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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최기열(전 담배인삼공사 이사관)씨 별세 범석(경희대 교수)민석 형석씨 부친상 민중식씨 빙부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19●문용석(광성금속 대표)태석(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 부지점장)창석(자영업)씨 부친상 이영두(자영업)송승종(〃)노태성(하나은행 정자중앙지점 과장)씨 빙부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16●차재빈(한국선박기술 부사장)씨 별세 혜영(벽제중 교사)혜경(어린이집 〃)씨 부친상 도원(회사원)씨 빙부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10시 (02)392-1899●이성광(대우통신)광호(한국마사회 부장)씨 부친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65●조준수(중앙매일 업무이사)씨 모친상 21일 충북 옥천성모병원, 발인 23일 오전 10시 (043)733-6201●유영근(템피스투자자문 대표)창근(영산대 경제학과 교수)씨 모친상 정운용(새부산약국 대표)김정호(디퍼마인 〃)씨 빙모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 (02)3010-2631 ●송기형(건국대 문화정보학부 교수)씨 부친상 박석환(동력자원연구소 연구원)정광균(주일 한국대사관 참사관)씨 빙부상 20일 건국대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2030-7903●김상현(전 HBC코오롱 상무이사)씨 부친상 이갑수(사업)씨 빙부상 2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2일 오전 9시30분 (02)3010-2237●목진원(삼표 이사)승원(한국스마트카드)씨 모친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10분 (02)392-0299●조정현(사업)대현(부흥농장 대표)무현(국순당 생산본부장)씨 모친상 박수찬(사업)박희욱(명성기획 대표)씨 빙모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17●이선룡(부광테크 회장·전 금강유역환경청장)씨 부친상 21일 서울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2072-2095
  • 은행, 中企 신용대출 쉽지않네

    은행, 中企 신용대출 쉽지않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돕는 은행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하이테크론의 증가 속도가 더뎌 걱정입니다.” 지난 6일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월례조회에서 올해 초 혁신형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하이테크론’의 실적이 예상만큼 크지 않은 게 고민이라고 밝혔다. 하이테크론은 기술력 평가를 통해 신용으로만 대출해주거나 산업기술평가원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해 기술보증기금(기보)의 보증으로 대출을 일으키는 상품이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돕는 은행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하이테크론의 증가 속도가 더뎌 걱정입니다.” 지난 6일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월례조회에서 올해 초 혁신형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하이테크론’의 실적이 예상만큼 크지 않은 게 고민이라고 밝혔다. 하이테크론은 기술력 평가를 통해 신용으로만 대출해주거나 산업기술평가원 등 외부 기관과 연계해 기술보증기금(기보)의 보증으로 대출을 일으키는 상품이다. ●부실 면책에도 실적은 저조 우리은행은 20일 현재까지 32개 중소기업에 323억원의 하이테크론 대출을 실행했다. 이 가운데 담보 없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신용대출은 17건으로 금액은 116억원이었다. 행장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리 만족할 만한 실적은 아니다. 하나은행도 지난 7일부터 기보와 제휴해 혁신형 중소기업에 기술평가보증만으로 3000억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대출 실적은 없다. 기업은행도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혁신형 중소기업을 겨냥한 대출 상품을 내놓자 중과실이 없으면 취급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 ‘위너스론’을 출시했다. 중소기업 대출에 관한 한 최강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기업은행의 실적도 28개 업체,117억원에 그치고 있다. ●제대로 된 ‘혁신형 중기’ 가뭄에 콩나듯 여신 리스크(위험) 관리를 생명으로 하는 은행들이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까지 혁신형 중소기업에 목을 매는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중소기업대출도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개념은 명확치 않으나 대개 벤처·이노비즈와 같은 기술혁신형 기업이나 IT(기술정보) 등 차세대 성장산업에 관련된 기업을 말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2월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무려 5조 6800억원으로 지난해 1년 동안 증가액(11조원)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중기대출 중 부동산 담보대출이 50%, 신용보증기금 등의 보증 대출이 37%나 되고, 신용대출은 13%에 그친다. 결국 담보나 보증 위주의 대출을 계속하다가는 기존 대출을 뺏고 빼앗기는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은행권에 팽배해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아직 기술력을 정확하게 심사하는 능력이 부족한데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기술력 이외의 변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대출이나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산업기술평가원이라는 기술력 평가 전문조직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은 올해 처음으로 ‘초기 기술사업화기업 투자제도’를 도입했다. 대학연구소나 국책연구소의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조만간 제품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는 신생 기업에 직접 투자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이 제도의 첫 수혜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평가원 관계자는 “심사숙고 끝에 첫 지원 업체를 선정했지만 대표이사의 자질이 의심돼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대출자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해도 영업 실적 등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은 힘들다.”면서 “기술력뿐만 아니라 마케팅 능력, 업주의 사업의지도 면밀히 따지다 보니 대출 증가 속도가 느리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창업 2년을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라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기술력 평가를 통한 대출이 새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어 은행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환란이후 M&A 대기업 30개중 10개 외국인손에

    외환위기 이후 인수·합병(M&A)의 대상이 된 대기업 3개 가운데 1개는 해외 투자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기간에 이뤄진 M&A의 대다수가 매각대상 기업의 장기 성장을 추구하는 전략적 투자였으나 해외 투자자가 주도한 인수 사례의 절반은 고수익을 우선하는 재무적 투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산업은행이 발간한 ‘M&A 시장과 재무적 투자자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98년 이후 M&A 대상이 된 국내 대기업 30개 가운데 10개가 해외 투자자에게 매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투자자에 의해 인수된 대기업은 대상그룹 라이신부문, 삼성중공업 굴착기부문, 제일은행, 해태제과, 대우자동차, 외환은행, 하이닉스 비메모리, 쌍용자동차, 제일은행(재매각), 하이마트 등이다. 특히 투자 동기별로는 국내 투자자가 주도한 20건의 M&A는 모두 전략적 투자인데 비해 해외 투자자에 의한 10건 가운데 5건(제일은행, 해태제과, 외환은행, 하이닉스, 하이마트)은 재무적 투자로 분류됐다. 또 해외 투자자에 의한 인수를 투자금액으로 보면 재무적 투자가 건당 1조 1525억원으로 전략적 투자(6384억원)를 크게 상회했다. 보고서는 “투기성 외국자본의 경우 무리한 투자자금 회수방법을 비롯해 국내 금융기관의 공공성 및 산업자본 공급기능의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LG카드 27일 매각공고

    LG카드 매각작업이 본격화됐다.LG카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14일 “지난달부터 진행 중인 실사 작업이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이에 따라 오는 27일 매각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은 매각 공고일로부터 2주일 이내에 비밀유지확약서와 인수의향서를 접수해 입찰적격자를 가린 뒤 예비실사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산은 관계자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매각작업을 진행할 예정으로 올 하반기에는 매각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명사초청 시와 음악의 봄’ 행사

    국제로타리3650지구 서울예지로타리클럽(회장 이정신)은 오는 24일 오후 7시30분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 대강당에서 ‘명사초청 시와 음악의 봄’행사를 갖는다. 이번 행사에는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과 탤런트 강부자씨를 비롯해 강영숙 예지원장, 강지원 변호사, 박동규 시인, 닝쿠푸이 주한 중국대사 등 명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수익금은 사회연대은행과 한민족어린이돕기네트워크에 지원된다.
  • [부고]

    ●손춘호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손춘호(80)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이 10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시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장 겸 의협신보 발행인 등을 지냈으며, 국가보건의료 발전에 힘쓴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병진(미국 소재 T-mobile 부장), 병규(손병규 성형외과 원장)씨 등 2남이 있으며 장례는 의사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4일 오전 8시. 빈소는 삼성서울병원.(02)3410-6912. ●김만복(전 숙명여대 음대학장·전 K BS교향악단 총감독)씨 별세 이계은(광신의원 원장)씨 상부 김기동(엔텍 대표)기덕(엔텍 부사장)씨 부친상 12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30분 (02)929-1299 ●김상대(푸르덴셜투자증권 감사)상원(부산우체국장)상일(전 하나은행 석관동지점장)상문(전 장은증권)상인(서울성북우체국)상규(자영업)씨 모친상 김동익(동광수출포장 대표)김종기(이치한의원 원장)씨 빙모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30분 (02)3010-2631 ●홍인석(문화물산 대표·전국전교협의회 회장)씨 상배 성계(부성로지스 대표)성두(고려제강 부장)성호(문화방송 재무운영국 관재부장)씨 모친상 이인봉(전 경남은행 진주상대동지점장)씨 빙모상 11일 경남 마산의료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55)249-1463 ●김성재(전 양지패션 사장)덕재(전 통영제일고 교장)홍재(파라콘 대표)근재(전 현대증권 지점장)수재(산업은행 국제업무부 팀장)씨 모친상 김영철(지엠대우자동차 이사)김윤진(정화상사 대표)권희복(파라콘 부장)씨 빙모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3410-6915 ●이근욱(이근욱세무사사무소 대표)씨 부친상 10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62 ●김승욱(아이엔지생명 차장)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02)3010-2253 ●심훈(마이크로아이 연구소장·인천대 겸임교수)씨 부친상 박연수(행정자치부 지방재정세제본부장)김정효(KB신용정보 원주지점장)박현종(미국 변호사)씨 빙부상 11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3일 오전 10시 (02)590-2352 ●박금자(조선일보 비서부장)광현(자영업)씨 모친상 11일 중앙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860-3580 ●현준호(경기방송 기자)씨 부친상 11일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6시 (031)787-1508 ●박동영(뉴스통신진흥회 이사)동호(농협 신태인지점 이사)동선(기아자동차)씨 모친상 박정환(국민은행)시혜(아르콘 앙골라 지사)재민(경희대 국제교류처)씨 조모상 1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92-0699 ●이영수(남양주아이웨이 사장·전 현대산업개발 상무)씨 빙부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92 ●이해근(국회부의장 김덕규의원 보좌관)해춘(대한항공 차장)해영(국군수송사령부 이동과장)해규(자영업)해조(건축설계사)씨 모친상 12일 건국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2)2030-7903 ●정태림(새론시스템 사장)씨 부친상 전철호(코트라 수출전문위원)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3410-6916
  • [커리어 우먼] 김세진 산업은행 수입금융팀장

    [커리어 우먼] 김세진 산업은행 수입금융팀장

    1998년 봄. 산업은행 인사담당 이사실로 4급 여성과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사님, 산업은행은 왜 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겁니까. 경력이나 실력에서 제가 모자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그녀는 전날 승진인사에서 탈락한 4급의 최고참 과장이었다. 이사로부터 끝내 “딸 가진 아버지로서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답변을 얻어낸 이 겁없는 여성은 지금 산업은행 외환영업실의 김세진(51) 수입금융팀장이다.2급 팀장인 그녀는 산은 역사상 가장 높게 올라간 여성간부이다.‘이사실 항의 사건’ 이듬해 김 팀장은 기어이 승진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잠실지점장으로 부임했다. ●“여직원이 아닌 산업은행 직원이 되고 싶었다.” 김 팀장은 왜 그렇게 승진에 목을 맸을까. 김 팀장은 유엔이 ‘여성의 해’로 정했던 1977년 공채로 입행했다. 그해 정부는 대기업 및 금융기관에 여성 전문직을 대거 채용할 것을 명령(?)했고, 그 영향으로 교사발령 대기중이던 김 팀장도 여성 동기 20명과 함께 은행에 들어왔다. 그러나 여성 동기들은 대부분 1년도 안 돼 남성중심의 문화를 견디지 못해 퇴사했다. 과장급까지 승진한 여성 동기는 5명뿐이었다. 외환위기 한파가 한창이던 때 김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행을 떠났다.“혼자 남으니까 더 용감해졌습니다. 여직원은 똑똑해도 안 되고, 아둔해도 안 되는 어정쩡한 현실이 싫었습니다. 미련없이 사표 쓸 생각도 해봤지만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라고요.” 현재 산업은행에는 과장급 이상 여성간부가 100명이 넘는다. 전체 직원 가운데 22%가 여성이고, 지난해 뽑은 신입행원 가운데는 33%가 여성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지만 보수적인 국책은행의 ‘금녀의 벽’을 허무는데 김 팀장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담보물건 회수하러 보름간 전국 헤매기도 김 팀장이 집요할 정도로 조직에서 살아남으려고 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잠실지점장으로 발령나서는 지점을 현재의 프라이빗뱅킹(PB) 점포와 비슷한 ‘살롱형 점포’로 꾸몄다. 수신 기능이 별로 없는 산업은행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었다. 여신담당 대리 시절이던 1991년에는 거래하던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자 담보물건을 잡기 위해 보름간 전남 화순에서 경기도 포천까지 찾아다녔다. 결국 굴착기 등 공사장비를 챙겨 경매에 부쳐 원리금 대부분을 회수할 정도로 ‘독종’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김 팀장이 주선했던 업체의 수출입신용장을 외국은행이 인수를 거부하자 한 달 이상 설득해 기어이 5000만달러에 이르는 부도를 막아내기도 했다. 입행 초기 김 팀장은 여느 행원들처럼 기업여신을 담당했다. 그러나 모든 행원들이 기업여신 전문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외국환 업무로 방향을 틀었다.29년의 직장 생활 가운데 15년을 외국환 업무에 집중했고, 지난해에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팀이 105억달러의 수출입금융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동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헌신하라” 김 팀장은 직장에서 집안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1985년 둘째 아들의 돌잔치 전날이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 3명 중 2명이 지방출장을 간 상황이었다. 가슴을 졸이다 밤 9시쯤 상사에게 조심스럽게 “내일 하루 휴가를 내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상사는 예상대로 “이 와중에 무슨 휴가냐.”고 버럭 화를 냈다.“둘째 아들 돌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리자 상사는 “김세진씨도 자식이 있었냐.”며 미안해했다. 김 팀장은 이제 업무보직이나 승진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는 갔다고 믿고 싶다. 여성을 숨죽이게 했던 환경도 ‘사회적인 편견’이 만든 것이지 남성들이 일부러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여성 후배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전문가가 되려면 고객과 동료, 상사, 부하직원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월급 때문에 일하는 ‘삯꾼’에 머물지 않는다.’는 신념 하나로 29년을 달려온 김 팀장에게는 아직도 앞으로 달려갈 길이 멀어 보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김세진 팀장은 ·1955년 전북 순창 출생 ·77년 서울여대 졸업 및 산업은행 입행 ·96년 산은인상 수상 ·97년 산은 최우수 리더 선정 ·99년 잠실지점장 ·2003년 외환영업실 수입금융팀장
  • “기업 엔화대출 원화로 바꾸세요”

    일본은행이 5년 만에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은행권이 엔화대출을 원화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기업·산업은행 등 일부 은행들을 엔화대출을 원화로 전환하거나 조기상환할 경우 수수료를 받지 않는 식으로 조기 상환을 유도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10일 “2월부터 두차례에 걸쳐 엔화대출을 받은 5000여 업체에 공문을 보내 원화대출로 바꿀 것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은행은 올들어 약 800억원가량의 엔화대출을 원화로 전환했다. 엔화대출은 2.6∼2.7%의 낮은 금리와 엔화 약세로 그동안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어왔다. 국민·외환·우리·신한·하나은행 등 5개 주요 시중은행의 2월 말 현재 엔화대출 잔액은 총 5565억엔으로 지난해 11월의 5053억엔보다 크게 늘었다. 금융계에선 하반기에나 가야 일본의 정책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당장 국내 기업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원·엔 환율 움직임. 올초 원·엔 환율이 100엔당 856.71원에서 지난달 초 81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10일 현재 828.36원까지 올랐다. 기업은행 국제업무부 관계자는 “일본 금리가 실제로 인상돼 대출 부담으로 전가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환율은 즉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엔화대출을 받은 고객들에게 매달 보내는 안내장에 일본의 금리정책 변경에 대한 문제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은행권 해외진출에 ‘사활’

    은행권 해외진출에 ‘사활’

    국내 은행들이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등 신흥시장에 줄줄이 진출하는가 하면 단순히 영업점을 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 은행과의 제휴나 지분 참여, 심지어 인수까지 고려하고 있다. 대규모 해외건설 사업에 금융 주선을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투자은행(IB) 분야에서도 해외진출이 활발해진다. 은행들이 해외 진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내 금융시장이 점점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총자산을 이용해 영업이익을 창출하는 능력을 말하는 영업이익률이 국내 은행의 경우 지난해말 2.98%로 전년의 3.16%에 비해 떨어졌다. 반면 국내 은행 해외점포의 지난해 당기순익은 총 4억달러로 전년 3억 6000만달러에 비해 9.8% 증가했다. 해외점포의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2004년 말 1.2%에서 지난해 말 0.6%로 줄어 수익성과 건전성이 모두 좋아지고 있다. ●“아예 현지 은행을 사겠다” 지난 2004년 중국 칭다오은행을 인수했던 하나은행은 한국동포의 상권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중국 동북3성 지역의 현지 은행들을 몇 곳 인수할 계획이다. 또 미국의 소규모 은행 가운데 동남아 국적의 은행을 인수한다는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인도, 파키스탄, 두바이 지역은 제휴나 간접 투자로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하나은행 김종열 행장은 “현재 전체 자산 중 1% 수준인 국외 점포 자산을 중·장기적으로 5%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점포망이 가장 발달된 외환은행 인수를 놓고 하나은행과 경쟁하고 있는 국민은행도 해외진출 의지가 확고하다. 국내영업에 비해 해외영업이 눈에 띄게 떨어지는 국민은행은 최인규 전략본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해외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중이다. 최 본부장은 “아시아를 거점으로 하는 글로벌 뱅크가 되기 위해 어떤 지역을 공략해야 할지, 사업 모델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정원 행장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베트남 및 카자흐스탄 등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것”이라면서 “소수의 한국 간부를 파견하고 다수의 현지인을 고용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합 신한은행의 신상훈 행장은 “지점 개설보다는 현지 은행과 제휴하거나 지분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해외 진출을 강조해 왔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과 합쳐지면서 해외점포가 16개로 늘어 우리은행을 제치고 해외점포수 2위 은행이 됐다. ●IB도 해외로 눈 돌린다. 국내 부동산 개발 등을 위한 소규모 금융주선에 머물렀던 시중은행의 IB 업무도 해외 영토확장을 꾀하고 있다.PF, 기업 인수·합병(M&A) 주선, 증권발행 주선, 투자자문 등의 업무를 통칭하는 IB 사업은 엄청난 수수료와 대출이자, 배당금, 각종 개발이익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선진 금융기법이다. 97명의 대규모 IB사업단을 거느리고 있는가 하면 올 상반기에 홍콩에 IB센터를 개설하는 우리은행은 이달 말에 중국 상하이에서 주상복합건물 건설을 위한 PF 계약을 체결한다. 우리은행 IB사업단 이문훈 부장은 “단순한 자본 참여나 대출 등 ‘무늬만 IB’가 아닌 직접 주간사로 나서 신디케이트티드론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초기 금융컨설팅부터 자금조달까지 전체 사업을 총괄하는 ‘제대로 된 IB’를 해외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1억달러 규모의 카자흐스탄 아파트단지 건설,6억 2000만달러 규모의 아제르바이잔 발전소 건설 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 국내 IB사업의 최강자인 산업은행은 지난해 오만에서 세계 40여개 은행과의 경쟁 끝에 총사업비 11억달러의 화학공장 건설 금융 주선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에도 베트남 호찌민시 도로건설 및 신도시개발사업 PF를 추진중이다. 산업은행 프로젝트파이낸스실 최종국 차장은 “그동안은 국내 은행의 신용도가 세계적인 은행보다 떨어져 자금 조달 측면에서 불리했고, 경험도 없어 해외로 눈을 돌리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국내 은행들도 노하우가 축적된 데다 자금력도 넉넉해져 해외로 도전할 만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베리타스·한국법학교육원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자료해석 고급편-보이지 않는 자료의 이해 보이지 않는 자료의 이해는 3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전체의 평균으로 주어지지 않은 자료의 값을 추정하는 경우. 예)고졸과 대졸 이상의 취업률만을 표현하고 전체 취업률을 제시하면, 여기서 수치구조를 분석하여 중졸 이하의 취업률을 알아낼 수 있다. 둘째, 자료의 일부를 알 수 없는 경우. 예)자료의 일부분이 공란으로 주어져 있을 때 나머지 수치를 이용하여 빈 곳의 수치를 파악해야 한다. 셋째, 대체자료를 이용하여 그 값을 유추하는 경우. 고급 편에서는 세 번째 경우를 다루도록 한다. (문제)다음은 국내 M&A(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자문을 담당하는 국내외 금융기관의 실적을 나타낸 자료이다. 이로부터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을 고르면? (1)2005년 실적 순위가 가장 많이 상승한 곳은 산업은행이다. (2)2005년 삼성증권의 M&A 자문시장 점유율(실적 기준)은 2004년과 2003년에 비해 크게 하락하였다. (3)모건스탠리의 2004년 실적은 전년에 비해 60% 이상 감소했지만 2005년에는 전년 대비 150% 이상 증가했다. (4)매년 실적 순위가 상승하고 있는 기관은 UBS뿐이다. (5)2005년 10위권 안에 들면서 3년 연속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기관은 5곳에 불과하다. 정답:(3) (해설) (1)산업은행이 2004년 등외에서 3위로 가장 많이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리만브라더스도 등외에서 5위로 진입한다. 등외의 수치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것의 증가율이 가장 큰지는 파악할 수 없다. (2)M&A 자문실적이 하락한 것은 맞으나 자문시장의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규모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전체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점유율은 하락했다고 볼 수 없다. (3)모건스탠리의 2004년 실적은 알 수 없고 다만 순위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3위였던 삼성증권의 실적을 통해 판단한다면 2005년 모건스탠리의 실적에 비해 삼성증권의 실적은 60% 이상 하락했다. 2004년 4위인 모건스탠리의 값은 그보다 더 작았을 것이므로 60% 이상 하락했다고 할 수 있다. 후반부의 내용도 같은 방식으로 파악한다. (4)PWC도 매년 순위가 상승했으므로 옳지 않다. (5)3년 연속 10위권을 유지한 기관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JP모건, 삼성증권의 4곳뿐이므로 틀리다. 출제: 이승일 에듀PSAT 연구소 소장
  • 대우조선해양 사장 남상태씨

    대우조선해양은 7일 정기주총과 이사회를 열고 정성립 사장의 후임으로 남상태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을 3년 임기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1950년생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9년 대우조선에 입사, 기획·재무담당 전무를 거쳐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일해왔다. 대우조선 이사회는 새로 선임된 남상태 사장, 김동각 경영지원본부장(전무), 이영만 기술본부장(상무), 허종욱(산업은행 이사)·하종인(전북은행 상근감사위원)·김홍진(상은리스 자금부장)·김형태(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교수) 이사에 기존 정동수(전 환경부 차관) 이사를 더해 8명으로 지난해보다 1명 늘어났다.
  • 대우건설 인수전 점화

    대우건설 인수전 점화

    건설업계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대우건설의 다음달 본입찰을 겨냥한 참여 기업들의 인수전에 불이 붙었다. 매각자금이 지난해 진로를 능가하는 최대 4조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참여 기업들의 ‘전주(錢主) 껴안기’가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만일에 대비 예비후보까지 선정 6일 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최종입찰 대상자로 선정된 6개 ‘전략적 투자자’는 프라임·한화·유진·두산·금호아시아나·삼환(예비입찰 신청순) 등이다.6개 기업은 7일부터 14일까지 하루씩 순서대로 대우건설을 방문, 회계·계약장부 등을 검토한다.30일까지 3차례 실사를 한 뒤 다음달 10일부터 본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자산관리공사(지분 44.36%) 등 ‘공동지분매각단’(채권단)이 내놓은 대우건설 지분은 ‘50%+1주∼72.11%’로, 인수액이 최대 4조 5000억원(주당 1만 5000원 산출)에 이른다. 지난해 하이트가 진로를 인수할 때 기업매각 시장에서 최고가인 3조 4000억원을 뛰어넘는다.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규모가 워낙 커 우선협상대상자 1곳을 선정하고 만일에 대비해 예비협상자 1∼2곳을 더 뽑을 방침”이라면서 “인수가격 외에 자금동원력, 재무구조, 시너지 효과, 고용승계 조건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 동원이 최대 변수 인수전의 최대 변수는 역시 자금동원력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산업 소유의 금호타이어 주식(3400억원)을 금호석유화학에 매각, 자체 자금을 보완했다. 산업은행과 군인공제회의 협조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최고 예비입찰가 3조 3000억원을 써내 자금력을 과시한 유진그룹은 이미 신한·하나은행으로부터 1조 5000억원을 지원받기로 약정을 맺었다. 계열사 드림씨티방송의 지분 매각 등으로 자체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도 1조 1000억원으로 알려졌다. 프라임산업은 농협·우리은행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프라임저축은행 등 계열사의 자체 자금이 1조원을 넘는다. 두산은 탐색중이고, 한화는 국민은행과, 삼환은 외환은행 등과 인수자금 협조를 접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공제회 관계자는 “금호·두산·유진 등 3개 기업과 컨소시엄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최종 1곳에 지원 가능한 5000억원 전액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직원공제회도 금호·두산·유진·프라임 등 4곳에 대해 자금지원을 심사하고 있다. ●2∼3년 뒤 재매물 등장 우려 금호아시아나는 건설업체 금호산업과의 합병을 통해 재계 10위 진입을 벼르고 있다. 두산은 한국중공업-대우종합기계-고려산업으로 이어지는 인수·합병(M&A)경험을 무기로 삼는다. 한화(한화건설)·유진(유진레미콘 등)·프라임(테크노마트 등)·삼환(삼환기업) 등도 건설 노하우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참여 기업 대부분이 동원 가능한 자체자금이 많아야 1조 5000억원 수준이고, 나머지 3조원은 ‘재무적 투자자’나 차입금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다. 대신증권 조윤호 연구원은 “후보 중에는 인수후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50%+1주만 놔두고 나머지 지분에 대해 차입금 상환을 위해 재매각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3년 뒤 헐값에 재매물로 나올 때를 노려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현대건설 사장후보 ‘3파전’

    현대건설 후임 사장 후보가 이종수 경영지원본부장, 김종학 서산개발사업단장, 김중겸 건축사업본부장 등 전무 3명으로 압축됐다. 2일 현대건설 채권단에 따르면 외환은행, 산업은행,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현대증권 등 5개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경영진 추천위원회는 후임 사장 후보로 3명을 확정한 뒤 이들에게 개별통보했다. 추천위는 현대건설 내부인사를 승진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뒤 최근 사장 적임자를 각각 추천했다. 운영위는 3명을 대상으로 오는 6일 인터뷰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어 14일로 예정된 현대건설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KT·한전등 4곳 출총제 제외

    KT·한전등 4곳 출총제 제외

    ‘총수 없는 기업집단’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출자기관이 30% 이상의 지분을 가진 기업을 살 때에는 출총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은 2일 당정협의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합의했다. ●‘알짜기업’ 인수에 대기업 참여 기회 확대 개정안은 먼저 총수 없는 기업집단에 대해서도 현재 출총제 졸업기준인 ‘소유지배 괴리도 25%포인트 및 의결권 승수 3배 이하’를 적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출총제의 적용을 받고 있는 KT와 철도공사, 다음달부터 출총제 적용을 받게 될 예정이었던 한국전력과 포스코 등 모두 4개 기업집단이 출총제에서 제외된다. 또 산업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정부출자기관이 3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출총제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미 출총제를 적용받는 기업집단들도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대우일렉트로닉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정밀 등 6개사 인수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졸업기준 가운데 하나인 지배구조 모범기준과 관련, 내부거래위원회 구성 요건을 현행 ‘4인 이상, 전원 사외이사’에서 ‘3인 이상,3분 2이상 사외이사’로 완화했다. 내부거래위의 심사 대상도 현행 10억원 이상의 내부거래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지주회사 설립 요건 완화는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추가검토 뒤 협의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안이 다음달 1일 출총제 대상 지정에 반영된다면 대상 기업집단은 현행 11개에서 13개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총액 6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26개 기업집단 가운데 기존 졸업기준을 충족시키는 9개에다 한전 등 4개가 추가로 빠지기 때문이다. ●재계·시민단체 상반된 반응 그동안 재계에서는 줄곧 출총제 폐지 또는 요건 완화를 주장해왔으며 이날 개정안은 요구를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재계에서는 자금력이 있는 그룹들이 출총제에 묶여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알짜기업들이 인수할 수 없게 됨으로써 국내자본과 외국자본간 역차별이 있다고 지적해왔다. 내부거래위 구성요건 완화도 지난달 1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건의한 내용과 같다. 공정위 채규하 기업집단팀장은 “지난해 4월 졸업기준을 만들어 1년 동안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총제의 기본틀을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대해 이해당사자인 재계와 시민단체의 반응은 엇갈린다. 재계는 예상보다 완화 수준이 낮았다는 불만을 보이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이제 출총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 양세영 기업정책팀장은 “일부 재계의 의견이 수용된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쉽다.”면서 “졸업기준을 다양화해 현행보다 쉽게 기업들이 출총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도록 건의했는데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은 “한마디로 이제 공정거래법에 의한 재벌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면서 “누구나 출총제가 폐지되거나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도 이 기준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부고]

    ●김명식(서울신문 제작국 부장)씨 빙부상 유상완(중부대 교수)씨 부친상 28일 충남 당진장례식장, 발인 2일 오전 9시 (041)355-7980●이종명(유니넷 회장)씨 별세 승환(미국 변호사)씨 부친상 현기용(소하치과의원 원장)신석호(신석호정신과 원장)박주현(한화 무역부 팀장)씨 빙부상 장정안(롯데쇼핑 차장)씨 시부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7시 (02)3410-6924●강명호(현대인재개발원 전문교수)명수(뎀코컨설팅 이사)명옥(전 국가인권위원회 국제협력담당관)씨 부친상 김세웅(외교통상부 외무관)씨 빙부상 28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일 오전 9시 (02)921-0899●김덕호(전 묵동초등학교 교장)씨 상배 광수(순천향대 교수)순미(충남대 〃)순경(순천향대 〃)씨 모친상 이한성(유니코USA 대표)씨 빙모상 2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2)3410-6919●방윤준(동양시스템즈 금융영업본부장)씨 부친상 28일 인하대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 (032)890-3196●서인식(전 산업은행 대구지점장)씨 별세 진철(아이티엠감리단 이사)상철(전 지엘씨코리아 대표)대철(서울아산병원, 진단방사선과 교수)씨 부친상 민영근(전 부산부곡여중 교장)씨 빙부상 김혜경(한국화가)씨 시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8시30분 (02)3010-2631●이택준(동명종합건설 현장소장)택규(보아테크 대표)씨 부친상 장순호(변호사)정상호(세명이앤티 대표)씨 빙부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일 오전 10시 (02)3010-2294
  • ‘힘있는’ 사외이사님

    올해도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는 ‘힘 있는 기관’의 전직 간부 등 호화 진용으로 짜여질 것으로 보인다.23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현대차는 다음달 10일 열릴 주주총회에 새 사외이사 후보로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조학국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추천했다. 현대차는 최근 협력업체에 대한 큰 폭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와 관련, 공정위의 조사를 앞두고 있어 관심을 끈다. 현대차는 지난해에도 계열사 현대모비스에서 오성환 전 공정위 상임위원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바 있다. 지배구조와 세금 문제가 복잡한 삼성그룹에는 국세청이나 법조인 출신이 많다.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과 김시형 전 산업은행 총재(삼성전기), 정귀호 전 대법관과 황재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삼성전자), 서상주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삼성물산) 등이 다시 추천됐다. 여기에 새로 윤동민 전 법무부 보호국장(삼성전자), 재정경제부 출신인 신호주 전 코스닥증권사장(에스원) 등이 가세했다. LG석유화학은 지난 1월 퇴임한 이기배 전 수원지검장을, 신세계건설은 감사원 사무차장을 지낸 박준 전 코트라(KOTRA) 감사를 각각 사외이사 후보로 내세웠다. 포스코는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에 대한 주총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본연의 임무가 대주주와 사내 이사진에 대한 경영감시인데, 자칫 회사의 애로점 해결에 동원될 수 있다는 오해가 나올 만하다.”고 꼬집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현대건설 경영정상화 이룬 이지송 사장

    현대건설 경영정상화 이룬 이지송 사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이 다음달 임기가 끝나면 사장직을 물러나겠다는 뜻을 17일 밝혔다. 이 사장은 이날 사내 인터넷망을 통해 “지난 3년 동안 경영정상화를 이룬 현대건설의 위상을 보며 자부심과 함께 많은 감회를 갖게 된다.”면서 “휴지조각 같았던 주식이 4만원대를 넘어 시가총액기준 건설업체 1위를 차지하고 부채비율도 200%에 진입해 건실한 회사가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태안 기업도시 선정, 이라크 미수금 회수 확정 등을 마무리지은 것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러한 성과를 모든 임직원들의 몫으로 돌렸다. 이 사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후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현대건설의 발전을 지켜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면서 “새로운 사장이 오기 전까지는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전무, 부사장 등을 지낸 뒤 회사를 떠났던 이 사장은 경인운하㈜ 사장, 포천 경복대 교수를 거쳐 2003년 3월 사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편 외환은행, 산업은행 등 채권금융기관들도 이 사장의 거취에 대해 논의해 왔으며 올해 최대 현안인 M&A를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사를 영입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채권금융기관은 후임 사장 선임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생각나눔] 韓銀·産銀 방만 경영? 열린 채용?

    ‘군(軍)필자 또는 면제자.’ 기업체나 금융기관, 공공기관의 채용공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격요건이다. 이 요건에 따르면 어떤 식으로라도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않은 ‘군미필’ 남성은 입사시험을 치를 수 없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처럼 고급공무원을 뽑는 국가고시 외에는 미필자가 응시할 만한 취업 시험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국가고시들이 미필자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합격한 뒤 입대해도 군법무관과 같은 나름대로의 보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인권위가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의 응시자격을 ‘군필자 또는 면제자’로 제한한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의견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무담임권 제한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국책은행 특유의 방만한 경영이다” 15일 금융권과 취업 관련 업체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기업이나 기관 가운데 한국은행과 산업은행만이 유일하게 미필자에게 채용시험 응시 기회를 주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 같은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 하물며 금융감독원과 신용보증기금까지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군필자 또는 면제자’로 자격을 제한한다. 이 때문에 ‘금융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군대 갔다 왔으면 수출입은행과 금감원을, 갔다오지 않았으면 한은과 산은을 노려라.”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한은과 산은의 ‘열린 채용(?)’에 대한 금융권의 시각은 곱지 않다. 공무원 조직도 아니면서 1970년대의 채용기준을 유지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담당자는 “인력운용이나 예산에서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미필자를 뽑는 것은 기업체나 시중은행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은과 산은에는 매년 3∼6명의 미필자가 합격한 뒤 곧바로 입대하고 있다. 한은은 군복무중 기본급의 50%인 80만원 정도를, 산은은 기본급 범위 내에서 90만원 정도를 매월 지급한다. 한은 관계자는 “월급은 액수가 적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서에 배치된 뒤 곧바로 입대하면 인력운용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고졸 응시생들 때문에 미필자에게도 기회를 줬다. 대신 군필자에게는 가산점을 부여했다. 그러나 남성 응시자들의 대부분이 군필 대졸자로 바뀌면서 미필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병역을 마친 인재들이 무궁무진한데 굳이 예산낭비가 예상되는 미필자를 뽑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평등한 채용방식이다” 그러나 비록 한은과 산은이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채용 관행을 답습한다손 치더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취업에 제한을 두는 것도 ‘차별’이기 때문이다. 미필자에게 응시기회를 주면 우수한 인재를 선점하는 효과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학력이나 연령제한 등 각종 차별이 없어지는 마당에 미필자의 응시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 역시 “매년 미필자가 합격하는 예는 극히 드물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진일보한 채용 방식을 문제삼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은과 산은이 과연 ‘채용의 평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왜 미필자를 제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인사담당자들은 한결같이 ‘관행’이라고 답했다. 더욱이 산은은 4년제 대졸 이상자만 뽑고 있어 ‘학력 차별’도 걷어내지 못한 상태다. 한은과 산은은 금융 고시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곳인 데다 병역 문제는 언제나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어서 두 기관의 미필자 채용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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