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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열사 열전:5/金景淑 YH무역 사원(정직한 역사 되찾기)

    ◎자본·독재 억압에 처절히 항거/빈농의 딸… YH무역 폐업 맞서 몸던져/노동자 권리 확보 ‘값진 희생’으로 빛나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던 79년 8월 11일 새벽 2시.세번의 자동차 경적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깼다. 순간 마포 신민당사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000여명의 경찰들이 4층 농성장으로 진입,곤히 잠들었다가 깨어 황망히 대피하려던 YH노조원들을 에워쌌다. 경찰은 여공들과 신민당 당직자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한명씩 대기중인 ‘닭장차’에 쑤셔넣었다. 그러나 2시간여 전까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결의문을 읽던 金景淑 노조 상임집행위원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후 당사 뒤편 지하실 입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을 거뒀다. 경찰은 그녀가 전경들이 진입하자 왼팔동맥을 끊고 투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도시산업선교회를 사건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文東煥·印名鎭·徐京錫 목사,李文永 전 고대교수,시인 高銀씨 등을 구속했다. YH사건은 70년대 노동운동의 정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金景淑 열사가 있었다. 70년대를 열며 全泰壹 열사가 노동운동의 암흑기를 깨고 그 싹을 틔웠다. 그 위에 70년대 노동운동의 기틀이 다져졌고 이를 지키려는 민주노조의 치열한 저항의 절정이 바로 YH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여야의 극한 대립을 불러와 당시 金泳三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산·마산사태,10·26사건이 터지며 유신독재는 막을 내렸다. YH노조 농성의 직접적 원인은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방침을 철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YH무역은 66년 재미교포 張龍虎씨가 100만원의 자본금과 10명의 종업원으로 시작한 가발수출업체였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70년 4,000여명의 종업원을 둔 국내 최대 가발업체로 성장했다. 한 밑천 잡은 張씨는 동서 秦東輝씨에게 사장자리를 물려주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 지사를 통한 무역을 구실로 여공들이 피땀흘려 만든 가발 300만달러어치를 미국에서 처분,그 대금으로 현지에서 백화점과 목장,빌딩 등을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秦씨도 YH무역에서 얻은 수익금으로 해운회사를 차려 회사를 떠났다. 거기에 가발수출업이 사양화하고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회사는 79년 4월 폐업공고를 내기에 이르렀다. 76년 결성된 YH노조는 청계피복노조,동일방직노조 등과 함께 몇 안되는 ‘민주노조’중 하나였다. 당시 사회운동의 큰 쟁점거리이기도 했던 ‘민주노조’는 대부분의 산별·단위노조가 어용화한데 비해 노동자 권리를 위해 독자적 활동을 하는 노조를 의미했다. 金景淑씨는 YH무역에 민주노조가 있는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景淑이처럼 똑부러지게 일하고 노조활동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어려운 생활중에도 항상 명랑했고 후배들이 무척 따랐지요” 당시 노조사무장이던 朴泰連씨(44·주부)의 회고다. 그녀는 전형적인 빈농의 딸이었다. 세마지기의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빚보증을 잘못 서 그나마 날려버리고 광주시내에서 행상을 하다 그녀가 8세때 세상을 등졌다. 어머니가 날품을 팔아야 했기에 그녀는 세살 터울의 남동생 俊坤씨(38)를 돌보며 자랐다. 국민학교 5학년부터 방학때면 누에고치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다가 73년 15세가 되던 해 상경했다. 그녀는 일기에서 “내가 배우지 못한 공부를 가르쳐서 동생만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서울생활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지독한 저임과 그나마도 떼어먹는 악덕기업주들이 많았던 것. 그때부터 모순덩어리의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젊고 싱싱한 나이에 우리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장 안에서 여러 형태의 억압을 받으며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혼탁한 먼지 속에 윙윙거리는 기계소리를 들으며 어언 8년동안 남은 것은 병밖에 없다.…” 20여년이 지난 오늘 YH사건과 金景淑 열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당시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과 오늘의 IMF사태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경제적 고통의 터널은 닮은 꼴이다. 그때 자본세력과 결탁한 독재정권은 폐업·해고 등으로 그 부담을 주로 노동자들에게 지우려 했다. 金景淑씨는 그것에 저항한 격렬한 투쟁 속에 희생된 ‘한떨기 꽃’이었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의 자본세력도 임금을 낮추고 정리해고를 실시하고 있다. 고도성장을 위해 희생한 노동자들은 오늘의 IMF위기에서도 가장 큰 희생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YH사건과 金景淑 열사의 죽음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일 수만은 없다. ◎유가족·동료들은 지금…/모친 최영자씨=아직도 딸 가슴에 묻고 ‘회한’/동료 최순영씨=법률상담소 내 권익보호 앞장 “아무것도 모르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해부렀지” 어머니 崔英子 여사의 회한의 넋두리다. 崔여사는 딸이 죽고 이틀후 강남시립병원에서 죄인마냥 ‘3분만’에 장례를 치러야 했다. 뼛가루마저도 무등산자락에 뿌렸다. ‘딸이 큰 죄를 지었다’고 하는 경찰이 시키는 대로 한 것. “너무 억울하고 불쌍하게 갔어요. 야무지고 착해 모두들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는데…” 崔여사는 지금도 돈많이 벌어 동생 학비 대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하던 딸의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딸이 월급을 제대로 못받아 풀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동생학비와 생활비를 보냈다는 것을 알고 통곡했다고. 누이가 보내준 돈으로 전남기계공고를 다녔던 俊坤씨는 “그때는 잘 몰라 누이가 불쌍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결혼해 딸 셋을 두고 있으며 광주 금호타이어에 다니고 있다. 당시 구속됐던 노조지부장 崔淳永씨와 사무장 朴泰連씨는 부천지역 여성노동자회 회장을 차례로 맡는 등 노동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崔씨는 또 부천시의회 의원을 지내고 현재 가정법률상담소를 내 여성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강제 귀향조치됐던 230여명의 여공들은 대부분 가정주부가 됐고,87년부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당시 배후 ‘불순세력’으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던 徐京錫·印名鎭·文東煥·高銀·李文永씨는 그 이후에도 활발하게 인권·통일·민주화 운동을 벌였으며 다시 감옥에 가기도 했다. ◎동료 崔淳永씨 인터뷰/“모순된 시대상황 고발”/독재정권에 우리 힘 과시… 민주노조 존재 확인/“폐업 철회 아니면 죽음을” 혈서 보고 모두 놀라 “景淑이의 죽음은 모순적 시대상황에 대한 고발이었고 민주노조의 존재 확인이었지요” 당시 노조지부장이었던 崔淳永씨(46)는 “독재정권이 그렇게도 깨뜨리려는 민주노조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YH사건에 의미를 부여했다. 崔씨는 당시 농성하는 노조원들도 이미 폐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면서,“그러나 민주노조를 깨뜨리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金景淑 열사의 투혼은 무서웠다고 한다. 4월 농성을 처음 시작할 무렵 그녀는 ‘폐업철회 아니면 죽음을’이란 혈서를 써서 노조회의에 들고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또 “어차피 깨지는 싸움이지만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다른 민주노조들을 위해 순순히 물러나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농성장소를 신민당사로 옮긴 것도 사건을 최대한 공론화하여 정권에 큰 부담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崔씨는 경찰이 배후세력으로 도시산업선교회를 지목하고 그들의 지시를 받아 자살조까지 만들었다는 등 터무니 없는 사실을 조작해 순수한 여공들을 욕보였다고 분개했다. 또 여공들을 각 도별로 버스에 태워 강제 귀향시키고 부모에게는 협박조로 ‘딸조심’을 시켰다고. 이로 인해 얼마간 대다수 여공들이 ‘가택연금’을 당했고,부모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崔씨는 뒷얘기를 소개했다. □金景淑 열사 연보 ▲1958년 전남 광산군 비야면에서 출생 ▲1965년 아버지 김용귀씨 병으로 사망 ▲1972년 광주 남국민학교 졸업. 누에고치 공장에서 일함 ▲1973년 상경. 한풍섬유 태진산업 등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함 ▲1976년 YH무역 입사 ▲1977년 노조가 세운 야학 ‘녹지중학’입학해 2년후 졸업. 검정고시 준비 ▲1978년 노조 소그룹 ‘차돌이’ 그룹장으로 활약 ▲1979년 8월11일 새벽 농성 진압중 신민당사 뒷편 지하실 입구에서 쓰러진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2시30분 쯤 숨짐.
  • 가나아트센터/평창동에 새 보금자리

    ◎프랑스 유명 건축가 설계/전시장 3개·야외공연장 갖춰/개관기념 장욱진·박생광·권진규전 국내 메이저화랑인 가나화랑(대표 이호재)이 평창동에 최근 단독건물을 지어 이전했다.북한산자락 아늑한 주택가에 자리한 새 보금자리의 이름은 ‘가나아트센터’. 지난 1일 문을 연 ‘가나아트센터’는 연건평 850여평에 지하 2층,지상 2층 규모로 전시장 3개,야외공연장,레스토랑,세미나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장 미셀 빌모트가 설계한 이 건물은 건물 외관 뿐만 아니라 의자와 조명,사인보드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감각을 불어넣었다. 전시장은 각각 60∼100평 크기이며 천장은 3.1∼3.5m 높이로 대작 위주의 현대미술을 수용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했다. 야외공연장은 연주회와 연극공연,영화상영,패션쇼,애니메이션,첨단매체를 이용한 이벤트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꾸몄고 빌모트의 이니셜을 딴 ‘빌레스토랑’도 신라호텔과 위탁계약을 맺어 깔끔한 분위기와 최고급 요리를 제공한다. 20일까지 갖는 개관 기념전시는 3개 전시장에서 작고작가 회고전 형식으로 열린다.‘거장의 향기­장욱진 박생광 권진규’이란 제목의 전시에는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장욱진(1917∼90) 권진규(1922∼73) 박생광씨(1904∼85)등의 작품이 출품된다. 엽서 크기만한 화면에 밀도있는 회화세계를 추구한 장욱진씨의 작품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먹그림 50여점으로 이제까지 발표된 적이 없는 미공개작들이다. 박생광씨 회고전은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수묵채색화 11점이 나온다.한국의 무속이나 불교,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던 박씨는 빨강 파랑 등 한국의 전통 오방색을 기조로 전통과 현대의 회화기법을 접목시킨 독특한 화면을 선보인다. 권진규씨의 작품전에는 테라코다 10점을 비롯,소조 조각 드로잉 등 미공개작품 60여점이 전시된다.특히 조각은 흉상,마스크,전신상,동물상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그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재조명한다.한편 이번 가나아트센터의 개관을 계기로 평창동일대가 인사동,사간동에 이어 서울의 대표적인 미술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부근에 토탈미술관과 환기미술관 등이 자리잡고 있고 윤명로씨 등 화가 150여명의 집과 작업실이 밀집해있기 때문이다. 전화(02)3217­0233
  • “올 단풍 곱지 않을 듯”/집중호우에 일조량 적어

    ◎예년보다 한달 가량 빨라 올 가을 단풍은 예년보다 빨리 물들지만 빛깔은 그리 곱지않을 것 같다.올 장마가 예년보다 2주일 가량 오래 지속된데다 집중호우가 겹치는 바람에 일조량 부족으로 식물이 제대로 광합성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업연구원 관계자는 27일 “식물이 여름동안 광합성을 활발히 해야 잎의 생육상태가 좋아지고 단풍이 정상적으로 물들게 된다”면서 “그러나 올해에 는 비가 너무 자주 내렸기 때문에 고운 단풍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26일까지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 10대 도시의 일조시간은 평균 1,271.2시간으로 평년(1,465시간)보다 193.8시간이나 적었다. 특히 식물 성장이 가장 왕성한 8월에는 집중호우가 계속돼 일조시간이 평년(155.1시간)의 3분의 2 수준인 101.8시간에 머물렀다. 이에 따라 예년 같으면 9월 하순쯤에야 일부 지역에서 단풍을 볼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지리산과 덕유산 등 일부 산자락에 나뭇잎이 울긋불긋해지기 시작했다.
  • 자연유적 이해 과학적 접근을/黃尙九 안동대 교수·지질학(발언대)

    고금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연을 찾으며 그 중에서도 산을 좋아한다.산은 그것의 형성역사를 간직하고 있다.입구에서부터 산자락,능선,골짜기,봉우리에 이르기까지,모두가 수천만년을 통해 다양한 작용에 의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수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은 산을 찾고 그 속의 자연을 즐긴다.그러나 대부분 구경에만 몰두할 뿐,자연속에 숨겨진 형성내력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설령 찾으려해도 숨겨진 내력을 일러줄 지침마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는 국립공원 주왕산의 빼어난 절경과 그 속에 담긴 자연유적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하여 지질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주왕산속의 모든 것은 우연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다.그것은 우주의 섭리에 의해 지구가 창출해 낸 하나의 생명체인 것이다.자기의 이력을 몸 속에 감추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겉으로 드러내 놓고 있으며 형성과정이 가지각색으로 점철되어 있다.숨겨진 주왕산의 지질역사를 과학적으로 읽어내어 관광자원화하고,지구과학의 교육장으로 활용해야만 된다. 선진국에서는 자연유적의 이해에 관한 지침서가 다양하게 나와 각 지점마다 형성내력에 대해 과학적으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명승지 입구에는 그것의 아름답고 멋진 경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이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늘 대하는 산과 바위에 감춰져 있는 수천만년의 신비와 역사를 모르고 겉모습만을 즐기는 것이 우리의 관광문화 수준이요,비과학적 생활 습관이다.자연과학의 이해는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눈으로 얻어져야만 하는 것이지,책에 의한 암기식으로 습득해서는 자연과학 발전에 한계가 있다. 기암 절벽,자연 동굴과 여러 폭포를 비롯한 주왕산 속에 간직된 갖가지 지형적인 내용과,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현무암,안산암,유문암,응회암,화문석 등이 지닌 지질학적인 내용을 안내 책자로 만들어 일반인에게 알려야만 한다. 이 지침서에 따라 주왕산에서 접할 수 있는 것에 물음표를 던져 그 속에 깃든 지구과학의 세계를 되새겨 볼 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본질을 발견한다는 것은 과학의 참정신을 찾는것이고,참정신을 찾을 때 오늘날에 맞는 문명의 재창조가 이루어진다.그렇게 하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즉 국토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우리의 자랑인 금수강산을 사랑하는 마음도 커질 것이며 노벨상을 위한 영재교육도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 철조망 너머 금강산이‘오라’손짓(휴전선 해빙의 시대 오는가:下)

    ◎鄭周永씨 訪北후 통일전망대 관광객 북적/명파리 주민들도 “北行 뱃길 열린다” 부푼꿈 그리운 금강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은 더욱 가까이 보였다. 꿈속에서나 갈 수 있었던 세계적인 절경 금강산.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꿈이 아니다. 자연예술의 극치인 아름다운 금강산을 현실세계에서도 갈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금강산을 향한 유람선이 오는 가을 속초를 출발할 가능성이 높다. 鄭周永 현대명예회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금강산개발에 합의한 후 현대그룹은 9월에 유람선을 띄우겠다고 밝혔다. 북한으로 떠나는 유람선은 한국관광객 뿐만이 아니라 남북 해빙의 염원도 함께 태우고 떠날 것이다. 유람선의 고동소리는 남북 화해의 새시대를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모두 바라고 있다. ○남북 화해 새시대 바라 24일 하오 기자가 찾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동해안 절벽위의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의 금강산을 보기 위해 몰려든 방문객들로 북적댔다. 이들은 이미 금강산을 갈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지못해 실망스런 표정들이었지만 망원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는 이들의 눈길에는 애절함이 배어 있었다. 우뚝 솟은 비로봉을 경계로 펼쳐진 외금강 신금강 해금강 내금강의 아름다운 자태에 지그시 눈을 감는 모습도 보였다.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금강산에 대한 화답인 듯 했다. 통일전망대에서 해안쪽으로 내려오다 인근에 사는 촌로를 만났다. 명파리에 사는 李씨(76)라고만 소개한 그는 “광복 당시 양양에서 금강산 자락을 거쳐 원산으로 가는 동해 북부선 기차가 지나 다니던 터널을 보기 위해 왔다”며 “죽기 전에 철길이 다시 복원돼 기차로 금강산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회에 젖었다. 그가 안내하는 터널은 6·25의 상흔을 간직한 채 잡초들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터널입구 벽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조국’이라는 글자가 분단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철로 흔적 조차 없어 양양쪽으로는 아예 철로의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려웠다. 방문객들마다 녹슨 철로라도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는 게 안내장교의 얘기였다. 李씨에게 이곳을 자주 찾느냐고 묻자 “최근까지는 거의 찾은 적이 없었다”며 “그러나 鄭周永씨의 방북으로 늙은이의 마음이 동요된 탓인지 요즘은 가끔 들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명파리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 콩밭에 가있을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명파리 마을은 동해안 38선에서 북으로 84㎞지점인 통일전망대 바로 밑에 위치한 140여가구의 자그마한 동네. 대부분이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며 휴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내집 드나들 듯 했다. 금강산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것도 이유가 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李씨의 말대로 들뜬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도로 옆쪽으로 쭉 늘어선 음식점이나 상점 등의 간판이름이 눈에 쏙 들어왔다. 평양,함흥,금수강산,원산 등 북한지명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96년 명파리 마을이 민통선 지역에서 해제된 뒤부터 생긴 변화중의 하나라고 귀뜀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들은 “금강산은 마을 노인들의 옛 휴식처였다”고 남북 해빙 움직임을 반겼다. 동네 노인정을 금강산자락 밑으로 옮겨야 되지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鄭周永씨가 부풀린 기대감 탓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다. ‘그리 쉽게 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李성찬씨(65)는 “북한이 그동안 한 짓을 보면 언제 마음이 변할 지 모르겠다”며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며 못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李씨는 명파리 사람들이 원하는 ‘금강산구경’이 뭐겠느냐고 되물었다. “명파리 사람들은 매일 매일 분단의 아픔을 삼키며 삽니다. 한 때의 급류타기가 아니라 모두가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신뢰의 분위기가 더 중요합니다” ○마을노인들 옛 휴식처 그는 “鄭周永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잠수정이 발견된 것을 보면 남북화해에 대해 아직은 섣불리 착각에 빠져 들 때가 아닌 것 같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도 “철조망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이 꿈에만 그리는 ‘금단의 땅’은 아닐 것”이라며 “鄭周永씨의 방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지속돼온 남북관계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6·25가 터진지 어언 48년. 홍안의 나이는 반세기의 나이테를 더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명파리의 노인들에게 금강산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녹슨 철길이 다시 놓이고,속초항에서 출발하는 금강산 관광유람선의 고동이 울리는 그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 ‘명파리 마을’사람들. 분단을 아픔을 뒤로 한 채 이들의 마음은 벌써 금강산에 가 있는 듯 하다.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탁 상흔도 그대로 ◎“분단 현실 한스러울 뿐”/6·25 당시 북한군 철교 폭파장면 생생/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 상흔도 그대로/배봉리주민 朴在奉씨 “금강산 구경요. 그 좋죠. 조만간 갈 수 있다니까 아마도 내가 제일 먼저 갈 겁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배봉리에 사는 朴在奉씨(83)는 금강산 얘기가 나오자 어린애처럼 즐거워 했다. 한평생을 여기서 살아왔기에 금강산에대한 일화는 몇날이 걸려도 얘기를 다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朴씨가 사는 배봉리는 통일전망대 아래의 명파리와 불과 1㎞ 남짓 떨어진 곳으로 6·25 당시 동네 개천가 앞의 철교와 터널이 북한군의 폭격으로 폐허화됐던 곳. 철교 기둥에 박힌 총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신 담배를 빨아들인 뒤 말문을 연 그는 “비로봉 구룡폭포 내금강 외금강 등 금강산은 안 가본 데가 없다”며 “못가는 안타까움보다는 가로막힌 현실이 더 한스러울 따름”이라고 분단의 아픔을 토로했다. “보통학교 시절 금강산을 가기 위해 친구들을 많이 꼬드겼어요. 인근 사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삼일포역에서 내린 뒤 걸어서 온정리로 들어갔지요. 한두어시간 걸렸나요. 그리고는 원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지요. 명산에 들어갈 때는 몸을 단정히 해야 하거든요”이어 “금강산에서 친구들과 날밤을 새기가 일쑤였다”며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마다 들르던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수시로 들락거리던 금강산에 발길을 끊게된 것은 8·15광복과 함께이곳이 공산당에 접수되면서부터. 감시가 워낙 심해 놀러 다닐 분위기가 안됐다. 그러다 6·25를 맞으면서 금강산은 추억속으로 들어갔다. 일제시대 동네앞 철교를 놓을 당시 잡부로 공사일을 한 적이 있는데 6·25때는 북한이 양양으로 가는 이 철교를 부수기 위해 폭격을 한 현장도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옛 친구들이 모두 저승으로 가 금강산을 다시 찾는데도 혼자 밖에 갈 수 없게 됐다”며 “한평생 이곳을 지킨 노인네로서 느끼는 점은 부서진 철교가 다시 복원될 때 분단의 역사는 진정 그칠 수 있다는 확신뿐”이라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렸다.
  • 울창한 숲 오솔길엔 옛 선비 발자취/새들도 쉬어 가는 문경새재

    ◎1∼3관문 산세 뛰어나고 곳곳 쉼터에 의자·약수/조령산 휴양림·안동 하회마을·수안보 지척에 【수안보=任泰淳 기자】 문경새재 3관문의 아침은 요란하다.숲속에서 하루밤을 쉰 새들이 나무가지를 옮겨 다니며 아침인사를 하기에 바쁘다. 새소리는 휘바람으로 변하고 때로는 피리소리가 된다.이름모를 새들의 읊조림은 인간이 만들어낸 빈약한 언어로는 흉내내기 조차 어렵다.새들의 지저귐은 바로 자연의 음악이다.새와 함께 하는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고 신비롭다.하루의 행복이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3관문 너머 문경쪽을 바라보면 붉은 태양에서 솟아 나오는 강열한 빛이 수목을 휘감는다.싱그럽다. 조선시대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세가지였다.추풍령을 넘거나 죽령 또는 문경새재를 지나는 것.그러나 과거길에 나선 영남선비들은 주로 문경새재를 넘었다.추풍령은 추풍낙엽이,죽령은 미끄러진다는 것이 연상돼 웅지를 품은 예비선비들에겐 기분나쁘게 들렸기 때문이다.그래서 문경새재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과거길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새재라는 이름이 붙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네가지 얘기가 전해진다.새도 넘기 힘들 정도로 험해서 새재로 불리게 됐으며 주흘산 뒤 ‘하늘재’에 대해 새로난 길이어서 새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억새가 많아 경상도 방언으로 억새를 뜻하는 ‘새’를 따 새재라고 했다고도 하며 서울∼부산을 잇는 지름길(사이길)이라고 해서 새재로 불리게 됐다는 말도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문경새재에 새가 많다는 사실.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83년부터 차량통행이 금지돼 인적이 끊어지면서 숲과 계곡이 비교적 문명의 때를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신양명하려는 선비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이 길은 요즘에는 트레킹코스 또는 극기훈련코스로 각광받고 있다.문경쪽 1관문에서 2관문을 거쳐 괴산군쪽 3관문까지는 6·5㎞의 오르막길.이 길은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찍한데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이 줄곧 이어져 도보로 행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1관문에서 3관문까지는 2시간30분에서 3시간가량 걸린다.곳곳에 옛 선비들이 다니던‘옛오솔길’이 보존돼 있어 도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숲속에는 의자와 약수터 등 쉼터가 마련돼 있어 휴식을 취할수 있다. 3관문 너머에는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있다.문경새재와 같은 권역인데도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하는 것이 불만이지만 한번 둘러볼만하다.하산길에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金玉吉 전 이화여대총장이 노년에 기거하던 금란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수안보로 나오면 이른바 우리나라의 중심이라는 중원(中原)문화권이다.월악산과 송계계곡,미륵사지,탄금대·충렬사 등 충주관광이 모두 가까이에 있다. 괴산군 연풍과 청천면으로 빠지면 쌍곡계곡과 화양계곡이 반긴다.수안보에서 이화령을 넘으면 안동 하회마을도 반나절권안에 있다.하회마을에서는 매주 일요일 한차례 탈춤공연이 열리고 있다. ◎문경새재 ‘산그림호텔’/소백산자락 그림같은 ‘가족호텔’/숙박비 저렴하고 객실 22개 분위기 아늑/소백산맥 신선봉 마주봐 별장에 온 느낌 가족들과 여행을 할때 가장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잠자리.호텔에 묵자니 부담이 솔치않고 여관이나 장급에 들어가기는 왠지 내키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수안보에서 빠져나와 문경새재 3관문쪽으로 오르다 보면 산그림호텔이 나타난다.관광업에 20년 남짓 종사해오던 李鍾完씨(57)가 지난 96년 12월 가족호텔을 지향하며 문을 연 호텔이다. 객실은 한실 6실,양실 16실 등 모두 합해서 22개다.그래서 투숙객들은 종업원들로부터 VIP(귀빈)대접을 받을 수 있다.1박에 4∼6인기준 주말 6만6천원,주중 5만원을 받고 있어 부담도 크지 않다.아침으로는 올갱이해장국(6천원)이 제공된다. 이 호텔은 이름 그대로 소백산맥의 마지막 봉우리 신선봉을 바라보며 그림같이 서 있어 마치 별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특히 소백산 등 주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좋은 방에서 설경 또는 비내리는 날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일품이다.지붕도 인근 계곡과 어울리게 곡선으로 처리했다.양식당,한식당 등 부대시설에는 그림,조각 등 수준급의 예술품과 소품들이 배치돼있어 격조와 품위를 더해준다. 李사장은 “金東吉 전 연세대 교수가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고극찬을 하며 친구들을 이끌고 벌써 8번이나 다녀갔다”고 귀띰한다.(0445­33­8814∼7)
  • 남산골 한옥촌/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남산골 딸깍발이’나 ‘남산골 샌님’은 개결이 넘치던 서울 필동 남산밑의 선비를 일컫던 말이다.‘딸깍발이’는 마른 날이나 진날이나 나막신을 신고 딸깍거리며 다닌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고 ‘샌님’은 삼순구식의 궁색한 생활에서도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하루종일 책만 읽던 생원의 고지식을 빗댄 말이다.이른바 선비는 재물을 알아서는 안되며 예의와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백이 숙제와 중국 남송때의 충신이던 악비,문천상을 본받아 인의에 살다가 인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그래선지 아무리 가난해도 두눈에선 영채가 감돌고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낙담의 빛을 보이지 않으며 사지가 꽁꽁 얼어붙는 혹독한 추위에 대고 ‘내가 이기나 추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 오기를 부린다. 실제로 이곳에 살던 중종때의 정승 이행은 공무를 마치고 집에 오면 베옷에다 나막신을 신었으며 때마침 급한 결재때문에 정승을 찾아왔던 대궐의 녹사가 동구안 초막에서 나오는 정승을 보고 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너무도 강직하여 죽음앞에서도기개를 굴하지 않던 박팽연과 연산군때의 청백리 홍귀달,성종때의 손순효도 이곳에 살면서 남산골을 ‘청빈사상의 성지’로 만든 주인공들이다. ‘남산 되찾기운동’의 일환으로 서울 중구 필동 옛 수방사터에 ‘한옥촌’이 손질을 끝내고 내달에 드디어 문을 여는 모양이다.물론 이곳에 들어선 한옥들은 궁색함과 선비의 염결로 상징되던 단칸짜리 한옥들은 아니다.본래는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박영효의 집을 비롯 양반가 서민가들이 남산의 산자락과 대칭되어 멋들어진 한옥의 선과 도도한 자연의 미를 마음껏 과시하게 된다.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한국의 멋과 전통문화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교육장이 될 것 같다. 요즘은 모두가 하나같이 가파른 생활에 쫓기는 나날이다.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 틔우려는 남산에 올라 오랜만에 봄의 정취도 맛볼겸 그 옛날 ‘딸깍발이 정신’인 가난의 초연을 실감해 보는 것도 어려운 생활을 살아가는데 한 오기일 수 있겠다.
  •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테마 탐방)

    ◎조선 서민의 정취 담긴 포근한 보금자리/전통가옥 70여호… 예안이씨 집성촌/기와집 10여채 충청도 양반집 전형/영암군수댁 전통정원 조형미 뛰어나/무형문화재 11호 지정 연엽주 유명 【아산=임태순 기자】 산자락에 초가와 기와집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다.그 앞으로 작은 시냇물이 마을을 휘감고 흘러 간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국이다.한눈에 봐도 풍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민속마을이다.조선 명종(1545∼1567)때 장사랑 벼슬을 지낸 이정이 낙향한뒤 예안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곳이다.문중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큰 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많다.그래서 지난 88년에는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외암리에는 전통가옥이 70호 남짓 된다.이 가운데 10여채의 기와집은 충청도 양반가의 전통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영암댁,참판댁,송화댁,병사댁,감찰댁 등으로 불리는 이 집들은 대개 지은지 100∼200년 정도 된다.살기에 편하도록손질이 가긴 했지만 초가집들도 옛맛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외암리의 제1경은 아마 전통 가옥보다는 돌담길일 것이다. 도로를 따라 외암리로 다가서면 멀리 송림숲 사이로 초가와 기와집이 보인다.마을앞 내를 건너면 소로를 따라 돌담길이 나타난다. 담장은 본래 외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해주고 이쪽과 저쪽을 막아서 공간을 구분해주는 것이 바로 담장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외암리의 돌담길은 폐쇄적이고 답답하기 보다는 친근함과 정겨움으로 다가온다.보는 이로 하여금 소박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느낌은 담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은 데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담장은 까치발을 해야지만 집안을 들여다 볼수 있을 정도로 왠만한 어른들의 키와 나란히 간다.안을 살짝 가리긴 했지만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 것은 아니다.안과 밖을 동시에 배려한 은근함이 배어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덧 마을 한가운데에 다다르고 마음은 고향에 온듯 푸근해진다.이런 곳에 느티나무를 빼놓을수 없다.5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가 가지를 늘어 뜨리고 기품있게 서 방문객을 맞아준다. 그저 그렇고 그런 것들이 모여 있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흡인력이 있다. 집구경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을 동쪽에 있는 참판댁은 충청도 양반가의 전형을 보여준다.민속자료 195호로 지정된 이 집은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아 지은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중문간 및 곶간채가 모여,터진 ‘ㅁ’자형의 구조를 하고 있다.집앞 대문채 앞으로 돌담을 쌓아 고샅 역할을 하게 한 것이 특이하다.중문간 앞에는 아담한 마당을 만들고 장독대 주위에는 나즈막한 돌담을 둘러 아름다운 공간의 연속을 연출한다.특히 이 집에서는 연잎,솔잎,찹쌀로 만든 연엽주가 제조돼 애주가들의 입맛을 다신다.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된 이 술은 임금이 궁핍한 백성들과 함께 하겠다며 호의호식을 거절하자 진상된 약주라고 한다.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영암댁은 전통정원이 자랑이다.전체적으로 깍고 다듬은 흔적이 많아 조경학자들중에는 일본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돌과 나무의 절묘한 배치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초가집으로는 100여년전에 지어진 오병석씨 댁을 꼽힌다.초가집으로는 상당히 위풍이 당당한데 밤나무로 기둥을 세웠다.정면 6칸,측면은 몸채 1칸에 안팎으로 반칸퇴를 둬 한채에 모든 기능을 갖추었는데 초가집이 주는 푸근함과 아늑함이 물씬 풍긴다. 마을 중심부에서 동향해 있는 장영주씨 초가는 넓게 둘려진 돌담과 옛 모습의 사립문이 어울려 순박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안겨준다. ◎개방/보존의 갈림길에 선 ‘영암군수댁’/작은폭포 연못·돌다리·정원수 환상의 조화/관광객 등쌀에 훼손 심각… 일반공개 안해 【아산=임태순 기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고 아무리 값지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이라도 장롱속에 숨어 있으면 그림의 떡이다. 충남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의 영암군수댁은 잘 짜여진 정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작은 폭포와 연못,올망졸망한 돌다리와 징검다리,침엽수와 활엽수의 조화로운 배치 등은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외암리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정문은 물론 돌담을 끼며 돌아 있는 곁문도 굳게 닫혀 있다.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너머를 힐끔힐끔 훔쳐보다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아쉽기는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들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이 집주인은 사생활 침해보다는 다른 이유로 문을 걸어 잠그게 됐다며 다소 뜻밖의 얘기를 했다. 안주인에 따르면 관광객이 한번 왔다가면 정원이 조금씩 훼손된다고 했다.나무 또는 바위틈새에 담배꽁초,휴지조각,필름통 등을 꾸겨 넣는가 하면 형상석이 부서지거나 없어진다.철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고이 가꾼 나무등걸 또는 수석에 올라가 뛰어놀기도 한다.젊은 부부들이 자녀들을 놓아 기르는 탓이다. 안주인은 “손으로 만지는 ‘촉수문화’ 때문인지 눈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손으로 만지려 든다”며 “조상들이 정성 들여 가꾼 것을 보존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게 됐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 개방와 보존의 갈림길에서 보존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장롱속의 보물이 다시 모습을 보이려면 우리들의 주의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외암리 민속마을 가는길/아산 송악면 소재지서 1㎞ 거리 위치/아산·온양서 시외버스 하루 7회 운행 아산시 송악사거리에서 공주로 가는 39번국도로 6㎞쯤 가면 송악면 소재지가 나온다.면 소재지 입구 외곽도로로 들어가 이정표대로 1㎞쯤 가면 외암리민속마을이다. 아산버스터미널 또는 온양역앞에서 외암리 강당골행 시내버스가 아침 8시부터 하오 4시10분까지 하루 7번 다닌다.40분 걸린다.외암리에 숙박시설은 없으며 아산시내에 온양관광호텔,그랜드호텔,제일호텔,도고 로얄호텔 등이 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하(세계 문화유산 순례:53)

    ◎불상·경전 가득… 세계적 ‘불교 박물관’/백궁과 홍궁엔 방 모두 1천여개/산자와 죽은자 함께 거처하는 궁전/네팔 등 라마불교 신도들 줄이어 참배 포탈라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하는 궁전이다.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죽어서도 생전에 살던 포탈라를 떠나지 않았다.이들 산자와 죽은자를 같이 경배하기 위한 순례객의 발길이 늘 포탈라로 이어졌다.티벳은 물론 사천성과 네팔,스리랑카 등에서 온 라마불교 신도들로 붐비는포탈라.달라이 라마가 앉았던 의자에 입맞추는 순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살아서 쓰는 궁전은 백궁이다.백궁은 ‘최상의 행복궁’이나 ‘영원한 생명의 궁’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달라이 라마는 백궁 가장 높은 층인 ‘영원한 생명의 궁’에서만 잠을 잤다.백궁의 금정에 올라 바라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웠다.투명한 코발트 색깔과 어울린 만년설 산자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종교적 심성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포탈라에는 다른 불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탑전이 있다.영탑은 달라이 라마의 시신을 모신 탑인데,전각안에 봉안되었다.화장한 뒤 뼈만 모아 넣어두거나 약품처리한 시신을 그대로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홍궁맨 뒤쪽 아래층의 영탑전에는 5세와 7∼9세,13세 등 다섯 달라이 라마의 영탑이 자리했다.그중에 5세와 13세의 영탑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달라이 라마 시신 모여 그 화려한 5세 달라이 라마의 영탑은 죽은지 5년뒤인 1690년에 조성되었다. 영탑은 기단에 호리병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14.85m에 이르는 탑신은 동과 은으로 만들고 황금칠을 올렸다.주옥과 산호 따위의 보석을 군데군데 박아놓아 야크기름이 타는 불빛을 찬란하게 반사했다.은이 1만량,황금이11만9천량이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13세의 영탑은 1934년에 완성되었으나 역시 찬란했다. 영탑전은 홍궁 다른 공간에도 하나가 더 있다.그 자라는 홍궁 후문께 서편강당 뒤쪽이다.달라이 라마 5세와 10세,11세와 12세의 영탑이 두 방에 봉안되었다.그런데 영탑전과 이웃한 서편강당에서는 1959년까지만해도 달라이 라마의 음성이 들렸다.그 음성은 바로 포탈라에 사는 수백명 승려들에게 들려준 달라이 라마 14세의 설법이었던 것이다. ○황금 11만9천량 사용 포탈라에서 만난 젊은 라마승은 영어로 이런 말을 했다.“이 강당에서는 59년 이후 어떤 행사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정지돼 있는 장소다”라고….그래도 포탈라에는 방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달라이 라마는 없지만 라마승과 순례자들이 켜놓은 촛불은 그냥 타고 있었다.그렇듯 몸을 불 사르는 촛불에서 오늘의 라마불교를 다시 보았다. 달라이 라마 14세가 망명한 1959년 이후 변화한 공간은 또 있다.백궁의 동쪽 정원이다.운동장처럼 넓은 이 정원에는 절기가 바뀔 때마다 승려와 티벳사람들이 천여명씩이나 몰려들었다.그러면 달라이 라마가 의례히 백궁 발코니로 모습을 드러냈다.종교의식을 베풀고나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군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그 정원이 지금은 빈뜰로 남아있다. 백궁과 홍궁을 합뜨려 포탈라는 1천개가 넘는 방을 갖추었다.이 가운데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은 30여개 뿐이었다.동쪽 정원에서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서 만난 달라이 라마 집무실도 그런 비공개 공간의 하나다.달라이 라마가 정무와 종무를 본 집무실은 명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백궁의 여러방은 ‘영원한 덕의 장소’니 하는 따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 여러방을 잇는 복도와 회랑에는 티벳사와 티벳불교사,역대 달라이 라마의 일생을 담은 벽화들이 가득했다.그리고 방마다에는 달라이 라마들이 앉았던 자리를 보존한 가운데 달라이 라마들의 소상을 세워두었다.한쪽 벽에는 닫집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다.또 다른 벽에는 경전함을 덧대어 천정 꼭대기 까지를 불경으로 채웠다.이들 경전은 티벳어,몽골어,만주어 등 소수민족 언어로 되어있다. ○30여개 방만 일반 공개 그 어마어마한 장서들은 라마불교권 학승들을 포탈라로 불러들였다.포탈라로 와서 먼지를 털어가며 경전을 넘기는 학승 모두가 불심에 흠뻑 젖은채 삼매경에 빠져있다.포탈라를 가리켜 흔히 세계적 불상박물관,또는 세계적 불교박물관이라 하는 까닭을 알만 했다.그것은 티벳불교가 정치를 손에쥔 종교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떻든 포탈라 홍궁에는여러 부처 이름을 딴 방도 곳곳에 널려있다.미륵보살전이나 천수관음보살전,관음보살전과 만다라전이 그것이다.이들 불전에서는 야크기름을 태우는 불빛속에 순례자들의 참배가 계속되었다.그 많은 부처의 상중에서도 티벳불교의 핵심은 관세음보살상이다. 그러나 관음보살전 규모는 의외로 적었다.3구의 관음보살상 가운데 한구는 키가 1m 남짓했는데 7세기쯤에 만들었다고 한다.금물을 입힌 단향목불상이다.티벳인들은 이 보살상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관세음보살 모양을 하게 된 것으로 믿고 있다. ◎여행가이드/해발 3,700m… 두터운 옷 준비를 티벳은 3천∼7천m에 이르는 고산지대다.포탈라궁이 있는 라싸도 해발 3천700m나 된다.건강한 사람도 도착 첫날은 아무일도 하지 말고 호텔방에서 누워쉬어야 할 정도다. 티벳 여행의 적기는 7·8월 두 달이다.9월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산소의 양도 10%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여행길이 더욱 고통스럽다.고산지대임을 고려,두터운 옷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외국인의 티벳행은 현지 정부의 허가증이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다.사천성의 성도에서만 라싸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다.반면 일주일에 하루(보통 일요일) 2∼3편씩 라싸에서 북경을 가는 비행기가 운행되지만 북경에서 라싸행은 없다.북경-성도 비행기는 왕복기준 2천3백위안이고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2천4백위안이다.북경서 라싸가는 비행기만도 4천7백위안(49만원상당)이 든다. 공까공항에서 라싸와 제2도시인 르카차 등으로 다니는 버스가 있다.포탈라궁은 티벳의 주요 여행코스다.매일 오전만 개방한다는 사실에 맞추어 여행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
  •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세계 문화유산 순례:52)

    ◎히말라야운산의 웅대한 ‘티벳성전’/7세기 통일티벳왕,아내 당 공주 맞아 대역사/높이 117m 폭 110m 길이 360m 13층 왕궁 중국 서장 자치구 티벳의 첫도시 랏사를 ‘태양의 도시’라 했다.만년설이 뒤덮인 히말라야산맥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해발 3천700m의 고지라 태양이 가가워서 그랬을까.사천분지와 티벳고원을 지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산맥과 히말라야의 설산이 펼쳐졌다.랏사는 그런 산자락에 둘러싸인 작은 평지위에 있다.평지 가운데 작은 산 위에서는 포탈라의 황금빛 지붕이 번쩍였다. 티벳 공까공항서 랏사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40여분이 걸렸다.산 허리를 깍아 어렵게 닦아놓은 구절양장(구절양장)의 길가 바위에는 불상들을 새겼다.그리고 5색의 타르초 깃발 너머로 티벳불교의 상징물인 코르텐(종탑)들이 시야로 들어왔다.포탈라는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설산에 안겨 있다.그러나 랏사로 들어오면 포탈라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과연 세계 10대 건축물다운 포탈라는 마포르산(홍산)언덕 위에 솟아 있다.13층에 높이 117m,폭은 110m,동·서의 길이가 360m나 된다. ○해발 3,700m 고지 위치 포탈라궁 건물 정상은 황금을 입힌 전통양식의 구리기와 지붕 5개로 이루어졌다.그리고 건물 앞에 평평한 공간을 배치했다.순금으로 도금한 번쩍이는 지붕 금정을 늘상 이고 있는 포탈리궁에서는 랏사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지난 1천여년동안 티벳인들의 정신과 육체,삶과 영혼을 지배하던 권위와 신비가 담긴 영력의 장소이기도 했다.전체 넓이가 36만㎡에 이르는 궁은 남쪽 출입구를 제외하고 성벽과 담으로 둘러싸여 바깥세상과 차단됐다.남쪽문을 나서면 곧바로 연결되는 계단이나 서쪽의 가파른 비탈길로 오를수 있다. 궁궐이 있는 마포르산 밑으로는 티벳군 총사령부의 벙커다.그리고 한변이 10여m를 넘는 대형 걸개그림 탱화를 보관해두는 거대한 창고도 마포르산 밑에 마련했다.뒷 정원격인 용왕담에는 물결이 잔잔하다. 포탈라궁은 우리 신라시대인 7세기에 건설됐다.티벳의 역사와 티벳인들의 기원을 담은 성전이자 궁궐이다.인도불교가 티벳에 들어온 것은 5세기 무렵이다.그 인도불교는 티벳 토속의 원시무속 종교인 본교와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그리고 나서 티벳 특유의 종교로 자리매김한 라마불교의 역사도 이 궁에 서려 있다.그런 곡절속에 포탈라의 주인은 세속 권력의 챔피언인 황제에서 라마불교의 일인자인 달라이 라마로 바뀌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의 거처이자 라마불교의 사원이 됐다.포탈라란 이름은 본래 ‘관음의 성지’란 뜻이다.이 궁은 티벳 각 부족과 지역을 통일,강력한 티벳왕국(토번)을 세운 송첸캄보가 631년에 지었다.처음 1천간 규모로 지었는데,당시 당나라 황실의 문성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해 이 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그러니까 포탈라궁은 세속의 티벳왕궁이었던 것이다. ○세계 10대건축물 명성 그러나 각 부족과 지방 분열로 왕권의 공백이 생기면서 세속권력까지 장악한 라마불교의 지도자가 궁을 접수했다.그뒤 왕궁이란 기능말고도 사원 기능을 추가하고 랏사 중심지에서 떨어진 산속 드레풍사원(철봉사)에 살던 달라이 라마가 들어왔다.달라이라마 5세때인 1645년 일이다.오랜 분열과 내전,벼락등으로 폐허화한 포탈라를 접수한 달라이 라마 5세는 궁의 성벽과 성루등을 재건했다. 달라이 라마 5세가 궁을 재개한 것은 정교합일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신권뿐 아니라 세속권력마저도 장악한 달라이 라마는 1690년 오늘날 사원으로 쓰는 홍궁을 따로 착공,1693년 완성했다.그리고 오늘날 라마교의 상징인 5개의 금정을 추가로 세웠다.궁의 외벽은 흰색과 붉은색을 칠해 백궁과홍궁을 구분했다.그래서 백궁은 달라이 라마가 사람을 만나고 정무를 돌보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쓰게 됐다.또 홍궁은 지금까지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궁에는 대불만도 1천구가 봉안됐다.작은 불상까지 합하면 수만점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여느 부처상과 달리 포탈라궁의 부처상은 화려했다.흥미로운 현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이 더 눈에 띄거니와 달라이 라마의 소상을 모신 각이 불상을 모신 불전에 비해 훨씬 많다는 점이다.이는 라마 불교의 특색이기도 하다.부처가 달라이 라마로 환생한 것이라고 믿는 환생설을 바탕으로 달라이라마를 생불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 거처·사원 홍궁사원의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한결같이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다.중카바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뿌리로 달라이 라마 2세가 그의 직계 제자다.지금 미국에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롯한 모든 달라이 라마들이 그의 법통을 이은 후계자인것이다.중카바는 14세기에 라마교를 개혁하고 이른바 격로파를 창시한 인물이다.그러니까 아마교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한 이가 그다. 중카바가 이끈 격로파의 승려들은 노란색 고깔모자를 썼다고 한다.그래서 황모파 또는 황교파라고 하는 이들은 라마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들 중카바와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지위가 부처에 버금갈정도로 신격화한 것도 결로파 세력이다.포탈라 홍궁에서 만난 중카바와 달라이 라마 소상들은 라마교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가를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 위구르족의 땅 신강성(중앙아시아를 가다:5)

    ◎중국면적의 17%… 사막과 산맥으로/예부터 세갈래 무역통로의 교차로·요충지/상술 뛰어나 친구사이도 흥정하는 장사꾼 중국 신강성 타크라마칸 사막을 흔히 ‘죽음의 사막’이라 했다.그 죽음의 사막에 이르면 대자연에 압도되어 인간은 왜소해질 뿐이다.타크라마칸사막이 있는 신강성은 북으로 천산산맥,남으로는 곤륜산맥이 에워쌌다.그리고 서쪽은 카라콜룸산맥으로 막혀있다.이들 높은 산자락을 빼고나면 온통 사막인 신강성의 크기는 중국 전체면적의 6분의 1이나 되었다. 그 넓은 땅에는 위그루족과 카자흐족,기르키스탄족과 몽골족이 퍼져 산다.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위그루족이 신강성의 주인이다.투루판에서 신강성 수도 우루무치까지 두번씩 갈아탄 고장난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거의가 위그루족이었다.차내 온도가 40도를 웃도는 만원 버스에서 그들과 꼬박 6시간을 함께 지냈다.그들은 불평 한마디가 없다.털털거리는 버스안에서 놀랍도록 인내심을 발휘하는 그들은 외국인에게 더 없이 너그러웠다. ○산자락 빼면 온통 사막 그 버스에는 일곱살 짜리 꼬마 승객이 탔다.로신이라는 사내아이였는데,차안이 덥고 지루한 탓인지 멋대로 딩굴었다.몸을 엄마한테 맡긴 로신이의 몸부림은 대단한 것이었으나 후덕한 엄마는 그 떼를 다 받아주었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보였던 그 사내아이의 조상은 본래 투루크의 한 갈래로 몽골지역에서 들어온 위그루라는 설이 있다.투루크,또는 돌궐은 흉노의 후예들로 모두 몽골 알타이산맥이 기원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그루족은 몽골족과 다르다는 사실이 외모에서 드러난다.흉로와 투루크는 제 나름대로 각각 대제국을 세웠던 강력한 세력의 민족이다.그토록 큰 힘을 지녔던 민족이 몽골에서 왔다면,지금 몽골에 상당수의 투루크족이 살아야 할 것이다.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로신이의 선조가 아직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비단길 한 목을 맡은 것은 분명하다.중국 서안에서 비단을 싣고 비잔틴에서 짐을 내리자면 반드시 타크라마칸사막을 거쳐야 했다.또 비잔틴과 로마의 공산품과 호탄의 옥을 서안으로 실어가는 길도 타크라마칸사막이었다.그렇듯 대상들이 동서를 오가는 목 좋은 길가에 살았던 위그루족의 상술은 뛰어났다.그것은 가히 체질적이었다. 위그루족을 장사속으로 만나지 않으면 무척 관대하다.그러나 일단 상업적인 거래라면 무자비할 만큼 안면을 바꾼다.친구 사이에서도 이익을 챙긴 흥정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라는 것이다.이슬람이 지닌 공통점이기도 한 위그루족의 상술은 물론 비단길에서 비롯되었다.농업생산에 삶을 의족한 전통적인 경사회 사람들 정서로는 헤아릴 수 없는 대목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타크라마칸은 중요한 전략요충지였다.서역의 유목민들로부터 중원을 보호한다는 것과 중국산 비단의 대외무역 주통로를 지킨다는 두가지 목적이 함축되었다.그래서 한대에 이미 신강성 장악을 서둘렀다.천산북로에는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길이,천산남로에는 오늘의 중동으로 가는 페르샤통로가 존재했기 때문에 타크라마칸을 중시했다.남쪽 사막을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합하면 신강성은 세 갈래 무역통로를 거느린 물물의 교차로였던 것이다. ○동서문화매개자 역할 세계에 위용을 떨친 징기스칸의 몽골제국 뒤에도 위그루족이 숨어 있었다.그렇듯 위그루족은 동서문화의 매개자 역할을 했다.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동양인들은 위그루족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민족인 것으로 생각했다.중국과 더불어 우리는 옛날에 위그루족을 한문으로 회홀 또는 회골이라 썼다.그리고 이슬람을 지칭하는 회회교라는 말은 위그루족이 믿는 종교를 뜻하는 것이다. 이들이 사육한 말은 중국에서 첫 손가락을 꼽는 명마였다.한대나 당대에 마(천마)라고 한 명마는 위그루말을 의미했다.그 품종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으나 비단길을 거쳐 들어온 아랍종 혈통의 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오늘날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은 아랍종 피를 받지않은 말이 없다고 할 정도이고 보면 고대 중국인들 역시 위그루말을 선호했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일대가 이슬람으로 편입한 중세 이후 이 지역은 투르크스탄이라는 통합적 개념으로 호칭되었다.그리고 신강성의 위그루는 동투르크스탄이라 불렀다. 볼세비키혁명 이후 스탈린은 범투르크주의운동을 아주 싫어했다.그래서 위그루의 땅 신강성은 급기야 소련과 중국 공산정권 사이의 주도권다툼에 휘말렸다.신강성의 석유와 광물이 두 공산세력의 각출을 유도했던 것이다. ○55년 자치지역으로 선포 그것은 20세기에 재현한 비단길 분쟁이었는지 모른다.1949년 모택동의 대장정은 신강성까지 이어졌다.1955년에는 신강위그루족자치지역으로 선포되었다.어떻든 공산정권의 중국은 1959~60년 사이에 이른바 ‘신강성 해방’을과감히 단행하고 소련과의 국경분쟁을 마무리지었다.오늘도 위그루족의 땅신강성을 가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민족분열을 절대 반대한다’는 붉은글씨 구호가 곳곳에 널렸다.위그루족의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그 표어는 이방인에게 혼돈을 안겨주었다.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에게는 조국과 민족이 얼핏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떼를 내놓았던 위그루족 꼬마 로신이가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다.로신이가 자라 중국 바깥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알게 되는 순간 지금처럼 행복할 것인가.유구한문화와 선천적 상술을 지니고 태어났을 위그루족 장래가 자못 궁금했다.
  • 중국 사천성 아미산(세계 문화유산 순례:50)

    ◎3,099m 만불정엔 운해속 비경이…/중국4대 불교성지… 주변 대사찰 산재/동식물 5천여종 서식… 생태계의 보고 아미는 아리따운 여인의 눈썹이니,산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아미산이라 했겠는가.그래서 산은 아미를 숙인 여인네처럼 구름 속에 감춘 신비한 자태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동편으로부터 나즈막한 산세로 시작한 산자락은 서쪽으로 올라가면서 병풍을 펼쳐 차곡차곡 쌓아올린듯 높아진다.아미산 정상 만불정은 백두산보다도 355m나 높은 3099m.동남쪽으론 민강과 청의강등 양자강의 지류를,북으론 성도 평원을,서쪽으론 만년설을 머리에 인 대설산을 바라보고 있다. 아미산은 낙산대불로 유명한 동능운산과는 지척간이다.행정구역은 사천성 아미산시이기는 하나 낙산시 낙산대불과 함께 묶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산 아래서 정상까지 올라가자면 50여㎞를 걸어야 했다.골마다 절이고 봉우리마다 불명이다.그래서 최고봉은 만불정이요,주변 봉우리는 천불정이라 했다.아미산은 문수보살의 도량 오대산,관음보살의 보타산,지장보살의 구화산과 함께 중국 4대 불교성지의 하나다.보살행을 실천한 보현보살의 도량인 것이다.산속 여러 절에서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모신 보현전을 어김없이 만나는 것도 이때문이다. ○서쪽엔 만년설 대운산이 아미산의 대찰인 만년사 무량전에는 동으로 주조한 보현보살상이 있다.송나라 태종때인 980년에 만든 이 보살상은 높이 7.3m에 무게만도 62t에 이르는 대불이다.비파와 공후,피리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미끈한 천인들을 그린 무량전 원형 천정의 비천도는 보현보살을 신비로운 분위기속으로 몰아넣었다.무량전의 본래 이름은 만행장엄전이었다고 한다.그런데 불에 타버려 명나라때 라마교 양식을 본떠서 그 자리에 무량전을 벽돌로 지었다.중국 전통 불교건축에 라마교 양식을 도입한 것은 파격적 불사인지도 모른다. ○청대의 강희황제도 찾아와 만년사의 역사는 우리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진나라때로 올라간다.처음에는 보현사로 불렀다.그러다 당나라 희종때 백수사로,명나라 신종때는 황제가 ‘성수 만연사’란 이름을 내렸다.만년사의 역사처럼 아미산의 절은 거의가 1천500년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아미산은 도교의 보금자리였다고 한다.그런데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 토속신앙격의 도교를 밀어내고 천하명산을 차지했다. 이 명산에는 복호사라는 절이 있다.절 이름은 다분히 도교적이다.복호사 터엔 원래 도교 사원인 도관이 있었다.도교의 명인 순양자가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를 법력으로 굴복시키고 그 터에 도관을 지었다는 것이다.그뒤 불교세력들이 도교사원은 헐어버리고 불교 사원을 지었다.오늘의 복호사다. 복호사 화엄동탑은 화엄세계를 재현해 놓은 탑파다.높이 5.8m로 된 14층의 이 동탑엔 화엄경을 설하는 부처와 그를 따르는 존자상과 함께 19만5천48자의 화엄경 전문이 봉안됐다.명나라 신종때인 1585년 주조돼 성적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만년사에 보관돼 있는 불아,패엽경,어인 등 세가지의 유물도 빼놓을수 없는 아미산의 보물이다.어인은 명나라 신종이 하사한 것으로 신종의 어머니는 아미산 만년사를 자주 찾았다는 것이다. 아미산 불교의 본산격인 보국사에서는 다종교사회의 갈등을 해소키위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보국사의 원래 이름은 회종당.1615년 명나라 신종(만역제)때 세운 이 절에는 불교의 보현보살,도교의 광성자,유교의 여러 성인들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유·불·도 3교를 받들어야 했던 위정자들의 통치술이 보인다고나 할까.어떻든 회종당은 청나라가 들어서고 강희황제에 이르러 이름을 보국사로 바꾸었다.종교세력도 나라의 은혜를 느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런 조치를 내리고 충을 강조했던 것이다.지난 1930년대 일제의 침공을 피해 중경에 와 있던 장개석은 훙주산 빈관에 머물며 늘 보국사를 찾았다.절 한 모퉁이엔 그가 ‘보국충정’이라고 쓴 현액이 아직도 걸려 있다. 아미산 절경의 하나가 청음각 언저리다.일찍이 진나라때 시인 좌사가 “어찌 악기가 필요할까.이곳의 맑은 물 흐르는 소리로도 족하구나”라며 경탄했던 곳이다.1702년 청의 강희황제는 흠차대신을 보내 아미산 여러 사찰에 경서 등 황제 하사품을 전달하는 거창한 의식을 청음각에서 베풀었다.그래서 접어정이라 부르기도 한다.강희황제 자신도 여러차례아미산을 찾아왔다.보현보살이 흰 코끼리를 데리고와 흐르는 개울에서 목욕을 시켰다는 세상지 역시 절경이다. ○입구 ‘천하명산’현판 돋보여 아미산은 묏부리만을 삐죽 들어낼 뿐 늘상 운해에 묻혀 있다.그래서 산밑이 아열대일때 중턱은 온대다.그리고 산꼭대기는 한대기후라서 아미산은 식물들이 군락지를 이루었다.알려진 식물만도 5천여종이 넘는 생태계의 보고다.여름철이면 산길에 원숭이들이 나와 등산객들에게 장난을 걸기가 일쑤다.깊은 산속에 들어서면 귀여운 팬더의 재롱을 볼 수 있다. 이백은 아미산을 이렇게 노래했다.‘촉국엔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이 많지만 아미산에 비길 바가 아니구나’(촉국다선산 아미요난필).아미산을 떠나면서 산입구에 우뚝한 현판 곽말야의 글씨를 한번 더 돌아보았다.현대중국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그가 쓴 ‘천하명산’이란 글씨.아미산은 과연 명산이었다. ◎여행가이드/복경∼성도 비행기편 성도∼아미산 버스로 아미산 출발지는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로 잡는 것이 좋다.성도까지는 북경이나 상해에서 매일 4차례이상의 비행기편이 있다.비행기요금은 북경기준 11만5천원.북경∼성도까지 기차편도 있으나 가장 빠른 것이 31시간이나 걸린다. 보통 아미산을 갈때 1시간거리인 낙산의 대불(10월27일자 11면 참조)을 거쳐 간다.성도에서 낙산이나 아미산까지는 각각 장거리 버스가 다닌다.성도의 신남문 장거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성도에서 미산현을 지나 협강현에서 낙산과 아미산으로 갈라진다.대략 4∼5시간이 소요되며 비용은 우리돈 3천원내외다.아침 일찍 성도를 출발,낙산대불을 관람하고 발길을 재촉하면 땅거미가 질무렵 아미산지역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경로다.
  • 사색의 계절/겨울의 길목 11월…가볼만한 억새·갈대 군락지 7선

    ◎산등성·호수가·해안… 은빛파도 물결이…/인천 덕적도­갈대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해안 절경/정선 민둥산­해발 1,116m 조화이룬 억새숲 장관/순천 해안가­붉게 물들인 낙조와 갈대 ‘한폭의 풍경화’ ‘계절의 갈림길에서 억새와 갈대숲에 한번 취해보자’­. 한국관광공사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인 11월을 맞아 억새와 갈대 군락지 7곳을 이달의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관광공사는 이들 지역은 비교적 붐비지 않는데다 산책로 및 등산로 등이 완만하고 잘 정비돼 가족단위 여행에 적당하다고 말했다. ▲인천 덕적도 서포리해안=선착장에서 북쪽으로 8㎞ 떨어진 북리에 갈대군락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이 곳은 자갈밭 해수욕장과 접해 있어 갈대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해안절경도 구경할 수 있다.(032)880­2531∼5. ▲강원 정선 남면 민둥산=해발 1천116m로 억새산이라고 할 만큼 온통 억새로 뒤덮혀 있다.산 전체에 관목과 잡목이 우거져 있고 정상부분은 나무가 거의 없다.산세도 완만하다.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단풍을 보면 사람들이 왜 산에 오르는지를 알 수 있다.(0398)60­2365. ▲충남 서천군 금강하구둑=한산면 신성리 일대의 금강하구둑에는 길이 4∼5㎞,폭 100∼200m,높이 2∼3m의 갈대 군락지가 장관이다.특히 겨울철새 도래시기에는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과 사진작가·연인들이 모이는 등 새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0459)950­4224.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5부 능선까지는 침엽수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6∼9부 능선은 기이한 바위와 단풍이 조화를 이룬다.비교적 완만한 능선 정상 수만평에 억새풀 군락이 몰려 있다.탁 트인 전망과 함께 억새의 장관을 맛볼수 있다.(053)650­3225.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안산=높이 1천237m로 연못과 폭포,기암괴석과 원시수림이 절경을 이룬다.특히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등산로를 따라 펼쳐진 광활한 갈대밭이 비경이다.가을 바람이 불면 산등선이 온통 하얀 갈대의 파도로 춤추는 듯하다.(0656)351­2144. ▲전남 순천시 갈대 군락지=순천의 대대동과 해룡면은 개펄과 꼬막양식장·선착장이 있는 전형적인 해변마을로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와 갈대가 연출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즐길수 있다.특히 일몰이 진행되는 20분 남짓 동안은 해변과 갈대군락,바다를 배경으로 대장관이 펼쳐진다.갈대숲에 파묻히다시피 한 대대동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0661)749­3328. ▲제주 남제주군 억새오름길=성산 일출봉과 성읍 민속마을을 잇는 산간도로는 제주의 가을을 느낄수 있는 드라이브코스.흔히 억새오름길로 불리는 이 길은 멀리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봉곳봉곳 솟아 있는 조그만 봉우리와 가을 바람에 살랑대는 억새가 조화를 이뤄 한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낸다.(064)30­1543∼4. ◎갈대와 억새/갈대­북위 40도 이남 해안·호수가 자라/억새­한반도 전역 산등성·밭두둑 자생 “등성이마다 오르다가 갈대는 피어/키를 덮고 산을 덮고/무엇에 흔들린다…” ‘갈대’라는 시이지만 이 시에서 노래하는 것은 갈대가 아니라 억새다. 갈대와 억새는 생김새가 비슷한데다 가을에 꽃이 피어 같은 식물로 착각하기 쉽지만 갈대와 억새는 다르다. 갈대는 북위 40도 이남의 해안이나 호수가에 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이삭은 빗자루처럼 생겼으며 색은 옅은 갈색을 띠고 있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라는 시를 기억하면 갈대가 물가에서 자라는 것을 금방 떠올릴수 있다. 반면 억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산등성이나 산자락 또는 밭두덕 같은 곳에서 무더기로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은색으로 하얗게 꽃이 핀다. “아,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인가요”라는 유행가에서 말하는 ‘으악새’가 새가 아니라 억새의 사투리라는 것을 기억하면 쉽게 구분이 된다. 어쨋거나 억새와 갈대는 가을철의 독특한 모습으로 인해 일찍부터 문학의 소재 또는 철학적 사색의 단초로 비유돼 왔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것이나 세익스피어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한 것이 그 예다.또 송강 정철은 장진주사에서 “억새풀 우거진 곳에서 묻히고 나면 누구와 술을 먹겠는가”고 한탄했다.
  • 국향속 줄잇는 ‘발레의 향연’

    ◎뉴욕시티·유니버설발레단 동시 내한공연/국립발레단도 1년 준비한 ‘신데렐라’ 선봬 단풍을 안고 찾아올 10월에 서울의 도심속 녹지공간에서 대형 발레의 향연이 줄줄이 펼쳐진다. 이들 발레잔치의 첫 무대는 1일부터 5일까지 서울 서초동 우면산자락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있을 뉴욕시티발레단 초청공연.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안자 조지 발란신의 맥을 잇고 있는 이 발레단의 창단 49년만의 첫 내한공연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절제된 춤사위와 음악의 극적 효과로 잘 표현해낸다는 평을 듣고있는 뉴욕시티발레단은 미국 최대규모인 90여명의 단원에 1백여개의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세계 정상급 발레단.발란신에 의해 정상으로 발돋움한 뒤 제롬 로빈스,피터 마틴스의 손을 거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창단 50주년을 기념한 아시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평상복같은 의상,음악에 대한 완벽한 이해력,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동작과 테크닉 등으로 특징되는 신고전주의 발레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1,3일(하오 7시30분)과 4일 낮공연(2시)에서는 현란한 동작과 테크닉으로 엮어진 발란신 안무의 ‘차이코프스키 2인무’를 비롯해 ‘교차’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알게 뭐야’ 등 네 작품을 선보이며 2,4일(7시30분)과 5일(3시)에는 변화무쌍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피터 마틴스 안무의 ‘공포의 균형’을 비롯해 ‘도니제티 변주’ ‘네가지 기질’ 등 세 작품을 공연한다.(문의 580­1132). 또 국내 저력의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도 같은 시기인 2∼5일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정기공연 무대를 연다. 공연작은 발레단의 레퍼토리중 골라뽑은 가을의 정취에 어울리는 소품 세개.왕실의 고상한 기풍을 엿볼수 있는 19세기 러시아 고전발레의 대표작 ‘파키타’,2인무와 솔로의 시리즈로 엮어진 독특한 조명과 단순명쾌한 스타일의 ‘헨델축제’,연인들의 사랑을 코믹터치로 표현한 ‘풀치넬라’ 등 세 작품을 발레단 소속 53명의 무용수가 펼쳐보인다.(204­1041) 한편 이 두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남산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동화 ‘신데렐라’가 발레로 선을 보인다.6일부터 12일까지. 국립발레단이 준비에만 1년넘게 공을 들인 이번 ‘신데렐라’는 고전발레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와 볼거리를 강조한 코믹성 발레.옛 소련 볼쇼이발레단의 안무가 자하로프의 1945년 안무작을 기초로 삼아 현 볼쇼이 지도위원인 마리나 콘트라티예바가 국립발레단을 위해 새롭게 다듬었다. 13번이나 전환을 거듭하는 환상적인 무대와 화려한 의상,남자무용수가 계모역을 맡는 이색적 배역선정 등 우스꽝스런 춤과 내용으로 재미를 한껏 살렸다.무용수 1백20여명에 오케스트라 79명등 2백여명이 무대를 메우는 것도 이례적이다.(274­1151)
  • 고향 명승지로 가족나들이/추석연휴에 가볼만한 곳

    ◎수도권­근교 공원마다 민속놀이·가두공연 풍성/중부권­초가을 뱃길따라 단양팔경 유람 좋을듯/영남권­신라의 맥박이 뛰는 토함산 일출은 장관/호남권­승주 낙안읍성 조선시대 민가 정취 “물씬”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는 한가위 연휴.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은 4일도 짧지만 집에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은 추석날 제사를 지낸뒤 성묘를 하고 나면 시간적 여유가 많다.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가볍게 찾을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 ▷수도권◁ 과천 서울랜드는 가족들이 윷놀이와 투호,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수 있도록 연휴기간동안 연꽃분수 주변에 민속놀이 한마당을 개설하고 한가위 특집 퍼레이드도 선보인다.16,17일에는 전통민속 놀이팀인 ‘뿌리패’가 사물놀이와 농악놀이로 흥을 돋운다.하오 10시까지 개장한다. 용인 애버랜드도 14∼17일까지 순라군(포졸)과 뺑덕어멈 등 고전해학 캐릭터들로 분장한 공연단들이 가두행진을 벌인다.17일에는 250여명의 공연단원이 나와 왕의 행차를 재현한 어가행렬,친영의례,강무시취 등 조선시대 궁중행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16∼17일에는 외국인 장기자랑도 펼쳐진다.하오 9시까지 문을 연다. 잠실롯데월드는 15∼17일 하오 8시에 가족대항 윷놀이 대회를 연다. 16,17일 하오 4시에는 김덕수 사물놀이 초청공연이 펼쳐지며 하오 1시와 3시에는 민속박물관에서 화관무,살풀이 등 한가위 민속한마당이 열린다. 용인 한국민속촌은 추석날인 16일 낮 12시30분 북청사자놀음을 공연하며 17일 하오 3시30분 같은 장소에서 송파산대놀이를 공연한다.공연장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속씨름,줄넘기,투호놀이,줄당기기 대회가 곁들여진다.민속촌은 이와 함께 송편 빚어보기,햇곡식 찧기,인형놀이마당 등의 행사도 개최한다. 이밖에 서울시내 5대 고궁이 개방되며 특히 덕수궁,경복궁,창경궁에는 널뛰기,제기차기,팽이치기,윷놀이,투호 등을 즐길수 있는 실습장이 마련된다.10일부터 2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광장에서는 전통민속놀이마당이 개설돼 윷,제기,팽이,줄다리기,굴렁쇠,투호 등을 즐길수 있다. 귀성인파가 한산해지면 경춘가도,팔당유원지 등의 국도를 승용차로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수도권의 달맞이 명소로는 임진각을 비롯 서울 북악 스카이웨이·남산 팔각정·행주산성·남한산성 등을 꼽을수 있다. ○동해 달맞이·야경은 황홀 ▷중부권◁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은 추석 연휴기간동안 평소처럼 문을 연다.민속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가을 초입의 호수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충주호 유람선은 이 기간동안 충주댐 선착장에서 단양 장회나루까지 100리의 뱃길을 하루 4∼6차례 운행한다.소요시간은 1시간10분. 청명한 하늘과 산자락 그림자가 드리워진 잔잔한 호반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가족과 함께 하는 초가을 여행치곤 감출 맛이 그만이다.배를 타고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월악산과 단양팔경중 하나인 옥순동,도담삼봉 너머로 다가오는 소백산의 웅장한 자태 등은 뱃길관광의 백미이다.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있는 월출산은 천황봉,구정봉,향로봉 등의 산세가 빼어나게 아름답다.특히 용암골이라고 불리는송계천 골짜기 동쪽 능선에 얹혀 있는 월대에서의 달맞이는 장관이다. 손수운전자는 충남 서산군 천수만 방조제로 나가면 서해 낙조를 즐길수 있다.간월암,부남호 등의 명소는 물론 인근에 아산,온양,덕산,도고온천 등 이름난 온천이 있어 귀로에 몸을 풀수도 있다. 경포대는 예로부터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경포대에서만 볼수 있는 해돋이와 낙조,달맞이,고기잡이 배의 야경,초당마을에서 피어 올리는 저녁연기 등은 경포팔경이라 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칭송대상이 돼왔다.하늘과 바다,호수,술잔,그리고 마주앉은 님의 눈동자에 똑같은 달이 다섯개나 뜬다는 경포호는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든 선경에 몰입하게 한다.추석은 물론 평소에도 달맞이 인파로 붐빈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는 명절 또는 연말,연초가 되면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멀리 금강산을 바라볼수 있는 것은 물론 푸른 바다에 이어진 낙타봉과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전망대에 오르면 북녘땅에 해가 떠 오르는 것을 볼수도 있다. ○한복아가씨 선발대회 ▷영남권◁ 대구 우방타워랜드는 16일에는 영타운무대에서 트로트 가수왕 선발대회를 개최하며 16∼17일 이틀동안 국악과 재즈의 만남 행사를 연다.이 행사에는 대금,사물놀이와 색소폰,전자바이올린,재즈 싱어 등이 한데 어울린다.또 17일에는 한복 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려 입상자에게는 상금 1백만원을 비롯 해외여행권 등 푸짐한 시상품이 주어진다. 경주는 발닿는 어느 곳이나 신라의 맥박이 느껴지는 역사의 고장이다.경주의 동쪽 끝을 감싸고 있는 토함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해내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토함산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푸른 바다가 하늘과 맞닿고 서쪽으론 하늘을 찌를듯한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맑은날 토함산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한마디로 장관이다.그 유명한 동해 해맞이는 대기에 습기가 적은 가을철에 제대로 볼수 있느니 만큼 추석 연휴기간동안 한번 부지런을 떨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한가위 달맞이도 이에 못지 않다.동해바다로 쏟아지는 달빛에 흠뻑 젖어볼수 있기 때문이다. 망양정,월송정,불영사,백암온천 등이 이어지는 울진 인근의 동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다. 부산 해운대는 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누구나 손쉽게 접근할수 있어 한가위 때마다 달맞이 구경꾼들로 붐빈다. 부산 인근의 통도 환타지아는 16∼17일 이틀동안 한가위 큰 잔치를 벌인다.전통 놀이패의 민속공연이 하루 세차례 펼쳐지며 하오 7시30분에는 입장객들을 대상으로 트롯 가요제,트롯 청백전,트롯 따라하기,한가위 한복콘테스트 등 다양한 게임식 행사를 갖는다.입상자에게는 연간회원권,캐릭터 상품 등이 제공된다. ○광주비엔날레도 계속 ▷호남권◁ 승주 낙안마을은 조선시대 민가를 보존한 민속촌으로 전통적인 한가위 분위기에 젖어볼수 있다. 호남 5대 명산중 하나인 영암 월출산은 이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달맞이 명소.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기묘하고 빼어난 산세가 절경을 이룬다. 암봉 사이로 두둥실 떠가는 달의 모습은 기암괴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춘향의 도시 남원과 내장산,덕유산,덕유산,무주 구천동 등이 모두 2∼3시간 거리에 있어 시간 여유가 있으면 한번 둘러봄직 하다. 광주 중외공원 일대에서 개최되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는 추석 연휴에도 계속 이어진다. 광주 인근에는 전통정원이 널려 있어 정원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수 있다.담양군 남면 일대에는 자연의 운치가 그대로 살아있는 소쇄원,송강 정철의 풍류를 느낄수 있는 식영정,배롱나무로 둘러선 자연속의 휴식처 명옥헌 등의 명소가 있다.담양호를 끼고 도는 드라이브코스도 환상적이며 굽이굽이 산자락에서 호수를 보고 달리는 맛도 뛰어나다. 동계 무주유니버시아드 대회이후 전주∼진안간 국도는 호남의 새로운 관광벨트로 부상되고 있다.전주와 무주가 시원스럽게 이어진데다 주변에 관광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 낮은곳에 펼친 천상의 사랑/영면한 성녀 테레사 수녀 일대기

    ◎1910년 마케도니아 출생… 28년 인도로/신의 부름 받고 ‘빈민의 어머니’ 되기로/50년 ‘사랑의 선교회’ 설립… 본격 구호/79년 노벨평화상… 89년 첫 심장마비 동화속의 신데렐라와 같았던 다이애나 영국왕세자비의 비극적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세계인들은 다시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고 있다.‘살아있는 성녀’로 추앙받던 테레사 수녀(87)가 타계한 것이다.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녀는 금세기 최고의 ‘사랑과 봉사의 사도’였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영원한 촛불’로 스스로를 불태워온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선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헌신했다.그녀는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빈민굴이나 나환자촌 등 고통의 현장을 찾아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로 봉사했다.그녀는 자신의 자선활동은 “신의 부름”이라고 말했다. 테레사 수녀는 그녀의 헌신적 봉사로 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녀에게 “세계의 진정한 시민”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피에(당시 알바니아 영토)에서 태어났다.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테레사 수녀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됐다.청소년기의 가난한 삶은 그녀를 ‘주님 곁으로’ 인도,카톨릭 청소년단체에 가입했고 이때부터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29년 인도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로레타 수도원의 예비 수녀로 들어갔다.인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목격한 그녀는 그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새로운 인생목표를 설정하고 캘커타의 슬럼가에 ‘사랑의 선교회’를 만든후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 수녀로 사랑의 교회 원장직을 맡아왔던 그녀는 89년 심장마비를 처음 겪은후 91년과 93년에는 동맥 이상으로 두차례의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심장박동기를 달고 세계를 돌며 각국 지도자들과 국민들에게 고통받는자들에 대한 구호와 사랑의 중요성을 설파했다.그러나 그녀의 건강은 더욱 악화돼 지난해 말에는 심장병에 말라리아와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2분동안이나 심장활동이 정지하기도 했다.지난 3월 그녀는 죽음을 예감한듯 원장직을 니르말라 수녀에게 넘겨 주었다. 테레사 수녀는 체제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랑과 구호를 실천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비판도 없지않다.최근 영국의 한 방송은 사랑의 선교회측이 출처가 의심스러운 기금도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여권신장론자들은 그녀가 현대적인 모든 피임에 반대한데 반발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도 그녀의 위대한 사랑속으로 용해되어 왔다.하얀 천에 푸른띠가 있는 옷을 입고 사랑을 실천하던 조그만 체구의 테레사 수녀는 이제 우리곁을 떠났다.그러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봐왔던 그녀의 위대한 사랑과 희생정신은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김규환 기자〉
  • 줄잇는 탈북행렬(김정일의 북한:5)

    ◎굶주림에 ‘지상낙원’ 버리고 중으로/중 장백진은 탈북루트의 중간기착지/탈출처녀들 연길 유홍가서 매춘까지 “남편과 이혼한뒤 고향인 양강도 풍산을 떠나 회령·혜산 등 북한·중국 접경지역의 장마당에서 남새(채소)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했습니다.그러나 겨우 끼니를 때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중국에서 온 조선족 장사꾼들로부터 중국이 잘산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그때 ‘이렇게 살바에야 차라리 북조선을 탈출하자’는 생각이 들어 목숨을 걸고 탈북하게 됐습니다” 최근 북한 양강도 대홍단에서 5백리 길을 걸어 중국 길림성 장백진으로 탈북한 북한 주민 양모씨(34·여)가 털어놓는 말이다. ○접경지역 장마당 성행 장백진은 중국 연길에서 자동차로 백두산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 10여시간 이상 달려가야 하는 산간 벽지.양강도 도청소재지 혜산시와 마주보고 있어 북한을 탈출할때 이용하는 탈북루트의 대표적인 중간 기착지중 하나이다.여름철에는 강물이 대부분 말라붙어 강폭이30∼40m 정도로 좁아지는 데다 겨울철에는 영하 20∼30도를 오르내려 강물이 얼어붙어,마음만 먹으면 탈북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은 곳이다. ○조선족 노총각에 팔아 올들어 식량난이 더욱 악화되면서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대에는 탈북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같다.굶주림을 더이상 견딜수 없어 중국으로 탈출해오는 북한 주민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95년과 96년의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데다 올해에는 대가뭄까지 들어 식량사정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될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양씨는 “날씨가 좋아도 비료가 없어 농사를 못지을 판인데 가뭄까지 겹치자 ‘죽더라도 중국으로 건너가 실컷 먹어보자’는 막다른 심정으로 탈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극심한 식량난은 북한 처녀들마저 탈북의 길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배고픔을 참지 못해 탈북한 북한 처녀들중 일부만 중국의 농장·공장 등에서 일거리를 찾지만 대부분은 중국의 한족 및 조선족 노총각들에게 팔리거나 가라오케 등 유흥가에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특히일부 탈북 처녀들은 ‘돈을 쉽게 벌수 있다’는 조선족 사기꾼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매춘까지 강요받고 있다.연길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7)는 “조선족들중 일부 사기꾼들은 한달에도 몇번씩 북한에 드나들면서 북한 처녀들을 사와 중국의 한족과 조선족 노총각들에게 팔거나 유흥가로 넘긴다”며 “탈북 처녀들의 매매가격이 올초만 해도 3천원(약 30만원) 정도였으나,지금은 5천∼1만원선으로 2배 가까이 올랐다”고 귀띔한다. ○군인도 뇌물받고 묵인 탈북자가 크게 늘어나자 당황한 북한당국은 경비초소 간격을 좁히는등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같다.숭선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3)는 “북한 당국이 올해부터 북·중 접경지대를 지키는 북한 국경경비대의 경비초소 간격을 50m로 좁히고 곳곳에 매복초소를 설치하는 등 국경경비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술·담배·과자 등을 주려고 북한땅으로 다가가면 몰래 숨어있던 국경경비 군인들이 나타나 잽싸게 빼앗아간다”고 전한다. ○절망의 공화국 전락 탈북을 방관하던 중국 정부도 올들어 탈북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엄벌하는 새로운 형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삼합에서 만난 중국인 임모씨(43)는 “중국정부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으로 소원해진 북한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오는 10월부터 탈북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에게 ‘국경관리 방해죄’라는 새로운 법을 적용,엄벌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탈북자들을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지상낙원’탈출하려는 굶주린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처절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배고픔에 지친 국경경비 군인들도 술·담배 등의 약간의 뇌물을 받고 탈북을 묵인해주고 있다.평양 지도자들이 선전해오던 ‘지상 낙원’ 북한은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마저 채워줄수 없는 ‘절망의 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 KAL기 괌추락 참사­시간대별 재구성

    ◎“해낼수 있다” 기장 다급한 외침/“착륙 예정… 안전벨트 메라” 방송/0시50분 전후 갑자기 기체 요동/공항 남쪽 5㎞ 밀림에 곤두박질/통신두절… 관제탑 “썸씽 롱” 긴장 비운의 대한항공 801편 여객기는 5일 하오 8시20분쯤(이하 한국시간) 괌을 향해 김포공항을 이륙했다.활주로 사정으로 예정시간보다 15분 늦게 떴다. 여객기에는 승객 231명과 승무원 23명 등 254명이 타고 있었다.여름 휴가철인 만큼 가족 단위나 단체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신혼부부도 끼어있었다. 기류탓에 굉음과 함께 간혹 기체가 흔들렸다.승무원들은 기내서비스를 실시하다 굉음이 계속되자 이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날짜가 6일로 바뀌어 0시5분쯤.기체 움직임의 이상상태를 감지한 듯 박용철 기장은 괌 아가냐공항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엔진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나 나는 할 수 있다(I can make it)”고 자신했다. 그후에도 비행기의 진동은 계속됐다.10여분이 지난 0시17분쯤.박기장은 “뭔가 잘못됐다(Something wrong)”고 소리쳤다.관제탑과의 마지막 교신이다. 조종석에서의 다급한 움직임과는 달리 기내에서는 평상시처럼 “착륙할 예정이니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아무 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설레기 시작했다. 도착 예정시간(0시43분)을 10분 가량 넘긴 0시50분.공항 앞 경사진 산악의 밀림 위를 날던 여객기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밖에는 시계를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객기는 곧장 아가냐공항 남쪽 4.8㎞쯤 떨어진 산자락에 곤두박질쳤다. 생존자 홍현성씨(35)는 “여객기의 앞바퀴가 원가에 걸린 이후 동체가 땅에 미끄러지면서 뒷부분이 떨어져나간데 이어 중간부분도 잘려 나간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홍씨는 추락 직후 2∼3분 간격으로 폭발음이 들렸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생존자 이창우씨(29)는 “괌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얼마 안돼 비행기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속도가 급격히 떨어졌다”면서 “나는 비행기가 착륙하는줄 알았다”고 말했다. 얼마후 추락현장에는 인근 미군 부대의 구조요원들이 급파됐다.
  • 남양주 청학지구/미래형 전원주택단지로 뜬다

    ◎주공 새 공동주택문화 개념도입한 야심작/수락산자락 9만여평 개발… 올 겨울 첫 분양 대한주택공사가 남양주 청학지구에 경기 동북부 최고의 전원 주거단지를 개발하고 있다.특히 오는 11∼12월에 공급하는 3천170가구 가운데 전용면적 30평 이상 592가구를 부분 임대(1주택 2가구 형식)가 가능한 미래형 주택으로 설계,새로운 공동주택 문화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청학지구에 공급되는 주공아파트는 전용면적 18평이 1천442가구,25.7평이 1천136가구,나머지 592가구는 내부의 일부 공간을 전세로 줄 수 있는 30∼35평형이다. 전세입자와 동거가 가능한 대형 주택은 주공이 주택건설업계 가운데 처음 설계·개발한 미래형 주택이다.아파트의 방 1개를 임대할 수 있도록 주방·화장실·출입문을 따로 만든다.이 아파트는 일반 청약예금 가입자에게 공급된다.평당 분양가는 3백50만∼4백만원 선으로 예상하고 있다. 청학지구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일원의 9만여평이다.서울 상계동에서 북동쪽으로 5㎞ 정도 떨어진 수락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그린벨트로 둘러싸여 쾌적성이 뛰어나다.단지 내에는 근린생활시설 및 상업용지 6천200평도 조성될 예정이어서 생활이 편리할 전망이다. 교통은 서울 강북과 일산 신도시,부천 중동 신도시 등과 연결이 쉽다.덕송·퇴계원 인터체인지를 이용하면 서울외곽 순환고속도로와 이어지고 서울 강남과 송파 등지로의 차량 이동도 쉬운 편이다. 청학지구는 특히 총 공급물량의 54%를 전용 25.7평 이상의 중대형 평형으로 만들 주택단지여서 청약저축 가입자는 물론,청약예금 가입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범주 스님/북 어린이돕기 선화전

    ◎오늘∼7일 세종문화회관서 150점 선봬/첫날 명상음악 연주… 강연·즉석인물화도 선화가 범주 스님이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3전시실에서 「굶주리는 이북동포 어린이돕기 범주 선화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회는 범주스님이 지난 3년간 그린 달마도를 비롯,선 산수화등 모두 1백50점이 선보인다. 『선화는 감각과 생각을 넘어선다.나를 잊어버려야 살아있는 그림이 나온다』며 『불교신앙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스님은 지난 66년 출가,곧바로 전강 대선사(1898­1975) 문하로 입산해 선화의 세계로 몰입했다.스님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정통 미술인 출신이다. 76년 불교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81년 국제포교사 자격을 얻어 미국 로스앤젤리스 달마사 주지로 가면서부터는 샌프란시스코·뉴욕·하와이·파리·도쿄 등지를 돌며 8년동안 선화를 통한 포교에 나섰다. 89년 귀국한 스님은 92년부터 속리산 산자락에 조그만 토굴 달마선원을 짓고 선과 화업으로 정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차례 개인전을 열었지만 수익금은 전액 사회복지기금으로 내놓았다.전시회 첫날인 1일 하오5시에는 개막식에 이어 선예술 공연도 있다.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장인 김영동씨가 명상음악을 연주하고 목공예 인간문화재인 박찬수씨가 달마상을 즉석에서 조각하며 미국 뉴욕대 교수인 이선옥 교수가 선무용을 선보인다. 전시중에는 매일 하오1시부터 30분간 선에 대한 강연이 있고 이어 30분간은 그림구매자나 쌀 한가마 보시자의 인물화를 스님이 직접 그려주는 시간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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