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산자락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건조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영등포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100억원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언론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51
  • 「환기미술관」 문열어/작고작가기념관 1호… 수화예술혼 기려

    ◎유작 2백여점 소장… 다양한 기획 행사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양화가 고 수화 김환기화백의 예술혼을 기린 환기미술관(관장 오광수)이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주택가의 조용한 산자락에서 개관됐다.유명 작고작가의 기념미술관으로 1호를 기록하는 이 미술관은 사설미술관시대 개막을 예고하는 상징적 건물로도 기록될 수 있다. 수화가 작고한(19 74년)후 20년이 가까워 비로소 실현된 이 미술관건립은 미망인 김향안씨가 지난 79년 미국에서 설립한 환기재단이 발판.재미건축가 우규승씨가 설계를 맡아 지난 90년 토목공사를 시작,2년기간을 거쳐 완공됐다.대지 9백12평,연건평 4백81평에 공사비만 자그마치 19억원이 투입됐다. 수화의 유작 2백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환기미술관은 앞으로 작가의 대표작 상설전과 특별기획전을 열고 현대미술에 관련된 다양한 기획과 행사를 병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지난 6일 개관과 함께 첫 사업으로 「환기미술관 개관기념전」을 꾸몄다.여기에는 뉴욕시대(19 63∼19 74년) 작품 6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투명하고 격조높은 조형언어로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박수근·이응로 등과 함께 그 누구보다 큰 자리를 남긴 김환기화백은 작고하는 순간까지 뉴욕에서 작가투혼을 불살랐다.세포조직처럼,생명체의 구조처럼 광활한 화면위에 퍼져나가는 그의 작품중에도 지난 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 미 교수의 주말여행/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굄돌)

    한 나라의 문화와 주택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정립으로 유명한 미국의 라포포트 교수가 국제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이다.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그에게는 여러군데에서 강연초청이 쇄도했고,결국 회의 개막일보다 닷새 먼저 온 그는 강연회와 환영만찬의 빡빡한 일정에 묶이게 되었다.그런데도 이 육십노인은 짬이 나는대로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쳐메고는 우리나라 전통주택 답사에 나서는 것이었다. 지난 일요일도 예외는 아니었다.앞선 사흘간의 격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쉴 생각이 전혀 없었고,결국 우리 젊은 교수들 몇이서 그와 함께 온양의 외암리라는 전통주거 마을에 다녀왔다.육십여호의 잘 보존된 기와집과 초가집이 산자락에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라포포트 교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을 구속구석을 돌아보았고,연신 「멋지다」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를 감탄케한 우리의 문화유산에 우리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그날 저녁 서울로 돌아갈 일이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온양으로 내려올 때 이미 우리 일행은 일요일 행락차량에 밀려 3시간을 고속도로와 국도에서 허비했고,올라갈 때는 훨씬 더 오래 걸릴 터였다. 해거름에 온양을 출발한 우리는 끝도 없이 밀리는 차량행렬 속에 갇힌채 속수무책이었고,라포포트 교수는 「놀랍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좋게 표현해서 「놀랍다」이지 「한심하다」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그가 지니고 돌아갈 한국의 인상은 아름다운 전통한옥 마을이 아니고 주차장이 되어버린 고속도로가 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우리네 교통문제에 무슨 기발한 해결책이 없을까.라포포트 교수가 어느 풍자만화에서 보았다는대로 고속도로 위에 오갈데 없이 꽉 막힌 차량을 그대로 둔 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그위로 다시 차를 다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 산과 나/노영희 시인(굄돌)

    큰 산자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줄곧 산을 찾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울화가 치밀 때나 적적할 때나 마음속이 복잡할 때나 뭔가가 그리울 때는 언제나 산을 오른다.산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간단한 옷차림으로 북한산을 찾아 나선다.일요일마다 이 코스 저 코스로 바꿔가며 산중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다닐 때도 많고 일행과 같이 다니기도 한다.이번 산행은 승가사쪽 코스를 선택했다.더운철이라 홀가분하게 혼자 나섰다.산중에 드니 산 냄새가 났다.푸근했다.배낭을 내려놓고 폭포밑 바위에 앉아 발을 찬 물에 담그고 1시간 이상을 가만히 있었다.온갖 세상사가 다 떠오르고 지나갔다. 인간의 마음이 맑은 물과 같이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장애물은 돌아가고 날카로운 것은 안아주고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고 부드럽고 모양이 없고 깨끗하기만 한 물의 성질을 닮을 수만 있다면 한이 없겠다. 산에는 또 이쁜 잔 꽃들이 이름도 없이 널려 있었다.자랑도 하지 않고 시샘도 하지 않고 다투지도 않고무심하게 향기와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더 사랑받으려고 더 얻으려고 더 가지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냥 존재했다.그냥 숲속의 꽃으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다.헛되게 권력과 이름과 재산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잔 꽃에서 배우라」는 속엣말이 저절로 나올려고 했다. 산은 나를 쉴새없이 가르친다.또 나무들은 어떤가.나무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따스한 햇살과 물과 기름진 흙을 똑같이 나눠 먹는다.서로 기댄다.온갖 저항을 다 이겨낸다.그리고 푸르름과 그늘과 바람과 음악과 땔감을 인간들에게 선사한다. 산은 나의 어머니며 종교이며 연인이다.그 너그러움,그 함묵,그 깊이,그 아름다움에 앞으로도 계속 기댈 참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날 밤에 「너」라는 제목으로 나는 짧은 시 한 편을 썼다.『산 넘어 산/그리움 넘어 그리움/바람 넘어 바람』
  • 철쭉꽃 활짝… 지리산은 “진홍빛”/이달초 산자락서부터 곱게 물들여

    ◎해발 1,600m 세석평전 일대는 “장관”/불일폭포·노고단 진해·칠선계곡도 황홀경 국립공원 지이산이 진홍빛으로 타오르고 있다.진달래 뒤를 이어 지난주부터 산자락을 곱게 물들이기 시작한 철쭉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보는이의 마음을 행복에 젖게하는 이 철쭉의 핑크빛 행진은 이달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금강산과 같이 철따라 고운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남악이라고도 불리는 지이산.해발1천9백15m의 천왕봉을 주봉으로 반약봉(1천7백51m)과 노고단(1천5백7m)이 3대 고봉을 이루고 1천m가 넘는 봉우리만도 30여개에 이른다.행정구역상으로 전남 구례군과 전북 남원군 경남 산청 하동 함양군등 3개도 5개군 16개면에 걸쳐 있으며 동서길이가 60㎞,남북 32㎞,둘레가 3백20㎞나 되는 엄청나게 넓은 산이기도 하다. 특히 1천5백m가 넘는 제석봉과 촉대봉 영신봉 덕평봉 명선봉 토끼봉등에는 아름다운 산수화가 가는 곳마다 널려있다. 그 가운데서도 노고단의 운해 세석철쭉 반약낙조 천왕일출 벽소명월 불일폭포 연하선경 칠선계곡 피아골단풍 섬진청류등은 지이산10경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이맘때 해발 1천6백m의 세석평전을 온통 붉은 빛으로 수놓고 있는 철쭉은 비경중의 비경이며 김강산을 방불케하는 청학봉과 백학봉사이 백척단애에서 쏟아내는 불일폭포의 물줄기는 비말과 함께 오색무지개를 산하에 드리워 절경을 이룬다.그런가 하면 노고단에 피어나는 운해는 산과 계곡을 메우고 바다를 이루어 지이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을 황홀경으로 몰아 넣는다. 이와함께 세석에서 천왕봉으로 뻗어나간 준령의 기암괴석사이에 군락을 이루어 철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야생화와 원시림으로 뒤덮인 계곡의 선녀탕,폭포와 폭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칠선계곡도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릉도원에 속한다. 게다가 자가용을 이용하면 서울에서도 노고단을 하룻만에 다녀올 수도 있다.구례읍→천은사→성삼재간 23㎞의 산길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렸기 때문이다.그래서 휴일이면 노고단입구 성삼재(해발 1천90m)마루턱에는 전남북과 경남북은 물론이고 서울 경기번호판을 단 자가용들이 하루종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3㎞.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오를 수 있다.그러나 성삼재 마루턱의 주차장 수용능력이 2백여대로 좁아 관광시즌에는 차댈 곳이 없는 것이 한가지 흠이다.지난 88년에 개통된 2차선 관통도로는 구례 천은사로부터 성삼재 영마루에서 노고단 등산로로 연결되며 하산길은 심원계곡의 비경지대인 달궁→반선→산내로 내려가 남원읍으로 진입한다. 따라서 서울에서는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남해고속도로 곡성인터체인지에서 곡성쪽으로 내려 구례까지 간 다음 이 관광도로를 따라가면 하루해가 빠듯하지만 노고단절경을 즐길 수 있다.전주쪽에서는 남원↓주천→심원→성삼재 포장도로를 거쳐 노고단에 오른다.구례나 남원에서 1박하면 주말 1박2일로 지리산 철쭉과 화엄사 천은사 하동 쌍계사등 비경을 눈이 시리게 만끽할 수 있다.구례에서는 섬진강 은어와 산채비빔밥 등 별미를 맛볼 수도 있다.귀로에는 이지방 특산물인 작설차와 고사리,토종꿀의 쇼핑도 즐길 수 있다.
  • 산수유­초봄 알리는 노란꽃 장관(나무이야기:1)

    ◎김태욱 서울대교수·임학/열매는 한약재로… 관상수로도 인기/지리산자락 구례·남원에 군락형성 아름드리 나무아래서 아름드리만큼 큰 인물이 난다고 한다.나무 한그루는 사람의 심성을 윤택하게 하며 유형·무형의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식목의 계절인 4월부터 매주 수요일 「나무 이야기」를 장기 연재한다. 나라의 인재와 얽힌 노거수나,우리 주위의 평범한 나무의 진가,공기정화 능력을 가져 대기오염 극복의 열쇠가 될 수 있는 나무,경제성 있는 수종 등에 얽힌 이야기를 서울대 농대 김태욱교수(서울대 수목원장·한국식물원협회장)의 글로 싣는다. 사진제공 이유미(서울대부속수목원연구원),김태정박사(한국야생화연구소장). 산수유는 먼산에 아지랑이가 이는 이른 봄,농산촌 마을의 울타리 곁이나 논두렁 또는 도시의 한복판 공원에서 활짝 피어 봄소식을 알려준다. ○양성화로 중국서 전래/씨·과육 모두 대추 닮아 우리나라에서 산수유가 가장 아름답게 피는 곳은 지리산아래 마을인 전북 남원군 산내면과 전남 구례군 산동면 등이 꼽힌다.이른봄하얀눈이 깔린 먼 지리산록을 배경으로 노랗게 피어난 이곳의 산수유군락은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산수유는 한자로 산수우라 쓰며 이외에 석조,촉산조,육조,실조아수등의 한자이름도 있어 열매가 대추와 닮았다는 뜻이 곳곳에 나타난다.실제로 두 나무의 열매는 속씨(종자)와 과육 모두 매우 닮았다.꽃나무로서 꽃이 좋고 열매마저 좋은 것은 그리 흔치 않은데 산수유는 이 모두를 다 갖추고 더욱이 꽃이 귀한 시절 첫 꽃봉오리를 터뜨림으로써 그 진가가 한층 더 빛난다.산수유의 꽃은 암꽃 수꽃이 함께 피는 양성화로써 3∼4월 잎보다 먼저 피며 황색꽃이 20∼30개 모여 달린다.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20년대 우리나라 식물을 30여년간 연구한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중정)는 경기도 광릉숲에 자생하는 노거수 2∼3그루를 확인한 기록이 있고 70년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서 이 사실이 확인됐다.일본의 경우는 아직 자생종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17 22년 도입되어 심겨진 것이다. 산수유는 높이 1백m내외의 산야에서 자라며 약용,관상용,밀원용으로 많이 이용된다.이상적인 생장적지는 중부 이남의 토심이 깊고 비옥한 땅이다.햇볕을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개화결실에 큰 지장은 없다. ○강장제·차로 널리 애용 그러나 대기오염에는 비교적 약한 편이고 내한성과 이식력은 강하여 봄철 관상수로 옮겨심기 쉽다.가을엔 잎이 지는 낙엽활엽수로 높이 7m,흉고직경 40㎝까지 자라며 수령은 약2백년 된 것이 전남 구례에 수백주 식재되어 있다.약 2주간 꽃이 피고난후 8월부터 진홍색으로 익기 시작하는 긴 타윈형의 열매는 10월이 되면 완전히 익어 아름다운 관상자원이 될뿐 아니라 강장제로써 약효가 커 약용으로,또는 차로 쓰여진다.번식은 가을에 익은 열매를 따서 과육(과육)을 벗겨낸후 2년동안 노천매장하였다가 봄에 파종하면 된다.
  • 외언내언

    풍수지리의 명당이란 장풍득수의 묘처를 말한다.곧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곳.세계 유수의 대도시중에서 서울이 유독 천혜를 받은 것은 산 그것도 북한산과 한강이 있기 때문이다.산은 높고 골이 깊어 맑은 물이 흐르는 들판은 기름졌다.서울이다.◆그 북한산이 오랫동안 망쳐지고 있었다.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이 깨뜨린 것이다.쓰레기는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사람들 발굽등쌀에 억센 풀들조차 견뎌내지못했다.깊이 깊이 숨어버린 산토끼·다람쥐들이 골라먹을 알밤 도토리까지 모조리 훑어가는 사람들이었다.보통 한해 1천만명의 등산객에,국립공원측이 수거해가는 쓰레기만 4천여t에 이르렀다.◆어디 북한산뿐이었던가.한나산·지이산·설악산·계용산등 전국의 명산은 모조리 훼손돼가는 참이었다.산과 함께 산이 빚어낸 계곡과 여울,여울이 흘러드는 바다의 오염이 모두 한계에 이르렀다.무분별한 개발도 큰 몫을 했다.지리산 관통도로처럼 산허리를 뚫어 도로를 낸다든가 해서 자연을 피로하게 했다.각종 인공물을 시설할때 주변경관에 대한 배려는 물론환경영향평가조차 한 흔적이 없다.◆산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선 사람을 접근시키지 않는게 최선이다.그것이 어려우면 오래 머물지 않게하는 것이 차선.그렇다고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어 맬수는 없는 일이다.산을 보호하기 위해 산에 가지말라는 일은 돈을 모으기 위해 배를 굶주리라는 얘기와도 통한다.산은 찾아 가는 자연 그것이다.그래서 나온것이 산에대한 자연휴식제이다.국립공원 산역에서 취사와 야영을 금한것이다.◆그러기를 1년.산이 되살아 났다.중병을 앓던 전국 산야가 건강하게 푸르러 진것이다.그 1년만에 사람들의 산행습속도 바뀌어 자리잡았다.도시락에 과일 몇알을 곁들여 산자락에 모여앉아 새참을 나누는 관행이다.엊그제 북한산성 대남문 옛야영터에선 그동안 눈에 안보이던 땅강아지와 굼뱅이가 땅속을 비집고 나타나 「산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산이 살아난다.금수강산이 예대로 부활하는 것이다.
  • 청기와에 푸른 단청… 전통의 멋 물씬

    ◎청와대 새 본관 어떻게 꾸며졌나/중앙홀 좌우에 문무조화 벽화로 장식/조선총독부 옛 건물은 52년만에 역사속에/대지 조성때 「천하복지」 암각 나온 명당 국정수행의 최고기관인 「청와대」가 신축되었다.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본관건물이 정통한옥양식으로 새롭게 준공된 것이다.이에따라 일제 조선총독의 사택으로 출발했던 기존 청와대본관은 이제 역사의 장으로 묻혀지게 되었다. ○본채·별채 ㄷ자 배치 ○…4일 준공된 청와대 신본관은 북악산 산자락에 정남향으로 위치해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수 있으며 서울시내 중심가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구본관이 눈에 잘 띄지않는 후미진 곳에 있던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구본관에서 서북쪽으로 약1백50m쯤 떨어져 높은곳에 신축된 청와대본관은 경복궁 근정전지붕과 중앙박물관이 모두 발아래 높이에서 조망된다. 연건평 2천5백64평인 신본관은 중앙에 2층의 한식본채를 두고 그 좌우에 단층한식의 별채를 거느려 ㄷ자모양의 열린 쪽이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다.외형적으로는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진 것같으나 내부는 모두 같은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채와 별채의 지붕높이는 각각 28m와 18m로 팔작지붕 형태이며 섭씨1천1백도에서 구운 15만장의 청기와로 덮여져있다. 용마루 양끝에 세워진 취두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인데 이는 나라의 무궁한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건물외벽에 쓴 석재는 경기도 포천에서 나온 화강암으로 거친 정다듬으로 해서 순박한 우리맛을 느끼게 한다.외벽의 창문은 솟을빗꽃살문양의 덧문을 대 고궁의 모양을 본떴다. 대통령이 국빈을 맞을 때 직접 영접하는 본채 현관천장은 푸른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있어 한국고유미를 느끼게 한다. 본채 정면 아래쪽엔 국빈영접때 의전행사를 할수 있는 장방형의 잔디광장(1천4백80평)이 마련돼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의전행사를 제대로 할수 없었던 옹졸함을 씻게 되었다. ○집현전 학사 그림도 ○…지난 89년7월22일 착공,약 2년여에 걸친 공사끝에 이날 준공을 본 청와대 신본관은 근정전(3백평)크기의 약4∼5배가량으로 총공사비는 1백63억원. 1층(1천2백2평)에는 중앙홀·대회의실·대식당·중식당·영부인접견실등이 있고 2층(4백58평)엔 집무실·접견실·회의실·소식당등이 있다. 이밖에 창고 음향실이 있는 중층(76평)중3층(3백32평·창고)그리고 기관실·전기실및 공조실이 있는 지하층(4백96평)등이다. 1층 현관을 들어서면 대청마루의 시원한 느낌을 주는 중앙홀이 나온다.왼쪽 벽면엔 문을 상징하는 높이 3.19m 길이 21m의 행차도 벽화가 걸려있다.오른쪽에는 무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가 맞은 편의 행차도와 대칭되게 걸려있다. 중앙홀에서 왼쪽 별채의 대회의실(세종실)로 이어지는 회랑식 복도벽면에는 세종대왕업적에 관한 동판부조와 집현전 학사도가 걸려있어 전체적으로 「문」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시 중앙홀에서 오른쪽 별채의 대식당(충무실)으로 이어지는 복도벽면에는 이순신장군의 승전등에 관한 부조와 씨름도가 장식돼 「좌문우무」의 조화를 이룬다. 청와대 국무회의등이 열리게 되는 대회의실에는 군학도·흉배·일월도 그리고 훈민정음을 월인천강지곡체로 그래픽한 작품등으로 장식해 전체적으로 통치권자,국정최고 책임자가 주재하는 「어전회의장」분위기를 느끼게 하고있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2층에 오르는 계단전면에 고지도기법으로 대한민국전도를 벽화로 장식했고 천장에는 천문도를 실크프린트하여 은은하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이 늘 금수강산 우리 국토와 하늘을 생각하면서 개단을 오르내릴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2층 집무실벽면엔 황금색 대통령의 봉황문장이 벽에 새겨져있고 접견실은 순한식 가구와 장식으로 되어있다. ○고려땐 개경의 이궁 ○…청와대 자리는 지금부터 8백87년전인 고려 숙종9년(1104년)부터 당시 수도이던 개경의 이궁터로 쓰이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4년(1395년)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궁궐의 후원이 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공원화했다가 연건평 5백86평의 건물을 짓고 1939년부터 남차낭 등 3대에 걸친 총독관저로 사용했다.해방후에는 미군정이 실시된 약2년3개월동안 하지중장의 관사로 이용됐으며 48년 정부수립이후엔 이승만대통령이 경무대라 이름짓고 관저및 집무실로 사용했다.이후 윤보선대통령은 취임후 경무대라는 이름이 국민들에게 주는 인상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청와대로 개칭했으며 박정희·최규하·전두환대통령에 이어 노태우대통령도 이곳을 계속 사용해왔다. 청와대측은 노대통령의 결심을 얻어 「청와대신축 마스터플랜」을 수립,89년 5월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에 이어 7월엔 본관,8월에는 관저의 신축에 들어가 춘추관은 지난해 9월29일,관저는 지난해 10월25일에 준공됐고 집무실인 본관은 이날 완공된 것이다. 신축공사를 위해 대지를 조성하던중 관저뒤 암벽에 3백년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라는 암각이 발견(본보 90년 2월23일자 보도」되기도해 신축지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임을 입증했다. 청와대신축계획과 공사를 총지휘한 임재길 청와대총무수석비서관은 이날 『독립한지 45년이 지나도록 국가원수가 일제총독관저로 쓰였던 건물에서 집무를 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에도 안맞을 뿐아니라 민주자존에도 문제가 아니될 수없었다』며 신축배경을 설명했다. 임수석은 『우리 고유의 건축미에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미를 최대로 살리면서도 대통령집무실답게 품위있게 건축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서 『청와대가 서울중심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위치한 것 부터가 바로 보통사람시대」에 걸맞는 민주대통령의 집무실임을 뜻한다』고 부연했다.
  • 평양특별시:3(새로 쓰는 북녘지리지:3)

    ◎시내 곳곳에 닭·돼지공장등 가금업 기지/대동강 남쪽선 「만경대 신벗」·「대동 대추」 생산/사동 금탄리 유적서 신석기 유물 많이 출토 ▷산업·경제◁ 평양직할시는 기계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과 경공업의 중심지.기계공업은 운수·전기·건설·공작·정밀·방직기계 제조분야가 활기를 띠고 있다.주요 제품은 전기기관차 내연기관차 객차 화차 전차류를 비롯한 윤전기재,불도저 권양기 탑식기중기 승강기등 건설기계와 설비.또한 각종 공작기계와 베어링,전선류와 측정계기및 기구를 비롯한 자동화조작기구,방직기계와 설비,탄광설비도 생산한다. 연료동력공업은 석탄생산과 화력에 의한 전력생산이 기본.삼신 강동 흑령등 대규모 탄광과 여러 작은 탄광들을 시외곽에 거느리고 있다.삼신탄광은 1900년대 초에 개발된 탄광.석탄은 삼신 삼석 강동 승호 일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TV등 보급률 저조 평양시에는 대규모 화력발전소의 하나인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중·소규모 수력·화력발전소들이 있으며 도시건설과 산업건설에 필요한 건재공업기지도 있다.이곳에서는 시멘트 콘크리트부재 석재 요업건재 화학건재 건구 등이 생산되고 있다.시멘트는 승호,벽돌및 건설자기를 비롯한 요업건재는 강남에서 주로 생산된다. 강철 압연강재 등을 생산하는 강철생산기지도 있으며 대중의약품 예방의약품 보약등 각종 의약품과 렌트겐을 비롯한 여러 의료기구도 생산된다. 평양시의 경공업은 방직 편직 일용품 신발 식료등이 대표적인 것들.그 가운데 주도적인 공업은 방직이다.비단천 면천 혼방천 공업용천등이 생산되는데 비날론스프 아닐론 따위의 화학섬유 비중이 높다. 일용품공업은 TV수상기 냉동기 세탁기등 가전제품(북한에서는 문화용품으로 분류)으로부터 일용잡화생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보급률이 지극히 낮은 문화용품을 비롯하여 전기일용품 목제일용품 화장품 학용품 공예품 유리 도자기 악기 운동기구 완구류 등등…. 식료공업은 빵 국수 장류와 기름 고기및 남새(채소)가공품 유아식품 당과류 청량음료등을 생산한다.북한에서 가장 큰 담배공장도 평양에 있다. 평양시의 농업은 도시근로자를 위한 부식,특히 남새(채소)의 출하에 비중을 두고 있다.남새는 사동 락장 력포 형제산 삼석 대성 만경대 강남 등 변두리구역과 군에서 주로 공급된다.주요 남새는 배추 무 결구배추 오이 호박 가지 시금치 고추 파 마늘 쑥갓등 변두리로 가면서 고추 마늘을 많이 심는다. ○변두리엔 과일 단지 평양시에는 닭공장(사육시설을 공장이라 한다)오리공장 메추리공장을 비롯한 가금업기지와 큰 규모의 돼지공장을 비롯,소기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여러 공장과 목장이 있다.만경대 닭공장,평양 돼지공장이 대표적. 평양시의 변두리 구역과 군 곳곳에는 과일생산기지가 조성되었다.력포구역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남쪽에 펼쳐진 준평원지대가 그곳.주요 과일은 사과 배 복숭아 포도 오얏 살구 양벗 밤 대추 딸기등.「평양바마」「덕동대추」「만경대신벗」은 예부터 평양 명산물로 이름나 있다. 알곡(곡식)도 적지 않게 생산된다.벼 강냉이 콩이 주종.벼는 강남 락랑 사동 력포 만경대 형제산 일대에서 생산되며 강냉이는 상원 강동등 남부에서 주로 생산된다.팥녹두 완두도 심는다.두단 보통강 평천 중화등지의 국영 양어장에서는 잉어 붕어 숭어 뱀장어 초어 화련어등을 기른다. ▷명승·유적유물◁ 시 한가운데 흐르는 대동강을 비롯,보통강 합당강 순화강과 그 주변에 솟은 산자락,곳곳에 펼쳐진 녹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평양특별시의 경관은 상당히 아름답다.특히 대동강 기슭에 가파른 절벽을 이루면서 솟은 만경봉 모란봉 대성산 룡악산 릉라도는 절경으로 이름나 있다. 또 평양시에는 유물과 유적지도 상당히 많다.그 가운데서도 구석기시대 전기동굴유적인 상원군의 검은모루유적과 같은 시대의 중기유적인 력포구역의 대현동유적은 최고(최고)의 유적.사람의 뼈화석과 뼈로 만든 각종 도구들이 출토된바 있다. ○안학궁 궁터만 남아 사동 구역 금탄리유적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공구 농기구 어구 질그릇등은 상당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것으로 평가된다. 평양시에는 고구려시대의 유적이 특히 많은데 그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안학궁 대성산성 평양성,력포구역 무진리에 있는 동명왕무덤등이다.안학궁은 중궁을 비롯한 5개의 건축군으로 이뤄진 굉장히 큰 왕궁이었는데 지금은 궁터만 남아있다. 대성산성은 고구려가 서기 552년부터 586년 사이에 쌓은 것으로 지금은 모란봉에 성의 일부가,평천구역에 성터의 일부가 남아 있다. 평양시 일원에는 또 6세기 중엽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대동문(평양성의 서문)칠성문(평양성 내성의 북문)등의 성문과 을밀대 최승대 연광정 등의 정각들이 산재,이곳이 우리민족의 힘찬기상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던 고구려의 도읍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 본업 제치고 “외화벌이 밀렵”골몰(시베리아 북한 벌목장취재기:4)

    ◎3∼4명씩 조편성,사향노루등 마구잡이/금렵기에 활동… “환경파괴” 동물연서 항의 사냥꾼 라시케비치 스테판 세묘뇨비치씨(62)는 사냥오두막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해발 1천5백m의 준봉들이 솟아 있는 하바로프스크 북부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었다. 왼손에 곰사냥용 엽총을 든 세묘뇨비치씨 앞에 모습을 드러낸 불청객은 뜻밖에도 왜소한 두 사람의 동양인이었다. 러시아말을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이들 두 동양인은 손짓발짓으로 하룻밤 유숙을 부탁한 뒤 다음날 새벽 늦가을 서리가 내린 산줄기를 타고 사라져갔다. 세묘뇨비치씨가 이들의 정확한 정체와 역할을 알게 된 것은 이들이 떠난 지 3일이 지난 뒤였다. 소수 산족인 나나이족 사냥꾼들이 와 4㎞쯤 떨어진 곳에 수십 개의 사냥용 올가미가 설치되었고 이미 여러 마리의 까발가(사향노루)가 죽어 있었다고 이야기한 뒤에야 그는 이들이 북한 벌목인부이며 소문으로만 듣던 사냥행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난 85년 10월의 이야기다. 북한 인부들의 사냥이야기는 벌목사업소의 비극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의 고봉들은 한여름에도 녹지 않는 만년설을 이고 있다. 세묘뇨비치씨가 북한인들을 만났던 지역은 이들 고봉의 북쪽 산자락. 북한의 벌채지역은 고봉 남쪽자락의 강 하나를 건넌 지역에 있다. 한겨울에도 목이 다 드러나는 누비옷과 반장화 한 켤레로 북한 인부들은 만년설을 넘고,소련인들의 감시와 곰의 날카로운 이빨 앞에 올가미 몇 개로 달러벌이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소금과 생쌀 몇 주먹으로 조선인민의 용감성을 자랑하기에는 시베리아의 기후와 지형은 너무 거칠다. 하바로프스크 국립 동물 및 어류연구소는 80년대 이후 해마다 북한 벌목인부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법사냥 실태와 이에 따른 환경파괴를 관계요로에 진정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동맹관계라는 이유 하나로 이 같은 연구소의 진정은 모두 휴지통으로 들어갔다고 알렉산더 바탈로브 소장은 회고하고 있다. 바탈로브 소장은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여론 반영환경이 달라지면서 중앙정부에서 하바로프스크지역 주민들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고 불법사냥에 대한 감시와 밀수품 검색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인부들의 사냥은 주업인 벌목사업보다 오히려 더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볼멘 설명이다. 바탈로브 소장의 이야기다. 『함정과 올가미를 놓아 잡는 북한 인부들의 사냥은 장난이나 부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3명 또는 4명 단위로 사냥을 다니는 것에서 우선 그렇고 실제로 우리는 이들이 명령과 복종에 의해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여러 가지 증거를 갖고 있다. 그 중에는 북한 인부들의 육성증언도 들어 있다』 바탈로브 소장은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몇몇 벌목인부로부터 불법사냥현장에서 이들이 상부의 명령에 의해 사냥에 나서고 있음을 확인하는 녹음을 몇 차례 채증했다고 말했다. 사향노루의 배꼽은 소련에서 기껏 화장품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아시아권에서 사향은 때론 생명의 영약으로,때론 사랑의 묘약으로 예전부터 한방가의사랑을 받아온 귀물이다. 특히 홍콩과 일본에서 이들 사향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북한 인부들이 조직적으로 사향노루 사냥에 나선 것으로 소련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의 암거래상들은 동양여행객들에게 사향노루 배꼽을 g당 15달러 내지는 20달러에 판매한다. 성장한 사향노루 수컷은 20에서 30g의 사향을 갖고 있고 달러로 치면 산지에서만 3백 내지 6백달러의 값어치가 있는 셈이다. 『북한 벌목인부들은 지나칠 정도로 산을 잘탄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북한이 사향노루 사냥을 위해 특수부대 출신들을 시베리아에 파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한 번은 밤중에 다른 사냥꾼과 함께 뗏배를 타고 강을 내려오다 불을 지피고 있는 북한 인민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이들은 마치 네발짐승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30대부터 사냥을 하고 있다는 세묘뇨비치씨는 자신이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냥꾼으로부터 북한 벌목인부의 시체가 강가에 밀려나 있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소련당국의 눈을 피해 사냥을 해야 하는 북한 인부들은 간소복차림으로 약간의 생쌀만을 지참하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사냥금지기간인 초봄부터 늦은 가을까지에 주로 사냥을 한다. 그래야만 소련 사냥꾼을 만날 가능성이 적고 그만큼 적발의 위험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사냥 오두막을 이용하기도 쉬울 것은 당연하다. 북한 벌목인부들에게는 사냥용 엽총이 없다. 하바로프스크 자연보호 관계자들은 북한의 주사냥구역에 호랑이만 3백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그 이상의 곰 역시 서식하고 있다. 북한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베르히 브렌스키지역은 도보로 북한의 단위사업소인 중대본부까진 10일 가까이 걸려야 하는 곳이다. 간편한 복장,생쌀만으로 견디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험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중대본부는 5명의 시신이 모이면 본국으로 송환한다고 하바로프스크 거주동포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 동포들은 사망자 중 상당수가 벌목이 아닌 사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 아파트보일러 폐유/마을 뒷산에 파묻어/코오롱건설

    【대전】 코오롱건설이 대전시 서구 내동에 건설한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벙커C유 폐유를 야산에 몰래 버린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 2일 대전시와 주민 등에 따르면 코오롱건설은 지난해 9월 7백30가구분의 아파트를 건설,입주시킨 뒤 아파트보일러에서 나온 폐벙커C유를 단지후문 밖 야산자락에 구덩이를 파고 몰래 묻었다는 것이다. 폐유가 묻힌 곳은 30여 가구의 주택가에서 50여m 떨어진 곳으로 산책하던 주민들이 매립한 폐유가 흘러나온 것을 발견했다.
  • 남산 옛모습대로 복원/서울시 확정/소나무숲 조성·동물 방사

    ◎외인아파트·안기부 등 연차 이전/산책로 만들고 민속마을 재현도 수도 서울의 상징인 남산이 제모습을 되찾게 된다.〈관련기사3·17면〉 서울시는 17일 훼손되어 온 남산을 본래의 모습대로 되살리기 위해 이 일대 국가안전기획부 군부대 외국인아파트 남산 맨션아파트 등 10개 부적격 시설을 오는 93년까지 단계적으로 이전 또는 철거,시민의 문화공원으로 조성키로 했다. 고건 서울시장은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무질서한 개발로 자연경관과 제모습을 잃고 있는 남산을 복원토록 하라』는 지시를 받고 관련부처와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계획안」을 마련,이날 노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고시장은 이 보고에서 남산공원 구역내에 있으면서 경관을 해치거나 훼손시키고 있는 시설물등을 93년까지 이전시켜 공원기능을 되살리고 그중 일부 건물은 도서관·전시관 등 공공문화용도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전대상 시설은 중구 예장동 남산 1호터널 입구의 국가안전기획부(93년 이전),필동 수도방위사령부(90년〃),남산정상에 있는 미군 통신부대와 미군 종교휴양소(96년〃),국악고등학교(91년〃) 등이며 용산구 이태원 일대의 외국인아파트 2동,남산 맨션아파트 1동,외국인 임대주택 43동,개인주택 13동 등은 92년까지 철거된다. 이들 시설이 들어서 있는 총면적은 8만1천6백33평으로 남산공원 전체면적 89만6천평의 10%에 해당된다. 서울시는 이들 시설물을 이전 또는 철거한 뒤 남산을 3개 지역으로 나눠 산 정상부분은 도시환경 전망지구,산 허리부분은 자연생태보전및 학습지구,산자락부분은 문화·역사·체육수련지구로 조성키로 하고 공원주변의 경관관리를 위해 공원전망을 가로막는 호텔·대형빌딩 등 고층건물의 신·증축을 억제키로 했다. 지구별 구체적 활용계획을 보면 안기부 기존건물은 도서관·전통문화연수관 및 체육시설로 이용하고 수방사 자리는 민속마을 「남산골」을 재현하며 미군 통신대자리는 조망시설 설치,외국인아파트 부지에는 수목원·소동물원 등이 건립된다. 서울시는 이와함께 남산 전체가 애국가의 가사처럼 소나무 위주의 산이 되도록 각도 소나무단지를 조성하고 ▲산토끼·다람쥐·사슴 등 야생동물을 방사해 생태학습로를 만드는 한편 ▲식목원과 화훼공원·약초원을 건립하고 ▲서울성곽(시립도서관∼신당동)을 잇는 역사탐방로를 설치할 계획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