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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대이란 관계개선 추진/새달말 고위급 파견… 교류재개 논의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중단돼 온 이란과의 정부 고위층 인사 교류를 다음달부터 재개키로 했다고 일본 NHK방송이 27일 보도했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4월 독일에서 6년전에 발생한 쿠르드 인권운동가의 암살사건에 이란 지도부가 관여했다는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유럽연합(EU)등과 함께 정부 고위층 교류를 중단시켜 왔다. 그러나 이란 하타미정권이 온건 외교 노선을 취하면서 유럽연합이 잇따라 각료급 접촉을 재개하고 미국도 관계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임에 따라 일본정부도 관계개선에 나서기로 했다고 이 방송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4월말쯤 각료경험이 있는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외무차관을 이란에 파견,하타미 대통령등과 회담을 갖도록 추진중이다.
  • ‘우울한 학생’ 상담 강화/교육부 생활지도대책

    ◎실직·결손가정 등 대상 비공개로/서울 12곳에 전문상담요원 배치/인내심 기르기 수련활동도 확대 일선 학교에서 실직자 및 결손 가정 자녀에 대한 비공개 상담이 한층 강화된다.학생들을 위한 수련활동도 더욱 다양화된다. 교육부 및 서울시 교육청은 26일 여중생의 집단 투신자살과 관련,이같은 내용을 담은 ‘학생 생활지도 대책’을 마련,일선 학교에 시달했다. 이에 따르면 가정이 어려운 학생에 대해서는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지도할 때는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했다.맞벌이 가정의 자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도록 했다. 상담은 가급적 학생이 ‘좋아하는 교사’와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4월 한달동안에는 담임교사 책임 아래 ‘학급별 심성상담’을 실시토록 했다. 자제력과 인내심을 기르기 위한 현장체험,견학 등 야외수련활동을 학급별로 반드시 1년에 한 차례 이상 시행하도록 했다.시교육청은 이를 위해 야영시설을 앞으로 3배로 늘릴 예정이다. 또 서울시내 12개 지역 학생상담센터에 정신과·상담심리학·사회복지 등을 전공한 전문상담요원 20명을 배치하기로 했다.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전문 지도교사도 480명 가량 양성할 방침이다. 한편 청소년 전문가들은 25일 저녁에 발생한 여중생 4명의 집단투신 자살사건과 관련,부모와 교사의 끊임 없는 관심과 ‘눈높이’를 맞춘 대화가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막는 가장 좋은 처방이라고 강조했다.
  • 검사장급 14명 프로필

    ◎김수장 부산지검장/검찰내 대전고 인맥의 맏형 시원스런 외모에 호남형으로 검찰내 대전고 인맥의 ‘맏형’.대검 중수부 1과장으로 재직하던 88년 ‘5공 비리’수사 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구속했다.일처리가 깔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충남 대덕(53·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 특수2부장 ▲서울지검 의정부지청장 ▲법무부 보호·교정국장 ◎강신욱 대구지검장/‘우지라면’ 등 대형사건 많아 맡아 호리호리한 외모에 과묵하고 강직하다는 평.‘우지라면 사건’‘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을 많이 맡았다.전주지검장재직 때 관내 토착 폭력조직을 소탕,민생치안에 기여했다.▲경북 영주(54·사시9회) ▲대검 중수2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대구고검 차장 ▲사법연수원부원장 ▲청주·전주지검장 ◎이재신 수원지검장/사회봉사 명령제 정착에 기여 업무 장악력과 추진력이 높다는 평.광주지검장 재직 때 관내 대학 신입생에게 건전한 학생운동을 호소하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했다.법무부 보호국장 때는 성인범에 대한 보호관찰제와 사회봉사명령제 정착에 기여했다.▲전북 정읍(55·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 총무부장 ▲부산지검 1차장 ▲제주지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광주지검장 ◎전용태 인천지검장/선후배 신망 두터운 크리스찬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선후배 검사들의 신망이 두텁다.만나는 사람마다 성경책을 건네주며 종교를 갖도록 권유할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67년행시 4회에도 합격했다.▲충남 당진(58·사시8회) ▲서울대 법대 ▲서울지검형사4부장 ▲춘천지검 차장 ▲대공판송무부장 ▲춘천·청주지검장 ◎주선회 청주검사장/맥 짚는 감각 탁월한 공안통 수재형으로 맥을 집는 감각이 탁월한 공안통.한총련을 사실상 와해시키고민주이념 연구소의 운영을 본궤도에 올려 놓았다.영화 및 미술을 보는 안목이 수준급.등산 애호가로 부인 이정은씨(46)와 2남.▲경남 마산(50) ▲마산상고·고려대 법대 ▲사시 10회 ▲대검 공안과장 ▲서울지검 3차장 ▲울산지청장 ▲대검 감찰·공안부장. ◎유재성 광주지검장/소탈한 성격 누구에도 친근감소탈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중수부 1과장기획과장 등 대검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창원지검장 시절 낙동강 살리기운동에 앞장서 환경보호 자원봉사 협의회를 발족시켰다.부인 최정선씨(52)와 2남.▲전북 김제(57) ▲경기고·서울대 법대 ▲사시8회 ▲창원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수원지검장. ◎송인준 대전지검장/후배 편안하게 해주는 ‘보스형’ 온화한 성품으로 후배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이 굵은 보스형.벌금 징수집행률을 대폭 높이고 검찰의 대 국민친절운동에도 앞장섰다.‘바람과 나무’라는 시집을 낸 시인으로 부인 오영순씨(49)와 사이에 1남3녀.▲충남 대덕(54) ▲대전고 서울법대 ▲사시10회 ▲법무부 검찰3과장 ▲서울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 ▲서울지검 북부지청장 ▲대검 강력부장 ◎박주환 울산지검장/서민적 풍모의 ‘외유내강형’ 서민적 풍모에 소탈한 성격의 외유내강형.제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검사나 직원들이 현지 민원인 안내나 조사 때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도록 ‘친숙한 제주방언’이라는 책자를만들어 큰 호평을 받았다.부인 한성림씨(52)사이에 2남1녀.▲경남 창녕(55) ▲경북고·서울법대 ▲사시10회 ▲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제주지검장 ▲대검 형사부장 ◎신승남 법무부 검찰국장/인정 많지만 일처리는 매서워 합리적 성격에 인정도 많으나 일처리는 매섭다는 평.93년 재산공개 때 상속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후배 검사들과 불어 공부를 함께 할 정도로 학구파다.부인 조현숙씨(51)와 사이에 1남2녀.▲전남 영암(58) ▲목포고·서울대 ▲사시9회 ▲서울지검 3차장검사 ▲광주고검 차장 ▲법무부 법무실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전주지검장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머리회전 빠르고 정세분석 탁월 머리 회전이 뛰어나고 정세분석이 탁월한 기획통.서울지검 2차장 때 상무대 비리사건,탁명환 피살사건 등을 무난하게 처리,능력을 인정받았다.동기들에 비해 인사에서 다소 손해를 봤으나 이번에 보상받았다는 평.최영옥씨(50)사이에 1남2녀.▲경기 광주(53) ▲경복고·서울공대 ▲사시11회▲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대검 감찰부장 ◎이명재 대검 중수부장/기획력 뛰어난 특수수사통 부드러운 인상에 말을 아끼는 특수수사통.대검 연구관을 4년이나 했을 정도로 기획력도 탁월하다.김기춘 전 장관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검사’라는칭찬을 받았다.한양전문대 교수인 유근향씨(53)와 사이에 2남1녀.▲경북 영주(55) ▲경북고 서울법대 ▲사시11회 ▲대검 중수2·3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사법연수원 부원장 ◎박순용 서울지검장/검찰·법무부 요직 두루 거쳐 소탈한 성품으로 특수·공안부와 검찰국 등 검찰과 법무부의 요직을 두루거쳤다.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무난히 처리,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한국형사정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등 사법발전에도 관심이 깊다.부인 김혜정씨(52)와 사이에 2남.▲경북 선산(53세) ▲경북고 서울 법대 ▲사시8회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법무부 교정·검찰국장 ▲대검 중수부장 ◎최병국 전주지검장/총선·한총련사태 무난히 처리 공안통으로 후배들에게 엄하나 뒤끝이 없다.4·11 총선과 한총련 사태 등을 무난히 처리했다.특수부 경험이 없는데도 울산지청장 때 인지사건 1위를 기록했다.유명산 대부분을 올라본 등산광으로 부인 한명숙씨(52)와 사이에 1남2녀.▲경남 울산(56) ▲부산고·서울법대 ▲사시9회 ▲울산지청장 ▲서울지검1차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 ◎제갈융우 춘천지검장/합리적 성격… 따르는 후배 많아 합리성과 추진력을 갖췄으면서도 선이 굵다는 평.다정다감한 면도 있어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김영삼 정권 때 동기들에 비해 빛을 못보다 이번에 제자리를 찾았다.부인 지정현씨(50)와 사이에 3남1녀.▲대구(53) ▲경북고·서울법대 ▲사시11회 ▲법무부 검찰2과장 ▲수원지검 특수부장 ▲대검 공안기획담당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 ▲대구고검 차장
  • 존 애덤스­퀸시 애덤스(미국의 대통령 문화:15)

    ◎2대­6대 유일한 부자 대통령/존­제퍼슨과 독립선언 기초… 당선후 해군부 창설//퀸시­뛰어난 국무장관 꼽혀… 취임뒤 복지정책 주력 【퀸시(미매사추세츠주)=나윤도 특파원】 1825년 3월4일,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의 대통령 취임식장.미국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1825­1829)의 취임선서가 끝나자 군중들은 환호했고 새대통령은 줄곧 뒤에서 지켜보던 백발 노인의 손을 번쩍 치켜들어 답했다.89세의 이 노인은 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97­1801) 였다.미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자 대통령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두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애덤스 가문은 1633년 잉글랜드에서 보스턴 해안에 도착한 이민 후손으로 이들 대통령 이외에도 보스턴 일대에서 과격파 청년단체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계기를 마련한 새뮤얼 애덤스,외교관으로 명성을 떨친 찰스 프란시스 애덤스 등 많은 국가적 인재를 배출,오늘날 케네디가문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부자 모두 하버드대 출시 특히 이들 부자는 모두 하버드대 출신의 변호사로 독립초기 유럽 각국의 외교관을 역임하며 신생 미합중국의 국제적 지지 획득을 위해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에 건국초 버지니아왕조라 불릴만큼 버지니아주 출신의 위세가 드센 가운데서도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입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존 애덤스는 1735년 보스턴 인근의 브레인트리(오늘날의 퀸시)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러나 부모의 높은 교육열로 하버드에 진학할 수 있었으며 23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당시는 점차 영국의 식민지에 대한 횡포가 높아질때 였고 마침내 1765년 영국의회가 인지조례를 통과시키자 그는 사촌인 새뮤얼과 함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사용되는 서류,증권 등 모든 문서에 인지를 의무적으로 붙이도록한 이 법은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는 식민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듬해 폐기되고 말았다.애덤스는 이어 보스톤 학살사건,보스톤차 사건 등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매사추세츠 주의원으로 대륙회의에 참가하게 되면서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토마스 제퍼슨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으로 활약했고 초대 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 대통령 아래서 8년을 지낸뒤 1797년연방당 출신으로 2대 대통령에 선출됐다.그는 해군부를 창설,해로 안전확보에 노력했고 재임 4년 동안 신생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열강 사이에서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애썼다.4년후 친구이자 정적인 제퍼슨에게 패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저술에 몰두하며 90세까지 생존,최장수 전직 대통령의 기록을 세웠다. 특히 그는 평생 애증관계로 지낸 친구 제퍼슨과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826년 7월4일 함께 눈을 감음으로써 두 독립영웅의 죽음에 있어 묘한 우연의 일치가 지금까지도 화제로 남아 있다. 존 애덤스가 32세때인 1767년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난 존 퀸시 애덤스 역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아버지와 같은 하버드대 출신으로 같은 나이인 23세에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그는 어렸을때부터 대륙회의 대외 협상대표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을 장기간 광범위하게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이는 그가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많은 건국초기의 지도자들을 만나는데 도움을 주었다. ○3대가 영 대사 역임 기록 27세때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네델란드대사로 임명돼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그는 프러시아,영국대사를 역임했다.후에 남북전쟁때 그의 아들 찰스가 영국대사를 역임함으로써 3대가 같은 지역에 부임하는 기록도 세웠다. 퀸시 애덤스는 매사추세츠 주의원을 거쳐 연방상원의원을 역임했으며 5대대통령 제임스 먼로 하에서 8년간 국무장관을 지냈다.그는 미국에 대한 유럽열강의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선언을 기초하는등 가장 훌륭한 국무장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1825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그는 대통령 선출과정에서 앤드루 잭슨과의 경쟁에서 부정거래 의혹에 휩싸여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국민복지를 위해 국립대학및 천문대신설.도로·수로건설 등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의회 반대에 직면했다. 4년후 잭슨에 패배,단임에 그치고 말았지만 그는 1년후 다시 자신의 고향에서 연방하원의원으로 재기했다.노예제도 폐지와 남북갈등 해소에 진력하면서 존경받는 하원의원으로서 8선 임기를 수행중 80세의 고령으로 워싱턴 의사당에서 쓰러져 숨을 거뒀다.특히 그가 13세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미독립 전후의 뒷얘기들을 수록한 귀중한 역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같은 부자 대통령의 탄생 뒤에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대통령으로 만든 애비게일 애덤스 여사의 선각자적인 노력이 전해지고 있다.목사 딸로 신실한 신앙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지않던 당시의 학교제도에 반발,독학으로 신학문을 깨쳐 후에 부통령부인으로 또 퍼스트레이디로서 제도적인 여성권익의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보스톤 남쪽 10㎞에 위치한 인구 9만의 작은 도시인 퀸시는 ‘대통령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도시 곳곳에 흩어진 애덤스 일가의 유적들은 ‘애덤스 국립사적지’로 지정,국립공원국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켈리 코블 애덤스 사적지 관리담당관/“국립사적지로 지정 보호”/대통령부자 생가·‘올드하우스’로 구분/1870년 지은 대통령도서관 가장 애착 【퀸시(미매사추세츠주)=나윤도 특파원】 애덤스 국립사적지의 캘리 코블 관리담당관은 퀸시 일대에 흩어져 있는 애덤스 가문의 유적들을 국립공원관리국에서 사적지로 지정,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발굴작업 등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애덤스 국립사적지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존 애덤스의 생가와 존 퀸시 애덤스의 생가,애덤스가의 사저인 ‘올드하우스’등 크게 3부분으로 돼있다.올드하우스는 1788년부터 1927년까지 140년간 애덤스가 4대의 사저로 사용되던 곳으로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소장 유물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올드하우스 옆에 별채로 지어진 도서관이다.존 퀸시 애덤스의 아들 찰스 프란시스 애덤스가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부친의 책들을 한군데 모아놓기 위해 1870년에 지은 것으로 사실상 최초의 대통령도서관이라 할수 있다.소장 도서는 모두 1만4천권으로 주로 문학과 종교서적이 많으며 14개 언어의 책들이 있어 그의 언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다.조부 존 애덤스의 책들은 매사추세츠대학에 기증돼 있었다. ­올드하우스의 유래를 설명해달라. ▲존 애덤스가 외교사절로 오래 유럽에 체재하는 동안 부인 애비게일이 구입해서 지은 방6개의 작은 집이었다.존은 이 집을 ‘평화터’(Peacefield)라고 부르며 매우 좋아했다.대통령 퇴임후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후손들에의해 집이 증축돼 오늘날은 방60개의 대저택이 됐다. ­애덤스 부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 조사에 따르면 42명중 존 애덤스는 14위,존 퀸시 애덤스는 18위로 비교적 상위에 랭크돼 있다.
  • 일 중년 ‘자살 신드롬’/경제난에 막막한 생계 비관

    ◎현대사회 도전의욕도 상실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전후 베이붐 세대 가장들 사이에 경제난에 따른 자살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중년 자살 증후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수개월동안 재정파탄 및 불황과 관련된 비관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일본열도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3.5%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하순 빚더미에 올라 앉은 소규모 자동차부품회사 경영인 3명이 도쿄(동경)서부의 한 호텔 각방에 따로 따로 투숙,동시에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이보다 1주일 전에는 자민당소속의 아라이 쇼케이(신정장경)의원(50)이 불법 증권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게되자 도쿄의 한 호텔방에서 목매 자살했다. 지난 90년대초 거품경제시대가 끝난 이래 일본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해왔다.지난 96년 기업체 간부들의 자살은 478건으로 전년도보다 16% 이상 늘어났고 2만3천건을 넘은 전체 자살건수의 2%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일본경찰청 연례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심리학자들은 현재 5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적,경제적 문제에서 파생하는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그리고 그와 연관된 가정문제로 점차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문제평론가 오자와 료코씨는 “베이붐 세대의 절정기는 국가에 도전하고 학원 및 사회의 자유화를 외쳤던 학생운동시기였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지금 그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젊은날의 귀속의식을 상실한 채 투쟁정신을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 야당세력의 형성(대한민국 50년:8)

    ◎48년 8월 한민당 “이승만정권에 투쟁” 선포/조각 배분 푸대접 받자 초대총리 지명 인준 부결/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대 ‘보수야당’ 성격 고착 이승만정권에 대응한 야당세력의 출현은 바로 한국민주당에서 비롯된다. 한민당은 미군정기인 45년 9월16일 좌우대립속에서 지주세력 등 우익측 인사들로 결성된 보수반공연합체 정당으로 출발했다. 중경의 임시정부를 정통정부로 추대하고,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의 인민공화국 타도를 모토로 내걸었다. 한민당은 창당 당시에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의 임정요인들을 지지하고 이들과 함께 반탁운동을 전개했으나 김구 등 임정세력들과의 노선차이로 결별했다. ○건국까지는 손발 맞춰 그러나 단독정부수립을 주장한 이승만과 한민당은 손발을 맞춰 건국까지 이끈다.이승만과 한민당의 관계는 ‘정약결혼’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이승만은 그들의 국내 지지기반이 필요했고 대신 한민당은 이정권에서 권력을 주도하려는 야심이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한 이승만은정약결혼속에서도 내심 ‘친일정당’으로 비판받던 한민당과 계속 제휴하는 것은 자신의 노선까지도 손상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꿔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바로 조각작업에 착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하나씩 드러냈다. 먼저 한민당이 국무총리로 내세운 당위원장 김성수안을 거부하고 조선민주당 부당수였던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국회인준을 요구했다. 이에 한민당도 기다렸다는듯 즉각 인준을 부결시켰으며,결국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인준받은 이승만은 김도연에게 재무장관 자리 하나를 주는 것으로 한민당의 조각참여를 제한했다. 한민당은 이 사건을 ‘이승만의 배신’으로 간주하고 자연스럽게 야당의 길로 전향했다.한민당의 이승만에 대한 불만은 48년 8월8일 발표한 성명에 잘 나타나있다. 이 성명은 ‘…본당원으로서 정부에 국무위원으로 입각한 사람은 김도연 1인뿐이어서 극히 빈약하다.본당은 신정부에 대해 시시비비주의로써 임할 것은 물론이거니와…”라고 주장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한민당은 본격 야당으로 강화하기 위해 대한국민당의 신익희 세력 등을 규합,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한민당은 창당 3년4개월만인 49년 1월26일 자연해체하게 되고 49년 2월10일에는 민국당으로 자리잡게 된다. 민국당은 이어 정부12개부처의 각료중 7명이나 차지해 세를 불려나갔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내각책임제 개헌밖에 없다고 여겨 이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민국당은 50년 1월 79명의 서명으로 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50년 3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로 끝났다. ○49년 2월 민국당 창당 하지만 민국당은 동조자를 확보해 계속 이정권에 도전하는 공세를 펴나갔다.민국당 신익희의 국회의장직 진출로 민국당이 반 이승만세력을 한창 규합해 갈 즈음 6·25전쟁이 일어났다. 이로써 국회활동도 중단되고 정쟁은 사그러지는 듯 했으나 이승만측의 정권에 대한 욕심은 굳건했다.전쟁중에도 민국당이 차지한 의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선거를 치르기 위한 직선제 개헌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이어 청·장년들을 강제징집·수용해놓고 간부들은 돈을 횡령한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겪으며 정부불신임이 팽배해지면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는 마침내 이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마구 잡아들인 ‘부산정치파동’으로 연결돼 반정부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문헌들에서 한민당은 흔히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또한 이승만의 독재적인 행정부 권력에 맞서는 의회 특권의 수호자로 묘사돼있다. 그러나 한민당은 사실상 토지와 지방권력등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군림했으며 재원의 분배와 부의 통제를 둘러싸고 중앙 행정권력과 투쟁을 벌일 뿐이었다. ○6·25중에도 개헌 추진 미 중앙정보국(CIA)은 당시 한국 국회를 대한민국 내의 ‘민주주의 정신의 터전’이고 흔히 입법부에서의 논의가 정부관리들과 가열된 공방을 야기시켰다고 파악했다. 그런데 이 국회가 ‘서구의회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며’ 집행부에 대해서는 전혀 효과적인 억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승만의)‘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에 어떤 장애도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민당은 민주국민당으로 변신해서도 국가관료의 고위지도부에 계속 참여했다.49년초 도지사,시장,군수등의 명단은 45∼46년 지방관리들의 명단과 놀라울 정도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민당이 야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면서도 이승만정권의 정책에는 동조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한민당은 이승만의 보수주의적 반공노선에 동조함으로써 혁신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면서도 자기 지분을 늘리기 위해 6·25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의원내각제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CIA가 50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경쟁’은 ‘보수지도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다’고 평가한데서도 알 수 있다. 한민당은 수많은 당명의 교체속에서도 현재까지 한국 야당의 명맥을 이어준 ‘뿌리’로 치부되고 있다.그러나 첫 야당이 보수세력에 지나치게 기댐으로써 지금까지 한국정치에서 야당의 성격을 보수로 규정하게 만드는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야 한민당 관료기구 주도”/49년 미 관리 작성 ‘남한정세 조사’ 보고서 확인 이승만정권시기 관료기구에서 한민당의 주도성과 한계는 1949년 3월 미국관리 맥도널과 로지엘이 직접 대한민국 전역을 여행하며 작성한 ‘남한 정세의 조사’라는 보고서와 미국무부 문서 등 당시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남한 정세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각 지역의 도지사·시장·군수 등은 1945∼46년 미군정기 지방관리와 거의 일치함을 보여준다.한민당이 이승만정권에 대한 투쟁을 선언했으면서도 관료기구를 주도했던 것이다. 한민당 후신인 민주국민당도 역시 ‘산업가 및 지주들’의 후원을 받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정당이었다.따라서 이승만정권과 이들 야당세력 사이에는 ‘권력을 향한 경쟁 이외에는 모든 것이 부차적’이었으며 ‘내부 파벌투쟁 또한 강력해 하찮은 자극에도 당을 뛰쳐나가게’ 만들었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야당은권위주의적 통치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에 의해 움직여졌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체질적 요소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미 공문서 기록관리청(NARA) 국무부 일반문서중 50년총선관련자료(Developments concerning the 1950 general election)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당의 정강은 유교체제탓인지 정부에 대해 온정적 시각을 담고 있다고 표현돼있다.게다가 당시 이는 정강자체는 의미없는 것으로 여겨져 부실한 정당정치를 알 수 있다.이들간에 이데올로기의 차이도 권력투쟁에 있어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민국당과 대한국민당 양대정당 사이의 주요한 이슈는 민국당이 행정부에 반대하고 국민당은 지지한다는 차이,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국민당 당수 윤치영도 주한미대사관 관리에게 개인적으로 “우리 당과 민국당의 위치에 큰 차이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민국당은 자유주의를 공언했으나 산업가,지주 등의 지지를 등에 업어 보수정당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 호칭·높임말·낮춤말의 혼란 크다(박갑천 칼럼)

    외6촌(국민일보)·6촌동생(중앙일보·경향신문)·외5촌조카 (서울신문·조선일보·한국일보·한겨레신문)·5촌외조카(문화일보)·5촌조카(세계일보).좀 지났지만 성남시 서장열씨 일가족 피살사건 범인과 서씨와의 관계를 말하는 1월26일자 신문들 표현이다. 어떤게 옳은 관계인지 알수없다.그러나 그것보다도 그촌수의 호칭을 쓰지않은데 대해 맞갖잖게 보는 눈길도 있다.위보도에서 가장 많은 ‘외5촌조카’라면 외종질(혹은 외당질)인데 어째서 그걸 쓰지않느냐는 뜻.삼촌이네 외삼촌이네 하며 촌수로 부르는건 서삼촌 등 빛접지못한 축을 업신여기면서 쓴 표현이라는 생각도 있는 터여서 더욱 그렇다. 아주머니뻘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백모·재종숙모에서 고모·이모·외숙모…에 처숙모·처고모등 등.한데 북녘 일부지방에서는 그를 통틀어‘아주머니’로 불러버린다고 한다.일본에서도‘오바상’은 그모든 아주머니뻘을 포괄하는데 그같은 함실코 닮자는 거냐면서 삐죽거리는 사람도 있다.보도내용이 보여준 각종‘조카’도 마찬가지.조카(질)·종질·생질·이질·처질…등등으로 갈려있는 것인데 하나같이 조카라하면 되느냐는거다. 그뿐아니라 호칭의 차이도 문제다.가령 손위누이의 남편을 보자.매형·자형·자부·매부등이 있다.자가 언니고 매는 아우쪽이니까 자형·자부가 옳아보이지만 ‘매형’이라 부르는 곳도 적지않다.글자뜻으로만 보자면 매형은 이상하고 ‘매부’면 손아래누이의 남편같다.옛날에도 이런 혼선은 있었던지 정차산은 그의[아언각비]에서 이렇게 말한다.“아래누이(매)란 여동생이다.한데 우리풍속에서 윗누이남편 자부를 매부라함은 잘못이다” 앞으로 좀더 세월이 흐르노라면 이런대화도 듣게 될것인지 모른다.“얘,네가 방금 인사한 그노인이 누구냐?””응,우리엄마 친오빠야”“응,우리아빠친누님이야”.‘외종질’을 잃은것과 같이 ‘외숙’도‘고모’도 잃어갈것 같다는 생각이다.이 ‘고모’에 대해서는 앞서의 [아언각비]가 잘못된말 이라고 지적한다.‘모’는 숙모·이모 등 성이 다른 여자에게만 붙일수 있는 것이라면서.이쯤되면 정말로 알쏭달쏭해진다. 호칭뿐아니라 높임말 낮춤말혼란도 크다.집안에 따라 지역에 따라 관행이 다르기때문인데 자존심문제로 갈등요인이 되고있기도.그통일작업은 국가적차원에서 이뤄져야 할듯 싶다.
  • 금은방 일가 살해범은 6촌 동생/3백만원 빚독촉에 앙심

    【성남=윤상돈 기자】 경기도 성남시 서장열씨(39) 일가족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성남 남부경찰서는 25일 서씨의 외5촌 이동진씨(34·청과상·성남시 수정구 신흥2동 123)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고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일 상오 10시30분쯤 성남시 중원구 금광2동 서씨집에 찾아가 서씨와 부인 정영란씨(33) 딸 재휘양(10·초등학교3년) 처남 정한옥씨(29)등 4명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지난 92년 성남시 수정구 신흥3동 서씨 가게 옆에서 ‘보석사랑’이란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서씨에게 빌린 3백30만원의 빚독촉이 최근 심해지자 앙심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 금은방 채무관계 수사/성남 일가족 피살사건

    【성남=윤상돈 기자】 성남시 서장열씨(39) 일가족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성남남부경찰서는 21일 원한에 의한 범행과 금품을 노린 강도 등 두 갈래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다.경찰은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범인들이 집안의 다른 금품에 손대지 않은 점에 비추어 일단 원한 등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서씨가 운영하는 금은방의 거래자 및 주변 귀금속상과의 금전 거래 등에 대해 탐문수사 중이다.서씨를 포함한 피살자들의 채권채무와 대인관계 등도 파악중이다.
  • 안양 부부살해범은 3명/애인 출산비 구하려 범행

    【안양=김병철 기자】 안양 삼성산 노부부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안양경찰서는17일 유정민씨(25·구속) 등 3명이 공모해 범행한 사실을 밝혀내고 달아난손상철(25·인천시 계양구 계산동),고종원씨(32·태안군 태안읍)등 2명을 쫓고 있다. 경찰은 범행 다음날인 14일 검거된 유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교도소 동기인 손씨 등과의 공모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고씨 형의 치료비와 유씨 애인의 출산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짓을 하기로 공모,13일 밤 인천시 남구 학익동 박경재씨(68·사채업) 집으로 찾아가 “경찰인데 조사할 것이 있다”며 박씨 부부를 안양시 석수 1동 삼성산 국기봉 산림감시초소로 납치한 뒤 각각 목졸라 숨지게한 혐의다. 경찰은 고씨로부터 통장을 건네받아 축협 서울 영등포지점에서 3천만원을 인출하려 한 민병철씨(57·인천시 남구 용현동)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범행공모 여부에 대해 수사중이다.
  • 새뮤얼슨 WP 칼럼니스트 IHT지 기고 요지(해외논단)

    ◎일 소비억제 아주위기 부채질 워싱턴 포스트의 로버트 새뮤얼슨은 지난 3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완고했던 일본 역시 아시아 경제위기의 일부분이다’는 사설을 통해 일본이 그동안 성장을 구가해오면서 자기 혁신에 뒤졌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닥친 아시아가 위기를 벗는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는 과잉이익을 내며 소비를 억제한채 수출증가란 환상에만 빠진 일본이 이제 침체의 늪에 빠져들면서 세계경제에 주름살을 더 만들 것이라고 일본의 개혁을 촉구했다. 다음은 사설 요지다. ○한·태·비 등 지원 했어야 일본은 자기경제가 어렵게 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거의 무한대의 부인능력을 가졌었다. 1990년대 대부분 기간동안 그들은 자기 경제가 근본적으로 건실하다고 확신해 왔다. 미미한 경제성장(1992년부터 계속 1%정도의 성장만 보였다)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낮았는데 이는 기업들이 오랜 기간동안 해고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생활수준은 그리 올랐다고 볼 수 없는데도 높게나타났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근본적 문제를 치유하는데 늦었다. 그 문제들이란 연약한 은행체계와 소비가 주도하는 성장을 이끌어내는 능력의 부재란 것이다. 그결과 지금 세찬 바람을 맞고 있다. 경기후퇴의 조짐이 강하다. 이에 대해 심지어 일본인들 역시 지금은 상당히 놀라고 있는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경기부양을 위해 1백54억달러의 세수삭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세계경제의 침체가 일본에서 시작돼서는 안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일본 은행들을 보완시켜주는 이런 저런 시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기후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가 일본만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여타국가에도 여파를 불러일으킬 것이란 하시모토 총리의 말이 맞아 보인다. 한국,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그리고 필리핀등 아시아 금융위기의 당사국들은 경기회복을 위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 그들은 외환보유고가 바닥났으며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기 때문에 물품을 사들이고 빚을 갚기 위해­다시말해 그들의 경제를 굴러가게 하기위해­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 경제가 건실했던 일본은 그들의 수출시장인 이들을 위해 지원을 강화하고 확대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었다. ○수출 늘리기에만 급급 일단 일본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일본이 아시아국가들로부터 사들이지 않고 자신의 물건을 더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모든 경제의 위협이 일본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시아 경기침체가 그 자체를 키우고 있다. 즉,엄청나게 많은 팔 사람이 너무 적은 살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의 휘청거리는 경제를 위해서는 수요가 많은 것이 공급이 적은 것보다 효과적이다. 궁극적으로 일본의 전략은 자기 기만이 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쿄는 절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미국의 비난에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그들은 소비를 훨씬 넘는 저축을 좋아했고 관료주의 힘은 시장을 지배했다. 각종 아이디어는 다발로 안겨지는 투자와 함께 수출을 효과적으로 늘리는데 기여했다. 가정에서와 정부는 각종 그룹들(고비용의 농부들,적은수의 소매상점주들,기업카르텔등),즉 일본 일상생활의 주역들을 보호해 왔으며 심지어 소비자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도 했다. 사회안정성과 경제성장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0년대 중반까지 이 시스템은 붕괴해오고 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수출이 더 이상 증대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세계가 증가분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엔화의 강세와 각종 수입규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것들을 절대 수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의성 놓친 소비세 인상 소비를 저지하는 반경쟁적 행위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소비가 GDP의 68%를 보였던데 비해 일본에서는 60%만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일본경제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일본내 회사들이 은행의 지원이 없어지면서 붕괴되기 시작했다.평생고용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이 그들의 새로운 실체를 거부해온 결과이다. 최근까지도 그들은 낮은엔화가 수출을 촉진시켜줄 것이란 희망을 해왔다. 이것은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낯익은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허상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수출은 혜택을 가져다 주나 그 효과는 다른 약점과 몇몇의 실정자들에 의해 뒤집어졌다. 지난 4월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3%에서 5%로 높였는데 그것은 소비행태와 가정경제를 황폐화시켜 버렸다. 일본의 정책지도자들은 소비세의 인상은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는 경고를 무시했다. 왜 일본은 과소 소비가 만연한 때 소비세를 더 부과했을까? 좋은 질문이다. 그것은 일본 자체가 바로 아시아문제를 담당하는 한 부분이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가상의 역사/영 역사학자 10명 공저(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역사적사건 반대 시각 재조명/영국 명예혁명·고르비와 구소 붕괴 등 다뤄/지식과 상상과 세계 똑같은 비중 접근 시도 ‘가상의 역사’는 학술적인 용어다.역사를 전공하는 모든 학생들과 역사가들이 생각해보는 것이다.이를테면,만일 고대 그리스 마라톤전쟁에서 페르시아인들이 이겼다면,러시아 혁명에서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볼셰비키들을 쫓아냈었다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가정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역사적 사건들이 실제 어떻게 일어났는 가를 알아보는데 매우 좋은 수단이 아닐 수 없다.이 질문들은 또 역사연구가들이 흔히 갈팡질팡하는 문제,즉 어떤 현상을 반드시 인과관계에 따른 법칙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하는 기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때 무척 유용한 도구가 된다.결정론자와 비결정론자 사이에 때때로 해답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학자들사이에 ‘가상의 역사’라는 장르는 역사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전문가의 의견에 빠져들지 않게하는 마력을 지닌다.‘진실추구’를 하지 않는다면 해당역사가나 그 역사서는 권위를 그만큼 떨어뜨리는 것이 될 것이며 때때로 독자가 작자들과 영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할 것이다. 역사해석에 대한 이같은 ‘함정’을 메우기 위해 나온 책이 ‘가상의 역사’라는 책이다.‘대안과 가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책은 영국의 소장 역사학자 10명의 글을 모았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정확히 반대되는 사실에 입각한 가정들,즉 ‘영국의 명예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에서부터 ‘고르바초프가 소련에 없었더라면’까지 큰 줄기의 역사사건을 반대로 가정해봄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진실에 보다 가까와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단편 논문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너선 클라크의 ‘미국혁명이 없었다면’부분이다.미국 독자들은 클라크가 미국을 세운 이들을 ‘원칙주의자’보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화잘내는 문제아’로 묘사한 사실에 놀랄 것이다.하지만 건국이후 미국을 끊임없이 괴롭혔거나 지금까지 괴롭히고 있는 노예문제,인종문제,일부 인디언들의 처리문제 등은 “만일 미국이 제국으로 남아있었다면”모두 해결되었을 것으로 결론지은 클라크의 혜안에 감탄할 것이다. 마크 알몬드의 ‘고르바초프가 없는 1989년’도 현대 역사학자들에 매우 유용한 테마였다고 본다.그의 말을 빌리면 최근세사에서 공산주의 붕괴만큼 필연적인 사건은 없다고 결론 짓는다.물론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정치적모순에 고르비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이라는 지적이다.알몬드는 그러나 공산주의 붕괴같은 역사상 획을 긋는 현대의 어떤 빅이벤트도 예견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예를 들면 소련연구가인 미국의 제리 휴조차도 1990년에 “소련정권은 지구상 가장 안정된 다국적국가”로 묘사하기도 했다. 알몬드는 소련내 어떤 정치·경제·사회세력도 소련을 무너뜨리지 못했으며 서방의 대처나 레이건같은 인물이 소련에 있었다 하더라도 소련의 붕괴를 가져오게 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단정한다.유럽의 정치인들도 당시 동방의 핍박받는 사람들의 자유보다는 소련의 안정에 더 큰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알몬드는 특히 소련의 반체제인사 작품들 조차도 프라하의 지하철역이나 라이프치히의 전차역에서보다는 미국의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오히려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그 정도로 소련의 붕괴는 예견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련의 붕괴는 어떻게 온 것인가.알몬드는 바로 고르바초프의 ‘순진한 노력’이 소련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 블럭을 서방과 연결시키려 한 노력이 결국 소련을 망하게 했다는 것이다.서방과의 관계강화가 소련의 정치·경제시스템을 해치리라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조종간을 잡고 바위를 향해 힘찬 행진을 한 사람­고르비­때문에 소련은 무너졌다”는 것이 알몬드의 주장이다. 위 두 사람과 형식은 달리하지만 다이언 쿤츠의 역사해석도 재미있다.쿤츠는 케네디를 헐뜯는데 초점을 맞추지만 흥미진지함도 가져다 준다.이 책은 앵글로 색슨족 중심주의가 어렴풋히 베어있고 논문들의 이슈도 방만하게 선택된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그러나 대체적으로 우리가 이전에 해왔던 역사에 대한 의미부여를 아주 새로운 각도에서 접하도록 해줌으로써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이 1차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유럽대륙이 유럽연합과 같은 기구를 일찌감치 탄생시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지금도 인기가 여전한 미국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암살사건이 결국 존슨대통령의 ‘위대한 사회’캐치프레이즈 아래에서 시민권의 신장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누가했겠느냐는 것이다.‘가상의 역사’가 밀리언셀러가 될 가능성이 큰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옥스퍼드대학 출판사를 책임지고 있는 퍼거슨씨는 “다소 인위적이긴 하지만 모든 사실에 반대되는 각도에서 역사를 조명,가정적인 역사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역작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실제로 이 책의 편집자이기도 한 퍼거슨은 “영국 찰스1세가 1639년 6월 스코틀랜드 반군과 전쟁을 하고 또 승리했다면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났겠는가”하는 가정을 예로 든다.1939년의 ‘스코틀랜드 반란’은 찰스가 군사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영국의 명예혁명을 앞당긴 일련의 사건이다. 이 책은또 미국과 프랑스,러시아에서 혁명이 없었을 경우,아일랜드의 분리가 없었을 경우,1929년 세계적인 대공황이 없었을 경우의 여러세계를 재조명함으로써 많은 역사가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지식과 상상의 세계를 똑같은 비중으로 접근하는 이같은 역사의 지혜에 놀라울 수 밖에 없다.역사는 사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원제 Virtual History:Alternatives and Counterfactuals.Niall Ferguson,Picador.548쪽.32달러
  • 알제리 ‘피의 테러’ 계속/민간인 또 78명 피살

    【알제(알제리) AFP 연합】 이슬람 과격분자들로 보이는 무장괴한들이 31일 새벽서부 렐리잔지역의 3개 마을을 습격,78명의 민간인이 살해되고 68명이 부상했다고 보안군이 발표했다. 이로써 알제리에서는 지난 10일 동안 이슬람 단체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습격으로 사망한 사람이 400명으로 늘어났다. 알제리당국은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 기간 동안에 학살사건이 대규모 폭력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고 수도 알제 등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다.
  • 원주민 학살 16명 기소/멕시코 검찰

    【툭스틀라 구티에레스(멕시코)AP AFP 연합】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이번주 초에 발생한 마야 원주민 45명의 학살사건과 관련,16명이 공식 기소됐다고 멕시코 연방 검찰청이 26일 발표했다. 또 이들 16명 외에 미성년자 2명이 소년원에 구금됐다고 에베라르도 모레노 크루스 검사가 말했다.
  • 성탄절·연말연시 TV영화나 보며 보낼까

    ◎외식 자제 알뜰시청자 겨냥 ‘풍성’/KBS­‘벙어리 삼룡이’ ‘JFK’ ‘벤허’/MBC­‘데드맨 위컹’ ‘나홀로 집에’/SBS­‘성의’ ‘모세’ ‘사랑의 용기’ 올해 성탄절과 연말연시에는 안방극장 관객들이 크게 늘어날 것 같다.경제한파를 맞아 각 방송사들이 마련한 특집영화를 보며 외식이나나들이 비용을 줄이려는 알뜰 시청자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 KBS·MBC·SBS 등 공중파TV 3사는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감안,비교적 다양한 외화 및 방화를 편성했다. KBS의 경우 외화절약과 우수 한국영화 소개라는 명분아래 21일부터 매주 일요일 ‘명화극장’(1TV·하오10시35분) 시간을 통해 작품성 뛰어난 방화를 내보낼 예정.21일에는 신영균·최은희·김희갑 주연의 ‘쌀’을 방영하며,28일은 김진규·최은희·박노식 주연의 ‘벙어리 삼룡이’가 나간다.이어 내년 1월4일에는 주요섭 원작·신상옥 감독으로 제9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방영될 예정. 이와 함께 볼만한 외화도 선보인다.2TV는 22일부터 잇따라 명화들을 내보낸다.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다룬 ‘JFK’(올리버 스톤 감독,케빈 코스트너·토미 리 존스 주연)가 22일 하오 9시50분부터 방영되며,23일에는 스티브 맥퀸·폴 뉴먼 등 호화배역이 빛나는 70년대 최고의 영화 ‘타워링’(하오9시50분)이 나간다.이어 24일에는 오드리 헵번·헨리 폰다 주연의 명화 ‘전쟁과 평화’(하오9시50분)가 다시 안방을 찾으며,25일 상오 10시부터는 ‘십계’를 감상할 수 있다. 1TV에서는 25일 하오 9시50분부터 윌리엄 와일러 감독,찰톤 헤스톤·캐시오드웰 주연의 ‘벤허’를 내보내며,만화영화 ‘아나스타시아’도 같은날 낮 12시10분부터 방영된다. MBC 역시 10여편의 특선영화를 마련했다.20일에는 카프카 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카프카의 심판’(낮12시10분)에 이어 사형집행에 대한 미국인들의 복잡한 태도를 조명한 ‘데드 맨 워킹’(하오10시30분)이 방영된다.성탄절 단골손님인 ‘나홀로 집에’도 1·2편이 24·25일 연속 방영될 예정.또 27일에는 크리스마스 휴가중에 일어난 환상같은 시간을 그린 ‘크리스마스의 추억’(낮12시10분)과 남편·아이를 잃은 여인이 벌이는 복수극을 다룬 ‘요람을 흔드는 손’(하오10시35분)이 선보인다. SBS는 22일 프랭크 허버트의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이빗 린치의 모래행성’(하오10시55분)을 내보내며,24일에는 성탄특선 성서영화 ‘모세’(하오11시45분)를 방영한다.이어 25일에는 어린이용 만화영화 ‘왕자님의 하얀 낙타’(상오9시30분)와 리처드 버튼·진 시몬즈·빅터 머추어 주연의 ‘성의(상오10시20분)’를 선보이고,29일에는 멜라니 그리피스·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사랑의 용기’(하오11시)를 내보낼 예정이다.
  • 청주시의원 살해범 구속… 배후 수사중

    청주시의회 이재만 의원(42)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청주서부경찰서는 11일 용의자 최명식(21·청주시 흥덕구 봉오동) 고기성씨(24·청주시 상당구 사천동)로 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최씨와 고씨는 사건 직후 종적을 감추고 도피하다 10일 대전시 아드리아관광호텔에서 자수의사를 밝힌뒤 출동한 형사대에 검거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배후를 캐는데 수사력을 모으는 한편 ‘화성파’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 “북­러 신조약 한국에 유익하게”/카라신 러 외무차관 회견

    ◎남북대화 최대 관심·4자회담 성과 기대 러시아는 북한과 협상중인 양국 신조약에서 러­북간 동맹관계 규정은 있을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레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성차관은 30일(한국시간) 모스크바 외무성 영빈관에서 한국 외무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러­북 신조약은 한국에도 유익한 조약이 되고,한국이 믿을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카라신차관과의 일문입답. -러시아와 북한간의 신조약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중인데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고려민주연방제’지지 내용 포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97년 1월,7월 두차례 협상을 가졌으며 내년초 3차협상을 가진다.러시아는 북한을 한국과 동등한 위치로 보며 한국에도 유익한 조약이 되도록 하겠다.북한과의 동맹관계는 없다.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은. ▲남북대화에 최우선 관심을 가지고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러시아는 4자회담을 지지하고 성과있기를 기대한다. -최덕근 블라디보스톡 영사 피살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1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는데. ▲러시아 경찰측은 목격자 4백명을 조사하고 법의학,생물감정을 했다.한국 관련 기관들과 긴밀한 접촉을 통해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 인도 정국 갈수록 혼미/구즈랄 총리 사임따라 새 연정구성 불가피

    인도의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는 인데르 쿠마르 구즈랄 총리(78)가 28일 연정 제휴세력인 국민회의당이 연정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정부구성을 요구하자 전격 사임했다. 구즈랄 총리는 이날 14개 소수정당으로 구성된 연정의 제휴세력 가운데 하나인 국민회의당이 라지브 간디 전 총리 암살사건에 드라비다진보전선(DMK)이 지원했다는 혐의를 조사하지 않으면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경고하자 K.R.나라야난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29일 새벽 수리됐다. 인도의 한 언론은 DMK가 지난 91년 9월 간디 전 총리를 암살한 타밀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는 보도를 했으며 국민회의당은 즉각 이를 조사하고 DMK를 연정에서 축출하라는 요구를 해왔었다. 이로써 인도정국은 총선이후 2년도 안돼 5번째 정부구성이 불가피해지는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작용하면서 혼란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은 나라야난 대통령이 새로운 연정이 구성되거나 총선이 실시되기까지 등의 일정시점까지 구즈랄 총리에게 계속 총리직을 맡아 달라고 해 구즈랄 총리는 당분간총리직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회의당은 구즈랄 총리가 사임을 한마당에 새로운 정부 구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아직 어느당도 조기총선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지금 연정에 참여한 연합전선 지도자들은 국민회의당이 포함되는 어떠한 정계 재편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바 있지만 국민회의당은 다른 일부 연합전선 참여 정당들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여기에는 타밀마닐라회의당,사마즈와디당,구즈랄 총리가 이끄는 자나타달당이나 최근 조직된 자나타달당 분파,텔레구 데삼당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인 나라야난 국민회의당 당수는 또 의회내 최대 야당인 힌두민족주의 계열인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에 정부를 구성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현재 인도 의회는 의석 545석 가운데 BJP가 163석,국민의회당 104석,그리고 15개 정당 연합전선이 177석 등을 나눠가지고 있어 어느 정파든 연정을 해야 하는 형국이다.
  • 인도연정 파국 위기/간디 암살 연루싸고 갈등

    【뉴델리 AP AFP 연합】 인도 연립정부가 26일 라지브 간디 전총리 암살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드라비다진보전선(DMK)을 연정에서 축출할 것인지에 관해 협상을 벌이자는 국민회의당의 완화된 요구마저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지난주부터 마비상태에 빠진 정국이 파국 직전의 위기상황에 처했다. 인데르 쿠마르 구즈랄 총리가 이끄는 연합전선의 S.자이팔 레디 대변인은 이날밤 3시간반에 걸친 장시간의 연정 지도층 회담후 “연정의 입장은 종전과 같이 확고하며 DMK를 국민회의당의 요구대로 연정에서 축출하지 않기로했다”고 발표했다.
  • “황장엽 소재 파악” 특명받아/간첩단 수사 뒷얘기

    ◎강연정 “김정일 장군 배신못해” 진술 거부/심정웅 “다 털어놔 속 시원하다” 고통 토로 ○…간첩 강연정은 붙잡힌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아침 여자수사관과 함께 화장실에 갔다가 용변을 마치고 질 깊숙한 속에 숨겨두었던 독약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기도,병원으로 옮겨진 지 3일만에 숨졌다. 당국은 주한 미 8군에서 구입한 해독제를 사용했지만 흡입량이 많아 살리지 못했다.수사 관계자는 “자살을 막기 위해 검거 즉시 옷을 갈아 입히고 체내에 독약을 감추어 두었을 것에 대비,관장까지 하지만 워낙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편 최정남에게서도 독약이 발견됐다. ‘청산액화가스’로 알려진 이 독약은 깨무는 즉시 기체로 변해 해독이 극히 어려운데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이다. 간첩 강연정은 붙잡힌 뒤 “나는 조국통일 사업을 위해 왔으며 김정일 장군을 배신할 수 없다”면서 진술을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부간첩단의 임무중에는 ‘황장엽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안기부는 황씨의 신변보호에 더욱 신경을 곤두 세우는 모습. 안기부의 고성진 대공수사실장은 이날 “이한영씨 피살사건에서도 확인했듯이 북한은 황씨를 반드시 테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황씨를 보호하는 일에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강조했다. ○…고영복 교수는 6·25전쟁 때 북한 의용군에 자원입대한 사실과 간첩으로 포섭 당한 경위를 자세히 진술하는 등 당국의 조사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수는 검거되기 직전 다른 고정간첩으로부터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기관원들이 덮치는 순간 흉기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고 안기부 관계자는 전했다. 당국은 “고교수가 73년 남북적십자 회담 자문위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정부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고정간첩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고설명했다. 당국은 얼마전까지 남한에서 활동중인 간첩을 핵심세력 1만여명,동조세력 3만여명 등 총 4만여명으로 추정했지만 고교수같은 고정간첩으로 드러남에 따라 그 수를 늘려 잡았다는 후문. 한편 심정웅은 수사에 협조적이었으며 실제로 “모든 사실을 밝히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계속 활동을 했다면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말해 그동안의 간첩생활에 대한 심적 고통이 적지 않았음을 내비치기도. ○…당국은 이날 송치된 고정간첩 외에도 2명을 추가로 적발했지만 뚜렷한 이적행위가 드러나지 않음에 따라 일단 무혐의 처리키로 결정. 한 관계자는 “이들 2명은 60년대에 월북했다 남파된 사람으로 공소시효가 지난데다 뚜렷하게 이적행위를 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북에서 가져온 난수표 등을 없애 버렸으며 간첩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해 계속 수사할 것임을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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