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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분해진 후세인

    집권 중 시아파 주민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측근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모든 피고인이 출석한 가운데 21일 다시 열렸다. 이번 재판은 두 주일 만에 처음 열리는 공판으로, 후세인과 그의 이복동생으로 지난 1982년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 당시 정보기관을 이끌었던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는 구금중 자신들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재판의 검사인 자파르 알 무사위는 전날 전화를 통해 5명의 검사측 증인이 법정에 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 재개를 위해 많이 준비했다. 증거가 있고 후세인이 서명한 자료들도 있다.”면서 “기소가 이뤄질 시점에서는 놀랄 만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세인은 이날 법정에 검은 양복을 입고 출두했으나 넥타이는 매지 않았으며, 재판 초기에는 피고인석에 조용히 앉아 특별한 제스처 없이 재판 절차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등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다. 후세인은 그간의 재판에서 반항적이고 때로는 투쟁적이며 이따금씩 법정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후세인 재판은 10월19일 첫 공판 시작 이래 지금까지 9명의 증인이 증언했다.바그다드 외신종합
  • [사설] 조작 가능성 제기한 유서대필 사건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가 1991년 5월에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당시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발생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에 대해 사건발생 당일부터 ‘유서대필’로 결론을 내린 뒤 이에 맞춰 무죄 증거를 배척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필적 감정을 의뢰한 검사와 필적 감정을 맡았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 사이에 “어떤 감정결과를 원하느냐.”는 통화를 했던 사실 등 조작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검찰은 이에 대해 “신빙성 있는 결론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법정 공방을 통해 유죄를 확정한 사법부에 대한 ‘도리’까지도 들먹였다. 경찰청 과거사위가 검찰 수사의 조작 가능성을 적시했으니 수사권 문제로 경찰과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검찰로서는 당연히 불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작 가능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필적 원본조차 내주지 않아 부실조사를 초래했음에도 과거사위의 조사결과를 폄하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다. 검찰 조사에 자신이 있다면 필적 원본과 관련자료를 모두 제시하면서 소명하는 것이 옳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를 과거 의혹사건 진상규명이 검·경 갈등으로 가려져선 안 된다. 권력기관 중 유일하게 과거사진상규명위 구성을 기피하고 있는 검찰은 하루속히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 동참해야 한다. 과거 검찰 수사에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 페스트/최수철 지음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페스트(pest)’는 14세기 중기 유럽 일대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이다. 급속도로 번져가는 악성 바이러스에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작가 최수철(47·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5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페스트’(문학과지성사)는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자살을 21세기 페스트로 규정하고, 이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원고지 3000장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소설의 무대는 인구 35만명의 소도시 무망. 최근들어 원인 모를 자살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살예방센터 OSP에 근무하는 강시우와 최동호는 한시간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자살현장을 쫓아다니며 전염병처럼 번지는 자살충동의 원인을 추적한다. 자살이 유행하면서 자살자의 유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컬렉터 집단이 생기고, 제약회사에서는 자살방지약 개발에 열을 올린다. 자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화되면서 도시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든다. 자살 시도자들을 격리수용하는 시립정신병원은 환자들에 의해 점거되고, 중세 페스트가 창궐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떠난 동호가 갑작스럽게 자살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폐쇄된 지방 소도시에서 원인 모를 전염병에 맞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알베르 카뮈가 1947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작가는 죽음에의 충동이 역병처럼 번지는 잿빛 도시의 광기 속에서 결국 인간의 삶 자체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여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작품 속에 프로이트, 융, 키케로, 세네카, 니체 등의 글을 인용하며 자살에 대한 종교적·철학적 성찰을 모색한다. 전 2권, 각 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양희은과 심수봉/이용원 논설위원

    ‘아침 이슬’의 가수 양희은이 데뷔한 해는 1971년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강대에 갓 입학한 19세 소녀는 곧 청년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1960년대 말 태동한 청년문화는 가요계에 ‘포크’라는 새 장르를 선보이던 참이었다. 당시 가요는 트로트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스탠더드 팝이 양분하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청바지가 딱 어울리는 소녀는 ‘아침 이슬’‘작은 연못’ 등, 이전에 볼 수 없던 서정성과 사회성이 짙은 노래를 맑고 고운 목소리로 사회에 퍼뜨린다. 그러나 75년 대마초 사건이 발생해 포크 계열 가수들이 대부분 퇴출당하고, 그녀의 음악적 동반자인 김민기마저 그 전해 강제입영되자 양희은의 목소리는 차츰 잦아든다. 심수봉은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본선 무대에서 그녀는 피아노를 치며 ‘그때 그사람’을 열창한다. 하지만 대학가요제 팬들은 느닷없는 트로트의 등장에 어색해 할 뿐이었다. 이듬해 음반이 나오자 심수봉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영광은 길게 가지 않았다. 음반 출간 6개월만에 ‘박정희 암살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녀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이어 등장한 전두환정권은 ‘아무 이유없이’ 그녀에게 활동정지 명령을 내린다.‘심수봉 시대’는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1970∼80년대 젊음을 보낸 ‘7080 세대’에게 양희은과 심수봉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름이다. 두 사람은 데뷔 과정부터 추구한 음악과 애호층에 이르기까지 상반된 이미지를 띠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둘 다 확고한 자기세계를 지닌 당대의 아이콘이었다는 점에서 취향에 상관없이 7080 세대에게는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 그 양희은과 심수봉이 오는 17일 합동무대인 ‘양·심 콘서트’를 연다. 양희은이 7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의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서다. 양희은과 심수봉은 여느 가수는 겪지 않는 정치적 외압을 경험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가수로서의 좌절 끝에 개인적인 어려움에 길게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 50줄에 들어 한 무대에 서는 모습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오래 소식 끊긴 누이를 재회하는 듯한 반가움을 준다. 아마 그것은 역사가 주는 해피엔딩의 선물일 게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하승균씨, 34년 형사생활 마감

    하승균씨, 34년 형사생활 마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평생의 한이 될 것입니다. 형사는 결과(검거)로 말하는 만큼 후배들은 미제사건을 남기지 말기 바랍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제 주인공인 하승균(59) 경기지방경찰청 수사지도관이 30일 오후 경기지방경찰학교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34년간의 강력 형사생활을 마감했다. 하 수사지도관은 강연에서 “영구미제로 남게 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제외한다면 30년 외근형사 생활은 성공적이었고 보람됐다.”며 “경찰, 특히 형사는 정의 실현의 첨병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후배 형사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용의자 심문은 인간적으로, 범죄심리학적으로 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인생에 대해 조언해줄 ‘멘토(후원자)’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지난 1971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하 수사지도관은 ‘광주 여대생 공기총 피살사건’ ‘포천 농협 총기강도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해결, 국내 최고의 사건통으로 손꼽힌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며 기록한 사건자료와 수사일지 등을 모아 2003년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는 자전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경기경찰청 최고의 ‘몸짱’이기도 한 하 수사지도관은 수원 월드컵스포츠센터 소장으로 발탁돼 앞으로 경기도민의 건강을 지키는 제2의 인생을 개척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황석영의 ‘손님’ 무대 오른다

    소설가 황석영의 역작 ‘손님’이 연극으로 공연된다.1980년대 ‘장산곶매’‘한씨연대기’ 등 그의 전작들을 즐겨 무대에 올렸던 극단 연우무대가 뼈아픈 분단의 상처를 기록한 문자들을 3차원 공간으로 불러냈다. 2001년에 나온 ‘손님’은 황해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요한·요섭 형제의 비극적 삶을 통해 한국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작품. 뉴욕의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 방문을 가기 전 고향에 있는 형 요한 장로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요섭은 형의 유품에서 박명선이란 여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한국전쟁중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의 끔찍한 악몽을 떠올린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윤광진 용인대 교수는 “전쟁에서 무참히 희생된 원혼들을 무대에 불러내 관객과 함께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 첫날(2일)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등 관계자들이 단체 관람한다. 전성환 한명구 예수정 등 출연.2∼1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02)762-0010.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후세인 “바르잔 지시로 주민 잡아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측근 7명에 대한 재판이 28일 바그다드 그린존 내의 이라크 특별법정에서 재개됐다. 후세인측 변호인단이 지난달 19일 변론준비 미흡을 이유로 재판일정 연기를 신청한 뒤 5주 만에 재개된 이날 재판은 그러나 오전 심리만 마친 뒤 또다시 다음달 5일까지 연기됐다. ●새달 5일까지 재판 또 연기 이날 오전에 진행된 재판에서 후세인과 측근 인사들의 기소범죄인 두자일 마을 주민 148명 학살사건에 관계된 증인의 첫 증언이 있었다. 이라크의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 책임자였던 와다 이스마일 알 셰이크는 비디오 증언에서 “바르잔(후세인의 이복동생 중 정보기관 책임자)의 지시로 군인들이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증언했다. 셰이크는 지난달 첫 재판 직후 교도소 병원에서 비디오를 녹화했으며 그 후 얼마 안돼 숨졌다. 또 이날 심리에서는 1982년 당시 두자일 마을을 지나던 후세인 전 대통령이 암살시도 직후 차에서 내려 군인들에게 “(마을주민들을) 분리한 뒤 조사하라.”고 지시하는 육성이 담긴 비디오 장면도 증거물로 제출됐다. 두자일 학살은 1982년 7월 이 마을을 지나던 후세인이 암살공격을 받고 주민 148명을 약식재판을 통해 처형한 사건이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첫 재판 이후 변호인 2명이 피살되는 등 변호인단의 신변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변론준비가 덜 됐다며 재판을 3개월 다시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민 주심판사는 그러나 오전 휴회 직후 피고인중 한명인 타하 야신 라마단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재판일정을 다음달 5일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양복을 차려입은 후세인 전 대통령은 코란을 들고 법정으로 들어섰으며 1차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리즈가르 모함메드 아민 주심판사를 도전적인 태도로 몰아붙였다. 후세인은 특히 미군의 계호를 받으며 수갑과 족쇄를 찬 채 4층 계단을 올라왔다며 불만을 터뜨리는가 하면 펜과 종이를 압수하면 어떻게 스스로 변호할 수 있겠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클라크 전 美법무 후세인 변호인으로 이날 재판에는 변호인단에 합류한 람시 클라크 전 미 법무장관이 처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클라크 전 장관은 민주당 출신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시절 법무장관을 지냈으며 최근 인권 변호사 및 운동가로 활동해 왔다. 후세인은 이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사형선고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은 미국인 1명을 포함해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외국인 4명이 바그다드에서 납치됐다고 확인했다. 김균미기자 외신종합 kmkim@seoul.co.kr
  •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조재곤 씀

    “나는 조선 관원이고, 김옥균은 나라의 역적이다. 김옥균의 생존은 동양 삼국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 1894년 3월28일 중국 상하이 둥허양행이라는 한 호텔에서 김옥균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홍종우가 중국 관헌에게 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홍종우는 특별히 주관도 없는 ‘무뇌아’로,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조선 정부의 사주를 받아 김옥균을 살해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조재곤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격동의 구한말, 김옥균 암살사건의 전말과 그 의미를 재조명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홍종우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국내 학계에서 내린 보수파라는 평가와 달리 그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프랑스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서구사상과 문화도 체득했다. 개화사상 면에선 오히려 김옥균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김옥균의 사상을 세계주의, 홍종우의 사상을 국제주의로 분석하면서, 두 개혁가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정면 충돌해 동반몰락한 것에 큰 아쉬움을 토로한다. 결국 김옥균 암살은 일본이 청과 조선을 침략하는 빌미가 됨으로써 조선의 운명에 절대적 악재로 작용했음도 밝힌다.1만 4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설] 도청·X파일 수사 흔들려선 안된다

    국민의 정부시절 국가정보원 국내정치담당 2차장을 지낸 이수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이 진상조사에 들어간 만큼 자세한 자살이유는 조만간 밝혀지겠지만 자신이 모셨던 신건 전 국정원장이 불법도청사건으로 구속되자 심리적인 부담을 견디기 어려웠으리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정보맨’으로서 무덤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을 검찰조사과정에서 누설한 자책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경위야 어떠하든 이씨의 죽음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코 되풀이돼선 안 될 비극이다. 더구나 이씨의 죽음이 국가적 범죄인 국정원 불법도청 수사와 문민정부 시절의 안기부 ‘X파일’ 수사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씨의 죽음을 정파적 이해에 따라 재단하려는 정치권 일부의 기도는 잘못됐다고 본다.‘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사건에 사과해야 한다.’든가 ‘무리한 수사에 따른 불가피한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억지다. 검찰은 먼저 신속한 자살진상규명을 통해 정치권의 억측을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당초 예정대로 불법도청의 수사를 마무리한 뒤 도청문건 유출사건과 안기부 미림팀의 ‘X파일’사건으로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형평성’이니 ‘지역정서’니 하는 것은 정치권이 검찰수사에 흠집을 내기 위해 동원하는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이다. 검찰이 이번에야말로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전국민을 상대로 자행한 조직적인 범죄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으면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검찰이 흔들려선 안 될 이유다. 정치권은 검찰 수사에 참견만 하려들지 말고 특별법이든 특검법이든 ‘X파일’ 수사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의 직무유기가 검찰 수사를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다. 불법도청과 ‘X파일’의 진실을 가장 두려워하는 세력이 정치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 땅에서 도청 공포를 추방하는 데 밀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영인본 만든 정진석 교수

    “일부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가 인용해서 공평하게 쓸 수 있는 자료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해방공간 4개 일간지 영인본(影印本) 작업을 마무리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정보의 민주화’로 그 의미를 평가했다. 영인본은 말 그대로 문헌 자료를 사진(影)으로 찍어 인쇄(印)해둔 책(本)을 말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종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업이다. 정 명예교수는 서울·경향신문 조선·동아일보 등 4개 일간지에서 1945년 8·15광복에서 1950년 6·25전쟁 때까지 발행한 신문을 모아 영인본을 냈다. 서울 반포 연구실에서 만나 이번 작업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영인본을 만든 가장 큰 뜻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1차자료’로 활용하자는 데 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1930∼40년대 시대상황에 대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주로 문화사나 생활사쪽에서 이뤄지는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당시 발행된 ‘잡지’에 기대고 있다. 신문도 소중한 기초 연구자료로 쓰일 수 없을까. 쓰일 수 있다. 다만 잡지와 신문의 차이도 봐야 한다. 신변잡기적 소재를 다루는 잡지와 달리 신문은 아무래도 정치사회적 이슈에 집중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잡지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역사를 공부했다는 저 역시도 이번 기회에 해방공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요즘 대표적인 ‘수구언론’쯤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남북협상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는 사실이나,38선을 경계로 수시로 일어났던 남북간 무장충돌도 때로는 100여명의 사상자가 생길 정도로 큰 규모였다는 점 등이다. 여순사건도 마찬가지다.“당시 현지에 기자를 보낸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현장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불고 있는 과거청산 논의는 다소 못마땅하다. 장지연의 경우 단편적인 글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이다.“고종의 손자는 일본군 중좌로 히로시마 원폭에 죽습니다. 일본 국방상이 애도하고 대좌로 추서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도 친일입니까?” ‘누가 이랬다더라’식의 한건주의가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과 구체적 행동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물론 과거사를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작업에 필요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 작업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영국만 해도 인덱스(index·색인)작업을 높이 평가합니다. 인덱서(indexer)를 전문가로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외면합니다.” 정 명예교수는 국가의 관심부족을 아쉬워했다.“국가가 할 일은 평가 자체가 아니라,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충실히 보존·관리하는 겁니다. 평가는 전문 연구자들간 토론과 합의에 맡겨야지요.” 그래서 정 명예교수는 영인본을 해외 한국학자들에게 보내는 것에 더해 150쪽 분량의 별도 요약집도 낸다.8·15광복이나 6·25전쟁, 김구 선생 암살사건, 북한의 위장평화공세 등과 같은 주요 사건들에 대한 기사만 따로 뽑을 예정이다. 정치적 사건만 다루면 딱딱해질 것을 우려해 서울신문에 처음 선보인 연재만화 ‘블론디’(지금은 한국일보 연재),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처음 발표된 경향신문 지면 등도 함께 넣을 생각이다.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출판기념회 때 내기 위해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영인본을 만들면서 정 명예교수가 가장 신경쓴 대목은 영인본을 펴보는 게 당시의 신문을 펴본다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는 점. 이 때문에 없어진 면은 영인본에 백지 그대로 넣었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대판(지금의 신문크기) 신문은 영인본 첫 페이지에 축소판을 넣고 다음 페이지에 대판 크기의 신문 한 면을 두 페이지에 걸쳐 실었다. 두면에 걸친 제목과 레이아웃을 고스란히 살리겠다는 ‘고집’ 때문이다. 글·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수일 前차장 자살 파장] 청와대 이틀째 “…”

    청와대는 21일에도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의 자살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렸지만 이 전 차장의 자살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 APEC을 유치하고 준비한 모든 분들이 박수를 받을 만하다.”면서 “특히 제일 수고한 분들은 경호와 안전, 질서유지를 담당한 사람들”이라고 APEC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참모들도 이 전 차장 자살사건을 꺼내지 않았으며, 이 전 차장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청와대는 APEC의 성공적 개최 기조가 이 전 차장의 자살사건으로 전환될지를 우려하는 모습이다. 핵심 관계자는 “APEC 행사의 기조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사과하라는 한나라당의 요구에 대해서는 “정치공세에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일축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산청·함양 양민학살’ 모의재판 열띤공방

    “5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배상을 요구하는 겁니까. 권리행사를 태만히 하는 동안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습니다.”(피고측 변호인)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자행한 학살이므로 시효와 상관없이 배상을 해야 합니다.”(원고측 변호인) 3일 오후 숭실대 벤처관 강당.6·25전쟁 당시인 1951년 육군 11사단이 경남 산청·함양지역에서 지리산공비 토벌작전을 벌이다 양민을 학살한 사건의 배상을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이 자리는 이 학교 법대생들이 마련한 ‘제1회 민사모의재판-시효와 정의’. 학살사건의 유족인 원고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 설정됐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의 내용을 다룬데다 현직 판사와 변호사 등 실제 법조계 인사들이 재판부로 참여해 여느 모의재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지했다. ●현직 판사·변호사들 참여 원고측은 “피고는 국가권력이 군사력을 통해 인권침해를 자행해서는 안된다고 천명한 헌법 제10조를 위반, 민법 제750조에 따라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입은 물질적,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개인당 1억원씩의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피고측은 “이미 50년 이상 지난 사건으로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반박했다. 특히 발생 이듬해에 군사재판이 열려 당사자들이 처벌받은 거창 양민학살(51년)과 달리 산청·함양 주민들은 권리태만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자 원고측은 “거창 사건 가해자의 대부분은 1년도 되지 않아 방면됐다.”면서 “군인에 의한 학살이라 박정희·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권리 행사가 불가능했고, 후에도 유족의 심리적 불안이 계속돼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참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범죄 시효특례법´ 관련주장도 96년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희생자들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손해배상을 담은 법 개정안에는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 실제 금전적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법정에서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영원히 없애는 내용으로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과 관련된 주장도 제기됐다. 원고측은 최후변론에서 “가해자가 군인이라는 것이 입증된 이상 손해배상 청구는 잘못 없는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국가의 도덕적인 보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판결의 순간. 배심원 12명 가운데 9명은 “법적 안정성보다 법이 근본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정의실현이라는 측면이 더 중요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을 빼앗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배상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원고승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적 안정성에 더 무게를 둬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 ●배심원 “배상” 재판부 “법적안정성”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거창사건 가해자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국가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법령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국가가 구호조치를 소홀히 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의 책임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고 판결하며 “국가가 빠른 입법으로 위와 같은 피해를 입은 원고의 아픔을 달래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재판에는 서울남부지법 김상훈 판사와 문태현 변호사, 김혜균 변호사 등이 재판부로 참여했으며 서울대 법대생 등 12명이 배심원으로 나섰다. 유지혜 홍희경기자 wisepen@seoul.co.kr
  • “6·25때 민간인학살 20만~25만명”

    한국전쟁을 전후로 최소 20만여명에서 최대 10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31일 시민단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45∼1953년 동안 남한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모두 700∼800여건이 발생해 민간인 20만∼25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살 규명위는 지난 5년간 전국에 걸쳐 민간인 학살사건의 생존자와 유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이같은 조사결과를 모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실태보고서’를 11월 11일 발간할 예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한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사건 가운데는 미군에 의한 학살 150건과 인민군에 의한 학살 90건 등이 포함돼 있다.1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사건도 30여건에 달한다. 특히 경주 코발트 광산에서 3500여명이 학살당했으며 강화도 지역에서도 모두 1000여명 이상이 학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살규명위 관계자는 “현재 막바지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번 보고서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이면 학살자 숫자는 100만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시리아 ‘경제 제재’ 피했다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의 암살 배후로 지목된 시리아가 유엔의 제재 위협을 코 앞에 두고 긴장이 고조됐으나 우방의 도움으로 한숨을 돌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1일(현지시간) 15개 이사국 외무장관 회의를 열어 시리아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으나 러시아와 중국 등 거부권이 있는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핵심인 ‘경제 제재’ 내용이 빠진 채 표결에 부쳐져 통과됐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공동발의한 결의안 초안은 지난 2월 발생한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 조사에 시리아가 전폭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경우 경제제재 등을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표결 직전 ‘협조 않을 경우 필요하면 추가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 ‘시리아가 테러리즘에 대한 지원을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도 막판에 빠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전날 주최한 만찬 이후 상임이사국 5개국 외무장관들이 이날 아침까지 협상을 계속한 결과다. 결의안에는 그러나 최근 유엔 조사단이 암살 용의자로 지목한 시리아 및 레바논 인사들에 대한 구금과 자산 동결, 여행 금지 등의 내용은 포함됐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 대사는 당초 “9개국 이상이 지지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었다. 결의안이 채택되려면 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5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 알제리 등은 유엔 조사가 12월15일까지 연기된 만큼 제재 조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였다. 앞서 시리아는 자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유엔 제재를 피하려고 총력전을 펼쳤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결혼하면 아이 못낳게 수술도

    “70년대 후반까지 정착촌이 아닌 마을에 들어가면 붙잡아서 소록도로 보냈다. 심지어 80년대 초에도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수술을 했다.” “정부는 한센협동회를 조직해 한센인을 지원했지만, 이들은 한센인들을 못살게 굴었다. 정부가 지원한 것은 선거 때 여당표가 필요해서였다.” ●인권침해 사례를 정리하는 데 의미 지난 3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은 서울대 정근식 교수팀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한센인에게서 과거의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으로 정리한 구증들이다. 정 교수팀이 수집한 증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가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이나 국군이 마을을 점령하면 마을 사람들이 점령군에게 막걸리를 사주며 정착촌에 있는 한센인을 반대파로 몰아 학살하는 ‘막걸리 학살’이 만연했다. 이 기간 동안 한센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좌익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학살당했다.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경남 함안의 물문리 학살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센인들은 1950년 7월 하순쯤 관동교 다리 밑에서 국방경비대, 경찰, 지방청년단 등에 의해 29명이 숨졌다고 증언했다.“좌익”이라는 마을 사람의 제보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한센인 대부분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좌익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센인 인권침해 3대 사건의 하나인 비토리섬 학살 사건의 경우,1962년 섬을 개간하러 들어간 한센인 26명을 살해한 가해자 3명에 대해 법원은 징역1∼2년의 형을 선고했을 뿐이다. ●60년대 주민에 의한 인권침해 국가가 눈감아 독재정권 시절에는 분열한 한센인들이 서로를 탄압하기도 했다. 일본이 한센인간 격리정책을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온 반면, 우리나라는 60년대부터 격리수용을 포기하며 사실상 이들을 방치했다. 한 곳에 사는 일반인과 한센인간에 분쟁이 생기면 한센인들 대부분은 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당연히 챙겨야 할 권리마저 빼앗겼다.5·16 이후 소록도에 남아 있던 한센인들이 한 오마도 간척사업 때도 그랬다. 한센인들은 개간된 땅을 불하받는 조건으로 일했지만, 인근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한 마지기의 땅도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개간한 땅을 나눠주면 주변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겠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센인에 대한 재산권 침해 등이 공권력에 의해 일어났지만, 오랫동안 격리된 탓에 이들에 대한 자료나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정근식 교수는 “오마도 간척사업에 대해 한센인들이 공사의 40%를 진행했는지,60%를 진행했는지에 대해 당국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실태조사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인권침해 대부분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한센인들을 차별한 주체가 일반 주민들이었던 경우에도 차별을 묵인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1인당 정부예산 年43만원 그쳐

    1인당 정부예산 年43만원 그쳐

    한센인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이 박혔다. 한센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로 평생 고통을 받아왔던 고령의 한센인들이 지난 25일 일본 도쿄지방법원의 비상식적인 판결에 울분을 삼켜야 했다. 일본 법원이 일제 식민지 시절 소록도 갱생원에 강제수용됐던 한국인 한센인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한 반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타이완인들이 제기한 청구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일본측에 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한편 식민지 요양소에 수용됐던 한센인들에게도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센인에 대한 인권 문제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지원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한센인 1만 7000여명 국내에 있는 한센병 병력자들은 대략 1만 7000여명에 달한다. 국립소록도병원 등 요양시설에 1600여명, 전국 88개 정착촌에 6000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나머지 9000명이 넘는 병력자들은 자신의 집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 국내 한센병 병력자들이 격리수용되지 않고 정착촌이나 자신의 자택에 거주하게 된 것은 지난 1963년 2월 관련법에서 격리수용 조항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때부터 1963년 2월 전까지 한센병 병력자들은 격리수용됐었다. 현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인 자혜병원이 바로 한센병 환자들의 격리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국립소록도병원에는 예전에 격리수용됐던 70세 이상 노인 등 689명이 살고 있다. 한센병 병력자들이 격리수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한센병의 전염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센병 환자 곁에만 있어도 전염돼 격리해야만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한센병은 양성인 경우에만 전염된다. 그러나 양성인 경우도 리팜피신이란 치료제를 단 1차례 4알(600㎎)만 복용하면 음성으로 바뀌어 전염력이 99.9% 사라진다. 신체는 물론 성접촉·임신을 통해서도 감염되지 않는다. 특히 95% 사람들은 한센균에 대한 저항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한센병 신규 환자가 매년 20명 정도만 발생한다. 한센병은 약물 복용으로 1∼2년이면 완치된다. 예전엔 치료시기를 놓쳐 변형된 손·발로 살아가는 한센인이 많았지만, 최근 발병한 환자들은 피부 반점 정도만 남는다. 치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몸속 나균은 전염력을 잃는다. ●한센인 지원법 국회 계류 중 한센인에 대한 지원은 극히 미미하다. 내년도 한센인 관련 예산은 한국한센복지협회운영지원을 위한 15억여원과 한센생활시설운영지원을 위한 19억여원 등 74억여원에 불과하다. 이는 전염병예방법에 따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에 따른 예산일 뿐이다. 한센인의 생활안정과 한센인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 등에 대한 예산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센인들은 사회적인 편견 등으로 구직 기회를 얻지 못해 대부분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정착촌에서 거주하고 있는 6000여명의 한센인 중 4500여명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다. 국립소록도병원에 거주하고 있는 689명도 모두 국민기초생활수급자다. 그러나 자신의 집 등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머지 한센인 9000여명에 대한 실태는 파악조차 안돼 있다. 본인들이 한센인임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국회의원들은 한센인 피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열린우리당 김춘진 의원이 지난달 16일 여·야 의원 62명의 서명을 받아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것이다. 법안은 한센인격리사건,84인학살사건 등 피해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보상, 한센인에 대한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지급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하리리 암살에 시리아 개입”

    TEXT 유엔이 지난 2월 발생한 라피크 알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사건에 시리아가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시리아에 대한 제재방안이 본격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4개월 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유엔 조사단은 20일(현지시간) 공개한 보고서에서 이 사건을 “테러 행위”로 정의한 뒤 “최고위급 시리아 안보관리들의 승인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2월14일 발생한 하리리 암살사건은 레바논의 이른바 ‘백향목 혁명’을 촉발시켰으며 29년 만에 시리아군의 완전 철수,6월 총선에서 반시리아계 야당연합의 승리로 이어졌다. 보고서는 하리리가 암살당하기 전 시리아와 레바논 정보당국이 전화도청을 통해 그를 감시했고, 사고현장 근처에서는 통신안테나가 전파방해를 받았다고 밝혔다.“지난해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뒤 레바논과 시리아의 고위 관리들이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을 결정했다.”는 레바논 거주 시리아인의 진술도 시리아 개입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같은해 8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하리리와 만난 자리에서 친시리아계인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의 임기를 3년 연장할 것을 제의했으나 하리리가 강력 반대한 뒤 시리아 정보당국이 하리리에게 경고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조사가 사실상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매형이자 시리아 정보당국 책임자로 권력 2인자인 아세프 샤우카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 보고서를 계기로 시리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조사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찾아냈으며,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은 시리아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을 겨냥한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유엔 안보리는 오는 25일 데틀레프 메흘리스 조사단장으로부터 정식 보고를 받는다. 신문은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 유엔 안보리가 시리아에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 협상과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는 별도로 다음주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간섭 중단 및 무장 해제를 요구한 안보리 결의안 1559호를 시리아가 준수했는지를 조사한 보고서가 유엔에 제출될 예정이어서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시리아 공보장관은 유엔 보고서에 대해 “시리아 정부에 적대적인 인사들의 주장만을 근거로 작성된 정치적 성명”이라고 비난했다.장택동기자 외신종합 taecks@seoul.co.kr
  • [20&30] 30대 童顔의 ‘얼굴이야기’

    [20&30] 30대 童顔의 ‘얼굴이야기’

    “20대 땐 괜찮죠. 푹 자고 나면 좋아지니까. 문제는 30대부터예요.” “30대 여성의 65%가 잔주름을 고민한다.” 대한민국 30대 여성들의 고민을 드러내는 화장품 CF의 내레이션들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게 물리면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독사에 손목을 내밀었다. 젊음은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가치인 것이다. 또래보다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이상 어려 보이는 동안(童顔)을 가진 4명의 30대. 얼굴과 피부는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지만 몸도 마음도 20대로 살고 있는 그들의 봄날 같은 ‘얼굴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 얼굴은 아직 봄날…“얼굴은 자신감의 표현” 결혼 10년차 주부이자 초등학교 2학년 가영이의 엄마인 윤상화씨는 지난 7월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영진약품이 주최한 동안선발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녀에게 37세란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상화씨는 30대 주부로 인생의 전환기를 찾고 싶어 대회에 출전했다.‘어린 얼굴’은 그녀에게 모델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부여했다. 상화씨는 “광고사진을 찍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됐다.”면서 “어린 얼굴이 밝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나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1972년생 쥐띠인 김수진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린 티가 팍팍 난다. 그녀 역시 같은 대회에서 2위를 했다. 패션 코디도 소녀풍이다.‘얼짱·몸짱’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 인터넷 얼짱카페의 운영자로, 잡지의 주부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커리어 우먼이자 네 살된 아들을 둔 30세 김지영씨도 주위로부터 ‘공인’받은 동안.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그녀를 20대 초반의 미혼으로 오해하는 직장 동료도 많다. 세 사람 모두 출산 후에도 몸 만들기에 적극적이었다. 매일 배를 중심으로 온몸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스트레칭 등 단 하루도 허리살과 뱃살을 빼는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제 동안의 비밀은 ‘얼굴 비율’. 얼굴 각 부분의 비율이 어린 아이와 비슷할수록 어려 보인다. 어린이의 얼굴은 가로대 세로의 비율이 1대1이다. 동안인 어른의 얼굴도 대체로 어린이와 비슷해 동그란 얼굴형이다. 보통 성인 여성은 1대 1.30∼1.32, 남성은 1대 1.32∼1.34다. 일반적으로 볼이 홀쭉할수록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들만의 ‘얼굴’ 관리법 태어날 때부터 동안이라고 해도 꾸준한 관리는 필수적이다.‘얼굴=건강’이라는 이들에게 세안과 식단, 운동 모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수진씨는 한방 위주로 관리한다. 세안은 한방 비누로 한다. 그리고 삼백초·귤껍질 등의 재료를 직접 사다가 달여 마신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매일 1시간씩 운동을 거르지 않는 것도 얼짱·몸짱이 되는 비결이다. 외출할 때는 자외선 방지 크림을 바르고 아침 식사는 절대로 거르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지영씨는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클렌징을 거르지 않는다. 매주 2차례씩 요구르트, 율무가루, 한방팩으로 마사지를 하고 얼굴 각 부위를 가볍게 꼬집으며 마사지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정기적인 운동보다는 매일 20분씩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그녀는 사우나를 적극 추천한다. 매주 수요일·금요일에 30분씩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몸에 탄력을 불어넣는다. 상화씨는 아침·저녁 녹차 세안을 빠뜨리지 않는다. 아침 식사는 과일이다. 저녁 식사 이후에는 절대로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 탄산음료와 기름진 음식도 먹지 않는다. 39세로 꽉 찬 30대인 미혼남 윤광원씨의 아침은 한 잔의 물과 비타민으로 시작된다. 비타민C와 비타민E는 신체 구석구석에 작용하는 항(抗)노화 물질이다. 샤워할 때는 보디로션을 바르고, 매주 한번씩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영업직인 그의 ‘청춘 관리’의 최대 적은 술.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몸도 마음도 청춘…삶은 도전이다 어려보이는 얼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젊음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열린 가슴에서 젊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광원씨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에 부부동반 모임에서 친구들의 와이프들로부터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마음도 청춘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고 댄스 음악을 듣는다. 자기보다 14세나 어린 여자친구와 취미생활을 공유한다. 나이 든 티는 결코 내지 않는다.20·30대 회원들이 대부분인 산악동호회 활동을 통해 젊은 인생을 꿈꾼다. 지영씨는 회사 인근의 댄스스쿨에 가입, 살사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살 정도로 스노보드 마니아다. 피어싱에도 도전해 볼 참이다. 이들 모두에게는 어린 얼굴 외에 공통점이 있다. 각자 취미 활동을 즐기고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라는 점이다. 독학으로 포토샵(컴퓨터그래픽 소프트웨어)을 배워 인터넷 홈페이지를 디자인하는 ‘호기심 천국’ 수진씨. 그녀는 얼짱 카페를 통해 늘 20대와 어울린다. 상화씨는 쇼핑호스트라는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계획이다.‘건강한 얼굴’은 스스로 알지 못했던 끼를 발견케 했다.“아름답게 늙고 싶습니다.”아름답게 나이 먹는 것, 그들에게 삶이 축제가 되는 또다른 이유다. 안동환 김준석기자 sunstory@seoul.co.kr
  • [CEO칼럼] 10가지 ‘메가 쇼크’ 이겨내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CEO칼럼] 10가지 ‘메가 쇼크’ 이겨내자/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한국과 한국기업, 한국인이 각각 좋은 나라, 좋은 기업, 좋은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 10가지가 있다.10가지 메가 쇼크(Mega Shock)를 이겨내야 한다.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너무 한가로워 쓰나미와 같은 메가 쇼크라고 불러야 옳다. 첫째, 세계화 쇼크다. 탈 냉전, 국경의 붕괴, 무한 경쟁, 글로벌 스탠더드, 카지노 자본주의, 달러 대 위안화, 기업의 찰스 다위니즘(생물진화 요인에 대한 찰스 다윈 이론), 투명 경영 등등. 세계화 하면 생각나는 숨가쁜 키워드들이다. 어느 것 하나 만만찮다. 이 모든 단어들이 어느날 갑자기 몰아닥쳤다. 세계 자본을 겪으며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다. 영국계 펀드 소버린은 SK의 경영권을 압박하는가 했더니 거액의 차익을 먹고 사라졌다. 골드만 삭스도 외환위기후 화의 중이던 진로를 주무르며 거액을 챙겼다. 이제 국가라는 보호막 속의 지역주의 로컬리즘(Localism)에서 글로벌리즘(Globalism)에 입각한 세계화·지구촌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중국은 7000만명이 넘는 화교자본의 힘을 배경으로 중국 창조를 꾀하고, 인도 역시 2000만명의 인교(印僑)를 통해 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 역시 500만 한교(韓僑)의 네트워크와 적극 결합하는 게 긴요하다. 둘째, 민주화 쇼크다. 산업화를 이룩한 동시에 정치 민주화를 달성했다. 경제민주화는 필수 관문이다. 그런 것들을 통과후 선(先)진화를 이루고 선(善)진화를 향해 가야 한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적이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형제의 난’에서 보여진 바와 같은 비뚤어진 소유와 경영 체제인 지배구조와 상습적으로 파업을 일삼고 부패를 자행하는 상당부분의 노조 지도부가 그것이다. 이제 보스십보다 파트너십이 절실하다. 셋째,IT·하이테크 쇼크다. 이른바 ‘스리 애니(three any)’를 실현하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킹 비전’으로 요란하다. 언제(anytime), 어디서나(anywhere), 어떤 단말기(Any device)로도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해 비즈니스, 게임, 미디어 감상이 가능해지고 있다. 넷째, 저출산·고령화 쇼크를 이겨내야 한다. 국민연금이나 출산장려금 같은 돈 시스템도 중요하거니와 탁아 시스템과 탁노(託老) 시스템 같은 사회대책이 긴요하다. 다섯째, 여풍(女風) 쇼크를 잘 이해해야 한다. 여성 존중·여성 경영·여성과 함께는 목전의 과제가 됐다. 여자는 시간과 돈과 정보를 장악했다. 여섯째, 환경쇼크다. 이제 환경은 외면할 수 없는 아젠더다. 환경·발전을 모두 얻는 녹색 성장만이 지속성장가능경영을 열 수 있다. 일곱째, 친디아(Chindia) 쇼크를 이겨내야 한다. 친디아는 차이나와 인디아의 결합어다. 곧 중국에서 만든 소나타를 구입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이 IT강국을 자부하지만 인도의 소프트웨어를 극복해야 한다. 여덟째, 원자재 쇼크다. 배럴당 원유가는 100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얼마전 한국석유공사는 베트남에서 경제성이 높은 유전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끊임없는 유전 확보와 대체에너지 연구가 시급하다. 철강 등 광물자원과 농산물 등의 가격도 참기 힘든 고통을 주고 있다. 아홉째, 북핵·테러 쇼크다. 이라크에 진출했던 가나무역의 김선일씨 피살사건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 알 카에다 연루 의혹자가 경유한 국가다. 또한 북핵을 요리하고 경영하면서 개성공단을 두드려야 한다. 마지막은 부동산 쇼크다. 한국인들은 부동산에 관한한 달통한(?) 도사들이며 동시에 피해자들이다. 한국에서는 비싼 값에 공장부지를 구입해야 한다. 반면에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도 팔리지 않는 공장 때문에 골치를 앓아야 한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사랑과 증오와 위장의 이빨자국

    사랑과 증오와 위장의 이빨자국

      한강나루터 여인 피살사건에서는 이빨자국이 범인을 잡았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상 처음 있은「케이스」다. 이 이빨 흔적의 감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이 문국진 박사(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과장)이다. 그가 현장과 멀리 떨어진 실험실에서 결정적 증거를 잡을 때까지의 법의학적「추리」의 고충담을 들어 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무는 것은 사랑·증오·위장할 때 문국진 박사 얘기를 들으면 사람이 사람을 깨물 경우에는 세 가지 상황을 상정(想定)할 수가 있다. 첫째가 느껴움의 극치에서 상대방을 애무(愛撫)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깨뭄. 둘째가 증오심에서 가해지는 사정없는 물어뜯음. 셋째가 지능범이 흔히 획책하는 방법으로 위장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남기는 엉뚱한 교상(咬傷). 법의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세 가지 경우에 있어서 물린 사람의 몸에 나타나는 자국이 모두 다르다. 첫째의 경우, 앞이빨 자국이 남는다. 둘째의 경우, 맨 앞이빨에서 좌우로 세 번째 있는 불쑥 솟아오른 대치(大齒)의 자국이 깊게 파인다. 셋째의 경우, 앞뒤 이빨의 차이 없이 균등한 자국이 난다. 지난해 12월 28일 사건발생이 보고되었을 때 현장에 급거 출동한 과학수사진은 가장 귀중하면서도 유일한 증거를 채취했다. 피살된 이(李)여인의 턱과 젖가슴과, 그리고 국부의 세 군데의 뜯은 흔적. 그래서 범인을 두고 변태성욕자설까지 세워졌다. 이 세 가지 색다른 증거물을 놓고 문박사의 추리가 시작되었다. 세 자국의 검증 결과는 애무를 위한 가벼운 교상도 아니었다. 미움에 복받친 잔인한 물어뜯음도 아니었다. 마지막 셋째 번의 경우였다. 자국이 균등하게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문 사람이 냉정한 상태에서 제3의 목적을 위해 저질렀다는 결론 밖에 얻을 수 없었다. 위장을 위한 교상이다. 다음 문박사는 사람 몸에 교상이 남을 수 있는 여러가지 경우를 법의학의 연구실적의 여러 실례에서 뽑아내어 보았다. 물린 상처의 정도 보면 생전이냐 사후냐 알아 첫째 피해자가 물리는 경우. 여기에도 A-피해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물리는 경우와 B-죽은 상태에서 물리는 경우의 두 가지가 있다. 둘째 가해자가 물리는 경우다. 이번 사건은 둘째 경우는 아니다. 피해자가 물리는 경우에도 A와 B에 따라서 자국이 나타남이 달라진다. 살아 있을 때에 물리면 아프다. 피해자는 얼른 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오래오래 남는 깊은 자국이 나지 않는다. 하물며 이여인처럼 턱, 젖가슴, 국부로 상당히 거리가 먼, 그리고 여자로서는 결정적인 곳을 물어 뜯기면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또 살아 있으면서 물렸다면 그 직후 곧 피살되었다고 해도 교상이 상당히 나아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여인은 사후에 물어뜯겼다. 그러기에 그 상처가 경직(硬直)과 함께 뚜렷이 남게 되었다. 범인은 이여인의 숨을 먼저 거두게 한 후 위장을 위해 시체에 이빨 흔적을 낸 것이다. 이러한 3단논법으로 문박사의 결론은 내려졌다. 이빨은 지문(指紋)과 같이 만인부동(萬人不同)이고 종생불변(終生不變). 이번 경우는 용의자 치형(齒型) 피살자의 상흔(傷痕)과 꼭 맞아 피살체에서 떠낸 이빨 흔적과 똑 같은 모양의 이빨을 가진 사람이 범인이다. 경찰에 연행된 용의자들의 이빨 모양을 모조리 석고에 따서 흔적과 대조했다. 연말연시의 휴가도 다 날리고 실험실에서 살았다. 문과장뿐만 아니라 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직원이 총동원 되었다. 꼭 열흘 동안 밤샘이 계속되었다. 문박사에게는 뚜렷한 증거를 살리지 못한다면 법의학이 운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또 이빨자국이 범인을 체포한다면 세계법의학계에 새로운 보괒료도 되므로 법의학자로서의 야심도 작용했다. 교상흔적과 범인의 이빨형태가 꼭 같아서 영락없이 범인을 잡은 이번 같은 예는 세계에서도 10년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하는 통계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상흔적이 단서가 되어 범인이 체포된 예가 있기는 있었지만 이번 경우와는 달랐다. 7년 전 뚝섬에서 여인 타살(打殺)사건이 발생했었다. 용의자로 피살자의 애인인 벽돌공장 직공이 연행되었다. 증거가 없었다. 다만 용의자는 엄지손가락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용의자는 벽돌이 떨어져서 다쳤다고 우겼다. 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는『벽돌에 사람 이빨이 나 있으면 그러한 형태의 상처가 날 수 있다』였다. 용의자는 이 바람에 순순히 자백을 했다가 그 손가락의 상처는 피해자가 죽기직전 가해자를 문 흔적이었던 것이다. 애매한 용의자 풀어줄 때 법의학 하는 보람을 느껴 이 경우는 이번처럼 흔적과 이빨을 대조하지 않고 자백을 얻은 예다. 문박사는 1월 6일 이미 결론을 얻었단다. 바로 남편인 최대연(崔大連)(51)의 이빨과 그 흔적이 일치한다는 사실. 그러나 문박사는 하루 24시간을 꼬박 고민 속에서 지냈다. 『원래 법의학을 하게 된 것은 개인의 병을 고치기에 앞서 인권옹호를 통해 사회의 병을 고치자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가 혹시 잘못되어 생사람을 잡는 결과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데이터」를 되풀이 검토한 뒤「법의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7일에 결과를 일선 수사진에 통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용의자였던 최대연은 횡설수설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에까지 걸어 보았으나 거기서도 범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 용의자가 교상 흔적과 이빨 모양이 일치한다는 과학수사의 결과에 그만 자백을 하고 말았다. 문박사의 얘기론 이번 이빨감정의 성공으로 우리나라에 흔한 밤중에 강도사건도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우리나라의 도적들은 대체로 통금시간 전에 목적한 입에 잠입, 해제 직전에 일을 해치우고 도망을 친다. 그들은 잠복하는 2~3시간 사이에 음식들, 특히 과일들을 먹는단다. 그러니까 먹다 남은 것이 그 자리에 버려지기가 일쑤. 그 유기물(遺棄物)에서 범인의 이빨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이빨자국에도 눈독을 들여야 한다. 외국에서는 이빨자국이 범인체포에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탓으로 이빨흔적만 연구하는 법의학이라는 새 분야가 치의학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된 학문의 하나로 확립되어 있다. 그만큼 이빨자국이 중시되고 있는 셈. 문박사는 서울의대를 졸업, 계속 과학수사연구소에 근무하다가 64년에「급사혈(急瀉血)이 조직비만세포(組織肥滿細胞)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법의학 논문으로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얻었다. 동기생들 중에는 돈을 번 사람도 상당히 많으나『자기는 3급 갑류의 의무지정으로 봉급은 본봉 1만 4천원「플러스」수당 1만원의 박봉 공무원』이란다. 실험실에서 일선의 수사를 돕는, 햇빛을 받지 못하는 법의학도이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애매한 용의자가 그의 감정결과로 풀려 나오면 다른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 것 이상의 기쁨에 젖는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와 문명이 얼마나 발달되어 있는가를 알려면 그 나라의 법의학의 발달도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 선데이서울 69년 1/19 제2권 제3호 통권1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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