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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최악 황사 비상/ “”사막을 숲으로”” 재앙막기 총력

    대규모 황사가 발생,여러 방면에서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천재지변’으로만 보고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한·중·일 3국 정부의 대책과 전문가 의견을 중심으로 황사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집중 조명한다. ■한·중·일 대책. 사상 최악의 황사로 인해 국민 건강은 물론 항공기 결항 등 국가 경제도 큰 영향을 받고 있지만 ‘자연재해’인 황사에 대한 단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한·중·일3국 정부의 노력은 황사 발원지인 중국의 사막을 녹지로 바꾸고,사막화를 방지하는 장기적인 대책에 집중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일 베이징(北京)과 허베이(河北)·산시성,내몽골자치구 등의 690만㏊에 이르는 사막을 푸른 나무숲과 풀로 뒤덮어 황사폭풍을 미리 예방한다는 ‘황사억제 10개년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168억위안(약 2조 6880억원)을 투자하는 ‘황사억제 10개년 계획’에는 사막화 억제 외에 용수확보와 절수 등의관개계획도 포함돼 있다.중국 정부는 농가를 일일이 방문,곡물 대신 나무를 심도록 당부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쏟고있다. 지난해 3월부터 일기예보와 비슷한 ‘황사예보제’를 실시,일반 국민들이 황사에 대처하도록 하는 한편 8월에는 사막화된 토지의 개선,사막화 방지를 위한 정부기관의 책임 등을명시한 ‘사막화 방지법(防砂治砂法)’을 공포했다. 삼북 방호림 사업,양쯔강 상류지역 및 황허강 중·상류 지역의 천연림 보호사업,서부지역 10억 3000만평의 경지를 삼림과 초지로 되돌리는 사업 등도 추진중이다.국가환경보호총국과 중국과학원 전문가들이 ‘과학탐사대’를 결성,황사 발생 지역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은 지구환경기금·오부치기금 등을 활용해 신장 위구르·내몽골 지역의 사막녹화사업,고비 사막 주변의 방풍림 조성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협의체’를구성,황사 관련 조사·연구 및 관측·예보기능을 마련했고‘황사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고 있다.황사발생시 급증하는 미세먼지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태풍주의보 등과 비슷한 ‘미세먼지(황사) 경보제’도 조만간 도입하기로했다. 한·중·일 3국은 또 ‘LPT 프로젝트’를 통해 이산화황·이산화질소·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이동 경로 및 이동량을 측정해 공동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베이징 김규환 특파원·류길상기자 ukelvin@ ■中 피해 현황. 20일 베이징(北京) 등 중국 대륙의 북부지역이 90년대 이후 최악의 황사폭풍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황사폭풍은 21일부터 수그러든 뒤 22일에는 정상적인 날씨를 되찾았다. 지난 18일 중국 서북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일대에서시작된 황사폭풍은 20일 중국 대륙의 서북지역에서부터 화베이(華北)지역을 강타했다.간쑤(甘肅)성 중서부와 닝샤(寧夏)회족자치구 북부,내몽골자치구 중서부의 일부 지역은 시계제로로 나타나는 등 암흑같은 날씨를 보였다.특히 베이징의하늘은 노란 안개가 낀 것처럼 물들었으며,시계가 100m 이하로 떨어져 대낮에도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켠 채 거북이운행을 해야 했다. 이 때문에 베이징·간쑤성·내몽골·닝샤·산시(山西)성 등에 사는 1억 3000만명의 인구와 28만 5000㏊의 농경지,236만㏊의 초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중국 국가환경보호총국은 올해 3∼4차례의 강력한 황사폭풍이 더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해마다 3∼5월 봄철에 주로 발생하는 황사폭풍은 시베리아우랄산맥 인근지역에서 발생한 차가운 공기가 신장위구르·닝샤자치구 일대의 상공에서 남쪽에서 형성된 따뜻한 공기에 밀리는 과정에서 커다란 기압차가 발생하면서 만들어진다. 지난해에는 황사폭풍이 32차례 발생했으며,피해액은 연평균540억위안(8조 640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환경보호총국이밝혔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토양·호수 산성화 방지. [황사 연원] 몽골 및 중국대륙의 사막지대와 황허강 유역의황토지대에서 발생한 흙먼지가 상승기류를 타고 300∼5500m까지 올라간 뒤 편서풍을 타고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진다.국내에서는 신라 아달라왕 21년(174년) 우토(雨土)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기상청에서는 54년 처음 ‘황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오염,얼마나 심각한가] 22일 새벽 3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미세먼지 순간 최고 농도가 2266㎍/㎥를 기록,평균치의 30배를 넘어설 정도로 미세먼지의 오염도는 심각하다.반면 이산화황,이산화질소,오존 등 기타 대기오염물질 농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번 황사때도 이산화질소와 오존의 경우 강한 바람 때문에 오히려 농도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망간,철,니켈 등의 농도는 평소보다 많게는 4배까지 높아지지만 납,카드뮴,크롬 등 유해 중금속의 농도변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이나] 강풍이 불면서 모래알이 구르다가 조금씩 도약하는 상태에서 사막지역의 강한 햇빛이 지표를 가열하면 부력을 받아 공중으로 떠오르게 된다.이때 상공에 편서풍이 불면 한국,일본은 물론 멀리 알래스카,하와이까지 날아가게 된다. [얼마나 많은 양인가] 국립환경연구원의 97년 연구에 의하면 93년 4월23∼26일동안 발생한 황사 1억 400만t중 우리나라동해를 빠져나가는 것으로 추정된 양은 600만t 정도.국내에침적되는 양은 5000t 정도로 추정됐다.[해롭기만 한가] 일본 연구진이 최근 알칼리성 칼슘 등을 함유한 황사덕에 중국 북부지역 비의 산성이온농도지수가 2이상 개선됐다고 밝혔다.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도 막아주고 식물과 해양 플랑크톤에 유기염류를 제공하는 이점도 있다. [추울 때 많이 발생한다?] 중국의 연구에 따르면 한랭기(61∼70년,1811∼1900년)에 평균 황사 빈도가 3.7회/10년인데비해 온난기(1511∼1620년,1721∼1780년)에는 2.1회/10년에불과해 황사빈도와 기온이 반비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류길상기자. ◈‘제1회 국제황사 워크숍’ 주요내용. 한·중·일 3국에서 황사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한 가운데22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주최로 ‘제1회 국제 황사 워크숍’이 열렸다.세미나에서는한국과 일본의 황사에 산화질소나 이산화황 같은 오염물질이 섞이는 것은 중국 베이징 부근에서 이들 오염물질이 황사에 합쳐지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주요 발표내용을 정리한다. ■몽골가뭄 최악황사 主因. ●정용승 교원대교수(2001년에 관찰된 동아시아의 황사현상) 지난해 1월부터 3월까지 태안반도와 청주의 대기오염을 모니터링한 결과,9번의 황사현상이 있었고 기간은 16일 정도였다.가장 강한 황사현상은 중국 북서지방과 몽골지역에서 발원된 것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관찰한 결과,한반도 전역과 동해,알래스카만까지 황사의 주기적 이동이 감지됐다. 황사의 평균 수소이온농도는 7.24로 분석됐다.황사의 알카리성 침전물은 산성비로 인해 산성화된 토양을 일시적으로중화시키는 역할도 기대된다. 올해 황사가 특히 심한 것은 황사 발원지인 몽골과 중국 서북부 지방에서 발생한 가뭄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수자원을 개발해 내몽고 지역의 사막화를 막는 것이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마구잡이 환경파괴도 원인. ●가오 칭 셴 중국 환경과학연구소 박사(중국 황사의 발생과 이동) 지난 54년부터 2001년까지 중국기상자료를 토대로 우리는 중국 상공의 황사의 역사적 추세와 변동 및 이동에 대한 자료를 분석해 왔다.분석 결과 황사가 자연기상 현상임과 동시에 인간활동에 의해 강하게 영향받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가뭄과 건조한 날씨가 황사의 주요한 원인이지만 인간의 무절제한 개발행위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몽골의 중간·최남단지역에서 발생하는 황사는 중국의 북·북서지역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카자흐스탄 동쪽지역도 주요한 황사 발생지로서 중국 신장지역에 영향을 준다. 황사 현상을 한 지역에 국한되거나 이동하는 형태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신장 지역 등에서 일어나는 황사가 강한 기상현상과 결합될 경우 중국의 동부쪽으로 이동된다. ■베이징·신장 온난화 심각. ●마사토시 요시노 일본 쓰쿠바 대학명예교수(동아시아에서의 황사현상 변화추이) 동아시아의 황사의 발생과 이동의 다년간 추이는 기상학 관점에서 분석돼 왔다. 지난 30년간 베이징과 신장 등 중국내 5개 핵심 지역에서의 관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우선 이 지역에서의 지구온난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으며 찬 공기의 유입이 감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중국과 몽골지역에서의 기온이 더 따뜻해지는 반면 열대 태평양지역은더 추워지는 경향이 있었다.황사의 발생빈도는 더욱 빈번해진 반면 그 영향권은 더 좁아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 마오쩌둥 고난의 정치역정

    ◆나의 아버지 모택동-범우사 펴냄. 중국 베이징 시내 천안문 광장에 내걸려 있는 대형 얼굴사진의 주인공인 마오쩌둥(毛澤東)은 현대 중국과 중국의 정치를 상징하는 지도자이자 공산주의 사상가로 불린다.그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직도그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는 그가 중국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그만큼 컸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동안 그의 사상이나 공산주의 이론 등을 다룬 서적으로‘모택동선집’을 비롯해 여러 종이 국내에 출간됐다.그러나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인간 마오쩌둥’을 제대로 조명한 책은 정작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출간된 ‘나의 아버지 모택동’(상·하,범우사 펴냄)은 그의 딸 리민(李敏)이 딸의 입장에서 ‘아버지 모택동’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책이다.마오쩌둥의 정치적 동지이자나중에 그의 두번째 부인이 된 허쯔전(賀子珍)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부친 마오쩌둥이 고난의 정치역정을 거쳐 끝내 중국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기까지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그대로를 그려내고 있다.특히 마오쩌둥의 형제들,아내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등 가족사 전반을 두루 소개하고있어 ‘인간 마오쩌둥’을 살피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 현대사 속의 역사적 사건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이나 성격 등도 담고 있어 기록사적 가치도 적지 않다.마오쩌둥 관련 사진 160여 장도 눈길을 끈다. 1937년 중국 산시성 작은 돌산의 동굴에서 태어난 저자는 1959년 베이징에서 아버지의 주례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이래 현재도 베이징에서 살고 있다.각 권 9,000원. 정운현기자 jwh59@
  • [중국 WTO가입 13억시장 대변혁] (4)이제는 서부 개발이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지난 9월초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열린 서부개발 투자설명회장.투자설명회와 함께 서부개발에 참여한 가전업체인 커룽(科龍),제약업체인 싼주(三九)그룹 등 일찌감치 서부지역에 진출한 업체의 성공사례발표를 겸한 자리였다. 특히 설명회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IT업체인 롄샹(聯想)과이동통신 업체인 화웨이(華爲) 등 100여개의 중국 동부의연안기업들이 몰려들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투자 설명회를 주최한 리쯔빈(李子彬) 국가계획위원회 부주임은 “투자설명회 기간에만 31개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모두 46억위안(약 7,820억원)의 계약이 이뤄져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중국 기업들의 서부개발에 대한 관심이 매우높았다”며 “올해 중 10여개 대형 프로젝트의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상서진(北上西進)하라’ 광둥(廣東) ·저장(浙江) 등중국 동남부 연안지역의 기업들이 서부대개발사업 진출의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중국 서부지역에 진출한 동부 연안지역의 기업들이 기술력과 서부지역의 자원을 유기적으로결합시킨 게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성공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 덕분이다. 광둥성의 가전업체인 커룽은 생산가동이 중단됐던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냉장고 생산공장을 헐값에 구입했다.커룽은 새로운 브랜드 ‘룽성(容聲)냉장고’를 개발,현지에서생산해 서부지역 냉장고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중국 서부 지역에는 3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냉장고 보유율이 20%에도 못미쳐 시장잠재력이 클 것으로 판단한 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선전에 본부를 둔 제약업체 싼주(三九)그룹도 마찬가지다. 1995년 쓰촨성의 야안 제약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획득한 싼주는 지난 5년 동안 이 지역에서 ‘싼주’라는 브랜드로 매출액을 급증시켰다.94년 60만위안(1억200만원)에불과하던 싼주의 소득세는 지난해말에는 1억5,000만위안(255억원)으로 폭증했다.광둥성에 기반을 둔 루넝(魯能)그룹은쓰촨성의 주자이거우(九寨溝)와 바탕(巴塘)현 광산 개발에본격 착수했으며, 허난(河南)성의 농산물가공업체인 솽후이(雙匯)그룹은 서부 목축산업의 중심지인 내몽골에 햄제조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인 서부지역 공략에 들어갔다. 중국 국내 업체들뿐만이 아니다.미국과 일본 등 외국 기업들의 서부공략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엔 외국 첨단 정보통신업체들이 속속 입성하고 있다. 미국 IBM은 산시성 첨단 하이테크산업 개발지구에 2,0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으며,휴렛패커드(HP)도 2,000만달러를 들여 서부 최대의 전자상거래센터를 설립하겠다는의향서를 제출했다.일본 도시바와 스웨덴 ABB 등도 상표권의 공동사용이나 전자부품 합작사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쓰촨성 청두에는 모토롤라가 1억달러(170억원)를 들여 통신네트워크 연구센터를 세웠으며,프랑스의건축자재업체인 라파치그룹도 쓰촨성에 13억위안(2,210억원)을 들여 시멘트 공장을 세웠다.이웃 충칭(重慶)시에는 미국 펩시콜라와 일본 스즈키,혼다 등 10여개의 세계 굴지의외국 기업들이 진출,본격적인 서부지역 개발시장의 선점을노리고 있다. khkim@
  • “美·中 이달중 ICBM 발사 실험”

    미국과 중국은 이달 중 대륙간탄도탄미사일(ICBM) 발사실험을 잇따라 실시할 것이라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5일보도했다. 미국은 7∼10일 사이 캘리포니아주(州) 반덴버그기지에서태평양 마셜군도내 무인도로 ‘미니트맨-2’ ICBM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중국도 이달 중순 산시성(山西省) 우자이 미사일 기지에서 3,500㎞ 떨어진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내 타클라마칸 사막을 목표로 ‘둥펑(東風) 31형(型)미사일’(DF-31) 발사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내년 중에는 이 미사일을 전군에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원상기자
  • [씨줄날줄] 張學良

    1936년 12월 12일,장쉐량(張學良)은 홍군(紅軍) 섬멸을 독려하기 위해 산시성 시안(西安)에 온 장제스(張介石) 총통을 연금해 버렸다.새벽 5시,시안에서 10마일 떨어진 온천휴양지에 머물고 있던 장제스는 26세의 쑨(孫銘九) 대위 손에 붙잡혔다.경호원들이 약간의 저항을 하는 사이 탈출한장 총통은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호텔 뒷산 눈덮인 바위틈에서 잠옷 차림으로 발견 됐다. 신문기자 에드가 스노우는 종군기 ‘중국의 붉은 별’에장 총통의 체포 순간을 이렇게 적고 있다.“귀관이 내 동지라면 나를 사살하고 모든 것을 끝내게”“우리는 각하를 쏠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각하가 조국을 이끌고 일본에 대항하기를 요청할 뿐입니다.”그리고 쑨 대위는 장 총통을 업고 산을 내려왔다. 장 총통을 연금한 장쉐량은 ‘정치범 석방’‘내전중단과항일투쟁’‘집회자유 보장’‘손문박사 유지 이행’등 8개항의 요구조건을 내 걸었다.장제스가 구금돼 있는 동안 ‘홍군이 소녀들을 납치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공동소유가 됐다.’‘장쉐량은 장 총통의 몸값으로 8,000만원을 요구하고있다’는 등 유언비어가 떠돌아 다녔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는 주로 중국에서 발행되는 일본어 신문들이었다. 결국 장 총통은 항일 무력투쟁을 위한 8개항에 서명 했다. 2차 국공합작이 성사된 후 장쉐량은 자신의 전용기 편으로남경까지 장제스와 동행 했다.사태 수습후 장쉐량은 곧바로장 총통을 찾아가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받기 위해 각하를 따라 왔습니다.그래야만 기율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라며 처벌을 자청 했다.홍군에 가담하면 영웅이 될수도 있었고 장 총통을 죽이고 그가 국민당 정권을 장악할수 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쉐량은 군법회의에 회부 돼 10년 금고형을 받았다.장쉐량이 장제스를 죽이지 않았던 것처럼 장제스도 장쉐량의 목숨을 뺏지는 않았다.장쉐량은 국민당 정부가 패주할 때 함께 타이페이로 끌려가 연금생활을 하다가 1977년 5월에야하와이에서 노후를 보낼수 있도록 허용됐다.그리고 지난해4월 그의 100세 생일 때는 중국과 타이완 양쪽으로부터 축전을 받았다.12일 그의 부음을 접한 전세계 중국인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World Digest/ 中간부들 도박병 “공금이 내돈”

    ‘카지노의 낙원’인 마카오 도박장에서 공금을 유용해 도박을 즐기다가 사형을 당하거나 쇠고랑을 차는 중국의 고급간부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고도경제성장을 구가해온 중국 대륙에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사회주의체제 이념이 퇴색되는 바람에 “공금은 바로 내돈”이라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현상’이 확산되고 있기때문이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97년 이후 공금을 유용해 마카오에서도박판을 벌이다가 처벌된 중국 관·재계 인사들만도 마샹둥(馬向東)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부시장과 리징팡(李經芳) 선양시 재정국장 등 고급 간부를 비롯,국유기업 사장인 저우창칭(周長靑)샨시(陝西)성 시안(西安)기전설비공사총경리 등 무려 수십명에 이르고 있다. 마샹둥과 리징팡 등 선양시 고급 관리들은 마카오의 유명한해상 도박장인 ‘둥팡공주(東方公主)’호에 올라 불과 3일만에 1,000만위안(元·약 15억원)이라는 거액의 공금을 날려체포됐다. 리징런(李敬仁) 랴오닝성 안산(鞍山)시 첸산(千山)구 수리국장은 3년8개월동안25차례나 마카오에 드나들며도박을 하다가 공금 55만위안과 자신의 빚 23만위안 등 모두78만위안(1억1,700만원)을 탕진해 체포됐다. 특히 97년3월 미국 시찰단으로 ‘세계 최대의 카지노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방문,도박 맛에 빠져든 리징런은 해외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마카오에 들러 자신의 운수가 좋은지 나쁜지를 시험을 하기 위해 도박을 하다가 신세를 망친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마카오 도박장의 한 관계자는 “중국 대륙의 고급간부들이 이곳에 들러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것을 매우 환영한다”며 “그들은 마음이 매우 후한 데다 돈을 날리더라도 뒤탈이 없어 좋다”고 밝혔다. 중국 국유기업 사장들도 마카오 도박장에서 거액의 공금을날리기는 마찬가지다.저우창칭 산시성 시안시 기전설비공사총경리는 지난 4년동안 공금 5,000만위안(75억원)을 몰래 빼돌려 마카오에서 도박을 하다 모두 날려 남미 에콰도르로 도망쳤으나,결국 송환돼 처형당했다.진젠페이(金鑒培) 후베이(湖北)성 홍콩 주재 이펑(宜豊)공사 총경리는 마카오 도박장에서 도박을 즐길 때마다 적어도 700만∼800만위안을 가볍게탕진하는 ‘큰손’ 행세를 하다가 들통났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법문寺 지하宮서 복원한 ‘唐의 역사’

    중국 산시성 시안 주원 땅에 우뚝 솟은 당나라 황실 사원 법문사(法門寺).1987년 1,000여년동안 숨겨졌던 법문사 지하궁의 문이 마침내굉음과 함께 열렸다.깊은 잠에 빠져 있던 주원의 황토고원이 깨어나면서 세상은 들썩거렸다.석가모니의 불지(佛指)사리와 민간 자수품인 선기도(璇璣圖),인도의 아소카왕이 귀신들에게 8만4,000개의 탑을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담긴 지문비(誌文碑)등 수많은 보물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법문사의 비밀’(웨난 등 지음,유소영 등 옮김,일빛 펴냄)은 법문사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당나라 역사를 새롭게 복원한 소설형식의 발굴기다.아득한 역사의 흔적을 생동감 넘치는 현실로 재현해내기는 학자들의 무딘 붓으로는 쉽지 않은 일.‘진시황릉’‘황릉의 비밀’등 ‘발굴소설’작가로 잘 알려진 웨난(37)은 법문사에서 발견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티프로 당나라의 역사를숨가쁘게 그려낸다.여섯 번씩이나 불사리를 봉영하면서 황제들은,또백성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이 책은 법문사지하궁이 발견된 이래 법문사와 관련된 사실을 가장 구체적이고 전면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꼽힌다.중국 불교사에서 법문사는 어떤 사찰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법문사는 한·위시대에 처음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그 뒤 명대에 사리가 보관돼 있던 방탑(方塔)이 훼손되자 원래의 기반 위에 13층탑을 쌓고 ‘진신보탑’이라 이름 붙였다.천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진신보탑은 법문사의가장 오래된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그러나 지반이 함몰되면서 탑의기반이 기울어지기 시작해 1981년 탑의 서쪽 면이 붕괴됐고 남은 탑의 반쪽도 1986년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법문사 지하궁은 1987년 기반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황토 아래에서대리석을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법문사는 중국의 불교사찰 가운데 전기적(傳奇的)색채가 가장 가장두드러진 사원이다.민간에서는 일찍이 이와 관련된 여러 특이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왔다. 특히 ‘법문사’라는 희곡은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그러나 사원 지하궁에 매장된 수많은 국보급보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이 책은 고고학이나 중국 역사에 깊은 지식이 없더라도 법문사 지하궁의 발굴과 발굴품의 속뜻을 재미있게 읽어낼 수 있도록 씌어 졌다.법문사에서 미륵이 된 당나라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의 꿈과 사랑을 만날 수 있고,지하궁 후실에서 발굴된 궁정용 다구(茶具)를 통해서는 유구한 전통의 중국 차문화를 접할 수 있다.이야기는 법문사 보탑이 무너져 내리는 선지적(先知的)인 사건을 통해 옛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1장 ‘신령스러운 빛’에서 시작해 당밀 만다라의 비밀이 풀리는 12장 ‘지구의 금강좌’에서막을 내린다. 김종면기자 jmkim@
  • 첫 복제염소 36시간만에 숨져

    [베이징 연합] 중국 과학자들이 성장한 동물의 체세포들에서 복제하여 탄생시킨 세계 첫 복제 염소 ‘위앤 위앤’(元元)이 폐부분 발육 결함이 야기한호흡 곤란으로 탄생 36시간 3분만인 18일 새벽 1시5분(한국시간 2시5분) 숨졌다고 과학자들이 발표했다. 이 염소 복제에 성공했던 중국 서북(西北)농림과학기술대학 장융(張涌)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복제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복제동물들의 조기사망은 현재로서는 아주 정상적이라면서 영국의 복제양 돌리가 조로증을보이고 여러나라들에서 복제한 소들의 사망률이 70%에 이르는 등 복제기술의 문제점들이 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러한 현상들은 복제 기술이 아직 전세계적으로 초기여서 많은 발전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중국 과학자들은 16일 서북부 산시성 서북농림과학기술대학 종축장에서 성장한 동물의 체세포들에서 복제한 세계 첫 복제 염소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었다.
  • 中, 대륙간 탄도탄 시험발사 임박

    중국이 유럽 전역과 미국 서해안 일대를 사정거리안에 두는 대륙간 탄도탄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계획이어서 미국,일본 등 주변국들이 긴장, 중국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모닝 포스트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방위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미국이 지난 5월 ‘중국이 곧사거리 8,000㎞의 둥펑(東風)31형(型)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을 시험발사할계획’이라는 첩보를 입수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기지,아오모리현의 미자와기지 등에 미사일 발사 탐지가 가능한 정찰기(RC135S)와함정 등을 배치,24시간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바 있는 둥펑31형 미사일은 산시성(山西省)우자이(五寨)의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돼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사막지역에 떨어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이곳은 중국이 밝힌 발사 및 탄착지점이다. 둥펑31형 미사일은 중국 남부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서 발사되면유럽 전역을,또 발사지를 동북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으로 옮기면 미 서부시애틀을 목표물로 삼을 수 있어 미국에 대한 실력 과시와 함께 타이완도 위협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성도(星島)일보는 타이완 군사 관계자 말을 인용,중국은 둥펑 31형 미사일을 해군용 함대지 미사일로 개량한 쥐랑(巨浪)2형 미사일도 개발해 핵잠수함에서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쥐랑 2형은 잠수정에서 발사되기 때문에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둘 수 있어 더욱 위협적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4회 부산국제영화제 14-23일 열려

    20세기 마지막 해를 장식할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답게 올 부산영화제에는 국제 영화계의 거물감독들이 대거 참석한다.‘책상서랍 속의 동화’로 ’99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거머쥔 장이모 감독은 유현목 감독·원로배우 황정순씨와 함께 핸드프린팅행사를 펼친다.또 데즈카 오사무의 아들로 ‘백치’를 감독한 데즈카 마코토,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로 ‘처녀자살소동’을 만든 소피아 코폴라,‘쥐잡이’를 선보이는 영국의 여성감독 린 램지,‘컵’을 출품한 부탄의승려감독 키엔체 노르부 등이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차림표는 어느해보다도 풍성하다.수영만 야외상영장과남포동 일대 극장가에 풀어놓을 영화는 54개국 211편.압바스 키아로스타미·장이모·리트윅 가탁 같은 거장들의 신작이 있는가 하면,프루트 챈·장위엔·부르노 뒤몽 등 주목받는 신진감독들의 작품도 고루 섞여 있다.개·폐막작으로는 한국의 ‘박하사탕’(감독 이창동)과 중국 장이모감독의 ‘책상서랍속의 동화’가 상영된다. 영화의 바다에서 견져올릴 월척급 작품들로는 어떤것들이 있을까. ■개막작?박하사탕 무기력의 극한에 이른 한 중년 사내의 개인사를 통해 얼룩진 한국사를 추체험.‘초록 물고기’로 한국사회의 폐부를 드러내 보인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현대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간다. ■ 폐막작?책상서랍 속의 동화 중국 5세대와 6세대 감독을 아우르며 새로운 리얼리즘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장이모 감독의 신작. 열세살 난 대리교사의 이야기를통해 중국 시골의 교육현장을 들여다 봤다.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함이 스며있는 맑은 영화. ■ 아시아영화?쌍생아 ‘일본의 데이비드 린치’‘사이버 펑크의 귀재’로 불리는 쓰카모토 신야 작품.에도가와 람포의 동명소설을 영상에 옮겼다.서로 다른 운명의길을 걷던 쌍둥이가 한 여인을 축으로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뤘다.‘철남’‘동경의 주먹’‘총알발레’ 등에서 감독이 보여준 기괴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그리고 삶은계속된다’‘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 ‘이란 북부 3부작’으로 잘 알려진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영화.이란 접경지역 쿠르드 마을의 독특한 장례의식을 매개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기록영화에 가까운 담백함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특징.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6,000만원짜리 초저예산 영화 ‘메이드인 홍콩’에 이어 프루트 챈 감독이 만든 홍콩반환 3부작의 두번째 작품.중국 반환막? 생계수단을 잃어버린 직업군인들이 은행털이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춤 춤과 팬터마임,연극이 혼합된 인도의 전통예술인 카타칼리의 대가 쿤히쿠탄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인도 영화.감독은 샤지 카룬.1930년대인도 남부의 케랄라를 배경으로 삼았다. ?구름에 가린 별 사티야지트 레이·므리날 센과 함께 인도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리트윅 가탁 감독 작품.벵갈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 등을 탐구했다.오늘날 인도영화의 새로운 세대인 마니카울·쿠마르 샤하니·아두르고파라크리슈나 같은 감독들은 모두 그의 제자다. ?황토지‘사람과 대지’ 사이의 관계를 살핀 중국 5세대 감독 첸 카이거의대표작.1939년,팔로군의 한 병사가 민요를 수집하기 위해 가난한 마을 산시성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지평선이 화면 상단 3분의 2까지 올라오는 특이한구도가 눈길을 끈다. ?라쇼몽 ‘일본 영화계의 천황’ 구로사와 아키라의 출세작.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일본영화로서 본격적으로 해외에 알려진 첫 작품.숲속에서 일어난 사무라이 살인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풀어간다.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을 던지는 영화. ?오발탄 지난 56년 ‘교차로’로 데뷔한 유현목 감독의 대표작.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 가족을 통해 당시 한국사회 문제를 다뤘다.리얼리즘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모던한 방식으로 현실을 드러내고있다는 평. ■유럽영화?내 어머니의 모든 것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열네번째 작품.간호사 마누엘라는 사고로 죽은 아들이 남긴 노트 속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글을 읽는다.그리고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남편을 찾으러바르셀로나로 떠난다.양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분방한 묘사,초현실적인 발상,그로테스크한 유머 등이 그의 영화의 특징. ?8월말,9월초 불치병을 앓던 친구의 죽음으로 변화해가는 주변 사람들의 삶을 통해 프랑스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죽음의 풍속도를 그렸다.감독은 90년대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그는 홍콩 여배우 장만옥과 결혼,화제를 낳기도 했다. ■애니메이션?모노노케 공주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개발지와원시림이 공존하던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그리고 환경파괴 문제를 다뤘다.97년 일본 개봉 당시 1,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화제작이다. 한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영화의 입장료는 1편에 4,000원(개·폐막식 8,000원).입장권 예매는 부산은행 전국 지점망과 서울의 서울극장·시네코아·중앙시네마 등에서 실시하며,인터넷 홈페이지(www.piff.org)로도할 수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中)

    ◎삼탑진의 ‘노병’들 숙연한 묵념/“외롭게 죽어간 김학규 장군” 눈시울 붉혀/의연하고 용감했던 그날의 동지들 추모/옛 서안 사령부 터엔 재개발 앞둔 건물만 광복 투쟁의 발자취를 찾아나선 독립유공자협회 일행들의 여정은 장쑤성(江蘇省)쉬저우(徐州)에서 안후이성(安徽省)푸양(阜陽)으로 이어졌다.베이징(北京)출발 4일째인 10월10일이었다.푸양까지는 400리 남짓.당시 푸양은 쉬저우에 주둔하던 일본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중국군의 최전방 거점.적진 깊숙이 뛰어들어 병력을 교란시키고 갖가지 정보를 모으는 일은 광복군의 몫이었다.산타쩐(三塔鎭) 샤오자오쭈앙(小棗庄)마을.제법 번화한 푸양시 도심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반세기전과 다름없는 중국 농촌 그대로였다.‘마지막 독립군’들의 지하공작 본부가 이곳에 있었다.노 광복군들의 눈시울은 금세 붉게 젖었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숙연한 묵념이 이어졌다.“지하공작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살해된 韓聖洙 동지의 명복과 독립운동의 영웅이면서도 쓸쓸한 말로를 맞았던 광복군 제3지대 사령관金學奎 장군을 위해” “금방이라도 ‘이 사람들!’하고 외치며 나타날 것만 같은 옛 동지들…”.일본군에서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일본 專修大 졸업생 韓聖洙씨는 상하이에서 정보를 캐다 희생됐다.“韓동지는 체포된 뒤에도 일본말을 쓰지 않아 통역을 거쳐 심문받았다.난징(南京)형무소에서 목이 잘려 죽을 때까지 일본인들을 꾸짖으며 의연함을 잃지 않았답니다” 이곳서 주로 활약했던 광복군은 20여명.일행중엔 광복회 부회장을 지낸 金祐銓 회원,全履鎬 회원 등 학병 출신과 일본 점령지역을 탈출해 광복군에 가담했던 金國柱 부회장,金九 선생 비서로 일했던 鮮于鎭 선생 등이 끼어있었다. 43년부터 해방때까지 지하공작 활동을 벌였던 金國柱 부회장은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靑島)와 지난(濟南) 등 일본 점령지역을 오가며 정보를 캐고 거주 한국인들을 광복군에 합류시키는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일본 헌병에게 불심검문 받고 유창한 중국어로 딴전 피웠던 기억,가까스로 마련한 군자금 등 이들의 기억은 끝없이 이어지는듯 했다. 일행은 당시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의 미국 첩보기구 전략사무국(OSS)을 오가며 광복군과의 군사협력 등 연락업무를 맡았던 金祐銓 회원의 무용담을 들으며 산시성(陝西省)의 시안(西安)으로 향했다. 시안은 광복군이라면 영영 잊을 수없는 대일 항전의 聖地.충칭에 이어 두번째로 광복군 총사령부가 터 잡았던 곳이다.사령부 건물은 시안시 중심부 난위엔먼(南院門) 부근에 있었다.지금은 ‘시안시 공산당 위원회’ 건물과 번화한 상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광복군 시안시대의 본거지였던 얼부지에 4호는 간이건물에 음식점들이 빽빽히 들어선채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안 역시 쉬저우나 푸양,린촨(臨泉)에서 처럼 광복군의 자취가 하나하나 사라져 가고 있었다.“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 다음 세대들에게 독립군의 투쟁 정신과 역사를 전할 수 있었으면…” 이 다음 누가 이곳을 찾아올 것이며 독립투쟁의 역사가 어린곳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시안을 뒤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직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던 충칭(重慶)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노 광복군들은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했다. ◎광복군 총사령부/1940년 重慶서 발족 두달만에 西安으로 옮겨 광복군 총사령부는 광복군들에겐 따스한 고향이요 용기의 원천이었다.총사령부의 운명은 조국의 처지만큼 순탄치 않았다.총사령부가 발족된 것은 40년 9월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에서 였다.나라 잃은 군대에게는 편안한 나날이 없었다. 태어난 지 두달여만인 그해 11월말에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옮긴다.시안은 중국군이 일본군의 공세를 막아내던 전략 거점지.본격적인 대일항쟁을 위해서였다.일본군 점령지역이 가까워 정보수집과 한국인 포섭 등이 가능했다. 총사령부라고 해야 시안시 난위엔먼 지역과 얼부지 부근의 허름한 주택이 고작이었다.그나마 42년 9월에는 비워 주어야 했다.일본군의 공세가 거세지고 중국이 광복군의 행동을 통제하려했기 때문이었다. 2년여의 시안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충칭으로 돌아가 광복을 맞았다.충칭시 쩌우룽로(鄒容路)에는 총사령부로 쓰였던 건물이 있다.의혈 남아들의 집결지였던 그 곳은 지금도 허름한 음식점으로 쓰이고 있다. ◎白波 金學奎 장군 광복군 제3지대장/일군 맞서 눈부신 전과울린 광복군 대부 광복군 제3지대장 白波 金學奎 장군은 총사령관 李靑天,참모장 李範奭과 함께 광복군의 대부였다. 李範奭 참모장이 지대장으로 지휘한 제2지대가 유격전을 주로 폈다면 金學奎 장군의 제3지대는 정면에서 맞서 싸웠던 광복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장군이 항일전선에 투신한 것은 1919년.19살의 나이로 만주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였다.32살이 되던 32년까지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고 40년 광복군 총사령부가 발족하자 핵심 참모로 참여한다. 그러나 사령부에만 안주하지 않았다.중국군 인맥을 활용,일본군서 탈출한 젊은이들을 린촨(臨泉)의 중국 중앙군관학교로 모아 주도록 했다.그들을 모아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반에서 독립의 간성으로 양성했고 제3지대를 창설했다. 광복후 白波는 평생 몸바쳐 싸웠던 조국에 돌아 왔지만 李承晩 정권과 불화를 빚으며 옥고를치렀다.67년 돌보는 이도 없이 67세를 일기로 서울의 모래내 한켠 판자집에서 숨을 거뒀다. ◎광복군 OSS/미국식 훈련… 한반도 상륙 준비 정예부대 OSS는 한때 전략사무국이란 이름으로 운영됐던 미군의 최정예 첩보기구.적진 깊숙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첩보요원을 침투시켜 군사 정보를 탐지하고 적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광복군 OSS’는 미국식 OSS요원 훈련을 받은 40여명의 정예 광복군들.45년 3월부터 광복될 때까지 중국에 파견된 OSS의 지원을 받아 특수훈련을 받았다. 태평양전쟁 막바지 미군 등 연합군은 한반도 상륙작전을 준비했고 한반도 사정에 밝은 광복군 OSS요원들을 침투시켜 교두보를 확보하게 할 계획이었다. 훈련장은 광복군 제2지대 사령부를 겸해 시안에서 남쪽으로 100여리 떨어진 뚜취쩐(杜曲鎭) 쓰포춘(寺坡村)에 있었다.일행들이 현장을 찾았을때 훈련장 터는 농촌마을을 이루고 있었다.이곳서 가까운 終南山 산기슭위에는 반갑게도 신라시대 당나라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원측법사의 사리탑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젊은날 ‘지옥 훈련’을 마다하지 않으며 조국 광복의 염원을 아로새기던 곳.“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훈련을 받았다”고 金柔吉 부회장과 광복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石根永 회원은 회고했다. 광복군 OSS 요원의 활약은 갑작스런 일본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했다.광복군들은 조국 광복을 감격과 함께 회한을 안고 맞았다.스스로의 힘으로 찾지못한 광복이었기에 자결권 제약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쓰포춘의 OSS 훈련장을 뒤로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들은 “광복군의 한반도 상륙이 성사됐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 日軍 학병서 광복군까지(항일독립군 장정따라 6천리:上)

    ◎臨泉 軍訓地서 ‘광복꿈’ 회상/銅山路 日 부대터에 中軍병영/연병장·단층막사 ‘옛 그대로’/끌려간 日 병영탈출 감행 뿌듯 한국 독립유공자협회 회원들이 조국 광복을 꿈꾸며 젊은 날 이역만리에서 피 흘렸던 중국땅을 찾았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韓光班) 출신 광복군 초급장교들로 흔히 광복군 마지막 세대로 분류된다. 일본군의 학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독립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항일투쟁의 족적을 찾아 나선 것은 광복의 참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 중부 장쑤(江蘇)성 쉬저우(徐州)에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장장 6,000리길. 일본군 탈출부터 광복군 훈련장,항일 지하공작 거점 등 열하루간 동행했던 이들의 답사 행로를 3회에 나눠 소개한다. ‘마지막 독립군’들의 첫 현장 답사는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시작됐다. 베이징(北京)서 814㎞. 기차로 8시간. 54년전에 거쳐온 길을 더듬기 위해 1시간 남짓한 비행기편도 마다했다. 1944년 2월초. 평양을 출발,기차에 강제로 실려 닿은 곳은 일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던 최전방 쉬저우. 7월까지 쉬저우와 슈저우(宿州),푸양(阜陽)일대 전선에 배치됐던 이들은 그해 3월부터 7월까지 하나둘 일본병영을 탈출했다. “일본군이 되어 동포들의 가슴에 총을 겨누느니 차라리 탈출하다 죽기로 했다”고 50여년전 결의를 회상했다. “상당수는 우선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로 했었습니다” 회고담은 이어졌다. 당시 쉬저우 주변에선 일본군이 밀집해 있었고 중국으로 끌려온 ‘조선학병’ 3,000여명의 대부분도 부근에 배치됐다. 때마침 텐진(天津)에서 시작된 진푸선(津浦線)철로가 쉬저우를 지나 상하이(上海),푸둥(浦東)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노 광복군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일본군은 철도와 주변을 점령,광대한 중국대륙을 ‘선’과 ‘점’으로 연결하는 전략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끌려갔던 학병들은 대부분 철도역 주변에 주둔해 있었단다. 밤을 틈타 3m가 넘는 철책을 넘었다. 짧게는 2∼3일에서 일주일이상을 풀잎이나 과일로 연명하며 낮에는 수수밭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들판을 달렸다. 대개는 중국 유격대와 조우했고 당당한 광복군이 되었다. 44년 6월 ‘宿縣부대’ 제4중대에서 탈출했던 金柔吉 부회장과 全履鎬 회원은 슈저우역에서 2㎞쯤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맨끝에 당시의 탈출지점을 찾아냈다. 지금은 ‘宿縣 付小樓 村庄’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3층의 주택들이 병영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에 앞서 5월에 같은 부대 보병중대에서 津浦線을 넘어 탈출했던 石根永 회원도 슈저우에서 50㎞ 떨어진 구쩐(固鎭)역부근에서 병영터를 찾아냈다. 일본군은 철도가 파괴되거나 공격받으면 주변의 중국인을 몰살시켜 보복했다고 악몽같은 50년전을 떠올렸다. 중국 유격대원이 생포되기라도 하면 총검술 연습의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기도 했단다고 치를 떨었다. 대부분의 병영들은 푯말하나 남지않고 촌락 등으로 바뀌는 등 사라졌지만 尹慶彬 회장과 金永錄 회원이 탈출했던 쉬저우시 통산로(銅山路)의 부대터는 지금도 ‘중국 인민해방군’ 주둔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부대안을 돌아본 尹慶彬 회장 등은 연병장앞의 3층 본부 건물,검은 벽돌과 돌로 지어진 단층 막사가 옛 그대로라며 회상에 젖었다. 높은 천정의 막사안에는 시멘트바닥에 철로 만든 2층 침대 10여개와 간단한 사물함이 눈에 띄었다. 張俊河 선생 등과 함께 尹회장 일행 4명이 44년 7월7일. 일본군의 이른바 ‘중국침략 기념일’로 경계가 느슨해 틈을 타 ‘취침전 15분의 자유시간’을 이용했다. 일본군을 벗어난 이들은 이틀밤을 앞만 보고 달리다 먼저 탈출해 중국 유격대에 와 있던 金俊燁(전 고대 총장)씨와 해후했다. “중국의 여러 유격대에 흩어져 있던 탈출자들은 린촨(臨泉)로 모였지요. 린촨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광복의 꿈을 키워 대일항전의 장정(長征)을 시작했습니다” 노 독립군의 회고는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어느새 50년전의 린촨에 닿고 있었다. ◎독립유공자협회/항일전 참가 175명이 결성… 현 회원 220명 한국독립유공자협회는 광복회와 함께 항일투쟁의 일선에 섰던 독립운동가들의 양대 산맥. 81년 독립운동가 175명에 의해 발족됐다. 초대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趙擎韓 선생. 한국전력 사장을 지낸 朴英俊 회장에 이어 尹慶彬 회장이 3대 협회를 이끌고 있다. 회원은 220명. 광복회가 독립지사의 유가족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본인만이 가입할 수 있다. 회원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일제말기 학병 등으로 중국전선에 끌려갔다가 탈출,광복군에 합류했던 독립운동의 마지막 세대가 협회의 주축. 金九 선생을 보좌,충칭(重慶) 임시정부서 일했던 마지막 생존자들이기도 하다. 대부분 70대후반에서 80대초반. 색이 바라가는 독립정신을 드높이기위한 연구,탐사 등 학술사업과 사회사업,독립운동 사적에 대한 복원운동을 벌여왔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80주년이 되는 내년 충칭시 광복군 총사령부건물 표지석 건립작업 등 후세에게 민족애국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중이다. ◎광복군/임정 정규군… 美와 對日 공동작전 활약 광복군이 정규군으로 발족한 것은 40년 9월. 무력으로 조국을 되찾겠다며 중국으로 온 젊은이와 일본군에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이 주축이 됐다. 총사령관은 李靑天 장군이었고 참모장 李範奭 장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하활동 등 갖가지 군사활동을 감행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대였다. 3개의 직할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李範奭 장군이 지휘하는 2지대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을 거점으로 일본군 전력을 교란시키는 활동에 주력했다. 최전방에서 일본군과 필사의 전투는 3지대의 몫. 안후이성 푸양에 본부를 두고 산둥성(山東省) 등 화북지역에서 지하공작 활동도 병행했다. 44년부터는 일본군에서 탈출한 학병들이 합류하면서 미국 첩보기구인 전략사무국(O.S.S)과 함께 일본군에 결정타를 가하기 위해 한반도침투 등 특수공작을 준비하기도 했다.해방직전 광복군은 700여명. 광복이 될 무렵에 중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로 30만여 군병력을 조직하는 계획에 착수하기도 했다. ◎임천사관학교/日軍 탈출한 한국인 광복군 간부 양성소 안후이성(安徽省) 린촨(臨泉)에 있던 ‘광복군 사관학교’. 더 정확히 말하면 44년 7월 린촨 중국 중앙군관학교 제10분교안에 설치됐던‘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일명 한광반(韓光班)’. 중국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군서 탈출한 한국인을 광복군 간부로 양성하던 곳이다. 44년 7월에 들어온 첫 입학생들은 48명. 33명은 대학졸업후 일본군으로 징병돼 중국전선까지 끌려왔다가 탈출한 학병. 15명은 조국광복을 꿈꾸며 중국으로 건너왔던 애국청년들. 5개월 과정을 마친뒤 白正甲 등 25명은 6,000리 길을 걸어서 쓰촨성(四川省)충칭(重慶)의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본류에 합류한다. 나머지 8명은 최전방 안후성에 남아 정보수집 등 대일투쟁을 벌인다. 25명중 尹慶彬은 임시정부 경위대장으로,鮮于鎭은 金九 선생비서로 白凡 선생을 최후까지 보좌하게 된다. 또 張俊河,金俊燁,金柔吉 등 일부는 한·미군사협력으로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가 한반도진입을 위한 특수훈련을 받는다. 현재 한광반 첫 수료생 가운데 국내엔 11명이 생존해 있다.
  • 중국·일본(세계의 우주로켓발사기지:4)

    ◎전용발사장 중 3곳·일 2곳 보유/70년 「장왕1호」 첫 성공… 5번째 자체발사국/중국/소형 H­1로켓 주류… 3단분리형까지 개발/일본 아시아에 있어서 두 우주개발맹주는 중국과 일본을 꼽을 수 있다.중국은 자국전용 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3개 발사장을,일본 또한 2개의 발사장을 갖추고 있다.뿐만아니라 우주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중국과 일본의 우주발사무대를 가본다. ▷중국◁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항공기공업을 거쳐 우주사업을 시작하는 예를 깨고 로켓개발을 먼저했다.중국의 로켓개발은 미 칼텍의 본카만교수밑에서 훈련을 받은 쳰 슈 에센등이 중심이었다.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 활동한 이들은 55년 중국의 로켓개발에 기여했다.초기 중국의 로켓개발은 소련의 SS­3 유도탄을 개조,설계한 것으로 일본보다 두달 늦은 1970년4월14일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킴으로써 인공위성을 자체발사한 다섯번째 국가였다.사용된 발사체는 「장정1호」라는 3단액체추진로켓이며 쏘아올린 인공위성은 1백73㎏에 고도 4백39∼2천3백84㎞의타원지구궤도이고 1백14분에 한번씩 지구를 돈다. ○84년 통신위성 첫 발사 중국은 LM(Long March·대장정)발사체로 우주진출의 꿈을 모두 실현시키고 있다.이 LM발사체를 위해 3군데의 발사장소를 가지고 있다.시창(서창)우주발사센터(XSLC)·즈추안우주발사센터(JSLC)·타이위안(태원)우주발사센터(TSLC)등. 이 가운데 XSLC는 1984년 중국 최초의 통신위성을 발사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이 XSLC는 사천성의 시창시의 북서쪽 64㎞에 위치한 산악지대다.이 발사장은 해발 1,800m에 있다.동경 1백2도,북위 28.2도. XSLC의 기후는 아열대기후로서 연평균기온이 섭씨 16도이고 여름에 가장 더울 때의 평균기온은 섭씨 25도를 웃돈다.겨울에 가장 추울 때의 평균기온이 섭씨 2도가량 된다.그리고 서리가 내리는 기간이 짧고 건조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이상적인 기상조건을 갖춘 곳이다.우기는 6월에서 9월까지 계속된다. XSLC는 교통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먼저 시창교외 북쪽에 있는 시창공항은 보잉 747여객기 등이 자유자재로 이·착륙할 수 있다.또한 철도와 고속도로망이 이곳을 통과하도록 설계돼 있어 덕분에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특히 철도와 고속도로분지선은 발사장소로 곧장 인도되도록 설계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철도의 최대경사각은 3도이하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속도로 또한 최대경사각 5·6도이하로 시공하는 등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다. XSLC는 발사체와 탑재물의 검사와 점검을 실시하는 기술센터를 비롯해 발사체검사빌딩·탑재물준비빌딩·위험과정검사빌딩 등으로 구성돼 있다. LM발사체는 기차편으로 발사장소에 운반된다.발사체는 발사장소인 약 2.2㎞ 북쪽으로 분해된 상태로 트럭으로 운반되기 전에 점검을 위해 발사체점검 격납고안에서 수평상태로 약 5주정도 머문다. 탑재물준비빌딩에서는 우주선의 완성과 시험조작이 진행된다.필요할 경우 상공에서의 실험도 실시한다.이 건물은 최소한 2대의 우주선을 조립할 수 있을만큼 넓고 검사홀의 청정도는 10만이내의 청결도를 유지한다.우주선조립실은 이보다 열배나 깨끗한 청정도 1만이하다. 위험과정검사빌딩에서는 우주선추진연료 및 압축고체연료 제작,전력추진장치의 설치,탑재물의 스핀균형등을 잡는 일이 이루어진다. XSLC에서 우주행 로켓등이 발사되는 동안 발사장주변 6㎦이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완전히 집을 비우고 발사장 밖으로 대피해 있어야 한다.주민들이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시각은 발사완료 10분뒤.주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다. 또한 JSLC는 원래 서구 자유진영에 솬 청 쥬로 알려진 중국의 유명한 발사장이다.대부분의 중국산 위성이 그곳에서 발사되었다. JSLC는 북경에서 서쪽으로 약 1천6백㎞에 위치하고 있다.고비사막의 가장자리인 만리장성의 변두리에 있다.위치는 동경 1백도,북위 40.7도. 해발 약 1,000m를 기록하는 이곳은 궤도진입을 시도할 때 몽고와 소련의 영공침범을 피하기 위해 남동쪽으로 발사하고 있다.발사폭은 56.9도에서 69.9도로 매우 좁은 편이다.JSLC에서 출발하는 우주행 화물들은 자원탐사위성과 정찰위성이 대부분이다. 이곳의 교통사정 역시 완벽하다.발사장의 남쪽에 있는 공항은 철도로 연결돼 있어 기술센터와 발사장 교통이 원활한 편이다. 그리고 TSLC는 북경 남서쪽 5백㎞지점에 위치한다.산시성의 한복판에 있는 이 발사장은 바위투성이 위에 세워져 있다.이 발사장에서는 발사체를 우주 남쪽으로 출가시켜 극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이용된다.1988년9월 중국 최초의 기상위성을 우주로 파견할 때 이 발사장을 이용하였다. ○다네가시마 취대규모 ▷일본◁ 최대인공위성발사장은 다네가시마(종자도) 우주센터로 섬인 다네가시마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다네가시마는 인구 4만3천명,섬길이 약 58㎞인 작은 섬으로 일본열도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에서도 남쪽으로 약 80㎞ 더 내려가야 만날 수 있다.위치는 동경 1백30도58분,북위 30도24분. 발사장에는 소형로켓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와 H­1로켓과 H­2로켓을 발사하는 전용발사대가 있다. 이 센터안에는 마쓰다 추적및 자료수신소,노기 우쓰가오카 레이다기지,그리고 3개의 광학추적 스테이션이 있다. 이 센터의 넓이는 8.64㎦.이곳에는 고체와 액체로켓엔진의 연소실험을 할 수 있는시설도 있다.이 센터는 로켓을 조립하고 발사하며 제어와 추적을 하는 일이 주임무다.발사방향은 동쪽. 단점이라면 인근에 어장이 있다는 것.로켓발사 때마다 소음과 어장피해우려로 인해 어부들이 항의, 마찰을 빚고 있다.따라서 어부들의 강경한 항의 때문에 매년 1월15일부터 2월말까지,그리고 8월1일부터 9월15일까지로 발사기간이 극히 제한돼 있다. 또한 가고시마(녹예도)우주공간관측소(KSC)가 있다.위치는 동경 1백31도04분,북위 31도15분.다네가시마우주센터의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2㎦로 간단한 발사장이다. 일본의 우주과학연구기관(ISAS)이 관리,운영하고 있다.1989년2월 현재 16차례의 인공위성용 로켓이 발사되었다.이 센터는 소형로켓과 바루소로켓이 발사의 주류를 이룬다. 한편 오사카지역에는 H­1발사를 돕기 위한 여러가지 시설들이 있다.여기에는 2개의 연료주입관과 연료공급탑이 있다.로켓을 발사하기 위한 발사대는 길이 6.4m,너비 12m이며 무게는 17t에 이른다.2개의 마스트에서 발사직전까지 여러개의 관을 통해 발사체에 주입한다.1번마스트의 크기는 높이 35m,너비 3.5m이고,2번마스트는 높이 49m,너비 4m다.연료공급탑은 발사체의 조립과 점검,발사준비에 사용되며 모든 발사준비가 완료되면 1백m 정도의 레일위를 이동하게 된다.연료공급탑은 높이 67m,너비 26m,무게 2백80t이다.이 센터는 추진체저장실과 공급실,지상발전소 수력시설등 비행보조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로켓조립공장에서는 H­1로켓의 1,2단계 엔진을 조립하고 점검하며 발사대에 설치하기 전에 조정하는 일을 한다.고체모터 테스트빌딩에서는 보조부스터와 3단계 고체로켓의 점검과 점화,조립등을 실시한다.스핀 테스트빌딩에서는 H­1로켓의 3단계 모터와 위성체가 조립되고 점검되며 분리장치가 제대로 결합되었나를 살핀다. 일본의 우주개발역사는 195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이해 도쿄대 히데오 이토가와교수가 대기중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연필로켓」제작팀을 구성한 것이 그 효시다.그러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일본정부가 이토가와교수의 로켓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방송한 미국의 통신위성이 계기가 되었다.일본 과학기술청은 부랴부랴 우주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국립우주개발센터를 발족시켰다.이 센터는 1969년 NASDA로 명칭을 바꾸었다.그리고 같은 해 일본정부는 미국정부와 델타발사체의 기술이전과 N자형 발사체의 개발을 내용으로 한 협의서를 체결했다.1977년 대형로켓연구계획이 수립돼 H형로켓개발이 시작되었다.H형시리즈는 1986년이후 줄곧 성공을 거두었다.그해 8월13일 2단 로켓발사를 수행했고 8월27일 3단 로켓발사를 끝냈다.3단 H­1로켓은 5백50㎏의 무게를 정지궤도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 있다.1992년까지 모두 9대의 H­1로켓이 발사되었다.일본은 1990년대의 주력사업으로 H­2로켓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는 NASDA이외에 일본우주개발연구소(ISAS)등 2개의 기관에서 우주산업에 몰두하고 있다.NASDA가 통신위성 등 응용부분의 우주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에 ISAS는 천체관측용 위성등 연구용 인공위성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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