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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新아시아시대-성장의 원천] 템플스테이 참석 아시아 유학생 4인 참선 세계화 좌담회

    [新아시아시대-성장의 원천] 템플스테이 참석 아시아 유학생 4인 참선 세계화 좌담회

    문화가 경쟁력의 첨병이자 원천인 시대다. 한국의 경제력 지위에 비해 국가브랜드 인지도는 상당히 낮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와 민간에서 힘을 모아 ‘한국 고유의 것’을 찾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려는 이유다. 외국인들이 매력적으로 바라보는 참선과 한식의 세계화는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진단했다. 불교는 세계적으로 퍼져 있지만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간화선(看話禪)’의 전통이 남은 곳은 한국뿐이다. 그 때문에 화두를 들고 마음을 닦기 위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승려들이 부지기수다. 지난해 템플스테이를 통해 참선을 체험한 외국인도 2만명이나 된다. 간화선이 고유한 한국 불교의 전통이 된 가운데 한국의 참선문화를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에 대중화시키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서울을 찾은 아시아계 유학생 네 명에게 한국 참선문화의 현주소와 세계화를 위한 대책 등을 들어봤다. 조선계 중국인 이미옥(26)씨와 카자흐스탄 고려인 안젤리카 김(20), 중국 내몽골 자치구의 김흠(21), 중국인 가전초(21)씨 등이 그들이다. 한국에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간 생활했다. 이들은 지난달 27~28일 서울 화계사(주지 수경 스님)에서 템플스테이를 직접 체험했다. 화계사는 국제선센터를 마련하고 매주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열고 있다. 좌담회는 지난달 29일 서울신문사에서 열렸다. →일정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이미옥(이하 이) :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날이 밝을 때까지 참선한 뒤 예불을 드렸고, 오전에는 울력과 산행, 오후에는 다시 참선을 했다. 참선은 하루 네 번 정도 한다. →다들 템플스테이가 처음인데, 참선을 처음 해본 느낌이 어떤가. 이 : 잡생각이 많이 들더라. 가려움, 통증 같은 몸의 감각부터 사소한 걱정거리들, 또 왜 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이런 고민들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안젤리카 김(이하 안) : 계속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받던 스트레스를 잊고 푹 쉬어 본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주변에서 자동차나 휴대전화 벨소리 등 소란스러운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으니까 긴장이 풀리고 편해지더라. 가전초(이하 가) : 스님들이 하시는 걸 보니 쉬워 보였는데 한 시간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잠이 너무 왔다.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도 없었고 염불소리조차도 너무 조용한 시간이었다. 김흠(이하 김) : 참선은 혼자 하는 것 같으면서도 깨고 나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이번 체험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 안 : 공동 생활 속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던 게 좋았다. 바쁜 일정이 아니라 천천히 생활하니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평소와 달리 전통을 화제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 좋았다. 또 다도와 아리랑을 배우는 코너도 있어 유익했다. 김 : 새벽 3시에 일어나 등산, 참선, 울력 등을 조금도 쉴 새 없이 해나가다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인의 근면성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가 : 잠도 안 자고 3000배를 하는 사람도 봤다. 108배를 하면서 나는 20개만 해도 힘들던데. 그런 걸 보면 한국인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한계도 있었을 듯한데. 이 : 동양권은 모두 어느 정도 불교적 바탕이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 사람들이 참선수행만으로 한국의 문화가 특색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분명 한·중·일과 동남아지역 불교는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인들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사찰을 둘러싼 자연환경이나 음식 등 생활 분야 체험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됐다. →동아시아 지역은 한류열풍이 한창이었는데 정신문화 부분은 어떤가. 이 :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많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가요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다. 전통보다는 현대적인 발전상이나 유럽 문화의 모방을 보여주는 게 많다. 인기드라마였던 ‘대장금’도 배경은 과거지만, 거기에서도 참선수행 같은 전통 불교문화나 전통사상을 소개한 적은 없다. 나 역시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걸 몰랐을 거다. →체험에서 힘들었던 점은 뭔가. 가 : 방이 너무 좁았다. 다섯 명이 함께 잠을 잤는데, 그런 게 익숙지 않아 잠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안 : 더운 건 참을 만했다. 하지만 침대 없이 자려니 어깨가 너무 아팠다. 그리고 한순간에 생활패턴이 바뀌니 자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 의사소통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화계사는 외국인을 위한 기반이 잘 갖춰진 곳이었고, 스님들의 영어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영어로만 진행하다 보니 다른 언어권 사람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수행은 몸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두를 던지는 등 말로 전할 부분도 있는데 그게 제대로 안 되더라. →해외에서 같은 수행을 한다고 할 때 보완할 점은. 이 : 정신적인 바탕을 알아야 체험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언어 번역이 아니라 그 수행이 갖는 역사적·사상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전문지식을 가진 통역인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이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길 수는 없다. 프로그램 자체는 옮겨가더라도 운영은 장소에 따라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안 : 잠자리나 음식 등 생활의 불편은 있었지만, 나는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편한 방식으로 모두 바꾸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통적인 방식대로 외국인들이 생활해 보는 것도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고 무얼 먹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체험하게 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김 : 나는 아직 왜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고 또 삭발을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참선수행이나 사찰체험을 해외에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어떤 의미이고 무슨 메시지가 있는지를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문화적인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얻어 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 : 나역시 금기라서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알았더라면 밥을 먹는 순간에도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체험 전에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저변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사진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왕조현 옛 연인 “비구니설, 사실 무근”

    왕조현 옛 연인 “비구니설, 사실 무근”

    1990년대를 풍미한 중화권 최고의 스타 왕주셴(왕조현)의 출가설이 보도돼 팬들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출가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지인과 가족의 해명이 이어지고 있다. 왕주셴과 한때 연인이었던 타이완 가수 치친은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왕주셴이 비구니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연락을 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치친에 따르면 왕주셴은 “모두 오해다. 친구에게 농담으로 ‘비구니가 되겠다.’고 한 말이 잘못 전해진 것 같다.”고 해명했으며 “팬들에게 걱정할 것 없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치친은 “왕주셴의 성격상 그저 소문일 뿐인 일에 직접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하이에 사는 그녀의 큰 오빠와 연락을 취해 본 결과, 가족들도 현재 이 일에 대해 아는 사실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도 그녀가 출가했다는 정확한 증거를 찾지 못한 채 대부분 추측보도를 내보내고 있어 이번 소동은 한바탕 뜬소문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삭발한 채 웃고 있는 왕주셴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 뿐 아니라 일부 네티즌이 “그녀가 이미 ‘차오시’(朝汐·조석)라는 법명까지 받았다.”고 주장하는 등 팬들의 의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진=ent.southcn.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정재영, 영화위해 13년만에 최초 삭발투혼

    정재영, 영화위해 13년만에 최초 삭발투혼

    영화배우 정재영이 영화 ‘이끼’를 위해 삭발투혼을 펼쳤다. 정재영은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끼’(감독 강우석ㆍ제작 시네마서비스, 렛츠필름)에서 천용덕 이장 역을 맡아 연기 인생 최초로 삭발을 감행해 화제가 되고 있다. 전작 ‘김씨 표류기’에서 머리와 수염은 물론 손톱, 발톱까지 길게 기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가 이번에는 삭발을 시도해 벌써부터 영화 ‘이끼’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재영은 영화 ‘이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특수 분장을 위해 삭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준비 기간 내내 제작진이 마련한 특수가발을 정재영이 쓰기 위해서 삭발하기로 결정한 것. 8일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삭발을 진행한 정재영은 긴장한 모습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주변 스태프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듯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연기 인생 처음으로 삭발을 하게 된 소감에 대해서 정재영은 “영화 ‘실미도’ 이후로 이렇게 짧은 머리는 오랜만에 하는 것이다.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정재영은 “머리를 자르고 나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오늘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깜짝 놀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재영은 30대 젊은 시절부터 60대 모습까지 연기할 예정이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이끼’는 다음 달 크랭크인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이다. 사진제공 = 이노기획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여야 마이웨이… 파국으로 치닫는 국회

    여야 마이웨이… 파국으로 치닫는 국회

    단독 국회 강행과 이에 맞서는 파국 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2일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일전 불사를 결의했다.한나라당이 예고대로 23일 국회소집 요구서를 제출하면 72시간 뒤인 26일부터는 민주당 없이도 국회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이날 양당간 격한 설전은 향후 충돌의 강도를 가늠케 했다. ■ 한나라 - “벽보고 대화하는것 같다” 23일 단독국회 소집 요구 “여러분, 벽 보고 대화한 일 있습니까.” 2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 안상수 원내대표가 단상에 서자마자 소속 의원들을 향해 이같이 물었다. 6월 임시국회 개회를 위해 민주당 이강래 대표와 가진 협상을 두고 한 말이다. 안 원내대표는 “가끔 벽을 보고 생각에 잠긴 적은 있지만, 벽을 보고 대화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엔 (협상 사안이) 법안내용이어서 주고 받을 게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복수사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며 우리가 받지도 못할 조건을 5개나 내걸고 또 하나 더 (미디어관련법을) 붙였다.”고 목청을 높였다. “민주당이 ‘미디어관련법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개회를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미디어관련법을 무산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박희태 대표는 “민주당은 입만 있지, 귀가 없다.”면서 “국민이 국회를 빨리 열라고, 민생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데 그 소리를 못 듣느냐.”고 성토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23일 단독으로 국회소집 요구서를 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6일부터 6월 국회가 열리게 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산하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도 보조를 맞췄다. 이들은 오는 2012년까지는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 겸영 금지조항을 유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미디어관련법 개정안 대안을 이날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민주당 - “후안무치 좌시 않겠다” 강력 저지 총공세 결의 ‘이제 한나라당은 선의의 경쟁 대상이 아닌 투쟁의 상대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단독 개회를 강행하기로 하자 이를 강력 저지하겠다며 총공세에 나섰다. 22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총회 결과가 나온 뒤 소집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였다. 정세균 대표는 “한나라당이 소통과 통합의 정치를 포기하고, 독선과 독주를 결심했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야당을 일방적으로 깔아뭉개고 무시하는 태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결기를 다졌다. 사회를 맡은 김영록 원내 부대표는 “국민을 무시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후안무치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우제창 원내대변인은 “모든 것을 걸고 독주에 맞서기로 했다.”고 전했다. 자유토론에서는 릴레이 단식농성, 삭발, 장외투쟁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국회 등원을 거부하자는 주장이 쏟아졌다. 의원직 총사퇴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방법은 지도부에 위임했다. 검찰총장·국세청장 인선을 비롯해 여권 쇄신안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더해졌다. 정 대표는 “국세청장·검찰총장 인선은 측근정치와 공안통치를 계속하겠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한편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의 민주당 추천 위원들은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관련법에 대해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국민의 58.9%가 미디어관련법의 국회 표결 강행처리를 반대한다.’는 내용을 비롯해 미디어관련법에 부정적인 여론을 담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탈레반 “결혼 연주 하지마”…밴드 머리 삭발

    탈레반 “결혼 연주 하지마”…밴드 머리 삭발

    아프카니스탄의 마을 결혼식장을 덮친 탈레반 게릴라들이 현장에서 연주를 하던 뮤지션들을 폭행하고 머리를 삭발한 뒤 나무에 매다는 테러를 벌였다. 1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게릴라들은 애초부터 결혼식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뮤지션들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마을 이장이 월요일(현지시간) 밝혔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집권기 동안 아프카니스탄에서 비이슬람 음악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라흐마툴라 칸 이장은 “결혼식 파티에 한 무리의 탈레반 게릴라들이 나타나 뮤지션 다섯을 붙잡아 폭행하기 시작했고 악기도 모조리 부셨다.”며 “밤새 나무에 묶여 있던 뮤지션들을 아침기도를 나가는 주민들이 발견했다.”고 전했다. 이장에 따르면 탈레반 게릴라들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뮤지션들의 머리를 밀고 향후 결혼식에서 연주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과 관련, 칸 이장은 탈레반 게릴라들의 세력이 점차 득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아프칸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결혼식은 전통적으로 수백명의 하객이 모여 음악을 즐기고 노래를 부르며 종종 밤을 세워 축하연을 벌인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사진=탈레반 깃발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음악통신원 고달근@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스피어스 닮고파”…10년 새 2억 쓴 여성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27)의 팬을 자처하는 영국 여성이 막대한 금액을 쏟아 스피어스와 닮은 꼴로 거듭났다. 스피어스를 닮기 위해 10년 동안 2억 7000여 만 원을 들인 주인공은 케임브리지에 사는 로나 블리스(28)다. 블리스는 10년 전 스피어스가 TV에 나와 공연하는 모습에 한 눈에 반했고, 그 날 이후 외모는 물론 말투와 행동까지 따라해왔다. 그녀는 “가수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행위 예술을 전공했지만 브리트니처럼 재능이 없었다.”면서 “직접 무대에 오르기보다 스피어스를 흉내내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스피어스 닮은 꼴 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닮은 꼴 연예인을 양성하는 연예 기획사와 계약했다. 성형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블리스는 10년 간의 공연으로 벌어들인 수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많은 돈을 스피어스가 입은 의상을 사고 연출한 헤어스타일을 흉내낼 뿐 아니라 음색을 따라하기 위한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명목으로 썼다. 그러던 중 스피어스가 케빈 페더라인(31)과 이혼한 뒤 삭발하는 충격적인 행동을 하자, 블리스도 삭발을 감행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 아깝긴 했지만 스피어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며 그녀는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다. 영국 및 해외 나이트클럽에서 스피어스 공연을 흉내내는 블리스는 “진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스피어스를 따라하는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녀는 “스피어스의 사소한 행동까지 따라하는 것에 가끔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녀는 우상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서 “스피어스가 오랫동안 행복하고 건강한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첫 한국인 루트 뚫고 등정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첫 한국인 루트 뚫고 등정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티베트 이름 초모랑마) 정상을 한국인이 새로 낸 길을 따라 올랐다.1977년 9월15일 고(故) 고상돈의 에베레스트 초등 이후 32년 만에 이룬 쾌거다. 박영석(46·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가 20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6시15분) 남서벽 코리안 신 루트를 통해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고 동아일보가 전했다.박 대장과 진재창(43) 부대장, 신동민(35), 강기석(33) 대원은 이날 밤 0시40분(한국시간 오전 3시55분) 캠프5(8400m)를 출발해 14시간20분 사투를 벌인 끝에 정상에 마침내 우뚝 섰다.오전 8시18분 서릉루트의 최대 난코스인 70m 높이의 스텝을 올라선 뒤 오전 10시14분 50m 높이의 스텝을 넘어섰다.특히 박 대장은 지난달 1차 정상 도전 때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을 딛고 나흘 동안 2000m의 수직벽인 남서벽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지난 3월19일 출국 이후 63일 만에 들려온 원정 성공 소식이다. 이로써 한국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에 처음으로 ‘코리안 루트’를 갖게 됐다.또 20여개에 달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루트 가운데 ‘박영석 루트’가 새로 생기게 됐다. 히말라야 산맥의 거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새 루트를 낸 것은 1975년 영국의 크리스 보닝턴 팀,1982년 옛소련 팀에 이어 세 번째다.이로써 박 대장은 2005년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 이상14좌와 7대륙 최고봉,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것)을 달성한 데 이어 다시 세계 산악계에 커다란 획을 긋게 됐다. 1991년과 1993년 두 번 도전했다 연거푸 고배를 든 뒤 2007년 세 번째 도전에서 박 대장은 산악인 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피눈물’을 흘렸다.해발 8000m까지 진출했지만 눈사태로 아끼던 후배 오희준과 이현조를 잃은 것.두 후배를 잃은 것은 1993년 남원우와 안진섭에 이어 두 번째였고 공교롭게도 이들을 남서벽에 모두 묻은 것이 5월16일로 똑같아 기막힌 악연에 당시 원정대는 울어야 했다.박 대장이 두 사람의 시신을 찾아내 장례를 치르면서 삭발한 채 통곡했던 일은 두고두고 산악인들 입에 오르내렸다.감동적인 다큐 영화 ‘길’에도 상세히 소개됐다. 박 대장은 지난해 9월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맸지만 또다시 악천후에 가로막혀 산을 내려와야 했다. 4전5기 끝에 남서벽에 새 루트를 열어 정상까지 밟은 박 대장은 “정상에 선 것이 꿈만 같다.한국 산악의 자존심을 세운 것 같아 기쁘다.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에 계속 나서겠다.”고 밝혔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원정대는 28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오늘의 눈] 기자회견 적법기준은 경찰 맘대로?/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기자회견 적법기준은 경찰 맘대로?/박건형 사회부 기자

    지난 13일 오후 서울의 한 신문사 앞. 노무현 전 대통령 사법처리 여부 등 사회 현안에 보수적 입장을 가진 100여명이 넘는 노인들이 현수막을 들고 모였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해당 신문사를 ‘변절했다.’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참가자들은 이 말에 동조하며 함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행사는 인도를 점거한 채 30분 넘게 진행됐다.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경찰차 한 대와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경찰관 두 명의 모습은 익숙한 시위 현장에서 볼 수 없는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기억을 되돌려봤다. 지난달 10일 경찰청 앞에서 진행된 대학생들의 기자회견이 떠올랐다. 이들은 등록금 인하를 주제로 한 기자회견 중 삭발식 퍼포먼스를 펼치고 몇 차례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기자회견을 빙자해 구호를 외친 것은 불법시위”라며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을 연행했다. 처음부터 이들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병력은 2개 중대 200여명이나 됐다. 연행된 학생은 49명이었다. 2개 중대와 2명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경찰청은 ‘엄격한 법적용’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문사 앞 시위는 기자회견으로 위험하지 않았으나 대학생들의 경우, 구호를 외치는 순간 시위로 변질돼 불법시위에 따른 조치를 했다.”고 구분했다. 기자회견을 어떻게 구분한 것일까. 경찰 관계자는 “상황을 종합해 봐야겠지만 현장지휘관이 그때그때 판단해야 한다.”면서 “딱 잘라서 말하기가 힘들다.”며 겸연쩍어했다. 촛불시위 참가단체와 폭력시위 단체에 대한 정부지원금 금지 논란과 관련해 진보와 보수에 들이대는 정부의 잣대가 다르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단체를 규정한 당사자인 경찰은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해 얻은 결과”라고 일관되게 말한다. 모양은 비슷했으나 그 과정과 끝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 단지 ‘오해’였으면 좋겠다. 유독 한쪽에만 엄격한 법이 적용된다고 믿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박건형 사회부 기자 kitsch@seoul.co.kr
  • [프로축구] 지난해 챔피언 12일은 꼴찌 ‘극과 극’

    [프로축구] 지난해 챔피언 12일은 꼴찌 ‘극과 극’

    천하에 내로라하던 차범근 사단이 급추락했다. 차 감독이 이끄는 프로축구 K-리그 수원은 11일 현재 15개 팀 중 꼴찌다. 승점 6점(1승3무5패), 영원한 우승후보이자 지난해 챔프로선 한참 스타일을 구겼다. 올 시즌 경기를 치른 23일간 13일을 맨 밑바닥에서 헤맸다. ●막강 주전 자신감 회복이 변수 지난해만 해도 단 다섯 차례만 선두를 뺏겼던 수원이다. 차 감독이 2004년 1월 수원에 부임한 뒤 꼴찌를 기록한 것은 2006년 5월31일~7월16일뿐이었다. 그러나 금세 치고 올라가더니 후반기를 4위로 마쳤다. 4월23일부터 7월15일까지 13경기 연속 무승(5무8패)을 딛고 일어선 뚝심을 보였다. 정작 수원 ‘빅버드’ 팬들은 올 시즌 최악의 추락을 거듭하다가 리그 6위에 그친 2005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15위까지 미끄러졌지만 K-리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전력이다. 최전방에선 통산 23골(11도움)을 낚은 ‘브라질 괴물’ 에두(28)와 11골(3도움)의 이상호(22)가 버틴다. 하태균(23), 배기종(26), 서동현(24)도 빼놓으면 서러워할 만한 공격요원이다. 여기에다 허리 또한 매우 두껍다. 비록 팀 패배로 빛을 잃기는 했지만 10일 광주전(0-2)에서 삭발투혼을 보인 게임메이커 송종국(30)과 박현범(22), 홍순학(29), 안영학(30), 백지훈(24)은 국가 대표급들이다. 최후방에서도 거미손 이운재(36)가 노쇠(?) 기미없이 그런 대로 생생하다. 중국 국가 대표팀 출신인 리웨이펑(31)은 수비수이면서도 여차하면 골까지 노린다. ●키플레이어 제2 조원희가 없다 무엇보다 득점력이 빈약하다. 달랑 6골. 에두만 2골을 뽑았다. 실점은 ‘12’나 된다. 또 시즌 들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맞았다. 명품 수비를 뽐내던 이정수(29·J-리그 교토 퍼플상가)와 마토(30·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 조원희(26·EPL 위건) 등 주축이 해외로 빠졌다. 리웨이펑과 알베스(27)를 영입했지만 아직 글쎄다. 수비와 미드필더들이 부지런히 누비며 공간을 만들고, 공격수들이 막히면 이들이 한몫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득점도 중요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는 조원희와 같이 청소하는 역할을 하는 키플레이어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공격수들이 빨리 자신감을 되찾아 부활하기 시작해 연승하면 금세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조원희가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상대 선수들을 끌고 다니는 사이에 마토(190㎝·K-리그 4시즌 21득점 8도움)가 헤딩이나 세트피스 골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린 게 대표적이다. 이어 “이런 기회를 맞지 못하면 침체가 길어질 수도 있지만 장기화되기엔 딱히 수원을 넘어설 강자도 없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K-리그] 이병 최성국 “차붐 열중쉬어”

    [K-리그] 이병 최성국 “차붐 열중쉬어”

    특급 ‘이병’이 최전방에서 화끈한 공격을 뽐냈고, 선임 ‘상병’은 보급로에서 그를 도왔다. ‘챔피언’은 물꼬를 트지 못하고 또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광주가 지난해 K-리그 챔프 수원까지 꺾었다. 광주는 10일 수원 원정경기에서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의 결승 골과 최원권의 페널티킥 골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뒀다. 2007년 4월4일 컵 대회 원정(2-1 승) 이후 2년여 만에 맛본 승리였다. 광주는 6경기 연속 무패(5승1무)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최성국은 올 시즌 4득점째, 김명중은 지난달 26일 강원전(3-1 승) 2득점 이후 3개째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팀을 이끌었다. 광주는 승점 19(6승1무1패)로 선두 전북(승점 20·6승2무)을 바짝 쫓았다. 수원은 4연속 무승(2무2패) 속에 2007년 5월5일 이후 맞대결 5연속 무패(4승1무)도 끝내며 꼴찌(승점 6점·1승3무5패)로 주저앉았다. 차범근 수원 감독은 “사령탑을 맡다 보면 위기가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은 새로 도전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며 변화를 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회는 수원에 먼저 찾아왔다. 0-0이던 전반 27분 삭발까지 하고 나선 송종국이 상대 송한복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었다. 하지만 이상호가 찬 공은 광주 문지기 김용대의 손끝에 걸리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광주로서는 위기 뒤 찬스가 왔다. 전반 42분 상병 김명중이 페널티 지역 왼쪽 깊숙이 치고 들어가 아크 왼쪽으로 달려들던 이병 최성국에게 짧게 찔렀다. 최성국은 왼발로 강력한 슈팅을 때렸고 공은 골대 위 아래쪽을 맞힌 뒤 네트 안으로 떨어졌다. 차범근 감독은 하프타임 때 김대의를 빼고 서동현, 후반 10분엔 최성환 대신 박현범, 27분 조용태 자리에 백지훈을 들여보내 반전을 꾀했으나 끝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특히 송종국은 프리킥을 도맡아 처리하는 등 투혼을 발휘했지만 빛을 잃었다. 후반 역시 수원 수비수들을 몰고 다니며 줄곧 누빈 최성국의 무대였다. 막판 상대 문전을 파고들던 최성국은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었고 최원권이 차분히 차넣어 마무리했다. 대구에서 전남은 전반 7분 이천수가 낚은 결승 골을 끝까지 지켜 2-1로 승리, 3연승을 내달렸다. 경남은 창원에서 후반 25분 송호영의 골로 강원FC를 1-0으로 꺾고 올 시즌 무승(6무5패)을 끝냈다. 울산 원정에 나선 인천은 후반 22분 ‘괴물 새내기’ 유병수의 헤딩 골을 앞세워 1-0으로 이겼다. 유병수는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3골 2도움)로 신인왕 후보 0순위다운 면모를 자랑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록 콘서트서 벌어진 ‘삭발 퍼포먼스’

    록 콘서트서 벌어진 ‘삭발 퍼포먼스’

    미국 록 뮤지션 크리스 코넬(44)이 콘서트 도중 밴드 기타리스트의 머리를 삭발하는 파격적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를 낳았다. 관객의 비명과 함성이 한꺼번에 쏟아진 곳은 지난주 수요일밤(현지시간) 맨하탄 웹스터 홀에서 열린 크리스 코넬의 콘서트 현장. 공연 막바지 앙코르 곡을 연주하던 기타리스트 요기 로니치가 솔로 연주에 들어서자 전동 이발기구를 들고 나타난 코넬은 그의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기타리스트는 코넬과 뜻을 맞춘 듯 의자에 앉은 채 연주를 이어갔고 3분에 이르는 기타 솔로가 끝났을 때 치렁치렁하던 그의 머리칼은 모두 잘려 나가고 없었다. 13일 뉴욕데일리뉴스에 따르면 최소 30cm 길이로 보이던 기타리스트의 머리는 이날 코넬의 퍼포먼스 덕에 대머리가 되고 말았다고 콘서트 관객이 전했다. 사진=동영상 캡쳐 화면 / youtube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음악통신원 고달근@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뉴스 다큐 시선] 도봉산 산악구조대

    서울 도봉산에 가면 다른 산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이들이 있다. 해발 650m 지점에 자리잡은 산악구조대, 전국에 3개뿐인 경찰산악구조대 중 하나다. 서울에선 북한산구조대와 더불어 등산객들의 지킴이 역할을 해 왔다. 상춘객들의 이어지는 이맘 때, 그들에겐 봄을 즐길 여유가 없다. 26년간 등산로에서 조용히 사람과 산을 지켜 왔을 뿐이다. 생명을 지키는 의무감과 끈끈한 동료애로 뭉친 그들이 ‘산에서 배워 사람들에게 베푸는’ 등정길을 따라가 봤다. 글·사진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산악구조대’라는 글씨가 새겨진 녹색점퍼 차림의 구조대원들의 순찰길을 따라나섰다. 구조대 산장에서 마당바위 쪽으로 가다 신선대로 방향을 트는 비교적 짧은 코스였다. 10분쯤 지났을까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대원들은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는 손오공 같았다. 다들 아무리 20대 초반이라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발걸음은 마치 솜털 같이 가벼워 보였다. 세 갈래 길 앞에 다다르니 등산로를 벗어나 낙엽이 쌓인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인명을 구조할 때 이용하는 단축 루트라고 한다. 김준석(22) 대원은 “구조할 때 헬기가 뜰 수 있는 날은 절반밖에 안 된다. 대부분 우리들이 들쳐 업거나 들것에 싣고 119구급대가 있는 산밑까지 무조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대부터 주봉, 포대능선을 거쳐 사패산까지가 구조대의 영역이다. 하루 24시간 비상대기체제다. 도봉산은 대부분 암반과 기암절벽으로 돼 있어 안전사고가 잦은 편이다. 지난해만 해도 125명이 다치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는 3월 현재까지만 17명이 다치고 3명이 숨졌다. 지난달 28일엔 1만 4245명이 방문해 하루 동안 구조 헬기가 세 번이나 떴다. 구조대원이라고 다치지 말란 법은 없다. 김병철(54) 대장은 “지난해 송추에서 신선대로 오는 길목에서 사고가 접수됐는데 우리 대원이 구조하러 뛰어가다가 돌 사이에 발이 끼어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골절됐다.”면서 “사람 구하기도 전에 대원들이 먼저 일 치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나더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전득주(45) 대장은 아침에 올라오면 근처 석굴암에 들러서 다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부터 올린다. 종교는 없지만 지난해 5월 도봉산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 생긴 버릇이다.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 의경 신분이라 아직 어린 대원들은 산에서 인생의 첫 죽음을 경험했다. 홍기문(22) 대원이 겪은 첫 사망자는 아직도 그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5월 칼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20대 남자다.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결혼을 미뤄 왔다고 한다. 결혼할 때까지 약혼녀가 뒷바라지해 준 끝에 어렵게 취직했다며 좋아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약혼녀와 등산복을 맞춰 입고 다정하게 손잡고 도봉산을 찾았다. 가파른 암벽 앞에서 약혼녀를 산에서 내려가는 길로 먼저 보내고 혼자 바위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이렇듯 죽음이 쌓여갈수록 그들은 삶을 배운다. “구조하면서 오히려 저희가 더 배웁니다. 삶에 감사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산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홍 대원은 순찰을 돌다 사망지점을 밟을 땐 이 곳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눈에 선해진다. 그럴 땐 영혼이 산을 맴돌지 말고 편한 곳으로 가시라고 잠시 두 손도 모아 본다. 대원들의 목소리는 하나 같이 차분하고 얼굴은 부처처럼 온화하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현장에선 나이가 서너배 많은 어르신도 그들의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산은 인생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급한 맘에 성급히 추월하거나 준비없이 덤벼들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날이 궂은 날엔 오히려 사고가 적다. 노인들의 사고 빈도도 낮다. 험한 날엔 일부러 조심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이다. ‘등산 좀 했다.’고 자부하는 30~40대들이 잘 다친다. 사고는 순간이다. 대원들은 “산에선 1초도 만만히 봐선 안 된다.”라며 신신당부했다. 구조대원들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다. 때문에 ‘One for all, all for one(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의 정신이 강조된다. 고참이니 신참이니 하는 위계 질서는 중요치 않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로프처럼 단단히 엮여져 있어야 한다. 전득주 대장은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원을 뽑을 때 신체조건보다 인성을 더 본다.”고 소개했다. ●“등산도 경쟁의 장이 돼서 안타깝다” 조난 접수가 들어오면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 걸려도 온 산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 김준석 대원은 “그럴 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제발 빨리 찾아서 구하게 해달라는 간절함 뿐이다.”라고 말했다. 구급장비가 담긴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힘든 걸 느낄 새도 없이 뛰고 난 다음날이면 옴짝달싹 못한다. 등산객들이 봄꽃을 즐기는 쉼터가 그들에겐 촉각을 다투는 응급현장이자 삶의 배움터다. 사망자가 생길 땐 내 탓인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전 대장에겐 지난해 12월에 사망한 40대 여성의 경우가 그랬다. 영하 12도가 넘는 칼바람 추위에 해질 무렵쯤 만장봉에서 추락자 신고가 접수됐다. 전 대장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헬기 예열시간을 벌려고 미리 헬기 요청을 띄워 놓고 현장에 나선 사이 최종 결재를 기다리다 시간이 좀 걸렸다.”면서 “그날따라 사정상 헬기는 뜨지 못했고 구조대가 병원으로 옮겼지만 환자는 결국 숨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주5일제 이후 등산객이 급증했지만 등반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즐기는 게 아니라 남보다 앞서서 산 정상을 올라가기에 바쁘다는 지적이다. 전 대장은 “원래 우리의 산 문화는 ‘입산(入山)’이다. 굳이 정상을 밟지 않아도 물 좋고 바람 좋은 바위에 걸터 앉아 시 한 수 읋고 피리부는 풍류를 즐기는 쪽이었다.”면서 “그런데 서양식 산행 문화가 도입되면서 언제부턴가 정상탈환이 목표가 돼버렸다. 등반시간을 단축해야 된다는 생각에 산도 대결의 장으로 바뀐 것 같아 안타깝다.”며 멀리 산너머로 눈길을 돌렸다. ●몸짱·마음짱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등산로는 대원들에겐 생명길이다. 구조대에 들어오면 먼저 도봉산 등산로 지도를 그리고 읽는 법부터 배운다. 지난달 23일 입산한 막둥이 김수호(21) 대원은 아직도 등산 루트를 정확하게 외지 못했다. 마당바위~관음암~칼바위~신선대~포대능선 등 주 순찰 코스는 서너곳. 그러나 산악구조대원이라는 명함이라도 들이밀자면 등산로 수십 개를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김 대원은 그러면서도 “사고 다발지역인 칼바위, 포대능선쪽은 자신있다. 순찰 때마다 앞장서서 가보곤 한다.”며 자랑했다.  등반대에 들어오면 3주 정도는 구조요청 접수, 응급처치 연습 등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한다.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덤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단련되는 몸이다. ‘물살’로 입산해서 한 달이 지나면 배가 들어가고 6개월이 지나면 잔근육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하산할 때쯤엔 다들 몸짱으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은신처도 생기게 마련이다. 홍 대원은 “마당바위로 가는 길목에 아지트가 있다. 사람들의 왕래도 적고 햇볕이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바위가 험하지 않아 힘들 때면 찾곤 한다.”고 귀띔했다. 입산해서 처음 내려다 봤던 서울 야경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홍 대원은 “새까만 바탕에 별빛처럼 박힌 도심의 불빛을 보고 고참들에게 ‘절경 보고 왔습니다.’고 보고했더니 막 웃더라. 그것도 한달만 지나면 지겨워진다고.”라며 웃어 보였다.  하산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최고참 박서광(22) 대원 눈에 비친 산과 사람들의 모습은 어떨까. 박 대원은 “의외로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도 많다. 술이 취했거나 다투는 사람들, 불법취사를 하거나 인화물질을 소지한 이들까지. 안 된다고 말하면 막 대하는 분들도 많다.”며 씁쓸해했다. 의무경찰기간을 대충 때우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박 대원은 “우리에게 ‘대충’이란 없다. 산에서 생명을 구하는 이들은 우리뿐이고 또 그 우리도 그 속에서 많은 걸 배운다.”며 힘주어 말했다. ■ 도봉산 산악구조대는 총8명 24시간 비상대기 26년째 ‘생명 지킴이’로 1983년 3월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학생 산악연맹 소속 7명이 암벽에 매달려 동사한 사고가 일어났다. 119구조대가 출동했지만 꽁꽁 언 로프 때문에 바위 아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 비극을 계기로 북한산과 도봉산에 산악구조대가 생겼다. 24시간씩 교대근무하는 대장 3명과 대원(의경) 5명이 한 식구다. 도봉산 정상 선인봉 약 300m 아래의 암벽 밑에 위치한 구조대는 2003년 12월, 99㎡(약30평) 남짓한 아담한 단층 목재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침실 2개와 주방, 화장실을 갖췄지만 대원들은 그전까지 움막 같은 곳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물도 맘놓고 쓸 수 없었지만 지난해 11월 근처 샘(푸른샘)을 연결해 그나마 생활이 나아졌다. 대원들은 “이제는 등산객들이 언제고 방문해도 마음껏 물동냥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1t짜리 물탱크와 정화조를 갖춰 도봉산 환경 문제도 해결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순찰로 시작해 순찰로 끝난다. 아침 6시30분쯤 일어나 끼니 때와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2인 1조로 짜여 무전기를 동반하고 순찰을 돈다. 하루 최소 7시간 이상을 산 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구조대에 도착하면 마스코트인 혼혈 진돗개 ‘마초’가 먼저 맞아 준다. 앞서 자리를 지켰던 흑삽살이가 병으로 아쉽게 저 세상으로 간 뒤 들여온 녀석이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심하게 짖지는 않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초’란 이름이 붙었다. 낯을 익히면 금방 짓궂게 달려드는 놈이다. 구조대를 힘빠지게 하는 것은 오래된 구조 매뉴얼과 부실한 현장 지원이다. 구조헬기는 소방방재청장의 최종 결재가 떨어져야 뜰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선 가슴이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장까지 6명, 소규모 살림에 의경 한 끼 부식비 1200여원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며 등산객들이 건네는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도움받은 이들이 고맙다며 산 아래 맡겨 놓는 김치 한 통에 오늘도 대원들은 밤낮없이 도봉산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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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중권 “김 고문,주제넘게 나서지 말라”

    진중권 “김 고문,주제넘게 나서지 말라”

     ”지금은 주제 넘게 김대중 고문이 나설 때가 아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13일치 신문 칼럼을 통해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신중한 언론 보도를 요구한 것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김 고문은 좀 빠져라.”고 힐난했다.  진 교수는 12일 밤 인터넷판에 게재된 칼럼을 먼저 읽고 진보신당 게시판에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자뻑’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장자연 리스트에 언급된 언론사가 어디인지 밝히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던 조선일보가, 드디어 김대중 고문의 입을 통해 그 리스트에 언급된 인물이 ‘조선일보의 한 고위인사’라고 고백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조선일보가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현행법에 따르면,모든 이들은 재판을 통해 형을 확정받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우받게 되어 있다.또 이미 체포된 살인혐의자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해서 얻어지는 사회적 공익은 없다.”고 주장한 뒤 “아무 이유 없이 법을 어겼던 조선일보가 자사의 우두머리 앞에서는 갑자기 논조를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고문이 칼럼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근거없는 리스트” “입증되지 않는 어느 ‘주장’”이라고 지칭한 것에 대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일축한 진 교수는 “그 리스트는 그냥 리스트가 아니다.한 연예인이 자기 목숨을 끊기 전에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 여인(장자연)은 (문서에 기록된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조선일보나 스포츠조선의 사장에 대해서 사감을 가질 이유도 없고,나아가 그 리스트로 공갈이나 협박을 하여 사익을 취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그런 그가 왜 그런 내용을 글로 남겼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 여인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 전 작성한 그 문건에 기록된 내용이 김대중 칼럼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면, 조선일보는 장 씨가 목숨을 버리기 전에 왜 허위진술을 해야 했는지,가능한 시나리오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 교수는 문건에 이름이 오른 인물들을 “이 나라의 메이저 언론사를 소유한 권력자들이며 ‘공인’”이라고 지적한 뒤 “누구보다 엄격한 윤리기준을 준수해야 할 사람들이 술대접을 받은 것으로 지목받았다면,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실명을 공개할 가치가 있다.”고 공개 해명을 촉구했다.  그는 칼럼을 쓴 김 고문을 향해 “김 고문이 사장님들 야간 일정까지 늘 함께 챙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비아냥거리면서 “김 고문은 좀 빠져줬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언론 앞에 나서야 할 것은 문건에 거명된 그 분들”이라고 주장한 뒤 “김 고문이 저런 칼럼을 쓰는 것을 보니, 경찰에서 대강 덮어두고 넘어가려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경찰 수사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진 교수는 “장자연 사건은 이 정권이 끝난 다음에라도 언젠가는 재수사를 해 철저하게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며 “’장자연 씨가 왜 자신의 글에서 조선일보 사장을 언급했는가?’ 여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이 없는 수사 결과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괴롭고 힘들다” 울어버린 식약청장 신경민 떠나며 “할 말은 많지만” YS “서울 불바다 막으려 미 영변공격 반대” 눈물의 삭발 한아름양 “벼랑끝 대학생 옥죄” 미네르바 박대성씨에 징역 1년6개월 구형
  • 눈물의 삭발 한아름양 “벼랑끝 대학생 목죄는 건…”

    ‘파르라니 깎은 머리…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20여년을 길러온 긴 머리카락을 삭발하던 지난 10일.머리카락이 하나씩 땅바닥에 떨어지자 한아름(홍익대 총학생회장)양의 글썽이던 눈물이 봄바람을 타고 볼에 흘러내렸다.그녀가 삭발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한 학기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등록금 때문이었다.  한 양은 이날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소속 회원들과 함께 ‘등록금 인하 투쟁 삭발식’을 가졌다.한 양은 당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알려져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저도 여학생이고 지금 ‘4학년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마음이 좋지만 않더라고요. 솔직히 한 여자로서도 제 긴 생머리가 아까운 면도 있었고요. 슬프기도 하고 ‘제발 해결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하나 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고, ‘뭐라도 하겠다.’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한 양은 13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삭발할 때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녀는 삭발까지 강행한 이유에 대해 “‘뛰는 물가 위에 나는 등록금,서민 다 잡아먹는 등록금’이란 말이 있다.”며 “그렇게까지 아등바등 살면서 고액 등록금을 부담하고 졸업을 해도 몇개월짜리 인턴밖에 할 게 없다….벼랑 끝에 서 있는 대학생들 목을 조르고 있는 듯한 심정”이라고 설명했다.  한 양은 “어떤 학우는 고액의 등록금이 부담된다며 자살하고 싶다고 쪽지를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며 “가슴 아프고 얘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난다.”고 학생들의 현재 모습을 전했다.  그는 또 ‘반값 등록금’과 관련, “한나라당 5대 입법화 과제에 반값 등록금 문제를 내건 만큼 ‘반값 등록금’이 대선 공약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고는 “공약 여부를 떠나서 정부라면 서민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며 “등록금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태도만으로도 ‘서민들을 바라보는 정부냐,서민을 외면하는 정부냐.’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 정책공약으로 ‘대학 등록금 부담 절반으로 경감’을 내세웠지만,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묶음  등록금 없어 고민하더니… 명문대 중퇴 20代 숨진 채 발견  기준금리 내려도 학자금 대출금리 고공행진… 이유는 가산금리 탓  
  • 신인가수 한예서, ‘반삭발 파격 비주얼’ 관심 집중

    신인가수 한예서, ‘반삭발 파격 비주얼’ 관심 집중

    신인가수 한예서(23)가 ‘반삭발’ 파격 비주얼과 색다른 퍼포먼스로 가요계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한예서는 지난 20일 방송된 KBS 2TV 음악 프로그램 ‘뮤직뱅크’에서 타이틀곡 ‘넘버제로’ 무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화려한 조명 아래 뾰족하게 세우고 액세서리를 단 포니테일을 제외하고 전부 삭발한 한예서의 펑크 헤어스타일이 눈길을 모았다. 연예계에서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던 독특한 ‘비쥬얼 쇼크’. 또 핑크 시폰 소재 상의, 짧은 화이트 핫팬츠를 통해 드러낸 까만 피부와 서구적인 보디 라인으로 캐주얼하면서 여성스러운 관능미를 과시했다. 이같은 파격 비주얼과 무대를 선보인 한예서는 방송이 끝난 직후 각종 인터넷 포털 인기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며 관심을 모았다. 타이틀곡 ‘넘버제로’는 복고풍의 펑키 댄스곡으로 중독성 있는 안무와 가사가 돋보이는 곡. ‘넘버제로’를 의미하는 방귀 소리와 퍼포먼스가 눈에 띈다. ‘넘버제로’는 미국 젊은 여성들이 화장실에 갈 때 쓰는 간접적인 표현들(NO. 1, 2)에서 착안해 만든 제목이다. 아름다운 외모가 선호되고 있는 요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쾌한 노래다. 이승기, 장나라, 박혜경 등의 작업에 참여한 프로듀서 그레이프(Grape)와 국제 활동 및 국내 조수미, 채정안 등 스타들의 스타일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엘리자 리, 패션 브랜드 캘빈 클라인과 톰 포드 등 광고 아티스트 조벡(Jo Beck)이 이번 앨범에 참여했다. 한편 19일 온라인을 통해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약 10억 원의 무대 소품과 세트가 동원됐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성철스님 장례와 비교해보니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1993년 11월3일 입적한 성철 스님의 장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천주교와 불교가 서로 다른 장례의식을 갖고 있지만 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어른을 보내는 국민들의 슬픔과 아쉬움은 두 장례식에 똑같이 배어 있다. 성철 스님의 장례식 때는 고통을 떠나 열반에 들어 영생을 얻는다는 거화(솜방망이 불을 높이 치켜듦) 및 하화(시신이 안치된 연화대에 불을 붙임) 의식이 있었다. 김 추기경의 장례에도 향을 피우고 성수를 뿌리면서 성인들이 고인의 영혼을 영접해주기를 바라는 고별식이 있다. 김 추기경은 입관예절 직전인 19일 오후 4시20분에 염습된 뒤 관에 모셔졌다.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는 김 추기경을 목욕시키고 의복으로 갈아입힌 후, 입관 때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함께 넣었다. 7일간 해인사 퇴설당에 모셔졌던 성철 스님 역시 1993년 11월10일 삭발, 목욕, 세수, 수의를 입는 착군, 승복을 입는 착의, 모자를 쓰는 착관 등의 입관절차를 거쳤다. 성철 스님의 영결식에 맞춰 전국 조계종 본·말사 1만 2000여곳은 일제히 다섯번씩 타종했다. 김 추기경의 장례식도 전국민의 추모식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두 분이 남기고 간 유품도 비슷하다. 성철 스님은 누더기가 된 염의(染衣) 한 벌과 검은 고무신 한 켤레, 돋보기 안경 하나만 남겼다. 김 추기경 역시 낡은 의복과 신발 그리고 안경 정도만 남겼다. 박성국 안석기자 psk@seoul.co.kr
  • ‘태군’의 특별한 이야기 “기적을 믿으세요?” (인터뷰)

    ‘태군’의 특별한 이야기 “기적을 믿으세요?” (인터뷰)

    # scene 1. 기적을 믿으세요? 누군가가 그랬다. ‘기적’은 노력하는 이에게 하늘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4년 전, 오디션에 떨어지고 전화가 왔다. (강원래) “이름이… ‘김태군’이라고 했죠? 듀스의 김성재 이후 이렇게 선이 아름답게 춤을 추는 춤꾼은 처음입니다. 기회가 반드시 올거예요. 아니 소개시켜 주고 싶군요.” 두 사람의 첫 ‘휠체어 동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난생 처음 방송국이란 곳을 가봤고, 박미경 누나의 집에도 갔다. 4년 후, 생애 첫 데뷔무대 앞둔 ‘신인 가수’ 태군은 자꾸 KBS 공개홀 밖으로 향하는 시선에 혼잣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그 분이 오실까. 그 분이 날 기억 하실까…. 기적 같은 만남. 강원래가 몸소 휠체어를 밀며 나타났다. 장황한 응원의 말은 없었다. 짧지만 심장을 관통한 한 마디…. “열심히 해라.”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4년간 꿈 꿔왔던 ‘단 한번의 순간’이었다. 울지 않겠노라, 절대 울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세했었는데….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흐르고 또 흘러 내렸다. 떨리는 손으로 ‘태군(TAE GOON)’이란 두 글자가 정확히 새겨진 CD를 건네 드렸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꼭 지켜봐 주실꺼라 믿었어요. ‘재회의 오늘’을 수백번 수천번씩 꿈에 그려 왔습니다.” # scene 2. 왜 울어 임마. ”결국 눈이 퉁퉁 부어 첫 무대에 올랐어요.(웃음) 생방송 전 인것도 까맣게 잊고 펑펑 울었어요.” 태군이 흘린 눈물 의미는 단순한 ‘가수 데뷔의 기쁨’으로 응축될 수 없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 죄책감도 그 절반을 차지했다. ”오디션을 100여번도 넘게 봤지만 저를 인정해 주신 최초의 한 분이셨어요. 세기의 춤꾼에게 들었던 한 마디가 저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죠. 하지만 4년이란 긴 시간에 자신감이 무뎌지던 어느 순간, 연락을 못드리게 된거죠.” 강원래는 태군의 이런 마음을 투명히 들여다 보는 듯 따스히 웃었다. 진한 포옹 대신 손을 내밀었다. “왜 울어 임마.” ’행복 해서요. 너무 행복해서요…. 이제는 정말로 보여 드릴 수 있잖아요.’ # scene 3. 가수를 꿈꾼 ‘무용꾼’ 태군 훤칠한 키에 자그마한 얼굴, 그리고 보는 이까지 기분 좋아지는 ‘함박 미소’. 인터뷰 전 일전의 만남에서 기자가 태군에게 받은 첫인상은 ‘훈남 신예’였다. 서툰 판단은 그의 첫 무대를 지켜보던 순간,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강원래가 알아본 춤꾼답다. 다만 의아했던 점은, 단 4년간의 비장한 각오만으로 마스터 가능한 실력이냐는 물음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춤꾼’이 아닌 ‘무용꾼’. 중학생 시절 발레에 비범한 재능을 보인 태군은 이후 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 한국무용에서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용의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기본기를 닦았다. ”무용은 제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하지만 제 진짜 꿈은 가수 였거든요. 5살로 기억해요. TV에서 우연히 검은 정장을 입고 총알춤을 추는 ‘심신’을 보게 됐어요. 얼마나 멋있었던지…(웃음). ‘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꼬마의 심장이 마구 뛰는 거예요.” # scene 4. 스무살 태군, 이유있는 삭발. ’무용수’와 ‘가수’… 두 갈래의 기로를 섰던 시점은 4년전 스무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무살, 대학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에 와있음을 직시했어요. 신중한 결정이 필요했죠. 소중하게 키워 온 가수의 꿈을 바로 그 때가 아니면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태군은 머리부터 밀었다. 그후로 4년, 가수의 꿈을 이룰 때까지 그는 단 한번도 머리를 기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예쁘장한 외모에 다소 망설임이 있었을 법도 한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 치의 아쉬움도 없었어요. 머리가 길면 무대 위의 움직임이 지저분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때 저에겐 연습한 만큼 얼마나 무대 위에서 발휘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 였어요. 제가 추는 춤의 선이 최대한 예뻐 보이고 싶었죠.” ’삭발’까지 강행하며 연습에만 매진해온 태군의 4년간의 고집과 집념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여타 ‘반짝 신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완성도 높은 무대로 대중들의 이목을 단박에 집중시키는데 성공했다. 단 한번의 홍보나 인터뷰도 없었지만 연일 각 포털 검색어 최상위권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본격적인 데뷔 활동이 한달이 채 안됐지만 외국 자동차, 화장품 등 CF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멀리 태국에서까지 비상한 관심을 모이며 현지 프로모션 및 앨범 주문도 폭주한 상태. 태군, 삭발한 값어치 톡톡히 해냈다. # scene 5. 스스로 인정할 때, 귀 열겠다. 실감이 되는지 묻자 눈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아니요!”라고 답한다. 잠시 골똘해진 태군은 이내 진지한 설명을 덧붙였다. ”최고가 되면 좋겠죠. 하지만 그보단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가 확실히 각인된 가수가 되는게 첫 번째 목표예요. 데뷔 후 이제 한달인데 요즘 주변에서 가끔 벅찬 칭찬이 들려올 때면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한없이 부족한 걸 잘 알고 있거든요.” 태군은 바로 지금 자신이 해나가야 할 일은 ‘검색어 순위’이나 ‘가요 차트’ 검색이 아닌, 일순간 무너지지 않는 ‘내공을 기르기’라고 언급했다. ”아직 ‘가수 태군’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려고요. 훗날, 그러니까 제 스스로를 ‘대중 가수’로 인정할 수 있는 기쁜 날이 오면 그 때 두 귀를 활짝 열겠습니다. 그 때는 정말 하나 하나 소중하게 들을게요.” 마지막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고 묻자 태군은 다시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강원래’라는 세 글자를 꺼냈다. ”멋있는 가수는 많지만 함께 웃게 하고 함께 춤 추도록 이끄는 가수는 흔치 않아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음악을 100%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해내는 가수가 이상적이 아닐까요? 클론의 노래를 들으면 어깨가 들썩들썩 하잖아요. 제 데뷔곡 ‘콜 미(Call Me)’도 대중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음악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흑인으로 변장한 백인이 7주동안 겪은 인종차별

    그것은 ‘실천적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미국판이다. 미국 텍사스 출신의 백인 존 하워드 그리핀(1920~1980)은 1959년 10월, 7주 동안 흑인을 체험한다. 그것도 당시 흑백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미국 남북 딥 사우스 지역에서다. 그는 흑인으로 변신하기 위해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을 5일간 쐬며 피부색을 검게 바꿔낸다. 그리고 머리를 삭발해 중년의 중후한 흑인으로 거듭났다. 이 생생한 체험을 기록한 것이 ‘블랙 라이크 미’(하윤숙 옮김·살림 펴냄)이다. 소설가이자 음악학자인 그리핀은 이 책이 20세기 인종차별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떠오르며 인권운동가로 명성을 얻었다.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오랫동안 백인우월주의자인 KKK단에게 테러를 당했고,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핀이 구체적으로 경험한 것은 당시 미국에선 상식적이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근대 이전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다. 변한 것은 오로지 피부색뿐이었지만, 그리핀은 모든 사람이 피부색을 보고 자신을 판단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디에도 ‘흑인 사용 금지’라는 팻말은 없지만, ‘신사용’ 화장실은 ‘백인 신사’만 쓸 수 있는 곳이었고, 흑인은 이른바 ‘격리된 시설’(separate facilities)로 가야 했다. 식당 앞에 놓인 메뉴판을 바라봐서도 안 됐고, 영화 포스터의 백인 여자를 쳐다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검은 피부색은 그저 백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흑백 인종차별에 관한 한 미국은 달라졌다. 흑인 대통령이 나왔으니 최소한 가장 상징적인 인종차별의 장벽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교육, 복지, 고용의 제도와 시스템이 정비됐다고 해서 뿌리깊게 박힌 잔뿌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또한 세계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러한 차별과 편견의 문제는 엄존해 있다. 빈곤, 계급, 인종 등으로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고 있을 뿐 우리의 문제로서 심각하게 존재한다. 이것이 50년 전 상황을 쓴 책이 여전히 미국 안팎에서 꾸준히 애정을 받으며 필독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리핀은 머리말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다. 또한 박해받고 빼앗기고 미움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독일에 있는 유대인일 수도 있고 미국 내 흩어져 사는 멕시코인일 수도 있으며 그 어떤 ‘열등한’ 집단에 속한 어느 누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1만 6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히칸 머리 ‘68cm’

    한 미국 남성이 가장 ‘높은’ 모히칸 헤어스타일 세계기록을 새로 세워 눈길을 끌었다. 모히칸 스타일은 머리 일부를 남기고 나머지를 삭발하는 머리 모양으로 국내에서도 빅뱅의 G-드래곤이 선보여 화제가 됐다. 영국 메트로가 17일 보도한 이 독특한 기록의 주인공은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에릭 한(35). 지난달 측정된 공식적인 그의 ‘뻗친’ 머리 높이는 68.5cm로 이전 기록인 61cm를 넘어 새로운 세계 신기록으로 인정됐다.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열린 이 도전 행사를 위해 그는 7년 동안 길러온 머리의 대부분을 삭발했다. 기록 측정 준비시간만도 무려 3시간이 소요됐다. 에릭은 “지난 기록을 갖고 있던 사람이 도전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있었다. 이전 기록은 24인치(약61cm)였는데, 내가 한 번 깨보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도전을 결정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한편 메트로는 “에릭은 머리길이 측정이 끝난 뒤 남은 머리도 모두 삭발해 지금은 세계기록 모히칸 머리를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온몸이 도화지”…세계 최다 ‘문신’ 할머니

    지난 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 18회 타투 컨벤션’에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문신으로 채운 한 할머니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소벨 발리(71)라는 이름의 이 할머니는 지난 2000년 시니어 부문 ‘최고의 문신 할머니’(World’s most senior tattooed woman)로 기네스 기록에 이름을 올려 인기스타가 됐다. 49세 때 우연히 문신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문신을 시작했다는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부터 발끝까지 문신으로 치장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 얼굴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에 문신을 새겨 ‘문신을 입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나 최근에는 머리를 모두 삭발하고 말 그대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문신을 새겨 다시 한번 이슈가 되고 있다. 그녀는 “이마의 하트와 장미는 얼마 전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새긴 것”이라며 “가장 좋아하는 문신은 가슴 부위의 호랑이 가족 문신”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녀는 문신 외에도 몸 곳곳에 장식된 49개의 피어싱도 함께 뽐냈다. 입술과 코 뿐만 아니라 가슴에까지 피어싱을 시도해 ‘피어싱 사랑’을 과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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