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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노근리’보상방안 한국에 전달

    한국과 미국은 13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양국간 공동조사 방법 및 범위 등을 본격적으로 협의한다. 12일 저녁 방한한 미 국무부 스탠리 로스 차관보는 13일 홍순영(洪淳瑛) 외교통상장관과 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황원탁(黃源卓)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과 연쇄 면담을 갖고 노근리 공동 조사 방안을 구체적으로 협의한다. 미국측은 노근리 관련 미군에 대한 면담 및 군사기록 조사 등은 단독으로처리한다는 입장이어서 한미 공동조사단 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은 이날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미측 입장을 담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의 서한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조성태국방부장관에게 전달했다.서한에는 조사방법과 일정,미군의 학살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보상방안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득정 오일만기자 djwootk@
  • [매체비평] 조선·동아의 표정읽기

    중앙일보 사태가 주초를 고비로 수습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이번 사태를 보는 조선·동아·중앙의 표정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중앙일보는 당국과의 전면전에 ‘정신이 없었고’,조선은 당국과 라이벌(중앙)간의 격전을 ‘즐기면서’ 줄타기를 했고,동아는 그 와중에 ‘2등 굳히기’를 위해 또다른 측면에서 총력전을 편 것이 ‘허둥대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중앙일보가 당국에 ‘판정패’(혹자는 KO패)를 당했다는 것이언론계 안팎의 평가인듯 하다.중앙으로서는 전력투구,힘겨운 싸움을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무리였던 셈이다.중앙이 유례없는 내부단합을 과시했지만 패한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지원군’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과거의 ‘카르텔동지’는 간 곳이 없고 대신 경쟁사회의 ‘비정함’이 자리를차지한 셈이다.8일자 중앙의 시사만화 ‘왈순아지매’에서 ‘정글의 법칙엔우군이 없고 대다수 구경꾼과 함께 ‘하이에나의 웃음’이 있다’고 한 것이 그 한 증표라 하겠다.‘우군이 없다’고 한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동업타사를 ‘비열한 동물’의 상징인 ‘하이에나’에 비유한 것은 주목되는 대목이자 만평자의 자가당착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지면을 살펴보면,중앙은 1면을 비롯,2∼5면(종합·해설),6면(사설·오피니언),사회면을 연일 이번 사태 관련기사로 채웠다.사설의 경우 2건을 게재하면서 이번 사태 관련 사설을 머릿기사로 올렸다.또 개인칼럼,공동칼럼,외부기고,취재일기는 물론 시사만화·만평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한마디로 중앙은 ‘옥쇄’의 자세로 총공세를 폈다.특히 특별취재팀을 구성,홍사장이 구속수감된 2일자부터 ‘국민의 정부 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 제하의 시리즈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당국과 ‘전면전’을 폈다.관점은 다르지만 보도량에 있어 조선·동아 역시 중앙에 버금갈 정도다. 동아는 1∼9일 연일 1면에서 이를 다루었고 조선도 9일에 이르러서야 1면에서 이 기사가 사라졌다.두 신문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이 4일자 사설에서 ‘중앙일보사태’를 짚었는데 관점은 판이하다. 조선은 전형적인 ‘줄타기’를 보여줬다.‘언론사주라고 해서 탈세로부터자유로울수 있는가’라고 묻고는 홍 사장의 불이익(구속)이 정권에 밉보인‘α’때문이라고 보고 있다.한마디로 중앙과 당국에 대해 양비론 펴며 빠져나갈 ‘구멍’을 교묘히 만들고 있다.특히 ‘대기업이 언론을 부수적으로 운영해서도 안된다’며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중앙일보측에서 나오는 해명서 전문을 꼬박꼬박 실어줘 중앙측의 할 말을 다 들어주는 양 선심을 썼다.6일자에서 홍 사장이 포승줄에 묶여 검찰에 소환되는 사진을 단독취재하고도포승줄이 보이지않게 상반신만 게재한 것도 중앙일보에 대한 ‘선심’으로보인다.조선은 선심은 선심대로 쓰면서 ‘재미’는 혼자 다 보고 ‘표정관리’에도 철저했다.반면 동아는 ‘중앙사태’를 이용하였다.4일자 사설에서 유신시절 동아가 받은 ‘광고탄압사태’를 자찬하고는 언론자유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돼야 한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중앙책임론’을 강조했다.6일자에서는 자사 기자가 찍지도 않은 홍사장의 ‘포승줄사진’을 초판 1면에 게재했다가 45판에서는 뺐다.아마 ‘오버’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그러나 동아는 이번 ‘중앙사태’를 계기로 ‘2등 굳히기’를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9일자에서 자사 지국장이 공정위에 중앙의 ‘무가지살포’ 고발 사실을 집중거론하고 다음날 사설에서 다시 이 문제를 다뤘다. 또 한나라당 내에서 ‘중앙일보지원’을 놓고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는 기사도 동아만 다뤘는데 취재원이 모두 익명처리된 것이 눈길을 끈다.동아는 여러군데서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허둥댄’ 구석이 역력하다.‘중앙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터진 ‘노근리학살사건’에 대해 ‘빅3’는 겨우체면치레 보도만 했을 뿐이다.중앙이 1일자 ‘왈순아지매’에서 미국 AP통신이 보도한 것을 두고 ‘우리가 할 일인데 쥐여 살다보니’라고 한 것은 명백한 ‘진실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정운현 특집기획팀 차장 jwh59@
  • CBS “노근리外 학살 더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CBS방송은 노근리사건을 포함,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국 양민학살사건은 적어도 3건이며 미군 당국이 이에 대해 함구령을내렸었다고 보도했다. CBS방송은 8일 뉴스프로에서 노근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양민학살에 가담한 레스터 토드 이병의 말을 인용,병사들의 사격에 의한 학살과 미 공군기에 의한 사살사건 등이 있었음을 보도했다. 최전선에서 싸웠던 레스터 토드 이병은 “사살작전이 개시돼 적을 향해 진격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살했다”면서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을 사살했다”고 증언했다.이 방송은 그러나 미 육군이 그에게 이에 대해 말하지 말 것을 지시해 그가 지금까지 언급을 하지않았다고 지적했다. CBS방송은 53년에 작성된 메모를 찾아냈는데 여기엔 “미국에 매우 당혹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폭로했다. 이 방송은 토드가 밝힌 이 사건은 최근 재조명된 3건의 미군 학살사건의 하나이며 이외 미군 공군기가 양민을 향해 발포한 것과 한 사찰에서민간인 83명이 학살된 사례도 있다고 보도 했다. hay@
  • [굄돌]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지난 주 내내 노근리 학살 사건으로 전 지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나는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면서 몇 가지가 뚜렷이 대비되어 마음이 착잡했다.어린딸과 아들을 미군의 총탄에 잃은 팔순을 앞둔 대책위원장 정은용 할아버지와 명령을 따라 무고한 양민을 향해 총알을 퍼부었던 퇴역 미군 증언자 할아버지.‘지구촌 경찰’을 자처한 미국의 추악한 두 얼굴.코소보와 동티모르 등다른 나라의 ‘인종청소’는 잘 알고 있으면서 정작 내가 태어난 한반도의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대다수 한국인들.사건의 사실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철저한 조사를 벌였던 미국의 통신사와 무고한 양민들을 잃고서도 피해자 증언조차 청취하지 않았던 정부.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져 있는 언론의 비겁함. 집요한 추적 끝에 이 사건의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한 것은 우리 나라의 언론이 아니라 가해자 미국의 통신사였다.미국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비밀 해제된 문서를 뒤져 그 당시 사살 명령서를 찾아낸 주역은 AP통신 한국인 민완기자다.그기자가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1994년 우리 나라 진보지인 한 일간지와 월간지의 기사였다고 한다.그리고 그 일간지 기사의 바탕이 된 것은 바로 현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장인 정은용 할아버지가 쓴 실화소설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이 책의 서술은 분명 육하원칙에 따라 씌어진 건조한 기사체와는 다르다.노근리 사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노근리 사건을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한다.그런데 왜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대다수 우리 언론들은 침묵했을까? 왜 우리 국민들은 여태까지 이 책의 출간을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를 ‘구해준’ 미국의 범죄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사상범으로 몰릴 수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나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금이라도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원한다.그래서노근리 사건 이외에도 거창,제주 4·3,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사건 등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의 증언에 뒤늦게나마 귀기울이기를 바란다.어쩌면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는 진정한 길인지도 모르니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 [외언내언]‘노근리’에는 왜 갔나

    6·25동란때 미군에 의해 양민이 대량학살된 충북 영동 ‘노근리사건’을조사하기 위해 지난 5일 현장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의 행태가 그곳 주민들은물론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노근리 양민 대학살사건 대책위’정은용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중 누군가가 “미군이 오인사격(誤認射擊)을 한 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정위원장이 “절대 아니다”고 답변하는 순간 의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에이…그럴리가 없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별거 아닌데 그만 가지”라는 말도 이어졌다. 놀란 유족들이 발언자를 살폈으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확인되지 않았다.이뿐 아니다.자민련 박신원(朴信遠)의원은 “우리 고향에서는 2,000명이 미군에게 죽었다”고 했다.유족들이 ‘그정도 가지고…’라는 뉘앙스로 듣고 항의하자 박의원은 “유사 사건이 9건이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유족들이 “그동안 정부가 진상규명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까지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엉뚱했다.“농담삼아 던진 이야기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느니,“의원들끼리 한 이야기인데(유족들이)쌓인 게 많아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는 식이었다. 국회 행자위 2반 소속 이들 국회의원들이 이날 보인 행태는 민족의 상처를뒤늦게나마 씻어주겠다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아니라 제3국 국회의원들의그것이었다.제3국 의원들이라고 무고한 양민이 대량학살당한 현장에서 그런태도를 보였겠는가.그렇다면 국민들은 “노근리에는 왜 갔는가?”그들에게묻지 않을 수 없다.AP통신이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던 때 국내신문도 보지 않았다는 말인가.“그들(피란민들)을 적군으로 대하라-Treat them(refugees) as enemy”라는 비밀해제된 당시 군 작전명령의 원문(原文)까지 나와 있었다.‘오인사격’은 무슨 얼어죽을 ‘오인사격’인가.게다가 ‘의원들끼리 던진 농담’이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거액의 출장비를 받고 농담이나 하려고 노근리에 갔다는 말인가.아녀자까지 포함된 무고한 주민 200여명이 학살당한 노근리사건이 ‘별것’아니라면,얼마나 많은 양민들이 떼죽음을 당해야 ‘별것’이 된다는 말인가.“나라가 참으로 큰일이다”라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장윤환 논설고문
  • [매체비평] 다시 도진 ‘외신 사대주의’

    한국언론의 ‘고질병’ 하나가 다시 도지고 있다. 이른바 ‘외신 사대주의’다. 지난달 30일부터 연일 국내신문·방송에 보도되고 있는 ‘노근리사건’속보기사도 그중의 하나이다.미국 AP통신 보도로 알려진 이 사건에 관한 기사는 이미 5년전 국내에 실태가 공개된 것으로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다만 그동안 국내 유수의 신문·방송들이 이를 외면해오다가 외신이 떠드니까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양’ 덩달아 떠들고 있는 셈이다.한국언론의 해묵은 병폐 가운데 하나인 ‘외신 사대주의’라고 하겠다. ‘노근리사건’이 외부에 처음 드러난 것은 민주당시절인 60년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낸 것이 계기였다.그러나 미군측의 기각으로 역사의 미궁속으로 빠졌다.이후 이 사건이 대중에 공개된 것은 정은용(鄭殷溶·76)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장이 94년 4월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실록소설을 출간하면서 부터다. 당시 이 책을 주목한 언론은 ‘한겨레’가 유일했다.‘한겨레’는 정씨와마을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그해 5월 4일자로 싣고 7월 20일자에는 다시집집마다 ‘떼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스케치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취재는 월간 ‘말’지로부터 시작됐다.국내언론이 이 사건를 별로 주목하지 않은 것은 일간지가 아닌,월간지가 사건을 다룬데 대한 의도적 폄하였는지도 모른다.‘말’은 그 해 7월호에 ‘6·25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00여명 학살사건’이라는 현지취재를 통해 처음으로 조명하였다. 2년 뒤인 96년 MBC는 ‘말’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시사고발프로 ‘2580’에서 다시 재조명하였다.그러나 이후로는 국내 어떤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하지 않았다.다만 ‘말’이 금년 6월호에서 ‘미 제1기병사단 병사들 마침내입 열다’제하의 기사로 다시 속보기사를 실었을 뿐이다. ‘말’은 이 기사에서 유족들의 증언을 입증할 수 있는 당시 미군측의 작전일지를 입수,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이 미군들의 ‘의도적 소행’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이번 AP통신의 보도는 결국 ‘말’의 자료협조를 토대로 여기에당시 미군들의 증언과 비밀해제 문건을 추가한 정도라고 할수 있다. AP 보도로 국내언론에 ‘역류된’ ‘노근리사건’ 보도는 한마디로 한국언론의 ‘몰역사성’과 ‘외신 사대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하겠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한겨레’의 보도는 단연 돋보였다.‘한겨레’는 9월30일자에서 이를 1면톱과 해설기사, 이튿날 10월1일자에 다시 종합면 전면기사로 다뤄 이 사건이 ‘역사적 숙제’임을 강조하였다.특히 10월 2일자에는베트남전 당시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인 ‘밀라이사건’을 소개하고 이 사건을 그에 못지 않은 사건임을 밝혔다. 반면 조선·동아·중앙일보를 비롯,여타 신문들은 사회면의 화제성 기사 정도로 취급하는데 그쳤을 뿐이었다.다만 한국일보가 발빠르게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의 기고를 받아 내용 가운데 일부를 1면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했다.중앙일보의 경우 9월 30일자 제2사회면 박스기사에서 “‘노근리 사건’의 진상이 미국 AP통신의 추적 취재에 의해 처음으로 밝혀졌다”며 이 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냈다.AP측의 태도도 문제는 있다.그동안 국내 월간지와 방송에서 보도한 내용은 싹 빼버린 채 마치 자신들이 최초로 단독 발굴,보도한 것인 양 떠들어댄 것이다. 정운현 특집기획팀 차장 jwh59@
  • [김삼웅 칼럼] 다른 양민학살도 밝히자

    6·25한국전쟁 발발 다음날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만행이 반세기 만에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나는 1995년 이맘 때 ‘해방후 양민학살사’란 책을 쓰면서 현지를 취재한적이 있다.50년 6월 25일 영동군 일대와 대전지역에서 피란온 많은 사람이노근리 부근 금광굴에서 피란생활을 하고 있었다.26일 한낮이 되자 미군이일본인 통역을 대동하고 나타나 주민들에게 마을을 떠나라고 명령하여 주민들은 내키지 않는 피란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피란민이 경부선 열차의 철길을 따라 노근리에 당도했을 때 미군들의 무전연락을 받은 미군 전투기 2대가 나타나 피란민들을 향해 무차별 기총사격을 가하는가 하면 인근의 미군들도 일제히 총을 쏘아댔다는 것이 생존 주민들의 증언이었다.4월혁명이 나던해 11월 유족들은 미국정부가 피해보상을 해준다고하여 서울에 개설한 소청사무소에 배상을 청구했다.그러나 소청사무소는 “법정기한이 경과한 후 제출한 것이기 때문에 심의할 권한이 없다”는 답변으로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곧 5·16쿠데타가 일어나 이 사건 역시 다른 양민학살사건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졌다. 불행한 한국 현대사는 수많은 양민학살의 비극을 겪어왔다.양민학살은 우리시대의 아물기 어려운 비극이고 상처이다.결코 덮어둔다고 아물 수 없는 상처인 것이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인민군이나 외국군에 의한 양민학살도 심했지만 우리군과 경찰, 우익단체들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도 수없이 많았다.학계는 45년 해방에서 공비토벌이 끝나는 10여년 동안에 6·25전쟁으로 인한 군인·군속 등 전쟁 관련 희생자를 제외하고도 줄잡아 100만 명으로 추산한다.희생자대부분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죽어갔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고한 양민들이었다. 이들은 좌익척결의 이름으로,공비토벌의 명분으로,통비분자라는 혐의로,용공이적·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어갔다.6·25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으로는 남원·문경·부산·해남·완도·고양·함평·임실·고창·순창·무주·산청·함양·거창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제14대 국회는 ‘거창 양민학살사건 관계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제정한 바 있고 현 국회는 ‘제주 4·3양민학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활동중이다. 또 고양시 금정굴 양민학살과 전북 함평지역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한 바 있다. 우리 민족처럼 망자(亡者)에 대해 정성을 다하는 민족도 흔치 않다.그런데무고하게 죽은 100만 혼령의 대부분이 유골 수습도 제대로 안되고 진상규명도 안된 가운데 반세기를 보내고 있다.이것은 사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더러 문명국가의 수치스런 일이다. 양민학살 실태에 대한 전국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더 이상 미루다가는학살실태를 밝혀줄 공공기관의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당시의 참상을 증언할 목격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행자부에 따르면 거창사건은 위령비 건립 등이 추진중이며 함양·산청사건도 진상규명이 끝나명예회복이 추진중이라 한다.여타지역의 사건도 조사에 나서야 한다.4월혁명후 세상이 바뀌면서 진상규명 작업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지만 군사정권은 유가족과 사회단체들이 유골을 찾고 위령비를 세우고 진상을 청원하는 행위를‘용공’으로 몰아 탄압했다. ‘국민의 정부’는 과거 정권과 달라야 한다.국회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적 조사에 착수하고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그리하여 유골을 수습하여 영원한 안식처를 만들고 위령탑을 건립하고,명예회복과 위령제를 지내용서와 화해의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때 남·북군 4만여명이 숨진 게티스버그에 링컨이 세운 국립군사공원,프랑코가 스페인 내전때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운 것에서 우리는 배울 바가 있어야한다.양민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미래에 그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못하도록 하는 역사 교훈으로서도 중요한 것이다. 김삼웅 주필
  • ‘노근리 학살’ 피해 신고 잇따라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대책위(위원장 鄭殷溶)’는 3일 피해자와 유족들이참가하는 전체회의를 오는 12일 오전11시 충북 영동군 영동읍 임계리 마을회관에서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 사건에 대해 한국과 미국 정부가 조사 활동할 예정인 점을감안,피해자와 유족들이 만나 앞으로의 대응방향 논의할 전체모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또 “이 사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추가 신고자들의 전화가잇따르고 있다”면서 “영동군에 추가 신고자 접수처를 마련하도록 요구할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이 국제문제로 비화되면서 미국의 CNN,ABC방송,시사주간지 타임(TIME),영국의 로이터통신 등 유력 언론의 현장 취재가 잇따랐다. 영동 김동진기자 kdj@
  • ‘노근리 사건’ 풀리지 않는 의문들

    [뉴욕 AP 연합] 한국판 ‘킬링 필드’ 노근리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많은 의문들로 가득차 있다.미 국방부 내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피란민들에게 발표 명령을 내린 지휘관은 누구인가.피란민들이 미군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았는가.미군 지휘계통의 어느 선까지 노근리의 진상이 보고됐는가. 육군 진상조사단은 이와 같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의 답을 구하기 위해 참전용사들로부터 보다 상세한 증언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이 모든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확보한다 해도 국방부가 왜 노근리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들을 더 이전에 적발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국방부만이 할수있다. AP통신은 지난달 말 수개월간에 걸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10여명의 참전용사들로부터 한국전쟁 초기인 50년 7월말 미 육군 제1기갑사단 제7연대가노근리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는 증언을 얻어내 보도했다.일부 제7연대 출신 참전용사들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중대장이었던 멜번 챈들러 대위가 현장에서 “모두 없애버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증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챈들러 대위가 무전을 통해 연대본부와 사전협의를 했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한 참전용사는 대대 수준의 장교가 발포 명령을 하달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다.그렇다면 더 윗선의 지휘계통,예를 들어 제7연대와 제1기갑사단 지휘부는 과연 노근리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현장 지휘관이었던 챈들러 대위는 70년 숨졌고 다른 대대 장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챈들러 대위의 상급 대대를 지휘했던 허버트 헤이어 대령은 88세 고령인데다 병을 앓고 있고 “학살사건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말하고 있어 육군 조사관들이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1기갑사단 복무규정은 피란민을 포함,방어선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장병들이 발포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다른 이웃 사단에서는 한 장군이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한국 전선을 책임지고 있었던 미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이,나아가서 도쿄에 체류하면서 한국 전쟁을 총괄했던 2차대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이 그같은 불법적인 명령을 재가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대두된다.또한 사후보고도 어느 선까지 올라갔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노근리 피란민 학살사건 규명에 나선 미 육군은 증언 확보에 앞서 먼저문서 검토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잘못은 없었는지를 엄정히 물어야 한다.
  • [만화로 보는 세상읽기] 김혜린作 ‘광야’

    광야는 거센 바람입니다.거센 바람을 맞고사는 젊음은 단단해질까요,부서질까요? 젊음은 욕망,치열한 욕망입니다.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보셨습니까.차라리 시달린다고 해도 좋을 그 치열함.그렇게 치열하게 그렇게 빨리 어디로 가는 걸까요? 김혜린의 ‘광야’는 일제라는 거대한 몰락의 시기에 한반도에서 태어나 생존을 걸고 자존을 찾아갔던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방황하는 젊음의 막막함이 왜 그렇게 사무치는지. 거대한 몰락이 운명처럼 덮칠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 타입이십니까? 조용히 적응하십니까,몰락을 견딜만큼 단호해지거나 당당해지십니까? 혹시 서로 상처내고 상처받으면서 미쳐가지는 않으십니까? 서로 신경질적으로 미쳐갈 것 같은 그 이상한 시대에서 사람들은 단지 살아남기에 필사적이고,살아남기보다 당당해지기를 원하는 젊음의 고뇌는 순결하기까지 합니다. “때로는 빨래가 되고 싶다./뇌도,심장도,내장도 없이/깨끗한 알몸/유쾌한깃발같은 빨래./펄.럭! 펄럭펄럭/줄을 벗어나 날고있는/파아란 하늘에 눈부시게 하얀 빨래.” ‘광야’에는 제암리학살사건때 가족을 모두 잃은 정옥이 나옵니다.원래는부드럽고 섬세한 여자였을 정옥은 안스러울 정도로 강해져 있습니다.미련없이 사랑을 버리고 선교사가 내준 행운(?)을 잡아 미국으로 뜨는 이 여자는이별의 예감에 캄캄해진 사랑 앞에서 오히려 단호합니다.이 기회를 꼭 붙들고 싶다고.그네들이 선심쓰듯 던져주는 동냥그릇이라해도 악착같이 붙들고싶다고.죄많은 이웃 일본의 패망을 보기위해 절대 착하지도,순하지도 않을거라고. 정옥의 미국행은 꿈도,희망도 아닙니다.따뜻하고 예쁜 집을 지을 수 없는막막한 광야를 견디기 위해 사랑도 버리고 꿈도 버리고 선택한 거친 길인 거지요. 애초부터 이들의 사랑이 불행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그렇지만 지금 이 목마른 곳에 온전히 행복하기만 한 사랑이란 게 대체 어디 있겠느냐고 속깊이 친구를 위로할 줄 아는 인물이 바로 김산입니다.조금 더 기다리면 김산이 김산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을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그 김산은 경찰망을피해 만주땅으로 떠납니다. 남은 사람은 불안하고 떠나는 사람들은 정처없습니다.그 불안,그 방황을 아시지요? 그때와 같은 강압은 없지만 그보다 더 교묘한 우민화가 치밀하게 진행되는 시대 아닙니까? 누나의 분내를,마주 잡고싶은 따뜻한 손을,머리결 고운 소녀를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그때 그 사람들이었다면,권력의이름으로,자본의 이름으로,경쟁의 이름으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몰이하는이 무서운 사회에 적응하느라 그리운 것들이 무엇인지를 아예 묻어버리고 사는 시대가 우리의 시대인 것은 아니겠지요.섬세하고 여린 것들이 비틀리고비틀리는 시대라면 여전히 무서운 시댄거지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
  • 클린턴“노근리 학살 철저 규명”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행정부는 노근리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는 한편 사실관계가 규명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 유족들에 대해 배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전 당시 미군의 노근리 학살사건에언급,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에게 가능한 한 모든 자료와 증거를 토대로 철저한 내막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코언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루이스 칼데라 육군장관에게 서한을보내 “보도된 내용에 대한 전면적인 사실관계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인도네시아를 순방중인 코언 장관은 “구체적인 정보가 나오면 분명히 이를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 차원에서 조사를 담당할 칼데라 육군장관은 “잘못을 저질렀음이드러날 경우 미국 정부가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행정부 차원의 배상도 배제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민주당 톰 대슐 상원원내총무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혀 의회 차원에서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hay@
  • 피난 민간인 敵간주 발포명령

    ?워싱턴 AP 연합? 지난 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충북 영동군 노근리 부근에서 한국 양민을 살해한 ‘노근리 학살 사건’이 미 정부 공식 문서와 미군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미 제1기갑사단,육군 25사단 사령부 명령서 등 미군 공식 문건 2건과 참전 미군 병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군은 7월26일 당시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쟁 발발 5주째인 당시 북한군이 농민 옷차림으로 위장,피난민 대열을 통해 미군 방어선으로 침투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미군 병력이 이에따라 어린이·여성 등을 포함,피난민 수백명을 살해했다.참전 병사들은 7월과 8월 두 차례 이와 유사한 피란민 학살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미 육군 25사단장 윌리엄 B 킨 소장은 7월26일 야전 지휘관들에게 보낸 명령서에서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민간인을 적으로 간주,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또 제1기갑사단 사령부도 명령서에 “전선을 넘어오는 자에게 발포하라”고 전했다.제1기갑사단에 근무했던 6명의 참전 장병들은 민간인을향해 발포했으며 또다른 6명은 대량학살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미군 병사들은 사건 발생 시간·장소나 희생자 중에 여성·어린이·노인들이 많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참전 미군병사들은 피살자 수가 100∼200명 또는 수백명에 이른다고 말했다.굴다리 부근에 있었던 참전 병사들은 사망자 수를 200여명으로 추산했으며 그밖에 상당수가 공군기의 기총소사로 숨졌다고 말했다.노근리 학살사건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 생존자들은 300명의 주민들이 노근리 다리 부근에서 살해됐으며 또다른 100명이 미군의 공습으로숨졌다고 말했다.사건 발생 당시 일본에서 한국전선으로 3일전 투입돼 우왕좌왕한 1기갑사단 7연대 2대대 소속 660명의 병력은 북한군이 침공해 오자인근 마을에서 피란민들과 만나게 됐다.한국 생존자와 몇몇 참전 병사들은미군기들이 피란민들이 있던 지역으로 갑자기 저공비행을 한 뒤 기총소사를하면서 학살이 시작됐다고 증언했다.미 공군 기밀 해제 보고서에 따르면 조종사들이 위장한 북한군이 피란민 대열에 있는 것으로 의심해가끔 민간인들을 고의로 공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인들에 대한 이같은 사살명령은 명백히 불법이다.참전 용사들은 중화기 중대장이었던 멜번 챈들러 대위가 상급자와 연락을 취한 뒤 굴다리 입구에기관총을 설치하고 발포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미 국방부는 AP통신의 이같은 추적 보도 내용에 대해 군 공식 기록에는 그같은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으며 학살사건에 관한 육군당국의 공식기록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밀 해제된 군 문서를 토대? 병력 이동상황을 재구성한 결과 제1기갑사단 4개 대대가 학살사건 당시 그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정부 진상조사 착수

    정부는 30일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한국양민 학살사건을 전한 AP통신의 보도 내용과 관련해 미국측과 협의,보도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우선 AP통신 보도내용에 대한 진위여부를 가린 뒤 사실관계에 따라 정부차원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 등 후속 대책을 마련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
  • [사설]‘노근리恨’풀어 줘야

    미국의 AP통신이 30일 확인해준 미군에 의한 세칭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반세기전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아픔과 이데올로기 대결의 비극성을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다.우리를 구하러온 미군이 공산군 아닌 남한의 양민을 집단학살했다는 사실,그 끔찍한 사건이 49년이 지난 이제야 세상에 속살을 드러내게 된 현실,그것도 한국 아닌 미국 언론의 노력으로 확인되게 된 경위 등이 하나같이 이 사건의 비극성을 적나라하게 재조명해주고 있다. AP통신은 미군 제1기갑사단과 제25사단이 지난 50년 7월26일,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서를 예하부대에 하달했음을 공식문서로 확인했고 당시 이들 부대에 근무했고 지금 생존해있는 몇몇 군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 민간인에게 발포했으며 또 일부는 대량학살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잊혀졌다기보다 일종의 ‘없었던 사건’이었다.피해자 유족들은 그동안 발을 구르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으나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다. 피해 마을은 민주당정권이 들어선 60년부터 미국정부와 관계기관에 수없이탄원서를 냈고 97년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보기도 했으나 아예 무응답이거나 ‘증거가 없다’,‘시효가 지났다’ 등의 이유로 기각되는 속에 반세기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노근리 사건이 얼마전 비밀해제된 미군문서에 의해 이제야 다시 드러나긴 했으나 모든 진상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우선은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정부는 정부대로,국회는 국회대로,또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미군이 노근리 부근에서 발견되는 민간인들을 적으로간주하게 된 경위,학살현장의 시말,피해규모 등이 정확하게 규명돼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날 노근리에서 있었던 진실을 토대로 미국으로부터 정당한수준의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 적법한 배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전시의민간인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은 전쟁당사국은 민간주민과 전투인,민간물자와 군사목표를 엄격히 구별하고 작전은 군사목표물에 대해서만 행하도록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며 인도주의에 관한 범죄,집단학살에 대해서는 시효를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상의 원칙이다. 이런 사건이 드러날 때마다 곤혹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의 모호한 태도다.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사회인식도 변해야 한다. 거창 양민학살사건,제주 4·3사건도 규명이 돼있지 않은 상황이다.이러한 반인륜적인 사건들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도 기필코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그리고 제2,제3의 노근리 사건은 또 없는가도 살펴야 한다.우리가이런 사건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있을 것인가.
  • 금강산관광 대금 현물지급 추진

    국회는 30일 법사·재경·통일외교통상 등 14개 상임위별로 소관부처와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이틀째 계속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의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은 “정부는 금강산관광개발 사업비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도록 현대가 북측에 주는 대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임장관은 이미 현대측이 북측과 현금 대신 곡물,가전제품 등 현물을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앞서 임장관은 “군사비 전용증거는 없으며 이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사업을 이용한 현대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 임장관은 통일부의 사업승인과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방북시점 전후의 현대건설,현대상선,금강개발의 주가 변화를 공개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자민련의 이건개(李健介)의원은 “2000년도 평양 8·15축전에 학생 및 친북인사의 방문을 허용할 계획은 없느냐”며 대북포용정책의 확대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임장관은 “정부는 교류협력의폭을 넓혀나가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발전에 따라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의원은 미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전문회사인 서전·런디사가 뉴욕의 유엔 북한대표부에서 북측과 접촉,6억달러 규모의 대북경수로 송배전공사를 극비리에 추진중인데도 정부가 이를 은폐,결과적으로한국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될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국방위의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은 충북 노근리에서6·25 당시 발생한 미군의 양민학살사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국방부 차원에서 사실여부를 확인중에 있으며 필요할 경우 미군의 비밀문건 확보와 현장조사 등을 통한 진상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국민회의 김민석(金民錫)의원은 정무위의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대한 감사에서 “청소년의 인터넷 음란 사이트 접속과 PC통신을 통한 원조교제 등의 실태가 심각하다”며 ‘청소년 통행금지구역(레드 존)’설치 미비 등 청소년보호장치의 문제점을 캐물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한국전산원 국감에서한나라당 이상희(李祥羲)의원은 “4대 사회보험이 내년까지 약 1,000억원을 투자해 전산망 확충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각각 독자적으로 작업을 추진하고 있어 호환성이 없는 등 예산낭비가 우려되고 있다”며 공공정보의 통합활용을 위한 시스템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풍연 이석우기자 poongynn@
  • 美행정부‘양민학살사건’확인 거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국무부 등 행정부는 29일 한국전쟁 초기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보도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이어서 답변이 불가능하다”며 논평하지 않았다. 제임스 폴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AP통신이 비밀해제된 문건과 참전용사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제1기갑사단이 50년 7월 한국인 피난민 400명을 학살했다고 보도한 내용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전혀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폴리 대변인은 미국이 전쟁에서 양민을 군사적인 목표로 정한 정책을 세운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전쟁법을 따르고 있다”고 말하고 “코소보전쟁 당시 미사일이 엉뚱한 데 떨어졌듯이 의도하지 않은 민간인 희생자는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hay@
  • [대한광장] 민주 기지론

    ‘민주기지론(民主基地論)’이라는 것은 원래 북한에서 전개된 이론으로 북한이 통일을 위한 ‘민주주의 근거지’로서 우선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1946년 봄­여름 사이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그때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이제는 남쪽에서 이 개념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아닌가 한다. 북쪽에서는 소군정의 지도하에 토지개혁을 하고 친일파들을 내몰고 이기분자(異己分子)들을 숙청하고 ‘인민정권’을 창출하여 통일에 대비한 ‘민주기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현 시점에서의 남쪽에서는 우선 산적한 문제가운데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신원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민주기지’로서의 선행조건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부러웠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들 사이에 상호 증오감이 적다는 점이었다.국민 사이에 서로 증오감이 적으면 적을수록,억울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나라는 강국이다.가난한 나라가 원자탄을 가지는 것보다도 월등히 효과적이다.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범주는 상당히 넓지만 그중에서도 6·25 이전에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제주도의 4·3사태가 그렇고 문경 석봉리의 한 마을 학살사건이 그렇다.대만에서는 1947년의 2·28사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의 처참했던 문화대혁명 뒤처리에 있어서도 대국답게 보상할 것은 보상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하였는가?지금에야 해결책을 모색중에 있는 느낌이 있다.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근자에 있어 문화방송의 4·3사건 특집들이 진지한 노력이라 생각된다.물론,필자는 ‘억울하게 된 원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소련과 그 주위라고 지목한다.북한에서의 소련군정은 알다시피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되는 세력은 인정하지 않고 당초부터 남한 미군정의 교란을 적극적으로 획책했었다.이것은 ‘쉬티코프 비망록’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하여,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 다시 꺼내는 것도 쑥스럽지만 남쪽에서는 사회상의 여러 기존 모순에,북쪽에서의 공세적 교란공작,미 당국의 ‘계산’과 ‘실책’ 등으로 혼란이 가중하여 갔다고 보여진다.의젓한 시골 선비가 좌경운동에 몰두하게도 되고 대지주의 자제가 월북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월남자,우익 민족주의자와 남쪽 기득권층(친일 부역자집단을 포함하여)으로서는 남한내에서조차 몰리면 갈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붙잡혀 필사 반격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에는 이로,피에는 피로’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얼마전 ‘대한매일’에 실린 ‘문경사건’을 생각해 보자.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은 평화스러운 산간벽지의 마을일 뿐이다.두 개의 상반되는 외세의 분단 점령이 없었던들 여태껏 평화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대는 북쪽에서 지리산쪽으로 게릴라가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했다.1949년 가을의 북쪽 신문을 보면 경북 산간지대에서는 피아의 교전뿐만아니라 생포한 경관들을 처단했다는 보도 등을 볼 수 있다.동료들이 생포당한 후 처형되는 것을 보고 발작적인 분노가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이러한 환경하에서 문경경찰서에서도 우호적이라고 분류된 석달마을 남녀노소가 전멸적 학살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6·25축소판의 비극을 6·25 이전의남한 사회에서 본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어른이 됐으니 나이에 걸맞게 서슴없이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을 하여야 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서의 역량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필자는 지난 8월 27일 새벽 일찍 떠나 800㎞를 주파하여 어느 시골에다녀왔다.1950년도 4월 빨치산과 좌익군인을 처형하는 천연색 동영상물(動映像物)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이다.당연하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너무도 슬픈 광경이었다. 통일,통일,부르기 전에 우선 주위부터 다지자.슬기로운 국민화합운동은 바로 통일의 첩경인 것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 한국언론의 ‘전문기자’17명 분석

    ‘전문기자’란 자신의 전문지식을 기사작성 때 활용해 특정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동시에 대안도 제시할수 있는 수준의 기자를 일컫는다.90년대 초반 우리 언론계에 등장한 ‘전문기자’라는 용어는 이제 우리 사회의 전문화 추세에 맞춰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월간조선’ 9월호에서 기획한 ‘한국언론의 프로,전문기자 17명의 세계’는 한국 기자사회의 전문화추세를 중간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1세대 그룹 전문기자로는 배병휴(58) 매일경제 편집고문이 꼽혔다.66년 매경 창간때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이 신문에서 내리 33년째 경제기자로 활동한 베테랑.재계 비화 등에 해박하다. 중앙일보 김영희(63) 국제문제 대기자는 언론계에서는 드문 국제통.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첫 보도,‘외신특종’을 기록한 주인공으로 최근 세계적인 거물들을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서울신문(현 대한매일)에서 ‘국장급 기자’라는 이색 직함으로 활동했던 고두현(64) ‘월간 태권도’ 편집장은 서울신문 체육부에서만 35년간 근무한 체육 전문기자.후배 부장의 지휘를 받으며 현장을 누빈 것으로 유명하다. 또 연합뉴스 출판국 사진담당 기획위원 윤명남(57)기자는 유신시절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일본인 2명의 사진을 보도,서울주재 일본특파원들의 취재대상이 되기도 했다.한국수산신보의 남달성(59)주간은 30년간 수산분야만을 취재한 수산분야 전문기자로 현재 해양수산부 수산정책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이밖에 2세대 전문기자로 90년 3당 합당설을 처음 보도한 이상철(51) 조선일보 부국장,야구전문 천일평(53) 일간스포츠 편집위원,축구전문 박광재(40) 문화일보 체육부 기자,바둑전문 이홍렬 조선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골프전문 김흥구(44) 한국경제 기자,기상전문 이찬휘(44) SBS 문화과학부 기자,무용전문 장광렬(41) 전 ‘객석’ 편집장,여성지의 특종메이커 이형옥(43) 우먼센스 편집국장,건설·부동산 전문 박성태(42) 대한매일 경제과학부 차장등이 소개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재키, 케네디 암살직후 호소편지 보내

    지난 63년 존 F.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여사가 당시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제발 싸움을 그만두고 양국이 평화롭게 지내자’는 요지로 호소 편지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러시아가 미국에 건넨 케네디 암살관련 비밀문건에서확인됐다고 미 CNN방송이 4일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재클린 여사는 자필로 쓴 이 서한에서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냉전상황이지만 후르시초프 서기장이 계속해서 자제력과 신중함을 발휘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재클린 여사의 편지 외에도 당시 KGB의 활동과 소련 외교정책 등을 담은 이비밀문건들은 이번 주중 국립기록보관소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들중 한 비밀문건에 따르면 재클린여사는 백악관에서 열린 남편의 추모식에 참석한 2명의 소련관리들에게 다가가 남편의 평화에 대한 염원을 되풀이강조하며 두나라가 평화롭게 지내야한다는 당부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문건들은 지난 63년 11월 발생한 케네디 암살사건의의혹을 밝히는데는 별로 도움은 안됐지만 당시 팽배했던 ‘소련연루설’을 재클린 여사와 소련 지도부도 알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목을 끌고있다. 케네디 암살에 관해 책을 쓴 메릴랜드 대학 역사학과 존 뉴먼 교수는 “재클린 여사가 암살사건으로 더욱 악화될뻔한 소련과의 관계를 순조롭게 풀고자 애쓴 노력은 매우 흥미있다”며 “그녀 역시 암살사건과 관련,소련연루설을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그녀의 행동은 여러 해석을 낳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경옥기자 ok@
  • 코소보 세르비아인 14명 피살

    ?헤이그 프리슈티나 AFP AP 연합?유고 전범 처벌을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루이스 아버 수석 검사는 지난 23일 발생된 코소보내 세르비아계의피살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 아버 수석 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14명이 학살된 이번 사건의 규모가 엄청날뿐만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억제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소보내 세르비아계 지도자들은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이 밀을 수확중괴한들의 공격으로 숨진 세르비아계 주민 14명을 적극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했다. 앞서 지난 23일 오후 세르비아계 14명이 코소보 중부의 한 마을에서 총에맞아 피살된 채 발견됐다고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측이 24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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