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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형수가 죽기 전 선택하는 ‘마지막 식사’ 메뉴는?

    사형수가 죽기 전 선택하는 ‘마지막 식사’ 메뉴는?

    사형수들은 죽기 직전, 마지막 식단으로 무엇을 선택했을까.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미국 사형수들의 마지막 식사 메뉴를 공개했다. 미국 오하이오교도소에서 살인죄로 수감 중이며 곧 사형될 것으로 알려진 수감자 크라렌스 카터(49)는 다른 사형수들이 엄청난 양의 치킨 등 고기를 요구하는 반면 구운 감자와 오렌지쥬스, 참치 샐러드, 휘트 브래드 등의 ‘소박한’ 마지막 식사를 신청했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형 전 수감자가 원하는 메뉴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는데, 1990년대에 휴스턴에서 살인 및 강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제임스 스미스는 종교의식 절차에 따라 요거트 한 접시만 먹었다. 1992년 캘리포니아에서 살인을 저지른 로버트 해리스는 유명 패스트푸드브랜드인 KFC의 치킨 수 박스에 하지 사이즈 피자 두 판, 펩시콜라 6개와 담배 등을 요구했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또 다른 여성 사형수인 테레사 루이스는 프라이드 치킨과 완두콩, 버터, 그리고 음료수인 닥터페퍼와 독일산 초콜릿 케이크를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5년에 사형된 헨리 포터라는 사형수는 위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음식을 원했다. 그녀는 계란과 감자를 함께 기름에 튀긴 스페인 음식인 토틸라와 토스트 샐러드, 할라페뇨 고추, 아이스크림, 그리고 초콜릿 케이크 등을 주문했다.대부분의 사형수들은 평소 자신이 즐겨 먹었거나 수감생활 중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먹어보지 못했거나 희귀한 음식을 요구하는 수감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妻子와 愛人을 음독시킨 아, 내이름 家長”

    [선데이서울 73년 7월 8일호 제6권 27호 통권 제 247호]  귀여운 두 아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 꿇어 엎드린 그 젊은이의 뺨에는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만 흘러내린다. 아내는 복역 중에 있고 연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사랑과 미움의 갈림길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천애의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어떤 가장. 재기의 몸부림과 속죄의 절규로 썼다는 애독자 김모씨(기사 원본엔 풀 네임 적시돼 있음)의 수기를 싣는다.   아마 기억하고 있는 독자는 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해(1972년) 9월8일자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일가족 집단 음독자살」 제하의 기사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의 일가족 가장이다. 이제 내 나이 30살. 그리하여 나는 이 사건으로 귀여운 아이들을 잃고 속죄의 몸부림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시초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독자살 미수에 그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鄭京淑(25·가명)이라는 여인 이야기를 신문을 통해 보고 왠지 동정심에 이끌려 찾아가 치료와 퇴원 수속까지 자비로 해준 일이 있었다. 동정은 사랑으로 변하여 결국 부모와 친척이 없다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 동거하게 되었다.  그 뒤 나는 군에 입대했고 파월(월남 파병을 말함) 되었다가 69년 8월에 귀국, 제대했다.  제대를 한 뒤 나는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어머님과 가족들에게 얘기했으나 과거가 있는 그 여자(실연 후 음독했다고 함)와는 절대로 결혼시킬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69년 8월27일 나의 집이 있는 서울을 도피해 인천시내 K예식장에서 가족들이라고는 한 사람도 참석치 않은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약 1년 동안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서울 금호동 변두리에 셋방을 얻어 생활했다. 아내가 첫딸을 낳자 어머니도 어느 정도 이해하여 집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녀와의 결혼을 극력 반대하던 어머니의 감정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은 탓인지 어머니와 아내는 서먹서먹 했고 보이지 않는 불화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아내는 또 아들을 낳아 우리는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나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근이 되어 그곳으로 출퇴근을 했다.  교통이 불편해서 나는 직장 부근에 하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번 갈 정도가 되었다. 그 즈음 나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지(池)모양(20)과 사귀게 되었다.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 졌으면 결국 몸을 하락하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池양은 펄쩍 뛰며 아내와 헤어질 것을 요구해 왔다. 결국은 아내와 본격적인 이혼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 나는 장님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내도 설마 내 말이 거짓이겠지 하며 『사실이라면 사귀고 있는 여자와 직접 만난 다음에 합의해 주겠다』고 얘기했다. 그 후 두 여인은 몇차례 만났으며 그때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두 여인의 사이는 외면적으로는 사이가 좋아보였다.  그러나 막상 아내가 이혼 조건으로 요구하는 위자료를 그 당시 나의 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어 어렵게 되어 하루 하루 이혼문제는 지연되었으며 자연 池양과 나는 시내 여러 곳으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池양의 가족들은 나의 환경을 알게 된 후 자기 딸을 집에다 감금하다시피 꼼짝 못하게 했다. 더우기(더욱이)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머리까지 가위로 빡빡 깎아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머리를 수건으로 쓰고서라도 또 집을 뛰쳐나와 나에게 빨리 이혼할 것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9월4일 아내는 이혼 조건을 대폭 완화하여 9월5일 합의이혼 수속을 끝내자고 말해 池양은 이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깊은 정이 든 아내와 막상 헤어지자니 망설여졌다. 나는 나의 확실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아는 선배를 찾아가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어떠한 판단이 옳은 지를 상의했다.  선배는 두 자식을 위해서 절대로 아내와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나도 그것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 여인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池양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池양은 여태껏 미루어 온 결정을 눈 앞에 놓고 무슨 얘기냐고 흥분하여 서로가 옥신각신 심한 언쟁을 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보고있던 아내는 池양이 처녀의 몸으로 당신과 사귄 것인만큼 또 한 여인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 자기가 물러나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지금의 내가 말한 것은 심중히 생각한 결론이며 움직일 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얘기가 쉽게 끝나지 않아 그날 밤 10시경 두 여인과 나는 집 부근에 있는 여관으로 장소를 옮겨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누었지만 결론을 못 얻었다.  밤이 늦어 잠깐 잠이 들어 새벽 5시경 눈을 떠보니 두 여인은 어린 것을 데리고 내가 풀어논 팔뚝시계와 외투에 든 돈 등을 꺼내 가지고 행방을 감춰버렸다.  나는 혹시 집으로 간 것이 아닌가 하여 집으로 가본즉 池양이 새벽 4시경 집에 들어와 잠자고 있던 맏딸 주현(3세)을 마저 업고 나갔다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하루 온종일 두 여인의 행방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밤 9시가 조금 못되어 집에 돌아왔다가 다시금 집 근방에 있는 여관마다 두 여인을 찾아 헤맸다. 겨우 신림동에 있는 K여관 101호실에 투숙한 사실을 알고 방문을 「노크」했으나 응답이 없었다. 여관 종업원이 창문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싸늘한 체온의 두 자식과 시체와도 흡사한 두 여인이 눈 앞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즉시 인근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급히 S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주현이가 숨지고 다음 날 하오 2시경 장남 재훈이마저 숨이 끊어졌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으로 그때까지도 의식불명인 두 여인의 회복을 미칠 것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약 46시간만에 점차 의식이 회복되는 두 여인을 뒤로 하고 나는 당면한 병원비와 입원비를 마련코자 집으로 뛰어가 세간살이와 집을 헐값에 급히 팔아 가지고(내놓고의 뜻으로 보임) 병원으로 돌아오니 이미 대기했던 각 신문사 기자와 방송사 기자들의 취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두 여인과 나에게 조서를 받아가고 다음 날 아내는 (직계)비속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며 회복되는대로 구속된다는 사실을 형사로부터 들었다.  그 후 두 여인의 건강은 놀라울이(놀라울) 만큼 빨리 회복돼 갔으며 음독을 하게 된 경위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새벽에 여관을 나선 그들은 시계를 팔아 받은 돈으로 수십 곳의 약방을 돌아 음독할 약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혼을 해주고 어린 자식들을 다른 여자에게 주느니 차라리 자식과 함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池양은 나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닥쳐올 가족들의 비난과 자신의 운명을 비관한 나머지 각자의 이유는 달랐으나 죽는다는 것에 합의를 보아 기묘한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며칠 뒤 池양의 가족들은 나를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했으나 웬일인지 고소를 취하, 나는 풀려났으며 그 해 10월27일 두 여인은 노량진경찰서에 구속되었다.  나의 잘못으로 죄 없는 어린 두 자식이 희생됐고 또 두 여인이 구속된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는 수차 자살을 기도했으나 뜻을 못 이룬채 두 여인이 구속돼 있는 경찰서로 면회를 갔었다. 그러자 아내가 그 전 내가 자기 오빠뻘이 되는 사람 집에 있을 때「타이어」 2개를 갖고 간 일이 있다고 해서 절도죄로 피소, 나 역시 11월1일 구속되어 한 경찰서 감방 안에는 뭇사람들의 웃음과 조롱거리가 된 두 여인과 내가 마주 쳐다보이는 쇠창살문 안에서 고통스런 3일을 함께 지냈다.  11월5일 두 여인은 먼저 영등포구치소로 넘어가고 나 혼자 있다가 11월10일 나도 구치소로 넘어가 영등포구치소로 내에 3인이 같이 수감됐다. 검치가 시작되어 매일 검사 앞에 푸른 수의를 걸친 두 여인과 나는 같은 검사실에서 취조를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범행을 순순히 시인하나 池양은 내가 약을 사줬으며 자기는 절대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끝내 부인했다. 그러나 나는 살인죄에는 간여한 사실이 없다고 인정되어 절도죄로 10월 구형에 6월형을 선고받아 머리를 깎고 기결수로 노역장에 출역을 했으며 복역 중에는 두 여인의 공판 하루 전날 증인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두 연인은 구형에서 징역 5년씩을 선고받았다. 池양 측에서는 변호인을 선정하여 변론을 했으나 아내는 변호인도 없이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으며 池양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며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인가를 뉘우치며 짧은 복역기간 동안이나마 열심히 반성하고 일했다.  나는 형기가 만료되어 지난 5월3일 구치소의 육중한 철문을 나와 자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 날 나는 아직도 구치소 안에 혼자 남아있는 아내를 면회하였다.  아내는 슬프게 흐느끼면서 『당신을 전과자로 만들고 두 자식을 죽인 내가 죄가 많아요. 이제라도 당신의 행복을 위해 池양과 결혼하라』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당신이 석방되어 나오는 날까지 나는 꼭 당신만을 기다리겠소. 당신의 깊은 사랑을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건강히 있으라』고 일러둔채 말문이 막혀 돌아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첫날 면회를 간 후 이틀이 멀다 하고 나는 면회를 가며 매일 편지를 띄우고 있다. 이제 오직 나에게는 아내가 나오는 날까지 과거의 아픔을 거울삼아 힘껏 못다 이룬 둘만의 행복을 향해 줄달음칠 결심이다. 그래서 참되게 살겠다.  ■한 가족 음독자살 당시의 보도  「선데이서울」제207호 72년 9월24일자 P16에 보면 9월8일 金모여인과 정부 池모양이 신림1동 C여관에서 함께 음독자살을 꾀한 사건이 났다고 보도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金씨의 수기에서와 같이 金씨의 아들(1살) 딸(3살)도 함께 어른들에 의해 음독, 72년 9월8일 현재 아들만 죽고 나머지 3명은 가료 중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기사에는 池양과 金씨가 동거하는 곳에 나타난 金씨의 아내 鄭여인이 『위자료를 내면 양보하겠다』고 요구하여 옥신각신 하던 끝에 집에 돌아온 金씨가 『싸우려면 나가서 싸워라. 둘 다 꼴보기 싫다』며 내쫓아 버렸는데 엉뚱하게 본처와 정부가 동반자살을 하려다 실패, 딸만 절명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 14년 복역중인 무기수 ‘독학사’ 과 수석졸업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째 복역 중인 제소자가 국어국문학 독학사(獨學士) 학위 수석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조모(38)씨는 20대에 한순간의 실수로 수형생활을 이어오다 담당 교도관의 설득으로 2009년부터 때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조씨는 ‘주경야독’으로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교양과정과 전공기초 및 심화과정을 차례로 통과한 뒤 마지막 단계인 학위취득 종합시험에서도 최고 점수를 획득, 국어국문학 독학사 학위를 따냈다. 그의 점수는 전체 응시자 평균 66.2점보다 무려 30점 가까이 높은 95.27점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쓴 학사모에는 ‘수석 졸업’이라는 영광이 더해졌다.  조씨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2011년도 독학학위제 학위수여식에서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출소후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조씨를 비롯해 수형자 20명이 학위취득 종합시험에 합격해 이날 독학사 학위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1995년 ‘독학에 의한 학위취득과정’을 개설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254명의 수형자가 ‘만학도의 꿈’을 이뤘다. 2008년에는 전국 전체수석을 배출했고, 올해도 조씨 등 3명이 과 수석을 차지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사망 금미호 기관장 케냐여성이 떠밀어”

    지난 17일 새벽(현지시간) 케냐 몸바사항 인근 한 호텔에서 추락해 숨진 금미305호의 기관장 김용현(68)씨가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냐 현지 경찰은 당시 김씨와 호텔 방에 같이 있었던 케냐인 여성을 살인 혐의로 구속, 수사를 계속 하고 있다. 18일 현지 경찰 등에 따르면 김씨가 호텔 방 베란다에서 뒤뜰로 떨어졌을 때 방에 함께 있었던 26세 케냐인 여성이 말다툼을 벌이다 김씨를 떠밀었다는 호텔 직원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이 여성을 살인 혐의로 구속했으며 이르면 다음 주 초 살인죄로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함에 따라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그 같은 정황은 있지만 케냐 경찰이 우리 측에 통보해 온 것은 아직 없다.”면서 “공식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의 유가족은 이르면 주말 케냐로 출국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씨의 유가족이 케냐로 출발하기 위해 오늘부터 항공편을 알아봤는데 표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이르면 19∼20일 중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생포 해적들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 5명이 국내법에 따라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해적들의 국내 송환을 내부 방침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내 법정에 설 경우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으로 처벌 조항이 규정돼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법 감정’이 상당히 큰 비중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제시한 금미305호 선원들과의 맞교환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계 부처들이 잇따라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데다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이후 고무된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지난 주말부터 국제형사과를 중심으로 생포된 해적들의 사법처리 절차에 대한 검토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게는 형법상 해상강도죄와 선박 및 해상구조물 위해행위처벌법상 선박납치죄 등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형법 340조(해상강도죄)에 따르면 ‘해상에서 선박을 강취하거나 선박 내에 침입해 타인의 재물을 강취한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다쳤을 경우에는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고, 사망할 경우 최대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선박위해법(선박납치죄) 6조에는 ‘운항 중인 선박을 납치할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12조(선박납치 등 상해·치상죄)에서도 선박을 납치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다쳤을 경우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이 총상을 입고 크게 다친 점을 감안하면 해적들은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해적들이 난민 신청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에 대해 법무부에서는 “해적의 경우 유엔 난민협약의 예외 조항에 해당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보고받은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국민들의 법 감정상 해적들을 국내법에 따라 사법처리한 뒤 추방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1996년 8월 사모아섬 인근에서 일어난 ‘페스카마 15호 선상반란 사건’의 경우에도 한국인 선원 7명 등 11명을 살해한 중국동포 선원 6명에 대해 해상강도·살인죄 등을 적용해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박 의원은 “페스카마호 사건의 경우 명백한 살인 사건이었지만, 삼호주얼리호의 경우 상당히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무려 ‘108세’ 세계 최고령 죄수의 사연

    무려 ‘108세’ 세계 최고령 죄수의 사연

    세계 최고령 죄수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최근 인도 교도소에 수감 중인 108세 남성이 소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도 지역지 데칸헤럴드 등 외신에 따르면 우타르프라데시 주 고라크푸르 지역 교도소에 살인죄로 수감 중인 브리지 비하리는 올해 108세로 세계 최고령 죄수로 알려져 있다. 비하리는 1987년 당시 84세의 나이로, 4명이 사망한 바리야푸르 샤히 마을의 살해사건에 연루돼 공범 18명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 받았었다. 그는 지난 2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감 생활을 해왔고 그 사이 공범들 중 3명은 교도소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비하리는 이번 인도 국경일인 ‘공화국의 날’을 맞아 특별 사면 대상자 목록에 포함돼 살아 생전 다시 한 번 바깥 공기를 마실 기회를 얻게 됐다. 한편 인도에서는 시각장애인이나 암 환자 혹은 12년 이상 복역해 60세를 넘긴 죄수는 규정에 따라 특별 사면 대상이 될 수 있는데 비하리가 장기 수감 생활로 그 대상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자료사진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 진실은?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 진실은?

    충남 보령의 이른바 ‘청산가리 살인 사건’의 진범은 과연 누굴까. 대법원은 자신의 아내와 이웃 주민 등 3명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의문스럽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다.”며 파기해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모(73)씨는 1966년 정모(사망 당시 71세)씨와 결혼해 1남 2녀를 낳았지만, 다른 여성과 동거하면서 정씨와는 40여년간 별거해 왔다. 아내 정씨는 시장에서 일을 하며 세 자녀를 키웠고, 모두 결혼까지 시켰다. 이씨와 정씨가 다시 만난 것은 2008년.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이씨는 “아내를 간호하겠다.”며 충남 보령의 정씨 집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씨가 다방을 운영하는 여성과 내연 관계에 빠지자 두 사람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같은 마을 주민으로부터 이씨의 행실을 전해 들은 정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씨는 이혼당하면 집에서 내쫓길 판이었다. 사건이 터진 것은 이듬해였다. 2009년 4월, 정씨는 자신의 집에서 물을 마신 직후 숨지고 말았다.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이어 다음 날 이씨의 내연 행각을 정씨에게 알려줬던 주민 2명도 청산가리 중독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충남 보령 청산가리 살인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경찰은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구속했다. 법정에서 이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씨에게 청산가리를 구해줬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지만, 이씨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수사기관과 제보자에 대한 현상금을 노린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이씨에 대한 3차례의 공판을 진행한 끝에 ▲이씨가 아내 등을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으며 ▲아내 시신을 목격했을 당시의 행동이 의심스럽고 ▲청산가리를 건넸다고 진술한 사람들이 이씨와 특별한 원한관계가 없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씨를 유죄로 인정하고, 오히려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최근 이 같은 원심을 파기했다. 재판부는 “살인죄 등과 같이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도 직접 증거가 아닌 간접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합리적인 의심이 없어야 한다.”면서 “원심 판단에는 몇 가지 의문스럽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가 청산가리를 입수한 경위가 명확하지 않고, 설사 이씨가 청산가리를 구했더라도 짧게는 16년, 길게는 20~30년 방치돼 있었던 것이어서 독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파기한 이 사건은 현재 대전고법 형사2부에 배당돼 다시 심리가 진행 중이며, 오는 18일 두 번째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판사들 성폭행범에 관대한 잣대는 뭔가

    성폭행범들에 대한 법원 판결이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건장한 20대 청년 3명이 12살짜리 어린 소녀를 집단 성폭행해도 무죄라고 판결하고, 어린 친딸을 상습 성폭행해서 임신까지 시킨 아버지에겐 감형이란 은전을 내린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면수심의 성폭행범에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가 뭔지 묻고 싶다. 근시안적인 법 논리에 빠져 법보다 우위에 있는 도덕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닌지 재판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는 검사가 기소한 특수준강간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 부분은 별도로 따져 볼 문제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성폭행이 아니라 성관계라고 표현하는 등 재판부의 너그러움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12살에 불과한 미성년자를 상대로 집단 성폭행, 혹은 집단 성행위를 저질러도 죄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재판부는 피해 소녀가 차비를 받았기 때문에 기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엄연히 불법인 성매수마저 무죄란 말인가. 재판부는 검찰의 법 적용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든, 어떤 근거를 마련해서라도 그들을 처벌하는 게 마땅했다. 그 소녀가 재판장의 딸이었다면 그런 판결을 내렸을지 묻고 싶다. 이 사건과 아버지 감형 사건은 각각 2심 고등법원과 최종심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해 8살짜리 초등생을 만신창이로 만든 조두순 사건 때도 관대한 판결로 물의를 빚자 엄격한 양형기준을 제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전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살인죄 등에 초점이 맞춰졌을 뿐 성범죄 척결 의지는 아직도 빈약하다. 내년 4월까지 확정키로 한 최종안에는 성 범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기준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래서 일선 판사의 관대한 잣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성 범죄에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건강한 잣대이다.
  •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 기본형 징역 22~2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규홍)는 유기징역 상한이 최고 50년으로 높아진 개정 형법을 반영, 살인범죄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형량을 대폭 높인 양형기준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19일 밝혔다. 양형위는 종전에 살인범죄를 ▲동기에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살인 ▲보통 동기에 의한 살인 ▲동기에 특히 비난 사유가 있는 살인 등 세가지로 나눴던 것을 ▲중대범죄 결합 살인 ▲극단적인 인명경시 살인 등 두가지 유형을 추가해 다섯가지로 세분화했다. 가장 무거운 범죄유형인 ‘극단적인 인명경시 살인’은 살해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2명 이상 또는 불특정 다수를 무작위로 살인한 경우 등에 적용된다. 이런 유형의 범죄에는 징역 22∼27년을 기본형으로 하고 계획적이거나 잔혹한 수법 등 가중요소가 있으면 2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 이상을 권고형량으로 정했다. 종전에 살인범죄 유형 중 가장 무겁게 처벌된 ‘동기에 특히 비난 사유가 있는 살인’이 징역 10∼13년을 기본형으로 했던 것에 비하면 기본 형량이 두배로 높아진 살인죄 유형이 추가된 것이다. 양형위는 21일 전체회의와 내달 초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할 방침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김길태 항소심서 무기징역 감형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김길태(33)에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 김용빈)는 15일 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10년간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왜곡된 성적욕구를 채우려고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을 저질러 영구격리해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문명국가에서 사형은 극히 예외적인 형벌로 폐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피고인이 살인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피고인의 나이, 성행, 수단 등 양형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기징역에 처함이 상당하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심과 같이 김에 대해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과 10년간 신상정보 공개를 함께 명령했다. 김은 지난 2월 24일 오후 7시 7분에서 25일 0시 사이 사상구 덕포동의 한 주택에서 혼자 있던 여중생 이모(13)양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자 곧바로 항소했다. 한편 이양의 어머니 홍모씨는 항소심재판부가 원심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자 “너무 충격을 받아 정신이 없다.”면서 “내가 이렇게 분한데 하늘에 있는 우리 딸은 어떤 심정이겠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홍씨는 이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사실상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현재 상고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평택 조폭 121명 검거

    경기도 평택 일대 3개 폭력조직을 통합해 채권추심은 물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주민들을 도와 공장 설립 반대운동을 하던 환경단체 간부를 폭행한 대규모 폭력조직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6일 폭력조직을 결성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신전국구파’ 두목 전모(51)씨 등 15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10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06년 2월부터 지난 4월까지 50여차례에 걸쳐 평택 일대에서 각종 개발사업 이권에 개입하거나 불법 채권추심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2006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평택 건설업체 A사장을 손도끼로 위협, 이 회사가 시행하는 아파트사업의 상가분양권과 창호공사 등을 갈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안성 아스콘공장 설립허가 취소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을 돕던 전 환경단체 간부 구모(45)씨를 집 앞에서 밤늦게 기다리다가 주먹으로 때려 코뼈를 부러뜨리는 등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06년 4월부터 9월까지 평택에서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며 3억 3000여만원의 조직활동 자금을 마련, 변호사 비용 등으로 댄 것으로 조사됐다. 2006년 5·31 지방선거 당시에는 향후 개발이권을 얻기 위해 연예인 14명을 동원해 특정 후보 지원유세를 하는가 하면 경쟁후보에 대해서는 인터넷 비방 글을 게재하는 등 조직적으로 지방선거에 개입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한편 두목 전씨는 살인죄 등으로 24년 10개월간 교도소에 장기복역 중이던 2006년 2월 장기복역 수감자에게 주어지는 귀휴를 나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평택지역 3개 폭력조직의 통합행사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대전교도소와 안동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2006년과 지난해 몰래 반입한 대포폰과 교도소 구내전화 등을 이용, 외부와 연락하며 조직을 관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페이스북 하는데 울어 홧김에” 아기 죽인 비정母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의 게임을 즐기던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울자 화김에 죽여 논란이 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 북부에 사는 알렉산드라 V 토비아스가 27일 아이를 살해한 죄를 인정해 2급 살인죄로 징역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현지 한 수사 관계자는 “토비아스 씨가 페이스북의 인기 게임인 팜빌을 하던 중 아이가 울어서 화가 나서 아이를 세게 흔들었다고 자백했다.”고 전했다. 이에 현지 검사는 “그녀는 플로리다주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최소 25년에서 최대 30년까지 징역을 살아야 하지만 이같은 경우에는 징역 기간이 짧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 비정한 엄마는 오는 12월 재판를 받을 예정이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징역 50년형’ 살인죄부터 적용

    지난 4월, 인천지법 형사13부는 뇌전증(간질)을 앓는 동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34)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현행 형법상 선고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유기징역형(가중 제외)을 선고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형법이 시행되는 오는 16일부터는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30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고, 여기에 형을 가중하면 50년형도 가능해진다. 사실상 ‘종신형’이 가능해지게 되는 셈이다. 이른바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개정된 형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자칫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형량 강화가 강력범죄 예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규홍)는 11일 제28차 회의를 열고, 살인 등의 양형기준을 수정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4월 공포된 개정형법(제42조 등)이 유기징역 상한을 현행 15년에서 30년(가중 시 현행 25년에서 50년)으로 조정하게 됨에 따라, 범죄 유형별로 새로운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양형위는 일단 살인·강도살인 등 중대 범죄부터 차례대로 양형 기준을 수정할 방침이다. 방향은 정해져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 범죄 양형 기준이 현행보다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개정 형법이 법 집행 과정에서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현행 형법은 1953년 제정된 후 9차례 개정이 이뤄졌지만, 유기징역 상한선이 변한 것은 처음이다. 형법을 개정한 국회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고, 기대 수명도 법 제정 당시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을 유기징역 상한 연장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법관들은 “형량이 단번에 2배로 늘면 피고인들이 공감하겠느냐.”며 우려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유기징역을 받은 범죄자보다 먼저 출소하는 ‘형벌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유기징역자는 형기의 3분의1 이상을 복역하면 가석방 대상이 된다. 50년형을 선고받은 경우 17년 가량을 복역해야 한다. 이 경우 개정 형법이 시행되기 전에 형을 선고를 받은 무기징역자들이 10년을 복역하면 자격을 얻는 것과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도 없지 않다. 개정형법은 무기징역 가석방 요건을 20년으로 강화하기는 했지만, 법 시행 전에 형이 확정 수형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황희석 변호사는 “사형 집행과 강력범죄 발생률이 연관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범죄가 양산되는 환경과 요인을 개선해야 진정한 범죄 예방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전자발찌 가석방’ 관리대책은 섰나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성범죄자 19명과 살인범 90명 등 109명이 오늘 전자발찌를 차고 가석방된다. 2008년 9월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 시행 이후 한 번에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법 시행 전에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살인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소급해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도록 한 관련법 개정안이 지난달부터 시행된 데 따른 것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동안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한 이들에게 사회 복귀의 기회를 앞당겨 주기로 한 것은 국민통합이라는 8·15특사 취지에 걸맞은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이 만에 하나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자발찌를 부착한 성범죄자의 83%가 발찌 부착기간 동안 가급적 불법행동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효과는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감시체계다. 현재의 감시 인원과 시설로는 범죄예방 및 억제 효과를 제대로 거두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기존 전자발찌 부착자 94명과 이번에 새로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가석방자들의 모든 움직임이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에서 24시간 모니터링된다. 그런데 전자발찌 부착자 200여명의 위치를 추적하는 관제센터 인원은 10명이 채 안 된다. 관제센터도 전국에서 단 한 곳뿐이어서 시스템에 오류라도 발생하면 순식간에 시민들의 안전망에 구멍이 뚫리게 되는 셈이다. 국민적 공분을 산 아동 대상 성범죄를 비롯해 성범죄는 점점 늘고, 관련 법도 강화되면서 전자발찌 부착자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자발찌 부착자를 제대로 관리감독하도록 인원 및 인프라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성격·심리·성행동 검사 등 과학적 관리와 체계적인 교정 프로그램을 세워 줄 것을 당부한다.
  •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민간인피학살 유족 ‘연좌제 고통’

    1962년 1월29일 혁명재판소. 경주피학살자유족회 회장 김하종(당시 28세)씨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6·25전쟁 때 우리 국군과 경찰이 선량한 국민을 살해한 것처럼 왜곡하고 위령탑 건립 등을 주장해 북한 괴뢰의 목적사항을 찬양동조했다.”는 것. 김씨는 오른쪽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틀 후 징역 7년형이 선고됐다. 김씨의 고향인 경북 월성군 내남면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민간인 학살로 얼룩졌다. 46년 조선공산당의 선동으로 ‘대구 10·1 사건’이 터지자 대한청년단이 조직됐고, 이들은 좌익분자를 색출한다며 민간인을 마구 살해했다. 49년 7월7일(음력) 김씨의 일가친척 22명도 잠을 자다가 총살당했다. 이 가운데 열살 미만의 어린이가 8명이나 됐다. 대한청년단 단장인 이모(당시 28세)씨가 소 판 돈을 약탈하고 죄를 은폐하려고 저지른 짓이라고 김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청년단이 공비토벌을 돕는 터라 수수방관했다. ‘가해자’ 이씨는 이후 자유당의 3선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4·19 혁명이 터지자 세상이 뒤바뀌었다. 60년 5월27일 국회가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를 벌이고 검찰이 살인죄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민간인 학살사건 재판이 최초로 열린 것이다. 검찰은 “이씨는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독일 친위대 중령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에 버금간다.”고 밝혔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앉혀 놓고 총살했다.”는 목격자의 법정증언이 잇따랐다. 61년 3월6일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이 발생하면서 세상이 다시 뒤집혔다. 진상 규명 활동은 ‘특수 반국가행위’로 바뀌었다. 경주유족회는 해산되고, 김씨는 불법 구금됐다. 경상남북도·경산·마산·창원·밀양·금창·동래유족회도 마찬가지였다. 유족 28명이 기소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경찰은 민간인 희생자가 묻힌 합동묘를 없애고 위령비도 정으로 지워 훼손했다. 살인죄로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가해자’ 이씨는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유족회 간부의 처벌을 지켜본 증인들이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유족은 허위 증언의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2년간 복역하고 63년 12월16일 사면됐다. 그 후로도 경찰의 감시가 이어졌다. 취업할 수 없어 농사를 짓고 살다가 78년 중등학교장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신원특이자’라고 교육청에서 승인이 제때 나오지 않았다. 민간인 피학살 유가족은 김씨처럼 법적 근거도 없는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형사처벌을 받고 신원조회로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연좌제로 피해를 당한 301명의 사례를 발표했다. 공무원·사관학교 임용시험에서 탈락하고(73명), 취업이나 승진 때 불이익을 받았다(44명). 출국도 불가능했고(43명) 신원조회에 걸려 부당한 대우(91명)를 받았다. 김씨는 “집단학살된 가족의 생사 확인을 반국가활동이라고 사형까지 선고하고 ‘연좌제’로 수십 년간 감시해온 국가가 이제 와서 소멸시효(5년)가 지났다며 배상을 거부하는 게 상식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글 사진 대구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아버지 보고싶어…” 재소자 탈주극

    살인죄로 수감 중이던 30대 중국동포가 대전교도소를 탈주했다가 4시간 반 만에 검거됐다. 24일 오전 8시45분쯤 대전 유성구 대정동 대전교도소 후문 밖 10여m 떨어진 교도소 외부 공장에서 수용자 최모(33·중국동포)씨가 교도관의 눈을 피해 인근 야산으로 달아났다. 최씨는 “물을 배식 받으러 가겠다.”며 동료 수용자 1명과 함께 작업장을 이탈한 뒤 동료를 밀어내고 수용복과 운동화를 착용한 채 2.5m 높이의 철조망으로 된 담 3개를 뛰어넘었다. 최씨는 탈출 직후 수형복 상의를 벗고 택시를 탄 뒤 기사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경기 수원에 사는 형에게 전화했고, 형이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셔서 지난 19일 장례를 지냈다.”고 전하자 충남 부여로 시집간 누나 등과 함께 경기 파주에 있는 아버지 납골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최씨의 전화를 받은 가족들은 교도소에 전화로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최씨를 만나 아버지 묘를 참배케 했다. 최씨는 뒤쫓아온 교도관들에게 이날 오후 1시15분쯤 현장에서 붙잡혔다. 최씨 도주 당시 공장에는 감독 교도관 1명이 있었으나 다른 수용자들이 신고해 뒤늦게 도주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설] 5·18 30돌, 사법적 치유 서두르자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흘렀다. 5·18은 전세계에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평가는 여전히 인색한 형편이다. 관련법을 3개나 만들었지만 발포 명령자 등 규명하지 못한 진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공식적인 백서 발간 등 서둘러야 할 일들도 많다. 현대사의 아픈 상처이기도 한 5·18은 미래지향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한 세대가 흘렀지만 세계에 교훈을 주는 역사로 만들어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책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아직 남아 있는 상처 치유는 더욱 서둘러야 한다. 5·18과 관련해서는 김영삼 정부의 결단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일반인 등이 관련된 여러 건의 민·형사 재판이 이뤄져 사법적으로 과거사 정리 작업이 진행됐다. 1990년대 들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내란죄와 함께 내란 목적 살인죄가 인정돼 처벌받았다. 하지만 핵심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승리 뒤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 과거 청산과 국민 화합 차원에서 사면·복권됐다. 문제는 민초들이다. 신군부 핵심인사들은 사면복권 뒤 원로대접을 받으며 활동 중이다. 반면 다수의 피해자, 유가족들은 아직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아람회 사건 피해자 등 국가의 불법행위로 큰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지지부진한 재판으로 아픔이 큰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피해자들이 잊을 만하면 정치권에서 선거국면 등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다. 정신적·사법적 치유를 서둘러야 한다. 신군부의 권력욕과 민초들의 민주화 염원이 충돌한 5·18은 역사 속의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대의 울림이 되어 상생과 국민통합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 [교정대상 수상자] 형처럼 따뜻하게… 재소자 출소땐 일자리 알선

    [교정대상 수상자] 형처럼 따뜻하게… 재소자 출소땐 일자리 알선

    │대상│ 이영화 대구교도소 교위 “아무리 죄질이 나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다가가면 마음을 엽니다. 수형자들을 엄하게 대하기보다 따뜻하게 다독여야 교화시킬 수 있죠.” 제28회 교정대상을 받는 대구교도소 이영화(52) 교위는 교도관이 ‘천직’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교위가 교도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당시 경찰공무원 시험과 교도관 채용시험에 동시에 합격했지만, 교도관을 선택했다. 작고한 선친의 친구가 교도관이었는데, 그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교도관의 삶과 사명감에 대해 익히 들었던 까닭이다. 이 교위는 수용사동 근무만 18년을 했다. 그만큼 수형자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이 교화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이 교위는 자신을 거쳐간 많은 수형자 중에서도 1985년에 만났던 무기수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20대 초반이었던 이 수형자는 강도살인죄로 복역 중이었다. “강도살인을 했으니 끔찍한 흉악범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친구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죠. 저랑 나이가 비슷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중에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이 교위의 따뜻한 관심을 받은 이 수형자는 이후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징역 20년으로 감형받았다. 또 그의 권유로 목공 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2000년대 초반 출소해 지금까지 잘 적응하고 있다. 이 교위는 수형자들이 출소하면 직장을 알선해 주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다. 2003년에는 테니스동아리에서 만난 한 자동차부품 공장 사장에게 수형자를 채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수형자는 이 교위의 기대대로 열심히 일을 했고, 지금은 경북 구미의 큰 공장으로 옮겼다. 최근에는 결혼도 했다. 이 교위도 결혼식에 참가해 축하해 줬다. 이 교위는 수형자의 자살을 가장 큰 ‘사고’로 꼽는다. 2005년에는 절도죄로 수감 중이던 한 수형자가 자살하기 위해 숨겨 놓은 끈을 찾아내고는 호되게 나무랐다. 하지만 따뜻한 말도 잊지 않았고 수형자가 형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교도소 밖에서도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 민간단체와 연계한 봉사단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복지시설을 찾는다. 세탁과 이발·설거지·목욕 등 온갖 궂은일이 그의 몫이다. 교도소 인근 초등학교에 소년소녀가장이 2명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달 1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이들은 이 교위의 도움으로 고등학생이 됐다. 이 교위는 “많은 교도관들이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며 수형자들을 교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선배들이 흘린 땀방울이 부끄럽지 않도록 자긍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교정발전특별상│ 곽성구 육군교도소 6급 1979년 군무원으로 임용된 후 30년6개월간 창의적이고 성실히 근무한 모범 군무원이다. 책상과 서류함 등 각종 군 비품의 금형을 제작·공급했고, 비품을 생산하는 각종 공정의 불편사항을 개선한 공로로 2004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5~2009년 수형자 461명이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도왔다. 또 병영생활 개선사업의 일환으로 6만 2909개의 침대를 만들어 250여 부대에 공급해 예산 20억여원을 절감했다. 수형자들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재범방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 교정 공무원 │면려상│ 송창규 대전교도소 교위 1981년 교도관에 임용돼 수용사동 현장업무를 20년간 담당했다. 장기수형자와 자살우려자, 사형수 등과 300여회나 개별상담을 가졌다. 70여건에 달하는 무의탁수용자 자매결연을 주선했고, 1000여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해 출소자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2006년부터 기동순찰팀에 근무하면서 교도소 수용질서 확립에 적극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5월 수형자 사물가방을 투명비닐로 교체하자는 제안을 해 ‘기동순찰팀 워크숍 수범사례’로 채택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전국교도관 검도연합회를 창단해 연합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성실상│ 박종일 성동구치소 교사 1996년부터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10년 동안 수용사동 현장업무를 담당하며 교화에 힘썼다. 상담을 희망하는 수용자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해 고충을 처리해 주고, 때에 따라서는 종교위원들과의 상담도 주선하는 등 수용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 보안과에 근무할 때는 철저한 신입자 몸수색을 통해 숨기고 있던 칼과 담배를 적발했는가 하면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기도한 수용자를 찾아내 자살을 막기도 했다. 두 차례 지방교정청장 표창을 받았으며, 장애인 시설인 ‘신소망의 집’ 등에서 가족과 함께 봉사활동을 해 오고 있다. │창의상│ 정종혁 수원구치소 교사 1996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뒤, 불우한 수형자 가정에 쌀과 라면 등 생필품을 지원했으며, 수감자 거주지 주민센터와 연계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펴왔다. 2002년 교정사고 예방에 기여한 공로로 지방교정청장 표창을 받았다. 또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취득, 직원과 경비교도관을 대상으로 자살예방 및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 직원들의 위기대처능력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사랑의 손잡기 운동 1과 1가정 결연’으로 매년 12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수범상│ 허성우 마산교도소 교사 2000년 교도계에 몸담은 이래 재소자의 취업을 알선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2년 3월에는 거실수검을 통해 담배 17갑을 발견하는 등 교정사고 방지에 주력해 대구지방교정청장 표창을 받았다. 복지과 에너지 담당으로 근무할 때는 상수도 사용량을 전년보다 5.3%나 절약함으로써 연간 2800만원의 예산을 절감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 마산시 복지원에서 목욕서비스, 오락프로그램, 재활프로그램 등의 업무를 돕고 있으며, 지난 설날에는 불우 수용자 가족에게 2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교화상│ 나병삼 광주교도소 교사 1997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이후 12년4개월간의 근무기간 대부분을 수용사동 현장에서 보냈다. 보안과에 근무할 때는 외부인들이 수용자에게 전달하려고 법원 화장실 등에 숨겨둔 담배 등을 적발, 회수함으로써 교정사고 방지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는 수용자들이 중국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어학용 재생 카세트, 비디오테이프, 중국 소학교 교과서, 중국어 교육용 영상 테이프, CD 등을 자비로 구입해 희망 수형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 교정 참여인사 │박애상│ 문장식 서울구치소 종교위원 서울 상문교회 목사로 1984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됐다. 26년간 종교활동으로 수용자를 교화해 모범 종교위원으로 선정됐다. 수용자의 세례식 등 종교행사를 주도하고 취업 알선, 정신 교육을 통한 심성 순화에도 관심을 쏟았다. 수용자와 가족들에게 1780만원 상당의 금품을 기부하고, 10년간 직원 기독교 모임인 ‘신우회’와 경비교도대 ‘부활회’의 지도 목사로 일했다. 매주 기간요원에 대한 목회 활동을 진행한다. │자비상│ 박인근 안양교도소 종교위원 안양 도광사 주지로 1982년부터 28년간 종교 봉사활동을 펴왔다. 240회에 걸쳐 수용자 3만 6000명에게 불교 종파 및 종교상담 등을 실시했다. 또 19차례 봉축법요, 수계식, 독경대회 등에 참석해 수용자 3800여명에게 법문을 지도했다. 안양교도소 불교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며 월례회의, 교정위원간담회 등에 100여회 참석했다. 수원지부 갱생지원, 서울소년 분류 심사위원, 안양경찰서 경승위원을 거치며 재범 방지에도 관심을 쏟았다. │자애상│ 박정규 진주교도소 종교위원 1991년부터 19년간 천주교 봉사활동에 몸담아 수용자 교화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천주교 종교집회 및 교리지도에 123회나 참석했으며, 천주교 교정사목회 회장으로 불우 수용자에게 매월 20만~30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독거 노인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고, 매월 요양시설인 ‘진주시립양로원’을 방문해 목욕 봉사도 한다. 후원금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공로상│ 황규태 영등포교도소 교화위원 교정협의회 회장으로 1998년부터 12년간 교화 봉사활동을 벌여 수용자 교화 및 교정발전에 기여한 모범 교화위원이다. 교정위원 합동 수용자 상담, 징벌위원회에 192회나 참석하는 등 수용질서 확립에도 힘썼다. 수용자 체육대회, 사회봉사활동, 합동 생일교화 등에 참석해 39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기증했다. 불우 수용자 345명에게 742만원의 영치금을 지원하고, 모범수형자와 함께 혜명양로원, 연세사회복지관 등에서 봉사활동도 펴고 있다. │봉사상│ 강철언 홍성교도소 교화위원 서광건설 대표이사로, 17년간 교화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무의탁 수용자 위로회 15회, 무기·장기수형자 생일잔치 17회, 수용자 체육대회 15회에 참석해 1600만원 상당의 영치금 및 생필품, 다과류 등을 지원했다. 1996년부터 한보철강, 극동정유 등과 협의해 수용자 사회견학 및 사회봉사 활동을 6차례나 주선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불우이웃돕기와 장학금 지원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서산지청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애상│ 박경례 안동교도소 종교위원 20년간 종교 봉사활동으로 수용자를 교화해온 86세의 모범 종교위원이다. 고령임에도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매주 2차례 안동교도소를 방문한다. 3700만원 상당의 음식물과 500만원의 신앙도서도 기증했다. 1996년부터 자매결연을 맺어 140회에 걸쳐 수용자 1000여명을 상담했고, 영치금 800만원을 지원했다. 수용자 150명과 8000여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용자의 마음 안정을 도모했다. │자비상│ 윤선애 순천교도소 종교위원 순천 홍선사 주지로 1999년부터 11년간 종교봉사 활동을 실천해 오고 있다. 불교법회를 130여회 주관했으며, 50여회에 걸쳐 2000만원 상당의 떡, 과일 등을 지원했다. 자매결연자 교화상담 및 교리지도를 151회(926명)나 가졌으며, 1180만원의 영치금을 보탰다. 전남지방경찰청 경찰관 고충상담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무료급식소 봉사, 시각장애인 돕기 등 사회봉사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모범 종교위원이다. │자애상│ 김계순 대전교도소 종교위원 2000년부터 10여년간 천주교 종교봉사 활동으로 수용자 교화에 힘썼다. 지금까지 189회에 걸쳐 천주교 종교집회에 참여했으며, 2004년 4월부터 매월 1회 이상 천주교 교리지원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 2000년부터 명절 때마다 수용자에게 모두 200만원 상당의 특식을 제공하고, 수용자 체육대회, 교정작품 전시회, 교정위원 간담회 등에도 적극 협조했다. 모범 종교위원으로 선정됐다. │공로상│ 진외택 포항교도소 교화위원 교정협의회장으로 25년간 수용자 교화 및 교정발전에 기여해 왔다. 무의탁 수용자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541명을 상담하고, 720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했다. 2008년 불우 수용자 가족 4명에게 80만원, 2009년 시각장애 수용자에게 점자도서 54권(100만원 상당)을 기증했다. 매년 수용자 체육대회에 참석해 2140만원 상당의 물품을 제공했다. 청사와 각 사무실 환경미화용 그림, 사진(1000만원 상당)을 기증하기도 했다. │봉사상│ 정길수 군산교도소 교화위원 군산시의회 시의원으로 바쁜 중에도 15년간 교화 봉사활동에 힘쓴 모범 교화위원이다. 1994년부터 수용자 체육대회에 14회 참석해 380만원 상당의 상품을 제공하고, 불우 수용자와 자매결연을 맺어 영치금 140만원을 지원했다. 장애수형자 교화행사, 가족만남의 날 행사, 사회봉사활동, 검정고시 응시자 격려 등 각종 교화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직원 체육시설과 도서실에 550만원 상당의 운동기구와 기자재를 지원하기도 했다.
  • 日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도쿄 이종락특파원│일본이 살인 등 중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1880년 근대 형사 절차를 도입한 이후 처음이다. 일본 중의원(하원)은 27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여당과 자민·공명당의 다수 찬성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과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산당은 반대했다. 지난 14일 참의원(상원)을 먼저 통과한 개정 법률은 공포에 보통 1주일이 걸리는 관례를 깨고 법안 통과 직후 ‘특별 호외’ 관보를 통해 공포된 뒤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1995년 4월에 일어난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의 부부 살해사건의 공소시효가 27일 자정에 성립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살인, 강도살인죄 등 최대 형량이 사형인 12가지 범죄에 대해 현재 25년인 공소시효를 폐지했다. 강간치사죄 등 최고형이 무기징역인 범죄는 15년에서 30년으로, 상해치사죄 등 양형 상한이 징역 20년인 범죄는 10년에서 20년으로 시효를 늘렸다. 자동차운전 과실치사죄 등의 공소시효는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 바뀐 공소시효는 개정 법률 시행 후에 일어난 범죄뿐 아니라 과거에 발생했지만 시효가 끝나지 않은 사건에도 적용된다. 일본이 공소시효 제도를 도입한 것은 1880년 형사소송법의 전신인 치죄법(治罪法)을 만들면서부터였다. 공소시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거가 없어져 재판이 불공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유지해 왔다. jrlee@seoul.co.kr
  • ‘인생은 아름다워’ 낙태 VS 출산…시청자 ‘대립’

    ‘인생은 아름다워’ 낙태 VS 출산…시청자 ‘대립’

    ‘인생은 아름다워’가 사회문제 중 하나인 ‘자녀출산’에 대해 거론해 시청자들을 대립시켰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8회분에서는 큰딸 양지혜(우희진 분)이 가족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되자 낙태를 선언했다. 하지만 남편 이수일(이민우 분)과 가족들은 이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날 방송에서 지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입을 뗀 후 “이 나라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 줄 아느냐. 교육비 등 돈도 많이 필요하고 책임감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말리는 할머니(김용림 분)는 “아이는 하늘이 내려주신 귀한 선물이다. 낙태는 살인죄다.”라며 설득했고 부친인 병태(김영철 분)와 국내의 출산율이 너무 낮아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낳기를 권했다. 특히 막내 삼촌 양병걸(윤다훈 분)은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명백히 살인”이라며 “내 자식을 죽이는 여자랑 무서워서 어떻게 같이 사냐.”고 말해 지혜와 극한 갈등을 빚었다. 엄마 민재(김혜숙 분) 역시 “남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마라.”고 설득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의 의견은 각기 달랐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해당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낙태는 살인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요즘 불임 부부가 많아서 임신하고 싶어도 갖지를 못하는 여성이 많다. 감사히 여기고 낳아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등 의견을 올렸다.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단순히 임신 출산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맞벌이 부부들은 임신 출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낙태를 찬성한다.” “양육비부터 교육비까지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환경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낙태 찬성론’에 힘을 실었다. 한편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1일 방영된 SBS ‘인생은 아름다워’의 전국시청률은17.0%를 기록했다. 이는 전날 방영분인 18.1%와 비교했을 때 1.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사진 = SBS 제공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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