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소리] “産災 진료비 심사 현행대로”
■ 산재근로자들 ‘3大 의료비 심사 일원화’ 반발
지난 2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쌀쌀한 날씨 속에 휠체어를 탄 100여명의 산재근로자와 그 보호자들이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산업재해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쑤시고 저려오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여당 의원들이 입법을 추진 중인 ‘국민의료비 심사 일원화’에 반대하며 시위에 나선 것이다.
그들에겐 생존권이 걸린 절실한 문제였지만 사회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입법화 저지를 위해 길거리에 나선 산재근로자와 가족들의 주장을 들어봤다.
●여당의 입법 추진에 산재근로자 강력 반발
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국민의료비 심사 일원화란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등의 진료비 심사기능을 하나로 묶어 통합심사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속칭 ‘나이롱’ 환자 때문에 진료비가 심각하게 누수되는 것이 입법화 이유 중 하나다. 동일 질병과 부상에는 동일 의료를 적용하겠다는 원칙이다.
현재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산재보험의 진료비 심사기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자동차보험회사, 근로복지공단 등이 각각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가칭 ‘의료심사평가원’을 만들어 산재 심사팀과 자동차사고 심사팀을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심사 일원화에 산재환자와 보호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 등이 ‘국민의료비 심사일원화’ 입법화 공청회를 개최하려 하자 강하게 반발하며 공청회를 막았다.
시위를 주도한 한국산재노동자협회 권수명 회장은 “심사기구를 하나로 통합하면 산재노동자들은 엄청난 피해를 본다.”며 통합기구 입법화를 결사 반대했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해 당사자를 제쳐놓고 공청회를 하려는 데 대해 극도로 분노했다.
산재노동자협회 김형돈 사무총장은 “과잉진료와 의료비 누수를 차단하기 위해 심사기구 통합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산재환자는 건강보험 환자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산재환자,“심사 일원화는 도움 안된다”
산재환자들은 심사일원화가 이루어졌을 경우 본인부담 증가 등으로 지속적인 치료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심사일원화가 이뤄지면 진료비 등이 건강보험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따라서 심사일원화 입법화를 ‘하향 평준화’ 정책이라고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산재신문 이호 편집부장은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제도의 취지가 다르다.”면서 “산재보험은 근로자가 직장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재보험은 근로자가 일터에서 다치면 치료·요양·재활까지 모두 책임진다. 또 재발하거나 악화되면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노동 능력이 회복돼야 병원문을 나선다.
또 산재로 판정되면 치료비는 물론 간병료, 교통비 등이 산재보험에서 지급된다. 일시불 또는 연금형식으로 장애급여도 받을 수 있고 치료 중 사망하면 유족급여도 나온다. 그러나 건강보험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되면 돈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게 이 부장의 주장이다.
이 부장은 선진국의 경우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보험적용 범위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산재환자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산재보험 환자와 자동차보험 환자들이 고무줄처럼 입원기간을 늘리는 바람에 의료비가 심각하게 누수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했다.
김 총장은 “여당이 입법화를 고집할 경우 물리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만큼 100만여명의 산재환자가 투쟁대열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의료비 통합심사 입법화 나선 장복심의원
열린우리당 장복심의원은 ‘국민의료비 심사일원화 입법안’ 주제발표문에서 심사일원화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장 의원은 “심사기능이 일원화되면 진료비 심사가 통합된 기구로 단일화되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사고나 질병 발생시 보험종류에 관계없이 의료기관 어디에서나 차별 없는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요양기관도 단일 창구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어 행정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 심사평가 기능 승계 바람직
장 의원은 심사일원화 방법과 관련, 현재 우리나라 진료비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강보험의 심사평가 기능을 원칙적으로 승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특히 진료비 심사가 건강보험,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중 어느 한쪽의 심사논리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별도의 통합심사기구(가칭 의료심사평가원)를 설립, 모든 보험의 진료비 심사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심사일원화의 장점과 관련, 장 의원은 먼저 환자의 진료권 보장을 꼽았다.
질병이나 사고 발생시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등 어느 보험이든지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치료받고자 하는 병원 어느 곳이나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가입한 보험 종류에 상관없이 의학적으로 적정하기만 하면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후유증 치료에 이르기까지 치료기간을 사전 승인받지 않고도 차별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보상 늘고 보험료는 줄것
이밖에 산재환자나 자동차보험환자의 보상이 확대되고 보험료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장 의원은 “현행 보험제도는 산재환자나 자동차보험환자의 입원기간이 보상금과 연계돼 있어 불필요하게 입원기간을 늘리는 바람에 진료비의 누수를 가져온다.”면서 “이렇게 낭비되는 진료비를 막으면 사고 후 받게 되는 보상액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절감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또 심사일원화가 제도화되면 의료기관은 환자의 보험종류와 관계없이 한곳의 통합심사기구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어 진료비 청구절차가 간소화되고, 진료비 지급 처리기간도 짧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이롱 환자’ 줄어 병상 회전율 증가
또 “심사일원화로 환자의 총체적인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입원치료가 불필요한 환자가 병상을 차지하는 일이 줄어들고 그 병상을 신규 환자로 채울 수 있어 병상회전율이 증가하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심사일원화의 추진방안에 대해 장 의원은 “기존의 건강보험심사기구에 위탁하는 방안보다는 별도의 법에 근거한 통합심사기관에서 수행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심사일원화의 요체는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건강보험의 제도적인 일원화가 아니라 진료비의 심사 부분에 한정된 일원화일 뿐” 이라고 강조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외국에서는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심사일원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태선 연구기획팀장은 “일반적으로 선진국들은 건강보험에서 모든 의료비를 심사해 비용을 지급하는 시스템”이라며 “적어도 심사기구는 전문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나, 건강보험에서 산재보험의 심사나 진료비 지불을 일괄 담당한다. 스웨덴은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의 구별없이 통합된 사회보험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산재보험과 관련해 대부분의 나라는 의료수가나 진료비 지불이 일원화돼 있다.
이 팀장은 “지금보다 제대로된 기준에서 심사를 하게 되면 관리해이를 막을 수 있다.”면서 “‘나이롱’ 환자가 아닌 진짜 환자는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외국의 자동차보험은 대체로 자동차에 대한 보상, 즉 대물손실만을 담당한다.
대인손실 부문, 즉 사고로 인한 신체적 상해에 대한 진료비 부분은 원칙적으로 건강보험에서 처리하고 있다.
진료비 부담방식의 경우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모든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지불한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을 별도 운영하지만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먼저 지급한 후 자동차보험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