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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사람 통하고 역사 흐르는 공존의 물길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사람 통하고 역사 흐르는 공존의 물길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5회 ‘서울의 물길-청계천’이 서울 중구와 동대문구, 성동구 청계천 일대에서 지난 2일 진행됐다. 한동안 사대문을 벗어났던 투어 일정이 은평구와 용산구, 광진구, 도봉구, 강북구 일대를 돌고 돌아 다시 시내로 진입했다. 청계천에서 시작하는 서울의 물길 시리즈도 한강 선유도와 중랑천변 서울숲까지 두 번 더 이어질 계획이다. 이날 미래투어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해 ‘대가족 나들이’ 같은 분위기였다. 해설을 맡은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가을 하늘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2시간 30분 동안 3㎞가 넘는 복잡한 도심코스를 편안하게 이끌었다.도시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흐른다. 청계천은 서울이라는 오래된 도시의 원형을 이루는 뼈대 같은 곳이다. 물길을 따라 마을의 입지와 구조가 결정됐고 주민이 구성됐으며 문화가 형성됐다. 서울은 고개의 도시요, 물의 도시다. 서울의 땅 위로는 200여개의 크고 작은 고개가 주름졌고 땅 아래에는 35개의 하천이 굽이쳤다. 이 가운데 원래 서울 사대문 중심을 가르는 내수(內水)가 청계천이다. 서울의 외수(外水) 한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데 반해 청계천은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풍수학상 조선 500년을 보장한 역수(逆水)이다.청계천 물길이 조선 한양을 5부(五部)의 도시로 만들었다. 청계천 이북은 북부요, 이남은 남부였다. 동쪽 끝자락은 동부이고, 서쪽 끝자락은 서부이며, 물가는 중부가 됐다. 청계천의 존재가 도시를 남북으로 분리하는 이중도시(二重都市)의 유전자를 서울에 심었다.일제강점기 조선사람은 북촌, 일본인은 남촌에 살도록 분리하는 거주지 차별정책으로 이어졌다. 1932년 서울(경성) 인구는 37만명이었고 이 중 71%가 조선인, 28%가 일본인이었다. 인구비율은 7대3이었지만 토지보유율은 3대7이었다. 박태원은 ‘천변풍경’에서 1930년대 경성의 남북을 오가며 사는 청계천변 사람들의 일상을 낱낱이 그렸다.70년대 강남이 개발되면서 청계천을 경계로 한 남북 구분 짓기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강남과 강북 구분 짓기로 확대됐다. 서울의 공간적, 심리적 분리주의가 심화된 양상이다. 조선 내내 청계천을 놓고 구분 짓기가 성행했지만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민초들이 산 청계천 이남에서 지배층의 근거지로 건너가는 사다리는 끊기는 법이 없었다. 무려 86개의 다리가 개천에 놓였다. 고종 때 도성 안에 76개, 도성 밖에 10개의 다리가 놓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교, 영도교가 대표적이다. 다리는 재질에 따라 다양했다. 돌다리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나무다리였고 가죽다리, 섶다리, 가마니다리, 징검다리, 배다리처럼 지역 사정에 따라 달랐다. 장마가 지면 떠내려갔기 때문에 위치는 바뀌기 일쑤였다. 청계천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이력서다. 도시의 상징에서 도시의 암종으로 극과 극의 부침을 거듭했다. 1958년에 시작한 복개공사로 1977년 물길이 닫혔다가 2005년 재생됐다. 숱한 물난리와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광통교와 장통교는 원형을 잃었다. 복원된 하천 폭보다 다리가 긴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청계천은 준천(濬川)의 산물이다. 조선 21대 영조의 3대 치적이 탕평책과 균역법 시행 그리고 준천이다. 동대문 오간수문 옆 방산시장의 방산(芳山)과 청계천의 명물 수양버들이 준천에서 유래했다. 하천 바닥에서 퍼낸 흙더미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였을 뿐, 방산동의 옛 지명은 ‘만들어진 산’ 즉 조산동(造山洞)이다. 거지들이 흙더미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 살았는데 영조가 이들에게 뱀을 잡아 파는 독점권을 부여하는 바람에 ‘땅거지=땅꾼’이 됐다. 거지패의 우두머리를 ‘꼭지’라고 불렀다. 천변은 서울 꼭지(깍정이)의 소굴이 됐다. 연암 박지원의 풍자소설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이 꼭지단의 일원이다. 청계천 버드나무는 영조가 홍수 때 제방의 유실과 범람을 막고자 심었다. 세월이 흘러 청계천 풍경의 대명사가 됐다. 청계천을 노래한 시와 그림에 버들개지와 수양버들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청계천을 덮으면서 뽑은 버드나무는 청계천을 여는 과정에서 심지 않았다. 대신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장식했다. 가난했던 시절 쌀밥같이 생긴 화려한 꽃이 좋았다는 서울시장의 취향에 따랐다고 한다. ‘임기 중 완공’이라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역사와 문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복원이라는 미명아래 이뤄진 또 하나의 개발사업이었다. 옛 청계천에는 복원된 다리 22개에다 한강다리 31개를 더한 것보다 33개나 더 많은 다리가 있었다. 청계천 건너기가 오히려 불편해졌음을 알 수 있다. 심리적 소통지수도 다리 수와 비례할 것이다. 청계천 물길은 흐르지만 아직 회복 못한 것들이 많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서울의 근대교육:정동> 집결: 9월 9일(토) 오전 10시 지하철 2호선 서울시청역 10번 출구 앞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
  • 설치미술가 양혜규, 亞 여성 최초 ‘볼프강 한 미술상’

    설치미술가 양혜규, 亞 여성 최초 ‘볼프강 한 미술상’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전시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양혜규(46) 슈테델슐레 순수미술학부 교수가 세계적 권위의 볼프강 한 미술상 2018년 수상자에 선정됐다고 국제갤러리가 5일 밝혔다.1994년 제정된 볼프강 한 미술상은 독일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을 후원하는 근대미술협회 주최로 현대미술의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중견작가에게 돌아간다. 수상자는 10만 유로의 상금을 받게 되며 이 일부는 수상자의 작업을 루드비히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매입하는 데 운용된다. 로렌스 와이너(1995), 신디 셔먼(1997), 이자 겐츠켄(2002), 로즈마리 트로켈(2004), 마이크 켈리(2006), 피터 도이그(2008), 피슐리 바이스(2010), 황용핑(2016)이 수상했으며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양혜규가 최초다. 이번 수상자 선정에는 유럽 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미술협회로 손꼽히는 하노버 케스트너 게젤샤프트의 관장 크리스티나 페그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페그는 양혜규의 작품에 대해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업화된 물품들을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해방시켜 공간을 압도하는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시키는 섬세한 작품 배치는 수평적 관계로 제시된 동서양 문화 규범 간의 소통이자 동시에 독특하고도 고풍스러운 요소를 드러내는 새로운 추상 구조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MBN, 28일 특집다큐 ‘코코아로드’ 방영…홍순빈 아나, 초콜릿 만들기 체험

    MBN, 28일 특집다큐 ‘코코아로드’ 방영…홍순빈 아나, 초콜릿 만들기 체험

    오는 8월 28일 오후 8시50분 종합편성채널 MBN은 우리에게 친숙한 초코릿의 원료인 코코아의 숨은 이야기를 다루는 특집다큐 ‘코코아로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여정’을 방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는 MBN의 홍순빈 아나운서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초콜릿이 만들어지기 위해, 코코아 열매를 수확하는 일부터 코코아 빈을 발효하고 건조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해본다. ‘코코아로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여정’(이하 코코아로드)은 코코아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축구선수 드로그바의 나라로 알려진 코트디부아르는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약 40%를 책임지고 있는 최대 코코아 생산 국가다. 실제 코코아의 원산지는 중·남아메리카이지만 현재는 전 세계 코코아의 60%가 넘는 양이 아프리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상당 부분이 코트디부아르에서 나오고 있다. 코코아 빈은 코코아 열매에서 흰 과육을 제거한 상태로 건조하고 발효된 씨앗을 말하며, ‘카카오빈’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초콜릿은 이 코코아 빈을 원료로 가공하여 만들어진다. 과거 아즈텍과 마야문명에서는 코코아 빈을 화폐로도 쓸 만큼 귀하게 여겼으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코코아가 유럽에 전해지면서 초콜릿은 특권계층의 음료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산업화에 따른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초콜릿 역시 대중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유일의 코코아 연구개발센터와 농부 대상 코코아 농업 교육 성격의 '네슬레(Nestlé) 필드스쿨'도 방송을 탄다. 이 곳에서 정부와 관련 기업, 농부들이 힘을 한데 모은 결과, 코코아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농부들은 더 나은 삶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코코아 생산’에 기초한 지역사회 개선 노력은 마을학교 건립과 여성조합 지원으로 이어져 더 나은 삶의 씨앗이 되고 있다. 마을 학교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미래를 꿈꿀 기회를 마련해주었으며, 여성조합은 이곳 여성들에게 보다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제시해주었다. ‘코코아로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달콤함 속에 담겨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In&Out]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은/박용성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In&Out]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의 역할은/박용성 단국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는 지금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안으로는 극심한 양극화를 해결하고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야 하고 밖으로는 지정학적 안보 위기를 돌파하고 ‘4차 산업혁명’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 분명하다.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그래도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낼지 궁금해하는 국민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4차 산업혁명처럼 예측이 불가능하고 통제가 힘든 문제를 예측하고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곤 한다. 최근 ‘살충제 달걀’ 파동에서도 보듯 정부의 모든 정책이 부처별로 잘게 쪼개져 있고 국민의 먹거리 안전보다는 ‘농피아’(농축산 분야 공무원+마피아)의 먹거리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도 우리 정부의 사고 방식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머물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려면 발상의 전환에 나서야 한다. 첫째 국민의 물음에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이유라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 시대에는 정부가 뭔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곧바로 딜레마에 봉착하곤 한다. 청년실업 문제가 대표적이다. 뭔가 대책을 내놓으면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불거진다. 일자리 정책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어젠다로 떠올랐지만 모든 부처가 천편일률적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사업 간 중복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부 재정만 무분별하게 투입하는 청년창업 정책이 이어지면 청년에게 ‘일자리’가 아닌 ‘빚자리’만 양산할 수 있다. 대증적 접근이 아닌 총체적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다. 국민들은 또 묻는다. 저출산 현상이 심해져 대학 입학생이 점점 줄어들고 모바일 통신이 일반화된 이 시점에 정부는 왜 방송통신교육에 많은 세금을 쓸까. ‘직업 교육’과 ‘직업 훈련’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특성화전문대학(교육부)과 폴리텍대학(고용노동부)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부 정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타당한 것인지 등을 솔직히 알려줘야 한다. 국민들이 제시하는 질문을 통해 정부도 변해야 한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는 정책 집행보다 정책형성 단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영역에 대한 정책은 AI를 활용해 손쉽게 해결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정부 역량을 맞춰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정부가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정책만 남발하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치유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밝히는 데 노력해야 한다. 국정 수행에 의미 있게 반영됨으로써 국민에 대한 책임 행정을 확보하고 관료의 복지부동 행태도 사전에 막을 수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는 혁신적이고 헌신적인 관료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정책형성 단계 모니터링, 빅데이터를 활용한 성과 분석 등을 통해 규정과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난제를 자유롭게 풀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꾼에 지친 국민은 진정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일꾼을 원한다. 국가 지도자의 현명한 ‘결단’과 관료의 믿을수 있는 ‘결정’만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시대에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삶의 고단함에 찌든 국민에게 정부가 해답을 줄 수 있는 때가 되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 41년 전 ‘1급 보안’ 석유 저장고, 도시재생 입고 문화공간 재탄생

    41년 전 ‘1급 보안’ 석유 저장고, 도시재생 입고 문화공간 재탄생

    석유탱크 개조해 공연장 등으로 지열 활용 냉·난방 ‘친환경 쉼터’ 산업화시대 유산인 서울 마포의 ‘석유비축기지’가 41년 만에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 단장해 시민 곁에 돌아왔다.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4만 2357평(14만 22㎡) 규모의 기지는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파동 여파로 유사시에 대비해 서울시가 1976년부터 2년에 걸쳐 건설한 1급 보안시설이다. 당시에는 전국의 한 달치 석유 사용량인 131만 배럴을 저장해 두는 용도로 사용됐으나 2000년대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전면 폐쇄됐다. 서울시는 2013년 1월부터 470억여원을 들여 새롭게 조성한 ‘문화비축기지’를 다음달 1일 정식으로 개장한다고 24일 밝혔다. 과거 시민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는 등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다. 최근까지 일부 부지만 임시주차장으로 활용됐다.공연·장터·피크닉 등이 가능한 야외 문화마당을 둘러싼 주변엔 석유비축기지에 있던 T1부터 T6까지 6개의 탱크를 그대로 뒀다. 이른바 ‘도시재생’ 방식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과거 가솔린·디젤·벙커시유 등 유류를 보관하던 곳이기 때문에 깊이는 평균 15m다. 최대 1m 두께의 콘크리트 옹벽은 가지각색의 탱크 외관에 따라 변형시켰다. 일부는 탱크 주변의 암석과 흙더미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일부는 그대로 남겼다. 최대한 원형을 살린 T3가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의 이광준 문화비축기지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두기로 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6개 탱크 중 면적이 가장 좁았던 T1은 외관 자재를 전부 뜯어내고 유리 돔을 씌워 공연·전시·제작워크숍이 가능한 다목적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유리파빌리온이다. 미국 뉴욕의 애플스토어를 연상시킨다. 과거 가솔린 301만 9000ℓ를 비축해 화재 위험이 가장 컸다고 한다. T1 바로 옆에 위치한 T2는 지름이 33.79m로 T4와 함께 기존 면적이 가장 큰 탱크다. 철재를 모두 제거해 지상은 야외무대로 꾸몄다. 공연이 없을 때는 시민들이 높낮이가 다른 돌방석에 앉아 자유롭게 석양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2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한 실내 공연장이 나타난다. T1과 T2 두 탱크에서 뜯어낸 철판을 내외장재로 재활용한 T6에 카페테리아, 운영사무실 등 커뮤니티센터가 마련됐다. T5는 문화비축기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이야기관’, T4는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기지 내 모든 건축물의 냉·난방은 신재생에너지인 지열을 활용한다. 최윤종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은 “41년간 시민과 단절됐던 공간이 문화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이 모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건축의 본질은 ‘삶’… 돈 된다는 관점 바뀌어야”

    “건축의 본질은 ‘삶’… 돈 된다는 관점 바뀌어야”

    “건축학도인 아들과 함께 10여년 전 오사카 근교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빛의 교회’를 보러 일본을 찾았습니다. 한적할 줄 알았던 30평도 안 되는 작은 교회는 저희 부자처럼 오로지 건축물을 보러 온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당시 경제적 측면에 치우쳐 건축을 바라봐 온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습니다.”석정훈 세계건축연맹(UIA) 서울세계건축대회의 공동 조직위원장(61·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은 2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건축인이 모여 교감하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안도 못지않은 건축계 거장을 배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털어놓은 자전적 경험에는 건축이 하나의 문화로 여겨지는 나라에 대한 부러움이 깔려 있는 듯했다. 실제 석 위원장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돈이 되는 건축’을 선호해 온 우리나라의 풍조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솔직히 말했다. 서울시와 한국건축단체연합(대한건축사협회·한국건축가협회·건축가회) 주최로 열리는 이 대회는 ‘건축계 올림픽’이라 불릴 만큼 건축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다음달 3일부터 9일 동안 서울 코엑스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기념관 설계를 맡은 부부 건축가 빌리 티엔·토드 윌리엄스 등 124개국의 3만여명이 참석한다. ‘태건축설계’라는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석 위원장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과 같은 도시가 없는데, 양적 성장에 치중한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북촌 등 일부 지역을 빼곤 특색 없이 획일화됐다”면서 “우리 모두가 너무 숨 가쁘게 달려온 탓이고 건축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이어 “건축의 본질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가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사람이 영위해 나가는 삶에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작고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우리 삶에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는 건축을 조명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 서울세계건축대회 주제인 ‘소울 오브 더 시티’(도시의 혼)는 우리 건축계가 당면한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석 위원장은 “‘세계적인 건축물’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내면세계, 즉 혼이 깃들어 있는 것은 물론 토속성이 살아 있다”며 “아직까진 서울에 내로라하는 건축물이 없다”고 했다. “이번 대회가 국내 건축계에 질적 도약을 가져올 기점이 되었으면 한다”는 석 위원장의 기대는 1991년부터 세계건축대회를 서울에 유치하기 위해 힘써 온 건축계 관계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각박한 사회 속 추리 재미 풀무질한 ‘미스터리’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각박한 사회 속 추리 재미 풀무질한 ‘미스터리’

    재미있는 책이 없다. 시간도 없고, 골치 아프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책을 읽고 싶다는 강한 내적 욕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기회만 닿는다면 누구나 책을 읽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 번 손에 든 이상 끝장을 보기 전에는 결코 팽개칠 수 없도록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시키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없는 유익한 책이 나와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호기롭게 독자들의 독서 욕구를 사로잡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는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3년 세상에 선보인 잡지 ‘미스터리’(MYSTERY) 창간호 머리글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독서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80년대에도 사정은 비슷했던 모양이다.바쁘다는 이유로, 책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독서를 멀리했다. 책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영화가 더 재미있고 쉬는 날이면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느니 놀이동산에 가서 기구에 올라타는 게 더 짜릿한 경험이다.그래도 책만이 줄 수 있는 멋진 경험이 있다. 그건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알 수 없다. 마치 문 안쪽에 쓰인 글자처럼 책이라고 하는 것은 직접 읽어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그 놀라운 세계는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사람을 이 멋진 독서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 노력은 곳곳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책이라도 다 같은 책이 아니라 그 내용에 따라 여러 장르로 나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추리소설은 독자가 적다. 시간은 흘러서 밀레니엄도 훨씬 지났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를 포함한 소위 장르문학은 독자층이 얇다. 읽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도 많지 않다. 악순환이다.서양은 산업혁명 시기를 즈음해 본격적으로 장르문학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 범죄 소설이나 반유토피아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작가 애드거 앨런 포(1809~1849)가 쓴 기괴한 작품에 몇몇 평론가들이 주목했다. 영국에선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이 활약했다. 그 뒤를 이어 나타난 불세출의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그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평생 동안 100권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남자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를 받았다. 이들이 쓴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고 연극, 영화, 텔레비전 등 수많은 매체로 변주돼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역사를 돌아보면 애석하게도 미스터리 장르가 들어설 만한 여유가 없었다. 산업화 물결이 세계를 뒤덮었던 1800년대 후반 조선은 일본의 간섭을 받았고 결국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채로 자그마치 반세기를 흘려보냈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은 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로 1990년대가 될 때까지는 군사정권이 사회를 움켜쥐고 있었으니 국민들이 한가롭게 소설이나 읽고 있을 여유가 있었겠는가. 주인공이 수수께끼를 풀고 모험에 빠져드는 추리소설이라면 더욱 찬밥 신세였고 지금도 그런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추리소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11년에 출판된 이해조의 ‘쌍옥적’은 본문 앞에 ‘정탐소설’이라는 말을 명기할 정도로 이 소설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장르임을 밝히고 있다. 그 외에도 몇몇 작품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였기에 제대로 된 추리소설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난 도일의 작품이 일본을 통해 번안돼 소개되는 일도 있었지만, 도시인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이때 느닷없이 등장한 작가 김내성(金來成)은 1939년 2월부터 조선일보에 추리소설 ‘마인’을 연재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셜록 홈스에 비견되는 탐정 ‘유불란’을 창조한 김내성은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펴내며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러나 김내성의 아성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이름은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 잊혔고 몇 년 전 김내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야심차게 펴낸 기념 소설들도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다.이런 흐름 속에 우리나라 추리소설 장르가 다시 한번 발전을 꾀한 시기는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린 직후인 1980년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몇몇이 모여 ‘미스터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친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발전시켜 1983년에 한국추리작가협회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은 국민대 대학원장 이가형 교수가 맡았다. 협회는 잡지와 신문에 추리소설을 제공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회장인 이가형 교수는 해문출판사에서 시리즈로 펴낸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 번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앞서 소개한 잡지 미스터리도 이때 창간했다. 하지만 표제 위에 있는 ‘부정기간행물’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잡지의 운명을 예측하기는 힘들었다.미스터리 창간호에 실린 목록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김내성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 ‘벌처기’(罰妻記) 전문을 실었고 대작 ‘여명의 눈동자’를 끝내고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은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대부 김성종의 작품 ‘얼어붙은 시간’ 연재 1회분을 실었다. 그런가 하면 ‘금수회의록’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안국선이 쓴 과학소설 ‘비행선’을 발굴해 소개했고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쓴 범죄 소설 ‘트레일러가의 살인 사건’, 존 스타인벡의 ‘살인’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야심차게 써내려 간 창간사와 달리 잡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스터리’ 2호는 다른 잡지의 부록으로 끼워 넣었을 만큼 위상이 떨어졌고 3호는 끝내 나오지 못했다. 잡지를 펴내던 소설문학사는 추리소설이라는 제목을 단 부록으로 몇 번 더 명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금세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한국추리작가협회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추리소설은 인기 없는 장르”라는 오명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지만 ‘계간 미스터리’ 잡지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2015년엔 격월간으로 펴내는 잡지 ‘미스테리아’가 새롭게 창간하면서 우리나라 장르문학 지평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인기 장르라는 오래된 숙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여러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장르문학을 쓰고 있는 작가들, 그리고 추리문학을 사랑하며 응원하는 독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 추리소설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노주석의 서울살이] 만초천은 살아 있다

    [노주석의 서울살이] 만초천은 살아 있다

    얼마 전 용산 주한미군기지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종종 드나들었지만 기지를 돌려받는다는 전제가 없는 ‘남의 떡’이었기에 눈여겨보질 않았다. 한국 속 이국 풍경을 그저 심드렁하게 쳐다보았을 뿐이다. 찬찬히 기웃거린 뒤에야 용산기지 곳곳에서 풍기는 묘한 이국 정서의 정체가 파악됐다. 왜색이었다. 일본군의 상징인 오각별 문양이 뚜렷한 빨간 벽돌 건물은 일본이 모방한 서구 건축물의 전형이다. 자료를 뒤져 보니 기지 내 1245개 건물 중 무려 132개가 일본군이 지어 사용하던 건물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수감됐던 일본군 감옥이 의무대로 둔갑했다. 여기가 미군 기지인지 일본군 기지인지 얼른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들 어떠리. 1906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11년 만에 반환받는 마당에 까짓것 눈감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용산은 고려 때 몽고군, 임진왜란 때 왜군, 청일전쟁 이전 위안스카이의 청군까지 7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외국군의 점령지로 얼룩져 있질 않은가. 서울의 한가운데 알토란 같은 100만평의 땅을 내 세대에 되찾게 된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남산만 한 크기의 땅이다. 아파트의 사회문화사가 말해 주듯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는 ‘주거와의 전쟁’이었다. 그린벨트보다 백배 강력한 미군부대였기에 용산과 둔지산 일대가 이렇게 온전할 수 있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남의 나라 이름으로 부어 놓은 적금을 찾는 셈 치자. 무엇보다 반가운 건 만초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으로 보던 만초천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살아 있었네!”라는 환호성이 나왔다. 구불구불하던 자연하천 만초천은 일본군에 의해 직선화된 상태로 300m가량 노출돼 있었다. 서울 땅 아래 35개의 하천 대부분이 복개돼 도로 아래로 들어갔다. 무악재(안산)에서 발원해 서대문 영천시장~서울역 뒤편 청파로~용산 전자상가~한강으로 흘러드는 만초천 7.7㎞ 구간 대부분도 1967년 이후 깜깜한 도로 밑을 흐른다. 조상들이 불을 밝히고 게를 잡던 용산팔경(龍山八景)의 모래밭 만초천은 태종 때 용산강에서 남대문을 관통하는 운하가 될 뻔했다가 일제강점기 욱천(旭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개명당했다. 봉준호 감독이 2006년에 만든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은신처로 나오는 원효대교 북단 하수도가 한강 쪽 출구다. 만초천의 옛 이름 넝쿨내를 살리자는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고, 만초천 물줄기를 찾아다니는 팬덤도 있다. 복개된 뒤 이름 없이 사라진 다른 하천에 비하면 복받았다. 용산기지를 ‘국가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 ‘국립공원’도 아니고, 새로 생기는 공원의 개념이 얼른 와 닿지 않는다. 정부가 만든 용산공원조성 특별법을 읽어 봐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옮겨 올지도 모르고, 자기 건물이 없는 정부기관 그리고 한미연합사와 미국대사관이 들어설 ‘국가의 공원’이라는 뜻인지?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관할 자치단체인 서울시, 용산구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면 뭔가 탈이 난 것 같다. 남산이 자신의 품에 안긴 용산기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해방 후 남산 공원용지를 이 기관, 저 기관, 이 학교, 저 학교에 선심 쓰듯 내주어 오늘날 ‘벌레 먹은 남산’을 만든 전과가 있다. 미군 통신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남산 제1봉수대 자리도 반환 대상에서 빠져 있다. 어렵사리 되찾은 용산과 만초천도 또 그렇게 망칠 작정인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해방부터 상업 쇠퇴까지 지켜본 서울역… 이제 사람을 지킨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해방부터 상업 쇠퇴까지 지켜본 서울역… 이제 사람을 지킨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차 ‘서울역 공중정원 야행’이 지난 12일 서울역 일대에서 저녁 7시부터 진행됐다. 낮의 폭염이 무색하게 서울역에서 맞는 한여름밤은 쾌적했다. ‘서울문화의 밤’과 일정이 겹쳤지만 예약자 30명에 대기자 10명까지 모두 출석하는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베테랑 정순희 해설사는 서울역 광장 강우규 동상~서울역 7017~만리동 광장의 새 공공미술 명물 윤슬~손기정 기념관~약현성당~염창동 수제화거리로 솜씨 좋게 투어단을 이끌었다.참석자들의 시선은 서울로 7017 공중정원의 화려한 야경과 이벤트에 쏠린 듯했다. 서울역 광장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공중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풍광에 마음을 뺏길 만했다. 남산 N서울타워와 빌딩숲이 병풍처럼 펼쳐졌고, 맞은편 서울스퀘어의 미디어캠버스에서는 현란한 조명이 솟구쳤다. 정겨운 비잔틴풍의 옛 서울역 돔…. 서울역 고가도로의 변신은 눈부셨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서울역이 들어서고, 고가도로가 놓이게 된 역사와 그 변천사도 기억해야 한다. 서울로 7017은 단순한 도시재생이 아니다. 도시공간의 무한 확장과 이에 따른 지역 불균형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고 소비돼야 할 것이다.서울역은 서울의 관문인가? 과거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1970년대까지 압도적인 ‘서울의 얼굴’로 군림했다. 국내의 모든 철도망을 끌어들이는 일극(一極)중심이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오가는 국제관문이기도 했다. 500년 이상 지속된 조운(漕運)중심의 교통물류체계를 철도수송으로 바꾼 상징물이다.서울역의 역사는 서대문역과 남대문정거장(남대문역)시절을 거쳐 1925년 경성역(서울역)으로 거듭났다. 스위스 루체른역을 모델로 도쿄대학 쓰카모토 야스시가 설계했다. 명동성당, 천도교중앙대교당, 성공회 성당, 덕수궁 석조전, 서울대병원의 전신 대한의원, 혜화동 옛 공업전습소, 서울시청,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등과 함께 근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광수의 흙, 채만식의 ‘인형의 집을 나와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이상의 ‘날개’ 등 경성역 시절을 다룬 근대문학 작품 속 이미지는 ‘첫인상’ ‘관문’ ‘고독한 공간’이었다. 숱한 현대 작품에서는 도시의 물질적 유토피아와 정신적 디스토피아의 단골 소재로 그려졌다.1981년 사적 제284호로 일찌감치 지정된 덕분에 철도부지 활용 차원에서 계획된 철거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KTX 민자역사의 건설과 함께 2011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문화역서울284’는 ‘문화역’이라는 목적성, ‘서울’이라는 지역성에 ‘284호’라는 사적지정 번호를 접목한 이름이다. 더는 서울의 대표 관문은 아니지만 통일 이후 유라시아횡단철도가 부활하면 문화 발신기지로서의 역할을 꿈꾼다. 해방과 분단 이후 광적인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서울역을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애환이 교차하는 산업화 시대의 상징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남부역사(1957년), 동부역사(1969년), 서부역사(1974년)가 차례로 신축됐고, 서울역과 동부역(서울스퀘어) 간 지하도로와 서부역을 잇는 육교가 완성됐다. 이 시절 고가도로 건설은 개발의 아이콘이었다. 서울역고가도로는 1970년 퇴계로~서울역 구간 건설을 시작으로 1974년 퇴계로~청파로, 1983년 퇴계로~만리동 구간에 순차적으로 놓였다. 이후 서울 전역에 101개가 건설됐다. 서울로 7017의 모태이다.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80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역과 광장의 그늘에 가려진 지역과 사람의 희생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서울역을 둘러싼 중림동, 염창동, 만리동, 동자동, 양동, 청파동, 서계동은 조선시대 사대문 안으로 물자가 들어오는 메인스트림이었다. 마포~만리재~염창동~남대문이 물자의 유입통로였고, 칠패시장에 이어 남대문시장이 번성했다. 문제는 서울역과 거대한 플랫폼이 차단벽을 형성해 이들 지역을 도시에서 격리시켰다는 점이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사대문 안쪽과 전면부는 번영과 재개발의 혜택을 보았지만 바깥쪽과 후면부인 중림동과 만리동, 청파동과 서계동지역은 남대문시장 의류봉제의 배후 공장지대가 되면서 낙후와 고립을 면치 못했다. 도시의 애물단지가 된 서울역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친화적 고가공원으로 재생한다는 방침에 따라 네덜란드의 건축가 비니 마스의 ‘서울수목원’이 국제현상설계에서 당선됐다. 서울역고가를 나무로, 여기서 뻗어나가는 17가닥의 길을 가지로 잇는다는 것이 설계 개념이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회현동과 남산, 남대문시장, 중림동, 만리동과 공덕동, 서계동과 청파동으로 가지가 퍼져 나간다. 지상에서 끊어진 길들이 공중에서 얽히고설켜 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서울역고가도로 아래 청소차고지로 버려졌다가 ‘윤슬’이라는 공공미술작품으로 되살아난 만리동처럼.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자유를 위한 함성> 일시: 19일 오전10시 국립4·19묘지 버스정류장(수유역 2번출구)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광복절 경축사] “2019년은 건국 100주년”… 건국절 논란에 쐐기

    “산업화·민주화 구분 넘자…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이승만·박정희 역사 속에 있다”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72주년 경축식 경축사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진보·보수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건국절’은 2006년 7월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언론 기고문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 뉴라이트 단체의 ‘대안교과서’ 출판,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이념 갈등’으로 불붙었다. 지난 9년간 보수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규정했고, 독립운동 단체와 진보진영에선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진정한 광복은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진정한 보훈은 선열들이 건국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해 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셈법에서 비롯된 건국절 논란을 매듭지음으로써 미래지향적 통합의 길을 나가자는 의도인 셈이다.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이다.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 김대중·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또한 “지난 100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100년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보수·진보, 정파의 시각을 넘어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축식에 앞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이 김구 선생의 묘역을 찾은 것은 1998년 6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은 “너무 당연한 1948년 건국을 견강부회해서 1919년을 건국이라고 삼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면서 “건국과 건국 의지를 밝힌 것은 다른 말”이라고 반박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광복 72주년, 한반도 운명 외세에 맡길 수 없다

    광복 72주년 아침이다. 36년의 일제 치하에서 조국을 되찾은 기쁨 속에서 외세의 개입 아래 남북 분단의 비극이 싹튼 지 72년 되는 날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 됐을 만큼 그동안 우리는 상전벽해의 발전 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이런 성취의 역사를 무색하게 한다. 광복 직후의 혼란상을 떠올릴 만큼 긴박하고 위중하다. 한반도의 운명이 또다시 외세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징후들이 심상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해법이랍시고 미국이 중국과 김정은 체제 이후를 전제로 한 대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미·중 빅딜론이 미국 외교가에서 버젓이 나도는 게 그 한 예다.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는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한국이 잡는다는 데 양국 정상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펼쳐진 한반도 정세는 이런 발표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기한 신베를린 구상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도 중국과의 직접 대화에 공을 들일 뿐 우리 정부의 목소리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 또한 북이 어떠하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만을 고집하며 우리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의도대로 한반도 안보가 북한과 미국의 정면 대치 속에 직접 대화의 가능성이 커 가는 통미봉남의 형국으로 내닫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선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에도 앉지 못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현실을 정부는 북핵 못지않은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7일 “북핵 해결 주체는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라고 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할 만큼 아연실색할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힘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 차원을 넘어 북핵 문제를 정녕 일부 진보 세력들의 주장처럼 북·미 간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러지 않고는 이렇듯 우리 스스로를 북핵 문제의 주변부로 자리매김하는 발언을 책임 있는 청와대 당국자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 위기 관리의 주체는 한국이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외교라인을 재정비해 미국 및 중국과의 소통 강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대화를 강화해 북핵 대응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상 간 몇 마디 대화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실무라인의 상시적 대화가 긴요하다. 사드 배치도 이젠 결단하기 바란다. 논란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입지만 좁아질 뿐임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모쪼록 외교안보 라인도 더 긴장해야 한다. 어쭙잖은 휴가로 위기가 평화가 될 수 없으며, 그런 모습을 의연하다고 볼 국민도 없다.
  • 인도서 15명 죽인 ‘살인 코끼리’, 결국 사살돼…

    인도서 15명 죽인 ‘살인 코끼리’, 결국 사살돼…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인도에서 15명을 죽인 ‘살인 코끼리’가 8월 12일 ‘세계 코끼리의 날’을 하루 앞두고 사살되고 말았다. AFP통신 등 외신은 12일(현지시간) 인도 최고의 명사수 나와브 샤팟 알리 칸이 자르칸드주(州) 정부로부터 지난 11일 살인 코끼리의 살처분 의뢰를 받은지 몇 시간 만에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도했다. 주정부 산하 산림·야생동물보호관리국의 LR 싱은 일주일 동안 살인 코끼리에게 마취제를 사용해 포획하는 작전을 시행했지만 실패로 끝나 결국 사살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관리국과 우리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노력했음에도 지난 4일에만 두 명이 또 사망했다”면서 “사실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도 최고의 명사수로 알려진 칸이 이번 코끼리 살처분 작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단 몇 시간 만에 그는 ‘로그’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칸은 “코끼리에게 최대한 다가간 다음 발포했지만 코끼리가 단번에 쓰러지지 않고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향해 코를 휘드르려고 해 한 발 더 쏠 수밖에 없었다. 그 코에 맞았으면 그 남성은 죽었을지도 모른다”면서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살처분된 코끼리는 지난 3월 인도 비하르주(州)에서 4명을 짓밟아 죽인 뒤 바로 옆에 있는 자르칸드주(州)로 넘어가서 그보다 더 많은 11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코끼리는 길을 잃어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작전이 펼쳐진 장소는 인도 소수민족 파하리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곳은 소수 민족 거주 지역 중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번 작전에는 산림 공무원과 주민 등 100여 명이 참가했지만, 사격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은 칸이 유일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가 승인한 사냥 작전에 24번 참가했다. 인도 환경부는 인도에서는 매일 1명이 위험한 동물과 만나 사망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대부분 원인이 코끼리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정착과 산업화로 숲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코끼리와 인간의 위험한 만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AFP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응답하라 광화문

    [최만진의 도시탐구] 응답하라 광화문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전쟁 파괴에 반하는 현대적 도시 개념을 주창하게 된다. 이는 그가 발표한 일련의 스케치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데, 도시를 한마디로 거대한 기계로 묘사했다. 이에 발전소, 비행장, 격납고, 정거장 그리고 입체화된 대로변에 솟아 있는 초고층 건물들을 도시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이들은 산업화시대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묘사됐으며, 도시는 기계적 이동 수단인 비행기 및 자동차 그리고 산업시설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도로 같은 도시 공간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수직적으로는 엘리베이터를, 수평적으로는 건물과 건물 또는 도시 시설물 사이를 잇는 연결 다리를 통해 이동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이 같은 구상은 이전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는 도로를 중심으로 건물을 나열하고, 중요 위치에 랜드마크 구조물을 만들었으며, 공원이나 광장 등의 공지를 두어 도시를 구성하던 평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있다. 산텔리아의 도시는 여러 층으로 형성된 입체성과 복합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원의 구조를 가진다. 이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비행기,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속도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새로운 도시가 마치 거대한 배를 생산하는 시끌벅적한 조선소와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도시 풍광은 오늘날에는 일반화돼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어서 이를 ‘미래주의 건축’이라 명명했다. 한편 인류가 이루어 놓은 위대한 산업화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이 생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주체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가 콘크리트, 철제, 아스팔트 구조로 구성돼 있어 자연을 찾아볼 길이 없다. 이러한 기계 중심의 도시 건설 아이디어는 근대건축에 전달돼 오늘날의 도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가 인류에게 장밋빛 이익만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면이 오히려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계와 이동 수단이 판을 치는 곳에서는 사람이 소외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은 도시 공간에서 축출돼 건물 속으로 숨어들었고 이웃과 단절돼 공동체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또한 지역의 전통과 특징은 없어지고 똑같은 도시 경관이 전 세계에 만연하게 돼 정체성 회복이라는 과제가 새롭게 부상했다. 교통수단, 공장,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소음, 공기오염, 온난화 등의 문제는 현대인을 심각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도시계획의 핵심적인 경향은 지역 전통과 특징을 반영한 사람 중심의 개발로 방향을 바꾸었다. 최근 광화문광장의 전용보행공간화 구상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편승한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울의 가장 핵심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전통의 복원과 계승이다. 조선시대에 중앙 부처가 있어 육전거리로 불렸던 이곳은 일반인의 통행이 자유로운 개방 공간이었으며 신문고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상소하던 소통의 공간이었다. 신도시 미래파인 산텔리아는 파시스트의 편에 서서 전쟁에 가담했다가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우리의 광화문에서는 일제가 만든 산업 식민의 잔재를 털어 내고 시민이 화합하는 대통합의 진정한 미래주의가 싹트고 있다.
  • 바다 통해 문명 일군 인류, 해수면 상승 ‘역습’에 위기

    바다 통해 문명 일군 인류, 해수면 상승 ‘역습’에 위기

    바다의 습격/브라이언 페이건 지음/최파일 옮김미지북스/360쪽/1만 5000원지구온난화와 이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지만 구체적으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진행됐고 앞으로 어떻게, 어떤 피해를 줄 것인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세계적인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바다의 습격’에서 마지막 빙하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인류의 관계를 ‘도전과 응전’의 서사로 풀어내며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인간과 바다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바다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기온 변화와 심한 폭풍우에 대한 바다의 반응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우리이며, 지구상의 인간의 숫자이다.” 해수면 상승은 빙하기가 끝난 1만 5000년 전부터 기원전 6000년 사이 급속도로 이뤄졌다.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급속한 해빙이 시작되고 빙하가 녹은 물이 지구 북쪽의 바다로 흘러들며 해수면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빠르고 자연적인 온난화는 채 1만년이 안 되는 사이에 후빙하기 세계를 완전히 다른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이 기간에 세계의 해수면은 122m 상승했다. 바다는 기원전 4000~3000년 무렵 급진적인 상승을 멈췄다. 그동안 인류는 거대한 문명을 쌓아 올렸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남아시아에서 도시 문명이 발달했고 로마제국이 전성기를 누렸다. 북유럽의 노르드인들이 북대서양을 탐험했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뱃사람들이 바다를 누볐다. 지구의 해수면은 긴 세월 거의 그대로 유지된 채 퇴적과 홍수를 반복하며 인류에게 삶의 양식과 터전을 제공했다. 하지만 인간과 바다의 밀월은 산업혁명의 절정기에 진입하면서 끝났다. 도시화, 산업화, 댐 건설 등으로 자연의 마법이 깨지면서 바다는 축복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이후 해수면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토펙스 포세이돈 위성에 실린 고도계의 기록은 근년에 보인 연간 2.8㎜ 정도보다 빠른 속도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간 가속화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책은 밝힌다. 해일이나 쓰나미와 같은 파괴적인 재앙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해수면이 1m만 높아지면 수천 헥타르의 논과 국제항들이 침수될 처지에 놓였다. 저자는 “인류의 엄청난 숫자 그 자체와 해상운송화물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해수면 상승에 따른 취약성을 증가시켰고 결국 우리는 인류가 이전에 씨름한 적 없는 홍수통제시설이나 해안방어시설, 이주 문제에 대해 고통스럽고도 값비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곤경에 더 일찍 맞설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수요 에세이] 아프리카와의 협력, 길게 보고 미리 준비하자/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수요 에세이] 아프리카와의 협력, 길게 보고 미리 준비하자/문재도 무역보험공사 사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지난 6월 아프리카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모잠비크 해상광구 가스전 개발 사업이 우리나라 가스공사가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의 발주로 시작됐다. 가스를 생산해 액화하는 공사로 삼성중공업이 수주에 성공했다. 무역보험공사와 수출입은행은 파이낸싱에 참여한다.1990년대 말부터 아프리카 서부 해안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원유 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우리의 플랜트 역사가 동부 해안까지 확대된 셈이다. 더구나 이 지역은 수송 시간이 중동에 비해 이틀 정도밖에 더 안 걸려 생산된 가스를 우리가 사용한다면 경제성 측면에서도 양호하다. 얼마 전 우리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는 카타르가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연안 국가들 간 단교 사태로 인해 수입 차질을 우려했던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안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가 모잠비크를 방문한 것은 신흥국과 산업자원 협력을 총괄하던 실장으로 2012년 김황식 국무총리의 아프리카 방문을 수행하면서다. 당시 국제 원유가가 100달러를 상회하고 있어 자원 보유 국가와의 협력이 중요했으며, 우리 기업들도 아프리카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모색하던 때였다. 이때 양국 간 공식회의에서 모잠비크 해안의 가스전 개발 사업이 논의됐고, 5년이 지난 이 시점에 결실을 맺으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임기 중 한 번은 아프리카를 방문해 협력 의지를 밝힌다. 그러나 아프리카 53개국에 비하면 방문하는 국가가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사하라 이남 지역 방문 국가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자원과 시장의 보고인 아프리카와의 협력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 아프리카와 협력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째,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1인당 국내총생산(GNP)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케냐는 1500달러인데 인근 국가들은 반에도 못 미쳐 생활수준이 엄청 차이가 날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시장경제가 어느 정도 발달했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자급자족 사회주의 경제 경험이 오래됐다면 명목상의 숫자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히려 미래 잠재력은 자원 보유, 인구수, 정치적 안정 등 다른 요인에서 비롯된다. 둘째, 아프리카식 민주주의다. 선거 때면 으레 불복과 폭력 사태가 있고 나서 정치적 타협을 통해 권력을 나누곤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부족 간 내전 사태까지 간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기 힘든 구조다.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인위적으로 그려진 국경 때문이다. 다수결에 의한 승자 독식이 받아진다면 소수 부족은 영원히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오히려 선거 결과에 따른 권력 나누기가 진정한 아프리카식 민주주의에 가깝다. 인류 보편의 가치라는 민주주의도 독특한 식민지 경험을 가진 아프리카의 눈으로 달리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아프리카의 시장을 보는 데 반해 아프리카는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경험을 높이 산다. 2차 세계대전 후 동시대에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고도 자기들이 하지 못한 근대화를 이룩한 한국을 아프리카는 성공 모델로 삼고자 한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외국인 투자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하나 자금 회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제한적이다. 역시 멀리 보고 길게 가는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 고대 로마 황제는 ‘아프리카에는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고 했다. 기존 시장이 한계를 보이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 간의 관계는 신뢰가 중요하다. 한 번 찾아가서 협력 의지만 잔뜩 보이고 후속 조치가 없으면 안 가느니만 못할 수 있다. 쌍방 간에 기대 수준을 낮추고 그 나라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다 보면 오히려 큰 기회가 올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원조 자금이 늘어나고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다 보면 모잠비크에서와 같은 사업 기회가 또 다른 곳에서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 中시장, 공무원들과 강물에 입수한 사연은?

    오염된 강이 깨끗하게 정화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시장이 몸소 물속으로 뛰어들어 화제가 되고있다. 최근 중국 영자매체 상하이스트는 허난성(河南省) 융청시(永城市) 리중화 시장의 특별한 시정활동을 전했다. 이 지역에는 시내를 관통하는 강이 흐른다. 우리의 한강처럼 시민들의 젓줄이었던 이 강은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오염돼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 애물단지가 됐다. 리 시장이 6명의 공무원을 이끌고 강 속으로 뛰어든 것은 지난 1일. 오염됐던 강이 다시 깨끗하게 정화됐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리 시장은 "행정을 통해 오염됐던 강이 다시 깨끗해졌다"면서 "이제 시민 누구나 우리처럼 수영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리 시장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시민들은 "평소 친환경 정책을 펴온 리 시장 덕에 강이 깨끗해졌다"고 반기면서도 일부에서는 "강물도 마실 수 있을만큼 깨끗하다고 자랑하지는 말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노동자 땀 서린 어제… 다문화 상징의 오늘… 디지털 노마드 내일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구로공단, 나비로 날다’가 지난 22일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친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를 오가며 진행됐다. 투어단은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조곤조곤한 안내를 따라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을 뚫고 2시간 30분 동안 가리봉동 일대를 누볐다. 참가자들은 ‘산업역군’들의 터전이던 ‘가리봉 벌집골목’과 굴뚝이 남아 있는 공장, 마리오사거리(옛 구로동맹사거리)와 가산디지털단지 오거리(가리봉 오거리) 곳곳에서 50년 전 수출 한국의 맥박, 노동운동과 야학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가리봉동은 산업화시대 수출 한국의 제1 전선이었다가 디지털시대 벤처산업 밀집 지역으로, 글로벌시대 다문화의 상징 공간으로 가파르게 진화했다. 가리봉은 누구나 아는 곳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이 딱 떠오르진 않는다. 역사와 행정 단위와 생활공간이 불명확한 천의 얼굴 같은 복합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친근하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던 산업화와 도시화, 노동운동의 요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구로공단은 한국 산업사회의 출발점이다. 가리봉은 이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없다. 구로, 가산, 독산이라는 주변부의 이름 뒤에 숨어 있다. 또 한국수출산업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디지털산업단지, 가산디지털단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변신을 거듭했다. 가산이란 가리봉동+독산동의 합성 지명이고, G밸리란 가리봉·구로·가산의 영문 첫 이니셜이다. 지하철 역명도 1호선은 독산역·가산디지털단지역·구로역, 2호선은 구로디지털단지역, 7호선은 남구로역이다. 가리봉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 최대의 인력시장이 서는 7호선 남구로역은 가리봉동으로 들어가는 옛 버스 종점 자리였고, 가산디지털단지역은 1968년 200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때 생긴 가리봉역의 다른 이름이다.1967년 구로공단이었다가 2017년 G밸리가 된 가리봉동은 어떤 곳일까.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점령한 한강 지천 안양천 변의 대촌, 골말, 모아래 마을에서 조선시대 이후 경기 시흥군 동면 가리봉리일 때까지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1963년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고, 1995년 구로구와 금천구로 분구되면서 지형이 급변했다. 경부선 철도와 남부순환도로는 지역을 분절했고 사람들을 타자화했다. 산업화시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팔도의 젊은이들이 집결한 대표적 이촌향도(離村向都)의 공장 굴뚝이 불과 50년 만에 정보기술(IT)과 정보통신의 아파트형 공장으로 업종 전환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이 떠난 빈자리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초기 정착지로 변했다. 교통 여건이 좋고, 집값이 싼 가리봉은 서울에서 등록 외국인 비율이 34%로 가장 높다. 한국 속의 중국이다. 나비가 허물을 벗듯 현기증 나는 변화를 하고 있다. 1975년에는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네였다. 80년 초 200개가 넘는 섬유·의류·봉제, 전기·전자조립, 가발·잡화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체에서 11만명의 근로자들이 철야와 잔업을 밥 먹듯 했다. 전성기에 유동 근로자 40만명, 주민 40만명을 자랑하는 서울의 5대 상권이었다. 기숙사와 자취생활을 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 근로자들이 주고객인 가리봉오거리 가리봉시장 우마길은 명동에 비교될 정도로 인파로 넘쳐났다. 구인과 구직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부동산 시세는 강남과 엇비슷했다. 가리봉오거리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공단로와 구로동길 그리고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다섯 갈래의 길이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가오리’라고 불렀던 생활과 휴식처였다. 주말과 수요일이면 고고장 7개가 해방구의 불야성을 이뤘다. 지금은 옌볜말이 표준어인 ‘옌볜거리’이거나 가리봉의 라스베이거스인 ‘가리베가스’라고 불리는 코리안드림의 잉태지다.1단지와 2단지를 잇는 공단로 양쪽으로 벌집, 벌통집, 닭장, 비둘기집, 토끼장이라고 불린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2평짜리 다가구주택이 줄을 지었다. 가리봉동에만 1779개(1982년 통계) 동이 몰려 있었는데 전체 벌집의 64%였다. 화장실 대변기는 65명당 1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향학열로 끓어올랐다. 밤이면 작업복을 벗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야학과 위장취업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육, 노동조합 가입과 탄압이 이어졌다. 지금의 마리오아울렛 사거리는 1985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정치적 요구를 앞세운 지역정치 파업인 구로동맹파업과 노학연대투쟁의 현장이다. 노동자들은 가리봉오거리를 오가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다. 우리가 기억하는 구로공단은 500년 소비도시 서울에서 유일한 생산기지였다. 서울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수출의 10%를 담당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 냈다. 구로공단의 핵심 가리봉동 50년은 대한민국이 창조한 신도시 ‘강남 서울’의 역사 반백년과 맥을 같이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은평의 어제와 오늘 > 일시: 29일(토) 오후 7시 연신내역 3번 출구 신청(무료):서울시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
  • ‘과학적 조언’의 탈을 쓴 지독한 성차별

    ‘과학적 조언’의 탈을 쓴 지독한 성차별

    200년 동안의 거짓말/바버라 에런라이크·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강세영·신영희·임현희 옮김/푸른길/500쪽/2만 8000원‘여성의 생리는 휴식과 격리가 필요한 병이고, 임신은 고질적이고 장애를 유발하는 상태이며, 폐경은 일종의 죽음이다. 여성의 성격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난소를 절제해야만 한다.’ 이 비뚤어진 생각은 누구로부터 비롯됐을까. 소위 과학적인 전문가라고 불리는 의사들의 생각이라면 믿을 수 있는지.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여성의 삶을 조작하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면. 미국의 역사적 전환기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산업화와 세계대전을 계기로 여성들이 노동인구로 편입되기 시작할 무렵, 여자들의 인생 계획을 마음대로 처방하기 시작했다. 남성적 관점에서 여성은 탐구되고 분석되어야 하는 대상이자 사회 문제였다. 이에 의사,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가정과학자, 육아전문가, 사회복지사 등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 삶의 일부 영역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여성의 신체, 육아, 가사 등에 일일이 관여했다. 책은 지난 200여년 동안 전문직 종사자들이 여성들을 위하는 척 건넨 조언이라는 것이 사실은 과학이라는 허울을 쓴 성차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근본적으로 허약하다는 신화와 그 해법으로 제시된 ‘가정 중심적인 삶’은 여성이 경제적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1970년 상원의원 허버트 험프리의 주치의 에드가 버만은 ‘심한 호르몬 불균형’ 때문에 여성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자들이 제시한 출판물, 회고록, 잡지, 편지, 강연, 팸플릿 등 각종 문헌 자료에는 전문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이끌었는지 생생하게 드러난다. 책은 여성의 권리가 많이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전문가로부터의 여성 해방은 미완의 혁명이라고 설명한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성공하는 자녀를 키우는 법, 연애 잘하는 법, 몸무게 줄이는 법 등 다양한 조언을 텔레비전, 인터넷, 소셜미디어네트워크를 통해 구한다. 이 같은 조언에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나 바람직한 여성상이 은연중 녹아있다. 21세기인 지금,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교훈은 그래서 유효하다. “전문가가 아무리 많은 학위를 당신에게 보여 주더라도, 그들이 아무리 많은 연구를 인용할지라도, 당신 스스로 더 깊이 탐구하고 당신 자신의 실제 생활 경험에 가치를 부여하고 스스로 생각하라.”(27쪽)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씨줄날줄] 노인의 기준 연령/이동구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인의 기준 연령/이동구 논설위원

    최근 취임한 몽골의 새 대통령 나이는 53세다. 국내 언론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과연 몽골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2016년 기준 몽골인의 평균 수명은 69세다. 2001년 몽골 남자의 평균 수명은 64.6세에 불과했지만 산업화, 도시화 등으로 15년 만에 수명은 많이 연장된 것이다. 몽골인의 개념으로는 53세 대통령은 젊은 게 아니라 ‘나이 많은 대통령’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 모를 일이다.대부분의 나라는 65세를 노인의 기준 연령으로 삼는다. 유엔의 통계 기준에 맞춘 것이다. 유엔은 생산 가능 인구를 만 14세부터 64세로 규정하고 65세 이상을 노인 인구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도 이에 맞춰 노인 복지의 수혜 대상을 65세 이상으로 하고 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의 면제 및 할인, 노령연금 등도 이 기준에 따라 65세부터 적용한다. 경로당에서는 65세를 청년 취급한다지만 규정상으로는 엄연한 노인이다. 의학의 발달로 건강이 증진되고 수명이 연장되는 만큼 일본, 싱가포르 등 장수 국가를 중심으로 노인 기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2027년이면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1%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의 기준 연령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노인의 무임승차가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는 지하철공사에서 먼저 논란은 시작됐다. 수도권 지하철 신분당선을 운영하는 ㈜신분당선이 최근 논란의 불씨를 되살렸다. ㈜신분당선 측은 최근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허용되는 무임승차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신고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신분당선은 지난해 말 기준 무임승차 비율이 16.4%에 이르러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작년에만 140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비단 ㈜신분당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6개 특별·광역시는 지난달 지하철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달라고 새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건의했다. 지난해 도시철도의 운임 손실 가운데 66% 정도가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라니 정부로서도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67세나 70세 등으로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대선 때는 노인 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쑥 들어갔다. 이제는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기준 연령을 올리고 저소득 노인들에게는 교통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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