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구조조정 물꼬 텄다/5대 그룹 빅딜 발표 의미·문제점
◎중복투자 대폭정리 경쟁력 제고/단일법인 설립 많아 취지는 퇴색/상호출자·채무보증 등 해결과제 산적
재계가 진통 끝에 8개 업종의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지난 1월21일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의 필요성을 언급한 뒤 7개월여만에,6월16일 金大中 대통령이 재계 구조조정을 강력 촉구한 뒤 2개월여만의 일이다.당초 거론됐던 10개 업종에서 조선 철강컴퓨터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가 빠지고 정유,선박용 엔진이 추가됐다.
이번 구조조정안은 재계가 ‘자율’로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과거에도 중화학투자조정과 같은 산업구조개편이 있었지만 정부 주도로 이리저리 ‘두부모 자르는’식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구조조정을 촉구해 온 신정부의 전방위 공격에 재계가 손을든 격이어서 완전한 자율로 보긴 어렵다.정부는 기업개혁없이 경제회생이 어렵다고 판단,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한 부당 내부거래조사와 은행감독원의 5대 그룹 구조조정점검,산업자원부의 중복·과잉투자업종 선정 등 ‘토끼몰이’로 재계를압박해 왔다.
재계 역시 IMF불황 때문에 더 이상 선단(船團)식 경영을 계속하기 어렵게 된 점이 있다.기업을 매물로 내놓아도 안팔렸고 해외투자자들은 값이 더 떨어지기만을 기다려 왔다.이 점에서 해외매각을 물색해 온 한화에너지가 현대정유로 넘어가게 된 것은 잘된 일이다.
중복·과잉을 조정함으로써 외자유치 등 경쟁력 회복에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이 통합,일본계 자본을 유치키로 한데 이어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부문 통합으로 태어날 반도체 업체도 인텔로부터 10억달러 이상의 외자를 유치할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반도체산업의 2사체제 개편으로 국내 업계가 공급물량 조절을 통해 세계 시황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애초 당국이 의도하고,5대 그룹이 약속했던 빅딜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많다.지분을 정리하는 사업교환이 아닌,기존 지분을 유지하는 형태의 컨소시엄식 단일법인이나 공동경영 등으로 변색됐기 때문이다.단일법인 설립이 적자사업을 떠넘기기 위한 방편이라는 지적도 있다.이밖에 민영화대상인 한국중공업을 축으로 선박용 엔진과 발전설비를 모은 것은 정부개입의 의혹을 불러일으켜 주는 대목이다.
어쨌든 재계 구조조정의 초석은 마련됐다.하지만 단일법인 출범을 위한 자산실사나 전국에 산재한 통합법인의 사업장 운영,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처리,고용승계,통합에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소송가능성,세금감면에 따른 특혜시비,지분비율이 정해지지 않은 LG와 현대의 반도체후속 협의 등 해결해야 할 사안도 산적해 있다.이들 과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어렵사리 마련한 구조조정안도 물거품이 돼버릴 수 있다.
□5대 그룹간 구조조정 합의내용
업 종 원칙합의 내 용
반 도 체 2사체제 LG와 현대의 단일법인 설립으로
삼성전자와 2사체제
항 공 단일법인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
동등지분의 단일회사,전문경영인 영입
철도 차량 단일법인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이
단일회사 설립
유 화 단일법인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이
30%씩 지분으로 단일사 설립,
나머지 정부출자분 외자유치
정 유 4사체제 현대정유가 한화에너지 인수
선박용엔진 2사체제 삼성중공업의 관련부문을
한국중공업으로 이관,
한국중공업현대중공업 2사체제
발전 설비 일원화 현대와 한국중공업 일원화 방안을
추후논의
자 동 차 추후논의 기아 입찰 유찰시 현대,대우,삼성간
구조조정 논의
◎5대 그룹 빅딜일지
▲98.1.13 金大中 대통령 당선자,4대 그룹총수 회담에서 주력핵심사업 위주의 경영 강조.
▲1.21 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기업간 빅딜 언급.
▲6.10 金重權 대통령 비서실장,능률협회 조찬회서 “빠른 시일내 빅딜 발표할 것”이라고 발언.
▲6.16 金대통령,국무회의서 “대기업 한곳이 거부해 안되고 있다”고 말해 3각 빅딜 파문.
▲7.4 정부전경련회장단 청와대 오찬,빅딜 추진 등 결의.
▲7.26 제1차 정·재계 정책간담회서 5대 그룹 자율 빅딜 합의.
▲8.4 朴泰榮 장관,중복투자 10대 업종 구조조정안 청와대 보고.
▲8.6 공정거래위 5대 재벌 위장계열사 조사.
▲8.7 제2차 정·재계간담회,8월말까지 빅딜 등 구조조정안 마련키로.
▲8.10 전경련 구조조정 실무추진반(태스크포스) 1차 회의.
▲8.13 2차 태스크포스 회의서 5대 그룹 우선 빅딜 합의.
▲8.31 5대 그룹,유화·항공·철도차량 업종 구조조정 잠정합의.
▲9.3 5대 그룹,구조조정안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