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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장하다! 오은선

    155㎝, 47㎏. 이 작고 가냘픈 여인이 세계 등반사에 한 획을 그었다. 산악인 오은선은 어제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하며, 지금까지 19명의 남성만이 획득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기록을 세계에서 여성 최초로 달성했다. 한국 첫 여성 원정대인 여성산악회가 1982년 히말라야 등정에 나선 이래 30년 한국 여성 등반사의 값진 쾌거다. 지난 2007년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6좌 완등 신화를 쓴 엄홍길에 이어 한국인 남녀 산악인이 세계 등반사의 정상에 나란히 등극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산악 강국의 면모를 만방에 떨치게 됐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 안나푸르나가 어떤 곳인가. 1999년 한국 여성 최초로 4좌를 완등한 뒤 하산길에 실종된 지현옥 대장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당시 막내대원이었던 오은선에게 험난하기로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뼛속 깊은 상처와 회한의 장소이다. 그랬기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오히려 더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다잡았을 것이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벌이던 고미영을 지난해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깊은 슬픔도 그의 지친 등을 떠미는 힘이 됐을 것이다. 오은선이 신이 허락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14좌 완등을 이뤄낸 데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강철 같은 의지, 강한 승부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몸무게의 절반에 가까운 배낭을 짊어진 채 12좌 무산소 등정을 해낼 수 있을 만큼 타고난 체력도 한몫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일이다. ‘작은 거인’ 오은선이 정복한 건 안나푸르나가 아니라 인간 한계이다. 그는 수년간 1년의 절반을 히말라야에서 보내며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불가능은 없다는 인간 본연의 희망을 보여줬다. 오은선 대장을 비롯한 일행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원한다.
  • [오은선 ‘히말라야 女帝’ 되다] 한국 여성 산악 도전사

    한국 여성산악인의 해외원정은 다른 나라들보다 10여년 늦은 1980년대 비로소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마카세코 나오코가 1974년 히말라야 마나슬루(8163m) 등정에 성공했다. 이어 다베이 준코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와 시샤팡마(8027m) 두 곳의 정상을 정복하면서 일본 여성들이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중 3곳을 등정했다. 한국여성산악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최초로 참여한 히말라야 등정은 1982년이었다. 선경산악회 람중히말(6986m) 원정대의 기형희(당시 26)·윤현옥(당시 24)이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여성은 남성원정대의 홍일점에 그쳤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최초 원정대는 한국매킨리원정대(6194m·대장 조희덕)였다. 1988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 도전한 일행 중 지현옥·김은숙·이연희가 정상을 밟았다. 히말라야 8000m급 여성 도전은 1990년대 들어 시작된다. 1984년에 김영자(당시 31)가 안나푸르나(8091m)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산길에 카메라를 잃어버려 공인받지 못했다. 여성 히말라야 도전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은 199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서원대 출신 고(故) 지현옥. 그는 1997년 가셰르브룸 1봉(8068m)을 처음으로 올랐다. 이듬해에는 여성 세계 최초로 가셰르브룸 2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에 성공하는 쾌거를 일궜다. 1999년에는 안나푸르나 정복으로 8000m 4좌를 완등한 한국 최초의 여성 등반가로 기록됐다. 하지만 그는 하산길에 안나푸르나에 묻혔다. 2000년대 들어 여성들의 활동 영역은 히말라야 8000m 단독 등정, 거벽 등반 등 보다 다양해졌다. 2003년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여성 최초로 매킨리 단독 등반에 성공했다. 그는 7대륙 최고봉 등반도 비슷한 시기에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6년 말부터는 고(故) 고미영과 오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 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 산행/함혜리 논설위원

    산악회를 따라 몇 해 전 겨울에 소백산에 간 적이 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아이젠이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고생을 제대로 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산 너머에서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상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잠시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찌나 긴장하면서 산을 내려왔던지 온몸의 근육이 뭉쳐서 며칠 동안 고생했다. 그날 이후로 겨울 산행은 아예 하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 산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겨울이 제격”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같은 산이라도 겨울에 가 보면 나뭇잎이 우거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능선 위로 솜털처럼 줄지어 선 나목들이 이채롭다. 흰 눈이 쌓인 산을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기분도 색다르다. 칼바람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은 또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겨울 산의 감동을 놓치고 사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이 다 가기 전에 장비 제대로 갖추고 겨울 산행에 재도전해 볼 참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아이덴티티…나는 누구인가

    아이덴티티…나는 누구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반드시 여러 성격의 공동체에 중복해 속해 있다. 예컨대 ‘우리 중의 누군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남성으로, 아마도 단군의 자손으로 스스로 여기고 있을 것이며, 경상도에 살고 있거나 그곳 출신이고, 개신교 신자이며, 김씨 성(姓)을 갖고 산다. 정치적으로는 ○○당의 지지자이며, 연일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사회단체와 생태계 파괴 정책에 저항하는 환경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5인으로 꾸려진 기획마케팅팀의 비교적 성실한 팀장이며, 주말이 되면 한마음산악회 회원으로 근처의 산을 찾는 등산애호가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집단에 속한 그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주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강조하며 배워 왔던 공동체 의식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특정한 공동체 성원으로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고 연대감이 풍부해지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의 만족감과 공동체의 소속감도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때다. 인도 벵골 출신으로 1998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76)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이상환·김지현 옮김, 바이북스 펴냄)을 통해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인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집단의 정체성에 기초한 인식은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얘기다. 그는 끊임없이 정체성과 폭력의 상관 관계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부룬디, 팔레스타인, 수단 등 20세기 폭력과 전쟁의 야만이 휩쓴 세계 분쟁 지역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시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정치경제학적 혜안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센 교수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량 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사는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한 후투족’의 예를 들며, 그 사람은 자신의 수많은 정체성 중 후투족으로만 바라보도록 압력을 받고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투치족’을 살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특정 정체성에 근거한 분파주의적 증오는 이렇게 야만적으로 조작돼 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던지는 비판은 이른바 ‘문명 충돌론’을 겨눈다. 문명 충돌론은 1990년대 중반 발표된 뒤 9·11 테러 등을 거치며 현대 문명 담론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이론이다. 문명 충돌론은 세계를 서구권, 이슬람권, 힌두권, 중화권 등으로 단순화시켜 문명 간 갈등과 충돌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후 이 문명 충돌론은 많은 비판 이론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세계 지성계에서 정설처럼 간주되고 있다. 센 교수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방식을 배제한 채 ‘문명의 구성원’이라는 단일 집단의 정체성으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컨대 헌팅턴은 인도를 힌두문명권으로 분류했지만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1억 4500만명으로 헌팅턴이 이슬람권으로 분류한 거의 모든 나라보다 훨씬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범주의 단순화’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이론이기에 이에 대한 옹호론이나 비판론 모두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천착해온 센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을 통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학문이라면 경제학과 철학, 정치학, 외교학, 사회복지학 등이 모두 서로 별개가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도시와 산] (36) 담양 산성산

    [도시와 산] (36) 담양 산성산

    전남 담양군 금성면 산성산(山城山·603m)은 추풍령에서 소백산맥과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의 한 자락이다. 노령산맥은 전남에 이르러 두 갈래로 나뉘는데 남쪽으로는 산성산을 비롯, 추월산·병풍산을 이룬다. 다른 하나는 백암산·입암산·불갑산 등 서해 쪽으로 뻗어나간다. 산성산은 담양과 전북 순창의 경계를 이루며 강천산·회문산 등과 맞닿아 있다. 산성산은 그 이름처럼 옛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성의 총 길이는 7.3㎞에 이른다. 산성의 이름이 ‘금성산성’이라서 외지 사람들에게는 ‘금성산’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 산을 에두르고 있는 금성산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축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적 제353호로 지정된 이 산성은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구 침입에 대비해 개축됐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에 처음 등장한다. 임진왜란 이후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불린다. ●전란의 보루, 금성산성 조선조 중기에는 성내에 130여가구가 살았으며, 이웃한 담양·순창 등지에서 거둬들인 군량미가 1만 2000~2만여석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호남지역의 군사 요충지로 자리 잡으면서 숱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유재란 때는 왜군과의 공방전으로 남문 앞 ‘이천골(二千骨)’이란 협곡에 아군과 적군의 시체 2000여구가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골 곡(谷)자’ 대신 ‘뼈 골(骨)자’를 쓴다. 1894년 갑오 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이 이곳을 한때 점령했다.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은 금성산성과 북쪽으로 이웃한 순창군 쌍치면 피노마을에서 체포되기 이전까지 이곳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했다. 농민전쟁 당시 성내의 민가와 관아·대장청 등 모든 시설이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완전히 소실되고 그 흔적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는 미처 북으로 후퇴하지 못한 빨치산의 은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산성산이 이처럼 전투의 거점으로 자리한 것은 봉우리와 협곡으로 이뤄진 산세 때문이다. 금성산성은 외곽이 30m가 넘는 수직 바위로 둘러싸여 전략적 요충지로 손색이 없는 지형이다. 주변에는 성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은 산이 없어 천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있다. 항아리형 분지로서, 전체 면적은 120여만㎡(36만여평)이다. 외성의 둘레는 6486m, 내성은 859m이다. 이곳에는 외성·내성·옹성·성문·망대 등을 비롯해 관아·사찰·민가·우물터 등이 남아 있다. 외적의 침입 등으로부터 장기 농성(城)과 방어가 쉬운 입지 조건을 갖췄다. 담양문화원 고재종(53) 사무국장은 “금성산성은 예부터 이 고을을 외적으로부터 지켜낸 역사적 현장”이라며 “선조의 피땀이 배어 있는 이곳 일대를 ‘호국 안보’의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성에 오르면 비길 데 없는 풍광 산성산은 광주광역시에서 차량으로 30분 거리, 담양읍으로부터는 북쪽으로 6㎞쯤 떨어져 있다. 도시민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산행을 즐길 수 있을 만큼 가깝고 코스도 쉽다. 그래서 주말이면 가벼운 복장 차림의 등산객들로 늘 붐빈다. 금성면 원율리 담양온천지구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2㎞쯤 오르면 외남문(보국문)이 우뚝 솟아 있다. 외남문에서 좌우에 있는 봉우리를 따라 정상 일대 분지를 감싸는 포곡형 산성이다. 외남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우진각 지붕(전통 한옥의 한 형태로 4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을 얹은 누각이다. 이곳으로부터 50m쯤 더 오르면 내남문(충용문)이 나타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를 띤다. 성문 오른쪽은 전란 등으로 죽어간 민초들의 원혼이 잠든 이천골이 아스라이 내려다 보인다. 담양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지리산과 무등산도 지척이다. 왼쪽으론 담양호가 초겨울 반짝 햇살에 수정처럼 빛을 발한다. 드넓은 호수 뒤로는 추월산이 서남쪽으로 줄기를 뻗어가면서 ‘죽향’ 담양골을 감싸 안는다. 산성산과 담양호를 사이에 둔 추월산(秋月山)은 가을밤 보름달이 산꼭대기에 걸려 좀체 기울어지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늦가을 산성산과 추월산의 단풍 그림자가 담양호에 드리워지면서 원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절경을 연출한다. 등산코스는 남문~동문~북문~서문으로 이어지는 성 전체를 둘러보더라도 4시간쯤이면 족하다. 산성은 남문~시루봉~동문~운대봉~북문~서문~철마봉~노적봉~남문이 일주 코스다. 노약자를 동반할 경우 남문∼보국사터∼서문∼철마봉∼남문에 이르는 1시간 남짓한 구간을 걷는 것도 좋다. 산성에서 만난 이성숙(45·전북 정읍시)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금성산성을 처음 접하고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며 “등산 거리도 짧고 많은 역사 유적과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호수, 들판 등이 너무 멋있다.”고 말했다. 남문에서 담양호 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에 위치한 서문은 옹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겹성)으로 축성됐다. 평석으로 쌓은 옹성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유적이기도 하다. 담양에 오면 조선조 시가문화권을 놓치면 안 된다. 담양읍에서 남면 광주호 쪽으로 이어진 국도변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다. 주변엔 소쇄원, 환벽당, 식영정, 송강정 등 조선조 가사문학 유적지가 산재한다. 읍내에는 한국대나무박물관도 있다. 담양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금성산성 복원 어디까지 1994년 착수… 내년까지 100억 투입 성곽 7㎞ 달해… 장기사업으로 추진 금성산성의 발견과 복원은 전남 담양의 향토문화연구회 이해섭(80) 회장의 노력이 컸다. 그는 20여년 전 마을 어른들로부터 “산성산 정상에 성곽이 있다.”는 말을 듣고 답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산성산은 지금처럼 등산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상에 접근하려면 잡목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바위절벽을 기어올라야만 했다. 어렵게 도착한 산성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곳곳에 우물터와 절터 등이 있고, 맷돌 등 가재도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는 담양산악회를 만들고 회원들과 공동 답사에 나섰다. 1년에 수차례 가파른 꼭대기를 오르는 등 현장을 샅샅이 뒤졌다. 산성의 내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학자를 찾아다녔다. 인근 장성의 입암산성과 진주산성 등도 둘러봤다. 등산객과 산악회 등을 상대로 산성산의 존재를 알리는 유인물도 만들어 나눠줬다. 그는 관련 자료와 성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내 담양군에 복원을 건의했다. 또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2000년 초에 ‘금성산성’이란 책자도 발간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전남도와 담양군 등은 1994년부터 성곽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내년까지 100여억원을 들여 성문과 문루 등을 복원한다. 현재까지 복원된 시설물은 외남문·내남문·서문·동문 등 주요 관문이다. 군은 7㎞가 넘는 성곽 전체를 복원하기엔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작업도 어려워 장기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담양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길섶에서] 팔마(八馬) /이춘규 논설위원

    전라남도 광양·순천·여수·보성 지역을 난생 처음으로 돌아봤다. 여기저기서 시간의 흐름이 멈춰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 남도지방. 특히 순천시에는 팔마라는 이름이 아주 많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초·중·고교와 체육관, 산악회는 물론 거리와 각종 회사까지 ‘팔마(八馬)’를 사용했다. 팔마는 전별금과 관련이 있다. 고려말엔 지방수령이 임무를 마치고 개성으로 돌아가면 직책에 따라 말을 6~8마리 바치는 헌마(獻馬)문화가 있었다. 전별금이다. 그런데 한 청백리는 주민들이 보내 준 7마리의 말과 도중에 태어난 새끼까지 8마리를 돌려보냈다. 주민들은 감격해 팔마비를 세워 덕을 기렸고 이후 헌마문화가 사라졌다는 요지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관리들의 수탈은 끊이지 않았다. 재임 중은 물론 물러갈 때에도 전별금 등의 형식으로 지역민의 고혈을 짜내 원성을 샀다. 지금도 공직사회에서는 전별금 등 관리들의 비위소식이 종종 터져나온다. 팔마를 돌려보냈던 청백리 정신을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도시와 산] 군포 수리산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를 누가 수리산 자락에 조성했을까. 매우 공평한 결정이라고 여길 만하기 때문이다. 1기 신도시 5곳 가운데 하나인 산본은 분당, 평촌 등 다른 신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떨어져 주민들의 실망감이 적지 않다. 대신 이곳 주민들은 울창한 숲과 신선한 공기를 뿜어주는 진산을 선물 받았다. 산본신도시를 병풍처럼 감싸 안고 안양과 안산에 걸쳐 있는 수리산은 3개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도심 속 ‘녹색섬’이다. 인근 도시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연평균 140만명이 찾는다.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은 한남정맥의 한줄기로,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 오른 듯한 산세를 지녔다. 사시사철 숲이 울창하고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무수한 굴곡을 이루면서 뻗어 있다. 계곡을 따라 곳곳에 산림욕장이 조성돼 있으며 약수터와 명상의 숲, 개나리 숲, 한마음 놀이터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수리산이란 이름은 우선 산본이나 군포시에서 보면 독수리를 닮아서 지어졌다고 한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를 보면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신라 시대의 거찰인 수리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한다. ●연평균 140만명 찾는 수도권 남부 진산 수리산에는 군포시와 안양시가 선정한 아름다운 8경 가운데 4곳이 있을 정도로 두 지역주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최고봉인 태을봉(489m)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산신제가 행해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 오고 있다. 태을봉을 중심으로 슬기봉(451.5m), 관모봉(426.2m), 수암봉(395m)이 연결돼 있다. 맑은 날 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 인천 송도신도시와 수원시가지까지 볼 수 있다. 일출시 산 그림자가 태을(太乙) 형상을 연출해 군포의 제1경으로 꼽힌다. ‘태을’은 도교의 천제(天帝)를 지칭하지만 십간의 하나로 부귀의 근원으로 보기도 했다. 군포시의 제2경인 수리사는 수리산 거룡봉 해발 225m 지점인 속달동에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으며 전성기에는 대웅전 외에도 36동의 건물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있는 거찰이었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전소됐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해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다. 군포시 속달동 ‘구렁터 당숲’은 음력 10월1일이면 이틀간 동제(洞祭)가 치러지는 전형적인 마을 숲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정래륜이 조성했으며 100~300년가량 된 고목들이 우거져 2003년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리산 안양 9동 ‘담배촌’에 조성된 최경환 성지(안양 제5경)는 2000년 순례지로 지정됐다. 최경환(1805~1839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1821~1861년)의 아버지로 담배촌에 정착해 천주 신앙을 전파하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했다. 전국 각지에서 연간 3만여명의 천주교 신도들이 찾는다. 병목안 석탑(안양 제7경)은 병목처럼 마을 초입이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목안 삼거리 부근 채석장 자리에 대규모 절개지 사면을 이용해 길이 65m, 넓이 95m의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폭포가 만들어졌다. 수리산은 편리한 교통망 때문에 군포·안양·안산뿐 아니라 인근 수원·과천·의왕 등 수도권 주민들로부터 각광 받고 있다. 전철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 금정역, 명학역 등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 정도면 등산로에 닿는다. 3개 시에 걸쳐 있는 만큼 코스도 다양하다. ▲안양소방서~충혼탑~팔각정~능선삼거리~관모봉~태을봉~슬기봉~용진사~한양8단지 ▲안양 병목안삼거리~능선삼거리~관모동~태을봉 ▲성결대정류장~상록수약수~관모봉~태을봉 ▲안산 수암파출소~수암봉약수~수암봉~335봉~창박골재~병목안삼거리 등으로 크게 나뉜다. 코스별로 1시간30분에서 2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전철 산본·금정역에서 걸어서 20분 수원 세류초등학교 32회 산악회장 이필현(49·회사원)씨는 “산악회원들과 수리산을 자주 찾는데, 늘어선 봉우리들의 자태가 빼어나고 곳곳에 바위길을 가진 능선이 변화 있게 이어져 도심에 있는 산 가운데 몇 안 되는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고 소개했다. 특히 울창한 수림으로 조망이 좋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의 산세가 험하지 않아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나 여성들에게 큰 부담이 없다. 산행 초입부터 송림이 울창해 상쾌한 느낌을 준다. 자외선 노출이 우려돼 야외활동을 꺼리는 여성들에게 수리산은 건강도 챙기고 취미생활도 살려주는 건강코스이다. 얼마전 수리산을 처음 다녀온 주부 최경민(48·수원시 영통동)씨는 “모처럼의 산행이어서 힘들지 않을까 겁부터 났으나 관모봉까지 30여분간을 빼곤 별 어려움 없이 산을 탈 수 있었다.”며 “명상의 숲 등 쉴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여성들에겐 안성맞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수리산 셀프카메라 군포 수리산이 지난 7월16일 경기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1971년 지정된 경기 성남시 남한산성 일대, 2005년 가평군 연인산 일대에 이어 3번째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수리산 면적 6.97㎢ 가운데 군포시가 4.3㎢(속달동)로 가장 넓고 안양시 안양동 관내 2.55㎢,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관내 0.12㎢ 등이다. 수리산은 전체 면적 가운데 75%가 도유지, 4%가 국유지, 16%가 사유지로 이뤄져 있다. 경기도는 2006년 10월부터 제3도립공원 대상지를 물색했다. 공모를 통해 신청된 도내 각 지역의 산을 대상으로 타당성 조사를 벌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수리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소요산, 청계산, 명성산, 철마산 등 쟁쟁한 경쟁지를 물리친 것은 수리산이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고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지역 주민들의 열기도 한몫했다. 수리산은 자연 생태계 측면에서도 한국 특산종인 변산바람꽃, 맹꽁이, 왕은점표범나비, 고려집게벌레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다. 박쥐능선(태을봉~슬기봉)과 수리사, 속달동 바람고개 주변은 자연 경관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는 이달부터 도립공원 조성을 위한 설계에 들어간 뒤 내년 상반기부터 2011년 말까지 116억원을 들여 이곳에 주차장과 화장실, 방문자 센터, 등산로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노재영 군포시장은“수리산은 수도권 남부주민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도심 녹색공간”이라며 “도비를 지원받아 ‘자연을 지키며 숲을 배우는 공원’이라는 컨셉트에 맞는 도립공원으로 꾸며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박종희 의원직 상실

    박종희 의원직 상실

    사전선거운동과 기부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박종희(49·수원 장안) 의원에게 당선무효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의원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돼 당선무효 처리된 18대 의원은 모두 14명으로 늘었다. 박 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 공천 심사 때 시의원 후보에게서 2000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2007년 산악회 야유회에서 명함을 돌리고 240여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사전 선거운동만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당원협의회 간부 등을 동원해 범행에 공모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피고인은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담은 표현물 배포를 제한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조항은 국민 전체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스포츠 클라이머 김자인 “홀드에 매달릴때가 가장 행복”

    지난달 4일 중국 칭하이에서 열린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 난이도 경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김자인 선수. 키 1m52, 몸무게 43kg의 작은 덩치지만 아시아 여자 선수로는 역대 최고의 순위로 올라 아시아랭킹 1위, 세계랭킹 6위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높은 곳에서 모든 잡념을 잊고 눈앞의 홀드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이라고 말한 그녀는 지금도 훈련에 열중이다. 오는 5일에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그녀를 만나 보았다. ● 클라이밍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부모님의 영향이 가장 컸다. 산악회 활동을 통해 결혼한 부모님 슬하에 두 오빠마저 클라이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회를 위해 비행기를 자주 타는 오빠들이 부러워서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클라이밍이 나의 전부가 됐다. ● 스포츠 클라이밍 경기에 대해서? 스포츠 클라이밍은 기본적으로 난이도, 볼더링, 속도로 나뉜다. 난이도와 속도는 기본적으로 줄을 묶고 하지만 볼더링은 5m 이내의 낮은 벽에서 줄을 묶지 않은 채로 오르는 경기다. 난이도는 4∼6개의 다른 루트를 주어진 시간 내에 누가 많이 오르느냐를 따지는 경기고, 속도는 규격화 되어있는 루트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 본인의 주종목은? 저의 주종목은 난이도다.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 속도경기가 부담스럽고 나에게 맞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볼더링 대회에도 자주 나간다. 최근 난이도 대회 스타일 자체가 볼더링 스타일로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볼더링도 재미있게 하고 있다. ● 연습은 하루 몇 시간 정도? 연습을 하루에 4∼5시간 정도 하고 있다. 큰 오빠가 코치 겸 파트너로 항상 같이 훈련한다. 지금은 대회 시즌이라 컨디션 조절 위주로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 여자로서 클라이밍이 힘들진 않나? 여자로서 클라이밍 운동 자체가 힘들기보단 운동으로 인해 몸에 근육이 생기는 것이 사춘기 때 가장 싫었다. 지금은 그런 걸로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다. 홀드에 매달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 ● 가장 기억에 남은 경기는? 지난달 7월 중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다. 2위를 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꿈에 그려 왔던 결승전 루트를 끝까지 완등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클라이밍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스페인 출신의 남자선수 라몬 줄리앙 선수다. 그 선수는 키가 1m59의 작은 키로 멋진 등반 스타일을 갖고 있고 세계대회에서 랭킹 1위를 차지할 만큼 능력도 뛰어나다. 나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 다음 경기에 임하는 각오? 다음 경기는 오는 5일에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다. 난이도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전 대회에서 2위를 했기 때문에 이번엔 꼭 우승을 목표로 하겠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두가지 목표가 있다. 첫 번째는 스포츠 클라이머로서 선수생활을 꾸준히 재미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리고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스포츠 클라이밍을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싶다. <김자인 프로필> ▶생년월일: 1988년 9월 11일 ▶체격: 1m 52, 43kg ▶소속팀: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학력: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3학년 재학 ▶주요경력: 2001∼2009년 전국 등반경기 선수권대회 9회 우승, 2002년 아시안 주니어 X-게임(태국) 우승, 아시안 유스 챔피언십 우승, 2003∼2009년 노스페이스컵 스포츠클라이밍대회 10회 우승, 2004∼2008년 IFSC 아시안 챔피언십 5연패, 2005년 월드게임(독일) 4위, 환타지움 빌딩(서울 대학로) 등반, 두산 빌딩(서울 논현동) 등반, 2007년 IFSC 클라이밍 월드컵(벨기에) 3위, IFSC 클라이밍 월드컵(일본) 4위, 2009년 IFSC 클라이밍 월드컵(일본) 2위, 2009년 IFSC 세계선수권대회 난이도 2위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철녀’ 고미영 영원히 산의 품으로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6m)를 등정 뒤 내려오다 실족해 숨진 여성 산악인 고미영(42·코오롱스포츠)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노익상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21일 서울 을지로 국립의료원에서 열린 영결식 조사(弔辭)를 통해 “고인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면서 “당신의 삶인 산의 품에 영원히 안긴 고인이여 고이 잠드소서.”라며 영면을 빌었다. 최홍건 한국산악회장은 애도사에서 “고미영은 불나비와 같았다. 등잔불에 온 몸을 다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며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 등정에 나섰던 고인의 도전 정신을 기렸다. 배경미 한국여성산악회장은 헌시를 통해 “당신은 꺾이지 않은 순도 100%의 열정으로 우리 주변에서 뛰어 놀던 산의 정령이었다.”며 추모했다. 가족 대표로 나선 고인의 두 조카는 애도사에서 “생전에 이모님께서 딸꾹질을 참 특이하게 해 많이 웃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마저 보고 싶어요.”라면서 “지금도 이모가 산을 타고 있다고 생각할래요. 그래야 이모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라며 울먹여 참석자들의 울음을 자아 냈다. 헌화 순서에서는 낭가파르바트를 포함해 고인과 함께 히말라야 고봉 10개를 올랐던 김재수 원정대장이 고인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표시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나에게 초록빛 꿈을 준 사람”이라며 운을 뗀 김 대장은 헌화 순서가 되자 목이 멘 채 “나 싫어. 안해.”라고 괴로워한 뒤 못내 꽃을 바치면서 “미영아, 고생 많이 했으니 이제 편히 쉬어, 정말 미안해.”라며 울먹였다. 이날 화장된 유골은 절반으로 나눠 고향인 전북 부안의 선산에 안장되고, 나머지 절반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 경쟁을 벌인 여성산악인 오은선(43·블랙야크) 대장과 김재수 대장에게 넘겨져 고인이 오르지 못한 히말라야 3개 봉에 뿌려진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고미영씨 사고로 본 한국 고봉등정] 석달새 네차례 高峰 등정… 기록경쟁이 ‘무리’ 불렀다

    [고미영씨 사고로 본 한국 고봉등정] 석달새 네차례 高峰 등정… 기록경쟁이 ‘무리’ 불렀다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한국 고봉등정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여기에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희망이 있는가 하면 스폰서 등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 위해 강행군도 감내해야 하는 절박감도 있다. 반대로 스폰서가 있기에 고봉등정이 가능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의 꿈인 고봉 등정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 등을 생각해 본다. 지난해 8월1일 히말라야 K2봉에 오른 뒤 하산하던 도중 한국인 산악대원 황동진 대장은 동료 2명과 함께 추락사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황 대장 일행은 눈사태 때문에 얼음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2004년 5월에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박무택 대장 등 3명이 정상을 정복한 뒤 하산하다 해발 8700m 부근에서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발생한 산악인 고미영씨의 사망을 포함하면 2000년 이후 8000m 이상의 고봉을 등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는 모두 5번이며, 7명이 숨졌다. 산악인들은 고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고봉등정의 속도전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고봉 등정에는 적응과정이 필요한데 짧은 주기로 등반을 하면 정상 과정을 생략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한 산악회 간부는 “현재 14좌 완등경쟁을 벌이는 해외의 여성 산악인들은 겔린데 칼텐브루너(39·오스트리아),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이 10~15년의 기간 동안 한해 등정하는 고봉은 1~2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고씨는 최근 2년간 한해에 무려 3~4개의 고봉 정복에 나섰다. 남성 산악인의 경우 알피니스트(고봉 등정 산악인)가 연간 오를 수 있는 8000m봉의 한계점을 최대 4개 정도로 본다. 1년에 평균 2개의 고봉을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서울산악연맹 서우석 안전대책위원장은 “세계 첫 14봉 완등자인 라인홀트 메스너 역시 한 시즌(1년)에 3개봉을 등정한 게 최고 기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씨의 경우 지난 5월부터 3개월 만에 4개봉에 올랐다. 2006년 등반을 시작한 지 만 3년도 안 돼 11개봉을 올랐다. 14좌를 완등하면 최단기간(8년) 등반기록을 세우는 영광까지 앞두고 있었다. 무리한 속도전은 전통적인 등정 방식과 배치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씨는 베이스와 베이스 사이를 헬기로 이동하고 현지인들이 미리 구축해 놓은 캠프를 거쳐 올라가는 등 속도전에 주력했다. 기록과 상관없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찾아 등산의 즐거움을 찾는 등로(登路)주의자들은 이번 사태를 상업적 마케팅이 부른 대표적인 참사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산악구조대 구은수 총무는 “직업산악인과 프로모션사 간 윈윈효과를 무턱대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직업 등반가에 대한 국내 지원이 미약한 만큼 후원업체의 부담감을 줄이면서 원정대를 꾸릴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한산악연맹 이의재 사무국장도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들이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고봉 등정에 나선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국 여성들의 정신력이 강해 2년새 12봉 완등에 성공했지만 뒤엔 후원사의 상업적 경쟁도 자리한다.”고 꼬집었다. 이재연 유대근기자 oscal@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천성관 후보자 “자녀 교육위해 위장 전입” 스타강사라도 궁합 맞아야 비만은 부전자전? “제니퍼 로페즈 생일파티 의뢰도 받았어요”
  • [도시와 산] (13) 전남 영암 월출산

    [도시와 산] (13) 전남 영암 월출산

    한반도 서남단 평야지대에 돔구장처럼 솟은 전남 영암의 월출산(천황봉·809m)은 근육질 남자처럼 위풍당당하다. 기가 넘쳐나 불꽃처럼 치솟은 젊음의 산이요, 웰빙 산이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火昇朝天)의 지세’, 즉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고 적었다. 월출산은 맥반석으로 쓰이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이다. 맥반석은 원적외선을 방출, 약석으로 불린다. 천황봉에서 만난 50대 회사원은 “울산에서 영암 대불산업단지로 출장 올 때는 꼭 월출산에 올라 기를 받는다.”고 말했다. 영암에서 500년마다 ‘큰 인물이 난다.’는 속설을 입증하듯, 얼마 전 사람 모습과 똑같은 큰 바위 얼굴이 발견됐다. ●기를 받자 경제난으로 먹고살기 팍팍해지자 “월출산 기를 받아 일어서자.”는 지역 주민들로 도갑사와 천황사 주차장이 북적거렸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려는 단체 등산객이 많았다. 간혹 사업운, 합격운 기원자도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가며 손바닥으로 바위를 짚을 때마다 기가 팍팍 전해졌다. 오치선(54) 영암문화원 사무국장은 “관선 때 영암 부군수들은 새벽에 꼭 월출산에 올라갔다. 1000번 오르면 군수로 승진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웃었다. 광주 출신인 강박원(71) 광주시의회 의장은 관선 영암 부군수와 군수까지 지냈다. 그는 “군수 퇴임 때 군 산악회에서 100회 천황봉 등반 기념패를 줬다.”고 말했다. 영암읍에서 태어난 김일태(64) 영암군수는 산 중턱 도로(천황사~기찬랜드·5㎞)를 날마다 오간다.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은 천황봉에 오른다고 직원들이 말했다. 천황봉으로 오르는 4개 산길 가운데 절경을 감상하려면 천황주차장~바람폭포~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주차장(8.8㎞·6시간)이 좋다. 천황사 앞에서 만난 김겸옥(59·축산업)씨는 “이상하게 천황사에 왔다 가면 일이 잘 풀리더라.”고 말했다. ●월출산은 알아야 보인다 월출산 사진작가이자 ‘영암관광지킴이’ 회장인 박철(55)씨는 “월출산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일갈했다. 월출산은 인물상과 동물상, 구상과 비구상으로 된 바위들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감상법을 모르면 머리만 어지럽다는 것이다. 월출산은 한 마리 용이 동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천황봉을 머리로 해서 구정봉과 향로봉·노적봉이 몸통이고, 주지봉과 문필봉이 꼬리이다. 머리 쪽에는 사자봉·장군봉·천황봉이 자리해 웅장하고 시원시원하다. 월출산의 비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광암터도 장군봉 쪽이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니 놀란 물레새, 멧비둘기들이 풀썩거렸다. 바윗돌 틈새에 뿌리를 박은 동백, 조릿대 군락지는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줬다. 바람폭포 위에서 눕다시피 자라는 노송이 애처롭다. 바람폭포에서 약수를 들이켜고 고개를 젖히니 사자봉 능선에 걸친 책바위가 위태롭다. 아주머니들이 “어머, 영락없이 책을 펴놓은 바위야. 곧 떨어질 것 같아.”라며 서둘러 휴대전화로 찍었다. 통천문의 가파른 계단(250개)을 지나니 천황봉이 펼쳐졌다. 월출산 12경 가운데 제1경답게 바위 형태가 기기묘묘했다. 산 아래 드넓은 들판이 푸른 바다처럼 울렁거렸다. 천황봉에서 바라본 서쪽 능선인 구정봉과 향로봉, 남쪽 능선(강진 쪽)인 사자봉은 천상이 빚어놓은 예술 조각품들이었다. 천황봉에서 도갑사 쪽으로 내려가면 남근석과 바람재, 구정봉이 나오고 영암 큰골 쪽에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이 중생들을 반겼다. 미왕재 억새밭을 지나면 어느새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갑사의 해탈문(국보 제50호)에 들어선다. 전판성(50) 영암군 공보계장(영암군산악회장)은 “월출산은 올라올 때 피곤해도 내려올 때 심신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월출산은 독창적 문화의 산실 영암사람들은 “독창스런 월출산 바위들을 보노라면 월출산 자락의 문화 예술적 창조성이 뛰어난 연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암문화는 월출산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고 월출산 자락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월출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월출산 주지봉 아랫마을인 군서면 구림리에서 왕인 박사가 태어났다. 그는 일본 천황의 초대로 논어와 천자문을 가르쳐 일본 아스카문화의 시조가 됐다. 왕인박사 탄생지에서 4월에 열리는 왕인문화축제에는 일본인들이 몰려온다. 구림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대동계는 지금도 전통을 잇고 있다. 희한하게도 무등산이나 지리산 정상을 천왕봉이라 하고 월출산은 천황봉이라 불린다. 그래서 영암에서는 왕인박사가 일본 천황제도를 만들지 않았나 추론하기도 한다.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827~898년)국사도 구림리에서 왕인박사 서거 500년 여만에 탄생했다.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에서 구림(鳩林)이 나왔다. 또 가야금 산조 창시자인 악성 김창조(1856~1919년), 조선 문필가인 고죽 최경창(1539~1583년) 등이 있다. 조훈현 국수, 가수 하춘화, 워낭소리를 만든 이충렬 감독도 있다. 영암(靈岩)이란 지명도 월출산의 구정봉에 있는 동석(動石·흔들바위)에서 기원했다. 높이 1m에 둘레는 열 아름쯤 되지만 몇 명이 흔들어도 똑같이 움직인다.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에서 월출산 아랫마을을 영암으로 불렀다는 것(동국여지승람). 영암은 고대국가인 마한 문화의 중심지로 옹관묘와 출토된 유물 등을 전시한 마한문화공원이 시종면 옥야리에 있다. 월출산은 영암읍, 군서면, 학산면, 강진군 성전면을 품는다. 영암사람들은 “천황봉 등 산세가 깊은 북쪽에서는 인물이, 향로봉 등 아기자기한 남쪽에서는 재력가가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강진 출신인 김재철(73) 동원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손오공 바위… 사랑 바위… 說~ 說~ 說~ 전설의 고향 “월출산은 등산하는 산에서 관광하는 산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박철(55) 영암 관광지킴이회장은 거듭 강조했다. 월출산 사진전시회를 10여차례 연 그는 “영암은 월출산이란 보석 중의 보석을 가지고 있다. 월출산 바위는 스토리텔링(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가는 것)할 게 너무 많아 중국과 국내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061-473-5210)의 이종형(48) 공원행정팀장은 “5~11월 2, 4주 토·일요일에 ‘월출산의 기암괴석을 찾아서’라는 해설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월출산은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하다. 중국 작가 오승은이 쓴 ‘서유기’는 중국인들이 즐겨 읽는다고 한다. 주인공인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삼장법사가 타는 말이 나온다. 천황봉 아래 300m에는 삼장법사가 가부좌를 틀고 면벽수행을 하는 바위가 있다. 손오공 바위는 구정봉 밑 북쪽에 거대한 석상으로 스승 삼장법사를 쳐다본다. 저팔계 바위는 천황봉에서 구정봉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돼지처럼 귀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사오정 바위는 바람재에서 구정봉쪽으로 100여m 떨어진 등산로 아래에 있다. 또 월출산은 기의 산이다. 청춘남녀의 뜨거운 사랑으로 에너지가 넘쳐 생명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에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뜨겁게 포옹하는 사랑바위(애무바위)가 있다. 옆에는 남근바위가 힘차게 솟아 있다. 공교롭게도 이 바위 끝에는 5월이면 철쭉이 분홍꽃을 피워내 웃음을 자아낸다. 운무에 휩싸인 채 월출산 심장 지점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랑바위가 황홀하기만 하다. 남근바위 건너편에는 여근바위(음혈)가 있다. 등산로를 따라 500m쯤 가면 향로봉 아래 만삭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15m쯤 되는 석상인데 만삭이 된 산모가 굽어보는 형상이다. 영암읍에서 천황사지구는 하루 5번, 도갑사지구는 3번씩 군내버스가 오간다. 영암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통영 사량도 지리산

    전남 여수에서 경남 거제까지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 중 남해와 통영 사이에 자리 잡은 사량도는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높이가 398m에 불과하지만 설악산 용아장성을 축소해놓은 듯한 옹골찬 암릉을 품고 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능선을 걷다 보면 물뱀의 등을 타고 한려해상을 유람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본래의 산 이름은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었는데 ‘망’자가 떨어져 지금은 그냥 지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 산 하나로 일약 스타로 떠오른 섬 사량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 해금강권’에 속하고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사량면에 해당하지만, 사천(삼천포)에서 더 가깝다. 사량도는 크게 윗섬과 아랫섬이 마주 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동강(桐江)이 흐르고 있다. 동강은 두 섬 사이의 해협으로 오동나무처럼 푸르고 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윗섬에는 지리산과 옥녀봉(261m) 등이 불끈 솟아 있고, 아랫섬에는 칠현산이 일곱 봉우리를 펼치고 있다. 주변에는 대섬(죽도), 노아도, 누에섬, 나비섬(잠도), 수우도 등의 빼어난 섬들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다. 사량도란 이름은 섬 자체가 뱀 모양으로 생겼고 뱀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산행 코스는 돈지에서 출발해 지리산, 불모산 달바위, 옥녀봉을 거쳐 진촌으로 내려오는 종주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달바위∼옥녀봉 구간은 워낙 가팔라 위험구간도 있지만, 안전시설이 잘 설치돼 있어 도전해볼 만하다. 산행 들머리는 아담한 포구를 끼고 있는 돈지 마을이다. 돈지분교 왼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 초입부터 가파른 비탈을 20분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시원하게 뚫리면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쪽빛 바다 위에 뜬 수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삼천포가 아른거린다. 주능선에 올라붙은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돈지항이 물 위의 연꽃처럼 아름답다. 그 옆으로 작은 왕관처럼 보이는 섬은 이순신 장군이 대나무 화살을 얻었다는 대섬(죽도)이다. 평탄한 능선 양쪽으로 펼쳐진 바다와 섬을 구경하며 1시간쯤 가면 지리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사량도의 지리산과 옥녀봉은 1979년 삼천포산악회가 개척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개척의 주역인 김봉호씨에 의하면 섬에는 석란, 풍란 등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멧돼지들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멧돼지들은 바다 건너 고성 땅에서 건너온 것인데, 언젠가 해초를 쓰고 건너오는 멧돼지를 마을 어부들이 잡은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윗섬에는 멧돼지가 없지만 아랫섬 대곡산 부근에 30여마리가 살고 있다. 정상에서 30분쯤 내려오면 사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은 사량도 윗섬에서 유일한 절인 성자암과 옥동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측은 내지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옥녀봉까지는 아직 2.54㎞가 남아 있다. 호젓한 숲길을 지나면 가파른 칼날 능선이 이어진다. 이 길은 위험하므로 안전한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 슬픈 전설이 서린 옥녀봉 불모산 정상인 달바위(400m)는 거대한 암봉으로 사량도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이곳에서 가마봉(303m), 연지봉, 옥녀봉을 넘는 구간이 사량도에서 가장 빼어난 능선이다. 낙타의 등 같은 세 개의 봉우리를 연속적으로 타고 넘으며 펼쳐지는 한려해상의 풍광은 사량도가 아니면 보기 힘든 절경이다. 가마봉에서 급경사 철다리를 내려와 암릉을 기어오르면 너른 암반이 펼쳐진 연지봉이다. 아랫섬 칠현봉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고, 동강 해협에는 꽃잎처럼 배가 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이곳에 주저앉아 “참말로 호수 같네!”하며 동강을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연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로프로 엮은 나무사다리 길이다. 흔들리지 않으므로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 봉우리인 옥녀봉에 이른다. 이 봉우리는 욕정에 눈먼 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딸이 옥녀봉에 올라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 곳이다. 이 전설은 사실 여부보다는 외딴 작은 섬에서 가정 및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강력한 터부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대항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옥녀봉을 내려오면 해송 숲을 지나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는 진촌마을에 닿는다. 돈지 마을에서 시작해 지리산, 옥녀봉을 종주하고 진촌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약 8㎞, 5시간쯤 걸린다. 등산로가 잘 정돈돼 있지만, 곳곳에 위험 구간이 있으므로 초보자들은 꼭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전문작가> # 가는 길과 맛집 사천, 통영에서 사량도 가는 배가 다닌다. 삼천포→사량도는 삼천포항에서 06:30 08:00 11:00 13:30 16:30에 출발하는 일신해운(055-832-5033)을 이용한다. 40분쯤 걸리고 요금 왕복 8,000원. 통영→사량도는 가오치항에서 오전 7시∼오후 5시10분까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사량호(055-642-6016)를 탄다. 사량도 내에서는 금평∼돈지 마을버스가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한다. 요금 1000원. 배가 출항하는 삼천포항과 통영의 활어시장에는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난다.
  •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금기는 없다… 이호철판 역사 바로 세우기

    올해 77세의 노(老)작가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함경남도 원산생으로 젊은 시절 인민군으로 한국전쟁을 겪었고, 1974년에는 ‘문인 지식인 간첩단’으로 몰렸으며,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기도 했고, 1987년 6월에는 시위대 앞줄 어딘가에 있었다. 그렇게 분단과 독재의 질곡이 고스란히 그 한 몸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졌다. 그가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뒤 ‘문’,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수십 권의 작품을 쏟아낸 50여년 동안 분단과 통일, 평화와 전쟁의 문제 등 우리 민족의 근원적 모순에 대한 천착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유다. 이호철이다. 199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된 그가 최근 내놓은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중앙북스 펴냄)은 역사의 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인생과 그 치열한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서사(敍事)가 없다. 소설가가 자의로 창조한 캐릭터도 없다. 차라리 장편소설을 표방한 ‘한반도 근현대사 교과서’에 가깝다. ●역사 인물 가상 대담 형식 취해 이호철은 “현 정부 들어 좌우 진영 간에 교과서의 근현대사 기술(記述)에 있어 왜곡 논쟁이 분분한데 이 소설이 어느 것보다 엄정한 역사교과서가 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고 ‘실험적 기법의 장편소설’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근현대사의 주요인물인 이승만, 송진우, 김구, 조만식, 최용건, 민영환, 이준 등을 불러내서 ‘별 너머 가상 대담’을 시키는 형식을 취했다. 엄정한 역사적 사료와 함께 역사적 인물의 ‘텍스트 사이’에 대한 방대한 평생의 취재를 바닥에 깔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물론 작가의 역사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조만식, 최용건 등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담겼음은 물론이다. 이는 자신이 1992년에 쓴 소설 ‘개화와 척사’에서 이미 한번 실험한 기법이다. 물론 작가 자신이 밝히듯 슈테판 츠바이크가 소설 ‘마리 앙투아네트’를 쓰며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소설적 기법에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고종 말부터 해방, 분단까지 우리네 현대사 통한의 순간, 치열했던 상황을 잔인하리만치 세밀하게 서술한다. ●“시선 치우치면 현재의 문제 푸는 방식도 왜곡” 이호철은 “진보건 보수건 근현대사를 보는 시선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때문에 현재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비틀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우리가 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는 금기(禁忌)가 없다. 애써 에두르지도 않는다. 조만식과 최용건의 입을 빌려 북한 주석 김일성,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갖고 있는 공과를 일일이 나열한다. 일종의 인물 재평가를 통한 ‘이호철식 역사 바로세우기’다. ●이승만·김일성 공과 가감없이 나열 김일성은-최근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실이긴 하지만- 항일무장투쟁의 지도자로서 1937년 6월 보천보 전투의 공적, 일본의 공작으로 내부분열이 일 때 모두를 껴안는 통 큰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국부, 또는 분단의 원흉으로 취급받던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만큼 20세기 초반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를 명확하게 인식한 리얼리스트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조만식의 입을 빌려 ‘이승만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유일한 지도자’라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더욱 열심히 소설을 써야겠어요. 날마다 요가하고, 등산하며 건강 챙겨야 할 이유죠. 조만간 단편소설 세 편이 나올 텐데 아흔 살까지는 쓸 겁니다.”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정력적인 집필은 물론 몇 사람이 모여 있건 독자를 만나는 독회 활동에 열의를 쏟는 것도, ‘거시기 산악회’와 요가로 건강을 챙기는 것도 모두 자신의 통일론, 남북평화의 중요성에 공감을 얻고자 하는 필생의 소명 때문이다. 좌우도, 노소도 모두 곰곰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글ㆍ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도시와 산](1) 순천 조계산

    전남 순천의 조계산(해발 884m)은 참 허술하다. 멀리서 내비친 넉넉하고 만만한 산세가 쉽게 보인다. 남녀노소가 오른다. 갖춰 입기보다는 이웃집 마실 가듯 헐렁한 옷이나 운동화 차림새도 그렇다. 등산로에는 노부부와 손자들까지 마치 도시락 싸들고 공원에 놀러나온 차림이다. 이들은 십중팔구 순천시민이거나 인근 여수, 광양 등에서 왔다. ●해발 884m… 남녀노소 마실 가듯 순천시민들은 조계산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단다. 선희곤(47·자동차정비업·순천시 조례동)씨는 “조계산을 오를 때는 오이 한 개만 달랑 들고 가도 장군봉까지 쉽게 간다.”고 자신했다. 지팡이를 짚은 정채봉(75·순천시 연향동)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이렇게 산에 오르지.”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암사에서 10분 거리인 야외생태체험장에서 동창생 10여명과 사진을 찍던 정병국(76)씨는 “목요일마다 사범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조계산에 놀러 오는 게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자랑했다. 반면 관광버스 수십대에서 내린 형형색색 복장의 등반객들은 짙은 선글라스에 한결같이 쏙 빼입은 멋쟁이들이다. 외지인들이다. 하나 놀라는 쪽은 오히려 이들이다. 누군가 “야, 저런 신발로 산에 오르나봐.” 하며 신기해했다. 서울에서 온 전인동(60)씨는 “조계산에는 유달리 여성 등반객들이 많다.”고 환하게 웃었다. ●주요 탐방로 5개… 혼자 걷는 명상길 조계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호남정맥의 길목으로 광주 무등산과 장흥 제암산, 보성 일림산을 거쳐 나온 줄기다. 그리고 오성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으로 가지를 뻗는다. 주요 탐방로는 5개. 1000년 고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앞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게 쉽고 편한 길이다. 일명 스님 오솔길이어서 ‘명상로’로 통한다. 길에 들어서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나 주봉인 장군봉을 놓치는 아쉬움이 남는다. 2~3부 능선으로 이어진 이 길은 끊이지 않는 계곡물 소리, 굴참나무 낙엽이 바람에 실려 발길 사이로 까끌거리는 소리,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이 어울린다. 길옆의 산수유처럼 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는 영락없이 생강 냄새를 풍긴다. 요즘엔 귀한 선물이 더해졌다. 선암굴목재와 송광굴목재 사이 언덕이 은하수처럼 환해졌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뿌리 사이로 보랏빛 얼레지 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봉긋봉긋 솟아났다. 한 중년 여성이 나팔처럼 생긴 꽃봉오리가 땅으로 숙여진 모습에 “시골처녀처럼 낯가림한다.”고 어쩔줄 몰라했다. ‘조계산 지킴이’인 양회명(55) 순천시청 공무원산악회장은 “조계산 등산의 묘미는 한여름에도 햇볕을 쐬지 않고 흙길을 밟는 명상로에 있다.”고 설명했다. 명상로에서 스친 탐방객들은 혼자이거나 두 명씩이 대부분이었다. 도중에 소설 ‘태백산맥’ 안내판이 나왔다. 빨치산들의 연락로로 쓰였다는 설명이다. 작가 조정래는 선암사에서 자랐다. 반면 주암면 접치재에서 출발하는 탐방로는 순천시민들이 찾아낸 길이다. 1000원 내는 시내버스가 경유해 접근성도 좋다. 두 사찰에서는 탐방객에게 입장료(2500원)나 주차료(1500원)를 받지만 접치재에는 매표소가 없다. 하나 산 좀 타는 이들은 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사에 이르는 종주산행을 즐긴다. 전문 산악인들은 선암굴목재~배바위~장군봉을 타기도 한다. ●선암사·송광사 천년 고찰 향기 ‘순천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는 속설은 빈말이 아니다. 조계산 자락의 순천이 인심 좋고 경치 좋고 물이 맑은 까닭이다. 진인호(70·향토사학자) 순천문화원 부원장은 “일제 강점기 때 순천에 지주들이 많아 그 자식들이 비단옷으로 치장해 ‘순천에서 옷 자랑하지 마라.’고 했다.”며 “1960년대 세일러복을 입은 순천 여고생들의 인물이 남달랐고 이후 미스코리아가 나오면서 옷 자랑이 미인 자랑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하게도 조계산은 동쪽 장군봉 밑에 태고종 총림인 선암사, 서쪽 연산봉 아래에 승보사찰인 송광사라는 가람을 품고 있다. 선암사 전각 스님은 “산 하나에 태고총림(선암사)과 조계총림(송광사)이 있는 곳은 조계산밖에 없다. 총림은 선원·강원·율원 3개 경전 교육기관을 모두 갖춰야 지정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스님은 “조계산은 1천년 역사에 바랜 문화재 수천점이 숨쉬는 역사·교육·문화의 도량”이라며 “산에 갔다만 와도 수양을 쌓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요즘 선암사 경내 원통전 담 옆으로 600년 된 매화나무 20여그루가 추위를 이겨내고 활짝 꽃을 피워 볼 만하다. 송광사에는 한꺼번에 500개를 포갤 수 있는 능견난사(能見難思·나무그릇)가 흥미롭다. 공교롭게 선암사 어디서나 휴대전화가 잘 터진다(소통). 하지만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에서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다(참선).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봄 머금은 산사 비빔밥에 홀리고 18명 국사배출 十八公 전설 흐르고 조계산은 천년 고찰을 거느린 품새만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사찰 밑에는 식당 20여개, 숙박업소 8개가 성업 중이다. 도시 생활의 찌든 때를 산속의 맑은 공기로 씻어 버린 이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와 송광사 아래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특히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요즘 더욱 많은 등산객이 몰린다. 송광사 아래서 금광식당을 하는 김화영(43·여)씨는 “봄이 되면 손님이 많은데 요즘에는 수학여행 아이들이 몰려들어와 산채 비빔밥을 즐겨 찾는다.”며 웃었다. 학생들은 식당 옆 조계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어 갔다. 송광사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신라 때는 길상사, 고려 때는 수선사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때부터 송광사로 불렸다. 소나무가 무성해 당시 불렸던 ‘솔개이메(솔강이메)’에서 유래해 솔을 송(松), 갱이(광이)를 광(廣)으로 옮겨 송광산이라고 한 것으로 전한다. 전설에는 ‘송(松)’을 파자(破字)하면 ‘十八公’으로 송광사에서 18명의 국사가 나올 것이라고 풀이된다. 그래서 고려와 조선조에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으니 앞으로 2명의 국사가 더 배출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송광사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 송광사국사전(국보 56), 송광사경패(보물 175), 송광사영산전(보물 303) 등의 문화재 외에 곱향나무(천연기념물 88호)도 있다. ●가는 길 광주~송광사는 광주 광천버스터미널(062-360-8114)에서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하루 5번. 광주~순천은 버스터미널에서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10~20분 간격. 순천~송광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40분 간격으로 111번 시내버스(061-753-5377). 순천~선암사는 순천역에서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수시 운행 1번 시내버스. ●묵는 곳 선암사와 송광사 입구에 모텔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문의는 매표소(선암사 061-754-6160, 송광사 755-5308) 조계산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아저씨 어디?” “응,전철 타고 천안 광덕산에”

    “토요일,일요일 북한산 쪽으로 가는 버스 한번 타보세요.점심 때까지 버스안 10명중 셋은 배낭 멘 승객이예요.”  산이라면 담 쌓고 지냈던 정모(49·서울 강서구 등촌3동)씨는 지난해 늦여름 어느날,휴일에 광화문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다 버스 안에서 나름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산행 인구가 얼마나 빠르게 늘고 있는지 그제야 실감하게 됐던 것.  지난 겨울에도 버스 안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연령대도 30~60대까지 다양했고 여성 등산객이 빠르고 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그는 “등산이 IMF 이후 10년여를 팍팍하게 살아온 서민들의 정신과 육체를 추스르는 지렛대가 된 느낌”이라고 정리했다. ●“전철 한 칸에 배낭 멘 서너명은 꼭”  최근 몇년새 등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남녀,중장년과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저변을 확산시키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전문 카페,동호회도 상당히 늘었다.등산용품점도 급증했다.계절을 구분하지 않고 겨울 등에도 근교 산에는 발길이 이어진다.이번 봄에도 산행객 행렬은 꾸준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전국 20개 국립공원(경주·한라산 제외) 방문객 수가 2006년 2103만명에서 2007년 3066만명,지난해 3153만명으로 1~2년새 절반 가까이씩 늘었다.공단 탐방관리팀 도기호씨는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가 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도씨는 “2006년 북한산을 찾은 사람이 500만명이었지만 2007년 입장료가 폐지된 뒤 1000만명으로 2배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 운행되면서 전철을 타고와 천안 광덕산 광덕사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천안 종합터미널에서 천안역을 거쳐 광덕산 광덕사를 오가는 시내버스 600번 운전기사 김모씨는 지난 8일 “2~3년 사이 등산객이 부쩍 늘었다.”면서 “오전 7시 첫차부터 광덕산을 찾는 사람들이 보인다.”고 답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광덕산에서 나오는 버스에 탄 등산객 중 반절은 천안역에서 내린다.”고 말했다.실제로 이날 오후 3시쯤 광덕산에서 출발한 600번 시내버스에 오른 등산객 15명 중 6명은 천안역에서 하차,상행선 전철을 탔다.수원에 사는 50대 박진헌씨는 “첫 지하철을 타고 내려왔다 가는 길”이라며 “기차는 좀 번거로워서 전철을 이용해 하루 코스로 왔다간다.아침에 올 때 보면 전철 한 칸에 등산객 2~3명씩은 꼭 있다.”고 덧붙였다.  등산로 초입 버스정류소에서 어묵을 팔던 김모씨도 “날이 풀리면서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그는 “겨울철에 하루 7만~8만원을 버는데,봄이 되면 3만~4만원 정도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포털 다음에 등산과 관련해 개설된 카페도 최근 몇년새 계속 늘고 있다.저변인구 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날지를 알 수 있는 수치다.검색어로 ‘등산’이라는 단어를 쓴 카페는 ▲지난 2003년 1120개 ▲2004년 2430개▲2005년 2490개▲2006년 2590개▲2007년 3310개▲2008년 3571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달픈 심신 달래며 건강 챙기는 데 최고  등산 전문가 제종태(50·고속버스 운전사)씨는 최근 등산 인구가 증가한 것은 건강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의식 변화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은 뒤 가족화,개인화,건강 챙기기 경향도 등산인구를 늘렸다고 분석했다.그는 “등산이 골프보다 접근이 쉽고,혼자 또는 몇몇이 산을 오르면서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가장 좋은 운동이어서 애호인이 지속적으로 느는 것 같다.”면서 “최근 들어 삶이 힘들어지면서 다소 화려하고 들뜬 스포츠보다 산을 타면서 자연의 섭리 등을 배우는 것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최근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점도 등산의 또다른 매력으로 꼽힌다.  등산은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는 유산소 운동이다.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요통 예방과 치료에 적절한 운동요법으로 추천할 정도로 무릎과 허리 등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이 된다.중장년층이 60대 이후에도 잔병 치레하지 않고 건강히 지내려는 욕구도 등산 스틱을 잡게 하는 요인이 된다.  다음 카페 ‘참마음산악회’ 관계자는 “숨가쁘게 산을 오르면서 흙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바쁘게만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면서 “한때 골프에 심취했으나 경제적 이유도 있고, 혼자 생각하는 여유를 못 주는 것 같아 산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광화문 직장에 근무하는 김상인씨는 “ 그동안 사람들이 골프 등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춰진 운동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운동화 등 의복만 간단히 갖추면 되는 ‘걷는 운동’으로 관심을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 긴장,대인 관계 등 직장생활에 힘든 이들이 골프 등 격식을 따지는 운동보다 땀 흘리고 혼자 생각하는 걷기와 등산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보 등산객일수록 마음가짐 중요  기온이 더 오르면 ‘남들 장에 가니까 따라 나서는’ 초보 산행객들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뭘 준비해야 할까.  한국산악회 박열주 사무국장은 ▲방풍·보온장비를 철저하게 구비할 것 ▲무리하게 일정을 잡지말 것 ▲2명 이상 무리지어 산행을 할 것 등을 주문했다.박 사무국장은 “밑에는 따뜻해도 산에 올라가면 기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이 올 수 있다.”며 안전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산행전 산장 혹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초소 등의 위치를 파악해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재활의학과 김동환 교수도 무리한 산행에 따른 근육통 유발을 경고하며 “산행 전 몇 주간 근육 훈련을 통해 근육통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그러고는 충분한 휴식 또한 근육통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이와 함께 김 교수는 “등산시 10~15분마다 250~350ml 정도의 수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면서 “관상 동맥질환·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는 평소 복용하는 약물의 용량을 주의 깊게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도기호씨는 ‘릿지 등반’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했다.그는 “정해진 산길을 따르지 않고,암벽 틈새를 맨 몸으로 올라가는 릿지 등반을 즐기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며 “안전장비 없이 올라가는 행동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지난 해 북한산에서는 7명의 등산객이 추락사했다.  그는 또 “등산객들이 자꾸 샛길을 만들어 다니는 바람에 산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며 산의 건강도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홈페이지는 한국등산학교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 맹수열기자 taiji@seoul.co.kr
  • [전국플러스] 완도서 세계 슬로 걷기축제

    전남 완도군이 4월18일 제1회 세계 슬로 걷기축제를 연다. 호주·이탈리아·미국 등 슬로시티 가입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15개국과 국내 다문화가정, 전국 걷기 동호회, 산악회원 등 1만 50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걷기축제는 지난해 완도군이 건강도시 연맹에 가입하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슬로시티에 가입한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된다. 지난해 5월 김종식 완도군수가 세계걷기의 날 조직위원회와 함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나 세계걷기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해 줄 것을 적극 건의했다. 축제는 완도군과 사단법인 세계걷기운동본부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전남도가 후원한다. 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강한 역풍에 억새불 관람객 덮쳐

    강한 역풍에 억새불 관람객 덮쳐

    9일 4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친 경남 창녕군 화왕산 사고는 월출 시간에 맞춰 억새에 불을 붙이는 순간, 강한 역풍이 관람객 쪽으로 불면서 일어났다. 불이 몸에 붙은 관람객들은 10여m 높이의 배바위 아래로 떨어져 숨지거나 다쳤다. ●시뻘건 화염 한순간에 아비규환 관람객 이모(28)씨는 “불이 번지면서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가 산 정상을 뒤덮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만 들려 아비규환이었다.”며 참혹한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억새 태우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중에 불길이 갑자기 크게 번지며 치솟자 뒤쪽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화왕산 정상 부근의 본부 위쪽에 있던 최모(45)씨는 “달집사르기에 이어 억새에 불을 붙이자마자 불길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확 번졌다.”며 “불길이 크지자 뒤쪽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는 행사 준비가 덜 된 사실상의 ‘인재’였다. 행사를 주최한 창녕군이 충분한 안전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놓고 책임 소재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지형이 험하고 좁은 산 정상에서 저녁에 하는 불놀이 행사는 질서유지와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물통 든 안전요원이 화재 대비 1만 5000여명의 대규모 관람객이 모이는 억새 태우기 행사에 안전요원은 겨우 114명만 배치됐을 뿐이다. 김모(40·여)씨는 “안전요원들이 드문드문 물통을 들고 있었지만 갑자기 일어난 큰 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자 본부는 “안전사고가 났습니다. 등산객 여러분은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라 침착히 하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했으나 사고 소식과 불길에 관람객들이 뒤엉키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또 관람객들은 날이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방화선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작은 손전등이나 앞 사람의 인기척에 의지해 간신히 이동했다. 창녕군은 1995년부터 1~4년에 한 차례씩 음력 정월 보름에 화왕산 억새밭(둘레 2.7㎞, 면적 18만 5000㎡) 태우기 행사를 한다. 첫 행사 때부터 산불 발생 위험 등으로 찬반 논란이 많았다. 올해는 제6회 행사로 2006년에 이어 3년만에 열렸다. 창녕군이 주최하고 배바우산악회가 주관했다. 화왕산(火旺山)의 이름이 ‘큰 불 뫼’에서 온 것처럼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어와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이야기에서 화왕산 억새태우기가 유래됐다.‘재앙을 막기 위한’ 행사가 재앙으로 돌아왔다. 창녕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고삐 풀린 전국 유명산 케이블카 설치

    고삐 풀린 전국 유명산 케이블카 설치

    환경부가 최근 삭도(케이블카) 설치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앞으로 이를 더 확대할 방침을 밝히면서 전국 유명산에 케이블카 설치 붐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관광 개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명분을 내걸고 정부의 설치 허가를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반면 환경·종교단체 등은 자연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케이블카 설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예상된다. ●보호구역 폐지 등 관련 규제 완화 환경부는 최근 케이블카 설치와 관련, ‘문화재 보호구역 500m 이내 금지’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 불가’ 등 일부 규제 조항을 폐지했다. 또 공원지역의 케이블카 통과 길이도 기존 ‘2㎞ 이내’에서 ‘4~5㎞ 이내’로 완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부 규제가 폐지 또는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국립공원의 주봉과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 등에는 피하도록 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공원위원회의 심의도 거쳐야 하는 만큼 케이블카가 무분별하게 설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활성화 등 내세워 케이블카 설치 봇물 그럼에도 각 지자체는 “설치에 핵심 걸림돌이 제거됐다.”며 반기고 있다. 전남 구례군은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에 4번째 도전장을 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발주하고 올해 안에 국립공원계획변경안을 환경부에 신청할 예정이다. 구례군은 산동면 좌사리 지리산온천관광지구~노고단 8부 능선(5㎞)과 관광지구~성삼재(2.9㎞) 등 2개 코스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노고단 도로개방 이후 연간 80만대 이상의 차량이 자연보전지구를 통과하면서 매연과 야생동물 로드킬 등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이 도로를 축소 또는 폐쇄하는 것이 오히려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1~3월 노고단 눈꽃 관광객 등 연간 130여만명이 지리산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리산 온천지구와 야생화 테마랜드, 산수유 군락지 등 지역 관광 산업과도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1997년, 2001년, 2004년에도 케이블카 허가 승인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남 영암군도 영암읍 회문리 작은골~천황봉 지봉(2㎞) 사이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타당성조사 용역에 들어갔다. 군 관계자는 “도갑사 주변 등 문화재 보호구역만 피하면 설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전남 목포시 역시 유달산~고하도(1.85㎞)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키로 하고 지난해 기본구상 및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고하도 유원지 개발이 마무리되는 2012년까지 설치를 목표로 잡고 있다. 이밖에 전북 남원, 경남 산청·함양군 등 지리산권 지자체와 제주·강원 등 유명 관광지들도 앞다퉈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 중이다. ●파괴와 훼손 등 이유 환경단체 반대 그러나 환경단체 등은 환경 파괴와 문화재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이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해당 지자체가 케이블카 설치 추진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역경제활성화 분야에 대한 검증도 철저히 펴기로 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을 비롯,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대한불교조계종, 산악회 등은 지난해 9월 ‘국립·도립·군립공원안 관광용 케이블카 반대 전국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자치단체와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주옥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은 “너무 여러 지역에서 케이블카 설치에 나서고 있는 만큼 지역별 현장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가지산도립공원처럼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는 지역부터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길섶에서] 지레짐작/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가리왕산(1561m)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새벽에 서울 서초동서 산악회버스로 출발,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강원도 태백과 정선이 극심한 겨울가뭄에 시달린다는 소식 때문에 눈밭 구경 꿈은 접어두었다. 정선군 가리왕산 심마니다리서 시작된 등산길은 그나마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흙먼지를 줄여줘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데 1시간반 뒤 해발 1100m선을 넘어서자 별천지였다. 상상의 범위를 크게 뛰어넘은 광대한 눈세상이었다. 옹색하게 점심을 먹은 뒤에는 입이 쩍 벌어졌다. 나무들은 기기묘묘한 상고대를 빚어냈다. 정상부근 백년 넘은 소나무 몇 그루의 설화장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조물주만이 빚어낼 수 있는 자연예술품들이었다. 정상 아래 20㎝안팎 눈밭 속의 수백년 된 참나무들도 여기저기서 기품있게 풍파를 견뎌내고 있었다. 사람구경이 어려워 수도권 산과 대비된 가리왕산 설경은 2시간 이상 계속됐다. 망외의 눈구경이 기뻤지만 눈이 없을 거라는 지레짐작이 경솔했음에 부끄러웠다. 이춘규 국제부 선임기자 tae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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