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삼각산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상용화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경계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스페인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 테러 대응
    2026-08-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49
  • “나라사랑은 태극기 사랑부터…”

    *사진전·사생대회·글짓기등 강북구, 태극기관련 연중행사 태극기 패션경연대회 등 태극기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자치구 주관으로 처음 열리게 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북구는 18일 올해의 역점사업으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태극기 사랑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주민들의 ‘태극기 사랑’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태극기 보디페인팅,태극기 사랑길,태극기 사랑마을 등 태극기를 소재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준비됐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태극기 패션경연대회는 일상 생활속에서 태극의 친근함을 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주민뿐 아니라 패션업계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앞서 구는 오는 26일까지 수유사거리∼아카데미하우스에 이르는 4·19길을 ‘태극기 사랑길’로 조성키로 했다.3.8㎞ 구간의 가로등 주에 태극기 1000여개를 계속 게양할 예정이다. 이 길은 서울시 지정 ‘걷고싶은 거리’인 데다 주변에 4·19묘지를 비롯해 다수의 순국선열묘역과 통일연수원,삼각산 등산로 등이 있어 많은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통한 나라사랑의 의미를 전할 수 있다. 구는 또 수유동 삼성아파트 7개동 690가구를 ‘태극기 사랑마을’로 지정,가정용 국기와 국기꽂이대를 보급하는 등 집중 관리할 예정이다. 특히 태극기 사랑 우수작품 공모(7월8일∼8월16일),태극기 그리기 어린이 사생대회(광복절 8·15전후),태극기사랑 사진전 및 우수작품 전시회(9월20일∼10월9일) 개최와 지역 중소기업 대표브랜드 ‘리노빌’에 태극문양을 활용키로 했다. 이동구기자
  • 우리구 살림 이렇게/김현풍 강북구청장

    “미아·삼양선의 지하철 건설과 상업지역 확대에 행정력을 쏟겠습니다.” 김현풍 강북구청장(62)은 6일 “교통난 해소와 세수 확충이 올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주민과의 약속”이라고 단언했다. 서울 동북지역과 의정부 등 경기권역의 유동 인구로 인한 주민들의 극심한 교통 불편을 덜고 자치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다.취임 초 주민들에게 약속한 ‘우리동네 행복만들기’를 구체화하는 셈이다. 그는 “무엇보다 지역 교통흐름의 동맥 역할을 할 미아·삼양선의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며 “연내에 서울시도시기본계획에 이같은 계획이 반영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시가 추진하고 있는 이 일대의 경전철 건설을 지하철로 변경하고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입구역과의 연결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주 간선도로인 미아사거리 일대의 극심한 정체와 지하철 노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산 기슭 주거밀집지역 주민들의 교통 고충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으로 믿고 있다. 특히 이 일대는 성북·도봉구 등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백화점 개점 등으로 교통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지하철 건설은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그는 또 “상업지역이 좁아 독자적인 상권 형성이 어렵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속한 시일 안에 상업지역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업지역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곳은 미아사거리,삼양사거리,수유역,미야역 등 4곳으로 25만여㎡에 달한다.현재 1인당 0.66㎡로 강남지역(2.47㎡)의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업지역을 서울시 평균인 2.19㎡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지역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권역별 상권형성 미비로 발생하는 불필요한 교통량도 크게 줄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염두에 뒀다. 아울러 그는 “관내 고교생 1만 5000여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000여명이 성북구 등 인근 지역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학교 유치를 약속했다. 이를 위해 번2동 산 16과 번3동 산 28의8 일대 2만 4000여평의 공원용지 해제를 서울시에 요청해 놓고 있다.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이곳에 첨단시설을 갖춘남녀 고교 1개씩을 세울 방침이다. 이밖에 김 구청장은 올해를 ‘삼각산 국제화 원년’으로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준비중이다.오는 4월17일부터 시작되는 ‘삼각산 축제’를 중심으로 중국 음악회,국제 산악마라톤대회 등을 개최해 지역이 간직한 자연·문화 유산의 우수성을 알리고 주민들의 자긍심을 곧추세울 생각이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북한산 동장대.아차산 팔각정서 해맞이

    계미년(癸未年) 새해 해맞이를 서울에서도 즐길 수 있다. 장소는 서울 북·동쪽에 위치해 가장먼저 해를 볼 수 있는 삼각산(북한산의 옛 이름) 동장대와 아차산 팔각정 등 2곳.서울시민을 위해 계미년 첫 일출시각인 1일 오전 7시47분을 전후해 약 2시간여동안 다채로운 해맞이 행사가열린다. 해발 610m의 삼각산 동장대에서는 강북구(구청장 김현풍)가 다양한 행사를준비해 해맞이를 더욱 의미있게 만끽할 수 있다.해 뜨기전 오전 7시부터 풍물놀이로 흥을 돋운 후 지역과 국가발전을 염원하는 기원문이 낭송된다.일출이 시작되면 만세삼창과 애국가를 부르며 각자의 소원성취를 주문한다.특히참석자중 최고 연장자가 ‘희망찬 강북,행복한 강북’ 등의 구호를 외치는등 이웃간의 덕담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김 구청장은 “민족의 진산(鎭山)인 삼각산에서의 해맞이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며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같은 시각 해발 296.9m의 아차산 팔각정위 능선에서도 흥겹고 뜻깊은 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 광진구(구청장 정영섭)는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경기도 등지에서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먼저사물놀이패가 새벽어둠을 가르며 식전행사로 풍물한마당을 펼치고 일출에 맞춰 해맞이 기념연주,소망풍선 날리기,신년메세지 낭독,덕담 등을 서로 나눈다.번영과 태평을 기원하는 대형 방패연 날리기와 아차산 입구부터 행사장까지 1.2㎞ 구간은 청사초롱으로 ‘희망의 길 밝히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진행된다.특히 구민들의 새해 소망을 모아 설치한 양 모양의 ‘행운의 박’을 함께 터뜨리며 행복을 기원해보는 행사도 기획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서양화가 류영필옹 별세

    서양화가 류영필(柳榮苾)옹이 지난 21일 오전7시 고혈압으로 별세했다.81세. 1921년 함북 웅기에서 태어난 류 옹은 서울대 미술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후기 인상주의 화풍을 독특하게 해석한 작품으로 1940∼44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5회 연속 입선했고,해방 후인 1953∼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했다.대표작은 ‘삼각산 전경’등. 국전에서 추천작가·심사위원·초대작가 등을 지냈고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유족은 부인 김영순(金英順)씨와 류마리 문화재청 학예관 등 6녀.빈소는 서울대병원(02-760-2027),발인은 23일 오전 9시.
  • “미아·삼양선 지하철로 건설”강북구, 경전철 계획 변경등 5개현안 건의

    경전철로 추진되고 있는 강북의 미아·삼양선이 지하철로 건설될 전망이다.또 강북구에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신설을 위해 공원부지 해제 등이 검토된다. 김현풍 강북구청장은 23일 구청을 처음 방문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5가지 지역현안 해소방안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으며 시정에 반영되도록 힘쓰겠다.”고 답했다. 김 구청장은 “미아·삼양선의 경전철계획 발표이후 가시적인 후속 조치가 없는 데다 지상으로 건설하면 삼양로 차선이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축소돼 급증하는 교통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를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미아동∼수유동∼삼각산역∼방학역∼상계를 잇는 지하철로 변경해 달라.”고강력히 요청했다. 특히 “현재 관내 고등학생수가 1만 4900여명인 데 반해 고교는 5곳(정원 7241명)에 불과해 나머지 학생들은 인근 종로·성북구 등지의 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번2동 산16 일대 8565평과 번3동 산28의8 일대 1만 6000평의 공원용지를 학교부지로 활용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서울시가 구상중인 시정운영 4개년 계획에 ‘시립 삼각산 역사박물관 건립’을 포함시켜 줄 것과 미아3동 시유지 600여평에 100병상 규모의 ‘시립노인요양센터’건립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미아 6·7동 구민건강관리센터 건립을 위한 특별교부금의 연내지원와 구청사 건립지원금 상향조정 등도 피력했다. 이 시장은 “강북구를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꾸며 시민들이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어하는 지역으로 만들어 가자.”며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단군제례 보러 오세요’ 강북구,내일 ‘삼각산 축제’

    ‘수도 서울의 주산 삼각산에서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세요.’ 강북구는 20일 ‘삼각산 축제’를 열어 주민들에게 깊어가는 가을을 선물한다. 축제는 이날 오전 8시 삼각산의 주봉인 백운봉에서 우이동 솔밭공원까지 성화가 봉송되면서 시작돼 단군제례,장군거리,천도제,풍물경연 등이 이어진다. 축제의 백미인 ‘단군제례’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문헌의 확인을 거쳐 복식,제기,제례 등이 원래 모습에 가깝게 재현됐다. 유연하고 우아한 춤사위로 사랑받는 화관무를 비롯해 판소리,장고춤,봉산탈춤 등도 선뵌다. 삼각산의 아름다운 가을과 전통의 멋을 간직하려는 주민들을 위해 ‘비디오 촬영대회’도 열고 푸짐한 시상도 한다. 김현풍 구청장은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에서 단군제례의 본 모습을 되찾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 [우리區 청사진] 김현풍 강북구청장-우수高 육성…‘교육환경 1위’ 도약

    “행복 만들기의 충직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민선 3기 강북구 살림을 꾸려갈 김현풍(金顯豊·61) 구청장은 주민들의 행복한 삶을 자치행정의 최고 선(善)으로 여긴다. 그는 평생을 치과의사로 지내면서 ‘주민들이 좀더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고파 했다.그래서 구청장이 되고자 했다.‘우리동네 행복 만들기’라는 그의 수필집에서 이같은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제 행정이라는 또다른 ‘도구’를 이용해 주민 사랑에 혼신을 다한다는 각오다. 김 구청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민들을 만나는 것으로 구정의 첫 발을 내디뎠다.구청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생생한 목소리를 귀담아 듣기 위해서다. 그는 “주민들을 만나면 가급적 말을 아낀다.”면서 “구청장의 소리보다 구의 주체인 주민의 소리를 보다 많이 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또 어린이와 함께 구청을 찾는 민원인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조만간 구청 또는 보건소에 ‘어린이 집’을 만들겠다고 했다. 노인들을 위한 행정에도 세심함이 묻어난다.치매환자들을 위해 ‘방문간호사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너싱 홈(nursing home)제’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치매환자에게 1대1의 행정·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청소년에 대한 예절교육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향상을 위해 ‘애국가 부르기 운동’도 준비하고 있다.관내 청소년들이 보다 건강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김 구청장은 교육 환경 1등 자치구를 선언했다.우수고교 및 사설학원 육성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을 생각이다. 열악한 지방재정 해결에도 자신감을 보였다.‘돈은 쓴 만큼 번다.’는 논리로 투자 사업을 구상중이다. 우선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지역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강북구 브랜드’개발에 중점을 둘 복안이다. 또 “지역의 삼각산,4·19묘역,이준열사묘 등 많은 문화 유적을 문화상품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삼각산 프로젝트’라는 사업 시행안을 마련해 심도있는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이준열사 묘역도 주변 36만여평을 포함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미아동,삼양로,방학동 등지의 고질적인 교통난 해소를 최고 현안으로 꼽았다. 그는 우선 보조간선도로 확충 등을 서울시에 강력히 요구할 방침이다.또 이면도로 활용 등을 통해 체증을 점차 줄여나갈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꼼꼼히 계획을 수립해 투명하게 구정을 이끌겠다.”며 주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이동구기자
  • 서울시교육청, 교장등 412명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6일 초등학교 교장·교감·교육전문직 169명,중·고등학교 교장·교감 173명,교육전문직 70명 등총 412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교장 ▽승진 △신흥 李英世△혜화 朴鍾宇△대신 文秀一△망원 金德煥△북성 孫成龍△구의 安尙鎬△등명鄭民杓△당중 白順愛△동구로 邊炳權△연지 徐哲源△신화李隆弘△미양 金禮順△상곡 安聖德△삼광 鄭煥琦△숭신 朴炳牡△우신 柳淳模△경일 辛瑞永△봉은 李順子△가산 高正春△오류남 趙舜九△계남 李相吉△신정 錢重萬△미래 金燦玉△신미림 金漢奎△공항 崔萬術△강일 兪領朝△천일 鄭正憲△정심 尹起憲△윤중 趙載旭△풍납 晋章觀△교동 李聖雨△안암 洪鉉珏△홍파 陳豊吉△구남 趙來菜△삼각산 李觀浩△정덕 南典祐△안평 沈康龍△도성 文敬淑△서울정문학교朴海平▽전보 △압구정 金敦直△신북 金永瓚△신사 全貴分△신성 朴相謙△용원 吳文煥△수락 趙鷹鎬△대도 金淸玉△고명 裵基善△장충 徐忠根△용곡 文榮九△신암 金祥俠△방화 黃春貞△영풍 趙春子△문덕 鄭求辰△신봉 洪勝杓△은로 李成子△중랑 洪錫寬△사근 林浩吉△선곡 李鳳熙△서울경운학교 金孝鎭△서울정진학교 金熙淵▽전직△영도 尹仁漢△숭례 申仁澈△용두 尹鐸重△석관 金鎭義. ◆장학관 △교육연수원장 申勝平△동작교육장 鄭 根△중부교육청 학무국장 吳信根△강남〃 鄭彩東△본청초등교육과池大昌△교원정책과 具本淳△서부교육청 초등교육과장 金鎭修△동부〃〃 金東來△중부〃〃 白承倍△강서〃〃 柳和榮. ◆교감 ▽승진 △강남교육청 丘南郁 金允淑 崔太淑 徐孝淳 丁棋鍾△동부〃 張沅德 金泰洙 沈亨基△성동〃 李根培 朴潤華 元慶泰 黃明子 △성북〃 李海潤 李惠淑 李秉晙 金玉培 朴溫花 姜 浚 崔鳳玉△서부〃 金順伊 崔達洙 安憲鍾 殷敬用 車侖映 申東植△강서〃 金鎭植 朴基鎬 安鍾蘭 金一煥 金光九 洪聖賢 李英順△남부〃 趙南基 姜珉雨 金永植 申玉珠 洪鍾元△북부〃 張愛順 金明旭 李慶學 李仁煥 金弼洙△중부〃 楊川熙 李康洙△강동〃 朴準淑 千文秀△동작〃鄭俊敎▽전보△강서교육청 朴容昊△강남〃 南載曄△강동〃 趙載成▽전직△중부교육청 鄭柄澤△남부〃 金石舟△강동〃 李相卿金仁淑△서부〃 芮成玉△강서〃 李昌炯 金喜泳△서울광진학교 李鍾浩. ◆장학사 △성북교육청 吳明丸△북부〃 金璇均△서부〃 金仁雅△강동〃河憲泰 李理英△동부〃 李圭昌△강서〃 孫昌浩△동작〃 吳幸子△성동〃 柳相永 李永淳△교원정책과 李相翼 邊榕柱 △평생교육체육과 崔相洛△과학산업교육과 鄭樂俊△공보담당관 崔載光△기획예산〃 朴相默△초등교육과 金榮植. ◆교육부 ▽전출·전입 △목동초 교장 李璟煥△교육연수원 기획평가부장 金鎭樂 △교육부 장학관 崔五福. ◇교장 ▽승진 △서울산업정보 宋鍾道△아현〃 金鍾冠△면목중 嚴周鎔△휘경중 洪成子△아현중 洪恩姬△연천중 文來植△증산중 金容達△안천중 朴基煥△오류여중 沈常美△공릉중 權赫善△중평중 金炯柱△한천중 沈亨燮△명일여중 柳佐善△송정중 崔重植△개원중 池正夫△구룡중 朴貞淑△구정중 崔基淑△대청중 韓萬熙△서초중 朴貞子△대방여중 崔成文△구일중 李珍浩△오남중 朴允浩△창덕여중朴英子△방이중 咸知 △성원중 金種玟△성일중 李丙任△용마중 裵仙子△대림중 李漢準△녹천중 黃華成△도봉중 李秉鐸△상계중 金將起△방화중 崔英子△신화중 李南昊△서운중 梁銀容△당곡중 申聖雨△청량중 安明秀△언남중 文汪根△신창중 林永吉△태랑중 申鎬春▽초빙△영등포중 吳京子▽중임△공항고 金德煥△광양고 宋錫文△강남공고 張基信△전동중 金德子▽전보△금천고 金昇泰△금옥여고 朴淑姬△동작고 李富雄△서울여고 柳吉子△신목고 朴和緖△서울과학고 梁敎錫△경기공고 鄭昭雄△경기상고 任仁弘△성동여실朴魯元△상계고 洪厚植△반포고 金容均△성수공고 李明基△동호공고 朴相春△휘경공고 金宗漢△경인고 趙勝子△독산고 文壽漢△수락고 李末英△창동고 成耆元△신연중金基碩▽전직△경복고 金聖基△면목고 姜英煥△서울공고金善明△하계중 金英鎰△광장중 高永權△반포중 姜輝國△봉원중 朴煥斗△청운중 李鳳敎. ◆장학관 ▽승진△강남교육장 朴憲和△학생교육원장 黃水淵▽전보·전직△중부교육장 尹承照△교육과학연구원장 李雲柱△본청중등교육과장 金相一△〃평생교육체육과장 梁東吉△〃통일교육담당 李載洪△〃중등인사담당 金丁中△동작교육청학무국장 崔泰洙△교육과학연구원연구부장 柳点永△동부교육청중등교육과장 明在漱△성동〃〃 朴淳晩△성북〃〃 朴大潤. ◆교감 ▽승진 △성동여실고 李乃秀△가락고 林在燮△독산고 李在春△동부교육청 洪淳甲△서부〃 吳在源△남부〃 朴貞淑 許華炳 安承龍 鄭政雄 金仁淑 鄭鎭洙△북부〃 金容國 金惠敬 金聲寅 洪永鎬 朴仁圭△중부〃 崔錫寬 崔均喜 文敏植△강동〃 朴溶玉 張致完 安建燮 咸一煥 趙成集 尹錫元 金春子△강서〃鄭榮壽 朴逸順 金鉉淑 李銀默 鄭震英 權泰益 辛國善△강남〃 諸允鎬 朴賢泰 鄭憲禹 徐外順 金明洙△동작〃 金武成 朴孝明 吳斗煥 秋秉和 金慶淑△성동〃金達均 權赫昌△성북〃 白鍾鉉 李峰雨 金姬玉 李暎載▽전직△가락고 申壽一△광남고 韓明福△광양고 曺壽福△구정고 金榮祚△노원고 李昌雨△대영고 金鐘元△동작고 洪星大△면목고 趙柱行△삼성고 申正淑△서울고 李仁遠△서초고 田炳和△석관고 周南秀△언남고 金成泰△여의도고 朴智勳△영등포여고 朴相喆△용산고 金永允△잠신고 李瑞熙△잠실고申一鈗△창덕여고 南昌烈△청담고 李榮珠 金成基△혜화여고 昇龍基△서울경운학교 姜丙斗△서부교육청 任文赫△북부〃 朴贊冕△성동〃 崔東煥 金蕙媛▽전보△서울경정고 李善吉△광양고 高基龍△휘경공고 李亨基△신림고 金大淵△서울체육고 李秀鎬△둔촌고 申聖浩△동호공고 崔富吉△도봉정산고 梁明生△서초전자고 李明河△선린인터넷고 崔萬善△관악고 李丙武△금천고 安泰根△당곡고 鄭一成△상계고 趙淸慈△성동고 權寧集△영신고 張玉同△오금고 嚴榮周△청량고 趙星熙△경인고 金大元△수락고 邢南圭△창동고李哲元△동부교육청 崔龍洵△북부〃 李正雄 尹在成△강동〃 朴容儀△동작〃 朴然祚. ◆장학사 △공보담당관 李俊淳△감사〃 金承在△총무과 趙萬英△중등교육과 洪承稷 金溫鎬 尹梧榮 朴建鎬 金亨根 林國澤 金南亨△과학산업교육과 金慶子 洪悳杓△평생교육체육과 全鏞東 姜舜圭 梁雲容△교원정책과 吳錫奎 李康鎬△동부교육청 成東駿 崔成洛△서부〃 金大寅 姜仙玉△남부〃 盧熙芳 羅永子 趙榮相△북부〃 車祥祿△중부〃 姜聖姬 金鎭萬△강동〃 鄭海 李英姬 羅澄基△강서〃 洪旼杓△강남〃 李香植 李商旭 金聖壽 辛鐘鉉△동작〃 安世煥 趙亮衡 李鎬鈍 禹一岩△성동〃 朴眩雨 嚴宗勳△성북〃 張祐碩 朴仁仙 尹信德△교육과학연구원 李起成 柳命淑△교육연수원 李鳳祚 張京善 李良子 尹昊相 閔復基 崔洸憲 安載弘△학생교육원 李在承. ◆교육부 ▽전출 △연구관 梁基晃
  • 새해 서울 초중고 14곳 신설

    내년 3월 서울시내에 초등학교 3개교,중학교 2개교,고등학교 4개교 등 9개 초·중·고교가 신설된다.9월에는 5개 초등학교가 추가로 문을 연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구로구 구로5동에 24학급 규모의 공립 미래초등학교를 비롯,신미림초교(30학급·구로구 신도림동),삼각산초교(36학급·강북구 미아동)가 내년 1학기에 개교한다고 밝혔다. 2학기에는 영원초교(30학급·영등포구 영등포1동),지향초교(24학급·양천구 신정동),원신초교(28학급·관악구 신림동),응봉초교(36학급·성동구 응봉동),개운초교(40학급·성북구 돈암동)등 5개교가 문을 연다. 중학교는 노원구 공릉2동에 30학급의 태랑중학교와 용산구원효로4가에 12학급의 사립 성심여중이 신설된다. 고교는독산고(36학급·금천구 독산동),경인고(45학급·구로구 고척동),창동고(45학급·도봉구 창동),수락고(30학급·노원구상계동) 등 4곳이 개교한다. 김소연기자 purple@
  • [대한광장] 삼각산과 북한산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본 것이 초등학교 때인가 싶다. 국어교과서에 실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련마는/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라는 시조 때문이었다.병자호란 당시 굴욕적인 화의에 반대했다가 결국 청나라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 김상헌(1579∼1652년)이 지은 시조이다.김상헌이 포박되어 끌려가면서,서울쪽을 돌아보며 비통한 심정을 읊은것이다. 서울에서 청나라로 가려면 지금의 무악재를 넘어 구파발을 거치고,통일로를 따라 임진강을 건너 북상해야 한다.이 길에서 돌아보는 서울쪽 삼각산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웅장하다.하늘을 찌를 듯 또떠받칠 듯 솟아 있는 세 봉우리.백운봉·인수봉·만경봉이 있었기에,우리의 선조들은 이 산을 삼각산이라 불렀다.곧 서울을 지키는 진산(鎭山)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산 이름은 삼각산이었다.대부분의 서울 시민과 경기 일원 주민도 삼각산이라고 불렀다.70년대에는 삼각산과 북한산이 혼용되더니,80년대부터는 어느덧 북한산으로 통용된다.지금은어떤 등산객에게 물어도 ‘북한산 간다’하지 ‘삼각산 간다’고 하는 이는 드물다.본명은 사라지고 별명 또는 일명이 본명이 되어 버린꼴이다. 이것은 1983년 삼각산과 도봉산을 함께 묶어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부터이다.삼각산의 역사와 지리적 배경을 도외시했거나,행정당국의 편의주의에 의해 산의 고유한 이름까지 달라진 결과를낳았다고 할 수 있다. 삼각산은 1,000여년 전인 고려 성종(993년)때에 이미‘삼각산’으로 정착되어 불렸다.그 이전 삼국시대에는 ‘부아악’이라고 했다.삼각산 기록이 처음으로 나오는 문헌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이다.‘삼각산 이북도 또한 고구려의 옛땅입니다’라고 서희가 고려 성종에게 아뢴 말에서이다.또 목종9년(1006년)기사에도 ‘목종이 숭교사에 있던 현종을 삼각산 신혈사로 옮겨 살게 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뿐만아니라 고려 숙종때 만든 ‘삼각산 중흥사반자’명문,‘태고사 원증국사 탑비’의 비문,충혜왕5년(1344년)에 제조한‘중흥사청동누은향로’의 명문들에서 한결같이 삼각산으로 표기되어 있음을확인한다. 조선시대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확고부동하게 정착된다.‘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대동지지’등 역대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여러 선비의 문집과 기행문에서 모두 삼각산으로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본명이 돼버린 ‘북한산’은 어떤 역사적 근거로하여 이름붙은 것일까.‘비류와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보았다’라는 ‘삼국사기’백제기사의‘한산’이 그 효시가 된다.그러나 이 한산은 특정한 산이름이 아니라,백제 건국 당시의 ‘한강유역 일대’를 가리킨다는 것이 여러 사학자들의 설명이다.따라서 북한산은 한강이북 지역으로,남한산은 한강이남 지역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역사지리 연구가 김윤우씨는 그의 ‘북한산 역사지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백제 건국초에 고구려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남하한 비류와 온조등의 백제 건국집단이 한강유역 일대를 ‘한산’이라 일컫기 시작한 것으로…엄밀히 말해서 삼국사기의 북한산은 곧 ‘한강이북의한산지역’이란 의미의 말이다.’ 서울시가 펴낸 ‘서울의 산’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한산이란 이름은 ‘삼국사기’‘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등에 보이며,이는 한강·한수·한양·한성 등의 지명과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서울의 옛이름은 한산·북한산·북한산성·북한성·한양등으로 기록되어 있다.북한산은 처음부터 산이름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서울지방 옛이름인 한산의 북쪽지역을 가리킨 지명에서 비롯된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산’이라는 이름보다는 ‘삼각산’이라는 이름이 훨씬 더 정겹게 느껴진다.‘3개의 뿔로 된 산’이라는 뜻의 삼각산이,우리가 항상 바라보는 시각적 체험과 형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반면 ‘북한산’은 체험의 눈이 아닌 관념뿐이며,어딘가 사대주의적 냄새마저 풍긴다.도봉산에 등산하러 가면서도 ‘북한산에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후세들이 행여 삼각산과 도봉산의 이름을 잃어버리지않을까 걱정된다. 이성부 시인
  • 50-60년대 한국미술의 한단면-한국은행 소장품展

    한국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이 기획전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였다.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6월12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덕수궁 분관에서 열고 있는 ‘한국근대미술의 한 단면-한국은행 소장품을 중심으로’전이 그 자리다. 6월 20일까지. 이 전시에는 김인승의 ‘봄의 가락’을 비롯해 박상옥의 ‘한국은행’,김은호의 ‘풍악추명’,박항섭의 ‘포도원의 하루’,심형구의 ‘수변’,,변관식의 ‘비폭 앞의 암자’,이상범의 ‘야산귀로’,허백련의 ‘어형초제’,박승무의 ‘청강어락’,장우성의 ‘신황’등 모두 72점이 나와 있다. 한국은행 본점과 16개 지점이 갖고 있는 1,800여점 가운데 작품성이 뛰어난것들만을 골라 뽑아 공개한 것이다.이와 관련,전시를 주관한 최은주 덕수궁분관장은 “미술품 수집가가 적었던 1950∼60년대에는 은행이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며 “당시에는 국전을 치르고 나면 정부에서 주요 미술품의 매입을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시작중 백미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과 희망을 첼로 연주가와 감상자인 청년군상의 초상에 빗대어 형상화한 김인승의 ‘봄의 가락’(1942).구도의 치밀함과 인체의 해부학적 묘사,세심한 채색 등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또 박상옥의 ‘한국은행’(1959)은 한국은행 주변풍경은 물론 삼각산과 인왕산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당시의 정황을 보여주며,김은호의 ‘풍악추명’(1958)은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금강산의 폭포와 화려한 단풍이 인상적인 채색 산수화다. 이번 한국은행 소장품전은 공공기관 미술품 콜렉션의 첫 대중적 외화(外化)작업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나아가 미술품을 소장한 다른 공공기관에게도 그동안의 미술품 소장정책을 되돌아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정책을 펴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면기자
  • 경기북부 가볼만한 명소

    겨울이 깊어간다.날이 추워질수록 몸과 마음은 움츠러들기 마련.이럴 땐 가족과 함께 가까운 산에 한번 올라보자. 겨울산의 정취는 올라본 사람만이 안다.고즈넉한 눈길,만발한 눈꽃,추위 속에서도 등에 촉촉히 배는 땀.꼭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어떠랴. 산 밑을 향해 가족과 한 목소리로 지르는 함성속에 추위와 함께 온갖 스트레스가 싹 씻긴다.그리고 산을 내려와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어,시원타!’란 감탄사가 연신 나온다. 경기 북부에는 산행과 온천을 동시에 즐길만한 곳이 꽤 있다.대표적인 곳이경기 포천의 명성산.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포천의 왕방산과 파주 감악산도 가볼만 하다. 명성산(923m)은 억새풀이 만발하는 가을 산행지로 유명하다.하지만 싸리나무와 철지난 억새풀을 덮은 눈꽃과 매달린 얼음꽃을 맛보는 겨울산행지로도 그만이다.산정호수 위쪽 등산로 초입에는 자인사가 있다.눈덥인 사리탑 사이를 지나다 보면 옛 선사가 ‘무소유의 삶’을 들려주는 듯하다. 정상까지 가면 철원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대성산,백암산이 멀리 보인다.하지만 아이들이 어리다면 정상까지 가기엔 무리.적당한 선에서 발길을 돌리는 게 안전하다. 산을 내려오면 6만여평에 이르는 산정호수가 꽁꽁 얼어 있다.수정빛 수면에서 얼음썰매를 빌려 타는 맛이 그만이다.대여료는 4,000원. 산정호수 아래에는 한화콘도 온천 사우나가 있다.실내수영장에도 공급되는온천수는 중탄산나트륨 성분의 약알칼리성이다.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담갔던 피부가 비누질을 한듯 매끄럽다.옆에 붙은 노천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몸은뜨끈하나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빳빳이 언다.(0357)534-5500. 포천군 신북면 왕방산(737m)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당일코스산행지.등산 코스가 3가지 정도 있지만 포천읍에서 신북면 심곡리로 넘어가는 무럭고개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가장 평탄하다.정상에 오르면 포천 및 동두천 시가지,소요산,운악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어리다면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것이 안전하다.심곡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기 때문.하지만 풍광은 계곡을 따라 심곡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가장 멋지다. 산을 내려와 차를 타고 연천군 초성리 방향으로 20분 정도 가면 신북온천이있다.지하 600m에서 용출되는 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 천으로 매끄러운 수질을 자랑한다.(0357)535-6700. 경기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감악산(675m)은 산세가 뛰어나 예로부터 삼각산등과 함께 경기 5대 산악으로 불렸다.의정부에서 적성방향으로 달리다 설마치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법륜사 입구가 산행 기점.파주시에서 등산로를 따라 각종 편의시설을 설치해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경사진 길을 조금 오르면 비룡폭포가 나온다.얼어붙은 35m 높이의 빙벽이 장관이다.폭포에서 15분쯤 더 올라가면 법륜사가 나오고 여기서 1시간쯤 더 오르면 정상이다.북쪽으로 임진강과 개성의 송악산,남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동쪽으로는 소요산이 보인다.감악산에선 파주시 월롱면에 있는 금강산랜드온천이 가장 가깝다.승용차로 50분 정도.천연 게르마늄 광천수를 데워 온천탕으로 개발했다.노천탕과 황토탕,진흙소금탕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놓았다.(0348)945-2500.포천 임창용기자 sdragon@
  • [대한광장] 지혜로운 목자

    단기 4333년.그 긴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우리 겨레,우리 민족이 서기 2000년이라는 능선에 서서 ‘새 천년’을 너나없이 들뜬 마음으로 노래 부르는까닭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저 삼각산 아래 세종로를 지나 을지로로 청계천으로 신호등과 건널목,횡단보도를 무시한 채 삶과 죽음 사이를 곡예하듯 질주하는 차량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떨쳐버리고 싶은 현실에 대한또다른 기대치는 아닌지.1999년 세밑까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인네들과 정치권력이 뒤얽힌 옷로비사건으로부터 하루바삐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이 지어낸 허튼 구호는 또 아닌지. 자고 나면 변화하는 정치적 이합집산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새해에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희망가를 부르듯 ‘새 천년’이 왔다고 목이 터지도록,귀가 따갑도록 부르짖는 것은 진정 아닐는지. 97년 외환위기를 맞아 굴욕적인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픔이 채 가시지도않은 이때에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기업들이 헐값으로 외국자본에팔려나가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 ‘새 천년’의 구호를 내걸고 거창한 행사를 치르는 두둑한 배짱을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세상이 어지럽고 앉은 자리가 불안할수록 사람에겐 긴 호흡과 사려깊은 생각이 필요한 법.새로운 것을 찾아 혈안이 된 채 분주하게 앞만 보고 치닫는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의 삶을 뒤돌아보게 할 사려깊음은 지혜의 샘에서 솟아나온다.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꾸며 내면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의 물은 마르지 않는 진리의 숲에 가득 차 있다. 2,600여년 전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가다국에 두 사람의 소치는 목자가 있었다.그중 한 사람은 어리석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지혜로웠다.많은 소떼를 거느린 두 사람은 우기(雨期)를맞아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갠지스강을 건너고자 했다. 그런데 어리석은 목자는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잘 관찰하지도 않고,물살의 빠르고 약함이나 깊고 낮음도 살피지 않고 한꺼번에 소떼를 몰아 강을 건너게 했다.그의 소떼는 강물 한가운데 이르자 거센 물살에 휩쓸려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왜냐하면 그는 강물의 상태를 살피지도 않은 채 무모하게 강을건너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목자는 소떼를 강물로 밀어넣기 전에 여러가지 상태를 잘관찰하였다. 우선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잘 살펴서 강폭이 좁으면서도 물살이 완만하고 깊지 않은 곳을 도하(渡河)지점으로 선택을 했다.그리고 소떼가운데 비교적 힘이 세고 길이 잘 들여진 놈을 먼저 강물에 넣어 저쪽 언덕에 이르게 했다.이어 암소를 건너게 한 뒤 다시 중간 소와 송아지들을 건너게 했다.송아지들은 이미 어미 소를 보며 용기를 얻어 무사히 강을 건넜다. 수행자여,사람들도 이와 같다.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잘 관찰하지도 않고 건너는 장소나 방법도 모르는 법이다.그들을 믿고 강을 건너려 하다가는 오히려 불행을 면치 못한다.그러나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이쪽 저쪽을 잘 살펴 건널 곳과 물살의 깊이를 헤아리며,적절한도하방법도 알고 있는 까닭에 다른 이들을 안전하게 행복의 언덕에 도달할수 있게 한다.그렇다면 어떤 이가 지혜로운 사람인가.탐(貪)·진(嗔)·치(癡) 삼독을 끊고 올바른 진리를 깨달아 성취한 사람이다.” 남을 가르치거나 이끄는 위치에 선 사람은 서 있는 자리의 무게만큼 책임이따르는 법. 현명한 판단과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없을 때, 그를 믿고 뒤를따르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단기 4333년 새해에는 지혜로운 이가 이웃이 되어 어리석은 이의 좋은 친구로 혹은 스승으로 늘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 一 徹 조계종 문화부장
  • [우리구 역점사업] 성북구

    성북구(구청장 陳英浩)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중소기업 살리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자체 공동 브랜드를 개발하는 한편 중소기업 육성자금의 이율을 낮춰주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성북구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처음 시도한 것은 자체브랜드 개발사업.제품은 우수하나 고유브랜드가 없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의 상품성을 널리 알리고 판로개척을 위해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구청이 보증하는 공동브랜드를 개발했다. 지난 4월 일반 공모를 통해 북한산의 또다른 이름인 삼각산을 뜻하는 트라이앵글(TRIANGLE)과 패션감각의 뜻인 센슈얼리즘(SENSUALISM)을 합성,트리즘(TRIZM)을 공동브랜드로 확정했다. 성북구는 이어 30개 동을 5∼6일씩 돌며 홍보활동을 벌였고 관내에서 많이생산되는 의류 시계 구두 가방 등 85개 품목에 대해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 특허도 받았다. 현재 트리즘을 부착,제품판매에 들어간 업체는 30여개에 이르며 이들 제품의판매를 돕기 위해 구청 광장에 중소기업전시판매장도 마련됐다. 성북구는 조만간 백화점에도 진출시키는 한편 내년중 구민회관에도 상설전시판매장을 추가 개설할 계획이다.아울러 자매도시인 경기도 이천시와 충북단양군,강원도 영월군과 삼척시 등에도 홍보전시관을 열 예정이다. 지난 9월에는 ‘성북구 공동브랜드 운용조례’를 만들어 ‘트리즘’이 부착된 상품의 품질과 가격을 구에서 책임지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일손이 모자라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금까지 227개 업체에 542명의 공공근로 인력을 지원,인력난을 해소했다. 또한 중소기업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육성자금의 이율을 연리 8%에서 6%로 2%포인트 내리기도 했다. 내년 3월에는 관·학협동으로 운영되는 ‘벤처·창업지원센터’를 장위동 65의154 옛 새서울유치원 건물에 열기로 하고 현재 입주업체를 모집중이다. 이곳의 임대보증금은 10평까지 100만원이고 10평 이상이면 평당 10만원씩 추가된다. 진영호 구청장은 “중소기업 지원을 다른 행정보다 우선해 추진하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자매도시에 전시판매장을 여는 등 지원방법을 다양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hyoun@
  • ‘트리즘’이름 걸고 품질보증합니다

    ‘트리즘(TRIZM) 상표가 부착된 제품의 품질은 성북구에서 책임집니다’ 구청이 품질을 보증하고 책임을 지는 상품이 선보인다.성북구(구청장 陳英浩)는 관내 중소기업체의 제품판매를 돕기 위해 공동브랜드인 ‘트리즘’을제작,관내 기업체 제품에 부착해 판매하도록 했다. 구는 이를 위해 지난 23일 공동브랜드를 이용한 시제품 50여점에 대한 발표회 및 홍보이벤트 행사를 마련했다.상품 시판은 8∼9월부터 가능할 전망이다. 구는 앞서 지난 4월 트리즘의 법적 대응력을 갖추기 위해 관내 중소기업의주 생산품인 의류 시계 구두 가방 주방용품 식품 등 7종 85개 품목에 대해특허상표 등록을 마쳤다. 또 공동브랜드를 사용한 제품의 품질을 책임지기로 하고 올해안에 ‘품질보증에 관한 운영조례’도 마련할 예정이다. 트리즘(TRIZM)은 성북구를 둘러싼 북한산의 또다른 이름인 삼각산을 뜻하는 ‘삼각’(TRIANGLE)과 패션감각 및 센스를 의미하는 센슈얼리즘(SENSUALISM)의 합성어다. 조덕현기자
  • 덕수궁 석조전 미술관으로 부활/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새단장

    ◎근대미술 상설전시관 역할 기대 덕수궁 석조전이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난다.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의 석조전 서관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새 단장,다음달 1일 선보인다. 석조전 서관은 지난 8월 문화재관리국의 대전 이전과 함께 본격적인 내부공사에 들어갔으며 400평 규모에 6개 전시실을 갖추었다. 1938년 3월31일 완공된 석조전 서관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현대미술품을 전시하고자 지은 건물로 창경궁의 이왕가(李王家)박물관에서 미술품만 골라 이곳으로 옮겨 전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지난 73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바뀌었으며 석조전 서관은 86년 경기도 과천에 새 현대미술관이 들어설 때까지 명실상부한 현대미술의 산실이자 미술애호가들의 안식처 구실을 했다.덕수궁미술관은 과천의 본관과 역할을 분담,근대미술 상설전시와 중소규모의 기획전시로 국민과 친화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한편 주변 문화시설과 연계, 외국관광객 유치에도 한몫하겠다는 것이 현대미술관의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분관 개관기념특별전으로 내년 3월까지‘다시 찾은 근대미술’이란 제목으로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유화,수묵,채색화,스케치 등 구한말에서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작품 100여점을 전시한다. 특별전 전시작품 중에는 19세기의 천재화가 장승업의‘화조영모 10폭 병풍’을 비롯,김은호의 ‘노안도’와 ‘학’,이도영의 ‘기명절지’ 등 전통화법을 이어받은 작품과 이중섭의 ‘북한산이 있는 풍경’,길진섭의 ‘모란’,김재선의 ‘소년좌상’,승동표의 ‘자화상’등 서양화가 포함돼 있다. 또 월북화가 이여성의‘격구도’,망명화가 이응로의‘삼각산’등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만날 수 있으며 국내에서 활동한 네덜란드 출신 휴버트 보스,일본화가 야마시타 신타로의 작품도 소개한다.
  • “육신 불살라 부처께 공양”/태고종 沖湛 스님 燒身열반

    ◎오늘 가평 감로암서 다비식 태고종의 원로 충담(沖湛·본명 李吉秀) 스님이 27일 새벽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하천 2리 감로암에서 스스로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열반했다.세수 85세,법랍 69세. 스님의 맏아들이자 태고종 총무부장인 지성(智性) 스님은 “평소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을 위해 육신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겠다며 2년전부터 장작과 석유를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1913년 가평에서 출생한 충담 스님은 16세 때 삼각산 승가사에서 심월(心月)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태고종 내에서 21명의 승증 가운데 한명으로 존경 받아왔다. 다비식은 29일 하오 2시 감로암에서 치러진다.
  • 名唱 成又香(이세기의 인물탐구:172)

    ◎민족의 恨한큼 깊고 아득한 울림/동편제 대표격 김세종제 ‘춘향가’ 명맥이어/굵은 통성 세마치장단 할용 꾸밈없는 득음/우렁차고 한이 여울지는 소리 남창 못잖아/판소리 오미 오롯이… 힘든 가풍계승 정업/시류 영합않고 안숙선 등 13제자 길러내 춘전(春田) 成又香은 김세종제(金世宗制) ‘춘향가’의 명맥을 잇는 이 시대 대표적 명창의 한 사람이다.송계(松溪) 김세종은 전북 순창출신으로 조선조말의 申在孝문하에서 수학한 동편제소리의 전설적인 인물.장자백 이동백에 이어 강산제 소리의 대가였던 鄭應玟이 김씨 창제를 이어받았고 춘전이 정응민을 잇고 있다.지난 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년’ 기념공연만 봐도 그가 소리에 들인 공력이 얼마만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성소리 뒤늦게 소개 춘전이 걸어온 판소리의 길은 민족정서의 심연만큼이나 멀고 깊고 아득하다.그의 성색은 감기다가도 곧게 뻗고 잠기다가도 치솟으며 서럽고 답답한 삶의 애락이 소리전체에 면면히 깔려있다.넘실대는 가락은 물리학적인 음향이 아닌,민중의 아픔과 슬픔,절망과 신명을 능란하게 엇가른다.어느 때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듯이 유장한 진양조 장단을 울리다가도 숨이 넘어갈듯 자지러진 휘몰이며 산천초목이 더덩실 춤추고 일어서는 엇모리 단모리의 멋스러움은 가히 절품의 경지다. 마치 ‘남창을 연상케하는 호방하고 장엄한 소리는 삼각산을 등에 지고 대로를 가듯 시원하게 소리판을 짜나간다’고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은 평한다.보성소리는 다른 소리제에 비해 뒤늦게 서울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72·74년에 그가 두번에 걸친 연구발표회를 가졌을 때 각 신문은 ‘춘전 강산제의 특색은 굵은 소리인 통성을 많이 쓰고 진양조보다 빠른 세마치장단을 활용하면서도 꾸미지않은 비범한 득음이 가슴을 울린다’고 특필했다. 오죽하면 국악계에선 그의 통큰 소리를 두고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렁차고도 한이 여울지는 소리에 연전에 작고한 고수 김명환이 무덤에서벌떡 일어나 장단을 치러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춘전은 전남 화순에서 성영문과 김재녀사이의 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명고수 성차옥이백부이고 명창 주난향과는 고종 사촌간이다.어릴 적 이름은 판례였고 동네의 한학자 한분이 예명과 아호를 내려주었다. 5살이 되자 벌써 백부에게 가곡과 평시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화순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화순의 안기순을 독선생으로 모신 것을 비롯 10대에 섭렵한 스승만도 광주의 정광수 남원의 강도근 한애순 강요진 등등이다.그리고 20세가 되던 무렵에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산간벽지로 송계를 찾아들어가 4년간 살이 물러터지도록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사했으며 다시 서울에 올라와 박초월 박녹주의 ‘흥보가’‘수궁가’의 창제와 더늠을 익히는 등 그의 학습은 문자그대로 ‘금성철벽(金城鐵壁)’으로 소문나있다. 춘전이 처음 회천에 갔을 때 스승은 ‘신식소리나 배우라’고 가르치기를 거절했으나 그의 타고난 성음에 가능성을 느끼고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세종제춘향가는 통성으로 우조를 써야한다’고 처음부터 단단히 강조해 마지않았다.스승이 부르는 ‘심청가’의 발림이 너무 애절하여 눈이 퉁퉁 붓도록 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씩 목에서 피를 토하는 가혹한 수업을 받았다. 임종자리에서도 스승은 ‘소리를 변질시키는 것은 정절을 버리는 것과 같다.절대로 소리를 만들지 말고 옛것을 그대로 하라’고 끝까지 타일렀다.‘판소리는 한바디를 기둥삼아 불러야하며 판소리 한바탕에는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오미(五味)가 골고루 배열되어있으나 여러 바디의 좋은 대목만 따다가 조각보같이 짜맞추면 단맛만 앞서고 오미가 결여되어 판소리의 원리가 깨어진다’고 했다. ○“옛것 그대로” 스승 유언 춘전은 스승의 창법에다 다양한 붙임새를 개발하여 장단을 엇붙이는 잉어걸이,완자걸이 등 기묘한 장단붙임과 통성의 덜미소리를 들고나서면서 좌중을 사로잡는다.더구나 소리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통성이 강한데다 소리맺음을 할 때 짧게 끊거나 힘차게 통성으로 올려끊는 스승의 가법을 가장 잘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그래서 그의 공력은 곧잘 ‘설 벼린 칼은 쉬 부러지지만 수만번 단단히 벼린 칼은 바위를 쳐도 끄떡없다’는 이치에 비유되기도 한다.원로 국악인 성경린씨가 ‘성우향의 명창으로서의 대성은 타고난 성음,음악적 재능과 함께 하나같이 높은 스승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다. 70년대 이후 서울에 올라와 활동하면서 긴 곡절끝에 부군과 이혼 후 바둑교실을 열고있는 아들 진성환과 살면서 며느리인 원미혜가 그의 뒤를 잇고있다.삼양동 언덕배기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리던 시절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봉지쌀을 사가지고 오면서 집앞까지 쌀이 새는 줄도 모른채 빈봉지를 들고올 만큼 경황없는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잔칫집에 나가 창을 부르지 않았고 ‘일반 가객들이 힘들고 난삽하여 꺼리는 가풍이지만 그는 계승의 책임감으로 이를 지켜왔으며 이와 관련하여 제자양성에만 한 평생을 던져왔다. 그의 문하에는 1백여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도열해있으나 아직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있다.그의 제자중에는 각종 판소리대회에 나가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수연 김영자 박양덕 안숙선 등 13제자가 있고 그는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완창발표를 12차례나 갖기도 했다.순수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로서 업적과 소리의 진가는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데도 흙속에 묻힌 보석인듯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얄팍한 세태가 안스럽기만 하다. ○문화재 재정안돼 아쉬움 허무하고 긴 예로(藝路)의 여정에서 인생의 파란이 얼룩져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상(嚴霜)속의 정목(貞木)’답게 단 한번도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초연한 자세로 주변을 감싸고 보살핀다.그를 아끼는 기라성같은 제자들에 둘러싸여 존경과 선모를 한몸에 받는 이상,그리고 위대한 스승들로부터 이어받은 소중한 유음(遺音)을 전승하는 일을 자신의 정업으로 삼은 이상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스스로 우뚝선 참으로 홍복의 예인에 틀림없다.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전남 화순출생 ▲1949년 동일 창극단입단 ▲1950­52년 강도근판소리수업 ▲1953­57년 정응민문하사사 ▲1955년 전국판소리명창대회 1등▲1958년 임방울창극단 입단 ▲1960년부터 한국국악협회 회원 ▲1968·72년 재일교포 위문공연 ▲1972년 제1회 江山 박유전制 ‘심청가’완창발표 ▲1974년 제2회 김세종制 ‘춘향가’완창발표, 전국명인명창대회 장원 ▲1977년 전주대사습대회장원 대통령상수상기념 ‘춘향가’ 완창발 표 ▲1986년부터 국립창극단 초청강사, 사단법인 판소리보존회 연구 분실원장, 김세종제 ‘춘향가’ 완창발표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기능보유자 후보지정 ▲1994년 성우향 판소리인생 55주년기념공연(세종문회관 소강당 ) ▲1998년 김세종제 ‘춘향가’ 발표 성우향판소리연구소 대표, 국악예고 및 서울대등 8개대 출강 KBS국악대상(88년) ‘판소리 수궁가 (전3매)
  • 98서울환경사진공모전/금상에 김동석씨 ‘도심속의 점경’

    ◎서울신문사·서울시 공동주최/은상 김수찬씨 ‘최후의 공간’ 이재형씨 ‘밤섬의 신록’/한달수·강길순·윤교선씨 나란히 동상 영예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주최하는 ‘98 서울환경사진공모전’에서 녹색 생명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은 김동석씨(충남 천안시 다가동)의 ‘도심속의 점경(點景)’이 영예의 금상을 차지했다. 올해 3회째를 맞는 이 사진공모전은 서울지역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하는 행사로 모두 476점이 출품됐다. 은상은 김수찬씨(강동구 길1동)의 ‘최후의 공간’과 이재형씨(영등포구 신길4동)의 ‘밤섬의 신록’이 받았으며 동상은 ‘용마산 불’(한달수·중랑구 면목3동),‘수확의 기쁨’(강길순·종로구 서린동),‘누가 이들을 죽이는가’(윤교선·금천구 독산동) 등 3작품에 돌아갔다. 금상 등 40점의 입상작은 9일부터 15일까지 지하철 시청역 지하보도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가작 및 입선작은 다음과 같다. ▲가작=왕릉지킴이(이광호) 도선(이태인) 깨끗한 물로 풍성한 수확을(최진숙) 버려진 양심(이순옥) ▲입선작=새벽(권순자) 사랑(허현) 탄생(허현) 무제(하근호) 여의도의 여름(이재형) 북한산의 비경(정경순) 도심의 봄(채종렬) 털 작은 입술 잔 버섯(박원식) 여름날Ⅱ(이우화) 만추Ⅱ(김한수) 한강의 일몰(정인식) 환상의 한강(장동민) 용마에서 남산까지(남정필) 조류보호 나라사랑(모동신) 썬텐(최태희) 공기를 살립시다(나영완) 노을 안에 비상(노현수) 동심(박문성) 아름다운 서울(정희광) 98 창경궁(정희광) 낙선제 구경(이은주) 민족의 얼(김순자) 삼각산의 솔밤(최락선) 서울 야경(심재록) 한강의 오후(이동훈) 깨끗한 한강(조명숙) 자연 속에서 점심을(최진숙) 휴식(최길원) 낙시터의 오염(신은주) 외면(정계철)
  • 명성황후 피란 일화(비록 남가몽:4)

    ◎뱃사공에 금반지 빼주고 한강 건너 피신/경기도 광주땅 지나는데 아낙네들 험담/“중전때문에 이 고생… 군졸에 밟혀 죽었다”/두달후 환궁 “아낙네마을 없애 버려라” 1882년 6월의 임오군란으로 민비는 실각하고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대원군으로서는 실각한지 8년만의 일이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대원군이 운현궁에서 창덕궁까지 가는데 여덟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팔인교)를 탔고 앞뒤에는 파초선을 든 하인들이 그를 인도했다.대원군의 공복 등에는 거북 등(구배)이 붙어 있어 사람들은 그가 곱추처럼 보여 아니꼽기만 했다.더욱 가관인 것은 그동안 운현궁 사랑방을 출입하던 문객,즉 가신들을 중앙과 지방의 요직인 각 도 감사(도지사)와 유수(시장) 그리고 군수직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가던 민비는 전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었다.그러니 그야말로 절치부심 이를 갈며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중전이 나루터에 서서 급히 사공을 불러 배위에 올라타니 수레바퀴같은 붉은 해는 비웃듯이 솟아 오르고삼각산의 뜬 구름도 즐겁기나 한 듯 뫼 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삼국지에 보면 옛날 한나라 환관 십상시의 난에 개똥벌레가 한소제를 북망산천으로 인도하였고 채모 장군이 추격함에 유비가 말을 타고 단계천을 뛰어 건넜다고 하는데,그 쓸쓸한 모습이 옛날이나 지금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드디어 뭍에서 내려 길을 가다가 얼마후 깨끗한 여관에 들어가니 아침밥을 지어 바치는데 한나라 광무황제가 호타하에서 먹던 보리밥처럼 꿀맛과도 같았다.그러나 비록 이같이 배고프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단맛을 느끼지 못하였다.도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시끄럽게 자주 서울의 군란소식을 전하여 주었는데 들어보니 곤궁(민비) 전하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겠고 혹은 서거하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그 밖에 흉흉한 설은 이루 다말하기 어려웠다. 듣기를 마치고 드디어 수레를 타고 수행원의 보호를 받으며 바로 충주 옛고을로 향하여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잠시 화를 피하였다. 며칠이 지나 잠깐 조보에 발표된 내용을 보니 ‘민중전이 군란의 와중에서 서거하여 백성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이 슬퍼하고 모두 흰옷을 입었고 온 나라는 악기를 일체 연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생국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명성황후가 여주로 피난할 때 남긴 일화가 많다.한강을 건널때 사공이 민비를 건네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고 한다.한강을 차단하라는 긴급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사공의 주장이었다.이에 민비는 즉각 금가락지를 빼어 사공에게 던져 주었고 사공은 뇌물을 받고서야 순순히 배를 저었다는 것이다. ○대원군,시신없이 국상 채비 한강을 건너 충주로 가는 도중에도 괘씸한 일이 일어나 민비의 가슴을 쥐어짰다.경기도 광주땅을 지나가다가 교자꾼들이 가마를 길에 놓고 잠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길가던 아낙네들이 “이렇게 어여쁘신 아가씨가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민비는 재치있게 “서울에서 충주로 피난가는 길이요”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아낙네들이 “중전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예쁜 아가씨까지고 생하는 구려” 하면서 “중전은 군졸들에게 짓밟혀죽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겠는가.민비는 이들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두달 후 서울로 환궁하자 곧 아낙네들이 사는 마을을 없애버리라고 명령했다.또 수행원들이 “한강의 뱃사공은 어떻게 하오리까” 하고 묻자 민비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한다.그도 그럴것이 사공이 뇌물을 거절하고 한강을 건네주지 않았던들 민비는 잡혀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대원군이 민비의 국상을 서둘렀다.시신이 없어 국상을 치를 수 없다는 반대가 강했다.그러나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대원군은 민비의 옷을 시신으로 삼아 염을 한뒤 관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그리고는 장례식부터 치러 민비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려 했다.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장례식부터 치르려 한 대원군의 심사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할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대원군은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청국군에게 납치되어 머나먼 중국땅으로 끌려가고 말았고 민비는 살아 돌아왔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몇 개월이 지났다.고종과 세자는 아득하게 소식을 알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애통할 뿐이었다. 이 때에 군란의 소요가 가라앉자 곤궁 전하는 고종에게 소를 올려 ‘신은 죽지 않고 지금 충주 장호원 등지의 민가에서 피란하고 있으며 처분이 어떠하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고종 부자분은 소를 자세하게 살펴본 뒤에 심신이 황홀하여 꿈결도 같고 술에 취한 것도 같았다.즉시 궁궐로 돌아오라는 뜻을 담은 교를 내려 조처를 취하니 하늘의 해가다시 밝았고 땅의 바람이 일어나 솟아오르는 듯하였다.안으로 3천명의 관료와 밖으로는 800명의 관료가 축하하여 일시에 만세를 부르니 남산과 북악의 초목과 곤충들도 모두 정채가 감돌았다. 우선 급무는 공로가 있는 자에게 시상하는 건이었다.무슨 벼슬로 상을 줄것인가.양주목사 자리이다.양주목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이번에 충주까지 수레를 태워주고 수행하여 보호하는 일을 맡은 홍태윤(홍계훈의 잘못)이었다.” ○한때 ‘육백팔흑’ 유행 임오군란으로 민비가 자취를 감춘 것이 6월이요,돌아온 것이 8월이었으니 불과 두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사람들은 6월에 흰 옷을 입고 울었다가 8월에 검은 갓을 쓰고 살아돌아온 국모를 환영했다 하여 육백팔흑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다. 명성황후를 업고 나온 공으로 양주 군수로 발탁된 홍계훈 이외에도 서울에서 충주로 가는데 필요한 여비 500궤미(말을 판 돈이었다)를 댄 조충희는 전남 영광군수로 임명되었다.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북청 물장수 출신의 이용익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과 충주를 왕래하면서 중앙의 정세 변동을 민비에게 보고하였으니 그 뜨거운 충성심과 추종을 불허하는 건각은 역사상 유례없는 것이었다.홍계훈은 뒷날 동학란 토벌대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이용익은 대한제국의 탁지부대신을 맡아 이른바 광무개혁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임오군란은 개항 6년만에 국고가 바닥이 나 군인들이 들고 일어난 대사건으로 조선왕조가 망해가는 첫걸음이었다.그러므로 민비와 대원군 사이의 사전쟁 이상의 것이었다.이 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서울이 분탕질을 당하고 일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여 열강에 의한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