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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19/前 성균관대생 崔東(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운동 헌신… 고문 후유증 시달리다 분신/‘인노회’ 관련 구속… 수면기능 망가져 정신분열증세/‘인간 파괴’ 절망의 벼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선택 ‘어찌하여 감옥에 들어서자마자 죄를 지었노라고 자백하지 않았느냐? 고문자들 앞에 서거든 유죄임을 인정하고 죽어라.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6세기초 독일의 프리드리히 슈페 폰 랑엔펠트 신부가 했던 말이다.그는 종교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죄인들과 처형장까지 동행했던 참회신부였다.죄없는 사람들이 고문에 버티다 결국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진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수없이 보았다.그가 말하고자했던 것은 무엇일까.바로 고문 앞에 한없이 무력한 인간과 고문이 가져오는 인간성 파괴였다. 수십년 독재정권을 겪었던 우리 사회도 고문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문은 정권수호를 위한 강력한 도구였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정권에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법정진술서 “도덕적 승리” 주장 전 성균관대생 崔東(80년 입학)도 그들중 하나였다.그는 10여년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다.그러나 어느날 공안기관의 조사를 받은 뒤 정신분열현상을 보이다 황폐한 삶을 마감했다. 최동은 90년 8월7일 한양대의 한 강의실에서 분신자살했다.하지만 그의 유서에는 시국관련 분신자들이 흔히 남기는 ‘독재타도’나 ‘외세타도’ 등 정치적 내용은 없었다.‘저들의 목적은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지금의 저는 폐인이나 다름 없습니다’란 절망적 몸부림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이는 그가 걸어왔던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더이상 갈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었다.그리고 분신은 그런 길을 걸을 수 없는 자신의 존재 부정이었던 것이다. 朴炯圭 목사는 장례식 조사에서 이렇게 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했다.“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굴복할 것을 강요합니다.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불의에 맞설 힘이 없었던 최동 열사는 무릎을 꿇기보다는 마지막 싸움의 무기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최동은 대학1학년때부터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80년 5월 문무대 병영집체교육 거부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였고 2학년때는 공개적 이념동아리인 ‘심산연구회’ 결성을 주도했다.심산(心山)은 성균관대 설립자이고 반독재운동가인 金昌淑 선생의 호이다.최동은 여기서 1학년 후배들 뿐만 아니라 2학년 동기들에게까지 학습을 지도했다.그리고 4학년때 광주항쟁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학내시위를 주도했다가 처음으로 구속된다.이때 재판에서 그는 최후진술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적 승리,도덕적 승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신념에 가득찬 민주투사로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9개월 복역후 출소한 최동은 정부의 복학허용을 개량화 조치라며 거부하고 84년 노동운동에 뛰어든다.부천의 삼창정밀 동광정밀 등에서 프레스공으로,(주)세일에서 재단사로 일한다.수형전력이 발각될까봐 주로 소규모 작업장을 전전하며 동료 노동자들의 노동의식을 일깨우는데 주력했다.외부에서는 다른 노동운동가들과 연대작업에 힘을 기울였다.그러나 활동가 중심의 노동운동이 현장과의 유리라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현장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는 그런 한계를 넘어보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최동은 88년 3월 인노회 결성에서 산파역할을 했다. ○기각된 영장 재청구해 발부 받아 89년 2월 검찰은 국가보안법 이적단체구성죄를 적용해 인노회 관계자 6명을 구속했다.최동도 4월 부천 심곡동 자취방 앞에서 붙잡혀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된다.하지만 관련자들은 인노회가 공개적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이라고 주장했다.담당판사도 인노회가 노동운동을 위한 단체임을 인정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그러나 검찰은 강성의 다른 판사에게 재신청하여 영장을 발부 받는다. 최동은 동료들에게 시간을 벌도록 처음에는 묵비권으로 버티었다.또 고문조작 수사를 막기 위해 취조실 욕조에 머리를 찧어 자해를 기도한다.그러나 경찰병원에서 7바늘을 꿰매는 응급치료만을 받고 다시 20여일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구치소 수감 직전에도 그는 극도의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다칫솔대를 부러뜨려 목을 찌르는 자해를 한다.하지만 이때도 외상만 치료받고 하룻만에 구치소에 수감되고 만다. 최동은 출소후 조사기간 내내 거의 잠을 못자며 취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수사관들이 교대로 취조를 했고 취조를 안할 때는 밝은 조명과 괴상한 소음을 이용,잠을 못자게 해 수면기능을 파괴했다고 말했다.고문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수많은 고문중에서도 잠을 안재우는 고문이 가장 참기 힘들다고 말한다.어머니 金順玉 여사(62)는 “동이가 구치소 수감 직전부터 이미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경찰병원 의사도 주의깊은 관찰과 치료가 요구된다고 진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치소에서도 조사 때의 수면기능 파괴로 인한 불면에 계속 시달렸다. 그리고 7월 초부터 심한 발작과 실어증세를 보인다.의도하지 않은 말 등 의식과 행동이 따로 작용하는 증세도 뒤따랐다.책이나 신문도 전혀 못 보는 등 상태가 악화되자 종로신경정신과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는데 ‘정신분열증’ 진단이 나왔다.하지만 이런 비정상적 정신상태에서도 수감된 채 재판이 계속 진행됐다.9월18일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가 결정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비정상적 정신상태서 재판 출소후 종로신경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적들이 나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AIDS균으로 나를 죽이려 한다”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고 하는 등 극도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그리고 90년 4월 부천의 한 자취방에서 연탄가스로 자살을 시도한다.이후 그는 수영장에 가거나 집에서 가까운 한양대로 산책을 나가며 건강회복을 위해 힘쓴다.정치이념이 철저하고 논리가 ‘칼’같아 마오쩌뚱에서 이를 따 ‘마동’으로 불렸던 최동.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와 노동현장에서 인정받았던 이러한 탁월함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노력도 헛되이 스스로 한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말았다.8월 7일 아침 평소처럼 “운동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그는 잠시후 검게 탄 시신이 돼 있었다. □약력 ●1960 서울 정동 출생 ●80 서울 환일고 졸업.성균관대 국문과 입학 ●81 학내 동아리 심산연구회 창립●83 광주항쟁 진상규명 요구시위 주도.9개월 복역 ●84 부천에서 노동운동 투신 ●88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결성 ●89 인노회사건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90 한양대에서 분신.한양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운명 ◎崔東 가족들/“치료만 제때 받았어도…” 회한/4남매중 셋이 학생운동/아버지 홧병으로 사망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최동의 어머니 김순옥 여사가 가슴에 묻고 있는 안타까움이다.대공분실 조사때부터 입원치료를 애원했으나 거절당했다고.구치소에서도 ‘충분한 휴식과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계속 무시했다고 한다.결국 출소할 때까지 제대로 손도 못쓴 채 아들의 증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는 것이다.김여사는 아들이 노동운동을 할 때도 부천에 전세방까지 얻어주고 밥도 해주는 ‘후원자’였다.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자 기왕 할거라면 굶지 말고 하라는 모정때문이었다.그런 아들이 제때 치료를 못받아 죽은 것이다. 김여사의 비극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아들의 49재가 끝나자마자 남편 최수호씨(당시 56세)까지 잃은 것이다.여자인 자신과 달리 슬픔과 분노를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기만하다가 홧병으로 가고 말았다고 했다. 4남매중 셋이 학생운동을 한 ‘덕’에 김여사는 구치소라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장남인 최동의 바로 밑 여동생 숙희씨(35)는 서울여대 재학시절 야학문제로 1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고 나왔다.오빠가 구치소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어머니와 함께 옥바라지를 했다.출가했지만 친정어머니인 김여사와 함께 사는 그녀는 “면회때면 제게 항상 귀엣말로 동료들을 조심시키라고 당부했다”며 “오빠이기 이전에 동지로서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한다. 둘째동생 재동씨(34)도 민정당연수원 점거사건으로 영등포구치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고 2년간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현재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 홍콩반환은 분단국 평화통일 모델/여신(지구촌 칼럼)

    ◎1국2체제 공존… 역사적 실험 성공해야 홍콩의 중국 반환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홍콩의 주권을 회복하는 7월1일은 중국에겐 영국의 식민침략전쟁의 수치를 씻고 자존심을 회복하는 날이다.홍콩반환은 특히 분열상태로 각기 다른 사회제도를 지닌 몇 지역이 이 방식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홍콩의 주권이양 성공여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반환일이 다가오면서 과연 평온한 주권이양이 가능할까하는 의구심과 두나라간의 주권이양과 관련된 잡음이 곳곳에서 커지고 있다. ○법으로 자본주의제 보장 왜 그런 잡음이 생겨날까.중국은 홍콩정부의 일부 인사들이 비난하듯 홍콩의 자유·민주를 박탈하려 하는가.중국과 영국의 홍콩주권 이양문제는 일련의 협약에 따라 진행돼 왔다.지난 84년 영국의 대처총리와 조자양 총리간의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 공동성명은 주권이양의 틀을 만들었다.중국정부는 이에 근거,홍콩내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지난 90년4월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통과,반포했다.이 기본법은 일국양제(한국가내의 두가지 정치체제) 정책을 실현했으며 중국의 영토 및 주권이란 전제아래 홍콩의 자본주의제도와 기존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음을 공식화,성문화한 것이다. 중·영 두나라의 협의정신에 근거한 이 기본법은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항인항치)」와 「고도자치」의 원칙을 구체화한 것이다.중국정부의 일련의 이같은 노력은 국제사회의 약속에 대한 성의와 노력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홍콩의 고도자치권 부여와 기본권리및 충분한 자유 부여조치에도 불구,홍콩의 영국 정청당국은 약속을 저버리고 평온한 홍콩의 주권이양문제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영국 정청당국은 양국이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에 대해 중국반대에도 불구,단독으로 결정함으로써 파탄을 불러일으켰다.이미 두나라는 주권이양 과도기의 결정이 주권이양후 영향을 미칠 사항들에 대해선 중·영 양측이 협의해야 한다고 결정했었다.그럼에도 입법회선거 및 국민들의 일부 정치참여권 확대와 같은 홍콩특구행정부가 짊어져야할 문제에 대해서 중국정부와 상의도 없이 또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게다가 최근들어 홍콩정부의 일부 인사와 국제사회의 반중국세력은 여론을 조작하고 거짓 선전을 통해 중국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고취시키고 있음은 유감이다. ○국제사회에의 약속 지켜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중국정부의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과 중·영 협약에 기초한 홍콩 주권접수 작업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홍콩특별행정구의 출범을 위한 주비위원회는 최근 행정장관과 임시입법회를 민주선거를 통해 탄생시키는 산파역할을 마쳤다.홍콩 최고책임자를 시민들 손으로 뽑았다는 것은 일부 포폄에도 불구,유사이래 최초의 일이다.그간 홍콩의 최고책임자인 총독은 영국 본국에서 결정,파견해왔다.게다가 홍콩의 입법기구도 최근 몇년간을 제외하곤 오랫동안 총독의 위임에 의해 구성돼 왔었다.이같은 민주적 전통 및 실천경험이 부족한 토양아래선 진정한 민주적 보통선거를 치르기가 어려웠다.특히 영국정청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아래선 더욱 그랬다.주비위원회는 이같은 이유로 각계인사로 구성된 홍콩특별행정구 제1기 정부 추선위원회(추선위)를 조직하고 행정장관과 임시입법회를 구성한 것이다.영국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해 구성한 기존 입법회는 협약무효임으로 해산해야 한다는게 중국측 입장이다. ○국제금융 중심역할 계속 홍콩영주권을 가진 4백명의 추선위 위원들의 80%의 지지율로 초대행정장관 동건화는 탄생했고 이어 1백30명의 후보가운데 60명의 임시입법회 의원이 선출됐다.이같은 일련의 선거는 홍콩 민주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다.초대장관 및 의회격인 임시입법회 의원의 선출,행정장관의 지명 등에 의한 각료등 행정회의구성은 이제 중국의 홍콩주권회복을 위한 대강의 일들이 마무리됐음을 말해준다.이같은 기초작업의 마무리는 홍콩의 미래와 발전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할 것이다.홍콩은 안정돼 있다.홍콩미래에 대해 주민 73%가 낙관한다는 조사도 있고 해외금융기관은 전년도에 비해 12%나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다.7월1일 이후에도 국제금융,무역,항공운수의 중심지로서의 열할이 계속될 것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홍콩의 평화로운 주권교체는 시대적 조류이며 어떤 세력도 막을수 없다.이것은 등소평이 제시했던 평화통일및 일국양제의 구상을 실현한 것이며 대만에 대한 청사진을 구체화한 것이다.이는 홍콩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며 국제사회에 하나의 모델로서 제시될 수 있다.이는 홍콩의 주권이양실험이 성공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이다.
  • 국민회의/불심 껴안기 나선다

    ◎불자의원 13명 새달 10일 「연등회」 발족/박상규 부총재가 초대회장 맡게 될듯 국민회의가 본격적인 「불심껴안기」에 나선다. 당내 불자 의원 13명은 내달 10일 「연등회」라는 공식모임을 발족시킨다.박상규 부총재가 회장으로 추대되며 정한용 추미애 의원이 부회장을 맡게 된다.여기에 조찬형 김성곤 한영애 임복진 배종무 최선영 박찬주 의원 등 당내에서 불교도 의원들이 총집결한다. 이들은 매달 1회 정도 전국의 유명사찰을 돌면서 1박2일 일정으로 참선 위주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첫 법회는 불교방송국 강당에서 열고,김총재에게 축사도 부탁해 놓았다.방송국측과 전국적인 방송계획도 협의 중이다.소원했던 불교계와의 관계개선은 물론 불교 신자들에게 다가갈 더 없는 기회다. 이 때문인지 정가에서는 긴장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있다.이달초 김총재는 불교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인사를 방문,혜암스님으로부터 설법을 들었다.내달부터 연등회가 전국을 돌 경우 불교계 중진들과의 자연스런 창구역할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더욱이 김총재의 그림자로 알려진 권노갑 의원이 연등회 고문으로 위촉될 예정이라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그러나 연등회측은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이 모임의 간사를 맡으며 산파역할을 한 조성준 의원은 『지난 5월 불자의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모임결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며 『불심을 닦는 일 외에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전문

    저는 10일간 일정으로 인도와 싱가포르를 국빈으로 방문하고,태국에서 열리는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금 출국합니다. 저의 인도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입니다.인도는 서남아시아의 중심국가이며 비동맹운동의 주도국으로서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나라입니다. 저의 이번 인도방문은 우리와 서남아시아의 경제협력기반을 넓히고,비동맹권과 외교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국민소득이 2만4천달러를 넘어 이미 선진권에 진입한 나라로 우리의 6대교역상대국입니다.싱가포르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국제외교무대에서 우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우방입니다. 저는 이번 싱가포르방문에서 이 나라의 지도자들과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위한 역내 국가간의 협력증진방안을 논의할 것입니다. 태국에서 열리는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는 25개국 정상이 모여 두 지역간의 정치·경제협력증진문제를 폭넓게 협의할 것입니다.저는 이 회의에 참석하는 주요국가 정상들과 개별정상회담도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 아시아·유럽정상회의는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아시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수출시장으로서,그리고 가장 큰 해외건설시장으로서 우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순방중 싱가포르에서 우리나라의 동남아시아정책의 기조를 밝히는 연설을 할 계획입니다.저는 이 연설에서 21세기 아시아 공동번영을 위해 한국과 아세안의 동반자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저의 이번 인도와 싱가포르방문에는 우리 경제인이 동행하여 현지의 경제인과 만나 민간차원의 경제협력문제를 협의합니다. 3월4일 돌아와서 순방결과를 국민 여러분에게 보고드리겠습니다. ◎인도 환영만찬 답사 요지 인도는 수천년 동양문화의 요람이었고 아시아인의 정신적 고향이었습니다.다양성 속에서도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인도국민의 인내와 관용,그리고 저력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는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과거와현재를 관류하는 각별한 인연을 토대로 앞으로 우리 두 나라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으로 믿습니다.인도는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주도국으로 세계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또한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SARC)을 이끌면서 이 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한국은 APEC의 산파역할을 했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인도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새로운 협력의 물결이 넘쳐날 수 있도록 우리 두 나라는 굳게 협력해나가야 합니다.나의 인도방문은 이러한 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국과 인도의 관계는 73년 수교이래 모든 분야에서 착실한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인도정부가 지난 91년부터 경제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이후에 양국관계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양국간의 교역은 4년만에 무려 2.5배나 증가하여 20억달러에 달했으며 금년 들어서도 높은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또한 양국 기업의 합작투자와 기술제휴도 크게 늘어남으로써 이제한국은 인도의 열한번째 투자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정도의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입니다.한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적 보완성을 갖고 있습니다.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그리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효과적으로 결합될 때 양국의 공동이익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 신한국당 새 조직책의 포부

    ◎정치생활에도 「실명제」 도입할것­청주상당 홍재형 지역할거 타파… 정치 성숙에 기여­관악을 박홍석 야생활 경험살려 소외층에 관심­강북을 이철용 지역여건 어렵지만 새물결 창조­부산갑 조남희 구시대의 정치공해 추방에 앞장­서대문갑 이성헌 정치는 서툴지만 교육엔 전문가­인천연수 서한샘 신한국당의 신설·사고지구당 신임조직책 17명이 11일 하오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 들러 출마의 변과 함께 총선 필승의 포부를 밝혔다.이들은 『15대 총선을 지역할거구도 타파와 진정한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서울지역에 포진한 소장개혁파 조직책들은 총선전략으로 세대교체와 신풍운동을 부르짖었고 호남과 충청 등 「적진」에 뛰어든 조직책들은 필사즉생의 전의를 다졌다. 이번 인선의 핵심은 역시 서울지역 조직책이었다.젊은 개혁인사들은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에』(강서을 이신범당부대변인·46) 『구시대의 정치공해를 추방하고』(서대문갑 이성헌전청와대정무비서관·38) 『뿌리깊은 지역할거구도를 타파해 정치를 한단계 성숙시키겠다』(관악을 박홍석미디어리서치컨설팅고문·45)고 삼박자를 맞췄다. 은평을 이재오조직책(51·전민중당사무총장)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큰 정치에서 벗어나 환경과 교육 등 전문영역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작은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이들은 개혁과 수구,헌정치와 새정치의 한판 승부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개혁주체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조직책들도 각자의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정견과 포부를 내놓았다.생활정치와 농어민의 정치를 부르짖었고 전문성을 갖춘 정치를 역설했다. 무소속으로 외도의 길을 걷다가 「친정집」에 다시 돌아온 5선의원 경기 평택을 이자헌조직책(61)은 『모든 일에 새출발하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다짐했고 서울 강북을 조직책으로 임명된 이철용전의원(48)은 『13대 평민당시절 야당생활의 경험을 살려 소외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힘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경제부총리시절 부동산 실명제와 금융실명제 도입의 산파역할을 했던 충북 청주상당 홍재형조직책(58)은 『정치인의 언행과 정치활동에도 실명제를 도입해 깨끗하고 신뢰받는 정치 풍토를 조성하는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샘학원이사장으로 젊은 학생들사이에 널리 알려진 인천 연수 서한샘조직책(52)은 『정치에는 서툴지만 교육에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소개하고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정치를 선보이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 강원 동해 최연희조직책(52·전춘천지점차장검사)은 검사출신답게 『있는 그대로의 성실하고 진정한 활동을 통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을 약속했다. 농림수산부 차관과 충남지사를 지냈던 충남 천안을 김한곤조직책(62)은 『농어민의 대변자로서 고락을 같이 나누겠다』며 차별화를 시도했고 강원 원주을 김영진조직책(57·현전국구의원)은 국민생활 안정에 최선을 다하는 생활정치를 부르짖었다. 호남지역에 뛰어든 조직책들은 각오도 남달랐다. 전북 전주 덕진 이현도조직책(57·전일석유대표)과 전북 익산갑 조남조조직책(58·전의원)은 『지역할거주의의 총본산으로 꽁꽁 얼어붙은 동토의 땅,전주에서 새물결을 일으키는 역할』을 자임하며 『어려운 지역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남 영광 함평의 양근수조직책(46·대승기업대표)도 『지성이면 감천』이라며 은근과 패기를 총선 전략의 주무기로 내세웠다.
  • 「12·20」 개각/새 얼굴 9인

    ◎김우석 내무/YS 직계… 소탈한 성격에 배짱 두둑 김영삼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일때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해 줄곧 주변을 지킨 상도동계.소탈한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배짱도 두둑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특히 토지개발공사 사장에 발령이 난뒤 노조가 취임저지 등 강력히 반발했으나 며칠만에 노사갈등을 해소하고 조직을 장악해 일화를 남겼다.지난 87년 정계에 입문할때까지는 언론계·경제계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김대통령의 신임으로 토지개발공사사장과 건설부장관을 지낸뒤 이번에 총선을 치를 내무부장관에 발탁됐다.부인 김정자씨(51)와의 사이에 1남1녀. ◎안병영 교육/대학교육에 남다른 관심… 조화 중시 완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조화와 화해를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라는 것이 중론. 전임 박영식 장관이 연세대총장 때 교무처장으로 보필하는 등 평소 대학 교육정책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학자는 갈고 닦은 지식을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에 인색해선 안된다는 것이 평소 소신.경실련에서 발간하는 정책전문지 경제정의 편집장,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학교 교무위원,계간지 사상 편집위원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부인 윤정자씨(54)와의 사이에 1남1녀. ◎김영수 문체/업무처리 매끈하고 기획력 돋보여 민자당 전국구의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정세분석통. 검사시절에는 문세광 8·15저격사건과 울릉도간첩단 사건 등 굵직굵직한 공안사건을 많이 다뤘다.지난 92년 대통령선거 기간중 대선기획위원을 맡으면서 뛰어난 분석력과 기획력을 발휘,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민정수석에 발탁됐다. 특히 6공말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차기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제안,김영삼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업무처리가 매끄럽고 빈틈이 없는 데다,소리를 내지않고 맡은 업무만 충실히 해 윗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형이라는 중평.부인 원종순씨(50)와의 사이에 1남1녀.취미는 테니스와 등산. ◎강운태 농수산/내무행정 베테랑… 광주시장 역임 일처리가 깔끔하고 업무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은 내무전문관료 출신.대학재학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72년 공직에 발을 디뎌 내무부 주요부서를 두루 거친 내무행정의 베테랑. 단신에 치밀한 성격으로 상하간 신망이 두텁다.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했고 기관장이 돼서도 책을 놓지 않는 노력가로 평가받고 있다.재기가 넘치는 재사형으로 작은 일도 놓치지 않는다는 게 주위의 평가. 청와대 내무행정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시·군통합 등 행정구역개편에 깊이 관여했다.이를 인정받아 광주시장으로 발탁됐었다.부인 이덕희씨(40)와의 사이에 2남. ◎이석채 정보통신/해박한 지식 평판… 추진력 뛰어나 어딜 가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다.아는 게 많고 일단 입을 열면 속사포다.정연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힘과 추진력이 있다.경제차관회의에서 그나마 말상대가 되는 사람은 박운서 통산부 차관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래서 일부 오해도 있고,「적」도 있다. 한이헌 전 경제수석과 고시 7회동기이며 이번 입각으로 7회출신 장관 1호가 됐다.5공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순방때 기내 브리핑을 완벽하게 해내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출세가도를 달려 왔다.지난 6월엔 북경 남북쌀회담 대표로 활약.부인 문경자씨(47)와의 사이에 2남. ◎정종택 환경/정·관계 두루 경험… 민방위 창설 일익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행정가로 지방재정에 정통하다.충북지사를 거쳐 농수산부장관 재직중 청주에서 출마,11대부터 12·13대까지 내리 당선됐으나 지난 14대에는 고배를 마셨다.계수에 밝고 기억력이 비상하면서도 관료출신답지 않게 친화력이 좋아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다.정계진출 이후에도 정무1장관을 지내는 등 관운이 좋은 정치인으로 통한다.지난 71년 대통령 정무비서관 재직시 새마을운동을 추진했고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낼 때는 민방위 창설의 산파역할을 맡았다.부인 이신직여사(53)와의 사이에 1남4녀. ◎김양배 복지/정통 내무관료… 따르는 사람 많아 「불도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업무 추진력을 지닌 정통 내무관료 출신.그러나 일이 끝나고 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줘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막바지에 농림수산부장관을 맡았으나 UR 수정계획서 파문으로 취임 3개월만에 물러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5공」때 초대 광주직할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광주시민의 응어리 해소와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문민정부 초대 행정수석을 맡아 현정부와 인연을 맺었다.취미는 독서.부인 김영희씨(53)와의 사이에 2녀. ◎추경석 건교/국세청서 잔뼈… 공직 36년만에 입각 정통 세무관료 출신으로 59년 주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36년만의 장관 입성.83년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며 「명성그룹사건」을 맡아 「명성」을 날렸고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뒤 국세청장으로 4년동안 장기 재직했다. 6척장신의 큰 체구에 조직장악력과 추진력이 뛰어나고 부하직원들에겐 온화한 외유내강형으로 상하간에 신망이 두텁다.누구에게나 비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거는 형이다.독립유공자로 전남지사를 지낸 고 추규영씨의 장남으로 부인 정수자씨(53)와의 사이에 1남3녀.취미는 등산. ◎주돈식 정무1/기자 출신… 조용한 성격의 「일꾼」평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충청도 양반」.잠깐의 교사생활을 거쳐 65년부터 조선일보에서 정치부 기자만 했다.정치부장·논설위원을 하며,성격답게 평형감각을 잃지않는 명칼럼으로 필명을 드높였다.「야당투사」였던 김영삼 대통령과 일찍부터 가까웠다.계속 신임받고 있다. 하버드대학 연수시절 아키노 전필리핀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낮은 목소리로 조용한 성격이지만,업무처리는 야무지다.문민정부 출범후 줄곧 맡아온 중책을 너끈히 해냈다.자제력도 탁월해 한마디로 「소리없는 개혁주의자」다.부인 변성숙여사(53)와의 사이에 1남2녀.
  • 아태재단­일부후보 「커넥션」확인/서울 교육위원 선출 비리 수사파장

    ◎선거당일 “헌금 않으면 낙선” 소문 무성/관련 지방의원들 무더기 처벌 불가피 서울시 교육위원 선출을 둘러싼 교육위원 후보자와 일부 서울시·구의원,아태재단측 사이의 「부정커넥션」이 검찰수사로 속속 드러남에 따라 관련자들에 대한 무더기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조사 결과 교육위원선거에 출마했던 50여명 가운데 20여명이 아태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당선을 약속받았거나 선출및 추천권이 있는 시·구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당선」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아태재단에 5백만∼1천만원의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새정치국민회의측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아태재단측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아태재단측은 특히 『5백만원을 받고 교육위원을 시켜준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냐』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회 가입을 강요한바 없으며 허위사실을 유도한 사람을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태재단선 부인 검찰은 이와 함께 새정치국민의회측의 서울시의회 상임위원장 등 일부 간부들이 이번 교육위원 선거부정과 관련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후보자들에게 『이같은 일을 발설하지 말라』는 등의 「회유」와 「협박」을 한 점을 중시,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 백의종의원은 지난 21일 서울시 교육위원 선거가 끝난뒤 기자회견을 갖고 『아태재단 후원회 간부이자 시의회 부의장인 김기영의원이 아태재단에 후원금 5백만원을 내면 교육위원으로 선출해 주겠다며 후원회 가입을 권유하면서 후원회원 신청서와 8개 시중은행의 온라인 번호까지 알려줬다』고 폭로했었다. ○회유·협박도 수사 검찰은 또 일부 시·구의원들이 교육위원 입후보자들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교육위원선거는 구의원들의 추천에 따라 시의원들이 선출하는 「이중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이 때문에 제도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서울 E구의 경우 구의장이 교육위원 추천에 앞서 구의원들에게 금배지 등을 돌리며 모후보를 지원해 달라는 부탁까지 했으며 또 다른 구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입후보자들에게 2백만∼3백만원씩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거 당일 후보들 사이에선 『아태재단에 헌금을 하지 않으면 당선되지 못한다』『아태재단 간부인 시의회 모간부와 눈인사라도 해야 한다더라』등의 소문이 퍼져 일부 후보들은 마지못해 헌금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시·구의원이 교육위원 입후보자들로부터 직접 금품을 받았다면 뇌물수수혐의를,교육위원들이 시의원을 통해 아태재단에 후원금을 내고 당선을 부탁했다면 제3자 뇌물제공혐의를,이를 알선한 시의원에게는 제3자 뇌물요구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덕적 타격 클듯 그러나 후원금을 받은 아태재단측의 관계자에 대해서는 후원금을 내게한 시의원과 공모한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떠한 형사처벌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제3자 뇌물제공죄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아태재단측은 후원금모금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법률적 문제는 피해갈수 있어도 도덕적으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해 속을 태우고 있다. 어느 직역보다 깨끗한 선거를 요구하는 교육위원선거에서 명목이야 어쨌든 「금품수수」가 있었다면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태재단/후원금 연60억이상 모금/조직구성과 운영방식을 알아보면/정치지망생 등 회원수 총 3만여명/돈흐름은 김이사장·사무총장만 알아 서울시교육위원 선출과정에서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아태평화재단은 지난해 1월 김대중씨가 설립한 국제학술연구재단이다.통일정책의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외무부에 등록된 민간단체이나 재단의 자금줄인 아태재단후원회는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정치지망생들로 구성,김이사장의 정치활동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통설이다.교육위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낸 후원금이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아태재단은 조직표상 이사회와 사무처·자문위원회 및 고문단·후원회 등으로 크게 나눠진다.이중 사무처는 이사장 직속으로 재단 살림을 관장한다.후원회는 재단의 돈줄을 맡고 있다.따라서 돈의 흐름은 김대중 이사장을 비롯해 재단의 임동원 사무총장,후원회의 황용배 사무처장 등 일부만이 알고 있다.후원회는 재단이 발족하기 6개월전인 93년7월부터 활동을 시작,재단의 산파역할을 했다.조직은 회장단과 중앙위원으로 구성됐으며 회장은 여권출신인 이동진 전의원이 맡고 있다. 이중 중앙위원은 연간 5백만원 이상을 내는 특별위원으로 위촉되며 현재 약 6백명 정도로 추산된다.새정치국민회의의 박태영의원이 회장을 맡아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주목할 점은 처음 80여명이던 중앙위원이 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격히 늘었다는 것이다.이번에 의혹을 사고 있는 서울시교육위원들도 모두 6월에 5백만원 이상을 내고 가입한 특별회원이다.또 연간 10만원 이상을 내는 일반회원도 3만명을 웃돈다고 한다.따라서 재단에 지원되는 돈은 어림잡아도 최소한 연간 60억원을 넘는다. 후원금은 황용배 사무처장이 집계해 재단에 보고하며 임동원 사무총장이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집행한다고 한다.이와관련,임총장은 『매년 외무부로부터 정기감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후원금과 관련된 어떠한 의혹도 없다』면서 『후원금은 주로 연구비·출판비·세미나지원비·인건비로 쓰인다』고 말했다.그러나 후원회가 정치인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점,자금의 지출내역이나 모집과정이 철저히 비공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후원금으로 냈어도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정치 속석상 별도의 뒷거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은 아태재단이 의혹을 받는 부분이다.
  • 기여입학­찬반논쟁 가열조짐/“사대 재정난 해소위해 불가피”­찬

    ◎“국민 정서에 위배…아직 이르다”­반/교육부·교개위, “공감대 없어 당장 허용 어렵다” 97학년도부터 사립대의 입학전형이 대학에 맡겨짐에 따라 기여입학제의 허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선발 방식을 대학에 맡긴다면 기여입학제도 허용하는 것이 논리에 맡는다는 주장과 국민정서적인 면에서 정책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의 실무당국자는 교육수혜자인 국민의 편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전제아래 아직 기여입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만일 사립대가 자율을 내세워 국민정서에 어긋나는 기여입학제를 도입한다면 국고지원과 행·재정 지원을 전면중단하는 등 제재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사립대에서는 학생선발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 이상 기여입학제도 허용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학 교육을 다양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일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마땅히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당국의 유권해석이 내려진다면 기여입학제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사립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육개혁안을 만든 교육개혁위원회의 태도는 분명하지 않다. 위원회의 이명현 상임위원은 『사립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자율화 했기 때문에 기여입학제의 도입도 대학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헌법이나 국민정서에 달려 있는 것으로 「된다」「안된다」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이어 『미국의 대학에서는 부모가 대학에 건물을 기부하는 등 대학재정에 기여했다면 자녀들을 입학시켜 주는 예가 많지만 어느 국가도 대학입학을 전제로 한 기부금 납부는 없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위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뿐이지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뜻의 말이지만 애매한 자세임은 분명하다. 굳이 풀어본다면 대학에 돈을 내고 입학하는 방식의 기여입학제는 당장 허용하기 어렵지만 헌법과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국민 정서도 따라준다면 기여입학제는 앞으로 충분히 검토할 문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영식 교육부장관도 취임 직후 『미국과 같이 대학의 입학권은 가능한 한 빨리 대학에 넘기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말해 기여입학제의 도입에 다소 긍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교육정책적인 허용 여부와는 별도로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선 대학과 교육행정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사립대학 총·학장협의회가 지난해말 전국 90개 대학 총·학장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5.5%가 「기여입학이 대학재정난 해결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대답했으나 33.3%는 반대했으며 나머지 10%는 「아무래도 좋다」고 응답했다. 기여입학을 허용하자는 쪽도 51.1%가 인원과 방법을 규제해야 한다고 했고 대학자율로 결정하자고 한 사람은 26.7%였다. ◎“세계화 맞춰 「교육의 틀」 재정립/입시지옥고통·과외비 과다부담 해소 주력/교육개혁 산파역 박세일 정책기획수석(인터뷰) 『이번 교육개혁안은 교육 자체뿐 아니라 우리국가 전체의 기본틀을 21세기에 맞게 새로 짜는 것입니다』 박세일 청와대정책기획수석은 청와대수석 가운데 가장 부지런하고 바쁜 사람중의 하나로 꼽힌다.사법개혁에 이어 이번에 발표된 교육개혁안도 그가 산파역할을 톡톡히 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개혁안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첫째는 세계화·정보화시대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아 교육의 틀을 그에 맞춰 다시 짜는 것이다.둘째는 입시지옥,사교육비 과다부담등 당면한 교육관련 고통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개혁안의 주요특징은. ▲대학으로부터 시작해 교육의 기본틀을 다시 짠다는 구상이다.대학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평생학습사회를 열어감으로써 자연스럽게 초·중등교육도 개혁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틀 자체는 과감히 바꾸면서 진행과정을 단계적으로 해 적응기간을 갖도록 했다. ­초·중등교육의 개선방향은. ▲학부모와 학생의 교육과정에 대한 참여폭을 넓히는 게 핵심이다.국·영·수위주의 암기식 교육에서 다양화·특성화쪽으로 교과과정을 바꾸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교육재정문제가 결론나지 않았는데. ▲과거에도 교육관련 개혁안이 나온 적이 있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못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이번에는 GNP의 5%를 교육재정으로 투입하는 안이 반드시 달성될 것이다. ­왜 구체적 재정조달방안 발표를 9월로 미뤘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자치단체가 지방교육에 대한 권한과 책임의 상당부분을 지게 된다.따라서 지방선거 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가 협의할 필요가 있다.또 GNP의 5% 달성을 위해서는 증세,교육공채 혹은 예산의 다른 부분의 전용등 국가재정구조 전반을 손대야 한다.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김 대통령 동남아 순방… 방문지별 성과 분석

    ◎남북경협 개척… 「아태중심」 위상 굳혀/개도국유지로 개방대응 여유 확보/폭넓은 자본·자본기술 디딤돌 마련/비/대아세안 관계강화 협조 다짐받아/인니/자원·산업 실질협력확대 여건 조성/호 김영삼 대통령의 9박10일에 걸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과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 방문에서 나타난 성과는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동남아 진출을 예고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정상과의 대화를 통해 상호협력 관계의 발전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뿐만 아니라 앞으로 APEC의 진로를 결정하는 「보고르선언」의 채택을 주도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이 지역의 중심축으로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계기를 마련했다.특히 「시드니구상」으로 불리는 김대통령의 「세계화 장기구상」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국정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김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석및 3개국 순방 성과를 간추려본다. ▷APEC◁ 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에서 APEC 역내 국가들의 조정자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우리나라가 아시아·태평양국가의 중심국가로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WTO체제만으로는 자유무역제도가 완결될 수 없으므로 APEC가 개방적 국제무역제도의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면서 무역자유화의 목표연도가 설정돼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갔다.김대통령은 이어 『APEC 회원국들이 앞장서 늦어도 2020년까지는 무역과 투자의 장애를 제거해 나가자』고 제안하고 『착수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가 반대하기는 했지만 김대통령의 이같은 의견은 참가국 정상들의 호응을 얻어 결국 이같은 내용을 담을 「보고르선언」을 도출 해냈다.김대통령이 「보고르선언」의 산파역할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호주 시드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APEC정상회의에서 문민정부의 역량을 새삼 실감했다.각국 정상들이 나에게 조정역할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으며 나는 이를 기꺼이 수락해 2020년 무역자유화 선언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보고르선언」은 오는 2020년까지 개발도상국들의 무역자유화를 완결한다는것이 그 골자.선진국들은 이보다 10년 앞선 2010년까지 자유화 해야 한다.우리나라는 이번 회의에서 선진국쪽 신흥공업국에 포함될 뻔 했다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다.개발도상국 대우를 유지함으로써 무역을 자유화 해야 하는 기간을 10년 유예받게 된 것이다.우리나라는 오는 96년 선진국들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더라도 시간적인 시장개방에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김대통령은 『2010년까지 무역을 자유화해야 하는 대상에서 신흥공업국을 제외시킨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회의 전날 밤부터 각국 정상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11명으로부터 지지를 얻어냈으며 의장인 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에게도 수정의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보고르선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김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게 된 것에 대해 『전체 인구의 13%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부문의 취약한 현실을 주지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우리나라가 거둔 이같은 성과는 미국등 선진국들이 보다 빨리 APEC 역내 국가들의 시장을 개방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얻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 뜻이 크다. ▷필리핀◁ 라모스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 기업들이 「필리핀 2000」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필리핀 2000」계획은 93∼98년 사이 연간 6∼8%의 경제성장을 이룩,개인소득 1천달러를 달성하고 절대빈곤층을 지금의 50%에서 30%로 줄이는 것이 그 골자다.필리핀은 이같은 야심찬 계획의 자본및 기술협력 파트너로 우리나라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필리핀 두나라는 이를 위해 우리 기업의 필리핀 항만건설 참여에 합의했다.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은 필리핀이 아·태지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면서 이같은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하기 위한 방대한 항만건설 구상에 우리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앞으로 나머지 도로·전력·통신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에 우리기업이 보다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동남아 아세안 5개국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지나해의 남사군도 개발에 우리기업이 참여한다는 데도 합의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 최초의 외국은행 지점 설치권을 우리나라에 주도록 내각에 지시했다.이에 따라 외환은행은 필리핀정부의 공식인가로 지점을 설치하는 첫 은행이 된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두 나라 과학기술장관 사이에 원자력협정이 가서명 됐다.「원자력협력협정 체결에 관한 의향서」를 내년 1월 원자력협정으로 대체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필리핀은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전력난의 타개를 위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정부관계자들은 『원자력협정의 체결로 한국형경수로의 필리핀 진출 길이 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통신은 이번 김대통령의 필리핀 순방에 따른 현지의 우호적 분위기 확산에 힘입어 30만 회선 규모의 필리핀 통신망건설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커졌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경제개발은 뒤처졌지만 비동맹그룹의 중심이자 동남아 최대 강국.동남아지역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하다.인도네시아가 재채기를 한번 하면 주변의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물론 인도차이나반도의 나라들도 긴장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또한 풍부한 부존자원을 갖고 있어 우리나라로서는 동남아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대상이다.따라서 김대통령의 이번 순방국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가장 모았던 나라이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수하르토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관계강화를 위해 인도네시아가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다짐을 이끌어 냈다.아세안은 우리의 4번째 교역상대국으로 교역량이 해마다 25% 이상 늘고 있으며 1∼2년 안에 3번째로 올라설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는 또 우리나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출마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인도네시아 방문에서 김대통령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방문의 목적이 세일즈외교에 있었던 만큼 인도네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에서 찾을 수 있다.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인도네시아의 제6차 5개년 경제계획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측은 환영의 뜻을밝혔다.인도네시아는 『자동차·전자분야에 대한 한국기업의 투자와 통신·항만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한국기업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대우·삼성·기아자동차는 부품조립의 형태로 인도네시아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일본이 독점해온 인도네시아의 자동차시장에 우리자동차가 상륙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또 우리나라가 두번째 중요한 현안으로 다룬 액화천연가스의 공급및 가격 조정에 대해서도 일부 동의를 표시했다.인도네시아는 안정적인 공급을 약속하면서 국제가격 보다 다소 높은 가격에 대해서는 『한국의 취지를 이해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실무선에서 논의하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주◁ 김대통령은 자원부국이자 선진기술을 갖고 있는 호주와 자원개발 확대,자원보장협정체결등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 실질협력 확대를 위한 환경을 조성했다.이와 함께 3만5천명의 교민이 살고 있는 호주와 우리 국민들의 활동영역 확대에 상응하는 외교적 협력기반을 확충했다. 김대통령은 폴 키팅 호주총리와 두 나라 사이의 산업기술 협력의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 앞으로 3년 동안 두 나라가 3억원씩을 출연해 산업과학기술협력공동기금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김대통령은 또 우리나라가 에너지의 4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호주로부터 안정적인 공급과 에너지자원의 공동개발을 논의하기 위한 각료급 회담을 갖기로 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호주방문객이 체류하는동안 임시취업도 가능한 관광취업비자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투자보장협정·환경협력약정·과학기술산업협력협정등 두나라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는 3개 협정을 맺는데도 합의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의 WTO사무총장 출마에 대해 지지를 요청했고 호주 쪽은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에 비추어 그 당위성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했다.
  • 이강환씨 생명보험협회장(새의자)

    ◎“보험업계 발전위해 다양한 정책 개발” 『보험업계 출신으로 회장이 돼 기대가 큰 만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협회를 생명보험업의 성장·발전을 위한 정책개발기관으로 재정립해 나가는데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지난 79년부터 생명보험협회장이 상근회장이 된 이후 보험인 출신으로는 첫 회장으로 선임된 이강환씨(57)의 소감이다. 『기존사·신설사 구별할것 없이 모든 회원사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서로 대화를 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지난 88년부터 보험사들이 잇따라 설립돼 생명보험회사는 모두 33개로 늘었다.그러나 삼성·대한·교보등 기존 6대 대형사는 대형사대로,신설사는 신설사대로 따로 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로 관계가 불편한데 대한 처방이다. 『생명보험이 계속 발전하려면 외형 보다는 내실경영에 힘을 쏟아야 해요.특히 상품의 질과 서비스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보험가입후 1년뒤에 계속 보험에 들고 있는 유지율이 일본은 86%인데 비해 우리는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무리한 외형경쟁때문이라는 진단이다. 『모집인의 질도 높아야 합니다.모집인들이 보험의 좋은 점 뿐 아니라 문제점도 솔직히 고객들에게 설명해야 보험사의 다소 나쁜 이미지도 개선될 수 있다고 봅니다.남성 모집인들도 많이 나와야 합니다.보험은 다른 업종 못지않게 조직과 사람이 중요합니다.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계약자들이 사고로 보험금을 탈 때는 보험사들이 원칙을 지나치게 앞세우고 해약할 때는 원금도 제대로 주지않는다는 등 각종 민원이 생기는 데 이는 모집인들이 계약을 끌어오기 위해 보험의 좋은 점만 부각시킨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회장은 서울법대를 졸업한 뒤 지난 66년 대한교육보험에 입사,사장과 부회장,교보문고 회장 등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여천탱크터미널 회장으로 일해왔다.교보에 있으면서 종업원퇴직보험 등을 만드는데 산파역할을 했다.정치인이나 관료출신인 전임자들에 비해 로비력은 뒤질지 모르지만 보험업계의 문제점과 현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나행자여사(54)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취미는 골프(핸디12).
  • “강력한 비서실”… 「신한국」의 산실로/달라지는 청와대 기구

    ◎「사정」폐지·「정책」신설 등 기능 재조정/개혁프로그램 추진관련 권한 강화 청와대비서실은 김영삼차기대통령이 추구하는 「신한국건설」의 명실상부한 본산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 만큼 권한과 책임이 막중해 질것이 분명하다.17일 발표된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지휘부의 인선내용에서도 김차기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강한 집념이 엿보인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발표내용만을 놓고 볼 때 차기청와대 비서실의 규모와 지위는 지금보다 약화됐다. 우선 규모면에서 김차기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대로 사정비서실이 폐지됐다.사정비서실의기능 상당부분은 민정비서실에서 흡수하고 나머지 기능도 감사원등 유관기관으로 이첩한다는 구상이다. 또 의전수석비서관 직제의 존속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됐으나 폐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이같은 관측은 이날 발표에서 김석우외무부아주국장을 의전비서관으로 임명한 사실로도 뒷받침된다.의전관계도 총무수석이 관장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날 인선내용을 발표한 김차기대통령의 최창윤비서실장은 『앞으로 의전수석을 별도로 임명할 지 의전비서관체제로 가게될 지에 대해서는 추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의 정책보좌관직제도 없애고 정책수석비서관제를 신설했다. 나머지 정무·행정·경제·외교안보·민정·공보·총무비서실은 종전과 다름없다. 수석비서관의 지위가 모두 차관급으로 하향 평준화된 점도 특징이다.또 경호실장의 지위도 차관급으로 격하됐다. 기존의 청와대는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장관급이며 수석비서관 중에서도 장관급에 준하는 직책을 역임했으면 그대로 장관급으로 예우해 주었다.이에따라 현재 수석비서관 가운데 김중권정무·이진설경제·김종휘외교안보·서동권정치특보는 장관급이다. 김차기대통령은 그러나 앞으로 몇명의 특보와 보좌관제를 신설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차기청와대 비서실의 규모는 종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신설될 특보와 보좌관은 과학기술특보,중소기업특보,농업보좌관,복지사회보좌관 등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또 국정개혁차원에서신설 여부를 검토중인 대통령직속의 상당수 위원회가 청와대비서실에 예속될 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날 발표된 차기청와대 직제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신설된 정책수석제이다.전병민수석이 김차기대통령의 비밀자문팀을 이끌며 집권개혁 실천과제를 연구해온 점에서도 짐작되듯이 앞으로 새 정부의 개혁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조정·감독하는 실질적인 산파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국정홍보에만 치중한 기존의 정책보좌관제에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이디어 뱅크로서 역할과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평가다. 김차기대통령은 강력한 비서실을 통해 국정개혁을 주도하겠다고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특히 비서실장과 국정전반에 대해 수시로 상의하며 정책에 반영해 나가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측근인사들은 전했다.이에따라 비서실장의 사무실도 비서실이 있는 신관건물에서 대통령이 집무하는 본관건물로 옮긴다는 것이다.
  • 독일 외교 「유럽통합」에 주력/「겐셔」 이후의 대외정책 방향

    ◎“동구 대변자역 자임” 러공등과 긴밀 협조/「세계평화」 명복,국제분쟁에도 적극 개입 겐셔독일외무장관이 18일 퇴임했다.그의 퇴임은 전후 서구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구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소멸된 만큼 유럽동쪽에 적대세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독일은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했으며 동서대결의 와중에서 통일의 산파역할을 한 겐셔이후 독일외교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겐셔장관은 이날 퇴임하면서 통일독일이 추구해야할 10대 외교원칙을 밝히고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역할증대는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불가피한 추세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역할과 책임이 커졌다고는 하나 독일이 기존의 유럽공동체(EC)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중심의 외교정책을 계속 유지하며 동구를 유럽안보협력협의회(CSCE)에 묶어둠으로써 유럽집단안보체제를 강화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특히 독일은 동구의 대변자로 러시아·폴란드 등과 긴밀한 협력을 할 것이나 그 활동은 어디까지나 CSCE를 통해 서구국과 행동을 같이할 것임을 밝혔다. 또 독일은 NATO와 유엔의 활동범위에서 해외파병도 불가피하다고 말해 독일이 범대서양주의·국제경찰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시사했다. 겐셔장관이 밝힌 10대 외교노선은 다음과 같다. ▲독일은 마스트리히트EC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협약을 조속히 비준,유럽통합을 심화시킨다 ▲유럽안보와 독일방위는 서구연합(WEU)을 통해 보장한다 ▲미국·캐나다가 포함된 NATO의 기능을 계속 강화한다 ▲독일은 동구및 독립국연합과의 정치·안보협력관계를 유지한다▲독일은 밴쿠버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유라시아 국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CSCE를 통해 분쟁을 조정하고 평화공존과 민주제도확립에 노력한다 ▲전체 유럽의 발전을 위해 미국·프랑스·폴란드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비축소에 힘쓰며 화학무기등 군사장비의 수출을 금지한다 ▲유엔회원국으로 평화활동의 의무를 다한다 ▲남북문제·지구환경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한다. 이같은 기본방침은 독일이 평화로운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지난 40년간 서독이라는 이상적인 자유민주국가의 토대를 닦아왔기 때문이며 독일이 서구국가와의 결속에 충실했던 결과라는 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의 관심사는 서구국들과의 동맹과 신뢰를 주축으로 하는 내적통일이었으나 앞으로는 유럽의 안정과 국제평화유지가 목표이다. 독일은 유고사태에서 보아왔듯 이제 유럽의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전체 유럽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민주화이후 동구국들의 안정에 신경을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동구국들 분쟁에 적극 개입할 자세이나 영국·프랑스등은 독일의 영향력증대를 우려해 행동의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유고연방에서 탈퇴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공화국을 제일 먼저 승인한 독일은 동구문제에 확고한 원칙을 세우고 있다.독일의 운명은 유럽과 함께하며 지역분쟁에 조정자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시장경제도입에 가장 큰 협력자로 경제적 지원을 했으며 통일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구국들을 원조하고 있는 것은 동구의 안정이 유럽의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때문이다. 겐셔이후 독일은 동구와 서구와의 가교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며 통일목표라는 짐을 벗은만큼 유럽과 국제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조짐은 신임 킨켈외무장관과 뤼헤국방장관이 독일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NATO지역을 벗어난 전투병력의 파병도 고려할 때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겐셔장관도 퇴임사에서 『독일은 금세기에 민족주의로 인해 두번의 홍역을 치른만큼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민족주의』라며 『통일후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책임이 커졌다고는 하나 유엔의 테두리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겐셔장관은 퇴임후 베를린 자유대에서 정치학교수로 강단에 선다.
  • “미래의 황금시장”/거물화상들 내한러시

    ◎에인슬리·템플롱등 10여명 줄이어/명분은 전시회개최… 뒷전선 고객 유치 국제미술시장의 거물급 화상들이 한국미술시장의 본격진출을 위해 줄지어 내한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미술품수입개방 2년째로 접어든 국내미술계에 예년에 없던 변화로써 이들의 공식·비공식방문건만해도 10명을 웃돈다. 경매회사 소더비의 마이클 에인슬리회장을 비롯,달리의 지적소유권관리회사 데마르트 프로아르테사의 로베르 데샨회장,파리의 대표적 화랑인 템플롱화랑대표 다니엘 템플롱씨,벨기에의 세계적 화랑인 브라쇼화랑대표 이시 브라쇼3세,영국현대미술관중 정상급인 테이트갤러리의 루이스 빅스관장,프랑스의 모네작품을 가장 많이 수장하고있는 마르몽탕박물관의 아르돈 도트리브관장등이 올해초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인물들이며,이달중에 크리스티경매회사의 아시아미술 전문위원 로드 캐링턴씨가 크리스티회장을 대신하여 한국시장을 공식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내한,국내화랑가와 몇몇작가의 작업실등을 찾아 한국미술계의 판도를가늠해본 화상들이 4∼5명은 족히 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화상들의 공식적인 내한목적은 대부분 「한국미술의 국제미술시장 소개」라든가 「평소 접할수 없는 세계거장들의 한국전개최」를 위한 것등으로 명분은 매우 그럴듯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해외미술품수용면에서 무방비상태가 된 한국시장을 어떤 방식으로 공략할것인가에 대한 시장조사차 방문했다는게 이들 화상들의 공통된 1차목적이다. 최근 내한한 소더비의 에인슬리회장이나 곧 방문할 예정인 크리스티 전문위원의 방문목적이 결국은 한국미술시장이 장기적으로 볼때 괜찮은 미술시장이라는 평가아래 내려진 것이다. 달리의 복제품전시로 떠들썩했던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로베르 데샨씨 역시 「달리의 진품여부를 밝힌다」는게 외형상 드러난 방문목적이었으나,그 이면에는 한국미술시장의 미성숙도를 현장점검한다는 의도가 숨겨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또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하고 있는 「이탈리아 현대미술 트랜스아방가르드전」의 산파역할을 해낸 템플롱화랑의 다니엘 템플롱씨나 오는 10월 벨기에출신의 초현실주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전 개최를 위해 최근 내한했던 이시 브라쇼씨 역시 거장들의 전시회유치에 큰 몫을 해내면서 뒷전으로는 한국미술시장의 규모나 굵직한 고객을 수소문한다는 목적이 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의 유명미술잡지 3월호가 특집기사에서 『비약적 경제성장에 힘입어 최근 한국의 미술시장은 화랑이 속출하고 작품값이 급등하는등 호황장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유럽과 일본시장이 쇠퇴하면서 외국의 많은 미술품딜러들이 한국미술시장을 찾고있다』고 밝혀 이들 거상들의 줄이은 방문에 대한 그같은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미술품수입개방 원년이었던 지난해만해도 국내화상들이 외국미술품을 들여와 별문제가 없었으나 올해부터는 이처럼 국제화상들이 직접 손을 뻗치고 있어 앞으로 국내화상들은 저들의 대리인역할에 머물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낳고있다. 국제화랑대표 이현숙씨는 『어차피 우리미술이 국제화로 진일보하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는건 당연하지만 외국의 「거물급」은 물론이려니와 외국것이라면 정밀한 조사나 분석없이 환영하고 칙사대접하는 우리의 태도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 “정치복원 위해 최대 노력”/김윤환 원내총무(인터뷰)

    『앞으로 미력이나마 정치복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조속히 국회가 정상화 되도록 하겠습니다』 13대 총선 직후 4당 구조하에서 구 민정당 원내총무를 지내며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을 절묘하게 요리,협상과 조정의 귀재라고 불렸던 김윤환 신임 민자당 총무가 1년1개월여 만에 다시 여권의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김 신임 총무는 『오늘날 전반적으로 팽배한 정치불신이 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의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정치불신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는 정치력 부족 해소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총무에 기용된 배경을 어찌 보는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 등 민자당 수뇌부가 현 시국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단식 등으로 심화된 경색정국의 해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대야협상 방향은. 『여야간 입장을 정리할 단계에 와 있다고 본다. 민자당도 빠른 시일내에 소속의원들의 의견을 수렴,당 입장을 정리해 대야협상을 추진하겠다』 ­내각제ㆍ지자제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무엇인가. 『내각제는 당에서 현재 논의치 않는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지자제문제가 여야간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소속의원들 견해의 최대공약수를 집약해 당 입장을 확정짓겠다』 ­여야대화는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15일 의총에서 총무인준을 받게 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 등 야당 총재도 방문하고 김영배 평민당 총무와도 본격 대화를 추진하겠다. 김 평민 총무와는 내주 중반부터 공식접촉을 갖고 경색정국 타개방안을 논의키 위한 교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일까지 정기국회가 휴회하는데 그 이후 국회운영 전략은. 『가능한 한 단독국회는 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정신이 양당정치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야당의원 등원 후 예산심의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다. 그러나 법정기일 내에 예산통과가 안될 정도로 경색정국이 지속된다면 국가지속이란 차원에서 여당 단독의 예산심의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야당도 생각하고 있고 국민들도 이해해줄 것으로 믿는다』 ­당 정책위와 국회 상임위간에 정책입안 등을 둘러싸고 알력이 빚어지고 있는데. 『정치는 원내중심이란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생각이다』 5공 들어 11대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됐으나 12대 때는 공천탈락의 쓴맛을 보기도 했고 이어 문공부차관ㆍ대통령정무수석ㆍ비서실장 등 승진가도를 달리며 5공과 6공을 잇는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노태우 대통령과는 경북고 동기로서 측근중의 측근이며 모나지 않은 성격으로 최근 당내 TK(대구ㆍ경북)세의 구심점임을 자처.
  • 한반도에 감도는 「독일증후군」/서병철 외교안보연 교수(세평)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이르는 가장 바람직한 처방은 독일식 접근방법인데 그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 이는 우리에게 신선한 희망을 갖게한다. 독일식 방법이라 하는 것은 분단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사용을 배제하고 상호간 위협대상이 아니라는 신뢰를 구축한 속에서 접근을 통하여 실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며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개최하고 유엔에서 옆자리에 앉아 국제문제에 의견을 일치시키는 가운데 국경선을 개방한 후 민족자결에 의하여 통일에 이르는 합리적 방법이 독일식이다. ○독일식 접근 바람직 지금까지 동서독에서와는 달리 남북한 관계개선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후기 스탈린주의적 경직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하여금 고집을 꺾고 타협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제적 추세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계기가 지난 6월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회담을 통하여 마련되었다. 소련이 회담에서 경제문제에 치중하는 인상을 주려 했어도 국교수립이 안된 한국과의 정상회담 개최에 나선 것은 이미 양국간 관계에 급변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한소 정상이 불과 1시간 동안 만났지만 양국간의 수교,서울과 모스크바 상호방문,한반도의 평화정착 공동노력,남북대화를 통한 교류 증진,그리고 경제협력 등 당장 필요한 모든 사항에 합의함으로써 근본적인 교류기틀이 마련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긴장과 남북한간 대립을 조성한 배후의 근원인 소련이 결자해지의 원칙에 따라 냉전시의 산물을 정리하고 신사고를 한반도에 적용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였다. 북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정책이 체제유지에 장애물이라는 관점에서 외면해 왔으며 현상 유지에 도움이 안되는 외풍을 원천봉쇄하려 함으로써 소련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하는 충격요법을 활용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소련은 대세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는 과거의 브레즈네프 독트린과는다른 방법으로 벌을 받는다는예를 동유럽에서 보여온 바 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사회주의를 망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분수에 넘치는 저항을 하다가 차우셰스쿠가 쓰러졌다. 동독에서도 「자주성」을 내세우는 오만을 보인 호네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하였다. ○소,북한에 충격요법 고르바초프는 한걸음 더 나가 분단국을 통일시키는 산파역할까지 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통독을 가로막는 빚장을 잠갔던 소련이 민족자결원칙에 따른 통일에 청신호를 보임으로써 가장 큰 장애물이 제거되었고 이에대한 반대급부로 「한지붕 밑의 유럽」 계획을 성사시키는 결심을 얻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질서를 재정립하는 데 마지막 저해요소는 북한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이미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과 동맹국들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조정되었음을 분명히 하였고 다음해 12월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각국이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할 수 있음을 허용한 바 있다. 이는 소련이 자국의 행동 반경과 정책방향의 선택폭을 스스로 확대한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지나치게 소련에 기대하지 못하게 쐐기를 박은 것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소련과 동맹국들간의 관계는 50년대 중반기 상황을 방불케 한다. 당시 탈스탈린 정책이 소련에서 시작되어 다른 공산국에 전파되었고 얼마 가지않아 위성국들이 오히려 소련을 앞질러 스탈린 망령에서 벗어났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공산체제 개혁과 해체가 바로 그 진원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변국들이 질적인 면에서 소련을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오직 북한만은 45년전과 흡사하게 소련의 권유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련이 탈스탈린운동 때와는 달리 「신사고」 실현을 중단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도 계속해서 소련의 희망을 묵살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소련은 북한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페레스트로이카 파급을 방해할 경우 전격적으로 한소 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것과 같이 가까운 시기안에 한국과의 일방적인 국교수립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소련은 동유럽 동맹국가중에서 가장 중요한 동독의 반발을 외면하고 1955년 10월 서독과 수교한 예가 있다. 이는 동독이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1974년 9월보다 19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서독의 경제적 잠재력이 협력대상으로서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마치 오늘날 소련이 시베리아 개발을 위한 한국의 자본과 기술,그리고 생활필수품 제공을 기대하는 것과도 비유된다. ○집안단속 강화할 듯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단기적으로는 체제유지를 목적으로 집안단속을 위한 경직성을 강화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이 최신군비를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역 60%,외채 80%를 소련이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때 계속해서 소련의 비위를 거스를 입장이 못된다. 소련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잠재적 저항세력인 군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는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소련이 원하는 대로 동독이 택했던 것과 같은 협력정책을 답습하는 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문제의 독일화를 위하여 서독이 추진했던 예를 참고삼아 「북방정책」으로 주변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한반도 정책」으로 북한을 회유하는 신축성 있는 정책을 구사함이 바람직하다.
  • 「15인 추진위」 어떻게 운영되나/정강정책 제정ㆍ당직배분등 맡아

    ◎전원 합의제… 「작전 참모회의」 흡사 민정ㆍ민주ㆍ공화 등 3당을 합당,민주자유당(가칭)을 창당하는 실무산파역할을 할 15인 통합추진위가 구성돼 24일 첫 회의를 갖는다. 명칭은 실무추진위이지만 ▲당헌ㆍ당규 ▲정강정책ㆍ강령제정 ▲창당선언문 작성 ▲발기인 선정 등 창당실무 절차뿐 아니라 ▲당지도체제 설정 ▲당직및 국회직배분 ▲지구당 조직책 선정 ▲외부인사 영입과 정부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방향까지 폭넓게 협의될 것으로 예상돼 추진위활동에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5인 통합추진위는 일단 전원 합의제로 운영되는 방식으로 3당간 양해가 이뤄졌으며 추진위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주1회 정례화하기로 한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총재의 3자회동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따라서 3당 총재회동을 「사령관회의」,통합추진위를 「작전참모회의」에 비유할 수도 있겠으나 추진위에는 통합선언이 나오기까지 3당총재의 「분신」역할을 했던 박철언정무1장관ㆍ황병태 민주총재특보ㆍ김용환 공화정책위의장 등이 모두 포진하고 있어 결코 단순한 참모회의로 볼수 없다는 지적이다. 즉 15인 추진위에서 당지도체제등 미묘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어느정도 합의점을 도출하려 노력할 것이며 그후 3당 총재회동에서 이를 추인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과정에서 박 정무ㆍ황 특보ㆍ김 의장 3인의 막후 접촉도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며 인화가 뛰어난 박준병ㆍ김동영총장의 역할도 기대된다. 15인 추진위에는 정강정책ㆍ강령제정 등 창당절차를 중심으로 2∼3개의 소위가 산하에 구성될 것으로 보여지며 민정당측은 위원장을 둘 경우 의석이 가장 많은 자당의 선임자인 박준병총장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5인 추진위원들은 대개 조직및 총괄은 사무총장이,정강정책ㆍ강령은 정책위의장이,당헌ㆍ당규제정및 이념정립 등은 김중권ㆍ김덕룡ㆍ신오철의원이 추진하는 등으로 역할 분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15인 합당추진위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 임시사무실을 설치할 예정이며 추진위와 별도로 3당은 창당전문가와 율사들로 협상대표지원반을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이목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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