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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할 일 접고 농촌 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전혜경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기고] 할 일 접고 농촌 가는 시대가 오고 있다/전혜경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요즘 취업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것만큼 어렵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던 시대는 까마득한 옛날이 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젊은이가 정말 많다. 그렇지만 취업 걱정 없이 졸업 후 고소득을 올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한국농수산대학 졸업생이다. 이 대학 졸업생 가구의 2013년 평균소득은 6814만원으로 일반 농가(3452만원)의 1.97배, 도시 근로자가구(5527만원)의 1.23배에 이른다. 이들은 농어업과 축산업에서 미래를 찾고 있는 젊은 엘리트다.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는 대신 농수축산업을 전문 직종으로 생각하고 도전한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은 평생 직장을 갖고 도시의 평균적인 삶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 연소득 1억원 이상의 부농 신화를 쏘아 올린 사람도 많아졌다. 지난해 경북 지역에는 억대 부농이 8000가구를 넘어 1만 가구를 향하고 있다. 전남 지역도 4000가구를 넘어섰다. 도시로 갔던 청장년층이 농촌으로 다시 돌아와 ‘억’ 소리 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할 일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젠 “할 일 접고 농촌으로 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당장 농대로 가라. 여러분이 은퇴할 때쯤 농업은 가장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재테크 박람회 자리에서는 “당신의 자녀를 농부로 키운다면 그들 세대에서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전에도 “농업은 가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 중 하나이며, 향후 20년간 선망의 직업은 농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문가들이 농부를 유망 직업으로, 농업을 유망 산업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미 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농업이 미래성장동력임을 예측하고 대규모 투자를 하며 농업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 나라도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첨단 과학기술을 농업에 접목시켜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선 농업을 생산 중심의 1차 산업에서 제조·가공의 2차, 체험·관광·서비스의 3차 산업을 융복합시켜 6차 산업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뉴질랜드·호주 등 농업 강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우리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기상이나 농촌의 고령화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농업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농업에 첨단 과학기술을 융복합시키고 농업을 고부가가치의 6차 산업으로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미래 농업은 우려와 걱정을 떨치고 신성장산업으로 우뚝 설 것이다. 지금 세계가 미래 농업의 성장성에 기대를 걸며 주목하는 것처럼 젊은이들도 농업과 농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이 10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농업과 농촌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열정과 패기로 도전한다면 억대 부농 신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다음 생애에는 금융인보다 농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짐 로저스의 말을 젊은이들이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 [시론] 증세, 복지로 이어진다는 것 보여줘야/남재욱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팀장

    [시론] 증세, 복지로 이어진다는 것 보여줘야/남재욱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팀장

    증세와 복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며, 장기적으로 중부담 중복지를 지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들은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여당 대표는 복지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과도한 복지가 국민을 나태하게 한다고 말하고, 대통령은 증세를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더니, 경제부총리는 아예 한국이 이미 고복지 국면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이 어느 정도이며, 앞으로 확대해야 하는지 축소가 필요한지, 어느 수준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린다. 한 국가의 복지정책이 어떤 수준과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과 논의가 나올 수 있지만, 현재에 대한 진단까지 이토록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한국의 복지 부담과 지출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복지에 대한 부담 정도를 보여 주는 국민 부담률은 201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4.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1%보다 약 10% 포인트 낮다. 복지 지출 비중도 2014년 GDP 대비 10.4%로 OECD 평균인 21.6%보다 약 11% 포인트 낮다. OECD 평균과 비교해 복지 부담과 지출이 모두 낮다. 한국의 상황을 저부담 저복지로 진단할 수 있는 이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00년 이후 증가율이 OECD보다 높고 향후 자연증가 폭이 크다며 사실상 고복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과거 낮은 수준에서 증가해 온 것으로 인한 착시이며, 고령화와 연금제도 성숙 등으로 지출이 늘어난다고 해도 저복지가 자동적으로 고복지가 된다는 인식은 안일하다. 한국의 상황을 저부담 저복지라고 본다면 복지 지출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인구 고령화, 출산율 저하, 경제적 양극화, 일자리 불안정 등 현재 우리 사회·경제 구조에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이 모두 복지 욕구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여당에서 나온 중부담 중복지 논의는 고무적이다. 한국의 현실을 저부담 저복지로 진단하고, 복지와 세금 모두 늘려야 한다는 문제 인식을 담고 있다. 다만 중부담 중복지라는 말은 추상적이어서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복지국가가 산업화와 함께 나타났음을 감안한다면 OECD 국가 평균 정도를 중부담 중복지 수준으로 정의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복지에 대한 부담과 지출을 점진적으로 현재보다 10% 포인트 정도 상향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부담의 증가다. 복지 지출 증가가 재정 압박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현명한 지출도 필요하지만, 지출 증가에 맞춘 부담 증가가 핵심이다. 이는 정부가 주장하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지출 구조조정으로도, 야당이 요구하는 부자감세 철회만으로도 부족하다. 결국 증세다. 국민의 세 부담을 늘려 가야 하는데, 다행히 근래 여론조사에서 제대로 된 복지를 위해서라면 더 낼 용의가 있다는 대답이 늘고 있다. 시민들이 보편적 보육이나 기초연금 같은 복지 혜택을 점차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 과세 형평성 문제 등이 여전히 조세 저항의 원인이 된다. 최근 연말정산 파동에서도 더 내는 것 자체보다는 재벌 대기업 같은 진짜 부자의 부담은 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려면 조세 부담의 공정성을 바로잡아야 하며, 증세를 할 경우 세금이 복지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예를 들어 복지에만 사용하는 복지목적세를 도입해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상속증여세 등 직접세에 부가세 형태로 조달하면 어떨까? 복지에 대한 재원을 누진적으로 부담하고 사용처가 분명하기 때문에 시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책 대안도 중요하지만 정치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 세금과 복지는 정책의 영역이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다. 우선은 우리가 저부담 저복지 상황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 현실 자체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를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법으로 늘려 갈지를 논의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자. 세금과 복지는 우리 국민 개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며, 이를 시민이 참여해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디지털 복원, 극장에서 만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디지털 복원, 극장에서 만난다

    세기의 천재 예술가이자 문화 아이콘인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모던 타임즈’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기존 필름 영화를 고화질 디지털로 복원)으로 오는 3월 국내 개봉한다. ‘찰리 채플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짧은 콧수염과 중절모, 헐렁한 바지와 커다란 구두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뒤뚱뒤뚱 걷는 ‘리틀 트램프’일 것이다. 이는 1914년 찰리 채플린이 출연한 단편 영화 ‘베니스에서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를 통해 처음 선보였던 캐릭터다. 이번 ‘모던 타임즈’의 개봉은 찰리 채플린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리틀 트램프’ 탄생 101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모던 타임즈’(1936년)는 하루 종일 공장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일을 하다가 어느새 모든 것을 조이고자 ‘강박 관념을 갖게 된 외톨이 찰리’와 ‘고아 소녀’가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영화의 배급을 맡은 엣나인필름 측은 “찰리 채플린의 친근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물론 산업사회의 부조리, 소외되고 기계화된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담겨있다”며 “웃음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진한 웃음과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공개된 예고편은 ‘모던 타임즈’의 테마곡에 맞춰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산업화의 명암을 단적으로 드러내 눈길을 끈다. 또한 ‘찰리가 필요한 시간, 이젠 웃어요!’라는 카피는 웃을 일 없는 지친 현대인들에게 활력소가 되어줄 영화가 될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 ‘모던 타임즈’는 오는 3월 19일 개봉된다. 러닝타임 87분. 사진·영상=엣나인필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어르신들 가슴 속 묻어둔 이야기 ‘세상 밖으로’

    “해방 이후 태어나서 6·25전쟁을 겪었고, 4·19혁명과 5·16쿠데타의 정치 격변기를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나라를 보았다. 나는 그 시대를 겪으며 살았다.” 1946년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태어난 이근철 할아버지는 1948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했다. 이 할아버지는 동년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란 생활을 겪어야 했고, 산업화 시기에는 수출 역군으로 일해야 했다. 그 시대엔 누구나 그랬다. 그래서 그의 머리에는 지난 60년간 보통 사람들이 기억하는 전쟁과 경제성장, 민주화에 대한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다. 1944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한 황오주 할아버지는 2004년 공직 생활을 끝내고 수년간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는 “인생 이모작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들 소용없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사는 법”이라며 결국 2009년 학교보안관 일을 시작했다. 평생 공무원으로 지내 온 그에게 학교보안관은 또 다른 세계였다. 그는 “엄마 닭만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1939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42년간 교편을 잡아 온 심진용 할아버지가 수십년간 써 내려온 일기에는 삶의 고민과 함께 가장으로서의 무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심 할아버지의 아들은 부친의 인생을 “5남매의 아버지로서 젊은 날의 열정이 저당 잡힌 고난”이라고 표현했다.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라는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서울 관악구는 12일 구청 강당에서 ‘어르신 자서전 출간지원 사업’을 통해 자서전을 낸 노인들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흔히 어른들의 삶이야 비슷비슷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종필 관악구청장의 생각은 달랐다. 유 구청장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현대사의 기록”이라면서 “평범한 사람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어 누구나 자서전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응은 뜨겁다. 올해도 10명의 노인이 자서전을 썼다. 구는 자서전을 출간하는 노인 1인당 250만원을 지원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책은 ▲최창락 ‘나의 뿌리와 삶의 흔적’ ▲심진용 ‘심해가 살아온 길’ ▲전태권 ‘노송처럼 늙고 싶다’ ▲김태곤 ‘가난은 내 삶의 지름길’ ▲송태선 ‘아, 어머니’ ▲황오주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문금선 ‘들꽃 향기 같은 소중한 순간들’ ▲이근철 ‘금진강의 꿈’ ▲김애숙 ‘기억속 풍경’ ▲임동길 ‘Soli Deo Gloria’ 등 10권이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고구마 산업, 일본을 배워라

    국내 고구마 산업의 문제점은 생산량을 대부분 찌거나 군고구마로 소비하는 현실이다. 고구마는 전분을 주성분으로 하면서 색소나 각종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한 점을 이용해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제과·제빵, 천연색소, 음료, 면류, 주류, 떡과 같은 가공 식품 외에도 고구마 전분은 당면, 물엿, 포도당, 의약품, 화학약품, 화장품 등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장난감이나 기계 부품, 바이오 플라스틱 등으로 개발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고구마 소비층이 유별나게 두터운 일본은 고구마 산업의 가능성과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고구마를 6차 산업으로 이끈 ‘페스티발로’ 기업은 일본 내에서도 고구마 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회사로 평가된다. 제빵·제과 분야에서 고객의 취향과 눈높이를 고려한 제품 개발이 독보적이다. 대표 상품인 케이크 ‘러블리’는 스튜어디스 케이크라는 별칭으로 전문적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일본 정부로부터 고구마 화과자 개발을 의뢰받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중견 기업으로 40여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술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구마 소주는 문화와 결합된 대표적인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쌀, 보리와 함께 일본 소주의 3대 원료로 인정받고 있다. ‘가고시마’는 고구마를 주류 원료로 특성화해 일본 고구마술의 99%를 공급한다. 국내에서 흔히 고구마 말랭이로 유통되고 있는 ‘호시이모’(쪄서 자른 다음 건조한 것)는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간식 제품인데 독특한 제조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적지 않다. 도요타자동차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로 고구마 바이오에탄올에 주목해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에 ‘도요타바이오’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국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고구마 가공 산업이 서서히 기지개를 켤 정도다. 경북의 선비촌고구마명가 영농법인에서는 ‘미소머금고’라는 브랜드로 과자와 빵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원료만을 사용해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충남의 몽산포영농조합법인은 고구마 분말을 이용한 수프와 팬케이크, 쌀 과자를 상품화했다. 전남의 한아름영농조합법인은 독특한 발효 기술을 이용한 자색 고구마 음료를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고구마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6차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 10㏊당 바이오에탄올 생산 효율이 418ℓ로 높은 고구마 ‘대유미’가 개발되기도 했다.
  • 文의 중도 확장 ‘반쪽 행보’… 진정성 의심 땐 파괴력 약할 듯

    文의 중도 확장 ‘반쪽 행보’… 진정성 의심 땐 파괴력 약할 듯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가 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현실 권력’이다. 이제는 두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당 대표 당선 후 첫 공개 행보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파격’을 선보인 것을 문 대표 측은 이렇게 평가했다. 문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개인적으로라도 참배하겠다는 뜻을 굳혀 왔다”고 한다. 문 대표는 방명록에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표 측의 인식을 종합해 보면 이날 행보는 ‘국민 통합, 역사와의 화해’ 측면에서 선택된 것이었다. 그러나 야권 내에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오랜 전통을 거스르는, 정치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은 ‘돌출 행동’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사자의 의도와 해석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신임 최고위원들은 참배 자리에 모두 빠졌다. 문 대표와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등 일부만 참석하는 반쪽짜리가 됐다. 문 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중도로의 확장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들이다. ‘파격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일회성 정치 행위’로 간주돼 중도 표심을 움직일 정도의 파괴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며칠 만에 결정된 즉흥적인 논의 과정에 진정성마저 의심하는 쪽도 있다. 진보 진영은 이날 문 대표의 행보를 ‘기습 공격’처럼 받아들였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트위터에서 “건국과 산업화를 들먹이며 자랑스러운 전임 대통령 운운하는 문 대표의 평가는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백찬홍 씨알재단 홍보위원장은 “왕조도 아닌데 전직 대통령에게 머리 숙일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무명용사 묘역에 헌화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이날 현충탑 참배 뒤 이·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참석하지 않은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톨레랑스(관용)는 피해자의 마음을 더 먼저 어루만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며 이견을 드러냈다. 유승희 최고위원은 “지금은 당의 지지와 결속이 중요하고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하는 행보가 필요하다. 대선 국면에 필요한 전략적 행보는 조금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중도표 확장 측면에서의 실효성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행보가 일회성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중도 행보가 뒤따라야 하는데, 과연 ‘정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중도를 채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서다. 문 대표의 행보를 우클릭의 시작으로 보고 ‘기대감’을 높여 갈 중도우파의 욕구를 마냥 충족시켜 줄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용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거짓말을 했다’고 일관되게 비판했다”면서 “문 대표가 중도 행보를 지속하지 못할 때 뒷날 대선에서 이날 참배에 대해 선거용이라고 비난받는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라며 복잡다단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사설] 문재인 대표 ‘통합의 정치’ 주문 앞서 실천해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어제 당선 이후 첫걸음으로 국립현충원 이승만·박정희 두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이라고 적고,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면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던 대선 후보 때에 비해 달라진 모습이다. 대표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던 것과는 결이 다른 행보다. 문 대표가 강조한 ‘통합의 정치’가 그저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야권이 대안 없는 선동성 비판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증폭시키려다 외려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좀먹는 구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국민 다수가 문 대표의 이·박 두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긍정 평가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나.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친노 세력의 대표 주자인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에 공이 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에 공이 있다”고 참배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평가는 어쩌면 수권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새정치연합 측이 반겨야 할 일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독재나 장기 집권으로 굴곡은 많았지만, 온 국민이 함께 땀흘려 선진국 문턱까지 도약한 성취마저 부정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노무현 전 대통령)라는 삐뚤어진 인식에 머무는 한 야권의 지지 기반 확대는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문 대표의 현충원 참배에는 신임 최고위원들과 소속 의원 50여명이 동행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은 끝내 외면했다. ‘통합의 정치’가 레토릭으로선 쉽지만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 진풍경이다. 문 대표의 현충원 나들이가 한낱 대선용 원맨쇼가 아님을 입증하려면 후속 행보가 중요하다. 우선 당내에서 진정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 대선 패배나 지난해 7·30 재·보궐 선거의 참패 등 야당의 연이은 좌절은 여권과 충분히 각을 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된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 대한 야당의 견제와 비판은 당연하다. 문 대표가 이날 박근혜 정부에 화해와 통합의 길을 가도록 촉구한 것도 원칙적으로 수긍이 간다. 현 정부가 인사편중 등으로 국민통합에 역행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하지만 엄연히 상대가 있는 마당에 여야 어느 한쪽에만 통합의 정치를 주문하는 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만큼 무익하다는 생각이다. 문 대표는 이날 생뚱맞게도 현 정부가 국민통합을 깬 대표적 사례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북한 지도자와 함께한 6·15, 10·4 공동선언을 실천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려는 빌미를 준 내용을 포함해 남남 갈등의 도화선이 된 10·4 공동선언을 덜컥 합의해 차기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준 사실을 안다면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끝없는 정쟁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고질이고, 이제 국민은 이런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는 넌더리를 내고 있다. 부디 여든 야든 통합의 정치를 먼저 실천하는 쪽이 민심을 얻게 될 것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 “정부 주도의 성급한 노동시장 개혁 곤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올해 노동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4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노사관계 및 사회적 대화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이날 집담회에는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비정규노동센터, 전국여성노조, 청년유니온, 금속사용자협회 등 주요 노사단체와 시민사회단체, 언론, 학계 전문가 25명이 참석했다. 토론에 앞서 진행된 발표에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은 “기존 산업화 시대의 노동시장 모델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델로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면서 “지금까지 정부는 종합적인 관점이 아니라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했고 경영계와 노동계 역시 각론적인 접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사·정은 모두 30∼40년 주기로 변화하는 고용노동 시스템의 개혁과 전환이라는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금은 고용유연성이 확대되기보다는 제어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정부 주도로 성급하게 진행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고용안정성 제고를 위해 가장 큰 과제는 비정규직 고용의 축소”라면서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기업 중심 고용체제를 지양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배 본부장과 정 교수는 일부 법과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노동시장 시스템을 전환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참가 주체들의 대표성을 높이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에서는 통상임금, 임금피크제,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의 굵직한 이슈에 대한 논쟁이 오갔다. 신쌍식 금속사용자협회장은 “올해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며 “입법론적으로 해결되기를 간곡하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정일진 금속노련 부위원장도 “통상임금 관련 소송만 14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법률제정은 여전히 되지 않고 있다”면서 고용노동부 등 정부가 통상임금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하라고 했더니 정규직이 과보호됐다는 편협한 분석을 내놨다”며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관련 과제들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는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사정위는 이날 집담회 등을 바탕으로 다음달 말까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근로시간단축, 임금체계 개편 및 사회안전망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관한 대타협을 추진할 방침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직격 인터뷰] “모든 고교 가·나·다 군별로 선발… ‘일반고=2류’ 편견 깰 것”

    [직격 인터뷰] “모든 고교 가·나·다 군별로 선발… ‘일반고=2류’ 편견 깰 것”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취임 첫해인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폐지와 유치원 중복지원 제한 등 논란이 된 정책을 잇따라 추진했다.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보육료 지원) 정책과 관련해서는 교육부와의 갈등이 여전하다. 이념의 대립이 첨예한 교육계의 한복판에 진입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든 조 교육감은 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행 고교 입시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또 다른 논란을 예고했다. 조 교육감은 또 “공공기관이 을(乙)을 살리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서 “사회적 경제를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관련 교과서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취임 뒤 자사고 평가 등으로 논란이 많았는데. -취임 뒤 7개월 동안 조심스러우면서도 바쁘게 보냈다. 원래는 1년 정도 전체를 포용하는 정책부터 안정적으로 추진하면서 자사고 관련 문제를 나중에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법률에 정해진 평가 시기가 취임 직후라 평가와 지정취소까지 급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정책들까지 진영 프레임에 갇힌 부분이 있어 아쉽다. →‘일반고 전성시대’ 역시 크게 효과를 못 보는 것 같다. -지난해 자사고 평가 논란을 거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미 5년 전 만들어진 자사고들을 축소하고 폐지하는 ‘네거티브’ 정책보다는 오히려 바람직한 고교 입시제도를 만드는 ‘포지티브’ 정책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주로 했다. 일반고 지원을 더 잘해서 일반고가 공교육의 중심으로 서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자사고 관련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대안이 될 만한 고교 입시제도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고교 입시제도 개편을 준비하는 것인가. -지금의 선발 방식은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다 뽑아가고 나서 그 다음으로 일반고에 배정하는 형태다. 이들 고교가 성적이 좋은 학생을 미리 선발하면서 일반고가 황폐화하고 있다. 지금의 고교 선택제에 따른 선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행 고교 선택제는 학교 선택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점이 있지만 후기고인 일반고에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이 가게 되는 구조다. 이 같은 불평등한 고교 입시제도를 임기 내에 바꾸고 싶다. →전기고와 후기고를 통합 선발하는 방안이 대안이란 뜻인가. -일반고는 전통적으로 대학 입학의 주된 통로였는데 지금은 후기고로 배정하는 형태로 바뀌면서 2류로 전락했다. 이를 고쳐 전기고와 후기고 통합을 큰 틀에서 정한다면 모든 고교를 가·나·다 방식으로 군별로 선발하는 등 제도 모형이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탈락하는 학생들을 위한 통로를 만드는 작업도 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설계가 가능하다고 보고 연구를 시작할 예정이다. →군별 모집방식은 지난해 유치원 모집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았나. -유치원 원아모집이 실패한 원인은 유치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집군에 학부모가 선택하고 싶은 유치원이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던 것도 이유다. 이번에 문제들을 알았으니 각 군에 유치원을 균등하게 분포하도록 하면 된다. 중복지원 문제는 인터넷 시스템 등으로 걸러낼 수 있다. →유치원 입학도 그렇고 경쟁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옳은 지적이다. 교육 불평등은 유아교육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서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런 ‘아동학대’ 수준의 처참한 교육경쟁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1960~70년대 진행됐던 ‘추격산업화’의 관성을 누군가가 제어해야 할 때다. 주류의 질서를 바꾸거나 과감히 탈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영화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처럼 언젠가는 객차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야 한다. →혁신학교를 중점 추진하고 있는데 성과가 미진하다. 왜 그런 것 같은가. -대입에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학부모들의 반대로 혁신학교 신청을 철회한 학교도 있다. 현재의 주류 경쟁의 시각에서 보면 혁신학교는 답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물어보자. 우린 정말 행복한지, 왜 사는지 질문을 던져 보자. 혁신학교가 그 답이 될 수도 있다. →동네서점 살리기에 동참키로 해 화제가 됐다. -이제는 공공기관이 을을 살리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대기업 등에 대한 지원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갑이 을을 억누르는 천민자본주의의 경제 작동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제 이론가인 칼 폴라니의 주장대로 시장의 논리가 전 사회적으로 확산하면서 사회가 죽어가고 있다.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으로 자영업자의 반란이나 재래시장의 반란 등이 제시됐는데, 이런 해법을 공공기관에서 찾아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이런 정책을 임기 내에 많이 개발하고 싶다. 교육 과정에 사회적 경제를 포함시키고 교과서도 만들 생각이다. 서울·인천·경기교육청 등이 공동으로 해볼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교부금 축소를 시사해 교육감들이 반발하고 있는데 누리과정 지원은 어떻게 되나. -교육청별로 2~7개월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편성했고 다행스럽게 국고지원금으로 3개월 정도의 예산을 확보됐다. 지방교육교부금법에 따라 지방채 발행이 가능해지면 교육청별로 나머지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지역 교육청별로 이견이 있다. 그나마 지난해 어린이집 예산 파동은 교육부와 교육감이 동일 보조를 취해 완화되는 분위기였는데 박 대통령이 교육교부금 축소를 밝혀 쟁점이 바뀌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가까이 다가가는 미래지향적인 ‘신(新)교육입국론’을 추진하길 바란다. →교사 복지와 관련해 추진 중인 정책은 무엇인가. -교사의 장기 재직 휴가와 연가를 결합해 한 달간 재충전할 수 있는 ‘교사 안식월’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무급휴직제도 안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쉼과 여유가 있는 생활이 가능하게 하자는 취지다. ‘철밥통’이고 긴 방학도 있는데 또 뭘 더 쉬도록 하느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이젠 사회의 질이 좀 바뀌고 개인의 삶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 전체가 잠자지 말고, 쉬지 말고, 놀지 말라고 강요한다. 일종의 속도전적인 삶을 강요하는 것인데, 교육감으로선 교사사회부터 바꿔 나가고 싶다. 대담 박홍환 사회부장 정리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이슈&논쟁]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이슈&논쟁]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폐철로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파크를 보고 서울역 고가를 공원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남대문시장 상인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교통 체증과 지역 상권 침체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4개월여가 지난 지난달 29일 박 시장은 “정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서울역 고가를 전면 철거하기보다는 쉬고 거닐 수 있는 공간으로 재생하겠다”며 “17개 보행로를 만들어 명동, 남산, 서울역이 연결되는 도보 관광 시대를 열겠다”고 사업 추진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우회도로 건설 등을 요구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있다. 서울 도심 개발의 핫이슈가 된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어 봤다. [贊]조경민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 소장 “사람이 걸어야 길이 산다…도시 슬럼화 주범은 고가” 길이 주목받고 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압구정 가로수길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길들은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상업적 성공을 넘어 지역의 랜드마크마저 바꾸고 있다. 지자체들은 앞다퉈 길의 브랜드화에 골몰하고 있다. 길이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장과 속도를 중심으로 변모해 온 산업화시대에서 도로가 넓어지고 높아지고 복잡해지는 동안 도시는 끊임없이 단절돼 왔다. 다시 말해 조금 더 많은 차가 조금 더 빨리 달리는 동안 사람들은 조금씩 고립돼 온 셈이다. 무한 경쟁의 속도와 성장에 숨이 막힌 도시민들은 탈출구를 찾아 산으로, 들로 나가 걷기 시작했으며 일단의 사람들은 도시 안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고 발 빠른 자본은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걷는 것’이 돈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걷는 길은 또 사람들의 행동 패턴과 관계망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전용거리로 바뀐 신촌에 거리음악가들이 늘어나고 피해 다니기 바빴던 좁은 보도를 넓혀 만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은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단골이 된 상가의 주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학생이 제법 늘었고 한동안 사라졌던 주점들의 축제 후원 전통이 살아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변화다. 낭만 1번지로 불렸던 대학로가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없앤 이후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한 것과 비교해 보면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러한 흐름 한복판으로 서울역 고가가 들어왔다. 1970년에 지었으니 올해로 만 45살이 된 고가가 논란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첫 번째 키워드는 안전이다. 2006년 안전 D등급을 받고도 뾰족한 교통 대안이 없어 버스와 트럭을 못 다니게 하며 버텨 왔지만 2014년 1월 상판의 일부가 떨어져 내리는 사고 이후로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두 번째 키워드는 쇠락과 낙후로 요약된다. 외국인 방문 부동의 1위였던 남대문시장은 현재 4위로 밀려났고 명절 때면 단골로 등장하던 뉴스에서 사라졌다. 만리동 고개와 중림동, 서계동은 여전히 낙후돼 있으며 개발의 기대마저 접은 지 오래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는 여전히 씽씽 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조금 더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번호판 추적을 통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신세계백화점에서 공덕동 로터리까지 통행하는 차량의 60%는 단순 통과 차량이다. 그냥 지나치는 차량으로 도로는 더 막히고 매연은 늘어나며 쇼핑은 불편해지고 주거 환경은 더 악화된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고가 주변 환경은 후미지고 소음이 심각한 데다 노숙자까지 늘어나 인적이 줄고 주변 상권은 쇠락해 다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루 유동인구 30만명의 서울역 주변에서 섬처럼 고립돼 가는 서울역 고가. 변화의 출발점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쉬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지나치는 길이 아니라 머물다 가는 길로 바꾸는 일이다. 차도를 줄이고 보도를 늘리는 도로 다이어트를 통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세계의 도시들에서 서울의 해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재도시화의 코앞에 와 있다. 도시를 재생한다는 것은 하드웨어를 바꾸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서울역 고가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변화의 열쇠는 시민과 주민이 쥐고 있다. 변화는 발전을 가져올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성장통을 동반한다. 지금의 불편을 참을 수 없다면 불안한 미래는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놓여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걷고 싶은 고가, 가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서울을 상상해 본다. [反]정희창 서울 중구 의원 “주민 소통 없는 독단 사업…차량 우회하면 상권 침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역 고가 공원화 조성 사업인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사업 추진의 당위성과 여러 가지 구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체 교량 건설 등 지역 주민이 요구하고 있는 대책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1970년 건설된 서울역 고가는 서울 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시설의 한 축이다. 45년간 중구, 용산구, 마포구와 남대문시장, 명동 등의 도심 지역을 연결하며 하루 5만대 이상의 차량이 통행하는 간선도로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이처럼 수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도로를 끊으려 하면서 시민 및 지역 주민들과 사전 상의나 교감이 부족했던 점은 소통 전문가로 알려진 박 시장의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다. 최근에야 서울시 관계자들이 현장으로 나와서 그동안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 자주 만나서 논의를 하겠다며 설득 작업에 나선 모습이다. 그렇다고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에 따른 논란을 소통 부재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서울시가 벤치마킹하겠다는 뉴욕 하이라인파크와 서울역 고가는 여건 등 근본부터가 다르다. 하이라인파크는 20여년간 방치된 폐철길을 주민들의 의견으로 1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 반면 서울역 고가는 현재 철도로 단절돼 있는 동서를 잇는 기능을 하는 도로다. 이 때문에 기한을 정해 놓고 서둘러 추진하려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시의 발표 내용에 그동안 주민 설명회와 면담 등을 통해 요구된 사항이 일부 반영되긴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요구하는 대체 도로 건설 등 주된 요구 사항은 전혀 검토가 안 됐거나 서로 인식 차이가 너무 큰 것 같다. 서울역 고가를 공원화함으로써 퇴계로 교통량이 줄어들면 퇴계로가 보행 친화적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 창출이 될 것으로 여기지만 명동, 남대문시장 등 주변 지역 상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가도로를 대체 도로 없이 끊으면 많은 차량이 우회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줄고 상권은 침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역 상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가내수공업 공장과 소상공인의 생존권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특히 현재 건설되고 있는 만리1·2, 공덕, 아현, 북아현 구역에 대한 2만 가구의 재개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교통량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한 대책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2009년부터 고가도로 버스 통행이 제한됨에 따라 퇴계로와 인접한 회현역 근처의 상점들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고가가 하루빨리 신설되고 버스 노선이 이전처럼 정상화돼 상권도 다시 살아나길 기대하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서울역 고가를 녹지공원으로 조성하면 도심 속 쉼터로 자리 잡아 관광명소가 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정작 인근 4만여명의 소상공인과 지역 주민의 생존권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는 외면한 정책 결정이다. 무엇보다 서울역 주변 여러 가지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이미 과거에 논의됐거나 현재 검토되고 있는 사항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사업과 관계없이 당연히 추진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는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2012년 설계용역을 완료한 서울역 고가 대체 도로 건설을 선행해야 한다. 서울역북부역세권개발계획 등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먼저 약속하고 주민들과 협의 후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길 바란다. 지난달 23일 중구와 용산구, 마포구 주민들로 구성된 ‘서울역 고가 공원화 반대 3개구 주민대책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21·끝) 문학 작품 속 서울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문학은 픽션이지만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망원경이거나 현미경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현실을 우화처럼 보여 주는 만화경(萬華鏡)이 되기도 한다. 역사가 서울에 관한 공식적이고 근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문학작품에는 역사에 나오지 않는 서울사람들의 내밀한 희로애락이 실려 있다. 공룡 같은 도시, ‘서울공화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 숲에 가려진 서울사람들의 진면목은 역사보다 오히려 문학 속에 살아 숨 쉰다. 우리 문학작품 속의 서울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파리의 에펠탑이나 몽마르트르 언덕, 센강처럼 낭만적이고 생동감 있는 모습일까. 한번쯤 가 봐야 하는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시와 소설 속 서울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로 넘친다. 내 집 마련의 꿈과 전세살이의 고달픔, 실직과 타향살이의 애환,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투성이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과정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천민자본주의의 욕망이 꿈틀댄다. 한때 프랑스 도시사회학자들이 유행시킨 ‘Seoulization’이라는 용어가 서울을 상징하는 단어로 회자된 적이 있다. 미국 뉴욕의 고층건물 집적화를 꼬집을 때 쓰였던 ‘Manhattanization’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Seoulization’이란 초거대도시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유형의 현상 중 하나로 흔히 ‘서울형’이라고 설명됐다. 환경오염과 파괴, 무질서, 범죄가 판치는 쓰레기통 같은 도시라는 뜻으로 쓰였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서울을 아파트의 나라로 특징지었다. 한국과 프랑스는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대표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였다.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였고, 서울이 곧 한국이었다. 그런 공통점 때문에 보존으로 한발 앞서간 파리사람들이 개발에 목을 매는 서울사람들을 비하한 것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이전 서울을 그린 시가와 산문 작품들 어떤 문학작품이 단순히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으로 서울을 다룬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문학과 예술작품의 대부분이 서울에서 생산되고 서울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당대 서울의 의미 있는 특성을 부각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가려 살펴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문학은 시가 문학과 산문 문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시가 문학은 조선의 개국과 한양천도를 알린 정도전의 ‘신도가’와 ‘신도팔경시’가 대표적이다. 신도가는 “아으 다롱디리 앞은 한강수여 뒤는 삼각산이여”라는 대목으로 유명하다. 권근의 ‘신경지리’, 정이오의 ‘남산팔영’, 변계량의 ‘화산별곡’, 윤회의 ‘경회루시’ 등 한결같이 한양을 찬탄하는 내용이었다. 서거정 등의 ‘한도십영’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석형의 ‘호야가’에서 한양도성 축성에 동원된 백성의 참상을 묘사했으며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비판적 작품들이 나왔다. 박제가가 ‘성시전도’에서 근대지향적인 실사구시를 선보였으며 한산거사의 ‘한양가’와 작자 미상의 ‘장안걸식가’에서는 서울거리의 풍물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동하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문학·국어학과 서울연구’ 논문에서 “조선 전기의 산문 문학은 성현의 ‘용재총화’, 허균의 ‘장생전’ 등 잡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후기로 접어들면서 전(傳), 야담, 소설 등 다양한 산문 장르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서울에 관한 자료가 여럿 발견됐다”고 말했다. 정내교의 ‘김성기전’과 ‘임준원전’, 박지원의 ‘마장전’과 ‘광문자전’, 유득공의 ‘유우춘전’, 이옥의 ‘시간기’(市奸記), 조수삼의 ‘육서조생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옥은 시간기에서 “서울에 세 군데 큰 장이 서는데 동편은 배오개, 서편은 소의문, 중앙은 운종가다. 모두 좌우양편으로 전이 늘어서 은하수처럼 벌여 있다.…”라고 19세기 초 서울의 시장을 실감 나게 묘사했다. ●20세기 시와 소설… 근대문학 작품들 일제 강점기와 전쟁·분단의 비극과 참상 그리고 서울로의 미친 듯한 집중과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자비한 개발이 낳은 인간성 상실과 사회 병리현상의 실체를 문학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진에 찍히지 않는 실체적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동하 교수는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 오장환의 ‘수부’(首府), 서정주의 ‘광화문’, 정회성의 ‘어두운 지하도 입구에 서서’, 박노해의 ‘가리봉시장’, 유하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연작 등 7편의 시가 1920~1990년대까지 서울을 특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시대순으로 염상섭의 ‘사랑과 죄’, 이상의 ‘날개’, 박태원의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씨의 1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 박태순의 ‘밤길의 사람들’, 윤대녕의 ‘January 9, 1993 미아리통신’ 등을 꼽았다. 서울은 물질적으로는 유토피아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디스토피아이다. 빛과 그림자의 도시인 셈이다. 문학작품 속에서 서울을 읽는 코드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발에 의해 소외된 군상, 아파트와 달동네로 대변되는 주거를 둘러싼 소시민 군상, 전쟁과 민주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군상 등이 그것이다. 개발시대 인간군상을 다룬 시 중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개발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인간의 애절함을 비둘기에 비유했다. 신동엽도 시 ‘종로오가’에서 이농과 도시빈민, 매매춘 같은 개발연대 희생자들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조선작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의 여주인공 영자는 70년대 우리의 딸들이 겪은 인생유전의 자화상이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서울 변두리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무허가 주택 마을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 줬다. 박완서의 소설 ‘이별의 김포공항’은 당대를 휩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그렸다. 신경림, 정희성, 장정일은 1970~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의 무기력한 삶을 시로 읊었다.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2000년대 서울은 구원이 필요한 도시다. 서울은 소돔과 고모라로 그려진다. 주거를 둘러싼 인간군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김광식의 소설 ‘213호 주택’은 1950년대 서울의 대규모 공영주택단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도동을 중심으로 정릉, 안암동, 청량리, 약수동 등 벽돌처럼 찍어낸 교외 단지주택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풍경이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소설가 최인호는 ‘타인의 방’에서 아파트 생활에서 발생하는 현대인의 미묘한 정서를 다뤘고 조세희는 ‘민들레는 없다’에서 “잠실은 모래로 만들어진 동네이다. 모래땅에 모래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 서 있다”며 요즘 잠실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양귀자는 연작소설집 ‘원미동사람들’에 수록된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에서 1980년대 서울을 떠난 서울사람이 아닌 서울사람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었다. 이문열의 ‘서늘한 여름’,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 신상웅의 ‘도시의 자전’,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박상우의 ‘내 마음의 옥탑방’ 등도 집을 매개체로 서울과 서울 언저리를 떠도는 서울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황지우의 시 ‘徐伐 셔, 셔발, 서울 SEOUL’이 제5공화국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허위성을 나타냈다면 1980년대 강남을 그린 박완서의 ‘꽃을 찾아서’에서는 의외의 장면과 마주친다. “가락동, 오금동, 방이동…다 싫어요. 혜화동, 안국동, 경운동하는 동네이름 좀 좋아요, 품위도 있고…” 그 시절 강남은 강북 콤플렉스를 가진 그렇고 그런 동네였다. 반면에 김원일의 ‘깨끗한 몸’, 이남희의 ‘플라스틱 섹스’,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등 일련의 소설들은 1990~2000년대 강남을 무대로 펼쳐지는 퇴폐와 향략상을 담았다. 강남은 서울의 시원지였으나 이천년 가까이 잊혀졌다가 다시 새로운 서울의 원천으로 떠오른 땅이다. 인생역전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임을 소설은 가르쳐 준다. 저항의 군상을 대표하는 작품은 김지하의 ‘오적’(五賊)이다.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독재정권의 부도덕성과 오적의 소굴이라고 불렸던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에 사는 재벌, 국회의원,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계층을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1960~70년대 청계천 평화시장은 왜곡된 노동구조와 비인간성이 판치는 자본주의의 하수구였다. ‘전태일평전’을 쓴 조영래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윤정모의 ‘신발’, 강석경의 ‘숲속의 방’,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은 어쩌면 당대를 산 문인들의 참회록이다. 이균영은 “서울은 원주민이 없는 낯선 도시”라고 선언했다.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설가 구보씨’가 세 번 등장한다. 1930년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식민도시 경성의 거리를 거닐던 지식인의 상실과 자조를 보여 주었다면 1970년대에는 최인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통해 서울을 관찰했고 1990년대에는 주인석이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라는 거의 동명의 작품을 통해 서울의 하루를 정밀스케치했다. 2003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종은의 ‘서울특별시’와 이혜경 등 여성 작가 9명의 서울에 관한 단편을 모은 ‘서울, 어느날 소설이 되다’도 소설가의 눈에 포착된 서울의 일상이자 기록으로 남았다. 소설과 시는 어쩌면 역사보다 위대하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서울의 생성과 소멸의 궤적을 추적한 ‘노주석의 서울택리지’는 이번 회로 끝을 맺습니다. 2012년 6월 연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1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서울택리지’ 1권이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간됐고, 2권이 올 봄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미래의 농장 ‘스마트 팜’을 가다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미래의 농장 ‘스마트 팜’을 가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사상 처음으로 PC를 추월했다는 통계가 발표됐다. 스마트폰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생긴 지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정보기술(IT) 흐름을 급격히 바꾼 셈이다. 최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 원격으로 농장을 관리하는 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마치 화면을 보며 게임을 하듯 작물을 재배하는 이른바 ‘스마트 팜’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전남 화순군 ‘한울농장’. 토마토를 재배하는 곳으로 얼핏 보면 여느 농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비닐하우스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한쪽 벽면에 설치된 통신 장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복잡한 선도 없어서 간단한 장비로 보이지만 꽤나 다양한 기능이 숨겨져 있다. 농장대표 배진수씨는 “온도와 습도, 배양액 여분 등 온갖 정보가 무선인터넷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된다”고 말했다.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원격 환경제어장치인 것이다. 스마트 팜의 핵심은 생육 환경과 관련한 데이터 구축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자체 개발한 앱을 통해 최근 3년간의 생육 데이터를 축적한 후 활용 방법 등을 농가에 알려 주고 있다. 심근섭 농촌진흥청 지식정보화담당관은 “생생한 재배정보가 축적되고 공유되면 그 자체로 훌륭한 교본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식물공장’은 경기도농업기술원이 2012년 IT 융·복합기술을 접목해 개발한 첨단 작물재배 유리온실이다. 태양열로 냉난방을 해결하고 발광다이오드(LED)와 형광등으로 채소나 화훼를 재배하는 스마트 식물공장이다. 이상우 경기도농업기술원 연구원은 “계절이나 날씨에 관계없이 연중 재배할 수 있어 사막이 많아 식물재배가 여의치 않은 중동 국가로의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물공장’이 기후변화 시대 농업생산 대안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은 또 지하철역사와 같은 실내에서 자연광에서 자라는 식물공간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하공간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녹색공간을 제공하고 공기질 향상을 도모하는 목적이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 5호선 여의도역사와 광화문역사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꽃을 재배하는 원예농가에서도 스마트 팜은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다. 산수유마을로 잘 알려진 경기 이천시 백사면 ‘하일꽃농원’. 이곳에선 국립농업과학원의 ‘스마트 시설원예 설명회’가 한창이다. “얼마나 빠른지 보세요.” 시연을 하는 한길수 연구사의 스마트폰이 온실 천장을 향했다. 마치 TV 리모컨이 작동하듯 ‘스르륵’하며 서서히 유리문이 열리자 모두들 ‘와’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예전에는 온실 개폐기를 열려면 꼬박 두 사람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가며 일해야 했다. 홍완식 농원 대표는 “이제는 집에서 버튼을 눌러 놓고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친 뒤 농원에 나온다”며 “덕분에 인건비 역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올해 우리나라 온실 유형에 알맞은 한국형 스마트 팜 적용 모형을 표준화할 계획이다. 이양호 농촌진흥청장은 “과학 영농으로 노동력을 절감하고 스마트 팜을 활용한 농업의 6차산업화로 농가 소득이 오르면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미래 농업을 주도할 핵심 키워드로 스마트 팜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일찌감치 스마트 팜에 대한 실험과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하며 시장을 선점해 왔다. 미래형 농업 모델로 부상하고 있는 스마트 팜을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한층 발전시켜야 할 시점이다. jongwon@seoul.co.kr
  • [특파원 칼럼] 중국의 ‘내 멋대로’ 시대/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중국의 ‘내 멋대로’ 시대/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유첸, 주스런싱.”(有錢, 就是任性) 요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유행어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구는 것을 풍자하는 말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돈이 많다면 멋대로 할 수 있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응용 버전도 많다. 2012년 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자신감 넘치는 중국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을 만큼 잘나가게 됐다는 의미다. 중국은 한때 서양 열강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던 ‘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로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잠에서 깨어난 사자’라고 자신 있게 스스로를 소개하는 나라가 됐다. 중국을 깨어나게 한 힘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큰 덩치와 산업화, 그리고 이 둘의 조화를 꼽을 수 있다. 중국에선 서방이 동양을 누르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란 시각이 일반적이다. 처음 산업혁명에 성공해 세계를 제패한 영국의 당시 인구 규모는 1000만명, 그 다음으로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산업화 시기 인구는 1억명인 데 비해 14억에 가까운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산업화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 공산당이 경제 발전 모델로 삼은 국가 중 하나가 한국이다. 만약 한국의 국토와 인구가 중국처럼 컸더라면 한국은 이미 미국을 앞섰을 수도 있다고 중국인들은 말한다. 여기에는 중국이 앞으로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저력이 자신감으로 분출된 배경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시진핑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시 주석 집권 이후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중국인들은 비록 이데올로기 및 여론 통제가 강화되더라도 공산당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법치’라고 부른다. 또 개혁·개방을 통한 시장경제의 확대, 반부패 등 개혁 조치로 대변되는 민생중시주의,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 ‘강한 외교’가 중국의 특색이 됐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시진핑의 ‘신(新)권위주의’라고 부르고, 일반 중국인들은 이에 열광한다. 시 주석의 반부패가 권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해외 언론의 평가에는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중국 언론 당국자들은 요즘 외신들을 만나 어떻게 하면 중국 기사를 더 많이 노출시킬 수 있는지 의견을 구할 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3년 전 중국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외국 언론이 중국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한다며 볼멘소리를 하던 모습과 대조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감이 커진 결과일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변화를 보고 있자면 우리도 덩치를 키우는 데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덩치를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북 통일뿐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가 갈망하는 강력한 리더십까지 더해진다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처음 왔던 3년 전 가장 많이 쓰이던 유행어는 “부게이리”(不給力)였다. 제대로 못한다는 야유성 의미로, 우리 말로는 “(기대했던 것보다)심하게 못한다“ 정도로 번역된다. 당시 무능한 중국 정부를 조롱하는 데에도 자주 회자됐다. 오늘의 ‘런싱(任性·내 멋대로) 중국’과는 상전벽해다. 한국의 ‘내 멋대로’ 시대를 꿈꿔 본다. jhj@seoul.co.kr
  • ‘슈퍼 황복’ 양식 성공… 성장 속도 2배

    ‘슈퍼 황복’ 양식 성공… 성장 속도 2배

    일반 황복보다 성장 속도가 2배 이상 빠른 ‘슈퍼 황복’이 탄생했다. 황복은 우리나라 서해 연안에만 서식하는 1996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어종으로 현재 양식어류 중 최고가인 1㎏당 10만원에 이르는 고급 어종이다. 충남도 수산연구소는 지난해 6월 황복과 복어류 중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자주복을 교배시켜 종묘를 확보한 뒤 5개월간 양식 실험을 진행해 국내 처음으로 슈퍼 황복을 양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26일 밝혔다. 실험 결과 일반 황복이 10㎝에 25g 성장하는 동안 황복과 자주복 교배종은 15㎝에 67g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황복과 외형이 똑같다. 이대로 성장하면 20개월 안에 출하 무게 400g까지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다. 황복은 ‘죽음과도 바꿀 만한 맛’으로 극찬을 받지만 양식기간이 30개월 이상 걸려 양식 산업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황복 자연산은 경기 김포와 파주 등 일부 한강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획량이 극히 적어 국내에서 5~6개 업체가 양식하고 있으나 긴 양식기간으로 경제성이 떨어져 고민 중이었다. 황복은 민물과 바다를 오가면서 성장하지만 자주복은 바다에서만 서식한다. 교배종은 황복처럼 민물과 바닷물에서 모두 서식이 가능하다. 도 수산연구소는 올해 어민들과 교배종 대량 생산을 시도한 뒤 내년부터 양식 어가에 기술 이전과 함께 슈퍼 황복 종묘 분양에 나설 계획이다. 또 특허출원 절차를 밟기로 했다. 도 수산연구소 관계자는 “슈퍼 황복 양식 성공은 귀한 황복 요리의 대중화 길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령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지역균형발전과 역차별 딜레마… 중앙·지방 ‘30년 갈등’ 재점화

    수도권의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서울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도시들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문제가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경기도 등은 투자 유치, 일자리 창출 등 경기회복에 필요하다며 규제 완화를 서두르고 있는 데 반해 여타 비수도권의 자치단체들은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여전히 필요한 규제라며 극구 반대하고 있다. 30여년간 계속돼 온 이 같은 해묵은 논쟁이 이번엔 어떻게 진행될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대구·광주·전남·경북 등 4개 시·도지사는 26일 공동 선언문을 통해 “정부가 획기적인 지방 발전 대책을 마련한 뒤 규제 완화 대책을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상생 발전의 해법을 찾는 것이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최근 ‘규제 기요틴’ 민관 합동회의를 열어 수도권 규제 완화를 포함한 114건의 규제를 풀기로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기요틴’(단두대)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처럼 정부의 규제 완화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수도권 집중화와 과밀 문제는 1960~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싹텄다. 서울을 중심으로 각종 공장이 들어서고 비즈니스 공간이 마련되면서 농촌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박정희 정부도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인구 분산정책을 써왔으나 단기 처방에 그쳤다. 인위적으로 인구 유입과 산업 시설 입지를 막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전두환 정부는 1982년 서울과 경기·인천을 수도권으로 정의하고, 지침으로 실시되던 규제를 수정법으로 법제화했다. 그럼에도 수도권 인구와 과밀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역대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힘써 왔으나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는 지방 혁신도시 조성을 통해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극약 처방’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차례로 이뤄지면서 어느 정도 인구 분산 효과는 거뒀다. 그러나 수도권은 경기 침체와 30년 넘게 손질하지 않은 규제 법안 탓에 주민들과 기업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수도권은 여기에 상수원보호 관련법, 군사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등 각종 규제가 중첩됐다. 이 때문에 경기 일부 지역이 개발의 사각지대로 방치되면서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발표된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갈등을 넘어 어떤 상생의 해법을 내놓을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KT 130년/정기홍 논설위원

    KT를 지금도 ‘한국통신’으로 부르는 이들이 있다. 민영화가 된 지 오래됐건만 공기업으로 기억한다는 의미다. ‘통신공룡’이라는 수식어도 아직 따라다닌다. 조직 규모가 크다는 뜻이다. 그나마 광고 효과 때문에 한국통신보다 ‘올레(olleh) kt’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 변화된 모습이다. 하지만 KT는 우리의 통신 역사이고 ‘통신 맏형’ 노릇을 하고 있다. KT가 어제 광화문 시대를 다시 열었다. KT 광화문 사옥 옆 지상 25층 규모의 신사옥으로 입주했다. 1999년 이전했던 경기 성남(분당) 본사는 그대로 두고 서울 서초동에 있던 회장 집무실과 경영기획·재무·인사 등 그룹의 핵심 부서를 옮겨 왔다. 본사를 분당에 둔 것은 지역의 이전 반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KT는 한때 서울 여의도 이전을 내부 검토했으나 분당 주민의 반대로 철회한 적이 있다. KT의 전신은 1982년 설립된 한국전기통신공사다. 당시 체신부의 전기통신 사업이 분리되면서 통신 업무를 보던 공무원 6만 8000명이 공사로 옮겨 민간인 신분이 됐다. 그중에 하위직 공무원이 임원이 돼 두둑한 연봉을 받은 이도 적지 않다. KT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못했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CEO 리스크’에 시달렸고 언제나 ‘공룡’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CEO 체제에선 대규모 구조조정이 따랐고 기존 사업의 재편 등 악순환은 거듭됐다. 경쟁 이동통신 업체의 홀가분한 덩치에 비해 유선전화 사업 등으로 조직이 커 인력 투입 대비 수익은 좋지 않다. 최근 몇년간 ‘탈통신·비통신’을 지향하며 새로운 분야에 투자했지만 근간인 통신 분야가 죽을 쑤면서 실적도 나빠져 있다. 물론 업체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아이폰을 국내 시판해 스마트폰 혁신을 이끈 맏형다운 결정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현장 직원의 말은 KT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사업 구조가 다양해 구조조정을 해도 기존 현장 일은 변함이 없어 경쟁사보다 챙겨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2003년 5500명, 2009년 5992명, 지난해 말 8000여명(신청자 기준)의 구조조정을 했지만 잔일은 그대로 남았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KT의 광화문 시대가 상징하는 바는 적지 않다. 이곳은 130년 전인 1885년 대한민국 통신 역사의 시작인 한성전보총국(현 우정사업본부)이 있었던 자리다. 통신 관련 시장은 통신·방송·미디어 융합에 이어 사물인터넷 시대 도래 등으로 또 한 번의 급변기를 맞고 있다. 황창규 회장은 최근 “비서실 구조를 삼성식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성공적인 접목을 할지 속단하기에 이른 감은 있다. 전화 자동화와 초고속 인터넷, 와이브로 상용화 등 앞서 정보기술(IT) 강국을 이끌었던 KT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당기자’는 지난날의 구호를 광화문 재입성에 즈음해 다시금 되새겨야 하겠다. 삶을 통째로 바꿀 초연결 시대가 벌써 시작됐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순천만 정원’ 국가정원 1호 지정

    ‘순천만 정원’이 국내 첫 정원이자 국가정원 제1호로 지정됐다. 산림청은 23일 정원에 관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내에는 정원에 대한 법체계가 없었는데 이번에 수목원법에 정원을 추가했다. 수집·연구 기능의 수목원과 달리 정원은 관람·체험 중심으로 조성, 운영된다. 개정안에는 정원의 개념과 조성·운영 주체에 따른 분류(국가·지방·민간·공동체 정원), 지방정원의 국가정원 지정 근거, 정원의 산업화 및 창업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정원의 규모와 기준 등은 하위 법령에 마련된다. 순천만 정원(112㏊)은 조성 및 운영을 지방자치단체가 맡지만 상징성과 보존 가치 등을 고려해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한다. 산림청은 정원문화 활성화 등을 위해 정원쇼를 여는 한편 꽃과 나무상담소, 정원지원센터 등을 설립할 계획이다. 올해 순천만 정원과 한밭수목원, 국립수목원에 설치할 예정인 상담소는 식물치료와 증식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순천만 정원에 들어설 정원지원센터는 교육과 체험을 통한 정원 전문가 양성이 목적이다. 2016년부터 2년마다 순천만 정원 페스티벌도 열 계획이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산림청, 재해·안전 강화 조직 개편

    산림청이 목재 산업 육성과 산림 재해·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22일 산림청에 따르면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산림자원 육성 및 일부 이용에 머물렀던 자원화 정책을 산업분야로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산림자원국에 사유림 경영소득과를 신설하고, 목재생산과를 목재산업과로 개편했다. 지난해 벌기령을 단축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을 앞둔 산림자원의 활용 및 산업화 연계 방안을 추진하게 된다. 또 해외자원협력관실에 임업통상팀을 신설해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에 따른 임산물 보호 및 수출 확대 등 임업경영 활성화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산림재해와 안전업무도 강화했다. 현장을 총괄하는 지방청 조직이 50년 만에 3개 과 체제로 확대된다. 현행 운영과의 산림경영 체계는 일제시대부터 이어졌는데 운영과에서 산불 등을 담당하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기획운영팀과 산림재해안전과, 산림경영과로 기능이 재편된다. 지난해 218만 그루가 사라진 데 이어 올해 100만 그루의 소나무를 베어내야 할 위기를 몰고 온 소나무재선충병의 적극적인 방제를 위해 산림병해충과를 보강했다. 과장과 과원 전원 교체에 이어 각국에서 병해충 방제 전문가들을 파견받아 4월 말까지 TF팀을 신설, 운용한다. 국장급 개방형 직위도 산림자원국장에서 해외자원협력관으로 변경했다. 국제 산림협력이 협상·통상으로 확대되면서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외부 전문가 수혈에 나선 것이다. 염종호 창조행정담당관은 “지원부서 인력을 슬림화하고 업무 조정을 통해 인력을 재배치했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와우! 과학] 작년 가장 뜨거웠던 지구, 앞으로 기온 더 오를 듯

    [와우! 과학] 작년 가장 뜨거웠던 지구, 앞으로 기온 더 오를 듯

    ▲ NASA "2014년, 역대 가장 더운 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2014년이 지난 1880년 이후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고 발표했다. 1880년 이후인 이유는 그 시점이 지구 전체 평균 기온을 말할 수 있을 만큼 관측 자료가 기록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즉 인류가 지구의 평균 기온을 관측한 이후 가장 더운 해가 바로 작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은 20세기 평균 대비 0.69℃가 더 높았으며, 이전 기록이었던 2005년과 2010년에 비해서 0.04℃가 더 높아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다. 또 국립해양대기청에 의하면 2014년 중 5, 6, 8, 9, 12월이 역대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2014년 한 해 동안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5개월이 역대 가장 더운 달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나머지 달들도 7위 안에 들 만큼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1998년이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후 다시 그 기록이 깨진 것은 2005년이었다. 2010년은 다시 2005년의 기록과 비슷했지만, 더 덥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은 지난 15년 정도 기간을 지구 온난화 정체(Global warming hiatus)기라고 불렀는데, 한동안 거침없이 상승하던 지구 평균 기온이 이 시기에는 더 상승하지 않는 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왔으나 '이 시기 동안 바다에서 추가로 열을 더 흡수해서'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구의 완충 작용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대기 중 온실가스 앞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2014년 지구 평균 기온은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이것은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생각되고 있다. ▲ "온실가스 증가가 주범" 이산화탄소, 수증기, 메탄 등은 지구에서 빠져나가는 열에너지를 흡수해서 온실처럼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온실가스라고 불린다. 이런 온실가스의 존재가 없다면 지구는 평균 영하 18℃ 정도로 차가워져 사람은 물론 대부분의 지구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온실가스는 포근한 지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인류가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그 농도가 급격히 증가해서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산업화 이전 280ppm 정도이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세기에 이미 350ppm을 넘어섰으며, 2014년에는 400ppm에 근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에는 500ppm, 600ppm까지 증가할지도 모른다. 이런 추세가 반전되지 않는다면 미래 지구 평균 기온은 더 상승하게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 엘니뇨 극대기 아닌데도 최고기온 기록 1880년 이후의 기록은 지구 기온의 상승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 국립해양대기청에 의하면 1880년부터 매 10년간 온도 상승은 0.06℃였으나 1970년 이후에는 0.16℃였다. 최근 십여 년을 제외하면 지구 기온 상승 속도는 대기 중의 온실가스 상승 속도와 함께 점차로 가속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과학자들은 2014년이 예상과는 달리 엘니뇨 중립해(El Niño-neutral year)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서로 반대되는 현상으로 엘니뇨가 있을 때는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지구 평균 기온도 따라서 증가한다. 따라서 대부분 역대 가장 더운 해는 엘니뇨가 있을 때 발생했다. 하지만 2014년은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엘니뇨 극대기가 아닐 때 최고 온도 기록을 경신했다. 따라서 2015년과 2016년에 엘니뇨가 발생할 경우 새로운 온도 기록이 다시 생겨날 수 있다고 보는 기상학자들도 있다. 만약 실제로 앞으로 수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일 경우, 최근까지 논란이 되었던 지구 온난화 정체기는 막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지구 기후 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상승세를 탈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IPCC를 비롯한 대부분 전문가 그룹들은 앞으로 지구 평균 기온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몇 도 정도 상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다만 2014년의 관측 결과는 지구 기온이 상승할 것이라는 주류 과학계의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온실가스 감축 국제공조, 이번엔... 2014년은 지구 평균 기온이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우울한 한 해였지만, 대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범지구적인 합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한 해였다. 2014년 12월 14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전 세계 196개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참여하기로 한 역사적인 합의가 있었다. 이전 교토의정서가 결국 유명무실하게 된 점을 생각하면 이번 합의 역시 실효성 있게 지켜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중국, 미국을 비롯한 온실가스 대규모 배출 국가와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참여하기로 한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한국 역시 여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올해말 열리게 되는 파리 회의에서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안이 성공적으로 통과되고 세계 여러 나라가 이를 준수한다고 해도 실제 지구 기온 상승 추세는 바로 전환되기는 어렵다.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이 적지 않은 데다 갑자기 대폭 감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큰 이정표를 세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열린세상] 정부3.0 시대의 공직자/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3.0 시대의 공직자/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공직을 극장 모형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대한민국은 하나의 극장이다. 국민은 극장의 주주 겸 관객이다. 극장의 무대는 중앙정부(국가), 지방자치단체, 특수법인(공공기관) 세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각 무대의 연기자는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공공기관 직원이다. 합쳐서 공직자로 부른다. 이들은 경쟁시험을 통해 무대에 올라 처음엔 뒤쪽의 단역에서 출발해 여러 배역의 조연을 거쳐 점차 무대 앞쪽의 주연급으로 이동하며 수십 년간 머물다 무대를 떠난다. 무대 위 공연 작품은 국가나 공공단체의 각종 정책이다. 관객은 세금 등 입장료를 내고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3~5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극장의 총괄 대표인 대통령과 부문별 대표인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임원 격인 국회의원과 지방의회의원을 선출한다. 연기자는 입장료의 일부를 급여로 받는다. 우리나라가 가난해 정부 주도로 경제·사회발전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던 1980년대까지는 무대의 위치가 객석보다 높았다. 그래서 객석에서는 무대 뒤쪽까지는 잘 안 보였다. 또 입장료를 낼 형편이 안 되는 관객이 많아 작품 내용이나 객석 환경에 대한 비평이나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의 독백처럼 ‘진짜 힘들게’ 살았던 건국·산업화 세대의 피와 땀으로 입장료를 조금씩 올려 객석을 개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어느덧 무대와 객석의 높이가 비슷해져 무대의 작품과 공연 내용이 훨씬 잘 보이고 관객의 목소리도 경청하게 됐다. 이어서 민주화·개방화·정보화·선진화 세대의 지속적인 국가 발전을 통해 2000년대부터는 객석이 무대보다 높아졌다. 인터넷 시대의 관객들은 이제 무대 위 모든 상황을 자세히 보고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대 위치는 극장 설립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객석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서 정부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무대가 객석보다 높았던 때를 ‘정부1.0’, 두 높이가 같은 때를 ‘정부2.0’, 객석보다 낮아진 후를 ‘정부3.0’이라 한다. 이에 따라 극장 구성원 전체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겨 공직 사회에 대한 개혁 조치는 불가피했다. 공직 연기자에게 연공급 대신 일반 연기자의 출연료와 같이 역할의 중요도와 크기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직무성과급제도, 객석의 민간 경력자에게 필기시험 없이 역량평가 등을 거쳐 배역을 바로 부여하는 개방형제도, 정부가 보유 중인 데이터를 국민이 요청하기 전에 먼저 공개하는 제도 등은 모두 정부3.0 시대의 산물이다. 즉 직업공무원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신분과 계급 중심의 인사제도를 직위와 역할 중심으로 바꾼 사례들이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극장이 존재하는 한 무대는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대의 크기나 위치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무대가 있다면 연기자도 있다. 연기자는 항상 관객을 향해 일한다. 일반의 관객은 훌륭한 연기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극장도 이렇게 돼야 바람직하다. 대다수 공직자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공직자들에게 정부1.0 시절의 ‘국가 발전의 견인차’나 정부2.0 시절의 ‘국정 운영의 동반자’와 같은 자긍심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정부3.0 시대에도 ‘대한민국 헌법’ 제7조에 규정된 ‘국민 전체의 봉사자’ 역할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개인에 대한 봉사는 감사로 돌아오지만 전체에 대한 봉사는 당연시하기 쉬워 공직자가 국민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듣기가 어렵다. 양의 해 2015년에는 지난해 공직 사회의 자조적인 ‘3종 세트’(세종시 이전, ‘관피아’ 논란과 재취업 제한, 공무원연금 개혁)와 같은 절망의 말 대신 희망의 선플이 많이 달리면 좋겠다. 오늘도 각종 정책 현안을 해결하느라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잘한 일 99.9%에는 관심 없고 모자란 0.1%만 문책한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고 싶을까. 무대 분위기가 우울하면 관객도 별로 즐겁지 않다. 새해 업무보고로 분주한 요즘 공직 연기자들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극장의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의 따뜻한 격려의 말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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