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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단 15분 만에… 걸작의 아우라에 빠지다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단 15분 만에… 걸작의 아우라에 빠지다

    서양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최후의 만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다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이 작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다빈치 ‘최후의 만찬’ 앞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 매우 낯익은 이미지이지만 실제 이 작품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수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운이 좋아서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더라도 작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찾을 만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500년 전 천재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걸작이 주는 감동은 평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나.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밀라노 공국의 로도비코 스포르차(1451~1508)의 요청으로 1494년부터 1498년까지 그린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부속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도미니크 수도회에 속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 옆으로 ‘체나콜로’라고 쓰여진 곳이 입구다. 체나콜로는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한 식당을 가리킨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수도원 식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은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 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운이 무척 좋았던지 당일 입장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성당을 찬찬히 둘러본 뒤 티켓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전시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은 벽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앉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왔다. 걸작의 아우라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작은 프린트 물에 익숙해서인지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로 그린 작품(세로 460㎝, 가로 910㎝)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커서 놀랐다.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의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의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과 생생한 서사, 우아한 선과 동작의 표현 등 다빈치의 작품은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다빈치는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혔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제자들이 일으킨 마음의 동요였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었다. 다빈치는 열두 제자 무리에 유다를 포함시켜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한 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로 표현했다.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 채 왼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다. 곧 배신할 유다를 비롯해 의심이 많은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예수가 체포될 때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테이블 위의 물건들도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복음서, 예루살렘의 12문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평면성이 강조되지만 다 빈치는 수도원 식당이 확장되게 보이도록 중앙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사용했다. 화면 안쪽으로 후퇴하는 천장과 측벽의 선들이 모두 중앙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집중하면서 강조했다. 천장의 바둑판 무늬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축소돼 화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손상 심해 “80%는 복원 화가들이 그린 것” 주장도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총 4년의 세월을 꼬박 바쳤다. 밀라노의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았고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손의 표현을 연구했다. 그는 작품의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졌지만 식당의 습기 때문에 안료가 쉽게 벗겨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완성된 당시부터 이 주제에서는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은 세월과 숱한 전쟁을 견디면서 심하게 손상됐다. 마지막 복원은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이뤄졌다. 워낙 손상이 심해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것을 화가가 완성 직후에 베껴 그린 그림이 온전히 남아 있어 이를 기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복원 화가들이 80%, 다빈치가 20%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르네상스 회화 걸작,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을 만나다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르네상스 회화 걸작,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을 만나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 르네상스 회화, 아니 서양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1452~1519)의 ‘최후의 만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이 작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은 500년 전 탄생 순간부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수많은 모사의 대상이 됐다. 20세기 들어서도 앤디워홀을 비롯해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해 쓰기도 했다.  책이나 프린트물 등을 통해 숱하게 보아 와서 마치 실제를 본 듯 착각할 정도로 낯익은 이미지이지만 실상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보기가 간단치 않다. 수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만약에 운이 좋아서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더라도 작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찾을만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500년 전 천재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걸작이 주는 감동은 평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의 부속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도미니코회 수도회에 속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 옆으로 ‘체나콜로(Cenacolo)’라고 쓰여진 곳이 입구다. 체나콜로는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한 식당을 가리킨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수도원 식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은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밀라노 공국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요청으로 1494년부터 1498년까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의 색을 되찾아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운이 무척 좋아던지 당일 입장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성당을 찬찬히 둘러본 뒤 티켓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전시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이 벽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앉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왔다. 걸작의 아우라에 심장이 쿵 멎는 것 같았다.  작은 프린트 물에 익숙해서인지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로 그린 작품(세로 460cm, 가로 910㎝)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큰 것이 인상적이었다.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의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의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과 생생한 서사, 우아한 선과 동작의 표현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복원 작업 이전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지만 고미술품 복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는 대단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장 21~23절)  다 빈치는 바로 이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1419~1457)는 다빈치보다 50년 전에 피렌체의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 식당에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남겼다. 원근법 효과나 인물들의 극적인 표적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많은 프레스코화들이 그랬듯이 회벽으로 덮였다가 1860년 수도회가 해산된 뒤 흰색 도료를 제거하면서 재발견됐다. 카스타뇨의 그림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식탁 한편에 일렬로 앉아있고 유다 한 사람만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는 예수가 말한 배신자가 유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당시 화가들이 채택하던 전형적인 구도였다. 피렌체에서 화가활동을 시작한 다빈치도 분명 이 프레스코화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타뇨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했다.  다 빈치는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혔다. 그가 표현하고 했던 것은 제자들이 일으킨 마음의 동요였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었다. 다 빈치는 열두제자 무리에 유다를 포함시켜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킨 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로 표현했다.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 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채 오른 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다. 곧 배신할 유다를 비롯해 의심이 많은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예수가 체포될 때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테이블 위의 물건들도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 복음서, 예루살렘의 12문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평면성이 강조되지만 다빈치는 수도원 식당이 확장되게 보이도록 중앙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안쪽으로 후퇴하는 천장과 측벽의 선들이 모두 중앙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집중하면서 강조했다. 천장의 바둑판 무늬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축소되어 화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총 4년의 세월을 꼬박 바쳤다. 밀라노의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았고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손의 표현을 연구했다. 그는 작품의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 졌지만 식당의 습기 때문에 안료가 쉽게 벗져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완성된 당시부터 이 주제에서는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은 세월과 숱한 전쟁을 견디면서 심하게 손상됐다. 마지막 복원은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이뤄졌다. 워낙 손상이 심해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것을 화가가 완성 직후에 베껴 그린 그림이 온전히 남아있어 이를 기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복원화가들이 80%,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근처 빈치에서 테어나 피렌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왜 그는 밀라노에 이 걸작을 남기게 됐을까? 밀라노는 14세기 말 비스콘티 공작 하에서 막대한 번영을 누려 15세기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됐다.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필리포 마리아의 후계권을 둘러싼 전투에서 용병 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01~1466)가 승리해 권좌에 올랐다. 그의 대를 이은 로도비코 스포르차(1451~1508)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실력 있는 장인과 예술가들을 고용해 도시를 건설하고 궁정을 장식하도록 했다. 인체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적 구조와 근육조직을 분석하고 인체 기관의 이상적인 비례에 관해 연구했으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고, 건축을 설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데도 뛰어났던 만능 천재 다빈치는 1492년 스포르차에게 편지를 보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스포르차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치고 싶다며 건물을 설계할 수 있으며 조각가이자 화가로 훈련받았고 공병학에도 재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밀라노로 불러 아버지인 프란체스코의 청동 기마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기마상을 위해 주문했던 청동이 대포 만드는 데 쓰이게 되는 바람에 레오나르도는 결국 청동 주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정 미술가로 궁정에서 열리는 가면극의 의상과 무대 장치를 설계하고 조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로도비코의 신임을 얻었다.  로도비코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을 확장해 스포르차 가문의 영묘를 만들면서 레오나르도에게 수도원 식당에 전통적으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였던 ‘최후의 만찬’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로도비코의 통치는 ‘최후의 만찬’이 완성된 이듬 해(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침공으로 막을 내리고 궁정은 해산됐다. 화려한 삶을 살았고 너무나 많은 호기심과 재능을 지녔던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어땠을까. 피렌체로 돌아가 있던 그에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중부 프랑스의 루아르지역에 아름다운 성과 많은 연금을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로 가 3년간 클로뤼세 성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1519년 생을 마감했다. 왕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지니고 다니던 그림 ‘모나리자’를 왕에게 기증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곳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곳

    르네상스 회화, 아니 서양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1452~1519)의 ‘최후의 만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이 작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은 500년 전 탄생 순간부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수많은 모사의 대상이 됐다. 20세기 들어서도 앤디워홀을 비롯해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해 쓰기도 했다.  책이나 프린트물 등을 통해 숱하게 보아 와서 마치 실제를 본 듯 착각할 정도로 낯익은 이미지이지만 실상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보기가 간단치 않다. 수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만약에 운이 좋아서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더라도 작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찾을만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500년 전 천재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걸작이 주는 감동은 평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의 부속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도미니코회 수도회에 속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 옆으로 ‘체나콜로(Cenacolo)’라고 쓰여진 곳이 입구다. 체나콜로는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한 식당을 가리킨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수도원 식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은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밀라노 공국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요청으로 1494년부터 1498년까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의 색을 되찾아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운이 무척 좋아던지 당일 입장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성당을 찬찬히 둘러본 뒤 티켓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전시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이 벽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앉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왔다. 걸작의 아우라에 심장이 쿵 멎는 것 같았다.  작은 프린트 물에 익숙해서인지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로 그린 작품(세로 460cm, 가로 910㎝)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큰 것이 인상적이었다.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의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의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과 생생한 서사, 우아한 선과 동작의 표현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복원 작업 이전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지만 고미술품 복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는 대단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장 21~23절) 다 빈치는 바로 이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1419~1457)는 다빈치보다 50년 전에 피렌체의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 식당에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남겼다. 원근법 효과나 인물들의 극적인 표적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많은 프레스코화들이 그랬듯이 회벽으로 덮였다가 1860년 수도회가 해산된 뒤 흰색 도료를 제거하면서 재발견됐다. 카스타뇨의 그림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식탁 한편에 일렬로 앉아있고 유다 한 사람만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는 예수가 말한 배신자가 유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당시 화가들이 채택하던 전형적인 구도였다. 피렌체에서 화가활동을 시작한 다빈치도 분명 이 프레스코화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타뇨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했다.    다 빈치는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혔다. 그가 표현하고 했던 것은 제자들이 일으킨 마음의 동요였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었다. 다 빈치는 열두제자 무리에 유다를 포함시켜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킨 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로 표현했다.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 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채 오른 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다. 곧 배신할 유다를 비롯해 의심이 많은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예수가 체포될 때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테이블 위의 물건들도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 복음서, 예루살렘의 12문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평면성이 강조되지만 다빈치는 수도원 식당이 확장되게 보이도록 중앙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안쪽으로 후퇴하는 천장과 측벽의 선들이 모두 중앙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집중하면서 강조했다. 천장의 바둑판 무늬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축소되어 화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총 4년의 세월을 꼬박 바쳤다. 밀라노의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았고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손의 표현을 연구했다. 그는 작품의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 졌지만 식당의 습기 때문에 안료가 쉽게 벗져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완성된 당시부터 이 주제에서는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은 세월과 숱한 전쟁을 견디면서 심하게 손상됐다. 마지막 복원은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이뤄졌다. 워낙 손상이 심해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것을 화가가 완성 직후에 베껴 그린 그림이 온전히 남아있어 이를 기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복원화가들이 80%,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근처 빈치에서 테어나 피렌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왜 그는 밀라노에 이 걸작을 남기게 됐을까? 밀라노는 14세기 말 비스콘티 공작 하에서 막대한 번영을 누려 15세기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됐다.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필리포 마리아의 후계권을 둘러싼 전투에서 용병 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01~1466)가 승리해 권좌에 올랐다. 그의 대를 이은 로도비코 스포르차(1451~1508)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실력 있는 장인과 예술가들을 고용해 도시를 건설하고 궁정을 장식하도록 했다. 인체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적 구조와 근육조직을 분석하고 인체 기관의 이상적인 비례에 관해 연구했으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고, 건축을 설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데도 뛰어났던 만능 천재 다빈치는 1492년 스포르차에게 편지를 보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스포르차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치고 싶다며 건물을 설계할 수 있으며 조각가이자 화가로 훈련받았고 공병학에도 재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밀라노로 불러 아버지인 프란체스코의 청동 기마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기마상을 위해 주문했던 청동이 대포 만드는 데 쓰이게 되는 바람에 레오나르도는 결국 청동 주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정 미술가로 궁정에서 열리는 가면극의 의상과 무대 장치를 설계하고 조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로도비코의 신임을 얻었다.  로도비코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을 확장해 스포르차 가문의 영묘를 만들면서 레오나르도에게 수도원 식당에 전통적으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였던 ‘최후의 만찬’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로도비코의 통치는 ‘최후의 만찬’이 완성된 이듬 해(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침공으로 막을 내리고 궁정은 해산됐다. 화려한 삶을 살았고 너무나 많은 호기심과 재능을 지녔던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어땠을까. 피렌체로 돌아가 있던 그에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중부 프랑스의 루아르지역에 아름다운 성과 많은 연금을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로 가 3년간 클로뤼세 성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1519년 생을 마감했다. 왕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지니고 다니던 그림 ‘모나리자’를 왕에게 기증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불의 고리’ 필리핀서도 규모 5.0 지진 발생…다른 지역은?

    ‘불의 고리’ 필리핀서도 규모 5.0 지진 발생…다른 지역은?

    일본과 에콰도르에 이어 ‘불의 고리’에 속하는 필리핀에서도 지진이 발생해 국제사회의 지진 공포가 더해지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오전 0시 17분쯤 필리핀 산타마리아 동북쪽 14㎞ 지점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필리핀에서는 지난 14일에도 규모 5.9의 지진이 일어난 바 있다. 필리핀 역시 ‘불의 고리’에 속하는 곳으로 이번 지진 진원의 깊이는 96.32㎞였다. 다만 아직 자세한 피해 상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불의 고리’는 ‘환태평양조산대’로도 불리는 곳으로 지각을 덮고 있는 여러 판들 중 태평양판의 경계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각판의 가장자리에서 지진과 화산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 ‘원’ 모양으로 분포돼 있다고 해서 ‘불의 고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에는 강진이 발생한 일본과 에콰도르를 포함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러시아 동부 해안 지역, 아메리카 대륙 서부, 멕시코 등의 지역이 포함돼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풍 피하려고?…초저공비행하는 항공기 포착

    강풍 피하려고?…초저공비행하는 항공기 포착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갈 것처럼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의 아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화제다. 동영상은 SNS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문제의 동영상은 중미 코스타리카의 산호세 주변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촬영됐다. 들판을 가로질러 시원하게 뚫린 도로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자동차들이 길게 줄지어 정지해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한 듯 사람들은 자동차 밖에 나와 있다.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 비슷한 외침이 울린다. 화면에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는 사람 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거대한 항공기가 보인다. 항공기는 마치 임시착륙을 하려는 듯 낮게 비행하고 있다. 비행 높이는 지상에서 불과 몇 미터 되지 않아 보인다. 머리 위로 항공기가 스치듯 지나가자 사람들 사이에선 다시 안도의 탄성(?)이 울린다. 알고 보니 아찔한 저공비행이 포착된 곳은 후안 산타마리아 국제공항 주변이었다. 항공기는 스페인 이베리아 항공사의 에어버스 340기였다. 인터넷에 오른 동영상이 SNS를 타고 빠르게 퍼지자 위험한 비행을 한 이베리아 항공에는 비난이 쇄도했다. 항공사는 이에 대해 "착륙을 해야하는 후안 산타마리아 공항에 강풍이 불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비행기가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사고의 위험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엔 "작은 실수라도 있었다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 "아래에 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이런 해명을 할까"라는 등 항공사에 대한 비난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동영상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여고생 난투극 진압 현장 보니…경찰 과잉 진압 논란

    여고생 난투극 진압 현장 보니…경찰 과잉 진압 논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난투극이 벌어져 이에 가담한 학생 6명이 체포됐다고 19일(이하 현지시간) 산타마리아 타임스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 산타마리아에 위치한 어니스트 리게티 고등학교에서는 점심시간 도중 여학생 두 명이 말싸움을 벌였고 여기에 남학생들까지 합세하면서 말다툼은 음식물을 던지며 싸우는 난투극으로까지 번졌다. 한편 난투극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공개된 영상에는 싸움을 벌이는 여학생들을 제압하려던 경찰이 공격을 받자 여학생의 머리를 때려 쓰러뜨리는 모습이 담겨있다. 현장에는 헬리콥터도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과잉진압 아니냐는 목소리가 일자 경찰 측 대변인은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해당 경찰관의 조치는 위험한 상황에서의 명백한 정당방위”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경찰은 난투극에 가담한 여학생 2명과 남학생 4명 총 6명을 폭행 혐의로 체포했으며 싸움에 연루된 학생이 더 있는지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사진·영상=SantaMariaTimes/유튜브 김형우 인턴기자 hwkim@seoul.co.kr
  •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국내 미대의 서양화과에선 수채화나 유화, 아크릴화 등을 가르칠 뿐 프레스코화에 대해선 관심이 없죠. 같은 서양화인데 그리는 과정이 까다로우니 좀처럼 전문가도 없고, 그리려 들지도 않아요.” 오원배(61) 동국대 미대 교수는 작가라기보다 화학자에 가깝다. 전시장에서 쭉쭉 써내려간 화학반응식은 놀라울 따름이다. 생석회에 물을 넣어 수산화칼슘을 만들고, 다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탄산칼륨을 끌어낸다는 복잡한 화학식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했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를 알려면 화학작용을 이해해야 한다”며 회반죽을 벽에 칠하고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에 갠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고된 노동의 과정을 끊임없이 묘사했다. “프레스코 작업은 긴박하고 엄격한 노역입니다. 반죽이 마르는 20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까다로운 작업 탓에 허리 디스크를 아예 달고 삽니다.” 흔히 ‘서양의 벽화’로 알려진 프레스코화는 16세기 초 미켈란젤로가 그린 로마 산타마리아 미네르바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가 대표적이다. 로마인이 기원전부터 그렸는데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17세기 유화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세기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프레스코화에 ‘꽂힌’ 것일까. 작가는 “30여년 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졸업을 위해 모든 유형의 작품을 다 공부했다”며 “그때 처음 접한 프레스코화에 흠뻑 빠져 이후 5년 주기로 파리에 날아가 1년씩 프레스코화를 공부하고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정통 프레스코화’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2007년 처음으로 프레스코화 4점을 선보인 뒤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프레스코란 이런 것임을 국내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인 알타미라 벽화도 석회암 동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죠.” 2012년 인천 강화면 전등사 무설전에 프레스코 기법의 후불(後佛) 천장벽화를 그린 이도 작가다. 국내 법당에 그린 1호 프레스코화다. “불교 탱화에 시대 가치가 담겨온 만큼 현대의 불사들도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다음달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28점의 프레스코화를 선보이는 개인전 ‘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을 이어간다. 모든 작품을 프레스코화로 채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들은 예전 묵직한 분위기와 달리 파스텔톤으로 다소 밝게 변했다. 4년 전 늦장가를 든 작가의 눈에 세상이 밝게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파리의 지붕과 굴뚝이 가득 화폭을 채우는데, 모두 파리 유학시절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는 철저한 계산이 깔린 과학”이라며 “이번 전시가 감각적 작업에만 의존하는 국내 미술계에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겁 상실? 거대 아나콘다 ‘맨손’ 잡으려다 동물학대 벌금

    겁 상실? 거대 아나콘다 ‘맨손’ 잡으려다 동물학대 벌금

    엄청나게 큰 아나콘다를 겁도 없이 사로잡으려 한 관광객들이 동물학대 등의 혐의로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서부 마투그로수두술 주의 산타마리아 강에서 보트를 타던 3명 브라질 남녀가 초대형 아나콘다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유튜브에 오른 영상을 보면 아나콘다의 길이는 최소한 5m 이상 되어 보인다. 무언가를 잡아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몸통 중간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행여 공격이라도 당할까 무조건 피할 일이지만 보트에 타고 있던 남자 2명은 아나콘다를 사로잡으려 한다. 노로 아나콘다를 찌르면서 자극하다가 아나콘다의 꼬리를 잡기도 한다. 워낙 힘이 좋은 아나콘다는 잠시 끌려가는 듯 했지만 지그재그 몸짓을 하며 결국 잡히진 않는다. 영상은 같은 보트에 타고 있던 여자가 촬영했다. 아나콘다를 잡으려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무서움을 감추지 못한다. 두 남자는 아나콘다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던 듯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하지만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 사람은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환경경찰은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규정 등을 어긴 혐의로 세 사람에게 벌금 1500헤알(약 65만원)을 부과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5m 아나콘다 ‘맨손’으로 잡으려는 관광객

    5m 아나콘다 ‘맨손’으로 잡으려는 관광객

    엄청나게 큰 아나콘다를 겁도 없이 사로잡으려 한 관광객들이 동물학대 등의 혐의로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서부 마투그로수두술 주의 산타마리아 강에서 보트를 타던 3명 브라질 남녀가 초대형 아나콘다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유튜브에 오른 영상을 보면 아나콘다의 길이는 최소한 5m 이상 되어 보인다. 무언가를 잡아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몸통 중간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행여 공격이라도 당할까 무조건 피할 일이지만 보트에 타고 있던 남자 2명은 아나콘다를 사로잡으려 한다. 노로 아나콘다를 찌르면서 자극하다가 아나콘다의 꼬리를 잡기도 한다. 워낙 힘이 좋은 아나콘다는 잠시 끌려가는 듯 했지만 지그재그 몸짓을 하며 결국 잡히진 않는다. 영상은 같은 보트에 타고 있던 여자가 촬영했다. 아나콘다를 잡으려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무서움을 감추지 못한다. 두 남자는 아나콘다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던 듯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하지만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 사람은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환경경찰은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규정 등을 어긴 혐의로 세 사람에게 벌금 1500헤알(약 65만원)을 부과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5m 아나콘다 잡다가 ‘동물학대’ 벌금받은 부부 [영상]

    5m 아나콘다 잡다가 ‘동물학대’ 벌금받은 부부 [영상]

    엄청나게 큰 아나콘다를 겁도 없이 사로잡으려 한 부부가 동물학대 등의 혐의로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서부 마투그로수두술 주의 산타마리아 강에서 보트를 타던 3명 브라질 남녀가 초대형 아나콘다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유튜브에 오른 영상을 보면 아나콘다의 길이는 최소한 5m 이상 되어 보인다. 무언가를 잡아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몸통 주간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행여 공격이라도 당할까 무조건 피할 일이지만 보트에 타고 있던 남자 2명은 아나콘다를 사로잡으려 한다. 노로 아나콘다를 찌르면서 자극하다가 아나콘다의 꼬리를 잡기도 한다. 워낙 힘이 좋은 아나콘다는 잠시 끌려가는 듯 했지만 지그재그 몸짓을 하며 결국 잡히진 않는다. 영상은 같은 보트에 타고 있던 여자가 촬영했다. 아나콘다를 잡으려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무서움을 감추지 못한다. 두 남자는 아나콘다를 놓친 게 못내 아쉬웠던 듯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하지만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 사람은 벌금만 물게 됐다. 브라질 환경경찰은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규정 등을 어긴 혐의로 세 사람에게 벌금 1500헤알(약 65만원)을 부과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비행기 타려던 청년, 가방에 개구리 100마리, 뱀 50마리 ‘우글우글’

    비행기 타려던 청년, 가방에 개구리 100마리, 뱀 50마리 ‘우글우글’

    파충류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려던 청년이 경찰에 붙잡혔다.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최근에 벌어진 사건이다. 수도 산호세의 외곽에 있는 후안산타마리아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려던 30대 독일청년이 경찰에 붙잡혔다. 혐의는 파충류 밀반출 미수. 청년은 평범한 여행객처럼 수화물을 부치고 파나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공항세관이 꿈틀거리는(?) 가방을 검사하면서 여행은 불발되었다. 스캐너로 수화물을 보던 세관은 가방 안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가득한 걸 보고 확인에 나섰다. 청년을 부른 뒤 가방을 열자 개구리 100마리, 뱀 50마리, 도마뱀 20마리 등 파충류가 가득했다. 청년은 파충류를 각각 플라스틱 용기에 넣은 뒤 가방에 담아 반출하려고 했다. 플라스틱 용기에는 파충류가 먹을 수 있도록 상추 등이 기내식(?)처럼 들어있었다. 현지 언론은 “야생동물을 불법으로 반출하려 한 혐의로 청년이 기소됐다.”며 최고 3년 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 통신원 voniss@naver.com
  • 멕시코서 길이 800m 거대 균열 발생

    멕시코서 길이 800m 거대 균열 발생

    멕시코에서 원인불명의 거대 균열이 발생해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지난 15일(현지시간) 멕시코 북서부 소로나주(州) 에르모시요 인근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길이 800m, 최대 깊이 8m에 달하는 대규모 균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무인항공기 드론(Drone)에 의해 촬영된 영상에는 도로를 가로질러 갈라진 거대한 균열의 모습이 담겨 있다. 길이 끊긴 도로 앞에 차를 멈춘 주민들이 거대한 균열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멕시코 경찰은 이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우회 통행시키고 있으며 거대한 균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 중이다. 조사관들은 “지난 10일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균열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거대한 균열은 북아메리카판과 태평양판이 만나는 변환단층인 산 안드레아스 단층과 연관돼 있다”고 예측했다. 멕시코에서는 지난 2009년에도 산타마리아 후아굴코 지역에 생긴 작은 싱크홀이 계속된 지진으로 인해 1.5km에 달하는 거대 균열로 진행된 바 있다. 사진·영상= Davisito de Zabedrosky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방한 앞둔 교황 병환? 과로?

    방한 앞둔 교황 병환? 과로?

    오는 8월 방한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분간 아침 미사와 주중에 있는 일반 미사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19일(현지시간) 역대 교황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로마거리 행진에도 불참했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 일정을 조절하며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오후 로마에서 열린 행진 행사에서 세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사전 의식에만 참석하고 실제 행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날 행진은 로마의 산타마리아 성당까지 약 1.5㎞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가는 것으로, 역대 교황들이 직접 참석해 온 관례적 행사다. 앞서 지난 18일 교황이 주중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하는 미사를 7월 한 달간 쉬고, 매일 아침 바티칸 내부 성당에서 하는 미사도 7~9월에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자 일각에서 ‘와병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바티칸 측은 “체력 관리를 하려는 것 뿐”이라며 와병설을 일축했다. 교황은 22일 남부 이탈리아 칼라브리안 마을을 방문해 재소자, 환자, 노약자 등을 잇따라 만나고 하루 동안 두 번의 메시지와 설교를 전하는 등 빡빡한 일정이 예정돼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세계 3대 폭포 화제…괜히 유명한게 아니네

    세계 3대 폭포 화제…괜히 유명한게 아니네

    ‘세계 3대 폭포‘ 사진이 온라인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다.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계 3대 폭포‘에 관한 게시물이 올라와 관심을 모았다. 이 게시물에는 세계 3대 폭포로 알려진 이과수,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폭포의 사진과 간략한 설명이 붙어있다.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의 이과수 강에 있으며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4배 정도 규모가 크다. 이과수 폭포는 200여 개의 폭포가 동시에 물을 쏟아내고 있으며 ’산타마리아 폭포‘라고도 불린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위치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오대호 중 온타리오호와 이리호를 잇는 나이아가라 강에 위치해 있다. 고트섬(미국령)을 경계로 캐나다 폭포(높이 48m)와 미국 폭포(높이 51m)로 나뉜다.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 남부 자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흐르는 강에 위치해 있다.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발견해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주인 찾아 묘지로, 성당으로…스페인 충견 화제

    주인 찾아 묘지로, 성당으로…스페인 충견 화제

    세상을 떠난 주인을 잊지 못하는 충견이 언론에 소개됐다. 스페인 산 다노스에 있는 산타마리아 공동묘지. 이 공동묘지에는 매일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12살 된 셰퍼드 ‘시시오’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묘지를 찾는 화제의 주인공이다. 시시오를 돌보던 주인 마리아 코레데라(57)는 2개월 전 사망해 이 묘지에 묻혔다. 고인은 평생 유기견을 데려다 돌보는 등 생전 개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장례식에 참석해 묵묵히 주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본 시시오는 그 뒤로 매일 묘지를 찾고 있다. 시시오는 매주 성당에도 나간다. 생전 주인이 다니던 성당이다. 신앙이 돈독했던 여주인은 평소 거르지 않고 성당에 다녔다. 성당에 갈 때면 언제나 시시오를 데리고 갔다. ’신앙의 추억’을 잊지 않은 시시오는 매주 성당에 나가 주인을 기다렸던 곳에 머물다 묘지로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현지 언론은 “세상을 떠난 주인을 잊지 못하는 시시오의 얘기가 도시 전체에 퍼져 화제가 되고 있다.”며 주인에 대한 동물의 애뜻한 사랑이 잔잔한 감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페이스북 자료사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뇌가 두피 밖으로?…희귀병 걸린 남성 충격

    뇌가 두피 밖으로?…희귀병 걸린 남성 충격

    마치 뇌가 밖으로 나온 것처럼 독특한 형상을 한 두피 사진이 세계 최고의 의학전문 학술지인 ‘뉴잉글랜드 의학저널’(NEJM)에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저널에 따르면 이 두피를 가진 환자는 21세 브라질 청년. 그의 두피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두피가 뇌의 형상으로 변하는 희귀 질환을 앓게 됐다고 한다. 산타마리아대학병원 연구진은 이 증상을 ‘뇌회상두피’(cutis verticis gyrata)로 진단했다. 뇌회상두피는 두피에 뇌 모양의 주름이 잡히는 질환으로, 6대 1의 비율로 여성보다는 사춘기 이후의 남성에게서 더 많이 발병한다. 특히 이 질환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성장 발달 과정의 이상이나 염증, 외상, 종양, 모반 증식성 질환 등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이 남성의 이름은 밝혀지진 않았으나 지적 장애인으로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고 있어 현재 유일한 치료 방법인 성형 수술은 받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의 성형 수술을 받더라도 이 증상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진=뉴잉글랜드 의학저널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스페인·그리스·佛, 예산 감축

    스페인 정부가 27일(현지시간)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400억 유로(약 57조 5000억원)를 절감하는 내용의 2013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그리스 연립정부도 앞으로 2년 간 115억 유로의 재정 감축안에 합의했다. 양국 정부가 긴축예산안을 내놓으면서 이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등의 시위도 이어질 전망이다. 28일에는 프랑스 정부가 369억 유로를 감축하겠다는 내년도 예산안을 내놨다. 스페인 정부는 이날 각료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과 그에 따른 경제 개혁안을 확정하고, 오는 29일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소라야 사엔스 데 산타마리아 부총리는 내년 예산안이 지출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절감액 가운데 58%는 예산 삭감으로, 나머지 42%는 세금 인상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 간호사 등 스페인 공공부문 근로자 수백명은 28일 수도 마드리드에서 3년 연속 임금 동결 조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 지방정부인 카탈루냐 의회는 27일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 시행 결의안을 승인했다. 카탈루나는 세금 부담이 크다며 재정 독립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스페인 중앙정부는 국민투표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그리스 연립정부는 대략적인 긴축안에 합의한 뒤 세부 수치를 조정하고 있다. 합의안에는 115억 유로 재정 긴축과 함께 조세 개혁, 징수율 제고를 통해 2년 간 국가 세입을 20억 유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다빈치 ‘최후의 만찬’ 본인 얼굴 그려넣었다?

    다빈치 ‘최후의 만찬’ 본인 얼굴 그려넣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작품인 ‘최후의 만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는 이론이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17일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한 미술사학자가 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12사도 중 ‘의심하는’ 도마와 ‘작은’ 야고보의 모델을 다빈치 자신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국제적인 베스트셀러 ‘브루넬레스키의 돔’의 저자이기도 한 로스 킹 박사는 다빈치가 1490년대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동안, 친구 가스피로 빈스콘티가 쓴 시 한편을 참조해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게 됐다고 밝혔다. 빈스콘티의 시에서 그 지은이는 익명의 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들에 재미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고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킹 박사는 1515년 다빈치가 붉은색 분필 만을 사용해 그린 유명한 자화상을 인용, 다빈치의 주먹코와 삼단 같은 머리, 그리고 긴 수염은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두 사도 도마와 야고보(소)의 얼굴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그림에 나타난 도마의 위로 향한 손가락은 동시대인들에게 다빈치만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것으로 여겨졌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 작가로 유명한 찰스 니콜 역시 다빈치가 그 명화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면 ‘의심하는’ 도마가 첫 번째 순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도마는 회의주의의 시초로도 알려졌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내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당시 밀라노 군주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자 공작과 그의 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를 위해 그려졌다. 두 사람은 다빈치의 후원자였다. 또 현재의 ‘최후의 만찬’은 오랜세월이 지남에 따라 색조 및 색상이 변해 1970년대부터 21년간 대복원공사를 거쳤지만 원작을 훼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그의 이미지를 찾는 것은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소일거리가 됐다고 전해졌다. 심지어 그의 작품인 ‘모나리자’의 모델이 다빈치 본인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 바 있다. 한편 킹 박사의 최신 연구 결과는 오는 30일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가 출판하는 ‘레오나르도와 최후의 만찬(Leonardo And The Last Supper)’과 같은 날 BBC 방송의 ‘금주의 도서(Book of the Week)’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패션업체 유럽 브랜드로 中공략 러시

    패션업체 유럽 브랜드로 中공략 러시

    한국 패션업체들이 유럽 재정위기로 쏟아지는 이탈리아 등 유명 패션브랜드의 새 주인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 진출은 물론 유럽 공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려왔다. 신원은 15일 현지법인인 ‘S.A 밀라노’를 통해 악어백 전문 이탈리아 브랜드 ‘로메오 산타마리아’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로메오 산타마리아는 1947년 밀라노 비아메데기노 지역에서 산토 산타마리아에 의해 첫선을 보인 고가의 피혁 브랜드다. 최고급 악어가죽과 타조가죽을 이용한 핸드백 제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 다이애나 전 황태자비와 할리우드 배우 샤론 스톤, 톰 크루즈 등 유명인을 단골로 뒀다. 국내에 2006년 진출했다가 2010년 이후에는 판매가 중단됐다. 신원은 기존 핸드백 외에 소형 액세서리, 선글라스, 구두 등을 제품군에 추가해 이 브랜드를 종합 명품 잡화 브랜드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이탈리아 정통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도 제품의 제작과 마케팅 등 전반적인 운영을 이탈리아 현지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국내 패션기업이 유럽 브랜드 ‘사냥’에 나선 것은 3년 전부터. 때마침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매력적인 매물이 쏟아졌다. 가장 먹성 좋은 기업은 이랜드그룹. 이랜드는 2010년부터 구두업체 라리오, 여성용 스포츠웨어 벨페, 패션잡화 브랜드 만다리나덕과 코치넬리까지 4개의 이탈리아 브랜드를 손에 넣었다. 또 영국의 니트웨어 전문 록 캐런 오브 스코틀랜드 등 의류제조업체도 인수했다. 제일모직도 지난해 11월 악어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콜롬보’를 사들였고, LG패션은 두달 앞서 이탈리아 남성 캐주얼 브랜드 ‘알레그리’의 주인이 됐다. 중견 패션기업 EXR은 프랑스 패션브랜드 ‘카스텔바작’을 인수했으며,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은 프랑스 향수 브랜드 ‘아닉 구탈’을 품에 안았다. 국내 기업의 유럽 브랜드 인수는 국내보다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경기 불황에도 중국은 명품 수요가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고 있어서다. 신원도 로메오 산타마리아를 내년 상반기 국내가 아닌 중국에 첫선을 보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17년까지 전 세계 150개 유통망을 확보하고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박성철 회장은 “로메오 산타마리아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명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종합 패션 유통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랜드도 최근 인수한 이탈리아 브랜드들을 하반기 중국에서 본격 론칭한다. LG패션도 ‘알레그리’를 3년간 이탈리아 현지에서만 운영한 뒤 중국에 먼저 진출시킨다는 계획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멕시코 마약조직에 거센 여풍 왜?

    중미 마약계에 거센 여풍이 불고 있다. 멕시코 당국이 마약범죄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약카르텔의 간부급 남자들이 체포되거나 사망하면서다. 이렇게 생긴 공석을 마약카르텔 우두머리나 간부의 부인, 여자동생, 딸이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멕시코에선 마약카르텔 여자우두머리 46명이 체포됐다. 지난 10년 동안 마약범죄로 미국에서 체포된 여자 마약사범만도 2100명을 헤아리고 있다. 멕시코의 시날로아 대학의 연구원이자 기자인 아르투로 산타마리아 고메스는 최근 이 문제를 주제로 책을 펴냈다. 제목은 ‘마약계의 여자우두머리들’. 책에는 신문기자들이 쓴 기사와 전문가들이 낸 마약산업 보고서 등이 실려 있다. 책은 “5년 전 펠리페 칼데론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마약조직에서 여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특히 남자의 전유물(?)이던 간부 자리를 여자들이 차지하면서 여풍의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여자 마약카르텔 우두머리는 “아버지는 당국에 죽임을 당했고, 오빠가 있었지만 역시 사망했다.”면서 “아버지와 오빠의 자리를 물려받아 현재 조직의 최고 수장으로 있다.”고 말했다. 멕시코가 마약산업 뿌리뽑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멕시코에선 경찰과 조직의 충돌, 조직 간 갈등 등으로 약 5만여 명이 살해됐다. 책의 저자 아르투로 산타마리아 고메스는 “남자들이 대거 죽으면서 마약카르텔에는 불가피하게 남녀 성별교체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망했거나 체포된 마약사범의 부인, 딸, 동생은 물론 심지어 내연녀와 애인들까지 자리를 승계해 마약카르텔의 지도급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아르투로 산타마리아 고메스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조직을 지혜롭게 운영하고 있다.”며 “마약산업을 뿌리뽑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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