석날엔 잊혀져 가는 민속놀이의 재발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줄넘기,재기차기,널뛰기,윷놀이마당을 마련한다.11일에는 북청사자놀음을,12일에는 송파산대놀이와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를 야외무대에 올리며 풍장패 사물놀이가 날마다 명절의 흥을 더해준다. 또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동물원과 중문지역에 떡메를 준비,인절미 등 고향의 맛을 전해줄 장터거리를 연출하며 군밤 엿치기등 갖가지 먹거리도 푸짐하게 마련한다. □롯데월드 민속관=11일부터 3일동안 하오4시부터 5시30분까지 민속관에서 한가위 팔도민요잔치를 벌인다.경상도의 모내기노래와 함양양잠가,전라도 진도아리랑과 새타령,황해도 난봉가·산염불,평안도 산타령·긴아리 잦은 아리,경기도 청춘가·한강수타령·풍년가,충청도 흥타령,함경도 궁초댕기·신고산타령,강원도 아리랑·한오백년,제주도 둥그네 당실 등의 정든가락이 무대에 올려진다.인간문화재57호인 이은주씨를 비롯 인간문화재57호후보 김금숙씨와 김점숙,인간문화재57호 이수자등 10명이 출연할 예정이다.관람료는 무료이다. □제주신라호텔=12일 하오8시 대연회장 한라홀에서 한가위 음악회를 무료로 개최한다.이 음악회에는 랄프 도링 빈 국립음대교수(바리톤)와 이 대학에 재학중인 유소영씨(소프라노)가 출연,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슈만의 시인의 사랑,바그너의 탄호이저중 볼트담의 아리아·동심초·신아리랑·무곡 등을 부른다.
  • 납품대 횡포 등 불공정 도급거래/21개 업체 경고·시정명령

    상공부는 도급거래 의존도가 높은 전자·기계 등 업종의 23개 모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중의 도급거래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이 가운데 21개 불공정거래행위 업체에 대해 시정지시 및 경고처분을 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조사결과 납품대금 지급을 지연한 기업이 19개사,내국신용장을 기한내에 열지않은 업체가 5개사,거래약정서를 교부하지 않았거나 법정기재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업체가 15개사,물품수령증을 교부하지 않았거나 지연한 업체가 5개사였다. 위반업체 명단은. ▲납품대금 지급지연(19개사)=현대중전기,화천기계,린나이코리아,금성계전,금성통신,아세아종합기계,롯데전자,한일전기,동양전자통신,대우기전,대우조선,삼천리자전거,아남정공,맥슨전자,한국전자,화승산업,에바스,인켈,진도. ▲거래약정서 미교부 및 법적기재사항누락(15개사)=아세아종합기계,대우기전,대우조선,삼천리자전거,우성산업,한일전기,삼성항공,맥슨전자,롯데기공,린나이코리아,화승산업,에바스,금성일렉트론,인켈,진도. ▲내국신용장 미개설(5개사)=삼성항공,화천기계,린나이코리아,에바스,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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