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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교육 와이즈캠프, 비주얼씽킹 학습법 적용해 월간학습지 ‘와플’ 개편

    비상교육 와이즈캠프, 비주얼씽킹 학습법 적용해 월간학습지 ‘와플’ 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전국 초중고교의 개학이 연기됐다. 이에 따라 비상교육 등 온라인교육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초등 학습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학원이나 방문학습지 등이 아닌 비대면 학습 프로그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이에 비상교육 와이즈캠프는 대면 접촉 없이 집에서도 학습 습관을 다질 수 있는 홈스쿨링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월간지 ‘와플’을 새로이 개편한 점이 눈에 띈다. 와플은 와이즈캠프에서 스마트학습기와 함께 월마다 제공하는 오프라인 학습지다. 기존 본교재였던 ‘와플Ⅰ’은 와이즈캠프의 비주얼씽킹 개뼈노트를 결합한 ‘비주얼씽킹 와플’로 새로이 개편됐다. 부교재였던 ‘와플Ⅱ’은 없어진 대신 개뼈노트의 비중을 넓혔다. 와이즈캠프 개뼈노트는 삽화나 이미지로 개념을 구조화하는 시각적 사고 방법인 비주얼씽킹을 국내 교육업계 최초로 스마트 학습에 적용한 사례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본문은 대단원 기준으로 기존 와플 문제에 앞뒤로 개뼈노트를 추가(대단원 도입 2쪽, 대단원 마무리 4쪽)했다. 또한 부록에는 개뼈노트 그리기 예시와 함께 빈 노트를 제공해 직접 개뼈노트를 그려볼 수 있게 했다. 한편 와이즈캠프는 교과서 속 1,738개 어휘와 개념을 그림을 통해 공부하는 초등 맞춤형 비주얼씽킹 사전 ‘말뼈사전’을 지난달 17일 오픈하면서 어휘의 뜻, 실제 모습(사진), 예문, 유사어, 반대어까지 함께 공부하도록 돕고 있다. 교과서 쪽수도 함께 제시해 해당 어휘가 어떻게 쓰였는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외에도 어려운 낱말의 뜻, 구조화된 낱말 풀이가 어색한 학습자를 위해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듣기 기능을 제공하며 키보드 입력이 어렵거나 불편한 학습자를 위한 음성 검색 지원 기능까지 더했다. 또한 이번 1학기부터는 개뼈노트의 개선사항이 반영돼 더욱 업그레이드된 기능으로 학습할 수 있다. 더블버블맵, 허니비맵, 핑거맵, 써클맵, 멀티플로우맵 등 과목별 특성에 맞춘 다양한 비주얼씽킹 맵으로 공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하기와 그리기 단계를 하나로 합쳐 그림과 녹음을 세트로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현재 와이즈캠프는 새 학기 맞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와이즈캠프 체험 이력이 없는 신규 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학습 10일 무료체험과 급수한자 문제집 1권, 비상교육 2020년 수학연산문제집 1권을 제공받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와이즈캠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와이즈캠프가 속한 비상교육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초등수학 국정교과서 발행자로 선정된 바 있다. 올해부터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비상교육이 발행한 교과서로 수업이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 번의 만류 무시하고 주지 선출 산중총회 강행한 법주사

    세 번의 만류 무시하고 주지 선출 산중총회 강행한 법주사

    대부분 사찰 산문 폐쇄 조치 효과 빛바래종법상 허용 불구 위계질서 훼손 후유증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선제적 행동에 나섰던 조계종의 한 산중총회(본사에 소속된 모든 승려들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굳이 이 위험한 상황에서 종단의 만류를 무시한 채 총회를 열어야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논란의 대상은 지난 2일 주지 선출을 위해 열린 조계종 제5교구본사 충북 보은 법주사의 산중총회. 법주사는 이날 대웅전 앞마당에서 이 사찰에 승적을 둔 전국의 스님 314명 중 253명이 모인 가운데 총회를 열어 현 주지 정도 스님을 차기 주지로 재선출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 차원에서 종단과 정부, 전문가들의 간곡한 집단행사 자제 요청에도 법주사 측이 산중총회를 강행한 점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달 23일 “코로나19 추가 감염자를 막기 위해 종단 산하 모든 사찰의 법회와 대중행사를 취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많은 사찰들이 산문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 사찰들이 일제히 산문을 닫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조계종은 지난달 26일 “법주사 산중총회를 연기해 달라”며 협조를 요청했지만 법주사 교구선관위가 산중총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총무원은 지난 1일 세 번째 공문을 보내 재차 연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주사는 “현 주지 스님의 임기 날짜로 인해 부득이하게 산중총회를 열 수밖에 없다”며 예정대로 산중총회를 강행했다. 종법상 교구본사 주지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 개최 여부는 교구선관위가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법주사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염려해 산중총회 구성원과 관계자를 제외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투표를 실내가 아닌 대웅전 앞마당에서 진행하긴 했다. 하지만 주지 선출을 위해 종단 방침과 정부 시책을 거슬러 조계종이 내세운 코로나19 확산 방지 선제적 대응이 빛이 바래게 됐다는 불만이 종단에서 쏟아진다. 정도 스님은 “총무원에서 염려하고 우려했던 것을 불식하고 무사히 잘 마쳤다. 협조해 준 스님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종단의 위계질서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한편 재선에 성공한 정도 스님은 탄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6년 사미계, 1979년 구족계를 받았다. 14~16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충주 창룡사 주지를 거쳐 2016년 3월 법주사 32대 주지에 올랐다. 법주사 주지의 임기는 4년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산문 폐쇄’하라는데 법주사는 왜?

    조계종 ‘산문 폐쇄’하라는데 법주사는 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선제적 행동에 나섰던 조계종의 한 산중총회(본사에 소속된 모든 승려들이 함께 참석하는 회의)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굳이 이 위험한 상황에서 종단의 만류를 무시한 채 총회를 열어야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논란의 대상은 지난 2일 주지 선출을 위해 열린 조계종 제5교구본사 충북 보은 법주사의 산중총회. 법주사는 이날 대웅전 앞마당에서 이 사찰에 승적을 둔 전국의 스님 314명 중 253명이 모인 가운데 총회를 열어 현 주지 정도 스님을 차기 주지로 재선출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 차원에서 종단과 정부, 전문가들의 간곡한 집단행사 자제 요청에도 법주사 측이 산중총회를 강행한 점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달 23일 “코로나19 추가 감염자를 막기 위해 종단 산하 모든 사찰의 법회와 대중행사를 취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많은 사찰들이 산문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 사찰들이 일제히 산문을 닫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조계종은 지난달 26일 “법주사 산중총회를 연기해 달라”며 협조를 요청했지만 법주사 교구선관위가 산중총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총무원은 지난 1일 세 번째 공문을 보내 재차 연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주사는 “현 주지 스님의 임기 날짜로 인해 부득이하게 산중총회를 열 수밖에 없다”며 예정대로 산중총회를 강행했다. 종법상 교구본사 주지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 개최 여부는 교구선관위가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법주사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염려해 산중총회 구성원과 관계자를 제외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투표를 실내가 아닌 대웅전 앞마당에서 진행하긴 했다. 하지만 주지 선출을 위해 종단 방침과 정부 시책을 거슬러 조계종이 내세운 코로나19 확산 방지 선제적 대응이 빛이 바래게 됐다는 불만이 종단에서 쏟아진다. 정도 스님은 “총무원에서 염려하고 우려했던 것을 불식하고 무사히 잘 마쳤다. 협조해 준 스님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종단의 위계질서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한편 재선에 성공한 정도 스님은 탄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6년 사미계, 1979년 구족계를 받았다. 14~16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충주 창룡사 주지를 거쳐 2016년 3월 법주사 32대 주지에 올랐다. 법주사 주지의 임기는 4년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외따로운 그곳에서 홀로 서정꽃 피우다

    외따로운 그곳에서 홀로 서정꽃 피우다

    2019년이 다 가는 세밑에 춘천에서는 이색적인 문학 행사가 하나 열렸다. 강원문학을 소설과 시 양쪽에서 이끌어 온 전상국 선생과 이상국 선생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전상국 선생의 전집 첫 권인 ‘동행’과 이상국 선생의 문학자전 ‘국수’ 출간을 기념해 두 분의 이름을 따서 ‘상국’이라는 이름의 북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우리에게 ‘아베의 가족’이나 ‘우상의 눈물’로 유명한 전상국 선생, 농촌 사회의 활력과 그늘을 동시에 투시해 온 이상국 선생은 모두 ‘강원도의 힘’을 선명하게 일군 대가급 문인이다. 특별히 이상국 선생의 ‘국수’는 40여년 동안 고향을 지키며 다듬어 왔던 삶과 생각, 시와 산문을 망라해 ‘시인 이상국’을 들여다보는 투명한 창(窓)이자 조감도가 되기에 족한 뜻깊은 지표가 돼 줄 것이다.그렇게 ‘서정시의 힘’으로 일생을 살아온 이상국 시인이 이번에 한국작가회의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선생이 작가회의를 맡게 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인데, 하나는 선생이 주로 지역에서 활동해 온 문인이라는 점이고, 다른 것은 선생이 강한 저항시보다 깊은 서정시에 충실했던 시인이라는 점이다. 그의 이사장 선출로 인해 작가회의의 시선이 지역이나 자연 같은 문학의 다양한 심층적 원리로 확장해 갈 예감을 얻게 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시인의 탄생 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76년 ‘심상’에 ‘겨울 추상화’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시에는 양양, 속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동해바다의 그윽한 서정이 흐르고 있고, 윤색이나 과장, 언어 조탁 같은 인위적 색채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구성하는 시가 아니고 자연스럽고 간결하게 흐르듯이 쓰여진 맛이 깊다. 그는 시인 박목월 선생과 두 번의 인연을 떠올렸다. 먼저 스물여섯 살 때다. “강원일보로 등단했는데 그때 박목월 선생과 박남수 선생이 심사를 했어요.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이 박목월 선생이 ‘심상’을 만드셨으니 그리로 한번 나가 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해서 몇 해 후 ‘심상’으로 재등단했습니다. 그때가 1976년이니까 벌써 45년째네요.”그 후 이상국 시인은 박목월 선생을 서울 원효로에서 한 번 봤고, 얼마 후 라디오에서 선생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첫 시집 낼 때 강원일보에 연락해서 작품을 받았습니다. 신춘문예라는 허울을 쓰고, ‘문밖’이라는 상징으로 시대를 표현하기는 했는데, 난삽하고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결국 시집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때 박목월 선생께도 죄송했지요.” 1985년에 첫 시집 ‘동해별곡’을 내고 이상국 시인은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농촌 사회를 재현하면서 거기서 살아가는 이들의 소박한 삶을 따뜻하게 옹호하는 시세계를 이어 간다. 해체 일로에 있던 농촌 현실과 농민의 삶을 형상화한 그의 초기작은 잘 절제된 핍진성으로 평단의 깊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심상’이 진하게 녹아 있어 저항적이고 사실적인 ‘농민시’와는 큰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집은 아직 따뜻하다’ 등에서 선생은 퍽 다채로운 소재와 어법을 통해 농촌 현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고, 시적 형식의 완결성을 통해 전통 정서나 정신적 경지까지 아우르는 내밀한 욕망을 실현해 갔다. 이러한 지향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니라 철저하게 고독하고 외따로운 곳에서 스스로 터득하고 심화해 간 기율 같은 것이었을 터다. 이상국 시인은 “스승이나 도반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문밖에서 서성거리며 문학을 스스로 깨우쳐 갔다”고 떠올렸다. “문학을 배워 갈 때 강원도에는 ‘갈뫼’라는 동인지가 있었어요. 고교 은사였던 소설가 윤홍렬 선생께서 1969년에 속초 지역 문인들과 함께 ‘갈뫼’를 창간하셨지요. 동인으로는 이성선, 최명길 등 선배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자연이나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셨는데 저는 그때부터 조금 겉돌았지요.” 스러져 가는 고향 지역에 대한 애정이랄까. 엄혹했던 역사를 두고 스스로 문학을 만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사를 하거나 따끔한 말씀을 주실 분이 안 계셨다. “그게 오히려 제 나름의 방법과 생각을 정리해 가는 길도 되었으니 꼭 손해 보지는 않은 듯해요. 어쨌든 생래적으로 제 안에는 농경 정서와 산천에서 일하는 사람의 정서가 들어와 있었고, 거기에 현실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결합하면서 시세계를 일구고 지탱해 온 거지요.”●원만해진 마음과 품 초기 시에 담겼던 농경 사회의 리얼리티는 후기로 오면서 인생철학을 담은 실 존적 세계로 이월해 간다. 삶의 근원에 대한 섬세한 사유와 자연 사물에 대한 미시적 관찰 같은 데로 흘러온 것이다. 이처럼 ‘집은 아직 따뜻하다’ 이후로 근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는 시인 자신의 세계관이나 신념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풍경과 순간을 스스로의 내면과 견주고 어울리게 하는 과정에서 발원돼 간다. 그래서 손쉬운 의인화나 안이한 계몽적 알레고리로 떨어지지 않는 특유의 서정적 긴장을 형성하게 된다. 그는 초기 시가 현실에 대한 부딪침과 기다림에서 나왔다면,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인생을 다르게 본 결과를 후기 시라고 했다. “누구는 불교에 바탕을 둔 관조나 달관으로 설명했는데, 일리는 있지만 저는 그저 나이 들면서 사물이나 순간을 편하게 바라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안에 선적 직관도 들어가 있게 된 거지요.” 쉰다섯에 절집에 들어가 10년 있었으니 알게 모르게 불교와 친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모서리들도 비교적 원만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 것 같다는 거다. “품을 키워 가면서 단정한 쪽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상국 시인은 10년 동안 만해마을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수많은 작가를 만나고 돌보고 그들과 함께했다. 작가들은 한결같이 외롭고, 소소한 일에 좋아하고, 대체로 고독이나 슬픔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래서 더 사람의 깊이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고 술회한다. 그렇게 지역에서, 사람의 변방에서 살아온 선생이 이제 커다란 규모의 한국작가회의를 맡았으니, 그 느낌은 어떨까? 한국작가회의라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권위주의 정부 때 저항의 전진기지 역할을 감당했지만, 지금의 민주 정부에서는 역할이 최소화될 가능성이 혹시 있지 않을까? ●청정한 그만의 세계 “40년 전은 시절이 엄중했고 많은 작가가 감옥에 갔지요.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 전선이 뚜렷하지 않고 작가회의의 정체성도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이라는 의제나 소통과 배려의 문제도 크게 대두했고요. 물론 반칙이나 불평등이나 폭력을 해소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억압들과 싸워야지요. 하지만 싸움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 않겠는가, 당연히 좋은 세상을 향해 문학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유 때문에라도 이상국의 시는 초월이나 탈속 편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자연의 은밀한 성스러움과 인간 사회의 실물성을 동시에 탐침하면서 선생은 삶의 감각과 성찰을 끊임없이 결속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법을 온몸으로 긍정하면서 그 안에서 인간이 상실한 삶의 근원적 가치를 발견하고 노래하는 것이 선생 스스로 한 세상을 건너가는 오래된 방법이 돼 줄 것이다. “시집을 일곱 권 냈는데 6년 터울 정도였어요. 조만간 동시집이 나올 거예요. 무안하기는 한데, 모서리는 닳고 숨어 있던 부드러움이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 위안합니다. 어쨌든 제 시가 가지는 촌스러움을 유지하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노래해 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상국 선생의 시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들의 잔영을 증언하는 시인의 따뜻하고도 고단한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보잘것없어 보였지만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신성한 순간의 마지막 기록자로서, 선생은 늙어 가는 눈으로 보는 한계가 있겠지만 바로 그 한계에 충실하면서 청정한 자신의 세계를 완성해 갈 것이다. 분주하게 속초와 서울을 오가며 감당해 낼 작가회의 이사장으로서의 큰 행보와 함께 말이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나라 전체가 멈춰 선 듯하다. 바이러스 탓이다. 사람들은 나들이를 꺼리고, 여행지는 얼어붙었다. 빼앗긴 들에도 왔던 봄인데, 한국인의 가슴엔 봄이 내려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막아서도 봄은 온다.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들꽃들도 시나브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찾았다. 늙은 매화가 필 때면 늘 뭇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절집이다. 절집 뜨락의 수백년 묵은 자장매가 붉은 꽃술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행장 꾸려 내려갔다.●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사찰… 370년 ‘자장매’ 인기 통도사는 선원과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대가람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 사찰이라고도 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봄의 통도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이른바 ‘자장매’(慈臧梅)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매화다. 영각(影閣) 처마 아래 있다. 수령은 370년쯤 됐다고 한다. 2월 하순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분홍빛 매화를 보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극락보전 옆에도 이름난 홍매 두 그루가 있다. 각각 만첩홍매와 분홍매로 불린다. 한데 ‘꽃보다 절집’이었다. 자장매의 자태도 명불허전이었지만 절집의 웅숭깊은 아름다움은 그보다 몇 배 뛰어났다. 다른 여행지를 둘러볼 생각은 못하고 절집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선보인 건 그 때문이다. ●법당 중심으로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나뉘어 통도사는 가람 배치가 독특하다. 법당을 중심으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이는 통도사가 조성 시기가 다른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곧 하로전이다. 영산전(보물 제1826호)과 극락보전, 범종루 등의 당우가 밀집돼 있다. 극락보전 외벽의 ‘반야용선도’가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용선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담았다.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 맞은편은 영산전이다. 하로전 구역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전은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보탑을 그린 ‘견보탑품도’ 등 진귀한 벽화들(보물 제1711호)이 즐비하다. 중로전 구역에는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을 비롯해 용화전, 개산조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구역에서 가장 독특한 건 봉발탑(보물 471호)이다. 부처님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밥그릇에 뚜껑이 덮인 형상을 하고 있다. 발우는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다. 봉발이란 발우를 모셨다는 뜻이다. 용화전 안에는 중국 소설인 서유기의 내용 일부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절집 벽화로는 매우 이례적인 그림이다. 이제 상로전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이다. 대웅전은 사면이 한 건물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면마다 출입문이 있고, 현판도 달려 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이는 모두 대웅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건물 뒤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으므로 불상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의미다. 금강계단은 납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을 벌이는 곳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납자들 모두가 이 계단을 통해 득도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통도사란 이름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웅전 지붕 위에도 볼거리가 많다. 가로 지붕과 세로 지붕이 만나는 정점에 철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석탑의 찰주(꼭대기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중심 기둥)와 불가에서 보배로 여기는 보주(둥근 구슬)를 형상화한 것이다. 사파이어빛 조형물이 아름다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모습 못 봤으면 후회가 막심할 뻔했다. 대웅전 주변에서는 찰주의 일부만 보인다. 통도천 건너편의 사자목 오층석탑에 오르면 전체를 살필 수 있다. 찰주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기와 끝자락에 하얀 연꽃봉오리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다. 이른바 백자연봉이다. 기와 끝의 숫막새에는 와정이라는 못이 박혀 있다. 기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박아 놓은 것이다. 못을 가리고 조형미를 더하기 위해 와정 위에 연꽃 모양의 백자를 얹는데, 이게 바로 백자연봉이다. 대방광전 앞의 구룡지(九龍池)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담긴 작은 연못이다. 자장율사가 구룡소에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고 못을 메워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응진전 앞 바닥에는 호혈석(虎血石)이라 불리는 붉은 돌이 있다. 호랑이의 기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피를 발랐다는 반석이다. 물을 부으면 붉은 빛을 띤다. 극락전 앞에도 또 하나의 호혈석이 있다. 아울러 대웅전 계단에 새겨진 용의 비늘, 계단 옆에 마련해둔 아귀밥통 등 재밌는 이야기를 담은 유물들을 찬찬히 찾는 재미가 각별하다.●벽화부터 명필 글씨까지… ‘불화의 보고’로 유명 통도사는 흔히 ‘불화의 보고’라고 불린다. 그만큼 벽화가 많다는 뜻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볼 수는 있으니 최대한 많이 눈에 담아가는 게 좋겠다. 명필들의 글씨도 많다. 일주문 현판의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 관음전 맞은편의 ‘원통소’(圓通所) 현판, 대웅전의 네 개 현판 중 ‘대방광전’과 ‘금강계단’ 등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다. ‘일로향각’(一爐香閣) 현판과 주지실 앞의 ‘탑광실’(塔光室) 등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졌다. 추사의 ‘성담상게’(聖覃像偈)라는 서예작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춘풍에 세상 시름 씻겨 보내리●1㎞ 솔숲 걷노라면 업장이 벗겨지는 듯 통도사 입구를 넘어서면 곧바로 솔숲이 펼쳐진다. 이른바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다. 무풍교에서 일주문 사이 솔숲에 조성된 보행로다. 솔숲에 들면 늙은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늘어서 있다. 통도사 일대의 빼어난 풍경을 일컫는 이른바 ‘통도8경’ 가운데 1경인 ‘무풍한송’이 바로 여기다. 솔숲의 길이는 1㎞ 정도다. 천리길을 걷듯 느릿느릿 걷는 게 솔숲의 정수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솔향이 코를 간질이고, 솔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영혼이 씻기고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하마비가 세워진 산자락엔 큰 암벽이 있다. 부채를 펼친 듯하다는 선자바위다. 바위 여기저기에 선인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조선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 일제강점기 박영효, 종두법의 지석영, 애국지사 의암 손병희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껄렁한 여행자 눈엔 그저 우수마발들의 이름만 들어찰 뿐이다. 부도탑에 이르면 무풍한송로는 끝이 난다. 곧장 들어가면 통도사 중심 영역이고, 주변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소로를 따라 가면 부속 암자들이 나온다. 통도사의 부속 암자는 모두 19곳이다. 불심이 깊은 이들은 암자를 모두 둘러보는 ‘19암자 순례’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으로는 어려워 일반 관광객들은 유명한 암자 서너 곳을 둘러보는 게 보통이다. 19암자 가운데 영축산 중턱의 백운암을 제외하면 모두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서운암은 장독대로 유명하다. 그 숫자가 무려 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원래 야생차로 유명했던 곳인데 요즘은 장독대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더 많다. 옹기들은 대부분 최소 50년이 넘었고 200~300년 된 것도 섞여 있다. 장독 안에서는 된장이 익어간다. 운이 좋으면 서운암에서 키우는 공작새가 꼬리깃을 활짝 펼친 장면과 마주할 수도 있다.●영축산 능선 품은 16만 도자대장경의 장경각 서운암 위는 장경각이다. 16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곳이다. 도자대장경은 도자에 새긴 불경을 일컫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8만 1528장의 목판 양면에 법문을 새긴 까닭에 견줘 도자대장경은 한 면에 새긴 탓에 전체 도판 수가 그 두 배인 16만 3056장에 이른다. 도자대장경을 완성하기까지 준비기간 5년을 포함해 무려 15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웃한 곳에 삼천불전도 있다. 역시 도자로 만든 3000개 불상을 모시고 있다. 장경각 앞 뜨락에 서면 영축산과 멀리 양산 시가지가 한눈에 담긴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자장암이다. 첫손 꼽히는 건 마애아미타삼존상(등록문화재 제617호)이다. 전체 높이가 4.54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1896년(고종 33년) 조성됐다. 다른 곳과 달리 자장암의 마애상은 바위에 얕게 새겨진 편이다. 이 덕에 조각이 아닌 불화(佛畵)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애상 뒤편 바위엔 금와보살이 산다. 거대한 바위 중심부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종종 이 구멍 밖으로 황금빛 개구리가 출현한다고 한다. 불심 깊은 이들 눈에만 보인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 보시길.●빼어난 경관에 왜구들도 활을 놨던 안양암 암자의 마루에 걸터앉으면 ‘악’ 소리나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뜨락 위의 키 낮은 담장 너머로 영축산 능선이 얹혀져 있다. 늙은 소나무들은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자태로 추임새를 넣고 있다. 단정하고 소박한 풍경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발품 판 노고는 보상받고도 남는다. 원래 통도사 암자 가운데 전망 좋기로 명자깨나 날리던 곳은 안양암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너무 빼어나 활을 놓고 말았다던가. 통도8경 중 제3경인 안양동대(安養東臺)가 바로 이 절집이 앉은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한데 시원한 맛으로는 자장암에 한 수 접어줘야 할 듯하다. 극락암은 극락영지(極樂影池)라는 작은 연못과 그 위에 놓인 어여쁜 홍교로 유명한 암자다. 통도8경 중 제5경이 바로 여기다. 연못엔 영축산 풍경이 그대로 담긴다. 연못 위 홍교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경봉 스님이 1962년 조성했다. 극락영지와 나란히 선 늙은 벚꽃이 개화하면 그야말로 선경이 펼쳐질 듯하다. 글 사진 양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대중법회 일시 중단… 공양간도 폐쇄 -금강계단은 상시 개방됐던 예전과 달리 일정 기간에만 공개된다. 매달 음력 1~3일, 보름 등의 특정 시기 오전 11시~오후 2시에 개방한다. 통도사 홈페이지에 자세한 개방일자가 나와 있다. 평시에는 대광방전 쪽 담장 너머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대중법회 등은 취소됐지만 다행히 산문은 폐쇄되지 않았다. 다만 내방객 모두 발열 체크를 해야 하는 등 다소간의 불편은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문 전 확인하는 게 좋겠다. -공양간도 폐쇄됐다. 3월 초까지는 절밥을 먹을 수 없다. 산문 앞에 산채비빔밥 등 맛집들이 즐비하다. 삼정메밀소바, 금호정 등은 메밀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통도사 입구에서 멀지 않다. -통도사는 울산 울주군과 인접해 있다. 양산 시내보다는 석남사, 반구대암각화 등 울주 쪽 명소들을 묶어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 [사설] 대형 교회, 코로나19 감염위기서 공동체 보호해야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가 3ㆍ1절을 앞두고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지 않고 중단키로 했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인파가 몰리는 대규모 행사는 옥외든 옥내든 당분간 자제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합의가 확산됐고 공권력의 압력도 주효했다. 범투본 측은 그러나 3·1절 당일에 계획한 광화문 연합예배는 강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가 도심 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내린 결정이어서 유감이 아닐 수 없고, 이는 재고돼야 한다. 또 대형 교회가 주일예배와 같은 종교 활동을 계속한다니 우려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한국 천주교회는 그제 전국 16개 모든 교구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는 23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불교 조계종도 지난 24일부터 신자들이 모이는 모든 법회를 중지하고 산문을 봉쇄했다. 우리나라에서 신자 수(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가 가장 많은 개신교 역시 평일예배와 새벽기도회 등을 취소했고, 확진환자가 발생한 서울 명성교회와 대구의 주요 교회 등은 주일예배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서울 대형 교회들이 아직 주일예배를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그제 “종교적 예식의 전통을 지키는 일은 소중하지만 이로 인해 교회가 공동체를 더 위험에 빠뜨리거나 코로나19 확산 진원지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온라인 예배 등을 대안으로 제안한 것은 개신교 지도자들의 사회적 책무를 보여 준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종교 활동의 자유는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고, 심지어 공동체와 공존이 우려되는 종교 활동조차도 혐오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비난하며 마녀사냥하듯이 싸잡아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감염병이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선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코로나19는 감염력이 강력해 무증상 감염자가 혹시라도 있어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함께 머무르면 위험할 수 있다. 대구ㆍ경북(TK) 지역의 ‘신천지’와 청도 대남병원의 사례에서 보듯이 특정 지역에 ‘슈퍼 전파’ 사태가 발생한다. 27일 누적 확진환자가 1766명인데 이 중 대구 감염자가 1132명, 경북이 345명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도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법원도 휴정하고 초ㆍ중ㆍ고도 개학을 미룬 상황이다. 국가적 재난이 된 코로나19 확산 속도를 의료체계를 확보할 때까지 늦추려는 안간힘이기도 하다. 앞으로 최소 2주간 공동체와 함께하려는 대형 교회의 동참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 코로나 19 제주 관음사 산문폐쇄,천주교.기독교, 미사·예배 축소·취소

    천주교 제주교구는 각 본당과 성당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지침’을 전파하고,27일부터 3월 7일 저녁미사 전까지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와 회합,행사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장례 미사는 가족과 위령회원만 참석한 가운데 거행하도록 하고,장례 기간 중 조문객을 받거나 조문객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혼인 미사 역시 양가 가족을 중심으로 최소화해 거행하라고 당부했다. 제주성안교회는 3월 7일까지 하루 4차례 진행되는 주일 예배를 영상 예배로 대체키로 했다.또 수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청년금요기도회 등을 중단했다. 제주영락교회는 주일 예배는 정상적으로 진행하지만,이외 교회 내 모든 모임을 중단했다.또 식당과 버스 운행을 한시적으로 멈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는 3월 15일까지 외부인의 사찰 출입을 막는 산문폐쇄를 결정했다. 또 관음사에서 진행됐던 기도와 법회 등 모든 종교활동을 일시 취소했으며,다음 달 중순에 예정돼 있던 대규모 법회를 5월로 연기했다. 대한불교조계종 극락도량 제주 약천사는 템플스테이 운영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사설] 성숙한 시민의 협조가 코로나19 확산 막는다

    ‘코로나19’ 확진환자가 800명선을 훌쩍 넘고 사망자도 8명이 됐다. 확진환자의 다수가 특정 종교나 특정 지역과 연관된 만큼 이들을 중심으로 방역을 강화하고 있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앞으로 1~2주를 코로나19 확산의 중대 분수령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그제 위기대응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올림에 따라 초ㆍ중ㆍ고 개학도 1주일 연기됐다. 천주교와 개신교가 예배와 미사를 줄이고, 불교계에서는 산문폐쇄라는 강력한 조치를 스스로 결정했다. 공연장이나 미술관, 국회도서관 등도 휴관하고 시민·사회단체 또한 각종 행사를 중단·연기했다. 프로스포츠팀 등에서도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민관이 모두 1~2주간 협력체계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를 열어 시민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참가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조차 감염 위험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광훈 목사는 ‘코로나19에 걸려도 애국’이라고 했다는데, 온전한 정신을 가졌는지 의심스럽다”며 “서울지방경찰청에 의뢰해서 아예 집회가 불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주까지는 최대한 방역 당국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코로나19의 조기 극복을 위해서는 방역 당국의 효과적인 대응과 함께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국민들은 의심 증상이 있다면 자가격리와 관할 보건소 상담을 우선하는 등으로 감염증 확산 방지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과 불요불급한 모임의 연기 등도 감염병 확산을 막는 지름길이다. 현재 생수, 라면 등 생필품 사재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지만, 자제를 당부한다.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이 온라인 등에서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매점매석도 집중 단속하면서 이들 위생용품의 가격 안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정부는 마스크 등이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공모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공모

    대산문화재단은 우수한 우리 문학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대상자를 오는 5월 29일까지 모집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업은 뛰어난 문학성으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을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어 등 전 세계 언어로 번역·연구하고 해당 언어권에서 출판해 보급하는 사업이다. 번역 지원 신청자의 경우 외국에 소개할 가치 있는 한국문학 작품이나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인 오은 시인의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단순한 진심’ 중 하나를 번역하면 된다. 선정된 번역가에게는 언어별로 최고 15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연구 지원 대상은 외국에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교수, 연구인, 학생, 번역가, 연구기관 등이다. 신청자는 소정 양식의 신청서 및 공동번역자 이력서와 함께 A4 20~30쪽 분량의 번역 원고, 번역 대상 원작 및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재단 심사위원회에서 어권 및 부문별로 지원대상자를 선정·지원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살인자에게(김선미 지음, 연담L 펴냄)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동정해야 할 비극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범죄로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뿌리를 둔 소설. 생활고 때문에 가족을 죽인 뒤 자살하려다 실패해 아내만 죽이고 감옥에 간 아버지와 또 다른 살인 누명을 쓰고 떠났던 형이 집으로 돌아온 날 마을에서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제3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356쪽. 1만 4000원.대한민국철학사(유대칠 지음, 이상북스 펴냄) 고려, 조선의 양반 철학이 아니라 우리말, 우리글로 사유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철학을 ‘한국철학’이라 정의한 저작. 성리학 이후 사민평등 사상을 가진 양명학부터 한국철학의 등장 배경을 살핀다. 저자는 동학을 만든 수운 최제우의 한글 사상서 ‘용담유사’가 한국철학의 출산을 알렸다고 말한다. 600쪽. 3만 2000원.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송종찬 지음, 삼인 펴냄) 시인의 눈으로 본 광대한 러시아의 속살. 세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은 2011년 재직 중이던 회사가 추진한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뛰어들며 4년간 러시아에 체류했다. 직접 목도한 러시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산문집으로 엮어 냈다. 308쪽. 1만 7000원.진리의 발견(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다른 펴냄) 여성이며 성소수자였던 사상가들의 삶을 엮은 전기.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여성 과학자의 길을 연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 ‘뉴욕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자인 마거릿 풀러, 환경운동을 촉발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에서 끝을 맺는다. 840쪽. 4만 4000원.대지의 슬픔(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열린책들 펴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 수상 작가 에리크 뷔야르가 쓴 서부 개척 시대 잔혹사. 1890년대 미국을 무대로 유명한 총잡이이자 쇼맨이었던 버펄로 빌이 만든 공연 ‘와일드 웨스트 쇼’를 통해 인디언들의 수난사와 초창기 쇼 비즈니스의 단면을 짚어 냈다. 176쪽. 1만 2800원.소양강의 봄(최기종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 춘천시 명예홍보대사인 저자가 1년간 춘천시를 오가며 쓴 시집. 인내, 희망, 태양, 결실 등 네 가지 주제로 시 101편을 수록했다. 누구나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인내하면 반드시 희망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184쪽. 1만원.
  • 울산 문화행사, 졸업식 등 줄줄이 취소

    정월대보름 행사와 문화행사, 학교 졸업식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로 줄줄이 취소됐다. 울산 중구는 오는 8일 태화강 둔치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정월대보름 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 남구와 동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정월대보름 행사도 모두 취소됐다. 북구는 같은 날 강동동 문화쉼터 몽돌 앞 해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달맞이축제를 취소했다. 울주군도 온산읍에서 진행되는 주 행사와 나머지 11개 읍면에서 개최하는 개별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또 울산과학대는 오는 14일 동부캠퍼스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제46회 학위수여식을 취소했다. 이 대학이 졸업식을 취소한 것은 개교 이래 처음이다. 울산대도 같은 날 예정된 학위수여식 개최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달 열리는 초·중·고등학교 졸업식은 대폭 간소화한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졸업식을 반별로 진행하고 외부 인사 참석을 자제해 줄 것을 최근 각급 학교에 안내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은 지난달 30일과 31일 예정됐던 뮤지컬 공연을 취소한 데 이어 남구 구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4일), 어린이합창단 합창제(9일) 등도 취소를 확정했다. 문예회관 측은 신종코로나 확산 상황에 따라 추가 공연 중단을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여기는 남미] 청소년 출산 문제에 브라질 정부 대책은 ‘성관계 없는 파티’

    [여기는 남미] 청소년 출산 문제에 브라질 정부 대책은 ‘성관계 없는 파티’

    보수 성향의 브라질 정부가 청소년들에게 ‘섹스 없는 파티’와 혼전순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다마레스 알베스 브라질 여성가족장관은 최근 청소년들에게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관계를 하려면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했다. 알베스 장관은 청소년들이 이른 나이에 성관계를 갖는 건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빨리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며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하는 데는 사회적 압력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정부가 돌연 청소년 성관계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나선 건 청소년 출산과 에이즈 확산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의 청소년 출산율은 1000명당 62명으로 세계 평균 44명을 크게 웃돈다. 미국의 청소년출산율은 18명(2017년 기준)으로 브라질보다 한참 아래다. 에이즈 확산도 경계해야 할 수준이다. 브라질 보건부가 발표한 가장 최근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에선 2018년에만 에이즈 감염사례 4만3941건이 보고됐다. 이는 2014년과 비교할 때 431% 늘어난 것이다. 현지 언론은 “보건부가 청소년들에게 혼전순결을 강조하고 나선 건 청소년 출산과 에이즈 감염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반대론로 만만치 않다. 단순히 성관계를 하지 말라는 식으론 청소년 출산과 에이즈 확산에 절대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청소년출산문제 전문가 레실레 칸토르는 “혼전순결 강조론은 1980년대 이미 미국에서 시도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 대책”이라며 “적절한 성교육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수적 색채가 강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는 성교육에 관한 한 거꾸로 가고 있다. 브라질 보건부는 지난해 생식건강에 대한 팜플렛을 교육 현장에서 수거하라고 지시했다. 팜플렛을 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청소년들이 보기엔 부적절하다”며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칸토르는 “성교육을 제한하거나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게 정치적으론 적절할지 모르지만 정작 청소년들에겐 유해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황규관의 고동소리] 문학의 민주주의

    소설가 김남일의 문학 산문집 ‘염치와 수치’(낮은산)를 읽다가 문득 김수영의 시 ‘이 한국문학사‘가 떠올랐다. 1965년에 쓴 이 시는 김수영의 시세계에서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다만 5·16 쿠데타 이후 침잠과 모색을 거쳐 의식하게 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편린 정도가 표현돼 있다. 2연에서 김수영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여지껏 희생하지 않는 오늘의 문학자들에 관해서/너무나 많이 고민해 왔다.” 그러면서 김동인, 박승희, 김유정을 불러들인다. 김남일은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어 놨다. “내 아무리 젠체해도, 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한들, 그렇다, 내 싸움이 육사나 단재만 하랴. 내 가난이 서해만 하랴. 내 결핵이 유정만 하랴. 죽음을 희롱했기로서니 이상만 하랴. 그들은 봉건과 식민의 이중 굴레에서 벗어나려 고투했고, 그와 동시에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썼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가슴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김수영은 이미 ‘거대한 뿌리’에서 “역사는 아무리/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 세대는 ‘더러운 역사’를 부정하며 싸워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친일과 독재 그리고 억압과 착취의 현실에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또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를 쓰면서 도그마에 갇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김남일은 작품을 먼저 읽지 않고 작가들의 에세이와 삶의 이야기를 먼저 읽어 나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먼저 그들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김남일이 이 책에서 친일 작가들의 행태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그 작가들의 내면을 헤아려 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설픈 독후감이 아니다. 오늘날 문학은 철저하게 시장에 맡겨진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상품이 되지 않는 작품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실 의미란 것은 사회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화 과정을 우리의 현실인 자본주의가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언제부터인가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따라서 일부에서 이른바 문단이나 평론가들의 승인은 이제 필요치 않고 독자들의 판단에 문학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김수영은 시인의 역할은 시인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시에는 특별한 권위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독자와 소비자를 판별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물론 독자와 소비자는 별도의 주체들이 아니다.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에 작용하는 한 개인의 의지와 내면 상태가 아마도 독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분할선일 것이다. 동시에 독자와 소비자는 한 주체 안에 버무려져 있기도 하다. 만일 작품을 소비자의 선택에 전적으로 맡긴다면 우리는 문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텐데, 소수의 권위자가 갖고 있는 것을 다수에게 돌려주자는 논리는 제법 민주주의적 원칙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소비자 파시즘’에 가까울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 속에서 평등해야 하지만 작품은 치열한 경합(agon)이라는 용광로에 던져지는 게 옳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남일의 책을 읽으면서 ‘과연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루한 삶을 산 작가가 의외의 작품을 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물론 대체적으로 비루한 삶을 산 작가들의 작품에는 어디엔가 비루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미당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나는 읽기 힘들다. 그의 삶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삶을 지탱해 준 현실에 대한 비루한 입장이 어쩔 수 없이 작품에 깊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들의 작품은 그 자체로 뛰어난가? 이 난센스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은 우리를 하염없이 ‘모름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문학이 민주주의를 사유하는 일은 명료한 답 대신 우리를 지옥에 서게 하는 일을 포함시킨다. 무엇보다 이 지옥을 기뻐할 수 있는 자를 나는 작가ㆍ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 장터의 품바, 콘서트로 화려한 부활...2월 14일 부산공연

    장터의 품바, 콘서트로 화려한 부활...2월 14일 부산공연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왔네~” ‘각설이 품바’라는 난장 공연이 국내 처음으로 대형 무대에 선보인다. 부산문화연대는 오는 2월 14일 오후 7시30분 KBS부산홀에서 ‘버드리와 함께하는 품바 콘서트’를 연다고 27일 밝혔다.이번 공연은 CJ아트가 주최하고 주관한다. 각설이 공연을 뜻하는 품바는 토종 공연 문화로, 지금까지 수많은 품바의 입담과 타령으로 서민에게 뿌리를 내린 공연 장르이다. 각종 축제와 이벤트 무대를 통해 선보이는 과정에서 현재 전국에 자생적으로 수많은 품바 팬클럽이 활동 중이다.이에 힘입어 대형 무대에 오르는 버드리 품바 콘서트가 공연계의 신선한 화제가 되고 있다. 버드리는 지역 축제 등에서 20년 가까이 품바 공연을 선보이고 있으며,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구수한 입담으로 열혈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품바 공연은 마당극과는 또 다른 영역의 공연 문화로, 관객과 함께하는 신명 나는 신개념 콘서트로 자리 잡고 있다. 부산문화연대 강민 대표는 “품바 콘서트는 디지털 시대 아이돌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에서 소외돼 갈 곳 없는 7080 실버세대의 문화적 욕구가 분출된 것으로, 최근 트로트 열풍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바람의 시작/박준

    바람의 시작/박준

    며칠 전 경남 밀양을 지났습니다.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밀양이지만 이처럼 길 위로 지난 것은 여러 번입니다. 그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 아무런 일도 없이 밀양에 와야지, 여행이라 할 것도 없이 밀양에 와야지, 와서 며칠이고 머물러야지’ 하고 말입니다. 이것을 두고 소망이나 소원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거창하겠지요. 그러니 바람이나 희망쯤으로 해 두겠습니다. 바라고 희망하던 그날이 오면, 저는 아마 밀양역에서부터 걸음을 시작할 것입니다. 역 밖으로 나와서 가장 먼저 그동안 간판만 보며 군침을 삼켰던 밀면집에 들어갈 것입니다. 오후 두 시 정도 되는 늦은 점심이나 오후 다섯 시쯤 되는 이른 저녁에 들어서서 혼자 테이블에 앉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비빔밀면과 물밀면 사이에서 고민할 것입니다. 만두나 전병처럼 곁들일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혼자 왔다는 미안함을 핑계 삼아 함께 주문할 테고요. 밀면을 먹으면서 누구를 떠올리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유난히 신맛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고, 면 요리를 먹을 때면 으레 들어 있는 삶은 계란을 남겨 두었다가 마지막 남은 면발과 함께 먹던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지금은 제가 생각하지 못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누가 되었든 그리울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 그리워서 더 좋아질 것입니다. 밥을 먹고 나온 후에는 천변을 걸을 것입니다. 밀양강은 조금 더 남쪽으로 흘러 삼랑진쯤에서 낙동강과 만나며 스스로의 이름을 숨기게 됩니다. 천변을 걷는 동안 상상력이 좋지 않은 저는 분명 ‘밀양 아리랑’의 노랫말을 더듬어 볼 것입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로 시작되었다가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으로 이어지는 노래 말입니다. 저녁이 깊어지면 숙소도 하나 구할 것입니다. 가방을 내려두고 거칠어진 몸을 씻을 테지요. 잠자리에서는 누워 한참이나 뒤척일 것입니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새벽쯤에야 깊은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뜰 것입니다. 눈을 뜨고 나서는 앞에 펼쳐진 낯선 풍경 탓에 아주 잠시나마 멍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의 이루어짐은 그것을 바라고 희망하던 사람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것이 혹은 계획이라는 것이 늘 마음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바람과 희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루어진다는 말 자체는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요. 밀양에 머물고 싶어 했던 그간의 바람이 없었다면 어쩌다 그곳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를 그 음식 앞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결국 그 사람과의 만남을 부를 테고요. 그러니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이 많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생각 역시 저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그리고 믿음이기도 합니다. 바람과 희망 그리고 믿음에 관해 제가 좋아하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장면입니다. 기왓장에 흰 글씨로 자신의 소원을 적는 ‘기와불사’. 저는 그 기왓장에 적힌 사람들의 소원을 유심히 살펴보곤 합니다. 거기에 요행이나 무리한 소원을 적어놓은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의 기왓장에 가족이 서로 다른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며 ‘행복’이나 ‘화목’ 같은 말들을 적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 글자들을 하나하나 눈에 넣으며, 사람의 바람과 희망에는 이미 자신이 이루어낸 것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 깊은 산사까지 여행을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 기왓장에 소원을 쓴 가족은 이미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환하게 열린 한해의 시간들 속에서 어떤 바람을 품어야 할까요. 그 바람은 어떻게 현실이 될까요. 그리고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꺼내게 될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마음의 바람과 삶의 현실과 인간의 말은 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멀지 않음의 힘으로 우리는 더 멀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역시 오래된 저의 믿음입니다.■ 박준 시인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 타계 9주기… 다시 읽는 ‘작가의 말’

    박완서(1931~2011) 작가의 타계 9주기를 추모하며 그가 생전에 쓴 ‘작가의 말’을 모은 책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작가정신)은 말 그대로 박완서의 모든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소설, 산문 , 동화의 서문과 발문에 실린 ‘작가의 말’ 67편을 연대순으로 정리했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소회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 그에 대한 고찰을 솔직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작가의 말’에서 두드러지는 한 가지는 시대의 변화를 목격한 자로서의 책임감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온 작가는 전력을 다해 시대를 증언하고자 하는 냉철한 목격자였다. 동시에 온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았던 따듯한 서술자이기도 했다. “6·25의 기억만은 좀처럼 원거리로 물러나주지 않는다. 아직도 부스럼 딱지처럼 붙이고 산다”라고 얘기하면서도 “나의 부스럼 딱지가 개인적인 질병이 아닌, 한 시대의 상흔”(‘목마른 계절’(1978) 후기)이라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경유하는 식이다. 소설집 ‘꽃을 찾아서’(1996)에서는 1985년에 계간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면서 ‘창작사’란 출판사 이름으로 나왔다가 1996년에 다시 ‘창작과비평사’로 펴내게 된 사연을 적었다. 그는 “야만적인 시절”에 대한 곡절을 풀어내며 창작의 자유가 그토록 ‘대견’한 것인 줄 몰랐던 자신의 안이함을 반성한다. 그 밖에 새마을운동, 급격한 근대화와 자본주의의 이식, 전체주의,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세상에의 관심이 그대로 담겨 있다.대문호에게도 예외없었던, 창작에의 고통을 다룬 구절도 눈에 띈다. “써지진 않는데 원고 독촉은 빗발칠 때는 아유, 지긋지긋해, 소리가 입에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이 노릇을 안 하나, 쓰는 노릇에서 놓여날 것을 상상만 해도 황홀한 해방감을 맛볼 수가 있었으니까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 책 뒤에) 마감에의 압박은 그에게도 여지없이 몰아쳤다. 그러나 마흔 살 당시로는 늦은 나이에 데뷔, 세상을 뜨기 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를 구원하는 것도 역시 문학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뜻하지 않게 닥쳐온 무서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겨우 발견한 출구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이어지는 작가의 고백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나야 하고, 자기가 지닌 것 중 가장 괴로운 것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자신을 극복하고 갱신해야 하는 일”이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지나가신 선생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는 최은영 작가의 말처럼, 문학으로 한 시절을 살다간 이의 생생한 육성이 오롯이 담겼다. 208쪽. 1만 4000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인사] 제주도, KBS N,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 제주도 ◇ 이사관급 전보 △ 도민안전실장 이중환 △ 장기교육 양기철 ◇ 부이사관급 전보 △ 기획조정실장 현대성 △ 교통항공국장 문경진 △ 공항확충지원단장 이상헌 △국회사무처 조상범 △ 장기교육 허법률 △ ″ 고종석 ◇ 부이사관급 승진 △ 특별자치행정국장 현학수 △ 상하수도본부장 이양문 △ 세계유산본부장 고순향 △ 특별자치제도추진단장 김명옥 △ 제주시 부시장 이영진 △ 중앙부처 교류 파견 문경복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정성호 △ 장기교육 강동원 ◇ 서기관급 전보 △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직대) 현경옥 △ 도시건설국장(직대) 고윤권 △ 농축산식품국장(직대) 전병화 △ 감사위원회 사무국장(직대) 강민협 △ 서울본부장(직대) 문경삼 △ 서귀포시 부시장(직대) 김영진 △ 정책기획관 강만관 △ 소통담당관 최명동 △ 청렴혁신담당관 강승철 △ 예산담당관 안우진 △ 세정담당관 고순심 △ 재난대응과장 양기정 △ 문화정책과장 윤진남 △ 관광정책과장 김재웅 △ 저탄소정책과장 김승배 △ 경제정책과장 김명규 △ 도시계획재생과장 이창민 △ 도로관리과장 김재철 △ 복지정책과장 양인정 △ 노인장수복지과장 김형은 △ 생활환경과장 김길범 △ 친환경농업정책과장 홍충효 △ 감귤진흥과장 한인수 △ 공항확충지원과장 양홍식 △ 공항확충지원단 주민소통센터장 부준배 △ 감사위원회 조사과장 현윤석 △ 감사위원회 심의과장 장문봉 △인재개발원 교육운영과장 권기웅 △ 인재개발원 사회교육과장 홍원석 △ 세계유산본부 세계유산문화재부장 한정우 △ 제주대학교 홍성희 △ 제주컨센션뷰로 한용택 △ 제주감귤출하연합회 유태진 △ 제주의료원 강명관 △ 장기교육 허문정 △ ″ 고춘화 △ 서귀포시 오나영 △ 서귀포시 정문석 ◇ 서기관급 승진 △ 청년정책담당관 김미영 △ 평생교육과장 이인옥 △ 평화대외협력과장 채종협 △ 체육과장 강태군 △ 투자유치과장 고영만 △ 카지노정책과장 변영근 △ 여성가족청소년과장 김인영 △ 해녀문화유산과장 고창덕 △ 감사위원회 감사과장 부윤환 △ 농업기술원 총무과장 오종찬 △ 제주여성가족연구원 홍성보 △ 제주4·3평화재단 고성철 △ 제주시 홍종택 ◇ 농업연구관 전보 △ 농업기술원 정세호 ◇ 녹지연구관 전보 △ 한라산연구부장 신창훈 ■ KBS N △ 스포츠본부장 김기현 ■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 국장급 전보 △ 의전비서관 박진호
  • [문화마당] 시민 출판의 시대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시민 출판의 시대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기록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아카이브해서 후대에 남길 수 있다. 아카이브 방법은 점점 간단해져 블로그 등 디지털 콘텐츠만이 아니라 종이책이나 전자책 같은 형태로 출판하는 것도 이제는 별로 어렵지 않다. 도서관 등에서 이용자들을 상대로 책 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전문 저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출판하려 할 때 독자들이 후원 등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소셜 펀딩 시스템이 이러한 흐름을 거세게 하는 중이다. 2018년 텀블벅 한 군데에서만 700여권의 신간이 탄생했다. 작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꽤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가 쓴 책 콘텐츠를 소비만 하는 출판 객체에 일반 시민들이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가치 있다 생각하는 일상의 어떤 것이든 기록해서 책으로 펴내는 출판 주체가 되는 것을 ‘출판의 민주화’라 한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어르신들의 진솔한 자기 기록이 책으로 나와 화제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출판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또 고령 사회를 맞이해 미래 가치가 높은 ‘시니어 출판’ 영역의 확산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를 쓴 전남 순천 할머니들은 순천 그림책 도서관에서 글과 그림을 배운 후 쓰고 그린 인생 기록을 한데 모아 책을 펴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적으로 담긴 이 감동적인 책은 출간 직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요리는 감이여’를 함께 쓴 충청도 할매들 역시 충남 지역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에서 한글 문해 교육을 받고는, 평생 처음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사서와 편집자 등의 도움을 받아 기록한 이들의 인생 요리 책은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흔일곱 살 이옥남 할머니의 30년 일기에서 가려 뽑은 글을 엮은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소박한 어조로 인생을 긍정하는 내용이 독자들 마음을 파고들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70대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된 박막례 할머니의 인생 역정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밖에 전국 한글학교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모은 ‘보고 시픈 당신에게’ 등 시니어 출판의 한 갈래가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일기, 회고, 에세이, 자서전 등으로 표출되는, 특히 여성 어르신의 자기 기록은 여러 의미가 있다. 평생 자기표현이 억눌렸던 이들의 인생 기록은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역사를 바로잡고, 공공 기록이 빠뜨리곤 하는 시민들의 일상을 복원하며, 다채로운 지역 문화를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 또한 자기 삶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동시에 한 평범한 시민이 자기 삶의 의미를 깊게 성찰하고, 인생에서 받은 온갖 상처를 치유하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몽테뉴에 따르면 세상 사람은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나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은 독단의 돌부리에 걸려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 속으로 넘어진다. 눈을 안으로 돌려 자기 경험을 객관화하는 과정 없이 인간은 성숙할 수 없고, 더 나은 삶에 도달하지 못한다. 몽테뉴가 ‘에세’를 쓰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한없이 시도했듯, 자기 기록은 한 시민이 지나온 인생의 의미를 따져 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알을 품은 시민들이 많아지면 자신을 배려하고 타인을 관용하는 이들도 늘어나면서 공동체도 함께 부화한다. 좋은 사례들이 생겨난 만큼 도서관에서 시민들의 자기 기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존함으로써 미래의 자산으로 삼았으면 한다.
  • 미륵사지 보물 품은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미륵사지 보물 품은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삼국시대 최대 절터인 익산 미륵사지 출토유물 2만 3000여점을 전시할 국립익산박물관이 10일 개관했다.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 남서쪽에 있으며, 지하 2층·지상 1층으로 건립했다. 전체면적은 7,500㎡, 전시실 면적은 2100㎡다. 미륵사지뿐 아니라 익산 왕궁리 유적, 쌍릉 등지에서 나온 유물 약 3만 점을 소장했다. 상설전시실에서는 국보와 보물 3건 11점을 비롯해 3000여점을 선보인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 공양품을 감싼 보자기로 보이는 비단과 금실, 제석사지 목탑이나 금당 안에 안치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승려상 머리, 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도 보수됐음을 알려주는 ‘백사’(伯士)명 납석제 항아리, 쌍릉 대왕릉 목관을 처음 공개한다. 상설전은 3개 공간으로 나뉜다. 익산 백제를 주제로 한 1실은 백제 마지막 왕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왕궁리 유적과 제석사지, 무왕과 비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출토 자료로 꾸몄다. 2실은 미륵사지에 초점을 맞췄다. 미륵사지를 토목과 건축, 생산과 경제, 예불과 강경(講經)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보물로 지정한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는 별도 공간에 전시한다. 미륵사지 석탑을 소재로 한 현대 미술품도 설치했다. 3실은 익산문화권을 전반적으로 다룬다. 익산박물관은 개관을 기념해 3월 29일까지 특별전 ‘사리장엄, 탑 속 또 하나의 세계’를 연다. 국보로 지정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보물 제1925호 이성계 사리장엄구 일괄 등 사리장엄 15구를 전시한다. 익산박물관은 전라북도가 세운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2015년 국립으로 전환하며 만들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길섶에서] ‘총총’(??), 8760/이지운 논설위원

    “손을 씻을 때 대야 속으로 빠져나가고, 식사 때에도 밥그릇 속으로 사라진다.” 주자청(朱自淸)의 산문 ‘총총’(??)은 시간의 속성을 일상에서 이렇게 포착했다. “간 것은 간 것이고 오는 것은 오는 것이지만, 오고 감의 중간은 어찌 그리 총망한가.” 이어지는 시도와 좌절. “그것이 바삐 감을 깨닫고 손을 뻗어 막고 당겨보려 해도 손 사이로 사라진다.” “침상에 눕노라면 날렵하게 몸 위를 뛰어넘고, 발끝 너머 날아간다.” “한숨과 함께 번쩍 지나가 버린다.” 시간은 숫자로 계산되지만, 실감하긴 어렵다. 누군들 음속이나 광속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래서 그것을 ‘가치’로 환산한 것은 기발했다. “한 토막 시간은 한 마디 금과 같다(一寸光音一寸金).” 그런데 “한 마디 금으로 한 토막 시간을 살 수는 없다(寸金難買寸光音)”고 하니 제자리다. 어느 책자의 제목에서 본 ‘8760시간’이 알려 주었다. ‘1년’은 1개의 시간이 8760개가 쌓여 된 것이라고. 똑같은 분량인데, 왜 8760개가 쌓일 때마다 새로 세는지도 말해 주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러고 보니 24개가 먼저 이것을 계시(啓示)하고 있었다. 날마다, 자연현상을 통해. “왜 우리의 나날은 한 번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가.” 주자청은 알고 있었으리라. 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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