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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소기업·종합상사/해외 공동진출 활발

    ◎수출대행업무서 벗어나 시장 함께 개척/10∼50% 지분 받고 기술 제공/동반진출 희망기업 공개모집도 종합상사들과 중소기업간의 공존을 위한 협력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수출입 업무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된 종합상사들의 자금력,마케팅능력과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접합시켜 국제무대에서 공존공영한다는 협력전략이다.이름만 빌려주던 단순 수출대행 업무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의 공동개척은 물론 해외 동반진출,국제 전시회의 공동참여 등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이같은 협력관계는 하청형태의 종속관계에서 동업자로 중소기업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협력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바람직한 협력형태는 동반진출.제조시설이 없는 종합상사가 중국이나 베트남 등 현지에 공장을 세울 때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를 갖춘 중소기업과 동업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주)대우는 이를위해 유망중소기업을 협력회사 멤버십으로 지정,이들 업체와 해외동반진출을 하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해남성에 세운 주석도금 강판공장.동양석판공업이 15%의 지분을 갖고 참여했다.베트남 타포린 생산공장의 경우 한국타포린이 50%,(주)대우가 50%씩 투자,지난 5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이외에 미얀마 합판공장은 삼원실업(10% 지분),베트남 파이프공장은 부산파이프(30% 지분)등이 참여하는 등 현재 6개 해외공장에 동반진출 중이다. LG상사는 대북 임가공 사업에서 동반진출을 원하는 중소기업들을 공개모집,50개 유망업체를 선정했다.이중 신발과 피복,장갑,우산분야 등 10개업체와는 임가공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케팅대행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협력형태다.중소기업이 개발한 아이디어 상품을 종합상사의 해외 판매망을 통해 팔아주는 대신 일정 수수료를 받는 방법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대림파렛트가 국내 처음 개발한 무공해 종이파레트의 해외 판매를 맡았다.1백% 재활용이 가능해 연간 1천2백억원 규모의 파레트 시장에 돌풍이 예상되는데다 환경 친화제품을 찾는 선진국들의 주문이 밀려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같은 중소기업과 종합상사들의 협력형태를 지원할 방침이다.오영교 통산부 중소기업국장은 『종합상사라도 제조업 분야에서 해외 동반진출한 중소기업에대해 기술 및 인력개발을 지원할 경우 이 부분에 대해 연말부터 현재 5%에서 10%로 세액공제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아태재단­일부후보 「커넥션」확인/서울 교육위원 선출 비리 수사파장

    ◎선거당일 “헌금 않으면 낙선” 소문 무성/관련 지방의원들 무더기 처벌 불가피 서울시 교육위원 선출을 둘러싼 교육위원 후보자와 일부 서울시·구의원,아태재단측 사이의 「부정커넥션」이 검찰수사로 속속 드러남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조사 결과 교육위원선거에 출마했던 50여명 가운데 20여명이 아태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당선을 약속받았거나 선출및 추천권이 있는 시·구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당선」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아태재단에 5백만∼1천만원의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국민회의측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아태재단측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아태재단측은 특히 『5백만원을 받고 교육위원을 시켜준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회 가입을 강요한바 없으며 허위사실을 유도한 사람을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태재단선 부인 검찰은 이와 함께 새정치국민의회측의 서울시의회 상임위원장 등 일부 간부들이 이번 교육위원 선거부정과 관련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후보자들에게 『이같은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등의 「회유」와 「협박」을 한 점을 중시,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 백의종의원은 지난 21일 서울시 교육위원 선거가 끝난뒤 기자회견을 갖고 『아태재단 후원회 간부이자 시의회 부의장인 김기영의원이 아태재단에 후원금 5백만원을 내면 교육위원으로 선출해 주겠다며 후원회 가입을 권유하면서 후원회원 신청서와 8개 시중은행의 온라인 번호까지 알려줬다』고 폭로했었다. ○회유·협박도 수사 검찰은 또 일부 시·구의원들이 교육위원 입후보자들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교육위원선거는 구의원들의 추천에 따라 시의원들이 선출하는 「이중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이 때문에 제도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서울 E구의 경우 구의장이 교육위원 추천에 앞서 구의원들에게 금배지 등을 돌리며 모후보를 지원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으며 또 다른 구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입후보자들에게 2백만∼3백만원씩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거 당일 후보들 사이에선 『아태재단에 헌금을 하지 않으면 당선되지 못한다』『아태재단 간부인 시의회 모간부와 눈인사라도 해야 한다더라』등의 소문이 퍼져 일부 후보들은 마지못해 헌금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시·구의원이 교육위원 입후보자들로부터 직접 금품을 받았다면 뇌물수수혐의를,교육위원들이 시의원을 통해 아태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당선을 부탁했다면 제3자 뇌물제공혐의를,이를 알선한 시의원에게는 제3자 뇌물요구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타격 클듯 그러나 후원금을 받은 아태재단측의 관계자에 대해서는 후원금을 내게한 시의원과 공모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떠한 형사처벌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제3자 뇌물제공죄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아태재단측은 후원금모금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법률적 문제는 피해갈수 있어도 도덕적으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해 속을 태우고 있다. 어느 직역보다 깨끗한 선거를 요구하는 교육위원선거에서 명목이야 어쨌든 「금품수수」가 있었다면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태재단/후원금 연60억이상 모금/조직구성과 운영방식을 알아보면/정치지망생 등 회원수 총 3만여명/돈흐름은 김이사장·사무총장만 알아 서울시교육위원 선출과정에서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아태평화재단은 지난해 1월 김대중씨가 설립한 국제학술연구재단이다.통일정책의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외무부에 등록된 민간단체이나 재단의 자금줄인 아태재단후원회는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정치지망생들로 구성,김이사장의 정치활동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교육위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낸 후원금이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아태재단은 조직표상 이사회와 사무처·자문위원회 및 고문단·후원회 등으로 크게 나눠진다.이중 사무처는 이사장 직속으로 재단 살림을 관장한다.후원회는 재단의 돈줄을 맡고 있다.따라서 돈의 흐름은 김대중 이사장을 비롯해 재단의 임동원 사무총장,후원회의 황용배 사무처장 등 일부만이 알고 있다.후원회는 재단이 발족하기 6개월전인 93년7월부터 활동을 시작,재단의 산파역할을 했다.조직은 회장단과 중앙위원으로 구성됐으며 회장은 여권출신인 이동진 전의원이 맡고 있다. 이중 중앙위원은 연간 5백만원 이상을 내는 특별위원으로 위촉되며 현재 약 6백명 정도로 추산된다.새정치국민회의의 박태영의원이 회장을 맡아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주목할 점은 처음 80여명이던 중앙위원이 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이번에 의혹을 사고 있는 서울시교육위원들도 모두 6월에 5백만원 이상을 내고 가입한 특별회원이다.또 연간 10만원 이상을 내는 일반회원도 3만명을 웃돈다고 한다.따라서 재단에 지원되는 돈은 어림잡아도 최소한 연간 60억원을 넘는다. 후원금은 황용배 사무처장이 집계해 재단에 보고하며 임동원 사무총장이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집행한다고 한다.이와관련,임총장은 『매년 외무부로부터 정기감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후원금과 관련된 어떠한 의혹도 없다』면서 『후원금은 주로 연구비·출판비·세미나지원비·인건비로 쓰인다』고 말했다.그러나 후원회가 정치인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점,자금의 지출내역이나 모집과정이 철저히 비공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후원금으로 냈어도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정치 속석상 별도의 뒷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은 아태재단이 의혹을 받는 부분이다.
  • 민자 김대표 연희동 방문 이모저모

    ◎노 전대통령과 「국민화합」 방안 등 의견 교환/전 전대통령 “한강개발 안했으면 큰일 날뻔” 민자당의 김윤환 대표위원이 28일 하오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을 연희동 자택으로 잇따라 방문했다. 김대표는 전대통령시절 청와대정무수석을 지냈고,노대통령시절 청와대비서실장을 지내는등 5·6공 정권이양기를 거치면서 두 전직대통령과 남다른 관계를 쌓아왔다.특히 노대통령은 김대표와 경북고 32기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따라서 대표위원 취임인사라는 명목에도 불구하고 김대표의 이날 연희동 방문은 「5·6공 신당설」과 민정계의원들의 동요가 잠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접견실에서 기다리다 하오 3시 정각 김대표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으며 『축하합니다.오랜만입니다.어려운 시기에 당 대표를 맡아 수고가 많겠지요』라며 악수를 건넸다.이어 총선을 뜻하는 듯 『큰행사를 남겨놓고 일들을 많이 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했다.이에 김대표가 『대표를 맡게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어떻게 해야할지…』라고 답하자 노전대통령은 다시 『잘 해낼 것』이라고 격려했다. 노전대통령은 『(나도)10년전인 85년에 당을 맡아 정치적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꾸려갔다』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러고 저러고 말이 있지만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고 회상했다.이어 노전대통령이 『그동안 중요한 산파 역할,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치켜주자 김대표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화합시키려 애쓰고 있다』면서 『3당 통합 정신도 그런 것이고,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두 사람은 이어 김대표를 수행한 윤원중대표비서실장을 물리치고 40여분 동안 단독 대담했다. ○…전전대통령은 하오 4시 현관에서 기다리다 『축하합니다.환영합니다』라며 김대표를 맞았다.김대표가 『요즘 골프를 하십니까』라고 인사하자 전전대통령은 『골프도 하고,등산도 하고,운동도 하면서 지낸다』고 받았다. 김대표가 『정치도 좀 바뀌어 민심도 되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잇자 전전대통령은 『(김대표가) 정치능력과 융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발탁된 것』이라면서 『발탁이라기보다는 추대된 것이지』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전전대통령이 『막판 어려울 때 비서실장을 맡아 역할이 컸다』고 회상하자 김대표는 『그 때 많이 배운 것이 도움이 됐다』고 화답했다.이어 두 사람은 태풍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다 김대표가 『한강에 피해가 적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자 전전대통령은 『(5공시절)한강개발을 안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웃으며 답하기도 했다.
  • 「여아말살」(외언내언)

    「인도 비하르주의 한 농가에선 출산된 아이가 여아로 확인되면 산파가 익숙한 솜씨로 허리를 비틀어 살해해버린다」「홍콩접경의 한 중국고아원에선 요람에 담긴 여아가 골방에 방치된 채 굶어죽는다」「한국에선 초음파 검사에 의해 태아가 여아로 감별되면 낙태당한다」 오는 9월4일부터 4만여 대표가 참가하는 대대적인 유엔 세계여성대회가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가 특집한 표지기사「여아들을 말살하라」의 첫머리다.결과적으로 아시아의 남녀 성비는 자연상태보다 여성이 1억이나 부족한 형편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남아 1백명당 여아 95명이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남아가 5명 많은 것은 일생을 통한 남성 사망률이 높은 것을 감안한 신의 섭리라는 것.그것이 아시아에선 인위적으로 깨어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남아 1백명당 중국에선 85명,인도·파키스탄에선 93명,그리고 한국에선 86명의 여아밖에 태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2010년의 한국은 성혼기의 남녀비가 남 1백 대 여 77밖에 안될 것이라고도 경고 하고 있다. 중국·대만·한국등에서는 가계계승이라는 유교윤리와 한 자녀 의무화의 가족계획법 및 태아성감별기술의 발전등이,그리고 인도·파키스탄등에선 가난과 결혼지참금이 여아 살해및 낙태 보편화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도시 한자녀,시골 두자녀가 의무화되고 있는 중국에선 낙태의 95%가 여아다.빈곤이 주범인 인도의 경우는 장차 평균 1천6백50달러(약1백30만원)의 결혼지참금을 부담 않기 위해 태어난 딸아이를 생매장까지 한다는 것. 이같은 여성 유·태아살해의 비인간적 비극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다음 세기의 아시아는 신의 섭리를 거역한데 따른 큰 혼란과 사회경제적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이 잡지는 경고하고 있다.재앙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있어서 안될 반인륜의 비극이요 범죄가 아닌가….
  • 부산파이프사 개명/내년부터 「세아」로

    부산파이프 그룹은 내년부터 그룹 이름을 세아로 바꾸기로 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세아는 세계속의 아시아라는 뜻이다.부산파이프 공장이 지난 70년 부산에서 포항으로 이전한 데다,그룹의 업종구조가 강관 일변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현재의 이름이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아 이름을 바꾸게 됐다.
  • 「주가 작전」 누가 뛰나/증권사대리 피살계기로 본 실태

    ◎D·S상고 출신 등 증권사직원 주축/5∼20명씩 「얼굴없는 세력집단」 형성/동료끼리 점조직화… 혈서로 비밀 유지 동방페레그린 증권사 이형근 대리(32)가 주가 「작전」과 관련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아짐에따라 증권가의 「작전」에 가담하는 세력과 이들의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주요 작전세력은 D상고·S상고·S대·Y대·K대 출신의 증권관련사 직원들.이들은 출신학교별로 적게는 5∼6명,많게는 10∼20명씩 「얼굴없는」 세력군을 형성,대상 주식을 대량 사들인 뒤 『호재가 많다』『주가가 곧 2배로 뛴다』는 식의 헛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조종한다.특히 D·S상고 출신들은 「물불을 안가리는 세력」,「무서운 아이들」로 불릴 정도로 무모하게 「작전」을 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전세력들은 대부분 증권에 대한 전문지식과 기업의 내부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위에 있으며 고객 자금동원력이 뛰어나다.이밖에 지연을 중심으로 한 「부산파」,직업을 중심으로 한 「공인중개사파」 등도 있으나 학연만큼조직적이지 못하다. 작전세력들은 「작전」에 들어갈 때 나름대로 「재료」(주가상승 요인)가 있는 자본금 1백억원 안팎의 중·소형주를 겨냥한다.물량이 많은 은행주나 대형우량주 등은 값이 비싸거나 덩치가 커 「작전」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중요 「작전」시는 펀드매니저 등 전문가를 한 두명씩 동참시키기도 한다.또 세력에 가담한 동료들이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서서히 대상 주식을 사들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자연스럽게」 주가가 오르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일반투자자들을 끌어 들인다. 이들은 「작전」에 앞서 심지어 혈서까지 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들린다.「작전」기간 중 가담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탈하면 그만큼 상대방이 부담을 떠안거나 또 다른 동참자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살된 이씨의 경우 이같은 「작전」에 자주 가담,수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특히 지난해에는 한 번도 예상이 빗나가지 않아 증권가의 「쪽집게」로 알려지면서 크게 돈을 불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작전」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작전 성공률은 30% 안팎』이라며 『섣불리 작전을 폈을 경우 주가 상승을 위해 투자한 부대자금을 제외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수가 있고 팔 때를 놓쳐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올해들어 주요 「작전」종목은 B약품·K통신·S피혁·S물산·R전기·D섬유 등.특히 숨진 이씨도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K통신의 경우 지난 7월 한달 사이에 작전세력들의 농간으로 주가가 1만5천원대에서 자산가치보다 월씬 높은 3만6천원대까지 수직 상승하기도 했다.K통신은 시세조종에도 불구,증권감독원이나 거래소로부터 조사도 받지 않아 의혹을 남기고 있다. 또 R전기의 경우도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작전」대상이 됐다가 증감원에 적발,K증권 차장 K모씨 등 가담자 7명이 고발조치됐다. 증권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작전세력은 소문만 무성할 뿐 가담 동료들끼리도 서로 잘 모를 정도로 점조직화돼 있어 실체의 추적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특히 고객들이 증권사 직원 등에게 일임매매를 부탁한 경우가 많아 이들을 작전세력화시키고 증권범죄나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순시장 신당불참 시사/야권 미묘한 파장

    ◎“뜻밖의 악재”… 외부인사 영입 차질 우려­신당/“포청천이 DJ사당 심판” 환영 분위기­민주 조순 서울시장의 신당불참 시사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김대중씨의 가칭 「새정치국민회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이미 약속이 돼있다』고 자신감을 보인 반면 민주당 이기택총재측은 『포청천이 DJ사당을 심판했다』며 반겼다. 조시장 만들기의 산파역을 했던 신당측은 조시장의 멈칫거리는 행보가 당의 면모를 새롭게 하기 위한 외부인사 영입에 악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사태가 의외로 심각성을 더해가자 김대중 상임고문은 2일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조시장의 참여시기와 형식 등에 관해 전략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조시장과의 물밑접촉 사실을 밝히는등 직접 진화에 나섰다.김고문은 『참여문제는 조시장이 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며 『최근 조시장과 만나 창당에 관한 양해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김고문이 조시장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했기에 이같은 말을 하는게 아니냐』고말한뒤 『조시장을 비롯해 단체장의 거취는 창당대회를 전후해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서울시장 선거때 조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배기선씨는 『조시장의 성격으로 봐서 당체제가 정비되기 전까지 자신의 거취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은 신당에 동참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총재측은 조시장의 신당불참 시사를 「너무도 당연하고 당당한 처사」라며 환영했다.이기택 총재는 『서울시민들이 교통문제와 대형사고·공해 등에 시달리는 마당에 시장이 제위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반긴뒤 『민주당 후보로 뽑힌 시장이 신당에 간다면 서울시민들은 이를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보통신(세계화 이렇게 하자:17)

    ◎차세대 SW 개발「인프라」 구축 시급/해외 과당경쟁 막게 국내업계 제휴/세정책 배려… 민간참여 폭 넓혀야 지난 5월 29∼30일 서울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통신·정보산업장관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석한 오이데 (대출준)우정장관은 시종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아·태 정보통신기반구조(APII) 구축에 최대한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면서도 역내 정보통신기반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준데 대해 자존심 상한 모습이 역력했다. 역내 정보통신망 장악을 노려 아시아정보통신기반(AII)계획을 이미 제안해 놓은 일본의 입장에서 이 분야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에 선수를 뺏긴 사실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호황때 온힘 쏟아야 지금까지 국가간 정보통신기반구조 구축과 관련한 구상으로는 미국과 일본이 각각 제안한 글로벌통신기반(GII)과 AII 등이 있지만 APEC회원국이 한자리에 모여 역내 통신망구축 방안을 구체 논의하기는 한국에 의해 제안된 이 회의가 처음인 터였다. 정부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6대 전략으로 국제화·경쟁화·정보화·자율화·지방화·인간화를 내걸었다.이중 정보화는 국경없는 세계의 단일경제권시대에 승자가 되기 위한 가장 필수조건이자 21세기 국부의 원천으로 6대 개혁전략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정보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일의 최근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난다.미국은 한때 생산성 하락으로 경제전쟁에서 일본에 밀렸지만 지금은 다시 주요 산업의 경쟁력면에서 일본을 추월했다.이는 일본이 80년대와 90년대 초의 경제호황기에 정보통신분야 투자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현재 미국에 비해 정보화가 10년이상 뒤쳐진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현재 선진국들의 정보화 노력은 단연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으로 압축되고 있다.미국은 지난 93년 국가정보기반(NII)계획을 발표,정보고속도로 건설을 추진중이며 일본도 「신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위해 오는 20 10년까지 45조엔을 투입,차세대 정보통신기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정보통신분야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20 15년 초고속정보망구축 완료 ▲정보통신사업해외진출 강화라는 양대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로 불리는 초고속정보통신기반 사업은 20 15년까지 45조원을 들여 전국의 기업·연구소·가정을 광케이블로 거미줄처럼 연결한다는 프로젝트. 정부는 올부터 97년까지 제1단계로 서울∼대전간 초고속 선도기간전송망을 구축,공공기관·대학·연구소등 정보이용 선도그룹을 수용하며 20 10년까지는 전국 12개 도시를 잇는 초고속국가망 교환국을 설치할 계획이다.이어 3단계로 20 15년까지 전국 각지에 광케이블을 매설,언제 어디서나 영상회의·원격진료·원격강의 등의 첨단서비스를 이용 가능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 「꿈의 통신망」이 완성될 경우 국가경제에 지대한 생산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천조운 초고속망구축기획단 부단장은 이와관련,『정보통신 산업분야에 61조원,다른 산업분야에 38조원등 총 투자액의 2.2배인 1백조원의 생산유발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힌다.또 56만명의 신규 고용인력이 창출되며 국내총생산(GDP)도 3.2%가 증대되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천부단장은 따라서 『3공시절 경부고속도로를 깔아 오늘 날 산업화의 초석을 마련했듯이 이제는 초정보고속도로 건설에 매진할 때』라고 역설했다. 정부는 정보통신분야의 세계화를 위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전략아래 정보산업의 해외진출 노력도 적극 병행하고 있다. ○개방 파고 적극대처 아·태 정보통신기반구조(APII)의 조성을 주도하고 국제적인 해저광케이블망의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다.즉 APII를 이끌어 국내 정보통신수준을 현대화하는 한편 국제 해저케이블망을 통해 글로벌네트워크의 기반을 조성,통신개방파고에 정공법으로 맞서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보라 빛 청사진이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의 꽃」인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규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초고속정보통신연구본부장은 『초고속통신 기반은 도로·항만등 사회간접자본의 건설과 달리 국민모두의 동참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국민들의 정보화에 대한 욕구,즉 개인적 정보화라는 「인프라」가 없이는 지역정보화 뿐 아니라 국가차원의 초고속정보화는 요원하다는 분석이다. 또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정보화 정도가 미국의 7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우선 올바른 투자방향부터 설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석호익 정보통신연구관리단 연구정책관리위원은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파급효과가 큰 핵심기술에 집중투자하는 이른바 「송곳효과」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이러한 투자방식은 하드웨어등의 가시적인 분야가 아닌 인력양성 및 소프트웨어 개발등에 집중될 때 높은 부가가치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소장은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서비스개발을 우선적인 과제로 꼽았다. 이밖에 최동휘 한국통신연구개발원 소프트웨어연구소장은 『초고속정보통신사업이 기술적인 문제의 해결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사회·문화·제도적인 요인을 함께 고려한 균형있는 정책 추진을 주문했다.다시 말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조세감면 및 금융지원책 마련,정보보유자와 비보유자들의 격차해소를 위한 정책,경제적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모든 소비자가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정책등이 강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렷한 목표 없었다 서정욱 한국이동통신사장은 국내 통신사업의 해외진출방안과 관련,『기존의 해외사업은 정확한 목표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돼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정된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중복투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투자우선 순위를 설정하는 한편 국내 통신사업자간의 제휴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기여입학­찬반논쟁 가열조짐/“사대 재정난 해소위해 불가피”­찬

    ◎“국민 정서에 위배…아직 이르다”­반/교육부·교개위, “공감대 없어 당장 허용 어렵다” 97학년도부터 사립대의 입학전형이 대학에 맡겨짐에 따라 기여입학제의 허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선발 방식을 대학에 맡긴다면 기여입학제도 허용하는 것이 논리에 맡는다는 주장과 국민정서적인 면에서 정책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실무당국자는 교육수혜자인 국민의 편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전제아래 아직 기여입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만일 사립대가 자율을 내세워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면 국고지원과 행·재정 지원을 전면중단하는 등 제재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사립대에서는 학생선발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 이상 기여입학제도 허용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학 교육을 다양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일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마땅히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당국의 유권해석이 내려진다면 기여입학제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사립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육개혁안을 만든 교육개혁위원회의 태도는 분명하지 않다. 위원회의 이명현 상임위원은 『사립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자율화 했기 때문에 기여입학제의 도입도 대학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헌법이나 국민정서에 달려 있는 것으로 「된다」「안된다」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이어 『미국의 대학에서는 부모가 대학에 건물을 기부하는 등 대학재정에 기여했다면 자녀들을 입학시켜 주는 예가 많지만 어느 국가도 대학입학을 전제로 한 기부금 납부는 없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위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뿐이지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의 말이지만 애매한 자세임은 분명하다. 굳이 풀어본다면 대학에 돈을 내고 입학하는 방식의 기여입학제는 당장 허용하기 어렵지만 헌법과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국민 정서도 따라준다면 기여입학제는 앞으로 충분히 검토할 문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영식 교육부장관도 취임 직후 『미국과 같이 대학의 입학권은 가능한 한 빨리 대학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해 기여입학제의 도입에 다소 긍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교육정책적인 허용 여부와는 별도로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선 대학과 교육행정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사립대학 총·학장협의회가 지난해말 전국 90개 대학 총·학장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5.5%가 「기여입학이 대학재정난 해결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대답했으나 33.3%는 반대했으며 나머지 10%는 「아무래도 좋다」고 응답했다. 기여입학을 허용하자는 쪽도 51.1%가 인원과 방법을 규제해야 한다고 했고 대학자율로 결정하자고 한 사람은 26.7%였다. ◎“세계화 맞춰 「교육의 틀」 재정립/입시지옥고통·과외비 과다부담 해소 주력/교육개혁 산파역 박세일 정책기획수석(인터뷰) 『이번 교육개혁안은 교육 자체뿐 아니라 우리국가 전체의 기본틀을 21세기에 맞게 새로 짜는 것입니다』 박세일 청와대정책기획수석은 청와대수석 가운데 가장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중의 하나로 꼽힌다.사법개혁에 이어 이번에 발표된 교육개혁안도 그가 산파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개혁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첫째는 세계화·정보화시대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교육의 틀을 그에 맞춰 다시 짜는 것이다.둘째는 입시지옥,사교육비 과다부담등 당면한 교육관련 고통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개혁안의 주요특징은. ▲대학으로부터 시작해 교육의 기본틀을 다시 짠다는 구상이다.대학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평생학습사회를 열어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초·중등교육도 개혁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틀 자체는 과감히 바꾸면서 진행과정을 단계적으로 해 적응기간을 갖도록 했다. ­초·중등교육의 개선방향은. ▲학부모와 학생의 교육과정에 대한 참여폭을 넓히는 게 핵심이다.국·영·수위주의 암기식 교육에서 다양화·특성화쪽으로 교과과정을 바꾸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교육재정문제가 결론나지 않았는데. ▲과거에도 교육관련 개혁안이 나온 적이 있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못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이번에는 GNP의 5%를 교육재정으로 투입하는 안이 반드시 달성될 것이다. ­왜 구체적 재정조달방안 발표를 9월로 미뤘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자치단체가 지방교육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상당부분을 지게 된다.따라서 지방선거 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가 협의할 필요가 있다.또 GNP의 5% 달성을 위해서는 증세,교육공채 혹은 예산의 다른 부분의 전용등 국가재정구조 전반을 손대야 한다.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 순찰차 몰다 사고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 장흥경찰서는 30일 순찰차를 몰고 가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뒤 다른 차량이 사고를 내고 도주한 것처럼 허위신고를 한 관산파출소 소속 박상원 순경(24)을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박 순경은 지난 29일 하오 7시30분쯤 같은 파출소 윤대현(55)경사와 함께 전남 2라 4136호 순찰차를 타고 순찰 근무를 하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죽교리 관산중 앞길에서 길을 가던 황병연씨(58·장흥군 관산읍 옥당리)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순경은 사고를 낸 뒤 곧바로 장흥경찰서에 『뺑소니 사고가 발생했다』고 무전으로 허위 보고했다 30일 상오 11시쯤 경찰서 조사반원들에게 범행사실을 자백했다.
  • 이종일 선생/3·1 독립선언서 인쇄 배포(이달의 독립운동가)

    ◎제작중 조선인 형사에 들켜 무산될뻔/제2만세 운동 좌절… 고문·옥고로 숨져 3·1운동 이틀전인 1919년 2월27일 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1인인 옥파 이종일 선생(1858년 11월6일∼1925년 8월31일)은 천도교 소유 인쇄소인 보성사의 문을 닫아걸고 직원들과 함께 한창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언론·종교활동을 통해 민족구국계몽운동을 펼쳐온 선생은 3월1일 낭독·배포할 독립선언서 3만5천장을 찍던 중이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를 수없이 체포해 악명이 높은 일제 종로경찰서 조선인 형사 신철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애국심으로 뜨겁게 달궈져있던 인쇄소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각됐다.신철은 막무가내로 인쇄중이던 독립선언서를 빼앗으려 했다. 보성사 사장으로 인쇄를 총괄하던 이종일 선생은 『이것만은 안되오.이 일은 멈출 수 없는 일이오』라면서 신철 앞에 무릎까지 꿇으며 그를 설득했다. 일단 신철을 「잠시 기다리게」 한 선생은 곧바로 이웃 손병희 선생의 집으로 달려가 사정을 전했으며 손병희 선생은 거금 5천원을 신문지에 싸선생에 건네주었다. 선생은 이 돈을 들고 인쇄소로 뛰어와 신철에게 주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돈을 받아 나갔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이 무산될 뻔한 위기를 간신히 모면한 것이다. 신철은 이후 만주에서 일경에 붙잡혀 조선으로 압송돼 오던중 열차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선인의 자존심을 세계에 알린 3·1독립운동은 선생 등과 같이 자신의 안위를 아랑곳 않은 독립지사가 없었으면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3·1독립운동의 산파역을 맡았던 선생은 15세때 문과에 급제,관직생활을 하다 1896년 독립협회에 가입,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같은해 말 손병희 선생의 천도교에 입교한 선생은 민족의식 고취와 인재양성을 위해 신문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1898년 유영석 등과 함께 순한글의 「뎨국신문」을 창간했다. 여성들을 포함한 전국민 계몽지인 이 신문은 당시 소수 한자해독층을 대상으로 하던 황성신문과 대비됐다.주필은 이승만이 맡았다.이 신문은 경술국치를 당한 1910년까지 발행됐다. 그동안 수차례 필화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선생은 신문 폐간이후 1919년까지 10여년동안 동지들과 함께 천도교조직을 이용한 민중운동 전개,윌슨 미대통령의 민족자결원칙 표명에 따른 민중시위 감행 계획 등을 추진했으나 시기가 성숙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생 등은 1919년 1월 붕어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광무황제가 일제에 독살됐다는 소문에 힘입어 항일의식이 확산되자 전국 규모의 항일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했다. 선생은 이때 『육당 최남선과 선언문을 완료해 놓고 있다.2월28일 결행하자.생명을 걸고 독립선언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3월1일 상오.선생은 집에 있던 선언문들을 주민들에게 배포하도록 동지들에게 지시하고 종로 태화관으로 향했다. 하오2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이 개최되자 선생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라며 독립선언서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선생 등 민족대표들은 이어 들이닥친 일경에 모두 체포됐으나 거리에서는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 혈사」에 따르면 3월1일부터 5월말까지 3개월동안 국내 궐기횟수는 1천5백42회였다.이 과정에서 7천5백9명이 피살되고 1만5천9백6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4만6천9백48명이 일경에 검거됐다. 3년동안 옥고를 치른 선생은 출옥 직후인 1922년 3월1일 「3·1운동 기념식」을 갖고 제2의 만세운동을 추진했으나 일경에 의해 사전탐지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생은 일경의 고문후유증 등으로 시달리다 1925년 8월31일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가운데 68세를 일기로 종로구 평동 초가에서 영양실조로 서거했다.
  • 삼성동 보복살인/2명에 사형선고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이홍훈 부장판사)는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뉴월드호텔앞 조직폭력배 보복살인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사형이 구형된 폭력조직 「영산파」두목 이하영(32)피고인과 대장 안영구(30)피고인 등 2명에게 살인죄를 적용,사형을 선고했다.
  • 오진우는 누구/항일유격대 출신 혁명 1세대

    ◎세습체제 구축 「절대적 후원자」 25일 새벽 사망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북한 군부를 장악해 온 권력서열 2위의 핵심인물이다.그는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원 출신 혁명 1세대로 김정일 후계체제를 확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절대적 후원자」였다. 오진우는 1917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어린 시절을 만주 간도에서 보낸 그는 33년부터 김일성을 따라 항일 빨치산 투쟁에 나섰으며 옛 소련 보병학교와 육군대학에서 군사학을 배우기도 했다.6·25전쟁 때는 특수부대인 766유격부대장으로 참전했고 61년 당 중앙위원,6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올랐다.67년 3월에는 김정일이 박금철 등 갑산파를 숙청하는데 돌격대로 나서 대장승진과 함께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영전했다.오는 이때부터 책략가로서 김정일의 반대파 숙청에 앞장서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67년1월 군당 제4기4차 확대회의에서 민족보위상인 김창봉과 대남사업총책 허봉학·총참모장 최광 등 군수뇌부 대숙청을 진두지휘한 뒤 군참모장으로 승진했고 76년5월 인민무력부장 최현을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격상시키면서 인민무력부장을 맡았다.이후 오는 김일성과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권력 구조에서 20년이 넘게 자리를 유지했다.92년 4월에는 원수에,93년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올라 실질적인 3인자 지위에 있던 그는 김일성 사망후 권력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특히 김일성 장례식에 김정일과 함께 나타남으로써 북한의 권력 승계작업이 그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과시했다.그러나 그는 지난해 7월 16일 평양 금수산의사당에서 거행된 김일성사망 1백일 중앙추모회에 참석했을 때 한쪽 다리를 저는등 부쩍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였다.
  • 김 대통령 유럽순방 수행기업인 63명 확정

    청와대는 다음달 2일부터 시작되는 김영삼 대통령의 유럽순방에 수행할 기업인 63명의 명단을 확정,22일 발표했다. 수행기업인은 정세영 현대,김우중대우,구평회 LG,최종현 선경,김만제 포철,김석원 쌍용,김선홍 기아,장치혁 고합그룹회장등 대기업 대표 53명과 중소기업대표 10명이며 여성기업인 7명도 포함돼 있다. 금융계 인사로는 장명선 외환은행장 심형섭 대한재보험사장 김창희 대우증권 사장이,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서는 정몽준 축구협회장도 수행하게 된다. 국가별로는 ▲프랑스 35명 ▲독일 37명 ▲영국 31명 ▲체코 11명 ▲덴마크 2명 ▲벨기에 6명 등이다. 청와대는 이들 수행기업인들이 유럽연합(EU)기업들과 교역 투자및 산업기술협력을 본격추진하는 한편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 방문국 주요기업인들과 민간경제협력위원회를 개최하고 교역 투자 산업기술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개별활동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행기업인 명단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수행국). ▲김석원 쌍용회장(프랑스) ▲윤영석 대우중공업회장(체코) ▲구자홍 LG전자사장(영국 독일) ▲정세영 현대회장(영국) ▲강진구 삼성전자회장(벨기에) ▲최종현선경회장(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벨기에) ▲구평회 LG상사회장(6개국 모두 수행) ▲김우중 대우회장(프랑스 체코 독일) ▲김선홍 기아회장(독일) ▲장치혁 고합회장(프랑스 독일) ▲김만제 포철회장(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정몽준 현대중공업고문(독일 영국덴마크 벨기에) ▲정몽원 한라중공업부회장(영국) ▲김광현 진로부회장(프랑스) ▲박세용 현대종합상사사장(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김창희 대우증권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배순훈 대우전자사장(프랑스) ▲강병호 (주)대우사장(독일 영국) ▲김광호 삼성전자부회장(체코 독일 영국)▲신세길 삼성물산사장(프랑스) ▲이대원 삼성항공사장(프랑스 독일) ▲박수환 LG상사사장(프랑스 체코) ▲김승정 선경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송영수 한진중공업사장(독일) ▲조양호 대한항공사장(프랑스) ▲김덕환 쌍용사장 (프랑스) ▲차형동 쌍용자동차사장(독일) ▲남일 금호사장(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이정국 대림산업사장(프랑스) ▲최종인 두산상사사장(독일) ▲원무현 효성물산사장(독일 영국) ▲김용구 한일합섬사장(독일) ▲채희경 삼미사장(독일 영국) ▲최석철 코오롱상사사장(독일 영국)▲이상운 고려합섬사장(벨기에) ▲유영일 해태상사부회장(프랑스 체코 영국) ▲김교남 미원통상사장(영국) ▲김희용 동양물산사장(영국) ▲장명선 외환은행장(프랑스 독일 영국) ▲권석명 동양화학사장(프랑스) ▲김무동 남반도체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허진규 일진전기회장(벨기에) ▲김영대 대성산업사장(프랑스) ▲김종성 로케트전기사장(프랑스) ▲남상은 영창악기사장(프랑스 독일) ▲심형섭 대한재보험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이석재 삼익악기회장(프랑스 체코) ▲이용태 삼보컴퓨터회장(독일 영국) ▲이운형 부산파이프회장(프랑스) ▲최석한 인켈사장(독일 영국) ▲최진우대농사장(독일 영국) ▲고우섭 동우IMS사장(영국) ▲권영렬 화천기계사장(독일) ▲변효수 국동사장(영국) ▲이민화 메디슨사장(독일) ▲강귀희 OverScore사장(프랑스 독일) ▲문영희 K&M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송효순 국제전자의료사장(프랑스 독일) ▲신수연두고전자사장(독일 영국) ▲안희정 (주)사라사장(프랑스 독일 영국) ▲이영희 이영희 한복사장(프랑스) ▲진태옥 프랑소와즈사장(프랑스) ▲황정현 전경련상근부회장(프랑스 독일 영국)
  • 미 군정 3년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7)

    ◎일 관리 47년 8월까지 행정 참여/초기 미군정요원 배치안해 정책 혼선/친일파 중용… 「부일배경찰」 85% 넘어/소 의식한 본국반대불구,「한국군」 창설추진은 성과 한국의 미군군정은 미 제6·7·40사단으로 구성된 제24군단의 38도선 이남 점령임무 수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일본 민간인의 본국귀환,법과 질서유지,미국의 정책 속에서 정부역할 수행이 당초의 주임무였다.미군정은 1945년 9월12일 주한미군 본부 내에 독립된 사령부 성격을 띠고 「주한미군정」(USAMGOK)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한국에 처음 진주한 제24군단 병력 가운데는 군정을 수행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군정부대는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10월21일 인천에 내렸다.그것도 한국점령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주요지역 통치를 위해 훈련받은 요원들이었다.그 병력은 4개 전술보조부대와 캘리포니아 몬테리에서 민정훈련을 받은 20개 중대로 충원되었다.그들은 먼 항해 끝에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 한국으로 가는 사실을 인천상륙 1주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의 군정은 전술부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이는 점령지역을 통치하는 과정에 혼란을 가중시킨 요인이 되었다.지방이 특히 심했다.서울에서는 인공 산하의 치안대 활동이 멈추었으나,일부 지방에서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린 미군들을 체포할 정도였다.이 가운데는 행방불명이 된 미군도 있다.전남의 경우 제40사단과 교체한 제6사단 20보병연대는 인민위원회를 반대하면서 치안대를 공공건물로부터 몰아내는 등의 강공책을 썼다. 미군정의 군정장관으로 육군소장 A V 아놀드가 임명되었다.지난날 총독이 행사한 권한을 손에 쥔 군정장관은 전술부대에 소속하지 않은 모든 군정요원을 지휘했다.군정장·차관 밑에 총독부 정무총감 위치와 비슷한 민정장관을 두었는데,그 자리는 B B 프레스코 대령이 맡았다.그리고 8개의 부와 9개의 국을 설치했다.이들 기구는 1946년 5월10일 확정한 새 편제에 따라 11개위 부,4개의 처,86개의 국으로 개편되기까지 존속했다. 「주한미군정청」(USAMGIK)이라는 공식명칭은 1946년 1월4일부터 사용되었다.처음의 「주한미군정」의 약어 「USAMGOK」의 끝자리 3자 GOK가 조롱하는 말 GOOK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있다.어쨌든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한달이 모자라는 3년 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그러면 미군정의 정책은 어떤 것이었으며,한국에 남긴 군정의 유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미 시카고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 「한국의 해방과 미국정책」에 적은 표현을 빌리면 「점령당국(미군정)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한국은 마치 모래수렁 같았고 점령당국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고 기술한 그는 비싼 댓가를 치르더라도 한국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성채를 쌓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인 바 있다. ○워싱턴뜻과 배치 미군정은 초기의 정책을 수정,선회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이에따라 1945년 11월 무렵에 수립된 새로운 정책은 크게 네가지를 목표로 했다.그것은 앞으로 탄생할 한국정부를 고려하면서 보수진영과의 제휴,경찰력 강화,군대의 창설,좌익의 탄압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들 정책은 워싱턴 고위층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그러나 군정에 파견한 국무성 관리들이 이 정책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군출신 두각 한국군 창설과 경찰력 강화 등 미군정의 새로운 정책은 남한 통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했다.미군정은 1945년 11월13일 국방경비대,육군부와 해군부를 통괄하는 군사국을 설치했다.J R 하지는 점령 초기부터 한국군 창설문제에 관심이 있었다.소련을 의식한 워싱턴 고위국으로부터 많은 반대도 있었지만 실천에 옮겼다.1946년 6월 국방경비대는 통위부로,군사국은 조선경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군조직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군정은 1945년 12월초에 60명의 장교를 선발,군사영어학교에 입교시켰다.이들은 당시 국방경비대 고문 이형근의 추천에 의해 선발되었다.이가운데 40명은 일본군 출신이고 광복군 출신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 출신들이 유독 두각을 나타내 국군 창건 이후에도 중요 보직을 차지했다.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광복군 출신들은 저만큼 뒤쳐져 있었다. 경비대에게는 내부소요 진압임무가 돌아갔다.1946년 후반기가 저물면서는 파업,폭동과 더불어 몇몇 경찰서가 불타는 등 소요가 잇따랐고 좌익좌파 3당은 남조선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1947년 9월에는 좌익검거 선풍이 불었다.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사연표」에 따르면 남로당과 민애청등의 지하 좌익세력들이 10월15일부터 한라산에 입산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경비대는 폭 넓은 소요를 진압하는 두가지 무기의 하나로 평가되었다.다른 무기는 국립경찰이었다.군정은 1945년 9월17일 조선총독부로부터 경무국을 인수받았다.경찰을 헌병사령관 L E 쉬크 준장의 통제 하에 두었는데 일본인 경찰관들에게까지 「USMG」라는 군정 완장을 지급했다는 것이다.이는 한국인들과 미국 특파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그제서야 일본인 경찰관들의 자리를 한국인들로 메꾸었다. 헌병사령관 밑에 있던 경찰은 11월30일부터 국방군 사령관이 지휘했다.그리고 해방이 되던해 10월 워싱턴 3성조정위원회로부터 한국 경찰 내의 친일파와 미움을 사는 기구를제거하도록 하는 지시가 내려왔다.하지만 경찰의 볼썽 사나운 관행은 계속되었다.군정청이 피의자에 대한 폭행 금지명령을 내리자 대신 소방관을 시켜 폭행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였다.1946년 4월 소방서가 경찰과 분리되기 이전까지는 동료였던 터라 그런 부탁쯤은 들어주었을 것이다. 해방된 이 땅의 경찰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았다.일제에 강한 충성을 보였던 사람들을 다시 썼기 때문에 부일배 경찰이 차지하는 비율은 85%나 되었다.1945년 10월 당시 군정청 경무부장 조병옥은 간부의 53%,하위직 25%가 일본경찰 출신임을 시인했다고 한다.A W 그린이 「경찰의 오만 무례는 끝이 없다」고 말한 것을 보면 경찰의 일제 잔재청산은 요원했는지 모른다. 일본인 관리들도 상당 기간동안 군정에 참여했다.1945년 12월 군정청에 지방행정과가 생겼을 당시 일본인이 감독책임을 맡고 있었다.1947년 8월15일까지도 일본인들이 군정에 참여한 증거가 있다.미 대통령 특사인 육군 중장 A C 웨드마이어가 작성한 「한국의 정치·군사 상황보고서」가 그것이다.이 보고서는대일 전승기념일(V J­DAY)이후 북한지역 5백명을 제외하고 남한에서는 일본인 관리들이 모두 철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일제청산 장애로 웨드마이어 보고서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한국에서는 과거 70만명의 일본인들이 모든 경제요소는 물론 기술계층까지를 지배했다.그래서 지금 부산역장을 지냈던 한국인이 철도청장이 되고,직업학교 출신이 큰 수력발전소 책임자 자리에 앉았다고 이상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일반 관료직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승계되었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사가들은 혹독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은 한국 점령기간 내내 군,관료,정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들의 자손을 출산하기 보다는 일본인 임신에 산파 역할 만을 해왔다」고….이는 군정의 유산으로 한국정부 수립 이후에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한 요소로 작용했다. “영어 아는 보수적 인사 많이 썼다”/군정고문 2인의 전문·보고서 발굴/“「일서 완전 해방」 한국인 열망 외면”/미학자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포함한 보수인사들을 그토록 많이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이에대한 해명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찾아낸 W R 랭던의 「국무성장관에게 보내는 전문」(1945년 11월26일)에 잘 나타나 있다. 랭던은 당시 미 국무성이 한국에 파견한 하지장군의 정치고문.그가 작성한 전문 보고서는 「초기에 보수적 인사들을 많이 뽑아썼다」고 시인하면서 「생면부지의 대중 가운데 누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이어 보고서는 「고위직을 보수인사에서 고른 까닭은 한국인들이 사치스러워하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역시 NARA에서 입수한 미군정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1945년 10월10일)에도 같은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랭던의 전문보다 앞선 이 보고서는 다만 당시의 한국적 상황을 「한국인들은 친일파를 일본인보다 더 증오한다」고 밝히면서도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다.「보수주의자들 대부분이 일제에 협력했지만,이런 낙인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고 「많은보수주의자들의 존재는 고무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대해 미 미들버리대 C L 호그 교수는 「한국분단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남한의 초기 통치과정에서 일본인 관리들과 일제의 경찰을 그대로 썼다는 사실은 정복자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열망에 무감각했음을 의미했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정부와 경찰을 운영하기 위해 충분히 훈련된 요원들을 일본에만 보낸 워싱턴과 최고사령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 이양호 장관에 듣는 국방정책(국정 어떻게 돼 갑니까)

    ◎“군지휘부 감축… 일선전력 증강 극대화”/국방부·합참기능 통합… 인력·조직 정예화/사기 진작·정신무장으로 군기사고 예방/핵타결 됐지만 북위협 여전… 안보의식 다져야 □대담=황병선 정치2부장 95년은 군으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지난 2년 개혁의 와중에서 갈피를 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나사풀린 구태를 털어내고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당당한 군으로 거듭태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출범후 우리 군은 정치적 분위기 전환에 따라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강한 견제를 당한 것이 사실이다.더욱이 율곡사업과 관련한 옛 비리들이 터져나오고 사조직 병폐해소 조치가 취해지면서 군을 보는 사회의 시선도 별로 곱지 못했다.게다가 장교들의 탈영,은행강도등 기상천외의 군기사고마저 잇따라 나라지키는 일 밖에 모르는 대다수 군인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이같이 어려웠던 2년을 정리하고 문민시대의 새 군대로 재탄생시키는 산파역을 맡은 이양호 국방장관. 취임 1개월이 조금 넘은 그는 역대 국방장관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인품을 지녀 문민시대 국방장관다운 체취를 풍긴다는 평을 듣는다.공군 파일럿출신인 이장관은 그러나 속이 당찬 전형적 외유내강형. 『군인은 강한 훈련속에 탄생합니다.요즘 젊은세대는 편하게만 살려는 사회풍조에 따라 인내심·극기력이 부족합니다.군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고 강훈으로 단결심과 애국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장관은 4일 대담 첫머리에 최근의 군기사고들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65만의 대식구를 거느리다 보니 별난 사람도 많고 의외의 사건·사고도 많아 군의 사기가 훼손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두사람의 잘못이 전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먹칠을 해 안타깝습니다.초급장교든 사병이든 짧은 기간 훈련으로 내면을 모두 바꾸기는 불가능합니다.엊그제까지 예컨대 압구정동에서 돌아다니다 군에 입대했는데 금방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겠죠.따라서 강인한 실전적 훈련을 통해 군기를 확립하고 신세대 장병들에게 단결심,그리고 개인보다나라를 위하는 바른 자세를 심어주고자 합니다. ­국방을 책임진 군의 전반적 사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져 큰 문제라고 지적들을 합니다. ▲지난 2년 변화과정에서 진통도 있었지만 이제 안정을 되찾아 본연의 임무에 박차를 가할 단계에 왔습니다.정치적 때도 벗었고 사회에서 군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크게 힘을 얻고 있죠.군내부적으로는 병영시설을 현대화하고 각종 수당을 올리는등 복지향상을 위한 조치를 강구중입니다.그러나 군의 사기가 물질적 보상만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죠.그보다는 강인한 교육훈련을 통해 제대로 된 군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병영생활 합리화와 근무여건 개선등에 많은 신경을 써줄 생각입니다. ­정부와 사회 각계가 세계화를 향한 각종 과업들을 설정해놓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군의 세계화구상은 어떤 것입니까. ▲군의 세계화란 한마디로 선진국과 비교해 손색없는 군이 되는 것이죠.이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을 높이고 조직을 선진화해야 합니다.걸프전에서 나타났듯 요즘전쟁은 첨단과학 장비로 수행되기 때문에 한사람으로도 과거 여러사람 몫을 해낼 수 있습니다.또 포탄 10발을 쏴 목표 1개를 맞히던 것을 요즘은 1발로 적중시키고 있죠.그러나 우리 군은 아직 인력과 조직면에서 특히 미흡한 실정입니다.따라서 인력을 정예화하고 조직을 정비할 예정입니다.개혁위등에서 방안을 검토중인데 1·4분기중 실천방안이 확정될 것입니다.기본방향은 전투력발휘와 직접 관계가 없는 「머리쪽」 사령부를 줄이고 팔·다리인 일선 전투부대를 키운다는 것입니다.또 국방부와 합참의 기능을 어느 쪽으로건 통폐합,기능을 일원화 할 생각입니다. ­첨단과학전쟁 시대이고 보면 군이 컴퓨터전문가등 민간기업 못지않게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국방과학연구소등 연구기관에서 우수인력양성과 첨단기술개발을 맡고 있습니다.그러나 교육받은 만큼 높은 복지를 요구하는게 사람들의 심리죠.그 결과 우수인력이 민간부문으로 유출되는 사례도 있습니다.그러나 군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죠.예컨대 조종사들이 모두 민항에 가겠다고 하지는 않습니다.군에는 민간회사에 없는 뛰어난 직업의 안정성과 연금등 노후보장 혜택이 있는게 사실이죠.그보다 나라를 지킨다는 보람에 큰 의미를 두는 건전한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북핵타결 이후 사회 일각에 안보의식 해이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군에서는 걱정이 없습니까. ▲북핵타결로 북한의 핵개발이 중지된 것은 큰 성과입니다.그렇지만 북의 재래식전력은 여전히 크게 위협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또한 북은 믿을 수 없는 정권임에 변함이 없습니다.그들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KAL기 폭파·아웅산사건등 예기치 못한 폭거들을 저질러 왔죠.게다가 요즘 북한은 확고한 체제를 갖추고 있지도 못합니다.따라서 과거식으로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등 은연중 주적개념이 흐려질 우려가 있어 군에서는 정신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요즘 북한내엔 『어차피 살기 힘드니 한번 붙어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하던데 만에 하나라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우리의 방위력은 충분합니까. ▲한미연합방위체제에 따라 완벽한 방위태세를 갖추고 있으니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24시간 북한을 주시하고 있으며 도발징후가 있으면 전선에서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군사동향은 어떻습니까. ▲북한은 통상 겨울철에 훈련을 많이 하는데 요즘도 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그들은 북핵타결 이후 부쩍 대남비방을 강화하고 있어요.그들은 『한국이 핵전쟁 일으키려 한다.우리가 배고픈 것은 바로 남한 때문이다』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종전에 미국에 퍼붓던 욕까지 모두 한국에 돌리고 있어요. 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는게 아니고 국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남북간 국력을 보면 GNP가 북의 20억달러에 비해 우리가 2천억달러이고 인구는 두배,수출입은 1백배나 많으니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따라서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국지적 도발입니다.그러나 한­미양국은 첨단 연합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유사시의 증원전력도 완비돼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달 중순 미합참의장 섈리캐슈빌리대장이 방한했을 당시 주로 그런 논의가 있었겠군요. ▲한미연합방위체제가 공고함을 재확인했습니다.우리의 기본입장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북이 대화에 응해와 남북회담도 되고 또 우리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따라서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유지가 필수적입니다.미국은 신아·태전략과 관련,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이 지역에 미군 10만명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군 전력증강 현황/F16기 8대 7월 추가 도입/99년까지 총 1백20대 실전배치 완료/K1전차 주포 1백20㎜로 화력 강화 한국군은 지난 20여년동안 지속적으로 전력증강 및 현대화에 힘을 쏟아왔다.그 결과 지난 74년 전력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시작할 당시 북한의 50.8%수준이던 전력이 92년 현재 71%선으로 증강됐다. 주한미군 전력을 배제한 우리 군사력은 이같이 북한에 비해 아직 열세에 머물러 있지만 2천년대에는 자체전력만으로 북한을 감당할 수 있게 될 청사진이 마련돼있다. 우리 군은 이 청사진을 현실화하기 위해 10년단위로 군사력 증강목표를 조금씩 발전시켜오고 있으며 현재는 『대북 억제전력의 확보 및 급변하는 전략환경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군사력건설을 추진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상군의 공세적 기동전력을 보강하고 군구조를 공세적으로 전환하며 ▲대 함정 및 대 잠수함 작전능력을 향상시키며 ▲기술집약형 공중전력을 발전시키고 ▲3군 통합차원의 군사력을 건설한다는 세부목표 아래 잠수함과 차세대전투기 도입·전자전 능력 확보·전차개량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군의 이같은 전력목표는 「소총이나 기동력 보강·고속정 증강과 팬텀기 도입」이 고작이었던 70년대나 「전차 및 포 강화·상륙전 능력강화」등 재래전에 필수적인 무장확보에 치중한 80년대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이 지난해 새로 도입한 전력의 대표적인 것은 차세대전투기인 F­16이다.대당 3백34억원선인 이 전투기는 지난 84년 계획에 들어간지 10년만인 지난 연말 4대가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에 배치됐으며 오는 7월까지8대가 추가도입된다.또 99년까지 국내에서의 면허생산등으로 1백8대가 더 배치돼 모두 1백20대의 F­16전투기가 우리 하늘을 24시간 지키게 된다.이 전투기는 야간에 낮은 고도에서 정밀폭격을 할 수 있는 첨단장비를 부착,우수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주력기인 미그25(팬텀 수준)보다 성능이 월등하며 북한이 15대밖에 갖고 있지 못한 미그29에 비해서도 회전반경이나 기동성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세대전투기 다음의 주요전력은 잠수함을 꼽을 수 있다. 92년 1번함인 장보고함이 독일에서 조립생산돼 도입된 이후 지난해 4호함 박위함까지 4척(1척당 1천5백억원 상당)이 배치돼있다.앞으로 계속 국내생산될 이 잠수함은 동급 잠수함 가운데 소음이 가장 적어 은밀성이 뛰어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북한은 26척의 잠수함을 작전배치해놓고 있으나 구소련이 50∼60년대에 생산한 구형이어서 연안침투용 잠수정수준을 조금 앞서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는 해·공군 전력과 함께 지상전력도 보강,지난 85년부터 생산된 한국형 K­1전차가 오는 96년이면 소요량을 완전히 충족하게 된다.군은 이 전차의 1백5㎜주포를 1백20㎜로 바꿔 화력을 강화하는 개량작업을 하고있다. 이밖에 코브라헬기에 야간에도 적을 찾아낼 수 있게 하는 장비를 부착하는 중이다.코브라헬기 1대는 전차 16대를 동시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같은 전력증강과 주한미군 전력을 감안하면 북의 어떤 기습적 도발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 군당국의 설명이다.
  • 얼음구멍 빠진 시민구조요청 40분/구조대 늑장 출동… 탈진 익사

    ◎함께 얼음낚시하던 3명도 배 뒤집혀 실종/경찰·시민 등 현장서 손못쓰고 지켜보기만 【군산=조승용기자】2일 하오 2시쯤 전북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금강하구에서 0.3t짜리 보트를 타고 얼음낚시를 하던 서병학(35·충남 부여군 세도면)·병국(33)·병주씨(31)등 3형제와 어부 김태중씨(37·어업·충남 논산군 강경읍) 등 4명이 배가 뒤집히며 물에 빠져 3명이 실종되고 한명은 익사체로 인양됐다. 사고현장을 목격한 김창수씨(36·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은 『이날 승용차를 몰고 사고현장 부근을 지나던중 보트위에서 낚시를 하던 30대 남자 4명이 배가 뒤집히면서 물에 빠졌다』며 『사고발생을 곧바로 군산경찰서 성산파출소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고발생 30여분 뒤인 이날 하오 2시30분께 119 구급구조대를 사고현장에 출동시켰으나 살얼음이 얼어 고무보트를 물에 띄우지 못한채 서씨 등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경찰은 뒤늦게 경찰헬기 출동을 요청,하오 2시40분쯤 구조 헬기가 현장에 나타났으나헬기가 도착하기 직전에 깨진 얼음조각을 붙잡고 구조를 기다리던 서씨 등은 탈진 상태에서 물속에 빠졌다. 경찰은 이날 뒤늦게 사체인양 작업을 벌여 병국씨의 익사체를 인양했으나 나머지 서씨 형제와 김씨 등 3명의 사체는 찾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늑장구조에 대해 장비부족 때문이었다고 밝혔으나 경찰과 소방서 119구급구조대의 인명구조체계가 허술함을 또 다시 드러내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 미 군정체제 확립(새로 쓰는 한국현대사:5)

    ◎“일인활용 불가피”속 행정권 장악에 석달/서울 입성뒤 「북쪽 접수」 주력… 개성 첫 점령/북의 소군은 2개월 앞서 「도인민위」 설치/인천입항 미군 환영길 한국인 2명 일경에 피살 미군이 인천에 첫발을 디딘 1945년 9월8일은 미 군정 3년을 포함해 이후 반세기동안 유지돼 온 한미간 특수 역사관계의 출발점이었다.그러나 한국인과 미군의 첫 만남은 그 시대상황을 상징이라도 하듯 비극적인 사건으로 얼룩졌다.미군을 환영하러 부두로 몰린 한국인들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두명이 숨지고 십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근대 해항지여서 일찍부터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고 그 세도 강한 항구도시였다.반면 부두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이 활발히 움직이는등 반일세력도 만만찮았다.따라서 해방이 되자 인천시내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일본경찰은 재향군인 9천명을 급하게 모아 특별경찰대를 조직,각 파출소에 배치하는등 경비를 강화했으며 한국인들도 이에 맞서 치안유지회(보안대)를 결성해 대치하는 분위기였다. 「미군이 9월8일 인천항으로 상륙한다」는 소문이 며칠전부터 떠돌자 시민들은 「해방군」을 맞는다는 기쁨에 들떴다.이에 조선총독부는 9월5일 담화를 통해 『미군은 민중환영등 의례적인 행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이어 8일에는 인천경찰서가 의사·산파·우편배달부를 제외한 사람의 외출을 금지한다고 공시했다.그리고 『이것은 미군의 지시』라고 못박았다. 8일 아침이 되자 인천시내 곳곳에는 미군을 환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무리를 형성했다.미군 함정이 부두에 도착한 하오2시쯤에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인천항쪽으로 나아갔다.인파가 현재의 인천우체국 자리를 지나 산업은행 앞에 이르자 일본 특별경찰대의 99식 소총이 불을 뿜었다.이 발포로 행렬에 앞장선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 권평근(당시 45세)과 보안대원 이석우(20세 가량)등 2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권평근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사는등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해방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가가 일본경찰에게 공공연하게 피살된,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이 사건에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의 사전정보부족과 한국에 대한 그릇된 시각,일본측 농간들이 복합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군은 진주에 앞서 한국주둔 일본군사령관 우에쓰키(상월양부)와 연락,그로부터 『무장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자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일본군의 치안유지권을 인정한다.이같은 미군의 입장은 권평근·이석우의 사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이 미군에 발포경찰관등을 고발,이에 대한 군사재판이 13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일본인인 인천경찰서장등은 『미군 지시로 환영·외출을 금지했는데 이를 어겼다』고 주장했고 법정은 이들의 행위를 「합법」이라고 판정했다.재심청구를 했지만 곧 기각됐다. 이 사건은 미국 신문에 즉시 보도돼 미국내에서도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종군기자 리처드 E 라우터배크는 「뉴욕타임스」9월9일자 기사에서 『일본군이 환영군중에게 발포한 것은 미군사령부의 지시때문』이라고 공개했다.「뉴욕타임스」는 이어 11일자 사설에서 『우리는 일제 식민정책을 시행한 쓰레기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우리가 해방시킨 민중에게는 강경하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한국점령 임무를 맡은 미 제24군단 가운데 8일 인천을 통해 맨 먼저 들어온 부대는 7사단이었다.7사단은 인천에 17보병연대를 남겨놓고 9일 아침 서울로 향했다.당시 미국신문들은 거리풍경을 『흰옷을 입고 이상스런 검정모자(갓)를 쓴 한국인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서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USA Army Welcome」이라고 쓴 환영아치도 가끔 눈에 띄었다』고 보도했다.한국인들은 대부분 순수한 마음에서 미군을 「해방군」으로서 환영했던 것이다. 이날 하오4시6분 서울 조선총독부 건물(현 국립중앙박물관)제1회의실에서 38선이남 일본군의 공식 항복행사가 열렸다.일본측 대표인 아베 노부유키(아부신행)조선총독,우에쓰키 주둔군사령관등이 먼저 들어왔고 이어 하지중장,킨케이드중장(제7함대사령관)등 미군대표가 자리를 잡았다.하지중장 뒤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X자로 세워져 있었다. 다음날부터 미군은 38선이남의 영토와 행정조직을 장악하는데 본격적으로 나선다.서울에 본부를 둔 7사단은 우선 북쪽지역에 주력해 12일 개성을 점령한 다음 소련과 연락할 전신장치를 설치했다.이어 그리고 미군정은 각 도에 군정지사를 보내 행정권을 장악했다.지사 발령날짜를 보면 ▲경기도 10월2일 ▲강원도 11월26일 ▲충북 11월8일 ▲충남 10월9일 ▲경남 9월28일 ▲경북 11월3일 ▲전북 11월20일 ▲전남 10월26일등이다.초대 군정지사들은 영관급 장교가 대부분이고 경남지사인 찰스 해리스가 유일하게 준장이었다. 미군이 지방에 분산 배치된 초기에는 군정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다.군단위까지 확보하기에는 병력이 부족했고 특히 훈련된 행정요원은 턱없이 모자랐다.그런가 하면 현지실정을 몰라 한동안 일본인 관리를 활용해야 했으며,일부 지역에선 「조선인민공화국」이 임명한 관리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그러나 각 도에 군정지사를 파견해 자리잡음으로써 미군정은 1945년 11월 말쯤 전국적인행정체제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진격속도가 빨랐던 북쪽의 소련군은 군정체제를 이루는데도 앞섰다.8월9일 참전한 소련군은 일부지역에서 일본군의 저항을 받긴 했지만 8월 말까지는 38선이북 지역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끝냈다.점령군은 제25군,그 사령관은 IM 치스차코프대장이었다. 치스차코프는 평양에서도 조만식이 주도하는 「평남 건국준비위」와 「공산당 평남도위원회」를 합쳐 「평남 인민정치위원회」를 구성케 했다.이 위원회는 비록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웠지만 실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갔다.소군은 이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정치세력과 공산주의자들을 엮은 인민위원회를 9월 말까지 각 도에 구성했다. 미군이 남쪽에서 직접통치의 형태를 갖췄다면 소군은 자치적으로 보이는 「인민위원회」구성을 통해 간접통치하는 교활한 방식을 택한 셈이다. ◎해방된 내땅인데… 일경에 맞서다 피살/유족 최초 증언… 「권평근의 인천참사」/미군 의뢰 따른 일 통제에 강력 저항/20∼30년대 노조운동 통해 항일투쟁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던 날 일본경찰의 흉탄에 희생된 권평근(1900∼45년)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였다.그는 1919년 「3·1운동」부터 45년 9월 숨질 때까지 독립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지 못했다.그에 관한 기록이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 미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본사 취재팀은 일본측 기록인 ▲삼전방부의 저서 「조선 종전□ 기록」(암남당서점) ▲1936년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인 「국외□어□□용응조선인명부」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에서 31년 9월 발행한 「사상월보」9월호들을 검토했다. 또 ▲서울경찰청이 1993년 6월9일 국가보훈처에 회신한 「권평근에 대한 지문조회」결과 ▲국가보훈처 소장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기록 ▲조선일보 1931년 7월24일자,8월27일자,9월4일자 ▲동아일보 1931년 8월27일자,10월27일자 등 각종 자료와 가족으로부터 단독입수한 권평근의 미공개사진,증언들을 종합해 국내 언론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권평근의일생을 복원했다. 권평근은 경기도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에서 태어났다.배재학당에 다니던 그는 「3·1운동」때 고향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섰다가 3년동안 충청도로 피신한다.이어 26∼27년에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해외 반일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권평근의 경력은 30년대에 빛난다.인천으로 이사해 노동조합에 투신한 그는 31년 7월 「일본인습격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된다.당시 만보산사건이 일어나자 국내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인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그러나 권평근 등은 일본이 한·중 양국을 이간질시키려고 사건내용을 과장한 것이라며 중국인을 공격하는 군중의 분노를 일본인에게로 돌렸다.이 사건으로 그해 10월26일 경성지법 형사제1부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는다.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이해 5월1일,6월10일,7월5일 등 세차례에 걸쳐 반일시위를 벌이려고 구체적인 준비를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복역을 마친 권평근은 노동조합을 통해 더욱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벌였고 해방당시에는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이었다.총격 현장에서도 그는 일본경찰에게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쏠테면 쏘라』며 가슴을 내밀었다고 한다.그의 장례식은 사회단체장(일부 기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딸 명숙씨(5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742)는 아버지를 『6척 장신에 힘이 장사였다』고 기억했다.또 그리 어렵지 않은 살림인데도 자신은 하루 두끼만을 먹으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식량과 옷을 서슴없이 나눠줬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김성호 〃 ▲김경운 〃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3)

    ◎월스트리트/국제금융 중심가서 「정오 콘서트」26년/고건축 벽조각과 현3대식 건물 조각물 조화 볼링 그린에서 힘차게 출발한 브로드웨이에 추진력을 달아주는 것은 월 스트리트다.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자본주의의 산파역이자 물질문명의 대명사로 불리는 월 스트리트와 약간 북쪽의 풀턴 스트리트에서 연결되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2백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브로드웨이를 동서로 떠받치고 있다. 북쪽 인디언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통나무 담(wall)을 둘러친데서 유래했다는 월 스트리트는 트리니티 교회와 마주하고 있는 브로드웨이 80번지(뉴욕은행)와 100번지(도쿄은행)사이 동쪽으로 5백여m 뻗어나간 폭10m도 되지않는 작은 골목길이다.고딕 양식의 웅장한 교회첨탑으로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정도로 트리니티 교회는 엄숙하게 월 스트리트를 내려다보고 있다.인간의 물욕에 대한 신의 심판을 가하는 형상이다. 뉴욕증권거래소와 연방준비은행을 중심으로 수많은 금융기관과 증권회사들이 몰려 있는 월 스트리트는 브로드웨이의 또다른 얼굴이다.하얀와이셔츠에 단정하게 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청년들과 무릎에 와닿는 우아한 투피스 차림의 단정한 아가씨들이 서류철등을 들고 골목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모습은 자유분방하고 느슨한 브로드웨이의 보통 모습과는 사뭇 큰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막상 미국인들에게 월 스트리트는 금융의 거리에 앞서 역사의 거리로 인식돼 있다.페더럴(연방)홀을 비롯,구석구석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체취가 흠씬 배어있다.그리스 신전처럼 8개의 석조기둥으로 전면을 장식한 이 홀은 1789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1년동안 대통령 집무실이자 연방청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건국초기 미국의 틀을 짠 곳이다.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둘레의 전시실에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선서할 때 쓴 성경책,집무책상등이 진열돼 있으며 중앙홀에는 의자들이 놓여있어 각종 공연이나 집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건물앞에는 워싱턴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 있어 또하나 월 스트리트의 감독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간 아래 펄 스트리트 모퉁이에는 워싱턴 장군이 자주 다녔다는 선술집 프론세스 태번이 있다.붉은 벽돌 3층집인 이 집은 1783년 12월 파리평화회의후 전쟁영웅 워싱턴 장군이 지휘권을 대륙회의에 반납하고 마운트 버넌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면서 부하들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했던 곳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본인은 그 빛나고 위대했던 활동의 무대에서 물러나려 합니다….이렇듯 위엄에 넘치는 대륙회의에 대하여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작별의 인사를 드리며 아울러 본인의 임명장을 반납하고 모든 공직생활에서 물러나겠습니다』 ○2층엔 연설문 보관 ○…워싱턴이 연설했던 2층방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 낡은 연설문 종이 한장은 물러날 때를 아는 한 위인의 우렁찬 음성으로 후세에 남아있다.그러나 그로부터 6년후 워싱턴은 국민적 추대를 받아 초대 대통령으로 이곳에 다시 왔다.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인 이 집은 현관에 커다란 워싱턴 초상화와 독립당시 성조기를 걸어놓고 그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한편 브로드웨이를 건너 허드슨강 쪽으로 위치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110층 높이의 쌍둥이 건물로 1973년 완공,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세계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그 파낸 흙으로 강을 메워 건설한 배터리 시티의 월드 파이낸셜 센터와 함께 월 스트리트를 압도하는 새로운 금융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트리니티 교회와 그 두 블록 위쪽의 세인트 폴 교회가 있다.세인트 폴 교회는 1766년 트리니티 교회 지교회로 설립됐으나 모교회가 두차례 허물어지는 동안에도 굳건히 버텨와 맨해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교회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워싱턴 대통령의 취임예배도 트리니티 교회의 화재로 이 교회에서 행해졌다. 두 교회의 위치를 유심히 보면 재미있다.트리니티 교회가 월 스트리트를 내려다보고 있듯이 세인트 폴 교회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내려다보고 있다.즉 트리니티 교회 강대상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반해 세인트 폴 교회는 강대상이 서쪽을 향해 나있는 것이다.2백년후의 상황에 맞게 향이 반대로 지어진 것을 보면 이곳에도 풍수지리와 비슷한 신의 계시가 있었나 보다. 1792년 이곳 플라타너스 나무밑에서 24명의 브로커들이 모여 시작한 이래 세계각국의 2천여개 상장 주식에 4천7백만 개인주주와 1만여 기관투자가를 거느리는 세계최대 증권거래소로 성장한 뉴욕증권거래소는 견학코스를 마련,증권의 모든 것을 이해시키고 마지막에는 중앙홀의 거래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유리회랑으로 안내한다. 각기 50여개의 텔레비전 모니터와 20여개의 시황안내 로보트팔을 갖고 있는 7개의 커다란 기둥이 서 있으며 그 주위에 기능에 따라 빨간색·청색·녹색·하늘색 재킷을 걸친 브로커들이 세계의 주가를 요리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중앙홀은 긴장감과 열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가 브로드웨이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역사 때문도 금융 때문도 아니다.어느곳 못지않게 살아 숨쉬고 있는 예술성 때문이다.특히 세인트 폴 교회의 「눈데이(정오) 콘서트」는 이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신성모독을 자비로 다스리는 위대함이다. ○5백여 관중석 “만원” ○…23일 낮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러시아 음악을 베이스 아나톨리 판초스니의 노래와 릴리야 코보트코바의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는 눈데이 콘서트의 현장은 5백여석 교회 의자가 꽉찰 정도로 성황을 보였다.샐러리맨도 관광객도 쇼핑객도 고급연주의 클래식 음악을 이같이 생활의 일부로 할 수 있음은 브로드웨이만의 축복이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정오 교회에서 맨해튼의 중견 연주자들을 초청,한시간씩 클래식 연주회를 갖는 눈데이 콘서트는 26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3개월치씩 인쇄돼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30일에는 앤젤리스 현악 4중주단의 하이든곡 연주,내달 2일에는 영콘서트 아티스트상 수상자인 마코토 나쿠라의 마림바(목금의 일종) 연주와 마리아 마틴의 플루트 연주,21일에는 특별 오페라 순서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중에서 「발퀴레」1막 공연등 다양하게 계획돼 있다. 이 지역에 살아 숨쉬는 또하나의 예술성은 조각품에서 발견된다.브로드웨이 양편에 늘어선 고건축물들의 벽 장식조각에서부터 현대식 건물들앞에 세워진 현대조각까지 다양한 조각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 같은 도리아식 기단을 8층까지 올리고 사이에 수많은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운 벽면에 파라오의 벽화를 조각한 AT&T건물(195번지),역시 도리아 양식에 8개의 여신상을 2층기단에 세워놓은 도쿄은행 건물등 구석구석을 모두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한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동그란 구멍이 뚫린 빨간 정육면체를 모로 세운 브로드웨이 140번지 머린 미들랜드 뱅크 사옥앞의 이삼 녹치 작품 「레드 큐브」는 이지역 현대조각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체이스 맨해튼 은행 앞에는 거대한 4개의 버섯모양인 뒤뷔페의 「포 트리」와 역시 이삼 녹치의 「물위의 정원」등이 있다.특히 연방준비은행 옆 루이스 네벨슨 광장은 검은 철골 7개로된 「셰도우 앤드 플래그」조각이 서 있으며 작가의 이름을 따서 가로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유명하다. 한편 월드 트레이드 센터 쪽으로도 네벨슨의 「스카이 게이트」를 비롯,프릭 쿠닝,호앙 미로,다니엘 맨체스터등 세계적 작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곳곳에 자리잡아 자칫 삭막해지기 쉬운 이 거리에 늘 생동감을 뿜어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는 최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20년래 오피스빌딩의 첨단화로 사무실의 지리적 원근개념이 없어지면서 20개 대형 증권회사중 1개만 남고 모두 이곳을 떠났고 딴 금융회사들도 떠나려 하고 있다.이곳의 낡은 건물로는 첨단설비가 어렵고 임대료도 비싸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떠나간 금융회사들을 월 스트리트로 다시 불러들이고 더이상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보려 5년동안 부동산 취득세와 영업세를 대폭 감해주고 건물 신축 및 개축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21세기 새로운 브로드웨이 건설의 원동력인 월 스트리트의 대변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 “부동산실명제 예외최소화…투기 이젠못해요”(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소득·법인세 등 주요세율 추가인하 추진/물가안정 돕게 범위서 임금올려야/외자유입 대비책 마련… 멕시코식 외환위기 없을것 홍재형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22일 『부동산 실명제로 명의신탁이 금지되면 토지의 투기적 수요가 줄고 매물은 늘어나,기업들은 공장용지를 싼 가격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부총리는 이 날 서울신문 정신모 경제부장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7월 이후 1년간의 유예기간 안에 실명화하지 않으면 토지종합 전산망과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명의신탁 재산의 실질 소유자를 가려내 과징금과 형사처벌 등의 가혹한 응징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합침으로써 금융·세제·예산 등 경제정책의 주요 수단을 모두 쥐게 된 재정경제원의 홍부총리는 새해 들어서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동산 실명제의 시안에 예외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부동산 실명제의 목적은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예외는 인정하지 않을 방침입니다.단 신탁법에 의한 신탁등기와 채무변제 목적의 양도담보,종중재산 등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실명화 과정에서 과거에 다른 법률을 위반한 경우 「정도와 크기」에 따라 처벌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는데,구체적 방침이 결정됐습니까. ▲아직 없습니다.성실하게 법을 지킨 사람과의 형평 차원에서 위반의 크기와 정도를 감안해 행위 시의 법률에 따라 과세하거나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 뿐입니다. ­명의신탁을 금지할 경우 미등기 전매나 가등기·중간생략 등기 등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보완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미등기나 중간생략 등기에 대해 앞으로 제정할 부동산 실명법을 적용할 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미 부동산 등기 특별조치법에서 이미 무거운 벌칙과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추징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물가안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요. ▲금융 시장 및 경기 동향을 감안해 재정과 통화 및 세제 등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농산물의 수급안정과 유통구조의 혁신 등을 통해 물가안정에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기업은 생산성 향상으로 공산품의 가격안정에 노력하고 근로자들도 생산성 범위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합니다.국민들의 건전한 소비문화와 저축의 생활화 등도 물가안정에 긴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출연기관 기능재조정 ­정부 출연기관은 어떻게 정비할 계획입니까. ▲민간과 기능과 겹칠 경우 그 기능을 재조정해 운영을 효율화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금융분야의 규제 완화는 어떻게 추진할 생각입니까. ▲은행과 증권·보험 등에 법적 근거없이 행정지도 명목으로 간여하는 각종 규제는 물론,법적 근거는 있으나 불합리한 규제까지 백지상태(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겠습니다.정부와 해당 금융기관들이 모두 참여토록 해,효율적인 완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금융규제 전면재검토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득의 종합과세를 위해 올해 준비하는 작업은 무엇입니까. ▲납세자의 종합소득세 신고를 간소화하고 금융기관의 금융소득 자료제출에 따른 업무부담도 줄이겠습니다.올 4월부터 금융기관으로부터금융소득 자료를 제출받아 전산처리 시스템을 시험 가동합니다.금융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세율을 20%에서 15%로 내렸기 때문에 그 소득이 기준액(4천만원)을 넘지 않는 일반인들의 세부담은 줄어듭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와 부동산 실명제 및 토지 종합전산망의 가동 등으로 각종 탈루 세원의 포착이 쉬워지므로 법인세와 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은 더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WTO(세계무역기구)의 규범에 맞게 조세 지원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토지세제의 중·장기적인 개편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추가적인 세율인하 문제는 조세지원 제도의 단계적 축소와 연계,과표 양성화 및 재정 수입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검토하겠습니다. ­종합토지세와 취득세,등록세 등 토지관련 세제의 개편 방안은 무엇입니까. ▲토지관련 세제는 다른 세목보다 부(부)의 재분배 효과가 크고 부동산 투기억제 시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토지 초과이득세의 보완과 종합토지세의 과표 현실화 및 양도세의 비과세 감면을 강화해 왔습니다.올해에도 조세연구원 등 국내외연구기관과 합동으로 개편 방안을 마련해 부동산 실명제가 정착되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토초세 보완대책 마련 ­올해부터 외환 및 자본 자유화로 인한 외국 자본의 유출입이 크게 늘어 통화 및 자본시장의 교란이 예상됩니다.최근 멕시코 페소화 폭락사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개방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입니까. ▲멕시코는 대규모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단기 채권 등의 투기적 자금(핫머니) 거래에 크게 의존했던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우리는 경상수지 적자도 관리 범위 내에 있고 자본 자유화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우리의 유입자금은 대부분 시설재 도입을 위한 차관 등 장기자금이며 단기 투자성 자금은 적습니다. ­해외 부문에서 통화 증발과 국내 경기 진정을 위한 긴축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올해 통화관리가 어렵지 않을까요. ▲경제의 안정기조 정착을 위해 12월 평잔 기준으로 총통화를 12∼16%의 안정적인 수준에서 운영할 계획입니다.설날 자금수요 등으로 1월에는 통화수위가 다소 높지만 1·4분기에는 18% 수준으로,12월 중에는 12∼16%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낮춰 나가겠습니다.총통화 규모는 16조∼21조원으로 중소기업 등 민간 부문에 대한 자금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단계 금리 자유화는 언제 단행할 계획입니까. ▲95∼96년 중 추진해야 할 3단계 금리 자유화는 요구불 예금을 제외한 모든 여수신을 대상으로 하는,금리 자유화의 마지막 단계입니다.따라서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의 동향 등을 감안,여건이 조성되는 대로 자유화를 가속화하겠습니다. ­올해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과정에서는 특혜시비를 해소하는 것이 큰 문제인데요. ▲조직통합 이후 직원들은 대체로 서로의 장범을 이해하고 존경하는 분위기입니다.이미 보직인사를 통해 각 실·국에 두 부처 출신들을 고르게 배치했고,직원연찬회 등을 통해 화합과 조직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실명제 추진상황/「실소유자 명의 등기법」 주내 입법예고/명의신탁·예외범위 등 전면 재검토/2월 국회제출·7월시행 준비 만전과천 정부2청사의 1동 8층.재정경제원 청사에 있는 부동산실명제 준비작업반은 매일 하오4시만 되면 열기가 달아오른다.문을 잠근 채 실무자들이 실명제의 시안을 검토하며 토론을 벌이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은 「부동산 실소유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이번 주에 입법예고한다는 계획 아래 관계부처와 막바지 협의를 진행중이다.입법예고 후 광범위한 여론수렴절차를 거쳐 빠르면 2월,늦어도 3월중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7월1일 시행에 앞서 넉넉한 준비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당초일정을 한달 앞당겼다. 준비작업은 재경원의 세제실이 전담한다.강만수세제실장과 이근경세제2심의관,최경수재산세과장,김진표전세제심의관(한국개발연구원 파견)이 중심이다.법무부와 법원행정처·농림수산부·건설교통부 및 국세청 등에서도 부동산분야에 밝은 직원이 1∼2명씩 나와 있다. 실명제의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 ▲명의신탁의 범위 ▲예외인정의 범위 ▲과거의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여부 ▲수탁자의 처벌여부 ▲부동산관련 법규의 정비다.명의신탁이란 부동산의 소유자가 타인과 약정을 맺어 그 사람 이름으로 등기하는 행위다.약정은 문서나 구두 모두 해당된다. 문제는 부동산을 매입한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등기하지 않고 계속 매도자의 이름으로 등기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다.강실장은 『이는 명의신탁이라기보다는 미등기행위로 보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으로 규제할 사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백한 차명등기이므로 명의신탁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신탁업법에 의한 신탁등기·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채무변제목적의 양도담보,종중의 재산 등은 예외적으로 명의신탁을 계속 허용할 방침이다. 기업의 업무용토지 매입 때도 6개월∼1년정도 한시적으로 명의신탁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기업의 부동산과 기업주 개인의 부동산을 구분하기 어려워 기업주가 악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명의신탁부동산의 실명전환과정에서 과거의 탈법 및 탈세사실이 드러나는 경우의 처벌문제도 큰 쟁점이다.재경원은 당초 「과거는 불문에 부친다」는 시안을 내놓았으나건설교통부·농림수산부·국세청 등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의 「과거불문」방침은 「원칙처벌」과 「예외최소화」 쪽으로 바뀌는 분위기다.강실장도 『세금추징 및 처벌면제를 골격으로 작성된 당초의 시안은 전면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실명제는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재경원이 출범 후 내놓은 첫 작품이다.실무팀에는 두 부처의 엘리트관료들이 섞여 있다.금융실명제에 이어 경제정의구현을 위한 부동산실명제의 산파역을 맡은 재경원의 자긍심은 그래서 더 높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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