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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 논란

    일 산케이 박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 “민비 3개월 뒤 암살”…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일 산케이가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31일 일본 산케이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며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칼럼은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라며 “공교롭게도 북한은 나쁜 유산을 혐오하는 자주 자립을 뜻하는 주체사상을 간판에 걸고 미국과 대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에도 반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전쟁 때 당시 중공군이 참전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산케이는 지난달 30일자 사설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국 열병식 참관 계획에 대해 “국제사회의 기대에 반하는 일이자 유엔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대체 왜..

    일 산케이 박대통령,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대체 왜..

    31일 일본 우파 언론 산케이 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은 산케이 인터넷판에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이 사대주의 행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칼럼은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한 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씨 파가 지난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적었다. 그러나 명성황후 암살범이 당시 일본 공사의 지휘를 받은 일본 낭인들이었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12만 퇴진 시위에도 끄떡없는 아베 지지율

    일요일인 30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 집단자위권을 밀어부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12만 여명이 운집했다. 안보법안 관련 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 시민단체 등은 전국 300곳 이상에서 ‘아베 정권 퇴진을 위한 10만인, 전국 100만인 행동’ 집회를 개최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63)도 시위대에 합류했다. 사카모토는 영화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으로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유명인이다. 좀처럼 정부에 대한 불만을, 특히 시위라는 형태로 표출하지 않던 일본인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2012년 고쿄에서 반원전 시위에 17만명이 모인 이후 3년여 만이다.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아이를 안고 나온 엄마,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전 연령층이 망라됐다. 국회의사당 주변을 발디딜 틈 없이 채운 일본인들의 시위 사진은 31일 상당수 신문의 1면에 실렸다. 아베 총리의 보수적인 대외정책 등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일텐데, 이날 일제히 발표된 일본 언론들의 아베 총리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는 시위대의 목소리와 달리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전체적인 내각 지지율은 반등했지만 안보법안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아베 담화 발표 이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대를 회복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TV도쿄가 8월 28∼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7월 조사결과에 비해 8%포인트 오른 46%로 집계됐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은 10%포인트 떨어진 40%였다. 닛케이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반등한 것은 4개월만이다. 지난 7월 2차 아베 내각(2012년 12월 출범)들어 처음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지지한다는 응답자를 앞섰는데, 1개월 만에 뒤집혔다. 7월 지지율 하락의 최대 원인이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강행처리였다면 이번 지지율 반등은 아베 담화에 대한 국내외의 긍정적 평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앞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담화 발표 직후에 나온 교도통신(14∼15일 실시) 조사에서 43.2%, 산케이신문 조사(15∼16일)에서 43.1%를 각각 기록하며 40%대에 다시 들어섰다. 하지만 개별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닛케이 조사에서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 방침을 담은 안보법안을 9월 27일까지인 현 정기국회 회기 중에 통과시킨다는 아베의 계획에 대해 반대가 55%로 27%에 그친 찬성의 배 수준이었다. 센다이 원전을 시작으로 약 2년만에 이뤄진 일본의 원전 재가동 회귀에 대해 반대가 56%로 찬성 응답 비율(30%)을 크게 웃돌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확연해진 안보법안에 대한 반대 여론과 빗속에 국회의사당을 에워싼 성난 민심을 아베 총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수용할 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김균미 기자 kmkim@seoul.co.kr
  • 日최대 조폭 야마구치파 산하 13곳 두목들 ‘파문’

    일본 치안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최대 조직폭력배(조폭)의 내부 불화로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폭력 집단의 분열과 패권 싸움으로 애꿎은 시민이 피해를 입을까 초긴장 속에 경계에 들어갔다. 조직원 2만 3400여명을 거느린 일본 최대 조폭이자 야쿠자의 대명사인 야마구치파가 산하 13개 단체의 두목에 대해 ‘절연’, ‘파문’ 처분을 했다고 NHK, 산케이신문 등이 30일 전했다. 경찰은 이번 조치가 조직을 이탈하려는 산하 단체의 움직임에 대한 처분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조직이 생겨나거나 야마구치파 산하 조직 간 충돌로 비화할지에 대해 경계를 강화했다. 이번 사태는 야마구치파의 양대 라이벌 조직이 갈라서면서 표면화됐다. 현재의 최고 우두머리에 대한 불만 세력들이 힘을 모아 대항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야마구치파는 파벌 전쟁에 대비해 현재 고베시에 있는 총본부를 나고야시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야마구치파의 6대 우두머리인 현 두목은 나고야시에 본부를 둔 ‘고도회’(弘道會) 출신. 라이벌 파벌인 고베시 거점의 야마켄(山健) 파벌 등과 조직 내 인사와 처우, 상납금 문제를 둘러싸고 불화를 겪어 왔다. 이를 추적한 작가 미조구치 아쓰시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2개 조직의 갈등이 깊어져 분열로 발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야마켄파 두목 등 5개파 두목은 절연 처분을 받았다. 파문은 조직에 복귀할 가능성을 남겨 놓지만 절연의 경우는 다시 복귀할 수 없어 남은 것은 힘 겨루기밖에 없다는 해석도 분분하다. 야마구치파는 1880년대 고베시 항만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설립됐고 야마구치파의 최고 우두머리인 5대 조장 역시 고베시를 중심으로 한 야마켄 파벌 출신이었다. 고베시에 뿌리를 둔 야마켄파는 조직원이 약 2000명으로 산하 단체 중 최대 규모인 데다 조직의 모태여서 ‘굴러온 돌’ 격인 고도회 출신인 현 우두머리의 ‘절연 처분’을 고분고분 따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일본 경찰은 고도회의 조직원을 야마켄파의 절반인 1000여명으로 보고 있다. 조폭 간의 내전이 기정사실화하자 야마타니 에리코 국가공안위원장은 “국민이 안심하고 안전이 확보되는 게 최우선”이라며 경계 강화 방침을 밝혔고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경찰이 정보수집에 임하고 있으며 필요한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와 2000년대에도 야쿠자 내전에 휘말린 시민들이 살해당하거나 피해를 본 일이 적지 않아 시민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 中전승절 참석 안한다

    아베, 中전승절 참석 안한다

    아베 신조(얼굴) 일본 총리가 다음달 중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다음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전승절) 전후로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 없으며 중국 측에도 이를 통보했다”며 “국회 상황 등을 근거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회 상황은 다음달 27일까지인 정기 국회 회기 안에 참의원에 계류 중인 ‘집단자위권 법안’(안보 관련 11개 법률 제·개정안)을 처리하려는 것을 말한다. 스가 장관은 국제회의 등의 기회를 통해 양국 정상 간의 만남이 모색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하반기 중에 서울이나 제주에서 열릴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나 오는 11월 필리핀에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일·중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총리는 당초 전승절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전승절 전후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세 번째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들은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할 경우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해 현재 참의원에서 통과를 추진하고 있는 안보법안의 정당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미국 정부가 총리의 방문을 만류한 것이 (방중 포기 계획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등 보수 매체들은 이와 관련, 베이징에서 전승절 행사의 일환으로 열릴 열병식이 군사적 색채가 강해 미국이나 유럽 각국 정상이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을 고려해 이들 국가와 보조를 맞추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日프로야구] 돌직구 신화 신기록 기대해

    [日프로야구] 돌직구 신화 신기록 기대해

    한신의 ‘수호신’ 오승환(33)이 일본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에 야심 찬 도전장을 던졌다. 일본 ‘산케이스포츠’는 18일 “오승환이 후지카와 규지, 이와세 히토키가 보유한 일본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인 46세이브 기록에 도전 의지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오승환은 “신기록을 바꿀 기회가 있으면 달성하고 싶다”면서 “세이브를 따낸다는 것은 팀이 이기고 있다는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시즌 종반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분명한 목표 의지로 다잡은 것이다. 오승환은 지난 17일 현재 시즌 36세이브로 센트럴리그 구원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 야마사키 야스아키(요코하마)에게 6개 차로 앞서 지난해(39세이브)에 이어 데뷔 두 시즌 연속 구원왕 희망을 부풀린다. 게다가 그는 이날 현재 남은 36경기에서 11세이브를 챙기면 일본프로야구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오승환은 후반기 불안한 출발로 기록 경신이 버거워 보였지만 최근 무서운 상승세로 돌아서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는 지난 8일 요코하마전부터 팀의 6연승을 완벽히 지켜냈다. ‘7경기 연속 세이브’라는 신기록을 꿈꿨으나 15일 한신이 야쿠르트에 완패하는 바람에 등판 기회를 날렸다. 한신이 6연승을 달린 6경기에 모두 등판해 모두 세이브를 올린 것은 일본 최다 타이 기록이다. 고바야시 마사(지바롯데),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후지카와 규지(한신), 아오야마 고지(라쿠텐), 와쿠이 히데아키(세이부)만이 일궈냈다. 무엇보다 6경기 연속 세이브를 수확하는 동안 단 1실점의 안정된 투구까지 보여 기대감을 더한다. 오승환도 이번 도전이 내년 거취와 무관하지 않은 만큼 ‘혼신투’를 다짐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관건은 오승환이 얼마나 많은 등판 기회를 잡느냐에 달려 있다. 한신은 2위 야쿠르트, 3위 요미우리에 각 3.5경기 차로 앞서 리그 선두다. 막판까지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오승환은 삼성 시절인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나 최다인 시즌 47세이브를 쌓았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中톈진 폭발 유해물질 날아올까…각국 위성 관측 ‘예의주시’

    中톈진 폭발 유해물질 날아올까…각국 위성 관측 ‘예의주시’

    중국 톈진(天津)시 빈하이(濱海) 신구 탕구(塘沽)항 위험물 물류창고에서 지난 12일 심야에 발생한 폭발사고의 모습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인공위성이 관측하고 있다. 폭발로 유출된 오염물질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를 두고 전문가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NASA는 사고 다음 날인 13일 오전 10시 30분(중국표준시)에 지구관측위성 ‘테라’에 탑재된 관측장비인 ‘중간해상도 영상 분광계’(MODIS)로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검은 연기로 보이는 오염물질이 톈진 부근 탕구항에서 빈하이만 쪽으로 확산한 것을 보여준다. 3시간쯤 뒤 NASA 지구관측위성 ‘아쿠아’에 탑재된 ‘MODIS’로 같은 지점을 촬영한 사진에는 검은 연기가 남동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MODIS는 NASA가 개발한 광학센서로 구름의 분포는 물론 방사속(시간당 방사에너지), 에어로졸(대기 중의 고체나 액체상태의 작은 입자), 토지 피복(지표면에 존재하는 물질과 그 분포 상황), 폭발, 해수면 온도, 적설, 해빙 등을 관측할 수 있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는 전 세계에 공개되며 날씨와 지구환경 연구를 비롯해 이번과 같은 대규모 사고 분석에도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야마가타대와 토호쿠대 연구팀은 오염물질이 동쪽으로 확산 중이라고 분석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이들은 현재 태평양 고기압이 오염물질을 막고 있지만 전선을 따라 확산할 수도 있어 정확히 어떤 물질이 배출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기가 동쪽으로 확산하고 있는 모습을 일본 위성 ‘히마와리’ 8호도 관측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도 전했다. 히마와리 8호 외에도 7호나 일본 ‘앰티샛’(MTSAT-2),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지궤도 위성인 ‘천리안’(COMS-1·통신해양기상위성) 등도 톈진 폭발 직후 강력한 열을 감지했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했다. 또 NASA와 미국해양대기청(NOAA)이 함께 운용하고 있는 최첨단지구관찰위성인 ‘수오미 NPP’는 톈진 폭발 전후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톈진 주변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것도 확인됐다. 유럽우주국(ESA)과 중국 등 인공위성도 촬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한편 톈진 폭발사고로 현재까지 114명이 사망하고 70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698명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57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뉴스 플러스-스포츠] 이대호, 시즌 두 번째 4G연속 홈런

    [뉴스 플러스-스포츠] 이대호, 시즌 두 번째 4G연속 홈런

    이대호(소프트뱅크)가 구단 사상 두 번째로 한 시즌 두 차례 4경기 연속 홈런을 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날 일본 스포츠전문지 산케이스포츠는 “이대호가 13일 오릭스전 홈런으로 시즌 두 번째 4경기 연속 아치를 그렸다. 2000년 고쿠보 히로키에 이는 소프트뱅크 구단 사상 두 번째 기록”이라고 보도했다. 이대호는 지난 5월 6~10일에도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 [뉴스 플러스-국제] 日 ‘국제테러 정보팀’ 내년 발족

    일본 정부가 국제 테러 정보를 전담하는 새로운 조직을 내년 4월 발족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외무성 산하에 수십 명 규모의 ‘국제테러 정보수집 유닛’을 설치할 예정으로 장차 미국 중앙정보국(CIA) 수준으로 키운다는 계획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 초 일본인 2명이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살해된 후 독자 정보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 [시론] 아베는 ‘과거회귀’의 헛꿈을 버려야/정일성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구가·‘일본을 제국주의로 몰고 간 후쿠자

    [시론] 아베는 ‘과거회귀’의 헛꿈을 버려야/정일성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구가·‘일본을 제국주의로 몰고 간 후쿠자

    일본이 8월 15일로 ‘패전 70주년’을 맞이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에 즈음하여 ‘전후 70년 총괄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담화는 특히 아베의 최근 극우 행보에 따른 동북아시아 안보질서 문제와 맞물려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냉전 후 어렵게 조성된 동북아의 평화질서가 계속 유지되느냐, 아니면 또다시 긴장 국면을 맞게 되느냐는 실마리가 그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중대한 갈림길에서 아베 담화가 동북아 평화유지의 ‘지렛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사실(史實)을 솔직히 시인하고 사죄하는 데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는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즘 미국의 일본 연구자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역사학자와 석학들이 아베 정권을 향해 잇달아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점 등을 헤아려 보면 아베한테서 독일과 같은 솔직한 반성과 사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니 어쩌면 1995년 8월 일본 패전 50주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동북아 화해의 길은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로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은 산케이신문이 1983년 책으로 낸 ‘이제 털어놓는 전후비사’(いま明かす戰後秘史)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당시 일본 육군 경리장교였던 시카나이 노부다카 전 후지산케이그룹 회장은 책에서 “군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전지(戰地)에 가면 속칭 ‘피야’(위안소)가 있었다. 피야는 질서를 지키려고 설치 요강에 병사들이 위안부와 멍석을 깔고 놀다 나올 때까지 ‘갖는 시간’을 장교는 몇 분, 하사관은 몇 분, 졸병은 몇 분 등으로 세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요금도 등급을 매겼다. 경리학교가 이런 위안소 운영 요령을 가르쳤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 증언은 해군 경리장교로서 3000명의 군인들을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고 자랑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회고와 쌍벽을 이룬다. 이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계획적으로 설치·운영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명명백백한 증거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보도한 일본 언론매체와 기자들을 탄압하며 위안부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월에는 도쿄를 국빈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베 총리에게 과거 독일의 경험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과거사 직시’를 충고하자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반박하는 외교적 실례를 범하기까지 했다. 왜 그럴까. 혹시 메이지시대 ‘국가는 개인과 달리 한 번 잘못을 보여 주면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오명을 씻기 어렵고, 과오를 수정하려면 나쁜 평판이 나오며, 후회하여 사죄하면 죄는 더욱 명백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파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외교론’ 영향은 아닐까. 어쨌거나 일본의 작태를 독일의 사례와 견줘 보면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진다. 독일이 전후 70년 동안 얼마나 처절한 자기반성과 사죄 과정을 거쳐 전쟁 피해 당사국들의 신뢰를 쌓고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로 다시 우뚝 서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지면상 설명을 생략한다. 또 아베가 극우보수인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역사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점도 과거사 반성과 사죄의 기대감을 저버리는 요인이다. 이들 극우 세력은 일본의 전쟁 도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도쿄재판이 부당하다며 명예회복을 요구한다. 나아가 잘못된 침략 역사를 반성하자는 의견을 자학사관이라 폄훼하고 역사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학자들을 ‘국적’(國賊)으로 매도하며 배타와 경쟁을 강조하는 닫힌 군국민족주의를 부르짖는다. 이는 일본의 비극이자 아시아의 비극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아베의 말대로 자신의 큰 꿈인 정치대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피해 당사국과의 화해가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 피지배 민족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다면 설령 경제대국의 목표는 이룩했다 하더라도 절대로 정치대국은 될 수 없다. 섬 안에 폐쇄된 정치소국일 뿐이다.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와 군사력 증강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고 많은 까닭이다.
  • 미쓰비시 “한국인 강제노역 美·中과 달라”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에 사죄하고, 중국인의 강제 노동에는 보상을 추진 중인 일본 미쓰비시 머티리얼 측이 한국인 강제노역에 대해서는 성격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 회사의 오카모토 유키오 사외이사는 27일 산케이신문에 실은 기고문에서 “한국이 주장하는 ‘징용공(徵用工·강제노역 피해자) 문제는 전쟁 포로 문제와 상당히 성질이 다르다”고 밝혔다. 오카모토 사외이사는 최근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에게 사죄한 자리에 동석했던 인물이다. 그는 “일본은 ‘강제 노동‘에 관해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며 “일본으로 데려온 중국인 노동자는 법적으로 다르지만 미군 전쟁포로와 유사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당시 한국은 일본의 합법적인 식민지로, (한국인 강제 노역은) 합법적인 과정을 통한 동원령에 따른 노동이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는 “사죄만 요구한 미국 전쟁포로와 다르게 중국인 노동자 유족으로부터는 금전적인 요구도 있어 그만큼 해결이 용이하지는 않다”며 “이미 소송으로 번져 불성실하게 대응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강제노역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 3765명에게 1인당 10만 위안(1881만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강제 노역한 한국인 피해자는 미쓰비시 머티리얼과 같은 계열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한국 법원에서 2심까지 배상 판결을 받았으며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日국민 ‘아베 반성·사죄 여론’ 고조…안보법안 민심이반 확산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에 대한 일본 참의원 심의가 27일 시작된 가운데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일본 내에서 비등하고 있다. 이날 주요 신문들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안보법안 강행 처리에 따른 민심 이반 현상이 거듭 확인됐다.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 표현을 담아야 한다는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이날 요미우리 및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이 발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담화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 표현을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55%와 45%를 기록했다. 반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은 각각 30%, 35%였다. 요미우리신문은 24∼26일 전화 여론조사를 했고, 같은 기간 닛케이와 TV 도쿄의 전화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반성 및 사죄를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닛케이의 지난 6월 조사 때보다 6% 포인트 상승했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답습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도 표현과 용어를 전체적으로 따르는 것은 부정하고 있다”면서 “담화로 인해 중국, 한국과의 관계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다음달 초 예정된 아베 총리의 담화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안보법안의 강행 처리는 지지율 하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 재집권 후 처음으로 지지보다 반대가 앞서는 지지율 역전 현상이 두드러졌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응답자는 이달 초 조사 때보다 9% 포인트 늘어난 49%였다. “지지한다”는 응답은 6% 포인트 감소한 43%였다. 닛케이 조사에서도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이들은 지난달 조사 때보다 10% 포인트 증가한 50%를 기록했고 “지지한다”는 반응은 9% 포인트 줄어든 38%였다. 앞서 교도통신, NHK,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신문·후지뉴스네트워크(FNN)가 벌인 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이 더 높았다. 그동안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지율이란 변하기 마련이므로 개별 조사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지만 주요 언론사 조사에서 민심 이탈이 확연하게 드러나자 정권 내부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안보법안의 최종 관문인 참의원 본회의 심사와 관련해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이날 참의원 본회의에서는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법안의 취지를 설명한 뒤 여야 각 당 의원들이 아베 총리에게 질의했다. 오는 9월 27일까지인 정기국회 회기안에 법안을 처리하려는 자민·공명 연립여당과 그에 반대하는 민주·유신·공산·사민당 등 야당들은 참의원에서의 안보법제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 들어갔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 담화, 한·중 분리 대응…침략 넣고 식민지배는 뺄 듯

    아베 담화, 한·중 분리 대응…침략 넣고 식민지배는 뺄 듯

    아베 신조(얼굴) 일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다음달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침략’은 언급하는 대신 ‘식민 지배’와 ‘사죄’는 넣지 않을 것으로 22일 알려졌다. 미국은 아베 담화에 반성의 메시지가 담기길 바랐지만 반성 수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침략’에 대한 언급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인 반면 식민 지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한국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과 중국을 분리 대응하려는 것으로 중국에 대한 배려와 한국에 대한 외면으로 압축된다. 이에 따라 아베 담화 발표 이후 한·일 관계가 또 한 번 시련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베 담화와 관련한 총리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아베 총리에게 제출할 제언 보고서에 ‘사죄’라는 단어는 넣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신문이 이날 전했다. 또 2차 대전에 대한 ‘반성’을 명기할 의향을 굳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아베 총리가 역대 총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2차 대전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이 느끼고 또 표현했던 ‘반성의 마음’(feelings of remorse)을 표현할 방법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성의 수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인터뷰 조작해 反韓감정 불지르는 후지TV

    일본 후지TV가 한국인의 반일(反日) 정서를 다룬 특집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5일 ‘이케가미 아키라 긴급 스페셜-알고 있는 듯해도 모르는 한국의 불가사의’를 내보내며 서울 거리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완전한 날조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보면 한 여고생이 우리말로 “문화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외국인이 정말 많이 방문해 주시는 것 같아요”라고 일본을 호의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어 자막은 “(일본이) 싫어요. 왜냐면 한국을 괴롭혔잖아요”라는 것이었다. 30대 남성의 “과거 역사에 반성하지 않고, 그런 부분은…”이라는 인터뷰도 자막은 엉뚱하게 “일본 사람은 좋은 사람도 있지만, 국가는 싫어요”라고 달았다. 후지TV의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후지TV는 산케이신문과 함께 후지산케이그룹에 속해 있다. 산케이신문 지분의 40%는 후지TV가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매체인 산케이신문은 때로 극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 인식에서도 민족주의적 색채를 짙게 드러내며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히려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무엇보다 이 신문의 제호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생산한 주체였기 때문이다. 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추측성 기사를 썼다가 여러 차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의 전임인 구로다 가쓰히로 전 서울지국장은 ‘비빔밥은 나올 때는 아름답지만 먹을 때는 뒤섞어 정체불명이 되는 양두구육(洋頭拘肉)의 음식’이라는 칼럼을 써서 한국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산케이신문 케이스는 논란의 여지라도 있지만, 후지TV의 조작은 기본적인 방송 윤리마저 저버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의 한·일 관계는 긴 암흑 터널에서 벗어나 조금씩이나마 빛이 보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슬기롭게 정리하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도 자리잡아 간다. 하지만 이번 조작 방송은 일본인들의 반한 감정에 불을 질러 화해를 방해하는 세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당사자인 후지TV의 진심 어린 반성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일본 국민이 뜻을 모아 자정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7월까지 아베 사죄 없으면 2000만弗 국제소송”

    “7월까지 아베 사죄 없으면 2000만弗 국제소송”

    한·일 정상의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으로 양국이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등 시민단체들은 실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 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23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달 초 미쓰비시중공업 등 미국에 진출한 일본 전범기업과 일왕, 아베 신조 총리,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라고 비하한 산케이신문 등을 상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2000만 달러(약 22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 진행하는 김형진 변호사는 “할머니들의 슬픔과 고통은 70여년 전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일본 정부 등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며 피해 할머니들을 깎아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 준비는 두 달 전 마쳤지만 지금까지 제소하지 않은 것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며 기한을 7월로 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2000만 달러라는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중요하지 않으며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40여개 시민단체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양국 간 과거사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복동(90)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변명하지 않고 사과할 때까지 우리 정부는 얼버무리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강종호(74)씨는 “과거를 다 저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열자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과거사를 끝까지 사죄하지 않는 일본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그대로 보여 준다”며 “힘의 논리에 끌려다니면서 운명을 맡겨 버리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과거와 다를 게 없다”고 성토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새로운 50년을 열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韓·日은 美·中 사이 캐스팅 보트 쥐고 있어…해법 모색해야 할 때”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일 관계는 타협은 있었지만 완전한 화해에는 이르지 못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및 동북아 문제 연구의 태두인 오코노기 명예교수를 한·일 수교 50주년을 앞둔 21일 도쿄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만났다. 그에게서 한·일 관계 개선의 해법과 전망, 중국의 부상 등 국제 환경 변화에 따른 두 나라의 역할과 미래 등에 대해 들어봤다. →수교 50주년을 맞는 두 나라 관계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양국 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국제 환경의 변화, 국제 시스템의 변동에 영향을 받았다. 크게 세 번의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수교 이후 냉전 붕괴까지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둔 채 식민지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 없이 이뤄진 게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이다. 냉전이라는 질서 속에서 이뤄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1910년 한국병합조약이 불법이고 부당했다는 한국 주장에 대해 일본 측은 합법적이며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냉전이라는 국제 환경 속에서 안전 보장과 경제 발전이라는 확실한 공동 이익과 목표가 있었다. 수교 결과는 좋았다. 한국은 그 사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했다. →화해를 위한 노력에 어떤 진전이 있었나. -1989년 냉전 붕괴를 거치면서 동구권이 열리고 국제 협력의 영역이 확대되는 새로운 국제 환경을 맞았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협력 확대가 필요한 시대였다. 1993년 11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총리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군 위안부, 강제 징용 등을 거론하며 “가해자로서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본격적인 첫 반성인 셈이다. 이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사과 발언으로 이어졌다. 당시 오부치 총리의 사과를 김대중 대통령이 받아들였고, 양측은 파트너십 공동성명을 내며 미래지향적인 데까지 손을 내밀었다. 두 나라가 화해에 가장 근접했던 때였다. →이 같은 노력은 왜 화해의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나. -90년대는 과거사 반성과 사과가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화해를 모색한 때였다. 아쉬운 점은 이 같은 화해의 노력이 구조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모자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2000년 평양 방문 및 남북 정상회담, 그보다 일찍 가네마루 신 전 부총리의 방북 등 북·일 정상화 시도 등이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1990년 이후 20년은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한 시기였다. 당시 독일의 과거사 반성과 독일 및 프랑스, 폴란드와의 화해 등이 이어졌고 이를 기초로 유럽공동체가 급진전했다. 한편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새 시대의 특징은 중국의 강대국화와 영역이 확대된 무역자유화 등이다. 2010년 중국은 국민총생산(GNP)에서 일본을 넘어섰다. 중국 부상 등의 국제적인 구조 변화가 한국 외교에 영향을 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중 관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임기를 시작했고, 한국의 중국 중시 외교가 본격화됐다. 한국은 미국에 이어 중국을 앞에 놓았다. 일본은 그 뒷전으로 밀렸다. 일본에서는 반감이 컸다. 대중, 대미 외교의 성공을 통해 일본에 역사 문제 등을 압박하려는 것으로도 여겼다. →세 번째 시기의 한·일 관계는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일주일이 흐른 3·1절 연설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1000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취임 일주일 만에 일본에 역사를 바로잡으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미국 방문에 나섰다. 앞서 아소 다로 부총리가 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역사 해석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을 꺼냈다. 양측의 신경전과 대립이 두드러졌다. 중국 중시 외교에, 아베 신조 총리와의 리더십 충돌까지 겹쳤다. 아베 총리도 잘하지 못했다. “침략의 정의는 확정된 게 없다”는 발언도 했다.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면서 지도력 충돌은 두드러졌다. 한·일 두 리더십의 충돌은 역사 인식의 충돌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외교 전략의 부딪침도 있었다. 정체성 충돌, 민족 감정 및 전통문화의 대립도 얽혔다. 한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에 더 힘을 기울였고, 아베 총리도 미·일 관계를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한국 관계는 나중에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떤 상황을 맞겠나. -세 번째 시대를 맞았지만 한·일 관계는 아직 이렇다 할 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시대 흐름에 맞는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때다. 시스템 변동에 따라 한국도, 일본도 하고 싶은 대로 외교를 하고 있다. 그래서 충돌이 생겼고 관계도 나빠졌다.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국 부상과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이 확산되면서 보다 광범위한 경제 통합 시대에 맞게 양국 관계의 틀과 규범을 만들어 나갈 때다. 긍정적인 것은 두 나라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미들 파워’(중급 파워) 국가라는 점도 그렇다. 둘 다 국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유사한 산업구조로 경쟁도 치열했지만 생산 과정의 공유 및 분업의 심화로 두 나라 협조 관계는 더 커지는 추세다. 제3세계의 인프라 건설 참여 등에서 보듯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자금력, 정보력의 장점을 서로 나누며 함께 참여하는 예가 늘고 있다. 앞으로도 경제 협력이 두 나라 관계를 선도할 것이다. 서로 더 의존적이고 더 얽히는 상호 의존 관계가 진행될 것이다. 양측의 장점을 합치면 시너지가 배가된다. →두 나라 관계가 진전될 것이라고 낙관하나. -두 나라는 비슷한 현안에 직면해 있다. 대립하는 미·중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같다. 미·중 간 가교 역할과 시장·경제 통합에서 한·일은 손을 잡고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중 입장은 대립 속에 고정돼 있다. 중간에 있는 한·일이 어떻게 생각하고 유도해 나가느냐에 따라 방향과 내용이 결정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한·일 어느 한 나라만으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아세안과 힘을 합쳐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다. ‘중간국’들이 동북아 시스템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한·일이 서로의 대미, 대중 정책을 상의할 수 있을 때 두 나라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문제다. 급진전하는 대중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과 미국에 밀착한 일본, 두 나라의 장점과 이점을 잘 조화하고 활용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역사 마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력과 힘을 잃어 버리면서 ‘불임의 외교’만을 거듭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 내려면 박 대통령이 중점을 두는 위안부 문제에서 진전을 거둬야 한다. 새 시대에 맞는 해법을 모색해서, 국제적인 룰에 근거해, ‘전쟁시대의 국제 문제’라는 점에 기반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일 간 문제로 국한해 풀려고 해서는 입장 차이 때문에 해법을 내기 어렵다. 전쟁 상황에서의 성폭력 조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유사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며 해결하기 위한 기금 설립 등도 생각해 봄 직하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해법의 틀 속에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보자. 일본 정부의 사과를 포함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되면 된다. 양국 관계 진전의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관계 진전의 출발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려운 점은 한국 비정부기구(NGO)들의 역할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의지를 갖고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 국내 이해 당사자를 설득하고 중지를 모아 여기서 종결시키겠다” 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일본 측이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안을 내놓아도 한국 정부는 NGO 등 주변 불만이 크다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본 정부도 무엇을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한국 측도 이번에는 매듭짓고 받아들이겠다는 준비와 결의가 필요하다. →아베 총리가 8월에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걱정 어린 시각이 많다. -한국인을 만족시킬 만한 아베 담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미국 의회에서 아베 총리가 말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종전 70주년 담화라는 게 왜 필요한가. 동양권에서 50주년 등은 중시되지만 70주년이 주목받는 것은 아베 총리 스스로가 담화를 하겠다고 해서였다. 그것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 등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70주년 담화가 나오고 난 뒤에 한·일 관계는 정상화를 향한 새로운 모색을 하는 출발점에 서게 될 것이다. 연내 한·중·일 정상회담의 틀이나 다자회담의 틀을 빌려 한·일 정상이 만나고 그 장을 빌려 한·일 정상회담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외교부 사이트에서 한국과 관련해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말까지 빼 버렸다. -불만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되는데…. 내년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나. 이는 오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한국이 진짜 민주주의를 하나” “법의 지배를 받나” 하는 의문이 일본에서 생겼다. 산케이신문 기자에 대한 기소나 법원의 대일 관련 판결, 중국에 대한 한국의 자세 등이 얽혀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한·일 관계의 토대다. 한국인은 앞으로 나올 70주년 담화에 실망하고 불만이 크겠지만 그 뒤에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새 시대에 맞는 한·일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 과거사는 한·일 관계의 일부, 한 조각일 뿐이다. 양측이 다투면서 서로 얼마나 많은 것들, 소중한 기회들을 잃어 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서로 공감대가 형성돼야 화해가 가능하다. 한·일은 1965년 큰 타협을 이뤄냈지만 서로 이해하는 공감대는 모자랐다. 완전한 화해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자. 실현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옳은 길이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오코노기 교수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다. 1945년생으로 그가 재직하는 게이오대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오코노기 학파’가 퍼져 있다. 그만큼 많은 한반도 전문가를 배출했다.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위원장으로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청사진 마련을 주도했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자문기관인 ‘대외 태스크포스’ 위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자문기구인 ‘외교정책연구회’ 위원 등을 지내며 일본의 한반도 정책 결정에 관여했다. 1972년부터 2년여 동안 연세대에 유학하면서 ‘7·4남북공동선언’ ‘10월 유신’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사건’ 등을 지켜봤다. ‘한국 오코노기 연구회’가 있을 정도로 국내에 지인과 친구들이 많다. ‘조선전쟁’(중앙공론사), ‘일본과 북조선’(PHP연구소) 등의 저서가 있다.
  • 아베정권, 침략전쟁 인정 ‘도쿄재판’ 재검증 추진 논란

    아베정권, 침략전쟁 인정 ‘도쿄재판’ 재검증 추진 논란

    일본 집권당이 자국의 A급 전범을 심판하고 태평양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공식화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 대한 검증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이 도쿄재판과 함께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연합국군총사령부(GHQ)에 의한 정책, 현행 헌법을 만든 과정 등을 검증하는 새로운 조직의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자민당이 이 같은 조직을 이나다 도모미 당 정조회장 산하에 설치하고 이르면 이번 정기국회에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산케이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이나다 정조회장은 지난 2월 “판결 주문은 받아들이지만 (판결의) 이유에 대한 판단에까지 구속될 필요는 전혀 없다”며 도쿄재판에 간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자민당은 GHQ가 점령 통치 중 전승국의 역사관을 침투시키기 위해 ‘전쟁 유죄 정보 프로그램’(WGIP)을 통해 조직적으로 선전했다는 주장 등에 대한 검증도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도쿄재판이나 헌법 제정 과정에 대한 검증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인정한 것이 맞는 것인지 혹은 무력행사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유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을 촉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범 국가로서의 반성 및 교전권 박탈 등을 규정한 전후 일본의 질서를 부정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작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앞서 헌법 제정 과정에 대해 “헌법 원안을 GHQ의 문외한들이 8일 만에 만들었다”고 혹평하는 등 개헌을 일생일대의 과업이라고 공언해 왔다. 한편 새 조직은 자민당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의 역할도 흡수할 계획이다. 특명위원회는 ‘전쟁 때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사망)의 발언에 관한 보도를 아사히신문이 취소한 것 등과 관련해 영향 등을 검증하는 집권당 내 조직이었다. 도쿄재판은 2차대전 뒤 일본의 전쟁 범죄자를 심판하기 위해 열렸으며 재판부는 1948년 11월 12일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7명에게 교수형, 16명에게 종신형 등 모두 2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 일본 언론도 들썩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원빈 이나영 결혼, 일본 언론도 들썩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원빈 이나영 결혼, 일본 언론도 들썩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원빈 이나영 결혼, 원빈 이나영 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극비 결혼을 한 가운데 일본 언론들이 이 같은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4대 천왕’인 한국 남성 배우들이 모두 품절남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산케이스포츠 등 현지 언론은 31일 “4대 천왕 원빈, 이나영과 극비 결혼”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최근 결혼 소식을 발표한 배용준을 비롯해 장동건 이병헌 등 ‘4대 천왕’이 모두 품절남이 됐다고 전했다. 한편 원빈은 이나영과 지난 30일 원빈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의 한 오솔길에서 가족들만 초대한 채 결혼식을 치렀다. 두 사람은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한류 배우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이병헌은 지난 2013년 결혼해 최근 득남했고 장동건은 고소영과 2010년 결혼했다. 또 ‘욘사마’ 배용준은 올 가을 박수진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최근 소식을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 日 언론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관심 집중

    원빈 이나영 결혼, 日 언론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관심 집중

    원빈 이나영 결혼, 日 언론 “4대 천왕 모두 품절남 됐다” 관심 집중 원빈 이나영 결혼 배우 원빈과 이나영이 극비 결혼을 한 가운데 일본 언론들이 이 같은 소식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4대 천왕’인 한국 남성 배우들이 모두 품절남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산케이스포츠 등 현지 언론은 31일 “4대 천왕 원빈, 이나영과 극비 결혼”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최근 결혼 소식을 발표한 배용준을 비롯해 장동건 이병헌 등 ‘4대 천왕’이 모두 품절남이 됐다고 전했다. 한편 원빈은 이나영과 지난 30일 원빈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의 한 오솔길에서 가족들만 초대한 채 결혼식을 치렀다. 두 사람은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한류 배우 ‘4대 천왕’으로 꼽히는 이병헌은 지난 2013년 결혼해 최근 득남했고 장동건은 고소영과 2010년 결혼했다. 또 ‘욘사마’ 배용준은 올 가을 박수진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최근 소식을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원빈 이나영 결혼, 강원도 민박집 들판에서 결혼..일본 반응은? 반전

    원빈 이나영 결혼, 강원도 민박집 들판에서 결혼..일본 반응은? 반전

    원빈 이나영 결혼 일본 언론이 배우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 소식을 보도했다. 현지 언론은 원빈의 결혼 소식에 ‘한국 4대 천왕이 품절됐다’며 아쉬워했다. 일본 산케이스포츠 등은 31일 “4대 천왕 원빈, 이나영과 극비 결혼”이라는 내용을 전했다. 원빈의 결혼 소식에 4대 천왕도 재조명 받았다. 4대 천왕에는 원빈, 배용준, 장동건, 이병헌이 속해 있다. 장동건은 배우 고소영과 2010년, 이병헌은 배우 이민정과 2013년 각각 결혼했다. 또 배용준은 배우 박수진과 오는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로써 4대 천왕은 모두 품절남이 됐다. 한편 원빈 이나영의 소속사 이든나인은 30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알렸다. 소속사 측은 “이나영 씨와 원빈 씨가 2015년 5월 30일 평생을 함께 할 연을 맺었다”며 “결혼식은 5월 30일, 가족들의 축복 속에 원빈씨의 고향 들판에서 열렸다. 오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밀밭을 걸어나온 두 사람은 평생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서약을 나눈 후 이제 하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어나고 자란 그 땅 위에 뿌리내린 경건한 약속을 기억하며 삶의 고비가 찾아와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무처럼 한결같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은 이날 강원도 정선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으며, 극비리에 진행돼 소수의 친인척과 지인들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혼여행 일정은 현재 정해지지 않았다. 신혼집은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에 마련했다. 원빈과 이나영은 2012년 교제를 시작해 2013년 7월 열애 사실을 공개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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