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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언론과 스킨십 늘린다

    언론보도에 대한 적극 대응방침과 브리핑제 실시 등으로 다소 거리감이 생겼던 정부 부처와 출입기자 사이에 ‘스킨십’이 크게 잦아지는 등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한명숙 국무총리 체제가 닻을 올린 총리실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앞서 고건 전 총리는 한 달에 한 차례꼴로 출입기자들과 생맥주집에서 ‘호프 미팅’을 가졌다. 하지만 이해찬 전 총리와 기자단의 관계는 소원했다. 이 전 총리는 올초 기자단과 의례적으로 갖던 신년 인사도 생략했다.●국무조정실장·총리비서실장 접촉 나서 그러나 이 전 총리 시절 언론과의 ‘거리 두기’는 한 총리 취임 이후 ‘거리 좁히기’로 바뀌고 있다. 실제 김영주 국무조정실장은 당초 지난달 26일 기자단과 오찬을 하기로 했다가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지난 3일 만찬으로 바꿨다. 또 김성진 신임 총리 비서실장도 오는 10일 기자단과 만찬을 계획하고 있다. 이밖에 국장급 이상 고위직들도 기자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으며, 가끔 ‘소폭’(소주+맥주)이 등장하기도 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기자단과의 관계는 총리의 언론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정책 배경 등을 충분히 전달하려면 접촉이 많을수록 유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한 총리께서는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꼼꼼히 챙기는 편이며, 언론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면서 “비서실장 역시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과의 스킨십을 강조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김명곤장관 6차례 진행 각 부처의 언론과의 거리 좁히기도 한창이다.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언론과 관계개선’ 의지를 피력했던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언론사 부장단과 출입기자 등을 대상으로 모두 6차례에 걸쳐 ‘설렁탕집 대화’를 갖거나 가질 예정이다. 김 장관은 “문화행정이 국민속에 파고 들려면 언론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기자들과 계속 만날 것”이라면서 “국정홍보 차원에서 기자들을 설득하고, 문화행정 차원에서도 부탁할 것은 하겠다.”고 밝혔다. 정보통신부는 노준형 장관 취임 한달에 맞춰 지난달 2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외부에서 ‘화려하게’ 자리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첫 외부 간담회는 노 장관의 제안이었다.”면서 “참석자 전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등 대체로 평가는 좋았지만, 비용이 다소 많이 들어간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재경부 등반대회등에 초청 재정경제부는 체육 및 문화행사를 곁들여 언론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세제실은 오는 19일 과천경마장 내 축구장에서 출입기자들과 친선 축구시합을 갖고 간단한 저녁행사도 마련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재경부 산악인 동호회의 소백산 등산에 기자단을 초청했다. 또 구내 식당에서 맥주파티를 겸해 열린 국·실간 벽 허물기 및 업무혁신 토론회에도 출입기자들이 참석했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1일 ‘혁신나눔 행사’에서 변양균 장관이 직원들과 토론회를 가진 데 이어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청사 식당에서 호프데이를 갖고 격의없는 이야기를 나눴다.12일에는 국가재정을 주제로 출입기자단 세미나를 가진 뒤에는 명동에서 영화를 관람한다.‘뒤풀이’도 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1일 권오승 위원장 등 간부들과 출입기자들이 축구시합을 벌인 뒤 ‘디지털 경제의 특징과 경쟁정책적 함의’를 주제로 워크숍을 가졌다. 한편으로 정책 설명에는 ‘친절’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기자 개개인의 취재에는 내부통제를 보다 강력하게 시행하는 추세도 나타난다.언론사가 개별적으로 취재를 요청하면 담당 직원이 홍보담당관에게 연락해 사전협의를 한 다음 취재에 응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마련한 곳도 상당수다.부처 종합
  • 불혹 훌쩍 넘긴 ‘거미 인간’들

    불혹 훌쩍 넘긴 ‘거미 인간’들

    로키산맥의 가파른 암벽을 한 사나이가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수천길 낭떠러지를 뒤로 한 채 바위 틈에 매달린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곧이어 정상에 올라서자 발아래로 협곡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클리프 행어’에 주요 소재로 등장했던 암벽등반은 짜릿한 스릴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다질 수 있는 최고의 레포츠다. 근력과 지구력, 정신력, 집중력, 균형감각을 발달시켜 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힘들고 위험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자신과는 거리가 먼 레포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60세의 나이로 암벽등반에 입문한 안문현(68)씨는 “힘들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잘라 말한다. 일주일 정도 배우면 쉬운 코스를 오를 수 있고,3개월 정도 배우면 자기 몸을 추스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고 한다. 또 각종 안전장치가 마련돼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2인 1조로 즐기는 레포츠여서 부부간의 운동으로도 적합하다. 특히 서울 성동구에서 운영하는 응봉산 암벽등반공원에 가면 무료로 암벽 등반의 기초를 배울 수 있고, 무료로 등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짜릿한 암벽의 세계로 떠나 보자.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스포츠 클라이밍’, 다시 말해 인공 암벽등반에 빠진 마니아들은 누굴까. 급경사의 바위를 맨손으로 오르는 레포츠인 만큼 20∼3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취재에 나섰다. ●나이, 대부분 40~50대… 몸매는 30~40대 그러나 지난 주말 서울 성동구 응봉산 암벽등반공원에서 ‘클라이머’들을 만난 뒤 이런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근육질 몸매의 마니아들은 나이보다 10살 이상 어려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40∼50대. 맨손으로 90도의 가파른 직벽을 거침없이 오르는 68세의 한 동호인의 ‘막강 파워’(?)에는 더이상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파른 ‘직벽´ 거침없이…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암벽등반공원에는 10여명의 동호인들이 맨손으로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15m 높이의 직벽과 120도 각도의 ‘오버행’(Over Hang)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홀더’(암장의 손잡이)에 매달려 직벽을 오르거나 ‘스탠스’(발디딤 공간)를 밟기 위해 하늘로 발을 치켜 올리는 모습은 마치 영화 ‘클리프 행어’의 한 장면을 연상케 만들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혈기왕성한 20∼30대가 아니라 불혹(不惑·40세)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더더욱 전문 산악인들도 아니었다. ●60세에 입문한 ‘68세 클라이머´의 노익장 먼저 암벽을 오른 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암벽등반 동호회인 ‘세레또레’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안문현(68·삼성카드라인 이사)씨를 만났다. 먼저 단단한 근육질 몸매인 그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가파른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는 근력이나 팔·다리의 유연성으로 봐서는 많아도 5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안씨는 “암벽등반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고 일축한다. 한술 더떠 등산을 좋아해 산에 다니다 암벽 등반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60세가 다돼서야 입문했다고 전했다. 안씨의 등반(자일)파트너인 채영덕(50)씨는 마치 보디빌더와 같은 몸매를 뽐낸다. 채씨는 “온몸의 근육이 고르게 발달하는 운동으로 암벽을 타다 보면 자연스레 몸의 근육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씨와 채씨는 전국 장년급 대회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실력파이기도 하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신 운동 세레또레는 지난해 7월 한 국산 등산장비 업체의 협찬을 받아 만든 동호회로 현재 3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업체의 장비테스트를 하는 선수들과 일반회원들이 한데 어우러진 팀이다. 안씨는 “매달 회원들과 함께 전국의 실내 암장과 자연암장 등을 찾아 다니며 운동을 즐기고 있다.”면서 “암벽은 발끝부터 손끝까지 안 쓰는 곳이 없는 전신운동이자 종합 스포츠”라고 극찬한다. 한켠에서는 초보자도 눈에 띄었다. 회사원 신보경(26·한화건설)씨와 박석재(30·한화건설)씨는 직장 선배인 김흥렬(41)씨의 권유로 이날 처음 이 곳을 찾았다. 신씨는 “생각보다 힘들지만 성취감과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날아간다.”면서 “사람들이 이래서 암벽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즐거워했다. ●국제 규격 갖춘 명소, 응봉산 암벽등반공원 응봉산 암벽공원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훈련장. 암벽등반 마니아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이용료를 받지 않으며 무료 교육도 받을 수 없다. 주말에는 150여명의 동호인들이 모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제시대 채석장으로 쓰이던 이곳은 수십년간 방치돼 오다 1999년 12월 암벽등반장으로 변신했다. 현재 성동구에서 위탁을 받아 서울시 산악연맹에서 관리·교육하고 있다. 국철 응봉역에서 보이며,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폭 14m, 높이 15m의 국제규격 코스의 시설뿐만 아니라 국내 ‘톱 클래스’ 암벽등반가인 손정준(41·서울시 산악연맹 교육이사)씨가 관리를 맡으며 동호인들을 지도를 하고 있다. 마니아들을 위해 코스 난이도를 설정, 문제를 제출해 풀도록 하기도 한다. 손씨는 TV 공익광고, 안전 캠페인에서 암벽을 오르는 장면을 촬영을 했을 정도로 낮익은 인물이기도 하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전문가가 밝힌 수칙·매력·장비 암벽등반공원 관리인 손정준(41)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최고 수준의 암벽 등반가이다. 부인과 아이들 모두가 암벽등반을 즐기는 마니아 가족이기도 하다. 손씨는 현재 스포츠클라이밍 연구소(www.koreason.com)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손씨로부터 암벽등반의 매력과 장비 사용법, 안전수칙 등에 대해 들어봤다. ●몸매 가꾸기·스트레스 해소등에 최고 암벽등반의 매력은 무엇보다 스릴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근력과 정신력 강화, 균형감각, 지구력, 순발력을 발달시켜 준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다이어트에 좋으며, 학생들에게는 담력과 집중력 성취감 등을 심어줄 수 있다. 아울러 각 코스마다 40∼60개의 홀드를 거쳐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안전 확보자와 2인1조로 행동해야 안전벨트 등 각종 장치덕에 다른 레포츠에 비해 안전하다. 안전수칙만 지키면 여성이나 노약자들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등반시에는 반드시 확보자와 2인 1조로 등반해야 한다. 한 사람이 암벽을 오를 때 다른 한사람이 밑에서 밧줄을 잡고 안전을 확보해 줘야 한다. 암벽등반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충분히 몸을 유연하게 풀어줘야 한다. 한번 등반한 뒤 30분 이상 휴식을 취해야 하며, 음주 등반이나 실력에 넘치는 무리한 등반은 절대 피해야 한다. ●국제 품질인증 제품 구입토록 암벽등반은 비교적 준비가 간단하다. 그러나 장비는 반드시 국제산악등반연맹(UIAA), 유럽품질인증(CE) 마크가 붙은 제품을 구입해야 믿을 만하다. 등반 필수 장비인 암벽화는 딱딱한 등산화와 달리 홀더에 발끝의 감각이 전해질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다. 밑창은 마찰력이 강한 고무창으로 돼 있다. 암벽화는 꼭 맞는 것이 좋으며, 양말을 신지 않는 것이 좋다. 가격은 7만∼17만원. 로프(자일)는 등반자의 추락을 잡아주거나 하강할 때 사용한다. 대체로 10∼11㎜ 굵기에 40∼50m짜리 자일을 많이 사용한다. 자일은 인장강도 1800∼2000㎏ 등이다. 가격은 25만∼35만원. 초크는 등반시 손이 땀으로 인해서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탄산마그네티슘 분말이다.1만∼3만원. 퀵드로는 두 개의 카라비너(바위틈의 쇠못과 자일을 연결하는 강철고리)를 연결해 놓은 장비이다. 암벽을 오르면서 볼트에 퀵도르의 한쪽 카라비너를 꽂고 다른 쪽 카라비너는 자일에 연결한다. 보통 등반에 10개 정도가 필요하다.1개에 2만∼5만원. 안전벨트(하네스)는 자일과 연결할 수 있도록 돼 있고 동반자가 실수로 떨어질 때 등반자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골고루 분산시켜 부상을 막기 위한 장비다. 가격은 7만∼20만원. ■ 성동구, 저변확대 앞장 10월말까지 무료 교육 성동구(구청장 고재득)는 암벽등반의 저변확대를 위해 오는 8일부터 10월27일까지 응봉산 암벽등반공원에서 ‘무료 암벽등반 교실’을 운영한다. 교육은 초보자를 대상으로 장비 사용법과 하강법, 매듭법 등 체험위주의 실기교육이 실시된다. 각 코스를 수료하면 쉬운 코스를 등반할 수 있다. 성인반은 5월8∼19일,5월29일∼6월9일,6월26일∼7월7일,8월28일∼9월8일,9월18일∼29일,10월16∼27일 등 6회, 초등반은 7월24∼28일,8월7∼11일 2회, 청소년반은 7월24∼28일 1회 등 모두 9회의 교육이 실시된다. 운영시간은 성인반은 월·화·목·금 오후 7∼9시, 초등반은 월∼금 오전 10∼12시, 청소년반은 월∼금 오후 4∼6시까지 2시간씩 실시된다. 인원은 각 기수별로 20명씩 선착순 마감한다. 교육비(보험료 본인 부담)는 무료다. 간소복과 암벽화만 준비하면 된다. 가는 길은 국철 응봉역에서 도보로 10분 걸리며, 버스는 응봉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내리면 된다. 문의 공원녹지과 2286-5673 또는 암벽등반공원 관리사무실 2286-6061.
  • 킬리만자로 올랐다

    가수 진미령씨가 17일 오전 8시(현지시간) 산악인 허영호(52)씨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 킬리만자로 정상(5895m)을 밟는데 성공했다고 18일 위성전화로 알려왔다. 진씨는 이날 오전 0시 키보산장(4700m)을 출발해 8시간 등반한 뒤 정상을 밟고 산을 내려와 해발 3700여m 지점에 있는 호롬보 산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원정대가 지난 12일 오전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마랑구 입구에서 본격적인 등반에 나선 지 엿새 만이다. 진씨는 3500m 지점부터 두통와 구토 등 고산증세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얼굴이 붓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서는 감격을 누렸다. 진씨는 “만년설로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은 정말 아름다웠다.”면서 “일출을 보고 산장에 내려와 다시 올려다보니 저렇게 가파른 산을 올랐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고 기뻐했다. 원정대는 23일쯤 귀국한다.연합뉴스
  • 박범신, 히말라야 여행 에세이 ‘비우니 향기롭다’ 펴내

    박범신, 히말라야 여행 에세이 ‘비우니 향기롭다’ 펴내

    “고소증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추운 곳에서 새우잠 자는 힘든 여정인데도 집이 전혀 그립지 않은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가끔 꿈에 설산이 보일 정도니 거의 중독이라고 봐야죠.” 소설가 박범신(60)씨는 지금까지 히말라야를 여섯차례나 다녀왔다.1993년 절필을 선언하고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뒤 한해 걸러 한번꼴로 히말라야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봄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다. 혼자 한달반을 여행하고 잠깐 서울에 들어왔다가 일행 30여명과 함께 다시 히말라야로 떠나 한달을 더 머물렀다. ‘비우니 향기롭다’(랜덤하우스중앙 펴냄)는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안나푸르나 여행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편지글 형식으로 쓴 산문집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도 메모하고 취재하는 과정이 귀찮아 한번도 여행 관련 책을 내지 않았던 그가 처음 쓴 여행 에세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펑펑 울음을 쏟는다고 한다. 한달 넘게 혼자 여행하던 그도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다.‘사연 많고, 상처 많은 사람들’은 꽁꽁 숨겨놨던 속엣것을 대자연의 품에 부끄럼없이 풀어놓는다.‘이곳 사람들에게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품에 오체투지의 영혼으로 스며들어 나를 여는 신의 길입니다.’(20쪽) 생전 운동이라곤 해본 적 없지만 산 타는 일만은 누구보다 자신있다는 그다. 지난 연말 산악인 엄홍길과 함께 킬리만자로를 오를 때도 엄씨의 뒤를 바짝 쫓았다면서 “중학교 다닐 때 40리를 왕복하던 힘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히말라야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라는 그는 “한동안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히말라야행은 속된 마음을 비우고 참된 영혼을 채워넣는 구도의 여정이다. 초월적 세계에 대한 지향과 세속적 욕망사이의 단층은 히말라야에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무뎌진다.“히말라야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우리 모두의 지금이라는 시간은 과연 어떤 ‘샹그릴라’를 품고 있을까 묻고 싶습니다.”(207쪽) 요즘 그의 마음이 가있는 곳은 티베트의 카일라스산이다. 산 주위를 한번 돌면 원죄가 사라진다는 속설이 떠도는 성스러운 산이다. 학교(명지대 문예창작과)연구실 벽에 대형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바라본다는 그는 “혼자는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해서 동행을 구해 올 여름쯤 가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구자준 부회장 에베레스트 등정

    구자준 LG화재 부회장이 산악인 박영석씨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횡단(8848m) 원정대와 부분 등정하기 위해 오는 28일 출국한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구 부회장은 56세의 나이에도 6500m 높이에 설치되는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할 예정이다.
  •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공직초대석] 국립공원관리공단 산사나이 4인

    일년 열두달 가운데 열달을 산중에서 보내는 사나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산은 일터이자 놀이터이기도 한, 삶의 터전이다. 산에 살고 산에 죽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듯싶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능선 한 가운데쯤 자리잡은 해발 1340m 벽소령 대피소.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속 우동제(44) 대피소장과 허성(32), 이성우(31), 박종규(27)씨가 근무하고 있다. 마침 산불예방을 위한 통제기간(3월1일∼5월15일)이어서 탐방객의 발길은 끊어진 상태다. 휘이∼잉 불어오는 거센 바람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고적감 그 자체. 우 소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 근무한 지 20년이 지났다. 한때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도 잠깐 근무했지만 지리산 품으로 되돌아왔다.“드넓은 지리산이 그리워서…”라고 했다. 이성우씨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의 조경회사에서 근무하다 “산이 좋아서” 이곳 오지생활을 택했다. 허성씨는 산중 생활 2년째, 그리고 막내 박종규씨는 이제 막 보름이 지난 신출내기다. 할 일은 많다. 입산이 통제된 요즘엔 성수기에 대비해 시설물을 보수·점검하는 일에 매달린다. 나무로 지어진 대피소 건물이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도록 화창한 날을 골라 외벽에 기름칠하는 것도 큰 일이다. 탐방객이 쓰는 이불을 빠는 것도 이 즈음이다. 수백채의 이불을 꾸러미로 만들어 놓으면 헬기로 날라 산아래에서 세탁한다. 등산로를 돌며 바람에 날려온 비닐봉투나 담배꽁초 같은 쓰레기 청소 역시 빠지지 않는 일과다. 그래도 요즘엔 쓰레기가 한결 줄었단다. 우 소장은 “탐방문화가 참 많이 좋아졌다.10여년 전만 해도 쓰레기를 줍느라 종일 땅만 보고 걸었을 정도”라고 했다. 성수기엔 몸도 마음도 덩달아 바빠진다. 탐방객 이부자리 정리부터 시작해 실내 청소를 하는 데만 꼬박 3시간 넘게 걸린다. 오후는 고달픈 시간의 연속이다. 밀려드는 탐방객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고, 간이매점에서 이런저런 물품을 팔거나 때때로 벌어지는 탐방객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기도 한다. 산이 좋아서 선택한 근무지지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밀 때도 있다. 과음으로 술 주정을 부리는 탐방객 탓이다. 허성씨 말처럼 “술 마시고 잠도 못자게 하면서 행패를 부릴 때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정도”지만 그래도 참고 지낼 도리밖엔 없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조난당한 탐방객을 구조하는 일이다. 구조요청은 해질녘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데, 사유도 갖가지다. 발목을 접질렸거나, 하산길에 힘에 부쳐 탈진하는 사례가 많다. 탐방로가 좁아 여럿이 달라붙을 수 있는 들것 사용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몇 시간동안 업은 채로 험한 산길을 내려 갈 수밖에 없다. 무릎이 저리고 땀이 쏙 빠지는 일이지만 보람은 크다. 조난객과 인연을 쌓아가기도 한다. 미혼인 허성씨는 “지난해 구해준 여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연락이 온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맥빠지는 ‘구조요청’도 있다.“랜턴이 없다.”거나 “건전지가 다 떨어졌다.”는 사람들이다. 할 수없이 장비를 갖춰 출동하지만,“기본장비도 갖추지 않고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허탈할 뿐”이다. 우 소장은 “매표소에서 되돌려보내기는 하지만 아무런 장비없이 굽높은 구두를 신고 오는 여성들도 있다.”면서 “지리산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전문 산악인도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며 철저한 사전준비를 당부했다. 이들이 산아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은 열흘에 이삼일이 고작. 나머지는 고스란히 산에 바쳐진다.“외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빙그레 웃음만 되돌려보낼 뿐이다. 글 사진 지리산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발언대] 청소년 게임 중독 줄이려면/차정섭 청소년위원회 정책홍보관리관

    “그게 소원이라고 적었냐? 다시 적어!” 지난 2월12일, 문경새재 도립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있었던 전국산악인 합동시산제에 참석했던 아이가 달빛태우기 소원지에 ‘게임 많이 하게 해 주세요.’라고 적었다가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하는 시간을 밥 먹는 시간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초등학생이 ‘게임을 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죽게 해 달라.’고 항변까지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광경은 흔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왔다. 일차적인 책임은 그동안 아이들이 인터넷 환경에 통제 없이 자라도록 내버려 둔 어른들과 이런 환경이 형성되도록 방치해온 사회에 있다. 청소년위원회가 지난해 말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온라인 게임 운영 실태’를 보면 게임 이용자의 22.1%가 부모 동의를 받고 회원가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나머지 학생들은 부모 동의 없이 게임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들 중 상당수는 요금 과다청구나 게임 중독 증세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인터넷 자체를 못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녀에게 갑자기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면 담배를 처음 끊은 어른들처럼 말문을 닫거나 우울증, 주의력 산만, 심지어 강하게 반항하는 성격까지 보이게 된다고 한다. 가령 부모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면서 아이에게 방에 들어가 동화책을 읽으라고 한다면 그 아이가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을 해보자. 자칫 책속의 글씨들이 벌레처럼 기어 다니거나 동화책 내용과 상반된 게임물을 상상으로 그려대며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녀들의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모들이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이에게 주는 용돈을 조절하거나 게임 이용 상한시간 설정, 생활계획표 실천, 컴퓨터를 거실로 옮기는 등 가족들의 노력이 동반되면 더욱 좋다. 청소년보호를 담당하고 있는 청소년위원회도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모니터링 등을 통해 강력한 단속은 물론 이용 명세서 발행 등 건전한 인터넷 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 게임산업협회와 협의하여 업계 스스로 자율규제 방안을 확대하도록 유도하고 장시간 게임 이용때 경고문구가 나오거나 게임이용 시간 알림 서비스 제공, 일정시간 이상 게임이용을 자동으로 제한하는 서비스 제공 등을 추진하겠다. 차정섭 청소년위원회 정책홍보관리관
  •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아듀 2005 희망을 쏜 사람들](6)동료시신 운구 엄홍길 대장

    지난 6월,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계명대 산악회원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떠난 엄홍길(46·트렉스타 기술이사) 대장의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박무택 대원의 유품을 안고 귀국했다. 세계 등반사상 유례 없는 ‘죽음의 지대’ 8000m 고도에서의 시신 운구작업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대장정은 성공을 거뒀다.365일간의 준비와 77일간의 사투 끝에 엄 대장은 마침내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눈 파트너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친구여, 이제 편히 잠드소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그는 지난해엔 또 하나의 고봉 얄룽캉(8505m)에 올랐다. 내년 2월로 예정된 로체샤르(8400m)마저 완등하면 그는 세계 최초의 ‘14+2’ 등반 계획을 마무리짓게 된다. “로체샤르를 등정한 다음엔 8000m 이하의 미답봉(未踏峰)에 오를 생각입니다. 조난당한 네팔 현지의 셰르파와 한국의 산악인 유족들을 돕는 일도 하고 싶어요. 꿈은 이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희망대로 그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지난 11월부터 ‘히말라야 휴먼장학금’을 산악인 유자녀들에게 전달해오고 있다. 메말라만 가는 이 시대, 진정한 산사나이의 따뜻한 행보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1960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 대장은 세 살 때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의정부 도봉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산사람의 운명은 이미 이때부터 예정된 셈이다. “어머님이 산 입구에서 음식 장사를 했어요. 어머니 등에 엎혀 하루에도 몇번씩 등산로를 오르내리곤 했지요. 어떨 땐 내가 전생에 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 대장은 1985년부터 20년 동안 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에 36번 도전해 15번 성공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의 희망의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별명대로 ‘히말라야의 탱크’다. 마흔둘의 나이에 대학(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에 입학한 그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티베트 등을 오가며 정말 필요했던 것이 중국어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젠 산의 속마음, 그 은밀한 속살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엄 대장. 그는 지금 ‘자연탐험학교’(가칭)를 세우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꿔가고 있다.“자기절제력이 부족하고, 뭐든지 쉽게 포기하고, 주변을 배려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히말라야 같은 대자연의 기상을 심어주고 싶어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지요.”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마니아] 용산구청 산행동호회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

    “주말을 이용해 23회에 걸쳐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백두대간으로부터 배운 것을 용산구 발전을 위해 풀어내야죠.” 산을 좋아하는 서울 용산구청 직원 5명이 지난해 3월부터 2년에 걸쳐 백두대간 남한 쪽 전구간 734.65km를 밟았다. 지리산 성삼재에서부터 진부령까지다. 이들은 아마추어들이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전문 산악인처럼 바뀌었다. 용산구의 대표 ‘산(山)사람’이 된 이들은 “통일이 되면 진정한 백두대간 종주를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입을 모았다.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 용산구청 주민자치과 박승일(41)씨를 대장으로 김명선(40·원효로 제1동)·서오성(37·총무과)·신성철(34·총무과)·윤일영(52·재난안전관리과)씨 등 5명의 초보 산악인들은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 위한 팀 이름을 ‘마루금’이라고 정했다.‘마루금’은 산맥과 산맥,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선이라는 순우리말이다. 평소 산을 좋아하는 박승일씨가 2003년 용산구 직원 전체가 참여한 가을산행 뒤풀이 자리에서 몇몇 친한 사람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제의한 것이 ‘마루금’탄생의 시작이다. 백두대간 종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단지 ‘한 번 해보자.’는 강한 의지만 있을 뿐이었다. 박승일 대장은 “농담처럼 던진 말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2년 가까이 종주를 하면서 위험한 순간이나 중단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동료의식으로 잘 견뎠다.”고 말했다. ●첫 등반때 과태료 물기도 ‘마루금’의 첫 등반은 지난해 3월12일 지리산에서 시작됐다.‘소구간 종주법’(구간을 작게 나눠 종주하는 방법)을 이용해 종주노선은 ‘시남종북형’(始南終北形·남쪽 지리산에서 시작해 북쪽 진부령에서 마치는 유형)을 택했다. 첫 등반부터 ‘마루금’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당시 지리산은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이었기 때문에 산행할 수 없었지만,‘마루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산행을 감행했다. 결국 공무원이 또 다른 공무원인 지리산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을 부과받은 것이다. 김명선씨는 “서울 용산구청 공무원이라는 사실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면서 “공무원은 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루금’은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설악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 굽이굽이 총 734.65km 구간을 23회 산행, 총 42일간의 일정으로 종주에 성공했다. 그동안 오른 산이 지리산·덕유산·속리산·소백산·태백산·오대산·점봉산·설악산 등 이다. 산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용산구청 직원들의 응원은 계속 늘어갔다. 박승일 대장은 “중간에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자꾸 늘어만 가는 구청직원들의 응원과 관심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결국 용산구청 전체의 힘”이라고 말했다. ‘마루금’의 또 다른 대원인 서오성씨는 “마지막 등반일이었던 10월22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새벽 미시령에서 맞은 하얀 첫눈과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설경은 백두대간 종주 완성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루금’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벌써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우리나라 13정맥(남한 9정맥·북한에 4정맥)을 모조리 오르는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의 기쁨을 원동력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남한쪽 9정맥을 등반할 계획이다. 또 통일이 되면 나머지 대간과 북한 지역의 4정맥도 올라 반드시 백두대간 13정맥을 넘겠다는 야무진 포부도 밝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마루금’ 백두대간 종주일지 (1)성삼재∼만복대∼정령치∼여원재 ▲2004년 3월12일(금)∼3월13(토) ▲백두대간 첫 번째 산행. 산불방지 출입통제 기간에 산행을 했기 때문에 적발돼 과태료 10만원씩 부과받음. (2)여원재∼고남산∼치재∼봉화산∼중재 ▲2004년 4월9일(금)∼4월11일(일) (3)중재∼백운산∼영취산∼육십령 ▲2004년 5월7일(금)∼5월8일(토) (4)중산리∼지리산∼성삼재 ▲2004년 5월23일(일)∼5월25일(화) (5)육십령∼덕유산∼빼재∼삼봉산∼소사고개∼대덕산∼덕산재 ▲2004년 6월10일(목)∼6월13일(일) ▲산장에서 식수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고생. 야박한 식당 주인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한 곳. (6)덕산재∼부항령∼삼도봉∼밀목재∼화주봉∼우두령 ▲2004년 7월16일(금)∼7월18일(일)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산행을 감행.(7)우두령∼황학산∼궤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금산∼작점고개 ▲2004년 7월23일(금)∼7월25일(일) (8)작점고개∼용문산∼큰재∼백학산∼지기재∼신의터재 ▲2004년 8월13일(금)∼8월15일(일) (9)신의터재∼화령재∼봉황산∼비재∼형제봉∼속리산∼밤티재 ▲2004년 9월10일(금)∼9월12일(일) (10)밤티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버리미기재 ▲2004년 10월8일(금)∼10월10일(일) (11)버리미기재∼희양산∼이화령∼조령산∼조령3관문 ▲2004년 10월22일(금)∼10월25일(월) ▲고도차가 심한 곳이어서 산행이 힘들었지만 가을 단풍의 전경이 힘든 것을 모두 보상해 줬다. (12)조령3관문∼포암산∼대미산∼차갓재 ▲2004년 11월12일(금)∼11월14일(월) (13)차갓재∼황장산∼벌재∼저수재∼도솔봉∼죽령 ▲2004년 12월11일(토)∼12월12일(일) (14)죽령∼소백산∼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 ▲2005년 1월 22일(토)∼1월23일(일) ▲소백산 칼바람을 맞으며 산행했지만 설경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는 곳. (15)늦은목이∼선달산∼구룡산∼태백산∼화방재 ▲2005년 3월25일(금)∼3월27일(일) 16화방재∼함백산∼매봉산∼피재∼건의령∼덕항산∼황장산∼댓재 ▲4월15일(금)∼4월17일(일) 17댓재∼두타산∼청옥산∼백봉령 ▲2005년 5월27일(금)∼5월29일(일) 18백봉령∼석병산∼삽당령∼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2005년 6월10일(금)∼6월12일(일) 19대관령∼선자령∼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2005년 7월15일(금)∼7월16일(토) ▲대관령 드넓은 목초지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 백두대간의 보너스 구간이란 말이 실감난다. 20진고개∼동대산∼두로봉∼약수산∼구룡령 ▲2005년 8월13일(토)∼8월15일(월) 21한계령∼점봉산∼단목령∼조침령∼쇠나드리∼갈전곡봉∼구룡령 ▲2005년 9월23일(금)∼9월25일(일) 22미시령∼공룡능선∼희운각∼대청봉∼한계령 ▲2005년 10월13일(목)∼10월15일(토) 23미시령∼상봉∼신선봉∼병풍바위∼마산∼진부령 ▲2005년 10월21일(금)∼10월23일(일)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최진실·손현주 히말라야로 백혈병환자와 새달1일 등반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부부로 나와 열연을 펼쳤던 탤런트 최진실, 손현주가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히말라야에 간다. 이들은 새달 1일부터 약 8박9일 일정으로 의정부 성모병원 백혈병 환자들 산악모임인 ‘루 산악회’ 회원들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091m) 남면 베이스캠프(4200m)를 등반할 예정이다. 이번 등반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이들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등반대를 이끌 히말라야 14좌 완등자 한왕용(39)씨와 친분이 두터운 ‘준 산악인’ 손현주가 일찌감치 동행을 약속했고, 손현주의 소개로 ‘장밋빛 인생’에서 암 환자를 연기했던 최진실도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백혈병 환자 7명을 포함, 모두 20여명으로 꾸려질 등반대에는 탤런트 신애와 천주교 경기교구청 홍창진 신부도 함께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울트라마라톤 맨/딘 카르나제스 지음

    “어제 신문에서 에베레스트 산을 무산소 등정하는데 성공한 산악인에 대한 기사를 봤어. 나중에 기자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거기 올라갔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뭐라고 답했는 줄 알아? ‘난 죽을려고 거기 오른 게 아닙니다. 살려고 올라간 거지요.’” ●MBA출신 딘 카르나제스 자전적 이야기 MBA 출신으로 수십만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딘 카르나제스는 서른 살 생일을 맞은 날 아침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늦은 생일파티후 낡은 운동화를 꺼내 신고 밤새워 50㎞를 달린다. 이어 기진맥진한 그를 데리러 온 아내의 차에서 실신 직전 이렇게 말한다.‘내 안의 스위치가 비로소 켜졌다고.’ ‘울트라마라톤 맨’(공경희 옮김, 해냄 펴냄)은 일반 마라톤의 열배에 해당하는 420㎞를 75시간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완주한 미국의 울트라마라톤맨 딘 카르나제스의 실화를 담은 자전적 휴먼스토리다. 고교때 크로스컨트리 선수였던 지은이. 하지만 그후 15년간 달리기와 담을 쌓고 술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지내던 중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듯한 심각한 공허함에 직면한다. 성인이 된 후 그는 내내 마감을 지키고 다음 일을 쫓아가며 살아왔다. 멈춰서 돌아보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뭐가 중요한지도 더 이상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부유한 라이프스타일과 보너스, 훌륭한 복리후생에 익숙해졌지만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은 무시할 수 없었다. ●서른살에 인생 허비하고 있음을 깨달아 그러던 서른 살 생일날 한 산악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자신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회사 현장이라는 함정에 가려서 정말 중요한 것들은 돈을 벌고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비틀어 버렸음을 알게 된다. 그는 화려한 쇼핑가가 몰려 있고, 승용차로 사람을 판단하는 대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날 밤 불현 듯 예전의 육상 선수시절 기쁨을 누렸던 달리기에서 숨쉴 공간을 찾기에 이른다. 50㎞를 밤새워 내달린 후 그는 진정 자신이 원했던 삶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이후 고급차와 넓은 저택, 유복한 일상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출근 직전 새벽마다 20여㎞씩 남몰래 연습을 한 끝에 160㎞를 쉬지 않고 달리는 ‘서부주 100마일 대회’에 출전, 완주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거듭난다. 그후 그는 시에라 네바다와 몽블랑의 험난한 산맥을 달려서 넘기도 하고,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섭씨 50도의 데스밸리를 가로지르는가 하면, 세계 최초로 남극을 달린 마라토너가 된다.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힘들기로 유명한 2004 배드워터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승리한다. 딘은 처음엔 자기를 만나고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달리지만, 나중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달린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며 생명이 꺼져가는 여자 아이를 돕기 위해 이틀 밤낮을 혼자 뛰면서, 힘들 때마다 아이의 사진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는 달리고 또 달림으로써 오래 전 빛나던 자신을 되찾고, 관심을 자기 자신에서 세상 사람들로 확장시켜 간다. ●“도움 필요한 사람 위해 오늘도 달린다” 160㎞를 한번에 내달리는 그에게 사람들은 자주 ‘왜 그런 일을 하나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가장 대답이 힘든 질문이다. 그는 여러가지 이유를 말한다.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달리고,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고. 뛰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달리고, 삶이 더 활기를 띠고 강렬해지기에 달린다고. 그러면서도 평온을 누릴 수 있기에 달린다고. 하지만 이를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앞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한 등반가의 말처럼 ‘살기 위해서 달린다.’가 가장 훌륭한 답변이 아닐까? 책은 지은이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의 달리기 같은 무언가를 찾아 나서자고 부추기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달리기’는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일본은 지금 ‘등산열기’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일본은 지금 ‘등산열기’

    국토의 70%이상이 산악지형인 일본에서 등산은 단연 인기다. 등산인구가 1000만명이고, 수백m에서 3000m급 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장들이 잘 정비돼 있어 등산 애호가들을 부른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이른바 ‘일본 100대 명산(名山)’을 완등하면서 단풍시즌과 맞물려 등산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만 등산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주말인 지난 15일 도쿄 외곽 다카오산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산을 오르내리는 4시간여 동안 서양인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어린이들도 많았다. 간편한 복장에 등산용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수시간 걸리는 코스를 따라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활기찼다. ●등산열풍에 불 붙인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산악회 회원으로 열렬한 등산 애호가다. 다섯살 때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의 손을 잡고 가루이자와 하나레야마(1256m)에 오른 뒤 후지산, 나스다케, 탄자와산, 반다이산 등 유명산들을 오르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달 27일부터 1박2일간 2000m가 넘는 야마나시현 야쓰가다케 연봉들을 종주했다. 산장에서 자며 등산을 한 건 1992년 9월 이후 13년만이다. 왕세자는 “초기에는 산정에 도달하는 만족감을 즐겼지만 요즘은 대자연과 하나가 돼 등산일정 전체를 즐긴다.”고 등산전문지 등을 통해 밝혔다. 니가타현에 사는 초등학교 6년생인 오쿠라(12)는 1999년 어머니(41)의 권유로 아버지(42)를 따라 등산을 시작했다. 오쿠라는 본격적으로 일본 100대 명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3년만인 지난달 24일 100대 명산을 완등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200대 명산 등 새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도쿄인근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한 남자 직원(57)은 2003년 7월 난치병인 파킨슨씨병에 걸렸다. 그렇지만 그는 제2봉인 야마나시현의 기타다케(해발 3193m)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발병후에도 무려 27번을 올라 지난 9일 100번째 기타다케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해발 2000~3000m급 외국인에 인기 제1봉인 해발 3776m의 후지산은 물론 다카오산과 닛코의 난타이산(해발 2484m) 등 도쿄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2000∼3000m급 산에서도 외국인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왜 외국인들이 일본의 산을 찾을까. 지난해 여름 일본 출장길에 주말을 이용, 무박2일로 후지산을 올랐던 필립스의 마케팅 매니저 마이클 카우프만(48)은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에 올라 보길 원하는 서양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열정적으로 일본 산을 오르는 한국인들도 많다. 도쿄의 한 40대 주재원은 “일본 산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유명 산같은 정체현상 없이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며 일본 등산에 본격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2년동안 이른바 ‘100대 명산’중 40개를 정복했다. ●“산장에서 자려면 예약은 필수” 등산전문서적 ‘일본백명산지도장’을 보면 일본의 등산 인구는 1000만명. 등산 애호가들의 경우 연령층이 높고 수입도 안정돼 일정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10년 장기불황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등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등산전문 출판사 ‘산과 계곡’에 따르면 등산의 경우 “옥외스포츠 중에서 최근 10년 이상 애호가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인기가 일과성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전국체전에 산악경기가 1946년 제1회 대회 때부터 포함된 것도 등산인구가 유지된 요인으로 꼽았다. 이런 영향으로 일본 등산의 미래를 짊어질 고교산악부 활동도 활발하다. 전국고교체육연맹에 따르면 산악부가 활동중인 고교 수는 10월 현재 1477개, 부원 수는 7663명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은 역시 도쿄도 외곽의 다카오산이라고 한다. 이 산은 해발 599m에 지나지 않지만 수시간∼십여시간대의 다양한 등산코스가 갖춰져 있어 연간 250만명이 오른다. 지리산처럼 장시간 종주 등산로가 잘 정비된 도쿄인근 가나가와현 탄자와산(1567m)은 전문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40년 산악인으로 정상의 미야마산장 주인인 이시이 기요시는 “산장에서 자고 가려면 예약은 필수”라고 말할 정도로 붐비는 산이다. ●100년의 일본 근대등산 역사 일본의 근대적인 등산역사는 올해로 100년째이다.100주년을 맞은 일본산악회는 나루히토 왕세자는 물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 등 유명인사 다수가 회원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등산문화 확산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산악회의 100주년 기념행사 열기도 뜨거웠다. 지난 8∼17일 일본 최대의 서점인 마루젠(도쿄역 앞) 4층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 도서·회화전은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된 관련 전문서적들에는 유명인사들의 등산이야기도 소개됐다.1988년부터 등산을 시작한 후와 데쓰조 공산당 의장은 “산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등산인구가 늘어나면서 명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고 등산로가 황폐해지고 있다. 후지산도 예외는 아니다. 매년 7∼8월만 일반에 개방하는데도 환경이 파괴되자 발족 7년째인 ‘후지산클럽’이 후지산 환경복원에 나섰다. taein@seoul.co.kr ■ 그밖의 레저인구는 일본의 등산인구는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반면 스키나 스노보드는 장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애호가들의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스키·스노보드를 즐기는 인구는 10년전의 절반인 760만명으로 최근 조사됐다. 이는 “스키 등은 즐기는 연령층이 비교적 젊고, 그에 따라 수입도 적은 편이어서 비용이 적게 드는 여가생활로 바꾼 것”으로 분석됐다. 낚시 애호가는 1690만명으로 주요 레저중 제일 많다. 낚시도 일부 고가의 장비가 있기는 하지만 바다와 강, 수로가 많은 일본에서 장비 비용이나 교통비가 비교적 적게 들기 때문에 남녀노소 두루 즐긴다고 한다. 이밖에 골프인구도 등산과 비슷한 978만명으로 집계됐다. 야구인구가 600만명인 것도 눈에 띈다.(‘일본백명산지도장’ 참고) ■ 창립 100주년 日산악회 히라야마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대학시절(니혼대학) 산악부에서 활동하고 일본남극관측대원을 세차례나 지낸 일본산악회 히라야마 젠기치(71) 회장은 일본의 등산문화도 고령화 추세에 따라 변했다고 소개했다. 건축공학 전문가로 에베레스트 원정에도 나섰던 그를 도쿄시내 일본산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일본의 산악단체 현황은. -주요 단체는 5개다. 일본산악회는 회원이 6000명이다. 올해가 창립 100주년(15일 100주년 기념식)이다. 이밖에 일본산악협회(회원 4만명), 노동자산악연맹(3만 5000명), 히말라야협회(800명),HATJ(1000명) 등이 있다. ▶산악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 수는. -약 10만명이다. 이들은 전문 등산기술을 배우고, 안전교육 등을 받는다. 나머지 개인 애호가들은 안전문제 등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한다. 전문적인 안전 및 환경교육체계가 없어 문제다. ▶등산의 문제점은. -안전사고가 많다. 한 해 200∼300명이 등산관련 사고로 사망한다. 부상자도 매년 1000∼1300명이나 된다. 개인 등산 애호가들의 경우 조직적이지 않기 때문에 (험준한 일본산에서)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크다. 환경보호도 중요한 문제다. ▶등산인구의 주류는. -중장년층이 주류다. 산악회 회원도 100년전에는 평균 27세였으나 지금은 64세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해 단체에는 가입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과의 산악인 교류 현황은. -정례적으로 양국 산악인들이 교류한다. 한국, 일본, 중국의 3국 교류도 활발하다. 특히 3국 학생산악부원들의 교류등반은 기술·금전적으로 지원한다. 일본의 등산역사는 100년으로 기술적으로는 한국보다 20년정도 앞서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8000m급 14좌 전체를 오른 사람이 3명이나 되지만 일본인은 한 명도 없다. ▶등산기술은 좋은데 일본인의 세계 유명산 등반이 적은 편인가. -기록을 의식한 등산 인구가 줄고 있다. 등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등산 그 자체를 즐긴다. 산악회가 주도, 높은 유명산에 오르는 시대는 지나갔다. 반면 한국은 등산문화와 역사가 젊어 기록 등반을 선도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은 현재 등산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일본산악회가 역점을 두는 분야는. -환경·자연보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도쿄 다카오산에는 산악회가 관리하는 숲이 있다. 앞으로 등산은 산에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을 보호·정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등산장비 산업의 수준은. -등산 선진국들인 유럽에는 뒤져 있다.(일본인들은 등산을 할 때 장비를 잘 갖추는 편이어서, 지팡이나 산소통, 지도 등 관련산업이 발달한 편이다.) taein@seoul.co.kr
  • [박완서 살아가는 이야기] 산이여 나무여

    며칠 전 후배문인들과 일박이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섬진강 유역은 내 마음이 가장 이끌리는 데고, 갔다 오면 더한 그리움으로 남는 고장이다. 섬진강 굽이마다 지리산 골짜기마다 펼쳐 보이는 절경도 절경이려니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쪽에 각별한 정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거의 일년에 한번씩은 가던 곳을 올해는 봄에 다녀오고 또 갔으니 두 번 간 셈이다. 주로 매화와 산수유가 한창일 때 가던 고장을 오래간만에 가을에 가보니 그 맛 또한 새롭고 각별했다.단풍은 아직 일렀지만 풍년든 들판의 황금물결은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을 보면서 느끼는 흐뭇한 충만감을 무엇에 비길까. 어려서부터 익히 듣던, 풍년든 문전옥답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농경민의 정서를 요새 젊은이들은 알기나 알까. 예전엔 쌀밥에 배부른 게 행복의 첫째 조건이었다. 들판의 가을경치와 산과 강에서 난 맛있는 음식으로 눈과 입을 실컷 호강시키고 나서 숙소는 몇 년 전부터 아주 지리산 사람이 돼버린 여성 산악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씩씩한 그녀가 장만한 집은 그 곳 원주민이 살던 옛날 집이라 내가 잔 뜰아랫방도 흙벽에 장작 때는 구들방이었다. 옛날 문짝은 허술해서 웃풍도 좀 있었다, 나는 방학해서 돌아가 고향집 방에 누운 어린 날처럼 꿈 없는 깊은 잠을 잤다.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잠깐 동안에 알밤을 점퍼 양쪽 주머니 가득 주웠다. 도토리도 지천으로 눈에 띄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후배들이 텃밭에서 호박잎을 따다가 다듬고 있었다. 대나무 평상에 앉아 호박잎 줄기를 벗기는 일을 거들면서 오랜만에 완벽하게 평화로운 행복감을 맛보았다. 아침 밥상에는 말랑하게 찐 호박잎 말고도 싱싱한 푸른 이파리들도 듬뿍 올랐는데, 알고 보니 댓돌 밑에 무성한 푸른 것들이 다 먹을 거였다. 풋고추와 함께 생된장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예로부터 흉년이 들면 산으로 가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왜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우리를 후하게 대접해준 그녀는 씩씩할 뿐 아니라 웅숭깊기도 하다. 관광개발로 해마다 모습이 변해가는 명소를 답사하기보다는 지리산을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서 보기를 권했다. 우리는 그녀의 안내로 섬진강을 건너서 백운산으로 올랐다. 강을 사이에 끼고 마주보는 산이었다. 중턱까지는 차로 오르고 나서 완만한 등산로를 쉬엄쉬엄 걸어서 오르면서 그녀가 지시하는 지점에서 바라다보는 지리산은 보는 시점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지만 한결같이 장엄하고 관대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섣불리 지리산을 정복해 보겠다고 날치던 젊은 날에는 못 보던 지리산의 진면목이었다. 백운산도 단풍이 제대로 들려면 보름쯤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자지러지게 물든 단풍나무 옻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일행 중에는 몇 년 전부터 그 지방에 정착한 시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어떤 키큰나무를 가리키며 고로쇠나무라고 했다. 그 나무엔 단풍이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엉성하게 매달려 있어서 불쌍해 보였다.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고로쇠나무도 원은 단풍이 곱게 드는 나무인데 물오를 때 사람들이 너무 극성맞게 고로쇠 물을 채취해가서 가을에 저 꼴이 됐다는 것이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라면 인정사정 없이 덤벼드는 우리들의 그악스러운 건강 열에 문득 진저리가 쳐졌다. 그 물이 정말 그렇게 몸에 좋은 것일까. 만일 검증된 효능이 있다면 더더욱 나무도 살리고 그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나무 눈치 봐 가며 조심조심 채취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참담한 고로쇠나무가 아직도 나에게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나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허영이 있다면 그건 우아하게 늙는 것인데,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든, 알량한 문명을 위해서든 이렇게 내 몸의 진액을 낭비하다가는 아마 마음씨 좋은 고로쇠나무처럼 불쌍하고 추한 말년이 될 것 같아서이다. 글 쓰는 일이란 몸의 진액을 짜는 일이니까.
  • 휴먼등정대 ‘휴먼 장학금’

    휴먼 등정대가 이번에는 산사람을 위해 나섰다.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등정 중 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던 ‘휴먼 등정대’가 이번에는 히말라야에서 희생된 산악인과 셰르파 유족을 위한 장학금 조성, 네팔 국민 및 세계 산악인들에게 다시 한번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휴먼 등정대를 이끌었던 산악인 엄홍길씨와 등산 전문 브랜드인 ㈜트렉스타의 합작품이다. 트렉스타는 17일 “3억원의 ‘휴먼 장학금’을 조성, 히말라야 등정 도중 숨진 고 박무택씨의 유족과 한국원정대를 돕다 희생된 네팔인 셰르파들의 유족에게 매월 200만원가량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트렉스타와 엄씨는 이미 첫 번째 장학금을 최근 박씨와 네팔 셰르파 7명의 유족에게 전달했다. 고 박무택씨는 지난해 5월 히말라야 정상 부근에서 조난당해 숨진 채 눈속에 묻혀 있었으나 엄씨가 동료를 차가운 산속에 남겨 둘 수 없다며 1년 만인 지난 5월 말 시신을 성공적으로 수습했다. 엄씨를 도와 장학금을 조성한 트렉스타는 등산화 등 등산 용품 기업. 트렉스타 권동칠 대표는 “규모가 커지면 다른 산악인들의 유족에게로 지급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씨도 “산악인으로서 희생된 유족들을 보살피는 것이 내 산악 인생에서 남은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지금 설득하러 갑니다”

    전문가 광고가 다시 뜨고 있다. 한국야쿠르트의 기능성 발효유인 ‘윌’ 광고에 출연한 배리 마셜 박사가 올해 노벨 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지명되면서 다시 나타난 현상이다. 다소 생소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마셜 박사를 모델로 기용한 한국야쿠르트는 최근 그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제품에 상당한 지식이나 권위를 지닌 전문가를 모델로 삼아 제품의 장점을 호소하는 광고는 꾸준히 이용되는 광고 기법이다. 제품이 기술적으로 복잡하거나 소비자에게 제품의 신뢰감을 고취할 필요가 있는 때에 적합하다. 종합광고회사 LG애드 관계자는 “구매 결정에 갈등하며 외부 정보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데는 전문가가 아주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최근 가전 브랜드 디오스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해당 컬렉션 제품별로 전문가 모델을 쓰고 있다. 그 중 디오스 광파 오븐의 경우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학교 ‘르 코르동블루’파리의 수석 요리사 브루노 스트릴을 모델로 내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한때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르 코르동블루의 요리 비법을 전수하기 위해 르 코르동블루-숙명 아카데미에서 요리 강의를 한 적도 있다.“조리시간이 짧을수록 맛이 살아납니다.”라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알리면서 이를 구현시키는 제품으로 해당 광고 제품을 추천하고 있다. 또 디오스 컬렉션은 주방 가전제품에 대한 신뢰감을 확보하기 위해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 총조리장 폴 셴크, 소믈리에(포도주 감별사) 에퇴앙 도논, 소아과 의사 조기혜씨, 국내 최초 파티플래너 정지수씨 등의 전문가들을 광고에 대거 포진시켰다. 아파트 광고에도 전문가 바람이 불고 있다. 남광토건의 하우스토리의 새 광고에는 건축계의 거장 류춘수씨가 출연한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설계자인 그는 현존하는 한국 건축계의 최고 거장으로 꼽힌다. 하우스토리의 설계부터 참여한 그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얹는 것이 바로 집”이라는 그의 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10여년전 동서식품의 커피 광고 명사 시리즈에도 출연 경험이 있다. 이밖에도 캐논 디지털 카메라를 수입, 판매하는 LG상사 역시 영상문화를 이끌고 있는 사진 작가 김중만씨, 영화 촬영 감독 정일성씨를 모델로 기용한 광고를 내보내면서 전문가의 효과를 톡톡히 본 바가 있다. 호주 산악인 데이비드 골디스가 등산용품업체 K2코리아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제품의 기능과 성능면에서 뚜렷한 품질 차이가 없을 경우 전문가를 통한 신뢰감 고취가 중요하다.”며 “중복 출연과 비싼 출연료를 받는 빅 모델과 비교해도 효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동고동락 23개월… 백두대간서 하나되다

    동고동락 23개월… 백두대간서 하나되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이은상의 산악인 선서) 조달청 공무원 39명이 장장 23개월에 걸친 도전끝에 백두대간 종주(남측구간)에 성공했다. 지난 2003년 10월 지리산 중산리에서 시작한 이들의 산행은 지난 10일 오후 백두대간 남측구간 끝인 ‘진부령’에 도착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산행거리만 784㎞에 이른다. 이들은 주5일제가 시행되기 전인 지난 6월까지는 격주 일요일 산행에 나섰다. 주5일제가 시행된 7월부터는 매주 토요일 산행을 강행했다. 종주시간을 당기기 위해서다. 종주에 대한 의무도 어떤 포상도 없었지만 10㎏이 넘는 배낭을 메고 눈·비와 찬바람, 안개 속을 뚫으며 한반도의 등뼈를 차곡차곡 밟아 나갔다. 끝없는 도전의식이 이들을 이끄는 동력이었다. 동료간의 협력과 상생의 다짐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산악동호회원 12명으로 등반대(대장 김기환 전기통신구매팀장)를 구성했지만 곧 모든 직원에게 문을 열었다. 첫 백두대간 종주 도전이었고 대부분 아마추어였지만 산행을 거듭할수록 빠르게 적응해 갔다. 초기에는 전원 완주라는 목표로 하루 10∼15㎞를 걸었다.2년째 들어서는 속도감이 붙어 30㎞를 주파했다. 대원들도 놀랄 정도였다. 총 42개 구간을 오르내리는 동안 험상궂은 날씨와 대원들의 크고 작은 부상 등 수많은 변수가 발생, 여러차례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리더가 길을 찾으며 대원들을 독려했고 대원은 서로 짐을 나누고 부축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장비구매팀 윤희경(46)씨는 “산에서 대원들은 모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실감했다.”면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익장을 발휘한 염재현(52) 서울지방조달청장과 감사관실 이순재 사무관, 윤씨 등 3명은 전 구간 완주 기록도 남겼다.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18㎞) 산행에는 종주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대원들이 동참했다. 염 서울조달청장은 “난관을 뚫고 이뤄낸 종주 경험이 급변하는 사회에 맞선 대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열 살 안팎의 일곱 아이들이 눈 덮인 히말라야를 넘고 있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출발해 히말라야를 넘는 대장정. 해발 6000m의 설원은 춥고 가파르고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고산증으로 입술이 퉁퉁 부어오르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이 앞을 막지만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이 검은 거인처럼 이들을 위협하면 아이들은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은 ‘인간의 한계 도전’을 내걸고 히말라야를 찾는 산악인도 아니고, 고산 트레킹을 즐기는 모험가도 아니다. 빼앗긴 땅 티베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다름아닌 피란민이다. 지배자인 중국의 압제로부터, 배고픔으로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는 아이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래 해마다 30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이렇게 고향을 떠나 히말라야를 넘는다. 그중엔 중국 정부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는 승려들이 가장 많고, 가난 대신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는 아이들도 1000명이나 된다.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마리아 블루멘크론 지음, 유영미 옮김, 지식의 숲 펴냄)은 히말라야를 넘어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는 일곱 아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의 눈물겨운 현실을 들려 준다. 다람살라는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이다. 저자는 지난 2000년 4월 15일부터 14일간 아이들을 동행 취재하며 그들의 눈물과 희망을 생생한 다큐멘터리(독일 ZDF 방송)로 담아낸데 이어 이를 책으로 엮었다. 아이들은 왜 부모를 등지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가. 열살 소녀 리틀 페마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오줌을 싼다. 자상한 아버지에서, 언제부터인가 알코올중독자가 된 아버지의 폭력은, 꿈에서까지 아이를 공포에 질리게 한다. 젊었을 적 낡은 엽총만으로 중국군과 싸워 살아남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페마의 엄마는 자유가 있고, 폭력이 없는 곳으로 딸을 보내기로 했다. 여섯살 돌커와 열살의 치메 자매는 가난과 학교 때문에 히말라야를 넘는다. 엄마가 밤새 만든 손가방과 양탄자, 앞치마 등을 팔아서 번 돈을 모았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 돈둡(8)은 의사의 아들로, 마을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2학년부터는 중국인 선생님에게 중국어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돈둡의 부모는 아들이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돈둡을 인도로 보낸다. 가이드 니마가 이들을 인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히말라야 설원을 넘는 일은 목숨을 건 탈출이다. 거기다 중국 공안의 눈도 피해야 한다. 아이들은 무거운 짐에 어깨를 짓눌린 채 졸린 눈을 비비며 어둠속을 헤쳐 나간다. ‘너무 추워. 보이는 건 눈뿐이야. 엄마는 내 신발이 푹 젖어 발이 얼마나 아픈지 알고 계실까?엄마가 로사(티베트의 설)에 인도로 날 찾아오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해야지’. 쓰러질듯 힘든 여정속에서 페마는 이렇게 엄마를 생각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가족곁을 떠난 셋째날 밤, 여섯살 난 어린 동생 돌커를 잘 돌봐 주라던 엄마의 당부 때문에 정작 자신의 힘겨움은 까맣게 잊고 있던 치메는 동생이 잠들자 마자 눈물을 쏟는다. “엄마가 보고 싶었어요. 길은 가파르고 커다란 바위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지요. 멀리 8000m 봉우리들이 검은 거인처럼 우뚝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어요. 너무 두려웠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높은 산, 가파른 길과 싸웠어요. 엉엉 울면서요.” 살얼음이 언 강을 건너고, 눈 지대를 지나 국경에 다다른 아이들은 드디어 ‘자유’를 외친다.1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이번엔 콜롬비아 여객기 추락…탑승 160명 모두 죽은듯

    이번엔 콜롬비아 여객기 추락…탑승 160명 모두 죽은듯

    승객 152명과 승무원 8명이 탑승한 콜롬비아 국적의 전세 여객기가 16일 오전(현지시간) 엔진 고장으로 베네수엘라 서부 산악지역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제세 샤콘 베네수엘라 내무장관은 “파나마를 출발해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하던 콜롬비아 여객기가 이날 오전 3시쯤 카라카스 관제당국에 엔진 고장을 보고하며 비상착륙 허가를 요청한 뒤 10분 만에 시에라 데 페리야 지역에 추락했다.”고 말했다. 추락 지점은 콜롬비아 접경으로부터 불과 20㎞ 떨어진 곳이었다. AP통신은 승객 전원 또는 대부분이 마르티니크 섬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이라고 대통령실의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승무원 8명의 국적은 모두 콜롬비아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헬리콥터 수대가 추락 현장 상공에서 수색 작업 중이지만 카스트로 페레스 레알 베네수엘라 국경수비대 책임자는 “험준한 산악인 데다 날씨마저 좋지 않아 사고 수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는 지난 14일 승객 121명을 태운 키프로스 여객기가 그리스 북부 산악지대에 추락해 전원 사망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틀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산사나이들의 ‘목숨 건 우정’

    히말라야 등반 도중 중상을 입은 동료를 포기하지 않고 사투 끝에 구출해온 등반대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전 11시쯤.35년 만에 세계 최대, 최고 난이도 거벽인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의 루팔벽(4500m) 도전에 나선 루팔벽 원정대 공격조 김미곤(사진 왼쪽), 송형근(오른쪽), 주우평, 이현조 대원은 7550m 지점까지 로프 설치 작업을 마쳤다. 정상을 500m 가량 눈앞에 두고 막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돌조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백m를 수직낙하한 돌파편 하나가 중력의 힘을 빌려 비수가 된 채 김미곤 대원의 왼발등과 오른 어깨로 날아들었다. 김 대원은 발등이 골절되고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 지난 14일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정복이라는 세계 산악사에 남을 쾌거를 달성하고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원정대는 상기된 얼굴로 산악인들의 뜨거운 우정을 확인한 그날의 상황을 털어놨다. 김 대원은 “나 하나 때문에 모두를 죽게할 수 없었고 2차 낙석의 위험도 있어 자일을 끊으려고 칼을 찾았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자일 파트너인 송 대원이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송 대원은 “같이 올라 왔으면 같이 내려가야 한다.”면서 동료들과 김 대원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캠프4(7150m)가 7550m지점에서 밑으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지만 움직일 수없는 동료를 데리고 경사 70도 가까운 암벽과 빙벽을 통과하는 데 6시간이나 걸렸다. 캠프4에서 1차 안정을 취한 뒤 비교적 안전한 캠프1(4900m)까지 김 대원을 옮기는 데 다시 3일이 더 걸렸다. 고락끝에 김 대원을 안전하게 병원으로 옮긴 산악대는 내려온 길을 다시 뚜벅뚜벅 걸어올라가 쉽게 넘보기 힘든 발자취를 남겼다. 송 대원은 “2차 낙석이 올 확률이 거의 90%를 넘었지만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는 것은 산악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담담히 당시 구조 작업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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