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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지로 보내는 ‘미안해’… 진짜 미안한가요?

    메시지로 보내는 ‘미안해’… 진짜 미안한가요?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셰리 터클 지음/황소연 옮김/민음사/524쪽/2만 1000원이제는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스마트 근무제’나 재택근무제를 도입한 회사나 공공기관을 쉽게 볼 수 있다. 전자결재, 화상회의시스템을 도입한 회사도 상당수이고,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서울역 등 곳곳에 스마트워크센터를 만들어 공무원들에게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야후나 IBM 같은 세계 유수의 회사들이 재택근무자들을 다시 회사로 불러들이고 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한 기업의 사례를 보자. 첨단기술 컨설팅사 래드너 파트너스는 1990년부터 재택근무가 직장 문화가 된 회사였다. 그런데 2004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사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새로 공간을 만들고 사무실을 꾸며야 하니 당연히 비용도 더 들었다. 일부에서는 “이러면 누가 회사로 오려고 하겠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기우였다. 물리적 근접성이 직원 간 대화를 유발했고, 회사 내에서는 새로운 유대감이 형성됐다. 저자는 래드너 파트너스를 예로 들며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설명한다. 인터넷, 스마트폰의 비약적인 발달로 ‘비대면 대화’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됐다.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메신저창에 ‘두 손을 모은’ 이모티콘 하나를 띄우면 그만이다. 직접 얼굴을 보며 잠깐이라도 서로 불편한 감정을 다시 확인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상대에게 미안함을 ‘전송’할 때 성찰의 과정은 없는 것과 같다고 단언한다. ‘미안해’라는 문자메시지로 화해한 연인은 결국 같은 문제로 또다시 싸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테크놀로지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대화를 되찾을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으며,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그것을 방해하는지를 먼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42쪽)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시대에 저자의 문제의식은 경청할 만하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3회 남한산성 청소년 영상제 작품 공모

    3회 남한산성 청소년 영상제 작품 공모

    경기 광주시 청소년수련관은 7월 9일부터 8월 8일까지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3회 광주시 남한산성 청소년 영상제’에 출품할 작품을 공개 모집한다고 15일 밝혔다. 총 870만원의 시상금을 지급하는 영상제는 영화, 다큐멘터리, 광고 등 3개 장르에 대해 ‘자유주제 작품’ 또는 ‘남한산성 관련 작품(가산점 부여)’을 주제로 출품하면 된다. 출품된 작품들은 작품성, 기획력, 완성도, 참신성, 주제전달의 우수성, 연출력 등을 심사해 작품상, 편집상 등 13개 작품을 시상하며 오는 9월 8일 광주시 남한산성아트홀에서 시상식과 상영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영희 청소년수련관장은 “영상제는 청소년들의 콘텐츠 창작 능력을 개발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알리기 위한 행사”라며 “청소년의 감수성과 독창성이 담긴 작품들이 많이 출품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독박육아·저출산의 대안-공동육아] “가정서 시작 ‘풀뿌리 육아운동’으로 저출산 해결 실마리 찾아야”

    [독박육아·저출산의 대안-공동육아] “가정서 시작 ‘풀뿌리 육아운동’으로 저출산 해결 실마리 찾아야”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은 정말 심각합니다. 정부도 빠른 속도로 돌봄 서비스를 늘리고 있지만, 기관 중심이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돌봄의 틈새와 사각지대에서 한 여성의 삶은 경력 단절로 이어집니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돌봄은 저출산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요. 지난해 ‘82년생 김지영’ 세대와 간담회를 열었는데 대부분 아이를 키울 때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더군요. 독박육아로 정신적 고립감과 부담감이 엄청났습니다. 돌봄을 매개로 이웃과 교류하면서 지역 사회가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활기를 띠고, 엄마들이 독박육아에서 해방됩니다. 정책이나 시스템만으로 해결하려면 어렵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공동육아와 같은 움직임이 절실합니다.”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의 공동육아 신념은 이처럼 뚜렷했다. 그는 공동육아를 ‘아래로부터의 육아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국가적 관점에서 펴는 ‘위로부터의 육아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 한 가정에서 시작되는 풀뿌리 육아 운동으로 저출산 현상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공동체의 육아에선 단 한 명의 엄마도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 공동육아는 부모들끼리 자연스레 이루는 문화 운동이다. 국가는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조연’이다.→공동육아를 위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육아나눔터도 확보하기 쉽지 않다던데. -공동육아나눔터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간을 확보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사업 모델이다. 나눔터 설치 비율을 지자체 정부합동평가지표에 반영하는 식으로 독려하고자 한다. 대우건설·한국토지주택공사(LH)와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앞으로 아파트를 지을 때 나눔터 공간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내용이다. 2014~2017년 폐쇄된 어린이집이 3500곳이다. 이를 지자체가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작은 도서관이나 보건소 같은 곳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 지방 출장을 다녀왔는데, 동사무소가 사라지는 곳도 많다더라. 그런 공간을 공동육아를 위한 공간으로 쓸 수 있다. 물론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공동육아 공동체가 이어지려면 부모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참여가 필수다. 그러나 맞벌이 가정은 참여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용자 수요에 맞게 돌봄의 방식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운영 방식을 다양화하는 거다. 예컨대 맞벌이 부부는 평일 참여가 어렵다. 대신에 주말에 영어나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등 재능을 기부할 수 있다. 비(非)맞벌이 부부는 주중에 도와주면서, 주말에 아이를 맡기고 자신만의 일정을 소화할 수도 있다. 공동체에 따라서 지역의 은퇴 교원이나 대학생 자원봉사 등 보조할 수 있는 통로는 다양하다. →젊은 세대에선 출산 계획이 없거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도 늘고 있다.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강요할 순 없지만, 저출산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문제다. 이들과도 부담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독일 유학시절 대학원 친구의 아이를 돌봐 주는 게 일이었다. 교수 면담이 있을 때 나에게 자주 부탁했다. 하지만 우리는 직장 동료나 친구에게 아이를 맡기는 문화가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다. 출생률 감소는 노동력 감소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 저하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연금·보험료 등 사회에 낼 지출은 줄어드는데 받는 사람은 늘어난다. 따라서 모두가 저출산 문제에 책임이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다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 결혼이나 출산을 피하는 건 현재의 사회구조와 큰 관련이 있다. 출산과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된 현실이 작용했을 수 있다. 돌봄을 공동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 약하다.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과 아울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과연 내 아이도 아닌데 책임지라는 말이 그들에게 쉽게 다가올까.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국가는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사회 공동체다. 개개인이 공동체가 지향하는 철학과 국가 이념에 동의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때 비로소 개인은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스스로 인식한다. 육아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아직 혈연공동체로서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공동육아를 통해 사회적 약자, 소수자, 어린이를 공동체가 책임진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시작해야 하고 또 확대해야 한다. 1960~70년대 독일 등에선 기성세대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며 학생들이 ‘68운동’을 일으켰다. 당시 육아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어린이집 교육이 올바른 것인지, 지향성과 이념은 무엇인지를 제기하면서 강력한 대안 보육운동을 일으켰다. 여기서 배울 점은 육아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놓고 철학과 운영방식을 논의했다는 거다. 독일의 ‘마더센터’가 생겨 국가가 보육을 지원해 주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보육의 방향성은 너무나도 중요한 쟁점이다. 우리도 이런 움직임으로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나. -올해 공동육아나눔터를 260개까지 늘리겠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동육아가 ‘문화운동’으로서 자리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내에서도 단순한 정책적인 해법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아이를 낳을 젊은 세대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래로부터 공동체 문화를 형성해 가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필수다. 국가가 강제로 나서서 퍼뜨릴 순 없지만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가장 큰 난관은 ‘공간’이다. 집세가 이렇게 비싼 나라가 또 있을까. 민간 차원에서 공동육아를 하고 싶어도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공동육아나눔터라는 공간은 이런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기폭제로써 기능할 수 있다. →우수 사례를 확산하는 것도 중요해 보이는데. -여가부는 2010년부터 공동육아나눔터 사업을 지원했다. 서울시 마을공동체나 경기 육아나눔터, 제주 수눌음육아나눔터 등 최근엔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자녀 돌봄 공동체도 생겨났다. 세종시가 좋은 사례다. 도담동 주민센터에 공동육아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하루에 1000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세종시장은 앞으로 주민센터를 만들 때 항상 공동육아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다. 현재 세종시에 7개 정도가 있는데, 앞으로 16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일부 북유럽 국가를 제외한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아빠 육아 참여율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공동육아가 엄마들이 모여 육아 부담을 나누는 것에서만 그쳐선 안 될 것 같은데. -남성도 공동육아의 주체다. 여성들만의 ‘독박 공동육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여가부는 이런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품앗이리더 교육, 가족상담, 부모 교육과 아빠 육아모임 운영을 통해 남성의 육아 참여가 확대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제도와 문화가 함께 바뀌어 가야 한다. 예컨대 롯데그룹은 아빠의 육아휴직이 두 달로 의무화됐다. 최근 은행권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곳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득 대체율도 높여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제도적 노력뿐 아니라 남성이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쓰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한 중앙부처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장관이 불러서 인사하고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준다고 한다. 눈치를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는 문화를 정착하려는 움직임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요즘 떠오른다. 정시퇴근 문화를 늘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러면서 여가부가 하는 가족친화 인증제도를 중소기업까지 확대하며 정부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남성이 육아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씨줄날줄] 문화재 예산 0.18%/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화재 예산 0.18%/서동철 논설위원

    문화재위원회는 최근 백제 대통사(大通寺) 터로 추정되는 충남 공주시 반죽동의 주택 신축부지를 보존하기로 의결했다. 발굴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문화재위가 발빠르게 보존 결정을 내림에 따라 문화재청은 공주시와 곧 부지 매입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고도 조성사업에 따라 한옥을 지으려 했던 땅이다.문제는 이번 결정으로 걱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재위가 의결한 보존 부지는 204㎡에 불과하다. 대통사는 백제 성왕(재위 523~554)이 중국 양나라 무제를 위해 축조한 사찰로 알려지고 있다. 왕도(王都)에 지은 국가적 사찰의 전체 규모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대통사 터의 유적 성격을 제대로 밝히려면 장기간에 걸친 발굴조사가 불가피하다. 나아가 발굴조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성과가 축적되면서 대통사 터, 혹은 그에 준하는 대형 사찰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면 사적 지정도 추진될 것이다. 사적 지정이 중요한 이유는 주변 지역 개발의 제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통사 터는 공주 시내 한복판이다. 일제강점기 발굴조사에서 ‘大通寺’라 새겨진 기와 조각이 이미 나왔다. 주변 제민천에 있는 네 개의 마름모꼴 초석은 절로 들어가는 다리의 하부구조로 짐작한다. 멀지 않은 곳에 반죽동 당간지주도 있다. 미술사학자들이 백제가 아닌 통일신라 조각 수법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것도 흥미롭다. 대통사 당간지주로 확인된다면 절의 역사는 다채로워질 것이다. 민가가 빼곡히 들어찬 지역이다. 보존 부지 바로 곁의 공주사대부고도 절터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웅진백제의 왕궁인 공산성과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 말고는 백제시대 대형 유적이 없는 공주시내다. 대통사의 실체가 드러나면 전체 부지의 보존 압력은 거세질 것이다. 대통사 터를 한성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의 내부와 비교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사 터 역시 전체 보존 결정이 내려진다면 정부와 지자체는 최소한의 재산권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풍납토성과 비슷한 갈등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다. 영남고고학회는 ‘문화재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2019년도 문화재청 예산이 정부 전체 예산의 0.5%는 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문화재 보호와 주민의 이해가 충돌하는 현상은 전국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신라권과 가야권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1.8% 줄어든 7746억원이다. 정부 예산의 0.18% 수준이다. 수치를 나열하니 답답한 마음이다. 문화재 보호는 마음뿐 아니라 예산도 필요하다. dcsuh@seoul.co.kr
  • [In&Out] 70세 국회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으려면/이내영 국회 입법조사처장

    [In&Out] 70세 국회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으려면/이내영 국회 입법조사처장

    올해는 국회 개원 70주년이 되는 해다. 1948년 제헌국회의 개원 이후 70년의 역사적 격변을 거치면서 국회의 위상 또한 적지 않은 부침을 겪었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국회는 행정부의 시녀로 위축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국회의 위상은 대폭 높아져서 국회가 입법의 주도권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고,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역할도 커져 왔다.이렇게 국회의 위상이 높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이미지와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파워조직 신뢰영향력 조사’에 따르면 국회와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주요 대기업, 사법부, 경찰 등과 비교해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여 왔다.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수준이 높다는 점은 국내외로부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정당정치가 지역패권정당체제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여야 대립과 정치적 교착 상황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여야 사이의 적대적 대립으로 인해 의회에서 주요 법안과 정책 쟁점들의 처리가 무산되거나 지연되어 왔다. 따라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는 고질화된 대결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자면 여야가 국가적 현안에 대해 이념과 정책적 차이를 좁혀서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더불어 행정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국회의 기능과 전문성을 높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참담한 국정농단과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는 대통령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권력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준다. 국회의 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의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정당별로 견해 차이가 남아 있지만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견제하고 국민들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으로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행정부가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시기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국회의 예산 규모 및 조직적 능력, 그리고 정책적 전문성은 행정부에 비해 현저히 뒤처진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면 행정부 부처별로 다수의 국책연구기관을 가지고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국회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의 수와 규모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회 입법조사처도 국정 전반을 다루는 종합적인 조사연구기관이지만 조직과 예산 규모가 턱없이 부족해서 업무수행에서 역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 위상이 급속히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회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하더라도 대의제의 중심기관인 국회와 정당의 역할을 폄하하는 반정치(反政治)담론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협하는 시각이다. 국회에 대한 날 선 비판도 필요하지만,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도록 국회의 조직을 정비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언론과 국민들이 응원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개원 70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회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회 구성원 모두가 국회가 특권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들을 대표하고 섬기는 대의기관이라는 분명한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다.
  • KDI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 후 노동생산성 높아져”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노동생산성이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달부터 300인 이상 기업에서 최대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는 상황에서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 관행이 추가로 개선될지 주목된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8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국제경제학회 하계 정책심포지엄에서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2000∼2012년 중 존속한 제조업체 1만 1692개를 대상으로 2004∼2011년 단계적으로 도입된 주 40시간 근무제가 1인당 생산량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근로시간은 2.9% 감소한 반면 1인당 부가가치 산출(노동생산성)은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40시간 근무제 이전에는 고용이 경직된 상황에서 사용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정규 임금을 낮췄고, 반대로 근로자는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 정책의 근본 목표는 근로자의 안전이지만 생산성도 중요하다”며 “생산성을 향상하려면 노사가 일하는 방식을 창의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정부는 세세한 규제를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경기 회복 모멘텀이 점차 둔화되고 있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한국은행의 다음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올해 4분기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도 “한국 경제의 저성장 장기화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악화된 고용·소득분배로 빛바랜 ‘3% 경제성장’

    악화된 고용·소득분배로 빛바랜 ‘3% 경제성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취임 1년이다. 경제성장률이 3%대로 복귀한 것은 성과로 볼 수 있지만 고용과 소득 분배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청와대 측과의 경제 컨트롤타워 논란 역시 남아 있다. 취임 2년차에는 이 논란을 불식시키고 혁신성장의 가시적 성과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김 부총리가 취임한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로 3년 만에 3%대로 복귀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은 2만 9745달러로 올해는 3만 달러 돌파 가능성이 제기된다. 2006년 2만 달러 달성 이후 12년 만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축인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분야에서는 국민의 체감 수준이 낮다. 특히 고용과 소득 분배가 악화됐다. 김 부총리는 이날 “상반기 중 10만 후반대의 고용 증가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부 목표(32만명)와 큰 차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소득 하위 40%(1~2분위)와 소득 상위 20%(5분위)의 명목소득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최근에는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과 관련, 청와대 측과 상반된 의견을 개진하며 컨트롤타워 논란도 불거졌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컨트롤타워 논란은 빛에 의해 나타나는 그림자를 쫓는 그림자 게임이라 생각한다”면서 “실체가 없는 것이며 일과 성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청와대와 기재부가 각각 나눠 맡는 역할구분론에 대해서도 “분리할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성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경쟁력 강화보다는 노동시장 경직화만 진행된 게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반면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소득층 소득이 늘었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혁신성장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전열 정비를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졸라맸다. 그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겸 제8차 경제장관회의에서 “혁신성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김 부총리로부터 경제 현안과 관련해 여섯 번째 월례 대면 보고를 받았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과 관련해 8대 선도산업의 하반기 성과 도출에 집중하고 규제 개선안을 9월 말까지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소득 분배 악화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장·단기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소득 분배 악화에 대해 어르신 일자리 확대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신속히 추진해 나갈 것을 지시했다. 경제 실상과 정부 정책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소통하는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도 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연곡사, ‘연기조사’ 창건설·조선 의병 본거지… 왜적과 악연 깊어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연곡사, ‘연기조사’ 창건설·조선 의병 본거지… 왜적과 악연 깊어

    ‘고지마 중대는 칠불사, 연곡사, 문수암을 남북 양 방향에서 포위 공격했다. 1소대는 하동 방향에서 전진했다.…소대는 오전 7시 반 예정대로 연곡사를 공격, 100명 남짓한 의병대를 오전 10시 반야봉 쪽으로 격퇴시켰다. 의병장을 포함해 22명 사살, 부상 30명, 노획품은 소총 5, 나팔 3 등. 연곡사 14동을 소각함.’ 일본 조선주차군수비대 제18연대의 ‘진중일지’는 1907년 10월 17일 연곡사 전투의 상황을 23일 이렇게 보고했다. 21일자 일지에는 ‘키노 대위의 부대는 진해만요새포병과 함께 연곡사 일대에서 고광순이 이끄는 의병과 충돌, 고광순 이하 약 40명을 쓰러뜨림’이라고 적었다.구례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 창건설이 전하는 사찰이다.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남해안과 지리산 일대 대표적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이름 높았다. 이런 유서 깊은 절을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불을 질러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런데 300년 남짓 시간이 흐른 뒤 또다시 일본군의 방화로 전소된 것이다.이날 연곡사에서 일본군과 맞서다 순절한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1533∼1592)의 후손이다. 고광순은 문집 ‘녹천유고’(鹿川遺稿)에서도 12대조인 고경명의 뜻을 이어 항일 의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을 밝혔다고 한다. ‘녹천유고’에 담긴 고광순의 ‘열읍(列邑)에 보내는 격문’에는 ‘난신적자는 모두 처단할 것, 내정에 간섭하는 왜적을 몰아낼 것, 민비 시해의 원수를 갚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때, 을사늑약 이후 또 한 차례 일본군의 방화로 파괴된 연곡사와 두 시기 각각 전사한 고경명과 고광순의 운명은 닮아 있다. 일본은 1904년 3월 보병 제24연대 병력 4272명을 서울과 부산, 원산에 배치했다. 러일전쟁이 마무리된 1905년 10월에는 보병 제13사단과 제15사단 병력 1만 8398명으로 증강한다. 이렇게 2개 사단으로 무력시위를 벌이면서 11월 17일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할 수 있었다. 일본은 1907년 3월 제15사단을 철수시켰지만, 다시 8월 보병 제14연대를 포함한 여단 병력을 증파한다.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이후 그들이 말하는 ‘소요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영호남 의병 탄압이 목적이었던 보병 제14연대가 연곡사를 중심으로 의병을 훈련하고 기습작전을 벌이던 고광순 의병을 공격한 것이다. 연곡사에 가려면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대로를 따라 달리다 외곡삼거리에서 지리산 피아골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제는 좌우에 펜션이 가득 들어선 계곡을 따라 오르면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보이고 조금만 더 달리면 오른쪽에 절이 나타난다. ‘지리산 연곡사’(智異山 燕谷寺)라 편액한 일주문은 1995년 세웠다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천왕문은 아직 단청도 되지 않았다. 연곡사는 1942년 일부 전각을 중건했지만 6·25전쟁 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됐고, 1965년에야 요사채를 겸한 작은 대웅전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큰법당인 대적광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제법 규모 있게 들어서고 있지만 전성기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만행에도 석물(石物)들이 일부가 훼손은 됐을지언정 그런대로 살아남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곡사에는 흔히 부도(浮屠)라 부르는 승탑(僧塔)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대적광전 오른쪽으로 돌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면 동 승탑과 탑비가 나타난다. 통일신라시대 말 승탑은 가장 아름다운 부도의 하나로 꼽힌다. 동 승탑과 짝을 이루는 왼쪽의 탑비는 머릿돌과 받침돌만 남았다. 몸돌은 임진왜란 때 파괴됐다고 한다. 받침돌을 가만히 보면 용의 얼굴을 한 거북이 모양이되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상상 속의 동물인 연을 형상화한 것이라는데, 이런 동 승탑비의 모습을 본떠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동 승탑과 탑비에서 대적광전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북 승탑이 있다. 고려 초기에 동 승탑을 모범으로 삼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적광전 서쪽에 떨어져 있는 현각선사탑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고려시대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고자 979년 세운 것이다. 역시 임진왜란 때 비신은 사라졌다.북 승탑에서 서쪽으로 산을 내려가다 보면 소요대사탑이 보인다. 문의 모습을 조각한 안쪽에 ‘소요대사지탑’(逍遙大師之塔)과 ‘순치육년경인’(順治六年庚寅)이라는 두 줄의 오목새김이 있다. 순치 6년은 1649년이다. 탑비를 따로 세우지 않고 승탑에 글자를 새겨 내력을 알리는 조선시대 부도의 전통이라고 한다.소요대사 태능은 임진왜란 때 의승군에 가담했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서성 수축을 주도하기도 했다. 왜란 당시 의승군을 이끈 서산대사 휴정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임진왜란 때 불탄 연곡사를 중창한 당사자다. 휴정의 다른 세 제자는 사명대사 유정, 편양 언기, 정관 일선이다.소요대사탑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현각선사탑비 왼쪽 동백숲 아래 작은 비석이 보인다.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다. 고광순 의병이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은 곳이 대적광전 서쪽이라고 했으니 이곳일 것이다. 순절비는 1958년 세워졌다. 이렇듯 연곡사 곳곳에는 왜적과의 악연이 짙게 배어 있다. 연곡사에서 토지면사무소 쪽으로 가는 길 중간의 섬진강변 석주관성(石柱關城)은 정유재란 당시 구례 지역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고려 말기에 왜구를 막고자 성벽을 쌓고 진을 설치했다고 한다. 하동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목인 만큼 정유재란 때는 왜군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건너편 언덕에는 의병으로 나서 왜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순절한 석주관칠의사(石柱關七義士)의 무덤도 있다. 석주관전투에는 화엄사 의승군이 대거 참전했다. 구례 화엄사라면 연곡사에서 멀지 않다. 화엄사도 연곡사와 같은 544년 연기 조사설이 전한다. 화엄사 의승군이란 곧 연곡사를 비롯한 지리산 일대 승군의 연합군이었을 것이다. 연곡사의 전각이 모두 불타고 탑비 일부가 훼손된 것도 이때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갈 기회가 있다면 불원복 태극기(不遠復 太極旗)도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의병장 고광순이 만들어 항일 의병 활동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는 태극기다. 위쪽에 붉은색 실로 ‘불원복’(不遠復)이라 수를 놓았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싱가포르 김치햄버거/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싱가포르 김치햄버거/황성기 논설위원

    북한과 미국의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햄버거가 등장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외교관들은 고개부터 젓는다. 몇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정상회담이라면 오찬이든 만찬이든 식사를 대접하는 호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제3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호스트, 게스트 설정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일정이 베일에 가려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점심, 저녁을 함께 한다는 계획은 공표되지 않았다. 둘째, 두 정상이 같이 식사를 하고 누군가가 호스트를 하더라도 메뉴를 사전에 정해야 하는데, 북·미 창구가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의전·경호를 총괄했던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미국과의 협의를 마치고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가려다 어제 밤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의 카운터파트를 언제 만날지는 불투명하다. 셋째로는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를 트럼프 대통령이 권하더라도 김 위원장이 덥석 먹기엔 북·미의 신뢰가 너무 약하다는 게 결정적이다. 김치햄버거가 대안이다. 싱가포르의 한 호텔이 재빠르게 개발한 ‘트럼프·김정은 햄버거’를 오늘부터 15일까지 한정 판매한다고 한다. 닭고기 패티 위에 김치를 얹었고, 미국의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꽂았다. 부식으로 프렌치프라이와 김밥을 곁들여 12싱가포르달러(약 9621원)라고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 공식 만찬에서 거제도 가자미 구이, 한우 갈비구이, 돌솥밥 등 전통 요리를 먹었는데, 김치는 메뉴에 없었다. 어느 외교관은 “트럼프가 김치를 싫어한다면 김치를 넣은 햄버거 등을 메뉴에 올리기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김치햄버거의 원조는 당연히 한국이다. 국내에 몇 건이 출원돼 특허청에 등록된 상태다. ‘미니 김치햄버거’는 소고기 29.786%, 돼지고지 44.679%에 일반 김치보다 젓갈을 5% 적게 넣어 산성도(PH) 4.7이 되게 숙성시킨 김치로 패티를 만드는 방식이다. 롯데리아가 개발한 ‘김치버거’ 시리즈도 특허 상품이다. 2001년 시판되자마자 하루 6만개가 팔리는 돌풍을 일으키며 진화를 거듭했으나 2016년 아쉽게도 판매를 중지했다. 북·미가 정상회담을 1박2일로 연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박2일간 오찬, 만찬을 한 번도 같이 하지 않는 것은 외교 관례상 어색하다. 4·27 남북 정상회담 때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만찬에 손님인 북측이 옥류관 냉면을 들고 온 전례가 있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한 성격 때문에 ‘(김치)햄버거 오찬’이란 서프라이즈도 점쳐진다. 김치햄버거가 좋겠지만, 트럼프가 순수 햄버거를 고집하면 김 위원장도 평양냉면으로 맞서 볼 일이다. marry04@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개성공단은 작은 통일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 연내 재가동 가능”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개성공단은 작은 통일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 연내 재가동 가능”

    남북 관계가 정말 풀리긴 풀리려나 보다. 지난주 찾은 서울 여의도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는 제법 활력이 느껴졌다. 개성공단 철수 후 2년 넘게 분노와 실의에 빠져 있었던 만큼 기업인들의 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 아닐까. 4·27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경협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신한용(58)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을 만났다. 신한물산 대표인 신 회장은 개성공단에서 200여명의 종업원들과 함께 어망과 통발 등 어구를 제조했다. 신 회장으로부터 개성공단 철수 이후 겪은 어려움과 재가동 준비 상황 등을 들어봤다.→판문점선언 이후 북·미 정상회담 발표와 취소, 재개 등 반전이 거듭됐다. 심정이 어떤가. -“밀당은 예상했지만 전격 취소될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국이) 북·미 회담을 취소했다.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거라고 느꼈다. 한데 하루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시 회담 가능성을 열었다. 트럼프답다. 비핵화 방식 등에서 조율이 부족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걸러지지 않겠나. 더 봐야겠지만, (취소 사태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산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단에서 철수한 뒤 보상과 지원은 얼마나 이뤄졌나. -“협회가 추산한 실질 피해액의 3분의1 정도만 지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철수 직후 240여개 기업이 1조 600억원 정도의 피해액을 신고했다. 건물과 기계장치 등 투자자산과 원부자재, 위약금, 영업손실, 영업권 상실 피해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기준으론 영업 정지에 따른 손실이 늘어나 피해액이 1조 5000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지원금액은 총 4800여억원에 불과하다. 그중 3000억원은 보험금이니까 실질적인 정부 지원은 1800억원 정도인 셈이다. 보험금은 개성공단 재가동 시 보험사에 뱉어내야 할 돈이다. ‘지원’이란 용어도 잘못됐다. 정부 조치에 의해 철수한 데 따른 응당 받아야 할 ‘보상’이 맞다. 마치 안 줘도 될 돈을 주는 양 시혜를 베푸는 듯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당시 개성공단에 대한 일부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이제 이런 시각이 바뀔까.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돈으로 핵을 개발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2016년 2월 정부가 정보기관 문건을 토대로 그런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 근거는 누구도 대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통일부는 그 문건이 주로 탈북자들의 진술과 정황에 의해서 작성됐음을 털어놓았다. 개성공단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방적 구두 지시로 전면 중단됐다고 했다. 그 탓에 기업들의 고통이 극심했다. ‘빨갱이 기업’, ‘종북기업’이란 말까지 들으면서도 제대로 항변도 못 했다. 북·미 회담이 잘돼 핵·미사일이 폐기되더라도 이런 부정적 시각이 금방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북한의 변화 모습을 보면서 점차 희석될 것이다.” →개성공단이 북한에 어떤 도움을 줬다고 보나.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의 맛을 알게 해 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품질이나 계약 개념도 없이 자기 고집대로 하면 되는 줄 알면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다. 공단에서 일하면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 방식이 자기들 체제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공단의 하루하루가 작은 통일이 이뤄지는 미니 실습장이라고 얘기했다. 그런 점에선 말잔치나 일삼는 통일 전문가들에게 아쉬움이 많다. 통일 실험장인 개성공단 하나 지켜내지 못하지 않았나. 개성공단 전체 근로자가 5만명이 넘었다. 가족들까지 하면 20여만명이다. 공단이 10개만 생겨도 200만명이고 북한 전체 주민의 10분의1에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비용 안 들이고 통일로 가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경협이다. 통일로 가는 지름길은 북한 주민들을 끌어내고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 →개성공단이 조만간 재가동되겠나. 준비는. -“북·미 회담이 잘 풀려야 재가동도 빨라질 것이다. 유엔 제재도 결국 미국 중심이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제재 예외조항을 개성공단에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현금만 직접 북측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북·미 회담 한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정부가 어떻게 치고 나가느냐도 중요하다고 본다. 재가동하려면 최소한 2~3개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기계 파손 상황 등을 점검하고 전기·수도를 복구하는 등 준비할 게 적지 않다. 조만간 방북이 허용돼 준비를 서두른다면 연말까지 재가동될 수도 있다. 협회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기업 차원에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 →공단 철수 기업들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124개 업체 중 60%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국내와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상당수는 근근이 유지만 하고 있다. 10여 군데는 아예 문을 닫고 사실상 폐업한 상태다. 폐업을 공식화하고 싶어도 금융권 부채 등의 문제가 남아 불가능하다. 일부 업체가 파산을 신청했지만, 개성에 자산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있다. 그렇다고 금융권이 개성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지도 않는다.” →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의 업체가 개성공단 재입주 의사를 보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대비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들의 노동의 질은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뛰어나다. 북 주민들의 잠재력은 우리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른 해외 노동자들처럼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고 응용력을 발휘해 더 잘하려고 한다. 머리가 좋고 민첩한 데다 이직도 거의 없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개성공단에 재산을 그대로 두고 나왔기 때문이다. 재입주해야 공장을 계속 돌리든지, 아니면 팔고라도 나오든지 하지 않겠나. →대기업의 북한 공단 진출에 대한 의견은. 신규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들은 있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부 개성공단 업체는 탐탁지 않아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대기업들도 진출해야 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트럼프빌딩이 북한에 세워지고 맥도날드가 대동강변에 들어설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야 북한이 변화하고, 대한민국 위상도 올라간다. 언제까지 나홀로만 고집할 수는 없다. 현재 20여개 업체가 개성공단에 신규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공단 재가동이 가시화하면 늘어날 것이다.” →공단 철수 뒤 본인 회사는 어떻게 꾸려 왔나. -“20년 전 회사를 설립해 중국 산둥성에 공장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서 서해 공동어로구역 이야기가 나오자 ‘남북 공동의 바다에 어구를 뿌리겠다’는 꿈을 갖고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철수 뒤엔 충남 예산에 공장을 지어 어구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도 이젠 채산성이 맞지 않아 운영이 상당히 어렵다. 물가나 임금, 이직 문제 등 여건이 안 좋다. 북한은 중국이나 동남아를 대체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 물론 안정성이 담보됐을 때 그렇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조성하면서 금융과 세금 우대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투자 기업을 모을 수 있었다. 한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혜택들이 없어졌다. 남북한 정세 변화에 따라 공단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와 함께 안정적인 정부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sdragon@seoul.co.kr
  •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6월의 강화도… 역사는 흐른다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 강화도는 고려의 도읍 개성과 조선의 도읍 한양에 가까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몽골 침입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 역할을 하는가 하면 개화기 서구열강과 일제가 할퀸 역사의 아픈 상처도 고스란히 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화를 ‘2018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화도로 역사 탐방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를 잇는 강화대교를 건너 차로 25분쯤 달리니 첫 목적지 강화평화전망대다. 강화도 북단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까지는 불과 2㎞ 남짓. 2층과 3층 전망대에서 보이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망원경에 눈을 가까이 댔다. 들녘에 농사일 하러 나온 북한 주민 수십명이 렌즈 너머로 분주히 움직였다. 헤엄쳐 건널 만큼 지척이건만 해안가에는 철조망이 꼿꼿이 서 있다. 두 땅 사이로 유유히 흘러온 한강은 이곳에서 바다가 된다.●비극의 근대사 강화도조약 맺었던 ‘연무당 옛터’ 전망대 1층에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안쪽 기둥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통일 염원 메시지가 주렁주렁 걸렸다. 전망대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48번 국도로 접어들면 얼마 안 가 강화산성 서문이 보인다. 맞은편은 쓰라린 역사가 서린 연무당 옛터다.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 일제는 이를 빌미로 이듬해 강화도 연무당에서 조선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한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다.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 근대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조선은 이를 계기로 일제에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한다. 지금은 새로 놓인 비석과 안내판만 덩그러니 있는 공터지만 강화읍내를 둘러보는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무당 옛터에서 차로 5분, 도보로 15분 거리에 강화고려궁지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 위 고려궁지 입구 계단에 서면 남쪽으로 강화읍내가 발아래다. 1231년 몽골이 고려를 침략해 오자 고종은 이듬해 강화로 피란한다. 이후 원종이 몽골과 화친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는 38년간 고려의 도읍이었다. 다만 고려의 흔적을 기대하고 왔다면 적잖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몽골의 요구로 당시 궁궐과 성곽이 모두 파괴됐기 때문이다. 영화는커녕 굴욕의 세월만 보내다 흔적마저 사라진 도읍이었던 탓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행궁으로 쓰일 당시 처음 지어진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등이 남아 있다. 그마저도 병자호란·병인양요 때 소실됐다가 1970년대 이후 복원했다. ●몽골 요구로 흔적 없이 사라진 고려 도읍 ‘강화고려궁지’ 외규장각에 들어가 의궤 관련 전시물을 둘러봤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와 건축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한 종합보고서다. 이곳에 보관됐던 의궤는 왕이 친히 열람하던 것이지만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됐다가 2011년에야 반환이 마무리됐다. 외규장각 뒤편으로는 고려궁지 발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400년 세월 동안 고려궁지를 지켜온 동헌 앞 아름드리 나무도 볼만하다. 강화도 동쪽 해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섬 전체를 빙 둘러 설치된 5진 7보 53돈대 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을 돌아볼 차례다. 강화8경에 꼽히는 갑곶돈대, 광성보, 초지진은 강화대교와 초지대교 사이에 차례로 자리하고 있어 해안가를 따라가며 둘러보기 좋다.강화대교 코밑 갑곶돈대로 향하니 바로 옆 강화역사박물관이 먼저 보였다. 1~2층 전시관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강화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특히 외세 침략기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강화인지라 이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해안가 낮은 언덕의 갑곶돈대에 올랐다. 1866년 프랑스 극동함대 병력 600여명이 이곳으로 상륙해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건너편 육지와 섬 사이를 흐르는 강 같은 바다 ‘염하’를 바라보다 정자(이석정)에서 쉬었다. 어느덧 따가워진 6월 햇볕을 피해 앉으니 섬을 지나 불어온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해안동로를 따라 차로 15분 남짓 남쪽으로 달리면 광성보다. 강화도 동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유독 툭 튀어나온 곳에 위치한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의 격전지다. 광성보 내 너른 산책로를 거닐며 무명용사들의 무덤인 신미순의총 등을 둘러볼 수 있다.●병인·신미양요 때 함락됐던 뼈아픈 역사 ‘초지진’ 초지대교에 이르기 전 초지진이 있다. 넓지 않은 진 둘레를 옹골찬 모양으로 둘러싼 성벽이 인상 깊지만 한눈에도 새로 쌓아 올렸다는 걸 알 수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함락된 데 이어 일제에 의해 파괴됐다가 1973년 복원됐다.초지진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강화도를 떠나기 못내 아쉬워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전등사로 향했다. 언덕을 오르고 매표소를 넘자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400년 된 나무 여러 그루 사이로 700살 된 나무까지 보였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을 쉬엄쉬엄 오르니 옹기종기 모인 절 건물들이 보였다. 마당 한편 범종은 보물 제393호. 그 너머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건물이 보물 제178호 대웅전이다. 세월이 묻은 현판과 서까래가 운치 있다. 섬을 나설 때는 초지대교를 건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낙조에 마음이 끌려 차를 돌렸다. 800년 전 고려의 왕도 강화의 낙조를 바라봤을까. 염해에 비친 석양이 구슬펐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 수첩 →강화군 주요 관광지 11곳 중 3곳 이상 방문 시 할인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3곳 이상 15%, 5곳 이상 20% 할인된다. 여행 전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해 놓고 처음 가는 곳에서 입장권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8곳 이상일 땐 입장권을 이틀간 사용할 수 있다. 전등사는 별도요금을 받는다. 어른 3000원. →평화전망대를 나올 때는 해병대 초소에 ‘민북지역 출입증’을 잊지 말고 반납하자. 무심코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 ‘주 52시간 근무’ 준비는 됐지만 시름은 커졌다

    ‘주 52시간 근무’ 준비는 됐지만 시름은 커졌다

    “새달 1일 시행 무리없다” 88% 절반 이상 “경영실적에 부정적” 공장 등 생산부서 가장 큰 타격 탄력근로제 강요 땐 역효과 우려 다음달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 10곳 중 8곳 이상이 시행 전까지 준비를 완료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절반 이상은 근로시간 단축이 경영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책으로는 근로시간 유연화를 꼽았다.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600대 기업 중에서 다음달 1일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업종에 속한 112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6일 밝혔다. 한경연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준비 정도를 묻는 질문에 준비가 완료됐다는 응답이 16.1%(18곳), 시범사업을 추진해 다음달 1일 전 사업장에 적용할 예정이라는 응답이 23.2%(26곳)였다. 또 시행 전까지 완료 예정이라는 답도 48.2%(54곳)에 달해 응답 기업의 87.5%가 다음달 1일 제도 시행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응답 기업의 55.4%(62곳)가 근로시간 단축이 영업이익 등 전반적인 경영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19.6%(22곳)였다. 노사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58.9%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애로 사항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축소된 임금에 대한 노조의 보전 요구’와 ‘생산성 향상 과정에서 노사 간 의견 충돌’이 각각 35.7%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애로를 많이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서(복수 응답)는 72.3%(81곳)가 공장 등 생산 부서를 꼽았고, 이어 연구개발(22.3%), 영업(19.6%), 인사(13.4%), 기획(8.9%) 순이었다. 기업들은 제도를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연장’(57.1%)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특정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연장시키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전체 단위 기간 동안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기준 근로시간 내로 맞추는 제도다. 구체적으로는 취업 규칙에 따른 단위 기간을 현행 2주일에서 3개월로 연장하자는 의견(64.1%)이 가장 많았고, 노사 서면 합의에 따른 단위 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자는 의견(75.0%)이 가장 많았다. 업종에 따라 근무 주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위 기간을 늘려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주장이다. 아울러 ‘근로시간 저축제도 도입’(33.9%),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 체계 구축 지도’(32.1%),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19.6%), ‘연장근로수당 할증률 인하’(13.4%) 등이 꼽혔다. 근로시간 저축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 등 계약된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한 만큼의 시간을 저축해 뒀다가 필요할 때 유급휴가로 꺼내 쓰는 제도다. 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받는 관리직, 행정직, 연구개발 등 전문직, 컴퓨터직, 외근영업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제도다. 이들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하더라도 따로 시간별 수당을 지급하지 않지만, 이로 인해 업무에 성과를 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지나치게 확대 운용할 경우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면서 “연착륙을 위한 완충 장치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것은 외려 제도 정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부 아니다, 영향 분석 어려운 일…KDI, 어이없는 실수”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부 아니다, 영향 분석 어려운 일…KDI, 어이없는 실수”

    “대기업·中企 격차 최대 과제… 경제 혁신·복지 등 함께 돼야”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 감소 효과가 최대 8만여명에 이른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비판한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최저임금 논란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위기론으로까지 번지는 것에 대해 “꼬리가 몸통을 건드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전부는 아니라는 취지다.이 국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ILO 사무실에서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논란과 소득주도 성장의 위기론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 국장은 2000년부터 ILO에서 근무하다 지난 1월 한국인 최초로 고용정책국장에 임명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ILO에서 근로 시간과 임금, 노동시장 정책을 연구했다. 그는 “최저임금의 영향을 분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KDI는 그런 면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했고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한 결과를 적극적으로 발표했다는 게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했다. 노동계가 반발하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에 대해서는 “정기상여금은 (산입의) 여지가 좀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가 다 동의하는 것 같다”면서도 “개인적으로 복리후생비는 좀 유보적인데, 급여라기보다는 비용에 가까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 결정은 노사가 충분히 논의하고 공통 분모가 있을 때 법률 합의를 하는 게 가장 좋다”며 “이번 개정안은 좀 갑작스러운 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저임금의 고용 감소 효과와 소득주도 성장 위기론에 대해서는 “소득주도 성장에서 최저임금이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주 결정적인 건 아니다. 소득 분배와 관련한 경제 정책이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소득 분배의 정상화는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성장 효과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또 원·하청 불공정 거래와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를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그는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깎다 보니 중소기업의 노동 생산성이 계속 낮아지고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에 한계가 생긴다”며 “중소기업 사정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려고 하니 어려운 점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 분배만 개선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연구개발(R&D)과 혁신, 생산성 투자를 기본적으로 잘 해야 소득주도 성장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또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라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등 복지와 경제 정책이 패키지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대책이 조세 문제를 꺼내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며 “정말 중요한 조세 문제를 외면하고 손에 잡히는 최저임금만 건드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대북 지원은 투자…새 시장 北 열린다

    대북 지원은 투자…새 시장 北 열린다

    과거에도 美는 비용 부담 안 해 민간 투자로 비핵화 보상 가닥 北도 베트남식 개혁·개방 관심 철도 뚫어 南물류 활용 땐 ‘윈윈’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비핵화 대가로 미국보다는 한·중·일이 개발 비용을 주로 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이 적극적으로 대북 투자를 추진해 ‘블루오션’을 선점하고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통일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북한은 인건비 대비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고 있고 자원이 풍부하며 남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 맞닿아 있어 주변 국가들의 물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경우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나 2007년 2·13 합의 때처럼 중유나 경수로를 일방 지원하는 식의 경제 지원이 아닌 대북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북 지원을 ‘퍼 주기’란 낡은 잣대로 볼 게 아니라 잠재적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 대한 ‘투자’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북 경제 지원의 부담을 미국이 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미 양측은 경수로 건설을 미국이 주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빌 클린턴 정부의 이 같은 합의 직후 미국 선거에서 압승한 공화당이 예산 지출을 막으면서 미국 정부는 발을 뺐고 결국 비용 부담은 한국과 일본한테 돌아갔다. 결국 한국과 일본이 경수로 건설비용 46억 달러를 분담했다. 그러나 현재 비핵화 대화 국면에선 경수로나 중유 제공이 일절 거론되지 않는다. 북한이 지원 대신 투자를 통한 경제개발을 원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4일 “북한의 요구는 정상적인 경제 거래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간기업을 통한 대북 투자를 언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단 미국 기업이 대북 투자를 시작하면 다른 나라들도 안정성을 믿고 투자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을 돕는다면 세계은행(WB)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활용한 자금 지원도 가능해진다. 문재인 대통령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한반도 신(新)경제지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역할과 준비에 대해서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한국 정부의 대북 투자는 판문점 선언에 따라 우선 철도·도로 건설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도 등 북한의 낙후한 인프라를 개선하고, 중국과 러시아로 철도를 연결해 북한의 물류체계를 우리가 이용한다면 남북한이 ‘윈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향후 1~2년 내 순조롭게 남북 경제통합이 진행될 경우, 이후 5년 동안 연평균 0.81% 포인트의 추가적 경제성장과 10만개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수원시 수돗물, 지난해 모든 수질검사에서 ‘적합’

    수원시 수돗물, 지난해 모든 수질검사에서 ‘적합’

    수원시상수도사업소가 원·정수 수질(2017년 기준)과 수돗물 생산과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2018년도 수돗물품질보고서’를 4일 공개했다.지난 한 해 동안 시 수돗물 수질은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상수도사업소는 수돗물 원수(原水)·정수 수질을 주기적으로 검사한다. 탁도 등 6항목은 매일, 알칼리도 등 22항목은 매주,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 등 22항목은 매달 검사한다. 이밖에 원수는 질산성질소 등 47항목(분기 1회)·크실렌 등 65항목(연 1회)을, 정수는 THM(트라이할로메테인) 등 76항목(분기 1회)·안티몬 등 143항목(연 1회)을 검사한다. 배수지(12개소), 일반 수도꼭지(97개소), 수도관 노후지역 수도꼭지(6개소), 급수과정별(18개소) 수질 검사도 한다. 또 시내 주요지점 11개소 수도꼭지에 수질 자동측정기를 설치, 수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상수도사업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시는 수돗물을 많이 사용하는 업소·대형 상가 등을 찾아가 무료로 수질 검사를 해주는 ‘수질검사 방문서비스’와 가정을 방문해 수돗물 수질을 검사해주는 ‘우리집 수돗물 안심 확인제’ 사업 등도 전개하고 있다. 김교선 수원시 상수도사업소장은 “모든 수질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수원시 수돗물은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면서 “시민이 수돗물 수질 정보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수원시·상수도사업소 홈페이지에 수질 검사 결과를 매달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김정은 북미정상회담 나선 것은 경제제재 때문이 아니다?

    김정은 북미정상회담 나선 것은 경제제재 때문이 아니다?

    최근 몇년간 오히려 경제 성장“경제 발전 속도 올리기 위한 것” 올해 초부터 북한이 비핵화 협상 등 대화에 나선 배경이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4일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에 나선 배경에 경제 제재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그 근거로 북한 경제가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년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는 수치들을 내세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1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이래 북한의 5개년 성장률은 연평균 1.2%를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근 17년 이래 최고 성장률인 4%를 기록했다. 무역액도 성장세였다. 최근 북한의 수출은 연 평균 4~5%, 수입은 3~5%씩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자료를 보유한 1990년 이후 자료를 보면 김일성 집권기 5개년 연평균 성장률은 -4.5%, 김정일 집권기 17개년 연평균 성장률은 0.2%였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뒤 이전 세대보다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실용주의적이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2012년 공장과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 제공을 허용했으며, 2014년에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13곳의 새 경제개발구역을 선정했다. 2014년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시장친화적인 개혁 방안을 내놓으면서,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을 국가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북한을 방문하고 온 데이비드 비슬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1990년대에는 극심한 식량 부족과 굶주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보지 못했다”면서 “다만 영양실조와 영양부족 문제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SCMP는 이와 관련해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상세히 전했다. 전병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제재에도 북한 경제는 부분적으로 시장 경제를 도입하면서 발전하고 있다”면서 “다만 경제가 여전히 고립돼 있어 외자 유치와 국제 사회와의 기술 교류 없이는 그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북한 경제가 나쁘진 않다”면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온 것을 단순히 유엔 제재의 결과만으로 보기는 힘들며, 핵 보유국이라는 자부심도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 정권의 존속을 위협할 정도로 석유 공급을 차단하지 않는 이상 경제 제재로 북한 정권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유엔 제재가 북한 경제에 피해를 줬겠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며 북한은 제재를 견딜 경제적 힘을 갖고 있다”면서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에 나선 것은 제재로 인한 일부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즉 북한이 국제적인 제재로 인해 경제에 일정 부분 타격을 입긴 했겠지만 그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며, 오히려 최근 몇년간 시행한 시장경제적 정책을 통해 맛본 경제 발전의 속도를 끌어올리고 이를 위한 협상 지렛대로서 완성 단계에 이른 핵 개발을 내세운 것이라는 분석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식물 생산성 높이는 단백질 발견

    식물 생산성 높이는 단백질 발견

    국내 연구진이 식물 체내에 에너지 이동통로를 늘려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황일두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식물이 광합성으로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을 각 기관으로 전달하는 체관 숫자를 늘리고 줄이는데 관여하는 단백질을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28일에 발행된 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플랜트’ 6월호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식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단순히 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탄소화합물로 전환하는 광합성량을 늘리는데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그렇지만 광합성 효율을 늘리더라도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시킬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은 애기장대, 담배 같은 관다발 식물들 유전자를 분석해 체관 발달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이 단백질에 우리말로 ‘줄기’라는 이름을 붙였다.줄기 단백질은 체관 발달을 유도하는 특정 RNA가 접혀 있는 구조에 결합함으로써 체관 성장과 발달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연구팀은 밝혀냈다. 연구팀은 줄기 단백질이 억제되면 체관 숫자가 크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고 줄기 단백질이 지구 식물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다발 식물 진화에 결정적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줄기 단백질을 조절해 체관 수를 늘리자 식물 종자의 크기와 무게가 최대 40%까지 증가되는 것을 확인했다. 황 교수는 “이번 연구는 그동안 이론상으로만 제안돼 온 식물 체내 에너지 수송 능력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라며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식물 생산성 저하 문제도 이번 연구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기업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퍼주기식’ 일회성 지원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 싹 틔워야

    [기업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 산다] ‘퍼주기식’ 일회성 지원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 싹 틔워야

    ‘노바티스’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회사다. 2008년 총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제약회사로 꼽힐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대다수 국민에겐 낯설지만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이마티닙, 조현병 치료에 쓰이는 클로자핀 등을 생산한다. 특히 회사가 보유한 특허약 권리를 빈곤국에서 포기한 최초의 제약회사이기도 하다. 노바티스는 가난한 나라에서 복제약에 대해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는다. 특허약뿐 아니라 복제약을 저렴하게 생산해 빈곤국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 준다. 선진국에선 의약품 전액을 받는 반면 가난한 나라엔 할인을 해 주는 ‘차별화된 가격 정책’을 펼친다. 2010년 6월부터 말라리아 치료약 3억 4000만정을 이윤 없는 제조 원가로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도 말라리아 치료약은 ‘돈 벌 생각 없이 만들어 판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히 기부하고 봉사하는 수준을 넘어 ‘무상의 유통’이라는 새로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책임)을 창출해 낸 것이다.프랑스의 유명한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은 직원만 14만여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 기업이다. 미슐랭은 2001년 브라질에서 생산하는 천연고무나무가 병충해로 생산성이 떨어지자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이윤보다 사회적 가치에 더 중점을 뒀다. 병충해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 개량 연구를 지원했다. 또 고무나무 사이에 코코아나 바나나를 재배해 수익을 벌충하는 방법도 도입했다. 또 1000여 가구의 브라질 농민들이 가족 소유로 고무나무를 재배할 수 있게 18만 1818㎡ 규모의 마을을 조성해 물부터 의료, 학교시설을 갖추게 지원하고 도로도 만들어 줬다.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공급에 어마어마한 돈을 쓴 것이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150년 전통의 ‘네슬레’는 우리나라에서도 커피와 초콜릿으로도 유명하다. 네슬레는 “장기적인 비즈니스 성공은 주주들과 사회에 동시에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것을 CSR에서 한발 더 나아간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 가치 창출)라고 부른다. 첫 단계로 식수, 농촌개발, 영양이라는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공급기지 농민 50여만명이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빈곤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보답으로 우리는 소비자와 궁극적인 우리 비즈니스에 혜택이 되는 양질의 생산물을 공급받는다”고 밝혔다. 네슬레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농부나 실업자 5000명에게 네스카페 커피를 싣고 나를 수 있는 빨간색 카트를 제공했다. 카트를 받은 이들은 주민들에게 커피를 나눠주고 맛에 대한 평가를 수집했다. 네슬레는 광고비용을 쓰는 대신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연스레 주민들에게 네스카페를 홍보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100개 이상의 소비자 브랜드를 가진 다국적 식품기업인 ‘제너럴밀스’는 “우리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사회적 책임이 있는 식품회사 중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외친다. 대표적 예가 옥수수를 공급하는 중국 농민에게 종자를 제공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이다. 이들에게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하고 수확 전량을 구매한다는 약속도 지켰다. 공급 사슬 자체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기업이 튼튼해진다고 본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기업의 CSR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듯 날로 커지고 있다.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가치하에 정부까지 나서서 돕는다. 기업은 소비자가 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기업을 주시하고 ‘착한 기업’ 제품을 선호한다는 사실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둔다. 또 사회발전, 환경보호 등 공익적 기여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룬다는 점에도 주목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 전략을 짠다. 하지만 대내외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책임경영은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가치 창출‘보다 ‘퍼주기식’ 자금 지원에 그쳐 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해외 기업만큼 장기적이고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한 종합적인 수준까지 진일보하지 않았다는 게 경제·사회 전문가들의 대다수 시각이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경영활동 과정을 통해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하는데 그저 성금 내고 연탄 배달하고 김장 담그는 ‘보여 주기식’의 봉사 수준으로 그치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회공헌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협력업체나 대중과 성과를 공유하고 환경 등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경영을 이끌어 바람직하고 공정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사회공헌이자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삼성애니콜 희망소학교’ 설립을 통해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중국 오지에 120곳의 학교를 세우고 아프리카 등에서 문맹퇴치 교육에 나섰다. 최근 저개발 국가에 마을을 구축하는 나눔 빌리지 사업도 추진 중이다. SK그룹 역시 SK에너지의 3600여개 주유소 망 등을 개방하고 소재기업 5곳을 선발하는 등 SK가 가진 유무형 자원을 공유하는 ‘공유 인프라’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의 CSR 활동은 아직 물품지원, 봉사활동 등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수준에 멈춰서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과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2016년 중견·중소기업 544개 대상 사회공헌활동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유형은 현금 기부가 7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현물 기부 57.6%, 임직원 자원봉사 43% 순이었다. 이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로 70.9%가 ‘인력 및 예산부족’을 꼽았다. 사내 공감대 및 협조 부족도 64.2%나 됐다. 몇 년 전 중소기업중앙회가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중기 305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상황은 비슷했다. 활동 유형을 살펴보면 기부금이 87.8%로 가장 많았다. 아직까지 기업의 CSR 활동이 사회적 가치 창출로 전환돼 질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아기 울음소리 줄어든 G7

    아기 울음소리 줄어든 G7

    한동안 나아졌던 주요 선진국의 저출산 문제가 다시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와 긴축재정에 따른 양육지원 축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7개국(G7)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800만명을 밑돌 것으로 추산됐다. 캐나다를 뺀 6개국에서 출생아 수가 전년보다 줄었다. 이달 1일 발표된 일본의 지난해 전체 출생아는 94만 6060명으로, 역대 최소 기록을 경신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도 1.43으로, 전년의 1.44보다 악화됐다. 미국도 지난해 신생아 수가 385만명에 그쳤다. 15~44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60.2명꼴로 100년 이상 된 통계 산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다. 특히 초산 연령이 늦어지면서 30대 여성의 출산율은 낮아진 반면 40~44세에서는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이 1993년 1.66에서 2006년 2.0까지 회복되며 저출산 문제 극복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선진국으로 분류됐던 프랑스도 긴축재정과 이에 따른 육아지원 축소로 사정이 다시 나빠지고 있다. 2014년에는 20대 여성의 출산율이 30대 여성에게 역전을 당했다. 특히 20대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는 최근 5년간 10%나 감소했다. 긴축재정의 영향은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도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다. 독일의 경우 정부 지원 강화와 이민자 수용 확대 정책 등에 힘입어 출생아가 2016년 약 20년 만에 최고 수준인 79만 2000명까지 늘었다. 지난해에는 7년 만에 감소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현상 유지는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출생아가 감소하는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여성의 첫아이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일본에서 1980년대부터 진행돼 온 이 현상이 다른 선진국에서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상당수 선진국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가의 출산·양육 지원이 축소되면 저축 등 일정 수준의 대비를 하고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초산 연령이 늦어지기 마련이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의 경우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 세대를 떠받쳐야 하는 경제활동인구의 부담이 해마다 가중되고 이것이 경제의 활력을 해칠 것으로 지적되기 시작했다”며 “생산성 향상이 선진국들의 공통의 과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겨우 2000명 병사로… 淸태조 사위 사살·대승 거둔 ‘광교산 대첩’

    병자년인 1636년 청나라가 침입하자 전국 곳곳에서 근왕병(勤王兵)이 일어났지만 누구도 포위를 뚫고 남한산성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그런 탓에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조정 대신들의 무인(武人)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기만 하다. 인조실록은 ‘임금이 외로운 성에 두 달이 되도록 포위당하여 군사는 고단하고 양식은 적어 조석을 보전할 수 없었으므로 머리를 들고 발돋움하며 구원병이 이르기만을 날마다 기다렸지만 팔도의 군사를 거느린 신하로 한 사람도 성 밑에서 예봉을 꺾고 죽기를 다투는 이가 없었으니, 군신(君臣)의 분수와 의리가 땅을 쓴 듯 없어졌다’고 적기도 했다.하지만 포위된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왕의 격문이 닿기도 전에 군사는 남한산성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충청도 군은 성남 분당의 동막천, 강원도 군은 하남시와 광주시 사이의 검단산, 경상도 군은 광주시 쌍령동까지 진출했지만 패퇴했을 뿐이다. 물론 전장(戰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만 하던 장수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산성에 피신해 갑론을박만 벌이던 대신들이 패전 책임을 일선에서 싸운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승리한 전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전라병사 김준룡은 1월 4일 2000명 남짓한 병력을 이끌고 광교산에 진을 쳤다. 이들은 다음날 청군 5000명을 격퇴한 데 이어 이튿날에도 화포를 동원한 적의 공격을 받았다. 김준룡은 유격부대를 투입했는데 이 전투에서 적장 양고리(揚古利)를 사살했다. 당대의 대학자 미수 허목은 이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공이 칼을 들고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가운데 필사의 의지를 보이자, 병사들이 모두 죽기로 작정하고 싸웠다.…어떤 오랑캐가 산꼭대기에 큰 깃발을 세운 뒤 갑옷 차림으로 말에 올라 군사를 지휘하자…공이 그 사람을 가리키며 ‘저 자를 죽이지 않으면 적병이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외치며 전투를 독려하니 군사를 지휘하는 자와 그 좌우 몇 장수가 일시에 탄환을 맞았다.…죽은 장수는 선한(先汗)의 사위 백양고라(白羊高羅)였다.’ 백양고라가 곧 양고리다. ‘선한’이란 청태조 누르하치를 말한다.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의 귀와 코를 씹어먹었다는 인물이다.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누르하치의 사위가 되었으니, 청태종 홍타이지의 매부다. 누르하치가 ‘전장에서는 몸을 좀 사리라’고 했을 만큼 겁이 없었다는 그는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미수가 적은 대로 김준룡 부대가 ‘오랑캐의 시신이 겹겹이 쌓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승리를 거두자 남한산성의 임금과 대신들은 처음에는 환호했다. 하지만 김준룡 부대는 군량과 화약이 떨어져 수원 남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전공(戰攻)을 세운 김준룡이지만 이때의 철군을 이유로 훗날 파직된 것은 물론 유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중국 쪽 기록인 ‘청사고’(淸史稿)의 분위기는 다르다. 이날의 패전은 충격이었다. 양고리의 시신이 광교산에서 진지로 돌아오자 태종 홍타이지가 직접 제사를 지내며 곡을 했고 임금의 의복을 내려 염하게 했다. 심양에서도 양고리의 상여가 조선에서 도착하자 태종이 교외까지 나가 맞이했고, 누르하치의 무덤인 복릉(福陵)에 배장했다. 홍타이지는 이때도 직접 제사를 주관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조총 탄환을 양고리에게 명중시킨 박의(朴義)의 이름이 역사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그는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했으니 졸병이 아니다. 그럼에도 벼슬은 평안도 직동의 종9품 권관(權管)에 머물렀다. 승진은커녕 변방으로 좌천된 꼴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고려의 김윤후는 몽골의 살례탑을 활로 쏴 죽여 대장군에 제수됐다. 그런데 박의는 직동 만호에 그쳤으니 사람들은 애통해한다’고 자신의 문집인 ‘영재집’에 적었다. 만호는 권관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이다. ‘직동 권관’의 착오일 것이다. 청나라에 항복했으니 청황제의 가까운 인척을 사살한 군관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수는 있다. 김준룡의 승전을 재평가하는 논의는 정조시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1791년(정조 15) 사직 신기경이 ‘병자년 난리 때 김준룡은 오랑캐를 섬멸하여 공을 세웠으니 마땅히 상을 주어 장려해야 한다’고 상소한 것이다. 화성 축조를 앞두고 수원 지역의 현안을 일일이 점검하는 자리였다. 정조는 이듬해 김준룡에게 충양(忠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정부의 차관급 벼슬인 찬성(贊成)도 추증했다. 오늘은 병자호란의 역사를 바탕으로 광교산으로 간다. 해발 582m의 광교산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과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과 고기동, 의왕시 일부에 걸쳐 있다. 호란 당시 김준룡 부대는 서남쪽 수원에서 광교산으로 접근했다. 청군은 남한산성이 있는 동북쪽에서 몰려왔으니 광교산 전체가 싸움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시루봉 남쪽의 토끼재 아래 해발 400m 지점에는 김준룡 장군의 승전을 알리는 각자(刻字)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김준룡 장군 전승지와 전승비’라고 부르는데 자연암반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충양공 김준룡 장군 전승지’(忠襄公 金俊龍 將軍 戰勝地)라는 큰 글자 좌우에 ‘병자청란 공제호남병 근왕지차 살청삼대장’(丙子淸亂公提湖南兵勤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 음각했다. ‘김준룡 장군 전승지’가 현대적인 글귀인 데다 ‘병자청란’이라는 표현도 익숙지 않다는 점에서 누군가 당초의 글자를 고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광교산 대첩’을 알리는 유일한 기념물이다. ‘수원군읍지’(水原郡邑誌)에는 ‘화성을 축조하는 데 필요한 석재를 구하러 광교산에 갔던 사람들로부터 김준룡 장군의 전공을 전해들은 좌의정 채제공이 새기게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번암 채제공은 정조 시대 개혁을 주도한 인물로 당시 성역총리대신(城役總理大臣)을 맡고 있었다. 화성 건설의 총책임자다. 화성 축조를 전후해 김준룡 장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준룡 전승지는 수원에서 광교유원지를 거치거나 용인에서 신봉도시개발지구를 지나 오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수원 쪽 광교산 들머리에는 창성사 터, 용인의 산자락에는 서봉사 터가 있다. 창성사 터와 서봉사 터에는 모두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천희의 탑비와 현오국사탑비가 각각 남아 있다. 지금 천희의 탑비는 화성 내부 방화수류정 옆으로 옮겨져 있다.최근의 발굴조사에서 창성사는 신라 말 창건 이후 중창과 폐사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출토 유물을 근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17세기 폐사 이후 18세기 후반 중창이 이루어졌다. 17세기 폐사는 병자호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때 서봉사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발굴조사에서도 병장기가 적지 않게 수습됐다. 그러니 두 절터는 전승비와 함께 ‘광교산 대첩’의 중요한 기념물이다.김준룡 장군의 무덤은 경기 시흥시 군자동에 있다. 그는 호란 이후 전라도병마절도사와 영남절도사를 지내고 1642년 세상을 떠난 뒤 고향인 양천 땅에 묻혔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화곡동으로 1972년 도시화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앞서 소개한 허목의 전투 장면 묘사는 무덤 앞에 세워진 신도비 비문의 일부다. 양고리 유적이 경기 하남시에도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남한산성 북문이 가까운 법화사 터다. 양고리는 ‘법화장군’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전사하자 청태종이 그의 고향 법화둔의 이름을 따 법화사라는 원찰을 세웠다는 것이다. 청나라 장수를 사살한 것에 한 가닥 위안을 삼고자 비극의 현장인 남한산성에 이런 설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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