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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유아·아동| ●거미 아난시(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윤인웅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 아프리카 민담 영웅인 거미 아난시의 모험담을 담은 그림책. 대담하고 선명한 아프리카 전통문양에서 따온 기하학적 그림이 강렬하다.3세 이상.8800원. ●첫째야, 세상에 너처럼 귀한 아이는 없단다(케빈 레만 글, 케민 레만Ⅱ 그림, 나명화 옮김, 상상북스 펴냄) “엄마는 나만 미워해!”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아이에게 꼭 읽어줄 만한 책. 곰돌이 3남매 얘기를 통해 각자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첫째, 둘째, 막내 곰돌이가 각권의 주인공인 3권짜리 시리즈.6세 이상. 각권 8000원. |초등·청소년| ●갈치 사이소(도토리 글, 이영숙 그림, 보리 펴냄) 부산 자갈치 시장을 현장견학하는 듯한 다큐멘터리 그림책.30년 넘게 그곳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시장사람들과 각종 생선 등 새벽시장의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코끝에 비릿한 바다냄새가 끼쳐오는 듯. 초등저학년.9500원. ●오줌싸개 지도(윤동주 지음, 이창건 엮음, 김민정·정현우 그림, 효리원 펴냄) 윤동주의 시편들 가운데 초등생 눈높이에 맞는 50편을 간추려 그림과 함께 실었다. 시마다 해설이 붙은데다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연보도 곁들여져 이해하기가 쉽다. 초등생.8500원. |실용경제| ●제갈량 리더십(동팡원뤼 지음, 김효숙 옮김, 랜덤하우스중앙펴냄)상대방의 마음을 다스려 승리를 얻어낸 제갈량의 리더십에 관한 책.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장계취계등 36가지의 전술이 삼국지 일화와 함께 전개된다. 책사 제갈량뿐 아니라 인간 제갈량이 어떻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촉나라를 3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는지를 다루고 있다.1만 2000원. ●게으른 자가 부자가 되는 법(조 카보·리처드 길리 닉슨지음, 유영일 옮김, 월드북 펴냄)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부자 되는 길을 이야기한 책. 허약체질의 저자 조 카보는 파산 직전 상태에서 우편주문 판매, 홈쇼핑, 인터넷 마케팅 등에 뛰어들어 백만장자가 됐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비법을 터득한 것. 그는 게으르게 살면서 성공할 수 있는 철학과 비법을 담아냈다. 그후 리처드 길리 닉슨이 디지털시대에 맞게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1만 2000원. ●회사, 그만 뒀습니다.(다자와 다쿠야 지음, 황선종 옮김, 해냄 출판사 펴냄)이땅의 직장인들에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하고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소중한 길잡이 책. 명함도 간판도 없이, 오직 내 힘으로 거친 세상에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퇴직전사 43인의 위풍당당한 인생승부 이야기가 펼쳐진다.9000원.
  • “삼국지 전쟁 중심으로 다시 쓴다” 군사학 측면에서 재구성한 김성남씨

    “삼국지 전쟁 중심으로 다시 쓴다” 군사학 측면에서 재구성한 김성남씨

    지난 1월 출간된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전쟁을, 그것도 우리 선조들이 치른 전쟁을 군사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최초의 대중 역사서였기 때문이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임에도 군사학적 지식을 동원해 때로는 기존 통설과 맞서는 해석을 제시하는 등 역사적인 전쟁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해내 전쟁사에 관심이 높았던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샀다. 책의 저자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중국사를,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김성남씨. 그가 이번에는 삼국지에 도전하고 있다. 유비·조조·손권에 대한 식상한 인물론이나 이들의 행동양태를 분석한 처세론이 아니라 군사학적으로 삼국지를 다뤄 올 늦여름이나 가을쯤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알려졌다시피 삼국지는 ‘촉한(蜀漢)정통론’에다 경극 형식이라는 대중화 과정을 거치면서 ‘뻥튀기’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34살의 신진 연구자임에도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였던 김씨가 이런 삼국지를 어떻게 복원해 낼지, 또 군사학적 작업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가 몸담고 있는 우리역사문화연구소에서 직접 만났다. ▶많은 비판이 있어 왔던 삼국지를 선택한 이유는. -삼국지는 지나치게 ‘인물’만 부각됐다. 구체적인 전쟁 상황이 없다. 기존의 인물론은 참고만 하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싸우고, 왜 승리하거나 패배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생각이다. ▶김운회 교수도 ‘삼국지 바로 읽기’라는 책을 통해 인물론을 비판했는데…. -삼국지를 용인술이나 처세술로 보지 말자는 김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김 교수의 책 역시 인물론의 폐해를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넓게 봐서 인물론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쟁으로 보는 한국사’에서 보듯 사료 부족이 큰 문제인 것 같은데 이번 작업에서는 참고할 만한 사료들이 있나. -중국과 일본 문헌 등을 많이 참고하고 있다. 문헌마다 관점의 차이도 있고, 문헌의 절대량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쟁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통성이 있다. 주력부대 구성과 기동부대를 통한 우회전략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군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쟁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지난 역사를 군사학적으로 복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삼국지와 비슷한 시기였던 로마는 재미있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예를 들자면 52세 군단병이 30여년의 군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둔 것이 있다. 장군이나 정치가가 아니라, 일반 병사에게 전쟁이 어떻게 비춰졌는지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삼국지는 모든 사건을 장군의 인품과 대의명분으로 설명한다. 진짜 칼과 창을 들고 들판을 달렸던 일반인들의 얘기는 없다. 군사학적 접근은 부족하나마 이런 측면을 되살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졸(卒)의 복권’이다. ▶우리는 반공과 민족주의라는 명분 때문에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문제다. 군대문화라는 것이 그렇지 않나.‘까라면 까라.’에서 ‘안 되면 되게 하라.’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희생과 정신력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쟁에서 정신력은 핵심이라기보다 ‘플러스 알파’에 지나지 않는다. 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의 정신력이란 다 같이 죽자는 말이다. 노련한 지휘관이라면 이 점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도 군사학적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맞다. 군사학적 연구가 결합됐을 때 군은 최대의 힘을 낼 수 있다. 미 국방성은 90% 이상이 민간 연구자들이다. 이들이 국방 독트린을 생산해 낸다. 장군들은 이 독트린의 충실한 집행자일 뿐이다. 이는 역사에서도 증명된다. 유목민족의 전투력은 어느 시대에서나 최강이었다. 생활습관 자체가 전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승리하는 쪽은 정주민이었다. 유목민에게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군의 문민화’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우리 군은 거북하게 여기는 것 같다. -폐쇄적이라 그렇다. 꼭 군이 아니더라도 연구집단과 실행집단은 어느 정도 분리돼야 좋다고 본다. 연구집단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군이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고급장교 집단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잃어버린 천년의 소리’ 되살려

    ‘잃어버린 천년의 소리’ 되살려

    “잃어버린 우리의 음악 원형을 찾아 연주합니다.” 국립국악원은 우리 고대 유적지에서 출토된 악기를 처음으로 복원·제작해 오는 2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시연회를 갖는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수십년 전부터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악기, 악보를 바탕으로 복원 연주회를 개최해왔으나 우리나라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복원 연주회를 위해 국악계와 고고학자 등 관련 전문가들과 악기 제작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1년여 가까이 철저한 고증작업을 벌인 결실이다. 이번에 복원·제작된 악기들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삼국사기 악지’의 고대 현악기와 관련된 문헌이 바탕이 됐다. 고대악기 시연회에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로 추정되는 광주 신창동 유적지에서 발굴된 10현금(絃琴) 연주회가 눈길을 끈다. 1997년 발굴된 이 목제 현악기는 구멍이 6개로 왼편이 반쯤 부서진 상태인데 형태로 보아 10현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일본 관련 학자들의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거친 결과 이 악기는 고대 한반도 남부지역의 독자적인 현악기로 재확인됐다. 또 대전 월평동 유적 현악기(8현금·AD 6세기 추정), 하남 이성산성 유적 타악기(요고·AD 6세기 추정)도 복원·제작돼 선보인다. 국립국악원 주재근 학예연구사는 “이번 시연회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 및 독도문제 등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 한·중·일 역사에서 고대 한반도 이남 지역에 독자적인 음악문화가 존재했음을 밝히고, 한국의 고대문화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시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서해안의 대중국 창구이자 교두보였다. 강화 고인돌과 단군의 유향(遺香)이 전해지고,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미추홀과 비류백제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의 거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인천시의 남동갯벌, 도장리에서 승학천을 따라 이어지는 저지대는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습지였기에 문학산과 승학산이야말로 지리·환경적으로 초기국가 단계의 도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에는 대외 창구로 기능하여 오늘날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의 능허대를 거점으로 해 중국과 넘나들었다. 한강 하류인 인천을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등주항로야말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때 이용한 바로 그 항로이다. 오늘날 능허대는 아파트촌에 뒤덮이고 말았으나 조선 후기 읍지에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 하였듯 역사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인천이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뜬’ 것은 역시나 조선시대가 아닐까. 수도 한양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온갖 역사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서해 뱃사람들에게 ‘행주참을 댄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수, 즉 밀물이 몰려들면 바닷물은 강물 위로 뜨고 바다로 내려가는 강물은 밑으로 깔리는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천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직행하는 뱃길 노정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 뱃길을 따라서 열강들이 빈번하게 침범을 강행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포대가 이를 웅변해준다. 대개의 개항장이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지만 인천만큼 열강들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 뻗친 곳이 또 있으랴.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는 바로 이런 개항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들은 인천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으로, 선조들은 이들의 도래를 온몸으로 싸워 막았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조선 진출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운요호(雲揚號)사건(1875)을 감행했고, 끝내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었음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구미 열강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니 은둔국 조선은 갑자기 봇물 터진 외압을 직접 받게 된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제물포는 하룻밤 새 개항장으로 둔갑하여 1883년에 인천해관과 감리서가 설치되고,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 조계들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땅을 내준 꼴이 됐으니, 이후 일본군의 군화발이 인천항을 자기 땅처럼 짓밟았다. 1892년,‘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완벽한 일본책’으로 자평하는 ‘인천사정’이란 책자는 당시 ‘일본 영사관이 일장기를 아주 높게 휘날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항을 삼킬 듯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정말 그들은 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삼켜버렸다. 그 후 우체국, 경찰서, 일본거류지의회, 인천상법회의소, 무역상조합, 잡화상조합, 영어소학교, 공립소학교, 교토의 본원사(本願寺), 공립병원와 강제병원, 정미소, 제물구락부, 조선신보, 활자소, 그리고 제일국립은행, 제18국립은행, 제58국립은행, 일한무역상사, 우선주식회사의 일본지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대불호텔과 이태호텔, 수월루 등의 여관도 들어섰다.‘근래 불경기라는 소리가 인천항의 온 시가를 뒤덮는 데도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花紅柳綠) 흥청대기 이를 데 없으니 술집에는 어린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 기록도 있다. 이로써 유곽이 번창하여 도심까지 집창촌이 뻗어 나가 항구를 드나드는 뭇사내들을 유혹하였다. 교회도 빠질 수 없었으니 영국 성공회를 필두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수출입세를 관장한 해관(海關)만큼은 조선정부 관할이었다. 물론 해관 운영에 ‘왕초보’였기에 대대로 영국, 독일, 일본인 등이 도맡아 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엿장사 마음대로’ 개항장을 농락하였다. 일본인들이 잘못된 협약서를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축적했던 수탈 과정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수입된 면직물은 대부분 영국제로 일본인이 수출을 독점했는데 영국도 저렴한 세금을 관철시켰다.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인천항에서 관철되었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천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적었고, 총인구 2649명 중 쓰시마, 나가사키 사람들, 그리고 시모노세키가 위치한 야마구치(山口), 규슈의 오이타(大分)사람들이 주류였다. 일제침략기를 통해 대개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쪽 방언들이 즐겨 쓰였으며, 도쿄, 오사카, 쓰시마 등 여러 곳의 언어가 섞인 것을 ‘인천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는 관리 세관원 은행원 회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장 대장간 오락실 과자점 창고업 고용직과 잡상 목수 석공 농업 등 온갖 직종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장차 식민지가 될 조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청일전쟁 등이 터졌을때는 자발적으로 전선구호와 간호 등에 힘을 보탰으며 스스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즉, 개항장에 나와 있던 일본거류민들을 순수한 의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일본의 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식민지 개척의 첨병으로 움직였다.‘생돈’이 생기는 만큼 화려한 의복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웅장한 반양반일(半洋半日) 가옥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개항장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로 삼분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확연하다. 은행건물 등이 남아있는 일본인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중국인 거리가 그것이다. 각국 거류지라고는 해도 19세기말에는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등이 거주했을 뿐이고 대개 일본·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각국거류지 회의는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적별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서양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조차 영어로 진행하니 일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간척을 통해 땅을 확보, 도심을 불려나갔다. 오늘날 인천항 주변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의 대응은 전무하였던가. 인천 출신의 역사학자 임학성(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인천객주협회를 모체로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민족 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역주한 ‘인천개항25년사’(1907)를 보면, 조선인들은 오늘로 치면 송월·전·복성·인현·경·신포·답·신생·사·유·신흥·선화·도원동 등에 몰려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항 초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권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근면과 상업적 재기를 토대로 일본에 맞섰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결국 중국 상권도 몰락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은 다시금 성실하게 상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시가 중국인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집이나 운영하고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들은 옥양목 같은 옷감장사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상권을 장악해 ‘비단장사 왕서방’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조선의 쌀을 싸게 사들여 일본에 되팔아 엄청난 돈을 거머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인철도가 부설되자 서울을 오가는 보따리장사는 물론이고 석유장사 등으로 일본인들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군인들이 자주 부르는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도 당시 이후 첨단 공장인 성냥공장이 인천에 많았음을 방증하며, 그만큼 선진적 공장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인천은 일본인 대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거니와 산둥반도 등지를 오가는 페리에서 사람과 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거리에 가면 대하소설 삼국지를 연작 벽화로 그려놓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책읽기를 끝낼 수 있게 해놨다. 게다가 원조자장면집을 아예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박물관만큼은 ‘대박’이 예감된다.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자장면 박물관은 특이성도 돋보이지만 인천에 딱 어울리는 까닭이다. 김춘선 인천해양수산청장은 “거대한 대중국 서해시대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대북 통일시대의 거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포, 해주 등지를 오가는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있지만 바닷길만큼은 항상 열려 있어 민족화합에도 이바지하는 셈이다. 인천항의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파나마식운하의 물을 가두었다 풀어 놓는 갑문이 낙후해 머잖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형편이다. 갑문으로 가보니 5만t,10만t급의 거대한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인천항도 이제는 외항시대로 접어들었다.“인천항도 북항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의 인천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고베와 나가사키 쓰시마 부산 원산 톈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잇는 정기연락선이 오고갔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바다를 통한 국제간 교역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가 근자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바다를 통한 교류는 무려 반세기나 묶여 있다가 재개된 셈이다. 당시 인천은 ‘완연한 한국의 요코하마’로 불렸다. 국제 첨단 신도시로 개발되는 송도신도시가 완공되면 인근 인천공항과 더불어 인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니 돌고 도는 역사의 변화가 다시 온 몸으로 느껴진다.
  • [문희상 의장 본지 단독 인터뷰] “차기대통령 시대 꿰뚫는 ‘슈퍼파워’ 필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된 만큼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과도 정책연대를 해야만 한다.”면서 “물론 연대에는 통합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관훈토론회에서 문 의장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한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한걸음 물러선 것이다. 4·30 재보선에서 참패한 데 이어 국회 본회의에서 ‘과거사법안’ 처리를 앞두고 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문 의장과의 인터뷰는 국회 당의장실에서 1시간 10분간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열린우리당이 이번 23곳의 재보선 선거에서 한 석도 못건졌다. 유례가 없지 않나. 공천실패나 실용노선 추구, 과도한 개혁 추구 등이 참패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완패의 원인이 뭔가. -유례가 많다. 재보선에서 거의 그랬다. 유권자의 생각이 다양하듯 모든 국민의 생각이 다양하고, 그같은 이유들이 다 조금씩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소장파는 재보궐 선거의 패인이 개혁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용만 주장한 적이 없다. 나는 동반성공론자다. 재보선 참패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의 조기 복귀설이 거론된다. -그 두분이 선거를 치르면 더 나았을까?대중성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인데, 대중성을 보면서 두분을 돌아오라고 하면 그분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차기 대권주자로 정 장관, 김 장관외에 이해찬 총리,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문 의장이 대선 후보로 주목되고 있다. 문 의장이 거론되는 이유가 뭐냐.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된다고 하는데, 밀려서 와서 갈데 없는 것이다. 대권주자 거론은 내 뜻과는 상관이 없다. 차기 대권주자의 덕목은. -국민통합과 국가경영 능력이다. 하나는 민주성과 하나는 효율성으로,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차기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향후 10년 아주 중요한 만큼 차기 대통령은 시대상황을 꿰뚫는 확고부동한 슈퍼파워가 필요하다. 대통령과 거리는 소원한가. -의장 당선 축하연때 말고 공식적으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 당정 분리가 확고히 됐다. 다만 정책적 협의는 역대정부에서 이렇게 많이 한 정부가 없다. 정책협의는 자주 많이 하라는 것이 대통령 뜻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차기 대권주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인가. -대선주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새정권 창출이 목표가 되듯이 중요하게 된다. 아마 서로 상의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과의 통합은? -대전제를 했다. 왜 평소보다 무게가 실리냐면 과반수 의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을 여당 맘대로 할 수가 없다. 그것을 연대라고 한다면 정책연합도 한나라당, 민주노동당하고도 할 수 있다. 연대는 통합도 포함된 말이다. 제 정파와 연대하지 않으면 국회를 운영할 수가 없다. 새로운 결혼보다 이혼한 사람이 재결합하기가 어렵다. 4·30 재보선에서 경북 영천이 못내 아쉬웠을 것 같다. -옛날에는 영남에 내려가면 말도 못 붙였다. 그런데 이번 선거 때 영천에 갔더니 말을 다 받아주더라. 더구나 영천 선거에서 지역발전이 큰 이슈가 됐다. 이것만 해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자체가 지역감정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선거제도 개편이 지역주의 극복의 답이라고 보는가.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아니어도 뽑힌다. 선거가 없는 금년 내 정기국회에서 고쳐야 한다. 행정 체제 개편은 어떻게 보는가. -평소 지론이다. 행정서비스 개선 차원에서 그렇다. 시’군 통합도 하나의 개혁이지만, 지금처럼 도, 시·군·구, 읍·면·동의 단계를 하나로 줄이는 작업이다.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대체입법을 찬성한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폐지가 지론이다. 형법보완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야가 대체입법에 합의한다면 소신과 달리 따를 수 있다. 386가운데 지도자 반열에 오를 만한 사람을 꼽아달라. -마음 속으로 꼽는다고 해도, 말하긴 어렵다. 황희 정승 말처럼, 검은소가 일을 잘 한다고 하면, 흰소가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내코도 석자인데, 내 것도 못하는 주제에 남을 품평할 때인가.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투자 의혹과 관련해 이광재 의원이 연관되지 않았다고 보는가. -이 의원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직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믿는다. 유전의혹 특검을 하자는 얘기가 있다. -검찰이 이미 수사 중이라는 게 중요하다. 특검은 검찰 수사가 미진할 때 보완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법률 자체가 그렇게 돼 있다. 이 정부가 대통령 측근과 관련해 소홀했거나 덮으려고 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대법원에서 확정 무죄판결 받으려고 홀라당 다 공개했다. 그런데 우리가 특검을 반대한다고 하는 것은 옛날 발상이다. 당 의장 경선에서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도리어 여성 할당제의 피해를 봤다는 얘기가 있다. -여성이 사회, 특히 정치로 진출할 때는 아직 불이익을 받을까봐 만든 제도다. 한 위원처럼 특수한 한 사례를 보편화해 방식을 바꿀 수는 없다. 말이 안 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차기 대권후보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다른 당 얘기는 할 수 없지만, 내가 본 박근혜 대표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유연하고 괜찮은 분이다. 온유하다. 검경의 수사권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잘 타협해 합의될 것으로 본다. 그 전에 자치경찰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자치경찰은 교통사고, 도난 등을 중심으로 하고, 전국적인 마약·테러·살인마 사건은 검찰이 하면 된다. 업무가 분리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검찰이 자꾸 인권문제를 거론하는데, 그것은 옛날에 경찰의 수준이 아주 낮았을 때 얘기다. 검찰이 너무 자기 방어적인 거다. 여야가 과거사법 등을 비롯해 3개 항에 합의했는데, 한꺼번에 너무 양보한 게 아닌가. -판단의 주체가 누구인가. 아무도 얘기할 수 없다. 다만 여야가 조금씩 양보하는 민주적 과정이 중요하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신뢰를 쌓아야 한다. 누가 더 양보했느냐를 따지면 한이 없다. 합의해 놓고 약속하면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안 된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가 지역정당을 허용하자고 했는데. -독일처럼 연방과 연방이 서로 법 체계가 다른 국가연합 같은 곳에선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에겐 지역정당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치후원금 제도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도를 늘릴 생각이 있는가. -지금 정해진 후원회의 한도를 오버해서 후원금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어떻게 쓰여지는지, 투명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간당원에게 앞으로도 힘을 줄 것인가. -기간당원이 꼭 필요하고, 그들에게 힘을 줘야 한다. 상향식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것부터 흔들리면 아무것도 안 된다. 물론 실험을 하다 보니 문제도 있었다. 이번 공천처럼 상향식 공천이 능사가 아니라는 문제점은 물론 있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정리 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4·30전패후 첫 인터뷰를 마치고 4·30 재보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유례없는 전패를 당한 뒤 사흘 만인 3일 문희상 의장과 마주앉았다. 예상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시원시원했다. 특유의 정연한 화법도 여전했다. 그는 “유권자의 생각이 다양하듯이 패인도 특별한 한가지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나의 대중성이 (박근혜 대표보다)떨어져서인지도 모른다.”며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기도 했다. 적어도 그의 겉모습에서 구질구질한 패장의 상흔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투박한 그의 얼굴에서 기자는 ‘겉은 장비지만 속은 조조’라는 그에 대한 세평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물론 그는 터프한 외모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를 닮았다는 것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조조라는 별칭에는 머리만 좋고 원칙이 없는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킨다며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제갈공명으로 불러 달라는 농담성 주문과 함께. 그를 조조에 비유하든, 제갈공명으로 부르든, 부르는 이의 마음이겠지만, 그가 원칙있는 전략가를 지향하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인터뷰에서도 “문 의장의 실용정치 때문에 선거를 망친 게 아니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지만,“원칙만 따라가면 탈레반주의, 전략만 따라가면 마키아벨리즘이나 인기영합주의”라며 ‘개혁적 실용주의’를 고집할 뜻을 분명히 했다. 최고위 당직인 의장을 맡은 지 한달 만에 재보선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한 그에게 대권에 도전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한번도 대권에 나갈 의사가 있다는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이 변하겠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구본영 부장 kby7@seoul.co.kr
  • 3인의 어머니가 말하는 영재교육

    3인의 어머니가 말하는 영재교육

    영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혹시 우리 아이도 영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는 학부모들이 있다. 아니면 우리 아이도 영재 교육을 시켜 후천적인 영재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도 한다. 영어 유치원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영재 교육원에서 상담을 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타고 난 영재이든 아니든 학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초등학생 영재 3명의 부모에게서 어떻게 가르쳤는지 들어봤다. ■ 수학영재 송유근군 “영재에 적합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얼마전 초등학교를 만 7살에 졸업한 송유근(7)군의 어머니 박옥숙(45)씨는 유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유근이는 재작년 유치원에 입학했지만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친구들이 자꾸 때려 어울리지 못한 탓이었다. 밤에는 잠꼬대를 하며 끙끙거리기까지 했다. 주변의 조언을 받아 태권도장에 보낼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다. 원래 사물을 깊이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유근이가 태권도를 배우는 것은 아이랑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유치원을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직접 가르쳤다. 박씨의 전직은 초등학교 교사.17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아이 교육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박씨는 “태권도를 가르쳐서 아이의 성격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면서 “아이가 잘 맞지 않는다는데 굳이 남들하고 다 똑같이 유치원에 보낼 필요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유근이의 특징은 한 가지 일에만 오랜 시간 몰두하는 것. 동물원에 가도 한 가지 동물만 3∼4시간 지켜보는 것은 기본이었다. 박씨는 “이런 아이가 40분마다 새로운 내용을 배워야하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걱정이 많았지만 이같은 어머니의 판단은 정확했다. 한 번 수학책을 잡으면 10∼14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몰두했다. 유근이는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 지 일곱달 만에 고등학교 과정인 미적분까지 이해했다. 지난해 8월말에는 독학으로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만 6세의 최연소 나이에 땄다. 지난해 6월부터는 인하대 과학영재교육원에서 일주일에 한차례 교육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대학 교육 수준인 피보나치 수열과 디지털 공학, 초고속 집적회로 하드웨어 기술언어(VHDL)를 배우고 있다. 유근이는 “나는 한 가지를 오랫 동안 깊이 다루어야 재미있는데 학교에서는 40∼50분이 지나면 다른 과목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또 “집에서 책을 보면 좋아하는 분야를 오래 볼 수 있어 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점이 좋다.”며 나름대로의 독학 예찬론을 폈다. 아버지 송수진(45)씨는 “만일 유근이가 학교에 가서 수업 시간이 바뀌는데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다른 행동을 하면 산만한 아이로 오해받았을 것”이라면서 “이런 교육으로는 유근이의 재능이 보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생. ▲IQ:측정한 적 없음 ▲2003년 유치원 입학 5개월만에 집에서 교육 시작 ▲2004년 6월 인하대 과학영재교육원 입학 ▲2004년 8월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 최연소 취득 ▲2004년 12월 정보기기운용기능사 자격증 최연소 취득 ▲2005년 4월 경기도 남양주시 심곡초등학교 졸업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글짓기 영재 이종현군 “책을 많이 읽으면 글감이 쏙쏙 떠오른데요.” ‘2005 전국예술대회’ 글짓기 부분에서 대상을 받은 잠원초등학교 5학년 이종현(11)군의 어머니 조향(43)씨는 아들의 문장력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조씨가 종현이의 영재성을 처음 느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당시 교회에서 종현이는 ‘창조’에 대한 글을 쓰라는 과제에 대해 ‘하느님이 창조할 때 왜 악을 존재하게 했을까? 그것은 선이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악이 있어야 선이 있다.’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냈다. 목사는 “만 7살 나이에 보기 드문 철학적 사고를 한다.”며 감탄했다. 조씨는 이같은 종현이의 재능을 더욱 키우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글짓기 학원은 단기적인 효과를 올리기 위해 형식에 치우친 교육을 할 것이고 결국 아이가 판에 박힌 사고를 할 것이라고 생각해 학원에는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즐기면서 많이 읽으면 글감이 늘어날 것이라고 판단, 종현이에게 좋아하는 역사와 과학 관련 책을 사다주며 읽혔다. 이후 조씨의 주말 주요 일과는 대형 서점에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역사와 과학 관련 책을 20권씩 사다 종현이 주변 여기저기에 두었다. 화장실에도 책장을 만들고 변기 위에도 책을 6∼7권씩 쌓아두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지켜봤는데 놀다가 심심하면 책을 읽더라.”고 말했다. 종현이의 관심사가 바뀌면 또 관련 책을 20여권씩 사왔다. 조씨는 “절대로 억지로 시키지 않았고 단지 책이랑 자꾸 친하게 해주었을 뿐”이라면서 “보통 학부모들이 빨리 성과를 보려고 학원에 보내는데 이는 창의성 개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종현이의 독서량은 하루 평균 2권. 일년이면 700∼800여권에 이른다. 가장 좋아한다는 책은 삼국지로 20번을 읽었다고 한다. 요즘은 소설에 취미가 붙어 ‘혈의 누’와 ‘안네의 일기’,‘로빈슨 크루소’ 등을 읽고 있다. 종현이는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커지는 느낌”이라면서 “문장력이 좋아지고 문맥을 이을 때 시간이 줄어든다.”고 독서의 효과를 말했다. 조씨는 “책을 많이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인 것 같다.”며 학부모들의 노력을 당부했다. ▲1994년생 ▲IQ:140 ▲2001년 잠원초등학교 입학 ▲2001년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대회’ 웅변 부문 최우수상 ▲2002년 ‘제15회 전국 장애인 종합예술제’ 웅변 부문 최우수상 ▲2003년 ‘제16회 전국 장애인 종합예술제’ 웅변 부문 전체 대상 ▲2004년 ‘과학기술진흥 전기안전 산업안전 전국웅변미술 글짓기 대회’ 과학글짓기 부문 전체 대상 ▲2005년 제12회 ‘2005 전국예술대회’ 글짓기 부문 전체 대상 ▲2005년 한국일보 동시 부문 으뜸상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스피치’대회 우승 이호진군 “영어로 일기를 쓰면 실력이 쑥쑥 올라갑니다.” 지난달 23일 아리랑TV와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하는 ‘어린이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우승한 리라초등학교 이호진(11)군. 어머니 박효정(39)씨는 “1년간 쓴 영어일기가 영어실력 늘리는데 1등 공신”이라며 영어일기의 효과를 소개했다. 그는 “호진이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큰 상을 받은 것은 양보다는 공부방법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호진이의 뛰어난 영어실력은 엄마인 박씨의 경험 덕분이었다. 신혼 시절 미국에서 3년 동안 지낸 경험이 있는 박씨는 당시 영어 때문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 일기를 쓰면서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 박씨는 이후 당시 경험을 떠올리면서 영어일기 쓰기를 시켰다. 호진이가 3학년 때였다. 박씨는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일기쓰기를 하면서 언어는 쓰기와 말하기, 읽기가 함께 연관돼 있어 함께 공부해야 말하기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초등학교 때 일기를 선생님한테 제출하던 생각이 떠올라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기는 분명히 초등학교 언어 교육에 도움이 된다.”면서 “호진이도 처음에는 3줄도 쓰기 버거워 했지만 요즘은 30줄도 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그러나 영어로 일기를 쓰기 전에 기본적인 문법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바로 영어로 쓰는 것은 무리이고 먼저 구조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나 아이들이 처음부터 딱딱한 책으로 공부하면 흥미를 잃게 된다.”면서 “호진이는 생활영어를 하면서 문법을 하나씩 같이 공부시켰다.”고 설명했다. 호진이의 경우 영어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영어동화를 읽게 했다. 박씨는 “‘아기돼지 3형제’와 ‘신데렐라’등 모두 20여편의 영어동화를 CD로 듣고 크게 따라했다.”면서 “동화를 읽으면 내용이 재미있어 계속 읽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호진이가 영어를 잘하게 된 데는 운동도 큰 몫을 했다.”고 강조했다. 영어는 적극적인 아이들이 금방 배우는데 운동하면서 자연스레 익힌 활발해진 성격이 영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었다. 박씨는 아들의 영어실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영어 유치원에는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영어 유치원에서 영어를 쓰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한국말을 쓰게 돼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4년생 ▲IQ:146 ▲2001년 리라초등학교 입학 ▲2004년 ‘리라 영어스피치 대회’ 은상 ▲2005년 ‘제2회 어린이영어 스피치 대회’ 대상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전문가들의 교육 조언 “관심을 갖고 지켜보되 성적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마세요.” 국내 영재교육 전문가들은 영재교육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학부모들에게 이같이 조언했다. 영재인지 아닌지 빨리 결정하려 하지 말고, 잘 하는 부분이 있는지 차분히 지켜보고 도움을 받으라는 설명이었다. 전문가들이 영재에 대해 “지적 능력이 높고 창의성이 있고 과제 집착력이 강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서혜애 박사는 “영재는 일반인보다 사고력이 좋고 문제 해결력이 탁월하며, 답을 얻은 후 연관된 또다른 질문을 하는 등 이해력이 빠르다.”고 설명했다. 영재들이 흔히 고정적인 틀을 깨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 가령 13을 반으로 나누면 1과 3을 나눠 ‘1과 3’이라는 답을 내놓거나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방법에 대해 대중교통 수단 외에도 “굴러가거나 누워서 가는 법도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 박사는 영재 교육 방법에 대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추의 부모를 예로 들었다.“그의 부모는 무엇인가를 만들며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아들을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었다. 단지 책을 많이 읽기를 권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관련 책을 아이 주변에 놓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면서 “아이의 취향을 따지지 않고 여러 학원에 보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궁금증을 일으키는 질문을 자주 하라고 당부한다. 가령 새를 보면 이름을 가르쳐주기보다 새가 나는 원리를 물어보는 식이다. 서울대 채승언 과학영재교육센터장은 창의적인 생각을 유도하는 다양한 질문을 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의자를 몸을 받치는 것이라고 가정하고 의자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유아는 다양한 모양을 상상할 것”이라면서 “창의적인 질문이 창의성을 잃지 않도록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다른 것을 못 해도 한 가지만 특출나게 하면 영재로 볼 수 있다.”면서 “가령 공부를 못 해도 요리엔 영재일 수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 성적이 떨어진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영재학회 김원주 고문은 “먼저 아이들을 오랫동안 주의깊게 관찰하되 만일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영재의 특성을 보이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만화가 고우영 화백 별세

    만화가 고우영 화백 별세

    만화가 고우영 화백이 25일 낮 12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66세. 유족들은 고인이 지난 2002년 수술을 받았던 대장암이 최근 재발, 폐로 전이돼 치료를 받아왔다고 전했다. 고인은 중학생때인 6·25전쟁중 피란지인 부산에서 ‘쥐돌이’를 출간, 만화계에 데뷔한 이후 50여년 가까이 만화를 그려오면서 대하 역사만화, 특히 중국 역사만화 분야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거장이다. 그는 1958년 고교 시절 둘째형 고일영이 ‘추동식’이라는 예명으로 연재하던 ‘짱구박사’를 ‘추동성’이라는 예명으로 이어갔으며, 고교 졸업후 곧장 전문 만화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고우영이 만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것은 1972년 1월1일 일간스포츠에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고우영 전매특허’인 해학과 기지로 성인들을 만화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으며, 아동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만화를 어른들도 즐길 수 있다고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그는 한 칸 혹은 네 칸의 신문만화의 관례를 깨고 25칸 안팎의 파격적인 지면을 선보이며 신문 연재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우영의 ‘임꺽정’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우할 정도였다. 1975년 ‘수호지’를 연재할 당시 대학가에는 좁쌀 같은 외모와 한없이 순박하고 바보스러운 주인공 ‘무대’를 사랑하는 ‘무대클럽’이 생길 정도였다.1978년 연재하기 시작한 그의 대표작 ‘고우영 삼국지’(사진 오른쪽)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될 만큼 인기를 끌었으며, 이 만화 때문에 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후에도 ‘초한지’‘열국지’ 등을 잇달아 연재하면서 그는 부동의 인기작가가 되었으며, 중국 역사를 망라한 만화 ‘십팔사략’도 펴냈다. 이같은 만화들은 단순한 고전의 해석을 넘어 당대의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유머와 해학,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고우영 특유의 비틀기로 독자들의 상상력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고인은 한국만화가협회 제15,16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 만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과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예인 우정상을 수상했다. 미망인 박인희(67) 여사와 3남2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례미사는 오전 10시 고양시 마두동성당에서 열린다.(031)901-4799.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하철 타고 세계로-외국문화원

    지하철 타고 세계로-외국문화원

    “지하철 타고 세계 여행 떠나요.” 반드시 비행기를 타야지만 외국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시내에도 각국의 언어, 영화, 노래, 그림, 서적 등을 접할 수 있는 외국 문화원들이 널려 있다. 외국 문화원을 떠올리면 어학전공자나 가는 곳이라 여기기 쉽지만, 해당 국가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충분하다. 시내에서 각국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외국 문화원들을 소개한다. ●빵굽는 냄새가 뿜어내는 낭만 - 프랑스문화원(1호선 서울역·2호선 시청역) 가난한 대학생들의 영화감상실로 유명했던 프랑스문화원은 여전히 ‘알뜰족’의 데이트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명물인 ‘프랑스 까페(Cafe de France)’에서는 프랑스인 주방장이 제공하는 갈레트, 크레프 등 프랑스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고층빌딩에 위치해 있는 데다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워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매주 금요일 6시30분에는 프랑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미디어도서관’에서는 프랑스 잡지(40여종),DVD(1400개),CD(800개) 등이 갖춰져 있다. 자료 열람은 무료로 할 수 있지만 대출을 받으려면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도서회원은 2만원, 미디어회원은 7만원이며, 일일 이용료는 5000원. 일주일에 한번씩 샹송, 회화, 영화클럽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참가비는 무료다. ●태극권 배워볼까 - 주한중국문화원(3호선 경복궁역·5호선 광화문역) 지난해 12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한국에 설립됐다. 문을 연 지 넉달밖에 안됐는데도 중국 마니아들이 속속들이 몰려들고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중국 무술인 ‘태극권’과 ‘중국의학’에 대한 강좌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학의 경우 대한중의협회와 공동으로 기초이론, 기(氣) 호흡법, 안마 등을 교재비(1만 5000원)만 받고 가르쳐준다. 매달 한 번씩 중국 문화에 대한 심층강좌도 열린다. 지난 23일 ‘중국경극감상’에 이어 다음달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 분석’에 대한 강좌가 마련된다.3000원을 내고 회원으로 등록하면 참여할 수 있다. ●‘닛폰필’ 받고 싶다면 - 일본공보문화원(3호선 안국역) 문화원 1층에 들어서면 ‘일본정보광장(JI·Sqaure)’에서 일본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다.3층의 ‘일본음악정보센터’에는 J-POP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CD,DVD, 뮤직비디오 등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신분증을 가져가면 무료로 회원증을 만들어주며 일본 관련 티셔츠도 준다. 도서관에 가면 일본 서적은 물론 일본 만화도 원없이 볼 수 있다. 매달 보름 이상 ‘이달의 상영작’을 정해 무료로 상영한다.4월에는 ‘춤추는 대수사선 2’가 상영되고 있다. 일본인 강사가 무료로 가르쳐주는 ‘일본무용’교실은 지난 24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터키요리 색다르죠 - 이스탄불문화원(2호선 홍대입구역) 터키 요리는 프랑스·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 요리로 꼽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터키 요리는 동·서양의 경계에 놓인 지리적 여건에 맞게 풍부한 재료로 다양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원은 케밥(고기), 필라프(볶음밥), 글레즈(터키식 찌개) 등 한국의 가정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위주로 매주 월요일 요리강좌를 열고 있다. 한달(8회)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서 10만원.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마다 터키식 홍차인 차이(Chay)를 마시면서 터키 문화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는 ‘티 파티’도 열린다.60∼70명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터키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안내 책자를 무료로 나눠주고, 일정까지 짜준다. 현지 홈스테이 가정도 연결해준다. 전화예약은 필수. ●몽골리안 삶의 냄새 -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5호선 광나루역)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로 서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다. 진흥원이 생겨난 배경은 조금 특이하다. 학교에 자녀를 보내지 못하는 몽골인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99년 몽골학교가 설립됐고, 같은 건물 3층에 몽골 울란바토르 문화진흥원이 들어섰다.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와 전통의상인 ‘델’, 말 모양의 현악기인 ‘머링호르’ 등이 볼 만하다.15인 이상이 관람하면 몽골 전통·현대 음악과 영화 등을 볼 수 있다. 한글 영화 자막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시에서 보내주는 정기 간행물도 볼 수 있다.‘몽골어학당’도 있으며 몽골 여행자에게는 현지 유목민과의 홈스테이를 주선해주기도 한다. 주말이면 몽골인·필리핀인·이란인 등이 모여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랑방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구파들 모여랏 - 영국문화원(5호선 광화문역) ‘영어의 종주국’답게 ‘어학센터’에서 무려 100여개의 강좌가 열리고 있다. 수강료는 사설학원에 비해 대체로 비싸지만 문화원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보유한 우수한 강사들이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일부 강좌는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학생들이 몰린다.‘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영어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또한 각종 간행물,CD, DVD 등을 통해 영국의 생활방식, 문화, 영국유학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이용하기 위한 연회비는 3만원, 하루 이용료는 3000원이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독일 - 독일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 호젓한 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원은 지하철보다는 시내버스(14·402번)로 가는 게 더 편하다. 경사에 위치해 있어 정문에서는 1층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어서면 4층이다. 사방이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남산 풍취를 즐기는 데에도 그만이다. 특히 3층에는 독일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카페테리아가 있어 남산을 산책하러 온 사람들이 쉬어 가기에도 적당하다.1만 2000여종의 서적·DVD·음반 등의 자료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독일어 교육1번지’로 통하는 명성만큼 세분화된 어학강좌도 마련되어 있다. ●패션·건축에 빠져볼까 - 이탈리아문화원(3호선 한남역) 예술의 나라답게 패션·건축 분야의 서적이 강하다. 디자인스쿨·요리학원·음악원 유학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있다. 다음달 29일까지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갤러리에서 ‘이탈리아 각 주의 예술과 맛’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전시한다. 이밖에 이스라엘 문화원(2호선 강남역)은 이스라엘과 유대학 등에 걸친 서적을 2000여권 갖춰 놓았다. 이스라엘에 관한 서적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신학생·신학자들이 즐겨 찾는다. 사진집도 여러 권 있어 일반인들이 중동지역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3개월 과정의 히브리어 초·중·고급 강좌도 열린다.26일까지 신청받는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전화·면담 우리말로도 가능 언어장벽 뛰어넘어 즐기기 “@%*$&!#?” 외국 문화원에 전화를 걸면 외국어가 나오기 때문에 당황하기 십상이다. 이 경우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 말로 묻고 싶은 것을 차분히 물어보면 된다. 문화원의 임무가 한국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를 알리는 것인 만큼 문화원에 한국인이나 기본적인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문화원을 방문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이 통용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스탄불문화원에는 한국에서 8년째 생활을 한 터키인이 구수한 한국말로 방문객을 맞아준다. 중국문화원의 중의학·태극권 강좌 등도 우리말로 열린다. 최근에는 우리말 자막을 넣은 영화도 많아지는 추세다. 프랑스문화원은 국내에서 상영됐던 영화에는 우리말 자막을 넣어준다. 일본공보문화원 영화에는 대부분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이탈리아문화원에는 예술의 나라답게 화집집이 많아 언어를 뛰어넘어 문화를 즐길 수 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터지면서 안 그래도 바쁜 몸이 더 바빠진 사람이 있다.‘한국현대사 1호 박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 여기저기서 그를 모시려는 손짓도 늘었다. 연이은 모임과 회의에 지쳤는지 인터뷰 자리에 앉으면서도 “회의부터 줄여야 돼.”라면서 웃는다.‘학자는 연구논문으로 말한다.’는 지론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면서도 역사문제를 거론할 때는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얘기는 마침 20일 출범식을 가진 ‘동북아 바른 역사기획단’에서 풀어 나갔다. 기획단은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민관합동 대응기구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기존 기관과 단체를 놔두고 또 하나의 단체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슈가 터질 때 취해지는 일종의 ‘오버액션’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 교수도 “고구려연구재단 발기인대회 때부터 그런 주장을 했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연구재단’하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해놔야 중국·일본측 연구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역사문제는 무엇보다 민간 연구자들간 교류가 핵심인데 일이 생길 때마다 국가기구를 만든다면 외국에서 뭐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답을 묻자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동북아 균형자론’ 긍정적 평가 이어서 이게 정말 역사전쟁이냐고 물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모두 껍데기는 ‘역사학’이지만 속 내용은 결국 ‘정치학’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서 교수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답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미 역사학의 문제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다.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중·일 ‘공동’의 역사인식은 가능할까. 알려진 대로 서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월 중 한·중·일이 함께 만든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백영서 교수는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동아시아사로 통합됐다기보다 서로 분리된 채 한·중·일 3개국의 역사를 모아 놓은 삼국지 같았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런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한·중·일 3개국 국민 모두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서 교수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이는 역사왜곡사태 와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한·중·일 시민사회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점을 꼽는다는 데서 잘 드러났다. ●한·중·일 시민사회 수준 한단계 올라서 서 교수는 역사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양심세력들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제약받던 민주시민의식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사람들도 왜 일본 우익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본에 강하게 대응하면 반중·반한 감정만 생긴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외려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강하게 대응해 일본에 일정 정도 충격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일본 자신을 위해 좋고 한국과 중국에도 좋다.”고 말했다. 얘기를 최근 사학계의 논쟁점 가운데 하나인 대중독재론으로 돌렸다. 일단은 부정적이었다. 서 교수는 “그 논리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어떤 한 사건이나 일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본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정희 향수를 예로 들었다. 서 교수는 60년대 경제개발의 원인으로 ▲한·일수교, 베트남파병 등으로 해외차관 도입이 쉬웠고 ▲50년대 대거 배출된 한글세대로 산업예비군이 풍부했는데다 ▲50년대말부터 미국 유학파들이 귀국하면서 이들이 기술관료로 행정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테면 자본+노동력+테크노크라트 3박자가 완비됐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을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 덕분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낮은 수준의 역사인식”이라는 비판이다. ●한국현대사는 功·過 양 측면 모두 봐야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니 뭐니 해서 한국 현대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대신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공이다, 과다라고 딱 잘라 나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면서 “양 측면을 모두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잊지 않았다. 올해 서 교수의 연구초점은 해방공간에서의 좌파·민족주의 그룹인 여운형·김규식·김구 등이다. 조봉암과 이승만에 이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길섶에서] 삼국지/이호준 인터넷부장

    삼국지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장수는? 얼마 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에서는 “무력으로만 봤을 땐 여포가 최고”라는 분석을 내놨다. 기사를 읽으며 생각은 과거로 달렸다. 여남은 집에 불과한 산골에서 책이라고 부를 만한 걸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한글 깨우친 값을 한다고 그랬는지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는 했다. 오죽하면 누구 집 변소에 찢어진 책이 걸려 있다는 정보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을까. 삼국지를 처음 읽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박종화의 월탄 삼국지였다. 마을 유지 집에서 그 거대한(?) 한 질의 책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이야말로 산삼을 본 심마니의 그것이었다. 절대 더럽히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빌려온 책을 읽기엔 밤이 너무 짧았다.“기름 닳는다, 불 끄고 자라.”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얘기를 동료에게 하며,“요즘 애들은 삼국지 안 읽지요?”라고 묻자 뜻밖의 대답을 한다.“더 열심히 읽어요. 삼국지게임을 잘 하려면 책 읽는 건 필수랍니다.” 목적이야 어떻든 열심히 읽기만 한다면….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할인점 Big3 구로서 ‘진검승부’

    할인점 Big3 구로서 ‘진검승부’

    서울 구로 지역에 ‘할인점 삼국지(三國志)’가 펼쳐진다. 신세계 이마트 구로점과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이어 오는 6월 롯데마트 구로점이 문을 열어 ‘할인점 빅3’가 한판 진검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옛 구로공단 지역이 아웃렛 거리로 재개발된데 힘입어 ‘유통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고 있는 데다 인근의 목동 지역에 인구 30만의 탄탄한 중상류층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활밀착형 점포’ 표방 이 때문에 오는 6월 구로점을 오픈하는 롯데마트는 후발주자인 만큼 이마트·홈플러스 등과 차별화를 위해 세계적인 홈인테리어 업체인 영국의 B&Q 매장을 들여오는 등 ‘생활 밀착형 점포’로 태어나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전략이다. 영업면적 4720평인 구로점은 지하 1층∼지상 6층 규모. 지하 1층에는 2000평 규모의 ‘B&Q’ 단독 매장이 들어서며 지상 1∼2층에는 롯데마트 매장,3∼6층에는 주차장으로 구성된다. 생활 밀착형 점포인 만큼 구로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B&Q’ 매장이다. 유럽 지역에 570개 매장을 열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B&Q는 가구·욕실용품, 조명·페인트, 벽지 등 집을 꾸미는데 필요한 모든 홈인테리어 제품을 갖출 예정이다. ●세계적 홈인테리어업체 英 B&Q 매장 국내 첫선 여기에 생활 인테리어 전문 매장인 ‘라메종’을 보강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가정·생활 인테리어’ 전문 할인점으로 탄생한다. 150평 규모인 ‘라메종’은 집꾸미기를 즐기는 30∼40대 주부를 겨냥해 액자·시계 등 각종 장식소품을 비롯, 방석·쿠션 등 홈패션, 가구 및 커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예·인테리어 토털상품을 한자리에 모아 내놓는다. 친환경 농산물 매장인 ‘자연애찬’도 구로점의 자랑거리다. 17평 남짓한 ‘강소(强小)’ 전문 매장인 ‘자연애찬’은 매장 전체를 냉장실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할인점 식품코너의 온도가 섭씨 22도 안팎인데 비해, 이 매장은 전체 온도를 12도에 맞추어 농산물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유지·보관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3년 이상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비료도 쓰지 않고 재배한 재료로 만든 가공식품 유기농 전문매장인 ‘허클베리팜스’가 입점하고, 백화점식 샐러드바가 들어서 각종 신선한 채소와 생과일 등을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할 예정이다. ●휴게실·계산대 대량 설치 고객편의 도모 노병용 롯데마트 전무는 “구로점이 생활 밀착형 점포인 만큼 가정생활 관련 상품 구색을 두루 갖추는 것 외에도 할인점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소비자들의 편의시설도 대폭 확충할 계획”이라며 “20평 규모의 고객 휴게실을 운영하고, 이웃한 이마트 구로점이 23대의 계산대를 설치한데 비해 40대의 계산대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할인점 선두주자인 이마트의 수성 의지도 확고하다. 지난 1999년 8월 문을 열어 ‘터줏대감’인 이마트는 매장 면적 2500평 규모로 구로 디지털 밸리와 붙어 있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 덕분에 다른 점포보다 사무용품 등의 매출이 높고 캐주얼의류와 레저용품의 매출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인균 이마트 상무는 “롯데마트의 오픈까지 두달 정도 남아 있어 매장 콘텐츠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롯데마트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기존점들은 추이 살피며 ‘수성 전략’ 부심 업계 2위인 홈플러스 영등포점도 소비자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의를 다지고 있다. 영등포점은 홈플러스 서울 1호점인 만큼 백화점식 할인점을 지향해 소비자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할인점으로는 이례적으로 문화센터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쇼핑몰과 문화강좌를 결합한 퓨전 형태의 신개념 할인점이라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할인점에서 잘 볼 수 없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영풍문고, 골프전문점, 병원, 은행 등 각종 편의시설과 전문매장 등을 유치해 차별화하고 있는 것이다. 설도원 홈플러스 상무는 “영등포점은 홈플러스의 대표주자인 만큼 고급스럽고 편리한 쇼핑공간을 지향하는 등 가치점 개념에 걸맞은 영업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전용 라운지·전담 직원·기념일 꽃바구니… “VIP를 왕처럼…” 롯데마트 구로점의 ‘얼굴’은 ‘VIP 마케팅’이 될 전망이다. 할인점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역점에서 시범 실시하고 있는 VIP 마케팅이 구로점에서 활짝 꽃이 필 것으로 보인다. 구로지역 다른 할인점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실시되는 VIP 마케팅은 마일리지 상위 1% 소비자 400명을 선정해 MGM(Mileage Gold Member)카드를 발급,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16평 규모의 MGM 전용 라운지 무료 이용(다과 제공)과 전용 계산대, 전담 직원의 배치, 무료 주차 스티커의 발급, 결혼 기념일과 생일 등 각종 기념일에 축하 꽃바구니 전달 등의 서비스를 실시한다. 남창희 롯데마트 마케팅실장은 “MGM 회원의 선정 기준은 점포별 마일리지 회원 가운데 최근 3개월간 구매액의 상위 1%와 월평균 5회 이상 점포를 방문한 소비자들로,6개월마다 재선정한다.”며 “생필품을 취급하는 할인점이지만, 구매액의 상위 1%의 소비자 매출액이 전체 매출의 8%나 차지해 점포의 충성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만큼 대외 이미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만주 고대사는 쥬신족의 역사”

    지난해 한국을 들끓게 했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쥬신사’가 해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의 주인공은 동양대 김운회 교수. 그는 책으로도 출간돼 관심을 끌었던 ‘삼국지 바로 읽기’에 이어 ‘대쥬신을 찾아서’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동북공정은 만주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다. 이 싸움에 대한 기존 접근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고구려사지키기와 요동사적 관점, 변경사적 관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3가지 관점 모두 약점을 안고 있다. 고구려사 지키기는 우리 역사를 지킨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과거를 현재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재단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요동사 개념은 만주를 중국·한국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상정, 차분하게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었지만 고구려·발해라는 역사적 실체마저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변경사는 근대의 국가·국경·민족 개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시각을 제공하긴 했지만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일 뿐 전체적인 얼개는 없다. 김 교수의 ‘쥬신사’는 이런 시각을 모두 뛰어넘어 ‘쥬신족’의 역사를 내세우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틀은 기존의 상식과 전혀 다르다. 중국이 제시하는 ‘중국VS주변국’이라는 중화주의 사관이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데 반해 김 교수는 이 틀 자체를 ‘몽골-만주-한반도-일본의 쥬신족VS중국의 한족’으로 바꾼다. 즉 만주의 역사는 바로 ‘몽골-만주-한반도-일본’에 걸쳐 있던 쥬신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 현재의 중국 땅에 있었다고 해서 모두 중국사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모두는 중국사가 아니라 쥬신족의 역사다. 지금 현대의 중국은 용케도 청나라를 물려받는 바람에 그 영역이 커진 것일 뿐이다. 이런 김 교수의 접근법은 현재의 국가·국경·민족 개념을 절대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시에 역사적 실체를 모두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김 교수 역시 지나친 민족주의적 편향성은 거부하고 있다. 단순히 한민족의 영광이 아니라 쥬신족의 분화를 차분하게 짚어보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몽골비사’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문헌, 풍속·민담·설화 등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 인종 등에 대한 DNA분석 등을 끌어다 쓴다. 이를 통해 중국이 ‘서융(西戎)’,‘북적(北狄)’,‘동이(東夷)’라 불렀던 흉노·선비·말갈·예맥·숙신·여진·만주족의 뿌리는 결국 쥬신족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들 명칭은 모두 해가 뜨는 나라라는 뜻으로 쥬신은 조선의 옛 발음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백영서 연세대교수 3國 공동 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 분석

    일본의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이 도마에 오르면서 역사왜곡의 탈출구를 찾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탈출구 모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2001년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이후 한·중·일 3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과거사를 서술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대구 전교조와 히로시마 교원노조, 한·일교과서연구회, 한·일역사교육교류회도 나섰고 한·중·일 3국의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도 있었다. 분노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안을 내기 위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공통점은 ‘일국사’가 아닌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 접근해보자는 아이디어다. 이들 작업의 의미와 노력은 인정하면서도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6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에 관한 한·일학술대회’에서 연세대 백영서 교수가 이 같은 주장을 내놨다. 백 교수는 ‘동아시아 담론’을 주도해온 대표적 학자 가운데 한명으로 꼽힌다. 한·중·일 공동 역사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를 분석한 백 교수의 비판 논리는 ‘동아시아사로서의 관점이 불명확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각국 역사 병렬적 나열에 그쳐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동아시아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한·중·일 3국 역사서술을 단순히 ‘합친다.’는 뜻이 아니다.“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구조적으로 연관시켜 파악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동 부교재는 ‘일제의 수탈과 피식민지의 피해’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 것 외에는 한·중·일 3국사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삼국지’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동아시아사를 지향한다는 공동부교재 역시 여전히 “국가중심의 역사서술”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비판은 공동 역사부교재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예견됐었다. 역사부교재 사업을 두고 길게 봐서는 어차피 3국 민족주의자들간의 싸움으로 끝날 것이라는 노골적인 비아냥도 있었고 “과거에 대해 ‘동일한 기억’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는 무슨 의미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있었다. ●국가중심 역사서술 고집 여전 그렇다면 일본 역사·공민교과서 왜곡으로 벌어진 역사전쟁을 뛰어넘는, 동아시아사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백 교수는 한국의 발전, 중국의 발전, 일본의 발전이라는 ‘일국사’의 관점을 유지하는 한 “휴전은 이뤄져도 평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 사회에 본질적인 성찰을 가능케 하는 사건으로 ‘한승조 파문’을 꼽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의 노선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매진해온 한국사회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는 ‘야생초편지’의 저자 황대권씨가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현 정부에 답을 요구한 질문과 일맥상통한다.“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선진한국’ 건설과 ‘친일진상규명’을 동시에 이루려는 집권여당은 일본의 길을 따라 ‘선진조국’ 건설에 앞장서 온 친일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주말화제] 삼국지 장수중 누가 가장 셀까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누구일까. 삼국지를 학술적 차원에서 연구해 일명 ‘삼국지연구소’라고 불리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의 조성면(39) 연구원은 “단순 무력으로만 봤을 때는 여포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어 관우-장비-조자룡-마초-황충-위연 등의 순이다. 그러나 종합적인 장수적 자질에 있어서는 관우를 최고로 꼽았다. 연구소측은 또 지략이 뛰어난 책사(策士)를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순욱 순으로 평했다. ●인하대 삼국지硏 ‘국내본 300종’ 분석 인류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가 해부된다. 연구소는 지난해 9월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2년 기한으로 ‘삼국지 역본 및 서사변용 연구’라는 색다른 책무를 부여받은 뒤 조선 중기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400여종의 삼국지 한국어 번역 판본을 발굴·조사 및 해석하는 작업을 펴고 있다. 정학성 인하대 국문과 교수와 중문학과 국문학 등을 전공한 5명의 연구원이 맡고 있다. 현재 수집한 삼국지 판본 300종에 대한 학술적 해제작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내년에 연구성과를 논문과 단행본 등으로 발표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사서에 삼국지 이야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선조 2년(1569년)으로 성리학자 기대승의 상소문에 “삼국지가 널리 읽혀 풍속의 괴란이 우려된다.”는 문구가 나온다. 이때 이미 삼국지가 유행했다는 증거다. 당시 원본을 손으로 옮긴 필사본을 비롯해 목판본·납활자본 등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석판본이 수입됐다. ●지략은 제갈량·방통·사마의·육손順 조선 정조 이후는 삼국지가 상업적 측면에서 출간되다가 1904년에 근대화 판본인 구활자본이 박문서관에서 간행되었다.1929년에는 양백화에 의해 최초로 신문(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1945년에 현대화된 판본인 ‘박태원 삼국지’가 등장했다. 해방 이후에는 삼국지 출간이 본격화돼 지금까지 370여종이 발행됐으며, 삼국지 처세학·경영학·논술 등 실용서도 50여종 등장했다. 최근에는 비디오·컴퓨터게임·애니메이션 등 ‘읽는’데서 ‘보고 즐기는’ 형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1800여년 전의 일이 첨단 문명시대를 사로잡는 ‘삼국지 신드롬’에 대해 윤진현(37) 연구원은 “삼국지 만큼 인물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 세계적으로 드문데다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역사연구에 일반인의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근대 이후에 발간된 삼국지 판본은 중국 ‘모종강류’와 일본 ‘요시가와 에이지류’가 양대 산맥이다. 모종강은 1494년 나관중이 펴낸 ‘삼국지연의(삼국지 원전)’를 소설 성격으로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삼국지연의가 서기 285년 진나라 역사가 진수가 3부 65권으로 펴낸 정사(正史) ‘삼국지’를 참고하고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종합정리한 것이라면 모종강은 서사적 구성을 완결지었다. 우리나라의 박태원, 최영해, 박종화, 김구용 등이 쓴 삼국지가 모종강류인데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적 묘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반면 김동리, 김광주, 양주동 등이 쓴 삼국지는 1939년 요시가와 에이지가 현대적 기법으로 재창작한 것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다. ●7은 사실,3은 허구 삼국지 최대의 논란은 역사적 사실과의 괴리. 내용 가운데 70%는 사실이고 30%는 허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나 오히려 허구가 더 많다는 분석도 있다. 대부분 성인군자로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 유비에 대해 연구소측은 “유비는 ‘쪼다’이면서도 ‘음흉’한 측면을 지닌 이중인격자였다.”고 주장한다. 제갈량은 비바람까지 부르는, 신에 가까운 전략가로 등장하지만 실제론 재정 등 내치를 담당하는 참모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여포는 정원과 동탁 등 양아버지를 잇따라 죽이는 ‘배신’의 상징으로 그려졌지만 여포가 정통 한족이 아닌 색목인(위구르족)이었기에 상대적 폄하를 받았다는 시각도 있다. 조 연구원은 “삼국지는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촉한 정통론’의 시각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실(史實)과 부합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면서 “작가의 의도가 많이 가미됐다는 것을 알고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儒林(314)-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14)-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유서를 쓰고 난 후 정오에는 제자들을 만나보았는데, 몸이 편치 못하니 그만두라고 자제가 말렸으나 ‘죽음과 삶이 갈라지는 이때에 마지막으로 만나보지 않을 수 없다.’고 한 후 상의를 벗고 의관을 정제한 후 제생들을 불러 모아 놓고 결별의 말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평소에 잘 모르는 것을 가지고 제군들과 더불어 날이 저물도록 강론을 하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연보에 의하면 죽기 사흘 전 12월5일에는 죽은 후 자신이 묻힐 ‘관을 미리 짜라고 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분매에 물을 주라.’는 최후의 유언은 가족, 그리고 제자들과 차례로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관까지 짤 것을 명령한 후 임종하는 그날 아침에 행한 것이므로 실제로 퇴계의 입에서 나온 가장 마지막 일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퇴계는 어찌하여 이 분매를 그토록 사랑하였을까. 물론 퇴계 스스로가 표현하였던 대로 이 분매가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퇴계가 그 매화꽃을 빙설(氷雪)에 비유했던 것은 문자 그대로 눈처럼 깨끗하고 결백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빙설은 ‘얼음과 눈’이라는 뜻 이외에 ‘청렴과 결백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 아닐 것인가. 그러나 이 매화가 한성에서 이별할 때 증답가(贈答歌)를 통해 매화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임이 돌아간 뒤에 천향(天香)을 피우리라.(待公歸去發天香) 원컨대 임이시여, 마주 앉아 생각할 때(願公相對相思處) 청진한 옥설 그대로 함께 고이 간직해주오.(玉雪淸眞共善藏)” 노래에 나오는 임(公)이란 즉 퇴계 자신을 이르는 말. 그러므로 이미 떠난 뒤에도 ‘천향’, 즉 천하제일의 향기를 피우겠다는 말은 바로 매화를 의인화시켜 매화가 퇴계에게 한 맹세였던 것이다. 또한 ‘원컨대 임이시여, 마주 앉아 생각할 때’라는 시 구에서 사용된 ‘상사처(相思處)’란 말을 직역하면 문자 그대로 ‘마주 앉아 생각할 때’란 뜻이 되지만 원래 ‘상사(相思)’라 함은 ‘남녀간의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의역하면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 것이다. “원컨대 임이시여, 우리 서로 사랑할 때” 또한 ‘천향’이란 말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 ‘천향국색’은 ‘천하제일의 향기와 자색’으로 ‘모란꽃’을 가리키는 말도 되지만 ‘절세의 미인’을 가리킨다. 특히 삼국지에 나오는 왕윤의 가기(歌妓)였던 초선(貂蟬)을 ‘천향국색’으로 불렀던 것이다. 왕윤은 간신 동탁을 죽이기 위해서 초선을 동탁에게 진상하는 한편 동탁의 호위대장이었던 여포에게도 추파를 보임으로써 삼각관계를 만들어 미인계를 통하여 동탁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천향’이라함은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과 같은 절세미인을 가리키는 말로 퇴계가 그 분매를 마치 절세미인처럼 사랑하고 있었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퇴계가 그 분매를 상사하고 그리워하였던 것은 다만 그 매화가 아름답고 향기로웠기 때문이었을까. 그 매화에 얽힌 사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임과 이별을 한 뒤에도 천향을 피우는 것은 매화가 아니라 어떤 여인의 향기가 아니었을까.
  • 朴대표 ‘빛 감추고 힘 길러야’ 盧대통령 비판

    朴대표 ‘빛 감추고 힘 길러야’ 盧대통령 비판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전쟁 불사’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속은 후련하지만, 외교적으로는 신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당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지난 2년 동안의 참여정부 외교정책을 되짚어보자는 얘기도 나왔다. 박근혜 대표는 24일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노 대통령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도광양회’란 삼국지의 제갈량이 유비에게 권했던 전략으로 1980년대 덩샤오핑은 이를 외교정책의 뼈대로 삼았다.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국력이 생길 때까지는 침묵을 지키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고, 전술적으로도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박 대표는 “중국은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뜻의 ‘도광양회’를 외교정책으로 썼다.”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실력과 힘을 기른다는 뜻인데,(이와 비교해)대통령의 발언은 문제가 없는지, 옳은 길인지 짚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섭 원내대표도 “국내 정치를 돌파하듯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외교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외교부는 한·일 어업협정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얘기하는데, 대통령은 느닷없이 강경포를 쏘아대는 것은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씨줄날줄] 반국가분열법/이목희 논설위원

    “천하대세란 분열한 지 오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된 지 오래면 반드시 분열한다.” 삼국지연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중국은 겉으로는 통합을 이뤄가는 과정으로 비쳐진다. 대부분 국가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있다. 홍콩·마카오를 반환받았고, 독립을 추구하던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도 중국 통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단일중국의 꿈’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안으로 소수민족 문제가 걸린다.1억명이 넘는 55개 소수민족이 국토의 50%이상을 차지한다. 동남해안지역과 내륙간 개발불균형과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민주화 및 독립욕구가 언제라도 봇물처럼 터질 수 있다. 목엣가시는 타이완이다. 잘못 다루면 천하대세는 분열쪽으로 급격히 반전된다. 엊그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반국가분열법’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킨 것은 천수이볜 타이완 총통의 독립기도를 무력으로라도 막겠다는 취지다. 타이완의 뒤에 미국이 있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미국은 타이완과의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했지만, 안보공약은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일본과 함께 타이완해협을 공동전략 목표로 설정했다. 호주도 ANZUS조약을 들어 협조 여부를 재고 있다. 반국가분열법을 지지한 측은 러시아·파키스탄·벨로루시 등 무력지원이 힘든 나라뿐이다. 중국은 타이완이 상하이나 싼샤댐을 공격하면 ‘궤멸성 보복’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수백기의 미사일을 퍼부으면 10시간내에 타이완이 초토화될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고 한다. 타이완의 군사력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제 F16과 프랑스제 미라주 등 첨단전투기와 톈궁·슝펑 미사일이 대륙을 향해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150대의 항공기,500대의 탱크와 1만 7000여 병력을 태운 3∼4척의 전략예비함을 타이완해협에 바로 투입할 태세를 갖추었다. 동북아 갈등 및 패거리짓기 국면에서 어정쩡한 나라는 한국이다. 북핵이 꼬일 대로 꼬였고, 주한미군 역할한계가 논란중이다. 양안 전쟁이 당장 나지 않더라도, 긴장고조만으로 우리의 입지는 어려워진다. 미국·일본·타이완의 견제축에 대항해 중국이 북한과 군사동맹 수준을 회복한다면 큰일이다. 북한은 반분열법을 적극 지지했다. 미국과의 안보공조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척지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가 나와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학습만화 전성시대

    지금 어린이 출판시장은 학습만화가 ‘대세’이다. 교과서, 역사적 인물, 고전 등 다양한 읽기 소재들이 만화시리즈로 모양새를 바꾸고 서점가를 장악해가는 추세다. 만화를 동네 만화방에서 취미로 빌려보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 요즘 어린이들에게 만화는 키득키득 웃고 넘기는 단순 흥밋거리가 아니라 학습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는 ‘교양서’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출판시장의 고질적 불황 속에서도 학습만화 시리즈의 파워는 대단하다.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의 하나였던 한자학습 만화 ‘마법천자문’시리즈(아울북).2003년 11월 1권이 나온 이후 7권까지 출간됐다. 출간 1년 남짓 새 팔아치운 부수는 모두 230만부. 여전히 한달 평균 25만부 정도는 팔려나간다는 게 출판사측의 얘기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신지원 팀장은 “만화가 갖는 ‘재미’요소에 ‘학습’요소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것이 학부모들에게 지갑을 열게 한 주요배경이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학습만화 시장의 전망을 확인한 이 출판사는 학습요소를 좀더 상향시킨 또 다른 시리즈 ‘한자놀이북’(전10권)을 잇따라 내놓아 짭짤한 재미를 챙겼다. 만화가 교양서의 하나로 떳떳이 ‘대접’받게 한 수훈갑은 지난 2000년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가나출판사).20권 완간을 목표로 현재 18권까지 선보인 시리즈는 어린이는 물론 성인독자들까지 포섭하며 110만부라는 기록적 판매고를 올렸다. 가나출판사의 한 관계자는 “학습만화의 주요 공략층은 역사나 위인들의 세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는 초등 3∼4학년생”이라면서 “불경기에도 교육비쪽 지출변동폭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판단에서 단행본 전문 출판사들도 요즘엔 너나없이 만화시장으로 눈돌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시내 대형서점들마다 전에 없던 ‘학습만화’코너가 속속 새로 생겨나는 건 그 방증이다. 시각문화에 익숙한 ‘이미지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만화는 매력적인 장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짝 특수’를 노린 무분별한 만화출판 경쟁에 독자들이 애매하게 피해를 입을 여지가 큰 게 사실이다. 실제로 ‘마법천자문’이 베스트셀러로 뜨자마자 우후죽순 쏟아져나온 유사기획물은 무려 20여종. “특히 역사나 인물을 해석하는 만화들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고증작업이 선결돼야 하는데, 자질 미달의 작가들이 졸속으로 글을 쓰고 엉터리 그림을 그리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한 기획자는 꼬집었다. 책읽기의 자세를 놓고 고민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아이들에게 만화로 학습교재나 고전을 이해하는 습관을 들여놓는 게 옳은지 의문스럽다.”는 주부 박경(36)씨는 “당장 ‘만화 삼국지’를 먼저 읽혀도 좋을지, 억지로라도 삼국지책을 먼저 읽혀야 할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그 모든 해답이 출판사의 양식에 달린 문제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역사소설 왜 뜨나?

    한국소설이 ‘역사’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작가들이 내놓는 신작 가운데는 역사 소재의 작품들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그 자체를 커다란 트렌드라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침체된 문학시장의 활로를 뚫는 기제로 역할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심장한 흐름이라는 게 출판가의 중론이다. ●꾸준히 ‘발언’하는 역사소재 소설들 역사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기있는 소설 소재였다. 하지만 근년들어 이른바 ‘역사소설’들이 문학시장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사뭇 달라졌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군이 몇몇으로 한정됐던 예전과는 달리 젊은 인기작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각도로 그려낸 김훈의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 이후만 봐도 그 분위기는 감지된다. 예술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예술혼을 다룬 김훈의 또 다른 역사소설 ‘현의 노래’에 명기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불러낸 전경린의 ‘황진이’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8권으로 완간된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여성화가 나혜석의 실제 삶에서 모티프를 따온 함정임의 ‘춘하추동’, 신라왕실을 주름잡은 요부 미실의 삶을 그린 김별아의 ‘미실’이 최근작들. 베스트셀러 ‘풍수’의 작가 김종록도 이번주 조선시대 천문학자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전2권)를 내놓았다. 특정인물을 벗어나 역사 자체를 글감으로 잡은 작품들로 눈을 돌리면 사례는 더 많아진다. 장정일이 여성적 시각에서 썼다는 ‘소설 삼국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작품이다. ●한승원도 ‘정약전 주인공’ 곧 출간 출간 ‘예약’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달 말엔 중진작가 한승원이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문이당)을 내놓는다. 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선교사로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주인공을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정약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복원해낼 것”이라는 게 출판사측의 설명이다. 또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주인공인 김탁환의 추리소설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여름에 출간된다. 황금가지는 미 군정기에 암약했던 여간첩 김수임을 그린 김탁환의 또 다른 소설(제목 미정)도 겨울쯤 내놓을 계획이다. 김별아도 내친김에 조선시대가 배경인 역사소설을 잇따라 쓰고 있는 중이다. 역사소설 특히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쓰기의 경향은 크게 두가지 배경에서 출발한다. 먼저 이전의 역사소설들과는 달리 최근엔 개인주의적인 서술방식으로 씌어지고 있는 추세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영웅담에 의존하는 국가주의적 서술태도나 성적 흥미를 추구하는 야사 중심에서 벗어나 요즘 작가들은 개인주의와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개별인물을 통해 거꾸로 집단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칼의 노래’,‘황진이’,‘미실’, 장정일의 ‘삼국지’ 등이 모두 그런 유형에 든다. ●일부 작가들 “아이디어 빈곤 극복 대안” 일부 작가들은 아이디어 빈곤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역사소설 장르를 택하기도 한다. 김별아는 “현실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그 속에서 문학적 가치를 짚어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고백한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 또한 역사소재 소설 쪽으로 쉽게 쏠리는 게 사실. 전경린의 ‘황진이’는 15만부나 팔렸고 ‘미실’도 출간 보름여 만에 4쇄(5만부)를 찍었다. 초쇄 3000부를 소화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국내 소설시장의 현실에서 놀라운 성적이다. 민음사 이수은 문학팀장은 “역사소재 소설은 픽션이면서 동시에 실재의 이미지를 가미할 수 있어 상업적으로 봐도 불리할 게 없다.”며 “그들의 선전은 하향 문학시장에 대한 경고이자 반동으로 읽혀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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