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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 유엔연설문 전문

    ◎유엔 정상회의 정례화… 새 국제질서 창출을 존경하는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 지금 이 숭고한 전당에는 인류의 앞날에 대한 세계인의 소망과 기대가 넘치고 있습니다.나는 먼저 반세기전 두차례의 대전이 몰고온 절망과 좌절을 딛고 미래를 향한 희망과 용기로 유엔을 창설한 선각자들을 기리고자 합니다.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그들의 이상은 이미 세계를 크게 바꾸었고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계승되고 있습니다.냉전적 대립과 끊임없는 분쟁속에서도 인류가 이만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유엔의 공헌이 컸습니다.유엔은 또한 많은 신생국가들의 경제·사회개발을 지원하여 번영의 확산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평화유지와 인권신장,질병퇴치와 아동보호를 위해 헌신하는 유엔의 깃발이 모든 대륙 위에서 휘날리고 있습니다.이와같이 유엔은 지난 반세기 인류역사의 진전에 눈부신 기여를 해왔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유엔헌장의 구현에 앞장서 온 모든 분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그러나우리의 기대가 모두 충족된 것은 아닙니다. 유엔창설자들이 구상했던 집단안보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대량살상무기의 확산,환경오염과 절대빈곤,테러와 범죄의 국제화등 심각한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이러한 난제들은 인류가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의장,세계는 격변하고 있습니다.정보화와 세계화의 새물결위에 국제질서가 바뀌고 있을 뿐 아니라 문명사적인 변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한 지역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로 직결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우리는 고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유엔 이외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유엔이야말로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다룰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통성있는 「다자협력의 장」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국제협력의 문을 닫고 저마다 민족지상주의와 국가이기주의를 추구한다면 이 지구촌의 장래는 실로 암담할 것입니다.유엔만이 21세기 세계공동체 시대를이끄는 중심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의장,「변화와 개혁」은 역사발전의 원리입니다.변화는 성장의 수단이며 개혁은 발전의 양식입니다.이제 문명사적인 변혁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필수적입니다.그런 점에서 나는 유엔의 개혁을 위한 일련의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환영하면서 이에 관한 나의 견해를 밝힙니다. 첫째,유엔은 보다 효율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하며 안보리는 그 대표성이 강화되어야 합니다.특히 나는 유엔을 오랫동안 마비시켜온 거부권을 더이상 확대하지 말자는 많은 회원국들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둘째,유엔의 분쟁예방 기능이 강화되어야 합니다.나는 사무총장의 「평화를 위한 과제」가 적기에 제출되었으며 이에 많은 제안들이 채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유엔은 경제·사회·환경등의 개발요구에 더욱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합니다.참다운 세계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경제·사회적인 갈등을 반드시 해소해야만 합니다. 넷째,유엔은 이제 인간을 우선하고 가정을 중시하는 활동을 적극화해야 합니다. 지난 3월의 유엔 사회개발 정상회의가 제시한 「인간안보」와 「가정존중」은 21세기를 이끄는 가치가 될 것입니다. 다섯째,유엔의 기능강화에 따른 예산의 부담과 운영에 관한 새로운 방안이 모색되어야 합니다.나는 유엔의 「변화와 개혁」은 빠를수록 좋다고 믿습니다.이를 위해 「유엔개혁을 위한 특별총회」를 개최할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의장,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유엔의 이상이 구현되어온 역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은 1948년 유엔 결의에 의해 정부를 수립했습니다.한국이 1950년 공산주의 침략을 받았을 때 유엔의 집단안보 결의에 힘입어 자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전후 복구과정에서도 유엔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출발한 한국이 오늘날 세계 11번째의 경제규모와 참다운 민주주의를 누리는 나라로 도약한 것은 유엔의 이상이 거둔 위대한 결실입니다.이제 한국은 유엔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회원국이 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미 서부사하라·그루지아·앙골라등지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앞으로 유엔평화유지 활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보관하는 PKO 장비저장소 유치를 검토할 것입니다. 한국은 유엔의 개발과 환경분야등에 관련된 각종 사업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그 자발적 기여금을 늘려 나갈 것입니다.한국은 세계아동의 질병퇴치에 기여하기 위해 유엔개발계획과의 협조아래 한국내에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를 설립중에 있습니다. 한국은 아울러 개발도상국들과 개발경험을 공유하기 위하여 관련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우리는 특히 올해 아시아그룹의 지원을 얻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유엔에 대해 언제나 깊은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유엔이 새로운 반세기를 여는데 기꺼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반드시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통일될 것으로 확신합니다.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축복이 내리는 날 유엔의 이상은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나는 여러분께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굳건한 협력자가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각국 정상,의장,사무총장,그리고 각국 대표 여러분.나는 이번 유엔 특별정상회의가 세계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되기를 충심으로 소망합니다.우리의 반세기전의 선각자들이 그러했듯이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이 회의를 마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21세기를 온 인류가 공존공영하는 참다운 세계공동체 시대로 만들자는 염원이 있습니다.앞으로 유엔이 성공적인 새출발을 하기 위하여는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나는 무엇보다 세계 정상들간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나는 앞으로 5년마다 유엔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그 첫번째 회의를 2000년에 개최할 것을 정중히 제의합니다.이제,우리는 유엔의 새로운 반세기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이 발걸음이 참다운 세계공동체를 창조하는 「새로운 유엔」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감사합니다.
  • 빨치산의 최후(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1)

    ◎지리산 본거지로 군사시설 파괴·후방 교란/휴전협정뒤 숙청·토벌로 조직 “지리멸렬”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일단 마무리 됐다.그러나 남한 곳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흔히 빨치산 또는 유격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는 「공비」라 부른 공산주의자 무장집단과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이 「전선없는 전쟁」은 1956년까지 계속됐다. 남한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부터 활동 했다.처음에는 남로당 출신이 주축을 이뤘지만 1949년 3월 북한이 간부들을 파견,빨치산부대를 직접 지휘케 하면서 빨치산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이는 물론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내 공산당 조직을 재가동,전쟁 때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한 조치였다. ○「남한 민중봉기」 염두 이어 전쟁 직전인 50년 6월 북한은 남한 각 도에 「정치공작대」5∼6명씩과 일부 무장병력을 다시 침투시켰다.6월10일 김달삼이 이끄는 유격대 2백50여명이 경북 청도 운문산에 유격구를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남하했다.24일에는 남도부를 사령관으로 한 766군부대(7백66명으로 구성)가 해군 함정을 이용,포항 쪽으로 상륙했다.같은 날 또 다른 유격대 2백50여명이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이 부대들은 뒷날 북한 정규군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개전 다음날인 6월26일 김일성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평양방송을 통해 「해방전쟁」승리를 위해 남한 주민들은 총궐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특히 「남반부 남녀 빨치산」에는 더욱 강력한 주문을 했다.곧 『해방구를 확대·창설해 적의 배후를 공격,소탕하라』고 촉구했다.구체적으로는 『적의 참모부를 습격하고 철도·도로·교량과 전신·전화선등을 절단,파괴하고 도처에서 반역자를 처단하며 인민위원회를 복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민중봉기」를 염두에 둔 김일성의 이같은 요구는 당시 남한실정을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김일성의 기대에 찬 독촉이 쉴새없이 방송됐지만 어느 곳에서도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에서 20만 지하당원들이 민중을 이끌고 호응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호언장담은 무산됐다. 물론 일부 지방에서는 빨치산의 파괴활동이 벌어졌다.가장 널리 알려진 빨치산부대인 지리산 이현상부대는 8월10일 대구 주변인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미군통신부대를 기습,미군 20여명을 살상하고 무전기 14대,소총 20정을 빼앗아갔다.이들은 8월25일에는 경남 거창 미군사령부를 습격,1백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뒤 탱크 3대,화물차 30여대를 부쉈다.9월6일에는 경북 청도에서 북한군과 합동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경남 백운산유격대,경북의 배철이 지휘한 유격대,전남 빨치산,남해안유격대들이 미 공군기지를 점령하거나 경찰과 전투를 벌였고 마을 청년들을 끌고가 빨치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또 북한군 점령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때는 적극 나서 북에서 내려온 공산당원들을 도왔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은 전쟁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박헌영·김일성의 기대와는 달리 빨치산은 민중과 괴리돼 있어 힘을 쓰지 못했다.게다가 전쟁전 한국정부가 꾸준히 소탕작전을 벌여 기본조직을무너뜨린 것이 빨치산 세력약화에 결정적 요소가 됐다. 빨치산은 유엔군의 총반격으로 북한군이 밀리면서 뿌리잘린 풀잎처럼 역사의 틈바구니를 떠돈다.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쫓겨간 10월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 군사위원회는 남한 각 지방당 조직에 『(북한군의)조직적인 후퇴를 보장하기 위해 각 도당이 책임지고 유격대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김일성도 이틀 뒤 방송에서 전세가 불리해 「전략적으로」후퇴하니 빨치산은 뒤에서 유엔군의 발목을 잡아 북진 속도를 늦추라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당을 지하당으로 개편할 것 ▲유엔군이 이용할만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군사시설은 파괴할 것 ▲입산경험자와 입산이 가능한 자는 산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남강원도로 후퇴할 것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빨치산은 지역별로 유격대를 재편성,산악지대에 들어갔다.이들은 나중에 완전 소탕될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한」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당시 입산자들은 민청원·자위대원등 남로당 계열과 북에서 파견한 내무서원·정치보위부원·정치공작대원이 대부분이고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도 적잖게 끼어 있었다. ○이승엽 당정 총 지휘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 이현상 부대는 잠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달아나는 북한군을 따라 북으로 갔다.1950년 11월 강원도 평강군 후평리에는 이현상부대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도망해온 빨치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이곳에는 당시 남한내 당·정을 총지휘한 이승엽이 기다리고 있었다.이승엽은 이곳에 모인 빨치산으로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이현상을 부대장으로,여운철을 정치위원으로 삼았다.이때 새로 편성된 이현상부대는 직속부대원 1백50여명 말고도 승리사단 4백여명,혁명지대 1백여명,인민여단 1백50여명등으로 구성됐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을 본거지로 정하고 남하했다.먼저 태백산맥을 타고 1950년 12월 말쯤 충북 단양에 이르러 문경경찰서를 기습하는등 유격전을 벌였다.다시 속리산을 거쳐 덕유산에 이르러서는 남한내 6개 도당 대표자회의를 소집했다.이 자리에서 빨치산은남부군을 결성,통일된 지휘체제를 구성했다.이현상이 총사령관을,이영회가 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빨치산은 북한 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남부군을 해체하고 6개 유격지대 체제로 바꾸는등 여러차례 조직개편을 했다.또 북한에서 지도부와 북한군을 남파하는등 안간힘을 썼고 가끔 경찰서·열차를 습격하지만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38선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된 1951년 11월 말 한국 정부는 토벌전투사령부를 전북 남원에 설치,빨치산 소탕에 적극 나서 영호남 일대 빨치산은 치명타를 입고 지리산으로 모여들었다.이후 거듭되는 토벌작전에 몰린 빨치산은 「보급투쟁」이란 명목으로 산간마을에서 생필품을 약탈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지도자 대부분 피살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은 남한내 빨치산에겐 사형선고와 같았다.박헌영·이승엽을 비롯한 남로당계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되면서 빨치산은 북한정권에서 버림받게 된다.휴전협정에서도 빨치산의 지위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어 이들에게는 북으로 돌아갈 길마저 막혔다. 1953년 4월 북한 노동당의 남로당계 숙청계획에 따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강등됐다.8월에는 이현상이 지리산 빗장골에서 토벌대에 사살됐다.54년 초 김지회·이영회부대가 각각 전멸당하고 빨치산의 마지막 지도자 남도부가 대구에서 체포돼 남한 빨치산은 사실상 소멸됐다.한국정부의 기록에는 1954∼5년에도 「공비 출현,소탕」사실이 가끔 등장한다. 1956년 7월13일 전북 정읍에서 「공비 1명 사살,2명 생포」를 끝으로 빨치산은 정부기록에서 사라졌다. 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전략 계획에 따라 조직돼 활동한 집단이었다.이들의 투쟁은 민족사에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결국 빨치산은 공산주의가 이 땅에 남긴 역사적 범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그러나 빨치산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로 잠복해 남아 있다. ◎「빨치산 신문」 한국전중 10여종 발행/남부군 「승리의 길」 등 타블로이드판 지면 대부분 전투원 선동­선무 할애 우리 학계의 빨치산 연구는 매우 미약하다.그동안 「빨치산」이란 말조차 금기처럼 여겨온 사회 분위기에 비추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관련자료는 이우태씨(필명 이태)의 「남부군」을 비롯한 수기 3∼4종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실에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빨치산이 한국전쟁 발발이후 간행한 신문 10여종을 찾아냈다.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빨치산신문들은 그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따라서 학계는 이 신문들이 빨치산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이 1951년 5월5일자로 발행한 「승리의 길」10호는 타블로이드판 한장에 양면으로 기사를 실었다.앞면 머리기사는 「총사령관 로명선」이 쓴 「5·1절을 맞으면서」란 논설.『5월1일은 전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력량과 국제적 단결을 시위하는 날』이란 의미 부여와 함께 그 내력을 소개하고 『남부군 전체 군무자 동무들』의 분발을 촉구했다.또 신문 사고의 형태로 『남부군 산하 각부대들이 3월21일부터 4월14일까지 수안보·칠성·청천·봉화·립석을 공격하여 이를 해방시켰다』고 전했다.아울러 「적 사살 1백25명,부상 30명,포로 48명,각종 무기 37정,탄약 2천2백37발」등의 전과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1951년 11월23일자 「승리의 길」27호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진술한 김일성의 보고를 실었다. 이밖에 빨치산 신문들은 많은 지면을 전투원 선동에 할애 했다.즉 『용감하고 귀중한 빨치산들이여,적들의 지휘처와 참모부를 기습 소탕하며 기동력을 마비시키는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하라』『리승만의 반동적 지방의회선거를 철저히 파탄 분쇄하자』는 등으로 채웠다.이따금 이명제의 서사시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29호)따위 문학작품이나 감상문,외신,전투실기,정찰기,여순병란 회고기등도 실었다.
  • 고령 고려 석조보살좌상(한국인의 얼굴:48)

    ◎꾸밈없고 순박한 농부의 모습/코는 길고 크게·입술은 펑퍼짐하게 표현 고려의 석조불·보살상은 미술적 기교가 거의 무시되었다.얼굴의 윤곽은 그런대로 원만했으나 고상스러운 신라의 불·보살상과는 다른 일면을 지녔다.그래서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이는 신라의 왕도 경주 중심의 귀족(진골)체제에 항거한 고려 건국의 뿌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보살상의 하나가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동의 석조보살좌상이다.보살상은 앉은 키가 1.5m인데 국보나 보물 같은 영예로운 칭호는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그저 소박한 얼굴을 한 보살상은 언제부터인가 마을 밭둑 아래 자리잡고 앉아 있다.밭둑이 본래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보살얼굴은 옛날 이 인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을 닮았을 것이다.그토록 꾸미고 가꾼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보살은 화불이 들어간 보관을 써서 관세음보살이다.보관 양쪽 관대에 걸친 드리개와 머리칼이 흘러내려오다 어깨 못미처에서 멈추었다.드리개에 가린 듯 살짝 드러낸 귀가 크다.본디는 박혀 있었을 백호가 빠져나가 이마가 한결 넓어 보인다.그 아래로 눈썹을 깊고 길게 파면서 눈은 실눈을 한 형상으로 다듬었다.코는 길고 크게 자리잡았으나 높지 않다.입술 역시 도드라지지 않은데,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보살을 조각한 돌이 널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마와 볼·턱은 얼마간 볼륨은 살렸다.이 보살상을 릴리프형식의 부조로 만들고자 한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그리고 양쪽 팔과 손은 몸뚱이에 비해 비록 조화롭지 않지만 부조를 시도했다.왼손에 잡은 연꽃줄기가 보살의 귀 높이만큼 올라왔다.이 연꽃은 보살 머리 뒤의 빛을 표현한 두광과 함께 돋을새김수법을 썼다.보살이 걸친 옷,천의도 어깨부분만큼은 돋을새김이다. 새김솜씨를 눈여겨보면 아주 흥미로운 데가 있다.밑으로 내려오면서 생략기법을 구사한 가운데 돋을새김에서 벗어나 오목새김으로 표현수법을 바꾸었다는 점이다.책상다리 앉음새의 결가부좌를 하느라 생긴 옷주름을 모두 간략하게 오목새김한 것이다.그리고 결가부좌하면 필연적으로 무릎 위에 올려놓아야 할 발은 발바닥만을기호처럼 표현했다.이렇듯 간략한 표현이나 과감한 생략법은 뒷날 고려의 석조불·보살상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보살을 만든 시기는 뚜렷하다.보살상 뒤쪽에 「옹희 2년 을유 6월27일」이라는 새김글씨가 나오니까 서기9 85년에 만든 보살좌상이다.고려 개국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고려조정은 바로 이 해에 개인이 집을 바쳐서 절을 짓는 일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이 보살상 새김글씨에 시주자 이름이 빠진 까닭도 개인의 불사를 불허한 데 연유할 것이다. 고령은 후삼국기를 통해 후백제와 마주한 접경지대여서 고려 태조는 개국 초기부터 요충지로 인식했다.그래서 고령땅의 보살상은 역사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한반도내 적대성 상존 입증/3년만의 북한군 침투

    ◎군강경파 입김 추정… 평화노력에 찬물/대통령 외유중 아군경계능력 시험한듯 17일 새벽 북한군 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하려다 사살된 사건은 대립 차원을 넘어 적대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물론 이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북한쪽에 있다.우리의 평화 노력에는 아랑곳 없이 북한은 무력에 의한 대남적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평가다. 북한군의 침투는 지난 92년 5월22일 중서부전선인 철원지역에서 북한군 3명이 아군과 총격전 끝에 전원사살된 이래 3년만이다.새정부 출범 직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북한은 얼마전까지 적어도 겉으로는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 왔다.최근 우성호문제 등으로 다시 꼬이긴 했지만 남북관계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그런대로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이번 북한의 무장군인 침투는 「예상밖의 사건」으로도 받아들여 진다. 국방부고위당국자는 사살된 북한군이 잠수복에 검은색 오리발을 착용한 것으로 미뤄 특수전부대 소속 병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현장에서는 오리발 1쌍과 총번이 없는 M­16 소총 2정및 수류탄 1발이 비닐봉지에 싸인채로 발견됐다.따라서 사살된 병사 말고 도주한 북한군이 적어도 1명 이상은 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오리발에는 「ROCKET」라는 표시가 돼 있고 「MADE IN JAPAN」이라고 새겨져 있었다.이는 지난 92년 사살된 북한군이 착용한 오리발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북한군은 과거 남한 깊숙히 침투했던 공비와는 임무 성격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우리측의 판단이다.전방의 아군 병력및 무기체계 비치현황을 탐지하고 유시시 침투로 확보를 위한 정찰조로 보인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캐나다및 유엔 순방으로 우리군에 특별경계 강화 지시가 내려져 있는데다 한미간 연례 군사훈련인 「독수리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우리군의 비상시 경계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지적이다.어찌보면 통상훈련의 성격도 짙다는 것이다.북한의 특수전 부대는 대략 10만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북한 김정일이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에서 보수·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뒤에 나온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의 방향을 감지케 해주고 있다.군총참모장에 기용된 김영춘(73·차수)과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조명록(71·차수)등이 대표적인 보수·강경파로 꼽히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 주요일지 ▲58년2월16일=부산발 서울행 KNA기 및 탑승자 34명 간첩에 의해 납북. ▲68년1월21일=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 청와대기습위해 서울침투,29명 사살·1명 생포·1명 자폭. ▲70년4월4일=격열비열도 간첩선 침투,사살 17명. ▲75년9월11일=전북 고창 2명 침투,사살 1명. ▲76년6월19일=중동부전선 3명 침투,전원 사살. ▲79년10월11일=동부전선 비무장지대 3명 침투,1명 사살. ▲80년3월23일=한강하구에 3인조 수중침투,전원 사살. ▲80년11월3일=전남 횡간도에서 무장간첩 3명사살. ▲81년6월21일=충남 서산서 무장간첩선 격침,사살 9명·생포 1명. ▲81년7월4일=임진강 상류 1명침투,사살. ▲82년5월15일=동해안 2인조 출몰,사살 1명. ▲83년6월19일=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침투,전원사살. ▲84년9월24일=무장간첩 1명 대구에 출현,시민3명 살상후 음독자살. ▲85년10월19일=부산 청사포 간첩선 침투,격침. ▲86년8월5일=중부 비무장지대안 선제사격,쌍방 8백여발 총격전. ▲87년11월21일=중부비무장지대에서 총격도발,아군 1명 부상. ▲89년10월14일=북한 경비정 1척 연평도 서남방 해역 침투후 도주. ▲90년6월7일=북한군 3명 대성동지역 군사분계선 80m월경. ▲92년5월22일=중서부전선 3명 침투,전원사살.
  • 올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

    ◎영국 반핵 운동가 로트블라트·국제 과학자회의 「퍼그워시」/핵무기 감축 공로 【오슬로 AFP AP 연합】 영국반핵운동가로 세계최초의 원폭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반발,유일하게 탈퇴한 과학자 조제프 로트블라트(87)와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반핵단체 「퍼그워시회의」가 금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13일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로트블라트와 퍼그워시회의가 「국제정치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장기적으로는 핵무기를 제거해온」 업적을 인정해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로트블라트는 폴란드 태생의 물리학자로 지난 수십년간 군축과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해 왔으며 런던에 본부를 둔 퍼그워시회의는 지난 57년 7월에 창설된 이래 대량 살상 무기개발이 인류에 제기하는 위험을 논의하는 과학자들간의 회의를 주최해 왔다.
  • 강릉 신복사 절터 고려 석불좌상(한국인의 얼굴:47)

    ◎실눈에 합죽 웃음… “익살꾼 보살님”/투박한 얼굴… 친근한 이웃 보는듯/머리엔 「보관」 쓰고 이마엔 백호 자국만 남아 고려의 불교는 전대의 신라에 못지않게 초기부터 융성할 조짐을 보였다.도읍지 개경에는 법왕사등의 10대사찰이 창건되었다.그리고 지방에서는 신도들의 원력으로 도처에서 불사가 이루어졌다.불교국가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불교는 신라불교와 좀 다른 일면이 있다.왕경권역에 집중되었던 신라불교와는 대조적으로 전국에 널리 확산되었던 것이다.이는 왕실불교로 출발한 고대불교의 점진적 대중화와 선종의 도량 구선문이 새롭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또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뚜렷이 정체를 드러낸 호족세력들도 불교의 지방화를 부추겼다. 그러한 사회배경을 엎고 일어선 고려불교는 신앙대상 조형물 불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절터에서 마주친 석불좌상(보물 84호)은 바로 10세기쯤 고려 초기의 보살상이다.그리 가다듬지 않은 얼굴에 가득 담은 웃음으로 해서 보는사람 마음이 편해진다.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대개의 불·보살상들처럼 실눈을 했으나 웃음은 사뭇 다르다.보는 쪽에서 웃음을 찾아내기에 앞서 보살이 먼저 활짝 웃고있다. 웃는 얼굴은 대중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상호를 했다.웃음이나 얼굴이 전혀 정제되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의 이 보살은 중생들 틈에 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웃고 있는 입술이 약간은 마모되어 합죽한 웃음을 웃는데 투박스럽고 둔중한 옷(천의)자락 이음새 사이로 배꼽이 나왔다.그러나 아랑곳 할 일이 아니라는 듯 반무릎을 꿇어 공양하는 자세로 여전히 웃는다.갖출만한 것은 다 갖추었다.이마의 백호는 빠져 달아났으나 자리가 남아있고 목주름 삼도가 뚜렷했다. 보살은 머리에 긴 원통형 보관을 썼다.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보관 위에 삿갓 모양의 석물이 올라 앉았다.웬 삿갓인가 했더니 뒷날 누군가가 나딩굴어 다니는 석등의 팔각 지붕돌(옥개석)이 아까워 보여 올려놓은 것이라고 했다.옥상옥격의 지붕돌을 시멘트로 붙여놓아 지금은 요지부동이다.보살은 두 손을아래 위로 모아 어떤 물건을 거머쥔 손가짐을 했으나 그 지물은 빠져나가 오간데가 없다. 신복사는 신라 말기인 서기850년(문성왕 12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창건설화도 있다.한 처녀가 햇빛 어린 우물을 떠 마신 뒤 임신이 되어 사내 아이를 낳았다.부모의 성화로 얼음판에 버렸으나 새들이 날아와 품고 주위에 서기가 어려 다시 데려다 키웠다.이 아이가 커서 출가하여 범이라는 고승이 되어 돌아와 고향에 절을 지었다.그 절이 신복사다. 절 이름은 오늘날 사용하는 신복이 아닌 신복,또는 심복으로 오랫동안 표기되었다.그러다 1936년 절터에서 「신복」이라는 새김글씨가 들어간 기왓장이 출토되어 절 이름을 신복사로 굳혔다.절터에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 37호)이 옛 모습대로 남아 석불좌상(보살상)과 함께 하고 있다.
  • 「지도력을 위한 재원」/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해외논단)

    ◎미 지도력은 싼값으로 유지될수 없다/강력한 외교·군사력 갖춰야 국제문제 해결/상원서 예산 삭감땐 중대한 타격 가져올것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최근 워싱턴 외교위원회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지도력을 위한 재원(RESOURCES FOR LEADERSHIP)」이라는 제목으로 탈냉전이후 미국의 세계문제에 있어서 지도력 강화를 주장하는 연설을 했다.다음은 연설문 요약이다. 미국 지도력의 중요성과 그를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재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그 필요성은 최근 옛유고와 중동의 두지역에서 입증되고 있다.옛유고에서의 분쟁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은 지난 3년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그러나 이제 클린턴 대통령의 지도력과 국제사회의 새로운 결단에 힘입어 우리는 진실로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올 외교적이고 군사적인 궤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2개월전 런던에서 우리는 세르비아계의 안전지대에 대한 공격을 응징하기위해 실질적이고 단호한 공중폭격을 단행해야한다고 동맹국들을 설득했다.그 이후 우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고도의 효율적인 공습을 봐왔으며 보스니아내 전쟁 당사자들로부터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현재의 국경내에 단일 국가로서의 보스니아 유지에 동의한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국제무대에서 외교력없이 군사적 힘만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가능케하는 조건들을 만들어 낼수 없다.외교와 군사력은 유럽에서건 다른 지역에서건 분리할수 없는 미국의 힘의 도구가 되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의 외교는 아랍­이스라엘 협상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돼왔다.최근 몇주동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이 2년전 워싱턴에서 서명했던 「평화원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하도록 막후에서 노력을 기울여왔다. 보스니아와 중동은 우리가 냉전이후의 세계에서 직면했던 「복합분쟁」의 본보기들이다.지난 몇주사이의 사태진전은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주고 있다.그것은 세계가 거친 도전에 직면했을때 미국의 지도력 없이 이룩할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며 우리의 지도력은 싼 값으로는 유지될수 없다는 사실이다. 냉전시대 말기에 우리는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널리 펼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졌다.가는 곳마다 미국의 방향제시와 지도력을 요청받았다.개방경제와 개방사회는 번영과 안정을 구가할 최고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세계방방곡곡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바람직한 상태는 단지 우리가 지탱할수 있고 구축할수 있는 정도에서 머무르고 말것이다.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가 이루어지기를 바랄수 없다. 참으로 미국 지도력의 중요성은 금세기의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지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지구적 세력으로서 미국이 세계문제에서 발을 빼는 정책은 미국을 위한 책임있는 선택이 아니며 세계를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지난 수년동안 우리는 핵무기가 수천기씩 방치돼 있는 옛소련 영토내에서의 수많은 무장충돌을 보아왔다.우리는 이라크와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고 주변국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왔다.이같은 명제는 최근 사담 후세인이 대대적인 생물학무기계획을 은폐하려 했다는 확증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테러리즘과 조직적범죄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소생은 물론 우리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문제에 있어서 초당적인 컨센서스는 미국의 힘의 핵심적 요소가 돼왔다.50년전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 당시 공화당과 함께 나토를 창설하고 마셜플랜을 세웠으며 이는 몇년후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때도 그대로 유지됐다.지난 2년간도 그같은 초당적 협력은 지속돼 나프타(북미자유무역지대)와 가트(관세무역일반협정)를 다루면서 고립주의·보호주의와 싸웠으며 옛소련의 개혁과 중동평화를 위한 지원을 계속해왔다. 현재 상원은 국무부의 통상 운영예산마저도 3억달러 가까이 삭감하려 하고 있다.이는 우리에게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50개에 달하는 대사관과 영사관을 폐쇄토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 외교가 맡은 기본 임무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을 들게 할는지도 모른는 위기들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한 예로 북한의 핵동결을 위해 북한과 체결한 핵협정은 우리에게 당장 수억달러가 절약되게 하고 있다.그 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동북아에 상당수의 미군을 증강시켜야했을 것이다. 만일 국무부의 예산이 삭감된다면 수년내에 외교정책을 수행하기위한 재원들을 잃게 되고 말것이다.이는 미국을 위해서 뿐만아니라 세계를 위해 비극이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미국 지도력의 계속적인 필요를 옹호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나는 오늘 우리가 미국이 강해야 할것이냐 아니냐는 토론 대신에 미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것인가를 토론하게 되길 희망한다.
  • 우성호 조속송환/정부,북한에 촉구

    정부는 21일 북한이 지난 5월 납북된 제86우성호에 대해 공식반응을 보임에 따라 남북간 현안중 우성호선원 송환문제 해결에 최우선적인 역점을 두기로 했다. 김경웅 통일원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순수한 민간어선을 나포하고 특히 그 과정에서 무고한 어부들을 살상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북한측은 이제라도 우리 선원과 선박이 하루 빨리 가족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이 조속한 시일내에 납북된 우성호의 생존 선원과 사망자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으면 오는 27일 북경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당국자회담에서 우성호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을 방침이다.
  • NYT·WP/「유너바머」 위협에 굴복

    ◎17년간 우편물 폭탄 테러… 26명 사상/“인명구제 우선” 판단 성명서 전문 게재 미국의 양대신문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얼굴없는 연쇄폭탄테러범 유너바머(Unabomber)의 위협에 마침내 굴복,그가 요구한 「성명서」 전문을 19일 게재했다. 지난 17년간 폭탄우편물을 통해 3명을 사망시키고 23명을 부상케 한 테러범의 성명서는 3만5천단어에 달하는 장문으로서 양대신문 공동발행이란 이례적인 형태로 8페이지 분량의 별지에 가감없이 인쇄됐다. 양대신문은 발행인 명의의 공동성명서에서 『인쇄물 발행에 따른 책임과 자금을 공동부담한다』고 밝히고 언론이 폭력앞에 굴복했다는 전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왔으나 인명구제가 우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고민을 토로했고,법무부는 성명을 통해 재닛 리노 법무장관과 루이스 프리 연방수사국(FBI)국장이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두 신문측에 성명서 게재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주로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s)를 대상으로 삼아 유너바머라는 별칭이 붙은 범인은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는 산업기술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문명비평 성명서를 지난 7월 두 신문과 펜트하우스측에 보내 전문이 게재되면 폭탄우편물 테러를 중지하겠다고 밝혔다.두 신문은 지난 8월 전문의 10분의 1분량인 3천5백단어의 요약문을 게재했으나 범인은 전문게재가 안될 경우 살상을 계속하겠다고 위협해왔다.
  • 각국대표 2만여명 북경 도착/유엔 세계여성대회 이모저모

    ◎예비포럼·식전행사로 분위기 고조/중 세관원,등풍자 외국책자 찢기도 다음달 4일 북경에서 개최되는 제4회 유엔 세계여성대회는 27일 3천명에 이어 28일에도 각국에서 1만8천여명의 대표들이 속속 입국,예비포럼과 각종 공개행사에 참가하는 등 본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벌써부터 대회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준비상태 양호한편 ○…27일 북경공항에 도착한 각국 여성대표들은 분홍색 셔츠차림의 중국인 자원봉사대의 환영을 받으며 만족해 하는 모습.수파트라 마스디트 비정부조직(NGO)회의 의장은 『중국인들이 대표들을 영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치하하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준비상태가 좋다』고 평가.하지만 한 인권단체는 세관원들의 강요로 자료로 가져온 책자에서 중국최고지도자 등소평을 풍자한 내용의 만화가 실린 페이지를 뜯기기도 했다고 불만. ○「위안부」 쟁점될듯 ○…30일부터 열리는 NGO포럼에서는 옛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대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교도통신이 28일 보도.특히 군대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개인보상을 거부한 채,민간기금모금을 시작한 일본정부의 조치가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망. ○교황청 파견단 구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달 4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세계여성대회의 교황청 대표단 단장에 이례적으로 여성인 메리 앤 글렌든 하버드 법대교수를 임명하고 대표단을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 ○인권유린 고발할듯 ○…미대통령 부인 힐러리의 세계여성대회 참석 발표와 관련,공화당은 중국이 대통령부인의 중국 방문을 중국 여성들의 인권 참상을 감추는데 이용할 수 있다며 반발.그러나 유엔인권위원회의 제랄딘 페라로 미대사는 대통령부인의 세계여성대회참석 결정이 『전세계 여성들을 위한 승리』라고 환영.지난 84년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였던 페라로 대사는 성명에서 『여성의 경제적·정치적 권리 및 여성에 대한 폭력 상황을 언급하는 외에 중국의 여성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도 비난할 것』이라고 발표.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하는 이라크 대표단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역전역에 걸쳐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유엔감시하에 둘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관영 영자지 바그다드 옵서버지가 27일 보도. ◎한국 대표단 36명 확정/새달 1일 출국 9월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 참가할 한국대표단이 28일 최종 확정됐다. 손명순 여사를 명예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은 수석대표에 김장숙 정무제2장관,교체수석대표에 황병태 주중대사를 비롯,정무제2장관실,외무부,보건복지부,재정경제원,총리실,노동부등 8개부처 관계자등 36명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고문으로 국회여성특위 위원장인 이우정 의원과 정옥순·강선영·주양자·강부자·박정수·금진호 의원,여성정책심의위원회 박보희·이연숙씨,정세화 한국여성개발원장,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으로 입후보한 김영정 대한적십자사부총재가 참여하며 한국비정부기관(NGO)대표로 이미경·손봉숙·박영혜씨와 김영자 노총여성국장등이 참가한다. 대표단은 9월1일부터 출국한다.
  • 대이라크 금수해제/미­유엔특사 이견

    【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실태조사를 마친 롤프 에케우스 유엔 이라크무기사찰단장은 23일 이라크의 「새로운 개방적 태도」를 인정,이라크의 석유수출금지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미국은 이라크가 더많은 요구를 수락해야 제재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 석굴암 십일면관음상(한국인의 얼굴:42)

    ◎천계의 정적 어린듯 신비한 미소/버들잎처럼 긴 눈썹 둥근 콧마루와 연결/정면 응시하느라 실눈… 입은 작고 또렷 경북 경주시 진현동 석굴암 주실 벽에 배치한 3체의 부조 보살상들은 아름답다.특히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계에서나 행여 만날 수 있을까.이미 깨우쳐 위로부터 보리(보제)의 경지를 구한 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에는 신비마저 가득 어렸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열하나의 얼굴을 지닌 보살상인데,본존여래 뒤쪽에 서 있다.그러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통해 헤아릴 수 있는 얼굴은 열이다.관음보살상 자체가 부조이기 때문에 머리 뒤쪽에 표현할 얼굴 하나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열의 얼굴은 모두 관음보살상 머리에 표현해놓았다.머리 앞쪽에 화불 하나,좌우에 각각 셋,위쪽에 셋,머리 꼭대기에 하나가 배치되었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본래 소임은 중생교화다.그래서 중생을 안주시키려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얼굴에까지 깃들었다.거친 욕심을 떨쳐버린지 오래여서 표정이 마냥 지순하고 안온할 뿐이다.본존여래처럼 정면을 깊이 바라보느라 실눈을 했지만 눈매가 곱다.버들잎 같은 유엽형의 긴 눈썹이 그리 모나지 않은 콧마루와 맞물렸다.작고 또렷한 입이 고운 눈매와 어울려 살짝 웃음을 자아냈다. 옷 매무새는 하도 부드러워 지순한 얼굴에 비해 오히려 육감적 몸매를 드러내 보였다.그러나 본존여래의 원력을 도와주는 보살을 누가 감히 범접할 것인가.그리고 천계의 정적이 어렸으니 넘나볼 수도 없다.2.18m나 되는 키가 헌출하다.그 큰키의 보살 몸에는 구슬을 꿰어 엮은 여러 가닥의 영락이 치렁치렁 매달렸다.그렇듯 돌을 다룬 솜씨는 보살의 얼굴과 천의자락,영락 등을 더 이상 화강암 걸감대로 버려두지 않았다. 보살은 위를 바라보고 활짝 핀 연꽃 디딤판(앙련대)을 밟고 발을 좌우로 향했다.왼쪽 팔은 구부려 손에 보병을 잡았다.그리고 아래로 내린 왼팔은 팔굽과 홀목을 약간 들어 손가락에 영락 한 가닥을 잡아올렸다.유연한 동작이다.중국과 일본에도 석조나 목조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전해오지만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따라올 작품은 아무데도 없다.그만큼 세기적 걸작인 것이다. 그 많은 걸작의 조각상들을 봉인한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지혜가 함께 창조한 불멸의 문화유산이다.비단 미학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신라인들의 혼이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석굴암 창건을 더러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세웠다는 「삼국유사」기록에 근거한 것이나,개인적 원력으로만 볼 수 없는 대역사였다.다시 말하면 개인적 발원에 의해 창건되었다기보다는 거족적 발원이 함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조각상은 그 하나하나마다에 조화와 질서가 있다.그 조화와 질서는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동과 정이 어울린 것이다.석굴암을 들여다 볼 때마다 감동이 와 닿는 까닭도 여기 있다.
  • “이라크 주변국 침공능력 없다”/더이상 군사위협 안돼

    ◎유엔사찰단장/「살상무기 폐기」 주장은 검증필요 【암만 AP 연합 특약】 이라크는 더이상 인접국들에게 군사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롤프 에케우스 유엔무기사찰단장이 23일 밝혔다. 에케우스 단장은 이날 요르단의 암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주 이라크 방문과정에서 이라크가 앞으로 화학무기나 장거리 미사일로 인접국을 공격할 능력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라크가 권력핵심자들의 망명 이후 유엔 무기사찰단에 대한 위협과 대치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고 비밀무기 관련자료 공개에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시켰다는 이라크의 주장에 대해서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고 반드시 검증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불 「테러 공포」 확산/“3차테러 더 있다” 시민들 불안

    ◎범인 오리무중… 회교과격파 추정 파리가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지난달 25일 셍 미셀역 폭탄테러에 이어 3주만에 또다시 비슷한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언제 어디서 폭발 사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어 길을 걷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1백만프랑(한화 1억5천만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사고발생 직후 현장부근에서 이란 외교관의 번호판을 단 승용차를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기는 했지만 파리주재 이란대사관측은 이란이 사고에 개입됐음을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범인임을 자처하는 단체들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 도무지 윤곽조차 찾을 수 없는 상태이다.범인들은 무엇인가를 「무언」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3차 테러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두번의 폭탄테러는 많은 인명살상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과시용의 성격이 강하다.이번 폭발사고의 현장은 개선문 부근의 시내 중심가이면서도 인적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곳이다. 또 폭발물의 종류가 밝혀지지는 않고 있지만 조잡한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지난달 사고 이후 알제리 회교근본주의자들에게 가장 많은 의혹의 눈길이 몰리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조직화된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조잡한 폭발물을 사용했을 가능성 등에 의문이 제기된다.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그러들 줄 모르는 프랑스의 핵실험 의욕이나 거세지는 보스니아에 대한 서구사회의 공세에 대한 제동에서 나왔다는 관측들도 제기되고 있다. 또하나 강하게 제기되는 가능성은 범아랍계의 소행일 수 있다는 것이다.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차 폭발사고 전인 지난달 6일 2차대전 당시 유태인의 추방에 프랑스가 「국가적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파리의 외교소식통은 『시라크 대통령을 「아랍의 친구」로 생각해온 아랍진영으로서는 시라크 대통령의 발언으로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석굴암 본존여래상(한국인의 얼굴:41)

    ◎이목구비 뚜렷… 소박하면서 지고/웃음 머금은 눈·입 온화한 모습/이마에 박힌 백호의 신비한 빛 일제때 사라져 신라는 석굴암의 조형물을 통해 고대 불교미술을 위대하게 마감했다.오늘 날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석굴암 석조불·보살상과 신장상들을 걸작이라는 말로 찬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그 이상의 출세간도적 조형물을 어디서 다시 만나랴.그래서 석굴암은 신라 불교미술사의 찬란한 종장이다. 석굴암의 조각상은 모두 38체에 이른다.주불은 물론 본존여래좌상(높이 3.26m)이다.여래는 금강역사가 특유한 권법 자세로 입구 좌우를 지키고 있는 주실에 자리잡았다.주실을 들여다 보면 본존여래 뒤로 십일면관음보살입상이 조각되었다.그 좌우로 각각 5체씩 모두 10체의 십대제자상과 4체의 보살상을 배치했다.본존여래를 둘러싼 이들 보살상과 제자상은 릴리프형식의 부조로 되어있다. 석굴암 본존여래의 얼굴은 소박하고 장중하다.절반쯤을 연 눈이 길어 여래의 얼굴이 더 없이 지고한데,안구가 빛나서 가히 혜안이다.그토록 또렷한 눈동자와 맑은 눈을 한 여래는 고개를 슬며시 숙여 사바의 중생을 굽어보고 있다.입은 꼭 다물었다.입술의 탄력 탓일까,위 아래 입술 모두가 활등 모양의 굴곡을 이루었다.그리고 깊이 파인 인중의 골이 윗 입술에 맞닿아 입이 더욱 분명해졌다. 눈썹을 길게 그리면서 콧마루로 내려온 선이 높기는 하나 그리 날카롭지 않다.이 콧마루는 웃음을 머금은성 싶은 눈매와 입이 함께 어울려 여래의 표정을 한껏 온화하게 만들었다.살이 도톰히 붙은 턱과 볼 아래로 진 목주름(삼도)역시 뚜렷하다.얼굴을 일러 말하는 호상이 원만한 여래는 참으로 준수하다.이목구비 어디 한군데 나물랄데가 없는 이 여래는 통일신라가 완성한 우리 불상의 정형일 것이다. 이 본존여래의 이마에 박힌 백호는 수정이다.일본인들이 석굴입구를 낮추기 전까지는 동해에서 해가 솟아 오르면 그 빛이 10여분동안 여래의 백호를 비추었다는 과학적 조사가 나와있다.그러니까 여래는 동남쪽을,더 정확히 말하면 대왕암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동해의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문무왕이 묻혔다는 수중릉 대왕암을 향해…. 석굴암이 위치한 토함산은 신라 오악의 하나인 동악으로 일찍부터 용의 신앙과 결부되었다.그 용을 상징하는 영산 동악의 본존여래가 호국룡의 역할을 자청하고 묻힌 문무왕 수중릉을 바라본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결국 석굴암 본존여래상에는 동해구를 거쳐 자주 경주로 쳐들어오는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한 신라인의 서원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석굴암은 널리 알려진대로 서기751년 김대성에 의해 창건되었다.석굴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온다.석굴암을 창건한 경덕왕대는 신라가 통일 초기의 혼란으로 부터 벗어나 정치·경제적으로 최고의 번영을 누린 시기다.
  • 경주 감산사/석조보살상(한국인의 얼굴:40)

    ◎살짝 뜬 눈가에 웃음… 온유한 인상/야트막하고 실한 코… 친근감 더 해 신라에서 8세기는 불교미술이 한껏 만개한 시기다.그 꽃봉오리를 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미 터뜨렸는데,바로 성덕왕(702 ∼ 736년)시대다.특히 화강암을 소재로 한 불상조각은 이 시대의 대표적 조형미술이다.도처에 널린 화강암을 불상으로 다듬어 보려는 신라인들의 불심은 불후의 명작 불상조각들을 남겼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이 8세기 초반의 작품이다.경북 경주시 대동면 신계리 감산사에 본래있던 것을 지난 1915년 서울로 옮겨왔다.대좌와 보살상 뒤쪽을 막아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57m에 이른다.보살상 자체의 키를 재도 1.83m가 나온다.그러고 보면 꽤나 큰 키를 기준한 등신대의 보살상인 것이다. 이 보살은 얼핏 익살스러워 보인다.그리고 눈을 꼭 감지않고 슬며시 웃음 그려내어 눈에도 장난기가 들어있다.그럼에도 온유한 까닭은 보살이기 때문일 것이다.코가 높지는 않으나 콧방울이 실한 보살은 안광이 꺼지지 않아 친근감을더 해준다.작은 입을 다물고 웃는 통에 입가의 주름 법령이 유난히 깊다.그래서 외래적 요소가 없는 신라인일 수 있고,또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얼굴은 풍만하고 몸매는 육감적이다.어깨는 넓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둥글고 통통한 팔뚝으로 이어졌다.특히 육감적 느낌을 주는 부분은 허리와 두 다리의 굴곡을 강조하듯 표현한 옷주름에 있다.허리부분에서 겹친 치마에 띠장식을 매어 가랑이께로 늘어뜨렸다.그리고 탄력있는 다리에 달라붙은 치마가 잔주름을 이루었다.치마의 주름을 두 다리 사이로 모아 허리쪽으로 끌어올려 몸매를 한껏 자랑했다. 이러한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유행한 양식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어딘가 인도 굽타시대의 불상을 닮았다.그 인도의 불상이 당나라에 흘러들어와 더욱 발전한데 이어 이를 신라의 것으로 수용했다. 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썼다.구슬이 달린 머리띠 한 가운데 화불이 있으니 관세음보살이 분명하건만 어인 일로 미륵보살이 되었다.그 연유는 뒷면에 선각으로 길게 새긴 글씨(명문)에 미륵보살이라고 밝힌데 있다.새김글씨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의 조상주는 김지성으로 되어있다.그는 통일신라시대 중아찬(신라 17관등 중의 제6위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67살에 관직을 떠나 서기 719년에 자신의 땅 감산장전을 바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그 절이 바로 보살상을 세웠던 감산사다.보살상 새김글씨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은 「삼국유사」남월산조에도 나온다.「삼국유사」는 또 이 보살상이 감산사 금당에 봉안되었다고 기록했다.그러니까 감산사의 주존이 미륵보살이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기록이다.미륵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당시 신라의 법상종신앙이 엿보인다.
  • “5백만명 살상 대형 가스탄 미,2차전때 일에 살포 계획”

    ◎영 「선데이」지 보도 【런던 교도 연합】 미국은 2차대전중 일본에 5백여만명을 죽일 수 있는 대규모 가스 무기 공격을 계획했었다고 영국의 「메일 온 선데이」지가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방안으로 가스공격을 계획했었다며 공격대상에는 도쿄와 히로시마,나가사키등 25개 도시가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군사 전문가 2명이 입수한 미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미군기들은 공격 초기 15일동안 5만6천5백83t의 가스탄을 투하할 계획이었다고 이 신문은 설명했다. 이 신문은 가스탄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상오 8시쯤 투하할 생각이었다며 미국은 그 이후에도 모든 목표물들이 파괴될 때까지 매달 2만3천9백35t의 가스탄을 투하할 계획이었다고 덧붙였다.
  • 일,무기전용 가능 제품 수출규제/원자력 생화학·미사일분야 대상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를 위해 무기제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일반 제품도 수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국제적으로 규제되지 않고 있는 기계 등 일반적인 수출제품도 기업측이 무기전용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의무화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재 수출규제는 국제적인 규정에 따라 핵연료 물질과 로켓부품 등으로 정해져 있으며 그외의 수출은 원칙적으로 자유화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통산성은 규제품목에 들어있지 않는 물품도 기업이 무기전용 우려가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수출한 경우에는 벌칙을 과할 계획이다. 새로운 규제대상 품목은 원자력,화학무기,생물무기,미사일 등 4분야 제조와 개발에 관계될 우려가 있는 범용제품이며 구체적으로 정밀도가 낮은 공작기계와 화학약품 등이 포함될 전망이라고 신문은 설명했다. 수출대상국은 당초 북한과 리비아,이란,이라크 등으로 특정했으나 이처럼 국가를 지목하지 않고 모든 국가에 대한 수출을 감시대상으로 책정했다.
  • 경주 삼화령/석조보살상(한국인의 얼굴:39)

    ◎신라아낙 떠올리는 수줍은 눈매/나지막한 코에 도톰한 아랫입술…/하관에 브로치 장식… 양팔엔 옷자락 “치렁치렁” 경북 경주시 남산에는 삼화령이라는 산마루가 있다.남산 북봉에 해당한다.그 삼화령에서 1925년 석조여래상 1구를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삼화령 서쪽 마을 민가에서 석조보살상 2구가 발견되어 역시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봉안했다. 이들 석조불상이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미륵삼존상이다.본디 자리를 같이했다가 흩어진 뒤 다시 박물관에서 만난 것이다.인연이 있어서 남산을 떠나서도 해후한 것일까.이들 삼존은 여래가 복판에 자리를 잡고 두 협시보살이 양쪽에 섰다.얼굴이 조금씩 달라도 어딘가 서로 닮아보이는 까닭은 본래 짝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본존의 키가 훨씬 커서 1.6m이고 두 협시는 키를 재기라도 하듯 1m 이쪽 저쪽이다. 삼화령 삼존상을 뜯어보노라면 너그러운 인간의 모습으로 와 닿는다.본존의 얼굴도 후덕스럽거니와 협시보살에서는 여성적 인상이 우러나온다.하기야 보살은 위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보리(보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면서 아직은 수행의 위치에 머무는 터라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왼쪽 협시보살은 윤곽이 더욱 뚜렷하다.그래서 신라의 여인을 가까이 대하는 듯 한데,아주 소박한 얼굴을 했다. 이 협시보살의 얼굴은 둥글고 입과 코가 작다.코가 크지 않다는 것은 신라의 여느 얼굴일 수 있다.아랫 입술은 터질듯 도톰하여 턱에 그늘이 졌다.비록 색깔이 없을 지라도 앵두 같은 입술을 연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옆으로 길게 소복한 눈매는 반구형을 이루었다.그리고 수줍다 할 눈매와 꼭 다문 입가에 살짝 웃음을 담았다.삼화령에서 웃었던대로 국립경주박물관에 와서도 여전히 웃고있는 보살상.우리가 지금 만날 수 있는 신라인인 것이다. 보살은 화관을 썼다.여러 가닥의 선이 진 화관의 띠(관대)한 가운데에는 구름과 꽃으로 장식한 커다란 브로치를 붙였다.이렇듯 아름다운 화관의 띠는 보살을 더 어여쁜 모습으로 가꾸었다.양 어깨를 걸친 천의는 흘러내려와 가슴 아래와 다리 부분에 이르러 2단으로 U자를 이루면서 다시 양팔 위로 올라가 걸쳐졌다.양팔에 걸친 천의에게 한치라도 더 다가서서 여래를 모시려는 의도적인 자세다. 이 보살을 포함한 석존삼존상이 애초 자리를 잡았던 남산 삼화령의 돌부처 이야기는 「삼국유사」기록에 나온다.보덕왕 때 한 승려가 꿈에 현몽한 남산 풀섶에서 돌미륵부처를 찾아 삼화령에 안치하고,선덕여왕 13년(서기 644년)에 생의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대목이 그것이다.그래서 학계는 이들 석조삼존상을 7세기 중반의 생의사 돌부처로 추정하고 있다.
  • “「5·18」 불기소 시정을”/고대교수 1백31명 시국선언

    고려대학교 교수 1백31명은 31일 하오3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5·18」검찰수사및 결정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의 「5·18」책임자 불기소결정이 우리 사회의 법과 도덕의 근본을 파괴하는 역사적 과오라고 규정하고 이의 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검찰의 결정은 폭력과 살상을 수반한 초헌법적 집권행위를 정당화한 것으로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이념과 배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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