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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지내세요] 자서전 준비중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어떻게 지내세요] 자서전 준비중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내년이면 벌써 고희가 돼. 집에 쌓아둔 TV 녹화테이프, 신문스크랩 등 자료를 정리하느라 바빠.” 전 (꼬마)민주당 총재 이기택(69)씨. 부산상고와 고려대 상대를 나와 1967년 7대 국회의원(전국구·신민당)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6선(7·8·10·12·13·14대)을 지내면서 나름대로 세를 거느린 ‘거물정치인’으로 군림했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지난 17일 서울시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요즘 세대간 대화가 단절돼 있어 걱정이야.”하면서 노소간 통합이 잘 돼야 국력이 강해진다고 몇차례 강조했다. 아울러 “남북 분단상황에서 이념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속도조절과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30년 정치인생 동안 야당생활만 해왔다.”면서 “야당은 사명이 있어야 하며 첫번째가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산도 가고 청계산도 가고, 태백산도 가지. 등산멤버는 많아.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통일산하회’도 있고, 평상시 자주 가는 후배들 10여명이 있어.”라고 답했다. 등산할 때마다 지나온 자신의 삶을 자연과 비교해보는 즐거움 또한 새록새록 생겨난다고 했다. 또 하산 후 막걸리를 마시고 ‘만세삼창’을 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단다. 산행동료들과 해외여행에 나서는 경우도 가끔 있다. 골프는 회원대우를 해주는 태광CC에서 주로 라운드하며, 스킨스나 라스베이거스 등의 게임을 즐긴다고 귀띔했다. 그는 “오라는 데는 많지만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자제한다.”고 했다. 한달에 한번씩 꼭 나가는 모임은 예외다. 교수, 변호사, 사업가 등 50여명으로 구성된 ‘밝은 세상 모임’이다. 가끔 한민족연구소(이사장 이윤기) 행사에도 참석한다. “현직 의원들이 가끔 차 마시러 집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 며칠 전에는 모 의원이 찾아왔기에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을 만들어보라고 했지. 박관용·신상우 전 의원 등 친했던 전·현직 정치인 20명 정도 만나 세상돌아가는 얘기나 해보자는 거지 뭐. 떠나면 외롭잖아.” 요즘들어 서재에 잔뜩 쌓인 자료들을 챙기고 있다. 자신의 정치역정이 담긴 TV 녹화테이프를 보면서 직접 DVD작업을 진행 중이란다. 이 작업이 끝난 다음에는 신문스크랩을 정리할 예정이다.“내년이면 칠순이야. 자서전 비슷한 거라도 내놔야 할 것 같아.”라고 했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부인과 단둘이 지낸다는 그는 “3년 전에 아들이 결혼했거든. 허락받으러 왔기에 따로 살되 대신 주말만큼은 우리집에 와서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조건을 내세웠지. 안 그러면 멀어져. 우리집 가풍으로 만들 생각이야.”라며 웃는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도롱뇽 봄 기다리는 ‘소금강’ 천성산

    도롱뇽 봄 기다리는 ‘소금강’ 천성산

    겨울의 끝자락은 부산·경남 일원에 ‘100년만의 강설량’이라는 이변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며 떠났다. ‘폭설’이라는 그 낯선 방문자를 맞은 경남 양산 천성산(922m)을 찾았다. 산세가 빼어나 예부터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얻은 천성산에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온다. 산길은 내원사 주차장 매표소에서 성불암계곡~집북재~천성2봉(811m)~천성산~화엄벌을 거쳐 용주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성불암 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매표소 뒤,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너른 길은 물길을 따라 한동안 이어지는데, 계곡이 합수되는 곳을 만날 즈음이면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정면의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악우비가 있는 성불암 갈림길에서는 계곡길로 진행한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산길 주변의 산자락은 얼레지 등이 무리지어 피어 봄을 알린다. 계곡을 벗어나 부드러운 숲속길로 들어서면 넉넉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집북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방으로 길이 연결되는 고개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며 천성2봉으로 향한다. 가파른 길에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오르도록 하자.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좁은 능선길을 지나 바위지대를 오르면 주능선에 접어들고, 잠시 더 가면 거대한 암괴를 만난다.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이내 바위 봉우리인 천성2봉에 닿는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거침이 없다. 서북쪽 영축~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 알프스의 늠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 대운산 너머 멀리 울산 앞바다도 아련히 보인다. 남쪽의 부드러운 봉우리가 가야 할 천성산 정상.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바로 낙동정맥이다. 정상을 향해 능선을 걷다 보면 왼쪽으로 내려서는 샛길이 몇 군데 나오는데 모두 웅상읍쪽으로 연결된다. 안부(은수고개)에서 왼쪽으로 난 길은 무지개폭포로 내려서는 길이다. 아쉽게도 천성산 정상은 군사통제구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 정상 아래 갈림길에서 화엄늪으로 가려면 오른쪽(북쪽), 철조망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야 한다. 왼쪽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나있는 길은 부산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다. 잠시 산허리를 에돌면 광활한 화엄벌이 눈앞에 펼쳐진다. 목책 안으로는 많은 희귀식물과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는 화엄늪이 있다. 이 고산늪은 생태계의 타임캡슐이라 할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단다. 이곳은 가을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목책 옆으로 난 완만한 길을 내려서면 초소를 지나고 마지막 목책을 지나 오른쪽 숲속으로 접어들며 하산길이 이어진다. 첫번째 임도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용주사 방향으로 가다가 오경농장앞 35번 국도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에 차가 있을 경우에는 오른쪽 내원사(상가) 방향으로 하산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혹은 양산)에서 나와 35번 국도로 내원사에 접근한다. 부산쪽에서 접근하면 편리하다. 노포동 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완행버스를 이용, 내원사 입구에서 내린다(15분 간격 운행). 종합터미널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내원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숙박시설이 매우 많다. 버스로 내원사 입구에 내렸을 경우, 도로를 따라 30분 걸어서 매표소로 이동하면 된다. 입장료와 주차비 2000원씩이다. 문의는 경남 양산시청(www.yscity.or.kr,055-380-4841)으로 하면 된다.
  • [길섶에서] 봄바람/김경홍 논설위원

    겨우내 난방 속에서만 지내다 보니 아파트나 사무실에만 들어서면 계절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진다. 사무실에 들어서 겉옷만 벗고 나면 겨울인지 봄인지 알 수가 없다. 집에서도 남의 눈만 없다면 훌러덩 벗고 속옷바람으로 설친다. 너나 할 것 없이 내복이야 산행이나 야외로 나갈 때만 챙기게 된다. 3월이 한참 지났고, 햇살도 점차 눈부시게 변해간다. 곧 꽃 소식도 들려올 것이다. 갑자기 사무실이나 아파트에 있는 난이나 화초들은 봄을 어떻게 맞을까 궁금해져서 들여다보았다. 몇몇 화분에는 조그마한 새싹들이 어느새 고개를 쏙쏙 내밀고 있었다. 이 화초들은 봄기운과 땅냄새, 몸을 간지럽히는 햇살과 바람이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종일 형광불빛 아래서, 일년이래야 냉방과 난방의 교차밖에는 느낄 게 없었으면서도 새싹이라니. 도대체 봄이 됐다는 걸 알면서 싹을 틔우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반복적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쨌든 살아있다는 증거들은 애처로움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가끔씩 창문을 활짝 열고 말 못하는 화초들도 바깥 세상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게 해야겠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남도의 봄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예전에 없던 모진 추위로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던 겨울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럴 즈음, 겨울의 끝자락을 털고 있을 산자락으로 들어가 자연의 흐름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산행이다. 겨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방산(1577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홍천군 내면)을 찾았다. 겨울 심설 산행지로 잘 알려진 산은 동북쪽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가지쳐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를 가르며 달리는 이른바 한강기맥(경기도 양평 청계산∼양수리)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행 코스는 31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인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1492봉 정상에 이른 뒤,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노동리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계방산은 높이로 보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은 남한에서 5번째 높은 봉우리이지만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고도 차이가 채 500m도 되지 않아 의외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안내판이 서있는 절개지의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외길로 아주 잘 나있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완만하다. 포근한 산세를 느끼며 산행이 느긋하다. 산길은 한동안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안부로 살짝 내려선 후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터로 올라선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꽤 가파른 길이다. 길이 미끄러워 나가기가 다소 힘들다. 하지만 20여분 땀을 흘리면 되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른쪽 위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다. 능선 한쪽으로 켜켜이 쌓인 눈은 세월의 흐름에 무심한 듯 아직도 떠날 채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른 봄 초목들의 치열한 삶에 더없이 소중한 생명수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능선턱을 올라서면 동쪽으로 아주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1492봉으로 향한다. 봉우리에 서면 닫혀 있던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끝없이 일렁거리는 산너울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흰눈을 이고 있는 점봉산과 설악산의 모습이 아련하고, 북동쪽에 솟아 있는 오대산 연봉들의 모습도 의젓하다. 키낮은 나무들 사이로 아주 완만한 오름길이 정상으로 이어진다. 진행방향 왼쪽, 즉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나목의 산자락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곡선미가 빼어나다. 1492봉에서 40여분 나가면 돌탑이 나온다. 계방산 정상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제 저 멀리 평평한 구릉지대를 이루는 선자령 부근의 산자락까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산줄기들의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진다. 오대산 두로봉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우람한 근육질의 몸이 꿈틀대는 듯 헌걸차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리본이 많이 달린 능선길은 오대산으로 이어지며, 약 15분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이승복 생가터를 거쳐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남쪽 이정표 있는 곳에서 이어지는 능선길로 내려서자. 갈림길이 있는 1276봉까지 약 1시간 소요되며, 남쪽 능선길로 내려서면 아랫삼거리에 닿으며 산행을 마친다.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좌회전, 홍천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로 운두령 접근.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주문진 또는 강릉행 직행버스로 진부 하차. 진부∼창촌(내면)을 운행하는 버스로 운두령 하차(진부터미널 033-335-6307). 택시(033-335-1050)요금은 2만원. 운두령에 있는 자가용을 회수할 경우에도 이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은 산장민박(033-333-5555)과 계방산 쉼터(033-333-7775)에서 할 수 있다. 음식점도 겸하고 있다.
  • [길섶에서] 산행/이호준 인터넷부장

    남녘에는 동백꽃이 한창이고 보리밭이 푸르다던데…. 햇살이 눈부신데도 산기슭의 바람은 잘 갈린 칼날처럼 날카롭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등에 땀이 흐르고 입에서 단내가 난다. 몸 안의 노폐물뿐 아니라 마음에 쌓인 찌꺼기까지 모두 털어내고 싶다. 산행 내내 얼마 전 선배와 나눴던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요즘은 새벽에 깨면 영 잠을 이룰 수 없어.” “어? 선배도? 저도 그래요. 뒤척거리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생각이 많아서 그래. 책에서 봤는데 그런 땐 운동이 최고래. 몸을 혹사시켜 잡념을 몰아내는 거지.” 산허리, 양지 바른 곳에서 얼굴을 내미는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 들여다본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구나…. 하산길로 잡은 반대쪽은 아직 한겨울이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을 헤치며 평범한 진리를 거듭 새긴다. 그래, 인생도 그럴 뿐이야. 볕이 드는 곳이 있으면 응달이 있게 마련. 바람이 분다고 오던 봄이 돌아가기야 할까. 봄의 씨앗은 강남제비가 물고 오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서 싹트는 건지도 모른다.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백두대간 종주 이성부 시인, 시집 ‘작은 산이…‘ 출간

    시인은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거기에 시가 있기에. 산은 시를 품었고, 시인의 시도 산을 터지도록 품어안았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다는 소식을 뜨문뜨문 날려보내던 이성부(63) 시인이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덟번째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창비 펴냄)에는 시인이 꼬박 8년을 짬짬이 ‘토막 산행’하며 여투어온 84편의 시가 묶였다. 백두대간 산행길에 올라 흥분에 젖어 시집 ‘지리산’(2001년)을 낸 지 4년 만이다. “산에 들어가는 일은 한때나마 속진(俗塵)의 일과 단절시키고 단순화하고 고립되게 만든다.”며 산행에 극찬사를 쏟아붓는 시인. 몇 년 사이 사물을 시로 품어내는 품새는 너럭바위의 그것만큼이나 후덕해졌다. 또렷또렷한 의식으로 역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 정신은 곳곳에서 형형하다. 하지만 시인의 눈과 귀는 표나게 순해져, 이번 시집에는 자연의 섭리와 생의 이치로 고즈넉히 고개돌린 시편들이 줄줄이다. 숨가쁘게 산길을 오르는 일이나 사람살이가 결국엔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사위 캄캄한 어느 새벽이었던가. 시인은 무령고개(전북 장수군) 절개지에 털퍼덕 주저앉아 “지나쳐버리는 발걸음과/거기 오래 머물다 가는 발걸음도/어차피 모두 떠나가는 것은 매한가지/내리 쌓이는 눈에 묻혀/먼저 간 사람들 발자국 찾을 길 없고/우리도 그렇게 묻혀지거나 지워질 뿐”(‘내 고향으로도 뻗어가는 산줄기’)이라고 길게 탄식해 본다. 시로 한평생을 메워가는 시인 아니랄까봐 발 밑에 엎드린 숱한 길들을 시인의 도(道)로 종종 은유하기도 한다.“사십년 전에 읽은 시가 지금 너무 새로워/몸이 떨린다 산에 들어가는 것처럼/새로운 길은 다음 사람들이 그 길로/더 많이 다녀야 비로소 길이다/닳고 닳아도 사그라지는 법이 없다”(‘비로소 길’) 하더니 산이 건네는 말에 무방비로 오감을 내맡긴다. 그럴 수밖에.“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내 왼손을 거쳐/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나무 지팡이’)며 신묘한 산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떨고마는 것을…. 시에는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란 부제 뒤로 일일이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그 순서대로 진득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결에 독자도 백두대간 남한쪽 종착지 진부령의 너덜겅 어디쯤에 땀내 풍기며 앉아 있게 된다. 역사의 생채기를 쓸어주고 부조리에 절망하는 시인의 글쓰기는 아무래도 생래적이라고 해야겠다.‘옛적에 죽은 의병이 오늘 나에게 말한다’‘거창 땅을 내려다보다’‘무정한 총알이 내 복숭아뼈를 맞혔네’ 등 무고하게 스러진 옛 생명들을 되뇌이는 시들은 그가 밟아올랐던 산의 형상만큼이나 첩첩이다. 80편이 넘는 시글로도 할 말을 다 못했을까. 시집 끄트머리에 보탠 시인의 말이 13쪽이나 된다.‘태백산맥’이 ‘백두대간’으로 이름을 바꿔야만 하는 이유,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사연 등을 두루두루 짚었다. 이성부는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등단했다.‘백제행’‘전야’‘야간산행’‘지리산’ 등의 시집이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광양 백운산

    [조용섭의 산으路] 광양 백운산

    봄을 시샘하는 늦추위가 여전하지만 남도 땅에는 벌써 매화가 피고 고로쇠 나무에 물이 오르는 등 봄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른 봄이면 축제 한마당이 펼쳐지는 전남 광양의 백운산(1218m)을 찾았다. 산길은 옥룡면 논실마을에서 한재로 올라 정상~억불봉~노랭이재~광양제철 수련관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논실마을에서 송어양식장쪽의 포장도로를 1시간 정도 따라 오르면 시원한 잣나무 숲 사이에 걸쳐있는 너른 임도상의 한재에 닿는다. 한재에서는 왼쪽(서쪽)으로 또아리봉, 오른쪽 백운산으로 능선을 이루며 산길이 잘 나있다. 이 능선이 바로 호남정맥 마루금이다. 고개 너머로 내려서는 길은 화개장터 인근의 섬진강변 마을로 이어진다.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비교적 완만하게 시작되다가 가파른 오름길로 이어지며, 헬기장을 만나 능선턱에 올라서면서부터 비로소 시야가 트이게 된다. 신선대 이정표를 만나면 정상은 500m거리. 진틀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고 20여분이면 백운산 정상에 닿는다. 한재에서 1시간40분 소요. 백운산에서는 그야말로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북으로는 장쾌하게 하늘병풍을 이룬 지리 주능선이 아득하고, 남으로는 은빛으로 빛나는 한려수도에 눈이 시리다. 동쪽 저 아래 수줍은 듯 흐르는 섬진강을 보노라면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서쪽 가깝고 먼 곳으로 끝없이 솟구치고 펼쳐지는 남도의 산을 바라보면 움찔하며 산멀미가 인다. 정상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매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길이고, 남쪽의 내려서는 능선길이 억불봉 방향이다. 정상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갈림길의 오른쪽 길은 진틀마을로 연결되고 능선을 15분여 진행하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상백운암을 경유, 묵방이나 선동으로 이어진다. 헬기장이 있는 이곳에서 조금 가다 보면 너른 바위 암반인 만경대를 만난다. 백운산 주능선 길은 가끔 너덜길이 나오지만 대체적으로 걷기 좋은 육산길이다.995봉을 지나면 그 유명한 억새능선이다. 하산길이 시작되는 억불봉 아래 헬기장까지는 정상에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헬기장 북서쪽 약 40m 아래에는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 있고 광양 산꾼들이 아끼는 샘이 있는데 ‘취정샘’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억불봉은 배낭을 벗고 다녀오면 되는데 오름길 30분을 포함해 왕복은 50분이면 된다. 노랭이재는 노랭이봉을 올라서 하산하는 길도 잘 나있으나, 서쪽(오른쪽)으로 곧장 내려서도록 한다. 광양제철 수련관까지 30여분 소요. 약수제단에 들른 다음 버스가 다니는 동동마을에 이르며 산행을 마친다. 동곡리 약수제단을 중심으로 경첩인 3월5일부터 고로쇠약수축제가 열린다.12일부터는 섬진강변 다압면에서 매화축제가 시작된다. 문의(061)797-3363. 남해고속도 광양IC에서 빠져 나와 11번 지방도로를 따라 옥룡면으로 접근하면 된다. 서울 강남, 동서울터미널에서 광양행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철도로 광주로 이동한 뒤 광주~광양간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시내버스는 광양에서 동곡(21-1), 답곡(21-2), 논실행(21-3) 버스를 이용한다. 문의(061)761-3030. 심원쪽에서는 계곡민박(061-762-3876), 묵방은 캐빈하우스(061-762-7133), 논실은 이창기씨 댁(061-762-5330), 동곡은 바위산장(061-762-3328) 등이 대표적인 민박집이다.
  • [조용섭의 산으路] 소백산

    [조용섭의 산으路] 소백산

    ‘바람의 나라’. 소백산(비로봉 1439.5m)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이 있을까?살을 에는 냉기를 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은 그야말로 광풍(狂風)이다. 남녘의 봄바람과는 사뭇 다른 풍광이다. 봄을 거슬러 그 바람의 나라 소백산을 찾았다. 산길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매표소에서 출발, 비로사-달밭재를 거쳐 주봉 비로봉에 오른 뒤, 능선 산행으로 연화봉(1383m)을 잇고 희방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삼가리 마을 바로 위에 매표소와 주차장이 있다. 승용차로 갔을 경우에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매표소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비로사가 나온다. 오른쪽의 다리를 건너 잠시 진행하면 이정표와 민박집 안내판이 있는 달밭골 마을 입구가 나오는데, 마을 끝에서 왼쪽으로 방향이 꺾이며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주봉인 비로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 산길은 아주 너른 외길로 나무계단 등의 시설이 잘 되어있고 촘촘히 선 이정표에도 거리표시를 해놓아 별다른 어려움없이 갈 수 있다. 산악인 추모비를 지나면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계단길을 힘들여 오르면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 닿는다. 동북쪽으로 국망봉, 남서쪽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인 주능선에 잠시 눈길을 두었다가 내려 서도록 하자. 이제, 그 엄청난 바람을 정면으로 안고 주목감시초소 쪽으로 내려서야 한다.‘정신없이 쫓기듯 내려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될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 대청봉의 매서운 바람에 담금질되어 있는 산꾼들도 쩔쩔 매는 칼바람이다. 초소에서 식사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주능선으로 올라 연화봉으로 향한다. 북쪽으로 곧장 내려서는 길은 충북 단양 천동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능선에 접어들면 큰 어려움없이 연화봉까지 간다. 연화봉 직전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은 천문대로 이어지는데 연화봉으로도 연결된다.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라 아주 잘 나있지만 가파른 산사면을 가로질러 갈 때에는 주의를 요하며 경사가 심한 이 길은 오름길 못지않게 내려서는 것도 힘들다. 깔딱고개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서서 고즈넉한 희방사를 지나 절 바로 아래 푸른 빛으로 얼어있는 희방폭포의 모습을 감상하며 산행을 마치게 된다. 희방폭포에서 버스정류소가 있는 주차장까지 도로를 따라 약 40여분 걸어내려와야 한다. 문의 소백산국립공원관리공단(054-638-6196) ●교통 자가용:중앙고속도 풍기 IC에서 풍기읍-삼가동으로 이동하면 된다. 서울에서 2시간30분, 대구에서 1시간20분 남짓 걸린다. 대중교통:동서울터미널(02-3436-2114)에서 영주행 버스를 이용해 풍기에서 내린다. 대구북부시외버스정류소(053-367-1861-2)에서 풍기행(소요시간 1시간30분)을 타도 된다. 풍기읍에서 희방사나 삼가리는 하루 6차례 시내버스가 다닌다.20분 걸린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풍기에서 희방사와 삼가리는 1만 5000원. 풍기택시(054-636-2828,636-8181) 기차로도 접근할 수 있다. 중앙선을 이용 풍기역(054-636-7788)에서 내리면 된다. 소백산은 바람이 거세니 방한복이 필수적이다.
  • 남도엔 파릇파릇 봄이…

    남도엔 파릇파릇 봄이…

    봄의 유혹이 시작됐다. 남도에는 ‘봄의 전령사’ 동백을 시작으로 벌써 춘색이 완연하다. 무채색 도화지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갖가지 빛깔의 봄꽃들이 고혹스럽게 피었다. 훈훈한 봄바람은 새색시의 수줍음처럼 살포시 빰을 스친다. 산과 들녘을 수놓은 붉은 동백과 진녹색 새싹은 마치 고운 색동저고리를 차려입은 봄처녀의 거부할 수 없는 손짓으로 다가온다. 한발 앞서 봄이 찾아오는 곳 남도. 겨울의 체취를 털어버리고 봄의 설렘을 찾아 남도로 떠나보자. 가족과 함께 새생명이 움트는 그 곳에서 새 희망을 품어보자. ●봄향기에 취한 남도 “봄∼처녀 제∼오시네 새풀 옷을 입으셨네….” 진초록 보리밭과 고혹스럽게 핀 붉은 동백, 여기에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가 펼쳐진 남도로의 봄나들이는 봄노래의 흥얼거림으로 시작됐다. 봄을 맞으러 차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서울을 떠난 지 반나절 만에 땅끝마을 해남과 완도가 봄내음을 품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내리쬐는 따스한 봄볕과 뺨을 스치는 봄바람이 향긋한 미소로 다가왔다. 해남을 지나 완도대교를 건너자 201개의 섬으로 이뤄진 푸른섬 완도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완도(莞島)의 완(莞)자는 ‘빙그레 웃을 완’. 경치와 음식, 인심이 좋아 빙그레 미소짓는다는 섬이다. 완도는 사실상 우리나라 최남단. 얼마전 땅끝마을인 해남과 ‘신땅끝 논쟁’을 벌이기도 한 곳이다. “차를 타고 갈 수 없는 곳이 섬인데 완도는 다리로 이어진 지 40년이 넘은 육지”라는 게 완도 사람들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내륙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다. 남도의 봄은 동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가장 먼저 봄을 느끼게 해준 것은 완도의 동백이다. 굽이굽이 펼쳐진 푸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모습을 드러낸 국내 최대 난대림 수목원인 완도수목원(061-552-1544)은 완연한 봄 그 자체였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다른 수목원과 달리 자연생태 원시림. 샛노란 꽃술과 진홍빛 꽃잎, 그리고 진초록의 잎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백이 장시간 여행의 피곤함을 한 순간에 날려 버린다. 지난 91년 문을 연 수목원은 1050㏊(약 30만평)의 방대한 규모에 난대성 희귀식물 1400여종이 집단적으로 자생하고 있다.30분쯤 걸어 수목원 전망대에 오르자 온 산이 올록볼록 ‘엠보싱’을 해 놓은 듯하다. 이 곳에 가면 수백여종의 동백과 왕실에서 황금색 도금을 위한 색소로 사용했다는 황칠나무, 약용으로 쓰이는 후박나무 등을 볼 수 있다. ●해상왕의 숨결 따라 봄나들이 완도가 가장 자랑하는 인물은 단연 해상왕 장보고(790∼846)다. 통일신라시대 동아시아 바다를 주름잡던 해상왕 장보고 유적지를 따라 봄나들이를 하면 지루하지 않게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이 곳에는 장보고의 일생을 다룬 KBS드라마 ‘해신’의 세트장 두 곳이 있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세트장은 드라마 촬영이 진행될 경우에는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는데 촬영이 없는 날인 일∼수요일에는 일반에게 공개된다. 오는 5월말까지 드라마를 촬영할 예정이어서 재수좋으면 최수종(장보고역)과 채시라(자미부인역), 수애(정화역), 송일국(염장역) 등 연기자도 만날 수 있다. 먼저 완도대교를 건너 왼쪽 동부대로(13번 국도)를 따라 5㎞쯤 가면 불목리 세트장(신라방)을 만난다. 이 세트장은 중국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 세트장은 중국사람이 설계하고 중국에서 기와 등 자재를 가져와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붉게 칠한 외벽과 건물, 도로 등이 벽돌로 만들어져 마치 중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드라마가 끝난 뒤 영구보존을 위해 다른 곳과는 달리 플라스틱이 아닌 목자재를 사용했다. 또다른 세트장은 완도대교 오른쪽 서부대로(77번 국도)를 따라 10㎞가면 소세포세트장(청해포구)이 나온다. 1만 6000여평의 부지에는 부두와 선박, 저잣거리, 군영 막사, 망루 등 42동의 건물이 완공되어 있다. 앞 바다 풍경은 120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장보고의 시대로 돌아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바다 멀리에는 보길도 등 섬이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해신 촬영지를 따라 돌다 보면 자연스레 완도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우선 만나는 곳은 장보고가 본영인 청해진을 설치했던 장도 청해진 유적지(국가사적 308호). 물이 빠지면 본섬과 연결이 되는데 170m의 자갈길을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현재 고대 망루와 판측토성, 우물 등을 2009년까지 복원할 계획인데 현재도 관람이 가능하다. 장보고를 기리기 위해 세운 이 섬의 장좌리 굿당의 앞에 핀 동백이 일품이다. 이어 만나는 어촌민속전시관(550-5558)은 2002년 개관한 어촌의 민속 관련 박물관이다. 각종 어류 박제와 조개류, 희귀 산호 등은 아이들이 좋아한다. 요금은 어른 1000원. 이렇게 다가온 완도의 봄은 봄처녀의 가슴을 울렁이기에 충분하다. ●봄비에 촉촉해진 남도 들녘 완도대교를 넘어 다시 해남으로 나오자 봄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서울에 영하의 혹한이 이어지고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말이 딴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됐다. 해남군 마산면 산막리에 이르자 가학산을 배경으로 보리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청자빛 투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진초록 보리밭의 절경은 고향마을의 추억을 되새겨 보게 한다. 이어 봄비와 어울리는 곳 녹우당(사적 167호·530-5548)을 찾았다. 고산 윤선도(1587∼1671)의 고택인 녹우당은 이름 그대로 푸르름이 한창이다. 입구에는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뒷산에는 오백여년된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241호)이 반갑게 맞이한다. “앞바다에 안개걷고 뒷산에 해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녹우당에 들어서면 마치 고산의 어부사시사 봄노래의 읊조림이 들리는 듯했다. 기념관에는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금쇄동기 원본, 고산의 친필로 쓴 여러 편지 등 고산의 유품 등을 볼 수 있으며, 고산의 4대 증손인 공제 윤두서의 화첩들과 해남 윤씨 부녀자들의 규방문집 등이 전시돼 있다. 현재 녹우당에는 고산의 14대 종손인 윤형식(72)씨 내외가 살고 있다. 남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맛. 어느 곳에 가도 청정해역을 낀 남도 앞바다에서 생산된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완도는 우리나라 김과 다시마, 톳, 미역, 전복의 70%이상을 생산하는 곳이다. 완도대교를 지나면 바로 있는 산해진미식당(552-5466)의 신선한 가오리회인 간자미회(4인기준·2만원)와 간자미 무침(3만원)이 일품이다.청실회집(552-4559)에서는 완도에서 생산되는 전복회와 구이 등을 맛볼 수 있다. 또 해남의 땅끝기와집(534-2322)에서는 해남 특유의 해산물 정식(2만원)을 맛볼 수 있다. 꽃게찜과 매생이, 전복, 새우, 삼합 등 남도 음식 전부를 섭렵할 수 있다. 완도읍 선착장 인근 씨월드관광호텔(552-3005)의 해수탕은 바다 수면아래 있어 해수탕 안의 창문을 통해 파도가 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남도로의 봄맞이는 승용차를 이용해도 크게 지루하지 않다. 여행 길 곳곳에서 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 핀 꽃을 감상하고 보리밭에 들러 밝은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며 쉬엄쉬엄 다녀오면 좋다. 승용차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목포IC로 나온 뒤 해남과 완도로 갈 수 있으며,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광주에서 강진을 거친다. 비행기나 철도는 광주나 목포에서 해남·완도행 시외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전라남도 관광진흥과 (061-607-3333), 완도군청 (550-5224), 해남군청 (530-5224). ■ 명소 베스트5 훈훈한 봄바람이 한 번 불어올 때마다 봄꽃들이 수선수선 눈을 뜬다. 동백과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유채 등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된 것. 남도에 가면 봄꽃과 봄내음에 취할 수 있다. ●섬진강 매화마을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일대는 3월이면 하얀 매화로 뒤덮여 장관을 이룬다. 섬진강을 따라 매화나무가 지천으로 심어져 있다.10만평의 매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산중턱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제일이다. 매화에는 청매와 홍매가 있는데 청매나무에는 푸른 빛이, 홍매나무에는 연분홍빛이 돌아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3월 12일부터 20일까지 매화마을에서 ‘매화축제’가 열린다. 광양시 문화홍보과 (061)797-3363. ●제주 대정들녘 야생 수선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제주도 산방산 부근의 대정들녘에는 봄소식을 전하는 야생 수선화의 꽃향기가 그윽하다. 이 곳에서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던 추사 김정희가 수선화를 각별히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대정향교와 산방산 사이의 도로변과 송악산 해안도로변 등지에서 야생 수선화를 볼 수 있다. 남제주군 대정읍사무소 (064)794-2301.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충남 서천군 서해바다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량리 언덕배기에는 80여 그루의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약 400여년 전 서면 마량리 수군첨사가 험난한 바다를 안전하게 다니려면 이 곳에 제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주변에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때의 나무가 자라서 오늘날의 명물인 동백나무숲을 이루고 있다. 서천군 문화공보실(041) 956-7868. ●여수 거문도 동백 전남 여수에서 배로 2시간 떨어진 거문도에서 붉은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거문도 등대를 보러 가는 산책 코스인 신선바위와 365계단, 목넘어 잔교를 지나 동백터널 숲이 있는데 온통 붉은 빛으로 깔려있는 그 길은 산행자의 발걸음을 잡아끄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여수시청 관광홍보과 (061)690-2249. ●구례 산수유마을 예로부터 전남 구례군 산동면은 ‘산수유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산수유나무가 많은 곳이다.3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이곳은 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산기슭과 골짜기, 논둑과 밭두렁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샛노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 780-2224. 남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박근혜대표 ‘영남권 다지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3일 “오늘 하루가 하루 같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날을 사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전 10시쯤 서울을 출발해 대전까지 갔다가 도로 KTX로 ‘환승’해 서울로 복귀해 당 의총에 참석했고, 잠시 숨 고를 새도 없이 다시 부산으로 갔다. 행정수도 이전 후속대책을 놓고 의총이 잇따라 열린 데다 애초에 ‘영남권 다지기’ 일과표를 짜둔 탓이었다. 박 대표는 이처럼 곡절을 겪으며 부산대 특강에 참여하고, 해운대 달맞이 축제를 구경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의 부산행은 지난해 6월 이후 8개월 만으로,‘영남권 다지기’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서 그의 리더십에 부쩍 도전장을 내미는 까닭이다. 닷새 전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식에 참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부산대 경영대학원 특강에서 “최근 지역구에 갔더니 저보고 ‘힘내세요.’라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다.”며 ‘러브콜’도 빼놓지 않았다. 이어 “정치적·영토적 통일을 고집할 필요없이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군사적 대결이 사라지는 ‘경제공동체’가 되면 통일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내심을 갖고 북의 변화를 유도하고, 국제사회로 나오도록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호남선 KTX도 80분 운행중단

    22일 오후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호남선 KTX 운행이 1시간 20분 가량 중단돼 승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철도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40분쯤 대전시 서구 정림동 호남선 정림터널 입구 부근의 소나무(길이 15m, 직경 15㎝)가 바람에 부러지면서 KTX 송전선로 위에 쓰러져 전기 공급이 중단됐다. 이로 인해 목포발 용산행 제222호 KTX의 운행이 1시간 20분 가량 중단되고 뒤따르던 상·하행선 KTX 열차 4편도 10∼30분가량 연착했다. 이날 대전지역에는 초속 9m안팎의 강풍이 불어 정전과 입간판 추락사고가 잇따랐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회플러스] 소백산 조난사고 1명 사망

    19일 오후 8시 30분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해발 1100m 지점에서 산행에 나섰던 최옥순(34·여·회사원·경기도 시흥시)씨 등 등산객 4명이 조난됐다가 최씨가 탈진해 숨지고 강병윤(25·회사원·경기도 시흥시)씨 등 3명은 구조됐다. 사고가 나자 119 구조대와 경찰 등 30여명의 구조대원이 출동,8시간여 만인 20일 오전 4시 20분쯤 이들을 구조해 하산했다.
  • 귀경 체증…광주~서울 8시간30분 걸려

    귀경 체증…광주~서울 8시간30분 걸려

    설날 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후 전국의 고속도로에서는 귀경 차량이 몰려 밤늦게까지 정체와 서행이 반복됐다. 이날 하루 서울로 들어온 차량은 34만대로 전날의 31만대보다 많았다. 승용차로 서울까지 오는 데 부산에서는 7시간 30분, 광주 8시간 30분, 대전 4시간 50분, 목포 5시간 30분, 대구 5시간 10분, 강릉 4시간 10분이 걸렸다. 11일에는 평소와 비슷한 28만대, 주말인 12일과 13일에도 30만대가 각각 서울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로공사는 “이번 설 귀경길은 서울∼부산, 서울∼광주 구간의 최대 소요시간이 예년에 비해 30분 정도 짧았지만,10일 오후 차량이 몰리면서 혼잡을 빚었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그러나 “공휴일 직후 금요일에도 쉬는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많아 귀경길 교통이 적당히 분산되면서 극심한 정체현상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 방향 청주∼천안 37㎞, 망양휴게소∼성환활주로 9㎞, 안성휴게소∼남사정류장 7㎞ 구간에 부분지체 현상을 보였다. 중부고속도로는 일죽∼모가정류장 5㎞구간에서 정체됐다. 영동고속도로는 이천∼용인 22㎞ 구간에서 차량들이 밀렸다.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삼례∼여산휴게소 15㎞ 구간이 부분 지체현상을 보였다. 서해안고속도로는 해미∼서산 10㎞, 화성휴게소∼비봉 7㎞ 구간에서 차량이 서다가다를 반복했다. 서울에서 빠져나간 역귀성·행락 차량은 20만대로 전날의 30만대보다 훨씬 줄어 원활한 흐름을 보였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고속철 광명역 부근 터널 (서울기점 19㎞)속에서 서울발 부산행 KTX 제9호 열차가 고장으로 멈춰섰다. 이 사고로 하행선 KTX 7개 열차가 1시간 이상,3개 열차가 10∼30분 지연됐다. 열차에 탔던 승객 600여명은 뒤따라오던 83호 열차가 사고열차를 터널밖으로 밀어내기까지 1시간 넘게 갇혀 불안에 떨었다. 사고는 터널 내 신호장애로 KTX 열차가 천천히 가던중 전기공급이 끊기는 ‘사(死)구간’에서 차량에 이상이 생겨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고속선과 기존선이 갈라지는 시흥역 남쪽 구간에서 회로 장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재훈 박지윤 박승기기자 nomad@seoul.co.kr
  • [이사람] 작곡가겸 대금연주자 김영동 씨

    [이사람] 작곡가겸 대금연주자 김영동 씨

    “풍각쟁이로구먼!” 1973년 어느 날 선술집에서 시인 김지하는 연극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대금연주자 김영동을 소개받자 대뜸 이렇게 일갈했다. 김영동은 선배인 김지하가 조심스러워 속으로만 대꾸했다고 한다.“글쟁이로구먼!” 선술집에는 우리 식의 마당극을 염두에 두고 판소리에 빠져 있던 임진택과 탈춤운동에 한창이던 채희완도 앉아 있었다. 글쟁이와 탈놀이패, 광대가 한데 어울린 자리에서 풍각쟁이란 당시 민중문화운동에 뛰어든 ‘먹물’ 예술인들에게는 자부심이자 존칭인 셈이었다. ●70년대 김지하·임진택과 문화운동 하지만 김지하를 중심으로 한 동아리에서 김영동의 존재는 조금 특별했을 것이다. 축제 기획가로 활동하는 임진택이나 부산대 교수 채희완 등이 책에서 읽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해가며 기능을 익혀나갔다면, 김영동은 처음부터 전문연주자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여년, 인사동의 밥집에서 만난 김영동(54)씨는 ‘이론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명함에는 ‘세계생명문화포럼 경기 2005 조직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다. 그는 9월에 열리는 포럼의 취지를 “문화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 환경파괴와 전쟁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는 세계에 발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나간 몇년 동안 “우리 음악정신의 원류를 찾고, 음악과 음악이론을 연결하는 구체적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생명문화포럼도 민족 정통사상을 구체적으로 공부하여 세계적 보편성을 띨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내자는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음악감독 맡아 그는 성공한 음악가다. 그가 작곡가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서울대 국악과 2학년 시절인 1971년. 오태석이 연출한 전무송의 모노 드라마 ‘이식수술’의 음악을 맡았다. 이듬해부터 ‘초분’,‘태’로 잇따라 무대음악가로 존재를 부각시켜 나갔다. 1974년 허규 연출의 ‘한네의 승천’은 출세작이라고 할 만하다.‘한네의 이별’처럼 귀에 잘 들어오는 노래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나왔다.1978년에는 ‘개구리 소리’와 ‘누나의 얼굴’ 같은 국악동요를 발표했는데, 대중적이면서도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작곡가라는 이미지를 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땡볕’ ‘태’ ‘어둠의 자식들’ ‘씨받이’ ‘아다다’ 같은 영화음악으로 이름을 날린다.‘어둠의 자식들’에 나오는 ‘어디로 갈거나’와 TV드라마의 주제음악으로 만든 대금연주곡 ‘삼포가는 길’은 지금도 음반시장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히트곡’들이다. ●음악계 질시 비웃듯 대한민국 작곡상 수상 대중적 성공은 ‘작곡을 제대로 공부하기는 했느냐.’는 음악계의 질시를 낳기도 했다. 그는 대편성 국악관현악을 위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출발점은 다름아닌 ‘오기’였다고 한다. 황석영의 ‘장산곶 매’를 소재로 한 표제음악 ‘매굿’은 그에게 1981년 대한민국 작곡상을 안겨주었다. 김씨가 처음부터 음악에 뜻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란지였던 충남 홍성 광천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용산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 입시에서 낙방한 그에게 당숙은 재동주유소 자리에 있던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를 소개했다. 그는 실기시험이 없는 국악사양성소에 필기시험만으로 합격했다.2학년에 올라가면서 피리를 불기 시작했고,3학년이 되자 전공으로 대금을 선택했다. 인간문화재 김범수 선생의 대금 정악 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김병호 선생으로부터 가야금과 아쟁도 배웠다. 대금 산조의 명인 한범수 선생의 아현동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김씨는 “산조를 배운 적이 없으니 흉내만 좀 냈더니 선생이 쌍골죽 대금을 내놓더라.”면서 웃었다.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정악과 민속악의 중간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라고 말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83년 독일 유학 “정말 재미없었다” 국립국악원에서 일하던 그는 1983년 독일로 건너간다.“음악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죄다 독일로 가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팅겐대학에 머무는 4년 동안 공부한 비교음악학은 “내 공부가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동양음악을 대신 연구해주는 것이었다.”면서 “정말 재미없었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김씨는 ‘귀소’ ‘산행’ ‘화(和)’ 등을 펴내면서 명상음악가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한 ‘화’에는 특별한 애착이 있다. 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재직하며 많은 곡을 쓰고, 또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서양악보인 오선보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데 짜증이 났다고 한다.‘화’는 오선보에 대한 반동인 셈이다. 연장선상에서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예술가의 자기중심 찾기’다. 그는 동양음악은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수(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물론 그동안 취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필생의 작업은 주역(周易)을 음악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음악이 동양철학과 협력하여 우리 식의 작곡법을 체계화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당장은 ‘쉬운 음악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악가요나 동요, 명상음악 등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구상이 있는 듯 “결과는 빨리 나올 수도,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올 가을 관현악·명상음악·동요 섞어 음악제 올 가을에는 3∼4일에 걸쳐 ‘김영동 음악제’를 열 생각이다. 그동안 만든 작품이 소품까지 100여곡. 관현악·명상음악·대중음악·동요 등을 하루씩, 혹은 묶어서 연주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할 일 많은 그에게 음악가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지 물었다. 김씨는 대답 대신 “그동안 서양음악에 손님대접을 잘 해주었으니 이제 우리 것 좀 대접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에 우리가 찍소리 못하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그렇지만 세상이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예술가가 흔들리겠느냐.”면서 “앞으로도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나의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김종갑특허청장 - 직원 ‘혁신’ 설전

    “직렬 이기주의를 버려라.”“현 체제 하에서 혁신이 온전히 진행되겠는가.” 1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김종갑 특허청장과 직원간 대화에서는 참여정부 공직의 화두인 ‘혁신’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청의 핵심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혁신 마일리지 등에서의 상대적 박탈로 서운해 있는 심사관들의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성과에 급급, 부담만 가중” 심사관들은 현재의 혁신이 짧은 시간에 성과 올리기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도 등이 정신없이 도입되면서 기대보다는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며 ‘속도조절론’도 제시했다.A사무관은 “심사물량은 변화가 없는데 기간 단축이 강조되면서 업무 강도만 높아졌다.”며 “업무성과평가의 지표화는 결국 경쟁논리만 부각시켜 심사관 결원시 특허행정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행과정에서 심사관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나왔다. 김청장은 “우리끼리는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밖에서는 ‘그저 그런 조직’에 불과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전 직원의)감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식재산행정 혁신에 대해서는 성과주의와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임을 분명히 하고 특별회계 유지, 심사·심판기간 단축, 특허청 위상 및 역량 강화를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김 청장은 “급변하는 주변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일거리를 만들거나 이벤트성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픈 만큼 성숙한 결과 나올 것” 직렬간 이견은 이날도 뚜렷이 나타났다. 혁신 분야에서 심사·심판관들의 상대적 소외감도 그대로 표출됐다. “정책, 지원부서 업무는 심사·심판이라는 고유업무가 최상의 결과를 낼 때 가치가 있는 것”“1등부터 꼴등까지 줄세우는 것에 대한 심사관들의 자존심…” 등의 평가와 해석이 잇따랐다. 김 청장은 ‘직렬 이기주의’와 ‘편가르기’에 대해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심사·심판이 중요하지만 그 중심으로 업무를 끌고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심사국의 우선 팀제 도입과 재택근무 고유업무 평가 도입 등 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당근(?)도 제시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복도통신 등 내부의 다양한 소리를 끌어내 사실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였다.”며 “아픈 만큼 성숙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儒林(273)-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3)-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다른 성리학자들이 공자의 사상을 다만 학문으로만 연구하고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쓰다 목숨을 잃었던 순교자였다.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순교자였던 것이다. 종착역이던 안동역까지의 소요시간은 무려 6시간, 아침을 거르고 나온 나는 열차를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파는 승무원에게 도시락을 샀다.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열차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예전 그대로의 산야였고, 어쩌다 스쳐가는 강과 계곡은 의구하였지만 피란기차와도 같았던 열차의 내부는 마치 위생적인 병원의 복도처럼 정갈하였고 승무원이 파는 도시락 역시 훌륭하였다. 아침을 먹고 나서 뜨거운 물을 마시며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평일이었으므로 승객들은 만원이 아니었지만 마침 봄이라 드문드문 등산객과 관광객 차림의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도록 의자의 방향을 바꾸어 앉아서 즐겁게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철도노선에는 소백산이나 태백산, 치악산 같은 명산들이 있어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조춘(早春)이라 산야에는 벚꽃들이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피는 진달래나 개나리와 같은 성미 급한 봄꽃들이 홍역을 앓는 어린아이의 몸에 돋아난 붉은 발진처럼 울긋불긋 피어나 있어 그런대로 신열(身熱)이 오른 나른한 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일부러 중앙선열차를 타고 단양까지 가고 있는 것은 참혹했던 청춘의 옛 추억을 반추해 보려는 낭만적인 생각보다는 지난 1년 동안의 역사추적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조광조로부터 시작된 역사추적은 2500년 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공자로까지 이어졌었다. 조광조가 그토록 실현하고 싶어 했었던 공자의 유교식 개혁정치, 즉 왕도정치가 무엇인가를 나는 공자의 생애를 더듬어봄으로서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조광조가 유가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였던 정치가라면 공자역시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무려 13년 동안이나 주유천하를 하였지만 마침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실패한 사상가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실패한 정치가란 점에서는 한 개의 수정란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생아처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광조는 어째서 공자의 정치적 주유천하가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공자의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개혁정치를 펼치다 역시 실패하여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던 것일까. 어째서 조광조는 이미 실패로 끝난 공자의 왕도정치의 철학을 개혁정치의 신 이데올로기로 맞아들인 것일까. 그렇다면 조광조의 유교적 개혁정치는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것임이 예정되어 있음이 아닐 것인가. 공자의 왕도정치. 그것은 우선 군주와 힘을 가진 권력자들의 높은 윤리의식과 엄격한 도덕주의가 요구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절대 권력자들이 인·의·예·지의 유교적 이념을 철저히 실천하여 군자가 되는 것이 바로 공자의 지치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 ‘희망원정대’ 히말라야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진 원정대가 히말라야 체험에 나섰다.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5좌 완등자인 산악인 엄홍길(45) 대장의 인솔하에 10여명의 장애우들과, 그들의 손발이 돼 줄 후원자 등 30여명으로 구성된 ‘희망원정대’가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하기 위해 24일 현지로 떠났다. 원정대는 태국을 경유, 네팔로 들어간 뒤 오는 28일부터 나흘간 히말라야 안나프르나봉(8091m) 3193m 지점에 있는 푼힐전망대까지 등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원들은 히말라야 등반 동안 현지의 간이 산장인 ‘로지’(lodge)에 머물며 하루 평균 7∼8시간의 산행을 하게 된다. 이번 희망원정대에 참가한 장애인들은 시각장애, 청각장애, 소아마비, 뇌성마비, 하반신 마비 등의 장애가 있어 산행 중 현지 헬퍼(helper)와 멘토(후원자)의 도움을 받는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한 KBS 제3라디오는 수기 공모를 통해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2명을 비롯해 시각·청각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 대원을 선발했다. 이들은 히말라야 등반에 앞서 지난 8일과 14일 각각 서울 인근 우면산과 도봉산에서 두 차례 적응훈련을 가졌다. 엄 대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산을 타면서 서로 이해하고 배우는,‘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원정의 의미를 밝혔다. 11박12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희망원정대의 등반 과정은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과 장애인 프로그램인 ‘사랑의 가족’을 통해 방송된다. 또 KBS제3라디오에서는 등반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충북 민주지산

    [조용섭의 산으路] 충북 민주지산

    모처럼 눈이 왔다. 겨울철 눈꽃 산행지로 유명한 민주지산(岷周之山·1124m)을 찾았다. 민주지산은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경북 김천시와 만나 3개 도를 이루는 삼도봉(1177m)을 비롯해 석기봉(1200m) 등의 높은 봉우리들로 이어지는 능선의 눈꽃은 황홀경에 빠질 만하다. 산행은 당일치기 코스로 잡았다.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에서 시작해 쪽새골로 민주지산에 오른 뒤, 석기봉∼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다. 물한마을 주차장에서 포장길을 따르면 황룡사 입구 오른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의 초입에 ‘등산로’ 표시가 있는 오른쪽 길은 각호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왼쪽으로 철망이 쳐져 있는 호젓한 길을 약 20분 정도 들어가면 낙엽송과 잣나무 숲이 울창한 곳이 나온다. 여기에서 간이화장실 있는 곳과, 조금 더 지나 ‘잣나무숲’ 이정표에서 각각 오른쪽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두 길은 계곡 좌우로 오르다가 나중에 만나므로 어디로 올라도 된다. 잣나무숲 이정표에서 약 30여분 진행하면 직진 길과 왼쪽 계곡을 건너는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키 낮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가파른 길을 약 50여분 오르면 능선에 닿고, 여기서는 정상이 지척이다. 지능선 위로 새하얗게 드리워진 순백의 설경을 바라보거나, 산길 좌우 두툼한 설화가 만발한 신갈나무 숲을 걷노라면 가슴은 벅차오르고, 쏴아하고 스치는 한줄기 맑은 기운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지산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이 거침없고 각호봉이나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참으로 부드럽고 매끈하다. 석기봉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바위길이 가끔 나타나기는 하나 길은 대체로 편안하고 이정표도 잘 세워져있다.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석기봉의 모습이 이채롭다. 석기봉 오름길 바위지대에는 밧줄이 걸려 있고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도 있는데, 어느 쪽 길이나 주의해서 올라야 한다. 오른쪽 우회길로 가다보면 석기봉 아래 삼두마애불을 지나게 된다. 남향으로 자리잡은 이곳에는 샘도 있고 터도 잘 닦여져 있으나 물은 얼었다. 암봉인 석기봉에 서면 삼도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그 봉우리 좌우로 이어지는 우람한 근육질의 산줄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석기봉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간이대피소가 있다. 삼도봉에는 삼도 대화합 기념 조형물이 서 있고, 매년 10월10일이면 여기서 기념행사를 지낸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 온 석기봉과 민주지산이 아득하다. 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에는 리본이 많이 달려 있다. 북동쪽 급경사길을 내려서다 보면 왼쪽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극성이다. 마치,‘여기는 대간길이야!’라며 텃세를 부리듯 사납기 짝이 없고, 볼이 얼얼할 정도로 차갑다. 삼마골재에서 물한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호젓하다. 이번에 지나온 능선길은 왼쪽에 우뚝 서서 깊은 산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을 1시간10분 남짓 내려서면 낙엽송 숲을 만나고 이내 산행을 마감하게 된다. ●교통 자가용:경부고속도 황간 IC에서 빠져 나와 매곡면(579번지방도)을 거쳐 상촌면 물한리로 접근하면 된다. 대중교통:영동역∼물한리간 1일 5회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해도 좋다.(동일버스·043-742-3971). ●숙박 종점민박(043-745-1350)과 대구민박(745-0036)을 이용하면 된다. 겨울철에는 한번쯤 미리 전화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 [조용섭의 산으路]충남 논산 대둔산

    [조용섭의 산으路]충남 논산 대둔산

    충청·호남의 땅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錦江)은 동으로 백두대간을 울타리 삼고, 남쪽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서 발원한 작은 물길들을 모아 본류로 향하게 하는 산줄기를 품고 있으니 이른바 금남정맥(錦南正脈)이다. 대둔산(大芚山·877.7m)은 이 금남정맥이 무진장을 벗어나며 전북 완주군, 충남 금산군, 논산시에 걸쳐 빚어 놓은 아름다운 산으로, 특히 기암봉들이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고 암봉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케이블카 등이 있는 완주쪽 산자락으론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대둔산의 북서쪽자락,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서 정상에 오른 뒤, 완주쪽 산자락을 돌아보고 다시 수락리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코스를 잡았다. 수락지구 주차장에서 포장길을 오르면 광장이 나오는데, 왼쪽에 승전탑이 있고 산행은 정면의 숲을 들어서며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너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락폭포와 석천암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우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군지계곡으로 곧장 나아가자. 수락리 쪽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지닌 곳이다. 협곡 사이에 설치된 220계단을 오르는 느낌도 이채롭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으로 가는 양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가면 축대가 쌓여있는 공터에서 오른쪽으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왼쪽 건너편 산자락으로 석천암이 살짝 보인다. 너럭바위를 오르거나 바위 능선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다. 정상인 마천대 앞 길목에 서면 사방으로 길이 연결된다. 여기서 정상은 지척이고 금남정맥은 동서로 능선을 가로지르며 서쪽 월성봉으로 이어진다. 개척탑이라는 상징물이 있는 정상 마천대에서 기암봉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산자락을 바라보노라면 ‘호남의 금강’이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상을 내려선 매점 앞 갈림길에서는 용문굴로 방향을 잡고, 오른쪽 구름다리로 내려서는 길은 나중에 올라오도록 하자. 갈림길마다 서있는 깔끔한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능선과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30여분 진행하면 용문굴 갈림길에 닿는데, 급사면 길은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완주쪽 산자락인 용문굴로 내려서며 칠성봉 전망대에 올라 암봉들을 감상해 보자. 완만한 산사면을 돌며 장군대 옆을 지나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바로 눈앞이다. 이 곳으로 올라가면 금강구름다리로 연결된다. 마치 선계(仙界)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으로 구름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풍경속에 젖어있다가 비좁은 삼선구름다리(계단)를 오르다 보면 고도감 때문에 짜릿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락계곡으로의 하산은 낙조대쪽으로 하자. 이정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두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 산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이 낙조대 방향이고 정면 너덜길은 석천암으로 바로 이어지며 다시 만나게 된다. 장군절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길을 내려서면 산행 초입에 지났던 수락폭포앞 갈림길에 이르며 승전탑 앞 광장으로 나아가 산행을 마감한다. ●교통 및 숙박 자가용:대전∼통영고속도 추부 혹은 금산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와 68번 지방도 이용한다. 대중교통:논산∼수락리 운행버스(하루 12회·1시간 소요). 수락지구에는 대형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많아 음식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둔산 입장료는 500원, 주차비 2000원은 별도.
  •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버스타고 ‘신의 걸작품’ 금강산 겨울여행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수수 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 몇 해/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금강산은 부른다.’ 고귀함이 묻어나는 금강산(金剛山), 녹음이 깔리는 봉래산(蓬萊産), 단풍으로 물든 풍악산(楓嶽山),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앙상한 뼈와 같은 개골산(皆骨山), 눈 덮인 설봉산(雪峰山)…. 때마다 철마다 모습과 이름을 바꿔가며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금강산. 특히 겨울이 아름답다는 이곳을 살짝 맛보고 왔습니다. 오색찬란한 화려함은 없지만 봉우리의 자태가 빼어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웅장함에 넋이 나가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 여행으로 겨울에 더욱 아름다운 금강산이 어떨까요. 지금 바로 비무장지대를 거쳐 출발합니다. ●보이지 않는 남북의 선을 넘어 오후 4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있는 남측출입국관리소(CIQ)에서 간단한 출국 수속을 마쳤다.(한 나라의 땅인데도 ‘출국’이라니, 왠지 서글프다.) 비무장지대를 건너, 북녘을 향한다. 비무장지대의 임시도로로 33인승 미니 버스가 신나게 달렸다. 금강통문과 남방한계선을 지나 출발한 지 15분만에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이제부터 북한이다. 함께한 ‘관광조장(관광가이드)’에게는 2003년 9월에 육로관광이 시작된 후 오늘까지 452번째로 넘는 군사분계선이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민족을 갈라놓은 선은 없다. 그저 도로 구석에 철책도 아닌 녹슬어버린 표지 하나가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며 민족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다. 북방한계선을 지나 구서통문에 차가 멈췄다. 겨울 찬바람에 빨갛게 언 볼과 오래된 듯한 군복의 북한군인 두 명이 버스에 올라 “모두 몇 명입네까.” 짧게 한마디 묻고는 내려버린다. 통관 절차다. 도로 옆 연두색 철책은 관광지역과 북측 마을의 경계다. 철책 너머로 북측 마을에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갈 수는 없다. 개발되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고성 통일전망대를 떠난 지 45분만에 금강산에 도착했다. 정말 가까워졌다. 배로 무려 4시간이 걸린 길을 이렇게 단숨에 달려오다니. 벅찬 감흥을 가슴에 담고 북녘에서의 첫날은 지나간다. ●신의 걸작, 계절의 명산 개골산 둘째날 아침 8시30분에 금강산의 구룡연으로 출발했다. 금강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미인송. 옆으로 늘어진 소나무가 아니라 하늘로 쭉쭉 뻗은 자태가 미인처럼 아름다워 미인송이라 이름 붙였다. 미인송 숲을 빠져나와 10여분만에 도착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북한 해설원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한반도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와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상팔담을 볼 수 있으며 산행시간은 왕복 4시간입네다.” 맑은 공기가 가득한 계곡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겨울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흙이라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산. 그래서 인간의 뼈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산. 그것이 개골산이다. 커다란 바위를 깎고 다듬어 만들어 놓은 신의 걸작품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그 바위에 자라고 있는 ‘배지하늘솔’. 땅을 배신하고 하늘을 향하는 소나무란 뜻으로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다. 신기하다 신기해. 어찌 저렇게 단단한 바위덩어리에 생명이 자라고 있을까. ●아름다운 금강산을 눈에 가득 담으시라요 30분 정도 걸어가 도착한 양지대에서 여자 해설원이 말한다. “저 앞에는 거북선 모양의 거북선바위, 뒤에는 개구리 바위예요. 선생, 거기가 아니고 저기라요. 이쪽 보시라요.” 말투는 약간 퉁명스럽지만 정감이 느껴져 “원래 북측 여성동무들은 다 예쁩네까.”하고 묻자 “심한 농하면 안됩네다.”하고 정색이다.“죄송합니다.” 꼬리를 확 내리고 다시 걷는다. 삼록수는 추운 날씨에 얼어버렸다. 산삼과 녹용이 흘러내린다는데…. 마시지 못해 아쉽다. 땀으로 젖은 머리는 금세 얼어버린다. 진한 에메랄드빛부터 연한 옥빛까지 다양한 초록이 어우러진 유명한 옥류동계곡도 얼음으로 변해있어 물빛의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다. 대신 굽이굽이 계곡을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금강산의 비경을 눈에 담는다. 이래서 금강산을 느끼려면 사계절을 와야 한다는 건가. 1시간을 걷자 나타난 웅장한 비룡폭포. 얼어버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던진 번개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중간중간 비석에 김일성교시를 적어 놓은 ‘표식비’와 봉우리마다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들이 즐비하다.15분을 더 걸어 관폭정에 도착했다. 구룡폭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정자다. 북측안내원들이 “수고하셨습네다. 여기가 조선의 3대 폭포중 하나인 구룡폭포입네다.”라며 설명한다. 이곳에서 파는 차 한잔에 1달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얼어버린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는데 ‘쩌억!쩍!’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다. 깊고 깊은 금강산, 이곳 아니면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언 몸을 잠시 녹이고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가진 상팔담으로 향했다. 가파른 절벽을 향하는 길에 ‘아휴, 다리야. 그냥 갈걸.’하는 후회가 간절하다. 도대체 뭐가 있기에 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르려 했나.30분을 올라 도착한 구룡대. 아까의 후회는 사라진다. 커다란 바위로 발아래 계곡에 비록 얼어있지만 멋진 소와 담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고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먹으러 목란관에 들렀다. 아침에 10달러를 내고 산 표(식권)를 건네며 주문을 하는데 북한여성이 “여기는 무조건 냉면이라요.”라며 돌아간다. 추어탕,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더니만. 10분,20분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인내의 한계를 느껴 냉면 언제 나오냐며 불평하자 “참고 기다리시라요.” 한마디하고 돌아간다.30분만에 나온 물냉면, 육수는 심심하고 면발은 그럭저럭이다. 양념이 적은 북한음식은 입맛에 잘 안 맞는다. 저녁에는 물이 좋다는 금강산 온천에 몸을 담근다. 반짝이는 별을 보며 향긋한 미인송의 냄새를 맡으며 금강산의 정기를 맨몸으로 느끼는 노천온천이야말로 최고다. 피로가 가시며 여유가 생긴다. 금강산에는 음기가 강해 한달에 한번씩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데 오늘이 그날이란다.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곳이 어제는 여탕이었다! ●만물상을 품에 안고 셋째날은 만물상코스다. 미니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미인송이 가득한 길을 간다. 마치 옛날 대관령을 오르는 것 같다. 내금강과 외금강을 연결하는 온정고개는 모두 106굽이, 이중 만물상까지가 모두 77굽이다. 온정각에서 떠난지 30분만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왕복 2시간 코스. 구룡연과 다르게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깎아지른 절벽과 솟구쳐 오른 봉우리, 그 위에 아슬아슬 올라선 바위들. 토끼 호랑이 거북이는 기본이고 독수리 곰 허수아비 등 저마다 이름을 가진 바위들이 펼쳐져 ‘만물상’답다. 삼선암 귀면암 절부암을 지나 30분을 오르니 안심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아래는 수길 낭떠러지이고 그만큼 또 위로 봉우리들이 솟았다. 울퉁불퉁 근육질 남자의 벗은 몸처럼 아릅답고, 힘이 느껴진다. 금강산을 보지 않고 산세를 논하는 것은 허무하다고 했던가. 역시 민족의 명산이란 칭송이 아깝지 않은 산이다. 철사다리를 의지하며 천선대에 오르자 눈 앞에 펼쳐지는 만물상에 또 한번 놀란다. 나도 모르게 조물주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망향대까지 오르고 싶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다. 그림같은 만물상을 가슴에 담은 채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에서 북한해설원들이 따뜻한 두부와 막걸리를 판다.5달러. 산행 뒤에 마시면 더욱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함께 금강산 일정이 끝났다. 몇 해전, 여름 금강산에서 “반드시 겨울에 오리라!”던 꿈을 이뤘더니, 또다른 욕심이 생긴다. 금강산은 바로 그런 민족의 산이다.‘언젠가 내 다시 너를 품으러 오마. 좀 더 자유롭게….’ ● 이렇게 가세요 금강산 관광 선택의 폭이 좀 넓어졌다.2박3일,1박2일, 당일 등 세가지의 형태로 진행중이다. 당일은 2월말까지 토요일만 출발하며 1인당 12만원.1박2일은 매주 토, 일요일 출발 1인당 20만원,2박3일은 매일 출발한다.29만원. 단 교예공연(25달러), 온천욕(12달러)과 식사(중·석식, 보통 10달러)비용은 별도 부담. 또한 통일부에 방북승인신청 등을 해야 하므로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에 예약해야 한다.(02)3669-3000,www.mtkumgang.com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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