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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원태·조현준까지…‘젊은 총수’ 이건희 회장 빈소 일제 발걸음[현장]

    조원태·조현준까지…‘젊은 총수’ 이건희 회장 빈소 일제 발걸음[현장]

    재계 창업 1·2세 경영시대가 저물며 세대교체 주역이 된 공통점이 있는 젊은 총수들이 26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주요 그룹 총수 중에서는 가장 먼저 이 회장 빈소를 찾았다. 정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방문해 이 회장이 생전에 “항상 따뜻하게 잘 해주셨다”고 회고했다. 정 회장은 “너무 훌륭하신 분이 돌아가셔서 참 안타깝다. 우리나라 경제계 모든 분야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느냐는 질문에는 “여러가지 좋은 쪽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20년 만에 총수를 정 회장으로 교체했고, 이 부회장도 이 회장 별세에 따라 조만간 회장 직위에 오를 것이라는 점 역시 비슷하다. 전날 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해 빈소에 도착하며 화제를 모아 정 회장이 이른 조문으로 답례를 했다는 해석도 나왔다.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최대로 큰 글로벌 기업을 만든 분”이라며 “그런 분을 잃은 것은 대한민국에 큰 손실이다. 안타깝고 애통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는 “잘 하리라 믿는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부친 조양호 회장이 갑자기 별세하며 총수가 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오후에 빈소를 찾았다. 조 회장은 “이 회장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위대한 분을 잃어 마음이 착잡하다. 삼성이 지금까지 했던 대로 잘하길 바란다”고 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도 이날 조문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7일 조문할 것으로 전해졌다.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셋째 아들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과 함께 온 김 회장은 “(이 회장을) 친형님 같이 모셨다. 가장 슬픈 날”이라고 애도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삼성물산 주가 13.46% 급등…이건희 별세 후 삼성그룹주 일제 상승

    삼성물산 주가 13.46% 급등…이건희 별세 후 삼성그룹주 일제 상승

    삼성 이건희 회장의 별세 후 26일 증시에서 삼성그룹주가 일제히 상승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물산은 전장보다 13.46%(1만4000원) 오른 11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지난 8월 19일(12만50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거래량은 937만주로, 전 거래일 하루 거래량 28만주의 약 33배에 달하며 이날 삼성그룹주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삼성물산우B[02826K]는 장 초반 상한가(29.86%)까지 치솟은 12만3500원에 마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3%를 기반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물산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면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이 가장 높은 삼성물산의 그룹 내 중요도는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도 “현시점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17.3%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만큼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의사결정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이 부회장이 9.20%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SDS도 5.51%(9500원) 오른 18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회장이 지분 20.76%를 보유한 1대 주주인 삼성생명은 3.80%(2400원) 상승한 6만5500원에, 4.18%를 보유한 삼성전자는 소폭(0.33%) 올라 6만400원을 나타냈다. 삼성이 이 회장 지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향후 지배구조의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삼성생명에 요구되는 것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한 배당 확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부진 대표의 호텔신라는 8만원에 육박했다가 0.13%(100원) 내린 7만6400원에 마감했다. 그러나 호텔신라우는 장 시작과 함께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29.97%(1만9300원) 오른 8만3700원으로 마감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건희 빈소 찾은 ‘삼성 저격수’ 박용진 “고민하다 왔다”

    이건희 빈소 찾은 ‘삼성 저격수’ 박용진 “고민하다 왔다”

    26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일명 ‘삼성 공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삼성을 응원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55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이 회장 빈소를 찾아 약 15분간 조문하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이 대표를 맞이했다. 이 대표는 조문 후 취재진과 만나 “고인께서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탁월한 혁신의 리더십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며 “국가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자신감까지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개인적으로 이 회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뵌 적은 없다”며 “이제까지 고인께서 해오신 것처럼 삼성이 한국 경제를 더 높게 고양하고 발전시키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더욱 도약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김태년 원내대표도 11시 30분쯤 빈소에 도착해 10여분 간 빈소에 머물며 유가족을 위로했다. 김 원내대표는 “고인께서는 혁신 기업가셨다”며 “삼성을 세계를 대표하는 초일류기업으로 키웠고, 특히 현대 산업에서 가장 필요한 반도체에 혁신 정신으로 도전해 세계적으로 육성한 큰 공이 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이 회장과 특별한 인연은 없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애도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이 이 회장에 대한 공과 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밝혀 일각에서 논란이 이는 데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용진 의원은 오후 2시 13분쯤 도착해 10여분 간 조문했다. 박 의원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총 자산의 3% 외에는 모두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박 의원은 조문 후 “(유족이) 혹시 불편할까 봐 조문을 올까 말까 고민을 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위로를 드리러 왔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응원드리려 한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은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큰 위로가 됐다’고 감사를 표했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박 의원에 앞서 조문한 삼성전자 출신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이 회장이) 늘 보잘 것 없고 배움이 짧은 저에게 ‘거지근성으로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라고 말씀하셨다”며 “손톱 만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이셨고 기술 기반 위에서 미래를 개척한 미래인이셨다”고 회고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1942년 대구 출생인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부임했다.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별세 이후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올랐다. 이 회장은 이후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건희 평가, 어제와 분위기 달라진 민주당 지도부 왜?

    이건희 평가, 어제와 분위기 달라진 민주당 지도부 왜?

    어제는 ‘빛과 그림자”…오늘은 ‘그림자’ 빠져민주당 지도부 대거 조문…“혁신의 리더십”박용진, 김두관 의원은 공과 지적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6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고인의 공을 치켜세웠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날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고인께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탁월한 혁신의 리더십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시고 국가의 위상과 국민의 자존심을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상무를 지낸 양향자 최고위원은 조문 후 “(이 회장은)손톱만 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이자 기술 기반 위에서 미래를 개척한 미래인”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전날 논평 등에서 이 회장의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지만, 이날은 ‘빛’에 집중하는 메시지로 선회했다. 전날 ‘공과’를 언급하면서 나온 비판여론을 감안하고, 지도부가 직접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을 하는 만큼 유족에 예의를 갖춘 것으로 풀이된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조문을 마친 후 ‘공과를 따지는 (민주당) 입장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아침 회의에서 고인 서거에 대한 추모의 말씀을 드린 바 있다”고 답했다. 김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세계 역사에 기록될 반도체 성공 신화를 창조한 혁신기업가의 타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과’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이건희 회장) 그의 말대로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했다. 이 대표도 전날 페이스북에 “고인은 재벌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불인정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치셨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가 ‘적절하지 않은 애도’라는 취지 등을 포함하는 댓글이 4000여개 달리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이 회장의 ‘공’에 집중했지만, 개별 의원들은 공과 과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삼성 저격수’로 꼽히는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국가적으로 기업에 특혜와 권한을 몰아주던 방식으로 기업을 키우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재벌의 편법 승계 등과 관련해선, “자기들만 특권, 특혜를 기반으로 법 외적 존재로 있겠다는 인식에서는 더는 재벌 총수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고인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을 주도했고 그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무노조 경영, 경영 승계 과정에서 보여준 사회적 책임의 부족 등은 무거운 숙제로 남았다”고 밝혔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이재용은 ‘팰리세이드’ 타고, 정의선은 ‘오너 3세’ 첫 조문 화답

    이재용은 ‘팰리세이드’ 타고, 정의선은 ‘오너 3세’ 첫 조문 화답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6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하고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가족을 위로했다. 전날 이 부회장이 현대차 ‘팰리세이드’를 직접 몰고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정 회장이 이날 ‘오너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빈소를 찾으면서 두 3세대 총수는 선대의 악연은 뒤로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살 터울의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은 평소에도 교류하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지난 5월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방문하자, 이 부회장은 두 달 뒤 현대·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를 답방하며 의리를 과시했다. 두 사람의 공식 단독 회동은 ‘전기차 배터리’ 동맹을 맺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삼성과 현대는 국내 산업계에서 재계 서열 1, 2위 자리를 다퉈 온 오랜 숙명의 라이벌 관계다. 자동차, 전자·반도체, 건설 등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각종 스포츠 분야에서도 ‘삼성 vs 현대’라는 자존심 대결이 펼쳐졌다. 과거 두 기업의 오너들은 각자 뒤처진 분야에서 “반드시 삼성을 잡아라”, “우리가 현대보다 못해서 되겠느냐”며 호통을 쳤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현대는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다가 삼성에 밀려 1997년 사업을 접었고, 삼성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했으나 현대차에 밀려 2000년 사업을 포기했다. 물론 그런 치열한 경쟁 구도가 한국경제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가져왔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1·2세 경영 시대가 저물고 3세 경영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두 기업은 선의의 경쟁 속에서 ‘협력의 길’로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사람이 명분보다 실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단순한 제조업의 나 홀로 성장이 경제를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는 각 기업 간 장점이 어우러졌을 때 나오는 시너지가 미래 산업의 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의 우정에 한국 산업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kr
  • 박용진 “이재용과 삼성은 분리해야…상속세 꼼수 안될 것”

    박용진 “이재용과 삼성은 분리해야…상속세 꼼수 안될 것”

    “지켜보는 사람 많아서 편법은 안 될 것선대의 재산, 국민이 보는 불로소득의 전형박정희 시절에는 상속세율 70% 넘었다”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꼼수, 편법은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연달아 출연해 “법은 다 지켜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의원은 약 10조원으로 예상되는 이 부회장의 상속세에 대해 “선대의 재산이야말로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불로소득의 전형”이라며 “상속세 혹은 개별소득세는 사회적 기준과 정치적 함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상속세율이) 70%가 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상속세로 인한 지배구조 변화 우려에 대해 “지배력을 잃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이 부회장 개인의 문제”라며 “이 부회장과 삼성이라고 하는 기업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삼성그룹 경영의 핵심은 삼성전자를 누가 얼마나 장악하느냐”라며 “상속세 때문에 제가 이 부회장 입장이면 아직 좀 아슬아슬하다, 이른 느낌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러 부담이 있어서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해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부회장이) 세금을 내다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잃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가지고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서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해놓은 법을 위반한 상태가 26조원 정도”라며 “권위주의 시대에는 이런 걸 그냥 눈 감아줬지만 국제회계기준에도 안 맞고 또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그룹감독법에도 안 맞아서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소의 지점을 어떻게 만들거냐는 정치권에서도 얼마든지 논의하고 도와줄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이 전혀 달라진 국민적 상식, 눈높이를 맞춰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한 제안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정의당 이건희 조문 않겠다고 하자 “김정일은 조문하자더니”

    정의당 이건희 조문 않겠다고 하자 “김정일은 조문하자더니”

    정의당이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조문을 않기로 한 것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실망의 뜻을 표현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26일 열린 대표단회의에서 “삼성의 역사는 우리 산업의 발전을 선도한 역사이지만 정경유착의 잘못된 역사”라며 “그 와중에 우리 당 고 노회찬 의원도 의원직 박탈이라는 피해를 입은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 일가의 재산상속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편법, 불법은 여전히 정확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억압하고, 노동자의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했던 역사 역시 청산해야 한다”면서 “잊어서는 안 될 비극과 누군가의 피눈물로 쌓은 무덤이 바로 오늘날 삼성이 세워진 역사”라고 덧붙였다. 또 고 황유미씨 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불법적인 무노조 경영 원칙에 희생된 고 최종범, 고 염호석 등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기술을 빼앗기고 탈취를 강요당한 중소기업의 억울함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는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마냥 애도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서 “이건희 회장의 사망이 단순히 망자에 대한 조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계기가 되도록 정의당은 국민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이에 대해 하 의원은 “과거 김정일 조문하자고 했던 정의당이 이건희 회장 조문은 안하겠다고 한다”면서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만든 김정일 보다 세계일등기업 만들어 못사는 나라 잘사는 나라로 탈바꿈시킨 경제 리더의 삶이 더 가치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정의당 대표가 바뀌어서 기대감이 컸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되었다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한편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이날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직업성 암 재해자 숫자가 타 질병에 비해 높다며 직업병과 연관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2016년~현재까지 질병 산업재해 현황을 제출받아 분석했더니 타 질병에 비해 직업성 암 신청과 승인이 월등히 높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이날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종합국정감사를 통해 같은 공장,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삼성전자 기흥, 탕정공장 클린룸 청소노동자는 통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이건희 회장 오늘 입관식…삼성 사장단부터 정·재계 인사 조문 발걸음

    이건희 회장 오늘 입관식…삼성 사장단부터 정·재계 인사 조문 발걸음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입관식이 26일 진행됐다. 26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고 이 회장에 대한 입관식이 치러졌다. 이 회장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지하2층에 마련됐다. 입관식에는 전날부터 빈소를 지킨 상주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일가가 참석했다. 입관식 후에는 조문이 진행된다. 우선 전·현직 삼성 주요 계열사 사장단들이 단체로 장례식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9시 20분에는 삼성 사장단 중에서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가장 먼저 장례식장을 찾았다. 1978년 삼성물산으로 입사한 장 전 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과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 등을 거치며 이 회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인물로 손꼽힌다.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부회장도 전날부터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전 9시 30분쯤에는 김기남 DS부문장 부회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도 빈소를 찾았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빈소를 찾아 이 회장이 떠나는 길을 함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관계자들 외에 일반인들은 조문을 할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다.전날 고인의 조카이자 이 부회장과 사촌 지간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필두로 시작된 기업인들의 발길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삼성과 함께 이른바 ‘4대 그룹’을 이루는 이 부회장과 친분을 쌓았던 총수들의 방문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정치권에서는 전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외에도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장례식장을 방문해 고인을 기렸다. 26일에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계 주요 인사들도 빈소를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1942년 대구 출생인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부임했다.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별세 이후 삼성그룹의 2대 회장으로 올랐다. 이 회장은 이후 삼성을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내에 삼성 선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사설] 빛과 그림자 남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어제 78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뒤 6년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인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부터 삼성그룹을 이끌며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기틀을 마련한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계각층은 추모의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대체로 전경련과 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는 고인을 한국 산업의 고도화는 물론 우리 경제 성장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칭송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는 엇갈린 시각이 표출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생전 이 회장의 공로에 초점을 맞춰 경제성장에 기여한 점을 평가했고 정의당이나 일부 시민사회는 정경유착과 노조 탄압 등 재계 리더로서 걸맞지 않은 기업 윤리에 아쉬움을 지적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이런 이중적이고 갈라진 평가는 고인과 삼성 그룹의 자업자득인 측면이 크지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었던 매출 규모는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고 주식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 늘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며 한국 경제의 질적 변화를 선도한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 강국을 향한 그의 집념과 결단이 오늘날 한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깔아 놓은 공로는 인정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등장한 황제경영은 세습경영의 편법으로 이어져 선진경영의 발목을 잡았고 불법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무모했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집착은 노조 탄압이란 질곡을 남겼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기업이익 극대화를 위해 우리 사회에 정경유착의 뿌리를 심어 놓은 과오도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 회장이 병석에 있었던 지난 6년 동안 삼성에선 완강했던 무노조 원칙도 허물어졌고 계열사별로 준법감시위원회가 도입돼 투명경영도 강화됐다. ‘경영 세습’을 근본적으로 막는, ‘4세 경영 포기’를 공식화한 것은 그나마 달라진 삼성의 모습이다. 이 회장의 별세로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열렸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의 불법 행위 등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 있는 상황이지만 고인의 업적을 계승하되 굴곡의 그림자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10조 상속세·경영권 방어 ‘첩첩산중’

    10조 상속세·경영권 방어 ‘첩첩산중’

    이건희 주식 18조… 당장 현금화 쉽지 않아연부연납제도 이용 5년간 나눠 낼 수도與추진 ‘삼성생명법’ 통과 땐 지분율 하락오늘 ‘국정농단’ 재판… 사법리스크 부담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상속 문제와 지배구조 개편에 이목이 집중된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식 부자 1위인 이 회장의 삼성그룹 주식은 시가로 18조원이며, 이를 물려받기 위한 상속세만 10조원이 넘는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보통주 4.18%, 삼성전자 우선주 0.08%, 삼성생명 20.76%, 삼성물산 2.88%, 삼성SDS 0.01%, 삼성라이온즈 2.50%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현행법상 최고 실제 상속세율은 65%로 상속세만 10조 6000억원에 달한다. 삼성 오너 일가 재산 상당 부분이 주식으로 묶여 있어 10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당장 현금으로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상속세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이자 1.8%를 적용해 1차로 전체의 ‘6분의1’ 금액을 낸 뒤 나머지 ’6분의5’를 5년간 지불하는 방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고 구본무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원을 이 같은 방식으로 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오너 일가가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5년이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연간 납부할 상속세가 1조 6000억원대에 달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배당 및 배당 확대도 거론되고 있다. 상속 후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오너 일가의 연간 배당 수익은 7000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주식담보대출, 삼성SDS 지분 일부 매각 등의 방안도 가능하다는 추측이다. 이 회장 별세에 따라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도 다시 격랑에 휩싸이게 됐다.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삼성물산이 있다. 삼성 오너 일가는 이 부회장이 지닌 삼성물산 주식 17.48%에다가 그 외 가족들이 보유한 14.12%를 합쳐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쥐고 있다. 이를 통해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율은 0.70%와 0.06%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삼성생명이 그룹 핵심기업인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 단일 주주라는 데 있다. 여당은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을 강제로 낮추려 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구조가 위협받는다. 삼성전자 ‘사법리스크’ 문제도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데에 큰 부담이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 의혹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이 부도덕한 경영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으며 승계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채 재판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보유 주식만으로는 삼성전자를 지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태까지 보여준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한편 26일 예정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은 이 부회장 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상주 역할을 하느라 출석이 어려워지면 재판이 연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재판부는 강행하기로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회장된 3남 두 형 제치고 46세에 삼성그룹 회장 취임 승부사적 결단·혁신으로 韓경제 신화 써 1966년. 이 회장의 둘째 형인 창희씨가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맏형인 맹희씨도 밀수에 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청와대 투서 사건 등 혼란이 이어진 가운데 호암은 1971년 막내아들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다.” 호암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다.어린 시절 환경이 자주 바뀌며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했던 고인은 마니아적 성격으로 집중력이 강했는데 이런 기질로 자라난 집념은 세계 1위 삼성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미와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대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이에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죄다 뜯어 보며 차를 6대나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취임과 함께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을 내놨고 그 약속을 지켰다. 흑백 TV가 삼성의 주력이던 1974년 호암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하도록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한 것도 그다. 당초 동물적인 사업감각의 소유자였던 호암도 아들이 반도체 얘기를 꺼내면 “이놈아, 그 돈이면 TV를 몇백만 대나 더 만들 수 있는데 그 쪼그만 것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면서 첨단 하이테크 산업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호암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뒤에도 ‘2등 구제불능론’(2등은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조금이라도 지면 완전히 진 것이다) 등 늘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초격차’를 위한 고삐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체질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마하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이기도 했다.어두운 유산 정관계 로비로 퇴진, 위기론 들고 복귀불법 승계 의혹, 삼성의 리스크로 남아 성공만큼 시련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 가며 재임 기간 세 차례나 법정에 섰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등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듬해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어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정관계 불법 로비,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조 설립 불허 등 그의 체제에서 이뤄진 삼성의 각종 문제들은 지금도 삼성과 재벌에 대한 불신을 만든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건희 1942~2020…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지금도 위기다

    이건희 1942~2020…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지금도 위기다

    ‘글로벌 삼성’을 빚어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세상을 떠났다.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자택에서 쓰러진 지 6년 5개월 만이다. 이로써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33년간 지치지 않고 혁신을 위해 경주해 왔던 ‘이건희의 삼성’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부인 홍라희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은 전날(24일) 이 회장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 이날 새벽 4시쯤 고인의 임종을 함께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병상이 있던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실에 꾸려졌다. 장례는 이날부터 총 4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치며 발인은 28일이다. 외부 조문은 최소화하기로 했으나 생전과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재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아 ‘경제 거목’의 마지막길에 예의를 표했다. 고인은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을 일으켜 근처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됐으며, 다음날인 11일 새벽 막힌 심혈관을 넓혀 주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뇌와 장기의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체온 치료를 받고 진정 치료를 계속하다 심폐 기능이 정상을 되찾으면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입원한 지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심장 기능을 포함한 신체 기능은 정상을 회복해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하루 15∼19시간 깨어 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아 왔으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1942년 1월 9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박두을씨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의 인생은 도전의 역사였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은 장남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었으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등으로 아버지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을 인수해 오늘의 ‘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 삼성을 일구는 기폭제로 삼았다. 1987년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를 지켜 냈다. 이미 삼성이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올라섰을 때에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삼성도 어찌 될지 모른다”(2010년 경영복귀 일성), “1등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2013년 신경영 20주년 기념사)며 스스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성별·학력·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를 실력 위주의 인재 등용주의로 바꿔 실시하고, 협력사와의 상생에 앞장선 것 또한 ‘글로벌 삼성’을 일군 자양분이 됐다. 1995년 대졸 공채 대신 3급 신입사원 입사 시험을 도입해 실력만 되면 대학 졸업장은 의미가 없도록 했다.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전거 바퀴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빼 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한 그는 1992년 국내 기업 최초로 대졸 여성 전문직 공채를 실시했고 사내 어린이집도 국내 기업 최초로 마련했다. 1988년에는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하고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 중 352개를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10조원이 채 안 됐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 386조원으로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커졌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정경유착, 노조 불인정 등 어두운 면모도 있지만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TV 판매, 스마트폰 출하량, 메모리 반도체 등에서 글로벌 정상의 기업으로 일궈 내며 ‘글로벌 삼성’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건희 회장 빈소 찾은 노영민·이재명...이어지는 정재계 조문 발길(종합)

    이건희 회장 빈소 찾은 노영민·이재명...이어지는 정재계 조문 발길(종합)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빈소에는 정계와 재계 관계자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임종일 지킨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빈소가 차려지기 전인 이날 오후 4시 57분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두 자녀와 함께 왔다. 이 부회장과 두 자녀는 모두 흰색 마스크를 쓰고 검정 정장을 입었으며, 이 부회장은 굳은 표정을 한 채 아무 말 없이 취재진 앞을 지났다. 이들은 장례식장 로비에서 전자출입명부를 작성하고 빈소가 차려질 예정인 장례식장 지하로 향했다. 이어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이서현 등 고인의 자녀들도 도착해 빈소를 지켰다.오후 7시 25분쯤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장례식장에 도착해 약 10분 뒤인 오후 7시 35분쯤 떠났다. 노 실장은 “한국 재계의 상징이신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위로 메시지를 유족들에게 전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노 실장과 이 수석을 맞이하고 배웅했다.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오후 9시 46분쯤 빈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이 지사는 “조문 말씀을 드리려고 왔다. (이건희 회장은) 어쨌든 한 시대의 별이신데, 명복을 빕니다”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현대가(家)에서도 장례식장을 방문해 조문했다.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빈소를 방문해 이 회장에 대해 “큰 거목이셨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도 함께 방문해 애도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현 CJ 회장도 가족과 함께 조문했다. 이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면서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 장례식장에는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가 도착했다. 이건희 회장의 입관식은 26일 오전 9시부터 오전 10시 사이 진행될 예정이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이건희 회장 빈소 조문하는 이재명 지사

    [포토] 이건희 회장 빈소 조문하는 이재명 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10.25 연합뉴스
  • “소문난 미술 애호가”...리움 건립·백남준 후원한 회장

    “소문난 미술 애호가”...리움 건립·백남준 후원한 회장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고미술 애호가이자 든든한 미술계 후원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영향으로 미술에 관심을 가진 고인은 다양한 미술품을 수집하고 미술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문화재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고인은 국보 제216호 ‘인왕제색도’, 국보 제217호 ‘금강전도’,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반가상’ 등 국보 20여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으로는 국내에서 국보를 가장 많이 보유했다. 삼성문화재단도 국보 133호 ‘고려청자동화연화문표주박모양주전자’와 보물557호 ‘신라시대 금귀걸이’ 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미술관 리움 건립으로 미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1965년 삼성문화재단 설립 이후 수집한 문화유산을 용인 호암미술관 등을 통해 선보였다. 이 회장은 이어 2004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리움을 개관했다. ‘이(Lee)’와 미술관(Museum)의 ‘움(um)’을 조합해 지은 이름이다. 세계적 건축가인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가 설계를 맡아 화제가 된 리움은 수준 높은 소장품과 전시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리움은 문화재뿐만 아니라 국내외 거장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고인의 부인 홍라희 전 관장이 이끈 리움은 대형 전시 개최와 작가 지원으로 한국 미술계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미술 작가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 회장과 깊은 인연이 있는 대표적인 예술가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다. 1987년 이 회장은 백남준과 처음 만났으며, 이후 삼성전자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공식 후원했다. 이후 일본 소니 제품을 사용했던 백남준은 삼성전자의 TV모니터로 작품을 제작하게 됐다. 국내 작가인 이우환도 삼성이 해외 전시 등을 후원했다. 이우환은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등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文 대통령 “이건희 회장, 한국 재계 상징...깊이 애도” (종합)

    文 대통령 “이건희 회장, 한국 재계 상징...깊이 애도” (종합)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한국 재계의 상징이신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을 보내 유족에게 이 같은 내용의 위로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고(故)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시켰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키워냈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분이 보여준 리더십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위기 극복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에 큰 귀감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 이건희 회장 조문 메시지 전문. 한국 재계의 상징이신 故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故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키워냈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그분이 보여준 리더십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위기극복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큰 귀감과 용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속보] 文 대통령 “이건희 회장 별세 애도...기업들에 큰 귀감”

    [속보] 文 대통령 “이건희 회장 별세 애도...기업들에 큰 귀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에게 “한국 재계의 상징인 고 이건희 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하며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유가족에게 이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고 이건희 회장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으로 반도체 산업을 한국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시켰다”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등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키워냈고,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분이 보여준 리더십은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위기 극복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큰 귀감과 용기가 되어줄 것”이라며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 회장의 빈소에 조화를 보냈고, 노 실장과 이호승 경제수석을 보내 조문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속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건희 회장 빈소 조문

    [속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건희 회장 빈소 조문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5일 오후 7시 25분쯤 이건희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날 노영민 실장은 이호승 경제수석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앞서 청와대는 이건희 회장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와 메시지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고 이건희 회장 빈소에 조화를 보낼 예정”이라며 “이건희 회장의 별세에 대한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유족들에게 직접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포토] 이건희 회장 빈소 찾은 노영민 靑 비서실장

    [포토] 이건희 회장 빈소 찾은 노영민 靑 비서실장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과 이호승 경제수석(오른쪽) 등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2020.10.25 연합뉴스
  • 이건희 회장 별세, 권영진 시장 애도의 글

    이건희 회장 별세, 권영진 시장 애도의 글

    “대구는 이건희 회장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애도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권 시장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에서 “고 이 회장이 대구에서 태어난 선친 고 이병철 회장의 위업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을 세계 1위의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작은 국수공장에서 시작해 세계 초 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과 고 이건희 회장, 선친인 고 이병철회장에 대해 대구는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시장은 “삼성이 지금은 대구가 품기에는 너무 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삼성의 뿌리는 대구이고 삼성과 고 이병철, 이건희 회장은 대구의 자랑스런 역사속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끝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유가족께 대구시민의 마음을 모아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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