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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외선 기차타고 춘천가볼까

    교외선 기차타고 춘천가볼까

    ‘교외선 기차를 탈까, 아니면 해변 드라이브를 즐길까.’살랑대는 봄꽃 향기에 연인들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겨우내 답답한 도심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들에게 기다리던 도심 탈출의 시간이 찾아왔기 때문. 도심을 벗어나 푸른 강변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겨도 좋고, 한적한 꽃길을 걸으며 사랑을 속삭여도 좋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찬바람에 꽁꽁 얼었던 ‘러브지수’를 업시킬 수 있는 데이트 명소를 잘 골라야 금상첨화. 봄맞이 데이트로 고민하는 연인들을 위해 멋진 당일 데이트 코스 두 곳을 다녀왔다. 춘천은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연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시. 교외선 기차를 타고 떠나는 데이트에는 아직도 낭만이 넘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충남 보령은 드라이브에 제격인 곳. 무창포에 가면 ‘모세의 기적’처럼 매달 보름과 그믐 사리를 전후해 바닷물이 갈라져 신비함을 맛볼 수 있다. 연인들을 위해 준비된 봄. 입맛따라 골라 떠나 보자. ■ 기차게 ‘춘천 1박작전’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연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시는 역시 춘천이다. 작고 깨끗한 춘천은 낭만적이라 추억을 만들기엔 이만큼 좋은 곳이 없다. 4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춘천가는 기차를 타고 가자! ●기차는 사랑을 싣고 토요일 아침 청량리역 시계탑 앞은 연인을 기다리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7시50분,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MP3의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끼고 음악을 듣거나 PMP를 같이 보는 연인들로 기차의 공기마저 달콤하다. 팁:기차요금 5200원.30일 전부터 예매 가능. ●알콩달콩한 속삭임 남춘천역에 도착한 9시50분. 남춘천역 근처의 공지천 유원지와 중도는 걸어서 10분정도. 택시는 기본요금(1500원) 거리. 시원한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중도, 곳곳에 서있는 조각들. 여기서 연인이라면 얼마든지 ‘이쁜 척’해도 좋다. 디카나 휴대전화로 추억을 만드는 연인들은 서로 경쟁하듯 행복한 시간을 연출한다. 또 호숫가 앞 보트장에선 봄햇살을 즐길 수 있다.2인기준 시간당 8000원.100원의 분수쇼가 기쁨을 배로 늘린다.100원을 넣고 빨리 그녀의 옆에 앉으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는 환상의 분수쇼를 감상할 수 있다.1분이란 짧은 시간이 즐거움을 몇 배 더 키워준다. 공지천유원지에서 자전거를 빌릴 차례. 조각공원과 어린이회관을 자전거로 둘러보고 내친김에 자전거를 배에 싣고 중도로 들어가면 된다.1인용은 시간당 3000원,2인용은 5000원. 2인용을 빌렸다면 이제부터 새털처럼 가벼운 그녀의 무게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자전거로 10분거리의 어린이회관이 있고 5분만 더 가면 중도유원지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삼천동 선착장이다. 중도 입장료와 배삯을 합쳐 어른 4300원, 청소년 3700원(학생증 지참). 자전거를 가지고 가면 1대당 1000원을 더 내야 한다. 눈부신 의암호를 약 10분간 가로지르면 중도로 갈 수 있다. 팁:배는 오전 9시부터 30분 간격. ●사랑은 영화처럼 잠깐이지만 배를 타면 더 낭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중도에 내리자마자 연인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 왕자와 공주를 꿈꾸며 단숨에 마차에 오른 것이다. 제일 먼저 ‘겨울연가’와 ‘유리화’를 촬영한 곳을 찾아야 한다. 김하늘이 앉았던 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 코스. 사랑의 밀어가 익어간다. 또 중도에선 자전거 길을 달려봐야 한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강과 길, 바로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자전거길 오른편에는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 예쁜 펜션. 나무로 지어진 펜션창을 통해 강을 내다보는 것도 멋지다. ●쫄깃, 달콤, 부드러운 춘천의 맛 점심은 당연히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먹어야 한다. 공지천유원지에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중앙로터리에 있는 닭갈비골목으로 향한다. 걸어서 15분, 택시로는 기본요금 거리. 단 택시를 부를 경우,1000원을 더 내야한다. 팁:콜택시는 강원콜서비스센터(033-264-1255), 그린 콜(033-244-0058), 춘천개인콜(033-255-2828), 시민콜(033-251-8257)가 있다. 명동의 닭갈비골목에 들어서면 매콤, 달콤한 냄새에 우선 취하게 된다.35년이나 같은 자리를 지킨 우미닭갈비(033-253-2428)를 찾았다. 커다란 불판에 가득 담긴 닭갈비와 떡사리, 고구마, 양배추가 푸짐한 춘천 인심을 느끼게 한다. 역시 원조는 다르다. 큼직큼직한 닭고기가 부드럽고 배인 양념이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연인이라면 1인분을 시키고 사리를 추가해서 먹으면 된다.1인분 8500원.1만원이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소양호를 따라 청평사로 오후 2시30분. 일단 버스를 타고 소양호로 떠난다. 중앙로터리를 건너 인성병원 앞으로 가면 소양댐까지 가는 버스(12번)가 있다. 버스삯 950원. 소양호 선착장을 떠난 배가 봄 호수의 물살을 가른다.10분 후, 배는 청평사 선착장에 도착했다. 청평사는 고려때 창건된 절로 구성폭포에서부터 오봉산 정상까지에 이르기까지 3㎞의 산자락이 잘 꾸며진 정원 같다. 곳곳에 놓인 돌탑에 조심스레 돌을 얹어놓는 연인들은 사랑이 영원하기를 빌었을까. 나도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돌을 하나 올려놨다. 아홉 가지의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구성폭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영지가 유명하다. 높이 7m의 구성폭포는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깃들어 있다. 또 폭포 위쪽 전망 좋은 능선 바위에 세워진 공주탑도 들러보자. 청평사 회전문에 도착했다. “어디 회전문이 있어?” 두런두런 주고받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스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문이라 설명해 준다.“청평사의 회전문은 중생들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랍니다.” 1000번의 생을 거쳐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말을 연인들은 새겼을까. 5시10분 막배를 타기 위해선 조금 서둘러야 한다. 다시 춘천으로 돌아온다. 팁:명동 인성병원 앞에서 11,12,12-1번 버스가 소양댐으로 간다. 일반버스는 950원, 좌석은 1300원. 보통 20분 정도에 한번씩 운행하며 50분 정도 걸린다. 소양댐 선착장에서 배는 10분 정도, 왕복 4000원. 오전 9시30분터 오후 5시까지 30분에 한 대씩 운행. 청평사에서는 오후 5시10분이 막배. 선착장(033-242-2455). ●황홀한 야경에 빠져 커다란 호수 저편으로 붉게 넘어가는 저녁놀을 그녀와, 그이와 함께 본다면 자연스럽게 어깨에 기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봉산의 야경을 빼놓을 순 없다. 패러글라이딩장으로도 유명한 구봉산은 소양댐에서 춘천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고 세월교(콧구멍다리)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로는 20분 거리, 보통 5000원 정도. 붉게 물드는 의암호의 아름다움에 취해 하나둘씩 불을 밝히는 춘천 야경에 취해 그녀의 향기에 취해 구봉산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팁:세월교에서 춘천시내로 가는 버스는 밤 11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있다. 혹시 구봉산 전망대에서 나오는 택시가 없으면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춘천역까지 1만 5000원. ●돌아오는 기차에서 이제 밤 8시가 넘었다. 밤 9시50분 막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야 한다. 춘천에서의 긴∼ 하루가 지나간다.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었던 하루다. 다음에, 다음에 오늘의 춘천여행을 기억하겠지. 글 사진 춘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안성 칠장산

    [조용섭의 산으路] 안성 칠장산

    숲이 소란스러워졌다. 연노랑 생강나무부터 물들기 시작한 4월의 산자락에는 이제 진달래와 제비꽃, 양지꽃 무리 등 풀꽃들까지 가세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며 재잘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때 가벼운 봄나들이 가족산행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수도권에서 그런 산행을 하기에는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2m)이 안성맞춤이다. 산길은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에서 시작하여 칠장산에 오른 뒤, 칠현산~덕성산을 거쳐 경기도 안성과 충북 진천을 가르는 도계 능선으로 내려서서 진천 광혜원면 성당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칠장산은 해발고도 500m에도 못 미치는 낮은 산이지만 한남정맥, 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들이 갈라서는 분기점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칠장산에서 덕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바로 금강 북쪽의 울타리를 이루는 금북정맥 구간. 충남 서산의 팔봉산으로 이어지며 서해에서 산줄기를 마감한다. 들머리인 칠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로 혜소국사비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으며 궁예·임꺽정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현판에는 ‘칠현산 칠장사’로 새겨져 있다. 절 왼쪽 나한전 쪽에서 열려 있는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잘 나 있으며, 거리도 짧고 경사도 완만해 너무나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맨발로 산행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눈에 띈다.20여분만 오르면 금북정맥인 능선 삼거리에 닿으며, 오른쪽 칠장산을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 전국의 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표지리본이 많이 달려 있고, 부산의 건건산악회에서 세워놓은 이정표에서 산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잠시 오르면 나오는 헬기장옆 나무에 칠장산이라는 조그만 플라스틱 팻말이 걸려있고, 조금 더 진행하면 나오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마루금의 분기점이 된다. 봉우리의 바위와 자그마한 팻말에 관해봉이라고 써 놓았다. 이제 조금 전 올랐던 삼거리로 되돌아 내려서며 칠현산쪽으로 향한다. 이정표도 잘 만들어 놓았고 산길도 외길로 넓게 나 있어 길찾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칠장사에서 능선 삼거리 되돌아오기까지 약 50분이 걸린다. 돌탑과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칠현산까지는 삼거리에서 50여분 소요된다. 가벼운 산행으로 마무리 지으려면 이 곳에서 동쪽 명적암으로 내려서면 된다. 하산은 1시간 남짓 소요되는데 칠장사 가기 전 도로로 이어진다. 금북정맥과 도경계능선의 갈림길 이정표의 병무관 방향으로 100여m 올라서면 역시 돌탑과 정상석이 있는 덕성산에 닿는다. 금북정맥길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소나무가 몇그루 서 있는 덕성산 정상은 조망도 괜찮은 편이고 지나온 능선과 이어지는 금북정맥도 한눈에 들어온다. 칠현산에서 약 1시간 소요. 하산은 병무관 방향의 도경계능선으로 하며, 약 20분 진행하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지능선, 역시 이정표의 병무관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 능선을 끝까지 내려서면 산행종료지점인 광혜원 성당이 나온다. 덕성산에서 약 1시간40분 소요되며,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자가용으로 갈 경우 중부고속도로 일죽 IC에서 빠져 나와 38번 국도와 진천방향의 17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안성 IC에서 나와 38번 국도와 17번 국도로 이동하면 된다. 하산 후 차량회수는 광혜원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요금 8000원·택시 043-535-3254,043-535-0050). 대중교통은 안성에서 죽산으로 이동 후, 칠장사행 완행버스를 갈아탄다(하루 4회 운행). 공도면, 대덕면 등의 배꽃이 화사하다. 안성시 봉산동 남사당 바우덕이 공연 등(안성시 문화관광 031-678-2068).
  •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이사람] 아동출판 외길 33년만에 식물원 여는 나춘호 예림당 회장

    도서출판 예림당 나춘호(63) 회장을 만나면 ‘계영배’(戒盈杯)가 생각난다. 계영배는 술을 3분의2 이상 따르면 밑으로 새어 나가도록 독특하게 만든 술잔. 가득차 넘치게 되면 건강도 해치고 남에게 실수도 하므로 경계하도록 고안된 잔이다. 나 회장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설 만한 여유가 있고, 안색이나 몸짓이 넘치지 않는 품새를 지니고 있다. 그래선지 그는 70년대 초 불모지였던 아동출판에 뛰어들어 상당한 부를 이루었음에도 ‘한눈’ 팔지 않고 33년째 아동출판 외길을 걸어 왔다. 돈이 되는 책이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일단 찍어내고 보는 요즘의 출판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가 경기도 여주에서 엄청난 규모의 식물원을 가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뒤늦게 본격적인 ‘외도’에 나선 것인가, 넘치지 않는, 항상 여백을 남겨 두었던 인생을 포기하고 그마저 외형과 높이의 경쟁에 뛰어든 것인가 하는 의혹을 품고서. ●‘식물원 인생’은 출판의 연장 여주군 산북면 상품리 산 30-1 해여림식물원. 삼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여 아늑하게 자리잡은 그의 식물원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식물원 구석구석엔 봄기운이 꿈틀거렸다. 나 회장과 함께 식물원 구석구석을 거닐며 두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끝에 얻은 결론은 ‘식물원 인생’이 꼭 외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식물원은 그에게 출판의 연장이요, 그 중심엔 여전히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들 책을 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우리 책’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그림이 아닌 외국 복사본이 다였어요. 식물·동물 도감도 없었어요. 그래서 도감을 내려고 하는데 정작 콘텐츠인 식물을 모아놓은 ‘세트’, 즉 식물원이 없는 거예요. 일일이 산과 들을 뒤져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난감했지요. 우여곡절끝에 어린이 식물도감을 국내 처음으로 내긴 했지만, 그때부터 아이들 책을 위한 인프라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도 남들이 손을 대지 않았던 어린이책을 꾸준히 낸 덕분에 그의 출판사업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출판사 외형이 커지고 돈도 많이 벌면서 일반 도서 출판의 유혹을 강하게 받았다. 하지만 나 회장은 어린이책 전문 출판인으로서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린이들 우리 꽃 잘 몰라 안타까워 아이들을 위한 출판을 시작했고, 아이들로 인해 돈을 벌었으니, 번 돈도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식물원이다. 그의 ‘사회환원 의식’은 상당히 깊고 강하다. 출판 초기부터 도서벽지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 기증운동을 펼쳐오면서 100만권 이상의 책을 보냈다. 또 중국·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한민족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책을 보내주고 있다. 또 식물원이든 출판사든, 그는 부동산째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도 세웠다. 모두 그의 개인 재산이기에 앞서 사회의 재산, 즉 아이들의 재산이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판사는 큰아들 성훈(35)씨가 운영중이고, 둘째아들 도연(32)씨는 식물원 운영을 돕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아버지의 뜻을 존중해 어디까지나 운영자, 경영인일 뿐 오너의 자리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미 오래전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내면서 식물의 중요성을 절감한 그에게 식물원은 출판 33년 꿈의 결실이기도 하다. 입시경쟁과 취업 등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자연과 멀어지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친화적인 삶을 되찾아 주자는 것. 나 회장은 “30여년간 아이들 책을 내면서 우리 식물은 의외로 다양한데 어린이들의 식물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토끼풀꽃을 국화꽃으로 대답하는 예가 몇몇 어린이가 아닌 일반적 경향이라는 사실에 아연해지더라는 것이다. 책을 통한 지식 전달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런 고민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아이들이 식물을, 자연을 직접 체험하면서 정서적 효과도 낼 수 있는 것, 바로 식물원 조성이었다. 4년간의 공사끝에 마무리를 앞둔 식물원은 오는 5월 말쯤 문을 열 예정. 나 회장이 기획한 식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한 마디로 처음부터 ‘기획된 식물원’이라는 점이 국내 다른 식물원과 다릅니다. 국내 모든 식물원은 조그맣게 시작해서 차츰 외형을 키우고 종류도 다양화하는 ‘진화된’ 식물원이거든요. 해여림식물원은 처음부터 국내 최대인 5만여평의 관람면적을 갖고 있고, 지하에 오수관과 배수관, 전기·수도장치, 스프링클러 등 완벽한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식물원이 자리한 곳은 일찍이 세종대왕릉 후보지로도 올랐다는 명당자리. 계곡과 습지가 많고 뒤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아늑함을 자랑한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과 풍부하고,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에서 가까워 접근이 편리한 것도 고려되었다. 나 회장이 식물학자들과 함께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답사한 끝에 찾은 곳이다. 식물원을 구상하면서 매년 4∼5회씩 외국에 나가 유명식물원도 꼼꼼히 둘러보았다. 일본 오키나와와 독일 베를린에서 본 식물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해여림식물원을 기획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진화된’ 식물원 아닌 ‘기획된’ 식물원 ‘해여림’이란 온종일 해가 머무르는 여주의 아름다운 숲이란 뜻.‘해’와 ‘여림’(麗林)을 합성해 나 회장이 지은 이름이다. 갖가지 자생식물들이 자라는 기획식물원, 자연생태 그대로의 환경을 재현해 4000여종의 식물을 갖춘 생태식물원, 다양한 테마에 따라 설계한 테마식물원이 해여림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국내는 물론 외국의 목본류와 초화류까지 골고루 갖춰 명실상부한 종합식물원으로서 면모를 갖췄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관람로와 산책로 길이가 10㎞나 된다. 나 회장은 점차적으로 관람면적을 현재의 5만평에서 30만평까지 확대하고, 연구 및 레저기능까지 갖출 계획이다. “미래의 삶은 자연과의 거리를 얼마나 좁히느냐에 따라, 즉 얼마나 자연친화적 삶을 살 수 있느냐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봅니다. 식물원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배움터로서 아이들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맨주먹으로 시작해 손꼽히는 출판인으로 성공한 나 회장이 얼마나 차별화된 식물원 원장으로 거듭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전남 순천 조계산

    [조용섭의 산으路] 전남 순천 조계산

    전남 순천시 승주읍 송광면 주암면에 걸쳐있는 조계산(884m)은 동쪽에는 태고종찰 선암사를, 서쪽엔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품은 명산이다. 백두대간에서 가지친 금남호남정맥에서 다시 갈라진 호남정맥의 산이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며 정호승 시인이 사뭇 명령조로 읊조린 바 있는 동쪽의 선암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조계산(장군봉)에 오른 뒤, 능선으로 진행하여 연산봉∼송광굴목치에 이르고 홍골을 거쳐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시간이 된다면 문화재 등 볼거리가 있는 두 사찰을 답사하는 것도 좋겠다. 선암사 매표소를 지나면 부도밭, 계곡위에 아름답게 걸쳐있는 승선교, 강선루를 차례로 지난다. 매점 앞의 삼인당(三印塘) 연못과 만세루의 육조고사(六朝古寺) 현판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헤아려 보고, 다닥다닥 복잡한 듯 들어서 있지만 단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가람 배치, 홍매화, 은목서, 삼나무, 측백나무 등의 수목들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산행 못지않은 답사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으리라. 산길은 사찰 왼쪽으로 나오면 되는데, 매점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갈림길에서는 대각암을 거쳐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왼쪽의 선암굴목치로 향하는 길은 정상을 거치지 않고 송광굴목치∼송광사로 이어지는 길로서 시원한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산길은 너르게 아주 잘 나있다. 다만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띤 조계산의 산자락 중, 이 곳 오름길은 비교적 바위도 많고 가파른 편이다. 1시간여 땀흘려 진행하면 너른 옛 절터 쉼터에 닿는다. 이 곳에는 샘이 있다. 장군봉은 쉼터에서 30여분 오르면 닿는다. 내장산∼무등산을 거치며 남도의 산을 이어달리던 호남정맥이 지나가는 곳으로 이 산줄기는 북쪽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865봉에서 접치로 내려서며 백운산으로 향한다. 장군봉에서 펼쳐지는 조망도 막힘이 없다. 남쪽으로는 숨가쁘게 달려오던 남도의 산줄기를 넘겨준 고동산이 가깝다. 큰 오르내림없이 너르고 평탄하게 빙 두르며 이어지는 능선길은 그야말로 마음을 푸근하게 해줄 정도로 여유롭다.865봉 호남정맥 갈림길을 지나 계속 능선으로 나아가면 연산봉에 이른다. 정상에서 40분 소요. 서쪽 산자락 아래 가까이 보이는 호수는 주암호이다. 연산봉에서 30여분 내려서면 3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30여분 나가면 송광굴목치에 닿는다. 오른쪽 길이 홍골로 하산하는 길이다. 산행 종료지점인 송광사 매표소까지 약 1시간10분 소요된다. 호남고속도로 송광사IC나 승주IC에서 나와 22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대중교통으론 순천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혹은 철도(전라선)를 이용해 순천역이나 터미널로 와서 선암사행 버스(50분 소요)를 타면 된다. 순천시외버스터미널 (061)744-8877. 선암사 주차장 옆 시설지구에는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많다. 그중에 전원가든(061-754-5510)이 많이 알려져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지 벌교를 비롯한 낙안읍성 주암호 등이 있다.
  • [조용섭의 산으路] 대구 팔공산

    [조용섭의 산으路] 대구 팔공산

    쥐똥나무, 그 작고 여린 연록색 이파리에 파릇파릇 생기가 도는 것을 보면 춘설과 꽃샘 추위를 비집고 봄은 벌써 우리 주위에 와 있었나 보다. 이제 곧 산자락을 뒤덮을 생강나무, 제비꽃, 양지꽃 등 노랑 꽃들의 재잘거림이 시작되는 이즈음,‘봄마중 산행’으로 대구의 진산 팔공산(1192m)을 찾았다. 산길은 대중교통 접근이 쉬운 동화사입구 야영장에서 시작, 스카이라인 능선(남릉)으로 동봉에 오른 뒤, 주능선 암릉길을 거쳐 조암능선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야영장에서 스카이라인(케이블카)종점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너른 산길은 아주 잘 나 있다. 케이블카 매점을 지나 전망바위에 서면 주능선 봉우리들과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팔공산은 수많은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산이다. 동남쪽(오른쪽) 주능선 바로 아래 들어선 골프장은 눈길두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산자락이 망가져 있는데, 이를 방치했다는 생각에 대구의 산악인들은 무척이나 부끄러워 한다. 주능선에서 뻗어 내린 이 능선 오름길은 바위와 마사토가 많고,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이 특징.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다만 수태골·염불암 갈림길을 만난 후, 주능선쪽 깔딱고개를 오를 때는 제법 가쁜 숨을 쉬어야 한다. 갈림길을 지나 급경사 계단길을 두 차례 오르면 산자락이 넓어지며 주능선 길과 만난다. 왼쪽길은 오도재∼서봉∼파계재∼한티재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동봉으로 올라 관봉까지 길게 이어진다. 비로봉에는 통신시설이 들어서 있어 갈 수가 없다. 헬기장 끝의 마애불상을 지나며 동봉으로 오른다. 동봉으로 올라서는 길은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계단길을 천천히 오르면 거대한 암괴로 이루어진 동봉에 닿는다. 동북쪽 보현산의 모습과 남쪽 멀리 영남알프스 산군도 아스라이 보인다. 팔공산의 산길은 주능선에서 뻗어내리는 지능선과 계곡으로 매우 잘 나 있어 시간계획을 잘 세우면 아주 다양하게 코스를 택할 수 있다. 관봉까지 능선산행 후 갓바위로 하산하는 코스도 권할 만하다.(전체 9시간 소요) 동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고 북사면쪽으로 우회하며 등산로가 잘 나 있는데, 위험해 보이는 암릉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 힘들지는 않으나 암릉산행을 할 경우 경험이 많은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좋겠다. 염불암으로 하산하는 안부를 지나 하산 시작점인 조암능선 초입까지는 약 1시간 소요된다. 조암은 2개의 바위가 마치 새 부리 모습과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암 능선길은 다른 길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지만 의외로 부드럽게 잘 열려 있고 능선 초입 바위지대에는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 여러 곳 있다. 주능선 방향 왼쪽의 거대한 바위는 바로 대구·경북 산악인들의 요람인 병풍바위다. 능선을 내려서다보면 주능선쪽으로 조망이 트이는 공간이 나오는데, 특이한 조암의 모습은 이 곳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오른쪽(서쪽) 계곡 깊숙한 곳에 있는 암자는 양진암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인 내원암으로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내려와 산행을 마친다. 매표소 입구까지 약 1시간30분 소요. 철도나 고속버스편으로 동대구로 이동.105번 버스로(파티마병원 정류소) 동화사로 가면 된다. 동대구역∼동화사의 택시요금 2만원이다. 동화사에 내리면 집단시설지구 내에 숙박시설 등 편의시설 잘 갖추어져 있다. ●해빙기 산행시 주의사항 해빙기의 산악기상은 예측할 수 없다.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겨울장비와 여벌의 옷 등을 챙겨야 한다(방수방풍의·보온복·여벌옷·보온장갑·여벌양말·아이젠·스패츠 등).
  • 도롱뇽 봄 기다리는 ‘소금강’ 천성산

    도롱뇽 봄 기다리는 ‘소금강’ 천성산

    겨울의 끝자락은 부산·경남 일원에 ‘100년만의 강설량’이라는 이변을 선명하게 각인시키며 떠났다. ‘폭설’이라는 그 낯선 방문자를 맞은 경남 양산 천성산(922m)을 찾았다. 산세가 빼어나 예부터 소금강이라는 별칭을 얻은 천성산에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온다. 산길은 내원사 주차장 매표소에서 성불암계곡~집북재~천성2봉(811m)~천성산~화엄벌을 거쳐 용주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성불암 계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매표소 뒤, 왼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너른 길은 물길을 따라 한동안 이어지는데, 계곡이 합수되는 곳을 만날 즈음이면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정면의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악우비가 있는 성불암 갈림길에서는 계곡길로 진행한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산길 주변의 산자락은 얼레지 등이 무리지어 피어 봄을 알린다. 계곡을 벗어나 부드러운 숲속길로 들어서면 넉넉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집북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방으로 길이 연결되는 고개에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며 천성2봉으로 향한다. 가파른 길에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오르도록 하자.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좁은 능선길을 지나 바위지대를 오르면 주능선에 접어들고, 잠시 더 가면 거대한 암괴를 만난다.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이내 바위 봉우리인 천성2봉에 닿는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거침이 없다. 서북쪽 영축~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영남 알프스의 늠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 대운산 너머 멀리 울산 앞바다도 아련히 보인다. 남쪽의 부드러운 봉우리가 가야 할 천성산 정상. 이곳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바로 낙동정맥이다. 정상을 향해 능선을 걷다 보면 왼쪽으로 내려서는 샛길이 몇 군데 나오는데 모두 웅상읍쪽으로 연결된다. 안부(은수고개)에서 왼쪽으로 난 길은 무지개폭포로 내려서는 길이다. 아쉽게도 천성산 정상은 군사통제구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다. 정상 아래 갈림길에서 화엄늪으로 가려면 오른쪽(북쪽), 철조망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야 한다. 왼쪽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나있는 길은 부산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이다. 잠시 산허리를 에돌면 광활한 화엄벌이 눈앞에 펼쳐진다. 목책 안으로는 많은 희귀식물과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는 화엄늪이 있다. 이 고산늪은 생태계의 타임캡슐이라 할 정도로 보존가치가 높단다. 이곳은 가을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목책 옆으로 난 완만한 길을 내려서면 초소를 지나고 마지막 목책을 지나 오른쪽 숲속으로 접어들며 하산길이 이어진다. 첫번째 임도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 용주사 방향으로 가다가 오경농장앞 35번 국도로 내려서며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에 차가 있을 경우에는 오른쪽 내원사(상가) 방향으로 하산하면 된다. 경부고속도로 통도사IC(혹은 양산)에서 나와 35번 국도로 내원사에 접근한다. 부산쪽에서 접근하면 편리하다. 노포동 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완행버스를 이용, 내원사 입구에서 내린다(15분 간격 운행). 종합터미널은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내원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숙박시설이 매우 많다. 버스로 내원사 입구에 내렸을 경우, 도로를 따라 30분 걸어서 매표소로 이동하면 된다. 입장료와 주차비 2000원씩이다. 문의는 경남 양산시청(www.yscity.or.kr,055-380-4841)으로 하면 된다.
  •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 계방산

    남도의 봄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예전에 없던 모진 추위로 세상을 얼어붙게 만들던 겨울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럴 즈음, 겨울의 끝자락을 털고 있을 산자락으로 들어가 자연의 흐름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산행이다. 겨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방산(1577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홍천군 내면)을 찾았다. 겨울 심설 산행지로 잘 알려진 산은 동북쪽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가지쳐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를 가르며 달리는 이른바 한강기맥(경기도 양평 청계산∼양수리)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산행 코스는 31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인 운두령에서 시작하여 1492봉 정상에 이른 뒤,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노동리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을 잡았다. 계방산은 높이로 보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은 남한에서 5번째 높은 봉우리이지만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고도 차이가 채 500m도 되지 않아 의외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안내판이 서있는 절개지의 계단을 오르며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외길로 아주 잘 나있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완만하다. 포근한 산세를 느끼며 산행이 느긋하다. 산길은 한동안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마루가 말안장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안부로 살짝 내려선 후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터로 올라선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꽤 가파른 길이다. 길이 미끄러워 나가기가 다소 힘들다. 하지만 20여분 땀을 흘리면 되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른쪽 위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다. 능선 한쪽으로 켜켜이 쌓인 눈은 세월의 흐름에 무심한 듯 아직도 떠날 채비를 하지 않고 있다. 이른 봄 초목들의 치열한 삶에 더없이 소중한 생명수의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능선턱을 올라서면 동쪽으로 아주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1492봉으로 향한다. 봉우리에 서면 닫혀 있던 북쪽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끝없이 일렁거리는 산너울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흰눈을 이고 있는 점봉산과 설악산의 모습이 아련하고, 북동쪽에 솟아 있는 오대산 연봉들의 모습도 의젓하다. 키낮은 나무들 사이로 아주 완만한 오름길이 정상으로 이어진다. 진행방향 왼쪽, 즉 고사목 사이로 보이는 나목의 산자락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고 곡선미가 빼어나다. 1492봉에서 40여분 나가면 돌탑이 나온다. 계방산 정상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이제 저 멀리 평평한 구릉지대를 이루는 선자령 부근의 산자락까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산줄기들의 파노라마가 끝없이 펼쳐진다. 오대산 두로봉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우람한 근육질의 몸이 꿈틀대는 듯 헌걸차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리본이 많이 달린 능선길은 오대산으로 이어지며, 약 15분 진행하면 만나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이승복 생가터를 거쳐 아랫삼거리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남쪽 이정표 있는 곳에서 이어지는 능선길로 내려서자. 갈림길이 있는 1276봉까지 약 1시간 소요되며, 남쪽 능선길로 내려서면 아랫삼거리에 닿으며 산행을 마친다.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좌회전, 홍천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로 운두령 접근. 고갯마루에 주차장이 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주문진 또는 강릉행 직행버스로 진부 하차. 진부∼창촌(내면)을 운행하는 버스로 운두령 하차(진부터미널 033-335-6307). 택시(033-335-1050)요금은 2만원. 운두령에 있는 자가용을 회수할 경우에도 이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은 산장민박(033-333-5555)과 계방산 쉼터(033-333-7775)에서 할 수 있다. 음식점도 겸하고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9) 십승지란 어디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9) 십승지란 어디인가

    “나로 말하면 흔히 서양의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에 견주어 조선 최고의 예언자라 불리는 남사고(南師古·1509∼1571)라오. 호는 격암(格菴)이라 했고, 학문을 업으로 삼았으되 평생 유가(儒家)의 경전이라곤 그저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을 뿐, 그밖엔 온 마음을 쏟아 역학·풍수·천문·복서(卜筮)·관상 등을 즐겨 배웠고, 마침내 도통해 대예언가 소리를 듣게 된 거였지. 오늘날에도 ‘남사고비결’이니 ‘격암유록’이란 비결 책을 내가 쓴 것으로 다들 믿고 있다던데. 그야 어쨌든 내 예언은 항상 정확히 들어맞았소.1575년(선조8) 조정이 동서 양편으로 분당될 것을 난 미리 짐작했고, 뒤이어 임진왜란(1592)이 발생할 것도 진즉에 알고 있었소. 사람은 영물이라, 열심히 도를 닦아 이루지 못할 게 그 무어겠소? 풍수에 관심이 깊은 나는 조선8도의 명산을 빠짐없이 둘러보았고, 그 결과 미래까지 꿰뚫어보는 안목을 얻었다고나 할까.” 남사고는 정감록 산책을 함께하고 싶었는지 과거로부터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는 남사고 자신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해놨다는 이른바 십승지(十勝地)에 대한 설명이다. 남사고는 본래 십승지의 원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정감록에 얼마나 충실히 반영돼 있는지는 사실 미지수다. 십승지란 난세에 “몸을 보전할 땅”이며 복을 듬뿍 주는 길지(吉地)다. 남사고는 편지의 서두에서 예언서 가운데 가장 체계적으로 십승지의 문제를 다룬 ‘감결’의 성격을 논의한다. 노대가의 안광이 날카롭다. ●감결의 성격 “정감이 이심과 이연 형제와 더불어 방방곡곡을 유람하면서 조선의 국운을 예언한 대화체 예언서가 바로 ‘감결’ 아니겠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감은 천문에 밝았고 이심은 아마 풍수에 정통했나 보오. 그런가 하면 이연은 세상사를 이모저모 따져 두 사람의 말을 보충한 것 같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 사람이 금강산에서 유람을 시작, 삼각산을 거쳐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가야산에서 대화를 마친단 점이야. 서북쪽에도 묘향산, 구월산 같은 명산이 많은데 거기엔 발길이 전혀 미치지 않아. 이걸 보면 정감록은 서북지방을 버려진 땅으로 본 모양이야. 그와 대조적으로 태백산과 소백산을 몹시 중시하고 있어. 하긴 이 3두 산이 백두대간의 허리니까. 또 하나 재밌는 점이 있어.‘감결’은 역사상 한국의 수도가 평양, 송도, 한양, 계룡산, 가야산으로 옮긴다고 봤다는 점이지. 나라의 중심이 남쪽으로 이동한단 말인데, 남부지방이 한반도의 중심이란 이야기야. 그렇담 요새 행정수도를 공주 연기 쪽으로 옮긴다고 야단들인데 그도 그럴듯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어. 여하튼 말세엔 천지가 온통 전쟁, 질병, 경제대란, 환경파괴 등으로 한바탕 진통을 치르게 돼 있다고 하지. 바로 그때 십승지를 찾아가야 하는 거야. 십승지는 전쟁과 흉년이 들지 않으므로 지각 있는 사람은 당연히 십승지로 들어가야 옳겠지. 글쎄, 나도 알아. 십승지가 과연 특정한 공간이냐 아니면 어떤 특수한 정신적 단계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단 걸 말이지.” ●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촌과 예천 금당동 십승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인 논쟁을 남사고와 벌이고도 싶지만 그는 내게 그럴 겨를을 안 준다. 대신 그의 편지는 십승지를 하나씩 직접 거론한다. “이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를 하나씩 소개해 보자고.‘감결’의 내용을 줄기로 삼고 그밖에 다른 예언서들도 참고한다면 설명이 제법 들을 만할 거야. 첫째가는 곳은 풍기(豊基)지.‘토정가장결’에서도 풍기를 피난처로 손꼽았어. 내가 쓴 걸로 돼 있는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南格菴山水十勝保吉之地)’에선 산수가 은밀한 태백·소백 두 산의 그늘이 남쪽으로 드리워진 풍기라고 했어. 풍기의 예에서 보듯 한국 최고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에 포근히 안겨 있단 말야. 난 또 풍기의 길지를 기천(基川) 차암(車岩) 금계촌(金鷄村)이라고 좀더 자세히 밝혀놓기도 했어. 금계촌은 마을 북쪽에 소백산이 있고 산 아래 두 개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이야.‘피장처’에도 역시 같은 말이 나오지. 물론 내가 지금 언급한 ‘남격암’ 등의 비결 책들은 모두 정감록의 일부야.” 풍기 금계촌이라면 나도 잘 안다. 이미 답사를 다녀온 곳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의 답사 이야기를 할 겨를이 없다. 남사고의 설명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풍기 못지않은 곳이 예천(醴泉)이야.‘토정가장결’에도 예천이 나와 있지.‘남격암’에선 예천에서도 금당동(金堂洞) 북쪽이라고 제법 자세히 밝혔어. 그러고 보면 내 책이 다른 비결서에 비해 역시 가장 세밀해. 금당동은 사실 큰 길에서 가까워. 십승지로선 이례적인 경우인데 그래도 병란이 미치지 않아 여러 대에 걸쳐 평안을 누릴 만한 곳이야. 다만 임금이 이쪽으로 피난을 올 경우엔 화가 미쳐.” 아마도 남사고는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봉화까지 피난했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물론 엄밀한 의미로는 ‘남격암’을 남사고의 저서라 주장할 근거가 없고 그저 속설일 뿐이다. ●경상도의 십승지 남사고의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십승지를 선정하는 1차적인 기준은 풍수다. 특히 백두대간 가운데서도 태백산 이남에서 길지를 구하고 있다. 십승지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풍기와 예천은 행정구역상 경상도에 속한다. 둘째, 셋째, 넷째 그리고 여덟째 십승지도 역시 그러하다. 적어도 십승지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단 말이다. 경상도는 퇴계 이황을 비롯해 큰 선비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 세평이 좋아 그렇게 된 점도 있겠다. “십승지의 둘째는 안동(安東) 화곡(華谷)이야.‘남격암’에선 화산(花山)의 북쪽에 이른바 소령고기(召嶺古基)가 있다고 했고 그곳은 내성현(奈城縣)의 동쪽, 태백산의 양지바른 곳이라고 토를 달았어.‘두사총비결’에선 그저 영가(안동)의 백운산이라 했고,‘토정가장결’은 그저 안동이라고만 썼는데,‘피장처’엔 경상도 내성현의 북면, 안동 북면 소라고기부 동쪽과 극히 양지바른 서쪽이라고 말했지. 비결 책마다 십승지의 설정이 꽤 다르게 돼 있군. 어느 쪽이 맞느냐 하는 문제는 단언하기 어렵지. 사람들 생각이 서로 다른 걸 어떡하겠어? 셋째 십승지는 개령(開寧)의 용궁(龍宮)인데, 어느 비결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마 한때 각광을 받았지만 그 뒤론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나봐. 넷째는 가야(伽倻)라고.‘남격암’엔 가야산 밑 남쪽에 만수동(萬壽洞)이 있다며 그 둘레는 200리가량 되어 몸을 보전할 수 있지만 가야산의 동북쪽은 나쁘다고 했어. 만수동이란 이름은 사실 각지에 다 있었어. 만 살까지 살 수 있는 마을이라니 이름이 좋지 않아? ‘감결’이 여덟째로 꼽는 십승지 봉화(奉化)도 역시 태백산과 소백산에서 가까운 곳이지.‘남격암’도 봉화를 언급했어. 열 번째 십승지도 태백 즉, 태백산이라 했지만 강원도 쪽보다는 경상도를 중시한 느낌이고, 심지어 아홉 번째 십승지인 지리산도 전라도에만 속한 것은 아니거든. 이렇게 보면 십승지의 대부분은 경상도 땅에 있다고나 할까.” ●충청도의 십승지 “충청도엔 모두 세 곳의 십승지가 있지. 모두 소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어.‘감결’이 다섯째로 언급한 단춘(丹春)이 우선 주목되네.‘남격암’은 단양(丹陽)군의 영춘(永春)에 있다고 했고,‘피장처’에선 춘양면의 땅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단양 가차촌을 거론하지. 깊고 기이하고 경치 좋은 곳이라는데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아무도 모를 거야. 여섯째 십승지는 공주(公州) 정산(定山) 마곡(麻谷)이야.‘남격암’은 공주의 유구(維鳩)·마곡 두 물줄기 사이로 보았지. 그 둘레가 백리나 되는데 전쟁의 피해를 면할 수 있다고 했는데 요즘 거론되는 신행정수도가 바로 이쪽이지. 명당이야! 그런데 말이야, 내 후배인 이중환(李重煥·1690∼1752)은 ‘택리지’에 이런 말을 적어 놨더군. 무성산(茂盛山·공주의 서쪽 산)은 차령의 서쪽 지맥의 끝이다. 산세가 빙 돌며 마곡사와 유구역을 만들었다. 그 골짜기의 마을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많고, 논이 기름지며, 목화, 수수, 조를 심기에 알맞다. 사대부와 평민이 한 번 여기 들어와 살게 되면, 풍년과 흉년을 잊는다. 생활이 넉넉하게 돼 다시 이사를 떠날 염려가 적다. 대체로 낙토(樂土)라 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내 말을 인용했어.‘남사고는 십승기란 글에서 유구와 마곡의 두 강 사이가 병란을 피할 만한 땅이라 했다.’고 말이지. 내 십승기는 결국 유실됐지만 여하튼 난 십승지를 피난지로만 봤어. 그런데 이중환의 안목은 나보다 깊었던 거야.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단 말야.” 이중환은 1721년에 일어난 신임사화(소론이 노론을 무고한 사건)에 연루돼 유배형을 받았다. 그 뒤 그는 다시 등용되지 못한 채 평생 전국을 유람했다. 그의 책 ‘택리지’ 가운데는 십승지 가운데서도 유독 유구와 마곡에 관해 상세한 설명이 있다. 이중환은 기후가 좋고 물산도 풍부해 양반은 물론 평민까지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그 지역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밖에 일곱째 십승지는 진천(鎭川)의 목천(木川)이야. 역시 백두대간의 한 마디지. 그런데 말이야, 다른 비결 책들엔 목천에 대한 설명이 조금도 없어. 이처럼 십승지라 해도 사람들의 선호도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어.” 남사고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른바 십승지란 것은 일정하게 고정된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보기만은 어려운 것 같다. 다음 기회에 좀더 알아볼 생각이지만, 비결 책마다 십승지에 준하는 수많은 명당이 열거돼 있다. ●전라도의 십승지 “전라도 땅에 있는 십승지는 하나뿐이야.‘감결’이 아홉째로 언급한 운봉(雲峰) 두류산(頭流山)이 그거지.‘남격암’엔 이를 지리산이라고도 했고 더욱 구체적인 설명도 나와 있어. 운봉 땅 두류산 아래 동점촌(銅店村) 백리 안은 오래오래 보전할 수 있는 땅이라고 말이야. 이곳에서 장차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들이 연달아 나온다고도 했어.‘토정가장결’에서도 운봉의 두류산은 지형이 기이하고 아름답기가 궁기(弓其)만은 못해도 편안하고 한가로이 몸을 보전할 수 있다고 했어. 궁기란 나중에 말하겠지만 한국 최고의 명당인데 지리산은 그 다음이란 뜻이야. 내가 사랑하는 후배 이중환도 지리산을 극찬했어.” 내가 택리지를 살펴보았더니 이중환은 이렇게 말했다.“지리산은 남해 가에 있는데, 백두산의 큰 줄기가 끝나는 곳이다. 그래서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세상에서는 금강산을 봉래(蓬萊)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方丈)이라 하며 한라산을 영주(瀛洲)라고 하는데 이른바 삼신산이다.” 이중환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리산에 태을성신(太乙星神·하늘 북쪽에 있어서 병란, 재화 및 생사를 다스리는 신령한 별)이 산다고 믿었다. 그밖에 여러 신선들이 그 산에 모인다고도 생각했다. 지리산은 계곡이 깊고 크며 땅이 기름진 데다 골짜기의 바깥은 좁으나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넓어지기 때문에 백성들이 숨어 살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산속 깊은 데서도 농사가 잘 돼 승속(僧俗)이 섞여 산다는데 별로 애쓰지 않아도 먹고 살기에 문제가 없단다. 이중환은 지리산 사람들은 흉년을 모르고 살므로 아예 그 산을 부산(富山)이라고 불렀다. 지리산을 백두대간의 종착점으로 인식한 점에서 이중환의 생각은 ‘정감록’의 지리관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중환은 정감록에 미처 언급되지 못한 중요한 사실도 거론했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신성한 산으로 여겼다는 점, 그리고 지리산 주변의 경제 여건이 좋다는 점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난세에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택리지’의 설명은 이어진다.“지리산 남쪽에 화개동(花開洞·악양동의 동남)과 악양동(岳陽洞·지리산 남쪽 섬진강변)이 있다. 두 곳 모두 사람이 사는데 산수가 아름답다. 고려 중엽에 한유한(韓惟漢)은 이자겸(李資謙)의 횡포가 심해지자 화가 일어날 것을 짐작했다. 관직을 버린 채 그는 가족을 이끌고 악양동에 숨었다. 조정에서는 그를 찾아 벼슬을 주려고 했으나 한유한은 끝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신라말의 대학자 최치원도 신선이 돼 가야산과 지리산을 왕래한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선조 때 한 스님이 지리산의 바위틈에서 종이 한 장을 주웠는데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동쪽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신선이 옥 베개를 밀고 일어나 보니 이 몸이 이 세상에서 벌써 천년을 지냈구나(仙人推玉枕 身世千年).” 이중환의 말로는 그 필적이 최치원의 것과 동일했다 한다. 남사고 역시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이중환은 신선의 땅 지리산에서 최고의 복지로 만수동(萬壽洞)과 청학동(靑鶴洞) 두 곳을 손꼽았지. 만수동은 조선후기에 구품대(九品臺)로 알려진 곳이요, 청학동은 매계(梅溪)란 말야.18세기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출입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리산 북쪽도 나쁘지 않아. 경상도 함양 땅인데 그곳의 영원동(靈源洞·지리산 반야봉 북쪽), 군자사(君子寺·함양군 마천면 군자동) 그리고 유점촌(鍮店村)을 일찍이 난 복지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 ●도계(道界)를 뛰어넘은 십승지 지리산에 관한 이중환과 남사고의 설명을 음미해 보니 지리산을 전라도만의 십승지라고 주장하기는 어렵겠다. 만수동, 청학동 등의 지명은 누구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군자사 등은 행정구역상 엄연히 경상도 땅이었다. 사실 지리산은 조선시대에 전라 경상 2도에 걸쳐 있었으므로, 도계를 초월한 십승지로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 따지고 보면 지리산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의 가장 큰 마디인 소백산도 그러했다. 특정한 지역이 과연 십승지가 될 만한가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곳이 백두대간에 속한 명산이 빚어놓은 명당이냐 하는 것이었다. 십승지에 대한 남사고의 설명은 다음회로 이어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잘먹고 잘사자]느껴봐~ 오!미자

    [잘먹고 잘사자]느껴봐~ 오!미자

    “시고, 달고, 맵고, 쓰고, 짜고….” 오미자(五味子)는 그 영롱한 색깔만큼이나 오묘한 맛이 일품이다. 다섯가지 맛이 오장육부에 작용해 각종 효능이 탁월한 신비의 생약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제대로 우려낸 오미자액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선홍색을 띤다. 오미자액을 입에 머금으면 눈이 질끈 감기는 신맛이 온몸을 감싼다. 하지만 곧바로 달콤하면서 알싸하며 개운한 쓴맛이 뒤끝에 남는다. 오미자는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낙엽성 덩굴식물로 우리나라 산지 경사면에 자생한다.5∼7월 황백색 꽃이 피고,9월쯤 지름 5∼7㎜의 진홍색 둥근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맺는다. 잘 익은 이 열매를 검붉게 말린 것이 보통 가정에서 먹는 오미자다. 동의학 사전에는 오미자는 기와 폐를 보하고 기침과 갈증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적고 있다. 헛땀을 막고 유정, 유뇨, 빈뇨를 없애주며 몸의 진액을 보충해 준다. 정신을 안정시켜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효과도 높다. 약리학적으로는 중추신경계 흥분작용, 피로회복 촉진, 심장혈관계통 기능회복, 혈압조절, 위액분비조절, 이담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래를 없애고 포도상구균, 이질균, 폐렴균 등을 억제하는 작용도 한다. 그러나 급성 기관지염 등 폐질환으로 체온이 상승할 때는 금하는 것이 좋다. 이같은 탁월한 효능 때문에 오미자는 웰빙시대의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중국, 일본, 사할린 등지에도 분포되고 있지만 전북 장수산을 최고로 친다. 장수군은 해발 400m가 넘는 산간 고랭지로, 기후와 토질이 오미자 생산에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해발 700m가 넘는 남덕유산 자락에서 채취되는 자연산 오미자가 으뜸이다. 최근들어 재배기술이 발달해 무공해 청정지역인 ‘장수 오미자’는 자연산에 버금가는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수 오미자는 자생 군락지와 비슷한 환경인 해발 550∼740m 산자락에서 재배된다. 재배 면적은 111.7㏊로 전국 510㏊의 22%에 이른다. 장수읍 덕산리, 번암면 동화·지지리, 장계면 대곡리, 천천면 와룡리 등 산 좋고 물 맑은 군 전역에서 두루 생산된다.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10.6℃이고, 오미자 열매에 살이 오르는 7월 평균 기온이 23℃로 매우 알맞은 조건이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오미자 고유의 맛과 향, 색깔이 뛰어나다. 장수군 농업기술센터 정석구 계장은 “장수 오미자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친환경 건강식품으로 소비량이 계속 늘고 있다.”면서 “일조량이 풍부하고 유기물 함량이 많은 비옥한 토지에 아치형 재배법을 도입해 타지산보다 품질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오미자를 웰빙식품으로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미자차=생수 2000㏄에 오미자 10g을 넣고 밤새 우려낸 물에 한봉꿀을 넣어 마신다. ●피로회복=오미자 2g과 인삼 4g을 함께 넣어 차를 만들어 마신다. 오미자는 한번만 끓여내는 것이 좋다. ●기침·가래=오미자 8g, 도라지 10g을 물 500㏄에 넣어 50㏄씩 마신다. ●오미자술=소주 500㏄에 오미자 50g을 넣고 서늘한 곳에 두고 한번씩 흔들어준다.15일 정도 지나면 선홍색을 띤 오미자술이 된다. 장수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누드 브리핑] “여성 부랑자·장애인 특성도 알아야”

    “여자 거지의 속성도, 장애인 환자의 특징도 알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내세울 만하지요.” 조남호 서울 서초구청장은 지난 3일 행정이든, 정치든 현장파악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런 말로 운을 뗐다. 그는 “책상 위에서 펼치는 정책은 ‘물에 떠도는 기름’”이라며 1984∼88년 자신의 서울시 보사국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현재 동작구 대방동 여성플라자 자리에 가출, 정신지체, 정신박약 등 중복장애로 혼자서는 생활이 곤란한 부랑자들을 위한 시립 부녀보호소가 있었다. 어느 날 이곳을 찾아갔는데 삼복더위에 할머니들이 방에 빽빽이 모여 야릇한 냄새 속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할머니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는 환대받기는 고사하고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분들은 화장실에도 가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보호소 직원은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자리를 뺏길까봐 그 자리에서 실례(?)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떠올리며 조 구청장은 “내 어머니가 이런 생활을 한다면 눈에 불똥이 튈 것”이라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부녀보호소를 확장·이전,85년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리 산자락으로 옮겼다. 명칭도 ‘서울시립 영보자애원’으로 바꿨다. 이곳에선 서울 거리를 배회하던 무연고자 10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후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러 찾아갔다. 그런데 또 화장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조 구청장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아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인 데다가 여성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인원만 따져 공사를 한 탓에 생긴 문제점이었다. “자주 들락거리는 이들의 사고능력과 행태를 감안, 화장실 공간이 보통의 2∼3배는 돼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현장행정 사례를 하나 더 들려줬다. 범죄예방을 위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 건이다. 조 구청장은 감시기능만 따졌지 악영향엔 눈을 돌리지 못한 ‘CCTV 만능주의’에 대해 짚어갔다.24시간 누군가가 지켜본다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설치하더라도 쓰레기처리 장소 등 꼭 필요한 곳을 가려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처신이 깨끗하다고 뽐내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단체장의 예를 보면 빌미가 될 경우도 있는데 일일이 감시당한다면 사실과 다르게 비화될 일도 많아지는 것이죠.” 다른 자치단체에서 방범CCTV 설치비를 내놓겠다지만 서초구는 받지 않기로 했으며, 주민들에게 이를 알렸더니 박수를 보내왔다고 말끝을 맺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속리산

    [조용섭의 산으路] 속리산

    참된 道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道를 멀리하려 들고, 山은 俗과 떨어지지 않는데 俗이 山과 떨어졌다. -최치원- 석화성(石火星), 암봉들이 불꽃처럼 일어서서 산의 능선을 이루는 형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화성의 산, 속리산(俗離山·1058m)을 이번에 찾았다. 산길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서 문장대(1033m)로 올라 법주사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언제나 향하고 싶은 속리산. 가을 단풍도 멋지지만 수북하게 눈을 덮어쓴 겨울도 장관이다. 나뭇가지에 소담하게 핀 설화, 대지의 정기가 나무나 바위에 영근 상고대, 겨울꽃 중 압권인 빙화 등을 보노라면 세상을 등지고 싶어질 정도다. 속리산은 주로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는데, 속리산국립공원 산군 전체로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품고있는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의 산들도 포함이 된다. 주봉인 천황봉을 비롯하여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등 빼어난 아홉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어 원래 이름은 구봉산(九峰山)이었는데, 신라 때 ‘신심이 지극한 이가 세속을 여의고 입산한 곳’이라 하여 지금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산을 둘러보고 읊었다는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한다(山非離俗 俗離山)’라는 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이루고 있고, 천황봉은 말티재로 이어지는 한남금북정맥을 일으켜 한강의 물길도 품으며 삼파수, 즉 한강·금강·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들머리인 화북분소 주차장에서 잠시 오르면 매장 앞 오른쪽으로 산길이 열린다. 미끄러운 마사토가 많고 계단이 많기는 하나 산자락 곳곳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암봉들을 감상할 수 있고, 오름길 내내 계곡이 함께하는 멋진 길이다. 가파르고 미끄러운 계단길에 숨이 찰 즈음이면 이름 그대로 쉬어가라는 쉴바위가 나온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바위가 천장을 이루고 있는 백일산 제단이 나오고 길은 오히려 완만해진다. 하지만 곳곳에 빙판길이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면 바로 위로 정상휴게소 앞 마당이 지척이다. 이름난 봉우리답게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문장대 정상에서의 조망도 거침이 없다. 방위별로 세워져 있는 안내판을 보고 주위의 산들에 눈길을 둔다. 청화산으로 이어지며 북동진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휴게소를 뒤로하고 천황봉쪽 능선을 향해 나아가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 고양되는 마음은 산에 들어와 있음의 행복감을 만끽하게 되고,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질 것이다. 신선대휴게소를 지나면 오른쪽 경업대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능선으로 계속 나아가 비로봉이나 천황봉에서 법주사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는데, 천황봉까지는 1시간40여분 정도 소요된다. 천황봉에서 상주 장각폭포쪽으로 나있는 길은 아쉽게도 출입금지구간이다. 수려한 석화성의 능선을 감상하려면 경업대쪽으로 향하는 게 좋다. 바위를 깎아서 세워놓은 듯한 입석대의 특이한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갈림길에서 경업대를 거쳐 세심정휴게소까지는 1시간10여분 정도 소요되며, 여기서 포장길을 따라 약 1시간 걸어 나오면 법주사 입구에 닿는다. ●교통 자가용:괴산에서 37번국도→운흥리 갈림길→화북이나 영동·상주에서 지방도로 접근한다. 대중교통:화북행 시외버스는 매일 동서울터미널에서 4회, 청주에서 8회, 상주에서 6회(시내버스) 운행된다. 터미널→화북분소 택시요금 5000원(054-534-7447). 한편 하산하는 법주사 지역에서의 교통편은 전국으로 잘 연결된다. ●민박 및 식당 대체로 민박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화북쪽의 산수장(054-533-8972)과 소나무식당(054-531-2661)이 산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기타 자가용을 가져갈 경우 주차비 4000원외 입장료 1600원을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 더 늦기 전에…눈의 나라 무주로

    더 늦기 전에…눈의 나라 무주로

    ■ 곤돌라 타고 내려다볼까 입춘이 지나니 계절보다 마음이 오히려 먼저 봄을 향해 달려나간다. 저만치 온 봄을 향해 달려가다 보니 겨울이 주춤주춤 뒤따라섰다. 해마다, 철마다 이별이라지만 그래도 언제나 이별은 힘겹다. 아쉬운 겨울과의 마지막 포옹은 역시 무주가 최고다.2월의 설국, 무주는 아직도 겨울나라다. 더욱이 새봄을 새 마음으로 맞으려면 깨끗한 순백의 나라를 한번쯤은 다녀오는 것이 좋다. 덕유산 적성산이 빚어낸 눈꽃, 북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무주리조트, 천년고찰인 백련사와 안국사, 어죽…. 겨울의 끝자락에서 떠난 여행지 무주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옆집 마을가듯 올랐다 만난 절경 덕(德)을 품은 거대한 덕유산은 눈천지다. 웅대하고 넓게 펼쳐진 산 전체가 하얗게 바뀌었고 매서운 겨울 바람을 맞선 1000년 고목 위의 눈꽃이 장관이다. 특히 덕유산의 정상인 1614m의 향적봉은 세찬 바람과 차가운 공기가 만들어내는 설화, 빙화, 상고대(서리꽃)로 불리는 세 가지 눈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멀지도 않다. 딱 30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다. 먼저 향적봉으로 향했다. 아침 9시 무주리조트 설천하우스에서 곤돌라를 탔다. 왕복 1만원. 어렸을 때, 케이블카의 재미가 그대로 느껴졌다. 위로는 파란 하늘, 아래로는 하얀 슬로프가 눈에 들어온다. 소리없이 정상을 향해 미끄러지듯 올라가는 곤돌라, 눈덮인 설천호수, 눈꽃이 피어있는 나무들….15분만에 설천봉에 이르렀다. 설국 가운데 내려선 사람들은 탄성을 터뜨렸다. 가만히 발을 내디뎌본다. 뽀드득 뽀드득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눈 밟는 소리.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신선한 공기가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눈덮인 고풍스러운 팔각정이 파란 하늘 밑에 당당히 서있다.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전망대로 나왔다.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며 발아래를 굽어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시원스레 펼쳐지는 하얀 봉우리들.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눈밭에서 구르고,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 영화 ‘러브스토리’가 곳곳에서 재연됐다. 모두 행복하고 즐겁다. 행복이 전염된다. 초입부터 미끄러운 둔턱. 옆에 밧줄이 있어 잡고 올라갈 수 있다.‘아이젠을 하고 올걸.’후회가 든다. 미끌미끌 3개의 작은 둔턱을 지나니 눈꽃터널이 이어진다. 황홀하다. 하얀 케이크조각같은 눈꽃들에 햇살이 부서졌다. 등산로 옆에는 무릎까지 눈에 빠진다. 정말 아이스크림 동산에 올라온 것 같다.20분을 걸으니 계단이 있다. 바로 위가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 땀 한번 흘리지 않고 덕유산을 정복한 것이다. 투명한 하늘, 발아래로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들, 눈을 잔뜩 머리와 팔에 이고 서 있는 나무들, 죽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고사목, 아름답다…. 정상에서 보는 하늘은 어찌나 파란지. 순백의 설원과 대비를 이뤄 더욱 선명하다. 잠깐 감상하고 정상 아래있는 산장으로 내려왔다. 눈꽃 트레킹의 하이라이트 구간은 여기서 중봉까지. 주목에 맺힌 눈꽃 군락은 햇빛을 받아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열대 바다속 산호 군락을 보는 착각이 든다. 설천에서 중봉까지 1시간 30분 가량 걸렸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덕유산의 아름다움이 가슴속을 떠나지 않았다. ■ 寺~알짝 뽀드득 무주 적성산에 있는 유일한 사찰인 안국사까지 이르는 길은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덕유산 국립공원 적상분소(063-322-4174)로 향했다. 붉은 글씨 ‘차량통제’가 길을 막는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관리소 직원은 “눈이 많이 쌓여 안국사까지 빨리 갔다 와도 왕복 3시간이나 걸린다.”라고 말렸다. 일단 안국사에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친절하게도 이규평사무장이 4륜구동차에 체인까지 끼고 마중나왔다. 굽이굽이 눈 덮인 고갯길을 올라간다. 엔진소리가 거칠어지며 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연이어 내린 눈 때문이다. 미끌어지며 올라가길 15분. 갑자기 눈을 의심하게된다. 어찌 이런 첩첩산중에 저렇게 커다란 호수가 있을까. 이게 적성호구나. 하얗게 변해버린 적성호와 주변 노송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그대로 한폭의 동양화였다. 여기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안국사. 고려 충렬왕 때 만들어진 사찰로 알려져있으며 원래는 적성호 자리에 있던 것이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안국사. 잠깐 말을 잊고 둘러봐야만 했다. 처마를 휘감은 눈꽃…. 꼬리를 흔들며 나온 개 한마리가 욕심 가득한 마음을 탓하듯 컹컹 짖어댔다. 들어서면 누구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찰, 동네 뒷산에 있었던 것 같은 절이 안국사다. 백련사는 유명한 무주구천동 33경을 즐길 수 있는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머물던 곳인데,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왔다 하여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고 한다. 매표소가 있는 삼공리 덕유산 입구부터는 왕복 3시간을 잡으면 넉넉하다. 계곡도 나무도 바위도 하얀 눈으로 덮인 구천동 계곡을 따라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달빛 아래서야 제빛을 드러낸다는 월하탄 구경하고 인월담, 사자담, 다연대와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이속대(離俗臺)를지나면 백련사(322-3395) 풍경 소리에 마음까지 정갈해진다. 절보다는 백련사까지 오가는 길에 만나는 겨울계곡 정취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 씽씽 쌩쌩 雪雪 달릴까 ●북유럽의 정취를 느끼는 무주리조트 무주리조트(322-9000)는 겨울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기기에 안성맞춤. 오스트리아풍의 티롤호텔, 산자락 곳곳에 자리잡은 산장형 가족호텔, 오스트리아 거리를 축소해 놓은 카니발 스트리트 등의 이국적인 풍경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지난해 인기 있었던 KBS드라마 ‘여름향기’의 주무대였던 카니발 스트리트은 주인공들이 사랑이 키웠던 장소. 야외 카페 ‘팔라’는 노란 장미가 천장 전체에 매달려 있는 예쁜 방으로 손예진이 극중에서 꾸민 그대로 있어 차 한잔 마시면서 나도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다. 또한 무주리조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스키장의 하나다. 짧은 슬로프에 사람 바글바글한 리프트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당장 무주로 가라. 등산 시작 지점인 설천봉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초·중급자 코스 ‘실크로드’는 길이 6.2㎞로 국내 최장거리. 이밖에도 무주리조트에는 최상급자 코스를 포함해 20여개의 다양한 슬로프가 뻗어 있다. 리프트 이용료는 어른 주간권 기준 5만 3000원.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눈썰매장은 150m로 성인과 유아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어른 8000원, 어린이 7000원. ‘부아∼앙’굉음을 내며 설원을 질주하는 스노모빌은 스키를 타지 못하는 어린이나 어르신들에게 좋다. 어른 7500원, 어린이 6500원. 또한 전문 보육사가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유아방’은 잠시 아이들 맡기고 부부만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4시간 기준 1만 8000원. ●눈밭에서 즐기는 노천온천 무주리조트 세솔동에 있는 노천온천은 자연천이 아니며 뜨거운 물에 온천제를 섞은 것이다. 진짜든 가짜든 하루종일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눈밭을 가르는 스키어들을 본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피로가 싹 풀린다. 자연석이 군데군데 놓인 탕과 연두색 온천수가 부글부글 기포를 쏘아 올리는 광천수탕, 약간 미지근한 정도의 온천풀장 3개가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실망이다. 하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런 마음은 사라진다. 하늘에 쏟아질 듯 많은 별을 바라보며 즐기는 스키장의 온천은 색다르다. 어른 1만3000원, 어린이 9000원 ●아름다운 얼음나라 리조트내 특설 에어돔에서 하고 있는 ‘얼음조각 건축전’은 세계의 유명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얼음 1만장을 중국 기술자 30여명이 한 달간 조각했다. 입구부터 눈길을 잡는다. 얼어버린 강시인형 조각들이 줄지어 서있고 뒤로는 루브르 박물관, 피사의 사탑, 만리장성, 아부심벨 대신전 등 정교한 조각들이 이어진다. 조각마다 전등을 설치해 노랑, 빨강, 파랑 등 천연색이 은은하게 비춰져 환상적이다. ■ 꼭 알고 가세요 강원도권 스키장에 비해 무주는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어김없는 고속도로 정체와 국도를 갈아 타고도 한참이나 들어가는 지리적 약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개통과 국도의 정비로 오히려 강원도권 스키장보다 더 가까워졌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무주 IC에서 나오면 바로 무주. 약 30분. 무주리조트는 19번 국도→49번 지방도로→37번 국도에서 우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무주리조트. 무주IC에서 20분 걸린다. 무주리조트내 티롤호텔(320-7200)은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 지방의 리조트 호텔을 그대로 옮겨온 특급 호텔이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발코니를 비롯해, 따뜻한 벽난로, 폭신한 침대와 티롤 현지의 소품을 그대로 사용해 유럽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딜럭스 기준으로 24만원(주중),34만원(주말). 민박보다 저렴한 국민호텔도 있다.7만 5000원. 공동 취사장을 이용해야 한다. 무주의 별미는 어죽이다. 유명한 집이 여럿있지만 내도리 큰손식당(322-3605)이 잘한다. 남편이 금강 상류에서 직접 잡은 자가미(빠가사리)를 푹 곤 다음 뼈를 발라내고 고추장, 된장, 수제비와 쌀을 넣고 끓여낸다. 어죽과 함께 서비스로 나오는 빙어튀김은 소주와 어울린다. 어죽 1인분 4000원. 자가미탕(2만원)도 맛있다. 명동갈비(320-6928)는 무주리조트 안에 있는 맛집. 꼬리전골이 유명하다. 쇠꼬리에 녹각, 인삼 등의 약재와 각종 야채를 듬뿍 넣어 얼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꼬리전골 3만원. 된장뚝배기 7000원도 괜찮다.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면 명가(322-0909)로 가면 된다. 지리산에서 방목을 해 키운 흑돼지를 쓴다. 바로 숯불에 굽는 것이 아니고 황토굴에서 참나무 숯으로 초벌구이를 해서 돼지 특유의 냄새를 없앴다.1인분 8000원. 맛있는 김치에 돼지등뼈를 넣고 끓이는 김치전골도 놓치면 아깝다.1인분 7000원.
  • [기고] 수도권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나/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1987년 4월2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분당과 일산에 500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사천리로 그해 11월에 첫 아파트 분양이 시작되고 5년도 안 되어 신도시가 들어섰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졸속행정, 졸속건설의 대표작이었다. 그런데,10년 전에 완성된 분당과 일산이 아직도 경기도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아파트 값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분당과 일산이 완성된 이후 10년. 그동안 경기도에는 150만채의 아파트가 더 건설되었다. 분당에 아파트가 많은 것 같아도 10만채에 불과하니,150만채라면 분당 15개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런데 과연 15개의 분당은 어디 있을까? 불행하게도 용인, 남양주, 김포, 화성 등의 산자락 논자락에 마구잡이로 널려있다. 도로, 철도는 고사하고 학교 등 교육시설이나 변변한 직장, 문화적 환경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난개발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만일 시계바늘을 10년 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늘어나는 주택수요에 맞춰 어차피 10년 동안 경기도에 150만채의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다면, 분당과 일산 같은 도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도시 15개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도로망과 철도망을 완벽하게 갖추고 학교시설은 물론이고 상업용, 업무용 빌딩도 많이 지어서 일자리를 늘리며 호수공원이나 중앙공원과 같은 널찍한 시민들의 휴식처도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게만 했더라면 경기도 1000만명 중 600만명이 지금 그런 도시에 살고 있을 텐데…. 매일 겪는 출퇴근 시간의 고통도 자녀 교육 걱정도 덜 수 있었는데…. 이미 경기도만이라도 선진국 못지않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는데….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남양주시의 경춘국도를 지나면서, 난개발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용인시를 거닐면서, 나름대로 이 분야에 몸담아왔던 나로서는 주민들 앞에 속죄하며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두 가지 잘못된 생각이 있었다. 첫째로 수도권 과밀론자들의 생각이었다.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면 지방에서 사람이 꾀어 들고 그렇게 되면 수도권이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이들의 우려와 목소리가 너무 커서 분당, 일산 이후에는 대규모 신도시를 만들 수가 없었다. 집값은 올라가 주택은 지어야겠고, 대규모 신도시는 대규모 인구유입을 가져올 것 같고…. 그러니 준농림지를 이용한 소규모 민간개발이나 미니 신도시란 미명하에 소규모 공공개발을 수없이 반복해 온 것이다. 도로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채…. 둘째로 대규모 개발은 대규모 환경파괴라고 생각하는 환경론자들의 역할도 컸다. 환경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워 개발을 터부시하고 특히 국가가 시행하는 대규모 개발에는 목 내놓고 저항하는 환경론자들을 피하자니,10만평,20만평 규모로 잘게 썰어서 경기도내 수백 군데에 걸쳐 난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앞으로 20년 후 과연 수도권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지난 10년간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수도권 전체의 미래 모습을 지금 이 순간 그려놓고 있어야 한다. 도로와 철도망은 어떻게 짜고 도시는 어디를 어떻게 개발하고 그 안에 학교와 직장은 어떻게 만들고 주민들의 휴식처와 문화공간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지난 2년동안 경기도는 각계 전문가들의 공동작업으로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계획이라는 20년후 청사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만 너무 좋아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과의 격차해소를 위해 행정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이 다시 한번 수도권 과밀론자와 환경론자들에 둘러싸여 수도권 난개발의 본질적인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10년 후에도 이런 후회를 다시 반복하면 안 되는데….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 [조용섭의 산으路]충남 논산 대둔산

    [조용섭의 산으路]충남 논산 대둔산

    충청·호남의 땅을 적시며 흐르는 금강(錦江)은 동으로 백두대간을 울타리 삼고, 남쪽 무진장(무주·진안·장수)에서 발원한 작은 물길들을 모아 본류로 향하게 하는 산줄기를 품고 있으니 이른바 금남정맥(錦南正脈)이다. 대둔산(大芚山·877.7m)은 이 금남정맥이 무진장을 벗어나며 전북 완주군, 충남 금산군, 논산시에 걸쳐 빚어 놓은 아름다운 산으로, 특히 기암봉들이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고 암봉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케이블카 등이 있는 완주쪽 산자락으론 연중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대둔산의 북서쪽자락,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서 정상에 오른 뒤, 완주쪽 산자락을 돌아보고 다시 수락리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코스를 잡았다. 수락지구 주차장에서 포장길을 오르면 광장이 나오는데, 왼쪽에 승전탑이 있고 산행은 정면의 숲을 들어서며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너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락폭포와 석천암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우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군지계곡으로 곧장 나아가자. 수락리 쪽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지닌 곳이다. 협곡 사이에 설치된 220계단을 오르는 느낌도 이채롭다. 계단을 올라서면 정상으로 가는 양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가면 축대가 쌓여있는 공터에서 오른쪽으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왼쪽 건너편 산자락으로 석천암이 살짝 보인다. 너럭바위를 오르거나 바위 능선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다. 정상인 마천대 앞 길목에 서면 사방으로 길이 연결된다. 여기서 정상은 지척이고 금남정맥은 동서로 능선을 가로지르며 서쪽 월성봉으로 이어진다. 개척탑이라는 상징물이 있는 정상 마천대에서 기암봉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산자락을 바라보노라면 ‘호남의 금강’이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상을 내려선 매점 앞 갈림길에서는 용문굴로 방향을 잡고, 오른쪽 구름다리로 내려서는 길은 나중에 올라오도록 하자. 갈림길마다 서있는 깔끔한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능선과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30여분 진행하면 용문굴 갈림길에 닿는데, 급사면 길은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완주쪽 산자락인 용문굴로 내려서며 칠성봉 전망대에 올라 암봉들을 감상해 보자. 완만한 산사면을 돌며 장군대 옆을 지나면 케이블카 승강장이 바로 눈앞이다. 이 곳으로 올라가면 금강구름다리로 연결된다. 마치 선계(仙界)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으로 구름다리를 건너 아름다운 풍경속에 젖어있다가 비좁은 삼선구름다리(계단)를 오르다 보면 고도감 때문에 짜릿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락계곡으로의 하산은 낙조대쪽으로 하자. 이정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두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 산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이 낙조대 방향이고 정면 너덜길은 석천암으로 바로 이어지며 다시 만나게 된다. 장군절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길을 내려서면 산행 초입에 지났던 수락폭포앞 갈림길에 이르며 승전탑 앞 광장으로 나아가 산행을 마감한다. ●교통 및 숙박 자가용:대전∼통영고속도 추부 혹은 금산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와 68번 지방도 이용한다. 대중교통:논산∼수락리 운행버스(하루 12회·1시간 소요). 수락지구에는 대형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많아 음식점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둔산 입장료는 500원, 주차비 2000원은 별도.
  • 봉화산도당굿등 3종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서울시는 11일 봉화산도당굿과 밤섬부군당도당굿, 행당동아기씨당굿 등 마을굿 3종류를 시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수백년 동안 마을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기원하며 대동의식을 높여온 점을 평가한 것이다.1999년에는 남이장군 사당제가 시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바 있다. 봉화산도당굿은 서울 중랑구 상봉동 봉화산자락에 위치한 6개 마을 사람들이 1600년대부터 무려 400여년간 음력 4월과 10월에 벌인 굿이다. 밤섬부군도당굿은 1968년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둑을 쌓는 데 필요한 돌을 채취하기 위해 폭파한 밤섬의 원주민 62가구가 200여년 동안 이어온 마을굿. 마포구 창천동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1월과 10월에 한차례는 창천동에서, 한차례는 밤섬의 사당에서 굿을 이어오고 있다. 성동구 행당동 산 128 행당초등 동산 위에서 해마다 음력 4월과 10월 치러지는 아기씨당굿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와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굿으로 알려져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전원에 살어리랏다] 판교신도시 주변

    [전원에 살어리랏다] 판교신도시 주변

    한국의 ‘베벌리 힐스’를 꿈꾼다. 판교 신도시 아파트가 주목받으면서 주변 전원주택까지 뜨고 있다. 신도시 조성으로 주변 개발 가능성이 커지고 전원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신도시 조성과 함께 값이 추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지역과 달리 찾는 사람이 많아 팔기도 쉽다. ●남서울골프장 주변에 단지 속속 들어서 성남시 대장동 남서울CC안에 대규모 전원주택 ‘남서울파크힐’이 조성되고 있다.4만 5000여평에 150여가구가 지어질 예정이다. 골프장 안에 전원주택이 들어서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오래 전부터 지목이 대지로 확정된 땅이라서 집을 짓는 데 별도의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도로, 상하수도, 오폐수 시설 등 기반시설을 모두 갖췄다. 몇몇 주인은 집짓기 공사를 마쳤고,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지나 남서쪽으로 내려가면 단지가 나온다.30여년 동안 개발이 묶이는 바람에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남서향 계단식으로 조성돼 천혜의 전원주택단지로 꼽힌다. 경부고속도로 판교인터체인지에서 3㎞ 거리. 서울 출퇴근에 지장이 없고, 분당 신도시나 앞으로 조성될 판교 신도시 편익시설을 이용하기 쉽다. 필지당 규모는 200∼500평. 성남시로부터 주택건설에 필요한 모든 인허가 절차를 마쳤다. 분당 금곡동 광교산 자락에도 그림 같은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된다. 에스엠건설이 금곡동 쇳골마을에 고급 주택 ‘에스엠루빌 골든밸리’ 61가구를 짓는다.2만 1000여평에 들어선다. 산자락을 훼손하고 짓는 집이 아니라 동남향으로 트인 분지형 땅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오랫동안 개발 억제권역으로 묶여 있던 땅이어서 자연환경이 잘 보전돼 있다. 상·하수도, 도시가스, 광통신 케이블 등 도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냇물이 흐를 수 있는 실개천도 만든다. 필지당 면적은 194∼519평 규모.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하는 서울∼수지 국도에서 승용차로 2분 거리. 궁내동 톨게이트 근처다. 분당 신도시가 보일 정도로 가깝다. 서울 접근이 쉽다. 중견기업 사장, 언론인 등이 분양 신청을 했다. 고기리 계곡으로 들어가는 동원동 곳곳에서도 전원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대부분 단지형 전원주택이고 이곳저곳 단독 전원주택도 눈에 띈다. 현재는 도로 사정이 썩 좋지 않다. 고기리에서 남서울파크힐을 거쳐 판교로 이어지는 곳이라서 도로가 정비되면 판교까지 승용차로 5분 거리다. 도로공사 주변 동판교 근처도 전원주택단지로 각광을 받는 곳.10∼20여가구 규모의 단지개발이 이뤄지고 있다.‘솔레빌리지’ 단지는 27가구가 들어선다. 필지당 200평 안팎이다. ●대장·백현·동원동 일대 투자유망 남서울파크힐을 개발하고 있는 김회태 KPC대표는 “판교 주변 전원주택단지는 서울을 오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거래가 잘되며 투자 가치가 큰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판교 신도시 개발 추진 일정에 맞춰 주변의 전원주택 개발 붐은 열기를 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도시 개발 일정이 확정되고 전원주택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일대 땅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특히 분당 신도시나 판교 신도시에 붙어 있을수록 땅값은 수직 상승한다. 승용차 접근이 쉬운 길가 전답은 평당 300만원 안팎을 호가한다. 도로가 없어도 평당 200만∼250만원을 부른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다는 고기리쪽 동원동 일대 전원주택 부지도 평당 300만원을 부른다. 분당이나 판교 옆은 웬만하면 평당 400만∼500만원을 넘는다. 김치영 공인중개사는 “판교 근처 임야나 논밭을 사서 전원주택으로 개발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대장동이나 석운동, 백현동, 동원동 일대가 투자 유망지”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새해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은 점술인이다. 개명한 세상에 누가 미신 따위에 솔깃하랴 싶지만, 일간지조차 새해를 맞아 국운이 어떠할지를 점친다. 옛날부터 이 땅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뿌리도 제법 깊어서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고려비기(高麗秘記)’,‘고경참(古鏡讖)’이 고대의 예언서라면,‘삼한회토기’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종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18세기부터 민중의 사랑을 받던 ‘정감록’은 국가의 탄압으로 간행되지 못한 채 다종다양한 필사본만 유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감록’은 1923년 드디어 활자화되었고 그것이 사실상 정본 취급을 받고 있다. ‘정감록’의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이 멸망하는데, 그 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로 압축된다. 아무 해에 무슨 사단이 터진다는 식의 짤막한 예언이 대부분인데, 한국의 예언서가 대개 그렇듯 60갑자로 햇수가 적혀 있어 세월의 흐름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언서에 보이는 민중의 공포 ‘정감록’의 비교적 앞쪽엔 이런 오싹한 대목이 있다. 원숭이해 봄 삼월과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가을 팔월, 인천과 부평에는 밤중에 배 1000척이 들어오고, 안성과 죽산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다. 여주와 광주에는 인적이 영영 끊어져버리고, 수원과 남양에는 피가 흘러 냇물을 이루리라. 한강 이남 100리에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끊어지고, 인적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전쟁영화의 섬뜩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예언은 수도권 전체가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작년 2004년도 원숭이해였다. 최악의 경제난으로 먹고 살기 참 힘든 한 해였고 북한의 핵문제로 전쟁 걱정도 컸었다. 북핵문제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강경책이 화근이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땅에 그런 참극은 없었다.‘정감록’의 예언이 틀린 셈이다. 그래도 여운은 남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구절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다들 그렇단다. 과연 ‘정감록’에는 민심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나 보다. 서울로 통하는 관문 인천 앞바다에 적을 태운 배가 1000척씩이나 들이닥친다고 했다. 그런 변고가 없다.1592년의 임진왜란, 그보다 5년 뒤의 정유재란도 이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으리라. 이런 참혹한 예언은 뜬금없이 나오는 예가 없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파괴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쏟아진 폭탄이 불꽃놀이 같았고, 명분 없는 전쟁에 죽은 사람만도 10만을 헤아렸다. 훗날 이라크에 예언서가 작성될 경우 미군의 무차별 폭격이 남긴 상흔은 집단적 기억이 되어 남을 것이다.‘정감록’에 담긴 이 대목도 민중의 전쟁공포증으로 헤아려봐야 한다. 우선 인명의 대량 살상을 말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안성 등의 지명이 등장하는 것도 대수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감록’의 예언은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1894년 7월 하순 일본군함은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다가 아산(牙山)·풍도(豊島)로 내려가 청의 해군과 한바탕 싸웠다.‘정감록’에 나오는 인천 앞바다 운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격전지 아산과 풍도는 바로 예언서에 언급된 남양의 코앞이다. 그 뒤 일본군대는 천안 부근의 성환(成歡)에서, 같은 해 9월에는 평양에서 청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뒀다.‘정감록’에 나오는 안성, 죽산 등도 실제의 전쟁터 성환에서 멀지 않다. 근대식 무기가 동원된 청·일 양국간의 살벌한 전투 장면을 지켜보면서 민중은 공포에 떨었고 이것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정감록’에 아로새겨졌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한 가지 다른 가능성도 있다.19세기 후반부터 한국에는 ‘서양오랑캐’의 침략을 두려워하는 위기의식이 조성되었다는 점이다.1840년 여름, 영국은 4000명의 병력으로 중국의 다구·톈진(天津)을 위협하였고, 이듬해에 다시 1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물밀 듯 난징(南京)으로 쳐들어갔다. 아편전쟁의 놀라운 소식은 연달아 한국에 알려져 조정은 물론 민심마저 발칵 뒤집혔다. 외침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불과 5년 뒤인 1871년에는 미국함대가 쳐들어와서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은 당황한 나머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워 외국과 교섭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 속에서 각종 소문과 예언이 유행했다. 갑자기 1000척의 배가 쳐들어와서 수도권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예언은 19세기 후반부터 민중을 떨게 했던 전쟁공포증의 흔적일 것이다. 거기에 청·일전쟁의 집단기억이 덧칠되었다고 보면 무리가 없겠다. ●‘정감록’에 숨겨진 비밀을 읽는 법 10년쯤 전이었다. 역사에 나타난 한국인의 이상세계를 탐구하던 내 눈길이 예언서 ‘정감록’에 닿았다. 한국역사상 대표적인 예언서라면 다들 ‘정감록’을 첫손가락에 꼽았기에 그 책을 끌어당겼던 것인데 실망이 컸다. 거기에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없었고, 성경이 약속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같은 것도 안 보였다.‘정감록’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서술은 없고 대신 알쏭달쏭한 표현만 단편적으로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거듭 읽을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는 ‘정감록’이 지닌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마침내 ‘정감록’에는 비밀스러운 문화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정감록’의 한 줄 한 줄은 수천년 동안 생성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였다. 민중은 공포와 절망에 떨면서도 예언 가운데 희망의 빛을 감춰두었던 것이다. ‘정감록’의 문화적 코드는 예언서를 예언서로서 바라보는 편협한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 내 생각으로는 자구의 해석에 매달릴 경우 ‘정감록’은 그저 단편적이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정감록’을 읽는 옳은 방법은 그게 아니라고 믿는다. 역사의 앞뒤를 재고 정치와 문화를 하나로 뚫어서 읽을 때, 그 비밀스러운 코드는 비로소 풀릴 것이다. ‘정감록’의 밑바탕에는 풍수지리설과 선천후천 교대설(옛 세상이 끝나고 이제 곧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이 있다. 맥맥이 흐르는 미륵신앙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감록’은 한국문화의 젖줄이다. 따지고 보면 동학, 증산도, 원불교와 같은 근현대 한국의 신종교도 ‘정감록’으로부터 생명수를 제공받은 셈이었다. ●‘정감록’과 김지하 ‘정감록’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대 한국의 지식인 몇몇도 오래 전부터 ‘정감록’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 김지하다.‘오적’이란 시를 비롯,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맞서 싸운 그의 투쟁담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김지하는 사상적으로도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생명이니 살림이니 하는 토종의 생각으로 서양의 다양한 철학과 주의 주장을 아우르고 싶어했다. 그런 김지하가 ‘정감록’을 즐겨 인용하였다면? 김지하는 사실 ‘정감록’을 본떴으며,‘정감록’의 정수를 꿰뚫어 보았다. 이 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좀더 해보겠다. 김지하의 책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의 ‘오행’이란 시가 앞서 살핀 ‘정감록’의 예언과 매우 비슷하다. 그 해 여름 복중 큰 눈이 내리고, 큰물이 지고, 큰 흉(凶)이 들고 안성과 죽산(安竹)과 수성과 당성 사이(隨唐間)에 굶어죽은 송장이 산처럼 쌓이고 비석이 땀을 흘리고 우물에 피가 솟고 대꽃이 피고 운운. 여기서 김지하는 전쟁의 참혹상을 흉년의 비극으로 바꿔놓았지만 지명도 그대로 두었고 얼개도 ‘정감록’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앵적가’의 경우는 더 심하다. 안성과 죽산 사이에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며 하는 식으로 그는 말을 이었다. 김지하의 패러디는 계속된다.‘이 가문 날에 비구름’에서는 아예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정감록’을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이 작품은 동학의 역사를 한 편의 유장한 시로 풀어낸 것인데,‘정감록’을 빌려다가 최제우가 동학을 개창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왜 김지하는 ‘정감록’을 자꾸 빌려다 썼을까. 단순히 그 예언서의 몇 대목에 관심을 둔 것일까, 아니면 ‘정감록’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낀 것일까. ●‘정감록’이란 민중의 밥그릇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문득 정경모란 이름도 생각난다. 그는 80년대 중반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 남북통일에 관한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그가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씨알의 힘’에는 ‘삼선각 운상 경륜문답’(‘찢겨진 산하’의 저본)이 실려 있다. 정경모는 그 글에서 민족지도자 김구, 여운형 그리고 장준하 세 사람이 천상에서 만나 민족의 미래를 논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마치 ‘정감록’에서 정감, 이심 및 이연이 금강산 비로봉에 앉아서 나라의 운명을 논의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정경모와 김지하가 ‘정감록’의 형식과 내용을 빌린 것은 우연이었을까? 그들은 민중의 입장에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한 사상가 또는 운동가였고, 그 점이 ‘정감록’을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다. 그들로서는 ‘정감록’에 담긴 예언의 내용 못지않게 지난 수백년 동안 민중이 사용해온 비밀스러운 화법을 터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언서가 그렇듯 민중은 겉으로 절망을 말하면서도 희망의 씨앗을 남몰래 감춰두고 싶어했다. 김지하 등은 그 점을 간파하였다고 할까. 그런 그들에게 ‘정감록’은 일종의 교과서였을 것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은 실의에 빠진 민중을 고무하고 싶었고 따라서 민중의 혀로 말하는 법을 배우려 애썼다고, 그렇게 믿어진다. 조선 후기부터 오랜 왕조정치에 염증을 내고 있던 민중은 ‘정감록’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잊을 만하면 ‘정감록’을 매개로 한 역모 사건이 터졌다. 그 때마다 수십 또는 수백명의 연루자가 붙잡혀 가 매를 맞고 더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기도 했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양반들의 조선이 영영 망하고 말 것이다. 천지개벽하면 시쳇말로 개똥쇠에 불과한 이 몸도 운대가 풀릴 것이다.” 민중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움켜잡는 심정으로 예언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으리라. 집권층의 입장에서 보면 ‘정감록’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불온서적이었다. 그래서 금서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정감록’은 합법적으로 출판되지 못한, 그러나 전대미문의 베스트셀러로 남았다. 일제시대까지도 그 인기는 여전해 ‘정감록’이 점지한 길한 땅을 찾아 수만명이 정든 고향을 버렸다. 일제시대 계룡산자락에는 불과 수년새 작은 읍 하나가 들어설 정도였다. 무수한 민중이 한 글자씩 ‘정감록’의 예언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김지하가 ‘정감록’을 방불케 하는 담시를 연달아 지은 것도 민중의 마음에 희망의 싹을 틔울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정감록’은 예나 지금이나 기댈 곳이라곤 전혀 없는 민중의 희망을 퍼 담는 밥사발이다. ● 정감록이란 조선후기부터 유행한 대표적인 예언서이다. 정도전, 정여립 등이 저자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 민중들 입장에선 위로와 희망의 터전이었다. 곧 조선왕조가 망한다, 살아남으려거든 복된 피난처로 가라,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와서 새 왕조를 연다는 것이 예언의 골자다. 조선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도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 수십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新)종교단체가 등장했다. 겉보기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인데, 풍수지리설·해도진인설·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그들의 대화엔 은어(隱語)가 많아 해석이 안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제목은 달라도 내용이 엇비슷한 온갖 예언서를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한다. ■ 백승종은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現 푸른역사硏 소장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 역사硏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진단학회 총무이사 ●저서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돌베개,2003년)‘그 나라의 역사와 말’(궁리,2002년)‘아버지 난 누구에요’(궁리,2001년)등 다수.
  • [조용섭의 산으路] 지리산 천왕봉

    [조용섭의 산으路] 지리산 천왕봉

    2004년 한해가 저문다. 조용히 산자락으로 들어가 지난 한해를 정리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새해를 맞는 것도 매우 뜻있는 일이다. 이런 사색(思索)의 산행을 하기에는 지리산 동쪽자락, 해발 1430m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치밭목대피소가 좋다. 그 어느 곳보다도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 있고, 천왕봉의 새해 해돋이 산행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탁 트인 대피소 앞마당에서도 일출을 맞을 수 있다. 산행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의 윗새재마을에서 시작하는 코스로 잡았다. 아쉽게도 윗새재마을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이 없다. 자가용이나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택시로 접근하여야 한다. 윗새재마을에서 조개골산장 왼쪽으로 등산로가 열린다. 이내 큰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며 ‘신밭골’로 들어서게 된다. 조개골은 아직도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계곡이다. 이 옆으로도 길이 있으나 ‘비지정로’로 입산을 통제하고 있다. 신밭골길은 호젓하고 편안하다. 하지만 주름진 지능선을 넘어가는 곳에 설치된 나무계단을 몇 번 오르노라면 호흡이 가빠진다. 깨끗한 숲에 눈길을 두어가며 1시간30여분 걷다 보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이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무재치기폭포 이정표를 만나면 배낭을 벗고 잠시 계곡쪽으로 내려가서 계곡 상단에 걸려있는 웅장한 폭포의 모습을 감상해보자. 요즘엔 청빙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다. 급경사 계단길이 끝나는 지점의 오른쪽으로 무재치기 전망대가 있다.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으나 벼랑을 이루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산길은 계곡을 한 번 더 건너면서 돌이 많은 길을 걷게된다. 의외로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으며 거친 숨을 내쉴 때쯤이면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치밭목대피소는 산악인 민병태씨가 관리하고 있는 곳으로 산꾼들이 즐겨찾는다. 라면·간식·주류 등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치밭목은 취나물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우선 대피소에 숙박등록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추위와 바람, 혹은 쌓인 눈으로 꼼짝도 하기 싫겠지만 대피소 주변을 서성여보자. 칼바람을 품은 신갈나무가 웅웅거리며 보내는 ‘자연에 순응’이라는 메시지를 접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해 일출을 맞이하려면 적어도 새벽 3시에는 일어나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깜깜한 산길을 나서야 한다. 대피소에서 써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잘 나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오르내림길에 설치된 철계단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써래봉이나 중봉에서 보는 일출도 무척 아름답다. 번잡함이 싫거나, 체력에 부담이 가면 무리하지 말고 이 곳에서 일출을 맞는 것도 좋다. 하지만 체력이 된다면 천왕봉의 해맞이야말로 일생에 한번은 꼭 봐야 할 장관이다. ●교통 자가용:대전∼진주고속도를 이용 단성IC에서 빠져나와 20번 국도로 덕산(시천면)→59번 지방도로 대원사 주차장→ 윗새재마을 진입(주차장이 없으므로 산장 등에 양해를 구하거나 길옆에 주차) 대중교통:진주에서 대원사나 중산리행 버스 이용 덕산에서 하차. 덕산에서 윗서재마을까지 택시(1만 8000원).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 덕산택시(055-992-9393), 개인택시(055-992-6363) ●숙박과 음식 대부분의 음식점이 민박 등 숙박을 겸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조개골산장(055-972-7869)과 비둘기봉산장(055-972-8569)을 들 수 있다.
  • [그 영화 어때?] 웰컴투동막골 촬영현장

    햇살이 채 스며들지 못한 산자락 응달엔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눈이 군데군데 웅크리고 있다. 차 한대 겨우 들어가는 울퉁불퉁한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기와를 얼기설기 이어 지붕을 만든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 ‘동막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피비린내났던 상처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그 곳. 강원도 평창군에 자리잡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의 세트장인 이 마을에서, 국군·인민군·연합군이 이념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름다운 팬터지를 그리고 있었다. #덩실덩실 마을 축제에 귀청 찢는 총소리가… 모닥불이 모락모락 연기를 날리는 마을의 정자나무 근처엔 한참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마을사람들과 그들에게 동화돼 함께 어울리는 군인들. 이들은 전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오게 된 연합군 조종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 길 잃은 인민군 수화(정재영), 국군 탈영병 현철(신하균)의 일행들이다. 음악이 흐르고 슛 사인이 들어가자 30여명의 마을 사람들과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지만 이내 귀청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판을 깬다.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피격됐다고 오인한 한·미연합군이 쳐들어온 것. 총구를 들이댄 채 “이 X새끼들아.”“Shut up”“빨갱이 어딨어?”등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마을사람들도 우왕좌왕한다. 참다 못한 현철은 국군을 공격하고, 수화도 연합군 두 명을 처리한다.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수십명이 뒤엉켜 긴장감 넘치는 액션신. “컷. 누구 다친사람 없나 확인해 주세요.”이내 무술감독이 동작들을 점검하러 나선다. 연합군 역의 외국배우들을 앞에 두고 급한 맘에 손짓발짓을 다 동원한다.“턱 탁(치는 동작), 드르륵(총소리) 알겠어요?” 그 짧은 틈을 타 까까머리를 한 아역배우들은 모닥불 앞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장난을 하느라 신났다. #“연극과 다른 팬터지와 비주얼 돋보일 영화” 평창군의 세트장은 10억원을 들여 넉 달에 걸쳐 폐광촌으로 버려진 야산을 다듬어 길을 내고 개울을 만들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완성시켰다. 이은하 PD는 “관광단지로 조성할 계획으로 평창군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세트장을 둘러보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2년전 같은 제목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던 장진 감독을 만났다. 연극과 많이 달라느지냐고 묻자 “연극만 하겠어요?”라며 웃더니 이내 영화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박광현 감독에게 잘 맡긴 것 같아요. 한국전쟁을 정말 감각적으로 찍었습니다. 영화는 한국 최고를 향해 가고 있어요. 나도 각본상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웃음)” 박광현 감독은 CF 감독 출신으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의 ‘내 나이키’편을 연출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연극과 이야기의 큰 구조는 바뀌지 않지만 동막골이란 공간의 팬터지를 더 많이 살렸다.”면서 “공중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비주얼과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는 1월중 크랭크업해 내년 5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평창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지붕 세븐스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엔 유독 주연배우가 많다. 영화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세우는 주연배우만 7명. 화려한 스타는 없지만 모두 연기력이 검증된 실력파 배우들이다. 국군은 신하균 서재경, 인민군은 정재영 임하룡 류덕환, 연합군은 스티브 태슐러가 맡았고 마을 여성 역에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유일한 홍일점으로 가세했다. 특히 정재영 신하균 임하룡은 연극에 이어 같은 역할로 다시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것. 정재영은 “머리에 흉터가 깊이 나서 딱 보면 ‘사람 여럿 죽였구나.’싶은 외모지만 알고 보면 따뜻하고 바보스러운 역”이라고 소개했고, 신하균은 “연극보다 디테일이 살아난 캐릭터로 큰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기의 앙상블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여러 영화에서 ‘반짝’ 출연에만 그쳤던 임하룡은 “겁많은 군인역으로, 내년엔 신인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스티브 태슐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배우.“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한국 스태프의 성실함에 놀랐다.”는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친절한 현장분위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순박한 동막골을 상징하는 여일 역의 강혜정은 “첫 촬영 때 모니터를 보고 ‘우리 영화가 이런 색깔을 가졌구나.’라는 생각에 설다.”면서 “한마디로 ‘때깔’이 아주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3개월간 동막골의 세트장 근처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면서 저절로 ‘팀워크’가 생겼다는 이들.“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좋은 영화가 잘 되는 것 같다.”는 정재영의 말대로 한바탕 흥겹고도 감동적인 연기의 앙상블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차상위계층’ 구제대책 허와 실] 3만원 더 번다고 지원 못받아

    [‘차상위계층’ 구제대책 허와 실] 3만원 더 번다고 지원 못받아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네살배기 아사(餓死) 사건은 사망원인에 대한 사실여부를 떠나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렸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기초생활 수급자뿐만 아니라 차상위 계층 주민들의 겨울나기는 힘겨워만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복지전담 공무원 수가 부족해 현장점검은 뒷전으로 밀리고 단순행정 위주의 업무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삶과 정부대책의 허실 등을 알아봤다. ●“조금 가진 게 오히려 고통” 교통사고로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은 김홍관(47·서울 영등포구)씨. 부인과 고등학생 아들, 중학생 딸 등 4가족의 가장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에서조차 제외된 이른바 차상위 계층의 생계 곤란자인 셈이다. 부인 최모(44)씨는 구청에서 마련한 자활후견기관에서 수공예 일을 하며 월 70만∼8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장애수당, 교육비 등을 합쳐 90여만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다. 최씨는 “먹고 사는 어려움이야 참을 수 있지만 언제 제정신으로 돌아올지 모를 남편의 병수발에 지쳐 있다. 남들 다 보내는 학원 얘기를 아이들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는 심정이 어떻겠느냐.”며 울먹였다. 몇해 전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지체장애 2급)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돼 월 70여만원을 받았던 정승호(37·서울시 구로구)씨. 장애수당과 각종 의료혜택을 받았으나 올해 초 산재연금 조회결과 소득기준에서 3만원 정도가 초과돼 보호대상에서 제외됐다. 아내의 가출로 어린 딸과 함께 사는 그는 모호한 기초수급 대상자 규정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보조금 지급기준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면서 “특히 장애인의 경우 소득·재산기준을 더욱 완화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녀가장 선이’의 겨울나기 서울 노원구 중계3동 임대 아파트에 사는 소녀가장 임선이(12·C초등학교 6학년)양.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지만 그다지 즐겁지 않은 표정이다. 스케이트장이나 놀이공원 등을 찾아 온종일 뛰어놀 나이지만 선이에겐 방학이 더 바쁘다. 지체장애인(협착성심낭염)인 아버지(63)와 심부전증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는 어머니 김모(52)씨, 그리고 정신지체 장애아인 동생 동철(11·특수학교)이의 손발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와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선이의 부모는 근로 무능력자로 국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을 받으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하굣길에 만난 선이는 자기 이름을 부르자 짐짓 놀라는 눈치면서도 이내 의젓한 답변을 내놓는다.“방학을 하면 몸이 불편한 부모님께 따뜻한 밥을 챙겨 드리고 병원에도 모시고 가겠다.”면서 “동생과 함께 책도 많이 읽을 것”이라고 한다. 중계3동 복지전담 공무원인 구자흥 주임은 “선이가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아 대견하다. 부모님과 동생까지 장애를 앓고 있는데 선이마저 혹시 나쁜 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희망없는 삶 “이렇게 사느니…” “이렇게 목숨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게 됩니다.” 뇌병변으로 7년째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이승덕(49)씨는 만나자마자 심경을 절절하게 털어놨다. 이씨는 서울 관악구 산자락에 있는 14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온종일 누워 지낸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여서 동사무소로부터 생계·주거비로 월 60여만원과 8만원의 장애수당을 받는다. 유일한 수입원이지만, 아파트 공과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이씨처럼 생계·주거비, 장애수당 등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은 12만 2000가구, 기초생활 보호 수급자는 142만명에 이른다. 그래도 기초생활 수급자들은 320만명에 이르는 ‘차상위계층’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볼 수 있다. 차상위계층은 살림살이 몇 개가 더 있다는 등의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서 아예 제외돼 더욱 버거운 삶을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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