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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물삼기로만 끝나선 안된다/문용인 서울대 교수(시론)

    전임의 두 대통령을 구치소에 가두어 놓고 사람들은 두갈래 시각에서 설왕설래들 하고 있다.하나는 역사의 정리라는 명분에 집착하면서 두사람의 잘못을 엄정하게 가려서 역사의 교훈이 되게끔 해야한다는 시각이다.다른 하나는 두사람의 구금을 정계개편의 한 구도로 파악하면서 여권에서 사용할 다음번의 수가 무엇이 될까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시각이다. 역사의 정리라는 시각에서 보면 두 전임 대통령의 부정과 비리는 후대의 정치기강을 위해서 바로 잡혀져야 한다.잘못 꿰인 윗단추를 풀어서 바로 끼우지 않고서는 아랫 단추가 제대로 꿰일 수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그들의 비리와 부정이 역사의 심판을 비껴간다면 그런 비리와 부정은 또다시 반복되어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정략적 해석의 시각에서 보면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정치권의 기본 패러다임을 통째로 흔들어 뒤바꾸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자연스럽게 수반할 것인바,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여권의 핵심이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않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시각은 상호 양립불가능한 해석은 아니다.즉 두가지 해석이 동시에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느 한 시각의 입장에 서서 다른 시각을 폄하시키려는 태도를 자주 보인다.역사 정리와 정계개편을 독립적 현상으로 보고,하나에 신경쓰다 보면 다른 하나는 소홀하게 취급되리라고 보는 것같다.과연 그럴까? 역사의 정리가 충실히 이루어지면 정계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지며,정계개편을 각오하지 않으면 역사의 정리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따라서 역사의 정리와 정계개편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역사의 정리가 되어야 진정한 정계개편이 가능하고,정계개편을 각오해야 역사의 정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전직 대통령의 구금사건을 놓고 역사의 정리쪽으로만,또는 정계개편의 쪽으로만 그 해석을 국한시켜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두가지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첫째 이유는 둘중 어느 한쪽의 해석이 우세한 것으로 비춰지면 정치권은 고통스럽고 힘들게 두가지 모두를 성취하려 애쓰길 멈추고,여론이 원하는 수준만큼까지만 해결해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번 기회에 정치인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은 역사의 정리와 정계개편이 동시에 제대로 잘 이루어지길 강력히 원하고 있음을 부각시켜야 한다. 두번째 이유는 첫째 이유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인데,두 전직 대통령의 구금을 역사의 정리와 정계개편의 논리로만 해석하려는 심리속에는 다분히 내탓을 하지 않고 두사람의 탓으로만 돌려버리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이른바 제물삼기(Scapegoating)의 대표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부정과 부패의 행태는 나를 포함한 한국적 삶의 한 모습이 불거져 나온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즉 우리는 알게 모르게 특혜의 제공과 뇌물받기의 관행속에 빠져 버렸고,그런 관행이 대통령 수준에서 뿐아니라 크고 작은 모든 거래에서 일상화 되어온 것이 아닌가? 돈 있고,기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과잉기대는 우리 의식속에 깊이 박혀있다.연말연시에 늘상 하는 불우이웃돕기에서 조차 우리는 내 몫의 할 일 보다는 기업하고 돈있는 사람의 몫을 언제나 더 크게 잡고 과잉기대를 한다.동창회·동문회를 하면서 조차도 돈 있고 기업하는 동문에 대한 과잉기대를 전제로 계획을 꾸민다.돈 있는 사람은 언제나 「봉」이었다.어디 두 전직 대통령들만 그런 생각을 했겠는가? 우리들 의식속에 그런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두 전직 대통령까지 구치소에 구금시켜놓은 기회에 우리는 세가지 일을 해야 한다.역사의 정리가 그 첫째이고,둘째는 정치계가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되게끔 하는 것이며,셋째는 나 자신을 포함한 국민들 의식속에 관행화 되어 있는 부자와 기업인에 대한 과잉기대,그리고 특혜를 기대해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자 하는 뿌리깊은 관행을 뿌리뽑는 것이다. 이 세번째 일의 성취가 곧 5,6공의 비극 덕분에 우리 역사가 얻는 최대의 수확이 될 것이다.
  • 이런일이 두번 다시 없게끔…/문용인 서울대교수·교육심리학(시론)

    엄청난 일이 계속 벌어졌다.성수대교 사건이 그 첫째였고,연이어 터진 서울의 아현동과 대구의 지하철 가스폭발 사건이 두번째였고,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세번째였다.그 네번째 사건에 지금 우리가 휘말려 있다.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비리사건이 그것이다. 역사를 보면,희한하고 엄청나며 통탄할 사건이 언제나 줄을 이어 나타난다.그러나 이렇게 연이어 나타나는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대처하고 예방하는 방식은 시대마다,국가마다 민족마다 다른 것같다.그렇게 다른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보려면 그나라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나 유명한 역사적 기념물을 살펴보면 된다.중국과 일본의 박물관을 가보면 그들이 역사의 어느 한장면에 있었던 불의한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고 있으며 자손들에게 교훈으로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잘 알수있다.그런점은 미국과 유럽엘가도 마찬가지다.미국의 남북전쟁에 관한 역사 교과서를 보면,승리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북사이를 오가며 배신과 밀고를 일삼던 불의한 자들의 이야기가 무수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기록되 었고 그것이 학교에서 어린학생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다.프랑스의 경우에도 백여년전에 있었던 드레푸스 사건이 교과서마다 다루어져 후세에게 경종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이 미진해 보인다.한번 일어난 사건이 잘 마무리 되어서 두번 다시 그런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 부족해보인다. 성수대교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사고에 대해서만해도 그렇다.그것에 대한 기록이 그 당시의 신문지상에서만 요란했지 지금 어느 책방,어느 도서관,어느 박물관엘 가 보아도 그것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교훈삼기에 소용이 되는 기록은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그런 사건을 에워싸고 수많은 공문서가 관계기관 사이에 오고 갔을 것이다.그런 기록은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그냥 쓰레기 더미속에 묻혀 사라지게 되고야 말 것이다.그런 사건 때문에 수많은 감동적 이야기가,비극적 이야기가 가족들 사이에서 이웃사이에서,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오고갔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런 것들이 그들의 기억속에 아스라이 간직되어 있을뿐이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 경계가 될 만큼 활자화 되었거나 기록되어 있지 못하다.올해가 지나면 아마 그것도 망각되어 갈 것이다. 하긴 그 엄청난 비극이었던 6·25전쟁에 관한 것 조차 딱히 찾아볼 이름난 화보집이나 기록집이 없다.책 한권 펴들면 6·25에 관한 모든 것이 드러나는 책이 왜 없는가? 6·25를 교훈삼아 후세들에게 가르치자면 자신의 체험이외에는 전해줄 방도가 별로 없다. 한국전쟁 기념공원이 워싱턴 DC에 세워졌다.우리나라는 한국의 위상 운운하며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미국인들에게 있어서는 한국전쟁을 하나의 교훈으로써 그곳을 찾는 미국인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다.그곳에는 글로된 메시지가 딱 한가지 있다.미국인들이 이 전쟁에서 몇명이 죽고 몇명이 부상당했다는 것이 그 전부다. 얼마전 미국의 오클라호마시에서 연방정부의 건물이 폭파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그 사건 후 불과 3개월이 채 되지 않아서 3백페이지 짜리 화보집겸 기록서적이 출판되어 나왔다.그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전모가 소상히 기록되어있고 그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비극적으로 그러나 주변 이웃과 정부의 지원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지가 감동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그 책이 초·중·고등 학교에서,그리고 수많은 도서관에서 국민들 사이에 읽혀지고 있다.그 책이 독자인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는 두가지다.하나는 그런 비극이 두번 다시 없도록 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소상히 밝히고 기록에 남겨서 후세가 이에 경계하고 대비하도록 교훈이 되게 해야만 한다.성수대교,삼풍사고,가스폭발사고,비자금사건에 관한 백서를 만들어 자라나는 세대에게 살아있는 교훈서가 되게 할 필요가 있다.
  • “정자법 등 제도개선 시급”/민자 당무회의 비자금파문 토론

    ◎성급히 국면전환땐 난제해결 어려워/평상으로 돌아가 일하는 자세도 필요 8일 민자당 당무회의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1시간 남짓 걸린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검찰의 수사에만 맡기고 정치권이 뒷짐을 지고 있다가는 화를 자초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나아가 새 정치풍토 정착의 계기로 삼기 위해 정치자금법 등 정치제도 전반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먼저 이해구 의원은 정치권이 평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비자금문제를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단순히 민생문제,조직강화를 통해 성급히 국면을 전환하려다가는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의원은 이번 파문을 놓고 개인의 비리로 보거나 인습과 제도의 측면에서 우리 정치·사회의 병폐로 보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고 전제를 달았다.개인비리 측면에서는 위법이라는 차원에서 검찰과 당국의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했다.하지만 인습과 병폐의 차원이라면 대대적인 개혁과 함께 메스가 가해지는 당의의지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재희 당무위원은 『이의원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개혁,제도개혁을 해나가기 위해 오늘 회의의 의제로 삼아 다 함께 논의하자』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윤환 대표위원은 『너무 비자금에 매달려서 당이 아무 것도 안하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된다』면서 『평상심으로 돌아가자』고 주문했다.이어 이같은 당의 방침이 자칫 비자금파문의 회피로 비쳐지고 있는 데 대해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자는 뜻에서 민생개혁,예산문제 등을 거론했다』고 설명했다. 김대표는 또 비자금파문에 대한 당의 기본자세를 밝혀야 한다는 양의원 등의 지적에 대해 『그동안 반복해서 밝혀왔다』면서 의법처리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제도 전반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정시채 의원과 정순덕 의원은 지역할거주의 타파를 위해 현행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주장했으며 이민섭의원은 정당에 대한 국조보조금 축소 및 자원봉사자제도의 폐지방침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 영화속 사랑읽기/조관희 지음(화제의 책)

    ◎스크린에 담긴 「잠재적 인간본능」 캐내 30년 넘는 세월을 연예기자로 일관했고,한국 영화평론가 협회장·대종상 심사위원등을 지낸 영화평론가의 영화 에세이집.최근 5년새 국내에 소개된 주요 영화들을 특히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설했다. 지은이는 『인간은 저마다 진실된 사랑,영원한 사랑,최고의 사랑을 갈망하고 추구하며』『영화는 이러한 사랑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최상의 표현수단』이라고 강조한다.따라서 그는 영화에서 표현하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분석한다. 예컨대 국내에서 단지 노출이 심한 외설성 영화 정도로 치부한 스페인 영화 「하몽 하몽」의 경우 지은이는 「인간 본능을 꿰뚫는 진실」을 작품 구석구석에서 찾아낸다. 지은이는 물론 등장인물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전개되는 애정행각이 동양적인 윤리관으로 보면 패륜적인 외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그러나 이들의 파행적인 행위가 인간의 잠재적인 속성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끄집어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제삼기획 7천원.
  • 「특혜­괴자금 유입설」 관련사 “곤혹”/중견기업으로 불똥 튈까

    ◎“1∼2곳 희생양” 소문에 위기의식 고조 비자금 파문이 일파만파로 끝모르게 번지면서 6공들어 급성장한 중견기업들이 각종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특혜설부터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확인되고 있는 괴자금유입설까지 다양한 형태로 일부 호사가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보험금」성 정치자금보다 사안별 뇌물성 짙은 헌금에 초점이 모아지며서 중견기업들에 검찰의 소환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비자금과 관련,모든 기업들을 전부 조사할 수 없다는 현실론과 덩치 큰 대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보다 중견기업 1∼2개를 정리,파급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면서 이들 중견기업들의 위기의식은 더욱 고조되는 실정이다. 재계에 퍼지고 있는 중견기업들의 비자금연관설은 크게 두가지다.『거액의 헌금없이 어떻게 그렇게 클 수 있느냐』는 특혜설과 『무슨 돈으로 그 많은 기업들을 인수했을까』하는 괴자금관련설이다. 전자의 경우 대구지방을 본거지로 6공시기에 전국적인 건설업체로 성장한 우방과 청구가 일단 호사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청구의 경우 대구중심의 지방업체에 불과했지만 6공시기와 맞물려 급성장한 것이 구설수에 오른 주이유다.87∼93년 이 기업은 도급순위 72위에서 25위로 뛰어오르는 급성장에다 90년대초 6공의 핵심사업인 신도시아파트가 성장의 계기였다는 점이 의혹을 사고 있다.우방도 같은 시기에 1백15위에서 38위로 뛰어올라 청구와 마찬가지로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우방의 관계자는 『우리가 관급사업을 따낸 것은 2건 밖에 없다』며 『우리가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한중석을 시작으로 라이프 유통,포스코켐 등 2년 새 5개 기업을 인수하면서 재계의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K그룹도 주요 구설수대상.호남이 연고지인 이 그룹은 6공 특혜설과 함께 인수자금의 조달의혹에 시달리고 있다.S제지도 지난해이후 한국강관과 도산산업,신아,모나리자 등을 잇따라 인수한 것이 화근이 돼 구설수 대상에 올랐다. 사채업자들에 따르면 93년10월,실명제실시이후 자금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괴자금」이 30대그룹을 대상으로 사용처를 물색하다 94년 초부터 중견기업들로 대상을 확대했다는 것이다.연리 6%에 5∼10년거치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이 이들 중견기업들을 유혹했을 것이라는 소문이다.이런 소문은 이들 중견기업들이 본격적인 인수시기와도 묘하게 맞물리면서 「…카더라」통신을 타고 급속히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K그룹의 관계자는 『인수자금은 건설중인 동대문 도매센터의 분양대금 1천3백억원과 3백억원의 회사채발행 등 정상적인 자금으로 충당했다는 사실이 이미 여러차례 세무조사에서도 확인됐다』고 주장하면서 항간의 의혹이 낭설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S기업측은 『인수업체는 대부분 경영부실회사로 부채를 떠안는 조건이었던 만큼 실제 기업인수에 들어간 돈은 모두 수십억원에 불과하다』는 해명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N그룹과 백화점업계에서 선두를 바짝 뒤쫓고있는 N백화점,컴퓨터업계에 돌풍을 몰고 온 S컴퓨터사 등도 구설수에 오르긴 마찬가지.내실있는 경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표창을주지 못할망정 장사를 잘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반응이다.하루빨리 비자금의 전모가 밝혀져 자신들의 무혐의를 입증받고 싶다는 이들 기업들의 소망이 이뤄질지 두고 볼일이다.
  • 불어나는 비자금… 정가 반향

    ◎“스스로 의혹 풀라” 목소리 높여­정치권/연희동 「버티기」에 강한 불쾌감 표출­여/즉각 소환·축재재산 전액몰수 촉구­야 여야는 26일 6공의 비자금 5백5억원이 신한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결의문 등을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를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이와 함께 검찰의 수사와 관계 없이 노전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및 비자금 전모에 대한 진상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자당◁ ○…이날 당무회의는 비자금 파문에 따른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초반에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으나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 위해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에 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들이 쏟아졌다. 참석자들은 특히 약 1시간가량 진행된 비공개 토론 도중 동아투금에서 비자금 2백86억원이 추가로 드러났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노전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민자당 당직자들은 무엇보다 노전대통령측이 입장표명을 늦추고 정치흥정을 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몹시 불쾌하게여기고 있다. 특히 이날 비자금이 추가로 확인된 상황에서도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이 정치헌금이 아니라 차세대 전투기종 변경등 뇌물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국민여론이 낙향 정도로 용인하겠느냐』고 특단의 사법조치 가능성도 암시했다. 강총장은 『노전대통령이 5공청산 과정을 염두에 두고 흥정을 꾀할지 모르나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며』고 전제,『한번 죽을 각오를 해야할 것』이라고 노전대통령이 자진해서 비자금 전모를 공개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여권은 그러나 연희동측이 정부 여당이 바라는대로 조기에 자진해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회의◁ ○…「선진상규명 후사법처리」를 주장하고 있다.지금은 비자금 전모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사법처리는 수사를 통해 엄정히 이뤄지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사후처리를 논하는 것은 비자금의 전말을 축소·은폐하려는 것이며 김종인 전청와대경제수석의 출국도「도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현정권과 노전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충은 있을 수 없으며 노전대통령의 즉각적인 소환조사와 관련 인사들의 출국금지조치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아울러 축재재산은 전액 몰수하고 노전대통령 스스로는 비자금 전모를 밝히고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추가로 확인된 5백5억원의 비자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노전대통령의 구속수사와 국정조사권 발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규택 대변인은 『비자금은 천문학적으로 늘고 국민들의 분노는 인내의 한계에 달했다』면서 『노전대통령은 적당히 얼버무릴 생각을 버리고 비자금 전모를 스스로 공개,국민과 법의 심판을 기다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철 총무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뿐 아니라 5·6공비리 전반과 부패한 정치권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민련◁ ○…정치적 절충은 절대로 있어서 안된다는 입장이다.또 여당은 지난 대선때의 선거자금을 공개,노전대통령 비자금의 선거자금 유입설을 한점 의혹없이 풀어야 한다며 대선자금쪽으로 공세의 방향을 틀었다. 이와 함께 비자금 파문이 정계개편등 여권의 다목적 카드로 이용될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며 『「그랜드 플랜설」,「마스터 플랜설」등의 깜짝쇼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보 정 회장 주식 증여/장남 제외 세 아들에 나눠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지난달 25일 자신이 보유중인 한보철강 주식 3백23만3천주(18.68%)와 상아제약 주식 27만5천주(17.23%)를 셋째 아들 보근씨(32·한보그룹 부회장) 등 아들 3형제에게 재증여했다고 2일 증권거래소에 신고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9일 큰 아들 종근씨(41) 등 네 아들에게 한보철강 1백95만4천주(12.07%),상아제약 27만5천주(17.23%)를 각각 증여했다가 지난 6월7일 증여를 취소했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큰 아들에게 한보철강 39만주,상아제약 5만5천주를 증여했었으나 이번 재증여에서 큰 아들에게는 한 주도 주지 않았다.반면 셋째 아들 보근씨에게 한보철강 1백91만주(시가 1백98억6천만원)와 상아제약 1만5천주(2억8천만원),넷째 한근씨(30·한보그룹 비서실장겸 한보사장)에게는 한보철강 1백32만주(1백37억3천만원)와 상아제약 1만2천주(2억2천만원)를 각각 재증여했다.또 둘째 원근씨(33·한보철강 부회장)에게는 상아제약 주식 24만7천주(45억7천만원)를 재증여했다. 철강업계에서는 이와 관련,정 회장이 한보철강 대표이사 부회장이며 그룹 경영에 실권을 쥐고 있는 3남 보근씨를 후계로 삼기 위한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 중,대만 전담기구 확대/이붕·교석 등 고위인사 추가

    ◎홍콩연합보 보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중앙은 당내 대만관계 최고위기구인 「중앙대 대만영도소조(조장 강택민)」를 대폭 확대 개편해 날로 복잡해지고있는 대만문제를 전면적으로 처리키로 결정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25일 북경발로 크게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이붕총리,전인대(의회)에서 교석상무 위원장(국회의장),인민정치 협상회의에서 이서환 주석,인민해방군에서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유화청·장진 등 모두 5명이 새로 이 소조에 포함됐다. 당중앙의 이같은 결정은 대만문제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당은 대만문제를 최중대사로 삼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지금까지 대만영도소조는 강택민 당총서기,전기침 외교부장,왕도함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왕조국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겸 국무원대만사무판공실 주임,고춘왕 국가안전부장,웅광해 해방군 총참모부 부장조리(조이)등 6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거물급들을 대거 포함한 확대개편으로 11명이 된 새 영도소조에서는 해방군 대표가 중앙군사위 주석 강택민까지 합쳐4명으로 가장 많다.
  • 달라진 혼인풍속(압록강 2천리:6)

    ◎사라진 전안례… 기러기 대신 통닭이…/신부는 치마·저고리에 서양식 너울 쓰고/교배례 생략 중국식 본떠 깍지걸이 건배/혼수감으로 가전제품은 필수… 사회문제로 장백조선족자치현 용강향 이도강촌에 머무르는 동안에 재수가 좋아서 결혼식을 만났다.신랑은 조선족기숙제소학교 이헌(46)교장의 아들 남일(24)군이고 신부는 이성숙(23)양이었는데,둘 다 소학교 교원이었다.말하자면 부부교원이 될 이들의 결혼식은 상오11시쯤 신랑과 신부가 승용차를 타고 신접살림을 차릴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후덕한 인심은 그대로 이들의 신접살림집은 그냥 빌린 것이다.이도강촌에서는 셋집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돈을 내놓지 않고 살 집이니까 「빌려든 집」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른다.신랑 신부에게 집을 내준 집주인의 이야기 속에는 이도강촌 고산지대 마을의 후덕한 인심이 그대로 배어났다.도시생활이랍시고 연길에서 살아온 나 자신이 후덕한 인심 앞에 사뭇 왜소해질 뿐이었다. 『돈을 어찌 받겠습니께.아들 장가가면 들일라고 지은 집이라 지금은 어짜피 비울 집인데….사람 들어서 집 보아주면 좋지비.너 좋고 나 좋고인데 돈을 받는다는 게 말이나 되우.신랑 신부,이 집에서 돈 많이 모아 나가면 되지비.나 아무 생각 없수다』 이러한 인심 한 복판에서 베풀어지는 혼례인지라 산골마을이 온통 박신댔다.차에서 내린 신랑 신부가 쌍 희자를 거꾸로 오려 붙인 대문께로 다가서자 폭죽소리가 갑자기 진동했다.기다란 장대끝에 매달린 폭죽이 연신 터졌다.매캐한 화약연기가 사방을 덮고 폭죽 부스러기가 능지처참을 당한 꼴로 땅바닥에 너부러져 나뒹굴었다.폭죽소리에 액귀가 놀라 도망가는 대신 행복이 쌍을 지어 들어오라는 중국식 혼례풍습이 어느 사이 조선족사회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옛날엔 색시가 첫날 신에 흙을 묻히면 안된다고 해서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이나 짚을 밟고 지나갔다.그런데 지금은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아들고 들어갔다.첫날 대낮부터 신랑품에 드는 행복을 만끽한다고나 할까.신랑은 양복을 입고 신부는 치마저고리차림을 했다.그러나 뒤집어쓴 너울에는 서양식 레이스가 달렸다.그리고 색동옷을 입은 동남동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꽃보라를 날리면서 신랑 신부를 인도해왔다.동서양 혼합절충식의 혼례였다. 신부가 신랑집 대반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가 사뿐히 자리를 잡았다.신부의 너울 뒤로 한쌍의 원앙을 수놓은 벽보가 보였다.원앙은 중국 한족들이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는 새다.오늘날 조선족 젊은이들이 쌍기러기를 원앙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이 혼례집에서도 원앙새가 기러기자리를 빼앗아버렸다.그러니 전통혼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전안상은 물론 전안례도 생략되었다. 조선족 전통혼례식의 전안례는 고구려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러기는 사랑의 상징 신랑이 신부를 맞을 때 흰 색깔의 산 기러기 한 마리를 품에 안고 가서 전안례를 치른 뒤 날려보냈다.그러다 번거로운 산 기러기 대신 나무기러기(목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나무기러기마저 사라졌다.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전안례 발상지이자 고구려 강역이었던 압록강유역 조선족사회 혼례에서 나무기러기도 보이지 않고 있는 사실이….압록강유역에는 감동적으로 유전되는 전안례 전설이 있다.그 옛날 패수(압록강)벌에 살던 총각 길랑과 처녀 미월이 사랑을 맺었다.그들은 우연히 다리가 부러진 기러기를 구해다 키웠다.길랑이 과거를 보러가던 날 미월은 아리랑산까지 배웅하고 이별의 아리랑을 불렀다.길랑이 떠나고 해가 바뀐 어느 단옷날 그네 뛰는 미월의 미색에 반한 마을의 원 김호가 첩을 삼기 위해 납치했다. 미월이 말을 듣지 않자 옥에 가두었다.미월은 눈물어린 사연을 적은 쪽지를 자신이 보살피던 기러기 다리에 매달아 날려보냈다.길랑은 기러기편에 보낸 쪽지를 받았다.암행어사가 된 길랑은 귀로를 재촉하여 처형 직전의 미월을 구하고 김호를 처단해버렸다.「길림성 민간문학전집」 장백조선족 자치현편에 나오는 이 전설은 「아리랑」과 「춘향전」을 기묘하게 합성한 느낌을 준다.어떻든 기러기는 사랑과 믿음,화목과 정절을 의미하는 날짐승이라 할 수 있다. 전안례가 사라진 이도강촌 혼례상 위에는 부리에 고추를 문 삶은 통닭 한마리가 올라 있었다.웃음이 절로 났는데,삶은통닭은 소래기에 잔뜩 담아 놓은 팥속에 다리를 묻고 서 있는 포즈를 취했다.마을 총각 둘이서 상을 맞들어 움직여놓자 대반으로 앉은 아주머니가 포도주를 따라 상 위로 세번을 돌려 신부를 주었다.신부는 세 모금으로 꺾어 포도주를 마셨다.이어 신랑은 풍덩하게 생긴 주례격의 아주머니가 따라 준 술잔을 비웠다. ○바가지 엎어지면 아들 그리고 나서 주례격의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바가지에서 과자를 꺼내 한 입을 물고 바가지를 내동댕이쳤다.바가지가 엎어졌다.그것을 바라본 하객들이 좋아라 하면서 손뼉을 쳤다.바가지가 엎어졌기 때문에 아들을 본다는 것이었다.아들이건 딸이건 조선족이 또 한번 생명의 씨앗을 뿌릴 수 있게되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어느 틈에 신랑이 신부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신랑 신부는 오른 손에 술잔을 받아들었다.그리고 깍지걸이로 키스라도 하듯 얼굴을 맞대고 술을 마셨다.교배례를 대신한 모양이다.그럭저럭 혼례절차가 끝났다.대반을 맡은 아주머니가 신부집에 보낼 상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주머니는 우선 고추를 문닭목을 비틀어 빼고 나서 종이에 둘둘 말아 신부 치마폭에 싸주었다.신랑도 신부집에서 닭모가지를 얻어오는 것은 마찬가지다.혼속이 자꾸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전안례나 교배례 같은 전통의식이 사라진 대신 신부 혼수가 자꾸 늘어나 딸가진 부모들의 걱정도 크다. 이날부터 신혼살림을 차릴 방에는 신부가 해가지고 온 혼수가 그들먹했다.윗방에 놓인 옷장과 이불장에는 신부 친정에서 마련한 이불이며 옷가지가 가득한 것은 물론 텔레비전과 전축·전기밥솥이 한쪽에 따로 자리를 차지했다.그래서 늘그막 남정네들 사이에 『장가 한번 더 갈걸…』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 불 베르사유 궁전(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22)

    유럽에 첫 나들이를 가는 여행자들은 우선 파리에 대한 기대감에 젖게된다.그러나 파리에 첫 발을 딛게 되는 순간 「프랑스 혁명」의 대상이었던 화려한 왕궁문화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낮게 펼쳐진 소박하고 아담한 가로의 표정을 접하고는 왠지 실망감 마저 느끼게 된다. 파리는 「로망스」라는 그들의 노랫말처럼,『파리라는 말이 「로맨스」를 뜻하고,파리는 그어떤 사람의 것도 아니지만,갖기를 원하면 언제나 당신의 것이 될수 있는』 서정적 모습이다.물론 파리가 「도시화」나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이렇듯 본연의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파리의 건축법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이 난지 오래다.모든 공간은 문화재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집 안팎을 뜯어 고치는 행위는 그들에게 파리의 역사와 문화에 도전하는 무모함으로 받아 들여질 것이다.그러나 파리 여행코스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베르사유 궁전 관광」에 나서보면 파리에서 느낀 정서적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판의 무대,즉 사치의 극을달리는 귀족문화의 현장에 들어서게 된다. ○왕권의 상징적 건물로 베르사유 궁전은 1623년 루이13세의 계획으로 시작되어 2백년간에 걸쳐 증·개축 되었다.처음에는 파리 서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곳에 「사냥」을 위한 별궁의 형식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후 귀족계급이 몰락할 때까지 지속된 왕권의 상징적인 과업이었다. 관광버스가 루브르 박물관 옆의 발착장을 출발하면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에 대한 안내방송이 시작된다.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인 그들이 타도한 귀족문화의 상징을 세계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어색함에 대한 그들다운 변명의 방식이다.만약 자신들의 『우리의 선조는 이렇게 혹세무민을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하면 누워서 침뱉는 일이 될 것이고,『이렇게 훌륭한 건물을 짓고 잘 살았습니다』하면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 될 터이니 그들도 나름대로 요리조리 궁리를 했음에 틀림없다.안내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프랑스인들은 이들 귀족의 사치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이들 귀족은 베르사유궁전이라는 명작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줌으로써 막대한 관광수입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은 결국 당시의 국민 세금으로 후대를 위해 저축을 한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라는 절묘한 넋두리가 일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베르사유 궁전은 사냥용 별장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신축 당시에는 아주 평범한 작은 별장이었다.그러나 이후 확장을 거듭해서 지금은 전체 면적이 1백50만평에 이르고 있다.수렵광으로 알려진 루이13세는 6개 정도의 방이 있는 이 작은 궁전에 소동물원을 만들었다.이곳에서는 초기에 좀처럼 구경할 수 없었던 타조나 펠리컨등 진기한 조류가 사육되었는데,점차로 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낙타나 코끼리도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고 한다.절대권력과 파탄적 귀족문화 공간의 초기 모습이 「진기한 동물원」이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화려한 분위기에 매료 루이 14세에 이르러 베르사유는 당대 최대의 궁전이자 귀족들의 공동주택으로 변모한다.당시의 상황에서 귀족들은 매일 아침 자신의 집을 출발하여수십리 떨어진 베르사유의 제왕에게 충성을 서약한다는 것이 큰 고역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요즈음 말로 「눈도장」찍는 고달픈 일과를 겪고 있던 것이다.그들은 궁전의 규모를 키워가면서 객실수를 대폭 늘려잡아 자신들의 거처를 확보하는 묘책을 택했다.이때부터 베르사유는 「귀족 아파트」가 되었고 밤낮으로 연회가 열렸으며,이른바 「귀족의 반항」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시초까지 가장 사치스러운 축제공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베르사유는 지탄받아야 할 타락의 상징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궁전 건축에 동원된 당시의 건축술에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예술성과 정교함이 가득하다.목욕탕에는 18세기 당시에 이미 보일러를 이용해서 가동되는 독립된 급탕설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벽화 이외의 건축재료는 천연석을 정교하게 조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퇴색되지 않은 선명한 색상을 간직하고 있다.특히 대리석과 유리가 조화된 실내는 낮에는 자연채광을 구석까지 고루 반사시켜 주며,밤이되면 샹들리에 빛을 받아 보석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혁명후 베르사유는 무용지물이 되었다.그러나 결코 「폐허」로 변하지는 않았다.혁명가들은 부패한 절대권력의 상징인 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하는데에 동의했다.그들은 단지 일부의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를테면 백합꽃이나 왕관등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가구나 장식품은 경매에 부쳐졌다. 빈집이 된 궁전은 19세기에 들어서 루이 필립왕에 의해 프랑스역사박물관으로 변모되었다.그리고 이곳에 프랑스 건국에서 근대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수천점의 벽화와 조각으로 전시하였다.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칸막이 벽을 변경하고,전시품을 제작하는데만 4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로코코시대」전기 이뤄 베르사유를 떠난 귀족들은 각자 자기집으로 돌아갔다.이들은 베르사유의 화려함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그동안 방치했던 자신들의 집을 단장하기 시작했다.곳곳에서 주택의 설계와 증·개축,인테리어공사가 활발해졌다.베르사유 궁전의 장식적 분위기에 집착한 이러한 경향은 건축사적으로 「로코코」시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총독부 건물의 해체를 지켜보면서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물론 총독부 건물과 베르사유 궁전은 타락한 선조의 유산이 아니라 침략자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하지만 역시 우리 땅에서 우리의 피땀으로 시공된 우수한 건축물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우리 것을 찾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단순 해체로만 만족하지 말고 해체과정을 기술 발전의 계기로 삼기위한 지혜와 노력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아울러 우리의 궁전 건축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서 입장을 제한하는 방식의 「보호」그 자체 보다는 당시의 기술적·예술적 지혜를 현대에 널리 활용할 수 있는 발전적인 개방의 장으로 관리해나가기 위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 일,총독부청사 철거에 유감 표명/정부 “내정용훼 용납못해”

    ◎양국,비공식 채널통해 물밑공방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오는 8월15일 광복절 50주년을 맞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로 사용됐던 현 중앙박물관의 철거를 시작하려는 방침에 대해 『양국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비공식 우려의 뜻을 전달해온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전해온 우려는 『종전50년,한일국교정상화 30년을 맞아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건설해야하는 올해 한국정부가 국내의 일부 반대여론을 무릅쓰면서까지 굳이 8월15일에 건물을 해체를 시작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서 『한국정부의 이같은 방침이 한국내에서 반일감정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까 우려된다』는 내용이라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일본측은 「한국에 새정부가 들어서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려는 방침을 정할 때부터 양국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을 가져왔지만,한국 내부의 일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견해를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에대해 정부는 비공식 입장표명을 공식으로 문제 삼기는 어려운 점을 감안,역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일본측의 유감표명이 전혀 적절치 못하며 그 같은 견해표명은 한국민의 반일감정만 자극할뿐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지않는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과거 식민시지시대의 잔재를 제거하는 문제는 우리의 국내문제일뿐 타국이 간여할 사항이 못된다』고 지적하고 『더구나 식민통치의 가해자인 일본측이 이 문제와 관련,용훼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 「총독부 철거」와 일의 뻔뻔함/이도운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최근 일본의 언론이 큰 관심을 보이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이웃나라인 한국의 광복절 기념행사다.그중에서도 일제가 조선을 식민통치하던 시절 총독부로 사용했던 현 중앙박물관을 철거하는 「행사」에 대해 유독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일본 언론들은 구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관련기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고 특히 철거에 반대하는 한국야당이나 사회단체·일부언론의 주장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대해 우리 내부에도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건축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다』『철거에 돈이 많이 든다』『여론수렴이 충분치 못했다』『삼풍백화점 무너진지 얼마안되는데,또 철거라니…』라는 등의 반대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그처럼 근시안적이고,미시적인 차원에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론인 것 같다. 철거가 『단군이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표현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치더라고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함으로써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는 좌표로 삼자는 뜻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다. 일본측은 최근 우리내부에 약간의 의견이 엇갈리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철거가 양국민의 감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비공식으로 우리측에 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물론 우리의 국내문제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입장 표명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지만,일본 정부가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려할만한 일이다.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을 만들어보자고 양국정부가 아무리 외쳐도,우리국민이 일본을 멀게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의 만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죄도 회피하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에서 우리민족에 대한 탄압의 본산이었던 일본의 총독부 건물 철거에 그토록 아쉬움을 보이는 것 자체가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올해 광복 50주년,수교 30주년이라는 역사적 시점에서,왜 양국이 공동으로 아무런 기념행사조차 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지를 먼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오는 15일 분명히 조선총독부의 철거는 시작될 것이다.일본은 그날 과거의 망상이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며,진정으로 과거사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 EU등 11국 KEDO 지원금 왜 내나

    ◎정·경 영향력 넓힐 호기로 간주/“동북아 긴장완화 자국이익 부합” 판단 국제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상호주의」이다.한 국가가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에 선의를 베풀 때는 반드시 반대급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 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지원금을 출연한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KEDO의 원 회원국인 한·미·일 3국을 제외하고 KEDO에 자금지원을 약속했거나 이미 돈을 낸 국가 또는 국가군은 모두 11개국(국가군)이다.캐나다가 1백6만 달러,영국이 1백만 달러,뉴질랜드가 33만 달러,싱가포르가 30만 달러를 이미 지원했다.또 유럽연합이 2천1백만 달러,호주가 5백만 달러,이탈리아가 1백90만 달러,독일이 각각 1백만 달러,브루나이 50만 달러,말레이시아가 30만 달러,핀란드가 8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 국가들은 물론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본 원칙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그와는 별개로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있다. 우선 현재로선 가장 많은 지원을 약속한 EU의 경우는 정치·경제적으로 복합된 고려를 하고 있다.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는 세계적인 전략요충지이지만 EU의 영향권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이다.따라서 KEDO를 통해 이 지역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해보자 것이 EU의 의도이다.이와함께 경수로 건설사업에 EU 기업들의 참여도 겨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같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국가들은 최근 구가하고 있는 경제성장을 동북아에서의 긴장감 조성으로 방해받지 않고 싶어한다.ASEAN국가들은 한국과 일본을 안보와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삼기를 바라고 있다.동북아에 위기감이 조성되면,동남아도 진동을 느끼게 된다.때문에 ASEAN 차원에서의 지원도 검토되고 있다.특히 말레이시아는 ASEAN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바라며,그런 이유로 수도인 콸라룸푸르에서 미북 준고위급 회담을 유치하기도 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캐나다는 태평양 연안 국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고자하는 생각에서 북한핵문제에 관여하고 있다.이들 세나라에 핀란드를 합친 이른바 「미디엄」국가(경제적으로 선진국이지만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은 「군사적 패권」에 반대하기 때문에 군축이라는 차원에서도 KEDO 참여에 적극적이다. 쿠웨이트등 산유국과 브루나이등은 미국의 참여 「권고」를 받아들인 경우로 보인다.싱가포르도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돈을 냈지만 정치적으로 개입되기는 원치않아 회원으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회원국들이 KEDO에 낸 지원금은 모두 3천2백47만 달러다.대북 경수로 사업에 40억 달러가 넘게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적은 액수이다. 그러나 지원금을 내는 회원국의 참여는,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따라서 한·미·일 3국은 계속 회원국의 확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 국정운영 적극 협조/자민련 김총재

    【대구=서동철 기자】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는 21일 『앞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일삼기보다는 국정운영의 한 축을 책임진 정당으로서의 의무를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날 대구 파크호텔에서 열린 당원격려모임에서 『오는 9월 정기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는 김영삼 정부를 비판하지 않겠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 보훈가족 출신 「유일한 별」 유보선 준장

    ◎휴전선 무너지는 날 빨리 왔으면…/「6·25 산화」 부친 뜻 새삼기려/어머니 모시고 금강·백두산 구경 가는게 꿈 『6·25때 전사한 부친의 뜻을 잇기위해 군인이 됐지만 아직도 통일의 날은 알 길 없어 안타깝습니다』 40여만명에 이르는 6·25 보훈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장군⊃이 된 유보선 육군준장(육사24기·49). 유장군은 광복 50주년이자 6·25 발발 45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합동참모본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각별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남북통일의 선봉으로 탱크를 몰고 휴전선을 돌파할 날이 언제쯤일까』 『45년 반평생을 홀로 살아온 어머니(김봉희·71)의 「한」은 언제쯤이나 풀어드릴 수 있을까』 어느덧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둘 늘어난 유장군은 귀밑이 새파랗던 시절,육사에 지원할 당시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64년 육사에 지원한 것은 오로지 부친의 유지를 이어 남북통일에 몸을 바치기 위해서였기 때문. 부친 유상재씨는 48년 7기로 육사에 입교해 대위로 근무중 6·25를 맞아 전사했다.그러나 유해를 찾지 못해 유장군등 유가족들은 해마다 현충일에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위패에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있다. 사후 소령으로 추서된 유상재씨는 전쟁발발 5일전 육군헌병학교에 입교했다가 전쟁이 터지자 학교에서 나와 전선투입을 자원했었다.그는 50년 8월26일 얼굴과 목등 3군데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던중 미처 완쾌되기도 전에 다시 전쟁터로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같은해 12월18일 2사단중대장으로 전투를 치르다 다음해 1월초 가평전투에서 전사했다. 유장군은 그동안 부친에 대한 자료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지난해 비로소 부친의 실종처리서를 찾아내는데 성공,부친의 사망경위를 파악했다. 유장군은 『5살때 부친의 철모와 권총을 갖고 장난을 치다 넘어져 다친 기억이 있다』면서 『이런 기억 때문에 서울고를 졸업한뒤 곧바로 육사를 지원했고 군에서도 통일의 선봉장이 되기 위해 기갑병과를 택했다』고 말했다. 유장군이 당시 생도들에게 인기가 낮은 병과를 택한 것은 서독육사 재학중의 경험때문.우리나라는 65년 처음으로 육사생도 가운데 1∼2명을 뽑아 서독육사에서 수학시켰으며 이 때 유장군이 선발돼 서독육사 졸업 1호를 기록했다. 그는 68년 소위로 임관,소대장과 전차중대장·전차대대장·기갑여단장을 거쳤으며 91년7월 준장진급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꿈은 금강산·백두산 구경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에게는 결코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는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남북쌀회담 타결을 보고/이용필 서울대교수(기고)

    ◎“이념·체제 넘어선 진한 동포애 확인”/북은 이산가족 상봉등 전향적 자세 보여야 북한 쌀지원을 위한 남북한 당국자간의 회담이 다소의 진통끝에 타결된 것은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남북한의 합의 요지는 우리측이 1차로 쌀 15만t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가능한한 조속한 시일내에 인도한다는 것이다.특히 우리측에서 제공되는 쌀 포장에는 일체 표기를 하지 않기로 한것은 북한당국의 체면을 신중하게 배려한 결과라고 하겠다.그뿐만 아니라 7월 중순에 제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이번에 타결된 남북한 당국자간의 합의는 대체로 다음 몇가지 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첫째는 김일성 사후 남북한간의 냉각된 관계가 호전되면서 당국자간 대화가 성사되었다는 점이다.특히 지난해 3월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특사교환접촉이 결렬되었고 그후 김일성사후 남북한관계가 더 악화되었으나 다시 남북한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는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 농민들이 애써 농사지은 쌀을 제공함으로써 동포애를 느끼게 된 점이다.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분단 50년만에 실현된 것이다.세번째는 남북한이 분단 상황에서 대립과 반목을 일삼기보다 상호 대화하고 또한 협조해서 공존공영하는 것이 민족의 이익과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번 쌀회담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게 된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올해 식량부족분이 2백70만t이나 된다.그래서 북한 당국이 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 중국 태국 이집트,그리고 일본 등 10여개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을 볼 때,얼마나 식량난이 심각한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북한의 내부사정이 북한 당국자로 하여금 쌀협상을 시급히 타결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풀이된다.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동포들과 당국자의 처지를 고려해서 우리측이 상당한 양보자세를 취한 것은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큰 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당국은 우리측이 조건없이 쌀을 제공하기로 동의한 점을 성실한 자세에서 수용하고 나아가서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도 한 걸음 더 진취적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따라서 북한 당국도 그 성의의 표시로서 납북된 어선 제86우성호 선원들의 송환,이산가족 상봉 등 비정치적인 인적 및 물적 교류에 대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물론 우리는 북한당국이 이미 지난주 콸라룸푸르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 지원과 관련,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이해한다.그렇다고 해서 북한당국이 종전의 대남 정책을 쉽게 변화시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대체로 전체주의적 체제는 경직된 정치제도이므로 단시간내에 이념과 정책을 쉽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가 구조적 모순과 만성적 경제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대남정책의 전환,남북한간의 대화와 교류,다른 국가들에 대한 개방적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북한 당국이 낡은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고수하고 전근대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한다.오늘과 같은 세계화,정보화,그리고 지구화시대에 고립된 상태에서 주민들과 체제를 억압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세계사적 흐름과 민족자존의 논리에 비추어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우리는 남북한이 쌀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점에서 1991년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북한 당국이 개방적 정책전환을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분단된 남북의 민족이 과거의 반목과 불신 그리고 증오심과 적대의식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또한 평화정착을 통한 민족 공영과 공존의 원칙을 수용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 「교역 상담창구」 무협 구평회 회장에 듣는다(인터뷰)

    ◎남북 쌀회담 막전막후와 경협 전망/“김용순등 당실세가 배후 지휘”/평양시민 1백만 식량증산 동원/정무원쪽과 갈등… 전금철로 대표 교체/북,경협에 적극적 자세… 교역 확대 될것/임가공위주 소규모 대북투자 바람직/월드컵 공동개최엔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문제가 여러가지로 잘 풀려가는 듯합니다만. ▲남북간 쌀협상을 두고 북한 권력내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습니다.결국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매파가 비둘기파의 의견을 수락했고,나중에는 매파가 협상을 주도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를 매파로,누구를 비둘기파로 볼 수 있습니까. ▲북한의 당과 군이 매파죠.이에 비해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실제 살아가는 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무원쪽이 아무래도 비둘기파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기로는 당초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는 정무원 사람이었던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그것이 회담 직전에 전금철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남북간 쌀협상타결이 남북경협확대로 이어지리라 보십니까. ▲서명주체의 이름은 정무원 산하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 고문으로 결정됐지만 노동당과 군을 대표하는 권력핵심부에서 쌀회담을 적극 지원,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려하던 북한권력이 이번 쌀회담을 계기로 한국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 막후외교 치열 ­일본이 이번 쌀회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무역진흥공사가 이 일에 끼어든 것도 그렇고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쌀회담타결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입니다.남북한은 물론 일본·미국등도 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대표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이 김용순비서에게 「남한과의 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남북정부간 대화가 어려우면 준정부기관인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김용순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구회장은 이번의 쌀협상이 실질적인 남북간 정부차원에서 타결됐고 북한내 실세인 김용순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만큼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큰 길에 나선 상태』라고 전제,활발한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쌀회담을 북·일수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북한도 수교시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배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남북 쌀제공타결이 자칫 북·일 양국간의 수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길」 들어선것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북한이 최근 평양시민 1백만명을 지방으로 보냈습니다.부분적으로 폭동 등을 예방,김정일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식량증산에 투입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남한측으로부터 식량원조을 받은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질 경우 지도노선(주체사상)에 큰 흠집이 생기지만 이를 각오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제공집행기구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아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달부터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접촉창구로 삼기 전에 북경에 나와 있는 우리 대기업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면서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기업들도 쌀제공을 경색된 남북경협의 돌파구로 판단,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정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북한측이 와타나베의 의견을 수용,무공에 접근했습니다.이것이 우리정부에 긴급보고되면서 「민간기업을 통한 쌀제공」이 한단계 격상된 것 입니다.「정부차원의 쌀제공」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했다면 정부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쌀문제로 북한과 막후접촉을 벌인 모기업을 선정,쌀제공창구로 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발한 경협이 예상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전망과 우리측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남북경협은 장사라는 기본원칙에 정치(남북대화)와 교육(자본주의화)이라는 두 가지변수가 얽혀 다른 장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이번의 쌀협상타결로 남북경협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투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남북대화(정치협상)가 진전돼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임금결제 등에 관한 문제가 타결돼야 본격적인 경협이 가능합니다. ○이기주의 버려야 현재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과열경쟁입니다.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가동,대북투자시 과열경쟁와 중복투자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기업들이 소아적인 이기주의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회담타결로 북·일간 급속한 관계진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사실 한국쌀보다 일본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물량(30만t)도 한국보다 많고 북·일수교에 앞서 배상금으로 미리 받았다고 선전할 수 있어 김정일체제에 타격도 훨씬 적다는 이유지요.일본도 북·일수교를 무라야마정권의 당면과제로 설정,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즉 쌀을 지렛대로 수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북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북한도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붕괴직전까지 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복안이 있을 겁니다.결국 양국은 수교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쌀문제를 효과적으로 이용,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양국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던 한국쌀 제공문제가 타결된 만큼 북·일관계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쌀에 더 관심 ­남북관계의 개선이 예상된다면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서 월드컵 남북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있습니까.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공동개최는 세계축구연맹(FIFA)의 규약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등 민족의 이름으로 FIFA의 규정을 뛰어넘은 전례도 있습니다.개최형식등은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유치신청서의 최종마감일(9월말)까지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유치위원장으로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분단된 상태에서 공동개최라는 거사를 이룩해야 전세계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또 역사에 기록될 이 일을 해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공동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신청서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겠습니다. ­무협의 5만회원 가운데 남북교역을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데 지원책과 경협의 추진방향은 어떻습니까. ▲무협은 현재 정부를 대신한 「남북교역상담창구」로 지정돼 회원사에게 남북교역절차와 관련법규 및 서식작성방법 등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부산과 대구·광주지부 등 10개 지부에 상담요원 1명씩을 파견,지원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임가공 위주의 소규모투자입니다. ○북,민간원칙 불변 이를 통해 북한경제도 이해하고 신뢰도 쌓아 대규모투자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남한기업이외국기업의 선점을 우려하지만 사실 북한은 「황금알을 낳은 투자지」도 아니고 구매력을 갖춘 시장도 아닙니다.남북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경협은 남한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이며 정부차원에서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때까지 임가공 위주의 교역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공산품값 10∼40% 더 내릴수 있다/유통실태와 전망

    ◎인하 어디까지 가능한가/높은 물류비용·특소세가 장애/진공청소기 서울 10만원­LA선 5만9천원/「오렌지」 1병에 할인점­백화점 가격 1천원차 최근 공산품 가격을 인하하는 방법론에 대한 관계부처 간 논쟁이 한창이다.통상산업부는 냉장고와 세탁기·진공청소기·에어컨·오디오 세트·VTR 등의 가전제품에 물리는 특별소비세 때문에 가격이 외국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다.특별소비세를 더 낮춰야 합리적인 가격인하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반면 물가당국인 재정경제원은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특별소비세를 면세해 준다고 해도 외국보다 비쌀 뿐 아니라 특별소비세를 물리지 않는 신사복과 카메라·커피 등의 품목도 역시 외국보다 비싸다는 근거를 댄다.업계의 가격인하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과 3일 국내 주요 가전사들은 냉장고와 에어컨 등 7대 가전제품의 가격을 내렸다.결국 정부 부처간의 논쟁이나 당사자인 가전업계의 가격인하 조치는 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셈이다.물론 일부가전업체는 경쟁사의 인하정책에 밀릴 수 없어 따라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공산품 가격은 과연 내릴 수 있는 것일까.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비싸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해 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재정경제원과 소비자보호원이 서울등 세계 8개 도시에서 43개 품목을 조사해 지난 달 23일 발표한 「국내외 공산품의 가격차이 현황」에서 실태가 처음 드러났다. 일본의 경우 80년부터 경제기획청에서 국내외 가격차에 대한 조사를 연례적으로 실시하는등 선진국의 경우 이런 조사가 정기적으로 이뤄진다.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한 것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조사대상 도시 중 도쿄를 제외한 싱가포르나 파리·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은 물가가 안정된 곳으로,우리나라가 모델로 삼기 위해 선택했다. 품목별 가격의 실태를 보면 예컨대,서울에서 10만원을 줘야 하는 진공청소기는 물가가 가장 비싸다는 도쿄에서는 9만3천4백원이면 살 수 있다.타이베이(6만4천6백원)나 싱가포르(4만5천6백원),파리(7만2천5백원),런던(5만3천5백원),뉴욕(7만2천2백원),로스앤젤레스(5만9천원)는 훨씬 더 쌌다. 서울에서 1백만원짜리인 TV를 도쿄에서는 96만8천원에 살 수 있으며,뉴욕(47만원)과 로스앤젤레스(42만1천원)의 가격은 서울의 절반도 안됐다.카메라도 서울이 가장 비쌌으며,뉴욕보다는 3배 가까이 비쌌다.시계와 컴퓨터도 8개 도시 중 서울이 최고였고,아동복의 경우 서울은 싱가포르의 4배 수준이나 됐다. 국내외 가격 차이가 큰 것은 물론 국내제품의 경우도 판매업소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소비자보호원이 지난 달 3∼10일 백화점과 슈퍼마켓 및 할인매장 등 21개 업소를 대상으로 43개의 식품 및 생활용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1.5ℓ짜리 후레시 오렌지의 경우 E마트에서는 1천3백원인 반면 애경백화점은 2천4백원으로 1천1백원(84.6%)의 가격차이가 났다.프라이스클럽에서 1천6백원하는 8백g짜리 리본표 마요네즈를 삼양유통에서는 1천1백80원(73.8%) 비싼 2천7백80원을 받았다. 나산백화점에서 4백58원밖에 안하는 1백20g짜리 리도 한방쑥 비누를 한양유통에서는 2백62원(57.2%)이 비싼 7백20원을 줘야 살 수 있었다.한신코아에서 1천7백원인 3백g짜리 오양맛살도 그랜드백화점에서는 2천5백50원으로 8백50원(50%)이 비쌌다. 12ℓ짜리 생수통인 바이오 탱크와 아트만(A­3) 칫솔도 판매업소에 따라 각각 최고 9천7백원(71.9%)과 6백10원(51.3%)의 가격차이가 났다.기호품인 커피(1백50g짜리 맥스웰 블루엣)는 판매업소에 따라 최저 3천8백원에서 최고 4천8백80원까지 거래됐으며,주류인 패스포드(7백㎖짜리)도 최저 1만8천원에서 최고 2만3천원까지 가격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공산품 가격이 국내판매업소간에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은 인하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공산품가격이 높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물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17.1%나 되는 등 유통산업이 낙후된 것도 한 요인이다.미국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용은 7%,일본은 11.3%로 우리보다 낮다. 가전제품 및 의류를 중심으로 전속대리점 형태의 유통 계열화를 통한 공산품 가격의 통제로 유통단계에서의 경쟁이 미흡하며,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 등 일부 가전제품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가 31∼45.75%로 3∼25%인 외국에 비해 높은 점 등도 꼽힌다. 제품의 판매장소 별 가격과 안정성 등에 대한 상품정보 및 거래조건도 대부분 제조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실정이다.이는 결국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 및 시장경쟁을 저해해 제품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재경원 조성익 소비자정책과장은 『공산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한 근본 대책은 국내외 업체간 경쟁을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실제로 지난 2∼3월 기성 숙녀복 제조업체의 재무구조와 가격 및 유통구조를 파악해 봤더니 가격 및 이익률이 몹시 높았다』며 『기술개발 및 유통시설의 확충 등도 중요하나,업계가 자발적으로 유통마진을 낮추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공산품의 가격을 유통마진 축소를 통해 인하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업계의 가격인하 노력이 기대된다. □공산품값 인하에 대한 정부·업계 입장 ◎재경원/“특소세 탓은 잘못… 물류비 줄여야” 재정경제원은 특별소비세때문에 공산품 값이 주요국보다 비싸다는 통상산업부와 업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특소세가 공산품의 값을 높인 하나의 이유는 되지만 전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얘기다.소비자보호원의 분석을 보면 냉장고와 에어컨,진공청소기 등 6개 가전제품의 경우 소비관련 세금을 전혀 안물려도 외국제품보다 1.2∼2·7배,이불이나 신사복 등 9개 제품도 1.2∼3.7배 비싸다.따라서 세금때문에 공산품 값이 비싸다는 건 어불성설이며,특소세 역시 지난 해 현실에 맞게 개편한 만큼 추가인하는 어렵다고 맞선다. 재경원은 세율인하보다는 국내 수입을 억제하는 수입선 다변화정책의 해제나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유통구조의 혁신이 오히려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여기에 상품정보와 거래조건이 제조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공됨으로써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경쟁을 제한하고 있어 자율인하와 함께 불공정 유통거래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재경원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을 통해 값을 내리고 유통산업의 규제완화를 통한 유통혁신과 TV 등 수입선다변화 품목의 조기 해제,과다한 유통마진에 대한 공정거래조사가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통산부/“업계 자율로… 제품 부실화 없어야” 통상산업부는 공산품의 가격인하에 원칙적으로 찬성이다.그러나 가격인하가 하청업체에 대한 가격인하 압력으로 이어져 제품이 부실해지거나 잦은 모델변경으로 연결될 경우 소비자들이 가격인하의 혜택을 보지 못하게 돼 무리한 인하는 금물이라는 입장이다. 통산부는 특별소비세 때문에 공산품 값이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은 갖고 있다.따라서 가전제품 등의 특소세율을 조정하면서 한편으론 업계의 자율인하를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사실 통산부는 지난 해 재경원의 요청에 따라 가전3사를 닦달해 가격인하를 이끌어냈다.최근 가전업체들이 값을 다시 내린 것 역시 통산부의 입김이 음으로 양으로 작용했다. 통산부는 그러나 가격인하가 품질저하로 연결되지 않도록 공업진흥청을 통해 가격인하를 전후해 품질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그동안 가격인하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의 내용을 바꾸는사례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기업이 값인하를 이유로 하청기업에 부품가격 인하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보고 부당거래의 단속과 함께 재경원에 특소세율의 합리적인 조정을 요청 중이다. ◎삼성전자/“손해 감수… 고객에 경영성과 환원” 재정경제원은 지난달 23일 전세계 8개 도시의 43개 공산품 가격을 조사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 물가수준이 일본 도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다고 발표했다. 특히 가전제품이 다른 도시에 비해 매우 큰 가격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자료에 대해 업계로서는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8개 도시의 43개 제품 비교는 각국의 문화와 제품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이다.예를 들어 외국 에어컨은 주로 창문형이고 우리나라는 분리형으로 대체로 분리형이 창문형에 비해 가격이 3배 비싸다. 둘째,국내 공산품이 비싼것은 사실상 간접세가 높기 때문이다.가전제품 특히 TV의 경우 세금이 제품값의 30%를 넘고 에어컨은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95고객신권리선언」을 발표하고 7대 가전제품에 대해 최고 16.3%에서 최저 2.8%까지 평균 6.5%의 가격인하를 단행했다. 가격인하조치로 삼성전자는 연말까지 약1천억원 상당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신경영 2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고객에게 환원하는 차원에서 실시하게 됐다. 전자업계가 자발적인 가격인하로 물가안정에 기여한데 이어 이제는 사회인프라 구축으로 물류개선과 간접세 인하를 통해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되기를 바란다.
  • 한국,우주정거장 건설 참여 검토/미·일·EU·가 공동

    ◎2002년까지 130억달러 투입/정 과기처·미하원 과학위장 합의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한·미 과학기술협력 확대를 위해 미국을 방문중인 정근모과기처장관은 7일 『북한은 경수로협상에서 결국 한국형을 수용할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장관은 이날 워싱턴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수로 건설은 10여년의 시간과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매우 복잡한 사업』이라고 전제하고 『북한의 현재 원자력 수준으로 볼때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없을 경우 사업자체를 추진할수 없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 『북한측이 한국형 경수로의 안전도를 들먹이는 바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원자로의 안전도를 조사했지만 한국원자로는 최신의 기술로 안전도 역시 가장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날 낮 미국립과학재단의 닐 레인총재와 회담을 가진 정장관은 ▲미 신진과학도의 한국내 하계연수 ▲한·미 우수연구센터간의 교류협력 강화등 양국간 기초과학협력 실천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합의했다.정 장관은 이에 앞서 6일 미대통령 과학고문인 존 기본스박사와 만나 오는 7월 김영삼대통령의 방미를 양국 과학기술협력강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 공동노력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미원자력규제위원회의 이반 셀린 위원장과 원자력 안전에 관한 기술정보교환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 남아공의 뿌리 흑백인의 만남(아프리카 기행:12)

    ◎남아공 원래 주인은 “산족 부시맨”/2천여년전 북부서 이주… 17C부터 유럽인 통치/흑인대통령 탄생 불구 경제권 등 백인들이 장악 우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은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부시맨들이었다.산족이라고도 부르는 이 유목민들은 2000년전쯤 지금의 수단 땅 아프리카 북부에서 양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차차 남아프리카의 서부해안으로 이주해 이곳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그리고 나서 16세기에 비로소 이곳을 찾아온 백인들과 조우했다.다른 한편으로는 부시맨들과 아주 다른 언어인 반투어를 쓰는 코이코이족(네덜란드인들은 이들을 호텐토트족이라 부른다)이 있었는데 이들은 짐바브웨 지역에 살면서 철기를 다루고 소를 길러 양식으로 삼았다.이들 코이코이족은 남아프리카의 동부해안으로 내려와 자리잡았다.현재의 이스턴케이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았던 이들은 17세기에 백인들과 만나면서 서부해안의 부시맨들과는 달리 백인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16세기 백인과 첫 충돌 유럽에서 남아프리카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포르투갈인이었다.이들은 1487년부터 1488년 사이에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해내기 위한 항해도중에 남아프리카에 닿았다.그러나 영구적인 정착지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네덜란드인들이었다.1652년 얀반 뢰빅(JANVAN RIEBEECK)은 일단의 네덜란드인들을 이끌고 오늘의 케이프타운에 해당하는 테이블마운틴 아래 해안가에 상륙했다.이 해안선을 지나가는 네덜란드의 선박들을 위한 중간기착기지로 삼기위한 것이었다.그러나 자신들의 식량자급이 힘들어지게 되자 뢰빅은 함께 온 부하들중 일부를 해방시켜 주변의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하였다.그는 또한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극동지방들로부터 노예들을 사들이기도하여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인들은 해안지방에서 부터 내륙으로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가면서 남아프리카를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어 갔다.네덜란드에서 온 이주자들은 처음엔 보어인으로 불렀으나 나중엔 본토어에서 파생된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를 쓰게 되면서 그 이름을 따 「아프리카너」라고불리게 되었다.그 뒤 부시맨 그리고 코이코이족과 아프리카너들 사이에서는 케이프컬러드(Cape Colored)라는 혼혈인종이 생겨나게 되었다.아프리카너들은 희망봉 일대에서 내륙쪽으로 이동하여 반유목생활을 하는 농민이 되었는데 주로 피시강 부근에 안정된 농경생활을 하던 이들은 비교적 인구가 많았던 코사족과 충돌하기 시작했다.1775년에는 사소한 소떼의 약탈이 원인이 되어 아프리카너와 코사족의 국경전쟁이 일어나 100년동안이나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1백여년간 국경 싸움 한편 처음 아프리카너들과 충돌하였던 코이코이족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 아프리카너들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완전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부시맨들은 불모지나 산악지대로 쫓겨나 굶주렸는데 굶주리다 못한 이들이 가축을 도적질하다가 수천명이 살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영토싸움과 인종차별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1795년에 영국군은 당시 케이프식민지였던 지금의 케이프주를 점령했다가 1802년 그 지배권을양보했었고 1806년 다시 점령지를 되찾는다.영국인들은 국경을 따라 코이코이족을 비롯한 반투어를 쓰는 종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하기 시작했다.그로써 18 30년대에 이르러 아프리카너들이 노예들을 데리고 오렌지강과 발강을 건너 북상하는 대이주가 시작되었다.바로 이 시기에 아프리카너(보어인)들은 오렌지자유국(1854)과 남아프리카공화국(1838,후에 트랜스발공화국이 됨)을 세운다.두 공화국은 1850년대 모두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되었다.그러나 보어공화국들은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남아프리카연방에 포함시키려 하자 이에 맞서 저항하였고 그 결과 1899년 드디어 두 공화국과 영국 사이에 이른바 보어전쟁이 발발한다.그러나 1902년 보어인들의 저항은 진압되었다.두 공화국은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포함되고 말았다. 남아공화국의 형성과정은 이토록 복잡한 역사적 질곡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나라가 겪고 있는 인종차별도 그런 역사 속에서 명료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그러한 질곡과 투쟁 끝에 흑인인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트랜스발주에 있는 요하네스버그의 중심시가지에는 흑인노동자들과 노점상,그리고 실업자들이 분주하게 오갔지만 공기 좋고 그늘지고 경관 좋은 곳에 벌어진 벼룩시장의 난전에서는 흑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수도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의 수도이고 상업의 중심지로 금광회사의 본사가 대부분 이곳에 있기도 하다.이 나라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기도 한데 유색인종은 이 수도의 서부와 남서부의 특정지역에서만 주로 거주한다.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가 백인이었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흑인들이었다. ○흑인은 거의 걸어다녀 우리를 시내의 언덕 위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안내하였던 백인 운전사는 불과 한달 전에 자신의 아내가 흑인들의 습격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토로하였는데 운전기사의 표정이 시종 굳어 있긴 하였지만 도대체 불과 한달 전에 아내를 잃은 사람치고는 침울하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어 반신반의하게 만들었다.그는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신문에는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흑인에 의한 백인들의 피해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하지만 얼른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에는 이 나라는 정치와 경제에 있어 아직도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증거와 조짐들이 너무나 뚜렷하였다.남아공화국의 법률은 백인,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컬러드인,인도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흑인),4대 인종집단을 인정한다.이중에서 아프리카흑인은 전인구의 3분의 2이상이고 컬러드는 10분의 1,백인은 전인구의 5분의 1이다.이 백인들이 대통령직을 제외한 남아공화국의 모든 것을 쥐고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그러나 남아공의 출입국관리소 백인 직원은 멀리서 온 이 동양인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싹싹해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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