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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시장 노리는 아시아 마약조직… 밀수 적발량 급증

    지난해 아시아 마약조직의 한국 진출이 노골화되면서 마약류 밀수 적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은 마약류 밀수 증가와 대형화 조짐에 따라 ‘적색 경보’를 발령하고 통관·감시분야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2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마약류는 660건, 425.8㎏으로 집계됐다. 전년(429건·69.1㎏) 대비 건수와 적발량이 각각 1.5배, 6배가 될 정도로 급증했다.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이 전체 52.3%(222.9㎏)를 차지해 2017년(30.9㎏)의 7.2배나 됐다. 코카인은 전년(136g) 대비 600배 늘어난 72.1㎏을 적발했다. 필로폰 밀수 적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대만 마약조직인 죽련방 등 중국계 밀매 조직이 한국시장을 노린 탓으로 분석됐다. 죽련방이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로폰 밀수는 2017년 1㎏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61㎏으로 급증했고 이달 현재 11㎏에 달했다. 최근 미얀마의 황금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대량 생산되면서 가격도 하락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반입 경로는 여행자(61건) 직접 운송이 줄어든 반면 특송화물과 국제우편 등 수출입 화물을 이용한 밀수가 90.0%(593건)를 차지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김종대, “靑행정관 軍인사자료 분실장소는 버스정류장…국방위 소집해야”

    김종대, “靑행정관 軍인사자료 분실장소는 버스정류장…국방위 소집해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11일 청와대 정모 전 행정관이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후 군 인사자료를 분실한 장소가 청와대 해명과 달리 “버스정류장이었다”며 “국회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정 전 행정관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차 안에 있던 가방이 사라졌다’는 청와대 해명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버스정류장이었다. 제가 술집이라고 표현을 해서 좀 자극적이었는데 법조계 인사들 만나서 어느 장소에서인가 만났다. 그게 술집인지 식당인지 명확치는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전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정 전 행정관이 삼각지에 있는 술집에서 자료를 분실했다고 주장했고 청와대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청와대가) 처음에 언론 보도가 나갈 때 이걸 정정할 수 있는 기간을 놓친 것 같다”며 “청와대가 잘못 이야기하고 저도 사실 그 버스정류장 이야기는 누락하고 그 전에 술자리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다소 혼란을 끼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책임 있는 당국자하고 어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김 의원께서도 술집이라고 단정 지은 건 심한 거 아니냐 그래서 그러면 서로 간에 우리가 공유할 진실이 뭐냐 이러다가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처음에 이 문제가 보도된 경위가 아주 석연치가 않다”며 “상당히 오래 전에 벌어진 일이고 청와대가 중요한 것만 체크하려고 하다가 디테일을 놓치다 보니까 불필요한 억측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의원은 “(청와대가) 처음부터 이 사건을 과소평가했다”며 “인사자료 분실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군내 인사체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보고 정식 계통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야외에서 비공식적으로 일이 진행되면 공공성과 책임성에 문제가 되는 것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재발 방지하도록 하겠다 했으면 끝났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디테일도 잘못됐다”며 “그 자료 내용에 대해서는 단정지을 수가 없지만 그 설명이 이상하다. 군의 인사자료는 인사자료지 임의자료는 뭐고 공식자료는 뭐냐”며 청와대 대응의 잘못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청와대의 공식문서나 기밀자료는 아니라는 청와대 해명에 대해 “행정관이 보고용으로 만든게 아니라 참고용으로 만든 것을 임의자료라고 한다면 올해 진급이 육사 몇기, 3사 몇기가 하고 진급 할당은 어떻게 하고 인사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진급해야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대통령이 관심 가져야 될 주요 직책은 무엇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겠냐”며 “다 공식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임의자료를 만드는 것이지 어떻게 인사정보가 공식정보와 임의정보로 구분이 되겠냐.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의원은 “일단 지금은 인사수석 또는 안보수석의 어떤 지시 없이 청와대 선에서 단독으로 이루어진 행동으로 보여지는데 이게 바로 문제”라며 “행정관 수준에서 총장을 만나고 의견을 얘기하고 이랬다는 건 상당한 월권 내지는 문란 행위로 볼 수 있다. 행정관이 수백 명인데 다 그런 식으로 하면 콩가루 집안인데 되겠냐”고 비판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을 지낸 김 의원은 “제가 2년간 행정관 하면서 육군총장을 만난 건 집무실에서 커피 한 잔, 딱 한 번 이게 전부였다”며 “나머지는 국방보좌관을 통해서 하고 또 수석을 통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이번 사건의 교훈은 모든 군인들 보고 청와대 행정관한테 인사청탁하면 된다 저쪽에 로비하고 줄 대서 진급 로비 경쟁해야 된다는 쪽으로 되는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폐해였는데 이 정부 와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군에 주는 신호는 매우 나빴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했지만 저희는 국방위를 소집해야 된다는 게 모든 야당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국방위에서) 당연히 다뤄야 되고 이 문제를 반드시 따져봐야 된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일본인들의 ‘경성 뉴타운’… 세월따라 주인 바뀐 ‘비극의 목격자’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일본인들의 ‘경성 뉴타운’… 세월따라 주인 바뀐 ‘비극의 목격자’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 투어’ 제31회 후암동(문화주택단지의 어제와 오늘) 편이 지난 1일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역 5번 출구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 앞에 집결한 참석자들은 ‘한국의 쉰들러’ 현봉학 박사 동상~남대문교회(서울미래유산)~남관왕묘 터~남산도서관(서울미래유산)~옛 미쓰비시경성합숙소(장우오피스텔)~옛 전생서 터(영락보린원)~문화주택 지월장(지월장 게스트하우스)~옛 조선은행 사택(한국은행 후암생활관)~성의사(서울미래유산)~옛 삼판소학교(삼광초등학교)~옛 경성 제2공립고등여학교와 수도여고(서울시교육청 시설관리본부)를 차례차례 둘러봤다.일제강점기 경성은 일본인을 위한,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의 도시였다. 연희전문 이순탁 교수는 동아일보 1927년 1월 5일자 기고문에서 “…경성은 조선의 중심이 아니라 게이조(경성의 일본식 발음)의 중심이며, 조선인의 경성이 아니라 일본인의 경성이다”고 선언했다. 당시 경성부 토지면적 약 1000만평 중 일본인 소유 토지가 164만평으로 조선인의 159만평을 앞섰다. 국공유지 440만평을 합치면 경성 토지 72%를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었다. 보유 토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조선인은 879만원인데 반해 일본인은 78% 이상 높은 1566만원에 이르렀다. 1927년 12월 11일자 조선일보도 “값이 높은 중앙 번영지는 전부가 일본사람과 외국인이요, 조선사람은 모두 산 밑 움막살이 초가집이 대부분…”이라고 보도했다. 1920년 당시 인구분포는 조선인이 20만명이고, 일본인은 7만 6000명이었다. 일본인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웃돌 정도였지만 경성 도심지의 토지와 집은 대부분 일본인 소유였다. 중외일보 1929년 11월 8일자에 따르면 “경성부민의 태반이 제 집을 가지지 못하고…조선인 측의 주택 문제는 일본인에 비하여 일층 심각한 형편이다”는 분석기사를 실었다. 당시 조선인 가구 4만 9000호(23만여명) 중 3만호가 월세 신세였다. 1895년 청일전쟁 승리 이후 한성부 남부 남산기슭에 자리잡았던 일본인들은 점차 진고개를 넘어서 서울역과 남대문로 일대까지 야금야금 점유공간을 넓혀갔다. 병탄 이후 충무로~필동~남대문로~후암동~용산 중심의 일본인 거주지를 청계천 이북 종로까지 확장해 나갔다. 1926년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안에 세우고 청운동과 효자동, 통의동과 동숭동, 명륜동 등 서울의 전통 주거지인 북촌과 동촌에 총독부와 경성부청, 동양척식회사, 식산은행, 경성제국대학 관사와 사택을 세웠다. 단순한 통치기구의 이전이 아니라 조선인의 북촌 축출과 일본인의 북촌 진입을 의미했다.적산가옥(敵産家屋)이란 일본인이 철수한 이후 정부에 귀속됐다가 일반에 불하된 주택이다. 일본인의 생활방식에 맞게 지은 일본식 주택 또는 서양식 문화주택이다. 일제는 서양식 주택을 집단적으로 지은 문화주택단지를 개발했다. 남대문 일대에서 후암동과 용산을 거쳐 영등포와 흑석동으로 나가는 축 선상과 광희문 밖 신당동을 지나 왕십리까지 뻗쳤다. 주로 경인선 철도와 전차 노선, 신작로를 따라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장소는 자연현상과 문화역사 그리고 환경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체이다. 사람의 행위와 의도가 이뤄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후암동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이다. 1900년 경인철도 개통과 1908년 일본군 용산 병영 건설 이후 최고급 주택단지로 군림했다. 광복 직후 유명인사들이 모여 사는 부촌이었다가 1970년 동부이촌동과 강남 개발 이후 거주민 교체를 겪었다. 1980년대 다세대, 연립주택단지로 주거형태가 바뀌었다. 거주자의 정치사회적 특성에 따라 주거공간의 변화가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일제는 뉴타운 개발계획에 따라 후암동에 거대 문화주택단지를 개발했고, 이어 왕십리와 보문동에도 새로운 단지를 세웠다. 후암동~용산과 신당동~왕십리를 연결하는 남산주회도로 공사가 1936년 시작돼 1939년 완공됐다. 현재의 삼각지역~약수역~보문동에 이르는 지하철 6호선 구간과 일치한다. 일본군 주둔지인 용산으로부터 이태원과 신당동, 왕십리, 신설동, 보문동 일대를 연결하는 거대한 동부 축 건설을 꾀했다. 두텁바위의 한자 표기인 후암동(厚巖洞)이라는 지명은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1886년에 일본인이 제작한 ‘한성근방도’에 후암동이라는 지명과 이 일대의 구릉과 물길, 마을이 그려진 게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일제강점기까지 두텁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가 존재했다고 하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없는 지명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터이니 조선시대에도 후암동이라는 지명이 실재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두꺼비바위(蟾巖)가 음운변화를 일으켜 두텁바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이 동네에 살았던 실학자 안정복의 제자 황덕길(1750~1827)이 두꺼비바위에 대한 기록을 문집 ‘하려집’에 남겼다. 두텁바위 혹은 두꺼비바위라는 지명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후암동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은 본래 도동(桃洞)이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전집’에서 봉숭아나무와 닥나무가 유명한 이 지역을 노래한 ‘도곡팔경’을 남겼다. 남관왕묘가 위치했던 도동은 1985년 후암동에 편입된 뒤 사라졌다.후암동은 남산의 남서쪽 산륵에 안겨 있다. 나라의 제사에 바칠 양과 염소 등을 기르고 공급하는 관청인 전생서의 목축장이었다. 1921년 조선은행(한국은행) 사택이 입주하면서 일본인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해 1930년대 문화주택지로 전성기를 누렸다. 개항 이후 부설된 경인철도 남대문역(서울역)이 용산 일대를 가장 빠르게 도시화했다. 후암동의 총독부 관사와 조선은행 사택, 미쓰비시경성합숙소 그리고 단지형 고급 주거지는 서구식 삶을 지향하는 주택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후암동은 남산의 조선신사와 용산의 군대가 지켜주는 신성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였다. 특히 신세이다이 주택지, 미요시와 주택지, 쓰루가오카 주택지 등 민간주택지들은 꿈의 집이었다. 소설이나 잡지, 신문기사를 통해 ‘빨간 기와 파란 기와의 문화주택들이 아름다운 색채로 늘어서 있는 동네’라고 묘사되곤 했다. 문화주택의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블록조였으며, 지붕은 평지붕에 아스팔트 방수처리가 됐고, 난방은 집마다 지하실에 전용보일러와 벽난로를 갖췄다. 세로로 긴 창문을 두고 남쪽에 발코니를 설치하는 등 구조, 의장, 설비 면에서 혁신적인 주택이었다. 온 동네에 도시가스가 공급되는 최고의 주택단지 옆에는 일본인들이 다니는 삼판소학교와 경성제2고등여학교, 용산고등학교가 위치했다. 지금 우리에게 후암동은 무엇인가. 후암동은 시대가 변할 때마다 거주자가 전원 교체된 곳이다. 조선시대 한가로운 목축 마을에서 일본인 고급주택단지로 바뀌었고, 광복 후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었다가 1970년대 동부이촌동 및 강남 개발로 명성을 잃었다. 100년 만에 급격한 퇴락의 길을 걸었다. 후암동에 남아 있는 300여채의 문화주택은 근대주거사의 비극적 단면이자 우리에게 과제로 남겨진 유산이기도 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서울의 문학4(박태원의 천변 풍경) ●일시: 12월 8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1호선 종각역 5번 출구 ●신청·안내: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 [그때의 사회면] 학생 동원/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학생 동원/손성진 논설고문

    남북 축구경기에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1960~1980년대에는 학생들을 각종 행사에 동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학생 동원은 일제의 잔재다. 일제는 신사참배는 물론이고 축제나 시가행진, ‘근로보국대’ 등에 학생들을 강제로 참가시켰다. 광복 직후에도 학생 동원은 일제강점기보다 덜하지 않았다. 1958년 3월 26일은 이승만 대통령의 83세 생일이었는데 초등학생들을 동원해 매스게임을 펼치는 등 탄신 축하 행사를 거창하게 열었다. 매스게임 문구는 ‘만수무강’이었다(경향신문 1958년 3월 27일자).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나 우리 대통령이 외국을 드나들 때 김포가도에는 동원된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억지 환영·환송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0년 6월 두 번째로 방한했는데 겉으로는 학생들의 환영은 자발적인 의사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아이크’가 김포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건너 도심으로 들어올 때 삼각지에서 덕수궁까지 서울의 남녀 중고생 전원을 배치해 성조기를 흔들게 했다(경향신문 1960년 6월 18일자). 여중고생들은 더위 속에 환영춤까지 연습해 추었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3공화국 정부는 학생들을 행사에 동원해 수업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수시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당시 실세였던 김종필씨 강연에도 학생들을 동원하는 등 금지령은 말뿐이었다. 학생 동원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가장 심했다. 수해 복구에도 학생들은 불려 나갔고 가뭄 극복에도 동원됐다. 조림공사, 모내기, 보리밟기운동, 교통량 조사, 송충이 잡기, 새마을 사업, 피마자 재배, 추수, 각종 캠페인 등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군소리 없는 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취임 일성으로 취임식 행사부터 학생들을 동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지켜질 리 없었고 제스처일 뿐이었다. 그해 7월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학생 밴드를 포함해 100만명의 환영 인파가 동원됐다. 모내기, 벼베기 등 농촌 일손 돕기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도시에서도 가두 캠페인 등의 행사에 학생은 약방의 감초였다. 학생 동원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최고조에 달했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카드섹션에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6500여명이 수업을 희생하며 연습을 한 끝에 개막식장에 동원됐다(동아일보 1986년 6월 20일자).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권구훈 TV강연에 감명받은 文…북방경제위원장 직접 추천·발탁

    권구훈 TV강연에 감명받은 文…북방경제위원장 직접 추천·발탁

    권구훈(56) 신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수석실에 직접 추천해 발탁했다고 청와대가 7일 밝혔다. 문 대통령은 권 위원장에게 이날 위촉장을 수여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위촉장 수여식 후 “문 대통령과 권 위원장이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명견만리’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 말고 TV에서도 직접 명견만리 프로그램을 보고 권 위원장의 강연에 감명받아 기억하고 있다가 인사수석실에 추천했고 검증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2015년에 방영된 ‘명견만리’에서 ‘왜 경제통일인가, 북·중·러 기회의 삼각지대, 대륙에서 살아남는 법’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프로그램이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 것이다. 권 위원장은 “저의 국제통화기금(IMF)과 골드만삭스에서의 경험이 북방정책 내실화에 충분히 녹아들어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골드만삭스 아시아 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겸직하고 있다. 북방경제협력위 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됨과 동시에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엄청 바빠지고 (골드만삭스와의) 이해 상충 문제가 제기될 정도가 되면 (겸직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권 위원장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DMZ 화살머리고지서 전사자 유해 2구 추가 발견

    DMZ 화살머리고지서 전사자 유해 2구 추가 발견

    지난달 24일 국군 전사자 유해가 발굴된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견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남북 공동 유해발굴 작업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화살머리고지에서 최근 유해 2구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국유단은 지난달 24일 고 박재권 이등중사(지금의 병장)의 유해를 발견한 적이 있다. 이번에 추가로 발견된 유해는 종아리뼈와 정강이뼈다. 종아리뼈는 지난달 29일 지뢰제거 작업 중에, 정강이뼈는 지난 5일 도로개설 작업 중에 각각 발견됐다. 이번 유해 2구는 모두 6·25전쟁 때 화살머리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국군 전사자인지는 정밀감식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국유단은 추가 발견한 유해를 지난달 30일과 이날 각각 수습해 약식 제례(현장에서 유해를 수습해 봉송하기 전에 전사자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고 유해가 발굴 현장을 떠남을 알리는 의식) 후 임시 봉안소에 안치했다. 향후 신원 확인을 위한 정밀감식과 DNA(유전자)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화살머리고지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역 중 한 곳이다. 국군 전사자 200여명과 미군·프랑스 전사자 100여명의 유해를 비롯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도 함께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재권 이등중사의 인식표 등 유해와 유품이 처음 발견됐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유품 5000여점이 수습됐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남북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해 발굴 사전 작업으로 지난달 1일부터 시작된 지뢰와 폭발물 제거 작업을 오는 3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000여명의 대규모 행렬로 남이장군 출진 재현한다

    1000여명의 대규모 행렬로 남이장군 출진 재현한다

    “비장(裨將) 남이 등이 돌격해 싸워서 적의 기치를 빼앗고 적 수백 명을 목베었다.”조선왕조실록 세조 13년(1467년) 9월 6일자에 기록된 문장이다. 그 해 5월 함경도 호족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에서 남이(1441-1468) 장군은 큰 공을 세웠다. 쉼없이 여진족 정벌에 나선 장군은 추장 이만주 부자를 사살하고 조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7세에 병조판서 자리에 올라 승승장구하는 듯 했지만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 세조가 죽은 뒤 예종 1년(1468년) 한강변 새남터에서 유자광의 모함으로 사형당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가 비운의 주인공 남이장군을 기리는 ‘제36회 남이장군 사당제’(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0호)를 오는 5~9일 용산구 일대에서 연다. 2000여명이 참여하는 사당제는 걸립(5~7일), 전야제(7일), 꽃등행렬(7일), 당제(8일), 장군 출진(8일), 당굿(8일), 사례제 및 대동잔치(9일) 순으로 진행된다.먼저 건립패가 3일간 마을 곳곳을 돌며 풍물을 치고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제, 당굿에 필요한 제례비용을 마련한다. 남이장군 사당(효창원로 88-10) 주변인 용문시장에서 열리는 전야제는 풍물패와 주민, 예술단이 함께 어우러진다. 당제는 장군의 업적을 추모하고 주민들의 무병 장수와 생업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다. 성장현 용산구청장도 제관으로 함께 한다. 행사에서 가장 절정으로 꼽히는 장군 출진은 남이장군의 출진 모습을 재현한다. 장군은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정벌 때 현재 삼각지 일대에서 군병을 훈련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코스는 남이장군 사당→효창공원 입구→숙명여대 정문→숙대입구역→남영동 삼거리→삼각지역→용산소방서→신용산역→전자상가 사거리→원효로2가 사거리→남이장군 사당이다. 보존 회기를 선두로 용기, 대취타, 도원수기, 장군, 부장, 영기, 군졸, 재관, 연등 1000명 가까운 대규모의 행렬이 이어지며 장관을 연출한다.억울하게 죽은 장군의 넋을 달래는 12거리 굿, 당굿과 굿이 끝난 다음 날 지내는 제사 사례제도 이어진다. 굿이 열리는 동안 주민들은 국수 잔치를 벌이고, 제사가 끝나면 대동잔치를 열고 제물을 나눠 먹는다. 성장현 구청장은 “남이장군 사당제는 300년 이상 이어진 지역 대표 문화유산”이라며 “원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주민과 꾸준히 함께 하겠다”고 전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철의 삼각지서 찾은 ‘박재권 중사’… DMZ 긴장완화 첫 결실

    철의 삼각지서 찾은 ‘박재권 중사’… DMZ 긴장완화 첫 결실

    유해발굴감식단 허벅지뼈 등 찾아내 인식표 토대 박재권 이등중사로 확인생존 여동생에 DNA 일치 확인 예정발견된 수통 30여발 총탄 박혀 있어지난 24일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첫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은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체결된 ‘9·19 군사합의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즉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례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획기적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가 없었다면 영영 발굴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평화’의 당위성을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를 통해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강원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에서 공동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사전 작업으로 지난 1일부터 이 고지에서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2일 공병부대에서 지뢰 제거 작전을 펼치던 중 M1대검 등 다수의 유품이 발견됐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24일 해당 지역에서 허벅지뼈 유해를 발견해 추가 조사활동을 시작했다. 군은 함께 발견한 인식표를 토대로 부대 전사자 명부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2사단 31연대 7중대 소속의 박재권 이등중사(현재의 병장)로 나타났다. 박 이등중사는 1931년 10월 2일생으로, 1952년 3월 21일 국군에 입대해 1953년 7월 10일 현재 화살머리고지의 옛 행정지명인 ‘강원 철원 내문면 하덕검리’에서 전사했다. 박 이등중사가 소속된 국군 2사단과 미군 9군단이 참전한 화살머리고지 전투는 1953년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7월 6일부터 1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전투였으나, 박 이등중사는 안타깝게도 전투가 끝나기 하루 전인 7월 10일에 장렬히 전사했다. 화살머리고지는 6·25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철의 삼각지’ 전투지역 중 하나로,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대대와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 3400여명이 이 전투에서 희생됐다. 현장에서는 M1 소총과 헬멧, 수통, 탄두 등 아군과 적군의 전투 유품이 뒤섞여 발견됐다. 수통 중 하나에는 30여발의 탄이 박혀 있기도 했다. 국유단은 박 이등중사가 2남 3녀 중 장남으로, 현재 여동생 2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유가족으로부터 DNA 시료를 채취해 식별된 유해와의 일치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25일 유해가 발굴된 현장에서는 전사자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는 약식제례가 진행됐다. 군은 화살머리고지에 국군 전사자 200여명을 포함해 미군, 프랑스군 전사자 100여명과 북한군과 중공군의 유해도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DMZ 내에는 1만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방부공동취재단·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녹색연합 “DMZ 유해발굴사업, 자연생태계 훼손 우려”

    녹색연합 “DMZ 유해발굴사업, 자연생태계 훼손 우려”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의 첫번째 조치로 추진되고 있는 남북공동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사업이 생태축 훼손 및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녹색연합은 16일 성명을 통해 “DMZ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태환경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환경평가 대상사업 임에도 절차와 과정이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남북은 지난달 19일 DMZ 안에서 수습하지 못한 6·25 전쟁 전사자 유해를 공동으로 발굴하는 시범사업에 합의했다.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진행한다. 이에 앞서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고, 12월 31일까지 유해발굴 지역 안에 남북 간 폭 12m의 도로도 개설키로 했다. 녹색연합은 과다한 규모의 진입도로에 우려를 표했다. “유해발굴사업은 토목공사가 아니기에 장비와 인력이 들어가기 위한 진입도로는 4~5m 비포장도로가 적절하다”면서 “과다한 도로 개설을 위해서는 지뢰제거에 대한 부담이 높아지고 DMZ 자연생태계 훼손이 가중될 수 있으며 산사태 등 재해 위험도 따른다”고 주장했다. 화살머리고지 생태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지를 중심으로 구릉성 산지가 있고 주변으로 역곡천과 지류들이 흘러 산림·평원림·하천·습지 등이 응축된 DMZ 자연생태계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연결하는 생태통로의 핵심 지역으로 두루미·반달가슴곰·수달·하늘다람쥐·삵·담비 등 멸종위기 포유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녹색연합은 “생태환경을 파괴하면서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복구 복원 대책도 없이 12m 도로가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면 DMZ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단절은 불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에서 서쪽으로 3㎞ 정도 떨어진 해발 281m다. 6·25 당시 철의 삼각지를 놓고 남북이 치열하게 싸웠던 전장(戰場) 중 한 곳이다. 남북은 이 지역을 양분한 뒤 정전을 맞았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평양정상회담 D-1] 서해 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 세부조치 합의 집중

    北, 해상경계선으로 불인정 입장 완강 DMZ 정찰 비행 중지 등 방안도 논의 실질 평화 구축 비핵화 마중물役 기대 18~20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이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한 실질적 평화를 구축해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종전선언 채택을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16일 “긴장 완화와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남북이 그간 논의도 했고 공감도 했다”며 “각각의 콘텐츠에 대한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을 담은 군사분야 합의서 초안을 상호 교환해서 문안을 정리 중”이라고 밝혔다. 합의서에는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시범 철수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 DMZ 내 공동유해발굴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지난 13~14일 판문점에서 17시간의 대령급 군사실무회담을 갖고 사안별 이행 시기와 방법 등을 논의한 바 있다. 합의서는 공식수행원으로 방북하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 간의 서명으로 채택될 전망이다. GP 시범 철수는 DMZ 내 1㎞ 거리까지 들어온 GP 10여개가량을 상호 철거하기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시범 철수를 통해 문제점 등을 확인한 뒤 향후 DMZ 내 모든 GP 철수로 확대해 간다는 구상이다. JSA 비무장화는 남북 경계병력이 무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처럼 상호 자유롭게 왕래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DMZ 내 공동유해발굴은 남측 철원과 김화, 북측 평강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백마고지 전투 등 6·25 전쟁 최대 격전지인 데다 궁예도성 유적지가 있어 유적 발굴도 가능하다. 특히 서해 NLL 일대 평화수역 조성을 위한 세부 조치에 합의할지도 관심이다. 남북은 지난 실무회담에서 평화수역 조성의 준비 단계로 NLL 일대에 함정 출입과 해상사격훈련을 금지하는 완충지대 설치 방안을 집중 논의했으나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는 북측의 입장이 완강해 진통을 겪기도 했다. 아울러 남북은 DMZ를 기준으로 10~20㎞ 지역을 완충지대로 설정해 군용기의 정찰비행 금지와 군사훈련 중지를 비롯해 훈련이나 부대 이동이 있을 때는 상호 통지하는 초보적 형태의 군비 통제 방안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방부와 인민무력성, 합참과 북한군 총참모부 간의 직통전화(핫라인) 설치가 최종 합의에 이를지 주목된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자치광장]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시대/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시대/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흙수저론, N포 세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현실에서 청년의 삶은 고달프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경제 활력을 이끌어 갈 청년에게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일자리가 없으니 결혼을 포기하게 되고, 결혼을 못 하니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세금이 줄어들고, 소비도 줄어 경제 저성장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민선7기 구정운영 무게중심은 ‘청년과 더불어 잘사는 용산’에 있다. 청년정책이 당사자들과 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 기획과정에서부터 청년들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청년자문단이 도입된 이유다. 200인 규모 정책자문단을 구성하기로 하고 8월 말까지 자문단을 모집 중이다. 자문단은 일자리에서부터 청년주택, 네트워크 활성화 등을 주제로 분기별 모임을 할 예정이다.  건강검진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층의 건강도 챙긴다. 아프면 청춘이 아니다. 말 그대로 ‘환자’일 뿐. 학업과 취업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으로 인한 건강악화가 예상되지만, 대체로 청년세대는 국가건강검진에서 배제돼 있다. 용산구는 민방위대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건강검진을 학생, 취업준비생에게 이르기까지 청년 전체로 확대한다.  나이 불문하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인 만큼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창업지원센터 운영, 면세점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 청년 맞춤형 공공근로사업, 찾아가는 취업 코디네이터 사업 등 취·창업 지원정책을 이어가는 것은 물론 민선7기에서는 일자리주식회사를 설립해 실질적인 체감온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용산구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동산이다. 높은 진입장벽에 막혀 청년층 유입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2020년 삼각지역 인근에 역세권 1호 청년주택이 조성되고, 롯데기공에서 남영역 인근에 2호 청년주택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대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발맞춰 나가되 그 역할이 달라야 한다. 많은 예산이 들거나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경우 중앙정부 차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주민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지방정부는 지역사정에 맞는 정책을 발굴, 추진해야 한다.
  • [월드 Zoom in] IS 끈질긴 생명력… 끝나지 않은 공포

    [월드 Zoom in] IS 끈질긴 생명력… 끝나지 않은 공포

    이라크 중부 삼각지대서 잦은 출몰 전문가 “재건 속도 너무 빨라 위험”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생명력이 끈질기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IS 외국인 전사들도 각국에 새로운 테러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런던대 킹스컬리지는 IS의 외국인 여성과 미성년자들이 테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4월부터 지난 6월까지 이라크와 시리아의 IS에 합류한 외국인 4만 1490명 가운데 여성이 4761명, 미성년자가 4640명이다. 상당수 여성들은 IS 전사들과 결혼한 ‘지하디스트의 신부들’로, 정확한 데이터는 제시되지 않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 고국으로 귀환했다. 실제로 2016년 10월 모로코에서는 여성 10명이 자살 테러를 계획한 혐의로 체포됐고, 이 중 4명은 지하디스트의 신부들이었다. 중동 지역의 IS 테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에서 IS 조직원이 자살폭탄을 터뜨려 20여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사령관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에는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주 퀘타 인근 총선 유세 현장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파키스탄 정부에 따르면 약 130명이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파키스탄은 25일 총선을 치른다.IS를 격퇴했다고 선언한 이라크에서도 최근 IS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워싱턴포스트(WP)는 IS가 이라크 중부지역으로 진출해 살인, 납치, 폭탄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IS는 이라크 중부의 키르쿠크, 디알라, 살라후딘으로 연결되는 삼각 지대에서 주로 출몰한다. 최근 2개월간 이 일대에서 지방정부 공무원, 부족 원로 및 촌장 등 수십명이 IS 전투원을 자청하는 남성들에게 납치되거나 살해됐다. IS가 이라크 정부군 6명을 납치한 사건은 삼각 지대 주변 주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라크의 대테러 전문가 히샴 알 하세미는 “참패했던 IS가 권토중래를 시도할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면서도 “하지만 너무 시기가 빠르다. IS의 재건 속도가 너무 빨라 위험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나이츠 군사 분석가는 “IS가 회복되고 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 그들은 이제 영토를 장악할 수는 없지만, 도로를 통제할 수 있고 야음을 틈타 이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그다드에 주둔 중인 미군 대변인 션 라이언 대령은 “IS에는 여전히 대중을 공포에 빠뜨릴 능력이 있다. IS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한국토지신탁 브랜드 담아낸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선착순 분양 스타트

    한국토지신탁 브랜드 담아낸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선착순 분양 스타트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에 들어서는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은 최고 32층 규모의 공동주택,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로 구성돼 지역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분양시장에서 시공사의 브랜드 파워는 분양 성패에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대형건설사들의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들은 신뢰도와 선호도가 높게 형성돼 수요가 풍부하고 환금성도 뛰어나다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 이에 한국토지신탁의 브랜드를 담은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역시 분양 전부터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단지 1층에 다양한 근생시설이 입점해 원스톱 라이프 실현이 가능한 가운데 총 243대가 수용 가능한 주차시설과 더불어 24~25층에는 입주민들의 힐링 공간인 하늘정원이 들어서며 14층에 피난안전층이 마련돼 입주민의 안전까지 배려했다 1층에는 근린생활시설, 2~3층 오피스텔, 4층에 아파트 부대시설이 각각 들어서며 5~32층에 아파트가 설계됐다. 원룸형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24㎡(구 9형)와 33㎡(구 14형) 등 62실로 이뤄지며 아파트는 총 154세대 규모, 전용면적 59㎡A, 59㎡B, 63㎡A, 63㎡C 각 26세대와 63㎡B 50세대 등 1~2인 가구 급증세에 부합하는 5가지의 중소형 타입으로 구성된다. 이 아파트는 주변에 저층건물 위주 입지로 보문산 등 탁 트인 조망권을 갖춰 파노라마 도심 전망(일부 세대 제외)을 확보했으며 탑상형과 판상형 구조로 모든 세대를 남향 위주로 배치해 도심 속에서도 일조권이 극대화된다. 단지 약 40m 앞에 KTX 서대전역이 위치해 있으며 약 600m 이내에 지하철 1호선 서대전네거리역이 자리한 가운데 추후 지하철 2호선(트램) 및 광역철도 개통으로 트리플 환승이 예정된 교통환경을 구비했다. 여기에 경부고속도로 대전IC, 호남고속도로 지선 유성IC를 통한 인접 지역 진·출입도 용이하다. 서대전역, 용두환승역(신설), 서대전네거리역을 잇는 철도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가수원-논산 구간의 29.3km에 이르는 철로를 직선화하는 호남선 고속화 사업이 진행 중으로 호남선 고속화 사업이 완료되면 서대전역은 대전의 교통 요충지의 입지를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지 주변에 형성된 다양한 생활인프라는 입주민들에게 우수한 정주 여건을 제공한다. 코스트코와 홈플러스, 세이백화점 등의 대형쇼핑시설이 도보 거리에 위치했으며 영화관 등 엔터테인먼트 인프라도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게다가 충남대병원, 가톨릭대성모병원 등의 의료시설도 바특해 주거 편의성을 높인다.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인근에는 축제와 이벤트가 펼쳐지는 인근 서대전공원과 CGV, 음식특화거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웰빙을 도모하며 오류초교, 글꽃초중교, 동산고교 및 시내학원가 등이 단지 가까이에 형성돼 명문 학군을 품고 우수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 모델하우스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 내방객 인파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계약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프리미엄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조기 분양 완료가 점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모델하우스는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동에 위치하며 현재 매주 경품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경품 행사는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추첨을 통해 진행되며 모델하우스를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사은품도 증정된다. 관련 정보 확인 및 문의는 홈페이지와 대표전화를 통해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公슐랭 가이드] 육·해·공 ‘맛 부대’ 떴다

    [公슐랭 가이드] 육·해·공 ‘맛 부대’ 떴다

    용산 삼각지는 서울에서 군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장소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및 국직부대, 한·미연합사령부가 인근에 있고, 육·해·공군 본부와 야전 군인들도 출장으로 자주 찾는다. 그래서 삼각지 인근에는 군인들에게 유명한 맛집이 많다. 혹자는 ‘군인은 뭐든 잘 먹고, 양만 많으면 장땡’이라고 하지만, 군인들은 직업 특성상 이사를 많이 다녀 전국 곳곳의 음식을 경험하는만큼 ‘식도락’(食道樂)이 무엇인지 안다. 그중에서 가격 대비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가 가능한 ‘육·해·공’ 맛집 세 곳을 소개한다.# 큼지막한 통삼겹살이 든 김치찌개 ‘동이네’ 겨울철마다 손님들로 가득한 맛집에는 유리창마다 ‘맛의 김’이 서린다. 용산우체국 모퉁이를 돌면 유리창에 김이 가득한 김치찌개집이 있다. 삼각지엔 유난히 김치찌개집이 많지만, 한 집만 뽑으라면 단연코 ‘동이네’가 뽑힌다. 잘 익은 김치가 듬뿍 든 붉은 육수와 손바닥만한 큼지막한 통삼겹살은 이 집의 상징이다. 두부와 야채, 라면 사리가 들어간 김치찌개는 손님상에서 보글거린다. 맛 좋고 든든한 한 끼가 이곳에선 1인분에 7000원이다. 추가 밥 한 공기는 서비스다.# 살 꽉 찬 대구·미나리 듬뿍 ‘자원 원조 대구탕’ 삼각지에 유명한 먹거리 골목 중 하나가 ‘대구탕 골목’이다. 삼각지역 4호선 1번 출구나 6호선 14번 출구로 나오면 대구탕집 네 곳이 있는 대구탕 골목이 보인다. 맑은 국물과 붉은 국물의 대구탕집이 있는데 그중 ‘자원대구탕’은 얼큰한 붉은 국물의 대구탕이 유명하다. 원래는 군인들이 출장으로 자주 오가며 추억을 나누고 단골이 많아져 유명해진 곳이다. 지금은 한류의 영향을 받아서 외국인 미식가들도 많이 찾는다. 자원대구탕은 통통한 대구를 그대로 넣어 별도의 육수 없이도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낸다. 식감을 높여 주는 미나리와 콩나물도 가득 들어 있다. 국물을 다 먹고 난 후 볶아 먹는 밥도 일품이다. 든든한 한 끼 식사가 1인분에 1만원이다.# 얼굴만 한 뚝배기에 닭볶음탕 가득 ‘솔뫼’ 대구탕 골목에서 몇 걸음만 이동하면 노란색 벽면의 ‘솔뫼’라는 식당이 나온다. 겉모습은 종로 피막골에서 볼 법한 파전집 분위기다. 자리마다 땀을 닦아 가며 맛있게 식사하는 손님들로 늘 가득하다.얼굴만 한 크기의 큰 뚝배기에 반계와 감자, 당근, 당면이 진한 양념과 어우러져 있다. 알싸한 국물에 흰 밥을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식사를 하다 보면 코끝과 눈 밑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네모난 양철 도시락에 달걀 프라이를 넣어 주는 밥과 옛날식 떡볶이도 별미로 제공한다. 한 끼 식사 가격은 6000원이라 부담없이 즐기기에 더 좋다. 비 오는 날에는 전과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으니 미리미리 가야 즐길 수 있다. 위진 육군본부 중앙매체담당 소령
  • 조근현 감독 성희롱 추가 폭로…“면접 장소 오피스텔로 바꾸고 술 권해”

    조근현 감독 성희롱 추가 폭로…“면접 장소 오피스텔로 바꾸고 술 권해”

    성희롱 의혹이 제기된 영화 ‘흥부’ 조근현 감독에 대해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24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저는 여자 배우 지망생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조근현 감독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누리꾼의 글이 등장했다. 글쓴이는 한 조연출과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캡처를 공개했다. 오디션 일정을 주고받던 해당 메시지에는 ‘지금 영화사 인테리어 공사 마무리로 여의치 않아 감독님 작업실에서 (오디션을) 임시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글쓴이는 “연기과에 재학 중인 여대생”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뒤 “2016년 4월 조근현 감독과 미팅을 했다”면서 “약속 장소는 오피스텔이었고, 미팅 시간이 오후 1시라 별 걱정 없이 갔다. 처음에 오피스텔 현관문을 살짝 열어놓으시길래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처음엔 평범한 미팅이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의 흐름이 ‘남자친구는 있냐’, ‘경험이 있냐’, ‘지금 잘나가는 여배우들은 다 감독과 잤다’, ‘누구는 섹스 중독자 수준이다’, ‘누구누구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작품을 줬다. 너도 할 수 있겠냐’ 등”이었다고 전했다. 글에 따르면 조근현 감독은 오피스텔 문을 닫고, 오렌지 주스 한 잔을 글쓴이에게 건넸다. 마셔보니 술이었다. 글쓴이는 “못 마신다고 했는데도 계속 권했다”고 했다. 글쓴이는 “그 뒤의 이야기는 앞서 미투를 올렸던 배우지망생분과 매우 유사하다. 많이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도 그 사람 뇌 속에는 잠자리뿐인 것 같다”면서 “2시간 후 약속이 있어 간다고 했더니 순순히 보내줬다. 그런데 ‘다리가 참 예쁘네, 엉덩이도’라며 아쉬워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글쓴이는 “그는 유명한 여배우들의 이름을 앞세워 계속해서 저를 유혹했고, 대한민국에서 여배우가 되기 위해선 감독들과의 그런 (성적인) 교류는 무조건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했다. 제 꿈을 빌미삼아 달콤한 것들로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면서 “나는 연기가 하고 싶다. 제 친구들과 후배들이 비상식과 온갖 모순으로 가득찬 그 바닥을 더 이상 겪지 않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글쓴이는 조근현 감독 외에도 유부남이면서 자신과 연애하자고 했던 예전 소속사 사장, 가슴 사이즈를 물어보며 여배우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던 또 다른 소속사 사장 등도 언급했다. 앞서 배우 지망생 A씨는 조근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뮤직비디오 오디션 당시 조근현 감독이 “여배우는 여자 대 남자로서 자빠뜨리는 법을 알면 된다”, “깨끗한 척해서 조연으로 남느냐, (감독을) 자빠뜨리고 주연을 하느냐, 어떤 게 더 나을 것 같아?”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흥부’ 제작사는 모든 영화 홍보 일정에서 조근현 감독을 전면 배제했다. 조근현 감독은 이후 미국으로 출국, 아직도 체류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다음은 조근현 감독 성희롱 추가 폭로 글 전문 안녕하세요. 저는 이십대중반이 된 배우지망생입니다. 많은 사건들과 미투운동을 보며, 굳이 글재주가 없는 나까지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레 겁이 먼저 났지만, 더이상의 거짓말은 보고싶지가 않아서 용기내서 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연기과에 재학 중인 여대생입니다. 지방에서 상경한지라,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프로필을 돌리며 많은 오디션과 미팅을 접했습니다. 빽도 없고 줄도 없고 돈도 없는지라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많은 오디션을 통해서 조단역으로 간간히 드라마 촬영을 했습니다. 학교생활과 병행해서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 휴학계를 내고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ㅈㄱㅎ감독과 미팅을 한것도 휴학계를 냈던 이십대 초반 2016년 4월경입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프로필을 보고 연락을 줬다는 영화 조연출의 문자였습니다. 새로운 영화에 들어가게 되는데 신인여배우를 찾는다며, 감독님과 미팅을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감독의 이름을 네이버에 쳐보니, 꽤 이름이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전 작품을 찾아보고 열심히 오디션을 준비했죠. 처음 연락이 왔을 때에는 삼각지역 근처 영화사라고 했는데, 미팅 전전 날 영화사 인테리어 공사때문에 감독님 작업실로 오라는 카톡메세지가왔습니다. 이상하게 감독님 오피스텔도삼각지역 근처였습니다. 하지만 미팅시간은 오후1시였고, ‘대낮에 설마 무슨일이 있겠어’ 하며 별 걱정없이 그 오피스텔에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오피스텔 현관문을 살짝 열어놓으시길래 저의 모든 의심은 깨끗하게 사라졌고 그 감독과의 미팅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피스텔은 10평이 조금 안되어보이는 원룸이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은 감독 한명이었구요. 처음에는 저에 대해서 물어보며 평범한 미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경청하는 제가 많이 순진해보였는지, 점점 이야기의 흐름은 섹스뿐이었습니다. 남자친구는 있냐, 남자친구를 많이 사귀어봐야한다. 경험이 있냐. 이러이런거 좋아하냐. 지금 잘나가는 여배우들은 다 감독과 잤다. 누구는 섹스중독자수준이다. 누구누구는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해서 내가 작품을 줬다. 너도 할 수 있겠냐. 등등. 그리고 그는 오피스텔 문을 닫아버렸고, 오렌지주스 한 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술이었습니다. 저는 술을 잘 못하기도하고 스무살이후로는 아예 마시지 않았습니다. 술을 잘 못한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계속 술을 마시라 권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를 앞서 미투를 올렸던 배우지망생분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A감독이라 떴을 때무터 저는 그 사람임을 바로 알아챘었죠. 여배우는 남자를 유혹할 줄 알아야하고 남자 경험이 많아야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겠냐며 물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다고 하며 그저 웃었습니다. 많이 무서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헤헤 웃으며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사람의 뇌 속에는 섹스뿐인 것 같습니다. 모든 내용은, 그저 잠자리이야기 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힘든 두시간이 지나고 저는 뒤에 엄마와 만나야하는 약속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생각외로 그는 순순히 나를 보내주었습니다. 일어나 현관문으로 걸어가는데, “다리가 참 예쁘네, 엉덩이도 그렇고.” 군침을 삼키듯 아쉬워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바보같이 웃으며 그곳을 빠져나왔죠. 그리고 며칠뒤 불합격 통지를 줬습니다. 생전 처음보는 저에게도 그러는 그가. 과연 불순한 의도 없이 저를 오피스텔로 불렀을까요? 그는 유명한 여배우들의 이름을 앞세워 계속해서 저를 유혹했고, 대한민국에서 여배우가 되기위해선 감독들과의 그런 (성적인) 교류는 무조건 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저의 꿈을 빌미삼아 달콤한 것들로 나를 집어 삼키려 했습니다. 왜 그래야할까요. 2015년 겨울, 유부남인 소속사 사장은 왜 나와 연애를 하자고 했을까요. 부담스러워 연락을 끊었음에도, 왜 핸드폰에 불이나게 카톡과 부재중 전화를 남겼을까요. 단 한번 카페에서 미팅했던 사이었는데. 2017년 가을, 신생 소속사 사장은 내 가슴사이즈를 물어보며 벗는 것에도 배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저의 말에 벗는 영화든 뭐든 여배우는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며 도로변에서 고래고래 인격모독을 했을까요.그 날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그리고 나는, 왜 그들에게 딱잘라 말할수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왜 잘못하지 않았는데 죄송하다 했을까요. 나이가 들수록,살이 조금이라도 찔때면 겁이납니다. 여배우는 나이가 생명이라고 끊임없이 압박을 주고, 앞니를 다 뽑아서 새로하고 자연적인 쌍커풀이 있는데도 더 진하게 수술하고 앞트임 뒤트임까지 해야한다고 만나자마자 과도한 성형견적을 뽑는 그들의 모습이 왜 당연해 보이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원래 이런 바닥이니까.. 내가 하고싶다고 했으니까... 라는 말이 비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나는 연기가 하고싶어요. 드라마, 영화를 통해 내가 느낀 것처럼 감동과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싶고요. 그리고 저는 제 얼굴이 좋아요. 외모보다는, 연기라는 예술을 공부하고 깊어지고 싶어요. 이 쪽에 발을 담근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렵습니다. 여배우는...여배우는....이라는 말이 두렵습니다. 부디 이 연예계가 저의 부족한 글로 조금이나마 변화되길 기도하며 올립니다. 배우는 연기하는 사람이지, 배부른 자들의 먹잇감과 트로피가 아닙니다. 비상식과 온갖 모순으로 가득찬 그 바닥이 저의 친구들과, 후배들이 더이상 겪지 않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 브랜드 파워 담은 32층 초고층 아파트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선착순 분양

    브랜드 파워 담은 32층 초고층 아파트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선착순 분양

    일반적으로 분양시장에서 시공사의 브랜드 파워는 분양 성패에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대형건설사들의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들은 신뢰도와 선호도가 높게 형성돼 수요가 풍부하고 환금성도 뛰어나다는 특징을 지니기 때문. 또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특화설계와 다양한 금융 혜택과 지원 서비스, 높은 안정성 확보 등도 브랜드 아파트 선호 요인으로 지목된다. 선착순 분양에 돌입한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은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에서 만날 수 있다. 최고 32층 규모의 공동주택, 업무시설, 근린생활시설로 구성돼 지역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이 아파트는 주변에 저층건물 위주 입지로 보문산 등 탁 트인 조망권을 갖춰 파노라마 도심 전망(일부 세대 제외)을 확보했으며 탑상형과 판상형 구조로 모든 세대를 남향 위주로 배치해 도심 속에서도 일조권이 극대화된다. 단지 1층에 다양한 근생시설이 입점해 원스톱 라이프 실현이 가능한 가운데 총 243대가 수용 가능한 주차시설과 더불어 24~25층에는 입주민들의 힐링 공간인 하늘정원이 들어서며 14층에 피난안전층이 마련돼 입주민의 안전까지 배려했다 1층에는 근린생활시설, 2~3층 오피스텔, 4층에 아파트 부대시설이 각각 들어서며 5~32층에 아파트가 설계됐다. 원룸형 오피스텔은 전용면적 24㎡(구 9형)와 33㎡(구 14형) 등 62실로 이뤄지며 아파트는 총 154세대 규모, 전용면적 59㎡A, 59㎡B, 63㎡A, 63㎡C 각 26세대와 63㎡B 50세대 등 1~2인 가구 급증세에 부합하는 5가지의 중소형 타입으로 구성된다. 단지 주변에 기 형성된 다양한 생활인프라는 입주민들에게 우수한 정주 여건을 제공한다. 코스트코와 홈플러스, 세이백화점 등의 대형쇼핑시설이 도보 거리에 위치했으며 영화관 등 엔터테인먼트 인프라도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게다가 충남대병원, 가톨릭대성모병원 등의 의료시설도 바특해 주거 편의성을 높인다.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인근에는 축제와 이벤트가 펼쳐지는 인근 서대전공원과 CGV, 음식특화거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웰빙을 도모하며 오류초교, 글꽃초중교, 동산고교 및 시내학원가 등이 단지 가까이에 형성돼 명문 학군을 품고 우수한 면학 분위기를 조성한다. 단지 약 40m 앞에 KTX 서대전역이 위치해 있으며 약 600m 이내에 지하철 1호선 서대전네거리역이 자리한 가운데 추후 지하철 2호선(트램) 및 광역철도 개통으로 트리플 환승이 예정된 교통환경을 구비했다. 여기에 경부고속도로 대전IC, 호남고속도로 지선 유성IC를 통한 인접 지역 진, 출입도 용이하다. 서대전역, 용두환승역(신설), 서대전네거리역을 잇는 철도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가수원-논산 구간의 29.3km에 이르는 철로를 직선화하는 호남선 고속화 사업이 진행 중으로 호남선 고속화 사업이 완료되면 서대전역은 대전의 교통 요충지의 입지를 곤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델하우스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 내방객 인파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계약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프리미엄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조기 분양 완료가 점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대전역 코아루 써밋 모델하우스는 대전광역시 서구 가수원동에 위치한다. 현재 매주 경품 이벤트를 진행 중이며, 관련 정보 확인 및 문의는 홈페이지와 대표전화를 통해 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이호영의 그림산책2]샤갈의 마을과 나

    [이호영의 그림산책2]샤갈의 마을과 나

    초록 얼굴에 십자가의 목걸이. 손에는 나뭇가지를 들고 건너의 염소를 보는 사내가 있다. 흰 얼굴,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한 염소. 젖을 짜는 여인은 그의 얼굴에 담겨 있다. 화면의 큰 축을 이루는 사내와 염소. 둘 사이에 마을이 있다. 교회와 삼각지붕의 집들이 있는 마을. 마을의 하늘은 벌써 어두워 밤이다. 화면의 상단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는 사람의 마을. 환한 골목길. 그 길에는 낫을 든 사내와 여인이 집보다 크게 그려져 있다. 사람과 염소를 엮어 내는 것은 원형의 선. 달의 형상은 원형의 선 끝에 매달려 있다. 붉은 색과 흰 색이 교차하는 공간사이. 사내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가 하단의 중심을 이룬다. 1911년에 제작된 샤갈의 ‘마을과 나’이다.사내의 응시는 소의 눈에 있고, 소의 응시 또한 초록 사내에게 있다. ‘마을과 나’의 주제는 그러므로 응시라고 볼 수 있다. 샤갈은 초록색 얼굴의 남자가 되어 소를 바라본다. 소는 고향의 추억이며 그리움의 상징이다. 이 둘의 시선은 서로를 향한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고향에 대한 그의 그리움. 화면의 큰 축을 이루는 사내와 소. 그리움과 그리움에 대한 갈망은 서로를 마주보게 했다. 그 기억의 풍경은 그러므로 둘 사이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마을의 골목길에는 사랑과 평화가 깃든 풍경이 펼쳐진다. 들에서 온 종일 일을 했을, 그리하여 저녁놀에 일을 마친 사내-낫을 걸쳐 맨 것으로 보아 농부가 분명한- 를 맞이하는 여인. 여인의 손에는 반가움과 사랑이 담겨 있다.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마을. 샤갈의 마을이다. 대비와 눈길 두기에서 그리움의 향기는 깊이를 더한다. 나의 마을, 나의 고향이 그립다, 고 샤갈이 말을 한다. 샤갈의 마을과 나는 그러한 응시를 통하여 그리움, 사랑에 다가가고자 한다.무중력으로 이루어진 공간의 구성을 통해 영원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그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와 몽상적인 화면을 구현한다. 하늘을 나는 꿈. 그 꿈속에서나 보일 풍경이 샤갈의 세계에서는 무한정 펼쳐진다. 여러 사물들이 상상 속의 풍경처럼 휘어지기도 다른 사물과 풍경과 겹쳐지기도 한다. 화려한 색채와 더불어 꿈결 같은 화면은 실제의 공간에서는 만날 수 없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공간들이 겹쳐져 있다. 한 사물 안에 다른 사물과 풍경이 그려져 있어 그 사물이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샤갈의 화면을 이끄는 것은 근원-고향에 대한 그리움 혹은 아름다운, 영원한 사랑에의 갈망이다.(그림 2.3.4) 샤갈은 유태계 러시아출신의 화가이다. 1910년 파리에 온 샤갈은 작품의 방향을 전환한다. 파리는 샤갈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수틴(Chaim Soutine), 아키펭코(Alexandr Archipenko), 레제(Fernand Léger)등의 젊은 작가들이 입체주의, 야수주의 경향의 작품들을 실험하고 발표하는 왕성한 실험무대가 펼쳐진 젊음의 도시, 새로움이 가득한 예술의 도시였다. 모이셰 세갈(Moyshe Shagal)에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로 개명한 것도 파리로 온 이후 이 새로운 도시에 감동을 받은 이후이다. 또한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막스 자코브(Max Jacob),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 블레즈 상드라르(Blaise Cendrars)등의 시인과도 교류했다. 그의 작품이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경향과 화려한 색채를 갖고 있고, 서정적이고 문학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는 것이 그러한 교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또는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하면 많은 사람들은 일견 샤갈이 그린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이 제목은 ‘꽃’의 시인으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의 시이다. 샤갈의 작품에는 이러한 제목이 붙은 작품이 없다. 마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샤갈의 작품은 위의 작품 ‘마을과 나’이다. 러시아 출신 실향화가 샤갈의 작품이 모티브가 되어 한국 시인 김춘수의 시가 되었다. 만남은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시인이 그러했듯이. 만남은 응시로부터 온다. 거리 속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의미가 될 수 있는 것은 응시를 통해서이다. 바라볼 때 보이고, 보일 때 그 의미를 알아보며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을 만나는 것은 낯선 곳으로의 초대이다. 예술작품은 일상의 시선을 전복하거나 다른 시선에서 사물, 사건들을 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선은 처음에는 낯설 수밖에 없다. 그 작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느리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눈길을 주었을 때 숨겨져 있는 의미들이 그의 모습을 드러낸다. 환한 눈으로, 순수한 눈길로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말들을 감지했을 때 스스로가 보고자 하는 것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것은 순간이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 바르르 떤다. /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날고 /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 삼월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 이 호 영 (미술학 박사. 아티스트)
  • 네덜란드 참전용사 대한민국의 품에 ‘영면’

    네덜란드 참전용사 대한민국의 품에 ‘영면’

    한국전쟁 때 참전한 네덜란드 참전용사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면한다.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Johan Theodoor Aldewereld)의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을 27일 오전 11시 거행한다고 26일 밝혔다. 알데베렐트의 유해는 지난 25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와 서울현충원 봉안당에 임시 안치됐다. 고인은 1951년 8월 네덜란드 반호이츠부대 보병(일등병)으로 참전해 단장의 능선 전투, 평강 별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 전투에 투입됐다. 1952년 7월 12일 전역한 뒤 네덜란드로 돌아가 사업가로 활동했다. 고인은 2016년 5월 네덜란드 횡성전투 65주년을 계기로 국가보훈처의 재방한 사업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당시 동료 전우인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의 유해 봉환식과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에도 참석했다. 고인은 네덜란드 참전협회에 동료들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지난 2월 4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부산유엔기념공원의 유엔 참전용사 사후 개별안장은 2015년 5월에 처음 실시됐으며 이번에 여섯 번째로 안장식이 열리게 된다. 이날 안장식 행사에는 네덜란드 방한단과 국가보훈처 및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관계자, 군사정전위원회 대표, 유엔사령부 대표 등 30여명이 참석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국가보훈처는 6·25 전쟁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Johan Theodoor Aldewereld) 씨의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식을 27일오전 11시 거행한다? <국가보훈처 제공>
  •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이전을 재고해주세요”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이전을 재고해주세요”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소식에 ‘박물관 지킴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종철 전 한국전통문화대 2·3대 총장 등 한국박물관을 사랑하는 박물관 관계자·문화유산전문가 등 11명은 지난 21일 3시간에 걸친 회의를 가졌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전문제가 핵심 논의대상이었다. 정부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을 당초 이전 대상지인 용산 미군기지 이전지가 아니라 세종으로 이전하려는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다음은 이 총장이 이 회의를 토대로 도종환 문체부 장관에게 보낸 건의문이다. 안녕하십니까? 국민의 사랑 받는 시인이시며, 도종환 국회의원님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을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평소 남다른 국정을 펴시는 분이라 여겼으니, 기대 역시 큽니다. 저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국립광주박물관 연구실장,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하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2ㆍ3대 총장으로 임명되어 41년 간 공직에 봉사했던 이종철입니다. 7월 중순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 계획이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보고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제 눈과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풍문에 의하면, 세종시로의 이전 이유가 문화부 소유 용산부지가 너무 좁다는 데 있고, 대안으로 세종시 박물관 단지로 이전하는 한편 용산의 이전 예정부지는 국립문학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뜬금없는 내용인데, 만일 이러한 성급한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도권 시민의 문화 향유권이 약해지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의 한국문화 체험 명소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국립(중앙)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5천 년 생활사를 집약 전시한 문화 현장이고 서울·경기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점이 더해져 외국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대표적 문화체험 공간으로서 명성을 떨쳐 왔습니다.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10조와 65조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은 민속문화를 대표하는 국가 대표박물관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ㆍ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서울에 두고(진흥법상의 묵시적 함의라 생각합니다) 세계 각국의 생황양식의 전시와 교육을 위한 지방박물관을 둘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종시의 국립민속박물관 이전보다 국제적 경쟁력이 있고 세계문화유산을 소통시킬 수 있는 국립어린이인류학 박물관(6ㆍ25참전국, 아세안 중심의 다문화이해)을 문재인 정부의 이니셔티브로 다시 추진하여 문대통령님 임기내 개관 할 것을 간곡히 건의합니다. 저는 국립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시절인 2006년 2월부터 세종시 어린이인류학(민족학)박물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아 문화대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봉사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은 연구용역과 건물 설계까지 마무리되어 순조롭게 추진되다가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진행된 대운하 건설과 관련하여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어린이박물관 건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경애하는 도종환 장관님 문화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서는 아니 됩니다. 더욱이 ‘국민의 나라,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정책은 연속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했던 국립민속박물관의 용산 이전을 실행해야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용산 이전은 김대중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기획되었고, 1999년부터 2011년 12년 동안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ㆍ한국문화정책개발원ㆍ국립민속박물관ㆍ민속학회와 인류학회 등이 추진하여 한국개발원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현재 진행형의 사업입니다. 2009년 3월 30일,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는 국가 상징거리 조성계획에 삼각지의 전쟁기념박물관 근처에 입지 계획을 발표하고, 당년 10월 20일에는 문화관광부 기획재정부 용역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ㆍ건교부 등 관련 기관과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해 왔습니다. 아울러 국립민속박물관은 수장고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 파주출판문화단지 내 개방형수장고와 경기북부의 문화향유권을 제공하기 위해 야외전시 공간시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시 이전 발표로 원대한 계획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 문화인은 세계인의 문화수도인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나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스미소니안몰과 같은 문화명소를 꿈꿉니다. 문재인 정부의 하이라이트는 국민문화시설 창조이고 문화복지입니다. 숲이 있는 용산공원 내의 박물관 건립은 문화명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문화적 위용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푸쉬킨 시비에 헌화된 공산치하 무명국민의 참배를 기억하시겠지요? 문화는 생명의 길이고 삶의 가치를 지향하는 디자인입니다. 용산이 지닌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문화가 집약된 박물관 건립으로 말입니다. 친애하는 도 장관님 문화부의 문화기반 정책국과 국립민속박물관 측에서는 도 장관님께 보고한 내용이나 국정위 결정지시 공문 일체를 소직에게 함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7월 26일부터 오늘까지 한 달 여를 고민하면서 문화유산 발굴과 창달에 평생을 바친 공직자의 신념과 양식으로서, 국정위 결정은 미래지향적인 발전 계획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장관님께 건의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어설픈 글로 청원을 올립니다. 최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의미 있는 문화정책을 기대합니다. 그럴 때 문화가 숨 쉬는 대한민국이 가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종시의 이전 계획을 재고하시고 용산공원 내의 이전 건립을 재확정해 주십시오. 지난 주 입추가 지나고 문화의 계절인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부디 장관님의 용단으로 아름다운 가을, 문화가 결실을 맺는 문재인 정부의 첫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쁘신 가운데 저의 청원서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장관님의 강건과 광영, 문화체육관광부의 무한 발전을 빕니다. 2017년 8월 28일 이종철 올림 *추기 아울러 저의 건의는 한국박물관을 사랑하는 박물관 관계자ㆍ문화유산전문가 등 11명이 모여 3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 합의한 내용을 간추려 만든 청원서임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강신표 인재대 문화인류학 명예교수 김영종 건축가, 종로구청장 김의정 (사)국립민속박물관회 이사장, 명원문화재단 이사장, 전 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장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홍남 한국내셔날트러스트 공동대표,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문미옥 서울여대 아동학 교수, 한국 아해어린이박물관장 이선종 원불교 중앙본부 교무, 은덕문화원장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아세아문화중심도시 추진위원장 이종철 전 한국전통문화대 2·3대 총장
  •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수차례 응징해 안두희의 ‘천적’으로 불렸던 권중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였다. 그는 1970년대 말 이화여대 앞 로터리에서 조그만 기원을 운영했다. 바둑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라 기원을 자주 찾았는데 말수가 적으면서도 인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그가 1992년 안두희를 폭행한 뒤 경찰에 잡혔을 때 평범했던 ‘기원 아저씨’를 떠올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그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 13년에 걸친 ‘추적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를 흠모하기는 했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국가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83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로 안두희 추적·응징에 나섰다. 민족지도자를 시해했음에도 곧바로 사면을 받고 군 납품업체를 운영해 큰 돈을 번 뒤 군 사단장의 신임 인사를 받을 정도로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비로소 ‘임자’가 등장한 것이다. 권중희는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1992년 9월 23일 안두희로부터 ‘김구 암살의 배후는 이승만’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전까지 안두희는 “김구 암살은 개인 소신에 의한 것으로 배후는 전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권중희가 당시 기자에게 전해준 안두희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1949년 6월 20일(백범 암살 6일 전) 부대 안에 있는데 장은산 포병사령관실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가보니 육군본부에서 나온 중위인지 대위인지 위관급 장교가 와 있었는데 장 사령관은 계급이 훨씬 높은데도 굽실거렸다.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의 연락장교 같았다. 경례를 붙였더니 그는 “총장 각하께서 부르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타고온 지프차를 타고 삼각지에 있는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갔더니 채 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함께 있었다. 신 장관은 날 보더니 “아, 자네가 포병 사격대회에서 관측장교상을 받은 안 소위지”라고 했다. 그 뒤 채 총장과 신 장관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불쑥 경무대 얘기를 꺼냈다. 채병덕이 “경무대 구경이나 갈까 한다”고 하자 신성모는 “마침 나도 보고할 게 있는데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같이 갈 것을 권했다.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내가 능히 감지할 정도였다.(안두희를 경무대에 데려가기로 맞춰놓고 실제 안두희 앞에서는 우연히 경무대 얘기가 나온 것처럼 각본을 짜놓았다는 의미) 경무대에 가니 미리 연락해 두었는지 비서가 맞이했으며 곧바로 대통령 접견실로 안내됐다. 신 장관이 “각하, 포병 사격대회에서 상을 받은 안두희 소위입니다”라고 소개하니까 이 대통령은 내 손을 잡으며 “장관으로부터 자네 얘기 많이 들었다”며 정겹게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투로 “높은 사람이 시키는대로 말 잘 들어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높은 사람이란 지휘계통인 장은산 포병사령관, 채병덕 참모총장 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도 이승만으로부터 김구 제거를 의미하는 듯한 말을 2∼3차례 들은 뒤 20∼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 당시 높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지시했다. ‘대충 언질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경무대에서 나오니 퇴근 무렵이었다. 다시 부대로 가서 장은산 사령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했다. 경무대에 다녀온 뒤 김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장은산은 내가 막상 암살 결행을 못하자 ‘배후에 거물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며 여러 차례 회유했다. 결국 “내 말이 맞지”라는 장은산의 말은 “내 말대로 거물이 있지”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이 일개 소위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두희의 육성 녹음(8시간 분량)이 동반된 이 증언은 백범 암살사를 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안두희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권중희의 폭행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번복했기 때문이다. 권중희는 1995년 기자에게 위의 안두희 진술 내용을 전해주면서 “내가 진술을 받을 당시 처음에 안두희를 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두희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묻지도 않은 말까지 자연스럽게 진술했다”면서 “경무대 접견실 배치도와 접대받은 차 종류 등 안두희가 당시 정황을 설명한 대목은 실제 겪지 않고서는 도저히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후 인천 신흥동 안두희 자택을 찾아 진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아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워낙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 안두희의 뚜렷한 진술이 필요했지만 끝내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안두희는 결국 1996년 10월 자택에서 권중희 추종자인 박기서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 안두희의 빈소에는 단 한 명의 조문객도 찾지 않았다. 그의 후처인 김모씨만이 검시 때 잠깐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권중희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안두희에게 보약을 먹여서라도 오래 살게 해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권중희는 안두희가 살해된 뒤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두희를 추적하는 동안 조금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의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에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지내다 200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향년 71세, 본관 안동). 타계하기 3년 전 서울신문사를 찾았을 때 기자가 차비나 하라며 돈을 조금 건넸더니 “늘 이렇게 남에게 신세를 끼치니…”라며 수줍어하던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기자는 권중희 타계 후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치열함의 반쯤이라도 기자정신을 지녔더라면 진실 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다. 기자가 권중희로부터 들은 안두희의 증언을 22년만에 공개하는 것은 김구 암살 배후에 대한 진상규명이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세상에는 권중희를 돈키호테나 테러범 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를 진정한 ‘의인(義人)’으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관되게 백범 암살사 규명에 진력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역사에 남을 큰 죄를 짓고도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롭구나”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깨우쳐 준 사람이다. 권중희는 지난날 기자에게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는데 왜 이승만 백범 암살 개입설에는 무관심한지 모르겠다”면서 “아직 진실을 알만한 사람들이 일부 생존해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이승만 김구 암살 개입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성역 없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을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 유기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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