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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202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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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국보지정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제419호 ‘삼국유사(三國遺事·권3∼5 3권1책·사진)’를 국보로 승격시키는 한편 ‘삼국유사’ 판본 4종을 보물로 지정하기로 했다. 또 초조본 아비달마계신족론 권하(初雕本 阿毘達磨界身足論 卷下)와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제삼(初雕本 顯揚聖敎論 卷第三)을 보물로 지정하기로 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서동철기자 dcsuh@
  • 28일 정년퇴임 조유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땅꾼’33년…””떠나도 발굴현장 지켜야죠””

    ‘한국 고고학계의 불도저가 이제 엔진을 끄는가?’발굴현장이면 어느 곳이건 마다하지 않고 찾아나서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중심에 서 왔던 조유전(趙由典·60)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28일 퇴임식을 갖고 초야로 돌아간다.서울대 고고인류학과(현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문화재관리국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소장은 33년6개월간 문화재 관리로 일하면서 밤낮을 가리지않고 발굴현장을 뛰어다닌 덕으로 ‘불도저’란 별명을 얻었다.퇴임에 앞서 경복궁내 문화재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지난날의 감회 때문인지 평소 말이 없던 것과는 달리 말꼬리를 놓지 못했다.오직 문화재 발굴에만 열정을 쏟아온 외길 인생답게 “비록 관리직을 떠나지만 천직이 ‘땅꾼’인 만큼 언제까지나 발굴현장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평생 발굴을 업으로 삼아 살아왔지만 ‘발굴은 파괴를 수반한다.’는 말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학문적인 발굴이건 아니건 발굴조사란 미명 아래 공연히 우리 문화재를 파괴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되돌아 보니죄를 많이 지은 것 같습니다.” 겸손한 퇴임의 변일 수도 있지만 뼈에 사무친 그만의 문화재 사랑이 물씬 묻어났다.쉼 없이 학술조사차 발굴현장을 찾았지만 발굴과정에서 문화유산이 혹시 훼손되지나 않을까,마치 갓난 아기 다루듯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는 설명이다.숱한 문화유산의 보고가 개발 정책에 밀려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이 부지기수라고 귀띔했다. “학문적 발굴보다는 개발에 따른 유적 파괴가 너무 많은 실정입니다.건물신축에 앞서 하는 ‘구제발굴’은 자칫 유적 자체를 없애는 결과를 불러옵니다.내 자신이 구제발굴에 몸담은 것은 아니지만 국토개발이 워낙 많다 보니나 역시 따라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많습니다.” “문화재 발굴은 항상 신비스럽다.”는 조소장은 아무리 고단해도 옛 사람들의 혼을 만난다는 기쁨이 앞서 현장을 찾아가지 않고는 못배겼다고 한다.“지금이야 토기며 자기가 대량생산되지만 우리 문화유산에는 개개인이 일일이 손으로 빚어 만든 혼이 담겨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문화유적 발굴은항상 신중해야 하고 특히 고고학자는 늘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 33년6개월간 경복궁 울타리에서 한번도 떠난 적 없이 공직생활을 마치게 된 것만도 행운으로 생각한다는 조소장.정부종합청사 건립을 비롯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민속박물관 건립,경복궁 복원 등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스스로를 ‘땅꾼’으로 부르듯 역시 발굴현장에서의 일이 가장 기억에 생생하다.그중에서도 하룻밤 새 발굴 작업을 마친 1971년의 공주 무령왕릉 졸속 발굴은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자책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실수지요.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로 2년째 일하던 때입니다.개인적으로 최초의 왕릉 발굴인 만큼 여느 발굴처럼 하룻밤 사이에 끝낼 일이 아니었지요.지금은 문화재 발굴의 교훈처럼 됐지만,두고두고 죄인의 입장에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기억에 생생한 일들이 적지 않다.1978년 30t 무게의 황룡사 9층탑 중심초석(심초석)을 들어내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간신히 크레인을빌려쓴 일,하마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경남 창원공단 야산의 패총을 고집을 부려 발굴해 어엿하게 보존할 수 있게끔 한 일들이 그것이다. 특히 신문왕이,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아버지 문무왕의 뜻을 기려 만든 감은사에,부왕이 찾아올 수 있도록 동해에서 감은사로 통하는 용혈(龍穴)을 만들었다는 삼국유사 기록을 실제로 확인한 일은 큰 보람으로 남는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난 4월 10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 최초의 사전인 ‘한국고고학사전’을 펴낸 일은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후 발굴현장을 다닐 때마다 줄곧 고고학사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91년 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장 시절 처음 발의했는데 10년 만에 뜻을 이룬 셈이지요.평생 죄만 짓고 살았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위안이됩니다.후학들이 잘 가꿔서 완벽한 사전으로 보완하기를 바랍니다.” 학문의 세계,특히 문화재 연구는 계속 연결되는 지속성을 생명으로 한다는 그는 일반인들의 문화재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을 주문한다. “문화재는 문화재를 관리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산입니다.국민 모두가 주인이 돼야 하고 주인된 입장에서 갈고 닦아야 합니다.문화재 관리가 허술하다는 비난과 지적이 만성적으로 나오다 보니 으레 관리소홀이 입길에 오르지만 국민의 자가당착적인 의식 탓도 큽니다.내가 주인이란 생각이 바로 올바른 문화시민의 덕목이 아닐까요?” 퇴임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대학교수로 간다느니,모 발굴단체장을 맡았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모두 헛소문입니다.발굴현장만 좇다 보니 가정에도 소홀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요.조금 쉬다 보면 무언가 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문화재 관련 분야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내가 꼭 필요하다면 미력이나마 돕겠다는 생각입니다.” 김성호기자 kimus@
  • 리뷰/ 전통공연 지루함 깬 버라이어티 쇼, 연오랑과 세오녀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시끌벅적한 관객석을 조용히 잠재운다.신비한 연기에 휩싸여 해가 떠오르자,붉은 옷과 흰 옷을 입은 해와 달의 정령들이 징 꽹과리 태평소 대북 등의 리듬감 넘치는 연주에 맞춰 힘있는 춤을 펼친다.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흥겨운 무대다. 정동극장의 ‘연오랑과 세오녀’는 전통 공연은 지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음악 무용 뮤지컬 연극 등 현대 공연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가 전통의 옷을 입고 한데 섞여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버라이어티쇼를 펼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삼국유사에 실린 고대설화 ‘연오랑과 세오녀’를 바탕으로 현해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에 한·일간 화합의 주제를 녹여냈다.하지만 이 평범한 이야기를 표현해 내는 연출가 이윤택의 역량은 놀랍다. 연오를 태우고 바다로 나간 배는 성난 파도에 휩쓸려 침몰한다.중앙무대가 서서히 내려가면서 배가 기울어 허우적거리는 배우들을 사실감 있게 잡아내고 타악연주가 폭풍 신에 긴박감을 더한다.이어 거품이 날리고 색색의 나풀거리는 의상을입은 고래들이 군무를 펼치는 무대는 눈이 부시다.한 배우가 무대 위에서 내려온 줄을 타고 그네를 타듯 관객석까지 날아오자 관객들은 즐거운 탄성을 지른다. 해와 달이 사라진 신라.백성은 탈을 쓰고 나와 비명을 지르며 세상의 혼란을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하는데,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관객을 압도한다.덤으로 불쇼도 볼 수 있다.멀티비전으로 불타는 해를 형상화한 장면도 환상적이다.동해안별신굿·비나리·탈춤극·마당극 등은 신명난다.일본 원주민과 신라 신하의 코믹한 연기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필생의 역작을 만들었는데 월드컵 열기로 관객이 많이 오지 않아 아쉽다.”는 극작가 김영욱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하지만 일본인을 원시족으로 묘사하는 등의 국수주의적 관점은 화합이라는 주제와 엇갈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연희단거리패·동랑댄스앙상블·온누리예술단이 출연했다.30일까지.오후4시.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다.(02)7511-500. 김소연기자 purple@
  • “신라역사는 2000년이다”서강대 이종욱교수 저서 ‘신라의 역사’서 주장

    지난 89년과 95년 필사본 ‘화랑세기’두 종류가 발견된 뒤 이를 진서(眞書)로 인정해 기존 사학계와 격렬한 논쟁을 벌여온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새로운 화두를 또 던졌다.최근 발간한 저서 ‘신라의 역사’(2권·김영사)에서 신라사에 관한 기성 학계의 통설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충격적인 주장들을 내놓은 것이다. 이교수가 말하는 신라의 역사는 ‘적어도’2000년에 이른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로 6촌’이 신라의 출발점이며,이 촌장사회에서 만들어 세운 지석묘가 서기전 12세기 이전에 축조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곧 지석묘는 권력자의 등장을 말해 주는 징표이고 경주를 지역기반으로 한 ‘사로6촌’은 신라의 전신이므로,이를 신라의 출발로 보아 그 역사를 2000년 넘게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아울러 그는 신라의 역사발전 단계를 촌장사회,소국-소국연맹-소국병합 단계-마립간 시대로 이어지는 초기국가 시대,성골왕 시대,대신라 왕국으로 정리한다.이같은 시대구분론 자체가 기존학설과 크게 다르지만 특히 충격을주는 것은 이교수가 삼국 통일과 통일신라라는 용어 대신에 ‘삼한(三韓)통합’과 ‘대신라 왕국’이라는 새 개념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이교수는 고구려·백제·신라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기본전제를 거부한다.그것은 후대 사가들이 3국을 한 틀에 넣어 보려는 데서 나온 발상일 뿐,당대의 3국인들은 스스로를 같은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고 ‘민족’이라는 개념조차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따라서 신라가 중국 당(唐)의 군대를 동원해 고구려·백제를 멸망시켰다고 비난하거나,신라가 통일한 탓에 만주 땅을 잃어 그뒤 민족의 영토가 한반도로 국한됐다고 아쉬워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그같은 이교수의 인식은 고구려·백제멸망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가 아니라 대(大)신라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귀결된다.이교수의 신라사 인식은 이처럼 기존 학설을 부정하고 포기한다.이교수 스스로 “실증사학을 중시해 온 현대 한국사학이 만들어낸 신라의 역사와,소위 실증사학의 속박을 푼 필자의 신라사는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정도로 평행선을 달린다.”고 밝힌원인은 무엇일까. 이교수는,기성 학계가 신라사를 삼국사기가 아닌 중국사서 ‘삼국지’한(韓)조 중심으로 재구성해 왔기 때문이라고 밝힌다.그 결과 신라의 건국에서 내물왕(서기 356∼402년)까지의 역사가 은폐·말살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화랑세기 필사본을 진서로 인정해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와 ‘역주해화랑세기’를 펴내면서 이교수는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에 자신의 학자적 생명을 건다고 공언했다.이제 ‘신라의 역사’를 내면서 그는 사학자 대부분을 적으로 돌리는 쉽지 않은 싸움을 다시 한번 걸고 있다.허나 승패와는 상관없이,신라의 통사(通史)를 정리한 변변한 사서 하나 없는 현실에서 ‘신라의 역사’가 갖는 가치는 누구라도 부인하기 힘든 성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한국 고전용어사전’ 나왔다

    한국 고전 문헌에 나오는 용어를 집대성한 ‘한국고전용어사전’이 발간됐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박종국)가 12억원의 예산을 들여 10년간의 작업끝에 내놓은 이 사전은 5권, 총 6005쪽으로 역사서와 문집,법전,운서 등 각 분야 고전에서 뽑은 용어 5만여개를 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정사류,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대명률직해등의 법전류,여유당전서 삼봉집 등 문집류,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등 한글 고전류,광개토왕비를 비롯한 금석문 등 100여종이 넘는 고전을 텍스트로 했다. 각 어휘에 대한 단순한 풀이뿐만 아니라 그 쓰임의 예와해당 원문을 수록했으며,올림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유의어,참고어,반의어를 덧붙였다. 사전 편찬작업은 손보기 단국대 석좌교수 김석득 연세대명예교수,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허웅 서울대 명예교수 등으로 구성된 ‘한국고전용어사전 편찬위원회‘가 맡았으며,100여명의 각 분야 전공자들이 힘을 보탰다. 손보기 위원장은 “그동안 제대로 된 고전용어사전이 없어 관련 연구자는 물론 고전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의 불편이 컸다.”며 “새 사전 발간으로 이러한 불편을 크게 덜어주게 됐다.”고 말했다.5권 1질 39만원.문의 (02)969-8851. 임창용기자
  • 책꽂이

    [인문·교양] ◆한국의 성곽(차용걸·최진연 지음,최진연 사진) 20년동안 전국의 성곽을 촬영해온 현직 뉴욕타임스 사진기자의사진집.2000년동안 조상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호국의현장’을 해설과 함께 담아냈다.눈빛.2만5000원. ◆삼국유사 1·2((고운기 지음,양진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양진과 91년부터 삼국유사 현장을 답사해 온 전문연구자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시리즈의 하나로 펴낸 대중적 고전해설서.생생한 사진과 젊은 감각이 친근하게 다가온다.현암사.각권 2만원. ◆중독(로너 크로지어 외 지음,이은선 옮김) 캐나다 유명작가 10인의 마약 알콜 폭식 흡연 등 중독체험기.적나라한 실상, 치명적 해악을 자기고백적 참회로 고발한다.홍익출판사.7500원. ◆흡혈귀의 비상(미셸 투르니에 지음,이은주 옮김) 프랑스문학 거장의 독서노트.비평적 시각과 광범한 사료 제시로유럽의 고전과 근현대작품을 새롭게 되살려 낸다.현대문학.1만5000원. ◆세균전쟁(주디스 밀러 외 지음,김혜원 옮김) 최근 반세기 동안 미국및 구 소련,이라크등이 비밀리에 개발해 온세균무기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고 비밀주의와 무방비주의를 동시에 공격하며 대책을 촉구한다.황금가지.1만5000원. ◆이시형과 함께 읽는 프로이트(이시형·여인중 해설) 프로이트가 1916·17년 행한 정신분석 입문강의를 이해하기쉽게 국내 정신과 의사들이 사례를 곁들여 해설했다.꿈,무의식,성적 욕동,실수,노이로제,오해 등을 다뤘다.중앙 M&B.7500원. ◆렛츠고 세계여행 시리즈 일본의 여행사이자 여행가이드북 전문 출판사인 JTB와 손잡고 펴내는 잡지 스타일의 여행안내서.명소와 함께 요리 쇼핑 호텔 교통정보를 안내광고 형식으로 담고 있다.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도쿄편 등 5권이 먼저 나왔다.한길사.1만원. 경제·경영 ◆카오딕(다혹 지음,권진욱 옮김) 비자카드 창업자 다혹의 성공신화.혼란와 질서의 합성어인 ‘카오딕’의 개념으로 이 회사의 괴력을 설명한다.청년정신.1만6000원. ◆시장의 도전 기업의 응전(제임스 D 언더우드 지음,오현아 옮김)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도 성공을 거둔 기업들의 비밀은 무엇일까?사례분석을 통해 성공 3요소,즉 리더십 학습 민첩성의 전략적 균형을 제안한다.시대의창.1만5000원. ◆아∼아아∼(김영안·강대진 지음) 현직 벤처 CEO들이 ‘타잔에게 배우는 벤처 생존전략’을 소개한다.닷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타잔경영 10조를 경험담및 사례와 함께제시한다.물푸레.9500원. ◆물 흐르듯이 말하기(아란 가너·정연아 함께 지음) 미국의 화술 전문서적을 국내전문가의 참여로 한국화했다.효과적인 대화법과 비즈니스 성과의 비결을 소개.21세기북스.1만원.
  • [기고] 남북 선사유적 학술교류 시급

    최근 ‘새해 맞이 남북 공동 모임’이 무산됐다는 뉴스를접하며 지난달 남북 선사유적 관련 학술교류 협의차 평양을방문했던 당시가 새삼 생생히 떠오른다. 착륙 전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평양 시내는 고층빌딩사이에 고대 유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깨끗하고 정비된근대 도시의 모습이었다. 필자와 김충환 서울시 강동구청장등 방북단 일행은 남북관계를 총지휘하고 있는 허혁필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을 위시한 북한 관계자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신석기주거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평양시 강동군에는 단군릉을 위시한 여러 유적들이 밀집돼 있기 때문에,두 지역간의 유적을 통한 학술교류 추진을 위한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한민족이 한반도에 이룩한 역사는 남북한 어느 한 쪽의 연구 성과만 가지고는 제대로 밝혀낼 수 없다.더구나 역사의첫 장을 장식하는 선사시대는 우리 조상이 남겨 놓은 유적과 유물로만 연구가 가능한데,해방 후 가로막힌 장벽 때문에 남북교류가 막힌 상태로 오늘에 이르렀다.이러한 상황에서오히려 남북한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일본이나 그밖의 제3국 학자의 견해가 우리 역사 연구를 주도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해방 후 한국 선사고고학자로서는 처음으로평양을 방문한 필자로서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평양 중심부의 김일성 광장에 있는 평양중앙역사박물관에는지난 50년간 북한 고고학자들이 힘써 발굴·조사한 유물 13만점이 전시,수장돼 있었다.민족의 보고로 손색이 없었다. 북한 학계는 그간 한반도에 구석기시대 존재의 최초 확인,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 최초 확인,일제시대에 부정됐던 청동기시대의 존재 확인 등 남한 학계에서는 연구의 체제조차갖추지 못한 시기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바로 그런 증거물들을 하나하나 실견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아시아의 피라밋’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웅장한 단군릉도 돌아보았다.한 변의 길이가 50m,높이가 22m 규모로 만주 통구(通溝)의 장군총보다 세 배나 크다.물론 남한이나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이 단군릉이 학술적 뒷받침이결여된상황에서 복원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와 고려사·조선사의 기록에서 단군릉의존재가 확인되고,무덤에서 발굴된 뼈가 5000여년 전의 것이라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연대추정 등으로 볼 때 단군을 단순하게 ‘신화’적 측면에서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이는의견을 달리하는 남북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연구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이번 방문을 통해 필자는 놀라울 만큼 세련된 모습으로 정돈된 문화유적을 보면서북한이 남한 못지 않게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유산 정비작업을 벌여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높기만 한 이념의 장벽 때문에 남북간의 학술·문화교류는 미미했고,이에 따라 역사해석을 놓고도 양쪽 학자들간에 견해차가 적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 평양방문이 앞으로 이러한 견해차를 좁히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온 필자로서는 최근 잇따른 남북교류무산 소식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정치·경제분야 못지 않게남북간 학술교류는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번 사태의불똥이남북간 문화·학술 교류에까지 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효재 서울대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
  • 세시풍속으로 본 의미/ 말은 영물…길·흉 예시 지혜의 상징

    2002년은 임오년(壬午年),말의 해다.십이지(十二支)의 7번째 동물인 말(午).시간으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방향으로는 남쪽,달로는 음력 5월을 지키는 방위신(神)이자시간신(神)이다.우리 민족의 정서와 각별한 유대가 없는 띠동물이 있을까마는 민속신앙에서 차지하는 말의 상징적 의미 역시 어느 띠동물 못지 않게 크다. 말의 가장 큰 민속문화적 상징은 뭐니뭐니 해도 ‘영물’(靈物)로서의 이미지다.동부여의 금와왕 탄생신화가 실린 ‘삼국유사’에 주목할만한 대목이 나온다.“북부여의 왕 해부루는 늙도록 아이가 없었다.하루는 산천에 제사하고 후사를비는데,타고 있던 말이 큰 못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 대하며 눈물을 흘렸다.이에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들추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가 있었다.왕이 기뻐하며 이를 거두어 이름을 금와라 했다.” 고구려 주몽,신라 혁거세 등의 신화에서도 말이 국조 탄생을 알리는 신비한 동물로 묘사되기는 마찬가지.또 백제가 멸망할 때 흉조를 예시해준 지혜로운 동물도 말이었다. 신체상의 이미지로 볼때는 자연스럽게 박력과 생동감으로연결된다.예부터 말의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탄력있는 근육,기름진 모발,단단한 말굽과 거친 숨소리 등은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인식돼 왔다.‘훌륭한 장수가 탄생하고 죽을 땐 어디선가 명마(名馬)도 함께 태어나고 죽는다’고 했던 옛속설도 그와 무관치 않다. 어떤 상황에서건 ‘재수없다’는 핀잔을 듣지 않는 띠동물로도 드물게 손꼽힌다.오히려 액을 막고 행운을 부르는 덕있는 동물로 대접받은 흔적이 설화와 고대 유물에서 자주 확인된다.고분에서 발견되는 3㎝ 크기의 말 부적.휴대하기 쉽게만들어 옛날부터 액막이용으로 썼다는 게 학자들의 풀이다. 넘치는 생동감 탓에 별난 띠타령을 불러일으킨 게 말띠해의 흠이라면 흠이다.‘말띠 여자 팔자 세다’는 속설이 바로그것. 하지만 민속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소리”이라고 일축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천진기 학예연구관은 “중국이나 우리나라 문헌들에 말띠를 꺼리는 속신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말띠 왕비가 많았다”면서 “말띠 태생의 부인을 꺼린 일본의 습속이 일제강점기 무렵에 엉뚱하게 국내에 퍼진탓”이라고 설명했다. 황수정기자 sjh@
  • [씨줄날줄] 화랑세기 진위론

    현재 한국 고대사 부문에 던져진 두 가지 핵폭탄이 풍납토성과 ‘화랑세기’(花郞世記)다.둘 다 한국 고대사의 지형을 완전히 바꿀 만큼 막중한 의미를 지녔으면서도 기존 학계로부터 철저히 거부당한다는 점에서 공통운명에 놓여 있다.이가운데 풍납토성은,지난 7월 발표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제1차 발굴보고서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화랑세기’는 아직 진위논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기 700년 무렵 신라사람 김대문이 지은 것으로 기록된 ‘화랑세기’는 1989년 이후 두 종류의 필사본 형태로 등장했다.일제강점기 일본 왕실도서관에서 촉탁으로 일한 고 박창화란 분이 원본을 옮겨 적은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필사본은 출현 후 사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위서로 판정한 사학자들은 ‘화랑세기’에 실린 신라사회 풍속도가 여태껏 알려진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화랑집단 내부에서 하급자가 부인을 왕이나 풍월주(우두머리)에게 보내 성관계를 맺게 하는 마복자(摩腹子)제도만 해도 정상적인 국가사회에서는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근친혼,여성이 여러 남성을 거느린다는 서술 등도 시대상황에 어긋난다는 것이다.이들은 필사자인 박씨가 직접 창작했거나,그가 본 원본 자체가 위작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진짜’임을 믿는 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문란한 성관계’란 현대적인 윤리관에서 그 시대를 보는 것일 뿐이라고 강변한다.마복자 제도만 해도 신라만의 것이 아니라북방 유목민족 사이에서 통용됐음을 근거를 들어 제시한다. 아울러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 나온 모호하거나 틀린 기록이 ‘화랑세기’에는 정확히 나와 있다는 점도 증거로 든다. 사학계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인접 학문분야에서진본임을 인정하는 학설들이 잇따르고 있다.1999년 한 국문과 교수가 ‘화랑세기’에 실린 향가를 분석,20세기 초에 이를 조작할 수는 없다고 단정했다.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이영훈 성균관대 교수가 필사본에 나오는 ‘노’(奴)와 ‘비’(婢)의 개념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의 ‘노’와 ‘비’는 노예 신분이 아니라 지배층 내부에서 윗사람을 모시는 아랫사람이란 뜻이라는 것이다.결국위조된 개념은 아니라는 의미다.그동안 사학계의 논쟁은 다분히 감성적이었다.이제야말로 합리적 분석을 토대로 본격적인 진위 구분에 나서야 할 때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디지털로 한민족 문화대백과 되살렸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디지털로 되살아난다. 전자공학의 총아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혁명’이 학술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학 정보의 집대성으로 일컬어지는 총28권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찬)이 6장의 CD롬과 1장의 DVD롬으로 다시 태어났다. 조선왕조실록,삼국유사,삼국사기,고려사 등 고대 사서(史書)는 물론 생태환경,전통문화,전통의학 등 한국학 관련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앞장서온 동방미디어(회장 李雄根)는 최근 한국학 분야의 독보적인 정보원으로 평가받고 있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디지털버전인 ‘EncyKorea’를 개발,출시했다. 동방미디어 측이 디지털버전의 저본으로 삼은 ‘사전’은23년간에 걸쳐 4,000여명의 관련 전문학자들이 참가해 7만여 항목을 선정,집필한 것으로,이번 작업을 통해 ‘사전’출간 이후 10년만에 1만여 항목이 추가되는 등 대대적인 개정·증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효용가치가 크다고 할수 있다. ‘디지털사전’은 멀티미디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종이사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대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사진 4만장,도표 2,000종,동영상 500종,음향 250종,지도 도면 3,000장,대동여지도 1,000장 등이 그것으로 화면에서 텍스트 검색과 함께 관련 사진,음향을 바로 보고 들을 수 있다. 특히 이번 디지털버전에서는 기본항목 이외에 한국문화의특성을 살린 다양한 기획메뉴를 제공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즉 ‘멀티미디어 한눈에 보기’에서는 4만여장에 이르는 사진자료를 비롯해 동영상,음행자료 등을 한자리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으며,‘백두대간 따라가기’에서는 한반도의 척추격인 백두대간의 산경도(山經圖)를 통해각 도(道)의 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또‘북한의 이모저모’에서는 2,000여 북한정보를,‘근현대사의 흐름’에서는 6·25전쟁,올림픽 등 한국사에서 한 획은그은 주요사건을 연표와 멀티미디어 정보로 제공하고 있다. 이헌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은 “한민족의 역사와문화를 모두 담은 세계 희유의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세계문화사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평가했다. ‘사전’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던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서구·유럽중심의 세계백과사전은 다른 문명권의 유산을 부당하게 폄하,민족단위의 문족문화백과사전 편찬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이번 디지털버전은 국고지원없이 첫번째 개정판을 수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예약판매중인 CD롬(DVD롬 포함)의 가격은 정신문화연구원과 동방미디어측이 협의를 거쳐 50만원 선에서 결정될것으로 보인다.구입문의 (02)521-8196∼7정운현기자 jwh59@
  • 개천절 다양한 경축행사

    내달 3일 열리는 제4334주년 개천절 경축식이 전국에서 지역별로 향토문화 행사와 연계해 다채롭게 펼쳐져 민족 화합과 번영을 다짐하는 장으로 개최된다. 특히 이번 경축식은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특별 초청돼 역사 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고,진행음악은 개천절의 의의를살리기 위해 우리의 순수 전통국악으로만 연주하게 했다. 또 단상 배면에는 개국기원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원문내용을 디자인해 장식하는 등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도록 했다. 식후 행사로는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유명 국악인들을 초빙,가야금병창,민요 등을 부르고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사물놀이단의 협주곡 ‘신모듬’을 연주하는 등 풍성한 내용의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한편 개천절 당일에는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사단법인현정회 주관으로 ‘단군제례의식’이 거행되고,10일에는 전북 무주군 삼도봉에서 충북·전북·경북 등 ‘삼도화합 만남의 날’ 등 향토문화예술행사가 열린다. 정부는 개천절을 경축하기 위해 3일 하루동안 전국 고궁과 능원을 무료로 개방한다. 최여경기자
  • 부음/ 시인 이정기씨

    한국현대시인협회장을 지낸 이정기(李廷基·국민대 명예교수)씨가 25일 오후 1시50분 서울 정릉3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27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고인은 1948년 시집 ‘발자욱’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5권짜리 서사시집 ‘삼국유사’를 비롯, ‘불바다’‘CJS양의사랑’‘노실 고개의 해당화’ 등의 시집을 냈다.국내 최장의 서사시집인 ‘삼국유사’에 잘 드러나 있듯 고인의작품세계는 고대신화와 서정성을 한데 아우르고 있는 것이특징이다. 유족은 부인 배순임씨(76)와 승규(47·사업),필규(42·국민대 강사),찬규씨(36·성균관대 강사)등 3남.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실.발인은 27일 오전6시.(02)914-6876.
  • [장익는 마을](8)경북 군위군 신월개선회

    “청정지역인 팔공산 자락에서 익어가는 장맛을 보러 오세오” 경북 군위군 부계면 신화2리 신월생활개선회(회장 洪愛信)가 만드는 장은 전통의 맛을 재현,대구 일대에서 인기가높다.짭짤하면서 달짝지근한데다 뒷맛이 깊고 구수한 맛을내고 있다. 96년 10월 홍씨 등 동네 주민 4명이 모여 만들기 시작한장은 해마다 단골 고객이 늘어나 올해는 제조량이 메주콩100여가마에 이른다. 장을 담가 파는 여느 업체와 마찬가지로 장 담그기 비결은 ‘정성’이라고 홍 회장은 말한다.재료 하나하나에도정성이 들어간다.콩은 유기농법으로 직접 생산한 무공해콩만을 고집한다.콩을 삶을 때도 번거롭지만 가마솥과 참나무 장작을 이용,옛맛을 살린다.메주도 황토방에서 건조·발효 과정을 거친다.물은 지하 200여m에서 뽑아 올린 깨끗한 암반수와 콩 삶은 물을 섞어 쓴다.소금은 쓴맛을 없애기 위해 통풍이 잘되는 장소에서 1년 이상 묵혀 둔 것만사용한다. 장담그는 시기도 장맛이 제일 잘 난다는 음력 정월에 맞춘다.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90일 정도 숙성시킨 뒤장가르기를 한다.홍씨는 “간장은 불에 달이지 않고 전통옹기에 담아 5개월 가량 익혀야만 제맛이 난다”고 말했다. 가격은 된장 1㎏에 1만원,간장 1.8ℓ에 5,000원이며 메주는 5.5㎏에 5만원이다.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고 전화(054-382-1643)로 주문이 가능하다. 한편 인근에는 경주 석굴암보다 280여년 앞서 창건된 삼존석굴(국보 제109호)과 팔공산 동산계곡,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인각사 등 각종 볼거리가 많이 있다. 글·군위 김상화기자 shkim@
  • 한국사 왜곡 백태/ (상)아시아 7개국 경우

    한국교육개발원이 세계 14개국의 교과서를 정밀 분석한결과 한국 역사에 대한 왜곡 및 잘못 게재 정도가 심각한것으로 드러났다.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도 비슷할것으로 생각된다.교육개발원이 조사한 국가들을 아시아와유럽으로 나눠 우리 역사 왜곡사례를 시리즈로 살펴본다. ■중국 초·중 ‘중국역사’‘세계역사’교과서 모두 한국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마치최초의 국가가 고구려인 양 서술하고 있다. 상해판 등의‘역사’교과서는 공통적으로 ‘발해는 독립된 국가가 아닌 당왕조 내 하나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했다.고급 중학교 ‘세계 근대현대사’,상해판 ‘역사’교과서는 3·1운동의 발발 요인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아닌 ‘고종의독살설’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처럼 왜곡했다. 한국전쟁에 대한 평가도 4개 출판사 ‘중국역사’교과서가 대체로 ‘항미원조전쟁은 승리를 거두었다’라고 주관적으로 적었다.‘중국역사’ 제4권 초급중학과본의 경우,한국전쟁이 북침에 의해 발생한 것처럼 서술했다. ‘세계역사’제1권 초급중학과본(98년판)에서는 ‘조선인민은 옛날부터 조선반도에 살고 있었다.기원전후 시기에걸쳐 조선반도 북부지역을 통치했던 것은 고구려 노예제국가이다(56쪽)’고 서술,중국 동북지방의 광대한 영토를차지했던 고구려를 언급하면서 조선반도 안의 작은 나라인것처럼 왜곡했다. 고구려를 조선반도 북부지역의 국가로 축소시킨 점은 상해판 초·중 ‘역사’,사천판 초·중 ‘세계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세계역사’에서는 또 ‘많은 학자들은 조선어를 연구하여 중국어와 결합시키면서 28개의 자모를 제정했다. (59쪽)’고 기술,세종대왕의 과학적·독창적인 한글 창제를 왜곡했다. ■태국 고교 3학년1학기 사회 교과서(98년판)에는 ‘일본은 불교·서예·젓가락 사용법·한자 등 중국의 문화를 한국을 경유해 받아들였다.(131쪽)’고 기술했다.한국은 단지 중국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교량 역할만 했다는 일본 식민사관의 영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또 군부와는 관계없는 이승만 대통령을 ‘8·15 해방 이후 남한은 군부지도자를 최고 통치자로하는 체제를 채택했다(147쪽)’고기록했다. 교육부 학술과가 펴낸 중 2학년용 사회과 교재에서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의 두나라로분리된 사건은 1953년 7월27일 일어났다’고 한 내용 중 38도선은 45년 8월15일 직후이며 53년 7월27일은 남북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을 잘못 서술한 것이다. ■필리핀 아시아의 역사(98년판)에서는 일본의 식민사관인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인용, ‘신라의 금관에서 볼 수 있는 곡선 모양의 보석들은 일본 제국 상징의 흔적이었다(60쪽)’‘야마토 정권의 천왕은 정복자로서 한국에 왔었으며일본의 통치는 668년 한반도가 권력조직을 확립하기까지지속되었다(65쪽)’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의도를 고스란히담기도 했다.‘일본은 자유로운 새 질서를 수립함으로써위에 언급한 나라들에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려 했다.(276쪽)’‘진보와 아시아 대륙 및 전세계에 대한 강력한 지도력의 또다른 단계를 위한 최초의 발걸음일 뿐이다(281쪽)’ 등이 예이다.심지어 ‘이홍장은 1885년 이토 히로부미와의 협정 이후 한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302쪽)’는 등의 내용을 통해 조선이 중국의 식민지였던 듯이설명했다. 단일 민족인 우리나라에 대해 ‘북한의 주민들은 몽골혈통이기 때문에 키가 크고 건강하며 혈색이 창백하다.반면에 남한 주민들은 혼혈이며 키가 작고 혈색이 나쁘지 않다’는 엉뚱한 내용도 있다.북한은 몽골인종,남한은 남방계통으로 분류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중학교 역사 교과서(95년판)에서는 ‘1894년일본은 중국을 침공했다. 중국은 일본에 쉽게 항복했는데그 결과 중국은 대만과 코리아를 일본측에 넘겨줘야 했다’며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기록했다.고교 역사 1학년의경우, ‘당나라 (618∼907년)는 또한 한국·일본을 지배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러시아 동해는 한결같이 일본해로 기록하고 있다.우리나라를 극동의 신흥공업국이라고 할 정도로 단편적인 기술에머물렀다. 현대사 부분에는 ‘값싼 노동력은 국내·국제무대에서 남한 기업경영의 성공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 집회 결사 및 단체협약 그리고 파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은 정부의 가혹한 반노동정책 등이 그 이유였다’는 등 부정적으로 썼다. ■말레이시아 중 3학년 지리 84쪽에서는 서울을 동해쪽으로 치우쳐 표기하고 있다.또 ‘일본·중국·한국·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지역에서는지열자원이 생산되고 있다’며 화산지역으로 분류했다. ■인도 한국 중심으로 쓰여진 내용이 적다.‘세계 역사의조망’(옥스퍼드대학 출판·95년판)은 1875년 운요호사건과 관련,‘한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한국은 중국에 원조를 요청했다’고 기록했다.민비시해사건과 관련,‘왕비를 제거하고 하옥했다.’라고 왜곡했다. 박홍기 이순녀 전영우기자 hkpark@. * 세계사속의 동해.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책에는 ‘동해’ 명칭이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많은 국가의 지도책·교과서에 아직도 ‘동해’를 ‘일본해’로적고 있는 것을 시정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는 비난받아마땅하다. 일본은 1870년 이후 출간된 지도에서 예외없이 ‘일본해’로 적고 있다.일본 정부가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동해를일본해로 표기하도록 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간여했다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일본도 18세기 전후 발간된 권위있는 지도 중 많은 지도에서는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했다.1810년 ‘신정(新訂)만국전도’,1838년 만국전도,1850년 지학정종도(地學正宗圖),1855년 지구만국전도,1870년 명치개정만국여지분도 등의 지도에서도 동해를 조선해로 썼다. 우리나라는 기원 전 59년 이래 문헌상에서 일본과 사이의바다를 동해로 불러왔다.광개토왕비(411년)를 비롯, 삼국사기(1145년)와 삼국유사(1284년)에서도 수없이 동해의 기록를 찾을 수 있다.현존하는 고지도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팔도총도에도 동해라고 명백히 적혀있다. 중국의 경우, 요·송·금·원·명·청 등 916∼1912년의여러 시기에도 동해로 표기됐다.러시아의 지도에는 1678년(동양해),1725년(동해),1734년(동해)에 나온 지도에는 동양해 또는 동해로 적고 있다. 17∼18세기 유럽의 고지도에서도 마찬가지다.1615년 포르투갈에서 만든 지도,1674·1744·1752년의 영국 지도,1750년 파리에서 출간한 지도,1771년 대영백과사전 초판에도한국해(Sea of Corea)로 쓰였다. 박홍기기자
  • [김삼웅 칼럼] 역사와 민족 그리고 사대언론

    한국사에서 민족적 일체감이 형성된 시기는 대체로 몽고 침략기인 고려 충렬왕대인 것으로 분석된다. 밖으로는 외 세의 침략이 도리어 안으로 내적(內的)인 민족통합의 정 신적 일체감을 자각하고 형성하게 만들었다. 충렬왕대는 몽고의 속국에서 벗어나고자 관민이 몸부림치 던 시기였다.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와 비슷한 원나라 정동 행중성(征東行中省)이 폐지되고 원나라와 같은 관명(官名) 은 모두 고쳤다. 관군은 이미 투항했어도 삼별초가 남해안 과 제주도에서 끝까지 항전하고, 몽고군의 강요지만 함께 일본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가 쓰이고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도 이때 발간되었다. 고려청자의 전성기를 이루고 대장경판이 완성되어 해인사에 옮겨졌다. 이인로 (李仁老)의 ‘파한집’이 발간된 것도 이무렵이다. 무인정권 100년과 몽고(元)침략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된 민족수난기에 민중의 자주의식과 민족주체성이 발양된 것 이다. 조선조 학자 서거정(徐居正)이 ‘삼국사를 읽고’에서 “ 삼한이 나날이 서로 싸우니백만창생이 고통속에 지새웠네 . 신라·백제는 어찌 몰랐던고, 입술이 다치면 이빨이 시 린 것을. 수나라와 당나라가 방울새와 조개 모두를 노리는 어부인데”라고 삼국의 쟁투를 안타까워했지만, 그때는 민족이나 동족의식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한 시대였다. 삼국은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어도 필요에 따라 서로 ‘주 적’ 또는 ‘우방’관계였을 뿐 동족의식이 싹트기에는 아 직 일렀다. 13세기 후반기에 비로소 민족적 일체감이 형성 된 것이다. 삼한의 동포는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고난과 영욕 을 함께하며 한반도에 터닦고 살았다. 임진·정유왜란을 겪고 병자·정묘호란을 견디면서,그리고 망국과 식민지시 대를 함께 하면서 이땅을 지켰다. 누가 다시 한반도를 쪼개고 갈랐는가. 분단의 원인은 내 부분열이 독립변수이고 국제환경은 종속변수에 가깝다. 해 방정국에서 온국민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해야 할때 이 념·지역·정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결국 외세에 빌미를 주 게된 것은 다 아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반백년을 보내고 모처럼 남북이 화해협력의 계기 를 잡았다. 풀어야 할 사연도 많고 튀어나올 변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묻을 것은 묻고 삭일것은 삭이면서 반세기만 에 움튼 화해의 새싹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 를 사는 모든 성원의 사명이고 책임이다. 그런데 분단 55년만에 싹틔운 소중한 씨앗에, 민족화해의 햇볕에 찬물을 끼얹는 자들이 있다. 고난의 민족사에 항 상 매족의 무리가 있었기에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요즘 의 행태는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솔직히 미국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나 그쪽 관리들의 분별없는 언행은 자기네 ‘국익’에 충실하려는 입장으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섧 게 운다는 격으로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발언에 한술 더 떠 서 설레발치고 흥분하여 지면을 도배질하는 이땅 사대(事 大)언론(인)의 행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외국 언론이라면 어땠을가. 가령 일본총리가 러시아와 탄 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과 관련한 공동성명을 발표하 고 미국으로 날아가 부시와 회담을 했다면 일본외교의다 원화는 물론 이를 통한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했다고 뒷받침했을까, 아니면 ‘종주국’을 배신했다고 길길이 날 뛰었을까.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은 그들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다. 전통적으로 군수업자들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정부의 ‘군산복합체’노선과 부시의 지지기반 취약성을 한반도 긴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혈맹임에 틀림이 없고 미국 의 존재는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의 길목에서 든든한 후원자 임도 분명하다.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에서 한국정부의 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확인하지 않았던 가. 그런데 왜 이땅의 사대언론들은 포용정책의 지지부분 은 묻어버리고 강경론만 확대해 여론을 오도하고 남북관계 를 악화시키려 드는가. 사대언론(인)이여, 젊은 기자들이여, 민족적 양심으로 돌 아오라! 어렵게 맞은 남북 화해협력의 새싹을 이대로 짓밟 을 순 없지 않은가. 고려 충렬왕시대 이래 함께 해온 민족 적 일체감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 “”신화를 역사속으로…”” 획기적 변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내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가야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 ‘구지가(龜旨歌)’다.삼국유사에 전하는 가야 건국설화에 따르면 가야 땅을 다스리던 아홉 우두머리(九干)가 구지봉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문득 하늘에서 알 여섯개가 담긴 금합이 자주색 끈에 매달려 내려왔다.그 알이 차례로 깨어지며 아이가 하나씩 나왔는데,맨 먼저 나온 이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라는 것이다. 가야의 아홉 우두머리가 새로운 왕을 염원하면서 ‘구지가’를 부르고,하늘에서 여섯개의 알이 내려왔다는 곳이 바로경남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구지봉(龜旨峰)이다.높이가 200m에 불과해 봉(峰)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은 민망한 소나무동산이다. 문화재청이 지난 6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 구지봉을사적 제429호로 지정했다.신화(神話)를 당당히 역사에 편입시켜 보호하겠다는 뜻으로 문화재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라할 만하다. 사적(史蹟)이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역사’와 ‘흔적’으로 나눌 수 있다.그러나 구지봉에는 설화는 있지만 삼국유사기록 그대로가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의 흔적’이라는 측면에서도 구지봉은 보잘 것 없다. 정상부에는 서기전 4세기쯤의 것으로 보이는 남방식 지석묘가 하나 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김수로왕이 탄강(誕降)한것이 서기 42년이라니,가야 건국설화와는 관계가 없다.상석에 ‘구지봉석(龜旨峰石)’이라고 새겨 있지만,한석봉 글씨로 전하는 만큼 후세에 남긴 것으로 보인다.정상에는 1908년세웠다는 ‘대가락국 태조왕 탄강지지(大駕洛國太祖王誕降之地)’비석도 있다.결국 가야시대 사람의 손에 닿은 흔적은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물론 설화적인 이야기를 근거로 사적을 지정한 사례가 전혀없는 것은 아니다. 1968년 사적 제163호로 지정된 경주 낭산(狼山)도 삼국유사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실성왕 12년(413년)에 ‘왕이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서린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신선의 영혼(仙靈)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곳이니응당 복지다.이제부터 낭산의 나무 한그루도 베지 말라’고명령하여 ‘신유림(神遊林)’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낭산 일대는 선덕여왕릉과 문무왕 화장터,능지탑,왕실의 원찰인 황복사터와 삼층석탑 등이 있는 문화재 밀집지역이라는 점에서 구지봉과는 다르다.한영우 문화재위원(서울대 교수)은 “구지봉은 거북이가 엎드린 지형을 하고 있는등 설화를 뒷받침해 신비에 싸인 가락국의 실체를 규명할 수있는 중요한 유적”이라면서 “이웃한 김수로왕비 허황후의능 및 김해국립박물관과 연계하여 사적공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동물마다 숨겨진 상징이 있다”

    *33가지 동물로 본…김 종 대. 단군신화에는 인간이 된 곰이 등장한다.왜 하필이면 곰이었을까?곰은 부활이요 새 생명이요 새로운 세상을 뜻했기 때문이다.또 곰을 여성적 존재로 부활시킨 것은 겨울이면 사라졌다 봄이면 나타나는 재생산의 의미와 부합된다. 이처럼 동물 상징세계는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중요한 틀을 제공한다.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33가지 동물로 본 우리문화의 상징세계’(다른세상)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선조들이 동물을 통해 상징한 의미를 분석했다.열두 띠 동물에 21가지를 보탰다.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이자,우리민족의 편협하지 않고 다양한 자연관과 인생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곰은 신적인 존재인 동시에 미련함의 상징이기도 하다.오른손으로 옥수수를 따면 왼편 겨드랑이에 꽂고 왼손으로 따면 오른편 겨드랑이에 꽂기 때문에 두 개 이상을 딸 수 없다는 뜻에서 나온 ‘곰 옥수수따듯이 한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다.곰이 포수의 손에서 자신을구해준 나무꾼을 장가보내준 이야기처럼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까마귀는 요즘 불길한 새로 통한다.그러나 예전에는 태양의 상징이었다.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삼족오(三足烏·세발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했고,신라의 연오랑 세오녀에서 까마귀는 태양과 달을 의미했다.징조를 알려주고 효자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했다.그러다가 삼국시대 때 오행사상이 들어오면서 검은색이 죽음으로 연결됐다.오행중에서흑제(黑帝)는 북쪽을 의미하고 어둠과 함께 겨울과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꿩은 상서로움의 상징이자 은혜를 갚을줄 알고 새끼를 보호하는 새다.‘꿩 대신 닭’이란 속담은 적당한 물건이 없을 때 그만은 못하지만 비슷한 것으로 대체한다는 뜻.꿩의 독성 때문에 아들을 잃을뻔한 정승이 제사의 제물을 닭으로 대체한 데서 유래했다. 고양이는 영리하고 반드시 복수하는 두려운 동물로 인식된다.고양이와 개가 원수 사이가 된 것은 주인의 여의주를 찾아오다 바다에 빠뜨린 견묘쟁주(犬猫爭珠) 이야기에서 유래한다.꾀를 내 쥐를 위협,여의주를 찾아낸 고양이는 방에서사람들과 함께 지내고,여의주를 입에문 고양이에게 자꾸 말을 시켜 바다에 빠뜨리게 한 개는 마루 밑에서 살게 됐다는 것.개는 오수의 개처럼 충직하고 똑똑한 동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용이 권력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인 것과 관련,고려사에 왕건의할머니가 용녀로 나오는 반면 실패한 혁명아 견훤의 아버지는 삼국유사에 지렁이로 등장한다.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개구리,복을 주고 자손을 많이 낳게 해주는박쥐,흉조로 여겨진 올빼미 등 동물 상징과 인간사가 연결된 풍부한의미를 담고 있다. 김주혁기자 jhkm@
  • 동서 고전 예시문·6개 소재어휘 제시

    성균관대가 5일 정시모집 논술시험을 치렀다. 인문계에 한해 실시된 논술시험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에서지문을 발췌,현실생활과 연관시켜 개인의 견해를 묻는 평이한 문제였다.동·서양의 균형을 고려해 ‘삼국유사’ ‘장자’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효성왕설화,오디세우스,나르키소스신화 등 4개의 예문을열거한 뒤 ‘오늘날 청소년문화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견해를 논하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평소 논술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던 수험생이라면 한번쯤 접해 봤을만한 논제라는 평이다.특히 ‘스타’ ‘자아’ ‘벗’ ‘사이버세계’ ‘욕망’ ‘관계’ 등 청소년문화를 논할 때 키워드로 사용되는 6개의 소재 어휘를 미리 정해줌으로써 수험생들이 논술의 흐름을 쉽게풀어가도록 했다. 평가는 언어,논리,내용적 측면을 각 10점씩 배분해 채점하되 최하점수가 21점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할 방침이다.다만 글이 주제를 완전히 벗어날 경우 0점 처리된다. 이에 앞서 4일 논술시험을 치른 가톨릭대는 서거정의 ‘동문선’ 98권에 수록된 유방선의 ‘서파삼우설’을 제시한 일반논술형 문제와함께 근래 거의 출제된 적이 없는 통계자료를 활용한 자료분석형 문제를 내 눈길을 끌었다. 6일 이후 시험을 치르는 이화여대,연세대,고려대 등과 9일부터 시작되는 ‘나’군의 서울대,서강대 등도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예문을 제시하고 견해를 묻는 기존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순녀기자 coral@
  • 신간 맛보기

    ■평화의 나무 김대중(오수 글·그림,도서출판 MK 펴냄)김대중대통령일대기를 두권으로 엮은 전기만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김대통령관련 책으로는 첫 주자가 될듯. 1권에선 가난한 섬마을 소년이 정치에 입문하기까지,2권은 수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끝에 대통령이 되고 노벨평화상을 받기까지 역정을 소개했다. 김대통령 측근인사 및 고향인 전남 하의도 주민들 현장취재를 바탕으로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한화갑 최고위원,최재승·설훈 의원등이 감수했다.지은이는 현재 한 스포츠지에 스포츠만화를 연재중.각권 7,000원. ■명화로 읽는 성서(고종희 지음,한길아트 펴냄) 성서 내용을 다룬그림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라는소재를 마사초(1401∼28)는 영감 넘치게 묘사한 반면 그의 선배 마솔리노는 무미건조하게 그려 대조된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에로틱한 여인으로 둔갑하는 등 르네상스시대의 베네치아에서는 성화에서조차 에로티시즘을 추구했으나 천박하지 않게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한다.6세기 이전까지 태양의 신아폴론의 모습으로 수염 없이 그려진 예수,천사 등의 주요부분을 가리도록 수정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등 흥미진진한 일화들을쉽게 풀어썼다.2만5,000원■베트남의 신화와 전설(무경 엮음)/베트남의 기이한 옛이야기(완서지음,박희병 옮김,돌베개 펴냄)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고전들.민간 전승 신화와 전설을 15세기에 한문으로 기록한 ‘영남척괴열전’과 16세기 걸작 고전소설 ‘전기만록’(傳奇漫錄)을 번역했다. 앞의 책은 베트남 민중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녹아 있는 건국신화와풍속,영웅 등에 관한 이야기 22편으로,우리의 ‘삼국유사’와 견줄만한 베트남의 역사·문화적 자료의 보고다.뒤의 책에는 중국의 침략주의와 현실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단편소설 20편을 실었다.우리의 ‘금오신화’에 비견된다.8,500원 1만5,000원■거대기계지식(플로리안 뢰처 지음,박진희 옮김,생각의나무 펴냄)사이버 시대의 올바른 지식사회 구축을 위해 첨단지식정보의 형성과정에 도사린 도전과 위험을 점검한 책.사이버 공간으로 인한 우리 생활의 변화를 살피면서,모든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거대지식보고의건설 가능성을 인터넷 기술에서 발견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상업화와 검열 강화,선·후진국간 정보 격차 등을문제점으로 지적한다.로베르트 베르졸라는 제조비 3달러인 CD롬을 30달러에 파는 선진국 거대기업과,설탕을 제조원가에도 못미치는 파운드당 15센트에 파는 개발도상국을 비교하며 파행적인 시장구조속의새로운 식민주의를 염려한다.1만5,000원
  • 화쟁기호학으로 풀어본 삼국유사

    ‘경덕왕 19년인 760년 4월 초하룻날에 해가 둘이 떠올라 열흘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월명사가 도솔가를 부르며 산화공덕(散花功德)의 의례를 행하였더니 두 해의 괴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삼국유사’감통편 ‘월명사 도솔가’조)이 황당무계한 말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국문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이도흠 박사는 경덕왕이 전제왕권을 확립하는 마무리 책략으로 여러 면에서 모자라는 세살바기인 건운(혜공왕)을 세자로 옹립하려 하자 김염상을 비롯한 귀족세력이 왕권에 도전,두 세력이 맞선 것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신라인들은 태양을 왕으로 여겼다는 얘기다.또 왕실의 안정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응 뿐 아니라 주술적인 힘도 필요해 승려로 하여금 화엄의 이상을 널리 펴는 꽃을 부리는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는 것. 이박사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푸른역사 펴냄)에서 우리가 말로만 듣고 읽어보지 못했거나,읽었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삼국유사’를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알기 쉽게 설명했다.자신이 창시한 화쟁기호학으로 풀어낸 우리 신화와 문화의 원형 찾기다.화쟁기호학은 이분법을 극복하고,세계를 셋으로 보는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 비평을 결합,텍스트의 의미와 미적 가치를 끊임없는 진동의과정에 놓는 새로운 인문학 비평이론이다. 우리 앞의 사물을 드러나는 모습(품)과 숨어있는 본질(몸),작용하는기능(짓)등 세가지 범주로 인식한다.우리문화는 한(恨)의 문화가 아니라 정(情)과 한의 화쟁의 문화이며,우리에게 최상의 맛은 ‘얕은맛이 나는 깊은 맛’이요 ‘뜨거운 시원함’이라는 것.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가 된 이야기는 헌안왕을 속이고 왕위에 오른 사실을 은유한 것이며,조신의 꿈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왕자였으나 계속 푸대접받는데 격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한 김흔과 그일가의 무상한 삶을 환유한 것이라는 등 명쾌한 해석을 내놓는다. 신라의 조상신들이 산으로 온 데서 풍류도를,선도산 상모 사소의 법회에서 풍류만다라를,도솔가에서 화엄만다라를 발견한다.신라인은 오랜 세월동안 풍류도라는 세계관으로 자기 앞 세계를 바라보고 대응하다가,불교가 들어오자 풍류도와 합해 풍류만다라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더니,통일 후 극락정토 왕생을 소망하며 화엄의 원리를 체계화해 화엄만다라의 세계관을 정착시켰다고 강조한다. 김주혁기자 jh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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